건설구원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5일 수새

 

본문 : 약4:13-17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성공되는 데에는 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해야 성공이 되지 기울이지 아니하고 성공되는 일이 없는 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생 동안에 참 세상적으로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한데 한  가지를 성공할라 하면 적어도 십 년은 걸려야 된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 통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십 년 전에는 그 일이 원만히 될 수가 없다 이래서 빨리  성공을 한다고 해도 한 십 년 걸리는데 그 십 년 걸쳐서 하는 그 성공을  사람들이 경영할 때에 자기에게 있는 마음이나 정신이나 욕심이나 시간이나  힘이나 그런 것을 다 기울인다. 또 그러고 생명까지도 기울인다. 그 무슨  사업이든지 하는 데에는 아무 일이라도 생명의 위험성이 없는 일이 없는데,  이러면 내가 약해 가지고서 병들 것도 모르고 또 그러면 위험해서 어떻게 되면  대번 직사할 것도 모르고 한 성공을 위해서 도모하는 것은 다 보통입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인생의 생애에 대해서 지혜 있는 사람들이 통계를 내서  말하기를 '인간 일생에 운이 세 번밖에는 안 돌아온다' 그 아주 행운이  행복스러운 운이 세 번밖에는 안 돌아온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깊은  뜻은 한 가지 일을 성사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십 년 걸린다, 십 년 걸리니까  인간에게 삼십 년이라는 그 토막을 빼 버리고 나면 인간 생애는 다 그 밖에 것은  다 껍데기 쭉정이 같지 참 사람이 일할 때는 한 삼십 년밖에는 안 된다, 그런  말과 같은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욕망을 가지든지 욕망을 가지는 일을 그것을  성사하려고 하면 십 년 걸려야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그저  하루 이틀에 그 일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시작할 때에  벌로 시작합니다. 아무나따나 그 일을 시작했다가 안 되면 또 저 일 또 안 되면  저 일 이래 가지고 일생 동안에 시작하는 것을 여러번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가지를. 수십 가지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다  말할 것 없이 결론은 실패자입니다. 세 가지 시작하는 것보다 두 가지 시작하는  사람이 더 성공이 크고, 두 가지 시작하는 사람보다는 한 가지 시작하는 사람이  성공이 큽니다. 세상 일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은 한 가지 일만 하는 것 아니라 회사를 여러 가지를 지금  하고 있다. 이병철 같은 그런 이는 회사를 여러가지를 경영하고 있다. 그 사람은  그래도 성공하지 안 했느냐?' 하지마는 내가 이병철씨의 사적을 내가 똑똑히  모르지마는 인간 통계로 봐서 그 사람이 분명히 한 가지 일을 시작했지 두 가지  일을 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일을 해서 그 일이 자꾸 번져  나가서, 그 일을 하니까 그 일이 커 나가서 동으로도 가지가 벌고, 서로도  가지가 벌고 남으로도 가지가 벌고 이래 가지가 벌어서 이래 나갔지 그 사람이  이 일 두고 딴 일 시작하고 또 저 일 두고 딴 일 시작하고 그렇게 하지는  아니했으리라,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업이 결단코 성공이 될 리가 없다.

 그 사람이 이것하다 보니까 거게서 어떤 필요한 업이 하나 있는데 자기 하는 그  업에 필요한 부속들이 있는데 그 필요한 부속을 사올려고 해서 사다가 쓰다가  나중에는 사올 것이 없이 이걸 집에서 경영을 하면 오히려 이것이 싸게 치이겠다  할 때에 그때 또 그걸 하나 시작하고 해서, 아마 자기가 처음에 시작한 그 업에  대해서 필요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사서 쓰다가 자기네들이 만들어 쓰고  만들어 쓰고 이러니까 그 업이 자기 시작한 그 업에, 또 지금 하고 있는 그 업에  자꾸 그 필요한 것을 만들다 보니까 수십 종의 그런 업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걸 가리켜서 사업을 키워 나간다, 그 사업의 업이 커 나간다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은 그렇지 안한 사람은 이 업을 했다가 저 업을 했다가 그렇게  아주 전업을 해서 이 업 하다가 저 업으로 이렇게 전업하는, 그 업을 바꾸는  전업하는 그런 일을 많이 해서 이것 좀 하다가 그만 당장에 무슨 성공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가 안 되니까 또 다른 것으로 옮기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보지 못할 사람이요 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인을 지도할 때에 무슨 업이든지 시작했으면 그게 성경에서  허락지 안한 업이라면 '빨리 그것을 버리라' 그렇게 말을 하고 성경이 용납하는  그런 업이라고 하면 그 업을 다른 업으로 바꾸는 것을 될 수 있은 대로 하지  못하도록 해야 됩니다. 못 하도록 하고, '네가 하는 그 업을 자꾸 발전시켜  나가라. 키워 나가거라.' 그러면 하나님이 금하지 안한 업이라고 하면 무슨  업이든지 그것이 얼마든지 커 나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커 나갈 수 있는 것은 비유컨데, 요새는 모두 날아도 다니고 타고도  다니고 이러지마는 만일 걸어간다고 하면 걸어가는 사람이 자기가 동에서  출발했거나 서에서 출발했거나 뭐 동서 남북 어디서 출발했든지 산만당에서  출발했든지 골짝에서 출발했든지 출발한 그 사람이 어디서 출발했을지라도  방향만 서울을 향해서 걷는다고 하면 마지막에는 서울에는 도달하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어떤 업이든지 나는 성공을 하겠다 하는 그걸 가지고  그 업을 시작했으니까 업에 종류가 아주 성경에 위반되지 안한 종류라고 하면 그  업을 자꾸 충실히 이렇게 하게 되면 마지막에는 서울에 도착하는 것과 같이  성공이 됩니다.

 그러기에 업이 좋고 나쁜 그것이 성경에서 금하는 것 외에는 나쁜 업이  없습니다. 그것도 할 수 있다 하면 그 업을 보면 그 업으로서는 성공한 사람이  없느냐? 그 업으로서 성공한 사람들이 다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업 쳐놓고  성공 못 한 업이 없고 업 쳐놓고 다 성공한 업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해  나가는데 따라서 성공도 되고 실패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일도 그 사람이 하루 아침에 당장에 되리라고 그렇게 너무 쉽게  보고 자기의 자본을 적게 넣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성공을 못 합니다. 자기가 하다  못 해 무슨 하나 신발명, 그 발명가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발명하지 못한  어떤 것을 하나 발명을 해 가지고 그 사람이 그것으로 성공을 합니다. 성공할  때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다른 사람보다 앞선 성공이 되고 다른 사람 모르는  일들을 발견해 가지고 해야 그 사람이 성공이 됩니다.

 그러기에 구멍가게를 해도 그 구멍가게를 하는데 앞집 구멍가게 하는 사람이  성공을 했으니까 나도 구멍가게를 성공을 하겠다고 앞집, 구멍가게 하는 것을  보고서 그 사람들 보자, 일어나는 시간에 같이 일어나고 밥먹는 시간에 같이 밥  먹고, 또 그 사람들 무슨 사라 가는 구입하는데 같이 구입하고. 또 판매하는  시간을 같이 판매하고 껍데기를 꼭 같이 한다고 해도 하나는 성공이고 하나는  성공 아닐 수 있습니다. 왜? 그 성공하는 그 이유는 실패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그 사람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이 하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성공이라  하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여지는 껍데기에 붙어 있지 안하고 알맹이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개 시골서 나온 사람들이 보면 시작했다가 다 실패를 합니다.

자본이 있는 동안에는 그 자본을 얼마든지 가지고 실패를 합니다. 실패를 해서  자본 다 털어먹고 하나도 없는 빈손 쥔 그 아주 땅에 밑자리에 딱 처져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속에 욕심도 다 깨져버렸고, 주관도  깨져버렸고, 교만도 깨져버렸고 이제는 자기 형편에 닥치는 대로 하는데 처음에  할 때와 지금 할 때가 다른 것이 지금은 이제 자기의 있는 것을 다 기울이지  안하면 밥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있는 것을 다 기울이게 됩니다.

 과거에는 자기에게 있는, 자기를 기울이지 안하고 자기 대신에 돈이 있으니까  돈 가지고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돈 그것이 자본 같지만 아닙니다. 돈 가지고는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돈 가지고는 일을 못 하고 다 일을 하는 것은 자기를  가지고서 해야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부교회는 오면 어떤 대학 졸업맡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렵니까?' 할 때에는 일정하게 다 정해 주는 업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업은 무슨 업이냐? '네가 노동일 해라.' 노동일 하라 그 말은 외부적으로 자기  자체를 그 업에다가 투자하라 그말입니다. '그 노동일을 해라.' 노동일을  하다가는 나중에. 또 좀 있다가는 그 사람이 참 속상한 일, 마음에 부애나고  짜증나고 분개하는 그 속상하는 일 그런 일이 있는데, 속을 썩힌, 속이 썩는다  그말이오. 속 썩히는 속 썩는 그런 일을 시킵니다. 그런 일을 시키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이에 성품과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이는 그런 일을 가르치느라고 그런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땀 흘릴 줄 알지 또 속 썩을 줄 알지 그러면 땀 흘리고  속 썩는 그 두 가지, 땀 흘리고 속 썩는 그 결과가 나는데 그 결과의 이름이  뭣이냐 하면 그 결과의 이름이 뭐입니까? 혹 압니까? 그 결과의 이름을 뭐라고  말합니까? 속 썩힐 줄 알고 속을 썩히고 땀 흘릴 줄 알고 땀을 흘리고 이렇게  하는 그 결과의 그 사람의 행위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몰라요? 인내. 그게  인내입니다. 그게 인내요. 인내 아니요? 알고 보면 쉽지마는 대답을 못 한다  그거요.

 그게, 그런 걸 알아야 돼. 자꾸 이리저리 어디로 동서남북으로 이렇게 역설해도  그걸 다 봐서 알아야 되지 하나 알면 둘 모르고 그다음에 그래만 알아 가지고는  안 된다 그거요. 지식을 다 넓게 응용을 해야 되지. 그것이 인내입니다.

인내인데 그 인내는 전부 다 자기를 기울이는, 자기를 투자한 그 투자한 결과를  말하기를 가리켜서 인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인내는 무엇의 어머니라고 배웠지요? 무엇의 어머니라고? 녜, 성공의  어머니라고 내가 많이 가르쳤습니다. 인내는 성공의 어머니라. 그러면 인내라야  성공을 낳지 어머니 없는데 뭐 아이가 나옵니까? 인내가 있어야 성공을 하지  인내 없으면 성공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일도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자기를 기울여야 되지  자기를 기울이지 안하고 자기 기울일 때에 부모의 재산 가지고 온 그 재산을  기울이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성공을 못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병철씨가 자기 아들들에게, 아들들이 또 그것을 자꾸 원합니다. 박  대통령이 자기가 그만 하야하려고 했지만 출마하지 안 하려고 했지마는 옆에서  막 압력을 누르니까 그분도 압력 당하는 데가 있다 그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어쩔 수 없어서 자기 본의 아닌 대통령직을 그대로 계속해 가지다가 나중에는 큰  낭패를 당했다 그거요.

 이것 모양으로 이병철씨 그런 이도 사업을 그 자녀들이 '에, 아버지는 그만  자식들에게 맡겨 주면 될 터인데 그것을 꼭 자기가 하려 한다.'고, 당신이 혼자  다 하려고 이러니 우리에게 맡겨 주면 이렇게 이떻게 하는데 암만 봐도 맡겨  주면 저거가 지금 이리 이리 하겠다고.

 '사업의 안을 한 번 말해 봐라. 어찌 할래?' 해서 물어 보면 틀렸다 그거요.

틀렸으니까 '네가 그리하면 안 된다. 이리 이리 해라' 이래도 그놈의 귀는, 눈도  뚫리지 안하고 귀도 뚫리지 안하고 뚫리지 안해서 보지 못한다 그거요.

 이러면서도 '자식들에게 맡겨 주면 자식들이 그걸 다 잘 할 것이고 또 이런데  하나도 회사 하나도 맡겨 주지 안하고 그런다.' 고 자꾸 이 쌓으니까 나이는  많아지지 그러면 맡겨 줘야 되겠다 그거요. '그러면 맡아서 네 해 봐라' 맡겨  주면 한 이삼 년 안에 절단을 내 버린다 말이오. 이삼 년 안에 절단을 내니까  절단이 나고 난 다음에는, 제딴에는 이러면 된다고 아버지 하는 것은 틀렸는데  이래 하면 된다 하는 고것이 망하는 길이라 그말이오.

 그것이 망하는 길인데, 자기가 망하지 안 하려고 하면 아버지 하는 일 보고  감탄해서 '아, 참 이는 사업에 대해서는-어짜든지 사업을 해 놓은 결과를 볼 것  아니라 사업하는 자기를 기울이는 것이라든지 자기가 사업에 대해서 지혜를 가진  그 모든 것을 이래 볼 때에-참 놀랠 만하다.' 이리 되면 그게 그 인계룰 맡을 수  있고 유업을 받을 수 있는 건데 그것 아니고 항상 반발입니다. 아버지 이리 하면  쉬울 건데 저래 한다고서 참 미개하다고 이리 하면 쉬울 건데 저래 한다고.

 하도 그 쌓으니까 '그러면 네가 맡아서 한번 해 봐라' 자기가 맡아 가지고 저  하고 싶은 대로 계산대로 이리 했다 말이오. 인제 실패가 되는데 실패가  되면서도 자꾸 된다 된다 자꾸 하는 거라. 자꾸 이러면 된다 된다 이렇게 말해서  '야야, 이렇게 자꾸 기울어지면 어찌 되느냐?' 이러니까 '그래도 요래 요래  됩니다.' 그래도 또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자꾸 실패가 많이 되니까 할 수 없어  나중에는 그것 다 그대로 무너지고 깨질 판이니까 할 수 없이 슬그머니 내  놓으니까 자기 아버지가 시작하니까 또 잠깐 동안 그뭐 얼마 안 걸려 그걸 또  다시 복구를 해서 일으켜 세운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 있을 동안에는 부득이 실패하면 또 내가 가르치고 또 일으켜  세우고 이래 가지고서 가르치기 위해서 하지만 그 사람이 그리 그리 하다가서  마지막에는 자기를 기울여야 될 때에는 자기를 투자해야 되고, 자기를 기울여야  될 때는 자기를 기울여야 되고, 또 자기가 만들어 놓은 물질을 기울여야 될  때에는 물질을 기울여야 되고, 또 자기가 이제까지 속을 썩혀 가지고서 사람들을  많이 교제해서 인성, 사람들의 군대를 만들어 놓고 사람의 인성을 만들어 놓은,  이제까지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을 만들어 놓은 그 인성, 사람으로 성을,  성벽이라 하지 안해요? 인성, 사람으로 성을 만들어 놓은, 인성을 사용할 때에  인성을 사용해야 되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인데 이것은 무엇이든지 '물질만 하면  된다' 또 '꾀만 쓰면 된다' 꾀쓰는 것이, 꾀쓰는 것이 망하는 일이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저는 사람들을 기도할 때에 그것을 기도합니다. '그 사람의 허욕,  허영, 교만, 자긍, 시기, 복술,' 복술이라 말은 꾀라 말이오. 꾀 복술 '이것을  다 제해 주시고' 한 말로 말하면 '겸손한 자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겸손한 자가 되면 목회도 잘 하고, 사업도 잘 하고 행정도 잘 하고 다 잘  합니다. 겸손 하나면 다 돼요.

 이런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겸손이 있어야 할 터인데 겸손  대신에 교만 있는 그것 가지고서 항상 위사하고 실패당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속으로 삐쭉거리는 삐쭉거림을 당합니다. '뭐 네가' 속으로 삐쭉거렵니다. 그래  놓으면 그 사람은 결국은 사람을 얻지 못하는 인성을 만들지 못합니다.

 인성을 만들지 못하고, 그런 사람이 사람을 많이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 자기  사귄 사람은 하나도 자기에게 도움이 될 사람은 하나도 없고, 사망과 음부가  뭣이라 했습니까? 친구라. 사망과 음부가 친구라 꼭 망할 놈들만 전부 들이 모아  가지고서 친구가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망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실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자기가 제일 목표로 삼고 제일 소원으로 삼고  있는 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자기의 소유를 들여도 될 때가 있지만 그런 것은 다  껍데기, 그런 것은 자기 소유 이제껏 벌어놓은 돈 들이면 되고 뭣 들이면 되지만  외나 자기가 소원하는 것에 알맹이는 무엇을 들여야 됩니까? 물론 돈도 자기가  번 돈이면 자기 피입니다. 돈은 피입니다. 자기의 피를 팔아 가지고서 받아 놓은  피값이요 재물이라 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재물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피값이라.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피값을 돈으로 낼 수 있다 이랬습니다. 또  사람을 죽인 사람의 생명 값을 돈으로 속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돈이 귀중한 것이지만 그래도 자기가 소원하고 목적한 그 일에  알맹이가 움직여지는 것은 자기를 기울여야 됩니다. 자기를 기울이지 안하면 안  돼요. 자기를 기울인데는 얼마나 기울이느냐? 다 사업 성공한 사람은 죽을둥  살둥 모르고 했습니다. 조그만한 사업이라도 그래요. 하다 못해 안 되면 이  건축하는데 미쟁이 하는 그것도 배운 사람도 미쟁이 기술자 되면 미쟁이 기술자  그 사람이 목숨을 생명을 몇 놓은 일이 몇 번 있습니다. 참 생명을 애끼지  안하고 뭐 생명이 아깝기는 아깝지만 죽음도 생각지 안하고 이렇게 하는 거게서  다 기술을 배워 가지고서 다른 사람이 못 하는 일을 한다 그거요.

 제가 일본 있을 때에, 저는 일본에서 있는 뭐 업체라 하는 것은 가서 일 안 해  본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서 해봐야 찍해야 한 보름 할 건 보름 하고 한 달  할 건 한 달 하고 나오니까 그래 가지고 돈은 별로 받지를 못했어요, 그만  그리고 나서 나오니까. 나오니까 돈을 받을 수가 없어. 들어가기는 이래  들어갔어. 이랬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자꾸 내게 이것도 저것도 오든 걸 좀  구경하려고 하지도 안했는데 왜 내 마음이 그래서 이것 모든 것을 전부 일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업을 다 보자, 다 봐 가지고서 이까짓 거야 할 수 있다 하는  것 다 한번 구경을 해 보자 하고서 한 그것도 하나님이 지금 생각하면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뭣이든지 하면 '이것은 모르면서' 이러는데 '모르면서' 이러지만  만나서 일해 보면 제 선생님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오래 접촉 하고 있으면  머리를 숙이는데 처음에는 다 업수이 여기요. '목사가 돼 가지고 설교나 하지  이런 걸 뭐 알 거라고?' 이렇지만 나도 그걸 해 봤다 그거요.

 이랬는데 그 햐나 철공소에 가서 일을 해 보는데, 나는 그 일을 배우다가  말았어요. 그 한 아마 서너 달 했을 거라. 서너 달 했는데 높은 데 가서 일을  하는데, 이 뭐 여기는 모두 아시바니 이래 모두 다 매놓고 이러는데 그게  아니라. 밑에서 짜 올라가는데 그 오층이나 얼마나 됐는지 밑에 아무것도 없는데  짜 올라가 가지고서 그 찍해야 나무 제대로 짜지도 안하고 몇 가지 있는 그 위에  가서 일하니까 그것은 뭐 참, 이상하게 안 죽지 밑을 내려다 보면 사람이 못  견뎌요. 그런데서 가 가지고서 메질도 하고 이렇게 뭐이 던지고 이래 하니까  그건 날아다니다시피 날아다니는 그 날개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그런 일이라.

그런데 그것도 어려우니까 거기 가서 일하니까 아주 일급이 비싸요, 돈을 많이  줘요. 그 모두 다 올라가지 못 하니까.

 이런데 거게서 내가 말하기를 '여게서 제일 일급이 비싼 사람이 누구냐?' 저  사람이라고. 그 보니까 한쪽머리는 지금 저 위에 해 놨는데 그 위에 천장에 가서  일하면서 밑에 그런 것이 없이 이 밑에서 날아 다닌다 말이오. 달려 가지고서  밑에서 위에를 이래 해 대는데 수십 길 위에서 그저 이래 거머쥐고 이래 달려  다니면서 한 손으로 가지고 달려 다니면서 이래 한다 그거요. 그래 놓으니까 그  사람은 날아다니는 사람 한가지인데 아주 뭐 그러니까 그러다가 죽는 사람도  많고 생명 내놓고 그래 가지고서 다른 사람 못 하는 그런 기술을 배우는 거라.

 이러니까 무엇이든지 세상에 자기가 욕심을 내는 일, 참 목적으로 삼는 일, 그  가치를 귀중히 여긴다고 생각하는 일, 그 일을 자기가 배우는 데에는 자기의  있는 정성과 지혜와 자기에 있는 정기, 자기에게 있는 정기, 인간에게 있는  정기, 인간의 정기라 말이요, 정기. 정성 정(精)자 기운 기(氣)자. 정기라는  정기와 자기의 목숨과 자기의 힘을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하지 안하면 그  일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울인 중에도 십분지 일 기울여 가지고 일생동안 일하는  사람은 그만치 천한 데 살고, 십분지 오를 기울여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만치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가 살고, 만일 십분지 십을 기울여 가지고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이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그 높은 자리에서 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은 간단한 시간에 수입이 많고 보수가 많은 것은 그만치  그 사람이 기울여서 그것을 자기가 얻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니까, 세상 일도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인데,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이고 참 이 구원 이루는  것은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이요, 영영한 것을 만드는 것이요, 영원한 것을  만드는 것이요, 불변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요, 우리의 건설구원은 그걸 만드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이요, 영원한 것을 만드는 것,  불변의 것을 만드는 것이오. 이런 것을 만드는 것어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걸 다  기울인다고 해도 그것 안 돼.

 우리가 무슨 완전을 만들 수 있습니까? 다 기울인다고 해도 안 되는데 다  기울일 때에는 하나님이 당신이 거게서 보중을 해 주시기 때문에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건설구원을 하는데, 힘으로도 능으로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건설구원을 하는데 이 건설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가지고  된다, 은혜로 가지고 되는데, 은혜로 가지고 되는데 그 은혜를 사람들이 받아야  되지 그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안 된다. 그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 하나 남김  없이 있는 걸 다해야 하나님이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그 은혜를 받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은혜를 받으니까 그 행위가 온전한 행위,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도  정죄받을 것이 없는 온전한 행위, 완전한 행위, 온전한 행위, 완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 다 말해 놨다  그거요. 이런데 사람들이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 아주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뭐 기본구원만 얻으면 됐지 건설구원 뭐 그것이야 뭐 얻으나 안  얻으나 천국 갔으면 다 좋지' 그것 때문에 어제 아침에 많이 말했어. 세상에서  성경에서도 기본구원 얻은 자와 얻은 자의 차이점을 발표를 했고 또 이  자연계시들도 같은 이름에서 그 존비 귀천의 가치의 차이가 심히 크고 같은  종류에서 그 귀천이 심히 차이가, 크고 또 같은 이름에서 그 가치와 차이가 심히  크고, 같은 또 위치에서 가치의 그 차이가 크고, 같은 종류에서 가치의 차이가  크다 하는 그걸 성경에서 말했고 이 모든 자연 만물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참 기본구원을 얻은 것은 어디다가 비유해야 가치 있느냐? 기본구원  얻은 것은 지옥과 비교하면 참 가치 있습니다. 기본구원은 지옥과 비교할 때는  가치가 있어. 기본구원은 지옥과 비교할 때는 가 치가 있어. 지옥 갈 자가  기본구원 얻은 이것은 참 기본구원은 얼마나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공로  가지고는 안 되고 순전히 하나님의 대속하신 그 공로라야 되어지지, 이것은  인간의 공로 가지고 되지 안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공로요. 어려운 것으로  하늘나라는 가기는 갔지만 하늘나라 거기에서 차이 있는 것은 뭣이냐?  건설구원을 얻은 사람과 건설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영원한 차이라  그말이요, 영원한 차이.

 이러니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일 천한 사람이오. 제일 천한 사람 이라면 자,  그 사람이 제일 천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제일 천하지 그것이  무슨 짐승이 되었으면 그것 천하지 안하요.

 요새는 고기가 쌨습니다. 요새는 고기가 쌨지만 옛날에는 고기가 없었습니다.

고기가 없어서 소가 무슨 병들어 죽었다 해도 병들어 죽은 소를 이걸 아무리  해도 모르게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병든 소를 이것을 갖다가 아무리 모르게  갖다 묻어놔도 한 이틀만 있다 보면 어느녘에 다 파 갔는지 다 파 가 버렸어. 다  파 갔다 그말이오. 사람들이 파다가 먹으려고 다 파 가 버렸어. 또 그 소가  부러져서 다리가 부러졌든지 부러져 가지고 아주 병신이 돼 가지고 이래 전부  박살난 병신이 된 그런 소라도 그게 죽어서 못 먹구로, 저는 그때 소가 많아서  그걸 그러기 뭐해서 석유를 사다가 이래 뿌려 가지고 해도 그것 상관 안 해.

뿌렸거나 말았거나 다 파간다 그거요.

 아, 지금 누운뱅이 이것 누운뱅이가 얼마나 누운뱅이가 돼 놨지, 누운뱅이가  머리도 둔하지, 아무것도 모르지 병신이니까 이 길가에 그저 실실 구불러  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있는 가련하기 짝이 없지만 그게 사람이기 때문에 그  천하지, 만일 그걸 소든지 돼지든지 개든지 이래 됐으면 그것 누가 사 가겠소 안  사 가겠소? ○O○조사님? 사 가지. 개가 됐으면 가치가 있을 건데 뭐 돈을 주고  사람이 사 갈 건데 사람이기 때문에 안 사 간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중에서 천한 그것이  가련하고 불쌍한 그와 마찬가지로 기본구원을 얻은 자는 기본구원 얻은 자와  이렇게 가치 비교를 하기 때문에 기본구원 얻었는데 건설구원 없는 그것이  그렇게 천하고 가치가 없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병신을 볼 때에 그 병신을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자연계시로 봐야 됩니다. 병신을 봐도 그것이 자연계시로  봐야 되고 모든 사람이 실패한 그것을 보고도 내게 자연 계시로 '저 사람 실패가  내 귀에 왜 들려오며 내 눈에 왜 들려오느냐? 이것이 나는 그걸 하지 안하는  사람인데, 나는 하지 안하는 사람인데 저걸 가지고서 하늘나라의 실패를 지금  나에게 보이고 있다.' 그 사람에게 무슨 요소, 사람이 욕심 하나 잘못 가지고 안  가질 욕심 하나 가지고 일생을 실패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욕심 하나 안 가질 욕심을 가져 가지고서 영원 무궁을 실패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세상에 모든 나쁜 그 전부를 다 가지고서 하늘나라의 우리의  영원한 것이 있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짧은 토막의  가난을 보고서 영원한 가난을 자기가 느껴야 되고, 세상에 짧은 토막의 영광을  보고서 영원한 영광을 느껴서, 조그만한 그것도 얻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전부 다 기울이는데, 짧은 그것도 기울이는데 하물며 영원한 것을 위해서  기울여야 될 것, 아니요 영원을 믿는다면. 영원한 건설구원을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이 안 기울일 리가 없다 말이오. 필연적으로 기울어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세상에 모든 것도 다해야 되는 줄 알면서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  이것을 아주 등한히 하고 있다. 등한히 하고 있다. 그것을 여게서 가르친 거라  그말이오.

 어디 그런 말이 있느냐? '들으라 너희들이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게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것 세상 사업이라. 세상 사업에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있는 것을 다 기울여  가지고서 이러면서 천국 사업하는 건설구원 하는 사람은 기울이지를 아니한다  그거요.

 내가 어제 어떤 사람에게 말 들으니까 우리 진영에서 어떤 사람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해서 쓴다, 그걸 지금 연구를 해서 논문을 쓰려고 연구를 지금  하고 있다. 그것 대단히 기쁜 소식을 들었는데 그 연구를 해 보면, 자꾸 연구를  해 보면 이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라는 이것이 분리되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깊이 깊이 느껴지면 거게서 깨달음이 자꾸 나올 것이오.

 건설구원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본구원, 기본구원 그것을 이  세상에 자꾸 이건 현실 저런 현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네가 기본구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느냐? 시험이라면 다 시험이라. 기본구원을 어느 정도 네가  가치를 인정하고 있느냐? 기본구원을 네가 실상이라고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느냐? 네가 기본구원을 어느 정도 네가 보수하고 있느냐? 네가 기본구원을  에서와 같이 그렇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파는 것과 같이 기본구원을  네가 돈 몇푼에 팔며 어떤 조그만한 직장에 팔며 네가 기본구원을 어떻게  천대해서 파느냐 하는 그 시험이라 그말이오.

 그 시험인데 그 모든 현실에서 기본구원을 가치로 아느냐 안 아느냐 할 때에  모든 가치보다 기본구원이 크다 하면 그게 합격이라. 또 기본구원은 자기의 몸과  생명을 다 내 줄지라도 기본구원은 내 줄 수가 없다 하는 그것이 기본구원의  보수라 그말이오.

 기본구원이 네게 있어서 기본구원을 네가 쓰느냐 안 쓰느냐, 기본 구원을 얻은  자로 사느냐, 네게는 지극히 큰 능력이 있는데 지극히 큰 능력을 네가 써먹나 안  써먹나 보자, 그 써먹는 그것이 통과라 말이오. 기본구원을 자기가 인정하고  보수하고 기본구원을 써먹고 하는 그것이 전부 성화구원이 되는 생활이라.

 그러니까 이 사람은 기본구원을 얻었으니까 자가자 기본구원을 세상에서 쓰는  데는 내비두고 그 기본구원이 그저 천국이나 가고 심판이나 면하고 하는 거기에,  세상에 쓰는 게 아니라 세상을 떠날 때에 쓸 수 있는 것, 떠날 때에 쓸 수 있는  것 그것은 자기에게 다 그대로 다 쓰여지지만 그것을 세상에서 써먹어야 될  때에는 안 써먹었으니까 버린 것이라 말이오. 버렸으면 제가 얻었지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았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의 생활을 하는 그것이 다 건설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의 가치를 참 믿는 것이요, 인정하는 것이요 자기가 보배로 알고  보수하는 것이요, 그것을 받은 자로서 그 권능을 써먹는 것이라. 기본구원의  행사를, 생활을 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하니까 한 것만치 그 사람에게  건설구원이 돼.

 이러니까 세상에서 쓰는 사람은 하늘나라도 쓸 수 있지만 세상에서 쓰지 안하고  포기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기본구원을 얻었다는 그런 명의는 가지고 그 자리에  가서 있기는 있지만 실상은 그 사람에게는 기본구원을 쓰는 권위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 아침에 가르칠 때에 뭣 뭣 세 가지 말했지? 건설구원의 차이. 건설구원이  그렇게 차이가 큽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의 차이라 하는 것은 그것 뭐 요량하면  건설구원의 차이는 그것 백 배도 더 되고 천 배는 될런지 몰라도 아마 백 배는  더 됩니다. 백 배도 더 돼. 천 배도 더 되지. 태양 한 개하고, 태양 한 개하고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 형체 한 개하고 다 형체는 가지고 있지마는 그 형체와 그  형체와 땅에 있는 형체와 하늘에 있는 형체와 그 가치가 백 배 됩니까?  O○O조사님 대답해 보이소. 백 배 됩니까? 만 배? 무한 배? 무한 배가 될 만치  돼. 그것 따져 들어가면 요새는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뭐 나오겠지마는 무한  배가 된다 말이오. 무한 배라고 할 수 있어, 무한 배 그 차이가 무한 배가 있어.

그것 성경이 말해 놓은 것이라 말이요, 성경이 말해 놓은 것.

 이러니까 건설구원의 그 차이가 무한의 차이가 있어. 무한의 차이가 있는데  이걸 '기본구원이면 다 됐지 뭐 건설구원 얻나? 기본구원 얻은 사람이면 다 같이  다 행복스럽다.' 이래 하니까 이것 수고 안 들이고, 수고 안 들이고 다 영광받고  수고 안 들이고 성공되고 노력 안 하고 모두 실력 생겨진다 이러니까 얼마나  좋겠소?  좋지마는 '진실한 사람은 이기리로다' 진실한 사람은 그 말 들으니까 '이것  도둑놈의 교훈이다. 그럴 리가 없다. 세상에 만 가지가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다 보여 주고 있는 것인데 모든 만물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건데 그럴 리가 없는 것인데 이것은 공짜배기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공짜배기지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게 공짜배기 될 리가 없다.'  그말을 듣고서 '이것은 도둑놈의 교훈이라. 될 리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참 기쁘다. 즐겁다.'  자기 힘으로서 다해서 하라 했는데 아무것도 노력한 사람이나 노력 안 한  사람이나 뒤에 대우가 같다 그렇게 볼 그런 이치가 없다 그거요.

 품꾼의 비유에서 아침에 일찍 온 사람은 일 많이 했고 나중에 늦게 온 사람은  일을 적게 했는데 대우는 꼭 같았다 요걸 잘못 해석을 해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런 해석이 아닙니다.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의 노력한  그것을, 주인이 주는 은혜와 자기의 노력을 그것을, 비교해 가지고 자기의  노력을 위주로 삼아서 노력 위주로 하고 하나님의 주인의 은혜 위주로 하는  사람, 은혜 위주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위주로 하는 사람은  앞서 갔고, 뒷서 갔지마는 앞서 갔고, 자기 힘으로 할라 하는 사람은 앞서 간 것  같지마는 나중에 뒤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기본구원을 인정하는 것과  건설구원 그것 자기 노력만 생각하는 것과 비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감사하고 이 사람은 불평이라 말이오. 불평은 왜  불평입니까? 자기를 내세웠기 때문에 자기 행한, 자기의 노고를 내세웠기 때문에  불평을 했고 이 사람은 자기 노고를 내세운 것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은혜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감사를 했다. 이러니까 그것은 그 비유는  거게만 써먹어야 되지. 그 이상 넘어가 버리면 또 헛일입니다. 넘어가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건설구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하는 걸 어제 하나  배웠습니다. 또 하나는 뭘 했소?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야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런데 어찌 그런가? 공부하는 사람도 그 사람이 성공한, 사람은  계속 기울이지 못할지라도 어쨌든지 이십 년이면 이십 년 공부하는 데에 자기의  전부의, 자기 마음의 전부를 정신 전부를, 힘 전부를, 시간 전부를, 뜻 전부를,  자기의 소원 전부를 다 그것이 먹고야 무슨 학의 공부라도, 학벌의 공부라도 그  실력이라도 갖추었지 안 가지고는 그 된 일이 없다 그말이오. 다 그래. 이  세상에 썩어질 것도 다 그런데 어떻게 신령한 것이 그렇지 않겠느냐? 다  기울여야 된다. 다 기울여야 된다는 그걸 어제 아침에 강조했습니다. 다  기울여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그것 조심해야 되요. 뭣이든지 비유라 하는 것은 비유 거게서  비유한 데에 거기에서 멈추어져야 되지 그 비유 그것 그 면 비유했다고 다른 것  쭉 퍼드러져 가지고서 해석을 하는 날이면 큰 탈선이 되고 만다 그말이오. 제가  새끼양이라 하는 그것은 어린양 보다 그의 아주 순진하고 도덕면이나 그런 면을  가리켜서 말했지 두 뿔 가진 새끼양이라, 두 뿔의 해석은 제가 하지를 안했다  그말이오. 그것은 그것 나타낸 것 아니기 때문에.

 이랬는데 두 뿔에 대해서 뿔은 힘이라 하는 그 말을 들어 가지고서 '이 뿔은 두  힘이니까 해석을 해 보자' 해 가지고서 해석을 해서 그 해석이 탈선된 해석이라  어제 내가 어떤 사람 보고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유라 하는 것은, 삭개오가 뿡나무에 올라가서 그랬다 이러니까 이 뽕나무  올라가는 데는 뽕나무는 누에를 먹인다, 누에를 먹이면 거게 고치가 나온다,  고치는 비단이 된다, 비단을 해 가지고서 입으면 아주 비단 옷은 아름다운  옷이다, 그러기 때문에 삭개오가 올라간 것은 자기의 아주 아름다운 도덕을  꾸미고 아주 도덕의 아주 비단 옷같이 그렇게 아주 도덕을 가지고 아주 아름답게  해야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이래 버리면 그만 탈선이라 말이오.

 뽕나무 아니라도 좋소. 뽕나무 아니라도 감나무라도 된다 그말이오. 거게는  자기가 키가 낮으니까 자기 키를 보충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이 가리워서 보지  못하는 그것을 초월해 가지고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자기가 노력하는 그 면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딴 데 나가면 길게 나가면 안 돼요.

 전부를 다 기울여야 된다. 왜? 세상에 썩어질 일도 그걸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진 가치만치 자기가 기울였고 또 기울인 것만치 가치라는 것은  이루어지는데 무궁한 하늘나라의 건설구원 행위구원이라고 했다 말이오. '행한  대로 갚으리라' 행위구원이라 했는데, 행위구원이라 ''행한 대로 갚으리라'  이렇게 행위구원을 말씀했는데 행위구원을 이루면서 자기가 무엇을 들이지  안하고 공짜배기로 얻으려 하는 이것 성경에 도무지 없는 일이요 이런 건데도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여게 비유에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서 사업을 하면서  기울이는 것만치도 기울이지 않는다. 사업을 하는 기울이는 것 그만치 기울이면  된다 그말이오.

 자기가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기를 돈을 사랑하는 것만치 그렇게 사랑하면  되는데 돈 사랑하는 것만치 사랑하지를 안합니다. 자기가 땅에 있는 욕심을  품는, 욕심을 품을 때에 그 욕심 품을 때에 자기 마음도 정성도 시간도 항상  거게 있다 말이오. 그 욕심 품는 거게 있는 그렇게만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그 기울이면 주님이 뭐 좋다 하시고 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건설구원에 대한 이 차이를 말하는 것은 여게 없으나 여게 건설구원을  말해 놨기 때문에 건설구원의 차이는 그 차이가 무한하다 하는 것을 그것을  말하고 무한한 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욕망해야 되느냐? 욕망해서  이루는 데에는 세상 것도 이런데 다 기울이지 안하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것을  어제 아침에 둘 말했다 말이오.

 하나는, 셋째번에 하나 말한 건 뭣입니까? 선후를 바꾸어야 된다. 모두 다 세상  것 해 놓고 난 다음에 이것 하겠다 하기 때문에 망한다 그말이오. 이것이 뭐 된  줄 알았는데 좀 가다가 보니까 또 헛일이라. 가다 보니까 벌써 세상하고  바꾸었다 말이오. 이게 처음에는 철이 없어서 이러다가 조금 돈 맛을 보고 세상  맛을 보면 훼딱 바꾸어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일학교 학생들은 건설구원에 대해서 욕심을 모두 가지고  전부를 다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이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니까  바꿔버리고, 고등학교 가니까 바꿔버리고, 대학에 가니까 바 꿔버리고, 바꾸는  것은 뭐이냐? 썩을 것과 썩지 안할 것을 바꾼다 그말이오. 천국과 세상을  바꿔요.

 이러기 때문에 '이게 뭣이 될란가?' 해도 조그매 사업에 맛보고 난 다음에는  벌써 세상 사람 됐어. 만나보면 뒤에 세상 사람이 됐어. 제가 주일학교 때에  욕망하던 욕망이 바꾸어졌고, 벌써 제가 학교 다닐 때에 욕망한 욕망이 사업하고  난 다음에 바꾸어졌고, 사업할 때에 욕망하던 그 욕망이 사업 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 바꿔졌더라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선후를 바로 해야 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대로 깨달음으로써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 참 신앙 생활은 신앙 생활인데, 양심 생활은 양심  생활인데, 이것이 주님에게 순종 생활은 순종 생활인데, 그렇지마는 요것 부터  먼저 해 놓고 그다음에 요래 하자.' 그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욕망이라는  그 마음은 어디 가 있느냐? 최종 마음은 어디 있느냐? 최종 마음은 있는 것-몸과  소유와 생명 다해서 예수 믿겠다 하는 그 욕망에는 다 두고 있습니다. 욕망에는  다 두고 있지마는 현재를 다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 헛일이라. 마귀라는 놈이  그렇게 주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선후를 바꾸어야 된다. 이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선후를 바꾸어야  된다. 이것도 그렇게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라 자꾸 '내가 또 선후를 바꿨다'  선후를 하늘의 것을 먼저 하고, 먼저 하면 땅의 것은 할 것 없이 저절로 돼져.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걸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하나님이 하신다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 먼저 하는 이것을 해야 될 터인데 자기가, '내가 이걸 할 때에  또 이것 한다' 선후를 바꿔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바꿔 하는 그놈하고 싸우고  바꿔 하는 자기를 책망을 하고 자기를 마구 바꿔 하는 요놈이 자기 원수인 줄  알고 죽이고 그 투쟁하는 전투하는 그 일이 있을 때만 저는 그 선후를 바로 하는  것이지 '이제 나는 선후를 바로 하도록 탁 착수해 놨으니까 지금 바로 된다'  싸움이 없는 데는 벌써 졌다 그말이오.

 이걸 내가 요번에 내가 양성원에 가 가지고서 경건회 인도할 때에 설교를  했는데 그 사람이 얼마나 들었는지 느꼈는지 그 껍데기로 지금 지나가고  말았는지 모른다 그거요. 자기에게 전투가 없을 때에는 벌써 삼켜지고 말았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요 세 가지 그걸 오늘 아침에 거듭 또 말합니다. 차이의 심히  큰 것 차이가 얼마나 크냐? 무한이라. 무한이라고 밖에는, 발표할 때에는  무한이라 밖에는 발표를 못 해. 무한은 아니지요. 그거야 끝이 있고 한정이 있고  계산이 나오지요. 이렇지만 무한이라 할 만치 측량 못 한다 그거요.

 그런데 이 건설구원의 차이가 크니까 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한 사람은 그  나라에 부끄러움을 저게서 연상해야 됩니다. 세상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  하늘나라에서 고통을 당할 그걸 연상해야 되고, 세상에 모든 불행을 이것을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건설구원에 그 이루지 못해 가지고서 천대되는,  고통되는 그것으로 알아야 되고 이 세상에 좋은 영광을 하늘나라의 그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부럽거든 하늘나라에 좋은 것은 더 부럽기 때문에 그것으로  하늘나라 부러운 것을 생각해야 되지 그것으로 계시로만 봐서, 하나의 계시로만  받아 가지고 깨달음만 가지고, 하늘나라의 소망에 그 박차를 가해야 되는 것이지  자기가 그렇지 안하고 그 깨달은 걸 보고서 세상에 차이 있으니까 세상에 차이  있는 그 세상 것 그것 지금 취하겠다고 하는 그런 자는 어리석은 자라 그말이오.

 그것을 우리에게 자연계시로 줬어. 하나님의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만물로 줬다 그말이오. 알았으면 됐지. 그래 가지고 그걸 알았으면 됐어.

알았으면 그만한 지혜를 활용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 되는 그것은 제가 이것도 한  번 해 보겠다 저것도 한 번 해 보겠다 인간이 짧은데 그 계시로 주는 것을 제가  한번 실지로 한번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보겠다 하는 그자가 몇 가지나 체험할  것입니까? 체험하다 그 속에서 죽을 것이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우리는 깨어 살아야 됩니다.

 사람이 누구든지 자기 속에 원수가 뭣이냐 그것 하나만 발견하면 그만 거의  성공이 다 됩니다. 그것 하나만. 발견하면. 그놈은 말만 해도 싫어하요, 말만  해도. 말만 해도 그만 바르르르 합니다. 말할 때에 바르르르 달라들거든 그놈이  바로 제 원수인 줄 알아야 돼. 그 말할 때에 아주 옹호를 해서 다른 사람이  고거에 대해서 하나 생각만 해도 마구 분개해서 달라드는 그놈이 자기에게  원수입니다. 자기에게 원수.

 그걸 턱 잡아놓으면 좋은데. 이놈 호랑이를, 호랑이를 그놈을 잡기만 해 놓으면  한 마구 잡으면, 호랑이 큰 것 한 마리 잡으면 일생 동안 팔자 고칩니다. 그러면  호랑이 한 마리 잡으면 일생동안 먹고 살 만한 가치가 돼. 그렇지만 그놈을 잡지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그말이오.

 자기에게 성품 하나 나쁜 그것도 그놈을 아주 성품 나쁜 성품 그것을 잡기만  잡아 놓으면 참 가치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 고집 없으면 예수 못 믿어요. 고집  그놈을 고집 그것이 그대로 있으면 고집에게 삼켜 가지고 저는 일생 동안 죽고  맙니다. 이러나 고집 그놈을 잡기만 잡아 놓으면 아주 가치가 큽니다. 고집 없는  사람 예수 못 믿어. 고집을 잡는 건 고집이, 고집을 잡아서 이제는 신앙이  그것을 먹을 수 있어. 진리와 영감이 고집 그놈을 잡아 먹어서 진리와 영감이 그  고집을 이용할 수 있다면 진리 영감에게 고집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다  순교하고 그런 사람이 다 성공하고 그런 사람이 다 위인입니다. 세상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뭣이든지 자기에게, 지식도 그렇소.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서  이랬는데, 지식이라는 그 지식 그놈을 잡기만 잡으면 참 고기가 많습니다. 아주  고기가 많아서 팔면 돈이 많이 돼. 이렇지만 그놈을 잡지 안하고 그 지식을 제게  살려 놔 있으면 그 지식에게 자기는 삼 켜지고 있습니다. 잡아먹히고 말아요.

결국은 잡아 먹히요. 나중에는 싹 다 잡아먹히요.

 이 비밀을 말해 주는데 귀가 들을 귀가 없으니까 말하는 소리를, '백 목사는  국민학교밖에 안 했기 때문에 저거 반지식론자다' 이래. 나는 국민학교밖에 안  했다는 그것이 자랑이요, 자랑. 그 자랑 속에는 뭐이냐 하면 국민학교밖에 안  했지만 하나님의 지혜로써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 있는 자를 내가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식이면 때를 따라서 압도할 때는 다 압도한다. 이제 그것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오. 하나님 자랑하느라고 이 세상에 자꾸 이거는 낮다  그걸 말합니다.

 이러니까 지식이 없으니까 반지식 말하는 게 아니라 반지식론자가 아니고  지식을 그걸 잡아서 보배로 지금 팔아서 돈을 만들고, 지식 그놈 팔아서 돈을  만들고 일생 동안 생활비를 만들고 지식 그놈에게 잡아 먹히지 말아라 그말이오.

 O○O목사님, 그 강의가 오늘까지 끝나지요? 끝나고 나를 좀 만나고 가도록.

그 강의할 때에 그래요. 강의에 지금, 그 강의를 하면서 무슨 과학을 말하든지  그 과학 말하는 그 과학 전부가 다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라 하는 그것을,  과학을 낸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것 다 자연계시로 만들었어.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을 가 르치고, 예수 잘 믿어야 된다는 걸 가르치고,  안 믿으면 불쌍하다는 것 가르치고, 그걸 가르치는 그것이 알맹인데 그걸  말해줘야 되는데 그걸 말하지 안하고 이 과학을 가지고서 사람을 예수 믿는  사람을 과학으로 끌고 나간다 그거요. 과학으로 끌고 나가. 그 과학으로 인해  가지고서 예수 믿는 신앙을 끌어다가 저 밖으로 끌고 나간다 그말이오. 그것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이 아니고 양성원에서 가르치는 과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켜서 가르치는 과학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런 걸 다 늘 조심해서, 그렇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해. 그대로 그  썩은 것 그걸 잡는 것을 배워야 되고 이래야 되지 그 잡는 걸 배우지 안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고전어도 그래. 고전어, 고전어 가르치며 고전어 가지고서 아주 그 뻐기고  말이지. 그것 참 어리석어. 고전어 가지고 '너거는 원어를 몰라 그래. 원어에  이래.' 그걸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원어가 제일 야만의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원어가 제일 야만의 말이오. 야만의 말이오. 그래 그 말을 고전어라  옛말이라 그래 말합니다. 야만의 말이라.

 야만의 말이기 때문에 그 말 하나 속에는 지금 이 말 한 마디 속에는 요새  말로써는 그 안에 벌써 요런 것 조런 것, 한 마디를 한 열 가지 스무 가지로  이래 분산시켜 가지고서 그래 해 놨기 때문에 지금 발표하는 것이 훨씬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옛날 미개의 말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은 자기 신앙에 따라서  이렇게도 번역할 수 있고 저렇게도 번역할 수가 있다 이말이오.

 어제 어린양에 대해서 어린양이라는 '새끼양이나 어린양이나 원어가 같습니다.

어런양이 같은 것입니다.' 그런 말 해. 그래 내가 하도 기가 차서 '그것은  모르는 사람은 어린양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그 번역하는 사람이  어린양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고 새끼양이라 고도 번역할 수가 있을  것이다. 새끼양으로 번역한 사람은 그 사람은 모든 성경 전체의 뜻을 안  사람이다. 그거야 어린양이라 원어는 같지. 원어는 같지만 그것 그러면  새끼양으로는 번역할 수 없나? 새끼양으로도 번역할 수 있고, 나이가 작은  양이라고도 번역할 수가 있고 또 새끼 안 낳은 양이라고도 번역할 수가 있고, 난  지가 몇달 안 된 양이라고도 번역할 수가 있을 것이고 얼마든지 어린양을 그렇게  번역할 수가 있다. 아직까지 에미양이 안 된, 에미양이 안 된 양이라 또 그렇게  번역할 수도 있고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걸 보고서 그건 이것을  벌써 초월해서 이렇게 초월한 지혜를 가지지 안하면 번역 못 해.

 이러기 때문에 이게 분개하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왜 천주교 번역과 이 개혁교  번역에서 합동 번역이 말하느냐 하면 그 번역을 말하는 것은 그런 건데 그 할  필요가 없다는 거라. 또 거짓부리 원어 학자들 가증스러운 것은 그만 원어면  다다 이렇게 생각해. '원어면 다다.' 원어가 제일인 줄 알고.

 내가 언제 어떤 사람이 초대를 해 가지고 한번 갔었습니다. 초대해 갔는데  가니까 그 사람이 어느 신학교에서 본과에서 원어를 공부하는 사람이오. 이  사람이 나는 원어 모르는 줄 알기 때문에, 나 원어 그걸 무시합니다. 성경에  원본은 귀중히 여기지마는 원어 그것은 지금 말보다 아주 미개한 말이기 때문에  무시한다 그말이오.

 이런데 떡 뭐라고 말하는 것 아니라 '참,-원어 자랑을 슬며시 하면서-원어가  중요합니다. 이런데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라는 그 원어를 가지고서 기록이 됐기  때문에 히브리어 박사는, 히브리어 학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학자라도 구약에  대해서는 믿는 목사들 이런 사람들보다 훨씬 구약에 대해서는 잘 그 뜻을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해.

 그래 내가, 벌써 이 사람이 지금 우상에게 정복을 당한 거라. 마귀에게 정복을  당한 사람이라. '원어가 중요하다.-자기는-나는 원어 박사다. 히브리어 박사다.

히브리어 박사기 때문에 그저 히브리어를 알아야 이것 뭐 구약 성경을 알지.'  이래 가지고 얼마나 설복을 당했든지 나한테 와 가지고서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가 구약에 대해서는 믿는 목사들 보다 훨씬 낫게 안다' 이렇게 말해 그래  가지고서 뭐 동정녀 마리아를 하나 말하면서 이래 말하기 때문에 내가 좋게  말해도 안 들어서 어떻게 분개한지 말이지 고함을 질렀어.

 '그러면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성경의 진리를 모른다 말은 그러면 부인하느냐?  원어는 미개어인데 미개어, 미개어에서 한 마디 말한 것을 이 지금 개량어,  발전어, 요새 이 현대어, 현대어로 말하면 그 한 마디를 열 가지로 스무 가지로  나눈 것도 많이 있다. 이런데 그 미개어라야 된다 말이냐? 그러기 때문에  번역하는 것이 잘하고 못하는데 그 신앙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까짓 원어  몰라도, 자, 하나 말해봐라.'  그 동정녀를 말하기 때문에 '동정녀, 나는 히브리어 하나도 모른다. 동정녀  나는 동정녀라 하는 동정녀 안에는 열 가지도 더 말하겠다. 동정녀 동정녀는 그  남편, 시집가지 안한 처녀를 동정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직까지 시집 갈 때가  안 된 아이를 동정녀라고 한다 또 그렇게도 말할 수가 있다 이것은 또  동정녀라는 것은 아직까지 결혼 안 한 처녀라, 또 처녀막이 뚫리지 안한 자라,  나이가 어린 자라, 아직까지 성경험이 없는 처녀라, 몇 가지든지 그것 다 동정녀  속에는 다 들었다. 동정녀를 그렇게 다 말을 할 수가 있다. 그런 걸로  히브리어는 이 히브리어 동정녀라 하는 말은 이런 말이 들었고 어런 뜻이 들었고  이런 저런 말 있어서 동정녀라 하는 것은 여러 수십 가지로 지금 그 안에 뜻이  있다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것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나는 알기를 동정녀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났다]  남편 없는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나왔다 고거다, 막바로. 나이가 어리고 말할  것 없어. 만일 그때 마리아가 오십 살이 됐다 할지라도 오십 살이 됐다 할지라도  그때 그 몸을 통해 났으면 동정녀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면 남편 없이 났다  그말이다. 그 외에 동정녀에 가르치는 것이 뭐 있느냐?' 이래서 그만 내가  고함을 질러 버렸어. 고함을 지르니까 퍽 꺾어져.

 '어데라고 그 흉악한, 그 교수가 무슨 교수가 그따위 교수가 있노?' 그게 뭐  신학교에서 성경 가르치려 하나?' 내가 이래 막 고함을 질렀다 말이오. 나가면  전부 내가 이깁니다. 나가면 말해 나가면 그 사람이 지금 항복을 하고 동곳을  빼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사람들이 원어 하면 그만 거기 눌려 가지고서 지식에 억압을 당하지  말라 그말이오. 모르면, 모르면 억압당하지 말고 모르면 또 연구하자. 모르거든  또 연구하자, 이단자 말이요, 여호와의 증인하고 만나 가지고 그 사람들 성경을  대는데 나는 성경을 성구를 어디 있는지 모르거든 '나는 안 그런 줄 아는데 참  오늘 요랬으니까 두고 내가 또 며칠 연구해 가지고서 한번 새로 또 새로 한번  대전하자.' 가서 얼마든지 이래 보고 보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또 시비하자  시비하자 며칠이든지 시비해 나갈 수 있고 밝혀 나갈 수가 있지 않습니까? 밝혀  나가면 결국은 옳은 것이 이깁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지 말아요. 그런데 위협을  당하고 그래 하지 말고 꼭 진실해야 됩니다

 양성원 학생들도 요번에는 공부를 좀 착실히 시키고 공부를 힘써 안하면 안  되도록, 그 시험을 정확하게 쳐요. 쳐서 가르친 것을 윤곽이라도 외워야지.

그래야 법을 공부한 그 가치가 있지. 이름만 가지고 안 된다 그말이오. 법을  공부한 것 제일 요긴한 것만 할 터이니까 간추려 한 걸 그걸 알아야 이 사회에  가 가지고, 이 목사라 해 가지고 법을 말하니까 뭐 무슨 법 무슨 법 무슨 법, 뭐  또 무슨 조 무슨 몇 조에 뭐 있고 뭐 있고, 대략 이래 상식적으로 일반적인 그걸  떡 말할 때에 '그 사람 뭐 법학 나왔나? 아주 법에 대해서는 좀 잘 알더라.'  그걸 가르치니까 그거 있어야 될 것인데, 있어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힘이라. 이 세상 힘이지만 잡아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된다 그말이오. 안 외우면  뚝뚝 떨어지도록 그래 해요. 머리를 싸 짜매고 이래 공부하지 안하면 안 되도록.

 이러니까 여게는 너무 누워자도 그만 합격 다 이래 버리니까 이제 공부를 하지  안하니까 양성원 공부는 업신여겨. '아이구야, 이 공부 감당할라 하니까 참 힘이  든다. 힘이 든다.' 다른 사람 법학이라면 적어도 한 사 년 동안이나 전공을 하는  법을 찍해야 간단한 시간에 가르치는데 그걸 제가. 배워서 할라 하면 어려울  건데 그만 이런 걸 뭐이든지 안 하니까 쉽다 그말이오.

 떡을 하라 하니까 한 말만 떡을 할라 해도 힘이 드는데 말로 떡을 할라 하니까  천하 사람이 다 먹구로 떡하는 걸 한 시간이면 다 해 버리요. 실행을 안 하고  말로 하니까 시뻐 보고 또 말로 하는 것도 기억하지 안하고 들어서 지내보내  버리니까 시쁘다 그말이오. 배우는 걸 들어서 지내 버렸기 때문에 시쁘고  업신여긴다 그말이오. 또 말한 걸 실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업신여긴다 그말이오.

말 실행 안 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아주 업신여깁니다. 실행해 본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자기는 한 마디에도 굴하지 안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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