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 새 진리

 

1982. 4. 10. 토새

 

본문 : 행 1:4-11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 구원은 기본구원과 성화구원 두 가지입니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본구원을 입혀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기본구원은  우리가 알 수도 없었고 원할 수도 없었던 죽은 자인데 순전히 하나님만 아시고  하나님께로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이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은 기본구원 입은 자들이 건설구원을 입는 구원인데 이 구원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전적 이루어  주시는데 거부하지 아니하면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의 힘이 합해서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또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그 외에는 뭐 수많은 각기 다른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가 이를 성화구원은, 그러면 이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에  사람의 요소가 필요하냐 안 하냐 하는 점에 있어서, 사람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요소가 필요하면,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에 사람의 요소가 성화구원을 몇  분지 일이나 도움이 됐으며 역사 하게 되었느냐, 성화 구원은 인적 요소의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문제겠습니다.

 성화구원에는 인적 요소가 필요하기는 하지마는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인적  요소의 힘으로 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성화구원을 이룬 그 능력은, 그  힘은 인적 요소는 털끝만치도 거기에 가담되지를 아니하고 전적 하나님께서 이  성화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 이루어 주시고, 이루는 데에  인적 요소의 힘은 하나도 거기에 가담하지를 아니 했습니다.

 이유는 성화구원도 이것이 다 완전성의 것이요, 영원성의 것이요, 불변성의  것들이요, 다 영생하는 영생성의 것들이요, 또 신령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다 자존자, 완전자, 영원 불변의 전능자 이자만이 조성할 수 있는 것이지  극히 미약한 피조물의 힘으로 되는 것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서  자존한 것은 하나도 없고 이분이 전적 창조하신 것만 존재하지 스스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과 꼭 같습니다. 모든 존재 중에 이분이 혼자 존재케 했지 존재  중에 그의 억만분의 일이라도 자존한 부분이 있느냐. 없습니다. 전적 이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됐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 구속의 은혜,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나 이것도  전적 하나님 한 분이 하셔서 일으켜 놓은 구원이지 거기에 몇 억만분의 일이라도,  지극히 적은 부분이라도 하나님이 혼자 일으키시지 아니하시고 피조물을 인한 것,  피조물로 말미암은 것 그런 요소는 하나도 없이 순전히 하나님이 혼자 일으켜  놓으신 것이 기본구원이요 또 건설구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에 인적 요소의 노력은, 인적 요소가  건설구원을 이루는 그 능력은 하나도 가담되지 아니했다고 하면 그러면 인적  요소는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에 어떤 면으로 필요한가. 필요한 면은,  하나님께서 기본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수많은 부분으로 말 할 수 있지마는  간단하게 말하면 사죄 받은 자로 살고, 칭의 받은 자로 살고, 하나님과 화친의  연결의 생명을 받은 자로 살 수 있는 이 은혜를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이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면 이 기본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음으로 이 구원을 입은 자들은 죄와  악령과 사망이 왕노릇은 하지 못하고, 침노는 할 수 있지마는 왕노릇은 하지  못하도록 되었다고 했습니다.

 왕노릇이라는 것은 거기에 주권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주권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사죄 받은 자로 살지  못하도록 침노도 하고 유혹도 하지마는 사죄 받은 자로 살 수 없도록 하는  주권은 그가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불택자에게는 죄 없는 자로 살 수 없도록 하는 일에 주권을 가졌습니다. 주권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 사람을 죄 없는 자로, 죄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실 수  없습니다. 이런고로 예수님의 대속이 필요합니다. 또 의로운 자로 살게 할, 의로운  자로 살 주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본구원 얻은 자는 의로운 자로 살 수 있는  주권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살 수 있는 주권이 있습니다. 이  주권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말해서 왕노릇 못하게 됐다.

 지난밤에도,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해라 그말은 그들이 주권 행사를 우리에게는 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본구원을 하나님이 입혀 주실 때에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의 능력이 우리에게 이미 와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도록 하신 것이 법이요, 또 살아야 하는 것이 법이요, 또 살려면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이 우리의 기본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악령이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 기본구원을 얻은 이 생애를 하지  못하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그가 왕권을 박탈당했고 왕권은  예수님께서 다시 점령해서 가지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기본구원의 이 구원을 왕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이 은혜 생활을 하게 하시고 할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이렇게 이미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주신 기본구원의 생애를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하려면  얼마나 힘쓰면 하느냐.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 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해  다시 말하면 자기를 다 기울이면 할 수 있습니다. 죽도록 힘쓰면,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제단 위에 제물로 올려  놨으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본구원 주신 것은 완전히 옛사람은 죽은 것이요 진리와 성령의  새사람으로 살아난 자입니다. 자기를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몇 분지 일만 산  것이 아니라 전부를 다 사고 사지 않은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샀습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 샀기 때문에, 나는 만분지 일은 남겨두고 9천 9백 9십 9의 부분만  주님의 구속을 입은 것이니 이것은 주의 피에 팔린 것이지만 만 분의 일은 나는  이것은 거기에 팔린 것이 아니니까 이것은 내가 주님에게 드릴 수 없습니다, 주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입니다. 할 때에 그 기본구원의 은혜 역사는 그가 할 수가  없습니다. 기본구원을 그에게 법적으로 입혀 놨지마는 만분의 일이라도 거기에서  제하면 이 법에 위법이 됩니다. 왜. 다했지 남은 부분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있는  것을 전부 다 드렸기 때문에 산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해야 기본구원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인적 요소의 필요가 어떤 면으로 어떤 성질로  필요하냐 이미 하나님께서 기본구원을 주신 이 구원을 이미 입었는데 이 구원을  벗어버리지 않고 배반하지 않고 입은 구원을 자기만 다하면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다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자기 안에 넣어 줬기 때문에 자기 안에 넣어 됐기 때문에  자기만 다하면 이 기본구원의 생활을 할 수가 있고, 또 자기만 다할 때에는 이  기본구원에 은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을 다 제거해 왔기  때문에 다만 내가 다하느냐 안 하느냐.

 내 전부는 은헤 딴은 것들인데, 이 전부는 은혜 받은 것들인데 은혜 받은 것들  이것이 배반치 않고, 진부가 은혜 받은 것들인데, 이것이 은혜 받은 것들인네  은혜 받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능력으로, 지극히 큰 능력으로 살려  주셔서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만 자유성을 가지고  다하지 아니하고 몇 부분을 떼어 놓고,  다하지 않고 몇 부분을 떼어 놓고 이렇게 은혜 생활 기본구원 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 떼어 놓은 거기에서 기본구원의 법적 역사가 이것이 충족히  안됐기 때문에 이 법적 구원에 대한 이것이 미비 점입니다. 다하지 않은 이것이  미비점입니다. 미비점이기 때문에 이것은 미결입니다. 은혜 생활은 할 수  없습니다. 다해야 은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다할 때에는 어떤 피조물도  왕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다 그는 쫓겨나가야 되고 또 다할 때에  기본구원은 다 그의 것이 되어지고 또,  이 기본구인은 그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 법적으로는 되어 있지마는 실상적으로  말합니다. 은혜 생활 하는 것은 실질적입니다. 실지로 사죄가 저희 것이요, 칭의가  저희 것이요,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이 저희 것입니다. 그는 화친된 자요 사죄  받은 자요 칭의 받은 자의 실상이 됐습니다. 이것이 법적으로 됐고 객관 역사로  입혀 놓은 것을, 입히기는, 실질적으로 입히기는 입혀 놨는데 입혀 놓은 이것을  제가 실제로 행동하는 데에는 다해야 행동이 됩니다. 다하지 않으면 이것이  해제가 돼. 해제된 것처럼 미비가 되기 때문에, 미비됐기 때문에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이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이 구원은 우리에게 남은 요소  없이 다 기본구원을 입은 것들인데, 입은 이것이, 다 기본구원을 입은 이것이  입은 기본구원 행위를 하려고 할 때에는 아무 피조물도 방해하지 못하고 이 구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구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다 같이 기본구원은 입었으나 기본구원을 배반치 아니하고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사는 자도 있고, 입었지마는 입지 아니한 자같이 사는 자도  있고 입은 자로 사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면 입은 자로 사는 데에는 이것은 자기의 자유성입니다. 입은 자로 살려면  살 수 있고 안 살려면 안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한된 자유성입니다. 살려면  살 수도 있고 안 살려면 안 살 수도 있습니다. 살려고 할 때에 살지 못하게 할  피조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왕권을 다 그들은 우리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왕권은 주님만이 가지셨는데, 여기에 대한 왕권,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신 분은 우리로 하여금 살 수 있도록 하시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려면 살 수 있고 안 살려면 안 살 수 있습니다. 안 산다고  기본구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구원을 입혀 주셨지 마는, 이 구원은  내것이지마는 내 자유성을 가졌고 이 기본구원 생활을 하지 않고 기본구원을  배반할 수 있습니다. 또 기본구원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성에 하나님이 제재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있는데,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려면, 내가 반은 하고 반은 안 하렵니다. 할 때에 이것은 하는 것으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법적이기 때문에 다라야 되지, 뽀스라기 하나라도 남지  않아야 되어지지 남으면 이것이 하는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지공법 지성법에서 안 됩니다. 안 된다고 해서 기본구원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본구원의 생활은  아닙니다. 기본구원의 생활은 아니요, 기본구원에 합당한 생활 아니요,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서의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은 아닙니다. 만일 억만분의 일이라도 제가  했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여기에는 다하여야 이 기본구원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그말은 집어 던져 남에게 준다는 말  아닙니다. 버리라 말은 주께 다 바친다 말입니다. 자기는 다 내어 놓는다  말입니다. 내어 놔 주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죄도 맡기고 의도 맡기고 몸도  맡기고 생활도 맡기고 자기의 형편도 맡기고 다 맡기는 것입니다.

 다할 때에 기본구원의 생활을, 은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다해서 은혜 생활  하는 것이 이것이 은혜 생활이다, 이면에 건설구원에 대해서 인적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인적요소가 필요한 것은 기본구원  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하다, 기본구원의 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하다. 기본구원의  생활을 하고 기본구원의 이 은혜를 배반치 않고 이 은혜에 합당한 행동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건설구원을 입혀 주신다. 그러기에 건설구원은 기본구원과  같이 전적 신적 요소로 만들어진 것이지 인적 요소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지금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적 요소로 만들어진 것이지 인적 요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인적 요소는 지사충성을 하고 모든 것을 다해도 그것이  인적 요소로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것 아니다.

 건설구원도 완전성의, 영원성의, 불변성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의 요소가  아니다. 절대자인 그분이, 그분이 기본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거와 같은, 절대자가  우리에게 이루어 주는 절대성을 가진 영생성 완전성을 가진 것이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이룬 것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요, 건설구원도 전적 하나님의  단독의 역사의 완전자가 만든 완전한 것인데,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건설구원인데,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다른 것은 뭐이냐 기본구원은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 단독이 죽은 우리들에게 기본 구원을  입혀 주신 것이 기본구원이지마는 건설구원은 이미 입혀 주신 그 입혀 주신  기본구원을, 입혀 주신 기본구원을 버리지 않고, 입혀 주신 기본구원을 감당하여  기본구원을 배반치 않고 기본구원의 생활을 하는, 그 생활 하는 거기에 따라서,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을 다시 덧입혀 주신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인간이 죽어 있는, 행동 없는 죽어 있는 자에게 입혀 주신  것이 기본구원이로되 건설구원은 입혀 주신, 입고 있는 이 기본구원의 행동을  함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시 건설구원을 새로 덧입혀 주신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기본구원을 배반치 않고 기본구원 생활을 하는 자에게,  은혜를 감당하는 자에게, 은혜를 배반치 아니하고 은혜를 보존하는 자에게 다시  새 은혜를 덧입혀 주시는 것이지 이것이 새로운 건설구원의 은혜가 인적 요소가  거기에 들어서 되는 것 아니다. 인적 요소는 이미 입은 구원 생활을 하는 것이지  새로 건설구원을 인간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고 이렇게 하니까 건설구원 성화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자기가 체험하기 때문에, 다하니까 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니,  이루어지는 체험을 해서 힘쓰니까 되고 힘 안 쓰니까 안되고, 힘쓰니까 되고 안  쓰니까 안되니까 건설구원은 인적 요소로 이것을 성취한 것이라 이렇게 혼돈  되기 쉽다.

 어디까지 자기가 충성했든지 이것은 기본구원 생활을 하는 것이 요 은혜 받은  이 은혜로 은혜 생환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 이것을 버리지 않고 이 은혜를,  이미 받은 은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새 은혜를 거기에 덧입혀  주신다.

 이것이 건설구원인데,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말을 어떤 사람이 반을 이루었다  하면, 기본구원은 단번에 다 됐고 건설구원을 그 사람이 덧입혀 주심을 받고 받고  해서 반을 건설구원을 이루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기본구원을 다 가진,  기본구원의 이 생활 다해서 은혜 받은 이 은혜 생활, 건설구원을 받은 건설구원의  은혜 생활, 그러면 건설구원은 반, 기본구원은 다.

 그러면 기본구원 다와 건설구원 반 이것을 받은 것은 다해야 그 다음에 새  은혜를 입혀 주시지 다하지 않고 기본구원 생활만 하면, 하니까 건설구원 입혀  주셨는데 건설구원 입은 것은 둬두고 기본구원 이것만 하면 그 다음 입혀 주느냐.

기본구원 생활 할 때에 건설구원을 처음에 시발로 입혀 주셨는데 입혀 주실 때는  됐지만 이 다음에는 입혀 줬기 때문에 받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또 다해  가지고 생활해야 그 다음에 건설구원을 또 입혀 주신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건설구원을 예를 들어서 100분지 99를 건설구원을  이루었다. 이루었으면 나머지기 100분지 1이 남았는데, 100 분지 1 남은 것은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를 것인가 기본구원과 99의 건설구원을 다해서 이 은혜  생활 할 수 있도록 벌써 해놨기 때문에 이 기본구원과 99 이것이 다 동원되어서  은혜 생활 할 때에 100분지 1 남은 것은 입혀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 하는 것을 제가 다시 새로 깨달은 것인데, 이것이  앞으로 난제점이 많습니다. 시비가 많습니다. 문제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단이라는 말이 많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은 그 은혜를,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 입혀 준, 은혜 받은 자가 그 은혜 생활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입혀 주셨는데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자기의 자유성입니다. 또 요것을 방해하는  것은 다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남겨 두고 한, 남겨 둔 그것은 자율입니다.

사욕입니다. 주관입니다. 옛사람입니다. 그것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은혜  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은 기본구원 입은 요소가 다해야 은혜 생활 되는  것이지 100분지 1 요소라도, 은혜 입은 것이 그것이 100분지 1이라도, 나는 안  하겠다 하면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100분지 1 요소는 너는 안 했기 때문에 너는  한 것으로 합격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99가 절대로 100 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을 했을 때에 건설구원을 입혀 주시고, 입은 것만치  이제는 기본구원 은혜 생활과 건설구원 은혜 생활 이것을 하려면 할 수 있도록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때에 그 다음에 또 입혀 주시고 또 은혜 생활 할  때에 입혀 주시지 은혜를 줬을 때에 은혜를 배반한 그자에게 배반하니까 또 입혀  주시고 배반하니까 또 입혀 주시고 이렇게 하시지를 않는다 하는 이것을 제가  새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은 기본구원과 이미 건설구원 받은  은혜, 받은 구원, 받은 구원 이 토대 위에 이것을 할 때에 그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지 이미 받은 바의 은혜를 저버리고 있는 자에게 다시 은혜를  입혀 주지 않습니다.

 받은 바의 은혜를 묵혀 두고 새 은혜 입으려 할 때에 주지 않습니다. 받은 바의  은혜 이것을 감당해서 받은 바의 은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새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누가복음 10장 28절에 보면 있는 것을 다해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라는 이것이 영생하는 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네 말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장 62절에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기본구원도  살리는 것이고 성화구원도 전부 살리는 것입니다. 썩은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건설구원에 우리 심신의 기능들도 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이 이것이 성화구원입니다. 성화구원인데 이것이 무슨, 다 썩은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나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전부 살아나는  것인데, 이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인데,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니라" 육은 뭐입니까. 육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과  심신 이것이 육입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도 육도, 아무리 성화 받은 심신의  기능도 육도 살리는 능력은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이 영은 성령을  가리켜 말합니다. 영이 살립니다. 성령이 살리지 우리의 육이 죽도록 충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죽은 것을 살리는 힘이 있느냐. 아닙니다. 살리지 못합니다.

 하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라" 이미 받은 은혜 생활 하는 것이오. 은혜를 배반치  아니하고 은혜 생활 할 수 있도록 입혀 주신 이 은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다시 입혀 주십니다. 이러므로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말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1장 11절에 보면 "시험을 받고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모든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가 기본구원의 생활을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죄 안 짓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주의 뜻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배반치 않고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기본구원 생활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참는 자는" 그 말은 어려움  없을 때에 기본구원 생활하던 그것을 어려움 있어도 기본구원 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가리켜서 참는다, 인내라 말한 것입니다.

 "복이 있도다 이에 대하여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옳다 인정 하심을 받은  후에" 옳다 인정은 뭐이냐. 이미 받은 바의 은혜 생활을 네가 은혜를 배반치 않고  이 은혜를 다 네가 받아 가지고 이 은혜를 버리지 않고 배반치 않고 버린 자에게  또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버리지 않고 이 은혜 생활을 한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생명의 면류관, 이는  생명이 승리하면 뭣 되느냐. 생명이 승리하면 영생됩니다. 산 자가 승리하면 또  영생이 됩니다. 산 자가 승리하면 새로운 또 구속을 입습니다. 이러기에 "후에"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말씀했습니다.

 또 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어디까지나 이 생명에 속하고 신령에 속한 것, 기본구원도 생명에  속한 것이요 신령에 속한 것이요, 건설 구원도 전부가 다 생명에 속한 것이요  신령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 심신의 육이 부활하면 부활 그것도 신령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능도 다 신령에 속한 것인데, 이 신령에 속한 것 생명에 속한 것들은 전적  주님이 주시지, 주님이 주시지 인간이 주는 것 아닙니다. 주님이 전적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 은혜 생활을, 받은 바의 은혜  생활을 다 하면 다 하는 그것이 남은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데 인적  요소가 든 것이 아니라 이거는 다만 받은 은혜 생활을 하는 것이요, 다시 은혜를  입히는 그것은 전적 하나님이 입히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은 전적 하나님 단독이 해 놓은 구원이지  이것은 인적 요소가 해 놓은 구원이 아니라 완전자가 해 놓은 완전 구원이라.

완전자에게 이 구원을 다시 덧입는 데에는 이미 주신 바의 은혜 생활 할 때에  덧입혀 주신다 이것이 안 되면 그것이 되도록 하나님이 해 주신다.

 사데교회에 "남은바 죽게 된 것을 네가 살려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들은 것은 생각하고 받은 것은 일깨워 실리라" 그럴 때에 내가 너희에게 다시  은혜를 입혀주신다.

 요한계시록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보면 전부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은 주님이,  내가 네게 주겠다, 내가 네게 주겠다, 다 주어서 했지, 이것이 진화되고  성장되어서 된 것 아닙니다. 성장되는 것은, 성장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본구원을 주신 기본구원 이것이 확대되어 나가기 때문에 성장이요, 그러나  이것이 그렇다고 해서 성장이라 하니까 인적 요소가 그 성장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데 다만 은혜 생활을 할 때에 그 다음에  은혜가 덧입혀지고 덧입혀지고 하기 때문에 이것이 성장돼 나가는 것이라.

 이제까지 말한 교리에 틀린 것은 없는데, 같은데 다만 지나간 때에 가진 그  교리를 하나 더 분리해서, 똑똑히 분리해서 갈라 놓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기본구원의 이 은혜 생활을 있는 것을 다해서 할 때에, 다해서 할  때에 우리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 했기 때문에 다할 때에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다할 때 건설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다할 때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데 건설구원을 이루는 그 요소는 인적 요소가  아니고, 인적 요소는 이미 은혜 받은 구원, 은혜 생활을 하는 데에 들인 그것이지  새로운 창조하는 거기에는 인적 요소는 들지 않았다 하는 그것을 분리시켰습니다.

 이것을 분리시키는 것이 과거에 설교 가운데 있었는지 몰라도 이 분리시키는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나는 생각을 가집니다. 과거에는 이 둘을 합해서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구원이면 구원이라 이렇게 했는데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나누어 왔으니, 그것은 처음에 이것을 나누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라  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구원이라 하는 데까지는 같지마는 그 다음에 두  가지로 나눠지는 거기에 까지는 그 기로에 가 가지고는 기로를 더 전진하지  못하고 기로에 있었는데, 건설구원을 기본구원을 나눔으로 말미암아 그 기로에서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건너가는 이것을 했는데,  이제까지 기본구원의 이 은혜 생활을 있는 것을 다해서 힘을 다 들여서 할 때에  우리 성화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이것은 그러면 어디까지 갔느냐.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인적 요소가 그 근거가 되느냐 안 되느냐. 인적 요소의 그  능력으로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건설구원을 이루는 그 능력의 인간의 인적 요소가  거기에 가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거기에까지만,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것을  분리하지 않는 그 기로까지만 갔었는데 거기에서 분리해 가지고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인적 요소의 능력은 하나도 거기에 가담 되지 않는다. 순전히  하나님의 단독의 능력으로 우리 건설구원도 이루어 주시는 것인데 다만 우리의  죽은 것을 당신의 능력으로 살려 주시지 이 사는 것이 우리 힘으로 살아나는 것  아니다. 여기에서 신적 요소 인적 요소를 분리시켰는데,  분리시켜서, 그러면 인적 요소는 뭐 하느냐. 이미 받은 다의 은혜를 버리지 않고  받은 바의 은혜를 감당할 때에 사은을 덧입혀 주시지 받은 바의 은혜를 배반하고  있는 자에게 덧입혀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받은 바의 은혜를 다 제가 활용해서 이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해 놨는데, 저만 다하면 되는데, 할 수 있도록 해 놨고 배경도 그리 해  놨고 속에 능력도 있는데 이 은혜를 배반 할 때에는 은혜를 더 입혀 주지 않는다.

 은혜를 하나도 배반치 않고 받은 바의 은혜를 다 이 은혜 생활을 할 때에  덧입혀 주신다 하는 이것이 제가 새로운 깨달음이요 새로운 제가 발견한  교리입니다.

 이제까지 온 것은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는 여기에, 이 이루는 데에,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건설구원을 이루는, 그 건설구원을 창조하는, 건설구원을  이루는, 살리는, 그 살리는 데에 살리는 요소가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합해서  됐더냐 나눠서 됐더냐. 전적 신적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 은혜로 됐으면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기본구원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니까 기본구원 받은 그 사람이,  기본구원을 받은 그 사람이 그거 안 받았으면 못 이룰 것인데 기본 구원 받은 그  사람이 노력해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이 이루는 데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기본구원을 주신 그  구원을 주셨으니까 이 구원 가지고 지금 이루어 나가니까 건설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 면으로 해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가 있고, 또 기본구원을 이룬  것 같이 건설구원에는 전혀 하나님의 단독으로 하는 것이지 인적 요소는 하나도  들지 않았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구별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로까지, 이거냐 저거냐 하는 것을 분리하는 데에까지 이르지를 못하고 분리하기  전까지 가 가지고 여기 와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구원이라고 하면, 건설구원 기본구원을 분리하지 않고 구원이라고 하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라 했으니, 구원이면 다 구원이지 한 그분은 하나님 은혜로  구원을 이루었다 하지마는 여기까지 갔고 그 다음을 넘어가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러면 네가 지금 이미 받은 구원은 어떤 구원이며 또 네가 앞으로 받을 구원은  어떤 구원이냐. 이미 하나님께서 너 모르게, 너 모르는데 주신 구원은 어떤  구원이며 네가 알고 네 주관이 주관의 관련성을 가지고 받은 구원이 어떤  구원이냐 말해라 하면 그것은 그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건설 구원과  기본구원을 딱 갈라 놓고 난 다음부터는 이제 그 다음에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까지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그러나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작용하느냐, 은혜를 받은 그 받은 은혜, 그 은혜를 가지고, 자기가 받은  바의 은혜 그 은혜를 가지고 그 은혜가 지금 성장돼 나가는 것이냐 그 은혜가  아니냐. 그 은혜를, 그러면 그 은혜 생활을 자기가 하는 데에 하나님이 다시 새로,  새로 개별적으로 또 새로 자기에게 은혜를 덧입혀 주시는 것이냐. 이미 받은 바의  은혜 그 은혜가 지금 성장돼 나가느냐 받은 바의 그 은혜가 성장돼 나가느냐  받은 바의 은혜 그 은혜 생활 하면 또 새로 덧입혀 주신다 하는 이것이 지금  새로운 깨달음인 것입니다.

 조금 알기 벙벙하지마는 그래서 오늘 아침에 말씀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해 준 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몇 날이 못되어 너희들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줬지마는 너희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으로 세례 받는다는 이것은 건설구원에 속한 역사 성령을 말합니다. 역사  성령. 이미 그들은 다 중생 됐었습니다. 역사 성령을 말하는 것인데, 이 역사  성령은 오순절에 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가지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땅끝까지 증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증인 노릇이라 말은 예수님의 모형 생활을 할 수 있다 하는 말인데,  예수님의 모형 생활 할 수 있다. 그러면 모형 생활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우리의  성화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영접하는 데에는 첫째 말씀이 "예루살렘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했고, 둘째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이는  아버지의 뜻대로 정한 것인데" 그말은 이스라엘 나라 회복의 때만 아니라  이스라엘 회복과, 이스라엘 회복과 회복의 시일 다 말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이것을 해석을 할 때에 그 시간 말한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회복하는 이것은 제자들이 다 땅에 속한 소망입니다. 그거는 육적  유대 나라가 회복되는 그것을 그들이 욕망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들의 알바 아니요" 하는 것이 둘째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되는 데에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데에는 성령이 오셔서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지,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예수님의 모형이 그것이 증인인데, 모형이라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나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형상이니라" "너희들을 부른 것은 나를 보지 못한 자들에게 내  형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내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렀다"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이 이것이, 볼 수 있도록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은  우리의 심신의 구원의 성화입니다. 영이 된 것은, 그들이 영도 보지도 못하고,  영의 된 것은 보지 못하는데 다만 인간들이 제 3자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신이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이니 이것이 성화구원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와야 된다 그말이오. 성령이 와야 된다.

 성령이 와야 되는데 성령이 오려면 어떻게 되겠느냐.

 성령이 오려면 첫째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을 죽이려고 전 이스라엘의, 유대  나라의 로마병정들이나 정권자들이나 종교가들이나 전체가 예수교를 박멸시켜야  우리에게 화가 없지 이것을 박멸시키지 않으면 지금 살아난다 어쩐다 하는데,  살아나면 우리가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예수의 원수가 되었으니 우리는 절단  난다 하기 때문에 예수교를 전멸하려 하는 것이 가득찬 그 속에 들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120명이 이와 같이 기도한 이거 외에는 다 예수 믿는 자들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라 말이오.

 이런 아주 살해, 죽이는 살해 속에서 모일 때에, 그들이 밤에도 모이고 이랬는데,  살해 속에서 도망을 쳐서 먼데로 가서 피해가 살아야 될 터인데 이 살해 속에  떠나지 말고 이 살해 속에 있거라. 이 살해 속에서 너희가 성령의 임하기를  기다려라. 이 살해 속에서 성령 세례 받기를 기다려라. 살해 속에서 성령이 오면  네가 예수와 함께 죽은 생활 할 것이고, 예수와 함께 산 생활 할 것이고, 하나님  안에 산 생활 할 것이고, 죄 없는 생활 할 것이고, 의로운 생활 할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모형이다.

예수님의 증거다.

 이러니까 이렇게 하면 성령이 너희에게 오셔서 성령이 이 일을 해 주시지, 네  성화 구원을 성령이 해 주시고 성화가 된 것만침 나를 증거할 수가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성령이 오셔야 된다. 성령이 오시는 데에는  네가 죽음을 피하지 말고 죽음 속에서 성령 세례를 기다려라. 이거 하나 있고,  하나는 이 땅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라는 것은 너거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네가 죽었는데 죽은 자가 무슨, 세상에 대해서는 죽었는데, 네가 죽었는데  죽은 자가, 세상에 죽은 송장이 세상에 대해서 무슨 소망이 있으며 뭐 할 것이  있느냐. 네가 죽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네가 죽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회복이 언제입니까 그런 소망은 네 소망이 아니다. 땅에 소망은 네 소망이  아니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라. 너는 이미 죽었고 네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느니라, 네 생명은.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이  생명이 너를 완전 성화시킬 그리스도의 직책으로, 그리스도적인 선지자 제사장  왕직으로 너를 성화시킬 이 성화 역사, 그리스도와 네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추었으니 이 생명이 네 생명이다. 이것이 네 생명이다. 이러기 때문에 땅의  것은 네 소망이 아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져라.

 그런고로 우리가 이 성화구원 이루는 데에는 성령이 오셔야 하고, 성령이 오셔서  역사 하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땅의 소망을 완전히 버리고 소망을 바꾸는 것.

자기의 소망을 하늘의 소망으로 바꾸는 것. 하늘에 있는 모든 것, 하나님도  하늘의 왕이시요,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에 있는 하늘 나라의, 하늘  나라와 하늘에 있는 것 그를 소망하는 이 소망으로 네가 바꾸고, 너는 죽음  속에서 성령을 기다리라. 이것이 다, 주님에게 다 맡긴 것이라. 주님에게 다  맡기고 너는 이 생명으로 살아라, 이 생명으로 너는 영생하는 생명,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는 이 생명, 이 생명이 네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으로 살고 육의 생명 이것은 주님이 나 위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이것은  주의 것이라 주님에게 맡겨 놓은, 내 것이 아니라. 이러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은, 참 죽임 속에서, 살해 속에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살해  속에서 성령 기다리라는 것은 육의 생명을 자기 생명으로 삼지 않는 것, 육의  생명의 소망을 가지지 않는 것, 육의 생명은 이거 다 주의 값 주고 산 것인데,  주에게 맡겨 놓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하나님과 연결 이것이 내 생명이라.

이 생명으로 하늘의 소망 가지고 살아라, 이래야 성령이 너희에게 오고 성령이  오면 너희들이 성화 된다.

 이런데 우리는 너무 에누리를 많이 했습니다. 너무 쉽게 했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성화는 완전히 지체되고 이루어지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성화를 이루는 성화의 이 성취관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가서  많이 연구하십시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1 거창집회/ 마태복음 9장 9절-13절/ 810811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2
640 거창집회/ 마태복음 9장 9절-13절/ 810811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2
639 거창집회/ 마가복음 9장 38절-50절/ 810813목새집회 선지자 2015.10.22
638 거창집회준비/ 마태복음 25장 7절-10절/ 88061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2
637 거창집회준비/ 고린도전서 15장 42절-49절/ 880617금야 선지자 2015.10.22
636 거창집회준비/ : 이사야 26장 1절-4절/ 840630토새 선지자 2015.10.22
635 거창집회준비/ 마태복음 23장 1절-7절/ 84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0.22
634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22절-27절/ 800825월새 선지자 2015.10.23
633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00824주후 선지자 2015.10.23
632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00824주전 선지자 2015.10.23
631 건설구원/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319목새 선지자 2015.10.23
630 건설구원/ 야고보서 4장13절-17절/ 831004화새 선지자 2015.10.23
629 건설구원/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5수새 선지자 2015.10.23
628 건설구원/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320금새 선지자 2015.10.23
627 건설구원/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890212주후 선지자 2015.10.23
626 건설구원/ 디모데전서 6장 20절-21절/ 890719수새 선지자 2015.10.23
625 건설구원/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880212주전 선지자 2015.10.23
» 건설구원 새 진리/ 사도행전 1장 4절-1절/ 820410토새 선지자 2015.10.23
623 건설구원 이루는 방편/ 사도행전 1장 6절-11절/ 820407수야 선지자 2015.10.23
622 건설구원,기도제목 7가지/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9주전 선지자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