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 이루는 방편

 

1982. 4. 7. 수야

 

본문 : 사도행전 1장 6절∼11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공과를 한 번만 읽습니다. 잘 듣기만 하고 다음 5일 예배 때에 나오는 반사들은  등사를 해서 한 장씩 나눠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3일 예배 때는  누구든지 다 이 공과를 등사해서 나눠주겠습니다. 3일 예배 때 나오지 않는  사람은 받지 못할 것이고 나오는 사람은 다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 주님의 유언.

 첫째, 기독교의 구원은 전적 은혜이다. 은혜를 분류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나눌 수 있다 기본구원은 선택과 선택 안에서 출생, 그리스도의  구속 중생,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시민권 이와 같은 것들이다. 건설구원은 심신의  구원인데 곧 자기와 자기 행위가 성화 되는 구원이다. 다 같은 구원 얻은 자로서  하늘나라에 영광의 차이는 다 성화구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기본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단번에 이루어 주신 구원이요 이 구원 생활을 바로 할 때에  성화구원을 덧입혀 주시는 것이다.

 둘째, 성화구원을 이루는 것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친히 성화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기본구원 생활을 바로 할 때에 성령님이 오셔서 건설구원을  또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기본구원 생활을 잘하는 것이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요  성령을 영접하면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 주신다. 그러므로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는  성령을 영접함에 있는 것이다. 성령을 영접할 수 있는 순서는 첫째 땅에 있는  소망을 하늘에 있는 소망으로 바꿔야 하고, 자주함을 부인하고 자기가 자기 주인  됨을 부인하고 주님을 자기 주로 모셔야 하고, 육의 생명과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과 연결된 영생하는 참 생명을 자기 생명으로 삼을 때에 성령이  임하신다. 이것이 곧 기본구원인 은혜를 감당하는 것이며 참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의 세상이나 자기나 자기의 몸이나 생명을 다 주께 맡겨 주님이  주장하게 하시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주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사람  보기에는 다 같은 신앙생활을 해도 이 기본전환의 회개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기본회개 곧 전환 후에 신앙생활 하는 것은 생사의 차이이다 보기에는 같은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는 데려감을 받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신 원인이  여기에 있다. 어리석게 악령의 유혹에 빠져 주께 맡기지 못하는 이것은 참  어리석은 제일 큰 손해이다. 맡기고 그가 취급하시는 대로 복종하는 것은 슬기  있는 일이다. 자기도 세상도 다 주께 맡겨 버리면 성령의 권능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입게 된다 예수의 증인이 된다. 영원 무궁은 이런  사람들의 기업이다.

 광고합니다. 오늘밤에도 30분 기도한 뒤에 남반은 1층 신관, 여반은 1층  구관에서 철야기도가 있습니다. 철야기도 할 때에는 설교한 녹음을 한번씩 듣게  됩니다. 또 대구집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달 이제 못 남았습니다. 위해서  많이 기도와 여러 모로 준비하시기를 부탁합니다.

 늘 들어 쌓아서 잘 알 줄 압니다. 우리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은  구원인데, 이 구원의 유례는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잘 알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 구원은 기본구원과 기본구원 받은 사람들이 또 건설 구원을  덧입혀서 받습니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입혀  주신 것이니 이것은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은 이것은 사람의 노력에 관계됩니다. 사람의 노력에 관계되면  사람의 노력으로서 이루는 구원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쉬우나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는 구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건설구원도 그 구원의 성질들이 다 영원하고 불변하고 완전하고 영생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구원입니다. 전적 전지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만이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은 이 구원에  털끝만치도 가해지지를 않습니다. 순전히 하나님께서 기본구원도 이루어 주셨고  또 건설구원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홀로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는데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는 것이 생각이 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주시고 이 기본구원 주실 때에 우리가  있는 힘을 다 기울이면 기본구원을 얻은, 이 기본 구원 얻은 자의 행동을 할 수가  있도록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구원을 얻은, 기본구원 얻은 자로서의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본구원을 입히실 때에 기본구원 입은  자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다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 생활은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힘을 써도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을 할 수가 없지마는 하나님이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능력을 주셨고, 또 이런 권세를 주셨고, 강한 악령도 죄악도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이 자기만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이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을 할 때에는 그런 것들이 침노하지 못하도록 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말씀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면 영생 얻는다" 이렇게 말씀했으니까 이것을  다해서 하면 우리 힘 가지고 이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기 쉽고, 또 이렇게 해석들을 우리가 과거에 해 나왔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전부를 다 기울이면 건설구원을 이룬다는 말이 아니고, 있는  것을 다 기울이면 기본구원의 생활을 우리가 할 수 있고,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기본구원을 버리지 않고 기본구원 얻은 자로서의 합당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또 건설구원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곧 영생인데,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들이, 기본구원은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고, 또 하나님에게  구하지도 않았고, 또 이 구원이 있는 줄도 몰랐고, 또 이 구원을 받을 자가 죽어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기본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기본구원을 얻은 우리들은 지금부터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알고, 예수님이  구속해 주신 것도 알고,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하나님의 법칙도 알게  됐고, 또 하나님이 기본구원을 얻은 자로서의 합당한 생활할 수 있도록 능력도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기본구원을 얻은 이 은혜를 버리지 않고 이 은혜를 참 귀중히  여겨 이 은혜 생활을 하려고 하면 자기에게 있는 이 전부를 다 기울여야 이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모든 것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으로서 우리 마음이나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뜻이나 우리의 생명까지라도 다른 데다가 기울이고 반을 나누어서 이 구원  생활을 하려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10분지 1이나 남겨 놓고 10분지 9를  기울여서 하려고 하든지 100분의 1만 달리 쓰고 100분의 99를 기울여서 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되겠느냐 하면 안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다해야 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좀 참 어려운 멍에입니다. 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기본구원을 얻은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신 기본구원은  우리 전체에게 입힌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 전체가 다 이 기본구원을 원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이 기본구원은 그에게 해당이 되지를 아니합니다. 만일 100분지  1이 이 기본 구원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100분지 99를 한다 할지라도  100분지 99가 100은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 이 기본구원의 생활을 하는 데는 전부를  다 기울여야 된다. 그래야 기본구원 생활이 된다, 그러면 기본구원 생활을 바로  할 때에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을 다시 덧입혀 준다, 그러면 기본구원 생활을 하지  않을 때에는 기본구원 생활을 하도록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또 깨우치고 이렇게  하실찌라도 다시 건설구원을 입혀 주시지는 아니한다, 기본구원 생활을 다 할  때에 건설구원의 이 구원을 덧입혀 주신다 하신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가 너무 이 일은 어렵기 때문에, 다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에누리를  했습니다.

 에누리를 해서 차차 기본구원의 생활을 조그매씩만 해 나가면, 차차 해 나가는  대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성경에, 차차 해  나가거라, 단번에 구원이 되지를 못하고 구원이 자라난 것처럼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성경이 말씀하신 것은 이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기본구원을 얻어서 기본구원 생활하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건설 구원 생활을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데 따라서 서서히, 또 여러 차례 중복적으로 하나님이  건설구원을 입혀 주셔서, 이런 현실에서 이런 구원을 입혀 주시고 저런 현실에  저런 구원을 입혀 주셔서 이렇게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신다 하는 이것을,  기본구원 생활을 하고 난 다음에 하는 이것을 우리는 기본구원 생활은 상관없이  건설 구원에 대한 그 행위가 하나씩 둘씩만 되어 나가면 된다고 이렇게 해서  아주 참 오산을 했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해라, 그래야 네가 네게 있는 생명이 승리 생활한다. 다해야 영생을  얻는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라야 이 영생을 이루어 간다 이런 말씀이 꼭  같은 말씀인데 우리는 아주 오산을 해서 에누리해 가지고 했습니다.

 건설구원의 그 행위는 중복적으로 차차 되어 가지마는 기본구원을 얻은 이  기본구원의 생활은 우리가 해야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의 생활을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건설구원에, 이 구원을 이루는 것도 누가 이루는가. 순전히 성령님이  이루시고 우리 힘으로는 이루지 못합니다. 기본구원도 성령의 권능이 이루었고  건설구원도 성령의 권능이 오셔야 이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데, 기본구원을  무시하지 않고 버리지 않고 기본구원 생활을 잘 하는 자에게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사,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내 증인 된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그  권능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하는 이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증인이라 말은 예수님의 제자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인데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그말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한 자에게 예수님을  보여 줄 수가 있고 또 예수님의 하시는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 예수님의 하시는  역사를 알려 줄 수가 있고 또 예수님이 어떤 결과를 맺는가, 어떤 일을 해  놓으시는가.

 예수님이 해 놓으신 그 일을 자기가 예수님에게 해 놓으심을 받은 그 자기로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사람을 만든다, 이와 같은 행위를 만든다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증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과 똑 같은 자, 또 예수님의 모든  행하시는 역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입으로 전하고 또 자기 행동으로 전하고 또  권능이 와서 하나님이 역사 해 역사 하시는 그 역사를 나타내고 결과적으로는  예수님과 같은 그런 성화의 결실을 맺게 되는 그것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인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과 꼭 같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증거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의 증거가 돼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자들에게  우리가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도록 이렇게 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형상,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 이것이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같은 자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분이시요, 주재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십니다. 우리가  이분과 같은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참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이 어떤 잘난 사람과 같이 된다는 것도 그 잘난 사람과 같이 되려고,  지식적으로 잘난 사람과 같이 되려고, 또 권세적으로 잘난 사람같이 되려고, 이  잘난 사람을 따라가서 잘난 사람과 같이 된다는 것도 이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데,  참 자기가 있는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잘난 사람과 꼭 같이 된다고 하면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전심 전력을 기울여도 잘난  사람과 같이 될 수 없는 줄로 알고 모두 다 안 하고, 또 전심 전력 기울인다고  해도 되지도 않고 이런 것인데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이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또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같이  된다"고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렇게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한다" 또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너희들이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 예수님과 꼭 같이 되는 것을 성경에 얼마든지 많이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증인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자 되는 것인데, 이 일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되는 이 일에는 우리의 전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전부를 다 기울인다고 해서 우리의 기울인 우리 힘 가지고 이루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전부를 다 기울여서 하는 것은 주님이 이미 내게 입혀 주신  기본구원을 내가 버리지 않고 기본구원 얻은 이 은혜 입혀 주신 이 은혜 생활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은혜 생활을 감당할 때에 또 하나님께서 새로 건설구원의 은혜를 덧입혀 주시고,  기본구원의 은혜를 감당치 않고 버릴 때에는 기본 구원의 은혜를 감당하도록  자꾸 하나님께서 권유하시고, 감당할 때에 그때에 또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고,  감당하다가 이 은혜를 또,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을 버렸을 때에 또 하나님께서  덧입혀 주시는 건설구원의 이 은혜가 우리에게 덧입혀 주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의 은혜 생활을 잘 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권능있는  자 되어서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 그러면 기본구원 생활을 잘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오신다.

 그러면 기본구원 생활을 잘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여기에서 평범한 각도보다도 아주 솔직하게 간단명료하게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성령님이 오시는 데에는 어떻게 해서  성령님이 오셨는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고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들이 성령의  강림하시도록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이러면서 기다렸고, 또 이렇게 모이기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두 마디 했는데, 한 마디는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땅에 소망을 성취하는 이 성취의 때가  이때이니까" 이렇게 물을 때에 "이것은 너희들이 알 바 아니라" 잘못하면  조브랍게 그 시기를 너희들이 알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기 쉽지마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그 때를 말하는데 때보다도 회복 이  주체가 되고 때는 거기에 소속이 됩니다. 부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세상에 있는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주님에게  물을 때에 땅에 있는 소망은 너희들이 가질 것이 아니라 하는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데에는 이 두 가지 해야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오셔야 우리에게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고, 이 두 가지 하면 성령  오시는데 이 두 가지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기본구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 생활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해야 기본구원 생활하는 것이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으면 기본구원 생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소망을 버려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5장으로부터 6장까지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죄 가운데 살며 죽은 자가 무슨 세상에  있는 소망이 있겠느냐.

 우리는 기본구원을 입는 것은 마치 죽은 송장이 세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관계가  끊어진 것과 같이 예수님의 기본구원을 우리가 입은 것은 세상에 대한 소망은  완전히 버리고 하늘나라의 소망과 바꾸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소망의 회개입니다.

이 소망이 기본적으로 돌아서는 기본회개가, 우리의 땅에 속한 소망이 하늘에  속한 소망으로 옮겨지는 것이 이것이 기본회개 중에 외부 회개요. 내부 회개는  나와 세상에 어떤 것이 내 주인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주인을 바꿔서 나도 내  주인이 아니고 인간도 내 주인이 아니고 나는 순전히 주님의 것이라. 나는 주님의  것이요 이렇게 대속 하신 주님은 내 것이라. 주님은 내 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이것이 완전히 바꾸는 이것이 기본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성령 오도록 기다렸는데 그들은 자기와 자기의 몸이나  생명이나 자기는 완전히 주의 것으로 주님에게 맡겨 버렸고 주님이 주시는 이  구원만 받기 위해서 권능 얻으려고 성령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러니까 열흘,  열흘째 되는 날에 성령이 임하셔 가지고 그분들은 전부 권능 있는 사람으로  건설구원을 다 이루어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거 바빠서 말이 좀 잘 안되고 조급해집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증거 할 터인데 이것만 오늘 저녁에는 알도록 합시다.

 구원이 두 가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이 두 가지가 있는데, 기본구원도 전적  하나님이 혼자 이루어 주시는 구원이요 건설구원도 전적 하나님이 혼자 이루어  주시는 구원이라 우리는 기본구원을 감당하면 그 다음에 건설구원을 덧입혀  주신다 기본구원을 감당하지 않을 때에는, 저버릴 때에는 건설구원을 다시 덧입혀  주시기를 아니 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힘쓰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주시고 구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만들어 놓은 것, 해 놓은 것, 이 구원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은혜 생활을 하는 것이지 우리가 새로 건설하는 것은 아니라 그말이오.

 우리는 건설은 우리의 일이 아니요 우리는 할 수 없는 자들이다. 다만 이미  베풀어주신 이 은혜를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하는 일이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도 이미 받은 은혜를 감당하는 것이요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또 새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이다 하는 이것이 좀 앞으로 문제가 많이 있을 하나의  교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이 건설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데는 성령님이 오시면 이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데 이 성령님이 오게 하는 데에는 기본구원 생활을 잘 하는 것인데,  기본구원 생활을 잘 하는 것이 뭐이냐 이 두 가지를 하는 것이 기본구원 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 우리는 이것만 하면 건설구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이루어 주시면, 기본구원 생활과 이루어 주신 건설구원 생활을 우리가 하면  건설구원 생활을 또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본구원 생활을 이루는 것이 두 가지. 하나는, 과거에는 우리가  첫째 아담에게 속해 가지고 첫째 아담의 그 소망을 우리가 가졌던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뭐 소망은 열도 백도  넘겠습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았지마는 이제는 이 소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바꾸는 것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 소망하던 것을 이제는  하늘나라와 하늘나라에 있는 것들에게 소망을 둡니다. 하늘나라에 소망을 둡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것은 하나님도 계시고 오만 것 다 있는데, 이 세상에 사람도  있고 만물도 있는 것처럼 우리 소망을 온전히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땅의 소망을  하늘의 소망으로 바꾸어야 하고, 이거 하나 해야 우리 건설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이제까지는 내가 강력히 말을 못했고 또 깨닫지를 못했었습니다.

 소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고, 그러면 땅에 있는 소망을 가질지라도 이 소망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고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하늘의 소망을 이루는 노자로,  비용으로, 하나의 재료로 이랬지 소망은 하늘에 있는 소망 이거 하나만으로  완전히 소망을 하늘의 소망으로 바꾸어야 되고,  또 그 다음에는 자기와 자기의 영육, 자기, 자기를 완전히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완전히 맡겨야 되고 하는 것 이거하고 이 두 가지.

 이제는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 재산에 대해서나, 자기 사업에 대해서나, 자기  목숨에 대해서나, 자기 몸에 대해서나,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가 하나도 책임지지  말고 자기와 자기에게 대한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에게 다 맡기는 것.

 주님에게 맡기고 나는 뭐할 것인가. 나와 내게 속한 것을 다 주님에게 맡기고,  소망은 하늘에 두고 나 할 일은 이제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 둘 하는 것.

 시키시는 대로 하는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이 내 목숨이 끊어질 일이라도  목숨은 당신에게 맡겨 놨기 때문에 목숨이야 끊어지든지 말든지, 내 뭐 업이나  소유나 몸이나 그런 것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당신이 시키는 것 그것만 하는 것.

이것이 기본구원 생활을 하는 것이요, 이 두 가지 하는 데에서만 성신은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가 안되면 우리 건설구원은 항상 지체해 가지고 있지  건설구원이 이렇게 저렇게 생활한다고 해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고, 물론 그래  그래 준비해 가지고, 대번에 안 되니까, 이 두 가지를 단번에 안 되니까 이리  저리 많은 준비를 해 가지고 하는 그 많은 준비한 것이 구원된 것은 아니고 많은  준비한 것이 이 두 가지를 하기 위한 준비이니까 이 두 가지가 하고 난 다음부터  우리의 건설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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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1 거창집회/ 마태복음 9장 9절-13절/ 810811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2
640 거창집회/ 마태복음 9장 9절-13절/ 810811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2
639 거창집회/ 마가복음 9장 38절-50절/ 810813목새집회 선지자 2015.10.22
638 거창집회준비/ 마태복음 25장 7절-10절/ 88061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2
637 거창집회준비/ 고린도전서 15장 42절-49절/ 880617금야 선지자 2015.10.22
636 거창집회준비/ : 이사야 26장 1절-4절/ 840630토새 선지자 2015.10.22
635 거창집회준비/ 마태복음 23장 1절-7절/ 8406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0.22
634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22절-27절/ 800825월새 선지자 2015.10.23
633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00824주후 선지자 2015.10.23
632 건설구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00824주전 선지자 2015.10.23
631 건설구원/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319목새 선지자 2015.10.23
630 건설구원/ 야고보서 4장13절-17절/ 831004화새 선지자 2015.10.23
629 건설구원/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5수새 선지자 2015.10.23
628 건설구원/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320금새 선지자 2015.10.23
627 건설구원/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890212주후 선지자 2015.10.23
626 건설구원/ 디모데전서 6장 20절-21절/ 890719수새 선지자 2015.10.23
625 건설구원/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880212주전 선지자 2015.10.23
624 건설구원 새 진리/ 사도행전 1장 4절-1절/ 820410토새 선지자 2015.10.23
» 건설구원 이루는 방편/ 사도행전 1장 6절-11절/ 820407수야 선지자 2015.10.23
622 건설구원,기도제목 7가지/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831009주전 선지자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