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의 참된 성공은 무엇이냐

 

1988. 9. 19. 월새벽

 

본문:창세기 4장 1절∼12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과 아벨 사이에 마귀의 유혹은 시기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시기입니다.

시기로써 가인은 아우를 죽였고 아우는 거게 죽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우는  죽임을 청년 때에 죽임을 받았으나 그가 진리를 그대로 지키고 요동치 안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는 인간으로서는 제일 가치 있는 생애를 했다고 성경이  증거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옳은 생각이나 주장이나 말이나 행동이나 할  때에 그때에 그 악의 세력에게 여러 가지 조롱과 훼방을 받습니다. 아무리 받아도  진리를 내놓지 아니하고 그 진리를 보수해 나가면 그 사람이 평안한 것보다  고통이 더 복이 있고 또 고통보다 죽는 것이 더 복이 있습니다. 악의 세력에게  죽는 것이 더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벨은 그는 신본주의로 살았는데 그가 가인에게 맞아 죽었으니 아벨은  최고의 승리를 했습니다. 가인은, 인본주의 가인은 아벨 죽였으니까 성공같이  보이지마는 그는 최고의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가인이 왜 마귀의 유혹을 받았는가? 아벨은 마귀가 유혹을 안 했던가?  아벨도 마귀가 넘어뜨려 볼라고 애를 썼고 가인도 넘어뜨려 볼라고 애를  썼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마귀의 유혹은 꼭 같이 당했습니다. 당했는데 가인은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마귀의 사람이 되고 아벨은 마귀의 유혹이 있었으나 그  유혹에 빠지지 안해서 마귀의 사람이 되지 안하고 끝끝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가인이나 아벨이 다 같이 마귀의 유혹을 받았고 또 하나님의  권고를 봤고 그렇게 둘 다 하나님의 역사 마귀 역사는 두 사람이 다 같이  접했는데 어떻게 해서 그 결과로 가인은 마귀의 사람이 되고 아벨은 하나님의  사람이 끝까지 됐던가? 그 원인이 어데 있는가 그것을 우리가 좀 깨달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기 남반들 가운데에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원인이 뭐인지? 여반들 가운데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양심이라? 내가 대답을 할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맞는가 안 맞는가 그렇게 자기는  지금 뭐이라 정해 놓고 내가 말할 터이니까 나는 맞았다 나는 틀렸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고쳐 나가십시오. 우리가 바로 깨닫지 못하면 멸망합니다. 그뭐 열심  그것도 소용없고 의지도 소용없고 강한 것도 소용없고 담대한 것도 소용없고  잘못 깨달으면 멸망받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다른 점이 어떤 점이냐? 아벨은 하나님의 욕심으로 살았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았고 가인은 자기 욕심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원인입니다. 욕심은  두 가지뿐입니다. 자꾸 둘로만 나눠야 사람들이 바로 구별해서 시험에 들지  안하지 둘로 나누지 안하면 마귀의 그 미혹에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욕심은 두 가지뿐입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성경에 사람은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둘뿐인데 육체의 소욕은 결과가 사망이요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욕심은 두 가지뿐이라. 물론 돈 욕심, 뭐  명예 욕심, 지위 욕심, 권세 욕심, 감정 욕심, 정욕 욕심 욕심이 수천 가지이지마는  수천 가지 수만 가지도 넘지마는서도 욕심은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인간 자기 중심의 자기 욕심, 인간 욕심 하나님 욕심 둘뿐이오. 하나님  욕심에도 돈 욕심 있고, 지위 욕심 있고, 명예 욕심 있고, 권세 욕심 있고 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욕심에 속해서 하나님 욕심으로 돈 욕심 가지는 거와  자기 욕심으로 돈 욕심 가지는 것이 다릅니다. 이러니까 욕심은 두 종류뿐이라.

하나님의 욕심과 인간의 욕심 두 종류뿐이라.

이래서, 인간의 욕심 그걸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 사욕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그 바울은 열심히 일해 가지고 돈 벌어서  개척교회 하고 또 복음 사업을 했습니다. 그분이 돈을 좋아하지 안한 것  아닙니다. 돈을 좋아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연보를 시킬 때에 연보를  많이 하라고 했고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가면서 아주 귀한 것을 가져 간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귀중히 여기지 안한 것 아니오. 그러나 그분이  순전히 하나님의 욕심으로 그렇게 했지 자기 사욕으로 그란 것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종류 저런 종류의 욕심이 많지마는서도 자기 욕심이냐  하나님 욕심이냐 그 둘 만 우리가 구별해서 하나님의 욕심인 것은 얼마든지 하는  것이 좋고 가진 것이 좋고 사람의 욕심 하는 것은 그거는 가지면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인류 시조 초대 교회에 시작된 일인데 사람에게 성령의  소욕이냐 자기 욕심이냐 하는 이것이 인류 시조 초대 교회에 있은 중대한 문제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고 뭐, 아마 그때 내가 가만히 추측해 볼  때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낼 때에 가인이 지내는 제사는 굉장했을 것입니다. 뭐  사람도 많이 청했을 것이고 음식도 많이 장만했을 것이고 아주 굉장히 가치가  아주 크게 벌어졌을 것이고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것은 그거는 뭐 아주  초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죽고 살고 망하고 흥하는 것은 어데 있느냐? 하나님의 욕심으로  성령의 소욕으로 하느냐 자기 사욕으로 하느냐 하는 거기에서 근본된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이 반사일을 하든지 또 권찰일을 하든지 목사 일을 하든지 장로일을  하든지 어떤 직책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소욕, 하나님이 뭘 원하시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지금 하고자 하시느냐? 하나님의 소욕을 생각하여 자기의 소욕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소욕을 따라서 그 일을 이룰라고 하는 거게는 생명과 평강의  결과가 맺고 어쨌든지 자기 욕심, 자기 중심, 자기를 위주로 해 가지고서 자기  소욕으로 가는 것은 아무리 날뛰고 열심히 가지마는서도 그 결과는 사망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소욕과 자기 육체의 소욕, 하나님의 소욕과 자기  소욕, 하나님의 욕심과 자기 욕심, 하나님도 욕심이 있어.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욕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욕심과 자기 욕심이 있는데 자기 욕심이나 사람 욕심이나  하나님 욕심 사람 욕심, 사람 욕심이면 또 사람 욕심 속에는 자기 욕심도  들었겠지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욕심을 무슨 욕심으로 지금 내가 일하고  있으면 무슨 욕심으로 지금 모든 판단을 하고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구별하지 안하면 죽도록 해 봤자 사망으로 빠지는 것뿐이지 소용없습니다.

이래서, 아주 그 평신도의 생활에는 그렇게 드러나지 안해도 좀 은사교권의 생활  그 생활에서는 환하게 드러납니다. 이래서 벌써 반사도 유력한 반사를 할라고  하면은 처음에는 자기 욕심으로 해도 그게 더 열심이 더 잘 납니다. 자기  욕심으로 하는 게 열심이 더 잘 납니다. 이러니까 반사도 자기 소욕으로 하는  그것이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으나 끝은 망합니다. 목회도 그렇고 뭐 권찰일도  그렇습니다.

자기 소욕을 버리고 전부 그 하나님의 소욕으로 가지고서 해서, 하나님의 소욕은  뭐인가? 사람을 구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 사람 구원을 위해서 하고  내 욕심을 찾아서 내게 뭐이 유익하도록 내게 붙여서 어째 하는 그런 생각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찾아 가지고서 할라고 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  같으나 흥합니다.

하나님의 소욕으로 한 아벨이 망했습니다. 죽여 버렸으니까 망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나 망하지 안했어. 그게 대성공이오. 여게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이게 예수 말합니다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그러면, 아벨의 피보다 낫게 말하는 피니까 누구의 피입니까?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피를 아벨의 피보다 낫게 말한다, 낫게 증거한다  말입니다. 낫게 증거한다. 말한다 말은 복음 말을 말합니다. 그러면 복음 운동을  아벨의 피보다 예수님의 피가 복음 운동을 더 크게 하고 확실히 했다. 더 많이  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비교할 것은 아벨의 피밖에는 비교할  게 없습니다. 뭐 거게는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당한 피도 있고 모든 순교자들의  피가 많이 있지마는서도 아벨의 피에 비교가 안 됩니다.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피  다음가는 그 권위 있는 피요 성공한 피입니다.

그러면, 아벨의 피는 지금 예수님의 피와 상관이 없느냐? 예수님의 피와 상관이  있습니다. 아벨이 양을 잡아 제사 지낸 것은 예수님의 피를 바라봤기 때문에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이 대속의 언약을 예약적으로 가진 교회들이  있고, 예약적으로 가진 교회들이 있고 이미 흘려서 과거적으로 가진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예약적으로 가진 교회들이 있고 이미 기정된 이  과거적으로 가진 교회들이 있으니까 신약 교회는 과거적으로 가졌고 구약 교회는  예약적으로 가졌습니다.

이래서,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 새 언약의 중보라 그말은 과거는 예약적인  그 예수님의 피를 바라봤지마는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는 예약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약이 이루어져서 완성된 그 예수님의 대속을 바라보는 것이  신약 교회요 미래에다 두고서 예약 예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구약 교회인데, 새 언약의 피라 하는 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약적인 그 예약 예표적인 대속을  바라본, 대속에 속한 교회가 아니고 완성을 한 이 예수님의 대속을 바라보는 신약  교회, 이래서 새 언약은 신약 교회를 말하고 새 언약을 말할 때에는 묵은 언약  옛날 언약이 있다 말이오. 옛날 언약은 구약 시대입니다.

이래서, 구약 교회 중에는 아벨의 피가 제일 승리했다. 또 새로 예약을 다  실현해서 예약이 완성된 그 완성된 대속이,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된 대속과  이렇게 예약된 대속이 있는데 예약된 대속도 완성된 대속으로 인해서 그 대속이  효력이 있지 완성된 대속이 없으면 그거는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약적  대속이 무엇을 지금 보수하고 있었느냐 하면 예약적 대속이 구약 교회를  보수하고 파수하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구약 교회는 전부 예약적 대속이 구약  교회를 다 책임지고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제 대속은 구약  예약적 대속을 가진 구약 교회를 완성을 시켰고 완성한 그 대속으로 신약 교회를  이제 건설해서 완성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새 언약은 예수님이 구약에 예약을 완성한 그 언약, 또 곧 신약 교회를  완성으로 구원한 언약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말하고 묵은 언약은 예약적  대속으로 아직까지 예수님이 완성을 하시기 이전에 예약적 대속으로 되어 있는  그 대속을 가리켜서 말하니 구약 교회를 말하는데 구약 교회는 아벨의 피가 다  보수하고 있었고 이제 아벨의 피가 보수하고 있던 것을 예수님의 피가 이제는  완전히 보수하고, 보수라 말은 도울 보자 지킬 수자, 보수하고 있었고 신약 교회를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구약 성도들 중에는 아벨로 말미암아 모든 승리가 났고 아벨에게  속해서 아벨은 구약 교회 모든 그 교회의 승리의 머리가 된 것이 아벨이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벨의 피는 이렇게 가치 있고  권위 있는 피입니다.

이러니까, 의를 행하다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성공이라는 요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의를 행하되 세상에 사는 것을 성공으로 알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성공으로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입니까 자기의 눈으로 보는 그것을 위주로 하는 사람입니까?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이요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이요?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이니까  그것은 세상주의자입니다. 알겠습니까? 믿음주의자가 아니고 현실주의자라,  세상주의자라.

이러니까,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들어갔다가 그때 그 일로써 죽었으면 성공이 더  크겠습니까 살았으면 성공이 더 큽니까? 살아서는 성공이 더 크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죽은 것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다니엘이 살아 가지고서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를 위해서 이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속빡 다 바친  그 생활로 계속이 됐는지 마지막에, 다니엘은 순교당하지 안했기 때문에. 됐는지,  뒤에 뭐 그래도 인간 생각 놀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우리는 그거는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진리에서 죽는 그것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죽으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다음 역사는 그가 얼마나  살았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거게 대한 것이 상세하게 기록이 되지 아니하니까  모르나 사람이라는 것은 뭐 실수하기 쉬운 사람이오. 또 구약 때는 성령이  내주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 교회와 다르요.

그런고로, 이렇게 진리를 지키다가 세상적으로 손해 본다고 손해가 아니고  세상적으로 졌다고 진 게 아니고 망했다고 망한 것이 아니라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제가 진리를 붙들어도 승리할 수가 있지 요걸 깨닫지 못하면 승리 못  합니다.

그런데, 그 마귀의 유혹이나 성령의 감화나 오는데 사람들이 다 같은 사람으로서  마귀의 유혹을 안 받고 성령의 감화를 받는 것, 마귀의 유혹을 안 받고 성령의  감화를 받는 것은 그 원인이 어데 있으니까? 마귀가 다 접했고 하나님의 성령도  접했는데 마귀의 유혹을 받지 안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그 원인인 어데  있습니까, 그 원인이 어데 있어? 저 뒤에 한번 좀 말해 보십시오. 그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원인이 어데 있소? 저 뒤에. 남녀반에 다 한번 말해 봐요, 누구든지. 녜,  ‘사람의 중심으로’ 하면은 좀 맞기는 딱 들어맞았는데 좀 알기 어렵습니다.

그만 인간 욕심이라 하십시요, 인간 욕심. 거게는 중심보다도 하나님의 욕심이  아니고 인간 욕심,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고 인간 소원,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제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욕심을 가지면 마지막에  성공이냐 실패냐 이게 영생이냐 멸망이냐 하는 것이 결정될 때는 반드시 거게는  사욕이 옵니다. 사욕이냐 성령의 소욕이냐 둘로 가지고 구별될 때에 사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으로 되어진 거라야 영생이 되지 그거 안 된 거는 다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항상 자기를 위하는 것 이 욕심이 얼마나 자기에게 원수된다는  것을 깨닫고 평생 이놈을 죽일라고 애를 써도 죽어지지 안하는데 자기 욕심  그것을 죽일라고는 해 보지 안하고 목회를 해도 자기 욕심으로 목회를 해서 이런  저런 사건만 당하면 요래 해야 내게 유익이 되겠느냐 조래야 내게 유익되겠느냐?  하나님이야 유익되든지 말든지 내비두고 요래야 내게 유익되겠느냐 조래야 내게  유익되겠느나? 요래야 내게 손해가 가겠느냐 조래야 손해가 가겠느냐? 그 자기의  이해를 생각하는 그것이 누구의 욕심입니까? 누구의 욕심이요? 그거 가지면  멸망이라! 암만 뭐 성자노릇 하고 뭐 일등 목회를 하고 뭘 한다고 해도 그거  가지면 헛일입니다. 그것이 왕원수요 왕원수. 원수 중에는 왕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반사선생님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 안에 학생을 두고서 기르는 그 노력을  하십시오. 자기 마음에 학생을 두고 기를라고 하는 그것이 없어지기 전에는  자기는 어두워지지 안하기 때문에 그는 참 광명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래 안  하면 그 사람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그러고 지금 바로 권찰회 있습니다. 권찰회는 누구든지 참석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참석해 볼 수 있고 다른 교회 교인들도 참석해 볼 수 있고 우리와  대립돼 있는 사람도 와서 참석해 볼 수 있고, 왜? 우리 권찰회는 내가 아는  대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할라고 하기 때문에 봐 봤자 그거 나쁘다고 욕하면  제 손해지 우리 손해 안 되고 또 보고 깨달아 옳다고 알고 그대로 본떠서 하면은  하나님의 뜻 이루어지고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든지 참석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지 또 권찰회에서는 발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언을 해 가지고 쓸  발언하면은 그 뒤에 발언할 권리 있고 한번만 쓰지 못할 발언하면은 그 다음에는  언권을 안 줘 버립니다. 그라고 권찰회에 권찰들은 다 참석을 해야 됩니다.

권찰들이 참석할 수 있는 건강을 가지고도 참석하지 안한 그 사람은 그라다가는  참으로 자기가 참석할 수 없는 그런 약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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