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

 

1986. 7. 23. 새벽(수)

 

본문:요한일서 2장 27절∼29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우리들의 금생과 내세, 육과 영, 또 자기와 다른 사람 그 전부가 다 복되고 평안하고 점점 존영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나 어떤 피조물의 힘을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돕는 은혜로만 되는 것인데 삼위일체의 은혜는 도성인신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신 예수님에게 다 전담됐습니다.

전임됐습니다. 전임이라면 전부를 맡겼다 말입니다. 전담이라 말은 전부를 담당했다 말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제이위 성자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마는 인자됨을 인하여, 사람됨을 인하여 모든 심판하는 권세와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전권이, 주권이 다 우리 중보자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나 잘되는 것도, 나와 관련된 내가 사랑하는 자들이 잘되는 것도, 또 그뿐만 아니라 나와 제일 멀고 원수되어 있는 그자들이 잘되는 것도, 금생 내생에 잘되는 것도 모든 좋은 것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할라고 하는 것만치 그 사람은 그만큼 실패되고 흠점이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만치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마귀란 놈은 우리를 꾀워서 치우치게 만듭니다. 치우치게.

어떻게 치우치게 만드는고 하니 전적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 자에게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너 할 일은 없다’ 하나님께 맡겨 놓고 너 할일은 없다 해서 게으르게 만듭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뭐 우리가 할 게 뭐 있나? 하나님이 해 주시지’ 이래서 게을하게 만듭니다.

또, 힘을 쓰는 자에게는 ‘네가 힘을 써야 된다. 힘 안 쓰면 안 된다. 힘을 어짜든지 써라.’ 이라면서, ‘네가 힘 쓰면 네 힘씀으로 된다' 이래 가지고 자기의 힘씀으로 되는 줄 알고 힘을 열심히 쓰고 또 되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힘써 자기 힘으로 됐으니까 그만큼 또 자기는 자랑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이래서 그만 이리저리 치우쳐서 다 헛일이 되고 말도록 그렇게 마귀란 놈이 자꾸 유혹을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리저리 치우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죽도록 힘쓰지 안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죽도록 충성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힘으로 영생하는 요소, 불멸하는 요소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이렇게 영원 불멸의 것을 만들어 주시는 그 주심을 받는 자 될라고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했어도 주님이 은혜로 주신 것 내가 받는 그 준비에서 받는 것뿐이지 그 은혜의 실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받는 그 준비뿐입니다.

그러면 나는 주님이 주시는데 그저 그릇을 가지고서 달라고 이래 받는 그와 같은 것이지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또 주님이 은혜로 공짜배기로 주시니까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될 것 아닌가? 받는 준비를 또 안 한다 말입니다. 주님의 전적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받는 노력을 하지 안해 가지고 또 헛일하도록 그래 이리 치우치고 저리 치우치게 해 가지고서 우리들이 실패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금생 내세 자기 다른 사람 온갖 종류의 그 실력 행복 그런 것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로 주셔서 내가 받아 가지는 것인데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실 때에 어떤 방편으로 주시는가? 은혜를 주실 때에 주시는 그 방편이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시고 은혜의 실상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뜻을 주십니다. 뜻을.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해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면 그 뜻을 언제 주시는가? 신구약 성경은 다 그분의 뜻인데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실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상은 아닙니다. 실상은 아닌데 그 현실에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라 하시는 주님의 뜻은 그게 막바로 실상입니다, 실상.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과 나와의 둘이 관계에서 자타의 영육의 금생과 내세의 모든 실력과 행복과 평강과 영광이 다 전부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요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은 주고 나는 받고 요렇게 하는 건데 주고 받고 하는 그 시기가 언제인고 하니 언제든지 현재라는 그 시기 외에는 주고 받는 일을 못 합니다. 현재라는 그 현재에서만 주고 받습니다.

그러면, 현재에서만 주고 받는데 현재에 줄 때에 어떻게 주시는가? 당신의 뜻을 나에게 주십니다, 당신의 뜻을. 이렇게 해라 하시는 당신의 뜻을 나에게 주십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당신의 뜻을 나에게 주시는데 그때에 그 뜻을 바로 받아 가지고 그대로 하면은 곧 실력이요 행복이요 평강이요 영광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가 구원받는 이 구원은 현재라는 것을 조심하지 안하고 현재를 뺏겨 버리면 헛일입니다. 현재를 뺏긴다 말은 현재를 나의 금생 내세, 또 나와 다른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 영과 육 모두 다 실력을 갖추고 행복과 평강과 영광을 갖추는 데에는 주님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그것을 내가 받아야 하는데 공짜배기로 주실 때가 언제며 받을 때가 언제인가? 일생을 뭐 수십 년 산다 할지라도 그거 상관없고 꼭 현재라는 그 현재, 현재라는 그 현재 거게서만 주고 받는다.

거게서만 주고 받는데 주기는 뭘로 주느냐? 당신이 이렇게 해라 하시는 지도를 주신다, 지시를 주신다, 명령을 주신다, 우리에게 그렇게 ‘이렇게 하라’ 시키시는 그 시키시는 그것이 막바로 행복의 그 자체입니다.

시키시는 그대로 하는 그것이 행복의 자체인데 그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행복의 자체인데 그 시키시는 그것을 내가 바로 알았으면 주님이 내게 주시는 행복을 내가 바로 발견했습니다. 바로 알았습니다. 바로 알아도 행하지 안하면은 알았지만 내가 받지를 못합니다. 알고 그대로 행하면 그것을 내가 그 시간에 받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제일 중요한 요지는 어데냐 하면은 요 현실이라 하는 것이 중요한 요지고 또 현실에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 자체냐? 주님이 내게 시키시는 그것이 중요한 자체입니다.

그러면, 현재와 주님이 나에게 시키시는 그대로 하면 우리 구원은 다 돼 버립니다.

우리 구원이 한 번 시키시는 대로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한 번 시키시는 대로 했으면 그 현실에 우리에게 주시는, 그 현실을 통해서 주시는 그것은 내가 완전이 돼 버립니다.

그 현실을 아무리 잘 믿다가도 그 현실을 그 현실에는 마귀란 놈이 가 가지고서 요렇게 치우치고 조렇게 치우치라고 요렇게 분주한 일을 만들고 저렇게 분주한 일을 만듭니다. 분주한 일 만들어 가지고 엉뚱한 일로 인해서 주님 시키시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그만 그 시간에 환경에 분주하게 날뛰는 거기에 피동돼 가지고 그만 환경대로 살아 버리고 주님에게 피동된 생활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못 하면 저는 현실에는 완전히 주시는 것은 받지 못했고 마귀가 주는 영원한 사망을 제가 받았기 때문에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영원 멸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현실에 주님의 뜻을 바로 찾는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가르쳐 주신 그 가르쳐 주심을 받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 지식을 가질려고 또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지식을 보조하는 보조 지식, 보조 지식이라는 것은 배암의 지식이라 할 수 있는데 세상 지식인데 그 지식을 우리가 바로 사용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가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바로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가지는 데에 방해 지식이 됩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가지는 데에 보조 지식도 될 수 있고 방해 지식도 될 수 있습니다. 방해 지식이 될 때에는 음행의 포도주라고 말했고 보조 지식이 될 때에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현재에 하나님이 내게 지시하시는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모든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는 것이나 보조 지식을 가지는 것이나 가지는 그 목적이 뭐인가? 그런 지식을 우리가 가질라고 노력하는 목적이 어데 있는가? 목적은 현실을 닥쳤을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지시를 바로 찾기 위해서 그런 것을 다 보조 지식으로 모두 다 상식으로 하나님의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든 보조의 지식으로 우리가 가지는 것입니다.

신구약 육십육 권을 창세기 1장으로부터 끝장까지 계속 지켰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요 성경을 알고 보니까 ‘요 현실에는 하나님이 내게 요렇게 하시는 것이 요게 하나님의 뜻이로구나’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서 찾는 데,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서 찾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지식을 가지는 것이지 신구약 성경 지식 그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하면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무슨 비유를 할꼬? 어머니가 지금 갓난 아이를 낳아 놓고 오만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을 먹는데 그 음식을 먹으니까 그 음식이 어머니 몸을 통해 가지고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젖이 돼 나옵니다. 젖이 돼 나오면 젖은 먹으면 아이가 자라지마는 어머니 먹는 것을 바로 직접 먹어 버리면 아이가 죽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직접 제가 바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창세기 1장으로부터 그 말씀을 자꾸 그대로 실행할라고 하면 그것은 자기가 죽습니다.

자기가 죽어. 다만 신구약 성경 말씀에서 거게서 조화를 맞아 가지고 자기에게 해당되는 그 현실에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을 자기가 받아서 실행해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꼭 바로 알아야 되지, 그저 사람들은 ‘성경 말씀대로만 하면 된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된다는 그 말은 맞다고도 할 수 있고 안 맞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하면 된다 그말은 신구약 성경에는 많은 말씀이 있는데 그 현실을 닥쳤을 때에 현실에 너에게 하라고 가르치시는 그 명령하시는 그대로 하면 산다 하는 그 말일 수도 있고, 그만 그 현실은 다 냅둬 버리고 창세기 1장으로부터 계시록 끝장까지 그대로만 행하면 된다 그런 말도 될 수 있다 말이오. 그런 말은 죽이는 말이고 마귀의 말이고. 그 많은 말씀 가운데서 현실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그 말씀을 찾아 가지고서 지키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을 구별하지 안하고 자꾸 이라니까 사람들은 성경대로 하면 산다 하면은 그 사람이 분명히 성경대로 하면 산다는 말이 잘못 알고 죽는 말인데 자꾸 그렇게 말을 한다 이라는데 그래 그러면 그 사람한테 물어봅니다.

‘성경대로 하면 산다 그러면은 네가 성경대로 어떻게 하느냐?’ `언제든지 성경 말씀대로 그대로 하면은 된다.’ ‘어떻게?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언제든지 뭐 성경 말씀대로만 하면 된다, 성경에 기록해 주신 그 말씀대로 하면 된다.’ 이라니까, 그 많은 말씀 가운데에서 그 사이비하게 성령님이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지시해 주시는 그 영감이 있는데 그 영감대로 한다는 그거는 아니고 막바로 그저 육십육 권대로 십계명이라면 십계명 언제든지 그대로만 지키면 된다 이라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정확지 아니하고 그만 전부를 두고서 망라해 가지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될지 하는, 주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방편을 준비하지 안하고 모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 다 헛일하고 만다 그거요.

그런 일 많습니다. 어떤 사람 신사참배 했는데, 신사참배를 안 했는데 안 한 사람 말 들으니까 그 사람은 자신은 이겼다고 지금 의기양양해 하는데 그걸 말해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내가 물어 보기만 하고서 그때에 사경회 할 때에 간단하게 말해도 그런 말할 때는, 그말 할 때에는 마귀란 놈이, 이제껏 붙들고 일하는 마귀란 놈이, 그 말씀할 때 그 말씀을 들어야 제가 깨닫고 믿겠는데 그 말을 딱 하니까 그만 이래 졸고 있습니다. 마귀란 놈이 그만 잠을 들게 만들어 그말 못 듣게 된다 말이오.

대개 보면은 마귀에게 붙들린 사람은 어떤 사람이 붙들린 사람이냐? 자기에게 해당된 말을 할 때에 졸게 됩니다. 자기에게 관계 없는 말 할 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 자기에게 해당된 말 하면 그만 좁니다. 그거는 마귀가 그 사람을 붙들고 평소나 언제나 자유 자재로 한다 그말입니다.

그런 사람 있고, 보니까 뭐 ‘지져 먹든지 볶아 먹든지 네 이놈들 마음대로 해 봐라’ 그라면서 악과 독을 가지고서 지금 그라기 때문에 신사참배 안 했으나 신사참배를 무서워서 한 사람보다도 그 사람은 고치기가 몇십 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죽고 또 죽고 뿌리까지 뽑혀 열매 없는 가을 나무인데 벌써 교만하기까지 됐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무슨 말 하면은 달라들어서 진주를 밟고 달라들어 물 터이니까 그 사람에게 말 못 한다 말이오.

‘그거 틀렸소. 자기 잘못 이겼소.’ 이라는 날이면 그 사람이 뭐 악을 부리고 돌아다니면서 막 입을 벌립니다. 그런 사람 잘못된 거 말 한 마디 해 줬다가는 돌아다니면서 막 헙니다. 그런 게 대개 일할 것 없고 할 일 없고, 가정은 망해 있고 할 일은 없고 또 그런 것이 배짱은 있고 그러니까 뭐 남의 것 얻어먹고라도 배짱 좋게 이래 가지고 살면서 이래 돌아다니는 그 사람 하나 건드렸다가는 그만 매장됩니다.

또, 6.25 때도 보니까 어떤 사람이 ‘뭐 인민군이 뭐이 무서워서? 인민군이 뭐이 무서워서?’ 그때는 공습보다 인민군이 무섭습니다. 인민군은 만나면 반드시 생명을 안 내놓으면 안 되고 그 사람이 질문을 하게 될 터이기 때문에 생명 내놓고라야 그 사람을 대하지 그리 안 하면 못 대해.

왜? 그 사람하고 말해서 말할 때에 마귀란 놈이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반드시 나한테 질문할 때에는 생명을 내대지 안하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말을 질문하기 때문에 그게 나오면은 그대로 말을 타협해서 하지 못하고 바로 말해야 되기 때문에 인민군 대할 때마다 벌써 생명 내놓고 대하지 안하면 대할 수 없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뭐 인민군이 뭐이 무서워서?’ 그라는 사람 내가 똑 둘 봤어.

둘 봤는데, 이거는 보니까 저거 사촌이 전부 뺄갱이기 때문에, 인민군 내무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사촌입니다. 전부 집안이 너르니까 사촌이 많아요. 많으니까 그 사촌들이 인민군 내무서에 바로 직원들인데 그 사람들하고 그라니까 뭐 무슨 소리해서 들어간다 해도 내나 그 사람들이 공산주의 앞잡이가 돼 가지고 내무서에서 다 모두 판결지우고 있으니까 저야 두려울 게 뭐 있어야지? 인민군 암만해도 인민군은 저거 친구고 저거 집안이고 전부 이런데. 이러니까 그 사람들은 담대한 것은 저거 친척들이 전부 인민군이기 때문에 그래 담대하고 ‘뭐이 인민군이 무서워서?’ 그뭐 인민군 좋다고 이라면서, 그래 내가 하도 밉상이라서 내가 그 한 마디는 해 줬어. 네가 너거 사촌을 믿나 주님을 믿나? 네가 사촌편이가 주님편이가 고거나 네가 똑똑히 구별해라.’ 이랬는데 그게 집사인데, 저거 내외 다 집사인데 뒤에 소문 들으니까 전도관에 가 가지고서 천년성에 들어 가지고 있다 하더니마는서도 지금 어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목사 아주 유력한 목사인데 거창에 왔는데 그분이 그뭐 인민군이 뭐이 무서워서? 그때 어데 거기 가면은 인민군이 꽉 찼는데 인민군 있는 데 그 사람이 뭐 볼일보러 갔다 왔는데 그 인민군 속에 어떻게 갔다 왔는고 한번 이상해서 물어 봤다 말이오. 필연코 뭐인가 있어 그렇지 그 사람 담대함이 좀 진짜가 아니라 그말이오.

그래, ‘어떻게 인민군 있는 데 갔다 왔습니까? 그 안 무섭습디까?’ `인민군이 뭐이 무서워요?’ ‘그뭐 뭐라 합니까?' `만나면 수고하십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말 한 마디 하면 괜찮은데.’ 자, 그말 하면 뭐이요? 예? 인민군 만나 그말 했으니까 수고하십니다 안녕하십니까 하면 어찌 돼요? 뭐이요, 그게? 그라면 그 사람들이 있다가 예, 고맙습니다 이라고 지나가지.

그거 예수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요? 무신론자들을 수고한다고 칭찬하고 협조하는 말 하고 유신론자들을 다 기독자들을 뭐 잡아 죽이고 자꾸 이와같이 하는 그 사람들 수고한다 잘한다 칭찬했으니까 그게 예수 믿는 목사요 안 믿는 목사요? 예? 안 믿는 목사라 말이오. 안 믿는 목사가 제딴에는 목사질 잘하는 줄 알고 있거든. 꺼꾸로 알면 헛일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을라 할 때에 마찰이 돼지고 거게 또 능력이 오지.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시간으로 말하면 현재라 하는 그 시간이 중요하고 또 주님이 암만 있어도 소용 없소. 주님과 나와에는 현재에 주님이 요래라 하는, 주님의 시키시는 그거하고만 나하고만 관계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시키시는 거기에 관계 없으면 다 관계가 없어져 버리요. 있는 관계가 다 깨져 버리요. 시키시는 거게 있지. 그러니까 시간으로 말하면 현재가 중요하고 또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현재에 시키시는 그게 중요하다 말이요, 시키시는 그게 중요해. 그걸 가리켜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러니까, ○○○ 어데 있어? 거창에 어째 갔는고? 가르칠 필요 없다 그말은 ‘성경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성경은 배우라 했소, 성경에.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성경을 배우라 이랬어. 여기는 ‘사람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말은 성경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배워도 네게 하나님이 직접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는 직접 너희에게 지시는 주님에게 직접 받아야 되지 다른 사람이 그거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직접 가르치는 고거 들어야 돼. 고거 모르면, 사람이 기독자가 현재라는 시간 떨어뜨리면은 뭐 여러 백 세를 살아도 아무 소용 없어. 다 죽었어. 또 현재에 주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시는 그 가르치시는 그거 못 들으면 신구약 성경을 다 외워도 소용 없고 암만 예수님을 저 혼자 잘 믿는 것처럼 뭐 죽도록 충성해 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요 꼭 전체가 요 현재라는 요게 꼭 매였다는 요걸 기억하십시오, 요거.

현재에 주님이 시키시는 요게 생명이 들었고 성공이 들었고 행복이 들었고 요게 실패 있어. 요거 잘못하면 다 실패요. 요거 바로 되면 모두가 다 자타, 금생 내세, 영육, 원수까지도 다 행복될 수 있고 구출할 수 있지마는 요거 아니면 헛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요걸 찾아야 돼요.

요걸 찾아야 되는데, 어제 아침에 말하다 말았는데 여기 기름 부음이라는 기름은 몇 가지를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기름 부음은 몇 가지입니까? 녜, 기름 부음은 몇 가지? 저 ○선생,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너이? 그래 맞았어.

인제 기름 부음이라 하니까 너이라 했구만. 기름 말해 봐. 기름을 말해 보라 말이오. 저 ○○○선생.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하나. 내가 보니까 모르는 것 같애.

백 목사는 눈 밝습니다. 눈에 눈물이 줄줄 나고 이래도 아주 밝아. 그 ○○가 여기 없는 걸 내가 어째 알아? ○○ 손 들어 보라 하는 거. 아주 눈물이 줄줄 흐르고 어두운 것 같아도 굉장히 눈이 밝습니다. 또, ○○○선생은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그거 내가 모르줄 알아도 그거 마음이 그때 어만 데 가고 있다 말이오.

그래, 기름은 셋. 피 성령 진리 요 셋입니다. 셋인데 요 기름이라 하는 건 성령을 말하는데 그 셋을 말했어.

기름 부음은 뭐입니까? 부음은 중생됩니다, 중생. 기름 부음이 가르친다. 기름 부음이 옳고 바르게 가르친다. 기름 부음은 몇 가지인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인제 그거는 바로 말했네. 네 가지.

그러면, 아까 피 성령 진리 거게 뭐이 하나 보태졌습니까? 중생된 영이 하나 보태졌어. 기름 부음을 받았거든. 기름 부음을 받았다 말이오. 중생받아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기름 부음이」 하는 그말은 ‘중생시킨 그 영감이’ 그라면 영감이 누구에게 지금 옳고 바르게 가르칩니까? 누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몇에게 가르칩니까? 그라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기는 다섯. 봐, 눈물은 찔찔 흘리고 열심히 믿기는 믿는데 저 뒤퉁이기 때문에 어짠지 그 신앙이 좀 뒤퉁스러워. 인제 다섯 가리킨다. 열심쟁이. 어머니 따라가, 어머니 따라가, 열심.

좀 바로 안 되면 뭣인가 주님이 섭섭해 하는 죄가 있어서 심령이 어두워.

죄는 심령을 가룹니다. 죄는 심령을 가루기 때문에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그 심령이 자꾸 꺼꾸로 해석이 됩니다. 그 사람 심령이 밝으면 깨끗한 사람이오.

죄가 없어.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심령이 어두워서 자꾸 꺼꾸로, 마귀 그놈이 자꾸 어쨌든간에 꺼꾸로 가르쳐요.

기름은 셋, 기름 부음이 가르친다 하는 기름 부음은 넷. 몇에게 몇 가지에게 가르치고 있는지? 몇 가지에게 가르치고 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인제 들어서 알았구만. 어짜든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깨끗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모두가 헛일이오. 골만 빠졌지 되는 줄 알아도 나중에 가 보면 결말에 가 보면 아무것도 없어.

그 둘에게, 심 신.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심신에게 가르쳐. 논리로 말하면 마음에게 가르쳐 가지고 그 다음에 마음이 고기덩어리에게 가르치고 하지마는서도 이 심신은 하나라, 이상하게도. 벌써 그 사람 얼굴 보면은 저 사람 근심 있구나, 저 사람, 얼굴 그거는 고기덩어리 아니요? 저 사람 기쁨 있구나, 저 사람 무슨 뭐 자기딴에 무슨 횡재수 닥쳤구나. 그 얼굴 보면은 뭐 오만 거 다 알 수가 있어. 그 속에 마음이 어떻다는 거 마음을 얼굴이 환하게 나타내고 있다 말이오. 그래 그 심신에게 가르치요.

가르치는데, 그러면 심신에게, 이제 하나만 묻고 인제 그만 맙니다. 심신에게 가르치는데 몸에게 먼저 가르칩니까 마음에 먼저 가르칩니까? 마음에 먼저 가르칩니다. 마음에 먼저 가르치는데 마음에서 이 넷이 가르쳐 주는 것을 먼저 받는 손이 그게 뭐입니까? 손을 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받는 손을 뭐라고 합니까? 양심. 또 듣는 귀를 뭐라고 말합니까? 양심. 양심 그게 귀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것은 양심을 말한 것이요, 양심.

이러니까, 자, 양심 없으면 받을 수 있소 없소? 못 받아. 양심이 없으면 들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들어. 이러기 때문에 양심을 쓰지 안하는 사람은 예수 암만 믿어도 헛일, 목사라도 헛일, 장로라도 헛일, 헛일입니다. 양심 쓰는 데만, 양심 안 쓰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백 목사님은 자꾸 모두를 개방 안 하고 숨어서 자기 혼자만 자꾸 이래 하고 있다고서 좀 모두 세상이 모두 다 이 교계가 이래 쌓고 있는데 그거 어째 좀 그라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까?’ 이래요. ‘내가 녜, 잘 압니다.' 그래 나는 그 사람들한테 또 인제 다른 소리하면 나 뭐 그렇다고 신문에 나가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 부족해서 사람에게 그렇게 해서 잘 그렇게 접촉을 하지를 못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지.

그러니까, ‘강단에 여게는 꼭 다른 강사는 청하지 안하고 그렇게 혼자만 여게는 집회하고 다른 강사 청하지 안하고 꼭 혼자 집회하고 이렇게 그래 한다 하는데 그거 왜 그랍니까? 거게 내가, 교훈 교류는 그것을 한창 그때 여게, 보니까 ○○교파 사람이 둘이 왔어. 지금 ○○교파에 있다 하니까 내가 말하는데 ○○교파에서 말하기를 거기는, 그때 내가 조사 때인데 백 조사는 다른 강사는 청하지 안하고 제가 꼭 혼자 꼭 사경회를 해도 혼자 하고 뭘 해도 혼자 한다고서 이런 말이 있다고 이래서, 이라고. 그거 또 밑에 청년들도 알궂은 청년들이 많이 있어서 그 청년들이 우리 좀 남전도회나 또 이거 뭐 학생회나 한번 강사 한 분 모십시다 이래서 그래 내가 있다가서 그래 너거가 모셔라. 어떤 강사를 모셔라. 마음대로 모셔라. 마음대로 모시는데 조건이 있다. 그 강사도 우리 교회 강단에 한 시간 모시고 나도 그 교회 가 가지고서 한 시간 설교하고 꼭 품앗이로 해야 안 되겠나? 나도 한번 가 설교하고 거기도 한번 와서 설교하고 그라도록 너거가 가서 교섭을 해라. 교섭을 하라 하니까 어떤 목사가 하나도 안 해.

가서 ‘좀 와서 한번 해 주십시오.’ ‘가지.' `그런데 목사님이 오시고 난 다음에는 또 조사님도 한번 이 강단에 청해 가지고 한번 설교하도록 그렇게 서로 하면 어떠냐고 그렇게 말씀합디다.’ 입이 딱 막혀 다시는, 다시는 그말 없어.

그라고 난 다음에 ○○교파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서로 교훈하구로 강사를 서부교회 좀 한번 청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왜? 알기 때문에.

가면 그 사람들 여기 와서 설교하고 나도 거기 한 시간 가서 설교하면은, 그 사람들만 와서 설교하라 하면 그 사람들이 무슨 말 할지 몰라, 자꾸 뭐 이래 무슨 말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도 또 한번 설교해야 돼.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해 잘못 말했으면 또 나도 거기 가 또 바로 옳게 가르쳐 변증을 해야 되겠거든. 안 해요.

그라고 난 다음에 그 말은 막았습니다.

그거 하나님이 지혜를 줬어. 이 청년들이 청합시다 청합시다. 그때 여기 누가 제일 많이 주장했느냐 하면은 ○○○집사님 남편되는 그 뭐이지? ○○○.

남전도회 회장이었거든. 내가 회장을 시켰었거든. 자꾸 한번 청하자 해. 그래 내가 자꾸 뭐, ‘그 사람들은 안 청한다고 이상하게 보고 그라니까 그거 좀 한번 청하면 어떻습니까 이라기 때문에 ‘그거 좋다. 청하는 데는 그말을 가 해라.’ 이 사람이 또 ○○교파에 있던 사람이니까 발이 너릅니다. 인제 또 유명합니다.

이래 가 가지고서 그래 안 청한다고 하는 데마다 그 목사한테 가서 ‘한번 와서 남전도회 한번 좀 설교 좀 해 주이소.’ ‘가지.' `그런 데는 그거 또 인제 조사님도 이 교회 한번 청하시소.’ 청하시소 이라니까 그만 안 한다고 안 하고, 뭐 쭉 돌아다니며 다 하니까 아이구 안 한다 안 한다 안 한다 이래.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집사 입이 딱 막혀서 ‘청하도록 해라. 안 오나 누가 안 오나?’ `아이 안 올라 합디다. 이제 알았습니다, 내가.’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랬어. 그래 내가 그걸 얘기를 했어.

그라고, 왜? 사람하고 자꾸 좋도록 이렇게 사람하고 친할라고 이래 하면은 하나님하고 이거 기름 부음이 가르치는 그 가르침을 듣지를 못하게 돼요. 사람 만나면 말이지. 사람 만나는 이거 좋기는 좋지요. 하나님 다음에는 사람 만나는 게 좋습니다. 사람 만나면 얼마나 재미 있습니까? 사람 만나 가지고 재미 있지마는 그라면 그만 하나님과 만나면 일이 틀려 버리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여기 다른 사람은 어떤고 몰라도 저는 그래요. 그만 하루 그날 사람 몇 사람 와 가지고 뭐 두시두시 그라면 그만 헛일입니다. 하루 종일 생활은 다 헛일하고 말았어. 지금도 하루 하나님하고 접하는 시간은 찍해야 몇 시간 되지 안하고 쓸데없이 사람하고 구절구절 중얼거리는 그 쓸데 없는 말이지 그 시간이 많이 가.

그래 내가 회는 장 이거라. 이 시간 없는, 이 시간 없기를 자꾸 원하고 또 그뭐 이익이 있느냐 하면은 결과적으로는 유익이 없어.

다 사람 기쁘게 하는 것뿐인데 이거 그리 안 하면 삐꿔 돌아갈 것이고 그래도 뭐 냉정스럽다 이래 쌓는데 만일 그래 해 놨으면은 뭐 삐꿔 돌아가고 얄궂을 거라.

인제 이거 여기 안 삐꿔 돌아가는 사람들은 여기 몇이 있습니다. 이권사님들이 안 삐꿔 돌아가고 이제 지금 여기 저 장로님들도 그뭐 거의 다 불평입니다. 만나 가지고 이런 얘기도 하고 저런 얘기도 하고 또 이런 뭐 이런 무슨 회도 하고 저런 회도 하고 이라면 좋다 하지요, 좋다 해요.

누구든지 만나면 그뭐 저를 싫어해 그런 게 아니라 만나면 나는 지금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으로는 벌써 도망갔소. 자꾸 마음으로는 도망가 자꾸 뒤로 뭐 꽁무니를 빼 자꾸 이래 도망가고 그 사람은 간다 하고서 자꾸 눌러붙습니다.

간다 하고 자꾸 눌러붙어요. 간다 하고도 자꾸 눌러붙어 앉아서 자꾸 뭐 나만 거석하면 뭐 몇 시간이든지 앉아서 얘기를 하고, 얘기하면 좋기야 좋지. 왜? 내게서야 저희에게 유익된 거 자꾸 좋은 게 나가니까 이래 말하지마는서도 그 한 두 사람 그 사람 좋게 할라고 다른 모든 일이 다 헛일이라. 뭐 설교 준비 다 헛일이고 그러니까 뭐 여러 수백 명 수천 명에게 필요 있는 걸 줄 수 있는 걸 준비하는데 한 사람에게 유익된 것 주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된 걸 주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손해요 손해 아니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 기름 부음 요걸 알아야 됩니다. 기름 부음 그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것을 받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를 아침부터 준비하는 사람 나는 좀, 그 사람은 또 그 사람 기술이 있겠지만는서도. 저는 설교하는 그 시간까지 이 뭐인가 자꾸 이래 가다가서 뭐, 설교할 거야 많지요. 이것도 저것도 많은데 어느, 그것 중에 어느 거 해야 되겠느냐 그거요. 그게 문제라. 그러기 때문에 평소에도 기름 부음이 자기에게 가르친 그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어떤 다급할 때에 자기가 몰라도 퍼뜩 말해 줍니다. 이거 말해서 그걸 고치도록 말합니다.

그래 자기에게, 그러니까 자기 생각이 주님의 생각이 돼야 돼. 주님이 자기 생각을 주장해야 돼지는 것이지 뭐 소리가 들립니까 뭐이 들립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하고 자기하고 그렇게 결합이 돼서 주님의 수족이 되고, 주님의 입이 되고, 주님의 귀가 되고, 주님의 지체가 돼져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돼지면 전능자하고 들어붙어서 전능자의 수족이 되면은 그 수족은 뭐입니까? 전능자 아닙니까? 이래 되는 거라. 이라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의 이 능력에는 끝이 없는 거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말씀을 좀 가르칠란지 모르기 때문에 빠지지 말고 오고 좀 오늘은 전도를 좀 했습니다. 오늘은 뭐 전도 좀 했습니다. 오늘은 전도를 좀 했어.

보니까 새벽 기도 나오는 거, 새벽기도 나오는 건 산 사람을, 믿는 사람에게 전도를 해요, 자꾸.

그라고, 어제 아침에 우리 말했지요? 자, 어른 전도를 말했습니까 아이 전도 말했습니까? 어른 전도 말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아이 전도 말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손을 다 버뜩 들어, 아이 전도 많이 하라고. 전부 아이 전도 해요, 아이 전도. 아이 전도하면 어른 전도는 저절로 돼요.

아이 전도 하면서 어른 전도는 닥치면 전도해요. 아이 전도를 주력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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