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준비

 

1984. 8. 19. 주일오전.

 

본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 때에' '그 때에 천국은' 말씀하실 그 때가 어느 땐가?  우리 신앙은 이 세상이 영원 무궁한 하늘나라의 실력 준비가 이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준비한 대로 영원 무궁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나그네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영주처는 세상이 아니고 우리는 세상에서 이사 갈  사람들이라 하는 것이요 또 행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는 한 걸음 한 시간  한 시간의 그 생활이 자기의 구원을 향하여 찾아 가는 걸음이요 어떤 사람은  멸망을 향하여 찾아가는 걸음입니다. 아무리 그 자리 거게서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멸망을 찾아 가든지 구원을 찾아 가든지 가고 있는 사람이지 그대로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에 신앙 생활면에는 도덕면도 있고 또 사회면도 있고 또 윤리면도  있고 또 경제면도 있고 신앙의 지조면도 있고 이런 저런 실력 투쟁면도 있고  여러 가지 시험면도 있고 여러 가지 생활을 우리들이 구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준비하는 기간과 또 시험을 치르는 기간과 또  전진하고 향상되는 그런 기간들이 있습니다.

 여기 열 처녀 비유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신앙으로 구비했든지 하나님께서 네  신앙의 중량이 얼마나 되며 또 네가 믿음을 지키는 그 실력이 얼마나 되나 하는  것을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그 시험의 때가 있습니다.

 이 시험은 시대적으로 있는 시험도 있고, 또 지역적으로 동양에는 시험이 있는데  서양에는 시험이 안 되고 서양에는 시험이 되는데 동양에는 시험이 안 되고 그  시험의 때가 각각 다를 때가 있고, 노아 홍수 때는 온 세계가 같이 시험을 홍수  시험을 만났던 것입니다. 또 각 나라마다 따로 그렇게 개별로 시험되는 그런  시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준비하는 때가 있고, 또 시험을 치르는 때가 있고 또 시험에 잘  통과해서 합격되면 더 존영하게 되고 성장 되어지고 그 시험에서 실패하면 시험  준비할 때보다 천해지는 것을 우리가 이 세상 모든 일에서 우리가 참견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시험은 괴로운 것이요. 또 기쁜 것이요, 시험은 아주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요, 또 시험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주 귀찮고 싫은 것이 됩니다. 시험이  없으면 그의 실력을 알지를 못하고 또 실력을 모르며 그 사람이 등용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은 없는 것 보다 자주 있는 것이 좋습니다.

또 시험은 낙제하는 것보다 시험은 합격을 하면 좋습니다.

 지금 기독교 종교국으로 되어 있는 미국 같은 나라는 오래 동안 시험이 없는데  그 시험이 없는 것 아닙니다. 시험이 질이 좀 다릅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어려움의 시험도 있고 또 너무 좋은 시험도  있습니다. 그 시험은 무슨 시험인고 하니 신앙을. 너의 믿음의 시련이 믿음을  시험하는 시험인데, 그러기에 믿음을 시험하는 시험이란 말은 믿음 생활을 하기  어렵도록 해서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을 만날 때에 믿음이 요동치 안하고 그대로  승리로 통과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의 그만 시험에 걸려서 신앙을 계속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지금 고등 시험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시험인 줄 알고 있는  미국에 있는 목사들이 몇이나 있는지. 기독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참 별로이 많지  못하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왜? 많이는 접하지 못하지마는 그래도 간접으로  직접으로 접촉을 하는데 미국이 유물주의, 행락주의, 과학과 문화주의에 미혹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고 영감은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은  점점 속화돼서 신앙이 세상화되고 있다, 신앙들이 점점 속화되고 타락되어 있다.

그러기에, 하루 스물 네 시간 가운데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사는 그 기간이 얼마나 되며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며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는 게 얼마나 되는가, 이것이 대단히 희귀해졌습니다. 그 분들은  이제는 기독교 도덕주의 신앙, 기독교에서 자선하고 구제하고 또 관용하고 인간의  그 인권을 옹호하고 해서 이거는 일반적 하는 외부의 생활이지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고 진리를 흡수하고 영광을 흡수하는 그런 생활에는 멉니다.

 그러기에, 그 분석을 했으면 하루 스물 네 시간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위하여 기울이고 제 기분대로 제 도덕심 제 주관심 자존심 행락심 이런 것으로  다 허비되고 참 주님에게 기울여서 무궁세계를 준비하는 그런 준비에는 심히  희박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가져 봤습니다.

 또, 소련이니 중공이니 이북에서는 벌써 시험에 낙제를 해서 다 공산화 된 신앙  생활, 거게서 진리를 지키는 그 신앙의 사람들은 날마다 신앙 투쟁이 계속되고  날마다 생명을 다 걸어 놓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기에,  지금 제일 구원 준비를 잘하는 사람들은 소련이나 중공이나 이북 공산치하에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가져 봤습니다.

 또, 일본에 있는 교회들은 우리 한국과 달라서 조총련 그 운동들이 심하기  때문에 일본 사람의 그 교회는 내비두고 재일 교포들의 교회는 다 같은 배달의  민족이기 때문에 그 조총련 그 사람들이 어짜든지 공산화시킬라고 지하 운동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거는 모르게 아주 경제면으로 활동면으로 사업면으로  교제면으로 또 모든 유흥면으로 모든면으로 입체적으로 이렇게 단속을 해 가지고  차차 지하 운동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에 있는 교회보다 일본에 있는  재일 교포들의 그 무신론주의 유물주의와 더불어 싸우는 그 애로가 더 심한 줄  압니다.

 우리는 이 신앙을 준비하는 그런 기간이 있고, 또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어느  정도 실력 있느냐 하는 시험의 때가 있어서 준비 할 때는 꼭 같이 준비하지마는  시험을 치르고 나면은 합격된 사람은 존영하지마는 낙제한 사람은 준비할 때보다  더 천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기독자들이 한 신앙 시험을 닥쳐서 낙제해서  천해지고 천해지고 자꾸 죽는 날까지 천해지는 그런 신앙가들도 있고, 죽는  날까지 점점 항상 전진하는 그런 신앙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험에 대해서 여게서 말씀하시기를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처녀들이 신랑 맞이할려고 등불을 들고 이래 맞이하고 있는데 등불을  들어야 신랑을 맞이하지 등불 들지 안하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는 이 맞이인데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가지고 준비해 가지고 신랑을 맞이할려고 기다리고  있고 다섯 처녀는 등만 가지고 기름은 가지지 안하고 그저 신랑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랑이 와도 초저녁에 오면은 될 터인데 꼭 밤중에 왔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기름 준비 못 한 사람들은 그 불이 꺼져 갑니다.

 이런데 신랑이 왔다, 밤중에 왔다, 이러니까 모두 맞이할려고 등불을 들고  나가다가 슬기 있는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했으니까 등불을 환하게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가고 슬기 없는 미련한 처녀들은 등만 가졌지 기름을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기름이 없으니까 그만 등불이 꺼지니 신랑을 맞이할 자격이 없습니다.

 등불을 환하게 들고야 맞이하는 것인데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 좀  나눠 달라' 이라니까 슬기 있는 처녀들이 말하기를 '나눠 줄 수 없다. 나눠 줄라  하다가는 너도 실패하고 나도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나눠 줄 수가 없으니까  차라리 파는데 가 가지고 기름을 사라' 이래서 그들은 기름 사러 간다고 부리나케  가고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불을 들고서 신랑을 맞이해서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고 문은 닫았습니다. 그 미련한 처녀들이 뒤에 와 가지고서  '열어 주소서' 이렇게 하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면서 물리쳐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본문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두고 말 한 거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러하지마는 개인 개인의 주님을 만나느냐, 주님에게  쫓겨남을 당하느냐? 또 단체적으로 주님을 만나느냐 주님에게 쫓겨남을 당하느냐  하는 이런 것이 재림도 그 종류의 것이지마는 가정에서든지 사회에서든지 개인  생활에서든지 이런 시험은 계속하고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시험을 닥칠 때에 시험은 꼭 등불을 들고라야 신랑을  맞이하는데 등불을 들지 안하면 신랑을 맞이할 수 없으니 맞이를 못하면  기다리고 있을 때보다 훨씬 천해집니다. 또 등불 드는 것은 미리 기름 준비를  해야 등불을 켜 둘 수가 있지 그렇지 안하면 등불을 들 수가 없고 천해집니다.

 과거에 시대적으로는 우리 한국 교회에 선교 오십여 년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왜정 말년 신사 참배라 하는 큰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 시험이 올 때에 그 때에  한국 교회서는 그 시험을 등불 들고 신랑 맞이한 그런 처녀들이 극히  소수였습니다  또, 일본에서는 그 등불 들고 신랑 맞이해서 우상 숭배를 하지 아니하고 제  이계명과 일계명을 지킨 것 우상 숭배한 거는 제이계명을 범한 것이요, 또 죽기를  두려워함으로서 우상 숭배된 거는 제일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사  참배는 일계명과 이제명을 범한 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어려운 시험을 일본  사람으로서는 제가 알기로는 야나기 하라라는 그 사람이 이겼다 졌다 말은  있어도 하천 풍언씨 같은 그런 이는 다 도매금으로 다 넘어갔습니다. 뭐 한번  항거하지도 못하고 다 그 시험에 다 낙제 해 떨어졌습니다.

 또, 일본에 가서 신학을 하는 그 때 시노 신학 했는데 시노 신학하는사람들은 다  시노 신학은 신신학인데 그 시노 신학을 졸업한 사람으로서는 신사 참배를 이긴  사람들이 없다고 봅니다.

 평양 신학 졸업한 사람과 그 외에 있는 성도들은 우리 조선 나라에서는 그 때에  그 신앙을 지킬라고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고생당한 사람도 있었고, 또 그렇게  우상 숭배하지 안할라고 망명해서 외국에 가 가지고 그 시기를 지난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투쟁하면서도 이겨 나간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늘 자주 말하지마는 선천 고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고 합디다. ○○○목사님 그 형제분이 다 목사인데 좋은 목사입니다. 유력한  목사입니다. 그 목사님 형제분에게 내가 들었는데 선천고을에서 난 분인데 '선천  고을에서는 신사 참배를 항거하다가 고난 당한 사람은 있지마는 최후까지 신사  참배를 하지 안하고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는 것을 말을 하고서  아주 크게 회개의 기간을 두고서 회개하는 것을 봤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하느냐 하면은 그 때에 그 신사 참배에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이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긴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 이 한국 교회를 부흥시킨 것은 다 신사 참배를  이긴 그 사람들이 부흥을 시켰고 그때에 다 진리를 나타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신사 참배에 대해서 참 가슴 아프게 크게 회개 해서  어떤 사람은 반 년 동안 하루 한 끼씩 먹고 하루 두 끼씩을 단식한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며칠 단식을 하면서 참 죽는 것이 옳다고  결사적인 그런 회개를 한 사람들이 다시 교회에 부흥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는 대로는 그때 신사 참배할 때에 신앙 좋은 사람들이 신사 참배 하고  난 다음에는 그만 권능이 떠나서 그 뒤에는 권능 있는 신앙 생활을 못 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뒤에 아주 뜨겁게 회개한 사람들은  오히려 뭐 신사참배 승리한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렇게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이 밤중에 신랑이 온다 이 말은 최고로 신앙 생활 하기 어려운  밤중이 있으니 반드시 신앙 생활에는 개인 신앙이나 가정 신앙 생활이나 단체  신앙이나 사회 신앙이나 교파적인 신앙이나 어짜든지 제일 어려운 밤중이라는  그런 시기가 있다. 그럴 때에 주님을 만나느냐, 주님에게 쫓김을 당하느냐 그것이  판결 난다. 그때는 등불을 들고라야 신랑을 맞이 하지 등불 들지 안하면 신랑을  맞이 못 한다.

 밤중은 깜깜 어두운 것인데 어둠의 반대가 등불입니다. 이 어두움이라는 것은  모든 악의 세력, 악령의 세력, 죄악의 세력, 인간들의 세력, 불의의 세력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어두움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그렇게 모든 죄악과  불의와 악령화 되어서 그렇게 불법이 아무리 성해도 그 때에 불법에게  설복당하지 안하고 정복당하지 안하고 감염되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진리와 영감 대로의 말과 행위와 지식과 사람이 되어 있는 그  사람이 등불 든 사람이니 그런 사람들만 승리하고 주님을 만나게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결실은 어데 있는가? 기독교의 준비는 평온한 때에 있고  기독자의 결실은 환난에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환난의 그  때에 결실이 있느냐, 거기에 쭉정이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남한으로 말하면 아주 교회의 전성 시기라고 보는데 그러면  지금은 준비 기간으로 봐서 앞으로 신앙 생활하기에 어떤 어려움이 올 건가 어떤  성질의 종류의 밤중이 올 건가? 반드시 밤중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참으로 이  슬기 있는 준비한 사람들은 그 밤중을 통해서 더 주님과 밀접해지고 더 영능이  더해질 것이고 권위가 더해질 것이고, 또 그의 신앙은 더우기 깨끗해질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안한 사람들은 다 세상에게 속화돼 가지고 절단 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런데 오늘 믿는 사람들이 앞으로 큰 환난의 시험이 있으리라, 시험을 통과하지  안하면 헛일어라 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뭐 시험 닥쳐도 나는 돈 있으니까  비행기 타고 시험 없는 나라로 날라가면 되지. 또 나는 돈이 있으니까 배로  어떻게 하면 되지, 나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서 그 유력한 강대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와서 있다가서 그런 일이 있으면 그만 그 나라의 시민기 가지고 도피하면  되지 피난 가면 되지.'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들을 다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은  국경에 막혀지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국경에 막혀지지를 아니합니다.

 노아 때에 그거는 아주 유치한 때의 하나님의 심판인데 홍수 심판 왔을 때에  어데 가서 어느 경계에서 그 하나님의 심판을 홍수 심판을 벗어나고 피해서  갈곳이 없이 다 그 심판에서 전멸을 당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비한  사람들만 그 때에 구출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반드시 그런 때가 옵니다. 이건 내 말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인데 말씀하시기를 '그 때 흥수로 온 천하를 다 시험해서 멸한 거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다 멸하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존해 두셨다가 마지막에 불로 사룬다' 하는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건  주님 재림때의 아주 대밤중인데, 우리 개적으로 대밤중, 이래서 소밤중을 이기면  대밤중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스라기 십자가를 점점 져 가지고서 그  무거운 큰 십자가를 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거창 집회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 준비하는 이 승리를 준비하는  준비 방편이 몇 가지 있는데 당장에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티끌모아 태산으로서 매일 삼십 분이면 삼십 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거를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고 힘을 써서 그렇게 티끌모아  태산되는 것으로서 자기가 그 시험을 위해서 준비하는데 기울이는 그런 준비도  있다' 그런 것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이 성경인데 이제 그런 것은 다 서론적이고, 요는  앞으로 밤중인 어려움을 당할 때에 모든 성도들이 진리의 빛을 들지 못하고  진리대로 살지 못하고 영감대로 살지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다시 말하면 사죄를 입고 통과하지 못하고 칭의를 입고 통과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화친을 입고 통과하지 못하고 진리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영감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다 그 어두움에 삼켜져서 예수 믿는 저나  세상이나 꼭 같은 지식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이 세상화, 꼭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 등불에 기름 없으면 뭐 등불 없는 거나 꼭 같습니다. 새까만 거는 꼭  같애. 이런 어려움이 앞에 있다는 것을 도무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등  따시고 배 부르면 다 된 줄 압니다.

 뭐 신앙 생활로 다른 사람 구제나 돈 푼씩이나 구제하고 연보나 하고 예수님  믿으니까 전도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지마는 앞으로 내 생명을 가질라면 예수를  내놓아야 되고 내 몸뚱이를 가질라면 예수를 내놓아야 되고, 내 소유를 가질라면  예수를 내놔야 되고,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가지고 갈라 하는 사람들은 다 붙들리고 그것 때문에 다  그거 낚시에 낚여 가지고 다 실패하고 만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수입니다. 기독교 진수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여게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누가 자기 신앙을  주관하고 있는고 하니 자기 감정이 주관하고 있고, 자기 주관이 주관하고 있고  자기 성질이 주관하고 있고, 자기 욕심이 주관하고 있고, 사기의 지식이 주관하고  있고, 자기의 가족이 주관하고 있고, 친구가 주관하고 있고 뭐 저를 신앙 생활  못하게 주관하고 있는 자가 열도 스물도 넘으니까 그런 것들이 다 상관없이 해도  괜찮다 하는 그런 신앙 생활하지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이 나를 주관하는  자만 이깁니다. 주님이 나를 주관하는 자만 이깁니다. 진리가 나를 주관하는 자만  이깁니다. 주님의 피가 나를 주과하는 자만 이깁니다. 그 외는 다 헛일입니다.

암만 많아 봤자!  노아 때에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여덟 식구뿐인 줄 압니까? 많았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뭐 지금보다 많았지 적지는 안 했을 것입니다. 왜?  에덴 동산 아담 하와로 인간 창조됨이 얼마되지 안한 때고 또 바벨탑을 쌓다가  다 실패해서 회개시켜 회개하고 난 다음에 얼마 되지 안했기 때문에 그때 거의  다 하나님 믿었습니다. 지금 미국 나라가 다 예수 믿는다 하는 거 모양으로  그렇게 믿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믿은 사람들이 믿었지마는 그 심판을 이기고  시험을 이긴 사람은 여덟 식구뿐이라 그 말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주님만 존귀케 하려는 자, 주님의 피로 값주고 샀기  때문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 계명을 지키는 자가 시험을 이깁니다. 이 계명을  지키지 안하는 자는 벌써 그 계명을 지키지 안한 거게서 심판 받고 정죄 받았기  때문에 뭐 그게 뭐 시험하나 안하나 내나 그 겁니다.

 우리의 구원은 기본구원과 행위구원 있는데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서만 얻어지는 것이 기본구원이요, 기본구원 열 가지를 그 전에 말했는데  그걸 다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건설구원이라고도 하고  행위구원이라고도 하고 성화구원이라고도 하는 것은 우리의 심신이 성화되는  이것이 성화구원인데 이것은 자기의 행동을 통해 가지고서 되는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신앙 생활한 그 공력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뭐 공산주의가  오든지 그 사람이 어떻게 곤고함이 오든지 어떤 질병이 오든지 어떻게 존영함이  오든지. 오든지 말든지 자기 환경에 있는 그런 것들에게는 피동되지 아니하고  다만 구속하신 주님에게만 피동되어 있는 이 사람들에게만 구원이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 공력이 불타면, 공력이라니? 거게는 비유를 집 짓는 걸로  비유했습니다. 자기의 인격 건설, 신앙 건설. 행위 건설, 사상 건설, 지식 건설  이것을 집 짓는 걸로 비유했는데, 그 때 건설해 놓은 것이 환경이 이리 되니까 확  무너지고 저리 되니까 무너지고 다 무너지고. 환경이 어떻든지 환경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주님으로 인한 것,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 지은 것, 세상이 어떻게 와서 훅  찔러도 요동치 안하는 그런 신앙 이것만이 그 공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시험할 터인데, 불로 시험할 때에 그 공로가 타지 안하고 남아  있는 사람은 상을 받고 공로가 타서 없어진 사람은 지옥갑니까? 아니오. 공로가  타서 없어진 사람은 구원은 얻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하늘 나라 가면  존귀가 하나도 없는 하늘나라 가서 영생은 하기야 하지마는 자기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참 주를 믿는 그런 신앙의 공적은 하나도 없는 사람은  하늘나라 가서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은 그런 구원을 얻습니다. 수치스러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 세상이 인정해도 그게 소용이 없습니다. 여게 기름은 기름이 있어야  불빛이 나는 것인데 불빛을 낼 수 있는 기름. 그 불빛은 무슨 불 빛인가?  그 불빛은 천하에 수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대로 사는 하나님의  지식의 빛입니다. 천하 만민이 다 인간 주장대로 하는데 고 사람 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고게 빛이요, 모든 사람은 자기 감정대로 자기 주관대로 사는데고  사람만은 성신의 감동대로 사는 고게 빛이요.

 모든 사람은 죄와 타협하고 불의로 하나님과 대립되는 자리에 사는데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공로를 사죄를 입었으니 죽기까지 해서 사죄를 입혀 주셨으니  다시는 죄 지을수 없다 하는 요 사죄.

 자율대로 주관대로 살므로 멸망 받은 것을 주님이 대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완전 순종의 의를 입혀 주셨으니 의를 입혀 주신 칭의  죽기까지 해서 의를 입혀 줬기 때문에 이제는 내 주관대로 살 수 없다 죽었으면  죽었지 내 주관대로 살 수가 없다, 어떤 고문과 고행을 당할지라도 내 주관대로  나는 하지 못한다, 성신의 감동대로 진리대로 주님의 요구대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분에게. 피동으로만 살 수 있다 하는 이것이 칭의를 벗지 않는 것입니다.

칭의를 벗지 않는 빛.

 하나님을 자기의 주로 모시고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주가 되시고 자기는 성전이 돼서 자기의 언행 심사를  그 분이 주관하셔서 그 분으로 인해서 언행 심사 되는 하나님과 밀접하게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 자기가 되어 있는 사람,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 바울이 증거하는 대로 자기는 이제는  자기는 주의 것이 완전히 되어서 주에게 완전히 속박을 당했고 자기는 자기의  자유함이 하나도 없고 주님이 자기에게 자유하시고 자기는 주님에게 이제  복종하는 이것으로 사는 이것이 화친의 빛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밤중은 어떤 밤중인가? 밤중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밤중이요, 영감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밤중이요. 그리스도의 대속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밤중입니다. 이 세가지를 멸하려는 밤중이요 이 세 가지를 멸하려는  밤중.

 그러기 때문에, 그 때에 그 밤중에 등불은 뭐이냐? 등불은 이 세 가지 빛입니다.

'천하가 다해서 목숨을 다 빼앗아 가도 나는 진리를 버릴수 없다.' 진리를 든  그것이 빛이요.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이 피동은 변할 수  없다,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사죄를 벗을 수 없고 칭의를 벗을 수 없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친목된 화친을 나는 벗을 수 없다.' 이 세 가지가 빛입니다. 이  세 가지가 빛이요, 밤중은 이 세 가지를 멸하려는 것이 밤중의 어두움이요, 그  밤중의 빛은 이 세 가지가 빛인 것입니다.

 오늘도 벌써 이 세 가지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진리보다도 인간의 모든  철언(哲言), 인간들의 그 모든 세상의 유명한 사람들의 말. 인간들의 말.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지식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사람들을 못 봅니다.

 설교를 해도 인간 지식의 유명한 무슨 말 한마디를 내놓으면 그라고 강단을  때리지 하나님의 이 말씀이 우주를 창조한 독자적 권위를 가진 말씀이니까 천하  인간의 말을 똘똘 다 뭉쳐도 고까짓 거는 한 근이라면은 하나님 말씀 한 절수는  억억만 근도 무한히 중량이 크다 하는 요렇게 믿는 사람들이 없다 그 말이요.

 다 속화 됐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밤중이 오면 뭘로 이길 것입니까? 기름 준비  안 하면 안 됩니다. 기름 준비는 평소에 해야 됩니다. 기름 준비가 뭐이요? 기름  준비입니까? 진리 준비가 기름 준비요, 영감 준비가 기름 준비요 주님의 대속  준비가 기름 준비입니다.

 그러면 그 준비를 언제 합니까? 그 준비는 책상 위에 앉아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어떤 고등 학문을 연구해도 안 됩니다. 어떤 높은 데 있어도 안 됩니다.

그 준비는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처소 자기 현실에서만 준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 현실은 제가 만든 것도 아니요 누가 만든 거 아니라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 홀로 우리 현실을 만드십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저 물건을  통해서 나라를 통해서 공산주의를 통해서 뭘 통하든지 우리 현실을 만드시는  이는 주님이시요 다른 것이 만든 거 아닙니다. 우리 현실을 만든 것은 우리를  완전히 구원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우리 현실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눈을  뜨고 보면 우리 현실에는 요 기름 준비하게 하는 현실입니다. 기름을 준비하도록  주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름 준비, 기름 준비는 세 가지 준비인데 진리 준비, 영감 준비  예수님의 대속 준비 이 세 가지 준비인데 이 세 가지는 합해서 하나입니다.

 요 현실은 요 준비를 하도록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현실에는  대인이든지 소인이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유식하든지 무식하든지 현실은 꼭  같습니다. 자기 현실은 반드시 요 둘이 있는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냐 인간들의 여론들의 그 말이냐. 인간의 지식이냐 하나님의 지식이냐? 내가  이 시간에 하나님의 지식을 지식으로 받아 들여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 들이고 이  지식으로 내가 살겠다. 하나님의 지식을 네가 영접하느냐. 인간의 지식을  영접하느냐, 네가 둘 중에 하나 어느 것이냐? 인간의 지식을 영접하는데는  하나님께서 당장에 벌을 주거나 그런 것어 없고, 애로가 없고 인간 지식을  영접하면 쉽고,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할라면 세상이 마구 대항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접하히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어려워도 고 현실에서, '아, 나는 요래 하면 인간의 지식대로 하는 것이요 요래  하면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는 것인데 나는 아무리 애로가 있어도 하나님의  지식대로 한다' 고 현실에서 인간 지식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는  고게서만 진리 준비가 되는 것이지 짜다라 뭐 제가 아이 큐 (IQ)가 좋다 해  가지고서 암기력이 있다 해 가지고 줄줄 외우면 되는 줄 압니까? 암만 외워도,  소용 없습니다. 꼭 현실에서 어느 것이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어디 보자 어느  것이냐? 고게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또, 현실에 요런 사람들이 나에게 감탄을 시키고 조런 사람들이 감탄을 시키고  인간들의 수많은 감탄들이 내 현실에 가득 밀고 들어오고 있고 하나님의 성신의  감화가 내게 접하고 있으니까 성신의 감화를 내가 영접하느냐, 인간들의 모든  감동 이것을 영접하느냐 어느 거냐? 둘을 인간의 감동을 인간의 감정을 내가  영접하지 안할라 하면은 당장 박해가 있고 애로가 있고, 하나님의 영감은 영접 안  해도 현재에는 뭐 별로이 어려움이 없고 이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십자가 지기가  싫어서 다 인간의 그 감동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고럴 때에 아무리 어려워도 내 양심 안에 성령님께서 감화 감동시켜 주는 요  감동을 소멸하지 안하고 요 감동대로 요대로 하겠다. 영감을 그때 영접할 때  영감이 제 영감이 되는 것이지 평소에 영감을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건 진실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세상은 '야, 네가 자꾸 고집을 하고 요게서 뭐 사람이그렇게 살  수가 없는데 그만 성경의 그 말씀에 조금 위반돼서 이거 위반이 좀 돼서 좀 죄는  뭐이 죄냐? 하나님의 말씀에 비뚤어진 게 죄입니다. 삐뚤어진 게 죄요.-약간  비뚤어져도 이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고 다 평온해질 터인데, 요렇게 요때  조금 양보를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네가 하나님 말씀에 비뚤어져도 요 일을  요렇게 하고 나면은 뒤가 원만할 터이니까 그라고 나서 이제 잘 믿으면 안  되느냐? 그라고 나서 예수 잘 믿으면 안 되느냐?' 요렇게 꼬우는 것이 마귀의  꼬임입니다.

 고럴 때에 '안 된다.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나에게 그 형벌을 대신 하셔 가지고  나를 죄를 벗겨서 사죄를 주셨는데 내가 살기 위해서 뭐 좀 살기 곤란하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이 사죄를 벗을 수 있나? 안 된다 나는 다시는 죄를 입을 수가  없다, 고 집에서 고게서 죄를 입을 수 없다. 죄를 입으면 평안하니 죄를 입고 이제  요것만 요 시간만 고래 해라' '안된다'고 시간에 죄를 입지 안하고 사죄를 벗지  안하고 사는 거기에서 사죄가 준비되는 것입니다. 딴 데는 준비 안 됩니다.

 '이제는 네가 이제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안했느냐? 했으니까 이번만 네가  사장의 말을 들으라. 이번만 상관의 말을 들으라. 이번만 친구의 말을 들으라.

이번만 전주의 말을 들으라. 이번만 어떻게 해라 이번만 네 사업이 지금  휘떡거리고 있으니까 이번만 이제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말고 이제 좀 이  피조물들에게 요번만 시키는 대로 한번 해라. 한번 해라! 인간 시키는 대로 하면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안 되고 둘 다 인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든지.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는고 둘이 일치될 때 있습니다. 둘이 일치될 때 있어. 인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도 되고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인간 시키는 것이 되고, 아 둘이 하나 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 때는  우리가 놀고 삽니다. 그 때는 뭐 어려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나, 가다가는 인간 시키는 대로 할라 하면은 하나님 시키는 걸 거절하고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할라 하면 인간 시키는 걸 거절할 때 요 둘이 있을 때 그  때가 애로입니다. 고게 십자가입니다. 고럴 때에 모든 인간과 피조물 시키는 거,  피조물, 돈이 시킬 때도 있고 사람이 시킬 때도 있고 애정이 시킬 때도 있고  가족이 시킬 때도 있고 권세가 시킬 때도 있고 협박과 위협이 시킬 때도 있고 이  세상이 세상 시키는 대로 하라.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할라 하면 이걸 못하면  박해를 당할 거고, '박해를 당해도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요것을 버릴 수 없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대행하셔 가지고 칭의를 줬는데 내가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피동으로 연결시켜 놓은 이 연결 내가 끊을 수 있나? 안 된다. 내야 뭐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다 절단 나도 주님에게 피동되는 의에 서서 나는 끝을  마치지 나는 살기 위해서 나는 의를 저버릴 수 없다.' 요 현실에서 요라는 데에서  의가 채워집니다.

 기름을 담아라. 의를 자꾸 저축해라. 고 현실에서 의도 저축하고 사죄도  저축하고 진리도 저축하고 영감도 저축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이나를 주관하시도록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나는 그에게 피동 되어서 하나님의 주관대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주관대로 하나님을 지존자로 모시고 그 분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요 믿음으로 발라고 하면 이세상 일이 낭패되고 세상 일부터 할라  하면은 주님이 떠나 버리고 주님을 내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맡기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인정하고 믿고 맡기는 요것이 요동치 안할라고 하면 모든 일이  낭파될 때에 고때 낭파되어도 주심은 잊을 수 없는 것 주님이 나를 주관하는  것을 변개할 수 없는 것. 주님 사모를 버릴 수 없는 것 주님을 내 마음 지극히  높은 보좌 위에 모시고 주님이 나를 두고 주님은 나의 왕이시요 나는 그에게  속한 자라, 나는 그의 전이라. 이거냐 저거냐 뚜렷합니다. 이거냐 저거냐 할 때 그  때에 이것을 버리고 영접해야 영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에는 반드시 세 가지가 다 등장 됩니다. 진리도 등장되고 영감도  등장되고 예수님의 대속도 등장되고 이 세 가지가 등장 되니까 이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영접하고 이것을 버렸으니까 이 세 가지가 내 심령에 찼고 내 마음과  내 고기덩어리에 기능 주머니에 찼다 말이오 내 마음과 고기 덩어리의 기능  주머니에 기능 주머니에 찼어. 기능 주머니에 기능이 그릇에 찼어. 기름을 담았어.

진리와 영감과 십자가의 대속의 이 능력이 내 심령 속에 찼고 또고 다음 현실에  찼고, 자꾸 채우고 채우고 하니까 내 심신의 기능에 가뜩 찼습니다. 가뜩 찼으니까  밤중에도 뭐 그 불 가지고 그 기름 가지고 커면 등불 켜지 안 켜질 거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밤중 밤중이 됐는데 가득히 찼으니까 내 안에 능력이 찼으니까 그  능력 가지고 온 세상이 불법으로 나와도 진리, 온 세상이 인간 주관대로 나가도  영감은 세상이 죄, 불의, 하나님과 대립으로 나와도 고게서 사죄 칭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 요것으로 견디는 사람, 요것으로 이기는 사람 그 사람이라야 등불  들고 신랑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임금 온다는 말은 마귀가 세상을  점령했기 때문에 첫째 아담을 이겨서 세상을 점령했기 때문에 세상은 마귀  것이라! 우주는 마귀 것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전해 가지고 예수님이  이겨서 이제는 마귀가 주장하는 일 못 합니다. 불택자는 주관하지마는 택자는,  주관하지 못합니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오든지 말든지  저야 내게 대해서 십자가에 못을 박든지 창으로 찌르든지 말든지 저 할 일은  저하고 저는 제 마음대로 하고 나 할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거와 그 계명을  어떻게 준수하는 것을 저희에게 보일 것뿐이다. 나 할 거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 지키는 것뿐이다.'  우리도 둘입니다.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만 나는 바라보고 주님만 위주 중심으로,  주의 명령대로 복종하는 요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오늘 공과도 그것이 아마  공부일 것입니다.

 그런고로 거짓되지 맙시다. 현실에 요 세 가지, 왼쪽 거냐, 오른쪽 것이냐?  마귀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냐? 요 세 가지 요것이 뭐이 되느냐? 요것을  시비해서 판명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벌써 죽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아무  감각이 없는 사람이오. 요 세 가지를 똑똑히 찾아 가지고 요 세 가지 시비를 하는  요것이 우리의 대내전이요, 우리 안에 있는 전쟁이 있고 밖에 있는 전쟁이  있으니까 내안에서 대내전을 해 가지고서 대내전을 승리하고 나면 이제는 내  밖에 있는 것으로 더불어 싸워서 기어코 나는 이 세 가지 주님의 이 세 가지를  나는 지키고 보수하고 이것으로서 끝을 마치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를 자기가 잡고 이 세 가지 때문에 세상에서 목을 베였든지 불에  태웠든지 이 세 가지 때문에 세상에서 끝났으면 그 사람의 심신 영 전부는 이 세  가지를 지키는 자로 끝났기 때문에 완전 승리입시다. 따라 합시다  완전 승리! 완전 승리! 완전 승리! 순교!! 순교!! 순교!! 순생!  현실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취하고 이 세상이 요구하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세 가지 취하기 위해서 고난당하는 그것이 우리가 순생입니다. 순생. 죽음으로  산다 말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깨어 삽시다. 신앙은 모험이 아닙니다. 신앙은 모험이 아니요, 요행이 아니요,  신앙은 철두철미한 인간 과학입니다. 진실했으면 됩니다. 뭐 거짓부리 이래  가지고 얼렁뚱땅 해 가지고 되어 지는 거 아니요. 요행으로 되는 거 아닙니다.

 이렇게 신앙 지키면 죽을 줄 알아도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자는  찾아서 살고 살기 위해서 주를 버린 자는 나 죽는다 했습니다. 모든 물질도  그러합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마귀에게 꼬이지 말아야 됩니다. 당신이 지은  세계에 당신 위하는데 왜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위해 주지 안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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