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준비


선지자선교회 1980년 8월 17일 주후

 

본문: 마태복음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날과 그 시를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신랑되신 주님께서 오셔서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거기 신랑은 우리  주가 되신 하나님을 가르침이고 신부는 곧 보이는 교회를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이 부부가 원형이고 하나님과 교회가 그 모양으로 비유해서  모형되는 기 아니고 하나님과 교회는 원형이고 하나님과 교회와의 그 관계를  인간부부라는 이 제도를 가지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부는 유별한 것은 특별히  동거동락동행 동사하는 것이며 특별히 또 유별한 것은 거기서 자녀를 후손을  놓은 것입니다. 또 하나 유별한 것은 부부가 되면 아내의 그 잘잘못도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좋은 것도 나쁜것도 다 그 남편의 것과 같이 남편에게 책임이  지위지는 것이고 또 아내도 그 남편에게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잘된 것이나  못된 것이나 그런 것을 다 자기 것같이 책임지게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신 이 구속을 인간 부부의 비유로 보이신  것입니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결합이 되면 그 사람의 수많은  죄도 수많은 가난도 수많은 허물도 수많은 책임도 다 하나님이 지시게 되고  하나님의 그 온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무한하고 충만한 그것도 죄인들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면으로 하나님과 교회가 이런 유별한 관계있는 그것을  성경으로도 가르쳐 주셨고 또 형식계시로는 인간의 부부제도로 인간이 모르는 그  사실을 형식으로 가르쳐 주신 그 형식으로 계시되어 알게 해 주신 것이 인간  부부인 것입니다.

게 여게 신랑이 어느 날 어느 시에 올는지 너희가 알지 못한다 하는 그 시일을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구름타고 재림하시는 그 시일도 이 안에 포함이  된것이지만은 그뿐만이 아니고 그것보다도 오전에 말씀하신대로 사람이  부분적으로 어떤 영감과 진리대로 행했든지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이 있어서 쉽게  행할 수 있는 그런 준비하는 기간이 있어서 그 면을 영감대로 진리대로 실행을  하면 차차 차차 그 영감과 진리대로 실행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고 어렵게  만듭니다. 어렵게 만들어서 방해가 차차 많이 있어도 그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고  마지막에는 자기의 전부가 다 깨어져도 진리와 영감대로 행하여 자기의 몸이나  생명이나 소유나 명예나 지위나 사업이나 가정이나 무엇이든지 그것보다  하나님과 진리를 더 귀중히 여겨 이 모든 것이 다 절단나도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진리를 모신 진리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이 마지막 절정에서 비로서 그 부분적으로 자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됐고 진리의  사람이 됐고 하나님과 진리는 그의 하나님 그의 진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변화 받는 것이요 진리로 변화 받는 것으로 이것이  성화입니다.

게 신라 이 어느 때 올는지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한다 하는 이 말씀은 네가 부분적 성화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에 그 절정이 되는 마지막으로 판결이 나는 종결을 짓는 그  종결시기 판결시기 그 절정시기가 언젠지 모른다 하는 말입니다. 언젠지 모른다.

자기는 무심하게 있다가 그면에 그런 어려움을 닥치면 그만 하나님도 진리도  배반해 버리고 마는 그 일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날과 그시는 알지 못한다.

이 말은 밤중이 언젠런지 모른다. 너를 시험하는 절정기가 언젠런지 모른다.

너를 시험하는 네가 판결을 받는 그 시일이 언제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너를  인정을 하시느냐 네가 하나님에게 부인을 받느냐 결정하는 그 결정시기가 언젠지  네가 성신의 인을 받느냐 마귀의 인을 받느냐 네가 이제까지의 살아 나왔던  생애가 전면적도 되지만은 부분적인 그 면이 많아 가지고 마지막에는 전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분적인 면이라도 네가 귀신의 인을 받는지 하나님의  인을 받는지 그러면 하나님의 인을 맞으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고 귀신의  인을 맞으면 귀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네가 여러모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매 하늘나라는 얻어논 것이고 하늘나라의 그 영광이 어찌되며 하늘나라의  실력이 어찌되며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어찌되며 만물과 자기와의 관계가  어찌되는지. 그것이 판정될 날이 어느 시일인지 모른다. 판정될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예수님 믿는다고 여러 수 억만명이 우굴우굴 하면서 이렇게 믿는데  개인적으로는 개인종말시간 개인적으로 시험하는 그 시험시간 혹은 전체로  시험시간 지역적으로 시험시간 신사참배 같은 그런거는 지역적으로 시험하는 그  시기요. 6.25같은 것도 지역적으로 시험하는 시기요 개인 가정에서 개인에게서  이렇게 시험이 베풀어지는 그 시기가 너희들은 언제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설마  아직까지 입학 시험 때야 몇 달 남았겠지 하고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신문에  광고 나오기를 며칟날 한 사오일 지내면 시험날짜가 됐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오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 안하고 있었는데 입학 시험 날짜가 닥치면 준비  없으니까 저는 낙제해. 떨어지는 거는 정한 이치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시험하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라도 그 결정이 지워지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진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된다는 그 결정이 지워지는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모르니 너는 뒤로 미루지 말고 그날 그날 준비할 기름을  준비해서 그 시기가 닥치면 당황하지 아니하고 기쁘고 즐거운 그 담대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와 진리를 영접하는 주를 모시고 진리대로 그 현실을 북북  통과하는 그런 자가 되도록 평소에 준비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준비의 본성으로 되어있는 기독교입니다. 언제든지 기독교는  준비적이지 임시적으로 이외에 갑자기 그런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준비하도록 경고하시고 예고하시고 교훈하시고 명령하시고 또 자주 깨우치시고  이래서 준비한자들은 승리를 하게 하시고 준비하지 아니한 게을한 자가 교만한  자가 뭐 준비할 것 없이 그때 임시조처해도 나는 누구보다도 민첩하고 실력있기  때문에 된다고 이렇게 준비 방편을 쓰지 아니하고 응급 방편으로 당장에 이  방편으로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서는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꼭 준비여야 합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기독자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준비할 수 있는 지식도 주시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  충분한 준비를 하게 하시고 아무리 못나도 준비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러기에 그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역사는 구비하고 능력있기 때문에  아무리 못나도 하나님께서 준비하라고 하시는 대로 딱딱 준비한 자는 승리로  통과하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고 이렇게 준비하지 아니하고 자기는 어떠한  위대한 자 어떠한 그 실력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준비하지 안 한자는 천이면  천이면 천 만이면 만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낙제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구원은 인간의 힘을 되는 기 아니고 하나님의 그  절대의 능력으로만 이루어 나가는 구원인데 이 구원을 인간이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초자연의 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인도하시고 협조하시고  이렇게 준비를 해 가지고 합격이 되도록 밤중에 신랑을 맞이하도록 승리를  이루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은 인간의 실력의  억억만해도 더 됩니다. 이런데 못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의 준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그가 인식하고 준비할라고 하니 아무리 인간이 모지래봤자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크시기 때문에 준비에 넉넉합니다. 그러나 제가 잘났다고 이 준비에  힘쓰지 아니하고 저에게 있는 기존의 인간 실력가지고 된다고 생각하는 자는  인간 실력에 억억만배도 더 되는 무한의 능력의 도우심의 준비라야 승리할 것이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인간 실력 그것 의지하고 이것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교만한자는 제가 준비해 논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안한 제 실력  그것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그럴 때에 다 절단이 납니다. 마치 기름  없으면 불이 켜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과 진리의 도우심의 능력이 아니면 그  절정기에 죄악의 절정기 악령의 절정기 미혹의 절정기 혼돈의 절정기 이 밤중을  만났을 때에 옳은 것을 찾아 빛을 나타낼 수가 없고 옳은데 소속한 행위에  승리의 빛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다 패전합니다.

그런고로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예수님 안에서는 못난 사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많고 잘난 사람으로 승리한 사람들의 수는 극히 적습니다. 없는 것은  아니지만은 적습니다. 수가 극히 작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데 있는가  세상에 모든 것이 구비한 자들은 교만해서 그것 가지고 되리라 생각하고 떨면서  하나님이 미리 준비케 하시는 이 준비에 힘쓰지 아니했기 때문에 막상 그 현실을  척 당하고 보니까 전부 꽝꽝 다 넘어집니다. 나는 겁쟁이 이다. 나는 아픈 것을  견디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무지해서 구별성이 심히 유약하다. 이러니 이걸  깨닫고 평소부터 구별의 실력을 갖출려고 참고 견디는 실력을 갖출려고 아픈  것을 견디는 실력을 갖출려고 위협과 공포를 줄때에 이 담대의 실력을 갖출려고  모든 면으로 현실 현실에서 이 실력을 갖출려고 이렇게 노력한 사람들은 그때에  애쓴 것 만치 어떤 사람은 꽝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발발 떨면서 그때에 그  밤중을 통과하고 발발 떨며 통과하는 사람은 등불은 켰지만은 등불이  가물가물하는 것입니다. 꺼질라고 가물가물하는 것이요. 어떤 사람은 밤중에  기쁘고 즐거움으로 통과합니다. 기쁘고 즐겁고 장기간으로 고문과 고행을 하는  그 형벌에서도 조금도 아픈감에 눌리지 아니하고 그 아픈 것이 기쁨을 어떻게도  하지 못하고 눈을 빼서 다 드리 드리하이 달아놔도 그 아픔으로 인해서 그  마음이 고통스러워지거나 슬퍼지거나 약해지거나 하지 아니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담대하고 그 입에서와 행동에서는 진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그 완전의 피조물을 초월한 무한의 신격이 그 인격성을  통해서 나타나고 이래서 아주 그 밤중에 등불이 환해서 그 사실을 그 국내에서도  그 등불을 보게되고 세계가 그 등불을 보게되고 역사의 아벨의 등불같은 등불은  역사에 보고있습니다. 베드로라든지 사도라든지 그런 분들 다니엘이라 사드락  메삭 아벳노고와 같은 그런 분들이 밤중에 등불든 그 등불 빛은 우리에게도  비추어져서 자꾸자꾸 우리가 무릎을 꿇고 현실을 명상하고 기도할 때에 다니엘의  그 밝은 빛이 우리 심령을 비추어줘서 담대와 평강과 욕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약한 자는 도리어 강하고 강한 자는 약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러기에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했습니다. 왜 그는 약한 것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고 자기에게는 약한 것 밖에는 보배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으로 강해지더라.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평소에 신앙생활 할 때에 자기의 강한 점을 찾아 가지고 나는 이  만큼 강하다 강한 것을 다른 사람한테 자랑하지 안했고 자기는 약한 점을 찾아서  약한 줄을 아는 그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약한 줄 아는 그 마음이  강해질 때에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바라보고 더 조심하고 더 준비하니까  결과적으로는 강해졌기 때문에 강한 것을 찾아서 자랑할 때에는 판판히 그  결과가 패전이고 약하여 떨면서 울면서 부르짖어 준비한 그 결말은 다 승리라는  것을 그는 신앙체험과 경험에서 깨닫고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왜 내가 약할  때에 강하여 졌더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합니다. 오늘까지 예수님 믿는다고 중얼중얼  믿지마는 무슨 일이 전체적으로 우리 세계의 교인들에게도 시험이 올란지 마지막  종말 시간이 올란지 모릅니다. 다니엘서 8장 10장 거기 보면은 세상 종말  12장에도 보면은 매일 드리는 제사를 다 끝난다 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매일 드리는 제사는 성경보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자유로  섬기는 이런 일이 딱 금해 집니다. 마귀의 세력을 강하게 해 가지고 성도들이  매일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해지도록 또  성도들과 이 짐승들과 그들은 짐승이요 이는 하나님의 성도들인데 성도와  짐승들과 그들은 짐승이요 이는 하나님의 성도들인데 성도와 짐승과 둘이 싸움을  붙여 가지고 이 짐승이 성도들을 다 삼키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문뜩  문뜩 일어나는 이럴때에 기독자의 외식자 껍데기가 다 그때에 나타납니다.

그때에 예수 믿는 자로서 자기 믿고 의지하고 준비하지 안한 자 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그것만 욕심내 가지고 거기만 몰두하고 거기만 주력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거기만 전심전력 기울려 찾이할라고 애썼지 이 기름 준비하지  아니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이 시험이 올때에 그때에 두 말할 것 없이 제가  하나님도 배반하고 진리도 배반하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나를 이겼고 나는 세상에게 졌습니다.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이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2장에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부자야 탐심을 물리치라. 네가  세상에서 저 형제에게 있는 정권을 내가 앗아야 되겠다. 또 내 정권을 누가 앗아  갈려고 하지 않는가 저 잘되는 사업을 내가 가로 취해야 되겠다. 내 잘 되는  사업을 다른 사람이 가로 취할려고 지금 도사리고 있지 않는가 이래서 부산의 제  일위를 내가 가졌는데 지위적으로 권위적으로 일위를 가졌는데 혹은 경제적으로  일위를 가졌는데 명예적으로 일위를 가졌는데 사업적으로 일위를 가졌는데  주택적으로 일위를 가졌는데 다른 사람이 일위를 가질려고 해서 일위를 뺏겨  버리고 내가 이위를 되고 이위가 빼뜰아서 일위가 되고 이렇게 이런 것만  욕심내는 것만 욕심내는 것이 탐심입니다. 없어질 땅에 것을 탐하는 이 탐심을  물리치고 사람의 사는 것은 세상 것이 넉넉한 그 사람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진리로 어떻게 부유해지며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얼마나 부유해지는가 이것이 사람의 살이요 잘 사는 것은 죄 짓지 않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고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호통치고  그것에게 꺽어지지 아니하고 승리자로 사는 것이 이것이 잘 사는 것이지 밥 먹고  죽고, 고기 먹고 죽고, 제하고 싶은 대로 함으로 인해서 죽어지는 그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사는 것은 소유에 넉넉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사는 것은 소유에 넉넉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땅에 것을 보고 살아 좀  많아지니까 또 곡간을 헐고 하 내가 계장이 됐으면 좋겠다. 계장되고 나니까  담을 헐어서 내가 과장이 됐으면 좋겠다. 과장 되니까 담을 헐어 내가 국장이  됐으면 좋겠다. 국장 되니까 내가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담을 헐어서 시장이  되고 내가 대통령이 한번 됐으면 좋겠다. 대통령 되고 나니까 내가 그 국토를  넓혀서 강대국을 점령해 가지고 강대국에 정권자가 되면 좋겠다. 이렇게  물질로도 나는 백만원 자본만 있으면 그저 의식주만 하면 되겠다. 되니까 천  만원 일억 십억 백억 일조 이렇게 곡간을 헐고 더 넓게 짓고 아무리 네가 모든  면으로 크고 크고 해도 네 영혼을 부르는 그 시간에는 그거는 다 내놓고 가야  된다. 그거는 네가 아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그것 가지고  어쩌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만물의 영장으로 사람답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이렇게 의롭게 거룩하게 사는 일을 연습하는 데에  이용하라고 그것을 줬지 그것이 제것으로 준 것이 아닌데 이용할 줄을 모르고  그거 제건 줄 알고 다른 사람 이용할 것도 이용도 못하구로 뺏들어 가지고  수북하게 재 놓고 나는 이것 많으니까 부자다 하고서 어깨를 부리는 그자 오늘밤  오라 하니까 그것 다 두고 가야 합니다.

이러니까 어리석은 부자야 네가 세상 것으로 부요한 줄 알고 하나님으로 부요할  줄 모르는 자가 이와 같은 자들이다라고 주님께서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 현실에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수입이 아닙니다. 그것이 높아지는 것이 우리의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입은 현실에서 내가 죄를 이기느냐 죄에게 지느냐 내가 의를 뺏기느냐 의를  가지느냐 내가 진리를 버리느냐 진리와 함께 하느냐 하나님을 배반하느냐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하느냐 이것이 우리의 승패입니다. 승리요 패전입니다.

이것이 수입이요 손해입니다. 우리의 이해는 하나님과 진리에 있습니다. 우리의  승패도 하나님과 진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올라가도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과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에서 한 진리를 뺏겼으면 자기는 떨어졌습니다. 한 진리를  취했으면 자기는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를 어데서 모실 수 있느냐  성경읽고 기도하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는 차비를 차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모실라고  준비를 갖춘 것이요 하나님과 진리는 언제 모시고 언제 배반하게 되느냐 자기가  현실을 탁 닥쳤을 때에 그때에 그 현실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시하시는 나에게  명령하시는 나에게 주시는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요 현실에서 내가  행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고때에 내가 돈 중심, 세상권세나  지위나 무슨 내나 그런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지시하시는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만났고 진리를 찾았습니다. 거름을 만났습니다.

그때에 내가 만났지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모신 그 마음을  가졌지만은 그 현실이 이렇게 저렇게 너무 복잡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배워 가지고 알락 거리면서 그리하면 나 죽는다고 지금  야단칠 때도 있고 이 정서에 대한 난제도 있고 너무 복잡하고 분주한 난제도  있고 또 모든 소유가 절단나는 난제도 있고 여러 가지로 공포와 압력과 탄합과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고 이래서 모신 주님을 깨달은 진리를 행하지 못하고  그때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나 때문에 나 안 깨질라고 내게 대한 정 내게  대한 관련 나와 관련된 그것 때문에 나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때문에 그  현실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인 줄 안 진리를 배반을 하고 하나님을 미안하지  마는서도 하나님을 등지고 고 때에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나와  정을 붙인 모든 정서들이 요구하는 대로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고대로 딱 행할  때에 암만 내가 원치 아니하고 행하고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해도 고 절정 고게서 하나님은 나에게 완전히 배척을 당했습니다. 진리는  나에게 완전히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럴때에 내가 하나님과 진리를 깨닫고 고대로 행할라고 하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꾸 이것을 권유해서 그리 하지 할라고 하는데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할라고 하니까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섭섭해서 다 돌아갑니다.

이것도 마음이 아픕니다. 또 그것만이 아니고 깨달은 하나님과 진리대로 (저  어린 아이 안고 있는 분 오늘 와 졸고있어 자꾸 아까 어린애 데리고 있을 때  어린아이 우니까 짜증을 지겼다 말이요 그 감사 한 줄 모르고 짐인줄 알고  그랬으면 고 마귀가 안 들어가지 고 회개해요. 네) 게 이만해도 어려운데 이걸 겨우 통과하고 나니까 마지막에는 사업이 흔들흔들  것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요. 깨달은 요대로 할라하면은 사업에 이 허가가 취소가  됩니다. 내 요구대로 안하면 안 됩니다.

또 그 사업에 지금 이 흔들거리니까 이 하나님과 진리에 위반되는 말을 해야  되겠고 방편을 써야 되겠고 교제를 이제까지 평상 해 논 업체인데 이제 내가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지 아니하고 요거로 살라하면 요런 현실을 딱 만들었다  말이요 하나님이 요렇게 만들어 놨어 이러니까 다를 때에는 하나님과 진리대로  행하여 그 사업을 성공을 해놨는데 지금은 이상한 현실이 딱 되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대로 살라 하면은 일생동안 해 논  이 사업이 왕창 절단이 나는 요일이 딱 닥쳤다 말이요,  이러니까 일생 내가 그 심신을 기울려 해놓은 것이니까 그내 피덩어리 인데  아깝다 그게요 그러니까 아깝지 만은 내가 이것을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할 수 없다. 이럴때에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고 그 업을 포기하고  통과한 고 통과를 하나님은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진리는 그 사람의  진리가 되어주지 놀며 지나면서 찌게 가지고 욕심 가지고 하나님 하나님 한다고  진리진리 한다고 그의 것이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때에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했으면 고 업체가 자기의 우상입니다. 고 업체가 자기의 우상입니다.

고것이 자기가 만든 무엇이든지 거기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했는데 고것이  자기가 만든 우상입니다. 자 이것도 어려웠지만은 이제는 하나님과 진리를  모시면 배반치 아니하면 내몸에 고문이 옵니다. 내 몸에 고행이 옵니다. 딱  권총놔서 꽝 그려 그만 죽어 버리면 문제가 없겠는데 이걸 살려놓고 고문과  고행을 합니다. 역사에 눈 뺀 것도 있고 노망태로 얼거놓고 기름 부어 가지고  사른 것도 있고 물소 가죽에 여 놓고 말라 죽이는 것도 있고 입안에 다가 폭탄을  넣어 가지고 터 주는 것도 있고 별별 것이 있는데 최고로 어려운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할 수 없는 종전에 있었던 어려움. 모든 어려움의 유가  아니는 제일 어려움에 도달해서도 주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고 주님 모시고 진리 지킨 그 사람이 하나님과 진리와의 제일 밀접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 바로 알고 제일 잘 모신 사람이요 진리의  능력을 바로 알고 제일 진리를 잘 모신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 다음에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진리는 현실 현실에서만 그 진리는 내가 모시는 것이 되고 나는  진리의 것이 되고 하나님을 모신 것이 되고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되고 이래  되지는 것이지 입술로 지식으로 마음으로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아는 것도  결심하는 것도 과거에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도 이것이 다 현재라는 현재에서  하나님 모시고 그뜻대로 진리대로 사는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것으로 된 것  아닙니다. 이래 가지고 결정은 언제 나느냐 하면 현재라는 고 현재에서 결정은  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기름 준비하라 밤중에도 등불들고 있다 그말은  온 세계가 이루어서 다 죄악화 되어지고 마귀화 되어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다  배반해서 깜깜해졌는데 온 세계에 하나님 모신 자가 하나도 없고 진리대로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자기만이 하나님 모시고 진리대로 행하는 요것이  등불 켜 든 것입니다. 이것으로서 신랑을 영접합니다.

 이것으로서 주님은 자기의 주가 되어 자기와 진리와 결합이 되고 자기와  하나님과의 결합이 되는 이것을 가르쳐서 비유한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진리와 결합이 되 가지고 하나님하고 진리하고 나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한  아들을 놓고 또 한아들 놓고 이것이 유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데모데를  말씀하시기를 내 참 아들 디모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아들이요 하나님  아들입니다. 하나님하고 바울하고 둘이 합하여 진리하고 바울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디모데라는 그 성자를 전도해서 인도해서 길러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내 참 아들 디모데라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하나 기억할 것은 기독교는 언제든지 절대적인 논리요 합리요  합법적이요 진리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 아무나따나 얼릉뚱딴해서 되어지는  그런 것 아닙니다. 차각차각 준비 해 가지고 되어지는 합리적 합법적 도입니다.

준비적 도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모험은 용납 안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모험  생활이 아닙니다. 아 되는가 안 되는가 한번 해 보자 하는 모험생활 아니요  그것은 처음 받았을때에 다른 사람 믿음을 가지고 네가 시험해 볼려고 한번 해  봐라. 할 때하는 그것이지 기독교는 자기가 이성비판으로 비판하고 이성보다  밝은 양심으로 비판하고 영감으로 비판해서 이는 틀림없는 길로 인정하고 걸어  나가는 것이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기독자들은 자기의 이성으로 살피는 것  가지고도 발자꾹을 안때놓습니다. 양심으로 살펴가지고도 발자꾹을  안떼놓습니다. 영감으로 영감으로 살펴서 됐다해야 한 자국씩 떼 놓은 것이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준비의 도요 또 기독교는 돌담을 싸는거와 같이 돌 한 개  놓고 고위에 또 돌 한 개 놓고 고위에 또 돌한개 놓고 이렇게 포게는 것이  기독교지. 그러기에 초월의 도지 초절의 도는 아닙니다. 돌 한 개 놓고 그위에  돌 놓지 않고 공중에 뛰워서 돌 놓는 것 아닙니다. 공중에 집 짓는 거와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러기에 꼭 순서적으로 차각차각 밟아서 올라가는 크는  도입니다. 커가는 도이지 커가는 도지. 만드는 것 아니요 만드는 것은 만드는  것은 갑자기 여러 가지를 구비해 갖다가 뜩 조립하면 여러 가지를 구비해 갖다가  뜩 조립하면 됩니다. 조립이 기독교 아닙니다. 조립은 기독교가 아니요 기독교는  성장의 도입니다. 하나씩 둘씩. 자기가 차각 차각 현실에서 성장해 나감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름준비를 해라 현실에서 진리와 내가  결합하고 성령과 네가 결합이 되는 이 결합을 가지라. 보스레기 결합을 가지라  보스라기 결합이 되면은 이 보스라기 결합이 모으면 나중에 태산같은 결합이  된다. 네 현실에서 지극히 작은데 충성된 자는 큰데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데에  의로운 자는 큰데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데에 의로운 자는 큰데도 의롭다.

그러나 ○○○씨 요걸 모르면 안되요. 요걸 알아야 되요. 열심만 내가지고는 다  뻥뻥 떨어집니다. 과거에도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를 여러분들이 사서 보십시오.

역사 만든 그 사람들도 또 허무한 사람들이라. 다 패전자들이라. 그런 것 잘못  만들었어. 보면 다 떠들고 차각차각 알차게 살지 못한 사람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제가 대구에 가가지고 해방직후에 전국 총회가 모였는데  패전자들은 패전자대로 따로 있고 승리자들은 몇사람 안되요. 승리자들에게 속한  사람들은 많았지만은 승리자들은 몇 사람 안 됐소. 승리자들은 보니까 전부 못  났소. 못 났어. 얼굴도 못 났고. 생기기도 더럽게 생겼고. 그 사람들이 다  승리했어. 패전자들은 보니까 그 상을 상 좀 봤는데 좀 제가 나 혼자 혼자  연구한 상이요. 앞면을 보니까 위에는 떡 벌어지고 아래턱은 쭉 빠져서  요래됐어. 고 용감하다 그말이요 옆으로 보면은 위에 보다 턱하고 여가  너릅니다. 뒤쪽지하고 그 사람은 배짱이 있고 끈기있다 그말이요 잘난 사람들  세상은 다 그 사람들이 차지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 패전자요 다 패전자라.

모가지가 가늘가늘하고 못나게 생겨서 이마가 똘 볼거지고 주걱이 똑 볼가지고  못나고 겁쟁이 같이 못난 손양원 목사님 보면 쪼만하이 못났소. 그런 이들도  고런 사람들이 다 승리했습니다.

예 그런고로 우리는 보스래기 순교를 해야 큰 마지막 순교를 합니다. 순생을  하는 자라야 순교를 하지 매일매일 주와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연습. 주님과  진리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연습. 주님과 진리 때문에 힘드는 연습. 주님과 진리  때문에 나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연습. 주님과 진리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연습. 주님과 진리 때문에 나를 욕하고 애매히 반대하는 자에게 대해서  참고 견디는 연습.이 모든 연습을 매일매일 지극히 작은 것 연습해가는 여게서  한 연습을 함으로 그 진리와 나와 하나됐고. 거기서 어려움에도 진리를 모시니까  그 진리는 내안에 계시게 되고 그 어려움에서도 주님 모시니까 그 하나님은 내  하나님 됐고. 이렇게 한 현실 한 현실에서 이런 면으로 세상 것은 물리치고  진리를 취하고 이러니까 일생을 걸어오는 가운데에 걸어오는 생활을 한마디로  논평하면 일생의 생활에 진리는 자기 생활에서 살았고 자기는 죽었고 자기  생활에서 하나님은 세도를 부렸고 자기는 거기서 완전히 부셔졌고 하나님과  진리는 나에게 자유를 위해서 나를 찾이하셨고 나는 찾이했던 세상도 다  내놓았고 세상에서는 못 쓸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것이 되어진. 이것이 기독자의  생애입니다. 이래서 현실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냐 세상 무엇이냐  요것이 둘을 꼭 마주쳐가지고 요기냐 조기냐 이것보다 하나님과 진리냐 하나님과  진리보다 이기냐 어느 것을 크게 여기느냐 어느 것을 중하게 여기느냐 네가 어느  것을 잡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이냐 요것이 우리 현실현실에 없는 현실이  없습니다. 이래서 밤중으로 가르치지 안한 낮에 해가 기울어지는 그림자가  오는데 요런 것은 차차 차차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진리냐 이세상과 세상의  것이냐 하나님이냐 내냐 나보다 하나님이냐 요것이 언제인지 보다 어느 것보다  어느 것이냐 요렇게 되어지는 요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저 마음만 먹고 힘만 쓰면 됩니다.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하나는 고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것 진리는 하나뿐인데 고게 대해서  옳고 바른 하나만 되는 참된 것 고것을 네가 발견하는 것 고걸 네가 깨닫는 것  요것이 제일 중요하고 고 다음에는 고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깨닫는 것은  진리가 깨닫게 해 주시고 바로 행하는 것은 성신의 도우심이 바로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현실에 우리가 조금만 애를 쓰면 됩니다. 애를 쓰면 되는데  애써서 되어지면은 고 다음에는 또 고만치 애쓰면 되어지고 고 다음에도 고 만치  애쓰면 되어지고 고 다음에도 고 만침 애쓰면 되어졌는데 나는 그때 그때 계속  애를 쓰니까 높은 산을 밟아올라 가는 것 같이 별 특별한 힘이 안드리고 자꾸  준비가 됐지 마는서도 벌써 현실 현실에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동안 공간이  빠졌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이렇게 현실 현실에서 우리가 영접하는 것이 종말을 승리하는 성령과 진리를  준비하는 것인데 여러분들 진리는 어떤 것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진리는  모든 존재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라.

인간은 인간이 된 그 위에 배후에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가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지금도 진리가 만물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당신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대주재시오 주권자시오 진리는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신 힘이요 만물을 통치하는 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보스래기지마는 부분적이지만은 우리 현실에서 내가 진리를  취하느냐 하나님을 취하느냐 이 말은 우리말로 하니까 진리를 취한다 하나님을  취한다 진리가 내 것 됐다 하나님이 내 것 됐다 이래 말하는데 실은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진리를 취하느냐 그 말은 내가 진리의 것이 되느냐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느냐 내가 세상과 세상의 것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현실에서 진리와 하나님을 내가 모셔 내가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됐으면  하나님과 진리는 내것이 됐습니다. 내 것이 됐으면 양적으로는 적어도  양적으로는 적어도 하늘과 땅에 있는 영계의 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의 주권자요  주재요 그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내가 잡았습니다. 통치하는  능력을 잡았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공되는 주인공의 주인의 권리를 잡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리주인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대행자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보다 큰 것을 잡는  시간입니다. 우주와 영계의 것이 되지 안하고 우주와 영계를 내 것 삼을 수 있는  우주와 영계의 통치자 주권자 그분에게 소속하여 남은 그 분의 것이 되어 그분은  나를 통해서 그 만큼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것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찾은 그 진리는 우주보다 능력있는 우주를 창조하실 수  있는 우주보다 큰 것입니다. 우주보다 큰 진리입니다. 우주와 진리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언제 모시느냐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을  모십니다. 현실 현실에서 진리를 내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 온 천하에 중량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천하는 진리보다 못합니다.

진리가 일시 동안에 만들 것 엿새동안에 진리가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진리에게 한번 명령했을때에 이 진리가 만들었습니다. 이 진리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진리로 삼느냐 내가 가서 이걸 잡느냐 내 현실에서 우주보다  영계보다 크신 분이 계시고 우주와 영계에 주격자되신 이 진리가 내 현실에 있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곧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버리는 것은 이것이 우주보다 큰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요. 우주와 영계를 지은  진리를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을 통과하는 것은 측량  못 할 무한을 건설하는 것이며 무한을 소유하는 것이며 무한자의 지체가  무한자의 몸이 무한자의 대행자가 내가 되어지는 것이며 여게서 자기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서 배반하고 돈을 잡았든지 권세를 잡았든지 한국을 다  잡고 세계를 다 잡았다 할지라도 저는 잡힌 것입니다. 잡았고 잡은 거 아닙니다.

그거는 완전히 그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종은 상전을 부리지 못합니다. 종은  상전에게 이용됩니다. 저는 세상에서 이용만 되고 세상이 불탈 때 저도 불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현실이라는 것은 두 주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두 주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두 소유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세상이 내 소유가 되느냐 내가 세상의 소유가 되어지느냐 내가  세상의 소유가 되어지느냐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지느냐 이 두 소유가  결정됩니다. 내가 세상은 내 상전이 되고 나는 세상의 것이 되느냐 세상은  자기의 주관 자기의 자존성 주관성 자유성 옛사람 자기 자기중심 자기위주 고기  바로 세상입니다. 고것도 세상입니다. 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실에 내가 세상에게 져서 세상 것의 종이 되어지느냐 그러면  세상으로 소유가 되느냐 세상은 내 상전이고 나는 그의 소유가 되는 세상의  소유가 되어지느냐 내가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되어지느냐 내가 멸망한 이  세상의 소유가 되어지느냐 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서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됐으면 하나님의 피조물은 반드시 내 소유입니다.

소유가 안되고는 안됩니다. 이거는 필연성입니다. (노력이요?) 필연적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평소에 많이 말했기 때문에 알 것입니다.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것이 되면 동시에 그때에 얼른거렸던 세상은 내 소유가 되어집니다.

내가 하나님과 진리의 종이 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나의 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종이 되면 세상은 내 상전이 되고 하나님 나와 원수가  됩니다. 내가 세상의 소유가 되어지면 하나님에게서는 버림을 당해서 멸망을  받는 것이요 나는 세상이 저 마음대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 이용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승리는 현실에서 세상보다 더 크고 세상을 지은 진리 세상의  주인이 되는 하나님. 하나님과 진리를 내가 이 세상에서 내 것을 삼느냐 그에게  속한 이것을 내 것을 삼느냐 그를 배반하고 이것을 내 것 삼았을 때에는 멸망만  받지 이 세상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 배반하고 취한 것을 당신이 주지  않습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자들이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땅은  영원히 있습니다. 지음을 받은 만물들은 그대로 있고 범죄에 이용당한 것만  멸망받고 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현실에 둘이 와서 닥치고 있는데 하나는 피조물이요 하나는  창조주입니다. 창조의 능력입니다. 하나는 피조물이요 하나는 창조의  능력입니다. 요 둘이 닥쳤을 때에 어느 것이냐 것입니다. 어느 것이냐 내가  창조주에게 속하느냐 창조의 능력에 속하느냐 창조의 능력에 속하면 창조의  능력은 나를 통해서 역사하고 내가 피조물에게 속했으면 하나님과는 창조의  능력과는 상관이 없고 그를 배반하고 이 피조물에 속하게 되니까 피조물에게  속했든지 당신 것을 다 빼고 당신 배반한 것만 주 모은 것을 가라서 그 뭉텅이를  죄악의 뭉텅이라 그랍니다. 그것을 범죄한 영이라 그랍니다. 그것을 주 몰아다가  쓸어 넣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지혜의 눈으로 지극히 큰  창조주냐 창조의 능력이냐 피조물이냐 요 둘을 두고서 그 사이에 끼어 내가 어느  것의 종이 되느냐 내가 어느 것의 소유가 되느냐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면  피조물은 내 종이 되야 되고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피조물은 나의 소유가  되야 되고 내가 피조물의 종이 되면 하나님과는 배반이 되야 피조물의 소유가  되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고 요것이 판가름되는 것이니 여기서 우리의  생사 승패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름 준비해라 현실에서 기름준비해서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때에  자기는 등불 들고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 현실에서 온 세상이 달라 들어도 나를 해 할 수 없는 진리로  무장하고 하나님으로 힘을 삼아서 세상을 이기는 거는 하나님과 진리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으로 준비해서 고문과 고행에서도 그 아픔을 아픔에 눌리지 아니하고  아픔을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견딜 수 있는 이길 수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해도 그들을 호령치고 이길 수 있는 사소한 가정에서 어떠한 애로가 있어도  변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영감의 사람으로 넉넉히 기뻐하고 이길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죄악을 다 이기고 마귀를 다 이기고 사건들을 진리와 영감으로 다 이기도  어데서나 하나님처럼 변하지 아니하고 요동치 아니하고 흔들리지 안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리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이 준비를 현실 현실에서 마련한  이것이 슬기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슬기있는 성도요 이것도 등한히 하고 온 천하를 얻어도 저는 미련한  성도입니다. 미련한 성도 어리석은 성도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를 맙시다. 슬기로웁시다. 땅에 있는 복음으로 믿지 마십시오.

믿을라거든 베드로처럼 한번 말씀대로 해 보십시오. 그물을 던져보면 고기 잡힐  때에 자기가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손해 볼 요랑하고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면 될 터인데 평생 말씀은 말씀대로 고 살아보지  아니하니까 그자는 아무리 고양진미가 옆에 있어도 안 먹어 보니까 맛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를 얻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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