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과 새 깨달음

 

1982.  3.  31. 수새

 

본문: 엡 1:9-12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으로 대속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역사로 하나님의 목적하신  대로의 것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이루실 때에 먼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순전한 객관 역사요 그  다음은 객관의 은혜를 받아 그 은혜를 힘입어 주관적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말합니다.

 혹 말하기를 건설구원을 많이 말하다 보면 기본구원이 흐려지기 쉽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통일적인 구원의 실상을 모르는 연고입니다. 언제나  건설구원은 기초인 기본구원 위에 건설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생각지  않으면 건설구원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요 더욱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과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합하여 하나입니다.

 이 건설구원을 이루시는 순서는 자기가 받은 기본구원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로  인하여 건설구원을 이루는 순위로서는 먼저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이것이 제일 순위입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이 이미 받은 것과 들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벌써 자기에게  건설구원의 자본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는 것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깨달음의 역사가  자기에게 없으면 건설구원은 중단된 것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듣고 기억한 것 아는 것 이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은  자본에 지나지 못합니다. 이 자본에다가 새로운 깨달음 이것을 가져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전 있는 은혜와 합하여 움직여질 때에 자기의 새 건설, 새  성화구원, 새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깨달음이 중단된 것은  건설구원의 중단이요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지는 것은 건설구원이 지금도  건설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깨달음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함으로 깨달아지는 것도  있지마는 자기가 기본구원과 이미 자본으로 가지고 있는 이 은혜생환을 실상으로  할 때에, 행동할 때에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깨달음이 없다는  것은 이미 받은 은혜를 힘입어 은혜 생활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시대가 이러하면 그 시대가 자는 시대라는 말이요, 그 교회가 그러하면 그  교회가 자는 교회라는 말이요, 그 개인이 이렇게 새로운 깨달음이 없으면 그는 그  개인의 신앙이 잔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자기의 건설구원이 지금도 건설되어  가고 있는지 중단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9절에,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하는 그 비밀을  알린 것이 이것이 건설구원의 언제나 발단, 냉냉 끄트머리, 송곳으로 말하면 송곳  끝, 또 이런 식물로 말하면 끝의 그 새순 그것을 발단이라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 우리 구원의 발단적인 그 깨달음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뜻,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뜻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신 그분이 기뻐 하셔서 그분의 사랑이, 그분의 뜻이, 그분의 뜻,  그분의 기쁨, 그분의 사랑, 또 그분의 지능 이는 영원 전 자존의 존재인데 여러  종류로 나타나나 그 속은 하나인 단일성 적인 속성들입니다.

 이러기에 우리 구원은 다른 데서는 나오지를 못합니다. 순전히 자존하신 이 한  분 이분에게서 나오는 구원들입니다. 이분에게서 나오는 구원이요 또 이 구원을  이루는 방편이나 순서도 순전히 이 분 혼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자존하시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것인데, 외부적으로 보면 별별 종류의 것과 모양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속성과 그 뜻의 움직임과 일치되는 것도 있고, 일치되는 것도 있고 또 모순된  것도 있고 대립하는 것도 있고 별별 종류의 것이 복잡하게 섞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이것은 선과 악 두 종류가 있다 그렇게 보아서  이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종류 종류마다 각각 다른  개성과 개체로 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원적이다. 열이 있으면 열  가지 근원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가 차차 차차 변해져 나간 그 모두가  다 진화적이다. 진화적이다. 진화론을 근본 진화론이 아니라도 그런 방편적의  진화라 말들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러기에 수많은 것 가운데에 자기에게는 자기  이상의 것이 없다. 자기만이 자기에게는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이라, 내가 제일이다 그렇게들 말하는 사람도 있고 별별 주장과 사상들이  있습니다.

 범신론을 말해서 모든 것이 다 신성격을 가지고 있다. 쌀 하나도 그것도 신이요,  팥 한 낱도 신이요, 사람 하나도 신이요, 짐승 한 마리도 신이요, 모두가 다  신이다. 이래 가지고 범신론을 말해서, 어떤 집에는 개를 만들어서 단 위에 얹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복을 빌고, 어떤 집에는 여우를 만들어 놓고 복을 빌고, 어떤  집에는 구렁이가 저거 집에는 지킴이라 해서 구렁이를 만들어 얹어 놓고 복을  빌고 자기 집에 다른 짐승은 다 죽여도 구렁이, 배암 말이오. 배암보다 큰 것.

구렁이는 오면 어디를 돌아다녀도 복 주는 지킴이라 이래 가지고 해하지  아니하고 참 그를 모시다시피 이렇게 하는 이런 것도 있고 세상에는 별별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하나를 찾아 가도록, 하나를  바라보도록, 하나를 높이도록, 사이비한 것에 대한 지식을 알아서 모든 것을  구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혼자 역사하시는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한 과정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어 각자의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한 자의 기록이라도 그것을 다 알려고 하면 동등된 그 사람의  일생동안 제 마음대로 뛰어 돌아다닌 그 발자취를 다 따라가야 되기 때문에  따라가다 보면 죽을 날 닥쳤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길이 많고 복잡한 세상으로  심히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세상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길이 많은 세상이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같다. 제 주장대로 살고, 제 마음대로 살고, 제 욕심대로 살고, 제  뜻대로 해라. 천상 천하에 내가 제일이다 유아독존을 마지막에 말한 것은 세상이  권태나서 하나의 낙망에, 세상을 미워하는 증오의 그 소산으로 생겨진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이 하나, 유일, 단일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여러 면으로, 여러 모로, 여러 종별로 이용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이것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수많은 뜻을 냈고, 하나님의 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헬 수 없는 수많은 목적들을 내어서 목적과 목적이  싸우고 뜻과 뜻이 싸우고, 해서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나가 점점 숫자가 적어지는  그 종말을 피조물 편에서 계산하고 연구하고 따져 나가니까, 이것보다 이것이  위에 있다, 이것보다 이것이 위에 있다 이렇게 해서 철학에 이데아주의라는 것이  또 생겨진 것입니다.

 이런 것은 다 피조물 편인 껍데기에서 현상을 보고 자기의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기록해 놓은 피조물이 근거가 돼 가지고 피조물 편에서 생각한  지식들입니다.

 이것이 세상 지식이니 이것은 얼핏보면 하나님의 뜻을 어지럽게 유혹을 시켜서  대적하는 것들이다, 이것의 주인공은 마귀인데,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어지럽게 하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들이 다 이렇게 보이나 모든 것이 자존하신  그분 한 분의 사랑, 그 한 분의 자존의 기쁨, 자존의 뜻, 자존의 지능으로 되어진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단일 목적을 향하여 이 범위에서 궁구 할 때에 과연  악령은 하나님의 부리시는 신이라. 하나님이 이용하시는 것들이라. 그것도 어떤  것에 못지 않는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있고 그것 위해서 노력하고 이용을  당하는 것들이라. 이러기에 모순 같으나 실상은 합치된 것들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분담 시켜 하는 것이지 그것이라고, 우리가 선물로 생각하는 것 옳고  그것을 저주 할 수 있는 그런 권리는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천천 만만도 많은 모순모순 모순들이 가득 차 있고 서로  대립 대립의 역사들이 가득 차 있으나 이것이 절대자이신, 완전자이신,  절대자이신, 완전자이신, 자존하신, 유일하신 이 한 분에게서 나온 이 사실을  믿어야 됩니다. 이 한 분에게서 나온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한 분에게서 나온 것이 억억으로도 계수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지마는  이것이 하나를 찾아가고 있고 하나를 이루어 가고 있고 곧 하나의 완성이 되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이냐. 곧 하나님의 소원의 목적 그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근원을 잊어버리고 목적을 잊어버리고 건설 진행 과정인  복잡한 거기에 속해서 그대로의 사람, 그대로의 사상, 그대로의 주장, 이  언행심사의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근원인 자존의 근본을 깨닫고 또 단일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 이 근원에서 목적을 향하여 수많은 종류로 존재하고  나누어지고 합해진, 분합하고 역사하는 이런 과정들을 언제나 유일하신  하나님에게서부터, 비판도 소원도 방편도 노력도 하나인 거기에서부터 시발되어  하나인 목적을 향하여 이런 것들을 진행 건설 과정에서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 자기 구원을 잘 이루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그러면 이 역사라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전체섭리 개별섭리 모든 섭리를 말합니다.

 개미 한 마리가 나는 것, 죽는 것, 움직이는 것, 그의 움직임의 전체를 놓고  사람의 지식으로도 그것을 촬영을 한다고 하면 그의 움직임이 다 거기에  나타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런 것이 안 되겠습니까 그런 모든 움직임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대로 되는 것인데, 그  섭리가 당신의 원하는 그 뜻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뜻에서  나오지 않은 주장이 없고 그 섭리로 인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어리석게 외부만을 보고 복잡하다, 많다. 이래서 범신론을 말도  하고, 다원론도 말을 하고, 유아독존도 말하고, 무책임하게 제 마음대로 떠들어  쌓지마는 성경 밖에 있는 모든 책은 어리석은 뭉텅이입니다. 어리석음의  정물들이오. 어리석음을 다 이렇게 쌓아 놓은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땅 위에는 수많은 지식이 있으나 우리에게 옳고 바른 지식은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주신 신구약 성경 지식, 그 안에 내재적 영감 이외에는 없고,  그러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식에 대립이냐. 아닙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에게로 나온 것입니다. 나오는데 검은 것을 두어 흰 것을 더 희게하고 검은  것이 있으므로 횐 것이 더 희게 되고 더 인식하게 되는 것처럼 이렇게 모순  같으나 합치적인 이런 목적 달성에 이용을 위해서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섭리 아닌 존재도 움직임도 없고 또 그 움직임이 하나님의  원대로의 뜻,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그 뜻대로의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크게 말하면 모든 존재 가운데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저주가 있는데,  저주는 축복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멸망은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지옥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지옥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순종이 구원인데 순종 외의 것은 전체가 다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것이니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것을 위해서 이용되려고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예정을  입어" 이런 순서 저런 순서가 될 때에 그것을 자기 혼자 부담하지 말고, 자기  혼자 부담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 낙망하고, 또 잘된 것이 있을 때에 자기 혼자  거기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고 제가 잘했다 우쭐하고, 낙망했다가 또 우쭐했다가  또 담대했다가 비겁했다가 하는 이것은 그 현실 현실이라는 그 감옥 속에 들어서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과 그 한 분의 근원에서 한 분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이 지극히 영화롭고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도 복잡하고 심히 세밀한  이 사실을 잊어버린 데에서 생겨진 모든 주관적 소산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에게 일반적 평가대로 죄가 되는 것이나 의가 되는 것이나  그 죄를 죄만으로 생각지 말고 의를 의만으로 생각지 말고, 죄나 의나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그분의 모든 자존의 요소들이, 신적 요소, 자존의 요소들이  일차적으로 유일한 목적을 정하시고 이 일을 달성하기 위해 예정도 창조도  섭리도 하시는 것인데, 이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인 것을 깨닫고 그 죄에서  자존하신 하나님 그분과 그분이 목적으로 정하신 그 목적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이것인 것을 깨닫고,  한편은 자존하신 분을 붙들고 한편을 목적을 붙들고 이 둘을 붙들고 자기  현재의 장점이나 단점이나 이것을 거기에 연관 시켜 무슨 필요로 이 사실의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예정되어 섭리되어 있는 것이냐 하는 이것을 바로  파악해서, 이 양극에 여기에 관련시키고 거기에 소속한 그 역사인 것을 깨닫고  거기에서 자기는 합당한 자기로 깨달음도 행동도 가지는 것이 이것이 자기  구원을 바로 이루어 나가게 하는 영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를 의 뿐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의의 그전 존재 순서는 죄였고  의의 그 다음 순서는 또 죄고, 이렇게 죄와 의가 교체되어 나가면서 의로 죄를  깨닫고 죄로 의를 깨닫고, 자기의 약점에서 강점을 깨닫고 강점에서 약점을  깨달아 점점 모든 것으로 인해서 전진하고 향상하고 성장해 가는 이것이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말씀 했습니다.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기업이 되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외부적으로는 우리는 당신의 유일의  것이 됐다 그말입니다.

 당신의 것이,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것이지마는,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것이지마는 당신의 것 중에 최고의 당신의 것이 됐다. 당신의 것 중에 귀중한  것으로써의 제일위로 당신의 것이 됐다 하는 그것을 외부적으로 표시해서 그분의  기업이 됐다 하는 것을 말하고, 내적으로는 그분이 우리 위해서 모든 역사를 하고  계신다. 우리 밖에 수많은 것들이 있지마는 그것들을 우리 위해서 역사 하시고  계신다.

 이 말의 표현이 요한복음 15장에는 포도원 농부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포도원  농부는 포도나무 위해서만 경영하고 연구하고 수고하고 투자하고 하는 것입니다.

왜. 거기에 있는 과일을 소망해서. 여기에 기업이라는 외부는 하나님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여기에다가 전적 기울여서 전공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표현해서 그의 기업이 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가 넘어졌을 때에 실패가 없으신 절대자이신 그분이 나를  위해서, 그 목적의 건설을 위해서 나를 넘어지게 하신 이 사실을 깨닫고 넘어진  데에서 그분이 왜 넘어지게 하셨느냐. 넘어진 데에서 내가 얻을 것이 무엇이며  다시 만들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가 넘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그 소원을, 하나님의 목적을 자기가 깨달아 일치가 되어야 되겠고  일어설 때도 일치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는 낙망도 없고 교만도 없고  작용도 없고 비겁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불변자로 있는  것으로 불변성, 영원성, 완전성 이것이 믿는 신자의 자체와 모든 행동의 정상적인  본질과 본성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이며 수많고 광대한, 광대라 말은 하나가 커지고 커져서  이래 넓어지는 그런 것을 표현할 때에 광대라 이렇게 표현하는데, 우리의 구원은  광대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섭리는 광대한 섭리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조브라운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자기 조브라운 생각, 또 개체, 개 사상, 이런  것들에게 속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파묻혀도 안 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한 분이 지으신 것인데 수없는 것으로 타락했습니다.

수없는 것으로 타락했소. 인생이 타락함으로서의 하나가 수억억만도 넘은  쪼갱이로 갈라져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열 사람이 만나면  열 사람이 각각 다릅니다. 만 사람이 만나면 만 사람이 각각 다릅니다.

 이래서 세상에서는 또 말하기를, 이것은 그 사람들의 개성은 각각 다르다.

이러니까 수없는 개성들이 있는 것은 화단에 울긋불긋 한 각종 화초가 있는  것처럼 이런 저런 모든 개성들이 있어 이것이 있어야 울긋불긋하게 맛이 있고  인간의 미가 있다. 개성을 살리라 또 이것을 주장하는 주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성을 살리는 것은 개성을 내신 분이 개성을 다 죽이기 위해서 개성을  냈고, 개성을 낸 것은 개성은 다 멸해지는 것이니 개성을 다 멸하고, 수많은  개성으로 타락한 자가 단일성인, 단일성인, 단일성인 하나님 한 분의 단일성  유일성을 향하여서 성화 되어 나가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잘못하면 인생이 과정에서 머물고, 과정이라는 그 과정의 함정에, 감옥에 들기  쉽습니다. 과정의 감옥에 들기 쉽습니다. 과정이라는 그 감옥에 갇히기 싫은  사람은 자존하신 이 하나님에게 손을 잡고 하나님의 유일하신 목적인 이 목적에  손을 잡고 양쪽을 거머쥐고 그 중간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에게서 나온 자가 수많은 과정을 통과해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연단해서 수많은 종류의 것들이 있지마는 이 모든 것에 하나도 거기에  물들지 아니하고 그것의 것이 되지 아니하고 그것의 주인공이 되어서 그것을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하신 한 분에게서 나온 한 분의 아들이 되고 또 한  분의 목적인 그 분의 기업이 되어져 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에 결론으로 말하면, 천태만상의 개성을 가졌고 언행심사를  가졌으나 이것이 하나에게서 나온 것이나, 하나에게 뿌리박고 하나에게로  돌아가는 이 단일성,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라는 것은 단일성의 외부적인 역사를 가리켜서 통일을 말합니다. 많은 움직임을  가지지마는 그 움직임이 하나이다 하는 그말입니다. 이 통일의 속에는  단일입니다.

 그런고로 결론적으로는 자기의 개체를 죽여서, 개체를 죽여서, 개성을 죽여서,  사욕을 죽여서, 또 이 모든 자율을, 자유, 자율을 죽여서 한 분 이분에게로 빨리  돌아가라, 빨리 돌아오라 하는 말입니다.

 빨리 이분에게로 우리는 돌아가야 됩니다. 이분으로 향하여 찾아가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 개성도 내 개성도 다 던져라. 이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이요  경험이기 때문에 이 개성도 이것도 다 버릴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수많은 학문을  구경 안 해도, 수많은 학문이 뭐 종류가 천천만 억억도 넘습니다. 사상도  그러합니다. 철학도 그러합니다. 이것을 공부하는 자는 이 모든 이런 것들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도 붙들리지 않는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구경할  때에 아니라는 것을 답하기 위해서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서 거기에도 내가 발을 들여 놓고 그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져서 광문다학의 다지식에, 다원의 다원론, 다사상 범신론 이런  것들을 자기가 알아서 그것이 자기에게 묻어 있으면 그것이 병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자기도 모르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타락과  동시에 속에 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버리고,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니라는 것을 열을 보고 열 가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만 가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억만 가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하나 아는 것보다도  아닌 것을 많이 아는 것도 힘이 됩니다. 아니고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이렇게  하나님께로 소속하고 돌아가는 것이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몰라도 좋습니다. 이게 사탄의 깊은 것들인데, 사탄의 깊은  것들인데 몰라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 한 분 그 분, 존재로는 그분뿐이요, 모든  법칙은 그분의 뜻뿐이요, 모든 목적은 그분의 목적 하나뿐이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섭리 역사를 이루시는데, 이 일을 이루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 모든 사이비한 데에 정확무오한 지식인 신구약 성경  지식을 주셨고, 또 그 안에 우리의 심령을 밝도록 밝게 해 주시기 위해서 성신의  감화의 영감이 있고, 우리 마음 안에도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키기 때문에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희를 옳고 바르고 참 되게 가르쳐  준다.

 그러면 외적으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그 안에는 성신의 감화 감동이요, 그  안에는 나에게 이 모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잘 바로 받아서 들여 그  은혜를 입게 하는 우리 안에 중생시킨 이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니 이만하면  족하다.

 이 하나만 가지면 나머지기는 다 보고, 이것은 틀렸다, 이것은 옳다, 옳은 것  하나를 알아 가지고도 삐뚤어진 것 억억만이라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옳은 것  하나만 알면 삐뚤어진 억억만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름길로 가는  것이고,  삐뚤어진 것을 배워 가지고, 이것도 삐뚤어졌다, 저것도 삐뚤어졌다, 만 가지  삐뚤어진 것을 알려면 만 가지 삐뚤어진 것을 배워 가지고 만 가지 삐뚤어진  것을 아는 그 길이 하나 있고, 하나는 옳은 것 하나뿐인데, 옳은 것 하나만 딱  배워 가지고 나중에 삐뚤어진 것, 삐뚤어진 것이야 천도 만도 넘는다. 너 그것  배우려 하면 거기에 대해 무식하다. 나도 유식하다. 어떻게. 옳은 것 하나만 딱  압니다. 이거 뭐이고. 그것도 삐뚤어졌다. 이것이 뭐이고. 삐뚤어졌다. 억억만을  갖다 대니까, 아이구 삐뚤어졌다. 억억만의 삐뚤어진 것을 다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일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나왔고,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하는 이것이 전존재를  총괄적으로 한 말로 이렇게 결론 지워놓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개성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개성을 버려.

빨리 버리십시오. 제 성질대로 사는 것. 개성, 사욕 버리고 한 분 그분이 있기  때문에 그분을 향해서 어서 어서,  이렇게 복잡한 것은 타락했다가 다시 거기에서 회개해 가지고 본 지위에  을라가는 것과 타락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것이 연단이 있고 없는 것이오.

연단이 있고 없는 것이오. 이것이 다 유식하고 무식한 것, 다 그거 아는 것이라,  나도 안다, 나도 안다, 그거 다 경험해 가지고 다 안다 그말이오. 그런 것은,  그러기에 세상을 우리가 가지는 것은 세상을 버리기 위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지는 것은 내 속에 그 있는 것을 뽑아버리기 위해서,  부인하기 위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계시의 진리 영감 이는 내가 받아 가지고 그의 형상,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그의 아들, 그의 아들이라 말은 그분의 새끼라 그말이오.

이것이 나타나기를 제 이 하나님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신이라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사욕을 버려야 된다는 것, 또 자기의 개성을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의 형상이라 말은 그분의 본질과 본성을 따라 가야 됩니다.

 개성을 살려야 된다는 것은 그것도 내나 마귀가 그렇게 주장하는데, 마귀가  주장하는 것은 개성을 살리라, 개성을 다 죽여서 유일성 단일성으로 어서 달려서  단일성에 귀속해야 된다는 이것을 강조하도록, 이것을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좋은 역사를 하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기쁨으로 감사히 그것을 잘 이용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되지 그것을 적대시하고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들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다 있는 것들입니다. 공산주의도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오른손으로 오른 극을 잡고 왼손으로 목적인 그것을 잡고, 그  사업의 모든 역사의 그 건설과정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정 속에 파묻힌 자들이  다 많은 세상 지식 속에 파묻힌 사람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근원도 잊어버렸고 목적도 잊어버리니까 복잡한 가운데 보니까 새로  또 하나 나왔습니다. 새것이 나와서, 이 세계가 또 있다. 또 새로 나오니, 이  세계가 또 있다. 암만 있어 봤자 그것이 그것인데, 새것이 없는데, 내나 그것이  그것인데, 해 아래는 새것이 없는데, 그것이 그것인데 그것을 있다, 있다 이 일에  따라 다니면서, 나는 둘 구경했다 백 가지를 구경해도 소용없어. 한 가지만 알면  다 돼. 이것만 알면 이거 아니면 이용만 하면 되는 것이라.

 이런데 이 사람들이 이 함정 속에 들었기 때문에 심히 하나님의 도는  어지렵혔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어지럽혔고 복잡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런고로, 내가 어떤 학생을 보고 고려신학대학에 다닌다 하기 때문에 무슨  공부를 하노 이러니까 철학공부를 한대요. 너 참 아주, 뭐하려고 그거 하지. 뭘  알아야 뭐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그래. 제 딴에는 알아야 가르치지 그래. 이제  신학교수 할래. 그 소망을 가진 대요. 교수하려면 어서 전과해라. 네가 어둡기가  깜깜 어두워져 있는데, 철학은 제일 기독교 이단이 제일 많이 나온 구멍인데  그것을 네가 배워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 구원인 줄 알고 그것이 네가 필요한  지식인 줄 알기 때문에 너는 배울 자격이 없다.

 철학을 공부하거든 네 속에, 철학을 낱낱이 공부할 때에 네 속에 이놈 있었다,  이놈 있었다. 철학은 그 철학을 버리기 위해서, 뽑아 버리기 위해서, 그것을 던져  버리기 위해서 잠깐 구경하는 것인데 버리기 위한 것 이것도 버려야 된다는 것  말할 것 없이 옳은 것만 알면 버릴 것은 다 한목 다 버려도 된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요새는 종교 통일이 있어. 나왔습니다, 종교 통일이.

종교 통일, 사상 통일, 지식 통일, 마지막에 말세에는 열 뿔, 열 뿔이, 뿔이라는  것은 힘인데, 열 뿔이라 그말은 열 뿔이 한 짐승에서 나왔어. 모든 땅 위에 있는,  힘이라는 것이 뭐 지식의 힘, 예술의 힘, 과학의 힘, 별별 힘, 뭐 춤추는 힘, 뭐  도적질하는 힘, 모든 힘은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되어지나니 이것을 가리켜서  세상 힘이라 그 뿌럭지는 다 짐승에서 나왔다. 짐승은 세상이라. 이것이  말세입니다.

 그러기에 이 힘이 다 우리가 이용할 힘이요, 이것이 한 분에게서 한 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있다는 이 폭 넓고 이 전체면을 생각해서 그것을 정확한 그  파악을 가지고 올바로 지식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감옥에 파묻히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그만 이 복잡한 데에서 얼떨떨해져 버렸어. 근원도  잊어버리고 목적도 잊어버리고 중간에 이 회오리 바람에 그만 쌓여 가지고  정신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거요.

 이번에 방화사건에 발표하는데 보니까 그 전부가 ○○신학대학 학생이데요.

이것이 뭐이냐.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오. 이것이 뭐입니까. 이것이 참을 찾게 하는  역사입니다. 참을 찾게 하는 역사요. 인생의 바른 길을, 바른 교훈을. 이리 가면  이렇게 삐뚤어진다 이리 가면 어떻다 하는 그런 것을 나타내 보이는 거기에만 볼  것이 아니라 눈을 넓게 봐 가지고 이것은 우리에게, 한국에서 제일 정통이라고 해  가지고 ○○신학은 몇 개나 섰습니까. 지금 몇 개나 됐어. 내가 ○○신학원이라  이랬는데 ○○신학이 신학대학으로 변해지고 ○○신학이 지금 다 신학원으로  이제 하나 나섰는데 그 신학원 하고는, 신학원이라고 새로 시작된 거기에 나는 좀  소망을 둡니다. ○○신학이 신학대학으로 됐을 때에는 참 절망했습니다. 이거 왜  이렇게 될까 이랬는데, 신학원이라는 것이 하나 새로 생겨져서 좀 바라보면서 이  하나님의 뜻이 잘 되어질까 그런 소망을 좀 가집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이런 것이 나는 그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계시라. 일곱 머리 가운데에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은 것,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다 거기에  경배하는데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은 것을 보고 성령의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계시록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안팎에 눈이 없으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우리 목회자  양성원에도 그런 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게 생기기 쉬워. 생기기 쉬운 것은  하나에 딱 속해서 그리 가야 되는데 복잡해지면 결국 그것이 나옵니다. 그것이  뭐이요. 내나 세상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와서, 자꾸 와 가지고, 교회 와 가지고  야단을 지기고, 저 대티에 있는 기도실에도 있더래요. 와 가지고 문을, 이 위에 이  기도실이라 하는데 여기 숨어 앉았는지 모르니까 문 열어 달라고. 아이들이 안  열어 준다고 이러니까, 지금 어른들이 없어 못 열어 준다고. 이러면서 여기에도  와 가지고 어디에 다니냐고. 서부교회 다닌다고 하니까 서부교회 다니면  괜찮다고. 서부교회는 또 인정한 대요. 그 사람들이 우리가 뭣 때문에.

 여기에는 정치와 분리되어 있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습니다. 왜, 만날 때마다  말합니다. 우리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고 있다. 정치가 이 서부교회 안에  가담하지 말아라. 그러면 정치가 깨진다. 서부교회가 정치 안에 들어갈 때에는 또  서부교회가 깨진다. 서로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 분리하고 있다. 상호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상호 보호하고 보수하고 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밀히 구별해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한 분에게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사욕을 가지지 마십시오. 사욕  가진 것만침 그 시간은 저는 죽었고 손해갔습니다. 사욕을 가지지 말고, 자유를  가지지 말고, 개성을 가지지 말고 한 분 그분에게로 시간 시간이 따라 가고 닮아  가고 본받아 가고,  이래 가지고 모든 존재가 다 통일되는데 통일된 속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한 몸  되는 것, 그분은 머리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어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거기에 무슨 개성이 있으며 무슨 사욕이 용납될 것입니까. 그것  만큼은 자기는 속는 생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욕을 달성키 위해서 우리가 노력할 것이 아니라 사욕을 죽이기  위해서, 우리 개성을 이것을 기르기 위해서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자기 개성을  죽여서 유일성에 단일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데 자기 개성이 쑥 부애를 질러 가지고 나오거든 그놈을 그때 죽이라  그말이오. 죽여야 되는데 죽이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이를 갈면서 옹꼰해 가지고  복수하려고. 복수하면 하나님 복수니까 저는 더 죽지 뭐이 되겠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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