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과 신적요소


선지자선교회 1982년 8월 1일 주전

 

본문 : 딤전 4:6-1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지난주는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기 때문에 머리를 잘 선택하라 하는 그런  뜻의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오늘 모두들 '네 머리가 크다 내 머리가 크다, 네  머리가 위대하고 장구하다내 머리가 장구하고 위대하다.' 모든 사람들은 머리  자랑이요, 또 머리에 그 힘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될 때에는 모든 것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의 머리는 다 절단 내  버립니다. 그분에게 속한 것은 보존되나, 그분에게 속하지 않고 머리된 것은  모조리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몰아넣습니다.

 그날이 오늘인지 언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에 조심 있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살까? 우리는 기독교의 구원을 소망하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생 동안 사는 생애가 경건을 연습하는  생활입니다. 경건에 도달하도록 하는 노력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되는 구원입니다. 이는 가치가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댓가될 만한 것이 없어서 은혜로 받는 것이지 가치가 없고 헐해서  은혜로 받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에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당신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구원에는 차차 자라 가는 것이 구원이지 일조일석에 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기본구원은 단번이나 건설구원은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라가야 되지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다.

 또 구원이라는 것은 인적 요소 속에서 신적 요소가 차차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과 하나님이 일체적인 결과를 맺어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기 몸을 주의 몸으로 바꾸는 것이며 또 사망의 힘을 지극히  큰 능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애를 연습해서 숙달해 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자기 몸이 자기의 몸으로 자기 것이  자기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건설구원에는 아무런 것이 없습니다.

 또 인간의 힘은 사망하는 힘뿐입니다. 인간에게는 사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터럭만치도 없습니다. 인간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높든지 강하든지 인간의 힘이라  하는 것은 죽는 힘뿐입니다. 사망의 힘 그것뿐입니다. 다만 생명의 힘은 하나님이  가지신 것인데 사망의 이 힘을 주의 계약에 던짐으로 생명의 힘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대한 연습 인류에게 대한 연습 모든  피조물들에게 대한 연습은 영원무궁토록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된 그  나라의 생애를 연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된 것 만치 그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리스도밖에 있는 것은 마치 노아의 방주밖에 있는 것이 몰사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약밖에 있는 것은 크거나 작거나 전멸됩니다. 이 전멸 가운데서  구원하려고 하는 것이 오늘 성도들의 노력입니다. 자기 구원, 자기에게 가까운  자의 구원, 다음에는 먼 자의 구원, 다음에는 원수의 구원 여기까지를 노력하는  것이 성도의 노력입니다.

 그런고로 경건을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유익이 약간 있지마는 아주 없어지는  끝날이 있다. 그러나 경건 연습은 금생에도 유익하고 영원무궁한 세계에서도  유익하다. 그러기에 경건 연습에 힘써라.

 경건 연습을 하려고 시작한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빠져서 실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 미혹은 경건을 연습하는 이 연습이 세상적 유익의 자료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여기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건은 첫째, 그 요소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하신 주의 것이어야 합니다. 주의  피에 팔린 주의 것, 주의 것이어야 경건의 요소 중에 첫째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구속은 받았지마는 자기는 자리라, 자기 것은 자기 것이라. 이렇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기본구원에는 상관이 없지마는 건설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것부터 바꾸어져야 합니다.

 다음에는 목적이 자기를 목적하는 목적이 아니고 주를 목적하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믿기 전에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고 자기가 어떻게  되기를 원했던 것 같이 이제는 주님이 자기를 통하여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 그  목적이 주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기쁘게 하려던 것이 주님을 기쁘게, 자기 소원  이루려 하던 것이 주님의 소원을 이루게, 자기 일을 달성하려던 것이 주의 일을  달성하게 목적이 완전히 자기와 주님과 바꾸어져야 합니다.

 다음에는 방편입니다. 방편도 인간에게 억억만도 넘는 방편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하나만 되는 이 방편만 써야 됩니다.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방편만 사용해야 됩니다.

 또 한가지는 인간의 힘은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일하기까지의 맞이하는 것이요.

순전히 일은 하나님의 힘 혼자 하는 것입니다. 힘은 순전히 하나님의 힘  하나뿐입니다.

 그 방편이라는 것은 지혜를 말합니다. 지혜도 하나님의 지혜, 힘도 하나님의 힘,  이루어진 결과도 하나님 것들, 완전적인 것, 영원적인 것, 불변적인 것, 이것이  되어진 것이 비로소 건설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이 경건의 동기는 그리스도의 구속이요, 목적은 경건 곧 하나님의  형상이요, 방편은 하나님의 뜻인 법칙이요, 힘은 그리스도의 영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요, 이루어진 결과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연습으로 점점 바꾸어지고 또 성장되고 또 구비되어져 가는  것이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가르쳐 경건을 연습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알아 듣든지 못 알아 듣든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안하고 쉽게 말하라면 껍데기는 사람의 요소요, 알맹이는 하나님의 요소로 능숙해  가도록 숙달돼 가도록 하는 것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일 적은 일 평소의 생애 거기서 경건을 연습해야  됩니다. 아주 쉬운 데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를 연습해야 됩니다. 환하게  알고 있는 내 지식이 바로 알고 있는 그 일에 하나님이 지식으로 사는 이것을  연습해야 됩니다. 이 경건 연습은 자기의 지식으로 자기힘으로 자기의 주관으로  사는 생애를 벗어나서 자기 지식으로도 할 수 있고 자기 힘으로도 할 수 있고 또  자기 목적도 거기까지는 하나님의 목적과 동일하기 때문에 자기 목적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것과 하나님의 것이 다르지 아니하고 같은 그 단계가 지극히 작은  일들이요 쉬운 일들이요 적은 일들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지식과 힘과 소원과 목적과 사상과 모든 속성들이  하나님과 같을 때 그것이 제일 초보입니다. 그때에 같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하든지 자기로 하든지 그는 외모도 같을 것이요 또 이루어진 모든 행위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같은 속에 알맹이는 다릅니다. 알맹이는 인적 요소로 되어  있는 알맹이도 있고 신적 요소로 된 알맹이도 있고 알맹이가 다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인적 요소와 신적 요소, 지적이나, 능력적이나, 사상적이나 속성적이나  그런 것이 하나님과 같은 양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고 아주 적은  사람이 있고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많은 수량을 가진  사람이라 그렇게 평할 수 있겠습니다. 적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미개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미개한 것보다 많은 수량을 거친 것이  좋습니다.마는 두 가지의 그 가치가 동등합니다.

 왜? 아무리 많은 수양과 하나님과 같은 풍부한 인적 요소를 가졌다 할지라도  문제는 인적 요소에 신적 요소로 바꾸어지는 것 그 속에 성장되는 것 그 속에  내재하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 많든지 적든지 모든 인적  요소는 그 형체만 부활하지 속성도 지능도 인적 요소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인적 요소는 사망의 것이요 죄 아래 있는 것이요 불의의 것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그대로 유황불  구렁텅이에 처분됩니다. 다만 그 부활의 형체를 가진 것과 그 형체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인 신적 요소가 부활체의 능력이 되면 그것만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 3장에 유익하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것만이 참되고  영원하지 그 외의 것은 다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육체로 말하면 누구보다도  문벌이 좋고 학벌이 좋고 또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자이요 스승으로서는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이렇게 구비하지마는 이것이 무궁 세계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 이러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을  내가 알고 이 고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가 아버지에게 피동되므로서 당한 모든  그 순서 그 걸음을 나도 주님에게 피동되는 이 모든 순서 걸음 이것만이 부활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죽은 자들 가운에서 부활에 이르러 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적 요소의 자원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 빈약한 사람도 있는  것을 비유해서 어떤 자에게는 닷 냥쭝 어떤 자에게는 두 냥쭝 어떤 자에게는 한  냥쭝으로 비유했습니다. 이것이 풍부하든지 빈약하든지 가치는 꼭같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정평이요 정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으로서 나는 인적 요소가 풍부하고 저는 인적 요소가  빈약하고 이것을 이것만 비교해서 자기는 큰 자로 상대방은 작은 자로, 또 어떤  자는 자기는 작은 자로 풍부한 상대는 큰 자로 여기는 것 이것은 성경  지식대로의 판단이 아니고 인간 지식으로 판단하는 오판입니다.

 물론 풍부하고 빈약한 자가 있습니다.만 인간 문제는 나그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인적 요소의 그 가견적 생활 속에서 신적 요소가 와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인적 요소로 행동하니까 꼭같은 것 같지마는 인적 요소로  행동하는 그 속에 신적 요소가 와 가지고 행동하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지혜 있는 사람의 생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인적 요소로도 가능할 수 있는  거기서부터 인적 요소의 지식이나 능력이나 비판이나 목적이나 둘이 꼭 같아.

 마치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을 향하여 찾아갈 때에 박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관적 지식으로 만 왕의 왕이 나신 왕을 찾아 가고져 하는 그 지식이나  공중에서 별이 인도하는 인도나 둘의 사상이 목적이 방편이 같았기 때문에  동행했습니다. 동행을 했지마는 예루살렘에 척 닥쳤을 때 그때에 둘이  갈라졌습니다. 박사의 가진 기존 지식은 아무래도 만 왕의 왕이 났으면 이 도성  예루살렘에 나시지 안했겠느냐? 그 지식은 그걸 주장하고 별은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고 있어 둘이 분리됐습니다. 둘이 나누어졌습니다.

 나누어져서 박사가 자기 주관대로의 예루살렘으로 향한 거기에서 수많은 무죄한  남아를 죽였고 자기가 찾는 만 왕의 왕이신 구주를 대적하는 원수의 이용물이  되었고 거기에서 찾다가 없으니까 자기 주관과 기존의 지식의 모든 자율을  부인하고 별을 따라가서 베들레헴에 가니 자기가 찾는 그 구주가 자기  상식으로서는 왕궁에 났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말 마구 구유에 강보에 싸여 누인  것을 보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그때에 비로서 자율을 완전히 부인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생각대로 가지 아니하고 성령의 인도대로 남은 자기 집을  찾아가는 걸음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인적 요소와 신적 요소가 일치되는 것이 어떤 사람은  십리면 일치되고 어떤 사람은 백리가 일치되고 이러니까 백리가 일치 되어도 그  사람은 백리끝에 가 가지고 신적 요소를 따르느냐? 인적 요소를 따르느냐?  네 속에는 신적 요소로 그 기능이 되어 있느냐? 인적 요소의 기능이 되어  있느냐? 하는 그것이 그때에 둘로서 구별될 것이고 또 인적 요소가 작은 사람은  한 십리 가다가 인적 요소 신적 요소가 둘이 대립되어 분리되어 거기서 신적  요소로 자기의 기능을 삼든지 인적 요소로 기능을 삼아 아주 유약한 인적  요소지마는 이것 가지고 죽는 날까지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살다가 건설구원을  완전히 멸망 받는 이런 자도 있고, 또 인적 요소가 풍부하여 백리는 동행하다가  그 다음에 서로 하나님의 기능과 자기 기능이 맞설 때에 하나님의 기능을  부인하고 자기 기능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풍부한 기능으로 사니까 사람  보기에는 능력 있는 것 같지마는 그 능력은 전부가 사망의 힘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인간에게는 사망의 힘 외에는 없습니다. 말하는 것도 그 전부 사망의  힘 사망 이룬 것 행동하는 것도 도덕을 주장하는 것도 종교를 주장한 것도 모든  인간들이 말하는 윤리나 모든 것 움직임은 전체가 사망을 이룬 것뿐이지  사망에게 생명의 요소가 섞인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기를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사망의 요소 사망의 기능외에는 없다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둘이 분리되지 안하고 일치되어 있어도 그것은 다 신적  요소와 같은 것뿐이지 신적 요소는 아닙니다. 신적 요소와 같은 것이 인간에게  있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없는 다 뿌리 끊긴 것이요, 정죄 받은 것이요,  저주받은 것이요, 다 죄아래 있는 것이고 죄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단단히 정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는 적은 인적 요소로 죽는 날까지 저 잘난 재미로, 못나도 제  주장으로, 약해도 제 힘으로 인적 요소로 죽는 날까지 계속하는 것, 인적 요소에  풍부함을 가진 자로서 자기 것이 좋다 하여 그것을 의지하여 자기 기능으로 죽는  날까지 계속하다가 망하는 자, 인적 요소가 풍부해 망하는 자나 빈약해 망하는  자나 멸망은 꼭같기 때문에 전체가 도멸하고 멸망이라. 하나님의 기능으로  인간에게 되어진 요소만이 영생이요 구원이지 그 외의 것은 전체가 멸망이라  하는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요. 이것을 오늘에 바꾸어 가져야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경건연습이라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인적 요소가 적은 사람은 쉽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십리도 안가서 주님과 대립이 되니까 일찍 돌아서고 인적 요소에  풍부한 자는 오래 있다가 많은 세월 지나 늦게 갈라지니 늦게 돌아섭니다.

 이러기에 지혜 있는 사람은 인적 요소의 풍부한 것을 가졌으나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지식도 이거는 이래야 되겠다 이래야 되겠다 그러는 네 지식이냐. 암만  많아도 666이라. 성경이 이렇게 하니 이대로 돼. 아무리 내 마음이라도 내  지식이라도 내 비판이라도 평가라도, 나의 껍데기는 성경의 법칙을 근거해야 내가  심판을 면하고 성경 껍데기 법칙 아니면 영감이 인정해야 완전히 생명화 되요.

 그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동등에서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고 내 생각도  이렇네. 성경도 그렇네. 이러니까 하자, 할 것이 아니라 구별해. 그러면 네 생각도  그러하고 성경 생각도 그러하니까 판단해서 네 생각대로 하는 거야 성경  생각대로 하는 것이라서 내 생각이나 성경 생각이 같은 것이니까 이것이냐  저것이냐 다 같지 않는가? 안돼 네 생각은 666이라 성경 생각이라야 돼요.

꼭같고 같아도 네 생각은 666이라 그것은 뿌리가 뽑힌, 뿌리가 끊긴 화초와 같아.

그것은 벌써 생명에서 끊어져 있는 것이야.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것도 생각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으나 내 성품과 주의 성품과 같으므로 성경 말씀대로 성경에 기록한 인성대로  합니다. 성경에 기록한 지식대로 합니다. 성경대로 합니다. 성경대로 하는데  성신의 감화를 받아 통과합니다. 성신의 감화를 내가 사모하고 찾고 있습니다.

하여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하나님의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려고. 왜? 믿으면 돼 껍데기도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판단대로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주실  것을 내가 믿어 그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기를 내가 바라보고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역사해  인적 요소에 빈약한 자가 신적 요소로 걸어갑니다. 걸어가니까 천 미터 올라갈  때까지는 인적 요소의 자도 자기 힘으로 걸어갔습니다. 비판도 잘합니다. 그 다음  천 미터가 지나가니까 인적 요소의 지식은 거기 대해서 판단을 못합니다. 인적  요소의 능력으로는 가지를 못합니다.

 이러기에 세상이 막을 때에 그 신앙이 꿰뚫지를 못하고 막는 세상을 다  사로잡는 신앙의 힘이 있고, 세상이 막을 때에 먹히지 안하고 다니엘은 꿰뚫고  올라가는 그것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를 연습한,  껍데기는 인적 요소로 사는 것 같지만 그는 인적 구별에서 신적 요소로 쉬운데  적은 데부터 살아 연습했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 해서 인적 요소로 살지  안하고 인적 요소 속에 신적 요소가 일하여, 시작은 인적 요소가 시작하고 결말은  신적 요소로 일하도록 간구하는 구함에 지나지 못하는, 찾는데 지나지 못하는  문을 두드리는데 지나지 못하는 이 과정인 것을 알고 여기서 신앙생활 한 사람은  인적 요소로 갈 수 있는데 까지는 동등이지마는 인적 요소로 갈 수 없는 그  다음부터는 그는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신앙이 인적 요소와 신적 요소의 이것이 자주 자주 발표 되어서  이것이 뭐이냐? 우리는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세상에서 시험하여 이 진가가  나타나지 아니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통과입니까? 아니요.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인적 요소와 신적 요소로 된 이것이 구별되어서 인적 요소로 된 것은 다 둘째  사망의 해에서 썩는대로 돌아가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속성으로 된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니 완전히 새로 지음을 받은 이  신적 요소로 된 것만이 영생하기 때문에 인적 요소는 성전이요, 신적 요소는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묘사해서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을 죽는 날까지 연습해도 인적 요소가 주장이 되고 이것으로 살기  쉬운 어려운 세상 신앙 걸음인데, 인적 요소는 부인할 줄도 모르고 인적 요소로  죽는 날까지 살면서 구원이 된다고 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지 맙시다.

바꾸십시오. 그러기에 인간은 유한하지마는 바꾸어 놓은 그 기능은 유한하지  않습니다. 무한합니다. 유한까지는 같이 가지만 유한 넘어 무한에부터 시발되는  때에는 다 죽어 버리고 무한의 것으로 된 것만이 영원히 영생하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인적 요소에 풍부한 사람들 그것도 좋은 은혜이지만 가난한 사람이 도리어 복  있을런지 모릅니다. 어리석게 인적 요소 가지고서 구원된 것이라고 생각지를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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