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구원을 이루는 방편

 

1988. 4. 10. 주일오전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몇 날이 지나면 대구 집회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집회를  참여할는지 그 안에 주님이 재림하실는지 우리 개인으로서 주님 앞에 가게  될는지 그거는 우리는 모릅니다. 오월의 집회가 얼마 남지 아니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구원이니 곧 하나님의  선택에서 결정되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상관도 없이 하나님이  우리가 생기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그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기본구원을 얻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 여하에 근거된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선택에서 우리  구원의 결정되는 것이니 그것은 우리의 영 구원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을  이겨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에서 영생하는 이모든 구원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행위가 옳든 나쁘든 이 구원은 택한 자들은 꼭 같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이라고 하는, 집짓는 비유로 말씀을 많이 하셨고, 또 행한 대로  갚는다고 많이 말씀을 하셨고, 또 그 사람이 성화된 대로구원의 차이가 있다는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다 건설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씩  둘씩 차차차차 건설해서 온전을 향하여 이루어 가기 때문에 그면으로 표시해서  건설구원이라,  자기 행위 건설, 자기 모든 소유 건설, 자기 자체 건설 이 건설을 해나가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 했는데 이것은 곧 성화구원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본받아져 가지고 닮아져 가서 하나님의 형상대로되는, 하나님이 원형이라면  우리는 거기에 따른 모형적 그 인격성 모든 그 생활성을 닮아갈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따라서 성화됐다 이래서 성화구원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이런 구원들은 본인의 언행심사의 행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행한대로  구원된다 해서 행위구원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믿는 일을 힘써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은  우리 이 영육이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 힘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이  하늘나라의 부활 영생을 할 때에 우리의 영광이 어떠하며 가치가 어떠하며 또 그  나라에 실력과 지위가 어떠하냐 하는 것을 세상에서 마련하기 위해서 믿는 일을  힘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예수님을 꼭 같이 시작해서 믿어도 그 사람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어서 벌거벗은 자로 그렇게 구원을 얻는 거와 같은 그런 구원을  얻는다, 자기가 행위로써 마련한 구원은 하나도 없는 벗은 자로 가장 작은 자로  무능한 자로 그렇게 부활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구원은 곧, 우리의 심신을 가리켜서 육체라 이렇게 말했는데 학자들  가운데에 몸은 육체요 마음은 육체가 아니라고 그렇게 해석을 해서 ‘교리가  혼돈된 그런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육체에 속한 물질의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리켜서 혼이라 그렇게 말들을 했습니다. 혼은 짐승도 혼이 있고  사람도 혼이 있습니다. 짐승도 우리 사람과 같은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이성이 있고 의지가 있고 비판과 평가를 가지는 것이 짐승입니다. 그러면 짐승은  그를 영물이라고 하지 안하고 다 물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래서 죽으면 짐승의  혼은 아래로 가고 사람은 혼은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심신을 육이라고 하는데 육의 성화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육의 성화구원이라는 것은 육의 형체는 마음의 형체와  몸의 형체인데 그 형체는 다 기본구원에 속해서 꼭 같은 형체로 부활합니다.

그러나 건설구원이라 실력구원이라 영광구원이라 하는 그 자치와 실력은 곧  우리의 마음과 몸의 기능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우리의 몸의 정력이라는 그 모든 힘이 있는데 그 힘을 가지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둔다 그러고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은 자기의 정력을 가지고 한 시간이나 일 년이나  살때에 그 정력 가지고 기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정력으로 땅에 있는, 어떤  사람은 어학의 기능을 만들고 과학의 기능을 만들고 그 지식들의, 기능을 만들면  정력은 없어지고 그 기능화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의 정력으로 가치 있는 기능을 만든 사람들도 있고 가치가 적은  기능을 만든 사람들도 있고 아무짝도 쓰지 못 할 그런 기능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에게는 천태만상으로 자기 정력과 시간을 가지고서 각종 각양의 기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총칭해서 성경에서 둘로 나누어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육체라하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정력을 가지고서자기를 위해서  기울이는 것은 다 그것은 통틀어 말하면 다 썩을 것이요 없어 질 것이요 다 멸망  받을 것이요 죄 아래 있는 것이요, 성령을 위해서 심었다 그 말은 그 기능을  성령을 위해서 성령에 속한, 성령에 속했다 말은 진리에 속한 것, 성신의 감화  감동에 속한 것,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공로에 속한 것을 위해서  자기 정력을 기울여 만든 자는 영생을 다 거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월집회를 두고 오늘 지금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그 방편을  성경에 말한 대로 간단하게 여러분들에게 증거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이 건설구원은 여기에 사데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나와 함께 다닌다, 하나님과 동행한다 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 이기는 자는 흰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닌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은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음을 보지 안하고 승천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영생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계시입니다.

 또,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은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음으로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됐다. 노아 홍수 심판을 하나님과동 행한 노아의 여덟 식구만  이 심판을 면했습니다. 우리는 토막토막의 중간 심판도 있지마는 마지막 종말  심판이 곧 그리스도라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또, 사데 교회에 하나님과 함께 다니는 사람 외에는 생명록에서 제거되지 안할  사람은 없다. 생명록에서 그 이름을 흐리지 안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흐리지  아니하는 것은 주님과 같이 동행한 자들이다 그렇게 여기에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영생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심판을 면하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생명록에 제명되지  아니한다 하는 것을 오늘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한 시간을 동행했든지 일 년을 동행했든지 일생을 동행했든지 동행한  그 동행은 다 영생이요, 동행은 심판을 다 이긴 것이요. 동행은 생명책에 그대로  기록된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이 대속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계시 3장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이룸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러면 이 생명책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동행하는  데서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서 그 행위가 제거되지 않는다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대신 대행으로 의를 우리에게 입혔고 대형으로 사죄를 우리에게  입혔고 대화친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생명을 우리에게 입혔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서 우리의 구원은 완전히 된  것입니다.

 완전히 된 것인데 영은 완전히 된 이 구원을 그대로 영원히 있고, 있고 우리의  심신이라 하는 것은 법적으로 이 대속을 완전히 입었으나 자기가 벗으면 벗은 것  만침은 벗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동행한 고 기간이 길든지 짜르든지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 것이 되고 십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한 시간을 하나님 배반하고  떠났으면 십 년 동행한 것은 동행으로 있지마는 한 시간 떠난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은 벗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에서 만 영생을 할 수 있고, 동행한 시간  했으면 한 시간 한 그 기능은 영생이 되었고 만일 한 십 분을 동행했으면 십 분  동행한 그 것은 영생이 되었고 심판을 면했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에서 흐리지  안하고 입고 있고,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영생을 날마다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없다’ 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고 행사와 또 고 기능 고 시간의  것만 영생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 하게 되고 또 생명록에서 흐리지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명되지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심신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일을 우리는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생하고 심판에 다 무사히 통과되고  또 하나님의 구속의 이 생명록에서 흐리지 아니하니까 동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래서,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형체가 없는  존재입니다. 형상이 없는 것은 그분이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은 형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은 형상이 있을 수 없고 무한은 형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독생하신 하나님이 그를 나타내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 할 때에 빌립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이. 곧  하나님이 역사하신 역사요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형을 대신해서 대형하신 이 사죄로 우리가 가운데  계시는 데에 이 사죄와 내가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이요, 대형으로 칭의를  줘기 때문에 칭의를 벗지 안하고 칭의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대화친으로 화친케 하셨으니 하나님과 항상  연결로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은 세 가지로 나타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은 세 가지로 나타났으니 하나는 예수님의 피로  나타났다 말은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으로 나타나신 것을 말씀하고, 또 하나는  보혜사 성령으로 나타났다 이랬습니다. 또 하나는 진리로 나타났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이 신구약 성경의 문서 계시로 나타난 것은 곧  예수님의 형상이요 곧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이 모형속에는, 안에는 성령이  계시니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요 아버지의 영이요 성령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와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니 여기에서만  영생과 심판 면 하는 것과 생명록에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영생도 되고 심판도 면 하고 예수님의  대속록에 제명되지 안하는데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가 이루는 데에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지금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진리와 동행하는 것이요 영감과 동행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동행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또 구비하게  덧붙여서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진리와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게 진리와 동행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진리와 내 마음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은 진리와 동행할 수도 있고  마귀와 동행할 수도 있고 내 마음은 자기 속에 자기중심 자기 위주인 악과  동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 인생은 타락한 후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이 아니면  마귀와 동행입니다. 독립은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리와  동행이 아니면 마귀와 동행이요 성령의 감동과 동행이 아니면 마귀와 동행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동생하지 안하면 곧 마귀와 동행입니다. 이것은 전체가  다 사망됩니다.

 우리가 이 셋으로 나타나신 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우리 마음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동행하면서 손은 마귀하고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동생할 수 있고 우리 생각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욕심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감각이 동행할 수 있고 우리의 각양 속성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있고 마귀와 동행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있고 마귀와 동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동행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소원과 계획도 우리가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계획을 할때에 그  계획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있고 마귀와 동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셋과  동행하지 않는 계획은 전부 마귀와 동행이요 자기 마음인 줄 알아도 그거는 다  마귀 마음이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과 동행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은 아닙니다.

 또, 우리가 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내 귀가 들을 때에 진리와  동행해서 거짓 것은 버리고 진리와 함께 내가 들어서 강직하면 그것은 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다하는 것은 귀가 죽지  안했다라는 그런 말입니다.

 우리의 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안 된 걸 볼 때에는 안 됐다고 우리 눈이 보고 정죄를 하고 옳은 것을  볼 때에 옳다고 의로 찬성을 하고, 이래서 우리의 눈으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귀와 눈으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기 입은 하나님과 동행 안 할 수  있습니다. 귀와 눈과 입으로는 동행해도 자기 손과 발은 동행 안 할 수  있습니다. 손도 발도 귀도 눈도 입도 하나님과 동생해도 깊은 마음은 하나님과  동행 안 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영생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면죄되어지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으로만 믿는 사람 있고 그저 예배당에나 발 걸어  가지고서 왔다 갔다 하는 발로만 믿는 사람, 사람 앞에서 손을 올리는 그런 것만  믿는 사람, 입술로만 잘 믿으면서 입으로만 믿는 사람, 자기는 마음과 생각과  뜻과 이성이나 정서나 그런 것은 주님과 동행하고 싶으나 눈에 보이는 이 보이는  세력들이 모두 무서워서 거기에 억제를 당해서 입이나 수족이나 그런 나타나는  형태의 행위에는 동행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세력에게 눌려서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되어 있는 그 자리에서 옮겨서 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에서 만 영생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심판은 통과하고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벗지 않고 입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요것을 단단히 명심하고. 우리가 행동할 때에는 그저  일방적으로서 치우쳐서 한 부분만 되면 된 줄 압니다. 내 손만 의로운 노릇을  하면은 마음이야 생각이야 뜻이야 중심이야 감정이야 정서야 어찌 됐든지 내  손으로만 의로운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마는 이것은 인격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화구원이라는 것은 인격 구원입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인격적인,  그 심신의 기능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력이 땅의 것으로 변화되기도 하고 하늘의  것으로 변화되기도 하는데 땅의 것으로 변화되는 것도 그 심신의 기능 전체가  함께 타락해서 변화되는 것이고 우리가 성화되는 것도 심신의 기능 그 부분  전체가 다 합해 가지고서 한 인격이라는 그 격위가 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이 아니면 다 멸망이요 동행에서만 구원이  되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간단하게 이래 말했으나 우리의 인격 요소라  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우주로 비할 수 없을 만치 우주보다도  더 복잡하고 더 세밀하고 까다로운 존재들이 다 모여 가지고서 합중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라 하는 이 정상은 그 마음이 회합을 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다  결의해 가지고 가장 모든 면에서 원만하도록 그렇게 거기에 회합에 가담해서  등장해 가지고 역사한 그 부분이 많은 사람마다 그 사람의 언행 심사에 원만하고  광대할 것이고 그것이 협착해서 그저 욕심이면 욕심 하나가 다 행합니다.

감정이면 감정 하나가 다 행합니다. 성격이면 성격 하나가 다 행합니다.

복수성이면 복수성, 시기성이면 시기성, 교만성이면 교만성 그 하나가 들어서  전신을 다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은 곧 비정상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서만 구원이 되기 때문에 이 동행에  대해서 자기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보면서 이렇게 찾으면 자기의 요소의  부분도 알 것입니다.

 이래서, 요새 의학적으로 사람은 수많은 세포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  세포로 돼 있다 그러나 그 세포가 꼭 하나의 인격성을 가졌다하는 것은 아직까지  발명을 안 합니다. 그 세포 하나가 인격성을 가졌어. 세포 하나가 이목구비  수족을 다 가졌습니다. 하나의 사람의 전체 그 형체와 같은 고것이, 하나 분자로  되어 있는 것이 세포입니다.

이렇게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오묘한 것이요  기이한 것입니다.

 이래서, 남을 보아서 자기를 깨달아서 ‘저 사람은 모든 행동이, 일부분적인  어떤 하나 기형적인 그것이 들어서 하고 있다, 저것은 어느 정도의 범위가 넓게  이제 회합을 하고 있다, 저는 전체가 회합해가지고서 평가적으로 제일, 옳고  가치 있는 것을 택정하고 있다.’ 그 일은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성신의  감화의 인도받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만이 온전하지 전지  전능자 당신이 현실에서 이래라 저래라 감동시키는 그 감동에 따라서 하는 그  믿음 생활만이 온전하지 그 외에 거는 온전함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 도)  이 시간에도 천한 저희들이 주님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고  사데 교회에 말씀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서만 영생도, 심판 문제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도 이렇게 다 우리의  것이 되는 이 비밀을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의 이 영육 전체가 다 주님 모시고 주님을 믿고 바라고  내 모든 걸 다 주님에게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저희들의  여생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랄 수 없고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면 이 일이 가능한 걸 믿습니다. 불쌍히 주시옵소서.

 대구 집회에 전부 참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금번에는 참 옥토에 뿌린 씨의  이 하나님에 대해서나 마귀에게 대해서나. 사람에게 대해서 완전한 관계를 맺어  가지고 부끄럽지 않는 자로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이 되었사오니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계시지 안한 곳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심을 확실히 믿는 믿음은 저희들에게 주사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아 이 죄악과 사망이  관영한 세상에도 염려없는 평강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이 그 위에 항상 불붙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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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겨자씨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 880713수새 선지자 2015.10.23
606 겨자씨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10금야 선지자 2015.10.23
605 겨자씨 믿음/ 마태복음 13장 31절-32절/ 890120금야 선지자 2015.10.23
604 겨자씨 믿음/ 마태복음 13장 31절-32절/ 890122주후 선지자 2015.10.23
603 겨자씨 믿음/ 마태복음 13장 31절-32절/ 890122주전 선지자 2015.10.23
602 겨자씨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90507주전 선지자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