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


선지자선교회 1988년 7월 13일 수새 

 

본문 :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이 비유인데 겨자씨 믿음은, 겨자씨는 작은 것이 그의 특이요 또 작아도 생명이  있어서 크게 자라는 것이 그의 특성입니다.

 작기는 작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땅 밖에 있을 때에는 그대로 있지만 땅 속에  들어가면 그것이 자라서 나무같이 되어서 공중에 나는 새들이 다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이건 비유인데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이라는 뜻인데 믿음은 어떤  게 믿음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참되다 인정을 하고 자기가 그대로  이루기를 소원하고 실행을 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네 가지, 알고 인정이라 말은 확신한다 말인데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인데 무엇을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하느냐?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 현실에 자기에게 해당된 하나님의 뜻.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하는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명령하시는 그 명령이요 지도하는 지도요  교훈하시는 교훈이요 요구하시는 요구인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은 곧 진리요 하나님의 뜻은, 진리라 말은 참된 이치라 말인데  하나님의 뜻은 진리요, 그런데 진리만 가지고는, 진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가  진리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이 다 진리인데 신구약성경 말씀대로 행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왜? 성경말씀대로는 해도 영감이 같이 하지 안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자기가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거는 외식으로 동기가 잘못됐든지  목적이 잘못됐든지 방편만 그저 그 방편을 취했지 사람이 볼 수 없는 알맹이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한자리에서 둘이 꼭 같은 외모를 행하나 속에  알맹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인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문서 진리에 맞아야 하겠고 또 그  문서 진리대로 하는 그 일에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 감동이 같이 협동을 해야  되겠고 또 그라면 다 됐느냐?  아무리 자기가 진리대로 성령대로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을 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접하는 데에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이 없이는 하나님과 연결을 못 하는 것입니다.

 사죄가 없으면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죄가 그 사이가 가로막혀있기 때문에  안 되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참되다 인정을 받는 칭의가 없으면 안 되고, 또  죄가 없고 의롭다 할지라도 그라면 다 하나님과 화친되느냐? 하나님과 불목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친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사죄, 칭의 , 화친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인간은 하나님과 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거룩한 자시요 그는 지극히 깨끗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예수님의 대속, 완전인 이 세 가지를 입은 자라면 이  세 가지 면으로 행한 거 없지만 완전자가 됩니다.

 죄에 대해서 완전히 없는 자, 또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다 이행한  자, 또 하나님과 화친된 자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지 아니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접할 때 제일 일호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대속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면 성령을 접할 수 있고 성령을 접하면 이제  진리를 자기가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생명 있는 믿음이라고 하면,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을 말한  것인데 믿음은 그 네 가지인 걸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십시오. 또 네 가지인데 네  가지가 그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생명된 그 생명은 뭐이 생명이냐 하면 그 세  가지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생명은 세 가지라.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 그 셋이  생명이라. 또 믿음은 네 가지라.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니까 그것을 산 믿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연결되면 산 믿음, 요것이 겨자씨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그러면 연결된 믿음이기 때문에 그것을 산 믿음이라, 연결은 산 것이요  믿음은 그분에게 따라서 피동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뜻, 곧 진리,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건데 그것을 달게 받아서 영접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이라.

영접하고 그대로 좇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를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에  그를 반대 안 하고 영접해서 내가 거게 따라가는 자 거게 딿는 자, 좇는 자라  말이나 딿는 자라 말이나 내나 믿는 자라 말이나 순종한다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이제 각도가 달라서 요런 형편에는 요런 각도에는 요런 말을 쓰고 조런  데는 조런 말을 쓰는 것이지 내나 뜻은 같은 뜻이라.

 그랬는데, 그러면 겨자씨 믿음이라, 이 세 가지로 연결된 순종이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로 연결된 순종이라. 그러면 세 가지는 뭐인데?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은 거게 순종하는 것까지가 합해서 믿음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세 가지에 연결돼 가지고 순종하는 그것이 믿음인데 그러면  그 믿음이 산 믿음인데 산 믿음은 어떤 일 작용을 하느냐? 산 믿음은 무슨  작용을 하느냐? 산 믿음은 껍데기는 썩고 속에 그 생명은 자랍니다. 겨자씨가  땅속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그 겨자씨는 썩어 버립니다. 그거는 썩어서, 썩어  버리고,  썩는데, 겨자씨 그 보이는 그것은 썩는데 썩으면 그게 어찌 되느냐? 그것이  썩을라고 할 그때에 그 속에 있는 생명이 그걸 먹어버립니다. 그러면 썩는 것은  다 생명에게 먹혀졌습니다. 그러면 산 겨자씨는 그것이 썩어서 흙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있는 영양은 생명이 먹어서 생명이 자랍니다.

 그러면, 겨자씨가 자라면 겨자씨에는 눈에 보이는, 다른 거와 작아 그렇지 같은데  밀로 말하면 밀에 분이 있고 밀에 또 껍데기가 있고 밀에 그 핵이라 하는 눈이라  하는 그 눈이 있고 그 속에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생명은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데, 그러면 그것이 자랄 때 어찌되느냐? 눈에 보이는 가루분 그 속에,  밀로 말하면 분이 들어서 밀가루 안 됩니까? 그거나 껍데기나 그런 것은 다 썩어  버립니다. 그것은 썩어서 그만 썩어 버리는데 썩는 과정에 들어갈 때에 그때  그것이 달콤하게 돼지면 그것을 질금을 빼 가지고 단술도 해 먹고 그랍니다.

 그러면, 달콤하면 그게 썩는 과정에서 성한 것이 썩을라고 하면 그것이 이제  달콤해지는데 달아지는데 달아지는 그 도수가 넘어가면 그때 그것이 시게 되고  신 도수가 넘어가게 되면 나중에 씁게 되고 그라고 나면 썩어서 흙이 되고  맙니다. 그라는데, 그것은 뭐이 먹느냐 하면 생명이 먹고 그것을 자랍니다.

 이래서, 생명이 있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분이라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살, 가지고 있는 살 그것은 생명이 먹고 자라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 때 벌써 그걸 만들어 놨기 때문에 고게 없으면 생명이 있어도 못  살아납니다. 죽습니다. 생명이 자라지 못하고 고게 있으면 그거 먹고 자라 가지고  그거 먹고 자라면 그 다음에는 이 흙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거 먹고 자라면 흙을 먹을 수가 있는데 흙은 이놈을, 흙은 씨 보이는 씨의 살,  씨의 살 그것을 썩힐라고 이 흙은 달라드는데 달라들어 썩힐라고 하는 그 작용을  하니까 그 씨의 살이 변질이 됩니다. 씨의 살이 변질이 됩니다. 씨의 살이 변질이  되면 그 변질될 때에 그때에는 속에 있는 생명이 먹을 수 있도록 변질이 돼  버립니다.

 그 변질이 된 그걸 속에 생명이 빨아먹고 그만 자라 버리니까 흙은 그 씨의 살,  씨의 그 살덩어리 말이오. 씨의 살덩어리를 썩힐라고 제딴에는 그 달라들어서  작용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씨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 먹을 수 있도록 요리  만들어 준 것 외에는 하지를 못했다 말이오.

 요리 만들어 줘 가지고 그것이 먹고 그걸 다 먹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걸 다 먹으면 그 다음에는 뭣을 할 수 있습니까? 씨의 살을  생명이 그게 다 먹고 나면 그 다음에는 뭘 먹습니까? 흙을 먹는 거라. 땅에  지기를 먹어.

 그래가지고, 땅에 지기가 처음에는 뭐하러 왔느냐 하면 종자의 살을 썩힐라고  왔는데 속에 생명이 없으면 썩어 버리고 말 터인데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을  썩힐라고 온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그 생명이 먹을 수 있도록 잘 요리를 만들어  주는 그 역할을 해서 이용니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또 그것이 살을 다 먹고 자라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 흙이 썩힐라고 이제는  두번째, 처음에는 그 씨의 살을 씨의 본체를 흙 만들라고 저하고 한덩어리 될라고  이렇게 달라들어 작용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생명에게 이용을 당하고 말았지,  두번째 달라들어서 썩힐라고 하는 모든 수분이라든지 질소분이라든지 온도라든지  땅에 지기라든지 영양이라든지 이 모든 것이 두번째 썩힐라고 달라드니까 그  다음에는 어찌 됐느냐? 그 생명이 직접 잡아먹어서 그만 그 생명이 자꾸 자라게  됩니다. 오면 자꾸 잡아먹고 자라게 돼요.

 만일 땅에 있는 지기가 없으면 못 자라는데 지기를 먹고 자라게 돼서 그렇츰  작은 것이 커다란 나무같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겨자씨라는 것은 요렇게 작용하는 거와 같이 모든 종자는 다  그래요. 모든 종자는 다 그렇게 작용해요.

 요것이 뭐이냐? 심어진 땅은 세상을 비유하는 것이고, 심어진 땅은 세상을  비유하는 것이고 또 그 종자의 살을 썩힐라고 달라드는 것은 땅에 있는 지기를  가리켜 비유한 것입니다. 지기들이 내나 그걸 해할라고 달라들었지만 결국은  이용만 당하고 말았고 돕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온 세상이 처음에는 우리에게  달라들어서 우리합니다. 우리 자체를 해해서 우리 자체를 이 세상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자체를 해할라고 달라들 때는 무슨 목적으로 해할라고 달라듭니까?  이 세상이 우리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조롱하고 이래 참 훼방하고 자꾸 꾀우고  달래고 유혹도 시키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은, 세상이 뭣할라고 우리 믿는  사람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뭐 할라고 하고 있습니까? 제것 만들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 생명이 있으면 제것 만들라고 하는데 제것 만들라고 하는 그 자체를  전부 생명이 먹어서 생명이 커다랗게 그만 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세상이 제것  만들라고 우리를 핍박하고 훼방하고 하는데고 생명이 죽지 안하고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이 죽지 안하고 연결이 그대로 있읏면 그 자체라 하는 그것은 점점  하나님과 연결이자라게 됩니다. 생명이 자라는 건 하나님과 연결이 자라게 돼요.

 핍하는데 핍박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그것에게 세상이 되지 안하면, 세상이 안  돼지면 결국은 생명이 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자라서 연결이 튼튼해지고 연결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연결이 돼서 그것을 먹고 자란 그 생명은 땅을 먹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자체에게 핍박하는 그것을 이기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세상이 그 사람을  자꾸 세상화시킬라고 달라드니까 하나 점령하고 둘 점령해서 자꾸 점령해 가지고  이제 혼자 믿다가 둘이 믿고 둘이 믿다가 서이 믿고 자꾸 믿고 또 그렇게  믿다가서 자기 혼자 이렇게 믿다가 자기 직장을 다 믿음화 시키고 또 사회를  믿음화시키고 그 한사람이 들어서 온 국가를 믿음화시켜서 자꾸 이렇게 지금  점령해서, 세상이 달라드는 그거 없으면 안 되는데 세상이 세상 만들라고  달라드는 그 작용이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생명에게 삼켜져서 생명이 크단하게  자라게 됩니다. 이래서 세상에 핍박하는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우리와 하나님과  연결을 튼튼케 만드는 것이 되고 만다 그거요.

 또 시간 됐는데, 여러분들이 그것을 그냥 생각할 게 아니라 자꾸 이치를 생각해.

하나라도 이치를 생각해서 딱 깨닫고 잡으면 안해. 요동치 안해요. 이러면  흔들리지 안해요.

 이런데 이걸 뭐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제가 모르기 때문에 한 소리  또 해서 그 속에 알맹이를 가르칠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여러분들이 지금 이걸  배울라 하면. 배워 가지고 하나면 뭣, 여러 개 배울 게 아니라 하나 배우면 그만  열이고 스물이고 백이고 다 알아요. 이치는 하나이기 때문에. 다 배워.

 그러니까, 성경 배울 것도 없고, 신학이니 뭐 성경학교니 뭐, 실은 여기 양성원  이래 하지만 하나만 똑똑히 알고 그대로만 해 나가면 배울 것 없고 성경 주석 볼  것 없고, 자기가 믿고 행하면 또 알고 또 알고 해 가지고 그 사람은 그만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듬이 일반 믿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 참된 도리를 알고  진짜를 알게 됩니다.

 여기 지금 신학자들은, 여러분들 어제 아침에 말했는데 잣대를 주면서 이 잣대를  가지고 네가 꼭 같은 길이로 나무를 끊어라 나무를 잘라라 이렇게 말했는데 그  사람이 그 잣대 가지고 백 개를 끊어도 항상 잣대로 대고 끊은 그 사람 있고  끊어 놓은 그놈 가지고 또 대고 끊고 끊은 그놈 가지고 또 대고 끊고 하는  그것은,  잣대는 뭘로 비유해요? 잣대는 뭐이요? 잣대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 맞아요?  비유로 말하면 맞아요?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모든 것을 자꾸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또 비판하고 평가하고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이라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어떤 사람이 보고 연구했는데 연구한 그것을 자꾸 연구하고 또 그 사람  연구한 것을 그다음 사람이 연구하고 그 다음 사람 연구한 것을 또 연구하고  자꾸 이렇게 연구에 연구로 자꾸 사람 연구한 그것을 자꾸 연구해 나가면 그  사람은 잣대 가지고 끊는 사람이요 잣대 가지고 끊어 놓은 그걸 가지고 대  가지고 끊는 사람이요?  아니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참말로 이치가 들어맞아요? 양성원 학생들 말해 봐.

참 맞아요 그냥 말만 그래? 참 맞아.

 이러기 때문에, OOO목사님이 처음에 가 가지고 나한테, 미국 가가지고 편지를  하기를 만리 장서를 써 이 신학생들을 와서 만나 보니까 신학이 뭐이냐 이래  물으니까 '신학은 신학이라는 학문이 아니냐?' 그렇게 본다고, 신학은 성경이  가르친 대로 하나님 연구하는 것이 그 신학이 아니냐 하니까 모두 우고 껄껄  웃으며 조롱을 하더래요. '신학이라는 것은 신학이라는 학문이 있는데 그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입니다' 그러면 '신학을 연구할라 하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지 않느냐 하니까 '성경은 성경이고 신학은 신학이기 때문에 신학이라 하는  것은 성경을 안 읽어도 신학은 공부할 수 있습니다. 연구할 수 있고 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모두 신학하는 사람들 성경 봤느냐? 하니까 성경 한번도 안  읽은 사람들이 많고 한번 읽은 사람들은 별로 없더랍니다. 그것이 우습다고  나한테 편지를 했어. 그때는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그 바로 본 것이오.

 거기 가서 자꾸 이라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는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 연구하는  게 아니고, 성경 잣대를 가지고 이와 같이 연구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연구한 그  연구를 또 연구하고 그다음 연구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이래  나가니까 어디까지 나가는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들이 실은 그 공부하고  와도 하나님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이래서, 이것도 성경을 보고 자꾸 성경만 보고 또 우리 선조도 성경보고  연구했고 나도 성경 보고 연구허고 백 목사도 성경 보고 연구하고 백 목사  연구한 그걸 이래 참고로 삼아 가지고 나도 또 성경 보고 연구하고 그러니까  자꾸 성경 보고 연구해서 나가는 그 사람은 원 잣대 가지고 재는 사람과 같고,  연구한 거, 백 목사님이 성경 연구해 설교한 거 그거 연구합니다. 그거는 내가 늘  말하기를 그 설교한 그것은 성경을 내가 연구할 때에 참고로 삼는 그 정도지  그거는 성경이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설교한 그 말씀 보고 자기가 기억한 것은 지금은 이렇게  기억하고 믿지만 생명을 내놔야 되는 어려운 절정에 떡 다다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사람이 이 사람은 이렇게 설교했고 저 사람은 저래 설교했기 때문에  그것은 나중에 가서 '이제 아무래도 그 유명한 유력한 사람은 사람이지만 성경  보고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해석한 그게 절대성 있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애는  그런 진리는 아니지 않느냐? 사람이 연구했기 때문에 혹 틀릴 수도 있지 않느냐?'  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생명을 내놓을 용기가 안 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설교를 듣고 필기해 가서 이 보고 성경 본문보고 이래 보고  나중에 가서는 '이 성경에 과연 이런 본문이 있다 이 내용이 있다' 이래서  마지막에는 설교집은 다 없애버리고 성경 그것만보고 성경의 진리를 똑똑히 잡고  있어야 그 다음에 환난 당하면 이게 '야 이거 백 목사 설교 아니냐?' 마귀란 놈이  그랄 거라 말이오. 자기 속에 또 그게 나와. '백 목사 설교 아니냐?' '백 목사  설교가 여기 성경에 보니까 성경에 이래 있지 않느냐?'  이러기 때문에, 성경 보고 믿는 사람은 성경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과  또 이 획 하나를 가감할 수 없는 것과 이 진리가 곧 하나님이요 '내가 길이요  진리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리라 했기 때문에 이는 믿는 거는 확신을 가지기  때문에 순교도 할 수 있고 할 수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겨자씨 믿음을 또 앞으로 계속할 터인데 요것을 단단히 여러분들이  가져 요 하나만 가지면 여러분들 사는 것이 다 살 수가 있어. 요대로만 살면 다  돼요, 그만. 요대로만 살면.

 겨자씨 믿음이 뭐이냐? 겨자씨는 무엇이 겨자씨냐? 생명 있는 씨라. 그 믿음은  그라면 겨자씨 믿음은 뭐이냐? 생명 있는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이라 이랬는데 생명은 몇 가지를 생명이라고 오늘 아침에  해석했습니까? 세 가지. 또 믿음은 몇 가지라고 또 우리가 배웠습니까? 네 가지.

세 가지를 가진 네 가지라 그말이오. 그런데, 여게서 겨자씨 믿음인데 겨자씨  믿음은 땅에 들어가면 자란다, 땅에 들어가면 자란다.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라고 하면 제일 처음에 오는 게 뭐입니까? 제일 처음에 오는 게  뭐이지?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겨자씨 믿음 생활을 할라고 하면, 제일  처음에 세상을 접해서 겨자씨 믿음생활 할라 하면 세상에서 오는 것이 뭐이야?  제것 만들라고 나를 해해. 나를 가깝게 해하요. 내 자체를 해하요.

 자체를 해할 때에. 내가 그것에게 삼켜지지 안하고 하나님과 연결을 끊지 안하면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해할라 함으로 말미암아 하는 해할라 하는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내 믿음에 이용을 당하고 말아. 하나님과 연결에 이용을 당하고  말아.

 이러니까, 다니엘을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을라고 온 나라가 달라 들어서 그래  했는데 그 다니엘이 그때 사자구덩이 들어간 것이 자기와 하나님과 연결에  도움이 됐어요 손해가 됐어요? 도움이 됐어요 손해가 됐어요? 도움이 됐는데  도움이 된 거는 뭐 어떻게 해 가지고 도움이 됐어요? 뭐 때문에 도움이 됐어요?  뭐 때문에 도움이 됐어? 뭐 때문에 도움 됐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연결로 인해서 도움 됐어.

 그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의심을 했다든지 조그마치라도 뭐 내가 여기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면 나는 인제 죽는다든지 죽는다' 하면 하나님의 능력 믿는  것이요 안 믿는 것이요? 안 믿는 거라. 그라면 헛일이야.

 믿음이 떨어지지 안하면, 믿음 떨어지지 않는다 말은 무슨 말이요?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말은 뭐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종이 떨어지지 안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은 전능자라 모든 거 주권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는데 사자가 내게 주권 못한다. 내 생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주권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없이 확실히 믿는 그거 가지고 사자가 발을  대지 못하고 해하지 못했다 그말이오. 요것을 비밀을 똑똑히 알아야 돼. 이래  가지고 예수를 믿어야 돼지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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