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

 

1986. 1. 10 금밤

 

본문: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다음 주일 공과입니다. 공과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제목은 겨자씨 믿음.

요절,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서론.

하나님이신 주님께 직접 교훈받은 사도들은 세상 모든 것들의 가치보다 보배로운 믿음에 전 가치를 두었는 고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라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셨다.

이 비유는 생명있는 믿음에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뽑고 옮기고 심는 구원 역사를 하여 주실 것을 약속으로 가르치심이다. 이는 인력은 조금도 상관치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뽑고 옮기고 심는 역사이다.

본론, 먼저 믿음의 효력 세 가지를 알아 보기로 하자. 우리 자신에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멸망할 죄의 요소를 우리 마음 우리 행동 우리 몸에서 죽기 전에 산 믿음으로 완전히 뽑아 버려야 하고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하신 신격성 그 속성을 우리에게 완전히 옮겨 심어 예수님이 아버지의 형상같이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이 완성되기까지 옮겨 심어 주심을 받아야 하고, 내게 있는 죽고 썩고 약하고 더럽고 모든 혈육의 것, 저주와 사망에 속한 것들을 주께 옮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받아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함을 지금 받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천국의 것을 무한히 옮겨 받아야 하고 내게 있는 없어질 것들을 천국에 옮겨 저축하고 깨끗한 속량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둘째 대지. 겨자씨 믿음은 생명있는 믿음을 비유하신 것이다. 겨자씨 믿음은 세 가지 절대성이 있다, 하나는 산 믿음이니 현실에 영감 인도하시는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과 둘째는 현실에 피동받지 안하고 영감 순종 그대로 행하여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역사하는 것과 세째 뽑고 옮기고 심는 전능의 기적과 축복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절대성이 없으면 사이비하여 진실 없는 신앙이니 속히 온전한 믿음을 만들어야 한다. 산 믿음은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기 때문에 반드시 점점 자라간다. 후퇴나 약화되지는 않는 것이다.

세째. 크든지 작든지 어렵든지 쉽든지 영감 곧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은 것이면 이 순종 행위는 창조주, 전지 전능의 하나님,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주권의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하시는 일이니 백절 불굴의 확신으로 계속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산 믿음의 행위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전능의 행위임을 믿고 확신으로 계속하여야 한다. 믿음이 중단되면 물에 빠진다.

네째. 찾기 어려운 믿음은 행하기 쉽고 찾기 쉬운 믿음은 행하기 어렵다. 우리의 산 믿음은 찾기 쉽고 행하기 어려운 믿음에서 시작하면 된다. 어려워도 행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묻는 말.

사도들은 가치를 무엇에다 두었느뇨? 답에, 보배로운 믿음에 두었습니다.

둘째 문. 산 믿음에는 누가 주동이 되느뇨? 답에, 창조주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주동되어 행하십니다.

세째, 산 믿음의 세 가지 절대성을 말하라. 답. 영감 순종과 세상을 이김과 뽑고 옮기고 심는 기적과 축복이 나타납니다.

네째. 산 믿음을 만드는 데는 어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느뇨? 답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쉽고 행하기 어려운 그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이 공과를 그저 퍼뜩 읽어 보고 그 안에 있는 뜻을 깨달으리라 하면 안 됩니다.

그 이상 더 쉽게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했습니다마는 그 안에 많은 순서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공과를 외워야 할 겁니다. 외우고, 외워도 뜻을 모를 것입니다.

외우고, 외우면서 그 공과를 자꾸만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생각하면 그 속에 뜻이 깨달아져서 도통이 될 겁니다. 이 하나님의 도가 이리 저리 모두가 다 사방 팔방으로 통하는 그 점을 여러분들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는 말로는 암만해도 자기가 자기 복음으로 효력있게 써먹기는 어렵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에게 직접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직접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배워서 그들이 배운 가운데에 어떤 것을 잡았던가? 물론 배우는 데 여러 가지 일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 배운 것은 책에다 기록하면 세상에도 다 둘 만한 곳이 못 된다고 그렇게 많은 것을 배운 중에 그 제자들은 무엇을 잡았던가? ‘아, 아무래도 하나님이신 주님에게 따라다니면서 배운 결과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하는 그 깨달음을 가지고 주님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안하고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그렇게 요청을 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참 믿음이 중요하고 보배인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을 하고 믿음을 좀 더하여 달라고 그렇게 주님에게 구했습니다.

구할 때에 주님은 믿음에 대한 것을 간단 명료하게 비유로 해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에 대해서는 겨자씨 믿음이라. 너희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하면, 한 알만큼만 있으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고 믿음은 겨자씨로 비유를 해 주셨고 그러면 겨자씨 믿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어떤 구원을 이루느냐 하는, 겨자씨 믿음이 역사해서 이루는 그 결과인 구원을 비유해서 뽕나무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뽕나무에 대해서는 뭐 뽕잎이 펴서 누에를 기룬다는 그런 것은 다 하지 안했고 뽕나무에 대해서 뽑히는 것과 옮겨지는 것과 또 그 깊은 바다에 그 큰 뽕나무가 꿋꿋하게 서서 있도록 그렇게 심기워지는 그것을 비유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손을 대지 아니하고 순전히, 이 겨자씨 믿음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 가지 일을 해서 뽕나무가 겨자씨 믿음 가진 사람이 말하는 그대로 순종 하였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뽕나무가 뽑힌 것이나 옮겨진 것이나 심기워진 일은 인력은 거게 하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뽕나무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뽕나무 저도 그렇게 할 만한 능력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이, 겨자씨 믿음의 사람이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행할 때에 행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완성하시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살 때에는 그 겨자씨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그 모든 행동은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겨자씨 믿음 가지고 행하는 행동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 그 일을 다 이루신다 하는 것을 여게 비유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들이 그대로 순종하였으리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뽕나무가 순종하지만 뽕나무가 제가 무슨 순종할 힘이 있습니까? 이런데, 겨자씨 믿음을 가진 그 사람이 말할 때는 말대로, 행동할 때는 행동대로, 겨자씨 믿음 가진 사람이 소원할 때는 소원대로, 겨자씨 믿음 가진 사람이 하는 대로 모든 피조물은 다 복종하게 되니 피조물이 복종하게 되는 것은 이 창조주가 그 피조물에게 겨자씨 믿음 가진 자의 행동에 따라서 복종하라고 이렇게 하시고 복종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주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알기가 참 바로 알기가 어렵고 바로 알면 이는 참 보배요 전능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씩 말하면 이거 말하면 저거 잊어 버리고 저거 말하면 이거 잊어 버리고 이라기 때문에 그걸 맞추기 위해서 이거 말하다가 딱 시간 되면 또 중단하고 또, 또 저거 말하다가 또 시간 되면 중단되고 이래 가지고 자꾸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모르기 때문에 왜? 그렇게 알기 쉬운 것이 아니니까.

이 뽕나무에게 명할 때에, 뽕나무는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팔레스틴에 있는 뽕나무는 큰 거는 아홉 아름까지 됩니다. 아홉 아름, 이 아홉 발. 아홉 발까지 되는 큰 뽕나무가 제 힘으로 어떻게 그것이 훅 뽑혀서, 뽑힐 수가 있겠습니까? 또 그것이 어떻게 제 힘으로 저 바다까지 그렇게 날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또 물이 출출 흘러 내려 가는데, 물 위에는 쪼끄만한 지푸라기 하나만 놔도 드러누워 가지고 둥둥 뜨는데 이 큰 뽕나무가 어떻게 물에 꼿꼿하게 심기워지겠습니까? 이것은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절대 안 되는 일인데 되리라 한 것은, 안 되는 일인데 겨자씨 믿음을 가진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전지 전능자가 책임지기 때문에 겨자씨 믿음 가진 자의 행동에는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여게 말한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깨닫고 확정을 지워야 될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 가진 자가 말 했으면 무엇이든지 말한 대로 다 되고, 행했으면 행한 대로 다 되고, 원했으면 원한 대로 다 되고,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다 된다, 다 되는 것은 그것은 겨자씨 믿음을 주신 분이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행할 때에는 고대로 다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신다 그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역사한 것은 뽑고 옮기고 심은 이 세 가지를 주님이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우리 구원의 전부입니다. 우리 구원은 공과에 기록한 대로 공과는 간단하게 몇 가지만 들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뽑을 것이, 하늘나라에 합당치 아니한 것은 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뽑아 버려야 합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과 그 동질 동성인, 예수님과 같지 안한 것은 다 뽑아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멸망할 모든 죄악의 것들입니다. 우리 마음도 뽑아 버릴 마음이 많고, 성질도, 마음도, 생각도, 욕심도, 뜻도, 기쁨도, 평안도, 취미도 뭐 뽑아 버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뽑아 버리지 안하면 마치 사람 몸에 암병과같이 뽑을 거 하나를 안 뽑으면 그거 하나 때문에 자기의 전 생활은 다 패망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우리 속에 성경에 위반되는 거, 영감에 위반되는 거, 하나님에 위반되는 거 곧 주님에게 위반되는 거 그런 것을 날마다 우리에게서 뽑아서 없애야 됩니다. 그러면, 뽑아 없애는 뽑는 이 역사를 전지 전능자가 와 가지고서 겨자씨 믿음 지키는 자에게는 이 뽑을 것을 전지 전능이 뽑아 주신다, 사람이 볼 때는 그거는 절대 뽑힐 수 없다 하는 것도 전지 전능자가 와서 뽑아 주신다 하는 고것을 여게 비유했고, 또, 우리가 심을 것도 우리에게 예수님의 그 신격성, 예수님의, 하나님의 그 신격성을 우리 인격 속에다가 심어서 우리가 하나님처럼 그런 온전한 그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신격성, 하나님의 완전하신 그 속성 이것을 우리가 하늘에서 옮겨 받아 가지고 우리에게 심어야 됩니다. 그러면, 진리도 심어야 되고 영감도 심어야 되고 십 이 속성의 지식도 심어야 되고 지혜도 심어야 되고 중심도 심어야 되고 구별도 심어야 되고 의도 심어야 되고 모든 깨끗도 심어야 되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모든 것, 하나님의 모든 그 신적 요소를 지금 우리가 다 받아 가지고 우리 이 인격 속에 심어야 됩니다, 그 심기 시작한 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중생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심기 시작한 것을 가리켜 중생이라 하는데, 심어서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고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의 것, 완전에 속한 것, 영원에 속한 것, 깨끗에 속한 것, 진실에 속한 것, 의에 속한 것, 영생에 속한 것 그런 것을 자꾸 우리가 심어야 되는데, 겨자씨 믿음 가진 자는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다 심어 주신다 하는 그것을 비유했습니다.

또 하늘의 것을 내가 옮겨 받아서, 하늘의 것을 내가 옮겨 받아 가지고 세상에서 내가 자꾸 부요해져야 됩니다. 지금 하늘의 것을 옮겨 받아 가지고, 하늘의 것을 옮겨 받아 가지고 내가 이 세상에 부요해야 되고, 또 우리가 가진 것은 이거 다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인데 이것을 죽기 전에 또 하늘나라로 옮겨야 됩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늘로 옮기라 이랬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탄식하는 것은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기 위해서 더, 지금 첫째 아담에 속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이 사람에게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어서, 하늘에서 오는 것을 내가 입어서 내 속에 심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 왜? 그거 안 심으면 하늘나라 가서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가난하고 천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어서 하나님이 주실 때 자꾸 옮겨 받아 가지고서 내게 심어야 되겠고, 또 내게 있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은 이것은 이대로 있으면 다, 세상 떠나면 다 헛일 되고 마는데 이것을, 떠나기 전에 이것을 자꾸 하늘나라로 옮겨서 하늘나라에 저축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 이 신앙의 노력은 뽑는 노력, 옮기고, 옮겨 보내고 옮겨 받고 심는 노력, 뽑고 심는 노력, 옮겨 가고 옮겨 오는 노력.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여게 비유해서 그 뽕나무가 뽑히는 거, 뽕나무가 바다까지 옮겨가는 거, 또 바다 위에 심겨지는 거, 그 심겨지는 것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지마는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 이렇게 심어서 이 세 가지가 전능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여게 비유했습니다. 겨자씨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뽑고 옮기고 심는 이 세 가지 역사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이것을 이루어 주신다. 천부당 만부당한 것이라도 다 이루어 주신다. 온 세상에 하나도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그런 것도 다 이루어 주신다. 이 겨자씨 믿음의 가치는 이렇게 큽니다.

겨자씨 믿음은 뽑고 옮기고 심는 이 일을 전능으로 한다. 전지로 한다,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 가지고 한다. 자기에게 이 뽑는 은혜를, 우리가 뽑는 구원, 뽑아서 구원이 되고, 또 심어서 구원이 되고, 옮겨 보내서, 하늘나라에 옮겨 저축해서 구원이 되고, 하늘의 것을 내가 옮겨 받아서 또 구원이 됩니다. 그러면, 심는 구원, 뽑는 구원, 옮겨 받는 구원, 옮겨 보내는 구원 이것이 다 우리 구원인데, 이 구원을 겨자씨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전지 전능자가 이 일을 대신 해 주신다.

그러면, 뽕나무가 뽑히고 바다에 옮겨 심기워진 것 사람이 손을 댔습니까? 손을 대고 그대로 된다고 했습니까, 손 안 대고 된다 했습니까? 예? 손을 안 대고 순전히 이거는, 뽕나무 저도 못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능력이 이렇게 다 이룬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겨자씨 믿음이 뭐인지 겨자씨 믿음을 배우기 전에 겨자씨 믿음의 그 가치, 겨자씨 믿음의 이용 가치, 겨자씨 믿음의 그 효력 그것이 지극히 큰 것을 깨닫지 안하면 아무도 이 겨자씨 믿음을 가질라고 애를 쓰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겨자씨 믿음의 효력이 큰 거. 이 겨자씨 믿음의 그 결과가 큰 거. 이 겨자씨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구원이 지극히 큰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이 사도들과 같이 전 욕심이나 소원이나 전심 전력이 다 이 겨자씨 믿음을 자기가 가지는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겨자씨 믿음을 가질라고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이 겨자씨 믿음의 그 효력이 어떠한 걸 알기 전에는 여게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직접 사도들은 배웠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직접 배웠습니다.

직접 배운 그들이 배운 결과에 자기들의 총 소원하는 그 소원은 어데 있었는가? 그들이 배우고 난 다음에 저희들이 소원하는 그 가치는 어데 있었는가? 가치는 겨자씨 믿음에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겨자씨 믿음이라고는 말 안해도 ‘믿음을 더하소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주님이 이제 믿음을 똑똑히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대로 너희 명령대로 순종해서 그대로 되었으리라’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겨자씨 믿음의 이 능력, 겨자씨 믿음에 맺어지는 그 결과에 지극히 큰 구원이 되는 것을 여게 비유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겨자씨 믿음이 어떤 건가? 간단하게 증거하겠습니다. 겨자씨 믿음, 겨자씨 믿음은 본 공과에 말한 대로 세 가지 절대성이 있습니다. 세 가지 절대성, 이 겨자씨 믿음에는 세 가지 절대성이 있습니다. 세 가지 이 절대성이 있는데, 세 가지 이 절대성이 하나라도 비면 안 됩니다. 이 절대성이라 말은, 인간에게는 절대가 없는 건데 이 절대성이라 말은 이거는 변동할 수 없는, 천지가 변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을 가리켜서 절대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거는 변동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에는 이 세 가지는 변동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변동되면 겨자씨 믿음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가 변동 안 되고 이 세 가지가 다 구비해야 겨자씨 믿음이 됩니다. 이 세 가지가. 구비해야.

그러면, 세 가지가 구비해야 되는데 첫째는 뭐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우리의 생활하는 법칙으로 계약으로 이렇게 주신 것이 육십 육 권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육십 육 권에 기록된 이 말씀 범위 내에서, 이 말씀 범위를 벗어나지 안하고, 먼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어서 읽게 하시고 이 신구약 성경 말씀 이 범위 내에서 우리가 닥치는 현실 현실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 현실 현실마다 그때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성경에 기록한 요대로 해라. 요 성구대로 해라. 요 성구대로 해라’ 우리가 살아가는 그 현실 현실마다 우리를 중생시킨 성령, 중생시킨 성령이라 말은 중생시킨 하나님이라 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생시킨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요 현실에는 네가 요렇게 해라 조 현실에는 조렇게 해라. 현실 현실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가르쳐 주시는 것이 있는데 그 가르쳐 주시는 것이 내가 바로 들었는지 잘못 들었는지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악령이 가르쳐 주는 것인지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인지 그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되는데, 잘못하면 악령이 가르쳐 주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준다고 행하면은 구원 반대의 멸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인지 악령이 가르쳐 주는 것인지 그것을 구별할라고 하면은 무엇을 가지고서 구별할 수가 있습니까? 고것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고 범위 내의 것인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딴것인지 그것을 우리가 보고서, 내 속에 양심 속에서 성령이 나에게 감동시켜서 요 현실에는 요렇게 해야 되겠다고 내게 깨달아지는데 고 깨달아 지는 것이 바로 깨달아졌는지, 고게 성신이 나를 깨닫게 해 주신 것인지 악령이 나를 깨닫게 해 준 것인지 고걸 구별하는 데에는 고 깨달은 고것이 성경 법칙에 맞나 안 맞나 고것을 이제 대조하면 됩니다. 대조해서 성경 법칙에 딱 들어맞으면 고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그 현실에는 요렇게 해라 고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고 현실에 인도하시는 고 인도가 바로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 인도, 절대성 중의 하나는 요것입니다. 절대성 중의 하나는, 그거 뭐이냐? 그 현실에 하나님이 요렇게 해라 하는 고대로 해야 되는 요것이 절대성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성경에 있으니까 제 욕심대로, 성경에 이래 있으니, 여게도 성경에 있으니까 이래 하고 저래 하고 해서 성경에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도 성경에 있다고 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인도해 주시는 고대로 해야만 그것이 겨자씨 믿음의 절대성 중의 하나는 됐습니다. 하나는 됐습니다. 그러면, 요게 바로 되면, 요게 바로 되면 또 둘째의 절대성은 뭐이냐? 돌째의 절대성은, 요거 첫째 절대성이 요게 바로 되면 둘째에는 둘째의 절대성이 또 있습니다.

둘째의 절대성은 뭐이냐? 고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고것을 바로 알고 요대로 해야 된다 하는 고것을 깨닫고 고렇게 할 때에, 할라고 할 때에 온 세상이 달라들어도 세상에게 지지 않습니다. 세상에게 피동받지 않습니다. 그 현실에 피동받지 않습니다. 그 현실에 어떤 현실이 어떻게, 내가 깨달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요대로 할라고 할 때에 내 현실에서 죽인다는 협박도 있을 것이고 온갖 유혹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별별 일들이 많이 있지마는 어떤 것이 있어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요 순종이 하나님에게만 순종했지 요 순종하는 요 순종이, 고 순종이 자기 환경과 주위의 세력에 침노를 받아 가지고서 요 순종이 변동되는 일이 없습니다. 변동되는 일이 없습니다. 죽인다 해도 변동이 없고 천하를 다 준다 해도 변동이 없고 어떻게 좋은 것을 줘도 변동이 없고 나쁜 걸 줘도 변동이 없고 어떻게 고문과 고형을 줘도 변동이 없고 죽여도 변동이 없고 천하를 다 줘도 변동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할 때에 고 행하는 것은 세상에게 피동되지 않는다, 절대 변동이 없다 요것이 이 겨자씨 믿음의 둘째의 절대성입니다. 둘째 절대성, 요걸 잘 알아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는데, 찾기는 찾았는데 그대로 막상 할라고 하니까 어려움이 있으니 고만 시작하다가 중단해 버리고 또 시작도 못 하고, 다 해 가다가 못 견뎌서 중단하고 했으면 고것은 겨자씨 믿음이 아닙니다. 고건 겨자씨 믿음이 아니고 고 겨자씨 믿음이 고만 죽은 겨자씨 믿음이 돼 버리고 맙니다. 고 생명이 죽어 버렸습니다. 생명이 죽으면 겨자씨도 땅 속에 들어가면 썩는 것입니다. 그 겨자씨가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땅 속에 심기워지면 땅 속에서 온기도 오고 수분도 오고 땅의 거름 기운도 오고 다 이런 것이 오는데 이것은 땅 속에 들어오는 거, 나무든지 뭐 이런 고기든지 또 식물이든지 뭐이든지 땅 속에만 들어오면 땅은 썩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은 썩혀 가지고서 땅 만드는 그런 힘이 땅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무엇이든지 오면은 이 세상화시켜 가지고서 세상을 만드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들어오면은 이것을 세상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겨자씨에 생명이 있으면은 겨자씨를 썩혀 가지고서 흙을 만들려고 흙이 와아 달라드니까 이 겨자씨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달라드는 수분도 둘러 마시고, 온도도 또 그 온도를 또 흡수해서 이용하고, 또 거름 기운 질소분도 오니까 질도분도 빨아먹고, 땅에 있는 온갖 지기를 빨아먹고 이 겨자씨가 자라지, 자랐으면 자랐지 겨자씨가 생명이 있는 한은 절대 썩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흙을 먹고 겨자씨가 자라느냐 겨자씨가 흙에게 삼키워져서 흙이 되느냐 하는 이 두 전투인데 생명 있으면 흙되는 법이 없고 생명 없이는 그 흙을 삼키고 자라는 이치가 없습니다. 고거 알겠습니까?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절대성입니다. 둘째 절대성.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는 찾았다 합시다. 찾았다 합시다.

찾았는데, 막상 그대로 살라고 하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닥쳐 버렸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니까 고만 이 겨자씨가 처음에는 생명이 있었지마는 고만 이 겨자씨에 있는 생명을 무슨 균이 와서 파먹어서 고만 생명을 죽여 버렸든지.

그렇지 않으면 뭐 어데 부딪혀서 그만 이게 그만 깨어져서 생명 이 없어졌든지 생명이 없어지면 처음에는 있다가 생명이 없어지는 그때부터는 썩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겨자씨 믿음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니까, 하나님에게 복종하니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 복종하는 그 연결이 끊어지면 썩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그 겨자씨가 이제 생명 없는 겨자씨가 되었기 때문에 생명 없는 신앙이 되면은 주위 환경에 피동돼 가지고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아무리 발견했다 할지라도, 바로 잡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과 연결된 고 연결이 끊어지면 고만 고때부터는 세상에게 집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있으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 그 절대성, 둘째 절대성.

또, 세째 절대성은 어떤 것이 세째 절대성인고 하니,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움직이는 절대성 하나, 또 하나님께 피동되어서 움직이는 이 절대성, 이 절대성의 이 움직임은 자기 현실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현실을 삼키게 된다, 그 현실에게 대해서 하나님께 피동된 그대로 행하지 현실에게 거게서 억압을 당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해서 현실에게 도리어 환경에 피동되지 않는다 , 환경에 피동되지 않고 환경을, 어떤 환경이 와도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피동을 그대로, 피동 그대로 계속 하게 된다, 이 피동을 바꾸지 않는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요거 지금 알아 들으라고 하는 건데, 피동을 바꾸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피동이 자기 현실에, 어떤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 현실에게 못 견뎌서 하나님께 피동이 현실에게 피동되는, 피동이 바꾸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피동된 그대로 현실이 어떻게 온다 할지라도 피동된 그대로, 피동하다가 세상이 되게 그라면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께 피동된 것으로서 끝을 마쳤지, 하나님께 피동을 바꾸어 가지고서 피조물에 피동으로 바꾸지 않는다 고것이 겨자씨 믿음의 둘째의 절대성입니다.

또, 세째의 절대성은 어떤 게 절대성이냐? 이와같이 하면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주권, 창조주 지극히 큰 능력의 이 겨자씨, 겨자씨 믿음이 세상에게 정복을 당해서, 세상에게 정복당해서, 이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께 피동된 그 신앙 행위인데, 하나님께 피동된 신앙 행위가 자기 현실에 어떤 미혹이나 어떤 어려움이나, 좋아서 미혹받아서 고만 이게 변동되기 쉽고 너무 억압에 어려워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 신앙 생활이 변동되기 쉬운데, 이런 거 저런 것에도 변동이 되지 안하고만 있으면 반드시 세째로서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서 거게는 인간으로서 뽑을 수 없는 것들이 다 뽑히게 되고, 인간으로서 심을 수 없는 것들이 심기워지게 되고, 인간으로서 옮기지 못할 것이 옮겨지게 되고, 인간으로 옮겨 받지 못할 것이 옮겨 받아서 이제 뽑고 옮기고 심는 이 절대성, 세째의, 삼호의 절대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절대성이 있는 이것이 겨자씨 믿음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요거는 또, 요다음에 말하는 건 조금 더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 겨자씨 믿음을 사람 자신이 만든 것인가,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주시는 것인가? 겨자씨로 비유한 것은 겨자씨는 사람이 만든 것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여게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이십세기의 과학이 아무리 떠들어도 겨자씨 한 알을 절대 못 만듭니다. 겨자씨 한 알을 절대 못 만듭니다. 그들이 겨자씨 비슷한 걸 만들었지 겨자씨 알은 하나도 못 만듭니다. 왜? 그 속에, 그 형태나 거게 있는 모든 그 분이나 그런 것은 만들 수 있지마는 겨자씨 속에 생명은 만들지 못합니다. 이십세기 과학이 절대 못 만듭니다. 그것을 만든다 하는 자는 미친 자입니다. 어떤 자가 말했으면 ‘네가 미쳤다’ 절대 못 만듭니다. 알겠습니까? 요 겨자씨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 하는 것을 여게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주시는 것인데 요 겨자씨 믿음을 우리가 받아 가지기만 하면, 받아 가지기만 하면, 삼호 뽑고 옮기고 심는 지극히 큰 능력의 구원은 우리가 이루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겨자씨 믿음을 주신다, 겨자씨 믿음을 주시는데 사람들이, 이거 너무 어려워서, 이걸 참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자기가 깨달아질까 껍데기로 그래 가지고는 알아지는 것 아닙니다. 우리 구원이 다 여게 달린 것인데 그렇게 쉽게 알려지겠습니까?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주시는 것인데 우리가 그 겨자씨 믿음을 소유만 하면 됩니다. 소유만 하면 됩니다.

소유만 하면 되는데 이 겨자씨 믿음은 절대성이 세 가지 있다 하는 것을 고것을 잊어 버리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이 겨자씨 믿음을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주시는데, 그러면, 제일 처음에 주실 때에 뽑고 옮기고 심는 그거부터 주시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을 이기는 거, 세상을 이기는 그거부터 주시는가? 이제 겨자씨는 딱 하나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주실 때에, 그러면, 그 결과를 주시지 안하시고 또 환경에 피동되지 않는 그것을 먼저 주시지 안하시고 뭐부터 먼저 주십니까? 그러면, 세 가지 절대성이 있는데 세 가지 절대성 가운데에 일호가 뭐입니까, 일호? 요걸 여러분들이 자꾸 따라서 요걸 알아 가지고 요것만 확실히 깨닫는 사람이면, 깨닫는 사람이면 고만 목회도 성공입니다. 고만 목회도 성공이오. 모든 자기 사업도 성공이오. 다 성공입니다. 여게는 다 돼. 이런데, 그러면, 일호는 뭐가 일호인고 하니 절대성의 일호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절대성의 일호입니다.

일호. 그러면 이호는, 절대성의 이호는 뭐인가? 이호는 자기 현실이라는 그 환경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그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생활을 그대로 계속,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행동을 그대로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피동된 행동을 고대로 계속하는 것이 고것이 절대성의 이호입니다. 이호. 그러면, 절대성의 삼호는 하나님께 피동된 것을 그 환경이 어떻게 해도 요동치 안하고 고대로 계속할 때에 고 계속의 결과에 뭐이 나느냐 하면은 세 가지 , 뽑고 옮기고 심는 요 결과가 나오는 요것이 삼호의 절대성입니다. 삼호의 절대성.

그러면,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요것을 에누리하지 마십시오. 요것을, ‘말로는 그렇지 뭐 참 그럴까? 어떻게 그 전지 전능이, 그 능력이 그렇게 쉽게 우리 것이 될까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요거는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이 길이 열려졌지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이 길은 열려진 것 아닙니다. 우리는 몰라도 이 길을 열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셨고 또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셨고 죽기까지 하셨고 부활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렇게 이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은 우리가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믿는 대로 되리라’ 그러기에, 요게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입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이제 이 겨자씨 믿음의 일호 이호 삼호의 절대성 셋이 있다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간직하고. 그러면 이 겨자씨 믿음은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이니까 우리는 받아 가지면 된다, 받아 가지면 된다.

그러면 받아 가지는데 뭣부터 하나님이 주시느냐? 절대성의 일호부터 주신다, 일호 주시고, 이호 주시고, 삼호 주신다, 일호 주시고 이호 주신다, 요거 참 알기가 어려운데 요걸 요게 무슨 말인지, 뭐 그 말이 그말 같고 못 알아듣기 쉬운데, 요것을 그저 여게 교역자들이 알아들으면 됐어. 교역자들이 알아들을 교역자들이 그렇게 있을란지? 또 이 권사들이나 권찰들이 알아들으면 됐어. 장로들이 알아들으면 됐어. 가르치는 사람이 알아들으면, 반사들이 알아들으면 됐겠는데.

요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데 제일 처음에 주시기를 절대성 일호를 줍니다. 절대성 일호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거, 고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리 해라 하는 고것을 발견을 해 가지고, 발견한 고대로 자기가 할라고 시작하는 고것이 일호를 받는 것입니다. 일호를 받는 것. 일호를 그 절대성의 일호를 자기가 받는 것인데, 일호를 받고, ‘아, 요것은 요 내 현실에서는 요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하나님의 뜻이니까 요 뜻대로 하는 것은, 요것이 겨자씨 믿음이기 때문에 이거는 전지 전능의 행위요 완성의 길이다’ 요것을 자기가 이제 배웠기 때문에 깨닫고, 요 현실에 뭐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는 갈래길이 수많은 갈래길이 있지마는 거게서 자기가 양심을 써 가지고서, 성경을 보니까 요래도 성경에 맞은 거 같고 조래도 성경에 맞은 거 같고, 성경에 맞은 거 같기 때문에 뭐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바로 하고 옳게 할라고 정말, 다른 욕심을 미혹을 다 버리고 바로 하고 옳게 할라고, 양심을 써서 바로 할라고 옳게 할라고 애를 쓰니까 자기에게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서 요렇게 해라 하는 고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자기에게 요렇게 해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고것이 양심이,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문에, 소개하는 것이, 성령을 소개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문에 양심대로 ‘요 현실에서는 요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요렇게 자기가 깨닫게 될 때에 깨달은 고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나 안 맞나 고것을 재심사해 가지고 조사를 하는 데에는 뭘로 가지고 조사합니까?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상고해 봅니다. 상고해 보면, ‘아, 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고거 보면은 `아, 요거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됩니다. 말로 하니까 이렇게 더디지 자기가 요 생활 하면은 즉각즉각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물으면 이렇게 저렇게 단박 딱딱딱딱 말할 수 있을 만치 고렇게 선별하기가 처음에는 어려워도 나중에 능숙해지면 그저 선별하는 것이 쉽다 그거요.

이런데,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바로 찾았다 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틀림없이 바로 찾았다 합시다. 바로 찾았으면, 이제 바로 찾았으니, 그러면, 절대성 일호를 자기가 지금 받을라고 하고 있는데 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요 바로 찾은 것이 요것이 절대성 일호를 받아 가진 것 아니고, ‘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요대로 하면 이는 능치 못함이 없다. 요대로 하면 전지 전능이 주동이 돼 가지고서 요 일을 이루어 주신다.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는데 요 뜻대로 하는 요 행위는 전능의 행위요, 전지의 행위요, 주권자의 행위요. 만왕의 왕의 행위요, 만주의 주의 행위이기 때문에 요 행위는 피조물들이 피해 주지 못한다’ 하는 요 사실을 확실히 믿는, 자기 현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요런 권위가 있다 하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믿을 때에 고것이 절대성의 일호를 받았습니다. 알겠습니까? 절대성의 일호를 받았소.

암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 할지라도, ‘아, 이게 하나님의 뜻은 뜻이지마는 이래 하다가는 죽겠는데, 이래 하다가는 낭파가 되겠는데, 이게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지마는 이와같이 한다고 해서 이게 정말로 전능의 행위가 되며 전지의 행위가 되며 만왕의 행위가 되겠느냐? 모든 피조물이 다 달라들어도 해할 수 없는 그런 그 능력 있는 행위이겠느냐? 하는, 그것이 믿어지지 안하면 그 사람은 절대성의 일호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일호에, 하나님의 뜻을, 고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기는 깨닫지마는 깨닫는 고대로 하면은 지극히 큰 능력이 같이 한다는 것을 인정치 않기 때문에 절대성의 일호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절대성의 일호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고때에 고 사실을 믿고, 믿고 난 다음에 자기가 믿는 대로 고대로 행합니다. 믿는 대로 고대로 행합니다. 그러면, 고렇게 발견하고 발견한 고대로 자기는 실행을 합니다.

그러면, 실행하면은, 발견하고 고대로 실행하면 고것이 하나님에게 피동된 행위입니다. 고것이 절대성의 일호를 갖추었습니다.

일호를 갖췄으면 이호를 이제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호를, 모든 피조물을 다 능가할 수 있는, 피조물을 이길 수 있는, 피조물을 자기가 다 이기고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환경에 지배받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된 고 행위를 고대로 계속하고, 계속하는 것을 환경은 계속하지 못하게 하고, 계속할라 하고 계속하지 못하게 할 때에 계속을 하고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공을 하지 못하고 계속하는 것은 고대로 계속을 했으면 요것이 환경을 이긴 것이 되고, 고라다가 계속하지 못하게 할 때에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됐으면 고 환경은 이 사람을 이겼고, 세상은 이겼고, 이 사람은 세상에게 졌기 때문에 제이호의 절대성을 받지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제이호의 절대성을 받지 못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제이호의 절대성을 하나님께서 그것도 우리에게 줍니다. 절대성은 우리에게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호의 절대성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면 주는 것은 어떤 때 주는고 하니 내가 절대성의 일호를 그것을 계속할라고 하니까, 계속할라고 하니까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그 현실을 만들어 줍니다.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그 현실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 현실이 처음에는 요렇던 현실이 나중에는 그 악화된 현실로써, 계속하지 못하는 현실로 바꿔져 버린다 그말이오.

바꿔져.

다니엘이 이제까지는 하나님께 얼마든지 기도를 했었는데, 기도를 했으니 기도한 그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그 절대성 일호를 받아 가지고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데 그때에 갑자기 그 나라에 무슨 변동스러운 일이 턱 생겨 가지고서 하나님께 기도를 못 하게 딱 막는 그런 현실을 탁 닥쳤습니다. 그러면, 현실이 닥쳐서 다니엘로 하여금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 현실이 딱 닥쳤습니다. 닥친 그것이 뭐이냐? 겨자씨 믿음의 제이호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때입니다. 바로 그것이 제이호를 나에게 주시는 때입니다.

때인데, 그때에, 기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국령이 내렸고 왕의 조서가 내렸고 하는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다니엘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명령이 내리고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잡아 던진다고서 이렇게 명령이 내렸으니까 세상이 다니엘의 겨자씨 믿음, 겨자씨 믿음 중에는 다니엘이 기도하는 겨자씨 믿음 말이오. 기도하는 겨자씨 믿음을, 믿음을 받아 가지고서 지금, 겨자씨 믿음의 일호를 받아 가지고서 일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호 생활하고 있으니까 일호 생활하지 못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 넣는다 잡아 죽인다 하는 그런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역사가 왔다 말이오. 역사가 왔으니까 고 역사를 누가 만들었는고 하니 고 역사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알겠습니까? 고 역사를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껍데기 보면은 다니엘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역사인데, 다니엘이 고때에 기도하지 못하게 환경이 주는 역사인데 고때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제이호의 절대성을 다니엘에게 주시기 위해서 속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사람 보기에는 제일호의 절대성을 꺽기 위해서 만든 거와같이 고렇게 보여지기 쉽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때에 이제 다니엘이, 막았을 때에, 막았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일호, 자기가 겨자씨 믿음 절대성 일호를 지금, 일호의 신앙, 일호의 겨자씨 신앙을 자기가 신앙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다니엘의 이 일호 절대성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강한 세력이 와 가지고서 방해를 하게 되는 그때에, 고때가, 방해를 하는 고때가,-요걸 여러분들이 믿어야 됩니다. 잘 알아야 되지, 요거 무슨 말인지.-방해해서 절대성 일호를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그 방해물이 생겨졌는데, 기도하면은 사자 구덩이 집어 넣는다는 방해물이 생겨졌는데 고것이 뭐이냐? 이호의 절대성을 하나님이 주시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호의 절대성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을 절대 이기는, 세상을 절대 이기는 그 절대성 겨자씨가 썩지 안하고 흙을 잡아 먹고 오히려 움이 자라는 거와같이, 움이 자라는 거와같이. 자라는 그거 절대성 아닙니까? 움이 자라는 것, 이호 절대성. 고때가 겨자씨 믿음의 제이호의 절대성을 하나님이 주시려 하기 위해서 고렇게 만든 이 사실을 자기가 알고 요 사실을 알고 ‘아, 이제는 제 이호의 절대성을 나에게 주실라고서 이와같이 지금 하고 있구나, 이것은, 주님이 세상으로 하여금 나하고 서로 접전하게 만드는 것은 이 겨자씨 믿음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요 복종이 요것이 세상을 이기나 못 이기나 이제 세상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요것은 세상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요 사실을 만들었고 또 내 겨자씨 믿음이 세상을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요 방해물의 기도하지 말라는 이 역사가 일어났고 사자 구덩이가 일어났다.’ 일어났는데, 고것을 고럴 때에 ‘아, 요때가 겨자씨 믿음은 환경에게 지지 안하고 이기면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같이 되어진다. 그러나 지면 썩어 버리고 만다.

그러면 요것은. 겨자씨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땅 속에 거름 기운이나 수분이나 온도가 많이 오면 많이 올수록이 속히 자라고 무성하게 자라지 절대 생명은 그것들에게 삼키지는 않는다, 내가 주님의 뜻에 복종해서 그분에게 피동됨으로써의 내 행동한 요 행동, 피동됨으로써의 내가 기도하는 행동은 하나님에게 피동된 요 행동이니까 요거 겨자씨의 일호의 특수성을 내가 받아 가지고 일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데 요 일호 생활한 요 일호의 제이호 절대성은, 이호의 절대성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 이호의 절대성이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요 순서가 왔다. 순서가 왔다. 이러니까, 이 세상이 나를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이것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잡아 먹으라고 지금 이게 온 것이니까 내 밥이다’ 요걸 자기가 미리 알고 믿는 것이 고것이 지금 이호의 절대성 신앙을 받아 가질 수 있는 고 신앙인 것입니다.

가지고, 가지고, ‘내가 일호는 하나님하고 나하고 합작돼 가지고, 하나님하고 나하고 연결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 하나돼 가지고서 움직이는 일호 생활을 해 나왔는데 절대성의 일호 생활을 해 나왔는데, 하나님과 나와 하나돼 가지고 행하는 일호 생활 이것은, 이 생활은 전능자의 생활이요 전지자의 생활이요.

창조주의 생활이요, 대주재의 생활이요, 만왕의 왕의 생활이요, 만주의 주의 생활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해하지 못한다, 이 피조물이,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는다 이렇게 온 전국이 달라들지마는 그거는 피조물이다. 내가 이 겨자씨 믿음의 일호 생활하는 것은 조물주 창조주와 동행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피조물과 창조주와 둘이 붙으면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삼켜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절대성 일호 생활, 주님에게 피동된 요 생활 하는 것은 전능자의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생활이요 창조주의 생활이오, 대주재의 행동이기 때문에 요 행동을, 행동이니 요거는 피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피조물을 능가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다만 내가 주님에게 피동되는 피동으로써 주님과 연결돼 있는데 요 연결이 끊어지면 바싹 깨진다.’ 알겠습니까? ‘연결이 끊어지면 바싹 깨진다. 요 연결만 끊어지지 안하면’ 연결이 뭘로 연결인데? 주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기도하는 것이 연결 아닙니까? 기도하는 요것을 양보만 안 하면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양보 안 하면 연결이 끊어지지 안한다. 양보 안 하면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니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면, 이 피조물들, 파사 나라에서 마구 떠들고 하지마는 요 연결만 끊어지지 안하면은 결국은 요 파사 나라는 완전히 나의 밥이 되고 만다. 요거 완전히 삼켜지고 만다’ 요것을 자기가 깨닫고, 고 하나님과 연결을 끊지 안할 때에는 연결을 끊지 안하니까 고 겨자씨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예? 생명이 있지.

살았지. 살았으면, 살았으면, 비료 기운 오니까 더 무럭무럭 더 자라지.

‘하나님의 뜻을 내가 발견하고 요대로 행하는, 요대로 순종하는 요 순종 행위 믿음 행위 요것을 내가 중단만 안 하면 전능자와 연결된 전능의 행위이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이 와도, 어떤 피조물이 와도 이것은 내가 잡아 먹고 내가 자라갈 수 있는 내 밥이다’ 알겠습니까? ‘밥이다. 이것은 다 내가 잡아 삼켜서 잡아먹을 것이지, 이거는 겨자씨 믿음의 이호의, 이호의 절대성을 지금 이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이호의 절대성을 나에게 주시는 시기다.’ 이호의 절대성을 나에게 주시다니? 하나님이 뭘 줘? 하나님이 고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고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 말이오.

이거 뭐 얼마나 어려운데, 어려우니까 못 알아 들으면 못 알아 들어요. 자꾸 그러면 기억만 하고 있으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주시다니? 이호의 절대성을 준다 말은 일호가, 일호가 이호를 잡아 먹을 수 있는 이호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이호를 나에게 주시는 것이니까 이호가 왔는데 내가 일호를, 일호는 하나님과 연결인데, 연결인데, 일호를 버리지 안하고 그 연결을 그대로 가지니까 이호를 잡아 먹게 되고 양식을 먹어서 먹은 것만치 쑥 자라 버렸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연결이니 이 연결만 끊지 안하면은 파사 나라가 다 달라들면 이 파사 나라는 나라는 좋은 요리가 되고 고급 요리가 되고 내 밥이 되어 가지고서 이 파사 나라를 잘 잡아먹고 이제 나는 벌컥 크겠다 요 믿음을 가지고서 이 하나님과 연결을 끊지 안하고, ‘아, 사자 구덩이 넣어도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고 연결을 끊지 안하고 고대로 계속하니까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으니 사람 보기에는 다 실패 같았지마는 그 이튿날 아침에 파사 나라를 완전히 다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밥을 삼아서 다 먹어서 파사 나라는 완전히 다니엘의 밥이 돼 가지고서, 다니엘의 믿음의 밥이 돼 가지고서 다니엘은 아주 크게 됐습니다. 그래 해 가지고 그때 다니엘이 총총리를 했습니다.

혼자 단독 총리를 그때부터 하게 됐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그 뒤에 결과는 어떤 결과가 됐느냐? 하나님의 역사로 뽑는 역사, 그 파사 나라의 전 국민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 부인을 싹 뽑아 버렸습니다. 모든 범신론 무신론 그 모든 들어 있는 것을 다, 파사 나라의 백성들 속에서 확 뽑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불신을 확 뽑아 버렸고, 그 속에 이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팍 심어서 뭐 그 속에 전부 가뜩 가뜩 다 심어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사람들의 마음은 전부 하나님께로 다 옮겨 갔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에게 다 옮겨왔던 것입니다. 이래서 고 하나 비유로 고것도 예를 하나 들어서 말한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일호의 절대성을 받고 난 다음에 이호 절대성을 받을 때에는 어느 때인고 하니, 일호의 절대성을 까뭉캘라고 하는 그런 모든 세력들이 오거든 그때는 무슨 때냐 하면 이호의 절대성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다니? 현실을 당신이 만들어 가지고 나에게 주신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이호의 절대성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호의 절대성을 만든 그것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 그 겨자씨가 죽으면 헛일이지마는 겨자씨가 죽지만 안하면 됩니다. 그 이호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다니엘을 기도하지 말라는 그 명령이 내리고, 전국에 가뜩 찬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다니엘이 이제까지 기도하던 기도의 이 겨자씨가, 생명 있는 겨자씨가 생명 있는 겨자씨가 이제,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되어 있는 그 믿음이, 생명 있는 겨자씨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 믿음이, 겨자씨가 땅에 심기워지는 때입니다. 땅에 심기워지는 때. 알겠습니까? 땅에 심기우는 때라.

그때에 다니엘의 기도를 기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그 모든 세력들 일어나는, 이는 게 뭐이냐 하면은 다니엘의 생명 있는 그 신앙을 지금 옥토에다가 심는 때라 그말이오. 옥토에 심는 때라. 그러면 지금, 다니엘을 기도하지 못하게 전국이 조서를 내리고서 그와같이 온 전국이 동맹하는 그 운동이 그게 무슨 운동이냐? 그것이 뭐입니까? 그것이 다니엘의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는 그것이 뭐입니까? 그것이 뭐이요? ○○○ 목사. 그거 뭐입니까? 예? 옥토. 옥토 맞아요? 어찌돼요? 여게 여반들, 그거 뭐라고 해요? 답이 뭐이요, 그거? 그게 뭐입니까? 다니엘 기도하지 못하게 지금 막 전국에 조서를 내려 가지고 그래 했으니까 그거 그 운동이 뭐이지요? 예? 저 ○ 목사 사모 대답해 봐. 예? 옥토? 확실해? 못 알아듣는 거 같은데. 확실히 알아? 맞았어, 그래 옥토요 옥토. 알겠습니까? 그게 옥토라, 옥토.

옥토인데 옥토에다 푹 심었으니 생명 없으면 팍 썩어버리고 생명 있으면 그거 먹고 자랍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고 연결된, 고 신앙, 기도한다는 고거 하나님과 연결인데 고것을 양보하지 안하고 고대로 계속하면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고 모든 것은 다 삼켜서 자라게 되고, 고것을, 고만 고것을 배반해 버리면 팍 썩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뭐이냐? 세 가지 기적의 그 결실이 맺어졌습니다.

이러니까, 그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겨자씨 믿음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받으면 됩니다. 받으면 돼요. 받으면 되는데 제일 처음에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그대로 하는 것은 전지 전능의 행위인 줄을 알고 그대로, 전지 전능의 행위인 것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라고 시작을 해서 고대로 행하면 고게 뭐입니까? 고게 뭐이요, 고대로 행하면? 겨자씨 믿음의 몇호요? 겨자씨 믿음 몇호? 일호, 겨자씨 믿음의 일호, 겨자씨 믿음의 일호 그거는 그다음에 이호 삼호 말했지요? 말했는데, 그러면 일호 이것이 일호 이게 찾기 어려운 게 있고 쉬운 거 있습니다.

일호가 찾기 어려운 거 있고 쉬운 거 있습니다. 어려운 것은 어떤 게 어려운 건고 하니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기가 어려워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기가 어려워서, 이게 하나님의 뜻인가 저게 하나님의 뜻인가 이렇게 뜻을 바로 알기가 어려운 거 있습니다. 어려운 거 있고, 이거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이라, 그거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실히 알기 쉬운 그 숫자가 많으냐, 하나님의 뜻인지 뜻 아닌지 잘 구별하지 못하겠다 하는 구별하기 어려운 그 숫자가 많으냐? 구별하기 쉬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구별하기 쉬운 숫자는 삼분지 이쯤이나 되고 구별하기 어려운 숫자는 삼분지 일쯤도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면은 그것은 만능이요 전능인데 그보다 더 이상 큰 수입이 없고 그보다 더 큰 성공이 없는 건데, 그건 참 부자 방망이라, 뭐 만능이라, 전능이라, 이런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찾기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는데 어려운 것은 숫자가 적고 쉬운 것은 숫자가 많으니까 우리는 찾기 어려운 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지 말고 찾기 쉬운 것을 찾아서 행할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찾기 쉬운 것을 찾아 가지고서 행할라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찾기 쉬운 것을 찾아 가지고 행하면 될 터인데 왜 사람들은 찾기 쉬운 것을 찾아 가지고서 행하지 않는가? 않는 그 이유는 찾기 쉬운 것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행하기 쉬운 거는 찾기가 어렵고, 또 행하기 어려운 것은 찾기가 쉽습니다 찾기가 쉽소, 요거 기억하고 자꾸, 수학 배울 때에 그 모든 법을 외어야 되지 외우기전에는 안 되는 것처럼 외우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 겨자씨 믿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찾기 쉬운 것은 행하기가 어렵고 찾기 어려운 것은 행하기가 쉽고, 그러면 정반대라. 찾기 쉬운 것은 행하기가 어렵고 찾기 어려운 거는 행하기가 쉽고 이러니까 찾기는 쉽지마는 사람들이 행하기가 어려워서 고만 포기를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찾아 가지고서 이 겨자씨 믿음의 생활을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첫째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이 일호이기 때문에 바로 찾는 것이 문제인데, 바로 찾을라고 하니까 찾기 쉬운 것도 있고 찾기 어려운 것도 있으니까, 여러분들, 찾기 어려운 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지 말고 찾기 쉬운 것을 찾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찾기 쉬운 것은 대번 찾을 수 있는데 찾기 쉬운 것은 사람들이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찾기는 바로 찾아서 이거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지마는 행하기가 어려우니까 그것을 다 포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지식을 가지기를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바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하는 것은 그것은 무슨 행위입니까? 무슨 행위입니까? 자, 따라합시다. 고걸 단단히 가져야 돼. 요걸 알아야 돼. 요걸 모르면, 예수 믿는 거는 그냥 둥둥 하며 믿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거는 절대, 절대, 이 과학 그거보다, 과학 그까짓 거는 물리지마는, 과학 그건 물리지마는 물리인 과학도 물리에 삐뚤어지면 안 되는데 예수 믿는 것은 이 인간의 이 진리의 영리 신령한 진리이기 때문에 이거는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정확한지 모릅니다.

털끝만치라도 틀리면 안 돼. 백지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어야 참 효력을 가지지를 못 한다 그말이오. 한 마디도 바로 믿지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을 못 봐요.

오늘도 내가 전화 들으니까 막 하나님의 기적이 어떤 교회는 막 쏟아지는데, 막 쏟아져, 기적이 마구 쏟아져. 이제 앞으로 좋은 구경을 하나 할 겁니다. 요걸 바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자, 우리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하는 고것이 겨자씨 믿음의 일호이고, 상호 입니다. 자, 따라합시다.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바로 찾아! 행하는 것은! 전능 행위다! 전지 행위다! 만능 행위다! 주권 행위다! 하나님의 행위다! 창조주의 행위다! 피조물은! 여기에! 복종하는 거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고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은! 전지 전능 만능을 찾은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버리는 것은! 전지 전능 만능을! 버리는 것이요! 찾은 뜻을! 행하는 것은! 전지 전능! 만능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와도! 요것만 버리지 안하면! 그는 반드시 세상을 이기고! 세 가지 결실을 맺는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천번 만번 하십시오. 천번 만번해서 몸에 꽉 배도록 하십시오.

이성에 꽉 배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찾기 쉬운 것은 어떤 건 찾기 쉬운가? 여러분들, 찾기 쉬운 것이 더 많습니다. 자, 자기가 어떤 일이 생겼는데 거게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정직한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게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소? 예? 그러면 거게서 정직한 말도 할 수 있고 거짓말도 할 수가 있는데 거게서 정직한 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뜻 아니냐 하는 그거 더듬을 이유가 있습니까 더듬어 볼 필요가 없습니까? 예? 더듬을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남녀가 음행해야, 음행을, 칠계를 범해야 될 고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러면 칠계를 범하지 않을라고 하는, 범하지 않는 고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혹 뜻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까? 예? 어떻습니까? 고거 범하지 안할라고 하는 것이, 안 하는 것이 고것이 하나님의 뜻이 확실합니까 혹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까? 아닐 수도 있겠습니까? 혹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그건 틀림없이 하나님이 뜻이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아, 우리집에 뭐 없는데 남의 집에 뭘 좀, 저 집에 있으니까 저걸 좀 도적질해 와야 되겠다’ 그러면, 도적질해야 되겠다 하는데, 그 도적질을 해 와야 되겠는데 도적질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형편도 있고 도적질할 수도 있고 모든 게 가능한데 고때에 도적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안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자, 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기 쉽습니까 알기 어렵습니까? 알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쉬운 것은 죄를 지어야 할 그때에 죄 짓지 않는 것은 고건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악을 행할라고 할 때에 악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우리 생활에서 하나님이, 요거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여러분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예수 믿다 보니까, 예수를 믿다 보니 이는 주일도 지키고 뭐 새벽 기도도 나가야 되겠는데 공장을 갈라 하니까 새벽 기도도 못 나가겠고 주일도 못 지키게 되겠고 성경도 못 보게 되겠고 그저 직장만 가 가지고서 일만 하고 그런데, ‘이래 가지고 안 되겠다, 자, 내가 예수 믿으면 주일은 지켜야 되겠고, 아무래도 주일은 지켜야 되겠고, 그래도 다른 거는 못 해도 주일은 지켜야 되겠는데 주일을 지키고, 이 공장에 일을 못 해도 주일을 지키는 게 옳겠나 주일을 내가 그만 못 지켜도 이 돈벌이를 하는 게 옳겠나? 그럴 때에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일까요? 어떤 것이겠습니까? 주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고런 거는 좀, 고런 거는 도적질해야 될 때에 도적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안 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냐 고것보다는, 자, 이거 주일을 지키고 이제 가족을 배를 골리나 주일을 범하고 가족들 잘 먹여 살리나, 요래 볼까 조래 볼까, 고거 주일을 지키나 안 지키나 하는 고것이 도적질할 수 있을 고 입장에서 도적질하나 안 하나 하는 고거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보다 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예?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고건 좀 어렵습니다. 죄 안 짓는 것도 어려운 거 쉬운 거 있소, 그러니까, 어려운 거 냅두고 쉬운 것부터 하십시오.

이거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면, 행하기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는데,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실히 알고 고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가지고 찾아 가지고 고대로 행하는 고것이 뭐이라요? 겨자씨 믿음. 겨자씨 믿음인데, 그러면, 고렇게 지금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하는 고것은 겨자씨 믿음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겨자씨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겨자씨 믿음을 지키고 있는데, 그러면, 겨자씨 믿음에, 그 겨자씨 믿음에 크고 작은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까 그저 겨자씨 믿음으로만 말했습니까? 겨자씨 믿음에, 하나님의 뜻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데 큰 뜻을, 하나님의 큰 뜻을 따라서 행할 때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같이하고 작은 뜻을 행할 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작게 하고 그렇습니까, 큰 뜻을 행하나 작은 뜻을 행하나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기는 같이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작고 큰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는 것은 고것은 다 산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면 그 믿음은, 작다 크다 사람들이 구별하지 거게 전지 전능의 능력이 연결돼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연결돼 있는 거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겨자씨 믿음을 가질라고 할 때에 찾기 쉬운 것부터 행합시다. 찾기 쉬운 것부터 찾기 쉬운 것은 뭐이 어려워요? 행하기가 어려워요.

행하기가 어려운데, 찾기는 쉬워서 찾기는 찾아 놨는데 행할라 하니까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는, 기도하지 말아라 할 때 기도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는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예? 쉽습니다. 행하기는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려우면, 이거는 어려우니까 하기 힘들어 못 하겠다, 이거는 하나님의 뜻은 뜻이지마는 행하기가 쉬우니까 행하겠다 이라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전지 전능의 행위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 요걸 알아야 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뜻을 내가 찾기 쉬운 것이든지 어려운 것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행하기 어려운 것이든지 쉬운 것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대로 실행을 할 때에, 고대로 실행을 할 때에 그때에 계속하지 못하도록 어려움이 오는 그것은 뭣 하는 때라고 했습니까? 고거는 뭣하는 때라고 했소? 예? 뭣 하는 때라고 했습니까? 고거는 뭣 하는 때라고 했소? 예? 또 다 잊어 버렸는가배. 이호 절대성을 주는 때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호 절대성을 주는 때. 또 고거는 또 지금 겨자씨를 어떻게 하는 때입니까? 예? 땅 속에 심는 때입니다. 땅 속에 심는 때. 그게 땅 속에 심는 때인데, 겨자씨 믿음을 심는 때인데, 그러면, 겨자씨에게 생명이 있으면 땅에 심기면 흙을 잡아 먹습니까 흙에게 삼켜서 썩습니까? 잡아 먹습니다.

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고 순종만 변동하지 안하면, 순종,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이 끊어지지만 안하면 말이오. 생명이 끊어지지만 안 하면, 순종하는 것이 끊어지지만 안하면 결국은 자기 주위 환경에 천이 달라들면 천을 다 이길 수 있고, 만이 달라들면 만을 다 이길 수 있고, 전국이 달라들면 전국을 다 이길 수 있고, 온 세계가 다 달라들면 세계를 다 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고렇게 계속만 하면, 생명있는 믿음을 계속만 하면 생명 있는 믿음을 방해하는 것은 많든지 적든지 다 삼킬 수 있다, 그러면 삼킬 수 있다.

그러면 삼키는 것은, 삼키는 것은, 삼키는 것은 누가 삼킵니까? 그 사람이 삼킵니까 겨자씨 믿음이 삼킵니까? 녜? 겨자씨 믿음이 삼킵니다. 겨자씨 믿음은 그 사람이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습니까? 그라면 흙을 삼키는 거는 겨자씨가 삼키는데 겨자씨가 삼키는데, 겨자씨가 삼키는 것이니까 이제 누가 그렇게 겨자씨로 하여금 삼키도록 하십니까 사람이 합니까 하나님이 합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요것을 자꾸 해 가지고서 해석을 해서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신앙 생활 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신앙 생활하는 고 신앙 생활은 전능의 생활인데 고 생활을 할 때에 방해하는 세상이 많이 옵니다. 방해하는 세력이 많이 옵니다. 방해하는 세력이 오면 그 세력을 내가 이겨야 됩니까 내가 연결하여 있는 고 믿음이 이기게 합니까? 고 믿음이 이깁니까 내가 이깁니까? 믿음이 이깁니다. 그러면, 고 믿음이 이기면 내가 고거 방해하는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고거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이래 배워야 여러분들이 감감하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모르는데, 이제 공과를 가져가서 자꾸 읽고 기도를 많이 하면은 이제 알아질 것이오. 요것만 알면 다 돼.

이것만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뒤숭스러울 게 없어. 진리는 하나입니다.

자꾸, 모르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외워요. 겨자씨 믿음은 전능이라, 겨자씨 믿음은 전능이라 자꾸 이렇게 익혀서 꽈악 배도록 해 놓고 난 다음에, 아, 겨자씨 믿음이 뭐꼬?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하나님께 피동되는 것이 겨자씨 믿음이 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전능이라, 말이냐? 현실에서 하나님께 피동되면, 그러면, 하나님께 피동은 전능이다. 하나님께 피동은 만능이다, 하나님께 피동은 대주재의 행위다 하나님께 피동은 만주의 주의 행위다 만왕의 왕의 행위다 이제 하나님께 피동된 행위를 피조물이 어떻게 하겠느냐! 왜 하나님에게 피동된 행위를 하면서 왜 세상 세력을 두려워 하느냐 말이오! 하나님께 피동된 행위를 하는데 방해하는 것이 많으면 수입이 적습니까 큽니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하나님께 피동된 그 행위에 대적이 적어야 좋습니까 많아야 좋습니까? 대적이 강해야 좋습니까 약해야 좋습니까? 약한 것보다 강하고 많아야 좋지. 반드시 이기는 거는 틀림없기 때문에! 이기는 건 절대성이오. 이기는 건 절대성이오.

이기는 건 절대성. 이 생명이 끊어지지 안하면 생명은 환경과 주위를 먹고 자랐지, 자라는 게 절대성이라 말이오. 요 삼대 절대성이라는, 여게다가 절대성이라는 것을 붙여 가지고 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깨닫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요 절대성을 붙여서 요렇게 지금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모르면 이 겨자씨 믿음의 이치는 절대 모릅니다. 참말로.

이러니까, 우리가 요걸 자꾸 믿음을 만들어야 돼요. 아, 하나님의 뜻을, 언제? 과거에서? 미래에서? 아니야. 현실에, 자기 고 현실에 요 혈실에 내가 요라나 조라나, 내가 마음을 요 마음을 먹나 저 마음을 먹나, 자, 우리가 현실에 마음을 가졌는데 그 마음에 불평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불평스러운 마음이 있으면 그거는 하나님의 뜻일까 뜻 아닐까? 한번 생각해 봐요. 저 안경 쓴 저 무슨 조사이지? 저 서울서 온 조사님. 우리 마음에 불평한 마음이 나오는데 불평을 품는 고거는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아닙니까? 확실히 아니지, 그래.

불평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불평을 안 품는 고거는 뭐이요, 그라면? 불평을 안 품는 고거는 뭐이라? 불평 안 품는 고거는 뭐이라? 불평을 안 품는 고거는, 안 품는 게 뜻이라면, 그라면, 안 품는 게 뜻이라면 불평을 안 품는 고거는 무슨 행위야? 그러면 그거 또 무슨 행위야 피동된 행위인데? 예? 전능의 행위. 거게 다 알아야 돼. 전능의 행위 거게까지 다 알아야 돼.

그러면, 우리가, 낙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겠소 아니겠소? 또 뭐이냐? 낙망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겠소 아니겠소? 예? 낙망하는 거, 낙망하는 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의 뜻 아니지. 그러면 낙망을 하다가, 낙망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는 것은 고거는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뜻이지. 그러면, 뜻이면 그거 뭐이지? 전능의 행위지. 이렇게 믿으라 말이오! 못 믿는 게 아니라. 모른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마음에 분해서 지금 복수할라 합니다.

‘이거 복수를 해야 되겠다’ 복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예수 믿는 사람이 복수하는 게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아니지. 그러면 복수하는 마음을 돌이켜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큰 사랑과 공로로 대속했는데 내가 복수하는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 그러면 복수하는 마음을 회개를 하고 ‘내가 복수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 그러면, 그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고 축복하라고 했으니까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옳다’ 고 마음을 가지고서 이제 기도하고 그를,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까 원수 사랑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 고 마음은 뭐이지? 그 마음은 무슨 마음이지? 고 마음은 능력이 얼마나 많지? 전능의 마음이라. 전능의 기도라. 이런데 알맹이 있는 기도는 다 빼내 버리고 알맹이 없는 전능이 없는, 능력 없는 기도만 자꾸 하고 있어. 능력 있는 기도는 안하고, 능력 있는 행위는 안하고.

오늘 밤에 여기서 겨자씨 믿음, 생명 있는 믿음,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은 그는 전능의 행위라. 요것을 여러분들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저 겉어머리. 똑 수박 겉 핥듯이 죽 그래 가지고는 아무 소용없어. 거기서 썩어 버리면, 겨자씨가 썩어 버리면 헛일이라. 자기에게 대해서 무슨 직장 문제, 또 무슨 지위 문제, 권세 문제, 경제 문제, 가정 문제,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고때에, 자, 내가 여게서 겨자씨 믿음을 해야 전능의 행위를 하겠는데 겨자씨 믿음을 하는 것은 어떤 걸까, 요 현실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순종일까, 어떻게 하는 게 순종일까 요것을 딱 발견해 가지고, 발견했으면 ‘아, 요 순종을 발견하기는 했다.

그러면 요 순종은 전능의 행위다.’ 내가, 이 순종은 전능의 행위인데 전능의 행위를 할 때에, ‘아이구, 이 행위할라 하면 방해물이 많다.’ 방해물이 많으면 전능의 행위를 어떤 자가 방해하겠느냐? 만주의 주의 행위를 어떤 것이 방해하겠느냐? 만왕의 왕의 행위를 어떤 것이 방해하겠느냐? 주권의 행위를 뭐이 방해하겠느냐? 요것이 인제 겨자씨 믿음이 돼 나가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사는 것은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 떠나서는 골만 빠졌지 헛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전부 인본으로 가지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지 안하고 제 힘 가지고 하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처음에 ‘너를 부인해라’ 자기를 부인해라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밤에 요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너무 복잡하고 많은 것이나마 겨자씨 믿음을 찾는 데에는 찾기 쉬운 것부터 찾아 가지고, 찾기 쉬운 거을 찾기만 찾았으면, 자, 찾기는 쉬운데 행하기 어렵습니다. 찾기는 찾았습니다.

그다음에 행함은 어떻게 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찾기는 쉬워,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찾기는 찾았는데 그대로 행할라고 하니까 어렵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행위가 어떻다는 것을 알면 어려운 행위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어려운 행위가 있겠소 없겠소? ○○○ 목사님.

없지! 없어. 안 믿으면 있지. 믿으면 없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고대로 행하는 것은 전능의 행위인데 전능의 행위를 피조물이, 창조주의 행위인데 어떻게 할 건가 말이지. 안 믿으면 안 되지만 믿으면 해. 믿으면 하면 고것이 제이 절대성을 얻게 되면은 제삼 절대성이 고다음으로 따라온다 그거요.

그러니까, 자, 그래 가지고서 자꾸 찾기 쉬운 것은. 찾기 쉬운 행위는 하기가 어렵지마는 믿음이면 다, 믿으면 다 할 수 있어. 찾기 쉬워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고대로 하는 행위는 전능자의 행위요. 왜? 전능자하고 나하고 둘이 연결이 됐으니까, 전능자는 내 머리가 되고 나는 전능자의 몸이 됐으니까, 나는 그의 수족이 됐고 그는 내 머리가 됐으니까 그분에 따라서 피동되는 것은 그분이 하는 것 아니오? 내가 이 종을 거머쥐고 이래 자꾸 이래 이래 흔듭니다. 이래 흔들면 이거 종이 무슨 책임이 있소? 내가 거머쥐고 흔드는데, 내게 책임이 있지 그러면 당신이 나를 거머쥐고 흔들 때 내가 그대로 움직이는데 그대로 움직이는 것을 반대하면은 나를 반대하는 것이지. 내가 자꾸 이래 종을 이래이래 흔드니까 이래 하니까 ‘아, 시끄럽다’ 이라면 종 흔든다고 반대하면은 종 반대요 나 반대요? 예? 종이 반대하는 거라 나를 반대하는 거라? 뭐이야? 아, 내가 종을 이래 흔드는데 종인 땡땡거린다고서 사람들이 욕을 하면서 종을 욕을 하면은 그 종 욕하는 거야 나 욕하는 거야? 예? 나 욕하는 거지. 그런 거 아니오? 내가 이거 거머쥐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내게 있다 말이오. 왜? 주님에게 피동되어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은 주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우리가 확실히 알지 않습니까? 확실하지 않습니까? 의심할 게 뭐 있겠소? 그러기 때문에 전능의 행위라 그말이오.

이렇게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하니까 겨자씨 믿음을 지켜 보니까 재미가 뭐이 있는고 하니,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서 처음에 그 절대 일호는 재미가 없지 절대 일호는 재미가 없지마는 이호를 하고 나니까 재미가 있소 없소? 예? 이호 하고 나니까 재미가 있소 없소? 재미가 있지. 또 삼호하고 나니까 재미가 있소 없소? 그러면, 이래 가지고 겨자씨 믿음이 일호 이호 삼호가 이렇게 되는 것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하니까 그래 그 사람이 만능을 하고 모든 만 가지에 성공을 할라고 하면은 성공하는 비결이 어데 있습니까? 성공하는 비결이 어데 있다고 생각하겠소? 자, 성공하는 비결이 어데 있다고 그 사람이 생각을 하겠습니까? 또 모르네. 겨자씨 믿음에 있지. 겨자씨 믿음에 모든 성공이 다 거게 달렸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그 사람의 전심 전력이 어데 기울어질까요? 금 파는데 가 기울어지겠소, 직장 가는 데 기울어지겠소, 전심 전력이 겨자씨 믿음 생활하는 데에 기울여지겠소? 겨자씨 믿음 생활하는 데에 기울여지지. 겨자씨 믿음 생활하는 데에 기울여지다니? 그 사람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인다 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겨자씨 믿음 생활하니까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일 거 아닙니까? 이 사람이 현실에서는, 현실에서 돈이 어찌 될꼬, 지위나 권세나 그런 거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현실에서는, ‘아,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만 바로 찾아 가지고 고대로만 하면은 전지 전능이다’ 이러니까, 현실에서 그사람 전심 전력은 뭐 하는 데다가 기울어지겠소? 예? 좀 큰 소리 해 봐요. 하나님의 뜻 찾는 데에 전심 전력은 기울어지지. 하나님을 뜻 찾는 데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이라는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전심 전력이 기울어지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찾을라고 막 돌아다니니까 당신은 놀려 먹느라고 저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봉사 잡듯이, 봉사 서로 잡듯이 말이오.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이건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찾고 다니는데 하나님은 그 뜻을 요리 가져가고 조리 가져가고 자꾸 속여서 못 찾도록 이렇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그 뜻을 우리에게 알리고저 하는 고것이 하나님에게는 어떻습니까? 속이는 하나님입니까, 전심 전력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알려 줄라고, 바로 알도록 알려 줄라고 애를 쓰기를 전심 전력하고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알려 줄라고 전심 전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알려 줄라고 전심 전력 나는 알라고 전심 전력, 둘이 서로 원해서 막 찾고 있는데 들어 만나겠소 못 만나겠소? 만나겠소 못 만나겠소? 필연적으로 만나지. 우리가 신앙 생활이라는 건 이래 가지고 성장돼 나가는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생각하면서 진리를 뽈끈 거머쥐고 놓지 맙시다. 딴데 가면 잊어 버려집니다. 지금 단단히 새겨서 확정을 지워 놓고 집에 가서 기록을 해 놓고 자꾸 새겨서 천번 만번 외우십시오. 겨자씨 믿음 생활은 전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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