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

 

1989. 1. 20. 금야.

 

본문: 마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겨자씨 비유에 중요한 점 하나는 한 군데 심기워져 가지고 요동치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계속 자라야 성공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의 특수점입니다. 이리저리  옮겨서 그렇게 쁩혀지면 그만 죽습니다. 겨자씨는 식물인고로 땅에서 뽑히면  죽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는 예수님의 이 대속의 사랑 속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종교는 그거는 이것 믿었다가 저것 믿었다가 이렇게 해도 항상 뭐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기독교는 생명의 도이기 때문에 자기가 뿌리를  옮기면 안 됩니다. 옮기면 안 된다는 것은 뭐 이 노선에 있다가 저 노선으로 가고  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믿는  이 믿음에 뿌리박아 가지고 된 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리 오랫  동안 신앙 생활 했다 할지라도 벌써 그 사람이 기독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면 그 사람은 그만 망해 버리고 맙니다. 기독자로서는 개종해 가지고 그냥 견딘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을 여게 특별히 여게 하나 뜻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이 종교 믿다가 저 종교 믿고 뭐 이래 저래 자꾸 개종을 할 수  있지마는 기독교는 개종하면 망합니다. 기독자가 불교로 간다든지, 무슨 다른  회교로 간다든지, 다른 또 이종교 뭐 그런 유교로 간다든지 이렇게 해서 기독자가  개종하면 망한다 하는 그것을 여게 하나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다른 종교는  이리 했다가 저리 했다가 개종을 해도 뭐 별 화가 없고 그대로고, 또 다른 종교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되면 죽었던 것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개종하면  망합니다.

 기독자가 개종하면, 마치 겨자씨가 땅에 심긴 것이 뽑히면 뿌리가 드러나면 그는  마르는 것처럼 기독교는 개종하면 망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주관의 도가 아니고  객관의 도이기 때문에 그가 배반을, 개종을 해서 배반했을 때에는 그는 벌써  생명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비참한 멸망뿐입니다.

이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이지마는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겨자씨는  땅에 심기워지면 자랍니다. 생명이 없으면 땅에 심기우면 썩는 것이 다 전  이치인데 이 기독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라는 세상에 처할지라도  썩어지지 않습니다. 흙이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흙을 만드려고 하는 것이 흙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쇠도 들어가면 썩혀서 흙 만드려고 하고 나무도 들어가면  썩혀서 흙을 만드려고 하고 뭐 이런 동물들도 훌 속에 들어가면 썩혀서 흙을  만드려고 하는 것이 그게 흙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흙은, 밭은 세상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이 세상이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세상 제것을 만드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 이 세상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잘난 사람도 세상 것을 만드려고, 못난 사람도 세상 것을 만드려고,  학자들도 세상 것을 만드려고, 뭐 유력한 과학자 문학자 예술가 뭐 용사 할 것  없이 이 세상은 다 자기 것을 만들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자기 것을  다 만듭니다. 흙은 다 제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것은 흙이 제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왜?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흙이 생명 있는 겨자씨를 썩혀 가지고 같은 흙을 만 드려고 이렇게  노력을 해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썩히려고, 흙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그 모든  운동들과 그 요소들이 오히려 생명의 양식이 되어 가지고 생명의 밥이 돼서  생명이 그런 것들을 먹고 자라게 되는 거와 같이 기독교는 아무리 세상이 세상  제것을 만드려고 해도 참 생명 있는 기독자들은 세상의 것이 되지 않고 세상의  것을 만드려고 할 때에 도리어 세상을 기독자가 잡아먹고 자라고 강건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가리켜서 밥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게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하는 이 겨자씨로 이렇게 비유한 이것은 우리의 기본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우리의 중생된 생명을 가리켜서 이래 겨자씨로, 중생된 생명을 비유해서 겨자씨로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겨자씨를 썩히려고 거게는 뭐, 그전에 겨자씨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겨자씨를 썩히려고 첫째는 썩히는 수분이 올 때에 그 수분에게 삼키워져서  썩어지지 않고 도리어 수분을 그것을 흡수해서 양식을 삼아 이 생명이 먹습니다.

 또 흙 기운, 흙이 와 가지고 이렇게 썩히려 할 때에 흙의 지기라고 있는데, 땅  기운이라고 있는데 지기를 또 겨자씨가 먹어 가지고 제 양식을 삼아서 겨자씨가  자꾸 눈이 터오르고 자꾸 이렇게 자라게 됩니다.

 또 이 땅에 있는 것을 썩히려고 하는 거름 기운이 읍니다. 거게는 땅속에는  여러가지 거름 기운이 있는데 이 거름은 무엇이든지 오면 썩혀 버립니다. 썩혀서  흙을 만드는 비료 기운이 있는데 비료 기운 이것도 생명 있는 겨자씨는 썩히려고  오면 썩지는 않고 그 비료 기운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또 거게 있는 것은 뜻뜻한 온도가 와 가지고 이 겨자씨를 썩히려고 하는데 생명  없는 거는 그만 온도가 오면 썩어 버립니다. 썩지마는 생명 있는 거는 썩지 않고  그 온도를 먹고 또 자라게 됩니다. 거게는 땅 지기가 오고 또 거름 기운이, 비료  기운이 오고 또 수분이 오고 또 온도가 오고 이래 가지고 이 겨자씨를 썩히려고  하지마는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썩지 않고 그것을 먹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이것이 기독자의  종자인데, 기독교의 종자. 그러면 영이 중생하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의  종자입니다. 중생된 자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는 세상은 저거 것을 만드려고 애를  씁니다. 저거 것을 만드려고 마치 아까 흙 속에 들어 있는 겨자씨를 썩히려고 네  가지가 와 가지고 이렇게 침노를 하지마는 네 가지에게 해를 받지 않고 도리어  네 가지를 양식으로 먹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속에 생명이 있는 기독자는  물과 같은 아주 그렇게 아주, 수분이라 하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참 아주 물은 목마를 때 먹으면 시원한 것이요, 기운 없을  때 먹으면 기운 차려지는 것이요 이 물은 우리에게 아주 매우 필요한 그런 것이  물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온갖 필요한 것이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물과 같은 종류,  여러분들이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볼 때에 물은 뭘로 우리가 비유하면 되겠나?  또 지기는 뭘로 비유하면 되겠나? 거름 기운은 뭘로 비유하면 되겠나? 온도는  뭘로 비유하면 되겠나?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거게서 각자의  지식에 따라서 깨달아지는 것이 많이 차이 있게 그렇게 깨달아질 것입니다.

 물이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 시원한 것이요 또 뭐 빨래 해도 좋고 모두  좋기만 합니다. 물이라 하는 거는 다 좋습니다. 마셔도 좋고, 사용해도 좋고,  씻어도 좋고, 또 물에 가서 뭐 목욕을 해도 좋고 뭐 물은 다 좋은 것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이 세상에 물과 같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긴하고 좋은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건들도 참 물에 속한 사건도 있고 또 지기에 속한 사건도 있고, 지기라는 것은  이 세상. 세력, 땅의 세력, 온 땅은 다 지기로 되어 있는데, 이 세상에 뭐 정치  세력, 사회 세력, 또 문화 세력, 과학 세력 모든 이런 것들이 전부 이 땅에 있는  기운입니다. 이 세상 기운이오. 세상 기운들이 우리에게 많이 부딪혀 옵니다.

 또 거름 기운과 같이, 거름 기운과 같이, 거름이라 하는 것은 이런 것 저런 것  썩으면 그것이 거름이 됩니다. 땅위에서 이런 죄악 저런 죄악 온갖 죄악이  우리에게는 부딪혀 옵니다. 뭐 사회 죄악, 가정 죄악, 또 일계명 범하는 일계명  죄악, 이계명 죄악 그거, 죄악을 십계명으로 생각해 보면 또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삼계명 죄악, 사계명 오계명 육계명 칠계명 팔계명 구계명 이 죄악, 이 십계명으로  간추려 놓은 것은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죄를 다 가리켰고 의를 다 가리켜서  간추려 놓은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신구약 성경의 강령이라, 벼릿  줄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 거름 기운이 오면 그만 심어진 그 종자를 아주 급속도로 썩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죄악, 뭐 어떤 집은 보니까 재미있는 가정이 그만 남편이  돈벌기만 재미 붙여 이러다가 춤 추는 죄악이 들어와 가지고 그 가정을 다 망쳐  버렸고 자녀들도 망하고 완전히 망한 그런 가정들도 있습디다. 또 춤추는 죄악,  무슨 이거 뭐 또. 사기 협잡 죄악 음행 죄악, 도적질 죄악, 뭐 모든 사람들에게  불의, 이런 모든 온갖 죄 죄라 하는 것은 그 수가 심히 많겠습니다. 그런 죄악이  가득 찬 것이 세상이라, 그런 죄악이 우리를 자꾸 이거 우리 신앙 생활을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과 성신의 감동과 진리로 살아난 우리들인데 그런 것들이  와 가지고서 우리 생명을 자꾸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진리로 살지 못하게,  영감으로 살지 못하게, 또 예수님의 사죄로 죄 없이 살지 못하게, 칭의 화친으로  살지 못하게, 하나님을 향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이것이 우리 생명인데 우리  생명은 우리가 겨자씨로 비유한 건 우리가 겨자씨 생명을 받았는데, 겨자씨  생명을 받은 것은 우리 영이 이 네 가지, 진리, 영감, 예수님의 피, 하나님을 향한  영생 이 네 가지로 살아난 이것이 우리의 생명인데, 우리 영이 이 네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뭐이냐 하면 곧 주인이 그 겨자씨를  자기 밭에다 심은 거와 같다' 그러면 우리 중생된 우리를 이 세상에다가 둬  뒀습니다. 세상에다가 둬서 얼마가 되든지 기간이 있는 대로 세상에서 살게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살게 했는데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 하려 하니까 주위에서  오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네 가지의 사람으로 살지  못하도록, 진리로 살지 못하게, 영감으로 살지 못하게, 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살지 못하게, 또 하나님을 향해서 살지 못하게 영생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 영생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생명이 없는 것은 그만 거세 삼켜 버립니다.

삼켜서 그것들이 살지 못하게 하는데 뭣이 살지 못하게 하느냐 하면 아주  세상에서 물과 같이 참 아주 시원하고 필요하고 요긴하고 좋고 모두가 다  형통하고 재미있고 하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부딪혀 오는 것을  이거 그만 네 가지로 자기가 어렇게 해석해도 좋습니다. 네 가지로 어떻게 해석을  해도 자기대로 그 해석을 해서 붙이면 되겠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네 가지 이 종류의 것들이 온다. 물의  종류로 비유한 거, 토비 거름 기운 비료 종류로, 또 이제 온도 종류로, 모든 지기  종류로 이렇게 우리가 비유해서 깨닫는 거와 같이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부딪혀  옵니다. '부딪혀 올 때에 그때에 그것에게 지면 그만 죽습니다. 만일 지게 되면  그것이 얼마 동안 있다가 살아나면 다행이지마는 그만 자꾸 그것들에게 져서  자꾸 지게 되면 죽습니다.

 세상에 물과 같은 아주 좋고 형통하고 재미있고 모든 것이 아주 다 재미있는  그런 일, 아주 사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또 자기 무슨 취 미적으로나 자기 무슨  어떤 오락적으로든지 무엇이든지 재미있는 것, 재미있는 것 그게 와 가지고 우리  신앙 생활을 옳게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들이 온다 그거요. 재미있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을 못 하게 하지 또 이 세상 이런. 죄악 저런 죄악이 들어서 우리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지, 또 이 세상에서 뜻뜻한 온기 모양으로 이제 이런,  아주 따시면 그것이 잘 썩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따신 것은 이런 형통 저런  형통입니다. 모두가 다 형통되는 거 그거 보면, 사업이든지 뭐이든지 하나  버쩍버쩍 형통이 돼 가지고 잘될 때는 그런 거는 참 아주 뜻뜻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박윤선 목사님은 설교에 그렇게 해 놨다고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썩는  것은 겨울보다도 오뉴월이 더 썩는다, 잘 썩는다. 그래서 사람이 부패해지는 것은  이 세상에 아주 어려운 환난 중에서 부패해지는 것보다도 세상에서 아주 좋고  형통할 때에 그때에 사람들이 부패해진다. 그러기 때문에 어려워서 죄짓는  것보다도 너무 좋아서 죄짓는 것이 많다' 그렇게 비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도 지금 오늘 저녁에 설교한 거와 같은, 같은 이치의 해석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모든 세상 좋은 거, 사람들이 그만 어려울 때 어떤 사람은 죄 잘 짓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너무 좋을 때에 죄를 잘 짓는 것이 있습니다.

좋을 때에 잘 짓는 거 또 여러가지 어려울 때 짓는 것은 그것은 이 세상에  죄악의 세력, 악의 세력 때문에 자기가 죄짓게 되는 거 그런 거, 이런 것이  우리에게 부딪혀옵니다.

 또 땅에 지기와 마찬가지로 세상 주위 환경 시대 이 모든 전체가 꽉 짜여  가지고 었는 현재 현시대 이 사회 문화 무슨 또 조류 또 이런 모든 운동 저런  운동 그런 것이 다 땅에 있는 지기와 같이 되겠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에게 와서 중생된 우리의 생명을 없이 하려고 생명을 썩히려고,  생명을 썩혀서 흙을 만드려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이 와 가지고 이  네 가지로 중생된 우리 기독자의 정신이나 기독자의 희망이나 기독자의 이제  지식이나 용감이나 무슨 소망이나 이런 것을 다 없에서, 진리로 된 것, 영감으로  된 것,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된 것, 또 하나님을 향한 것이 네 가지가 세상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것인데, 세상 사람은 이 네 가지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들도  이 네 가지를 없애서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하려고, 같이 만드려고 애를 씁니다.

가정에서 부모 형제간들도 애를 쓰고 친구간들도 애를 쓰고 국가에서도  사회에서도 전부 가만히 뜯어 보면 네 가지가 겨자씨를 흙 만드려고, 흙 저희  만들면 저희 것 안 돼요? 흙의 동무 만드려고, 이 세상 것을 만들어서 세상 저희  것 되라고, 세상과 한 덩어리 되라고 우리를 만드려고 애를 쓰는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옵니다. 오는데 그것에게 삼켜져서 내가 세상 되면 멸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올 때에 그것을 잡아먹고 자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세력들이 올 때에 거게 내가 삼키워지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을 지금 내가 자꾸  이용을 해서, 그런 걸 이용을 해 가지고 내가 자랍니다. 그러면 그런 걸 세상의  무슨 형통해지는 것, 어려워지는 것, 죄악 또 땅위에 있는 이런 시대 저런 시대  모두 운동 모두 그런 것들 오는데 그런 것들을 잡아먹고 내가 자랍니다. 그것에게  내가 삼키워지는 게 아니고 그런 걸 먹고 자랍니다.

 그런 것을 먹고 자라면 뭐이 자라겠습니까? 그런 것을 먹고 자라면 뭐이  먹습니까? 그런 것이 먹기를 뭣이 먹고 뭣이 자라겠습니까? 그런 것을 먹으면  진리가 자랍니다. 그런 게 와서 진리를 없애려고 할 때에 그때 내가 거게서  진리대로 행하게 되면 나는 진리로 커졌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방해하는데 내가 그것들에게 삼키워지지 않고 진리로 살면 그  현실에 방해한 그것은 내 양식이 돼 가지고 나는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진리가  자라고 또 영감이 자라고, 죄 없는 사죄 무죄가 자라고 또 의가 자라고, 하나님과  화친이 자라고,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이 자라고 점점 자라게 됩니다.

 이래서 이 겨자씨가 양식을 먹고 자라는데 겨자씨 양식은 이것이 겨자씨의  양식입니다. 이런 것을 먹고 자라는 거, 이래서 요한복음 4장 32절로 34절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내가 먹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내게는 있다' 이러니까 그 제자들이 있다가 '아마 사마리아  여인이 와 있더니마는 뭐 먹을 양식을, 아마 음식을 대접했는가보다' 이렇게  제자들이 수근거리는 걸 보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두 가지를  말했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이랬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또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 내 양식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현실을 닥쳤을 때에, 현실을 닥쳤을 때에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뜻대로라는 것은 진리대로 사는 생활이요, 영감대로 사는 생활이요, 또  죄를 이기는 죄 없이 사는 생활이요, 의롭게 사는 생활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화친 생활이요,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하는 생활인데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 말이오.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이래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가진 생명 완전한 생명, 이 네 가지로 중생된 영의 생명  이 생명이 이제 자라게 됩니다. 이 생명이 먹는 양식은 뭐이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의 생명은 무엇을 먹고 자라는고 하니, 뭘 먹고 자랍니까?  먹고 자라는 것은 진리를 먹고 자라는데 진리를 자기가 지식적으로 암만 알아도  소용 없어. 또 영감을 암만 알아도 소용 없습니다. 그러면 먹고 자라는 것은  뭐이냐 하면 현실에서 하나님의 내게 대한 뜻, 하나님의 뜻을 내가 바로 찾고 난  다음에는 그 뜻대로 어떻게 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입니까? 그 뜻을 찾고 난  다음에는 행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행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라. 그러면 현실에서 수분이 오든지, 수분이 와도 거게서 그것에게  삼켜지지 않고 주님위 뜻을, 뜻대로 행하고, 또 비료 기운과 같은 모든 죄악들이  와도 뜻대로 행하고, 또 무슨 이런 저런 좋은 형통과 뭐 당장에 마음에  일확천금을 쥘 만한 그런 횡재수가 닥쳐도 거게 피동되지 않고 뜻대로 행하는 것,  온 세상이 우겨 싸 가지고 시대가 막 데모대가 되고 무슨 뭐 청문 시대가 되고  어떤 시대가 된다고 할지라도 되든지 말든지 어쨌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것. 이거는 좋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나빠도 뜻대로, 어려워도 뜻대로, 죽을  지경에도 뜻대로, 아주 뭐 비행기 타고 올라간다 할지라도 뜻대로, 꼭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거, 요것이 뭐이냐? 우리 양식입니다. 그러면 뜻을 행하는데 거게  말하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주님은 보내신 이의 뜻이 뭐이냐?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주님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보내신 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행하는 것과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완성하는 것이라. 그러면  행하기만 행하는 것은 시작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완성하는 거,  뭣이든지 그 일을 시작했으면 그 일을 완성하기까지 끝까지 견디면서 완성을 해  놓는 거, 우리가 일은 한 가지 두 가지 맡아지면 무슨 사건이 하나 생기면 그  사건을 그만 처음에 옳게 하다가 중단해 버리고 말지 않고 그것을 최후까지 해서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그것이 양식이라 말이오. 그러면 우리 속사람이 먹는  양식은 뭣이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키는 그 두  가지가 우리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뭐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진리요,  영감이요 곧 예수님의 대속의 피요, 하나님을 향한 영생인데 이것을 우리가  현실에서 행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요 행하되 시작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까지 행하게 되면 이것이 온전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이루는  것이. 이래서, 그러면 점점 이 겨자씨가 자랍니다. 그러면 뭘 먹고 자라느냐 하면  우리 비유로 말하면 네 가지를 먹고 자랍니다. 네 가지를 먹고 자라요. 네 가지를  먹고 자라다니? 네 가지를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 이 네 가지는 와 가지고 나를  생명 생활, 영생하는 생명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대적하는 네 가지  세력인데, 대적하는 네 가지 세력이 왔을 때에 내가 하나님의 뜻인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 또 하나님을 향한 이 생활을 못하게 왔는데 이 생활이 꺾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생활을 그걸 향해서 내가 이룹니다. 이 생활 합니다. 이  생활 하는 것이 뭐이냐? 뜻을 행하는 것이오. 또 이 생활 하니까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오. 이러니까 이것이 와 가지고 나에게 삼켜 져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방해하던 악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마귀로 말미암아 세상으로 말미암아 죄로  말미암아 점점 내 새사람의 인격은 자라갑니다. 점점 자라갑니다.

 이래서 겨자씨가, 겨자씨의 비유는 이 겨자씨는 우리의 중생된 영생하는 그  새생명의 씨를 가리켜서, 기본구원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중생된 사람은 자꾸  이렇게 자라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한 사람은 뭘로 중생했느냐? 네  가지로 중생했는데, 피, 성령, 진리, 하나님을 향한 영생 이 네 가지로 중생된  우리들인데 이 중생된 우리들을 이 생활 하지 못하도록, 이것으로 자라가지  못하도록, 이것으로 충만해 가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하기를 여러가지가  방해하는데 오늘 비유에 그러면 방해하는 것이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말해 보이소. 예. 네 가지가 방해합니다. 네 가지가 방해하는 거.

 그러면 물은 좋은 거라 합시다. 물은 좋은 거, 물은 좋은 것, 또 비료 기운은  모든 악의 세력들, 또 뜻뜻한 것은 모든 무슨 별스럽게 큰 횡재수가 닥쳤든지  우쭐할 수 있는 그런 형통의 특별한 그런 좋은 시기, 사람이 그만 보통 때는  신앙을 지키는데 그 사람이 돈만 좀 많아지면 그만 썩어져 버립니다. 또 높은  자리 취직만 하면 그만 썩어져 버리요 그런 것은 이제 뜻뜻한 온도라 그렇게  우리가 한번 비유를 해 보자 그말이오. 그러면 맞을 거라 그말이오. 그러고 땅  지기라 하는 것은 땅의 기운은 막 둘러싸고 있지 않습니까? 지기라 하는 것은  사회 모든 운동들, 국가 운동들 민족 운동 시대적인 모든 조류 풍조 모두 이런  것들이 다, 이것이 다 그런 지기와 같은 것이 되겠습니다.

 그런 것들이 와 가지고 우리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못하게 하는데  그것에게 지면 우리는 썩어 버리고, 썩어서 뭣 됩니까? 그러면 우리가 썩어  버리면 뭣 됩니까? 우리가 썩으면 뭣 됩니까? OOO 씨? 송장돼요? 우리가  썩으면 뭣 됩니까? 우리가 썩으면 뭣 돼요? 겨자씨는 썩으니까 흙 됐는데 우리는  썩으면 뭣 됩니까? 세상 돼. 우리는 썩으면 세상 됩니다. 흙은 세상으로 비유한  거라. 우리는 썩으면 세상 돼요, 그만. 썩으면 세상 되는데 우리가 썩지 않고  그것을 잡아먹으면 어찌 됩니까? 그러면 흙에 심어졌는데 흙 위에 쑥 올라와  가지고 잡아먹고 자꾸 커올라가니까 나중에 가서는 나물보다 큰 나무가 됩니다.

자꾸 커올라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중생된 사람을 이 세상에다 심어 놨는데, 하나님이 이 세상에다가  심어 놨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네 가지, 좋은 거 나쁜 거, 또 세상의  악의 세력, 또 우리를 추켜 들어서 우쭐거리게 하는 거, 또 이 모든 환경 주위의  모든 풍조들, 세상 주위 환경 이런 것들이 전체를 뭐 그거 이것 저것 말할 것  없이 그런 것들이 들어서 우리 중생된 새사람, 진리대로 살고, 우리는 진리의  사람이요 영감의 사람이요 예수님의 사죄의 사람이요 칭의의 사람이요 화친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향한 영생의 사람 이 사람인데, 이 사람인데,  그러면 이 사람은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이 사람은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이 사람은 모양이 어떻게 생겼지요? 하나님이 이 사람을 만들 때에  어떤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코끼리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어떤 성자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바위 뭉텅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 저 O장로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어, 여기 참석한 지 뭐 가끔 혹 한 번씩 오는데 봐, 살아  있으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들었다 그말이오.

 만들었는데 이제 우리가 점점 이 네 가지를 모두 세상에서 오는 것을  잡아먹으면 우리가 점점 커집니다. 뭘 먹어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우리가 자라가요. 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으로 자라가요. 그러면  뭣으로 자라가느냐? 진리로 자라가고, 영감으로 자라가고, 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을 향해서 가는 영생으로 자라가고 자꾸 자라간다  말이오. 자라가니까 이 자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라가면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올바른 참된 지식,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지혜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진실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거룩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의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으로 자라가는데, 자존성까지만 아니지  이게 다 그대로 비슷하게 자라갑니다. 자, 이러면 우리가 뭐와 같이 됩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내 지식 됐고, 하나님의 지혜가 내 지혜 됐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상됐고, 하나님의 진실이 내 진실됐고, 하나님의 의가 내 의 됐고, 하나님의  주권이 내 주권 됐고, 하나님의 완전이 내 완전됐고, 하나님의 이 거룩이나  하나님의 불변이 내것 됐으면 나는 누구와 같겠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됩니다.

하나님과 같이 돼요.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러니까, 자라니까 여게 비유하기를 겨자씨는 나물이요, 먹는 나물. 채소.

나물인데 이것이 자라면 나물을, 보기는 식물은 식물이지마는 나무가 돼 버려,  커다란 나무. 이거는 인간은 인간이지마는, 인간은 인간이지마는 그 실력 내용으로  말하면 인간이 아닌 초인간의 존재가 되고 초인간의 하나님이 돼 버리요.

초인간의 하나님이 돼 버려. 이러니까, 초인간의 하나님이 되니까 어찌 되겠어?  초인간의 하나님이 되니까 모든 사람들이 보고 깔보겠소, 좋아하겠소? 공중에  나는 새들이 와서 깃들이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라 말은 아무 뿌럭지 없는 것이요 그저 훅 거리면 놀래서 이리  달아나고 저리 달아나는 아무 정처가 없이 그저 기회주의자로 아무 인격도  지조도 아무것도 없는 그런 참 무의무탁의 아무 뿌리 없는, 뿌리 없는 사람들, 그  보면 사람 잘난 것 같아도 몇닢푼치 안 돼요. 뿌리가 없어. 그러면 시대가 이리  되면 뭐 그만 아주 그만 바람 같애. 인간은 바람이라 할 수 있어. 바람 같애. 아무  고체가 없고 형체도 없고 뿌럭지도 아무 것도 없어. 이런 사람들이 와서  깃들이느니라 깃들이느니라. 깃들인다 말은 거게가 좋으니까, 거게가 좋으니까  쉬러 온다 말이요, 놀러 온다는 말이요, 여러가지 피곤을 풀러 온다 말이요,  혜택을 보러 온다 말입니다. 혜택을 보러.

 예수님이 이렇게 사시니까, 예수님이 뭐 신인양성일위라 속으로는  하나님이시마는 인성이니까 사람 아닙니까? 사람이지마는 그분이 하나님의 그  능력을 완전히 가져 가지고 이렇게 거석해 놓으니까 모든 지옥에 있는, 지옥에  있는 물건들까지도 다 주님을 주라고 시인하면서 그 앞에 무릎을 꾼다고  했습니다.

 이래서 기독자들이 이래 살면 점점 초인간적인 사람이 됩니다. 초인간적인  지능을 가졌어, 도덕을 가졌어, 사랑을 가졌어, 또 초인간적인 봉사를 가졌어  애호를 가졌어, 희생을 가졌어, 또 은혜를 가졌어, 이래 놓으니까 뭐 사람들이  거게 와 가지고 깃들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래도 뭐 평소에는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기 때문에  핑계대지 못해서 욕을 하지마는 환난이 탁 오면 안기기는 그 사람들한테 갑니다.

'내가 과거에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암만 겪어봐도 참 의지할 이는 당신뿐이고  바라볼 이는 당신뿐이고 이 긴밀한 의논을 할 이는 당신뿐이고 나를 부탁할 이는  당신뿐이고 바라볼 이는 당신뿐입니다.' 이러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다 의지하게  되는 것이라. 예수님을 모든 만인간이 의지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모든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로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공중에 나는 새라 말은  정처 없는 모든,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고 모두 무의무탁한 이 세상에서 '나는 참  의지할 것 없다' 절망과 또 낙망과 비관과 고통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다 그  사람에게로 깃들이게 된다, 와서 찾아오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새들은  일반 이 세상에서 모든 절망된 허무한 사람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들이 이 온 세상을 다 양식으로 먹을 수 있는  생명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살아난 것은 온 세상을 양식으로 먹을 수  있는 생명으로 살아났어. 뭐 공산주의의 죄악도 양식으로 먹을 수 있고,  이십세기의 과학 만능이라 하는 이 죄악도 악의 세력도 양식으로 먹을 수 있고,  땅위에 있는 온갖 이십세기의 문화의 화려한 것도 양식으로 먹을 수 있고 모든  것 먹을 수 있는데, 이런 것을 우리가 먹고, 양식으로 먹고, 잡아먹고, 양식으로  먹고 중생된 우리의 이 새사람이 자라게 되면 이는 초인간의,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과 같은 그런 사람으로 우리가 자라갈 수가 있는 것이 우리라는 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합니다.

 자라가게 되면 이거는 나물이 아니라 나물보다 큰 나무가 된다. 이거는 초인간의  사람이 된다. 초인간의 사람이 되는 것은 지식도 초인간의 지식이지, 지혜도  초인간의 지혜지, 또 사랑도 초인간의 사랑이지, 진실도 그렇지, 거룩도 그렇지,  화평도 그렇지, 의도 그렇지, 봉사도 그렇지, 희생도 그렇지 모든 것이 다  초인간적으로 이래 되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가 거게 가면 덕볼 것이고, 거게 가면  자기 모든 소원 이루어지겠고, 도움받는 데는 거게밖에는 도움받을 데가 없고,  가르침과 지도받는 거는 거기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그리  우겨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서 이 겨자씨가 뭘 먹어야 자라지요? 먹지 않으면 못 자라는데  겨자씨는 흙을 먹고 자라는데 흙에 있는 모든 성분들을 한 너덧 가지로  말했습니다. 그랬는데 거게 더 박식이 있는 사람은 여러가지로 또 성분들을  분류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은,  그래서, 여게서 큰 뜻이 뭐이냐? 우리는 영생할 생명으로 중생했는데, 생명으로  살아났는데 이 생명은 하나님에게까지 자라갈 우리들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들에게 능히 그것들에게 의지가 될 수가 있고 또 그것들의 소망이 될  수 있고 또 그것들에게 무엇이든지 충만하게 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시은의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한없는 유망한 우리들인데 이렇게 자라간다는 이 자라가는 것은,  이렇게 자라가는 것은 우리가 먹어야 자라가지요. 먹는 거는 뭐이냐? 겨자씨는 땅  흙 먹고 자라가요. 흙에 심었기 때문에 흙을 먹고 자라가. 우리는 세상 먹고  자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부딪혀 오든지  이것은 내가 먹고 자랄 수 있는 나의 양식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잊지  말고, 그저 입맛을 쭉쭉 다시고 모가지 침이 꿀떡 넘어 가면서 어떤 사건이라도  '하, 이 사건 나는 또 먹고 자라겠다, 또 별미가 왔다 또 먹자' 이렇게 생각하고  환경과 주위에서 오는 현실에 부딪히는 모든 세상은 나의 양식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그 양식을 먹는 것은, 양식을 먹는 양식은 어떤 건가? 두 가지로  또 말했어.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거, 주님은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거.

우리는 주님이, 이 세상에 보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행하는 거, 나는 현실에서  세상이야 어떻게 오든지. 어떻게 오든지 거게다가 나는 보내신 주님의 뜻만  행하면, 뜻만 하면 죄악도 내 양식이 돼 버렸고, 또 세상이 우쭐거리는 영광과  존귀도 양식이 돼 버렸고, 고생도 양식이 돼 버렸고 죽음도 양식이, 양식 안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다만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여기에서 모든 것이 내게 양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뜻대로 행하되 그것을 행하다가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 그것이 완전히 결실의 결말이 나기까지 내가 행할  때에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양식이 되어지고, 그러면 어떤 자가 되느냐? 모든  공중에 나는 새들이 와서 깃들이게 된다. 이제 그것이 금생뿐 아니라 영원  무궁세계에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때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이 모든 것이 다 너희의  것이 된다. 만물들에게, 만물들에게, 우리 것은 없어.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시켜 주는 이것이 기독자인 것을 비유해서 겨자씨 비유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위 환경에 어떤 종류가 오든지 그때에 나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 뜻대로 행하면 그것은 나에게 양식이 됐고  그것은 나의 뼈와 살과 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걸 하다가 중단해 버리면 나는  썩어버리고, 중단하지 말고 그 일을 끝까지 완성을 하면 이제 그것이 우리에게  완전한 양식이 돼서 성장하게 됩니다.

 내가 오래 돼서 그걸 몰랐어. 내가 그 전에는 설교했는데 내가 잘 몰라서 아마  산다싱이 아닌가 이랬는데 그거 내가 몰라서 그거, 내가 언제 책을 보니까 그런  책이 있습디다. 그분이 문둥이를 보니까 하도 불쌍해서 이 문둥이를 이걸 참  불쌍해서 처음에 도우려고 해 가지고 자꾸 그저 그 문둥이를 한테 잠을 자고  같이 먹으면서 씻어 주고 자꾸 이래 사랑을 베풀고 자꾸 씻어 주고 그러니까,  이거 뭐 원청 사랑을 베풀어 씻어 주고 하니까 이 문둥이 생각에는 그만 제가 그  사람의 보배로 알았어. 보배로 알았다 말이오. 알았는데, 한번은 어데 갔다가, 전도  갔다가 돌아오느라고 그만 시간이 늦어서 그 씻겨 주는 시간이 늦었다 말이오.

씻겨 주는 시간이 늦으니까 그만 오니까 막 성을 내 가지고 야단을 치면서 욕을  하고 이러면서 그뭐 이놈의 새끼 뭐 성의를 그까짓 걸로 하고 있다고 가 버려.

 그래 아이고 내가 잘못했다고 씻자 하니까 안 씻는다고. 네깟놈에게 안  시킨다고. 그뭐 안 시킨다고 그래 가지고 암만 빌어도, 암만 빌어도 씻으려 해도  안 씻게 해 주고 아무리 대접을 할래야 대접도 안 받으려 하고 먹으라 해도  먹지도 안 하려 하고 이래서 어쨌든지 참 엎드려서 얼마를 빌었는지 잘못 했다고  비니까, 잘못했다고 빌며 내가 참, 그 사람한테도 잘못했다고 빌고 하나님 앞에도  내가 이렇게 사랑이 모자라서 주님은 내게 대해 이렇게 안 했는데 내가 이렇게  아주 박정하게 이랬기 때문에 저가 그런 것이니까 내 죄를 사해 달라고 실컷  자복을 하고 그래 가지고 용서를 빌고 하니까 그래 슬그머니 내 대더래요.

그러니까, 하도 빌어 쌓아니까. 그러니 이래 씻으려 하면 탁 차 내트리지 않고  슬그머니 대고 있더래요. 그래 참 그거 보배덩어리인 모양이라. 대고 있어.

 그래 자기가 잘못한 것을 참 거석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잘 못했다고  사과를 하면서 이래 씻기는데 아 술술 씻겨 내려가는데 다 씻고 보니까 문둥병이  하나도 없이 완전히 나아 버렸어. 그것이 그 사람의 전기에 기록돼 있습디다.

이래서,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하는 그것이 그때 제가 볼  때에 느껴졌기 때문에 오늘 그것을 제가 여게서 말을 합니다.

 우리가 그런 꼴 많이 봐요. 이거 하다가 인간이 아주 아니꼬울 때 많고 여러가지  있지마는 완전히 내가 주님이 나를 위해서 참 제물 되심같이 완전한 제물에  도달이 되면 그 일이 성공이 됩니다. 성공되기 전까지는 굉장한 그 어려움과  아니꼬움이 있으니까 그만 하다가 중간에 '내가 뭐 네까짓 거 뭐, 너를 위해서  그렇지 내가 뭐, 네가 보배가 뭐이가? 네게 뭐이 나오노?' 이래 박차기 쉬운데  그때에 진정 원통히 여기고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고 참 사과해서 그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영감이요 그것이 그리스도의 심정이요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기적을 베풀어 하나님이 그의 문둥이 씻기는 그 일에  주님이 같이 씻기실 수 있는,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그 심정이요 인격이요 그  사랑이었던 것을 우리가 거기서 느껴 봅니다. 우리가 그런 꼴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기독교는 옮기면 멸망받습니다. 개종하면, 다른 종교로 옮기면  멸망받습니다.

 또 기독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신앙 생활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들이 많이 오는데 한 번 지면 두 번 지지 말고 자꾸 오는 대로, 졌으면 또  일어나고 졌으면 또 일어나고 자꾸, 거게 양식은 계속해 있는 것이니까, 이래서 그  모든 것이 올 때에, 썩히게 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들이 올 때에 우리는 그것을  잡아먹는 도리가 뭐이냐 하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그 현실에서 생하면 나에게  방해하는 그 모든 것은 나의 양식이 되고 맙니다. 양식이 되고 마는데 주님의  뜻을 행할 뿐만 아니라 온전히, 최후 온전히 이루기까지를 하면 그것이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4장에 보면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한복음 4장 31절에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이렇게 이것이 양식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또 6장에 보면, 요것도 뒤에 참고로 한번 삼으십시오. 6장 27절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자가 준다.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무엇이냐?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곧 주님이 주실 것인데 주님이  주시는 것 뭐인가? 주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주는 것을 가리켜서  주님이 주신다 한 것입니다. 당신이 뜻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줄 때 우리는 그  뜻을 행하면 양식이 됩니다. 온전히 이루면 완전한 양식이 됩니다.

 이 썩지 아니할 양식은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인자가 너희들에게 줄 것인데,  하나님이 사람되셨음으로 너희에게 이 양식을 주도록 돼 가지고 있는데 이거  인자가 줄 것이라.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이렇게 예수님을  인간의 구주로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이름  외에 다른 데서는 구원얻는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인자가 너희들에게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 현실 당할 때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주시는 이것이 곧 영생할 양식입니다. 당신의 뜻을 이 내 현실에서  주실 때에 그 현실에 당신이 주시는 당신의 뜻을 내가 행하는 것이 현실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이거 이해가 됩니까?  자기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죄악이 오든지 영광이 오든지 존귀가 오든지 뭐이든지  현실에 부딪혀 오는 세상은 내가 잡아서 먹었습니다. 또 그 일을 온전히 이루면  그것을 내가 완전히 양식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자가 너희들에게 줄  것이니라. 너희들에게 양식이 되는,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살고 세상을 잡아먹는  그 순서와 진리가 되는 것은 내가 너거들에게 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거들에게 줄 것인데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인자만이 너희들에게 영생하는 이 뜻을 주도록 결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천하에 다른 종교로써는 구원 얻는 길이 없는 것을 여게 또 못박아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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