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의 생애 열쇠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20일 수야

 

본문 : 신 28 :13-15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지난주일 오후예배 때 증거 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 주일학교 중간반  공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공과 공부를 하는 셈이 되겠고 또 지난  주일날 증거 한 말씀을 다시 한번 새김질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거기에 우리 기독자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데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공과에 1대지라고 하면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어떠한 세대인가 하는 그것을 첫째로 말씀했고, 또 둘째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지 않고 인간과의 관계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게  되니 효력이 없다 하는 것을 말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 곧 말세가 되어갈수록 사랑이 점점 식어져  간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악한 것이 점점 성해 간다고 말씀을 했고, 노아 때는  죄악이 땅에 가득 찼지마는 예수님의 재림 때인 말세에는 죄악이 하늘까지 가득  찰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짜와 오고 말세가 점점 가까와져서 말세지 말이 되어갈수록  세상은 자기중심인 이기주의가 맹렬해집니다. 한 사람이 혼자 사는 것 같으면  자기중심으로 살든지 말든지 저 혼자 사는 것이니까 별 싸움이 없겠지마는 둘이  살아도 두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살려고 하면 두 사람은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자기중심으로 살면 셋이 한테 뭉쳐서  싸워야 할 것이오.

 요한계시 18장에 보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가 하나님 위치에 앉아서 저를 섬기라고 저를 위하라고 못났든지 잘났든지  모두가 다 자기 위주로 자기중심으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되어, 남을 위하는  것같이 하지마는 그것도 실은 자기를 위하는 한 방편으로 하고 있고,  또 선이니 도덕이니 정의니 한다고 해도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전부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데에 좀 지능이 높아서 고급적으로 고등적으로  이기주의 자기중심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 하나님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이와  같이 사는 것을 멸망시킬 것을 요한계시 18장에 말씀했습니다.

 나, 내 가정, 내 민족, 내 나라, 그것이 전부 뿌럭지가 자기입니다. 이래  가지고 외도에는 평화를 주장하고, 또 사랑을 주장하고, 봉사를 주장을 하지마는  그것이 한 방편이요 가면이요 이것이나 저 것이나 모조리 자기중심 위주로서,  선을 말하는 것도 수단이요 방편이요, 또 오늘 선을 말하고 화목을 말하다가  내일에 악독이 필요하면 악독을 쓰고, 거짓이 필요하면 거짓을 쓰고, 약속을  어기는 위약이 필요하면 위약을 써서, 참 어떤 뭐 나쁜 방편이라도, 상상도 못  할 방편이라도 수단이라도 꾀라도 가리지 아니하고 어쨌든지 사람들이 자기의  목적만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만 크고 자기만 높아지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사로잡고 정복하고 이용하기 위해서 하는 이 경쟁이  역사가 생겨난 이후로 제일 맹렬해지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이러니까 지금은, 우선 혼자 하다 안 되니까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를,  '저기에는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를 대적하니 우리는 셋이 합해 가지고 하나  대적하자.' 이것도 다 하나의 방편이지 속에 해부해 보면 전부 자기중심인  이것입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가 타락한 그 원죄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원죄의 활동이 차차 심하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는 가장 극심하게  된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경쟁도 심하지, 또 투쟁도 심하지, 별별 수단과 방편을 다 부리지,  필요하다면 온갖 어떤 잔인이라도 승리만 한다면 다 주저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돼 가지고 있는 것이 말세의 사람들입니다.

 어떨 때는 필요하면 한민족이니 뭐 배달의 족속이니 우리도 이렇게 말하지마는  자기네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살해나 그런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또  그들의 악과 살해를 하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해석을 붙이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그렇게 해석을 붙이고 하기 때문에 6·25 같은 그런 비참한 일도  생겨졌던 것입니다.

 온 세계가 다 이러하고 인류들이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말세입니다. 그 중에도 우리 남한에 있는 사람들은 벌써 해방 이후부터 한 번도  그 마음이 변동되지 아니하고 무력으로 공산주의로 남침해서 적화 통일을  시키려고 하는 그 긴장과 준비, 악독의 훈련, 그게 모두 잔인한 살해 훈련인데  이 훈련을 계속 하고 있고, 이제는 제 3자인 세계가 다 '그는, 세계에 제일  남한이 위급하게 돼 가지고 있다. 그 실력은 비교가 안 된다.' 그것은 온 세계가  다 공인하고 있습니다. 이리 안 해도 개적으로도 그러하고, 단체적으로도  그러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러하고, 국내에서도 그러하고, 또 이 나라 저 나라  국제 간에도 그러한데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우리 남한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다 이런 위기에 처하여 있습니다.

 위기에 처하여 있는 중에도 일반인들은 그들이 다 사상만 바꾸면 되지마는  기독자는 사상을 바꿀 수 없다 하는 것을 그들이 벌써 경험하고 체험하고 단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예 기독자에게 대해서는 사상 변화를, 그들 말로  머리를 씻어 가지고 두뇌를 바꾼다는 그런, 씻을 세(洗)자 뇌라는 뇌(腦)자  세뇌작업을 기독자에게는 아예 시작을 안 한답니다, 암만 해 봐야 안 된다고.

 이러니까 기독자는 그들이 다 숙청해야 되지, 죽여 없애야 되지 이것은  내비둬서는 안 된다는 그런 단정을 짓고 있는 그들이니까 급하기는 남한에 있는  우리 모든 국민들 중에도 기독자들이 제일 위급하고 다급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세가 되면 이렇게 잔인무도하고 참 경쟁과 투쟁이, 서로  죽이려는 투쟁이 심한 데다가 더욱이 더 우리 남한에 있는 우리들과 그 중에도  우리 기독자들은 유심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 인간 대 인간으로, 일 대 일로, 칼을 쓰면 칼을 쓰고, 거짓말  하면 같이 거짓말 하고, 독을 부리면 같이 독을 부리고, 위약하면 위약하고,  속이면 속이고, 이렇게 해서 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좀 능숙한  사람은 승리를 하고 좀 유약한 사람은 정복을 당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자들은 그렇게 살지를 못하는 사람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니 우리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속이니 나도 안 속이고는 살 수가 없겠다 상대방이 거짓말 하니 나도 거짓말  해야 되겠고, 위약하니 나도 위약해야 되겠고, 거기에서도 미움과 독과 속임을  가지고 2중 3중 10중으로 대하니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부지할  수가 없다.' 하는 이런 생각을 우리 기독자들이 가지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세상이 그렇게 사니 우리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하는 이  생각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대개는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결과는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면 '아무것이 그 사람은 나보다도  모든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 가지고 여러 면으로  성공을 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해도 성공이 안 되느냐? 예수 믿어야 축복이  온다더니마는 축복보다도 도리어 저주가 온다. 다른 이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  모두 그렇게 잘 살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형통하고 이건데 나도 그와  같이 그들과 같이 살아봐도 불교 믿는 사람들은 효력이 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아무 효력은 나지도 않고 가난하고 모두 천하고 출세도 못하고 뒤떨어진 것은  우리 기독자들이 아니냐?' 이래 가지고 참 형식으로 믿기만 하지 낙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나온 사람 중에 아마 10분지 5, 6은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저 하늘나라  구원이 있다고 하니까 그대로 믿는 사람, 또 선대부터 믿는 신앙이니까 그대로  믿는 사람, 이제까지 믿는 그 교훈에서 그래도 좀 마음에 새로움을 받았던 그  취미로 믿는 사람, 끌려서 믿는 사람,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저 하늘나라나 바라보고 이렇게 보편적으로 믿지 그 예수 믿는 미치괭이  모양으로 그렇게 참 그렇게 된다고 생각을 하고 믿는 그게 도리어 사욕적이다.

대범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가 모든 걸 다 기울여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뭐  축복해 주시고 조금 잘못 했다고 해 가지고 벌을 주시고 그런 소소한 하나님이  아니고 대범하신 하나님이라.' 제각각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을 해 가지고 다  믿음들은 서서히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선진국들도 참 영국 같은 그런 나라들도  옛날과 지금과 믿음은 아주 그것은 변질됐습니다. 미국도 그러합니다. 우리  한국도 초대 교회의 신앙과 지금 신앙은 아주 이질적이며 판이합니다.

 또 해방 직후에는 그때 좀 신앙을 가지고 열심을 품어 신앙생활 했지마는  지금은 믿는 사람이 숫자는 늘지마는 하나의 수양의 도로 믿지 예수 믿는 이  도가 참 생명의 도라, 능력의 도라, 실상의 도라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매우  적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살기만 살면 네 소망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 법칙대로 살기만 살면 네가 경험 체험 못한 것을 전부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성경은 말하지마는 믿음들은 다 서서히  식어져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믿어봐야 믿은 효력을 얻지 못하니까 '말뿐이지  믿으면 참 효력이 있는 줄 아느냐?. 천당이나 바라보지 효력이 있는 줄 아느냐?'  그러면 세상에서도 효력 있다고 말씀하신 이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늘나라 믿는다는 그것도 다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제야 의심을 하든지 신앙 행위야 어떻게 되든지  택한 자들은 기본구원을 얻어서 하늘나라 가기는 다 갑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뭐 기본구원이나 바라보지 건설구원은 아예 생각할 것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그것 참 냉정하게 자기를 비판해서 하는  말들이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믿음이 식어가는 이런 이유가 뭐이냐? 유태인들이 그렇츰  하나님이 제일 먼저 선택한 백성들인데 그 백성들이 세계 민족 가운데 제일  비참한 꼴을 당했지요. 미국 나라는 청교도들이 그렇게 신앙생활 해 가지고 그  나라가 부강하게 되어지니까 '야, 예수 믿는 효력이 있다.' 해서 그 사람들이  열심을 품었고 거기에서 도를 전해 가지고 이렇게 많이 믿게 됐습니다. 영국도  잉글로 색슨족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허무한 사람들이지마는 신앙생활  하다가 보리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와서 과연 효력이 있다 이러니까 신앙이 불이  붙다가 그만 지금은 효력이 없으니까 신앙이 점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또 뭐라고 쌓아도 그들이 선하게 하고 후하게 하고 하니까 하나님이 돌아보셔서  이제 승리할 것이다 했는데 뭐 싸우는 데마다 패전입니다. 이러니까 보고 있던  사람들도 '그것 참 효력이 없구나.' 의심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것을 대체로 제가 생각하는 대로는 파악을 해 보니까 왜 그러냐? 그래도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이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님은 그저 이름으로만 믿고 형편에  따라서는 거침없이 다 배반하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주장대로, 자기의 꾀대로,  자기의 그 죄악성대로 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도 근근히 유지가 돼  나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해라, 진실해라, 공의를 지키라, 거룩해라, 약자를  도와라, 과부와 고아를 신원하고 변호해라, 네 모든 업을 깨끗한 업을 선택해라,  모든 사람에게 네가 사랑을 베풀고, 은혜를 베풀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화목하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워라, 또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을 빌고 저주하지 말아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신  이 말씀을 지킨다고 그래도 사람에게 만만히 하지를 못하고 조심을 해서, 이래  하면 무슨 효력이 와야 될 터인데 이렇게 할수록 이쪽에는 하나님 말씀에  그러니까 저쪽에는 주먹을 내뱉아도 여기는 그저 서로 겸손하게 화목하려 하니까  한 개라도 더 맞지, 이쪽은 정직을 지킨 다고 그 수단 부릴 걸 수단 부리지  못하고 있는데 저쪽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 가지고 거짓말 해 가지고  하니까 판판 속아서 절단나지지, 이러니까 예수님 믿는 것이 다 무효라고만 할게  아니라 도리어 손해간다.

 이러니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예수교는 아편이다. 예수교인들  그까짓 것 해 먹기야 문제가 없다. 우리 둘이 이렇게 약속하자 하면 등신 같은  것들은 그 약속을 지켜야 될 줄 알고 약속을 그것 꾹 지키고 있다. 약속 지키고  있을 때 우리는 속으로 단도리 다 모든 것 다 해 가지고 쳐 대니까 꼼짝 못하고,  이러니까 예수 믿으면 등신 되고 예수 믿으면 다 거기에 아편 맞은 자 모양으로  중독이 되어서 등신이 되고 바보가 되고 무능자가 되어지니까 기독교만 들어오면  나라 망한다.' '미국 같은 나라가 소련이나 이북 같은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용감을 가졌으면 세계를 하루아침에 다 삼킬 수 있을 터인데 그 예수교가  들어서, 그 나라는 예수교의 사상이 들어서 망친다.' 모든 그 사람들이 그래 볼  수밖에 없고 그래 보이고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아편이라 하는 것을  그들이 뭐 의심 없이 단정해 놓고 '이것을 제거해야 되지 그것만 들어오면  나라는 약화된다.' 그렇게들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들이 안 믿을 때와 같은 그런 수단과 방편과, 그런 정신과 그런  악독과 그런 이기주의, 그런 2중 3중의 그 거짓부리 가지고 살면 되느냐? 또  그것도 안 됩니다.

 이사야 1장 15절로부터 17절에 보면 '너희들이 나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지마는 내가 그걸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도와 달라고 손을 내 밀지마는 내가 손 내는 것 돌아보지도 않는다. 또  너희들이 기도를 많이 하지마는 내가 그 기도에 귀를 가리고 내가 듣지 않는다.

왜? 너희 손에 피가 가득히 있다. 너희가 사람을 사랑하라 했는데 사람을 해하는  그런 행동이 너희에게 있으니 내가 듣지 않는다.'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들이 스스로 너희를 씻어서 깨끗하게 해라. 내 앞에서 너희들이  그 모든 이기주의, 사욕, 사람을 해하는 그런 행동을 다 버리고 그런 것을 다  중지해라. 선한 것을 배우고, 공의를 구하고,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고, 고아를  위해서 신원하고 과부의 편이 돼 가지고 그렇게 살아라.' 이러다가 백전 백패로  망하기만 하는데 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또 이 말씀을 어기고 세상  방법대로 살아도 안 되지, 그래 살면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시지, 또  하나님의 법도대로 이 사람에게 그렇게 해도 안 되지, 이러니까 다 낙심합니다.

 우리가 살 길은 꼭 한 길뿐입니다. 천로역정을 누가 기록했는데 거기에 보면  기독도가 이래 걸어가는데, 기독도가 살아나가는 생활 길을 걸어가는데 보니까  사자가 두 마리가 길에 웅크리고 섰습니다. 그리 가야 천국을 가겠는데 두  마리가 웅크리고 섰으니 그리 가면 거기 물려 죽을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가지  못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그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아무리 사자가  거기 있어도 네가 알고 지나가거라.' '사자가 두 마리 저래 있는데 거기 가면 다  물려 죽을 건데 어째 가겠습니까?' '네가 자세히 보면 사자 뒷다리를 매놔서 네  몸뚱이 하나 빠져 나갈 만치는 있으니까, 어디로든지 옆으로 치우치면 물려  죽는다. 치우치지 않고 한가운데로만 딱 가면 사자가 엉크리기만 엉크리지 네  몸에 대이지 않으니까 잘 갈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비유를 해 가지고 기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밤에도 읽어본 말씀 가운데에 "네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다  이 축복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은 다른 면도  많이 있지마는 우리 당면한 면에서는 뭐이냐?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대로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은 기독자를 속여도 우리는 속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해도 우리는 거짓말 못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례한 일을 해도  우리는 무례한 일을 못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해하려고 공연히, 공연히  밤낮으로 '저놈을 언제 죽일꼬? 언제 죽일꼬?' 계획을 짰다가 '하, 며칠 있으면  인제 그만 죽는다.' 지나가면 공연히 보고 '저것 저래도 인제 며칠만 있으면  저것은 죽는다.' 이렇게 악독을 부리고 도모해도 우리는 그리 못 합니다. 그리  알면 그 사람을 위해서 축복하고 잘되라고 복 받도록 잘되라고 축복 기도하지  그렇게 해를 못 합니다. 다른 사람은 위약을 해도 우리는 위약 못 합니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우리는 속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이 '사람을 사랑해라. 또 사람을  유익 되도록 도와 줘라. 또 사람이 어떻게 나쁘다 할지라도 길이 참고 용서하고  끝까지 사람을 구원해라.' 이겁니다.

 '사람을 사랑해라. 돕고 구원해라. 끝까지 해라.'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라는 이 법칙입니다. 우리는 이 법칙대로 살아야 되는데 이 법칙대로 살면  호랑이 입에다가 주먹 넣는 것 한가지지. 주먹 넣으면 바싹 깨먹으면 먹힐  것밖에 더 있습니까? 이런 아주 험한 무자비한 세대에 사람에게 대해서 이와  같이 살면 그것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상대방에게 삼켜지기 좋을  만하고, 패전하기 좋을 만하고, 망하기 좋을 만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에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느냐? '너희에게  물질로 손해보이는 자에게 너는 그를 복수하지 말고 그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에게 후대해라. 너를 살해하려고 꾀하는 자를 너는 사랑하고 축복해라. 너를  공연히 삼키려고 노리고 작당하는 그자를 너는 복수하지 말고 대항하지 말아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보증을 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증을  하시고. '그들이 너에게 아무리 해한다 해도 내가 해하는 것보다 두 배 주면 한  배는 네게 남을 것이고, 열 배 주면 아홉 배는 남을 것이고, 100배를 주면  99배는 남을 것 아니냐? 내게 무진장으로 있다.

 또 그들이 너에게 아무리 해하려고 한다고 해도 너를 해하려 하는 그 세력보다  내 세력이 크기 때문에 그들이 백배 천배의 해를 하려고 도모했을 때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도로 막고 방어하고 너희에게 그 배로 백 배 천 배를 더 존영하게  강대하게 내가 해 준다. 또 그뿐만 아니라 길이 길이 참아서 그래 하다가 안  되면 저거가 너를 해하려고 하는 그 함정에 제가 빠져서 절단나도록 내가 또  그렇게도 할 수 있다.' 다니엘을 하나님이 기도하라는 계명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기도 지키다가 그것 때문에 사자구덩이 잡혀  들어가니까 다 죽인 줄 알았지마는 사자 발 이빨을 다 하나님이 봉해 버리니까  하나도 해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또 다니엘을 해하는 그 사람들을 이 이튿날  모조리 잡아다가 전부 사자구덩이 집어넣으니까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 뼈까지  부숴 뜨려서 없앴다 그랬습니다.

 이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너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만 행하고, 구원만  하고, 도와만 주고, 복되게만 하지 조그마치라도 해할 권리나 원수를 갚는 그런  권리는 네게 없으니까 사람에게 대해서 이 법칙을 네가 지키라'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가 이 법칙을 지키는 데에는 무진장으로 우리에게 보급해 주실 수 있는,  무진장으로 우리 대신해서 싸워 주실 수 있는, 무한으로 우리를 안보해 방어를  해 줄 수 있는 이분의 도움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다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좌우로 치우쳤다 말은 인간에게 대한 법도는 지키지마는 하나님에게  대한 법도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할 수 있느냐?'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탄식거리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 이하에 보면 네가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내가 너희에게 인간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라 하는 이 말씀대로 하기  위해서 이것 때문에 네 부모나 형제나 자매 나 처자나 전토나 손해를 봤으면  내가 백 배 물어 주겠다 이랬습니다, 백 배. 이런데 우리는 손해만 보고  하나님께서 백 배를 물어 줄 수 있는 그 연결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해 보지 못하는고로 우리의 신앙은 자꾸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에게도 그와 같이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우리가 그리 안 하면 또  하나님이 우리를 모른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리 치우쳐도 죽고 이리  치우쳐도 죽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법도대로 이렇게 공의와 정의와 사랑과 봉사와 희생으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내비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십니다.

이러니까 사람에게 대해서는 어쨌든지 참아야 되고, 견뎌야 되고, 용서해야  되고, 사랑해야 되고, 도와야 되고, 위해야 되고, 축복해 줘야 되고 얼마든지  이렇게 살라 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법칙입니다. 암만 살아도  하나 희생하면 100 주면 99는 덕 아닙니까? 이러니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래야 숯불로 그 머리 위에 붓는  것처럼 저희들이 낯이 화끈화끈하게 미안하다 부끄럽다 그래 가지고 이 세상을  구출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얼마든지 무한적으로 네가 선을  행하고, 사랑을 행하고, 구원을 하고,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해라 무한정으로  해라, 네가 아무리 해 봤자 하는 것 그것보다 내가 여러 배 백 배를 내가  너희에게 줄 터이니까 염려하지 말고 해라. 그러면 그들이 끝까지 그런 사람도  있지마는 감화되는 사람도 있고 돌이키는 사람도 있어 가지고 주님이 피  흘려주신 인간을 구원한 다는 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 아니냐?'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사람에게 대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해 가지고 망하게 하니까 우리가 살아날 길이 없고, 또 인간 대 인간으로  그래 하지 않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법칙대로 해도 하나님이 보급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망합니다.

 자기 집 물두멍에 물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물이 없어 가지러 오면 가져가라고  주면 좋은 것 아닙니까? 주는데 자기 물탱크에 수도에서 물이 안 나오면  가져가면 그 탱크에 물 없는 것 아닙니까? 주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없으면 못  주지요. 기독교는 그런 것 아닙니다. '자꾸 물을 퍼주고 가져가라 해라. 그들이  퍼 가는 것보다 내가 너희 물탱크에 물을 넣어주는 것이 여러 배 백 배 넣어주면  물 지천을 못 할 만치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요대로 지켜 행하면 성경에 이렇게 해 주마 하는 그것이 다 실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지켜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안 이루어지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에이구, 물 다 퍼 가 버리면 뭐 소용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에게와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대로 지켜봐라, 그러면 물이 백 배나  오니까 물 한강이 되어지니까 그때사 보지 못한 것을 네가 보게 되리라. "보지  못한 것의 증거라" 보지 못한 것을 네가 볼 수 있으리라. 자기가 말씀대로 해  봐야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도 알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고, 하나님의 사랑도  알고, 하나님의 진실도 알고, 참 믿을 만한 분이시라는 것도 자기가 볼 수가  있지 우리가 행하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갈 길은 어떤 길인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막 뛰어나게 하겠다. 남에게 꾸어만 주고 꿀 것은 하나도 없게  하겠다 머리가, 항상 머리로 되고 꼬리로 한 번도 안 되게 하겠다. 항상 사람들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겠다. 네 손으로 하는 것이 하늘의 비바람  이것도 조화를 붙여 전부 너 위하도록 해 버리지 땅도 너 위하도록 하지  이러니까 네가 곡간에 차고 넘쳐서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고 아이구, 참 하나님  계시는구나. 과연 하나님이 축복하는구나.' '아이쿠야, 남한에 참 예수 믿는  사람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 참 예수 믿는 사람 그 예수가 하나님이로구나.

우리가 남한에 침략하려 하다가 혼났다. 과연 하나님 계신다.' 그들이 우리  섬기는 하나님을 보고 '야, 이 하나님이 참 공산주의보다 낫구나. 우리도 이  하나님, 예수 믿는 이제 예수 하나님, 이 하나님 믿자.' 그들에게 보여 줄 수가  있는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믿는다 말은 행한 다 말인데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면 될 터인데 하지 않기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요는 그거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명령을 지켜 행하라' 또 '오늘날' 자꾸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말씀을 지켜 행해야  되고 또 우리가 이 다급한 위급한 문제를 오늘 해결지워야 됩니다. 오늘  해결짓고 든든히 해 놔야 되지 그때 가 가지고 해야 안 됩니다.

 오늘날이라 말은 각자들이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서 이 현실에는 하나님이  이리 하라 하고 저 현실에는 하나님이 저것 하라 하고 각각 다릅니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같은게 아니고 개인 개인이 자기 현실에, '구속하신 하나님이여,  내가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랍니까?' 하나님을 한번 생각하고,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 이 분은 전능자요, 이분은 창조주요, 이분은 주권자요, 이분은  주재자시요, 나 위해서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버려 주신 사랑의 주님이시요,  나를 위해서 내 구원 위해서 모든 만물을 지어 왔고 뭐 정치니 편이니 움직이는  그것이 내 구원 위해서 예정해 놓은 그 순서대로 되어지는 이분을 생각하면서  '이분이 나와 같이 계신다.' 생각할 때에 '이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는 나에게 뭘  말씀하노? 이분을 거역해서는 안 되지. 이분의 뜻대로 내가 해야지 그러면  이분이 나를 돕지' 이분을 생각하니까 이분을 제일 두려워해야 되겠고, 사랑해야  되겠고, 위해야 되겠고, 거기에 속해야 되겠고, 그를 바라봐야 되겠고, 그를  의지해야 되겠고,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필연적으로, 이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명령하신 그 명령을 지켜야  되겠고, 이렇게 생각하고 사랑하고 지키다 보니까 점점 자기의 심령이 밝아져서  마지막에 최후에 절정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다니엘이  기도하겠다는 그 계명을 평소에 지키고 세 번씩 기도했지 마는 기도하면  사자구덩이 집어넣어 죽인다 할 때에 그때 기도한다는 것은 목숨도 다해야 되고,  몸도 다해야 되고, 자기 지위 뭐 소유 가정도 다 해야 되고, 모든 것 다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 이것 지키려 하니까 그때에 자기의 있는 것을 다  희생한 것이고 다 돌아보지 않고 그 전부를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명 하나  지키기 위해서 그 모든 걸 내놓고 하나님의 계명 하나 지킨 그것이 밤중이요  그게 절정입니다. 그게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것 됐을 때에 하나님은 다니엘의 하나님 됐고, 그 모든 역사는 하나님으로  다니엘을 돕게 됐고, 다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 입게 됐고, 온 전국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서 그들이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길 수  있도록 른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입니다.

 우리는 뭐 딴것 없어.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반드시 그 매사마다 그것으로써의  밤중이 있습니다. 그것으로써의 최고로 어려울 때 있습니다. 어려울 때 그때에  낙심하지 말고 그때 변동되지 아니하고 그때에 하나님과 그 계명을 이 현실에  무엇보다도 크게 여기고 앞세워서 요동치 않고 하나님의, 구속하신 하나님을  생각하여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만 그 어려움을 통과만 하면  우리 한 일은 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죽든지 살든지 갇히든지 우리 할 일은 다  했소. 그러면 하나님은 그 일을 인계하셔서 하시기 때문에 그 수명이 땅위에  남아 있으면 큰 세상에 볼 수 있는 기적이 나타날 것이고 만일 수명이 끝났으면  이미 죽는 죽음을 순교로 죽어서 영원토록 영광을 마련하게 될 것이고 이런  것이니까 이것이 우리가 잡을 점입니다. 이것 아니면 안 됩니다.

 아무리 뭐 복음 운동을 한다 뭐 어떻게 한다 해 봤자, 어디로 피난 간다 해도  아무 소용없어. 어쨌든지 우리 현실에서 세 가지, 우리 현실에 이 세상에 먹고  입고 사는 것도 중하지마는 이 문제가 중하기 때문에, 제일 위급한 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직장에서든지 어디서든지, 자기 가정에서든지, 혼자 있을  때든지 자기가 현재라는 이 현실에 어떤 사물이 있어도 그것 생각지 말고 그것을  좀 두고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시는가 하나님의 그 명령하시는 그 명령을 찾아서 이제 그 다음에 현실에  대해서 그대로 할 것입니다.

 찾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그 계명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자기야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과 그 계명을 어기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그 지킴을 그 현실에서 지킵니다.

그 현실에 내가 따라 가지 말고 그 현실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신 하나님과 연결된 그 움직임 그 움직임 가지고  그 현실에 쿡 들이받습니다. 그 현실에 그대로 합니다. 이러면 이것 외에는 우리  살 길이 없습니다. 이것만이 우리 살길이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그 현실에  어떤 문제가 있으니까 그 문제가 난제가 되니 그 문제에 붙들려 가지고 그  문제로 인해서 그만 하나님의 말씀도 지금 뒤로 가야 되겠고, 하나님 말씀도  생각할 여가 없고 말씀보다 이게 다급하고, 하나님도 그때 그만 상대할 수 없고,  하나님도 말씀도 버리고 이 환경에 부딪친 이것이, 이걸 가지고 하나님과 말씀을  그만 저버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원수에게 삼켜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다급한 일이요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원수에게 삼켜서 멸망을 받는 것이니까 굶어 죽어도  이렇게 해서 이기는게 낫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하면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네가 먹으리라" "원수를 저거 손으로 다 멸하게 만들겠다" "어떻게  강해도 상관없다. 내가 거기 있는 것 너희 위해서 다 뺏들어서 다 탈환해  주겠다"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세 가지 생각해야 됩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을  것은 이 위급한 것 다급한 것 이것 때문에, 돈보다도 이게 위급한 문제,  사업보다도 위급한 문제, 내 직장보다도 위급한 문제, 가정보다도 이것 위급한  문제, 왜? 위급한 문제 이것 해결 안 되면 그런 것 다 있어야 소용이 없어.

공부보다도 이것 위급한 문제.

 우리가 위급하다는 이 위급성이 자기 주위 환경에 어떤 것보다도 이 위급이  앞서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는 길이오. 이 위급이 앞서기 전에는 안 됩니다.

자기 현실에 어떤 뭐 급한 일이든지, 잘난 사람이 왔든지, 큰 뭉텅이 돈이  왔든지, 어떤 사랑이 왔든지, 지금 뭣 왔든지 이것보다 '나는 위급한 자리에  섰다' 하는 위급한 이 위급에 눌리는 마음이 이 위급이 그런 것보다 강해야  됩니다. 이 위급을 깨달아야 되고 이 위급을 가지고, 뭐 이것 없으면, 그  보십시오. 발에 땅을 밟지 않은 그런 참 귀부인도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난 자식을  제가 원청 되게 배가 곯아 환장을 했으니까 눈이 다 돌아갔어. 질시돼 가지고,  그것을 먹으면서 다른 이가 와서 뺏들어 먹을까 싶어서 못 뺏들어 먹도록 이래  숨겨 가루면서 이렇게 먹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1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실상으로 이루어졌었소.

 뭐 이 사람들은 오면 우리에게 대해서, 일반 사람은 안 그렇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좀 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 해서 그분들이 그렇게 할는지  모릅니다. 여기 와 싸놓고 아무것도 안 주고 생명은 살아 있지 배는 고프지,  나중에 보니까 무인도 간 사람들 모래를 자꾸 집어먹고, 모두 죽었는데 모래가  배에 볼록볼록 해 가지고 죽었다고 그때 2차대전 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데  성경에 이래 왔다 말이오. 성경이 거짓말 하지 않아요. 이러니까 이런 다급한  일이 있으니 이것 저것, 이 문제부터 해결 해 놓고 그러고 난 다음에 그런 걸  생각할 수 있고, 이 문제 생각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속하신 주님과 그  명령을 내가 먼저 생각을 하면, 생각해 들어가면 내가 주님을 숭배해야 되고,  사랑해야 되고, 바라보고 의지해야 되고, 또 자꾸 생각하고 보니까 그분이 내게  대해 이렇게 하셨으니 나도 내 소유와 몸과 생명 다해서 그분을 사랑하는게 옳고  또 그것이 영생이 되고 법으로 해도 그러하고 이러니까 자기 있는 걸 다해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이 일만 하게 되고, 이 일만 하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 하나님 아버지가 다 알고 다 적당하게  다 후히 해 주신다 이랬으니까 만고에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만 하면 우리는  승리 합니다.

 이것 외에는 우리를 구출할 길은 없습니다. 유엔 가지고는 안 됩니다. 유엔에  안보 회의라 하는 것이 무슨 속빠른 줄 압니까? 벌써 다 절단나고 난 다음에  그게 돼도, 와 봐야 또 소용이 없어. 거의 인간에게 하나님이 명령한 그 명령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들은 칼을 대도 칼을 쓰지 못하는 그런 사상들이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악을 가지고도 안 될 것, 독을 가지고도 안 될 것, 수단  가지고도 안 되는 것, 사람에게는 어쨌든지 선을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몽둥이로  때리지 않지, 선을 해야 되고, 그러면 악한 자에게 선 행하니까 몽둥이 맞아  죽지 별수가 뭐 있습니까? 이런 데에는 선은 해야 되지, 이러니까 이 모든 걸  능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가 입어야 됩니다. 도우심을 입지 않으면  안 돼요.

 도우심 입는 것은 현실에 거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레라 저래라 하는 명령이  있으니 그것 한 가지만 하면 우리는 됩니다. "내 멍에는 쉽다" 하는 것은 한  가지만 해라. 현실에 이것 해라 할 때 그것만 해라. 그것만 하면 의식주 생사 뭐  승패 다 내가 책임져 주마.

 이렇게 말씀했는데 우리가 이것만 책임지고 이 멍에만 메어야 될 터인데 이것  외에 딴 수단 방법을 가리는 건 전부 자기 속이는 것이요 남 속이는 것이요  망하는 길뿐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우리가 단정합니다. 아주 우리는 위급한  자리에 있습니다. 이러면 영과 육과 금생 내세 전부가 다 성공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것 급합니다. 그저 '원래 저래 하는 것이라.' 이렇게 듣지 마십시오.

위급합니다.

 우리 마음이 이 문제가 마음에 위급하게 생각해지지 않는 이것이 강퍅입니다.

위급하게 생각해지고 결심해도 현실에 이것에게 뺏겨서 그만 이 세 가지  잊어버리고 저것에게 뺏겨 잊어버리는 그것이 바로 내 목을 끊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살해하는 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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