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의 생활관

 

1984. 4. 18. 새벽

 

본문: 누가복음 16장 1절∼9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 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벌써 여러 날 이 말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계속하는데, 말씀을 생각 하니 또  우리에게 큰 변화가 있고, 또 생각하니 변화가 있고. 열 번 생각 하니까 그만침  변화가 많고, 백 번 생각하니까 그만침 변화가 많고, 천 번 생각하니까 그만침  변화가 많고, 이 말씀이 내 맘 안에 가득 찼으니 변화가 많고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 방편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함으로 너와 모든 것이 다  깨끗하여지느니라. 접촉하는 모든 피조물과 네가 깨끗하여지느니라.' 디모데전서  4 장에 말씀했습니다. 이 외에는 깨끗해지는 방편이 없습니다.

 이런데, 하나님 말씀을 한번 듣고 두 번 듣기를 싫어하는 그자는 벌써 그것이  구원을 실상으로 이룰라고 하지 안하고 말쟁이 예수 믿는 것, 말 예수 믿는  사람, 말 예수교인, 또 지식 예수교인, 지식 예수교인은 하나님 앞에 아는 것  만치 물리침을 당하게 됩니다. 말 예수교인은 결국은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 정죄나 하고 그 사람은 외식자로 뒤에 참된 성도의 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거는 비유인데 이제 한 번씩 물을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속으로 대답을  하십시오. 자기 속으로 여기에서 말은 안해도 '아 답이 무엇이라.' 내가 묻는  대로 답을 하고 그 다음에 내가 말을 할 터이니까 그 답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자기가 살펴보면 아는 것 그것만큼은, 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 이루는 것은 자꾸 말씀을 생각할수록이 자기에게 더 힘이 되고 더  책임이 무거워지고, 더 힘이 쥐어지고. 더 소망이 생겨지고 더 두렵고 더  담대하고, 피조물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두려워지고 이렇게  변화가 있으면, 그 사람이 말씀을 자꾸 생각함으로 변화가 있으면 성경의 힘으로  변화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제 희망이 있는 사람이고, 성경을 읽을수록이  강퍅해지고 또 악독해지고 교만해지면은 그 사람은 참 불쌍하고 가련한  외식자든지 그렇지 않으면 지식주의자든지 이래서 모두가 다 한 말로 말하면  외식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진실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부자는 우리 구주가 되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자는 하나님이요,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부자는 모든 존재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것. 모든 존재가 당신의 것인데, 우리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존재가  당신의 것이 되어 있는데 이것을 다시 잘못된 행위로서 악령과 죄악과 사망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을 예수님의 피로 대속하셔서 또 거듭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악령과 좌악과 사망의 것이 된 것을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해서 대속해서 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주인의 것이라 그말은 우리는 이중적으로 하나님의 것이 됐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요, 다음에는 주님이 십자가의  보배피로 생명으로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대형하고 대행하시고 대화친을  하셔서 우리를 거기에서 대속으로 값을 내고 구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인의 것, 하는 것은 이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답할  때에 그것이 바로 됐는지 모르겠소. 바로돼야 될 것입니다.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저를 부른다 그 말은 주님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항상 개별적으로 부르십니다. '보자 네가 어찌 됐나?' 늘 계속적으로 주님이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주인이 그 청지기를 부르는 거와 같이 우리를 늘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반드시 피조물을 통해서 부르십니다.

성신의 감동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어떤 피조물을 통하는가? 피조물을  통하는가? 중생된 영을 먼저 교섭해서 중생된 영을 통하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우리 마음을 통하고. 우리 마음 가운데서도 제일 으뜸이 되는 양심,  양심을 통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부르십니다. 또 어떤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이거 다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욕을 하는 것도 그 사람이 욕을 하는 무슨 주권으로서 그  사람이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내는 이 원론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근본이신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욕합니다. 또 그 사람을 통해서 칭찬합니다. 그럴 때  어떤가 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시험한다. 그 말은 연단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시련한다는 말입니다. 없는 것을, 없는 칭찬을 하니까  좋다고 벙긋거립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네가 정말로 그런 칭찬받을 것이  있느냐? 없는데. 너 칭찬할 것이 없는데 네가 칭찬하니까 좋아하니, 없는 것을  널 칭찬하는 것은 너를 놀리는 것이가, 널 원숭이같이 놀리는 것이가 널 참으로  존대하는 것이가? 알지도 못하고 칭찬만 하면 벙긋거리고 좋아하는 자야.'  또 자기에게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있는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서 다  칭찬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받을게 없느니라' 그렇게 마태복음 6장에도  말씀해 놨습니다. 이랬는데. 그 칭찬받을 일이 있다 할지라도 칭찬을 하니까  이제 이거 큰 도적을 맞게 됐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겉으로는 그 사람에게  박절하게는 말을 못 해서 아주 다시 그 소리 못하도록 아주 참 냉정스럽게  이라면 또 화목점이 깨질 것이기 때문에 그걸 하지는 못하지마는서도 그래도 그  소리를 들을 때에 마음에 참,  그걸 저는 못합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에 겉이 유유하게, 어제도 내가 하루  종일 고통한 것이 그것이오. 유유하게 무엇을 이래 좋게 그 사람에게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이 칭찬은 내가 받을 칭찬이 아니요 주님이 받을 것이요. 이  사람인데 이로 말미암아 큰 시험이 들어왔으니까 내가 이로 인해서 조그만치라도  이 사람에게 존대를 받는 이런 일이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에게 부들 부들하게 유하게 이렇게 대하는데 난 그걸 못 해요. 그걸 못 하니  단점이 그것입니다. 단점이, 고만 그라면, 아 되면 그 사람에게 꽉 찔러서 뭐  그렇게 다른 사람 넘어지게 하는 간교한 소리 하지 말라고서. 이래 하든지 그리  아니면 그런 소리 듣기 싫다고서. 이래 버리면 그 사람하고 그만 화목성이  깨진다 말이오. 내가 그걸 유유하게 속에 있어도 없는 듯이 이렇게 유유하게  하는 그걸 나는 못 해요. 그거 나는 부러운 것 중에 그게 부러워.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그만 호가 났습니다. 그래 나 때문에 고만 백가는 다 고만 악질이  돼 버렸소. 백가는 성질이 급하고 백가는 악질이 됐소. 그러니까, 백가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도록 그래 내가, 그래 된 것도 내가 백가를 자꾸  그렇게 말하는 거기에서 그랬어. 저거 허물은 아주 고양이가 똥 끌어 먹듯이  자꾸 그래 먹고 제 자랑 가지고 하면 이 세상 사람은 거기 태워 가고 있다  그말이오. 백가가 그렇게 악질이고 나쁜 것은 아니기는 아닙니다. 같은  사람들이지 뭐.

 이렇게 칭찬하고 이라면 사람들은 우쭐거리지마는서도 그것도 주님이 다 그렇게  하시는데 '보자, 있을 칭찬을 칭찬하니까 어짜는고 보자' '아이구 주님이여,  내가 칭찬받을 것이 정말 있습니까? 받을 것 있지마는 내가 천당 상급이 줄어서  내 이거 안 받겠습니다.' 그러는 사람도 있겠고, 정말 받을게 있습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안할 때 내가 어떤 죄악이 있습니까? 함께 하지 안하면 나는  무슨 죄악이 될란지 모르는 죄인입니다. 뭐 죄인 중에 참 괴수 죄인, 정말로  참말로 괴수 죄인입니다. 이런데 주님이 이렇게 하셨는데 내가 한 양으로서 내게  대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내가 이런 것에 걸리지 안하도록 해 딜라고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한다 말이오. 또 없는 칭찬도 하고. 또 없는 욕도 하고.

 내 어제 아래 며칠 전에도 말했지마는 '나는 이제 남은 때에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할 일은 무슨 일이냐? 욕 얻어먹을 일이 없는데 억울하게 욕 얻어먹는  것. 억울하게 욕 얻어먹는 것. 애매한 소리를 듣는 것, 내게 대해서 멸시를 받는  것, 천대를 받는 것 그것이 내 남은 내 토막이라' 내가 그것을 영감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왜 그걸 깨달았느냐? 내가 이제까지의 산 생활, 좀 전까지 산 생활도  산 생활이 하나 하면 백 가지나 선 한 일을 한 척이라고, 기도도 한번 하면 백  번이나 한 척, 다른 사람이 그란다 말이오. 내가 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래 가지고서 실상 없는 좋게 소문이 나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을 아무  그런 대우가 없는데 자꾸 이 다른 사람들이 대우를 해서 이렇게 공짜배기를 많이  받아 놨으니 이 값을 내는 데에는 이제 진짜배기가 욕을 얻어 먹어야 그 댓가가  되겠다 그말이오. 알아 듣겠소? ○○○ 씨 알아 듣겠소? 예? 진짜배기가 이제는  욕을 얻어 먹어야 되겠고, '옳게 했는데 잘못했다고 억울하게 욕 얻어 먹는  그것이 나의 남은 여생일 것이다.' 왜? 내가 다 중년기까지는 너무 하지 안한  일을 한 양으로, 다른 사람이 했는데 공로는 전부 나한테 칭찬합니다. 이러고,  내가 옳은 것이라고 했으면은 백 배도 더 칭찬해 놨으니 그것 댓가를 내가 내는  데에는 옳은 일을 백 가지 해 놓고 한 가지 대접도 못 받는 이것을 해야 그것이  보충이 되고 이 공의가 이루어질 것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남은 때는 내게  이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주인이 불러서 청지기를 불러, 우리가 사람을 통해서도 그렇지마는서도 길가  가다가서 어떤 무슨 소리나, 버러지나, 또 무슨 만물을 보는 것이나 이렇게  가다가 우연히 길을 만나서 길로 가다가서 '아 길이 간이길이구나. 이 길은  꼬불꼬불하구나. 저 길은 갈래길이 많아서 복잡하구나' 할 때에 주님이 그 길을  통해서 나에게 부릅니다. 나에게 말하고 계십니다. '봐라. 이렇게' '예, 내가  주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는 데는 이렇게 갈래길이 많은 줄 압니다. 이러니까  언제도 내가 갈래길을 갔었습니다. 언제도 내가 삐뚤어진, 몇 해 동안을  삐뚤어진 길을 돌아다니다. 가 되찾아왔습니다. 주님이 다시 찾아 인도하심을  인해서 따라서 내가 따라왔옵니다.' '아, 저 버러지가 저렇게 참 불공평합니다.'  큰 거는 약한 것을 삼키고 이렇게 약한 것은 큰 것에게 삼켜지는 것을 볼 때에  '옳습니다. 저런 것 다 만물이 저런 것인데 모든 피조물이 주님에게 삼키워져서  모든 피조물이 주님에게 속해야 되겠고. 주님을 바라봐야 되겠고, 주님을  의지해야 되고, 주님을 따라야 되지, 피조물이 주님을 딶지 않고야 어떻게  그것이 유지가 되겠습니까? 이 모든 존재의 법칙이 그러하니.'  이래서. 사람이 내게 말하는 것도. 만물이 내게 접하는 것도 소리가 들리는  것도,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아,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거 모르는  소리인데.' 모르는 소리라면 이 모르는 소리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 소리 배후에는 뭐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소리가 무슨 결과를 맺을란지  모른다. 이러니까, 모르는 소리는 다 두려움과 염려밖에는 안 납니다. 이런데,  주의 음성을 내가 알지 못하는 음성으로 듣고 있는 그거는 내게 얼마나 합니까?  이래서, 계속 주님이 나에게 말하시고 나를 챙기시고 나를 간섭하시고 나를  붙드시고 이렇게 깨닫게 저렇게 깨닫게 하실려고서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우리에게 주시고, 모든 존재가 다 주님의 음성이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  실물 교재요, 모든 것이 말하고 있는 주의 음성이라.

 이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늘 부르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아 어디  있느냐?' 이렇게 찾으시는 것으로서 표시하신 이 표시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물질이나 모든 것이 하는 것이 그것이 내가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게 아니라  주님이 원인자입니다. 주님 한 분이 주권자로서 그분이 시발하지 안한 일이  시발되는 일이 없고. 그분이 하지 안하는 말이 없고, 안하는 말. 그분이 안하는  말이 말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움직이지 안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내게 보이지 안한 것이 보여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그전에도 얘기했지마는서도 ○○이라고 지금 목사님이  됐는데 그 ○○목사가 조그만한 꼬마일 때 내가, 그때가 6·25 때 인데 같이  한방에 둘이 누워자다가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옷이 젖었어. 오줌을 싸서  보니까 내 옷이 젖었어. '아, 오줌이 이 아이가 오줌을 싸서 내가' 오줌이면  그거는 시골에서는 거름이라 이랍니다. 거름. 아주 좋은 거름이오. '오줌이.

내가 거름이 돼 버렸다. 거름이 돼 버렸다. 거름이 됐으니 나는 썩어 버렸다.

이걸 왜 나에게 보여 줄까?' 그러면서 '아, 내가 어제 갔어야 되는데.' 어제  교회에 주일 보러 갔어야 했는데 하도 토요일날 우리 집의 아내가 와 가지고서  교인들이 모여서 내일은 지금 인민재판이 시작되는데 인민재판에 제 이호가  조사님이 이호가 돼 가지고서 내일 온다. 인민재판에서 사형을 시킬라고 그래  결정을 했기 때문에 내일은 오지 말라고서. 그래 제 아내가, 다른 사람은 그때  심부름도 못 하요. 어데 가는지 조사를 해 쌓으니까, 그래 와서 오지 말라고  그렇게 모두 제직들이 보내서 그래 왔다고서 그래 했기 때문에, 그러냐고, 또 그  교회서도 '거기 예배 보나 여기 예배 보나 오늘은 여기서 설교 좀 해 주이소'  이렇게 ○○교회서 이랬는데, 그래서 그 말이 께끄름 하지마는서도 그래  그랄라고 거기 누워 잤습니다. 누워 자다가 아침에 오줌을 옷에 싼 것을 보고서  '아, 내가 지난밤에 갔으면 오줌이, 오줌 되배기가 안 됐을 터인데 지난 밤에  가지 안한 것으로서 내가, 그만침 썩어서 이제 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오줌이 나한테 말해 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고만 달음질쳤습니다.

거기서 농산서 위천이 아마 한 십 리나 넘어 될란지 이랬는데 마구 달음질을  쳤어. 달음질을 치니까 일어나 가지고 가니까 거기에 예배 시간이 안 됐습니다.

십 리는 넘을 것입니다. 몇 리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제 달음질을 쳐  가지고서 가니까 교인들이 보고서 깜짝 놀라면서 어쩔라고 오셨냐고서. 나 아무  말도 안 하고 뭣 때문에 그라나고, 그런게 없다고서. 그라고 그래 인제,  그러니까, 그날 갈 때까지는 겁이 나고 또 가 가지고 강단에 설 때까지는 겁이  났는데 강단에서니까 그날 은혜가 많이 내렸습니다. 은혜가 많이 내렸고, 또  내게도 큰 힘을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줌의 말을 들어서 '주님이 오줌을 통해서 나에게' 하는 음성을 내가  듣고서 6·25에 큰 과오를 범하지 안했다. 내가 만일 그때에 ○○에서 그랬다고  했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음을 걷지 안하고 그랬을 터이니까 그걸로서  하나님과 나와에 멀어졌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 내가 어떻게 됐겠느냐, 내 신세가  어떻게 됐겠느냐? 6·25에 내가 어떻게 내가 그 때를 통과했겠느냐? 그걸  생각하면 지금 참 어떻게 기쁜지. 그래 내가 그 얘기를 종종합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조그만한 음성이나 무엇이나 다 그 전부가 다 주님이 나에게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다른 사람이 타락한 것을 내가 볼 때에 그 타락을 나에게  보이고 있는 것이고, 참 완고하고 강퍅한 껏을 볼때에 '이 놈아 이 강퍅을  보느냐? 네가 이 강퍅이 네 눈에 보이느냐? 네눈에 볼 때에 아름답게 보이느냐?  이 강퍅이 네 눈에 볼 때에 밉게 보이지? 네게는 이 강퍅이 없느냐?' '오, 주여'  형제의 눈에 티를 보고서 뺄라고 하는 자야, 네 눈에 들보를 찾아서 먼저 빼고  난 다음에 형제 눈에 티를 뽑아라. 그러면 형제의, 조그만한 형제의 단점으로  인해서, 형제의 단점을 네가 볼 때에는 단점을 간섭하고 단점에 대해서 네가  무슨 의인처럼 착수 할게 아니라 형제의 단점이 무슨 단점이든지 단점이 보일  때에는 그 단점으로 인하여 네게는 그 몇십 배 되는 그 단점이 네게 있는 그것을  발견하는 그 순서가 첫째고, 몇십 배 되는 것을 발견을 하고서 그 발견된 단점을  자기가 해결을 짓도록 노력을 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의 단점에  대해서 네가 착수를 해라 하는 것이 주님의 이 알뜰한 참 교훈, 이 진실한  교훈인데 우리는 얼마나 외식자인지 모릅니다.

 이래서.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였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다, 주인의 소유는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인데 우리는 이중 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했으니  하나님의 것이오. 우리가 근본 하나님의 것이오. 또 우리는 주님의 피에 팔린  것이기 때문에 이중적으로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소유를 허비하였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허비 하였다는 말이  들린지라.' 그러면, 허비했다, 허비했다는 것은 주인의 비위에 맞지 않게  사용했다는 말 아닙니까? 또 그것을 주인을 위해서 써야 될 티인데 다른 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위해서, 주인을 위해서 쓰지 안하고 다른 것을 위해서  썼으니까 허비한 것 아니겠소? 주인 위해서 썼으면 허비가 아닐 것이고. 주인  외에 자기나 다른 무엇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으면 허비일 것이고, 주인을  위해서 썼다 할지라도 하나만 하면 될 터인데 둘을 썼으면 그것도 하나는 허비가  될 것이요.

 이러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허비했다는 것이 뭐입니까? 이번에 셋 중에  하나인데, 셋 중에 하나. 우리가 세 가지 뭣 뭣 말했지요? 한번 말 해 봐요.

첫째, 주의 것, 또 주를 위하는 것, 또 주의 법칙대로 쓰는 것 요것을 안 했다.

그말이오. 요것을 안했어. 요것이 기초입니다. 이것이 터전이요, 터전. 우리가  우리 행동 가운데에 주님의 것인 이것을 아는 것이 제일 큰 믿음이오.

 내 자신과 내 모든 소유와 건강과 몸과 생명, 시간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되면 무엇이 우리 것 됩니까? 주님의 것이 되면 무엇이 우리 것 됩니까? ○○씨,  예? 주님이 우리 것 돼. 주님이 우리것 돼. 주님이 우리 것 돼? 그 답이 백  점이오? 고 앞에? 주님의 말씀? 또 고 앞에? 또 그 앞에? 그래도 안돼, 그래  가지고는. 정확하게 맞아야 되지.

 주님의 피로 살리심 받았다 안했소? 주님의 피에 팔리지 안했소? 이러니까,  주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이 우리 것 되지요. 그렇지 안 해요?  대속으로 우리를 사지 안했소? 주님이 우리 산게 아니라 주님의 대속으로 우리  샀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것이 되면 사죄가 내것이 됩니다. 칭의가  내것이 됩니다. 화친이 내것이 됩니다. 내가 주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리고  내것을 내가 내것으로 가지고 있고 내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 주님의 피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대속을 우리가 새김질을 하면 '아,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뭐 가지고 샀는고? 소유와 몸과 지위와 권세와 영광과 존귀 모든 부요를  다 가지고 샀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큰 값에 팔린 자이니 내가 무슨 이런 저런  어떤 것이 있다고 해 가지고서 거기에서 내가 변동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대로의 사람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어제 아침에는 사람이 남의 상점에 가 가지고서 물건을 샀는데, 물건을 사고서  내가 물건을 가지고 돈을 내 줘 놓고 이제 돈을 도로 찾으면 돈을 안 내놓는다고  시비를 하면 그 주인이 뭐라고 말한다 했습니까? '물건 내놔라.' 돈도 안 주고  물건도 안 주고 이랄라하면 뭐라한다 했지요? 예? 도적이라, 좋게 말한 건데  '도적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제 설교를 해 놓고 또 돌아가서, 이것이  설교록에 기록이 될 터인데. '그라면 불법이 아닙니까? 그래 가지고는 자꾸  시비가 나면. 그라면 그게 불법이 아닙니까? 경우가 틀리지 않습니까?' 이래  내가 말했으면 될 터인데 도적놈이라, 그 설교록을 볼 때에 '도적놈' 그라면  '아따 백 목사 말도 무데기도 한다' 이렇겠다, 이래서 도적놈 말을 내가 그걸  오래 동안 좀 생각을 했소. 자꾸 생각했는데 실은 내 속에서 튀어 나온것  '도적놈.' 네가 물건을 가지고 갈라면 돈을 내놓든지, 댓가를 내놓든지 돈도  안내놓고 물건 가지고 갈라는 그거 도적놈 아니가? 알아듣기 쉽도록 도적놈이라,  꼭 바른 발표는 발표인데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동감이 됐으면은 그 설교록을  보고서 읽을 때 옳소! 도적놈이지! 도적놈이지. '나는 도적놈이다. 나는  도적놈이다.' '그 설교록을 보고서 나는 도적놈이라고 자기에 대해서 정죄를 할  수 있겠지마는서도 잘못 보면 이게 안 되지 않겠느냐?' 또 그것을 내가 종 많이  좀 생각을 가져 봤습니다. 그게 도적이지요.

 우리가 내가 주님의 것이 된 이것을 인정할 때에 주님의 대속은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내것이, 내가 모든 것을 다 주님의 것으로 활용을 할  때에 주님의 대속은 나를 위해서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지극히  무한하신 이 큰 대속과, 이 불의에 싸여서, 범죄해서 언제든지 죽을 것 뭐  절단날 것 이까짓 것, 썩어서 지옥이나 차지할까 아무것도 차지할 수 없는  이까짓 것 주고 지극히 큰 대속 우리가 받는다는 것도 이것도 얼마나 크냐?  생각할수록이 세상에 이렇츰 복된 일, 이렇게 유익 보는 일, 이렇게 좋은 교환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유익된 교환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내 것 되고 주님의 대속 내것 되니까 주님 내것 되지요. 나는  주의 것 되고 주님은 내 것 되고, 이렇게 되는 이 대속이 이루어지는 이것도  생각할 때에 참 다른 사람이 대속을 생각하고서 기뻐 즐거워서 이렇게 하면 모두  그 사람보고 '저 사람 미친 사람이다.' 저 혼자는 좋아서 실상 그렇지마는 다른  사람이 보면 미친 사람이라 할거라. 이러니까 표시는, 표시는 또 사람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표시는 못하지마는서도 속으로는 정말 미쳐져야 됩니다. '이렇게  천한 것이 주님의 지극히 존귀함의 자존자로 더불어 이렇게 바꾸어지다니.

주님이 나 되다니. 나는 주의 것 되고.' 이 뭐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고 참  즐거운지.

 이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주님의 것인 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청지기라, 나는 청지기라, 나는 청지기라. 청지기 직책이 몇 가지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세 가지. 주인이 주인의 모든  소유를 당신 중심으로 모든 것을 관리합니다. 당신 중심으로 관리해서 당신  좋고, 당신의 모든 소유가 당신으로 인해서 그 소유들이 좋고, 그 소유는 당신을  위해서 당신에게 좋고 이렇게 잘 처리하는 것이 청지기의 제일호의 직책인데,  일호의 직책. 우리에게는 일호의 직책이 뭣이라 했습니까? 자 손가락으로 들어  보이소. 선지자, 선지직, 틀립니까? 왕직, 틀립니까? 제사장직, 전부, 다  틀리는자베? 뭐요, 그라면? 자. 이 셋 중에 왕직이라고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선지직으로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신지자 직으로 아는 사람. 저 누구 손  하나 들었다. 제사장직이라고 지금 말한 것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 가운데는  바보고, 천치 바보로구만, 들어봐야. 이렇츰 날마다 가르쳐도 그걸 못  알아들어요?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아직까지 못 알아들은 사람. 이래도  저래도 안 들으면 배우지 말아요. 뭐 쉬운 건 줄 아요? 쉬운게 아니라. 이 일을  위해서 사람이 평생 녹아지고 평생 기도거리가 이겁니다. 뭐인지 여러분들이  가치를 몰라 그렇지, 여러분들이 좋아하고 이거 없으면 죽는다고 하는 재산이나  인간이나 무슨 가정이나 전부 다 둘러 뭉쳐 봤자 이거야 제사장 직의 억억억억  억억만분의 일도 가치가 없어! 뭐인 줄 알고 그렇게 시쁘게 여기고 자꾸, 알지도  못하고 자기 닥치는데 취하지도 안하고 그냥 저버리고 던져 버리고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는 것이오. '아, 나와  내 모든 것이 주인 주님의 것이 아니라면 주님의 대속은 내기에 상관없다.

주님의 대속이 내게 상관없으면 주님은 나와에 상관이 없고 적이 된다.' 주님의  대속이 내게 상관이 없으면 주님은 우리의 적이지, 우리를 영원히 심판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지실 분이시지. 이렇다, 요거 하나만 단정을 지워 놓고  따져도 오그라져 들어가서 펼 여지가 없는데, 이만 해도 더 짊어질래야 짊어질  수가 없는 짐인데 이런 일을 그저 말 한 마디로 던져 버려 버리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던져 버리고, 알기 쉽지마는 참 알기는 어렵습니다. 입술로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알기는 쉽지마는서도 이 사실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 가지고 그때에 아는 거와 같이, 무궁 세계에 아는 거와 같이 이 세상에도  현실을 당해서 면류관을 이룰 수 있는,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영생을 이룰 수  있는, 주님의 것으로 살면 다 영생이오. 내것으로 살면 다 영원한 멸망이오.

 '주인의 것을 허비했다, 허비했다,' 허비한 것이 뭐입니까? 주인 위해서 쓰지  안한 것이 허비 아니요? 주인 위하여 쓰지 안한 것이 허비라. 주를 위해서 하지  안한 것은 다 허비라. 내가 말 한 마디 한 것도, 행동 하나 하는 것도 생각 하나  한 것도, 모든 것을 이것 저것 움직이는 것도,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것도 모두  전부가 다 주님을 위해서 하지 안하는 것은 다 허비라. 주인에게 쫓겨날 수 있는  일이라 제사장 직을 박탈당할 수 있는 일이라. 주를 위하지 안한 것이 허비한  일이지요.

 또 주님을, 주인을 위해서 하기는 했는데 허비되는 것은 어떤게 허비되는  겁니까? 어떤게 허비되는 것이오? 주인을 위해서 하기는 했는데 어떻게 한 것이  허비입니까? ○○○ 주의 법칙대로 하지 안한 것이, 주님이 '이거는 한 푼만  해라' 해 놨는데 고만 열 푼이나 써 버렸다 말이지. 또 '이거는 둘을 줘라.'  주인이 둘 줘라 했는데, 둘을 주라 했는데 제가 인색해 가지고서 하나를 줘  버렸다 그말이오. 덜 줘도 주인에게 대해서는 거슬리는 것 더 줘도 거슬리는 것.

그거 다 제 마음대로 썼기 때문에 허비라 그 말이오.

 주님을 위해서, 주의 것인 것을 알고,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법칙에 복종으로  하는 요것이 청지기 칭찬 받는 일이요, 청지기 자격이 있는 일이요 청지기 직을  계속하는 일이니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무슨 실력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몇 가지 실력을 배양하는 것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손가락으로 와 저 ○○○집사는 손가락을 버뜩 안 들어? 뭐 팔이 아파? 팔을  들만한 가치가 없어! 예? 몇 가지? 이렇게 들어야 될 건데, 이렇게 팔이 아까와?  팔이 아까와? 교만해요! 말씀에 대해서 교만해.

 세 가지가 세 가지 직책을 이루는 것이지, 주님의 것인 것을 알고. 주를 위하여  주의 법칙에 복종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 하면 세 가지 실력이 길러지지 세  가지 실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 세상에서 계속, 제사장 실력을 계속 기르고  있는 것이고, 제사장 직책을 계속 연습하고 있는 것이고 제사장 직책이 숙달  완성되어지는 것이고, 선지 직책이, 왕 직책이, 이러다 보니까 내가  모르지마는서도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은 통치를 바로 했습니다. 주님의 통치가  그대로 통치됐습니다. 주님의 그 뜻을 그대로 선포했기 때문에 주님의 충만을  그들에게 다 갖다 줄 대로 다 줬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유익한 말은 내가 한  마디도 내가 빠지지 안했다.' 사도행전 20장에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떠나면서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유익한 말은 하나도 내가 하지  안한 것이 없이 다 했다.' 그러기에 딴 데 보면 '내가 미친 말을 하는 것도  너거를 위해서 했고. 내가 어리석게 미친 자의 교만한 말 한 것도 너거 위해  했고, '내 자랑 말 하는 것도 너거 위해서 했고 다른 사람에게 미움당할 것도  너거 위해서 했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는 말도 너거 위해서 했고, 너거  위해서 했고 주님이 너희들을 위하기 때문에 주님이 너거 위해서 한 말 그 말을  내가 한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또 시간 됐으니까 재독만 했습니다. 세 가지가 세 가지  이루는 것. 세 가지가 세 가지 이루는 것 요것 단단히 기억합시다. 세 가지가 세  가지를 이루면 청지기 직책이 계속됩니다. '네가.' 이 일을 신실히 봤으니까  칭찬할 것이오. 이 세 가지가 세 가지 안 하면 주인이 '내 소유를 허비했다 하는  이 말이 들렸는데 이거 어쩐 말이뇨? 셈 하라. 계산하라.' 우리는 하는 일에  하나 하나 계산 안 대는 일이 없습니다. 요 계산대는 요것도 우리에게 생명이요.

요 하나만 해도.

 아, 주님과 나와의 모든 행동은 다 계산이 되는데. 계산 없이 지나가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내게 대해서 모든 계산은, 내가 말한 것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계산이 있으니, 내가 말한데 대해서 계산이 있으니 그 계산해서 '아' 가만히  생각 생각하면 '어떤 일에 대해서는 내가 그 계산 한다면 거기에 내가 빛이  졌다. 내가 말한데 책임을 지지 못했다. 내가 거기에 대해 허무한 말이 됐다.

속이는 말이 됐다.' 속이는 말이 됐으면 그 말을 고칠라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이러니까, '셈하라, 셈하라, 셈하라.' 무엇을 누가 뭘 좀 '아우 것이가 좀 보자  합니다.' 그럴 때는, '보자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뜨끔뜨끔해  내려 앉는다 말이오. '보자 합니다.' '보자 합니다.' '보자합니다.' 할 때에  가슴이 내려앉는 것이 그것이 차차 살아 갈수록이 더 심해져. 심해져.

담대해지는게 아니라 심해져. 보자 하면 '아이구 내가 그분에게 대해서 뭐  잘못한 게 있는가? 내가 무슨 책임 추궁을 당할 건가? 뭐 잘못한게 있는가?' 뭐  말을 들을 때마다, 뭘 얻으러 오는 사람도 그저 처음에 떡 말 나오기를 '아무  것이가 뭐 돌라고 왔습니다.' 뭐 달라고 왔다는 사람 말 들을 때는 그만 그때는  별게 없어. 있는대로 뭐 주든지 못 주면 못 주고 이렇지마는서도. 그냥 '좀  만나자 합니다.' 할 때에 '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내게 할 건고?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뭘 내가 잘못된 말이 있는가?' '뭐 내가 말만 하고서 실천하지  안한 일이 있는가?' 이러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거린다  그말이오.

 저 먼저 ○○○ 목사가 와서 날 만나자고 이라는데 고 며칠 전에 만났소.

만나기 전에 처음 만나자고 할 때는 가슴이 뜨끔해서 '아 이 ○목사 가 나한데  뭘 만나자 하는데 무슨 말 하려고 만나자 하는고? 내가 그에게 대해서 무슨  거리낌이 없는가? 또 그에게 대해서 원망거리가 없는가? 그에게 대해서  시비거리가 없는가? 불만거리가 없는가? 그에 대해서 내게 뭘 요청한다면 내가,  요청한다면 그 요청은 무슨 요청을 할 건가?' 이래서 가슴이 뜨끔거린다 말이오.

그 다음에 두번째 왔어. 두번째 그때는 말하고 다 했기 때문에, 두번째 와서 또  만나자 한다 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했어. '내가 지금 바쁘니까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 전화로 하십시오.' '아, 전화로 할게 아니라 좀 만나야 되겠습니다.'  '만나되 딴말이 있으면 그렇고 지난번에 만나서 말다 한 말이면 그 말을 다시,  또 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만 전화로 하십시오' '아닙니다. 만날라 하는 것은  그저 인사만 하고 갈라고 이래 왔습니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인사는 뭐  전화로 하면 되지 않소?' 그라니까 '제 아내하고 같이 왔습니다.' 아 목사  장립이 됐으니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니 이거는 주님에게 속한  것이요 주의 영광에 속한 것이니까 만나러 왔어. '그러면 내가 수위실로 내려  가지요. 거기서 만납시다.' 그래 수위실에 내려가 가지고서, 부부가 왔었기  때문에 '오셨느냐고서.' '어짜든지 내가 부탁하는 것은 좋은 목사가 되고 안  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께 있지마는서도 다음에는 자기 부인에게 있기 때문에  부인이 들어서 좋은 목사를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그런 말을 하고서 서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셈하라. 셈하라'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동안에 아는 대로 자기가 살펴  가지고서 다 계산할 것 계산하고 그저 무엇이든지 '사랑 외에는 빚지지 말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빚질 필요가 없습니다. 빚 안 지고 살건데 뭐하려고 남의  조그만한 것이라도 남에게 누를 끼치고 빚을 지고 지금 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있기를? 이러니까, 셈하라는 이 하나만 해도 우리는 참 항상 큰  소리를 못 하겠습니다. 왜?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어. 무엇이 계산 못 대고 지금  계산을 안 댄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말이오. 둔하기 때문에 몰라. 마음에  '이제는 계산할 것 다 하고 정리할 것 다해서 남에게 무슨 빚진게 없다.' 아무리  했다 할지라도 둔하기 때문에 그 뒤에 생각하면 또 나온다 그거요. 이라니까,  항상 이거는 빚진 자로 마음이 눌려 가지고 살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마음이  쾌활하지 못하고 항상 우울해. 항상 우울해  이러니까, 무엇이, 무엇이 내가 잘못된게 있는가? 뭐 남에게 무슨 누를 끼친게  있는가? 남에게 부담을 준게 있는가? 내가 남을 부담해야 되지 남에게 무슨 말  한 마디라도 부담시킨게 있는가? 내가 그걸 말해서 다른 사람이 무슨 부담이  됐던가?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항상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마음이 눌려 가지고  있지, 뭐인가 항상 그저, 재판을 걸어 있는 사람이 이번 재판에 지나 이기나  하는 것 모양으로 장 하나님 앞에 설 터이니까 '이게 무엇이, 뭐이 나타나며  뭣이 잘못된게 있을까?' 앞으로 심판을 받을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해서 그 완전자에게 심판을 받아서 '됐다' 맞을 것은 맞고, 뺏길 것은  뺏기고 칭찬받을 것은 받고, 그분의,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하고야 참 마음이  이제 안심이 되고 하늘에서 평안하지 그전에는 모든 것이 미정이라. 모든 것이  미정이기 때문에 항상 염려라.

 모든 것을 셈하라. 와서 셈하라. 이랬는데. 청지기 직, 우리가 청지기 직 이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안하고 청지기 직을 뭣 하려고 줬는가? 이  청지기 직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까? 청지기 직과 천하를 다 영계와 물질계를  다 내게 준 것과 청지기 직과 둘을 비교하면 청기기 직이 더 큰 대우요 큰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청지기 직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사장 직을 맡겨서 우리가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그  관계에 조화성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 직을 해서, 제사장 직 하는  것은 속죄,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요제, 전제 이런 것을 다 드라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의 전부요, 생활의 전부요,  저희들의 전부라. 저희들을 전부와 하나님과의 그 조화를 바로 맞추는 이것이  제사장 직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좋아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좋아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전부를 삼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너희들이 내 소유요 내 기업이요,  내 기업이라.' 이렇게 영광의 찬미하는 이렇게 제사장 직을 바로 해서 제사장  직이 바로 됐을 때에는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니고. 못 살겠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아니면 못 살겠고 할 수 있는 이렇게 밀접한 관계를 맺어 놓은 그 일이 얼마나  존귀한 일인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목회자의 기쁨은 그것입니다. 권찰들의  기쁨은 그것입니다. 요걸 깨닫고 자기가 제사장 직을 바로 해서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조화가 돼서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만 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은  그에게 기뻐서 직접 연결이 돼 가지고 좋아하고 하는 그런 조화를 이루었을  때에, 조화, 조화 그 화합 화평해서, 화평해서 화합을 이룰 때,  어제도 제가 혼자 군담으로 말했습니다. '죄, 죄, 죄는 불화죄가 제일 큰 죄다.

불화죄가 큰 죄다. 참 의 중에는 제일 가치 있는 의는 화평의 의다. 화평의 의  화목의 의다. 이 화목의 의를 누가 이룰 것인가? 이 화목의 의를 누가 이룰  것인가? 이 불목의 이 원수를 누가 깨트릴 것인가? 참 죄 중에는 불화가, 불화의  죄가 제일 큰 죄다. 의중에는 화목의 의가 제일 큰 의겠다.' 이렇게 혼자  군담으로 얼마 동안 말을 했습니다. 너무 화목이 귀하고 불목이 너무 무섭고  원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고로 제사장은 이 직책을 가진 것이 제사장 직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무슨 사건을 우리가 제사장 모양으로 해결해 줘야 될 건가? 누구를 우리가  화합을 해 줘야 될지 그거 모릅니다. 누구에게 뭘 해야 될지, 어떤 것에게. 어떤  존재에게, 어떤 피조물에게 해야 되는지 그것도 종류도 모릅니다. 종류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데, 주님이 그저 내가 요 현실 줄 때에도 고 현실을 주를 위해서, 주의  법칙대로, 주님의 것인 것을 요 현실에도 내가 깨닫고 '아, 내가 주의 것  가지고, 주님 위해서, 주님에게 복종으로. 요 현실에서 요 세 가지만 하면  제사장 직이 완전히 이루어져서 제사장의 실력을 완전히 갖출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네가 네게 분담된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네가 책임지고 조화해야  될 그 조화는 다 좋아하게 된다. 다 조화를 하게 된다.

 이러니까,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하여, 주님의 법칙대로 복종으로, 이 세 가지만  무조건 하면. '아, 그라면 저런 면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데' 너는 몰라도 좋아.

내가 고게 필요한 현실을 줄 테이니까 고 현실에서 또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해서, 주의 법칙으로 그것만 하면 고게 돼 버려요. 너는 몰라도 좋아. 요 세  가지만, 간편하게 세 가지만 하면 된다 이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첩경을 줬어.

곧은 길 첩경, 지름길을 우리에게 주셨어. 우리가 그렇지 안하고 그 사실을,  지금 인간들이 말한 서적도 말하면 그것을 읽을라 하면 일생 동안 읽어 봤자  그까짓 거는 몇백분지 일도 못 읽을 것인데 이 무한한 온 세상에 둘라 해도 둘  곳이 없는 그 복잡한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 복잡한 것이 현실에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하여, 주의 법칙에 복종하는 것으로 하면 이 모든 것이 다  달통되고 완성된다, 이보다 더 첩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지름길이  어디 있겠소? 우리는 깨닫고 살고 어짜든지 세월 허송하지 말고. 그저 참  슬기롭게 지혜롭게 삽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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