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 생활

 

1986. 1. 16. 목새벽

 

본문: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번에 공부하는 가운데에서 믿음에 대해서 많이 증거를 했고, 은혜에 대해서 많이 증거를 했는데 여러분들이 귀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잘못 깨달으면 헛일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부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그 구원을 우리가 지금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만드는 데는 우리 사람의 수고가 털끝만치라도 거게 가담이 되면 그 구원은 절단 나 버립니다. 순전히 하나님 단독이 만들어 놓으신 그 구원을 우리가 순전히 공짜로 받습니다. 그라니까 ‘기독교는 힘 안 들어도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다. 그러면, 공짜로 받으니까 이거는 참 아주 그저 힘 안 써도 된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여러분들이 어제 공부할 때에 그 펠라기우스라는 그 사람의 주장을 배웠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열심 내는 그것이 왜 틀렸느냐? 제 열심이 구원을 만든다고 했기 때문에 고것이 이단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 구원을 공짜배기로 받는데, 받는 데에 힘이 들어서 받는 데에 그렇츰 힘을 썼다고 하면은 그거는 정통 중에 정통이요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공짜배기인데, 받는 수고가 아니고 제가 노력해 가지고서 만드는 구원이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틀린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이 ‘아, 기독교 구원은 전부 공짜로 받는, 은혜로 받는 것이니까 이것은 참 그만 힘 안 써도 되는가 보다’ 이렇게 해 가지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 헛일입니다. 구원을 공짜배기 구원을 받는 데에 우리가 얼마나 힘을 써야 되느냐 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그러면 남은 거 있습니까? 전부 다해야 공짜로 받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또 ‘네가 죽도록 충성을 해라 그래야 네가 생명이 승리 하는 생명 승리를 네가 얻게 된다’ 그랬습니다. 또 ‘너희들이 지극히 큰 소망을 얻었으니 너희들이 더욱 힘을 써야 된다’ 베드로후서 1장 5절에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힘쓰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구원은 왜 공짜배기로 얻느냐? 공짜배기로 얻는 것은 구원이 값이 싸서 공짜배기로 얻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어제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예수님이 베풀어 놓으신 그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큰 공로를 들여 가지고서 구원을 이루어 놓았는데 이 구원은 우리가 공짜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너무도 어렵고,너무도 어렵고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이 인간으로서는 그 사람이 무슨 뭐 성자라 성녀라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행동한 그 행동이 구원에 털끝만치라도 그 행동이 거게 가담됐다고 하면 그 구원은 박살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성자 성녀가 한다고 해도 이 구원에, 구원 자체에는 근방에 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완전하신 하나님이 법을 세워 놓으시고 그 법을가지고서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인데 하나님의 공심판에 ‘이는 죄없다, 이는 의롭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다’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를 이룬 것은 전지 전능하신 완전자이신 하나님이나 할까 인간은 못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를 대속을 했지마는 예수님의 인성만 가지고 안 되기 때문에 신인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우리에 대속의 구원을 베푼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은, 불교 구원 같은 그런 거 뭐, 사람이 힘을 쓰면 그래도 털끝만치라도 고 구원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그런 거 같으면 되겠는데 이거는 천하 인간이 다 달라들고 합해도 이 구원에 대한 것은 털끝만한 것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완전자만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은혜로 받는 것은 이 구원이 우리 사람들로서는 만들 만한 그런 실력이, 털끝만한 것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지극히 거룩하고 완전하고 깨끗하고 한 이 구원이기 때문에 인간은 암만 성자라 해도 그 행동이 그 근방에 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끗해서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이루어 주신, 예수님이 대신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을 우리가 그저 공짜배기로 받는 것이지 그 구원을 우리가 뭘 힘을 써서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거는 아주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너무 이 구원이 깨끗하고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욥이 말한 대로 아무리 성자가 어떤 의로운 행위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때 묻은 옷과 같다 그렇게 말한 것처럼 우리 사람들은 아무리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애를 써도 이 구원에 대한 요소는 털끝만치도 이룰 만한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전능자 전지자 완전자 그분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이루어 놓은 것이 다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이 만들 수 있습니까? 못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 순전히 공짜로 얻는다. 그거는 값이 싸서 공짜로 얻는 게 아니라 너무 비싸고 어려워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거나 되지 인간으로서는 만들 수 없다 하기 때문에 공으로 받는 것입니다.

공으로 받으나 우리가 받을 때에 그 은혜를 받을 만한 그릇이 돼야 되겠는데, 그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 돼야 되겠는데 그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자기의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전부를 다해서 이 은혜를 받을라고 애를 써야 공으로 주는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 받는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쓰는 것은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만드는 것이요 그것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그 자격을 만드는 것이지, 만일 이 자격을 만들지 안하고 그 은혜가 오면은 그 은혜로 인해서 인간은 타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은혜를 받을 만한 그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힘쓰고 애쓴다는 것이 내나 그 공으로 주는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자기가 마련하는 것이고 또 공으로 받는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지 그것이 구원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구원을 받을라고 하면은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야 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 말은 생명 내놓고 해야 이 공으로 주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말이오. 죽도록 충성하라 그거는. 생명까지 다해야 공으로 주는 이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생명 그것 다 안 하면 받을 수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이랬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 부인하는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압니까?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이 공으로 주는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신 것입니다. 자기 부인하는 것은 뭐 자기 소원도 다 없애야 되고, 욕심도 없애야 되고, 뜻도 없애야 되고 주장도 없애야 되고, 성질도 없애야 되지 그 모든 악독도 다 없애야 되지, 마치, 우리에게는 전부 나쁜 것뿐인데 죽은 송장같이 그렇게 되어져야 되지 뭐이 살아 있으면 그 더러운 것이 살아 있어서 안 된다 그말입니다. 얼마나 그거 어렵습니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모두 자기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다 두터 씌우는 게 그게 세상인데 다른 사람의 잘못을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그것을 내가 대신해서 그것을 책임지고 하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게 십자가이고,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은 그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난 다음에 이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난 다음에 십자가를 지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번에는 그만 반사 공부를 그동안에 재독을 시키지 못해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또 다시 증거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이 학생들한테 심방을 갈 때에 ‘아, 요걸 꼭 줘야 되겠는데, 이걸 줘야 되지 이걸 안 주면 이 학생들 망하는데 이걸 줘야 학생들이 살고 학생들이 망하지 안하지 이거 안 주면 안 되겠는데’ 마치, 지금 병들어서 곧 죽게 된 그 환자에게 이 병의 특효약이 있어서 이 특효약 주사 만 놓으면 고만 이 사람이 살아날 수 있는데 지금 급하다 말이오. 급하니까 ‘아, 이거 아무래도 내가 이거, 뭐 바쁜 일이 있고 몸도 피곤하지마는 내가 안 가면 이 사람 죽는다. 죽기 때문에 내가 암만 바쁘고 피곤해도 가 가지고서 이 주사를 놔 줘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피곤한 것도 아픈 것도 바쁜 것도 생각지 안하고, 이거 안 놓으면 그 아이 죽기 때문에, 그 사람 죽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죽으니 그 사람을 이거 어서 가서 놔서 살려야 되겠다 하는 꼭 고와같이, 여러분들이 이것을 이 학생들이 안 알려 주면 이 학생들은 망한다. 이걸 알려 줘야 되겠다 하는, 그 학생들에게 이 특효약, 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고 인격을 구원할 수 있는, 죽는 것을 살릴 수 있는 참 아주 특효약, 이거 안 주면 그만, 이거 늦게 주면 그만 죽어 버리는데, 만일 요번 주일에 모아 놓고, 오라 해 놓고 요번 주일에 통반으로 부장 선생님이 이 약을 먹이고 또 내가 그 보충해서 또 분반 공부 할 때에 먹이고, ‘이거 안 먹이면 죽는다, 안 먹이면 죽는다, 이걸 먹여야지 큰일 났다 안 먹이면 죽는다’ 요 먹여야 될 필요성 요것을 가진 인간이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지 이거 없는 인간이 공연이 오기나 오라 해 가지고서 뭐 주 모아서. 주 모으면 뭐 할 겁니까? 그러기 때문에, 모을 필요도 알지도 못하고 필요도 없고 모이면 줄 것도 없고, 안 주면 죽는 건데 안 주면 죽고 주면 사는 이것도 없이 공연히 가 가지고 오라 하는 거는 사람을 괴롭히는 거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잘 순종도 안 하고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하지 않습니다. 공연히 와 봤자 아무것도 줄 것도 없고 그냥 덜렁덜렁 와 가지고서 시간 없는데, 오고 이라니까 괴롭기나 하고 춥기나 하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사람 괴롭힐라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람을 공연히 고생을 시키고, 고생시키는 그거는 죄입니다.

이 반사 선생님들이 ‘주여, 이것을 지금 안 주면 이 사람 안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이걸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안 주면 죽고 주면 살 수 있는 이것을 가지고 ‘이것 줘야 안 되겠습니까?’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도 `네가 그 사람이 오기만 오면 그 사람에게 주어서 살릴 것을 네가 가지고 있구나’ 하나님도 거게 협조를 하고 협력을 하십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그렇습니다. 고게 속에 있어야 이제 테레비를 봐도 ‘야, 가자’ 좋게 말해도, 만일 좋게 말해도, 말을 똑 같은 말을 해도 자기가 느끼고 하는 말과 느끼지 안하고 하는 말이 다릅니다. 그 속에 ‘네가 그런 거 봐 가지고는 죽고 이 말씀 지금 안 들으면 네가 죽는데, 이 지금 네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 말씀인데 이 말씀을 네가 들어야 될 터인데 테레비가 다 뭐꼬?’ 요게 속에 있으면 ‘야, 너 지금 오늘 주일날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은혜를 받아야 네가 살 터인데 네가 왜 그래 하느냐’ 요 말을 순하게 해도 그 속에 찌르는 것이 칼로 찌르는 것입니다, 칼로, 내가 그에게 줄 것이 있으면 칼로 찌르는 거요. 그러면 거게 제가 뜨끔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속에, 학생에게 주어야 할 거, 안 주면 죽고 주면 사는 이 중요한 것을 줄 것을 마련해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면 그 말 할 때에 그 학생이 굴복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지 안해요. 성령이 같이 하시니까 이미 예수님의 피로 다 값 주고 사 놓은 것이지 다 예수님의 것인데, 예수님의 것인데 그걸 살리기 위해서 이라는데 마귀가 어데 침노하겠습니까? 정말로 줄 거 있으면 마귀가 침노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꾸 이거 말하면 고만 슬슬 그대로 넘기기 때문에 헛일이라.

이번 공과는 겨자씨 믿음인데, 이 겨자씨 믿음이면 다 됩니다. 겨자씨 믿음 요것만 하나 단단히 배워 가지고, 겨자씨 믿음만 단단히 배워 가지고 온 성경을 다 활용하면 그 사람 그만 구원 완전한 구원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겨자씨 믿음 가지면 뭐, 자꾸 지혜도 늘고 총명도 늘고 성령도 충만해지고 진리도 충만해지고 자꾸 이렇게 되어 질 수밖에 없다 이거요.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전할 때에 그 학생들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전하지 못하지마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어야 된다 이거요 이 겨자씨 믿음은 비유입니다. 비유인데 하필, 겨자씨에도 생명이 있고 뭐 호박씨에도 생명이 있고 마늘씨에도 생명이 있고 다 씨에 생명은 다 있지 않습니까? 있는데 하필 요 겨자씨를 예수님이 딱 비유를 한 것은 뭐이냐 하면은 다른 걸, 양이, 그거 뭐 종자가 크다 작다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오. 다만 그 속에 생명에 중점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중점을 두고. 생명이 있으면 땅에다 심으면은 그것이 움이 트고 자라고, 생명 없으면 썩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 종자가, 뭐 복숭씨 같은 거는 아주 이만 안 합니까? 이만하이 크지요! 크지마는 만일 그게 삶아서 생명이 없다고 하면은 심으면 고만 썩어 버립니다. 생명 있는 거는 겨자씨 조그만한 고거라도 , 겨자씨는 똑 못골씨만한데 아주 씨 중에 제일 작은 것입니다. 그래도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은 땅 속에 들어가면 움이 나지 썩지를 않는다 그거요. 이렇게 겨자씨로 비유한 땅은 이 세상을 말한 거 아닙니까, 이 세상? 이러니까, 겨자씨 믿음이라 그 말은 생명 있는 믿음이라 그말이오. 생명 있는 믿음이라. 생명이 있는 믿음은 뭐이 생명이 있는 믿음인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연결된 행동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 돼 가지고 하는 행동이라 그말이오. 연결된 행동이라. 죽은 믿음은 무엇인고? 죽은 믿음은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는 행하는데 그 속에 하나님과 연결이 없어. 성경 말씀대로 하기는 하는데 그 속에 하나님과 연결이 없어.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하느라고 예수님을 십자게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는데 자기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됐기 때문에, 마귀와 연결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거요 우리 믿는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산다고 해 가지고서 다 믿음되는 거 아닙니다.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것 가운데에 죽은 믿음, 마귀와 연결된 그런 것도 있고, 마귀도 예수님에게, ‘뛰어 내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가지고서 네 발을 붙들어서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 그거 성경 말씀 아닙니까? 성경 말씀대로 말했다 그거요. 그렇지마는 마귀는, 성경 말씀대로 했지마는 그 말씀이 권능이 없어. 다 죽은 말이요 죽이는 말이라.

그러기 때문에, 생명 있는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그말인데ㅡ그거 다 여러 번 많이 했기 때문에ㅡ연결된 믿음이라. 연결된 믿음은 신구약 성경대로 다 한다고 연결되는 게 아니고, 신구약 성경은 1절로부터 그래 다 하라고 성경 준 거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시는가, 명령하시는 그 명령을 바로 찾아 가지는 데에 신구약 성경이 필요하다 그말이오.

왜? 하나님께서 그 현실에서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렇게 가르쳐 주실 때에는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말씀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지도하시지 성경 말씀에 기록하지 않은 어만 걸 지도하지 안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보면 ‘아, 요거는 이 성경 말씀은 보니까 요 때는 요렇게 해야 되겠다 조 때는 조렇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성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오. 어떤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하면 된다 하는 고 말은 또 딴말이오. 성경 말씀대로 하면 된다 하는 그 말은 성경은 너희들이 성경 1절로 부터 2절까지 자꾸 그래 하는 게 아니고, 성경은,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나니 그대로 행하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대로 하는 것이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거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범위를 잘못 알고, 하면은 범벅이 돼 가지고 안 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은 다른 데서는 연결 못 합니다. 현실에서만 연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시키실 때에, 어떨 때는 ‘그 죄를 짓지 말아라, 말하지 말아라. 말을 해라, 일을 해라, 일하지 마라, 가거라, 가지 말아라, 그만 자거라, 밥을 먹어라, 먹지 말아라. 그 사람과 이별을 해라, 또 그 사람을 네가 영접을 해라’ 뭐 당신이 현실마다 안 시키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현실 전부를 다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행하지 안한 것은 다 죄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한 거는 다 죄라.

그러면, 시키시지 안하는 시간이 없고 시키시지 안하는 현실이 없다 그말입니다.

우리가 고 현실에서 하나님이 내게 시키시는 대로 고것을 찾아 가지고 하면 그 행위가 어찌 되느냐? 주님는 나에게 시키시고 나는 시키신 고대로 하고, 주님은 시키고 나는 시키는 대로 하고 이라니까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행하는 것입니다.

둘이 행하니까,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합작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고대로 행하면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그 진리가 내것이 됩니다. 또 그 때에 그 역사한 영감이 내 영감이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나를 통해서 했기 때문에 그 능력도 내것이 됩니다. 그래 내가 그렇게 성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고 현실에 거게서 모든 것을 다 받게 됩니다.

그러면, 고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있게 됐느냐? 그것이 내나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찾을 수가 없고 또 그대로 행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말들어 놨고 하나님과 다 이렇게 합치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 고때에, 고 현실 주시는 것은 고 현실에 해당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라 하는 건데 거게 해당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면은 그때에 해당된 그진리는 내 진리가 되고, 그 능력은 내 능력이 되고, 그때 한 의로운 행위는 내 의로운 행위가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사람으로 나는 변화가 되어지고, 고 전부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를 힘입어 가지고 우리가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런 거는 다 그만 깊으니까 다 냅두고,

이렇게 우리가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그와같이,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와 같이 내가 행하는 것이 뭐이냐? 그와같이 행하는 것이 고것이 겨자씨 종자를 땅에다 심는 것입니다. 행하는 것은, 행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세상이 아니면 행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그 뜻을 이 세상에서 지금 행하는 것, 뜻을 자기 현실에서 행하는 거, 그 뜻대로 행하는 고것이 뭐이냐 하면은 겨자씨를 땅에다 심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이 세상에 접하게 되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접해 가지고서 세상과 이래 지금 서로 접촉하게 된다 그말이오. 접촉하게 된 건 겨자씨를 땅 속에 묻는 거 아닙니까? 접촉하게 된다.

이제 그라고 나면은 그다음에 뭐이 오는가? 그라고 난 다음에는, 심었으니까 땅에 지기가 올라와야 될 거 아닙니까? 지기가 올라오는데 지기 이것이, 땅에 있는 기운은 여러 가지 질소분도 있고 온도도 있고 수분도 있고 여러 가지 썩히는 거 오만 것도 다 있고 다 있겠지요. 있는데, 그것이 이 종자에 생명이 없으면 썩어 버려서, 썩어서 그만 흙이 돼 버리고, 썩어서 흙이 돼 버리고, 생명이 있으면 흙을 먹고 겨자씨가 자꾸 이렇게 크게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되면, 연결이 끊어져 버리면, 연결이 끊어지면 세상하고 접할 때 나는 세상이 돼 버리고 맙니다. 나는 세상의 것이 돼 버리고 맙니다. 흙이 되고 마는 거와같이 세상의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면 그것을 먹어서, 밥이 돼 먹어 가지고서 이 겨자씨가 자라게 됩니다. 그 모양으로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그 하나님의 뜻을 그만 그것을 저버리면 생명이 없어지기 때문에 죽은 씨가 되니까 저는 세상화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고 뜻을 행하는 것을 어떻게 방해를 해도, 뭐 달콤한 방해도 있고 억압하는 방해도 있고 여러 가지, 질소분은 썩힐려고 하는 것이고, 또 수분 그것은 참 뭐 기분 좋게 하는 것이고 이렇지마는 그것도 생명 없으면 다 썩어 버린다 말이오. 생명 있으면 그걸 다 먹어 버려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지고 고 뜻대로 행할라고 할 때에 고 행하는 것이 벌써, 발견해 가지고 행하는 것이 겨자씨 믿음이 됐다 그러면 내가 그와같이 행하는 것은 발견하고 그냥 있으면 겨자씨 그냥 있지마는 발견하고 고대로 내가 지금 행할 때에는 요 겨자씨를 벌써 땅에다 심었다. 고 겨자씨가 돼 가지고 땅에다 심었다. 심고 나면은 좀 있으면 썩힐라 하는 세력이 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 말씀을 발견하고 고대로 내가 실행을 할라고 하면 여러 가지 반대하는 어려운 애로가 온다 말이오. 어려운 애로가 와. 어려운 애로가 오나 자기가 지금 행하는 것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하고 합작을 해 가지고서 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전지 전능의 행위요 창조주의 행위기 때문에 피조물이 방해해 봤자 피조물이 방해할 수 없는 지극히 큰 능력과 하나돼 하기 때문에 피조물이 해하지를 못하는 것이고, 또 이 겨자씨 믿음에 배웠으니까, 배웠으니까 그것이 해할라고 오는 것은 해할라고 오는 게 아니라, 이 겨자씨 믿음이 그것을 먹고 자랄라고, 겨자씨 믿음의 밥이다 그걸 먹게 된다 요것을 믿어야 돼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요 말씀을 배반치 안하고 요 말씀대로 고대로 계속해 실행을 하면, 고대로 계속해서 실행을 하면 반드시 나와 마찰되는 그 모든 것은 나에게 명령하신 지극히 크신 분의 능력으로써 이것을 나에게 이용물을 삼아 가지고서, 다니엘을 사자 구덩이에 집어 넣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미에 집어 넣었지마는 그것을 지극히 큰 능력이 이용하니까 사자가 해하지 못하고 불이 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이 들어서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이렇게 높이지 안했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무엇이든지 우리가 현실에서 발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와같이 행할 때에 방해하는 게 오거들랑 그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왜? 나와 함께하는 그 능력이 그거 억억억억만 배도 더 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치 안하고 고대로만 밀고 나가면은 그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용물이 되어지고 그것이 들어서 나를 키우고 나를 높이고 내 일을 성공하게 한다 요것을 믿어야 돼요.

그래서, 이제 겨자씨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겨자씨가 자랐습니다.

자라면 뭐이냐? 그다음에 겨자씨 믿음은, 겨자씨 믿음이 썩지 안하고 겨자씨 믿음이 승리하고 난 다음에 뭐 했느냐? 뽑고 옮기고 심고 하는 그 일 한다. 인제 내가 겨자씨 믿음이 완전히 됐다고 하면, 대적을 해도 거게 지지 안하고 나는 이 겨자씨 믿음 생활을 계속해서 고대로 성공을 했다고 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지느냐? 어떤 사람이 되어지느냐? 세 가지 능력 사람이 됩니다. 능력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는 뽑는 권위의 사람이 되어지고, 옮기는 권위의 사람이 되어지고, 심는 권위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가 요렇게 겨자씨 믿음 생활 할 때에 자기에게, 자기 사업이든지 자기 직장이든지 자기 모든 현실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이제 자기에게 못쓸 것은 싹 뽑혀 나갑니다. 못쓸 것을 뽑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못쓸 것은 뽑혀 나갑니다. 사업에도 실패하는 것은 다 뽑혀 나가고, 또 필요한 것은 다 심게 됩니다.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와 가지고 심게 되고 또 필요 없는 것은 이것을 다 뽑아서, 내버릴 것도 있고, 이것은 또 하나님에게 옮겨 놓으면 폐물 이용으로, 폐물 이용으로 중생도 한다 말이오. 그래서, 썩을 걸 썩지 안할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거요. 그러면, 뽑고 옮기고 심는 이 능력을 받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학생들도 말이오. 학생들이니까 그 머리에, 머리에 모든 둔탁을 싹 뽑아 버리고, 둔탁을 싹 뽑아 버리고 하나님의 그 명철을 푹 집어 넣어 놓으면 그 아이가 다니엘처럼 안 될 수가 있겠소, 있기를? 그 사업가들도 자기 사업에 방해하는 그 모든 쓴뿌리 모든 지장되는 걸 하나님께서 다 처리해 버리고 그 사업에 필요한 것만 담뿍 심어 줘 버리면 다 될 것 아닙니까? 여게 다 있습니다. 사람들이 공짜배기로 먹을라고 도무지 믿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면, 믿음이라 했어. 믿음이라, 믿음이 뭐인가?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서 찾아 가지고 요대로 하면, 요 비유에, 겨자씨 비유를 했는데, 요렇게 하면은 어떤 대적이 와도 그거는 내 밥이 된다 하더라. 요걸 믿어야 돼요. 믿고, 믿는 게 뭐이냐? 믿으면 그 행동을 할 수 있지마는 안 믿으면 그 행동 못 합니다. 안 믿으면 그 행동 못 해요, 그만. 안 믿으면 ‘아이구, 안 되겠다, 아이구’ 내가 하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나와 합작돼 가지고서 동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역사하신다 하는 요걸 믿으면은 하나님이 붙들고 역사하는데 그까짓 거 뭐 정부가 뭐 소용 있으며, 나라가 무슨 소용 있으며, 일본 나라가 무슨 소용 있으며, 강대국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있기를? 공산주의가 무슨 상관 있소? 요거 믿으면 고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고대로 계속 행할 수 있는데 믿지 안하면 그만 죽어 버리고 만다 말이오. 믿지 안하면 그거 못 해요.

그러니까, 믿으면 되는데 요 믿는다는 요걸 그냥 요거 에누리를 해서, 믿는 줄 알지마는, 보십시오. 베드로가 믿으니까 물 위에 걸어갔고 의심하니까 빠지지 안했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예를 들면은 내가 주머니에, 지금 점심 때가 됐는데, 점심 때가 됐는데 다른 사람들 모두 ‘아, 이거 점심 먹어야되겠는데 이거 돈이 없다’ 이라는데 자기는 내 보니까 돈이 만 원짜리가 들었습니다. 만 원짜리 들었으니까 이라니까, ‘뭐 암만 해 봤자 한 이천 원 밖에 더 하겠나?’ 이거 뭐 보통 가서 식사하는데 이천 원밖에 안 갈 터이니까 이천 원짜리 밥을 먹으러 식당에 떡 들어갑니다. 들어가면서 ‘아이구, 이거 나중에 밥 먹고 나서 밥값이 없으면 어짤꼬, 어짤꼬?’ 이래 염려가 되겠습니까, 염려 없이 ‘아, 주머니에 고만 만 원짜리가 있는데 이거 주고도 이천 원이면 팔천 원 거스름 받을 터인데’ 그래 그 마음에, 만 원짜리 있으니까 안심이 되고 마음에 든든하고 믿어지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 아이가 저거 동무끼리 이렇게 다투고 이렇게 싸우고 이라는데 고만 쫓아와 가지고 자기 아버지 품 안에 딱 안기니까, 아버지 품안에 딱 안기니 아버지가 딱 아듬고 있으니까 그까짓 거 저거 동무 한 대여섯 살 먹는 그까짓 거 와 봐야 소용 있습니까? 그래 이라니까, 이래 딱 안겨 가지고는 말하기를 ‘아나, 아나, 날 때려라, 아나 날 때려라’ 그랄 거 아닙니까 그 아이가? 자꾸 촉분을 지른다 말이오. 그만 저거 아버지가 딱 아듬고 있으니까 ‘아나 때려라, 아나 때려라’ 그라지 않습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은 아버지의 그 능력이 자기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확실히 믿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금방 쫓겨온 놈이 담대한 소리를 한다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이 실제 내 생활에 나타나는 나타나서 안심이 되고 나타나는 요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이지 이거 안 가지면 안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믿으면 된다 하는 이걸 믿음에 대한 해석을 얼마나 많이 해야 될란지 도무지 믿음에 대해서 그렇게 사람들이 별로이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처럼 그래 그렇다면은 이제 여기 사자가 있습니다. 사자가 막 엉크리고 옵니다. 사자가 엉크리고 오는데 아, 하나님께서 다니엘처럼 사자 입도 막고 발톱도 막아 버리고 그라니까 제까짓 게 와야 둥글둥글하며 이거 담요 모양으로, 아주 사자 담요로 푹석푹석하이 해 주지 해할 수 있습니까? 요걸 확실히 믿으면 그 사자가 옆에 와서 치극거릴 때에 마음에 소름이 쭉쭉끼치고 겁나는, 겁이 나고 ‘아이구, 어짜꼬?’ 이놈이 엉크리니까 겁이 나 가지고서 ‘잡아 먹히겠다’ 이런 마음이 있는 고것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러면, 그라는 데도 오히려 네까짓 게 암만 그래 쌓아도 이제 주님의 허락 아니면 못 먹어’ 이렇게 마음에 안심되는, 안심될 수 있는 고와 같은 고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말이오. 실제로 이 믿음이 있어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믿음은 이거 하나님이 주셔야 있는 것인데,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인데 그 믿음은 누가 만드느냐? 성령이 만듭니다. 성령이 만들어. 성령이 만드니까, 누가복음 11장에 보면은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들이 밤낮 구하는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자꾸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하며 결사적으로 기도를 해 가지고, 예수님도, 예수님도 믿음으로 하시지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아주 피땀 흘려서 이제 참 간절한 통곡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 가지고서 비로소 그 성공을 했는데 우리도 믿는다고 해 가지고서 고만 공짜배기로 놀고 먹을라 한다 말이오. 놀고 먹을라 하면 좋아서 뛰고 야단이라. 안 돼! 절대 안 돼! 우리가 삼십 분씩 기도하는 거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서 성령이 내게 오셔야 믿음이 생겨집니다. 믿음이 생겨질 때에는 사람이 대번에 변해져요 금방 걱정이 가뜩 있던 것이 성령 오시면 걱정 하나도 없어지고, 금방 ‘이 일을 어쩔꼬?’ 큰 두려워서 곳 견디던 그게 성령 오시면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고, 성령이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것인데,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믿는 믿음을 만들 때에는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해요. 성령이 오셔 가지고 믿음 만들어 주니까 공산주의가 올 때에 그까짓 무슨 일이 있느냐고서 아무것도 아닌 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랬는데, 또 성령이 떠나면 또 무서워 죽겠고, 그만 무섭다가 아무것도 아니다가 무섭다가 아무것도 아니다가 그게 뭐이냐 하면 성령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증표로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공과에서는, 다 여러분들은, 알지마는 학생들은 그렇게 다 가르치지 못해요 그저 주입식으로 넣어 놓기만 넣어 놔요. 산 믿음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해 가지고서 고대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할라고 하면은 성경 말씀을 너희들이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그 성경 말씀을 맞춰 보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할 수가 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하는 것은 죄지을 때는 죄짓지 말라 하는 것이고, 거짓말 할 때는 거짓말 하지 말라 하는 것이고, 또 동무들하고 서로 화목하라, 동무들하고 화목하라 할 때 그 현재 화목하는 거,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또 거짓말 안 할라 하는 그거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또 주일을 지키라 하면 주일 지키는 그건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 꽉 찼다.

말이오. 꽉 찼으면 그 일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이거는 전능의 행위라 하는 요것을 꼭 믿어야 돼요. 전능의 행위다, 완전의 행위다, 이는 주권자의 행위다, 주권자의 행위인데, 피조물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요걸 믿어야 된다 말이오. 믿고 계속해서 나가면서 나가면은 대적하는 일이 오거든 그걸랑 믿음의 밥이라 그렇게 알아야 돼요? 믿음의 밥이라. 믿음이 그걸 잡아 먹어야 된다 말이오. 그럴 때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 나가면은 그것은 내게 이용물이 돼서 내게 잡아 먹혀서 내게 이용돼 가지고서 나로 하여금 이 구원을 이루게 해서 승리하게 되고 영광스럽게 만들고, 내가 믿음 버리면 그것에게 잡아 먹혀서 내가 절단나 버리고 만다 그거요.

이러니까, 밥이라는 것, 그래서, 그 끝까지 고 신앙으로 견뎌 나가면은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고대로 행해 나갈 때에는 어떤 대적이든지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떤 대적이라도 네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나가는 데에는 어떤 대적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대적 그거는 네 밥이다. 반드시 그 대적은 너에게 이용되지 그게 너를 해하지 못한다 요걸 똑똑히 가져야 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이렇게 이제 승리한 믿음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뭣이 부가되느냐 하면은 이제 뽑고 옮기고 심는 이 능력을 가지게 돼. ‘네가 명하였을 것이요 명하니까 그대로 순종하였으리라’ 하지 아니했습니까? 그래서, 요걸 자꾸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자꾸 이거 뭐, 이 많은 걸 말을 할라 하니까 뜨끔뜨금하이 줄기도 닿지도 안하고 줄도 맞지도 안하고 순서도 맞지 안해요. 여러분들이 자꾸 이거 이래 좀, 일하면서도 명상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하, 요렇다’ 그래 가지고도 `요걸 참, 요거 또 나도 알아야 되겠고, 학생도 알아야 되겠다’ 그 알아야 될 그 가치를 확실히 알아야 학생들 데리러 가도 데리러 갈 때 성신이 같이 해 주시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거는 공연히 데려다가서 애만 먹일라 하면 성신이 동행해 줍니까 사람 같지 않은 그런 일에 성신이 동행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사람 같지 않은 일 할 때에 어떻게 사람이 좀 점잖은 사람이 같이 동참할 수 있습니까? 동참 못 합니다.

그런고로, 요걸 똑똑히 알고 그래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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