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믿음 더하는 법)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9일 화후집회

 

본문 : 눅17:5-10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배암을 용납하면 안 돼요. 배암 용납하면 죽어요. 배암 용납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배암을 용납하면 안 돼요. 오전에 공부한 것을 좀 더 해야  되겠는데 또 뒤에 할 기회가 있을런지 뒤로 미루고, 그러면 잠깐만  물어보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거게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이 늘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는데 우리가 우리에게 해당된 에덴동산에서 우리의 할  일이 동산에서 몇 가지입니까? 다섯 가지. 네, 가지 수는 잘 맞았습니다.

 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다섯 가지 중에 첫째? 첫째? 어? 뭐라 해? 몇  가지라요? 다섯 가지 그 다섯 가지를 지키면 어데든지 자유 있고 평안하고 뭐  자기가 자기에 대해 염려할 필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보해 주시고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입니다. 이 우주가 다 자기의 것이오.

 동산에서 우리가 할 것이 다섯 가지. 첫째는 동산을 만족히 여기고 동산에  머물러 살 것. 딴데를 가면 안 돼요, 동산에 있어야 되지. 또 둘째는? 다스릴  것. 또 셋째는? 지킬 것. 또 넷째는? 일반 과실은 마음대로 먹을 것. 또? 먹지  말 것. 요것 다섯 가지만 하면 거게는 자유의 세계요, 또 평강의 세계요, 권위의  세계요, 뭐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다  맡아서 해 주십니다. 또 그러고 하나님의 지으신 것은 전부 다 제것입니다.

 제것인데 하와와 아담이 에덴동산에 있으면서 그게 있어야 돼요? '동산 이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내것이라' 내것이라 하는 그런 확신과 담력을 가져야 됩니다.

내 현실에는 왕이 참가했든지, 뭐 대통령이 참가했든지 부자가 참가했든지, 뭐  가난한 사람이 참가를 했든지 어쨌든지 그 현실은 '내것이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나의 처소 내것이라.' 하는 것 단단히 가져야 됩니다.

 거게서 자기 있을 자기 처소인데 처소에 살 주인공인 그 권위를 잊어버리면 안  돼요. 권위를 잊어버리면 안 돼요. 어떤 현실이든지 '여게는 내가 주인이다.

하나님 다음에는 내가 주인이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놨다. 여게는 내가  주인이다.' 그거 알아야 돼요.

 뭐 공산주의 김일성 김정일 그분들이 거게서 와 가지고 무슨 소리 한다 해도  '여기 내 것이라. 너도 내것이라. 에덴동산은 내것이라.' 그래 내 것이라는 그것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가지고 거게서 이제 다스릴 것. 다스릴 것은 제가 단독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자이신 그의 명령 받아서 다스립니다. 그러면 그분이 거게 대해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하면 돼요.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말하라 하면  말하고, 호령치라 하면 호령치고, 또 거기서 함구하고 있으라면 함구하고 있고,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신 그 뜻을 그 현실에게 대해서 행하면 나는 다스리는 일을  잘 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지킬 것, 또 먹을 것, 또 먹지 안해야 될 것. 할 것 안 해야 될 것  그것만 실행을 해서 다섯 가지.

 또 그다음에 뱀이 와 가지고 하와와 아담을 타락을 시켜서 완전히 산 자를  죽여버려서 그만 모든 것이 다 생명이 사망으로 되었고, 성공이 실패로 되었고,  승리가 패전으로 영 바꿔져 버렸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나쁜 것이 그렇세 좋게  보이는 전부가 확 뒤벼져 버렸습니다.

 뒤비지게 하는 순서가 첫째가 뭐입니까? 네, '참으로' 인데 자, 번역을 합시다.

그러면 뒤비지게 한 순서가 뭐입니까? 감사를 없앤 것 감사를 없앤 것.

 또 두번째는 한 일이 무엇입니까? 네,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무오의 권위성을  말살시킨 것.

 또 그다음에는 뭐입니까? 그다음에는 이제 부인케 했지요? 그다음에는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했습니다. 부인하게 했습니다.

 부인하고 나니까 그다음에 넷째는 뭣이 됐습니까? 넷째? 여기 ○○교회 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 ○○교회 집사님 한번 대답해 보지. '아예 나는 모를 터이니까  그만 이거는 내비두자.' 이러면 안 돼. 왜 모를 게 있어? 그걸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데. 넷째는 뭐입니까? 넷째는 정반대로 평가와 비판이 됐습니다. 정반대로  돼져버렸소.

 자, 그러고 나서 다섯째로는 뭐입니까? 다섯째는 뭣 했지요? 다섯째는 그  말하지 안했는데도 조금 말했습니다. 예? 사랑이 바꿔진 것. 그때부터 이제 배암  사랑 인간 사랑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는 어찌 됐습니까? 그만 서로 아담과 하와가 사이가 떡  벌어지고 또 그 결과는 내리 보면 많습니다. 하나님의 안보가 없어졌고,  저희들이 저거들의 힘으로 안보를 하려 하지마는 그것이 돼집니까? 안 돼지니까  결국은 죽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게서 자, 거게 첫째가 감사를 없이 하는 것, 둘째로는 하나님의  정확무오의 말씀에 절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는 권위의  말씀의, 정확무오의 권위의 말씀의 권위를 그만 말살시킨 것, 또 그다음에는  뭐입니까? 그다음에는 이제 하나님 말씀을 그러고 난 순서는 부인하게 했다  말이오. '안 그렇다' 이랍니다. 안 그렇다 이러니까 그만 그 부인에 유혹을 받아  가지고 부인했습니다.

 또 넷째로는 그러니까 만물관이 확 뒤벼져 버렸습니다. 만물관과 생사관과 모든  행불행의 관이 완전히 그만 꺼꾸로 뒤벼져 버렸어. 이러니 이리 돼 버렸다  말이오.

 그러고 나니까 또 다섯째는 뭐입니까? 인제 배암 사랑 가지고 아담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염이 들어가서 아담도 배암 사랑 가지고 하와를  사랑해서 그만 서로 죽구로 만들었습니다.

 고거 쉬워요. 그것을 우리가 신앙은 체험이요 경험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자기가  다섯 가지만 하면 아주 평안합니다. 또 담대해집니다. 아주 부자가 됩니다. 아주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가 있어. 그다음에는 만물이 예예로 복종을 해요. 복종해.

이러니까 그 다섯 가지를 어짜든지 지킬 것.

 이거 말씀을 가르칠 때에는 예사로 듣는데 자기가 당하는 것 현실 보면은  뿌스러기 조그만한 것만 당해도 꼼짝을 못한다 그거요.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고 이래 할 때에 모든 목사들이 다 뻘뻘 떨면서 신사참배를 했다  그거요.

 그러면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 감옥에 갖다 가둔다 죽인다 하는 그거는  뭐입니까? 그게 현실이지요. 그러면 거게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뭐 일본 정부가  들어서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해도 그 현실은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아야 돼.

내가 주인이라. '하나님이 내게 선물로 준 주인공이라. 네가 뭐 형사가 뭐라  한대도 총독이 뭐라 한대도 너는 내 것이야.' 그때 '내것이야. 내가 너를  다스려야 돼. 이러니까 나를 주인공으로 모셔.' 거게서 하나님의 뜻대로 딱 행할  것뿐입니다.

 다스리고, 또 그다음에는 뭐입니까? 지키는 것. 그때 무엇을 못 들어오게 해야  됩니까? 그때에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용납지 마. '내가 준 것 가지고 있고 내가 주는 것만 네가 용납하지 내가 주지  안하는 것은 아무것도 네가 가지지 말아라'  그 보니까 개도 길들인 개는 아무리 내음새가 고기 맛있는 내음새가 나도 던져  줘도 그 개가 안 먹어요. 안 먹고, 보니까 와서, 근방에 와서 그만 맡아보지도  안하고 무엇을 던졌다 해도 아예 보지도 안하고 그만 거기 안 가. 이러는데  하물며 사람이 무엇이 개보다 낫다고 하겠어! 하나님이 이렇게 가르쳐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네가 용납지 말아라. 하나님 내가 주는 것만 네가  받아들이고 내가 주지 안하는 무엇이 들어오거들랑 두말 할 것 없이 쫓아내  버려라.' 이랬는데 그때에 신사참배 때문에 두려움 들어오는 그거는 뭐라요?  두려움 드는 것. 두려움. 그것 뭐이지요? 지키지 못한 것이지. 지키지 못한 것.

두려움 그런 것 못 들어오구로 해야 돼요. 두려움 들어오면 그만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서 자꾸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고 이러면 그런 것이 다  물러갑니다.

 지금은 이렇게 하지마는 보면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에 대해서 그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신사참배 안 한 사람 여게 몇이나 있는지? 거의 다 했다 그거요.

그때는 다 해 놓고 또 지금은 또 왕소리 하고, 왕소리 하고서, 또 지금도, 그런  일 있으면 새앙쥐 모양으로 어느 구석으로 또 숨어 들어가 버렸는지 다 들어가고  또 지나가고 나면은 그때는 또 나서고. 그래야 저만 속았지 그게 소용이 없는  거라 말이오. 하나님은 영접을 못했어. 6·25 때도 그랬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요 다섯 가지를 지키면 거기에 자유가 있고 평강이 있고 부자가  됩니다. 요 다섯 가지를 지키면 부자가 돼요.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건  다 그만 자기 것이 돼 버려요.

 또 그다음에 이차적으로는 몇 가지입니까? 이차적으로 몇 가지? 다섯 가지.

다섯 가지 그거는 고거 나쁜 거니까 그것도 그 다섯 가지 반대만 하면 돼요.

 자, 반대 한번 쳐 봅시다. 거게서 감사, 감사라 하는 것이 자기가 당장에  감사가 나올 줄 알아도 감사가 안 됩니다. 그 위에서 죽 다섯 가지를 지켜야  감사가 나오요, 진정 감사가. 그걸 지키지 안하고 '주여 감사합니다.' 하는 것은  이거는 앵무새 모양으로, 아무 인격 없는 앵무새 모양으로, 또 아무 인격 없는  녹음기가 말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지 하나님이 서로 교제할 수 있는 인격과  신격이 교제하는 그런 교제는 될 수가 없습니다. 그위에 다섯 가지를 해 나오고  난 끝에라야 감사가 나와요. 그 벌써 해 나와서 감사가 나오면 감사는 그 감사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미 해 주신 것 과거에 해 주신 것, 내가 죽음에 들어갔다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우기 위해서 해 주셨으니까 과거에 지나간 험한 것도  감사 평안한 것도 감사, 어려운 것도 감사 수월한 것도 감사, 뺏긴 것도 감사  얻은 것도 감사 전부 감사,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해 주신 것을 다 감사하고, 또 현재에도 하나님이 게 해  주시는 건 다 잘해 주실 것을 내가 믿기 때문에 감사하고  또 앞으로 영원토록 나에게 잘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하고 이래  감사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 감사라는 것도 껍데기 발려 가지고 자꾸 감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꾸 감사가 나오는 구멍이 있어. 감사가 어데서 나옵니까? 감사가 무슨  구멍에서 나오지요?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이렇게 연구하면 차차 배암 지식이 이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지식이  자기를 와서 새롭게 깨끗하게 주니까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밝아집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것을  살펴보니까 전부가 감사라 그거요. 그러니까 감사는 우리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감사는 속에서 나오지 겉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껍데기에 '뭐 사업이 잘 됐다, 오늘은 뭐 소원 성취가 됐다.' 이  감사하는 것 보면은 모두 껍데기에게 피동돼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 천만이라 그거요. 위험 천만이오. 껍데기에 피동돼 가지고 감사하니까 그게  동산을 다스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벌써.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자꾸 하나님 말씀으로 따지고  따지고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감사가 나옵니다. 감사를 잊어 버리면 벌써 믿는  사람은 미혹에 듭니다. 감사.

 또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감사를 하고 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 감사가, 참 진정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확하다. 정확무오의, 하나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가감을 할 수 없는  말씀이라.' 이러니까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차차 권위가 생겨진다 말이오.

권위가 인정이 돼서 이 말씀을 어기고는 제가 살 수가 없어.이 말씀은 천지가 다  반대해도 이 말씀은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그 말씀의 권위성이  인정이 돼집니다.

 인정이 돼지면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 생겨지는 것은 믿음이 생겨집니다. 이제  확실한 믿음이 생겨집니다.

 믿음이 생겨지고 나면 그다음에 만물관이 어찌 됩니까? 만물관이 바로 됩니다.

 만물관이 바로 되면은 그다음에 사람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은 무슨 사랑이  역사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하게 됩니다. 이 순서기 있기 때문에 이  순서를 밟아야 되지 이 순서가 없이 그렇게 되어지는 것 아닙니다.

 그러거 때문에 이것은 전부 전투로 되는 것인데, 이 평안한 걸로 되는 게  아니고 전부가 전투로 되는 것이오. 에덴동산에 다섯 가지도 싸움으로 됐지요,  싸움으로. 싸움으로 돼집니다. 누구하고 싸웁니까? 누구하고 싸우요? 나 아닌  옛사람 그놈하고 싸웁니다. 나 아닌 옛사람 그놈하고 싸우고, 또 나 아닌  옛사람하고 한 덩어리가 돼 있는 마귀의 왕국의 세력들 하고 싸웁니다. 마귀의  왕국의 세력들 하고 싸우요.

 이 싸워 가지고서 이 다섯 가지가 이루어지면 그 싸움을, 먹어야 되는 것은 안  먹으려 하고, 안 먹어야 되는 것은 먹도록 하려 하고 이것을 누가 제일 많이  하는고 하니 이렇게 이 싸움에 방해자가 누가 방해자지요? 이 싸움에 방해자가  누가 제일 방해자요? ○○○조사님? 옛사람.

 이 싸움에 제일 방해자가 누구지요? '옛사람' 그런 것 가지고는 상식이기  때문에 만날 그러면 목회가 안 돼. 이 싸움에 제일 방해자가 누구지? 자꾸  그리만 말해. 방해자가 누구요? 네, 자기 아닌 자기 그게 방해자지요.

방해자인데 자기가 벌써, 그래 그것도 방해자입니다. 방해자인데, 이 방해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리라'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그때에 자기가 제일  친근한 그 사람이 이 싸움에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벌써 이 전투를 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자기 속에 자기 아닌 자기가  유혹을 하지마는 그 유혹은 자기가 벌써 이 다섯 가지 전투를 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자기 아닌 자기 거짓된 자기 그놈은 벌써 꺾어져 버렸소. 내가 그 싸움을  하려 하면 그놈은 꺾어졌어.

 꺾어졌는데 누가 방해하는고 하니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제일 자기가  사랑하는 자, 친근한 자, 또 자기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자 그자가 이제 그  방해를 합니다.

 보면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은 보면 자기 마누라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넘어지고  자기 남편에게 미혹받아 넘어지고, 자기 자녀들에게, 형제들에게, 또 자기의  가까운 친근한 교역자에게, 교역자는 장 옳은 소리만 하는 것 같애도 교역자도  마귀 노릇 많이 합니다.

 이러니까 네 가까운 사람이 너로 하여금 이 전투를 해서 이기지 못하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유혹을 받으면 내 식구가 원수 노릇 했고 원수 노릇 했으면 그로 말미암아  나는 죽고 나로 말미암아 그는 죽고 그만 죽어져 버립니다.

 그게 사랑이 뭐이냐 하면은 전투를 할 때 전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을  반대하고 전투를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뭐 이래 놓으면, 요거는 인제 현실을 닥칠 때, '요 보자, 그러면 앞으로  다섯, 가지 현실을 한번 닥쳐보자. 다섯 가지 현실을 닥쳐보자.'  이러니까 목사들 보면 전부 마누라 목사요, 마누라 목사. 목사들 보면 마누라  목사라. 내가 어떤 목사님이 한번 얘기해, 지금 목사님이 됐는데 얘기하는데  나는 그 얘기 처음 들었어. 우 모아 있는데 '야 사람들아, 여게서 마누라 말  듣는 사람은 다 이리 나오너라.' 하니까, '마누라 말 잘 듣는 사람 다 이리  나오라' 하니까 전부 다 나오더래요. 하나가 안 나오고 있어. '너는 마누라 말  안 듣나?' 이러니까 '우리 마누라가 여럿이 가는 데는 가지 말라 해서 그래 안  간다' 이라더래요. 그건 더 잘 듣는 거라.

 그런 말 내가 들었는데, 보면 참 옳은 것을, 되나 안 되나 또 그렇다고 해  가지고서 남편이라고 마누라 말 들으면 안 된다 하면서 제가 마귀 노릇 하는데  마누라가 '그러면 마귀 노릇이니까 그리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여자가 남자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지' 이래 뿍뿍 그러고 있다고.

 어떤 목사가, '그렇게 설교에 이런 것은 이래하고 그런 건 좀 안 그랬으면  좋겠다.' 하니까 '네가 설교해 봐라.' 설교 하는데 방해한다고 '네가 설교해  봐라.' 그럴 때는 '예, 선생님 참 잘못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우리는 마누라든지 위에든지 아이라든지 누구든지 그 사람의 대가리가 되려  하면은 그 사람보다 높은 진리를 가져야 되고, 영감을 가져야 되는, 영감과  진리에게만 복종하는 그런 사람이 돼야 됩니다.

 이래서 어린아이가 말해도 자기보다 옳은 것을 깨달았으면 그만 그분에게  선생님을 바쳐야 됩니다. 또 아무리 위에 사람이라도 삐뚤어지게 할 때는 그는  사탄으로 알고 물리쳐야 됩니다.

 처음에 다섯 가지 두번째 다섯 가지, 실상으로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해 봐야  돼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도 믿음으로 자랄 수 있는, 현실에, 우리의  에덴동산은 현실인데 우리 예배드리는 이것이 현재 현실입니다. 현실 여게서도  다스리라 하는 것 있고, 여게서도 다스릴 것이 있고, 여게서도 지킬 것이 있고,  여게서도 또 먹을 것이 있고, 여게서도 먹지 말라는 것이 있고, 꼭 같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가 앞으로 실생활을 할 때에 어떤 일이  내게 봉착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그때에 봉착될 때에 열 가지가 봉착이 됐으면  미리 거기 대해서 새김질을 하고 묵상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열다섯쯤  되겠는데 실상 닥쳐보니까 열밖에 안 닥쳤다 말이오. 그러면 다섯 가지는 준비한  게 남으니까 넉넉하고 수월할 것 아니겠습니까? 인제 기도하는 것이 그거요.

 기도하는 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말씀이 요렇고 요렇고 요러니까 이  말씀을 행하려고 하면 그때에 나에게 대적되는 것이 뭣뭣이 있겠느냐? 난제가  뭣뭣이 있겠느냐?' 그것을 미리 예비적 영감을 받아 가지고 그런 것을 다 미리  알고 거게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정돈하고 준비하는 그것이 주야로  묵상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 보면은 기도하러 오면은 들짱 와 가지고서 그만 턱 하기를 '주여  주여, 뭣 주십시오, 뭣 주십시오, 뭣 주십시오, 뭣 주십시오, 뭣 주십시오, 뭐뭐  뭐뭐 뭐뭐 뭐뭐 뭐뭐 주십시오. 아멘.' 하고 그만 달아나 버립니다. 옆에 사람이  봐도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너무 그렇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는 사람은 예비적 영감을 받기 때문에 무슨 일을 닥쳐도 그  일이 의외 일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은 의외 일이 없어. 뜻밖에 일이라  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뜻밖에 일이라 하는 것이 없어야 그 시험을 이기지  사람이라는 것이 갑자기 닥쳐 가지고는 이길 사람 없습니다. 갑자기 닥치지  안하고 미리부터 수십 번 경험하고 체험하고 연습하고 이래 숙달된 그것이라야  그때 행해지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믿음 지키려고 할 때에 당하는 그런 현실을 미리부터 수십 번 수백 번  해야 돼요. '내가 직장을 가지면 이 직장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  이런 일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내가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고.' 평소에는 다 그거 잘 할 수 있다 말이오.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자꾸 이래 많이 이래 놨습니다. 그랬는데 막상 그  일이 척 닥치면은 하도 평소에 많이 연습을 해 놨으니까? '이런 일 닥치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이게 쑥 나온다 말이오, '이렇게 해야 된다' 이래,  나왔는데 막상 하려 하니까 안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에 뭐 '이랄까 저랄까?' 할 것은 생각할 것 없이 확정을 지워  놓고, 또 그렇게 똑똑히 여러번 연습 하고서 '이래야 된다 이래야 된다' 했는데  현실을 당할 때에 그때 그렇게 못하고 한다는 것이 그것이 너무 뚜렷한 양심에  틀린 일이요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지식이 옳다 인정하면 그 일을 합니다. 틀렸다 인정하면 그  일을 해도 속으로 부인하고 있다가 마지막에는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행은 하나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참 알면 그대로 하게  됩니다. 안 하면 언제 해도 하게 되지 아는 대로 하지 아는 걸 못 하지  않습니다. 틀렸다 하면 그 사람이 틀린 걸 확실히 알면 죽을 때라도 그 틀린 걸  잘못됐다고 자복이라도 하지 그걸 끝까지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대로는 행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열 가지. 다섯 가지 타락, 다섯 가지 우리 행할 것. 타락 다섯  가지의 정반대를 하고 우리의 행할 것 그것을 그대로 행하면 되는데 이 다섯  가지를 그만 행하지 못하니까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또 이 말씀도 내나 그와 같은 말씀이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따라 다니니까 뭐  천상 천하에 피조물 중에는 그저 우리가 믿음 가지는 것 그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부자 달라 하는 것보다도 뭣 달라 하는 것보다도  믿음을 요구해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믿음을 더 많이 가지는 믿음에  부요자가 돼야 되겠다 해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제자들이 주님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믿음이 점점 더해지는, 믿음이 점점 장성해지는 그 방편을  가르쳤습니다. 믿음이 장성해지는 방편을 가르쳤소. 가르치면서 비유로  가르쳤는데 어떻게 가르쳤는고 하니 '네가 겨자씨 믿음을 가져야 된다' 이랬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겨자씨 같은 믿음을 가져야 된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겨자씨 믿음 같은 믿음을 가지면 뽕나무를 뽑혀서 저 바다에 운반해 가지고  거게 심기라 할지라도 네가 명한 대로 다 순종을 해서 이루어지리라' 그렇게  믿음의 권위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이 더해지는 방편은, 요런 것은 간단합니다. 믿음이  더해지는 방편은 어떤 것인고 하니 겨자씨 믿음을 가져야 된다. 겨자씨 믿음은  거게 뭐 삶아놓은 겨자씨 말하요 산 겨자씨 말하요? ○○○선생, 무슨 겨자씨  말하지? 삶아놓은 겨자씨? 삶아놓은 겨자 씨? 생명 있는 산, 산 믿음, 겨자씨  믿음 가지라는 건 산 믿음 가지라 그말이오. 산 믿음 가지라.

 그러면 산 믿음 가지라, 그것은 산 믿음 가지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결합돼 가지고 있는  이 사실을 자기가 확신해야 됩니다. 이게 제일 중요하요. 제일 중요한 것이  겨자씨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겨자씨에게 있는 생명이 중요하다 말이오.

 생명이, 겨자씨가 씨 중에는 작은 것이지마는 그 속에 생명이 있으니까 그것이  자라 가지고서 나무와 같이 돼요. 나무와 같이 돼.

 그러니까 겨자씨 믿음 중에 작은 것이 중요합니까? 뭐 씨 그게 중요합니까?  속에 생명이 들어 있는 게 중요합니까 뭐이 중요합니까? 생명 들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믿음,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에는 첫째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친의 연결이 되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주님은 나의 구주시다.' 또 악령이 와 가지고 뭐라 한다 할지라도  '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 '죄의 문제는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함을 받았다.' '또  의의 문제는?' '예수님의 대행으로 칭의를 받았다.' '하나님과 원수됐던 그  원수는?' '예수님의 화친의 제물로써 그 공로로써 화친이 됐다. 이럼으로써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나와는 연결돼 있다.' 그것을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고 언제든지 가지고 있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어데서든지  '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다.' 말은, 말을 자꾸 하면 다른 사람들이 미  치괭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말은 안 할지라도 속으로 '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다. 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뭐 어떤 게 와도  말이지. 어떤 게 와도 '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어. 너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인데 나는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을  안 해도 말이오.

 유태인들이 그 사람들은, 뭐 지금은 그거 또 부패해서 어떤지 몰라도 그  사람들은 그렇답니다. 어데 찻간에서든지 무엇에든지 어데서든지 인사를 하면은  첫째 하는 말이 '나는 유태인입니다.' 그걸 말해. '나는 유태인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라 소리 하기를 부끄러 워하지마는,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지요. 뭐 한국 사람이 볼 게 뭐 있습니까? '나는 유태인입니다.' 그말은 '나는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선민은 참 그게 존귀한 사람이요  나머지기는 짐승과 같다 이렇게 너무 자기네들이 너무 과시하고 이래 자긍하기  때문에 그만 그리 돼 버렸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그러기에 이제 이 생명 있는 겨자씨가 땅속에 심어지면 땅속에 심어지는 것은  자기 현실을 닥치는 것 아닙니까? 겨자씨가 그것이 겨자씨가 땅위에 있으면은  달아 놓으면 삼 년 있어도, 봉지에 달아 놓으면 삼 년 있어도 봉지에 대롱대롱  달렸고 십 년 달려 있어도 대롱대롱 달렸고 나중에는 좀이 먹어서도 없어져  버리지 소용이 없어.

 제일 겨자씨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땅속에 심겨져야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 있는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땅속에 심어져야 되니까  땅속에 심어져야 된다는 것은 그 땅은 뭐이지요? ○○○목사님? 겨자씨 믿음이  땅속에 심어져야 되는데 땅속은 뭐이지요? 자기 세상. 또 좀 더 분명히. 자기  현실. 자기 현실이 없으면 그만 겨자씨는 대롱대롱 달려 가지고 좀먹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살아 있는 현실을 만날 수 있는 살아 있어야 되지  살아 있지 안하면 안 돼. 살아 있는 동안에 구원 이루지 살아 있는 그 기간 안에  구원 이루지 안하면 구원을 못 이룹니다. 현실을 만나는 그것이 땅속에 삼어지는  것이라 말이오.

 심어지면, 겨자씨가 땅속에 심어지면은 땅은 겨자씨를 키우려고 애를 씁니까  겨자씨를 썩히려고 힘을 씁니까? 땅은 겨자써를 썩히려고 노력하요 키우려고  노력하요? 키우려고 노력합니까 썩히려고 노력 합니까? 자, 키우려고 노력한다  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썩히려고 노력한다고 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썩히려고 노력한다고? 뻐뜩 들어 봐, 여기 보자. 네, 맞습니다. 그래요.

그거는 자꾸 뭐이든지 무조건 땅속에만 들어오면 썩히려 합니다. 그 땅이라 하는  거는 본야 뭐이든지 들어오면 키우려 하는 것이 아니고 땅에 들어오기만  들어오면 썩히려 합니다. 들어오면 썩히려 해요.

 썩히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생명이 없으면 썩고 생명이 있는 것은 땅은 썩히려  하고 또 저는 생명이 있으니까 썩지 안하고 저는 살려고 하고, 둘이 투쟁을  합니다.

 투쟁을 해서 그게 만일 겨자씨가 땅이 썩히려고 하는 데에 땅에게 패전을 하게  되면은 그것은 어찌됩니까? 썩어버리고 맙니다. 땅은 썩히려고 애를 쓰고 저는  안 썩고 거기서 살아나려고, 살아서 자라가려고 애를 쓰고, 죽이려고 애를 쓰고  살아서 자라가려고 애를 쓰고 그 싸우는 것이 그것이 겨자씨가 땅속에 심겨지는  그때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도 현실을 닥쳐야 성공하는 것인데 현실을  닥치면 우리의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연결된 생애를 하도록 합니까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합니까? 내나 한가지라. 땅이 썩히려고 하는 것 모양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애를 써요. 하지 못하도록.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을  하나님이 가 하면 나도 가하고, 나 하면 나하고, 다 하면 다하고, 또 마 하면  마하고, 하나님이 동하는 대로 내가 거기 따라서 피동이 돠는 그 연결됐으니까  그러면 그게 영생인데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는데 그 환경에서는 그렇게 못  하도록 주일 지키려면 주일도 못 지키게 하지, 또 새벽기도 나가려면 새벽기도  못 나가게 하지 뭐 자꾸 이렇게 한다 그겁니다.

 그런데 생명 있는 겨자씨를 썩히려고 할 때에 뭣이 와서 썩히려고 하는고 하니  땅에 들어가면 땅이 뜨뜻하니까 그만 썩기 좋습니다. 땅이 뜨뜻해. 땅은 뭘  가지고 썩히는고 하니, 겨울에는 썩히지 못해요. 땅이 뜨뜻하니까 썩히기에 아주  잘 썩습니다. 썩히기 위해서 뜨뜻하지, 또 거게 수분이 없으니까 또 수분이 와  가지고 썩히려고 수분이 오지, 또 거게 굉장한 박테리아가 있습니다. 굉장한  버러지들이 많이 있어요. 버러지들이 많이 있어 가지고서 이것을 썩히려고,  마구 거름을 이래 하면 거름에는 허여이 분이 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뭐이냐  하면 뭐 바이러스라던가? ○장로님, 뭐 바이러스요 그게? 균 그게 뭐  바이러스입니까? 곰팡균. 예? 박테리아. 네, 박테리아 또 뭐 바이러스 균은 더  조그만한 게 있다 하는데 그런 거라. 그 외에는 또 지렁이도 있고.

 그러는데 나는 나무를 심어 놨는데 지렁이 이게 들어서 지금 해로운가 싶어서  크게 정원을 하고 있는, 정원수를 기르고 있는 농장 주인에게 내가 물었어요.

'지렁이가 많이 있는데 그 지렁이를 그놈을 약을 쳐서 잡아 죽어야 안 됩니까?'  그래 말하니까 있다가 '지렁이는 식물에 대해서 전부 유익만 주지 해 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렁이가 없으면 안 됩니다.' 지렁이 그놈을 식물이 잡아먹고  박테리아 뭐 이런 것 곰팡균 전부 이걸 잡아먹는데요. 그게 죽으면 대번 영양이  된답니다. 영양이 돼서 그만 잡아먹어. 그런 거는 썩히려고 오는데 생명이  있으니까 그놈을 잡아먹는다 그거요. 그러면 자라요.

 자라는데,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이  세상에서 뭐 뜨뜻한 거와 같은 참 세상에 뜨끈뜨끈한 그런 오뉴월 같은 그런 것,  세상에서 위협도 오고, 또 박해도 오고, 협박도 오고, 또 수분같은 세상에  달콤한 재미있는 아주 재미있는 그런 것도 오고, 또 우리를 이리 저리 뭐 쑤셔서  절단내려고 하는 박테리아와 같은 바이러스와 같은 그런 균도 오고 이러는데  그놈들에게 삼켜지면 헛일입니다. 삼켜지면 안 돼요.

 삼켜지면 안 되고 그것을 내가 싸워 가지고서 내가 그것을 싸워 가지고 그놈을  이용만 하면, 잡아먹으면 자라는데 그것을 이용만 하면 이제 자라게 돼요.

이용하는 것은 뭘로 이용하느냐 하면 그것에게 잡아먹히지 안하고 그것을  잡아먹어 이용, 잡아먹어서 이용하는 것은 뭣이 들어서 잡아먹어서 이용하게  됩니까? 뭐이 들어서 그 박테리아니 뭣이니 수분이고 뭐 온도고 다 잡아먹어서  뭐이 들어서 잡아먹어서 그걸 이용합니까? 생명! 자, 따라합시다.

생명! 생명!  저 뒤에도, 생명!  저 뒤에, 생명! 저 뒤에 들리는가 안 들리는가 내가 모를세, 참. 생명. 하나님과 연결.

 그래, '아무리 다리오 왕 네가 뭐라 해도 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다. 또  너희들이 전국이 단합돼 가지고서 조서를 어인을 찍어 가지고 내렸지마는 나는  하나님과 연결돼 있다. 나는 절대자 주권자와 연결돼 있다.' 연결돼 있는 이걸  자꾸 생각해요.

 생명이 튼튼하면, 생명이 튼튼하면 그것을 잘 잡아먹을 수 있는데 생명이  빈약하면 그만 먹히기 쉽습니다. 생명이 튼튼한 것은 뭐이 튼 튼하다 말이요?  하나님과 연결이 튼튼하다 말입니다.

 그저 주님하고 속살거리면서 '주여,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주님  이십니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나는 주님에게 속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도성인신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보존합니다. 섭리합니다. 이용을 합니다. 활용을  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꾸 이렇게 성경 말씀 가지고 주님과  나와의 관계된 것을 자꾸 이렇게 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반 시간이고 자꾸  이러고 보니까 그만 훅 날아버린다 말이오. 그만 그러면 '주여!' 그만 돼 버려.

 저 깊은 산에 가 가지고 혼자 가서 기도하다가도 기도하면 처음에는 겁이 날  때는 주님과 떨어져 가지고 겁이 난다 말이오. 겁이 나면 자꾸, 겁이 나 가지고  눈을 감으면 그만 뭐 오는가 겁이 나 안 되니까 눈 감고 이래 가지고 '주여  주여' 이래 쌓다가 어째 그만 그 시동이 걸린다 그말이오.

 시동이 걸려서, 주님과 나와의 연결돼 가지고 '주님은 나의 주시요,  절대자이시요, 또 주권자이시요, 나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이 순서도 주님이  영원 전 예정하신 것인데 이 예정도 내 구원 위해서 했지, 창조도 내 구원  위해서 창조하셨지, 모든 존재들이 기다리는 것도 내 구원 위해서 존재 하고  있지.' 이렇게 한참 생명이 든든해지고 나면은 그렇게 무섭던 것이 썩 나서  가지고 '야, 호랑이가 한번 나왔으면 좋겠다.' 가만히 보니까 호랑이도 나를  환영할 것이고 하나님 아들이 오니까 이렇게 환영을 할 것인데 그 공연히 그랬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래 가지고 저 높은 산만당에 떡 이래 떡 가니까 그 여러 수천 년  먹은 백수가 된 암석이 떡 있다가 떡 가니까 '아이고 주인공이 오십니까?'  주인공이라, 영원이 저거 주인이니까. '오십니까?' '그대는 수명이 얼마나  됐는가?' '내가 그저 육천 년이 다 돼 갑니다.' '앞으로 몇해나 살 건가? 아마  몇천 년이나 살 겁니다.' 그래. '그러니까 내 수명만 못 하구만. 나는 영원히  영생할 내네.' 떡 이러면 '예' 하며 무릎을 꿇는다 말이오.

 과거에는 그 사람이 저 어데 가 보면 바위를 보고 '바위야 바위야 너는 몇해나  있겠느냐? 적어도 너는 몇천 년은 있을 터인데 인생은 참 짧다. 인생은 비참하고  가련하다. 너무도 인생은 짧다.' 이랬는데 예수 믿고 척 나고 보니까 암석  그들의 수명이 짜른 것을 보고서 동정을 하고,  또 가니까, 저 가니까 큰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떡 있다가 '아이고 오십니까?'  '그래 나를 어찌 알아?' '영원히 우리 주가 되실 주인공 아니십니까? 창조주의  대리자 우리 주인공 아닙니까?' 이러며 절을 떡 한다 말이오. '잘 있는가?  자네는 수명이 몇살이나 됐는고? 한 삼백 세 그저 그리 돼 갑니다. 한 삼백 년  돼 갑니다.' '앞으로 얼마나 살지?''예, 앞으로 혹 많이 살면 이삼백 년 더  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수명이 짧아서 좀 마음에 안스럽구만.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의 성도에게 이용만 당하면, 그 이용당하는 것은 만물을 새롭게 할  때 새롭게 되면은 은행나무 자네도 영생할 수가 있네. 예수 그리스도로 영생할  수가 있네.' 이러면 좋아서 벙긋거리면서 환영하면서 '여기 좀 더. 쉬어 가지고  가십시오.' '그러나 바빠서 내가 쉬지는 못하니까 또 뒤에 와 만나지.' 이래  인제.

 그래 인제 그러고, 또 저쪽에 가니까 큰 둥구나무가 있습니다. 떡 가서 '자네는  몇 살이나 되는고?' '나는 한 이백 세 됐습니다.' '그래 여게 이렇게 오는  손님들이 많으나?' 이러니까 '예, 오는 사람 많습니다. '오는 사람 많은데 그  사람들이 몇 번이나 와?' '오는 사람들이 한번 왔다 가고 난 다음에는 그만 다시  오지 못합니다. 두 번 오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데 갔을까?'  '그 사람들이 다 아미 세상에 못 있고 간 것 같습니다. 아마 죽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죽지 안해, 영생해요.

 그래.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과 나와 연결된 요걸 놓지 안하고 하나님과  연결된 그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생명이 다른 말로 말하면 뭐라 했지요?  생명을 다른 말로 말하면 뭐라요? 뭣이라요? 또 그만 여러가지 말하네. 두 번  물으면 틀렸는가 싶어서 그만 말 대답을 못 해.

 자 생명을 다른 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능력! 능력!  저 뒤에도, 능력!  이제 생명이 강해지는 것은 능력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 능력의 근원은  무엇이지요 ○○○선생님? 그 능력의 근원은 뭐이지? 생명은 능력인데 그래도  몰라? 그 능력의 근원이 뭐이지? 그 능력의 근원이 뭐이요? 대답해 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요. 이 중보자는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사이에 중보로 이렇게 연결을 시켜  주시는 중보자신데 중보자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연결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화친의 뭐라요? 화친의? ○목사님? 화친의 생명. 생명. 화친의  생명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그말은 이제 그리스도는 대속이 아니고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하나님같이 만드는 책임을 짊어진 분이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이름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라 하면은 구속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같이 온전케 되어 가지고서 제사장 완성 선지 완성 왕의 완성을 해 가지고  하나님께 올라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에 기록을 했고 또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에서부터 우리 구원이 십자가의 대속까지 내려오는  순서를 기록할 때에, 위에서 내려오는 순서를 기록할 때에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고 올라가는 순서를 기록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렇게 기록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그 현실 속에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나를 썩히려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뭐 권세도 있고, 돈도 있고, 미도 있고, 영광도 있고 취미도  있고, 행락도 있고, 욕심도 있고 뭐 오만 종류가 많습니다. 썩히는 것이 많아요.

뭐 이건 박테리아도 있고 저런 박테리아도 있고, 이런 바이러스도 있고 저런  바이러스도 있고 뭐 꽉 찼어. 그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것은 뭣이 들어서 그걸, 겨자씨의 뭣이 들어 그걸 잡아먹습니까? 네,  생명이 잡아먹어. 겨자씨의 생명이 잡아먹지 다른 것은 잡아먹히고 맙니다.

 이러니까 생명이 먹고 난 다음에 쭉덩이 그거는 그만 흙에 삼켜서 썩어버리고  만다 말이오. 생명만 쭉 올라가 버리고 나머지기는 썩어 버리고 말아요.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의 현실을 당할 때에 현실은 나를 삼키려 하고 나는  현실을 삼키려 하고, 현실을 내가 삼키면 내가 성장되고 현실에게 내가  삼켜지면은 내가 죽는 것인데 현실을 삼키는 그 힘은 뭐입니까.? 현실을 삼키는  힘은 뭐이지요? 생명.

 현실을 삼키는 힘은 생명인데, 현실을 삼키는 힘은 생명인데 그 생명은  뭐라고요? 능력. 능력인데 그 능력의 근원은 뭐입니까? 그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우리의 이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것이 생명이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것이 생명인데 이 생명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명이라는 인식이 뭘 인식하고 있는 하면은 범죄함으로 이 죽음을  가리켜 생명이라고 그렇게 이 자연 생명, 자연 생명은 타락자의 생명, 죽음이  지금 완전히 남은 부분을 다 죽이는 그 죽음을 가리켜서 생명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 생명이 끝나는 것은 다 죽었고 완전히 죽어서 산 요소는 없다  그말이오.

 그것을 생명으로 알기 때문에 이 생명도 죽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안하는 것이요, 약해지지도 안하는 것이요 쇠해지지도  안하는 것이요, 낡아지지 안하는 자꾸 자라고 크고 하는 그것입니다.

 이런데 생명이 하나님과 연결된 그 능력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한 하지요.

무한하시고 그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은 저수지와 같이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 또  거기 연결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이래 가지고서 연결돼 가지고 우리에게  건너온 것이 우리의 생명인데 그 생명은 전지, 전능, 완전, 영원 불변 하는 그런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시편 기자들 가운데에 그 기자한 것을 보면은 시편 기자들이 '나는  완전자라 내게 흠이 있는가 찾아보십시오'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미래를  바라보는 구속주로 말미암아 이제 구속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자기를 말합니다.

구속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자기.

 그것은 자기가 아니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완전이요 완전이라고 자꾸, 완전이라 이거는. '나는 완전하다 나는 완전하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 찬양입니까 자기 자랑입니까? 그게 교만이요 하나님  찬양입니까? 하나님 찬양.

 '나는 사죄를 받았습니다. 나는 죄 없습니다. 나는 죄 없습니다. 나는 죄  없습니다. 나는 죄 없습니다.' 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사죄로 말미암아 자꾸  외치고 더 믿고 죄 없다는 것을 주장을 할수록 그것이 하나님 찬양하는 것이요  구속을 찬양하는 것이요 그것이 주님의 구속을 기념하는 것이요 나타나는  것이라. 그러면서 실지로 살면서 '나는 죄가 없다. 무슨 죄? 나는 죄 없다. 죄  안 짓는다.' 인제 죄 없는 자로 죄를 짓지 않는 자로 이래 가지고 사는 것이  주님의 구속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을 우리가 정복하고 삼켜서 그것이 현실을 정복하고  삼키면은 그 겨자씨가 됩니다. 겨자씨 나무가 됩니다. 자꾸 돼요. 현실을 잡아서  먹으면은 그것이 누구 것 됩니까? 내것 돼요 내가 돼요, 그것이. 그거  잡아먹으면 내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하는 건  자기 잊어버렸다 말이오. 자기 잊어버리고, 중생된 자기는 잊어버리고 옛사람  원수 그놈이 와 가지고 자기인듯이 해 가지고 지금 날뛰니까 그놈이 자기인 줄  알고 심신이 그놈에게 지금 복종하면 옴창 속아서 그만 절단난다 그거요. 그게  자기 잊어버린 사람이라. '천하를 얻어도 자기 잊어버리면 너는 손해갔다'  또 '자기를 잃든지' 뭐라 했습니까? 빼앗기는 것. 빼앗기는 것은 이제 현실은  자기 될 것을 그만, 현실은, 현실 그게 자기 밥인데, 온 이 세상은 우리의  밥이라, '밥이라' 하는 그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까 그 성경 어데 있는지, 있기는  있는데 성경 어데 있는지 몇 절인지 모르지요? 민수기 14?. 한번 읽어 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러면 세상과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거는 우리 먹고 살 밥이라 말이오.

 그거 몇 절이요? 몇 절? 무슨 몇 장? 민수기, 또? 자, 민수기 14장, 또 몇 절?  9절. 거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우리의 밥이라. 우리가 먹고  자라갈 밥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그걸 언제 잡아먹느냐 하면은 현실에서 잡아 먹어요.

현실에서 뭐이 잡아먹는가?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이 잡아먹어. 연결이  잡아먹는데 그것에게 잡아먹히면 내가 절단나고 그것을 잡아 먹으면 내가  장성해지는데 그걸 잡아먹는 실력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과 나와 연결이 강해져야  그것 잡아먹는 실력이 강해집니다.

 이러니까 그 현실이 말이요, 너무 강하면 잡아먹기가 힘들거든, 이 고기들  가만히 보면 옆에 와 찔뻑찔뻑 하면서 저와 비슷하면은, 내가 그 연구하기  위해서 가무치를 좀 키워봤는데 가무치 이걸 이 말하니까 '가무치 저거는 저 뭐  충청도에서 옵니다.' 이래 안 가르쳐 줘 그걸 사서 이래 가지고 가무치 알을  기르니까 어떻게 뭐 많은지, 한 알에 아마 한 오륙천 마리 돼요. 알 한 봉지가  대개, 걷으니까.

 그걸 키워보니까 이제 저거가 잡아먹는데 딱 봐서 저보다 큰 거는 안 달라들고  저보다 작은 것은 달라들어서 이것을 잡아먹으려고 자꾸 요래 요래 해 쌓다가  보면 저보다, 거의 같으면 그만 안 달라들어. 잡아먹으려고 안 해요.

 이러다가 다른 것 약한 놈을 잡아먹고서 어서 생명이 좀 커지면 나중에 고거 와  가지고 저놈은, 저는 빨리 이렇게 자랐는데 저거는 요만치밖에 못 자랐다  말이오. 그다음에는 와 가지고서 콱 물어 잡아 먹어 버려. 이러니까 제가  강하거든.

 이러니, 그것 모양으로 우리가 세상 이 현실에 내가 잡아먹기에 어려운 그  대적이 있다 그말이요, 어려운 대적. 어려운 권세든지, 어려운 협박이든지,  어려운 그 모든 경제라든지, 또 어려운 그 모든 행락이라든지, 그 미라든지, 뭐  영광의 존영이라든지 별별 것이 다 있는데 그놈을 내가 어짜든지 거게 대해서  잡아먹어야 되겠는데, 내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이 그것을 정복을 하고  그것을 점령을 해야 될 모양인데 승리를 해야 될 터인데 승리를 못 하게 될  때에는 그때에 자꾸 달라 들어서 앙졸앙졸 하면은 속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그것을 잡아먹으려 하니까 너무 커서 힘이 들어서 못  잡아먹겠다 말이요, 그 현실을 잡아먹으려 하니. 힘이 들어서 못 잡아 먹겠어.

그럴 때에는 자기 힘을 길러야, 길러 가지고 가면은 그까짓 것 날큼 집어먹을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힘을 기르는 것은 뭐 어떻게 길러야 돼요? 자, 힘을 기르는 건 어째  기르지? 봐, 뒤퉁이라 말이오. 전부 뒤퉁이로 그래. 저래 놓으니까 양떼들이  골통이라. 자, 또 ○○○목사님? 힘을 기르는 데는 어째야 돼, 힘을? 생명이  강해야 되는데 생명이 강하려면 어째야 되는고,그래 또 인제? 그래, 생명이  강하려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관계인 그 연결을 자꾸 새김질하고 새김질하니까 훅  난다 말이오. '주여!!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주님과 나와는 연결돼 있는데  하나님이 돕는데 피 조물이 나를 어떻게 하겠노?' 이러니까,  겁이 나 가지고서 바위속에 기어들어갔는데 나와 가지고는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이 떡 나오더니마는 '자, 이 만물들아 너희들에게 너희의 주 너거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아들이 여기 오셨다. 아들이 오셨고 영원히 너희들을 관리할  너희들의 대리 주인공이 여기 왔으니까 여기 나와서 모두 너거 다 환영하고  인사해라.' 고함을 지르면서 설교하며 외치니까,  그래 그러다가, 인제 고함을 지르니까 멧돼지란 놈이 후덕후덕거리니까, 겁이  나 멧돼지가 후덕거리니까 '어데서 하노? 이리 오라. 이리 오라. 가지 말고 이리  오라. 이리 오라.' 하면서 따라간다 그거야. 그만 능력이 나옵니다. 이러면 뭐  그 현실에 신사참배 하라고 암만 그래 쌓아도 그런 게 문제가 없어. 능력이  나오고 강해지니까 현실을 아주 잘 삼킵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에 패전하지 아니하고 자기 현실을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의  힘을 가지고서 그것을 이겨 내면 그러면 그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그것이 이제  겨자씨 믿음 됐습니다. 그 겨자씨 믿음 됐다 말이오. 산 순종이라. 겨자씨  믿음이 됐어.

 이러고 나면은 그다음에 겨자씨 믿음이 되고 난 다음에 무슨 권위가 있느냐  하면은, 우리의 하는 일은 세 가지가 대표적으로 하는 일인데 하나는 뽑는 것,  성경에 '너희들이 모든 열방에 뽑기도하고 심기도 하고' 이렇게 말씀 안 해  놨습니까? 뽑는 것, 우리가 우리 역사가 뽑는 역사라 말이오.

 여게서도 지금 우리 속에 못쓸 쓴 뿌리 뽑으려고 지금 여기서 집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쓴 뿌리 뽑으려고. 그 속에 못쓸 것 뽑는 것. 못쓸 것 뽑아. 옛사람을  뽑아버리고, 사욕을 뽑아버리고, 모든 더러운 음란을 뽑아버리고, 정욕을  뽑아버리고, 명예욕을 뽑아버리고, 물욕을 뽑아버리고, 이 뽑아버릴 것 많다  그말이오.

 뽑아버릴 게 많은데 뽑으려고 할 때에 방해하는 자 누가 방해자입니까?  뿡나무를 뽑으려 할 때 방해자는 누가 방해자지요? 못 뽑구로 하는 건 누구요?  그것 뭐 어렵지 안하는데 그걸. 어렵게 하지 말고 뽕나무를 뽑으려고 하니까  누가 못 뽑구로 방해를 하고 있어? 땅이지, 땅.

 땅이 못 뽑구로 하는데, 땅이 못 뽑구로 하는데 이거 떡 겨자씨 믿음이 돼  가지고서 현실을 잡아서 먹고 나니까 이제 장성했는데 얼마나 권위가 있었던지  그만 하나님과 연결된 권위기 때문에 뽕나무를 '뽑히라' 하니까 땅이 못 뽑구로  방해할 게 아니라 땅이 훌떡꿍 솟궈 가지고 뽕나무를 공중에 훌떡 들어얹는다  말이오. 땅이 순종한다 그말이오. 땅이 순종해.

 땅이 이제 이렇게 겨자씨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온 땅이 그 사람을 협조한다  그말은 자기가 뽑으려 이 뽑는 데 이 세상 모든 존재와 역 사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협조 외에는 하지를 안하는 게 없다. 협조만 한다.

 또 그다음에 뽕나무를 뽑아 가지고서 저 바다로 가져가려 하니까 그 가져가는  데는 뭣이 방해를 합니까? 뭣이 방해하요? 돌이 방해 하요 나무가 방해를 하요,  뭣이 방해하요? 공간이 방해하지. 공간이 방해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여기 거리  얼마라? 공간이 방해하는데 이제 방해하던 공간도 그만 뽕나무를 '저리 바다로  옮기라' 하니까 '예' 하면서 방해하던 공간들이 그만 협조해 가지고 덜렁 들고  저리 바다로 갑니다. 방해하던 것이 전부 협조요.

 또 바다에 심으려 하는데 심으려는 바다에 심으는 데는 뭣이 방해 합니까? 물  그게 심으려 하니까 드부렁 떠내려가고 심으려 하니까 드부렁 떠내려가고 드부렁  떠내려가고 푹 빠지고 푹 빠지고 방해하는데 그 방해하는 바다도 그만 심기라  하니까 그 바다물들이 뽕나무를 옹호해 가지고 발끈하게 심어 가지고 꼼짝도 못  하게 딱 심어 놓는다 그말이요.

 이러기에 겨자씨 믿음이 되면 그 반대하던 전부가 다 너를 협조하고 너 명령  복종에 이제 전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믿음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단번에는 안 돼도 그것이 하나씩 둘씩 체험을 하면은 참  다 맛볼 수가 있고 다 재미있을 수가 있어. 다 맛볼 수 있어. 예배볼 때 졸아  놓으면 눈이 뻐끔하게 들어가고 참 되지. 재미, 맛을 붙이면 되지 안하고  좋은데.

 그렇게 복종을 합니다. 이거 우리가 이 집회 하는데 그때 더울 때 모양으로  그래 더웠으면 아주 참 우리 집회 못 할 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어떤 사람들이 기도를 했는지 이거 영 구름으로 떡 덮어 놓으니까 어떻게  선선한지, 또 가다가는 또 가끔 가다 덥다고 소낙비로 한번 또 정신차리라고 딱  오고 나 뻐뜩 들고. 이래 놓으니까 이 주상면에 우리 이 집회 때문에 큰 풍년  들겠어요. 비가 오다가 소나기 오다가 버뜩 들었다 소나기 오다 버뜩 들었다  이래 한 대엿새만 하면은 그만 풍년듭니다. 그만. 그 아마 농부들이 좋아서  벙긋벙긋 할 거야.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네가 믿음 더해지는 방법은 어떤 것이 믿음 더해지는  방법인고 하니 겨자씨 믿음 그것이 믿음 더해지는 방법이다. 네 현실에 절대  지지 말아라. 네 현실에게 잡아먹히지 말고 현실을 네가 잡아먹어라.

 현실을 무슨 힘 가지고 잡아먹습니까? 주님과 연결된 그 힘 가지고 잡아먹지,  주님과 연결된. 잡아먹을 힘이 없거든 자꾸 주님과 연결 된 연결을 자꾸  새김질해요. 그러면 주님과 연결이 차차 차차, 한없는 견고한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몰라 그래. 자꾸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니까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고 확고하게 보여진다 그말이오. 확고하게 보여지면 그만 제가  납니다. 그러면 뭐 현실을 삼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 현실 새상 모든 사람들이나 이 세상은 우리의 밥이라고 누가  말했어요? 우리의 밥이라고, 그게 여호수아 갈렙이 아니야. 여호수가 갈렙이  아니고 그 말씀은 성령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말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밥이라' 이랬습니다.

 우리의 밥이라는 성구가 어데라 했습니까, 또? 민수기 14장 9절. 인제 '밥이라'  밥을 보면 건강하면 입맛이 쭉쭉 다셔지지 안해요? 주님과 연결이 되면 현실에  대해서 '무슨 현실이 오면 또 맛있는 요리 하나 먹어보겠다' 그렇게 마음에  구미가 당겨진다 그거요.

 그러니까 믿음 더하여지는 방법은 겨자씨 믿음을 가져야 된다 그것을 말씀했고,  또 두번째로는 말씀하시기를 '어떤 종이 밭을 갈든지 양을 먹이다가 돌아오면'  그러면 밭 갈고 양 먹이는 그것이 뭣이 밭 갈고 양 먹이는 것인고 하니 자기  현실 닥친 그 현실 그것이 다 밭 갈고 양 먹이는 것이라 그말이오.

 자기 닥쳐진 현실 그것이 뭐이냐? 자기 현실 닥친 모든 것은 밭 가는 것은 회개  운동을 가리켜서 말하고 양 먹이는 것은 인간 구속 운동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그 현실에 싸우는 그 싸움이 다 회개 운동이요 그것이 구속 운동이라.

 이러니까 내나 그거 겨자씨 믿음이 지금 자기 현실 닥쳐 하는 그것이. 그것을  다시 '밭을 갈고 양을 먹이다가' 하는 그말입니다. 그거는 현실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자기가 믿음을 지키다가 그말이오. 믿음 지키는 그게 내나 양 먹이는  것이요 그게 밭 가는 운동이라 그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자기가 있는 충성을 다해서 회개 운동을 했고 또 다른  사람을 구속하는 그런 운동을 자기 힘껏 했습니다. 힘껏 했어. 그러다가 이제는  그 일이 끝나고, 구속하고 또 회개 운동을 하고 이 두 가지 일밖에는 우리가  없는 일인데 그 두 가지 일을 하다가 그 두 가지 일이 이제 끝이 났으면 그러고  난 다음에 끝이 났으면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내가 이렇게 양 먹이고 밭 갈고 힘들여 했으니까, 힘들여 했으니까  이제는 주인이-주인되신 주님, 하나님.-주인이 나를 대접할 것이다. 이러니까  나를 대접할 터이니 이제는 앉아서 대접을 좀 받아 봐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불법이요. 자기를 큰 댓가로 주고 사온 자기는 팔린 종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 그거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앉아서 먹으라 하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지자 마라. 그런 생각 가지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믿음이 없어지는 방법이 '내가 이렇게 양 먹이고 밭 갈고 이러다가  힘들여 하다 왔으니까 이제는 나를 앉아서 먹으라 이렇게 나를 대우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복음 운동, 이렇게 구원 운동, 이렇게 회개 운동 이렇게 열심을  해서 눈이 빠꼼 들어 가도록까지 했고 내가 기진맥진하기까지 했으니까 이제는  주님이 나를 칭찬하실 것이고 나를 대접할 것이다.' 그게 마귀의 시험이라  말이오. 그게 없어야 됩니다. 그게 없어야 돼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병기로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한 결과를 맺게  하시옵소서' 하는 것으로 다가 아니고, '맺게 하옵소서' 그러고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그 사랑의 크심을 깨달음으로 인해서 죽도록 충성하고도 나는 참  구속을 받은 이 큰 댓가로 나를 구속하셨는데 나는 주님이 나를 구속했지마는  나는 정말로 많은, 만 원 주고 사 온 종이 일 전어치도 못하고 가는 종과 같이  나는 무익한 종이라, 이렇게 무익한 종인 줄 알고 살게 해 주옵소서.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지 말게 하시옵소서.'  그는 자기를 댓가로 산 구속이 커지면 자기는 자기 행동이 작아보이고 구속의  댓가가 적으면은 '내가 이렇게 많이 일을 했는데 내게 뭐 남은 또 부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자기 행동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구속이 자기에게 커 보이면 행동이 작아 보이고 구속이 아주 적게 보이면  자기의 행동은 커 보이는 것이 그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이만치 했으니까 주님이 나를 대우하실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네가 믿음이 점점 말라서 없어지는 그런 방편이다  그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피와 살을 먹지 않는 것이니까 그것이 주님의 구속을 자꾸 생각지  안하고 이러니까 자기가 이제 한 것이 너무 충성했다 그렇게 했다 말이오.

 내가 그 매를 한번 맞았어. 그 매를 얼마를 맞았는고 하니 열 달을 맞았어요.

그 매를 내가 열 달을 맞았어. 입술로야 내가 잘하지요. 뭐 입술로야 '하나님'  뭐 이렇게 이래도 '무익한 종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도  그만 뭣이 내게 닥치는 일이 좀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 닥치니까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주님에게 이렇게 충성했 는데 내게 대해서 왜 이렇게 하실꼬?'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나한테 왜 이렇게 하실꼬? 참 나는 모르겠어, 뭐인지 나는  모르겠어. 어째서 이런지 모르겠다.' 이 감사함을 그만 떠나버리고 아주 내가  이만치 했으니까 이제는 나에게 대해서 뻐젓하게 뚜렷하게 이렇게 존귀하게 뭣이  내게 속한 것은 뻔쩍뻔쩍 하고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거게 대해서 감사한 줄 모르고 이래 가지고 매를 한 댓 달  맞았는데 댓 달 맞다가 그걸 생각하니까 이제 깨달아서 그때부터 눈물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참 망령됩니다.' 이래 가지고 눈물을 흘려도  하마나 '좀 인제 눈물 이래 흘렸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만 좀 해방을 시켜 줄까,  시켜 줄까?' 해도 안 시켜 줘. 나중에, '하마나 시켜 줄까?' 그럼이 없고 나중에  오래 들어가고 보니까 '나는 죽어 지당합니다. 이것으로서 일생 동안 끝을  마치다가 나를 부르시옵소서. 나는 그게 족하고 하늘나라 가면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 가지고는 제일 끄트머리에서 제일 말단에 어데 설 데 없고 제일  끄트머리는 내가 가야 되겠고 거기 가 가지고서 주님을 멀리서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나는 제일 끝에 가서 앉아서 만족하고 살겠습니다. 나는 거기밖에는 내  자리가 아닙니다.' 이러면서, 이거는 뭐 앉아도 눈물이요 누워도 눈물이요 이래  가지고서 이제는 뭐 이제는 나를 용서할 거다 하는 그게 없어지니까 그때사 차차  차차 이제 주님이 조금 누꿔준다 말이오.

 누꿔주는데 그래 자꾸 뭣이 마음에 밥맛이 없고 이래 애를 먹고 자꾸 이래  고통을 했는데, 한번은 저게 양산동이라 하는 데 가 가지고서 산에 가서 이래  거석하니까 '뭣 때문에 아직도 구미가 안 들고 이런가?' 이랬는데, 그러니까  거게서 내나 다 지나간 일인데 말이요, 지나간 일인데. 지나간 일이고 다 그것  주님 앞에 다 고해서 다 해결받고 그런 일인데 거게 조금 그 장소에서 잘못한 그  장소에서 '그 장소에 잘못했습니다. 그 장소에 잘못했습니다.' 그걸 말이요 그것  장소 잘못했다는 것 그걸 하나님에게 고하지 안했다 말이오.

 그래 혹 이건가 싶어서 '주님이여, 그때 그 입장과 처지가 그런 장소인데 그런  장소에서 내가 조금 실수를 했습니다.' 그 장소 잘못된 것을 딱 말하니까 아,  그만 훅 하며 이제 주님이 '그래, 그거다.' 주님이 하시면서 내게 은혜를 주셔  그만 내려와 가지고 그날은 밥을 한 그릇 먹어 버렸어.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털끝만치라도 거리낌이 있는 그것을  어짜든지 치우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것만 치우면 그만 해결이 되는 것이라  그거요.

 그래 이렇게 양을 치든지 밭을 갈든지 하고 와서 '이만치 내가 했으니까 이제  주님이 나를 이렇게 대우해 주실 것이다. 나를 이렇게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이다. 내게 속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잘해 주실 것이다. 내 기도는 들으실  것이다.'  처음에 믿을 때는 뭐 말만 하면 척척 들으시고 또 속한 것은 말 안해도  하나님이 척척 해 주시더니마는 예수를 믿어갈수록이 기도를 잘 안 들으시요.

기도를 잘 듣지 안한다 그말이오. 안 들으셔.

 이래 기도를 죽자껏 해도 눈도 뜨지 안하고 못 들은 체하고 계셔. 못 들은  체하고 계셔. 이거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 죽을 지경으로 녹도록, 죽을 지경으로  녹아지면 그때사 '그뭐 그래 뭘 내가 있지 않느냐 내가 있는데 뭐 그래 쌓느냐?'  이러면서 그때사 겨우 들어 주셔. 이러니까 어떻게 예수를 믿어갈수록 하나님이  비싼지? 하나님이 비싸다 그말이오. 정말로 비싼 그게 본성이라. 비싼 그게  본격이라. 우리에게 비싼 것. 우리가 천번 만번 불러야 '뭐라 하노?' 이러시는  것이 그가 정상이지 우리가 한번 불러도 이러는 이게 정상이 아니라 그거요.

그래서 믿어갈수록 그래요.

 그래서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하신 건데,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아라'  '그래 가지고 네가 그랬으면 와서 이제 밭갈고 양 먹이다 왔는데 앉아 먹으라  할 주인이 누가 있겠느냐? 주인 먹을 것을 준비해라 준비해라. 준비하고 주인이  먹을 동안에 네가 띠 띠고 정신 딱 차려 가지고 수종들고 주인이 먹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네가 먹어라.' 그러고 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명령한 대로 다  행했다고 칭찬하겠느냐 할 일을 했다 무익한 종이라 결론을 지워라.'  그렇게 주인 먹을 것 준비하고 또 띠 띠고 섬기고 그 다음에 먹고 하는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라 그말이오. 주님의 명령. 그 명령이 무엇인고 하니 먹을 것  준비는 무엇입니까? 주인 먹을 것 준비는 주님이 요한복음 4장에 보면은  제자들이 떡 사러 갔는데 떡 사러 갔다가 왔을 때에 사마리아 여인하고 둘이  얘기를 하고 계시니까 그래 그걸 보고서 '주님이 사마리아 사람하고는 서로  언어상통이 안 되는데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을 하고 계시네.' 이래 보고서  그러면서 좀 언짢았다 그거요.

 이래서 '선생님 여기 떡을 가져왔습니다. 식사 가져왔으니까 와서 식사  잡수시오.' 이러니까 떡 말씀하시기를 '내가 먹을 양식은 여게 있다 너희들이  모르는 양식이 여게 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있다가 '그러면 그 여인이 뭣 갖다  줘서 여인에게 뭣 좀 얻어 자셨는가 보다 이래 생각을 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그 양식의 해석을 해 줬습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양식이 여기에 있으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당신의 인격의 양식이요 신격의  양식이요 신인양성일위의 양식이라 그거요.

 그래 주인 먹을 걸,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인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인 먹을  것을 준비하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이 이루실 뜻이 무엇인지 네가  그것을 궁구하고 살피라.

 네가 죽도록 주님에게 양을 먹이고 밭가는 그 일을 하고 난 다음에 네가 그  일이 완료되면 끝나자 마자 '주여 내게 대한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내게 대한 뜻이 무엇입니까? 뭘 하랍니까?' 하고 나서, 그 일을  하고 나서, 하고 나서 손을 씻지 안하고 이제하고 나서 일 딱 이러며 또 '뭐  하랍니까?' 이것이 믿음이 더해지는 방법이라 그거요. 알겠습니까?  이제 [주: 종을 두 번 치심] 이러다가, [주 : 종을 두 번 치심] 이러다가 이것  떡 다 해 놓고 '인제 다 쳤다.' 이래 놓고 난 다음에는 또 '뭐 하랍니까?' 자기  이미 맡은 양 먹이고 밭 가는 일 그 일 하다가 그 일 딱 끝나자 또 '뭐  하랍니까?' 지금 주님이 자기에게 무엇을 명하시는가 그 주님의 명하시는 그것을  찾는 것이 그것이, 주님이 나 한테 명하시는 그 일을 찾는 것이 주님이 하실  일을 찾는 것이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것이 주님이 하실 일을 찾는 거라.

 주님의 하실 일은 누구의 양식입니까? 주님의 하실 일은 누구의 양식이요? 네  주님의 양식. 우리 양식이 아니라. 주님의 양식이오. 주님의 하실 일을 찾는  것이 주인 자실 것을 준비하는 것이오. 주님이 하실 일이 이것이라.

 그러면 준비해 가지고서 주인이 먹을 때에 띠 띠고 섬기다가 주인이 다 먹도록  섬긴다. 주님이 내게 대한 그 뜻을, 내게 대한 뜻이 무엇인가 그 뜻을 찾아  가지고, 찾아 가지고, 그러면 내게 대한 뜻 그것이 주님이 곧 잡술 양식이요  아버지의 보내신 뜻인데 내가 할 주님이 내게 명하실 내게 대한 주님의 뜻, 그  주님의 뜻을 이제 발견한 것이 뭐이냐? 그것이 주인이 잡수실 식탁을 식상을  마련한 것입니다. 주인이 잡수실 것을 마련한 것이라 그거요.

 그런데 그것이 주님이, 잡수실 것을 마련했다 그말은 주님이 하실 일을 찾았다  그말이오. 주님이 내게 대해서 하실 일을 찾았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 '주인이  먹도록 띠 띠고 섬기라' 띠 띠고 섬기라 말은 띠를 띠라 말은 이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아주 단정하게 해 가지고서, 조심있게 단정하게 해 가지고서 주인  잡수시기까지 다 잡수시기까지 네가 수종을 들어라. 주인 다 잡수시기까지 네가  수종을 들어라.

 주인이 다 잡수시는 것은 주인이 어떻게 하시는 것입니까? 네, 그것은 주님이  그 일을 다 하시도록까지, 주님이 그 일을 다 하시도록까지 이제 내가 섬기는  것은 뭐이냐 하면 주님이 그 일을 다 하시도록까지 내가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그 일을 주님이 해야, 주님이 은밀한  가운데서 해 놓은 걸 찍해야 나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뿐이지 내가 하는 것은  아니라 말이오. 내가 주님의 내게 대한 뜻을 발견했으까 내가 그 일을 해야 될  터인데 나 혼자 단독은 못 해요. 단독은 못하니까 주님이 그 일을 해 주시도록  내가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뭐라 했습니까? '응답하셨다' 이랬소.

응답하셨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이 다 하셔. 당신이  다하고 난 다음에는 다 해 놓은 일을 이제, 다 해 놓고 뭐, 눈에 보이지만  안하지 다 해 놓은 그것을 눈에 보이게 할 수 있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내가  하는 일인데 내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내가 먹는 것이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내가 먹는 것이라. 내가 먹는 것.

 내가 먹고, 이러고 나서는, 그게 주님의 명령이요 신령적으로 말하면 양식이요  그게 명령이라. 그렇게 해서 자기가 먹는 것 이것까지 다하고 자기가 먹는  것까지 다하고, 자기가 먹는 것 다 하는 것은 뭣입니까 그것이? 자기가 먹는 것  다 한 것은 뭐이지요?  자기가 먹는 것을 다 한 것은 자기가 주님이 자기에게 대한 그 뜻을 '너는  오늘은 가거라' 이랬으면 가거라고 말씀했는데 나 혼자는 갈 힘이 없기 때문에  주님에게 '가게 해 주옵소서' 이러니까 주님이 당신이 가도록 다 해 놨다  말이오. 그 일을 다 해 버렸어. 다 하는 그것이 이제 주님이 잡수시는 것이오.

주님이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오. 다 잡수시는 것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띠 띠고 섬기는 것은 주님이 그 일을 다 해 주시도록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일을 다 해 주셨다  말이오. 해 주셨으니까 제가 먹는 것은 그거는 뭐입니까? 제가 먹는 거는  뭐이지요? 제가 먹는 것은 제가 이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제 인격의  양식이라 그말이오. 이거는 고기덩어리 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의  양식을 말합니다.

 자기가 다 먹고 난 다음에 '주의 명령하신 것을 다 행했다고 해서  칭찬하겠느냐' 그러면 그것이 뭐냐 하면은 주님의 명령이라. 내가 주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있는 전심 전력으로 다 이루고 난 다음에는 어서 또 주님이 내게  대한 뜻이 뭐인가? 쉴새 없이 톰박이 끊어질 여가 없이 어서 '주님의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요 찾고 난 다음에는  주님에게 간구해 가지고 주님이 그 일을 다 해 주시도록 이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기도하신 것과 같이 다 해 주시도록 이렇게 띠 띠고 섬기는  일하고 난 다음에 주님이 다 하셔 놓은 일을 주님이 다 해 놨으니까 '이제는  염려없다. 가자. 이제는 하면 된다.' 이래 가지고서 하는 그것이 자기가 먹는  것인데,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그 칭찬 받으려고 하면 또 틀린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으례히 자기가 해야 될 일 했다. 주님의 큰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이니 해야 될일 했고, 주님이 큰 구속을 주셨는데 이 구속을 입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될 일 했고, 무궁세계의 그 모든 것을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될 일 했고, 그게 자기가 자라가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될 일 했고, 이거는 참  안 하면 안 될 이 큰 낭파되는 그런 해야 될 일만 했다 그거요.

 그런데, 그러고 난 다음에 결론은 뭐라고 합니까? 내가 할 일을 했다. 마지막  결론은? 무익한 종이라. '무익한 종이라' 또 돌아갑니다. 이 끝이 아니오.

'무익한 종이라' 무익한 종은 뭘 생각하고 무익한 종이라 합니까? ○○○목사님?  제가 종으로 팔려 온 돈이 너무 많거든 종으로 팔려 온 댓가가 너무 많다  말이오. 댓가가 너무 커.

 댓가가 너무 크니까 이제 죽도록 했지마는 그것은 그것은 으례히 해야 될 일  했고 '무익한 종이라' 참 주님이 큰 댓가를 내 가지고서 나를 샀는데 그 댓가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니다. '무익한 종이다' 하는 그것이, 또 무익한 종이니까  무익한 종이니 또 이제 먹을 것 또 준비한다 말이오. 먹을 것 준비하고 또  그러고 자꾸 그렇게 계속해서 하는 것이 이것이 믿음이 더하여지는 방법이다.

 이런데 믿음이 더해지는데 믿음이 생겨지면 믿음의 능력은 뭐이냐 하면은 뽑는  능력, 운반하는 능력, 심기는 능력, 땅이 네게 복종하고 공간이 네게 복종하고  바다가 네게 복종하니까 그 남은 것 있습니까? 남은 것 있어? 또 남은 것  있습니까? 땅하고 공간하고 바다하고 서이 다 복종했으니까 남은 것 뭐  있습니까? 남은 겆 뭐 있어? 없어. 하나도 없어. 다야.

 이 땅하고 바다하고 공간하고 했으면 다지 뭐 그뭐 남은 게 뭐 있어? 전체는  너의 명령에 복종한다. 그 명령이 누구 명령인데? 하나님의 명령인데 하나님  명령에 복종 안 하면 제가 절단나지.

 이러니까 교역자 권위는 그게 교역자 권위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말대로만 해  버리면 하나님 명령이기 때문에 그 사람 거역하면 하나님 거역이요 그러니까  나보다 하나님이 처리하실 터이니까 나는 뭐 거게서 그저 가만히 보고 구경만 할  일이지. 내가 하나님이 하라는 말만하고 하라는 일만 했으면은 그거는 하나님의  대리기 때문에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 하나님하고  씨름붙이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에 이기는 사람들이 다 제 말로 한  사람들은 다 패전했소. 제 말로 하지 안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하나님하고 싸움을 붙인다  그말이오. '이거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것 가지고  이겨, 딴것 가지고 이기는 게 아니고.

 저는 신사참배 때에 그것 가지고서 그때 면했어요. 이제 출애굽기 20장을  보이면서 '이렇게 여게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거게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성경이 이렇기 때문에 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 나는  하나님이 절하지 말라 해서 그래 안 합니다. 그뭐 하나님을 어떻게 하든지  처리하든지 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에게 종이니까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권위 있었던 모양이라.

 내가 마루에 앉아 가지고서 영창문, 영창 밖에는 밖엔데. 앉아서 이래 책상  놓고서 앉아서 성경을 이래 읽고 있으면 저게서 일본 부장이 온다 말이오. 와  가지고서 문 밖에서 문을 열면서 '곤니찌와' 이렇게 해, 그래. 안녕하십니까  이래 한다 말이오. 그러면서 '좀 어떻습니까?' '나는 아무래도 성경에 그래 놨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대로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인데 나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면 가 버려.

 성경 말씀 한 게 그만 하나님하고 싸움을 붙이니까 그게 꼼짝 못하고 도망을  갔는데 나는 그걸 지금에사 깨닫는다 그말이오.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뭣이든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이렇습니다.' 하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그때 아주 마지막 일정 왜정  말년에는-신사참배는 이제 그것으로 승리를 하고. 신사참배에 제가 있는, 제가  집사로 있던 그 교회는 그때에 교인이 한 오륙십 명 됐습니다. 오륙십 명 됐는데  그 교인들은 그 면에 교회가 너인데 셋 교회는 전부 하나 하나 불러다가 다  신사참배를 시켰고 그 교회 교인들은 신사참배 하나도 안 했습니다. 하나도 안  했어.

 하나님이 그걸,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싸우는 것을 그걸 대단히 좋아하시는  모양이라. 하나님 말씀 들어, 하나님하고 싸움을 붙이니까 그까짓 거 어데 뭐  당할 재주가 있습니까?  그래 마지막에는 예배당을 내놓으라고 이렇게 말해. 예배당을 예배 보고 그렇게  일어 강습을 하도록 그거 학교로 쓰도록 좀 그걸 빌려 달라 해. 빌려 달라 하기  때문에 '그거 내가 빌릴 수 없습니다. 우리 집입니까? 나는 우리 집 아닙니다.

내가 빌릴 수 없고 그거는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에게 허락받은 건 찍해야  예배보라는 허락밖에 안 받았지 팔아먹으라 빌려 줘라 그런 권리는 우리가  받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 빌리십시오' 이러니까 '하나님께  빌리는 그걸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통해서 하지 어떻게 합니까?'  이러면서 하도 신강을 해서 몇 번 신강하다 보니 그다음에는 거창 경찰서에서,  거창 경찰서에서 올라왔어. 올라와 가지고 그날은 시작 하려고 온다고 이래  왔어. 와 가지고서 '그거 좀 빌려 주십시오' '나는 빌려 주지 못합니다. 내가  말하지 안했소. 그거 어찌 빌려 줄 수가 있습니까? 그 집은 다만 예배보라고  하는 집뿐이지 예배보라는 권리밖에 없지 빌려 주지는 못합니다. 당신들이 예배  못 보구로 밀어내뜨리면 우리는 또 딴데 마당에 예배를 보든지 예배를 보지 그거  빌려 주지는 못합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걸 허락받으려고 몇 번이나 와 가지고 이러다가 기어코  거석하려 하니까 '당신들이 거게 권력을 가지고 그렇게 밀어내면 우리는 힘이  없기 때문에, 당신들은 힘 있고 힘은 우리 없기 때문에 밀려 나오지요. 밀려  나오면 우리는 하나님이 거게 예배보라 하는데 거기서 세력을 가지고 밀어내니까  우리를 그를 대항하지는 못하니까 우리는 예배를 거기서 안 보고 딴데서  보겠습니다.' 그러고 '딴데 보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주일 아닌 날  우리가 사용하고 주일날 거기 예배보라고 또 그걸 또 강권을 하네요.'  '거게는 예배보는 집이라 했는데 당신들이 뺏들었으니까, 뺏든데, 뺏들어서  당신이 뺏들었으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거게 예배보라 했는데 우리는 당신들에게  뺏겼으니까 우리는 거기 예배보지를 못합니다.' 그러고 바로 그 집 위에서  찬송을 하고 주일날 예배를 봅니다. 마당에서 덕석 펴놓고 그렇게 예배를 봤어.

 그러니까 거게 있는 선생으로 온 사람이 있다가 '아이구 미안합니다.' 이러면서  주일날 와 가지고서 예배에 참석을 하고서 예수 믿는다고 참석을 해. 그 사람  그뒤에는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그래 와요. 그래 와서 '주일날 여기서  예배보이소.' '안 합니다. 예배보는 장소를 당신들이 그런 속된 걸로 썼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 신성한 예배를 거기서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안 갔습니다.

참 재미 있어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미리부터 기름 준비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뭐 이  말씀만 하면 세상을 이기고도 남음이 있겠는데. 남음이 있어.

 자, 그러면 뜨끈뜨끈한 온도같은 모든 무력, 무력이 우리를 막을 때에는, 또 이  세상에 뭐, '이것만 하면은 차를 태여 보내 준다. 일본에 한번 관광을  보내겠습니다.' 그때 신사참배 한 목사들 일본 가서 다 관광 한번하고 왔습니다.

아주 일본 구경 한번 하고 왔어. '관광을 보내겠습니다.' 또 이러며 '당신은  지금 표창을 해 가지고 어떻게 하겠습니다.' 그게 물과 같애. 물은 시원하고  좋은 것 아니요?  또 질소분, 거기서 속살거려 썩히는 오만 균 세균 뭐 또 썩히는 썩는 질소분  이런 것들 이렇게 오는데, 질소분이라 하는 거는 세상에 죄악이라 말이오.

세상에 죄악의 세력이 와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그 현실에서 현실을 이기지  못하도록 현실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이렇게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과 연결된  것을 가지고서 그것을 잡아먹는다.

 잡아먹으면 자꾸 자랍니다. 한번 잡아먹으면 또 자라고 자라고 자꾸 자라요.

그렇게 해 가지고서 겨자씨 믿음으로서 자라면 그 겨자씨 믿음의 자란 겨자씨  믿음이 권세가 무슨 권세가 있소? 세 가지 권세가 있는데, 자? 하나는? 뽑는  권세. 하나는? 운반하는 권세. 하나는? 심는 권세. 거게서 방해자가 누굽니까?  땅, 공간, 바다. 이 방해자들이 방해했습니까 협조했습니까? 이러면 협조해서  시키는 대로 순종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 믿음 더해지는 방법, 그걸 겨자씨 믿음으로 현실을  정복하는 것도 중요한데 오만한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제가 오만한 자리에  이거 앉았다가 다섯 달 동안 하나님 앞에 매를 맞았습니다. 이러다가, 다섯 달  동안 이랬는데 다섯 달 동안을 우니까 겨우 걸음발을 시키고 설교를 시키요.

설교를 시키는데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좀 뚜드려 옹치려고 지금 하시는지 이래  걸어가면 뒤뚱뒤뚱뒤뚱 이랍니다. 속에 마음에는 지금 내가 날아갈 것 같은데  그래요.

 그래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게 있어 '삼십 세 청년의 강건으로 주님이  건강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그 건강 가지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설교  준비하고 설교하는 데 거게만 쓰고 다른 데는 하나도 안 쓰고 거게만  전용하겠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차차 차차 주시는 것 같애요. 인제 주시는  것 같애서 앞으로 삼십 세 청년 모양으로 모두 삼십 세 이 청년들같이 내가 한번  할 수 있을 거라.

 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만한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참 오만한 자리에 앉으면 무섭습니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 할 것. '내가 이만치 했으니까 나에게 대우하겠지. 나에게  어떻게 해 주시겠지.' 그것이 아주 교만한 것이고 참람한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구속을 나에게 주셨는데? 어떤 구속에 팔렸는데? 사도 바울은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고 죽기 전에는 항상 사랑에 빚이 졌고 또 전도의 빚이 졌다고 빚진  자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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