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의 3위력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10일 수전집회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오월달이지마는 날이 매우 포근해서 다져 앉는 데에는 많이 덥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그 은혜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저 아무리 좁아도 거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더 주님에게 영광 돌릴까  하는, 기쁘시게 할까 하는 그 간절한 마음 자세에서 더 좁힐 수도 있고 더 불편을  자취해서, 그것도 적은 일이지마는 십자가의 고난에 속한 성질의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조그마치라도 좀 넓게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은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좋도록만 하는 그 방편을 취하면 견디지 못할 만치  어려워질 것이요 또 갑갑해질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기 때문에 자기 평안과 자기 천국을 자기가 만들어야 됩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그러고 이번 집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말세지말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별별 사람병에 걸려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병 중에 제일  독하고 치료하기 어려운 병은 악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제일 독한  병이요 치료하기 어려운 병입니다.

 또 믿음이 흔들리는 병, 믿음은 하나만 믿어야 되는데 그저 믿음의 대상을  몇이든지 두고 조금만 뭐 자기에게 잘해 주면 그만 그도 믿고 저도 믿고 사람도  믿고, 뭐 자기에게 조금 은혜 있으면 은혜 그것도 믿고, 복 그것도 믿고 이래서  믿음에 병이 들어서 믿음이 깨끗지를 못합니다. 또 소망도 한 분만 소망해야  되는데 소용 없는 것들을 자꾸 소망합니다. 그것도 일종의 병입니다.

 또 우리의 힘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인데 그 하나인 힘은 오직 자존하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그분만의 힘입니다. 진리도 그분의 힘이요, 옳은 것도 그분의  힘이요, 바른 것도 그분의 힘이요 진실도 그분의 힘입니다. 그 힘에 병이  들었습니다. 별별 쓰지 못할 스스로 자기를 망치는 그런 힘을 힘으로 알고 준비도  하고, 또 가지고, 그 힘 .가지고 무엇을 해 볼라고 날뛰는 그런 것이 다  인간병입니다.

 이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노하는 그런 것도 모두 병이 들었고,  우리의 이 마음의 각 요소도 병이 들었고, 우리가 지금 생활을 모두 다 진설해  놓고 이런 저런 모든 생활 계획해 놓은 그런 것도 병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그게  다 인간병에 속한 것인데 인간병을 치료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한 진리와 성령과 하나님의 대속의 이 능력 이 외에는 치료하는 능이  없습니다. 이래서 사람병을 고치는 것을 주님도 주로 소원하시고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성경이 가르친 대로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어떤 죄값이나 주의 부족으로나 그런  것들로 우리에게 병이나 고통은 안 옵니다. 요것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입니다.

물론 총공회뿐 아니라 총공회와 같이 믿는 사람들이 숨은 성도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다 모든 사람이 조롱하고 핍박하고 '너무  치우치다. 저렇게 자꾸 치우쳐서 들어가면 좀 있으면 뒤에 어데까지 그 종착이 참  수치스럽고 멸망 가운데 빠질란지, 저래 달리면 조만간에 급속히 그 큰 화를  당면하게 될 거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좁게 간다고, 우리를 치우치다고,  우리를 지나치다고, 우리를 사회성이 모자라고 윤리성이 모자라고 또 인간성이  모자란다고 이렇게들 다 말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총공회가 쫓겨 나온 것과 또 모든 사람들과 이색진 거, 한 교회서도  이색이 집니다. 이색지는 그 행동을 가리켜서 행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정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총공회 교리와 신조와 총공회 행정은  나눠지지 못합니다. 하나기 때문에 나누지를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훈 곧  말씀은 좋은데 행정이 나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늘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아직까지 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좋다고 해도 몰라 그런 것입니다.

 총공회서 성경 깨달음과 성경 주장하는 이 교리와 신조는 총공회 행정인 '다수  가결이 아니고 진리 가결이다. 백의 구십구가 다 하나가 돼서 말한다 해도 진리가  아니면 따라갈 수 없고 혼자라도 진리라면 죽어도 가다가 죽지 달리 변동할 수  없다.' 하는 요것이 총공회 행정이기 때문에 이 행정을 가지지 안하면 총공회  교리와 신조는 지키지 못합니다. 이 교리와 신조를 제가 이용은 해 먹고 팔아먹고  상품으로 삼아서 임시 목회할 때에 사례받는 그 댓가는 될지라도 결단코 자신의  구원이나 듣는 자에게 구원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병 고치려는 것이 그것이 첫째 목적이요, 마 귀의 형상대로  세상대로의 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고치려는 것이 그것이 첫째  목적입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첫시 간에도, 월요일밤과 화요일날 아침과  화요일날 오전에 세 시간에 걸쳐서 이사야 2장에 있는 말씀, 3장에 있는 말씀을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경대로의 존재관을 들어서 말씀한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모든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취급하나 하는 그것이  존재관입니다.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요, 하나님도 존재요, 만물도 존재요, 우주도  영계라는 큰 세계도 다 존재입니다. 그러면 그 존재에 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래서, 세 시간 계속 말하는 거 거게 뭐 새 말이 나오거나 또 무슨 새로운  이치가 나오는 거 없습니다. 늘 자꾸 그 말만 합니다. 이러니까 듣는 사람들이  답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에 혹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와  가지고 성신의 감동이 되고 그 권능을 입어서 사람병이 치료될까 해서 그저  그렇게 자꾸 말하는 것입니다.

 들으면서 '여게서 사람병이 고쳐지는 이 능력을 내가 받아야 되겠다' 하는  거게다가 자기가 착안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만 지루하고 그 사람은 말만  들어서 말에다가 다만 소망과 가치를 두고 있지 그 말은 영감을 안내하는  말씀이요 또 성령을 우리에게 접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은 모든 은혜를 다 받아서 자기로 모든 치료 다 받고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래서, 이번에 사람병 다 고침을 받아야 되겠는데, 기독자는 어떤 죄를 짓고 그  뒤에 어떤 성이 들었더란대도 죄 지은 죄값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요것도  단정을 지우십시오. 기독자가 금방 참 어떤 살인죄를 범해도 범하고 난 다음에  바로 그시에 자기에게 여러 종류의 어려움이 부딪혔으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이런 죄를 지었으니까 내가 죄값을 받고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기 쉬운데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해도 그 죄는 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둘어간 것이요.

예수님이 그 죄를 다 정죄받아서 부담하신 것이요 또 죄에 대한 댓가를 치러서  우리에게 사죄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의  댓가를, 형을 주님이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거게서 해방시켜 사죄해 주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행동과 처지 가운데에서 어떤 어려움이  와지라도 요것은 죄값이라고 하면은 예수님의 대속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거 뭐인가? 보면 죄의 종류에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그 모든  어려움들이 그 죄의 결과로 오는 거와 비슷하게 그렇게 서로 관계성을 가지고  동질 동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값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죄를 범한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죄에서 그 사람을, 그런 죄름 범한 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구원하는 역사로  그런 방편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말해서 형과  비슷하지마는 징계라, 그래서 우리 택자들에게는 징계는 있어도 죄의 값은  없습니다.

 요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것도 다른 사람들이 다 오해하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만치 요것도 총공회에서 독특히 쓰고 있는 교리와 신조입니다.

이래서 우리 총공회에 속해도 이렇게 요런 것을 받아들이지 안하고 그저  그렇단다 이렇게만 보고 지나갔기 때문에 오늘까지 그 효력이 없습니다. 물론  총공회 밖에도 총공회와 같은 그런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어떤 그 교파에 있을지라도 그 교파에서 많은 충들이 있고 많은  대적과 해를 받는 그런 일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자기가 범죄했을 때에 거게서 주님의 대속을 깨달아야 됩니다.

'내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죄가 예정되었고 나는 이런 죄를 범했으니까 이 죄를  주님이 담당하셨고 이 죄에 대한 정당한 그 형을 주님이 받으셨구나' 하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자기는 주님에게 그만큼 형을 부담을 시켰으니까 그만큼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인제 주님의 것이 되었으니 그만큼 주님을,  대형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만큼 주를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할 자기 십자가를  지금 찾아서 지는 그것이 그 양을 찾아, 자기 십자가의 양을 찾는 것이 옳고,  또 이것을 왜 하나님께서 내게 예정하시고, 그분이 달리 예정하면 되는 건데 왜  내게 이것을 예정하시고 또 이것을 예정하셨으니까 이루어지니 거게 대해서는  댓가면 죽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대신 정죄를 받아야 되고 대신 형을 받아야  되고 이렇게 하신 이 예정과 창조와 또 대속의 이 과정을 거친, 내게 유별스리  나에게 이와 같은 순서가 하나님에게 예정돼 있으니 이 이유가 뭐인가? 이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모든 과정들인데, 이것이 다 약한 것들이요, 또 욕된  것들이요, 또 이것이 다 더러운 것들이요, 혈육의 것들이라. 이게 다 병든  것들이요 모두 다 못쓸 것들이라.

 그러면 이것이 있는 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이것은 '이것을 심어 가지고 좋은  것으로서 다시 살아야 된다' 이랬습니다. 이것을 심어 가지고 좋은 것으로 다시  살아야 된다. 약한 것을 심어 가지고 좋은 거로 살고, 또 욕된 것을 심어 가지고  또 좋은 것으로 살고, 이렇게 모든 나쁜 것을 심어 가지고 좋은 거로 살기 때문에  이것만치 다시 살아나서 좋아지면은 그것이 존재의 목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죄 가운데 빠졌을지라도 하나님이 이것을 나에게 어짜라고  다른 사람 없는 내게 이런 예정이 있는가? 이 예정대로 성취되는 이런 일이  있는가? 다른 사람보다 주님에게 이런 대속을 또 요런 종류의 대속을 입게  됐는가? 이것은, 전부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단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여게서  더듬어 찾아서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 그것이 들어서, 약한 것이라면은 강한 것,  또 욕된 것이라면 영광 스러운 것 또 하나는 뭐이요? 내가 그 하나를 잊어버렸네.

그러면 혈육의 것을 신식한 것으로, 또? 아, 썩을 것. 썩을 것 그게 내가 암만  해도 안 나오는구만요. 안 나와서 내가 지금 말했어.

 이래 젊어도 문장이 갈 지(之)자에 막힌다고 그런 일이 있어요, 사람은. 이런데도  나이가 많으면 또 더 그런 일 많아. 그러니까 설교록을 보든지 설교를 들을 때에  그런 것을 이해하고 어쨌든지 단어가 여간 틀리고 또 인용하는 무슨 성구가  틀리고 이렇게 돼도, 어떨 때는 모세를 뭐 엘리야라고 그렇게 말할 때도 있어요.

이러니까 그것은 이해를 하시고, 그것도 없으면 좋은데 이해를 하시고 저렇게  증거하는 것의 그 도가 뭐이냐 ? 우리가 걸어갈 길이 뭐이냐? 그 도를 찾으면 그  도는 아는 대로는 바로 증거가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아시고.

 이래서 우리에게 닥쳐지는 것은 어떤 순서에 우리의 불행이라는 그런 것이  닥쳐져 있든지 전부 불행으로 닥쳐져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심이  아니요 죄값도 아니요 나로서는 그것이 있어야 고치기 때문에 고치기 위하는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 할당되고 해당된 고칠 부분  고것을 바로 찾아 가지고 고치면 그것은 없어집니다. 이 말을 간단한 시간에  그거는 어설피 해 놓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 하는 사람은 '그 아주  비합리의 말이다' 이렇게 오해하기 쉬우나 그저 간단한 시간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병 든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지를 않습니다. 이 학교서  공부하는 것은 전부 사람병을 지금 돌도록 할라고 병 주사를 놓는 것이 세상  공부요. 여게는 그저 하나님의 형상에 비추어 봐서 거게 삐뚤어진 것이 능력이요  삐뚤어진 사람 되기 위해서, 국민학교 일학년이 순진하고, 그보다는 이학년이 또  더 더러워졌고, 또 대학생이 더 더러워졌고, 사회 생활 얼마 하고 나면은 더  더러워졌습니다. 이중 삼중의 껍데기도 많이 만들었고 또 다른 사람 해하고 자기  좋게 하는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이 아주 처세술이 능하게 됐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보배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그게 다  걸려서 자기를 일생 동안 속여서 구원 헛일하게 하는 그런 것들이니까 그런 것은  세상 사람은 사람병으로도 알지 못합니다. 모두 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부러워하는데 그만 대개는 위대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죽음의 독이 많다  그렇게 보면 됩니다. 맞아요?  대종교 창설자라면은 그 사람은 따르는 사람이 많고 아주 존경하다가 숭배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교에도 석가모니를 숭배합니다. 이러나 모든 종교인들,  종교 창설자나 종교의 인물 중에 위인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죽음의 독이  많다, 유별스리 많다 요렇게 보면 성경대로입니다. 왜 지해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시는가? 이것은 지혜 있고 통달한 자는 많이  썩었다 그 말이오. 많이 썩었기 때문에 정상이 없으니까 정상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길바닥이라 그렇게 비유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육체의 모든 고난이나 질병이나 우리가 원치 안하는 일 그  모든 그런 일을 하나님이 닥치게 하시는 것은 사람병을 고치기 위해서 닥치게  하셨기 때문에 '나에게 요런 근심이 오는 것은 요것은 무슨 병 고치라고 요  근심이 오는가?' 거기에 해당되는 인간병만 고치면 그 근심은 변하여서 기쁨으로  화해집니다. 그 큰 손해는 크게 유익으로 바꾸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병을 고치면 저절로 고기덩어리의 병은 다 고쳐진다. 우리가 원치 안하는  모든 불행병은 다 고쳐진다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기 위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을 달리 과거에 무슨 죄값으로 그래 됐으면 죄값이면은 죄값은 그것을 값을  받아 가지고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망칠 그런  고난은 없습니다. 우리를 형을 줘서 벌을 해서 처리할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형, 대형은 과거 현재 미래  영원을 다 대형했기 때문에 주님이 대형했는데 뭐이 모자라서 우리에게 또 그  형을 가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그것은 주님이 이미 대형하신 죄요  예수님이 다 그 정죄를 받아서 대신 죄인 된 그 죄입니다. 대형한 데 다 들어간  죄입니다.

 이런데 요것까지는 맞는데 대형을 했으면 우리는 그 죄에 대해서, 자기 죄의  댓가라고 사람들이 하기 쉬운 자기에게 오는 그 모든 어려움에 대해서 할 일이  뭐인가? 그러면 자기가 범죄한 죄를 주점이 대형했다고 하면 대형한 죄를 자기는  몰랐지마는 닥치면 '내가 이런 죄를 범하고 주님은 이 죄를 다 대신 대형했구아'  하면은 그 다음에 거게 대해서 대형으로 사죄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이미 지은 그  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건가 하는 요것은 올바른 교리와 신조가 똑똑하게  안 나와 있습니다. 많이 증거했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다 무시하고 안듣고  있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에게 좀 의문되는 문제만 주는데 어쨌든지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죄의 값은 없습니다. 죄의 형은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죄를 지은 크 순서에  무엇이 놓였을지라도 내가 지은 그 죄값으로 오는 형은 없다는 요 사실을  확고하게 거머쥐십시오. 그러면 그거는 뭐할라고 왔는가? 그것은 사람병을 고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고치기만 해 보십시오. 그 사람병만, 고쳐 버리면 그만 그거는  즉시 물러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병 고치는 것과 고기덩어리병 고치는, 것 이 두 가지를 지금 우리가  걱정을 하고 이 치료를 해서 소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과 꼭 같은 자되는  이것이 우리 욕망이요 우리 몸은 그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복음 구원을 이루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적절한 그 건강을 가지기를 우리가 원해서 왔습니다.

 이랬는데, 첫시간부터. 다른 말만 하고 이 병낫는 말은 안 하니까 답답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병낫는 데 대해서는  말씀을 하나도 안 하고 기도도 한번도 안 해 주시고 이 라니까 그거 좀 절망이  되고 낙망이 되고 답답하게 여기는 그런 환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지금 첫시간부터 하는 것이 사람병 고치는 일이오. 또 그  다음에도 하는 것이 다 믿음병 고치는 것이오. 믿음병도 사람병 이오. 그라면  이거 고쳐지면 병은 고쳐 달라고 하지 안해도 그 병은 다 도망 다 쳤습니다. 다  쳐 버리요. 요것을 믿고 자기가 그런가 안 그런가 해 보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  해 보십시오.

 여기 집회에서 병나은 사람 수가 많은데. 그것을 하나님은 증거로 이걸 보아서  깨달으라, 그러면 조그마치라도 믿음이 생겨질까 해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애를 쓰셔서 하시는데 그만 그것을 다 잊어버려 버리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어합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서부교회도 그렇소. 우리 서부교회도 보면 어떤  구역장은 자기 구역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런 무슨 생활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든지, 또 그 사람 몸, 신체에 뭣이 나타났든지, 또 그 사람의 그 신앙에  대해서 무엇이 나타난 그런 거 있으면은 그것을 뭐 아주 들고 다니며 팝니다.

들고 다니며 팔아요. 온 식구들에게 자꾸 팔아요. '아무것이는 이렇고 이래 가지고  사람이 어떻게 변화가 됐다, 어떻게 그 생활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어떻게 됐다. 그  몸뚱이가 어떻게 고쳐다.' 팔러 다니면서 자꾸 '사시오 사시오' 요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 있고, 어떤 구역장은 그 말만 하면은 참 아이들 말로 논어 책 그거  모양으로 그만 듣기 싫어하고 그만 이래찡그리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활동을 해도 인본주의 세상주의 그런 교회에 골치 아픈 그런 것들만 주  모으지 참 사람은 만들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이번에 사람병 고치면 고기덩어리 몸뚱이병, 제가 그것도 기도했어요.

'앉은뱅이도, 누운뱅이도, 벙어리도, 귀먹어리도, 소경도, 반신불수도, 모든  문둥병도, 피부병도, 또 정신병도, 간질병도, 또 속에 이거 뭐 내장병 온갖 병도 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고 만일 다시 죄를 짓거들랑은 십 배나 더 큰 징계를 줘  가지고서 개글개글개글거리며 제가 회개하지 안할 수 없도록 그렇게 징계를  주시고, 병낫고 난 다음에 무슨 일 해도 관계없도록 그래 하지 마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난 다음에 낫고 나서 나은 것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노릇 하라고  하신 것인데 죄짓고 하거들랑은 더 큰 증세를 주시고 또 회개하거들랑은 즉시  축복으로 바꿔 주옵소서.'  '그래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와 모든 교우들을 다 하나님이 정화 시켜 주셔야  되겠는데, 이 모두 다 사람들이 원하는 올림픽 둘을 치러도 무사히 치르고 지금  이랬는데 이제는 주님이 교회를 정화시켜 주셔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정화는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으로 역사하셔서 깨끗하게 해 주시고,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징계를 가지고 이제 역사하셔서 깨끗하게 해 주시고, 또 징계받은 것이  회개하거든 즉시 축복으로 바꾸어서 깨끗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을 제가  늘 기도해서 나왔습니다. 그러고 공산주의를 교회에 붙이시고 교회를 공산주의에  붙이지 말아 주시고 이북을 이남에 붙이시고 이남을 이북에 붙이지 말으시고  하는 그것을 늘 기도했기 때문에, 기도했기 때문에 저거가 남한을 그렇게 먹자를  못할 것입니다.

 이래서 온갖 자기 생활에 병든 사람, 경제 병든 사람, 사업 병든 사람, 또 가정  병든 사람, 자기의 그 모든 심령이, 믿음이, 소망이,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이, 뭐  제가 아는 병보다 모르는 병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 병든 이것을 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데 하나 고치면 둘 셋 자꾸 따라 고쳐집니다. 또  하사 더러워지면은 자꾸 모든 것이 따라서 더러워집니다.

 고치는 것도 제일 작은 것부터 고쳐야 큰 것이 어데까지 큰 거라도 고쳐지고  더러워지는 것도 제일 조그만하고 아주 제일 작은 죄 그걸로서 큰 죄에  나아간다고 성경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이러니까 요 사람병 고쳐지면 육체의  병은 생각하기도 전에 그만 다 고쳐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사람병 고쳐지는  말씀이니까 요 말씀에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첫번에 세 시간에 한 것은 하나님 외에 딴것을 의뢰하는 것이라 그 말은  하나님 외에 이것은 다른 데에서 받았다 그 말이오. 다른 데에서 받았다. 이것은  다른 데에서 받았다. 앞으로도 다른 것에게서 내가 받으면 된다. 있는 것을  하나님 외에 딴데서 받은 것인 줄 아는 그것이 그걸 의뢰하는 것이고, 또 앞으로  하나님에게서 받지 안하고 다른 것 사람에게서라든지, 기술에게서든지, 자기  건강에서라든지, 자기 수단에서라든지, 자기 모든 활동력에서라든지, 어떤 정계의  배경이라 든지 뭘로, 뭘로 말미암아, 저는 지식으로 받았다든지 어떤 걸로 하든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 아니고 요거는 하나님 외에 딴것에게 내가 받은 것이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자기가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받을 소망을 가진 그것도 하나님 외에  그런 것들을 다 의뢰하는 죄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존재관입니다. 존재관.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지고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됐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분 한 분으로서 동하고 정하고 망하고 흥하고 다 그래 돼집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나는 이게 특수한 지금 재능을 가졌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특수한 재능을 주셨으니 그분이 내게 주신 것이니까  그분이 뺏들어 가실 수도 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셨으니 이거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걸 믿으면은 그 다음에는 겸손이 나온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 이것을 조심있게 해야 되지 잘못하면 주신 그분에게  거슬리면 홀딱 뺏들면은 그만이다' 요것을 알고 사는, 이 존재관을 바로 가지면  사람병이 확 고쳐집니다.

 만일 존재관을 바로 가지면 여기 사람들이 확 뒤비질 사람들 많습니다. 완전히  그게 굉장한 의인되고, 굉장한 능력자 되고, 굉장히 막 행복을 들이 행복 속에  파묻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오지 못하고  하니까 이번에 그 병을 지금 치료하는 것이니까 모든 존재에 대해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크고 작은 것이 말미암았고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도  그분의 뜻대로 움직이면 전체가 생명이요 평강이요 다 성공이요 영생이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아버지 마음대로나, 남편 마음대로나, 상관  마음대로나 뭐 누구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어떤 자의 말대로 해  가지고라도 움직이면 그거는 다 멸망이라.' 하는 요것을 확정짓고 가지는 것이  모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존재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두 시간을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서 '이런 것을 네가 소망하라. 너는 이런 희망을 져 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런 희망을 다 네가 실상으로 이루어 가지고 이런 것을  다 네가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많이 말해 놨습니다.

 많이 말해 놨는데 그 많이 말한 거 그걸 얻기 위해서 뭐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공부를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자본을 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배경을 가져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간단하게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이제 성경에 되어 있는 소망은 다 믿음이면 다  제것 된다. 믿음이면 다 제 실상이 된다. 제것이 된다. 그래 말했고,  또 성경에 기록한 참 기이 묘묘한 것을, 인간이 상상도 못 한 것을 많이 말씀해  놨기 때문에 다 부정합니다. '그럴 일이 있겠느냐, 그럴 일이 있겠느냐? 그럴 일이  있겠느냐? 네가 그럴 일이 있겠느냐?' '그걸 보는 것은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다. 믿음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믿어봐라.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믿어봐라 네가 확실히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믿어봐라. 그 실상이 네게 와서  부딪히는가 안 부딪히는가 봐라' 하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 믿음에 대해서 더 보충을 해서 그러면, 이것도 사람병 고치는 것이오.

모든 것을 믿음으로 얻으면 다 온전하고 완전하고 영생되고 영원히 소유하고 참  자기에게 복이 되는데 믿음으로 가지지 안한 것은 전부 자기에게 화되는  것입니다. 어떤 실상이라도, 어떤 실상이라도 믿음으로 취한 실상은 그는 다  영생이요 완전이지마는 믿음 아닌 다른 방법으로 취한 것은 전부 화덩어리입니다.

요것을 요래 믿는 것이 사람병이 고쳐진 사람 완전한 사람이오.

 오늘 봉독한 말씀, 예수님이 그때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도록  그렇게 하시는 능력도 있음을 봤고, 또 풍랑이 이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잔잔하니까 '이분이 어떤 분이신데 이렇게 풍랑조차도 다 순종하는가?' 그들이  놀랐고, 죽어서 상여에 메고 나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살려내신 것도 봤고, 또  내음새 나는 나사로 살리는 것도 봤고 예수님은 놓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그들이  봤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요구할 것이 뭐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를 뭘 만들어서 나를 장관을 시켜 주십시오, 대통령을 시켜 주십시오. 나를 뭐  해 주십시오.' 뭐 많은 것이, 구할라 하면 구할 것이 많이 있겠는데 이 제자들은  구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을 구했습니다.

 엘리야도 이와 같이 참 만능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주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그 엘리야인데 엘리야 제자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할 때에 다른 것 구하지  안하고 '당신의 영감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하는 그걸 구했습니다. 이것이 참  사람이라. 참 사람.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목사들이 설교하면 어짜든지 설교 듣고서 교인들이  은혜를 받아서 감탄을 하는, 교인들이 은혜받는 그것만 주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것도 외식자요. 설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됩니다. 요 말을 증거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요 말이야 뭐 천하 인간이 반대해도 주님이 기뻐하신다. 당신이  기뻐하시는 게 제일이지 당신이 기뻐하면 저절로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다  행복되게 살 것 아니겠습니까?  이 믿음을 구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교훈을 많이 듣고  보니까 보이는 모든 것보다 참을, 온전을 이루는, 하나님처럼 온전을 이루는  이것은 다 그 방편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 부자되는 것이 제일 낫다 싶어서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그 말을 해서 구했던 것입니다.

 구하니까 예수님께서 믿음을 더해 달라 하니까 믿음을 더해 주지는 안하시고  믿음에 대한 해석을 했습니다. '너거가 믿음을 더해 달라고 하는데 믿음에 대한  지식을 너희들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서 말씀하시기를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게서 이 겨자씨 믿음이라, 겨자씨 믿음이라는 것은 다 생명 있는 믿음이라, 산  믿음이라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 이렇게 이런 교리와 신조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하면은 말썽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여게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특별히 지극히 큰 능력 셋을 여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큰 능력 셋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이 겨자씨 믿음은 우리가 깨닫는 대로는 생명 있는 믿음이라 산 믿음이라 그 산  믿음은 우리는 산 것을 해석하기를, 우리 총공회에서 말하는 산것을 해석하는 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으면 살았고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죽었다' 하는 것으로 그렇게 우리는 믿는 교리와 신조를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총공회 속해 있으면 총공회의 독특한 이 교리와 신조를 자기 교리와  신조를 삼으면 이 교리 신조를 가지고 이대로 산다고 해서 여러가지 박해를  당하나 박해보다 속에서 몇천 배도 더 되는 큰 유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좋아서 더 총공회 산하의 신앙가가 되지마는 이  독특한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자기가 지키지 안하고 사용하지 안하면 자기는  이로 말미암아 오는 혜택은 하나도 없고 오는 바람만 맞으니까 그 사람은 도망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망간 사람들이 다 그래 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들을 때에 이것은 일반적 해석에 안 맞아도 자기가 깊이 기도하고 해 가지고  바로 깨닫고 믿을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성경 해석은, 성경 해석이면 성경 깨달음인데 성경 깨달음은 차이가 많습니다.

성경 깨달음은 안 믿는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성경 해석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여기는, 안 믿는 사람과 견해가 꼭 같도록 되는 그런  성경 해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외부적이요 아주 초보적입니다. 그거는 그 성경  깨달음을 가져봤자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은 성경 해석을 과학적이라야 이해를 하지 비과학적은 이해를  안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해석이 물리와 같아야 되지 물리와 같지 안하면은  이해를 안 할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거는 과학적이라는 그 정도 선 아래에  있는 성경 해석이요 깨달음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 위에 나아가면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다만 성경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성경에다가 맞추어 놓으면 맞지마는 세상 어떤 지식에도 맞추어 봐도 맞지  안하는 그런 해석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로소 올바른 해석의 초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초보에 들어가는 것이오.

 그 다음에는 성경 깨달음이 성령의 감화적인, 성령의 감화적인 이런 해석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적인 해석 이런 해석이 있어서 이거는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했는데 육체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아주  다르기 때문에 육체의 쟁각은 인간의 생각이라 말이오. 인간만으로의 생각하는 이  생각과 성령은 하나님의 생각인데 이는 정반대라서 성경에 말하기를 '네가 인간의  생각으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관원의 지혜 그런 지혜를 가졌거든 그  지혜를 다 버려 버리고 그 지혜의 정반대를 네가 가지고 취해라 정반대로 해라.

세상 지혜로서 하라 하는 것이면은 너는 하지 말고 세상 지혜가 하지 말라는  것만 해 봐라. 그라면 옳은 데에 맞아 들어가기 쉽다. 그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오늘 모두 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어떤 걸 원하느냐? 세상적인  해석을 원합니다. 그러면 아무 마찰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게서 또 과학적인  해석을 하면은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 잘 알아듣고 '야, 참 잘한다.' 이랄 것이오.

 그러나 성경대로의 해석을 하면은, 뭘 꼭 무슨 말 하면은 '성경에 이렇게 말했다'  '내나 성경이 성경으로 돌아가 가지고 말하는 그거야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느냐?  그러면 우리 이 세상에 무슨 어떤 과학이라든지 어떤 또 인제 모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실존이라든지 이런 걸 가지고 해석해야 되지 뭐 얼토당토 안한  소리를 해서 그거는 틀렸다.' 하면은 '성경이 말했다.' '그러면 그 증거를 대라.

그게 뭐이 그 해석이 바로 됐다고 네가 말하느냐?' 또 '봐라 성경이 이렇게 하지  안했느냐?' 내나 성경을 성경 가지고 들이대니까 '그거는 우리 하고 통하지  않는다' 해 가지고 이것은 다 인정하지를 안 해 줄라 합니다.

 그래서, 비로소 성경을 이 성구를 다른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이 그것이 비로소  하늘 문에 들어가서 참 신앙의 초보를 걸어갈라고 하는 고 사람입니다. 이제  거게서 또 성령의 감화 감동의, 성령의 감동의 해석하는 것은 이것은 세상과는  거리 멀기 때문에, 일반 그 교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여게서 박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는 이단이라 뭐이다' 하는 것은, 이단이라 하는 것은 일반,  일반 교리화되지 안한 것을 말하니까 이단이라는 그런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겨자씨 비유에 대해서 능력 큰 거 하나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사람이 인력을 가하지 안하고, 그 팔레스틴에 있는 뽕나무는 큰 저는 뭐 한 칠팔  아름 된다고 그렇게 말을 합디다. 책에 보니까 칠팔 아름, 이런 칠팔 아름이 되는  그런 큰 뽕나무가 있대요. 우리 한국에서 뽕나무 해 봤자 뭐 요만밖에 더 됩니까?  거기는 그렇게 뽕나무가 큰 거는, 뽕나무가 제일 크답니다. 그런데 한 일곱  아름이나 여덟 아름 되는 이런 그 뽕나무가 있어. 그 큰 뽕나무가 사람이 손대지  안하고 뽑혀 올라오는 그것이 능력입니다. 그거 기적이오, 큰 능력. 또 그것을  사람 손대지 안하고 '바다까지 옮겨지라' 하니까 바다까지 옮겨지는 그것이 또  능력입니다. 또 그걸 바다 위에 심기우라 하니까 바다 위에 심겨지는 그게  능력이오. 이것이 이 겨자씨 비유에 결말로 나타난 능력입니다.

 이것은 다 초인간적이요 초자연적이요 초역사적이라. 역사에도 이런 일이 없었고,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없었고, 또 과학에도 이런 일이 없었고 이것은 완전히,  이제까지에 있던 일 그것을 가리켜서 자연이라 해 수 있는 것인데 비자연적이라,  이 자연을 다 초월한 초자연적이라 하는 이 세 가지 뽑히는 거 옮겨지는 거  심기워지는 거, 초자연적인 이 세 가지 능력을 가진 것이 겨자씨 믿음의 결과라  하는 것을 여게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뭐 뽕나무 뽑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어서 그 큰 뽕나무를 뽑으며  옮기며 심으면 무슨 거석이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비유로 하셔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신 것이니까 여게는 초인간적인 초자연적인,  초자연적인 그 뽑는 능력과 초자연적으로 옮기는 능력과 초자연적으로 심는 능력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는 해석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것이 죄인 줄  알고 이것을 회개해라고 벌써 뭐 반평생이 지나가도록 기도해도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안하신다,' 우리가 자기에게, 뽑아야 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법도에 거리끼는 그런 건 다 뽑아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법도에  거리끼는 것이 우리 말에도 그 뽑아야 될 것이 많고 우리가 이거 눈에 습성, 또  마음에, 또 이 귀에 습성, 이 수족에, 행동에, 우리 생활, 우리 인품, 우리 욕심,  우리 모든 희로애락, 우리의 지정의 모두 이런 데에서 참 뽑아버려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자신도 그럴 뿐 아니라 자신을 자기가 혹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그 부모네들은 자기는 안 뽑으며 자기 가족들에게 자기  자녀들에게 뽑히기를, 아내는 남편에게 뽑히기를, 남편은 아내에게 뽑히기를 또 이  구역장들은 자기 맡은 식구들에게 뽑히기를 원하는 그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이 뽑는 능력을, 이런 초자연의 뽑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면은 아는 참  보배일 것입니다. 목사들도 자기가 목회하면서 '저 집사에게는 조것을 뽑았으면'  그거 뽑으면 좋을 터인데 그걸 뽑는 능력이 없다 말이오. 자신에게도 자타에게서  우리가 못쓸 것은 다 뽑아 버려야 되는데 못쓸 것을 평생 뽑고자 해도 그것을  뽑지 못하고 탄식하면서 또 뽑지 못하고 그놈의 해독을 또 당하고 또 당하고  이렇게 뽑지 못하는 이 뽑는 능력 없는 것인데, 여게 말하기를 겨자씨 믿음은 이  초자연적인 뽑는 능력이 있다 이랬으니까 이것은 하나 비유로 말씀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나쁜 인질을 뽑는 거, 인간의 그 인간성을 나쁜 거 뽑는 거, 모든  습성을 뽑는 거, 모든 나쁜 것을 다 이거 뽑는 능력 이게 얼마나 보배로운  능력입니까? 이 뽑는 능력.

 자, 뽑는 능력 이것이 황금 만능이라고 하지마는 황금을 귀하게 평가합니까 뽑는  능력을 평가합니까? 뽑는 능력을 황금보다 낫게 평가하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다 원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 초자연적인 뽑는 능력,  이것이 결과적으로 맺어진다. 겨자씨에게는 결과적으로 이 뽑는 초자연의 능력이  맺어진다.

 또 우리가 옮길 것이, 세상에 있는 것을 하늘나라로 다 옮겨야 되겠어.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다 옮겨야 되겠다. 첫째 아담의 것을 다 둘째 아담의 것으로  옮겨야 되겠어. 멸망할 것을 영생할 것으로 다 옮겨야 되겠어.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으로 옮겨야 되겠어. 뭐 옮길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내  자신에 대해서도 옮겨져야 될 것이 많고 또 우리 소망에 대해서도 옮겨져야 할  것이 많고, 우리 몸 밖에 있는 것도 옮겨질 것이 많은데 옮기는 것도 이 초자연의  능력으로 옮기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초자연적인 옮기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의 그 결과의 능력은 이 세 가지가 하나되어 있는 이 능력  옮기는 능력. 또 심으는 거, 우리가 말씀을 전해 가지고 이 말씀을 전했으니까 꼭  꼭 심겨져서 요 사람이 되어져야 되겠다 이라는데 암만 가서 말해야 그것은  날아가 버리고 없습니다. 아무리 교역자가 설교해도 다 날아가 버리고 없어요.

이러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를 심는 거, 진리를 심는 거,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는 거, 모든 하나님의 도대로 생명과 평강과 가치에 속한 것들을 그  속에 하나씩 심어줘서 그것이 자꾸 자라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니까  심으는 이것도 우리가 생각하기를 땅위에 무엇보다 우리는 소망이 있는 사람이요  또 우리는 나쁜 것과 좋은 것으로 두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게서 이리  옮겨져야 될 터이니까 이 급속하다 말이오 급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심으는 능력이 없어 가지고 탄식이 된다 그거요. 자신에게도 자신이  자신에게도 심어도 '주여, 이제는 나는 의뢰하는 요놈을 싹 뽑고 이제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내게 다 온 거, 받은 거, 있는 거는 전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 받지 안한 것은 먼지만한 것도 없다. 하나님께 받지 안한 것은  마귀 그놈이 줘서 사망과 고통과 질병과 모든 망하는 것뿐이지 좋은 거는  하나님께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요것을 자기가 깨닫고 이 피조물들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고 그것들에 힘입어 사는 그놈을 쏙 뽑아 가지고 불에 바짝 태워서  그런 것이 하나도 없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그 뽑는 능력이 없다 말이오. 또 그  사람의 마음을 땅에 소망 가진, 땅에 소망 가진 인간을 땅에 소망에서 옮겨서 뭐  하늘의 소망자로 딱 옮겨 버리면 얼마나 좋겠소? 우리 교회 어떤 장로님 한 분  말해요. 공연히 남의 그 사람한테 그만 그 사람이 하도 사정하니까 도장 한번  찍어 줬다가 그만 전부 톨톨 다 털어서 다 물어도 모자라서 감옥에 갔다 말이오.

그런게 다 하나님의 예정이오, 예정  갔는데 가 가지고 내가 슬슬 소문을 들으니까 자기 부인을 보고 떡 이라니  부인이 있다가 그래 위로한다고 '뭐 우리가 하늘의 것만 바라 보지 땅의 게 뭐  있습니까?' 이라니까 그 장로님이 말하기를 '여보, 당신이 하늘에 소망을 두어서  소망을 바꿨다 하니까 그거 참 정말이요? 그거 바꿨으면 내가 여기 뭐 이래 있는  이까짓 거는 상관도 없소.'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이렇게 옮긴 거, 모든 인생관을  옮겨, 만물관을 옮겨, 존재관을 옮겨, 흥망관을 옮겨, 모든 지식을 바꾸어 옮겨. 이  능력이 이것이 있기를 다 원하고 이 소산을 우리들이 다 원하고 있는 것이라.

목사가 목사노릇 하는 데에 이 초자연의 옮기는 능력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 그만  사람 만나 몇 마디 안 하면 인생관이 바꿔져 버리고, 만물관이 바꿔져 버리고,  자꾸 옮겨서 땅의 것이 하늘의 소망으로 바꾸어진다고 하면은 얼마나 이 가치  있는 것입니까?  그것 또 심기워지는 것도 그것도 한번 심어 놓으면 그것이 없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있는 거, 바다 물위에는 조그매라도 하면 드러누워 드부렁이 뜨지  꿋꿋하게 물위에 심어질 턱이 있습니까? '바다에 심기워졌을 것이요' 말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심는 능력, 겨자씨 믿음에는 이 결과의 심는 초자연적인 심는  능력이 있다. 그러면 하늘나라로 운반해, 나쁜 데서 좋은 데로 옮겨, 또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심어져, 그라면 그 사람에게 복음을 심고 자꾸 이래 설교를  심어 놓으면 이리 되고, 뭐 좋은 거 심으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데 겨자씨 믿음에는 이 초자연의 능력인 이 뽑고 옮기고 심는 능력이 그  결과로 맺어진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예수님께서 '너거가 믿음음  말하지만 믿음이 어떠한 그 가치 있는 보배라는 것을 너희들이 알고 말하느냐?'  하시면저 이것을 들어 말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겨자씨 믿음의 능력 중에  하나요.

 또 하나는 뭣이 하나냐? 하나는 겨자씨 믿음은 겨자씨가 땅에다 심기워지는  것인데 땅에 심기워지면 땅이라 하는 것은 본래 본성이 그렇습니다. 쇠도 오면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이요. 땅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여 가지고 땅이 하는 일은 뭘  합니까? 땅이 뭘하요? 땅이 하는 일은 땅 만들라 하는 것이오. 그것도 저거편  만들라고 야단입니다. 그뭐 쇠도 들어오면 땅 만들라 하고 사람도 들어오면 땅  만들라 하고 들어가면 다 땅 되고 말아요. 흙이 다 되고 말아요.

 이라는데 이제 이 겨자씨 믿음으로 비유한 것은 조그만한 것이지마는 흙이 안  되고 흙을 먹고 자라.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능력입니다. 능력 하나는 흙에는 다  모두 흙에 들어가면 썩어져 버리고 흙이 되는데 흙에게 먹혀져서 흙이 되지  안하고 흙을 먹고 그 자신이 자라요.

 이 겨자씨 믿음은, 흙은 그 세상을 비유한 것인데 세상에 뭐 세상이 세상 만들지  못한 사람이 없어. 땅위에 역사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마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세상 사람 되고 말았지 세상 사람 안 된 사람이 없어. 전부 세상에게 다  먹혀졌지. 이라는데 겨자씨 믿음은 흙에게 먹히지 안하고 흙을 먹고 도로  겨자씨가 자랐어.

 그러면 이 세상에게 전투해서 세상에게 삼켜져서 정복을 당해 가지고 신앙이  세상 안 되고, 세상 안 되고 그 신앙이 세상을 먹고 자라서, 이 겨자씨 믿음은  세상에게 져서 세상화되지 안하고 그 믿음이 도리어 점점 커지고 자라가는  이것이 이제 겨자씨 믿음의 큰 능력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거라.

 그러면 이 겨자씨 믿음은 무슨 능력을 가졌느냐? 흙을 이기고 흙화되지 안하고  겨자씨 그것이 움나고 자라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나무같이 커단하게 자라는 거.

그러면 이 믿음은, 그 믿음은 아무리 세상에서 뭐 공산주의 파란이 오고 또,  이북에 나는 이기선 목사님이 어찌 됐는고 하는, 거기 가는 사람이 있으면 좀  부탁해 물어 봤으면 좋겠는데. 그분이 거게서도 이북을 완전히 삼켰을 것이오.

이기선 목사님이 이북에 박해되는 거 완전히 먹어서 그는 영광스러운 승리를  이루었지 이북에게 삼켜질 사람이 아닙니다.

 이래서, 이 겨자씨 믿음의 위력의 하나는 세상되지 안하고 도리어 세상을  이용해서 자신의 믿음이 자라가는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위력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인데 이 산 믿음은 그 위대한 위력이 뭐이냐 하면은 흙이 되지  아니하고 겨자씨가 흙 먹고 자랐다는 것. 이거 비유요. 이 신앙이 아무리  세상에서 온갖 세상이 다 달라들어 가지고 이래도 세상에게 끌려서 세상화되지  안하고 세상으로 인해서 더 그 신앙이 더 독실해지고 더 뜨거워지고 온전해지는  요것이 겨자씨 믿음의 능력입니다. 요것이 승리의 능력이오.

 그래서 오늘 우리 믿음들도 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나오니까 전부  신사참배에게 다 져서 신사참배의 교회들이 다 돼 버리고, 또 6·25에 그래  인민군의 교회들이 다 돼 버리고, 또 청문회가 오니까 청문회의 교회들이 다 돼  버리고 이래서 오늘 뭐 아까 말 들으니까 누가 말하더라? OO교라고, OO교라  했어? OOO목사님? OO교 OO교 하는 그런 종교가 많습니다. 이제는 말세에 막  나와.

 OO교라 하는 교가 왔는데 그것이 이 예수교로 가지고, 교회도 있대요. 그거  예배당도 있고 이런데 이 사람들이 거게서 묘한 말을 자꾸 써 가지고 책을  주니까 이거 뭐 교회에 청년들이 그 책을 읽어보니까 달콤하게 좋아서 모두  야단이랍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 자녀들이 대학 공부하러 보내니까 공부는 안  하고 그 책을 가져와 가지고 거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OO교의, 속으로 OO교의  사람이 점점 돼 간다 그거요. 좋습니다. 할렐루야.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를 가지지  안하면 세상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속화되지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종다수  가결의 행정을 가지고는 세상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천인 만인이 다 달라들어도  성구가 보증하지 안하면 안 된다. 성구에서 요 진리에서 결정된다 요것이 생명  있는 행정입니다. 뭣 때문에 부끄러워해? 간판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이 도에는  상관이 없어. 받을 것도 없고 저는 공연히 바람만 맞아. 손해보지 말고 얼른  피난을 가라고. 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자기가 그대로 지키면 여게서 나오는  것이 막 생수가 흘러나오니까 아무리 옆에서 때려봤자, 때려봤자, 이가 그까짓 거  암만 뜯어먹어 봐도 자꾸 살이 찌니까 뜯어먹어도 내가 살은 자꾸 크고 자꾸  자라지는 거 마찬가지로 그 있거나 말거나 그거 상관도 없지마는 공연히 혜택은  못 보고 자꾸 손해만 보니까 아예 간판도 고쳐 버리고 가라고. 가는 게 나아.

그라면, 독특한 총공회 교리와 신조, 이라면 지금 비쭉거려. '총공회 교리' 말만  들어도 비쭉비쭉 비쭉거리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비쭉거리지 안하도록 가.

비쭉거려도 언젠간가 한번은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라. 제것을 좋아해.

 이래 가지고 이 총공회 교리 교리 이라는데 어떤 사람은 밥통에 붙들려서,  장로들이 거석하니까 장로들 비위 맞추느라고 '이 교리와 신조가 옳기는 옳지마는  그것을 받아서 그대로 행하지는 못하겠다.' 어떤 사람은 마누라 비위 맞추느라고  못 하고, 어떤 사람은 식구들 비위 맞추느라고 못 하고, 어떤 사람은 교인들 비위  맞추느라고 못 하고 이러니까 신앙은 고독입니다. 외로와도, 아무리 좋지마는  올바른 교리와 신조는 양보 없다. 못 한다. 요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라.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것을 한번 대구 집회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말했는데  이라니까 '어데 할 말이 없어 자꾸 그 말만 자꾸 하고 있을까?' 아브라함의 신앙.

자기보다 하나님을, 인간의 모든 공론보다 하나님의 뜻을, 땅위에 있는 모든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 이 셋이 가치가 적소? 요것도 가지면 요것만  가지면 잘 살 수 있어. 억억만금도 더 천천 금은보다 나아. 내가 뭣하다 그래  갔지? OO교? OO교를 말하는데 '네 행한 대로 그 열매를 네가 먹으리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의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두리라. 네가 육체로  심으면 썩어진 것 거두고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을 거두리라. 네가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갈라고 애를 써도 그 다음 이제는 그것이 넓은 길로 안 간다고  반대를 하고 이렇게 야단을 지기면서 가니까 억지로 질질 끌려오는데 네가 넓은  길을 택했으니까 네 밑에 후손은 전부 넓은 길로 갈 줄 알아라! 네 행위의 열매를  네가 먹으리라! 정신 차려요.

 오늘 교역자가 성경 말씀에 하나도 양보하지 안하고, 그 행하는 거는 문제  아니라. 행하는 거는 다 행하는 걸 말한 게 아니라. 행하지 안해도 '이게 옳다  이게 바르다. 이 길 가야 된다.' 하는 자는 제가 행하지 못 했으면 지금 행하는  노력을 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그거는 정죄받지 안해요. 이 사람을, 옳은 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무슨 상을 받아요? 선지자상 받아. 옳게 행한 사람을  자기가 옳게 행하지 못해도 그를 찬성하면 무슨 상 받아요? 의인의 상받아요.

성경에 빠진 게 없이 우리에게 딱딱 보증서로 율법으로 딱 기록해 놓고 있어.

이게 생명의 법입니다. 이래서, 겨자씨 믿음의 한 가지 큰 능력은 결과의 능력인데  겨자씨 믿음을 가지게 되면은 이 초자연의 뽑는 능력, 옮기는 능력, 심으는 능력이  이것이 그 열매로 맺어지고, 또 하나 능력은 겨자씨 믿음은 땅에다 심었는데 땅은  땅 만들라고 백방으로 노력하는데 세상은 세상 만들라고 백방으로 노력하요.

자기가 그 가정에 제일 좀 잘 믿으면은 자기만 못한 것들은 전부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막 끌어서 세상에 들어붙일라고 들이 끌어댑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마누라 비위 맞추고 마누라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진리  양보해야지! 교리와 신조를 양보해야지. 신앙 신앙 해도 바로 정평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어데다 그 말 했어? 마태복음 10장에 옳은 것 틀린 것  시비할때에 그때 거기다가 딱 붙여 놨어. 옳은 줄 알아도, 롯이 뭐이야? 롯이  그거야 옳은 줄을 알지마는 가족들이 자꾸 마누라가 그랬지, 또 자녀들이 그랬지,  종업자들이 다 그랬지, 이라니까 그들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 섭섭하면 그거  다 좋아하는데, 하나님 한 분만 섭섭하게 하면 그거 다 좋아하는데. 하나님 한 분  좋게 할라 하면 그거 전부가 다 싫어하는데. 이래 가지고 마누라 대접 잘했소.

자녀 대접 잘했소. 그것이 마누라를 소금 기둥으로 만들었어! 오늘도 그날이라!  자기 아내가 이세벨 돼 있는 자들 많아. 이세벨은 아합 왕을 꼬와 가지고  멸망시켰어. 그래 가지고 저도 비참했어. 아합 왕이 그 말 듣지 안하고 바로  했으면 저도 좋고 저거 아내 이세벨도 다 좋아졌지. 어리석지 말아요. 어떤 것  때문에도 양심을 옮기면 안 됩니다. 어떤 것 때문에도 교리와 신조를 옮기면 안  됩니다. 어떤 데라도 진리에 설복을 당해서 양보되고 변질돼 나가면 안 됩니다.

그것이 겨자씨 믿음이 아니라. 흙이 되는 거라.

 아브라함은 몰인정하고 그 뭐라고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 한 분 비위 맞출라고  이렇게 나갔지.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 한 분 비위 맞출라고 이렇게 나갔지.

나가니까 그뭐 가족들은 다 배척하고 나가는 그 길이었지마는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니까 사라도 성녀라. 네가 사라의 딸이 되리라 여인 쳐놓고는 사라를 일등  인물로서 하나님이 평가해 놨습니다. '네가 사라의 딸이 되리라' 표본 신앙을  사라로 말했어. 아들은 성자라. 이삭이라. 롯은 짜다라 비위 맞춰서 갔지마는 딸  둘 그거는 잡년이 됐지, 역사에도 부끄러운 잡년이 됐지. 애지중지 비위  맞추더니마는 롯도 비참하게 가련하게 됐지. 그 이상 더 가련하게 된 것이 뭐  있겠소?  이 겨자씨 믿음이 장점은 뭐이냐 하면은 흙이 되지 안하고 흙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 비유는, 세상화돼서 세상화되어 속화되지 안하고 세상을 먹고 요  겨자씨가 자랐어. 믿음이 자랐어. 서울에 있는 사람들 다, 다른 이는 말하지  안해요. '우리 총공회에 있는 교역자들은 서울 가 가지고 전부 속화됐다' 내가  단언합니다. 듣기 싫지요. 단언합니다. 절대로 속화됐습니다. 속화됐다 하니까  가슴을 치면서 '정말로 속화됐나?' 하고 울면서 거게서 벗어날라고 애를 쓰면  다행이지마는 '속화됐어?' 비쭉거리고 네가 돌아가 봐라. 어데까지 돌아갈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데까지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 봤자 돌아갈 데가 없어.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오. 옳은 것도 하나뿐이시오. 옳은 것 하나지 김가 옳은 것  이가 옳은 것 다른 줄 압니까? 옳은 거면 김가 옳은 것도 되고 이가 옳은 것도  되고 다 옳은 게 돼.

 이상해. 우리 교역자들은, 우리 총공회 진영에 있는 교역자들은 그만 서울에  가니까 영 그만 속화되고 변질이 돼 버려. 그 서울에 속화 안 되고 변질 안 되는  사람들 내가 몇 사람 보는데 그거는 세상 경험 다 해서 오만 거 다 보니까,  솔로몬 모양으로 다 보니까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 수고하는 것이 무슨 가치 있노?'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이제 그런 세상에  안 돌아가. 이제 처음 가 본 사람은 '아이구야, 이렇게 좋으나! 이렇구나.' 그래  가지고 다 그만 완전히 눈이 호뜩 해 가지고 그만 서울화돼 버렸어. 세상화돼  버렸다.

' 미국에 가면, 미국 가 삼 년 되면 사람 다 버린다 이라는데 미국 간 사람들 오래  있어도 미국화되지 안한 사람들 있어. 미국 가도 미국화 안 되는 사람들 있어. 그  사람들은 다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 미국 가도 변질 안 되는, 미국에게 변질 안  되는 그거라야 그거 좀 생명이 붙어 있는가 하지 미국 가면 미국에 변질 또  불란서 파리나 가 봤으면 눈이 호뜩 해서 얼마나 변해질갈지?  그래, 이 겨자씨 믿음은 속화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장점입니다. 세상화되지 않는  것이 장점이오. 왜 세상화 안 됩니까? 안 되는 이유는 겨자씨는 살았기 때문에  그래. 생명이 없으면 겨자씨 백 배 큰, 생명 없는 그 떡 뭉텅이를 말이지요, 가루  뭉텅이를 막 이렇게 짚동만치 뭉쳐 놔도 생명이 없으면 흙 속에 들어가면 잠시  후면 흙 되고 맙니다. 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됐어 생명이 뭐인가? 하나님과  연결인데 연결이 연결되는 믿음인데 그 몇 가지로 연결돼요?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으로 연결되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결돼요. 말씀을 알고, 믿음은  말씀을 알고 그 다음에 인정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행하면 되지 안해요? 말씀을  아는데 그 말씀 속에 뭐이 들어서 그렇게 썩지 안하고 세상을 먹고 자라가요? 그  속에 뭐이 있어서? 자, 그거 자기가 말씀을 알고 보니까 자꾸 생각해 보니 그  말씀 속에 뭣 들었어? 예수님의 피가 들었고, 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시고,  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계시고,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계시고 이래 놓으니까  보기는 시시하지마는, 보기는 시시하지마는 그 사람이 아는 지식 속에. 지식 속에  이 예수님의 완성의 대속이 있지, 또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지, 또 전지 전능의 능력이 계시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있지 이걸 다 본  사람이 땅위에 취할 게 뭐 이야? 바울이 말하기를 그전에 내가 모두 다 가치로  여겼던, 귀하게 여겼던 것을 이제는 다 배설물과 같이 다 버렸다. 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것, 취해지는 것, 이루어지는 것 요것만이 가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게 말했어.

 그러기에 자기가 주관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믿는다는 거, 그래 신앙을 주관적  신앙을 가질라고 하지 안하고 객관 신앙을 가질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 아는 데에도 자꾸 이 안에 있는 예수님의 대속을 알라고, 또 그 안에 대속으로  말미암아 연결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자기가 알라고, 또 그분의 그 지극히  크심을 알라고, 또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한 지극히 큰 무한한 충만한 은혜가 있는  것을 알라고 이렇게 해서, 바울이 말하기는 늘 힘쓰는 거는, 자기가 지금 증거하는  것은 뭣 때문에 고민하느냐? 성신의 감화와 능력이, 그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  사람들의 고 모든 알고 믿는 그것이 인간의 그 선에서 있지 안하고 그 선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 와 가지고 있어서 능력의 그 신앙이 되도록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자기가 증거하면서 뭐 인간들의 기뻐하거나 말거나 뭐  그것은 둘째요 껍데기 중에 껍데기요. 증거하는데 내가 요거 증거하는 거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하나님 보면서 내가 총을 맞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 증거해! 내가 증거하는 거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내가 확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썩지 안하고 속화되지 안하는 요것은 뭐이냐? 그  속에 그 지식에 알맹이가 있어야 돼, 알맹이가.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그냥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으로서 다를 삼지 안하고 이 말씀 안에 무엇이  있는가 그 속에 알맹이를 살펴. 그거는 자꾸 생각으로 자꾸 그래. 그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라. 자꾸 생각해 봐요. 하나님의 말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요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인데 요 뜻에는 뭐이 들어 있노?' 자꾸 생각해 봐요.

 그러면 자기 현실에 하나님이 '요렇게 하라' 하는 하나님의 뜻 그 속에,  그래, 자기 현실에 자, 겨자씨 믿음은, 겨자씨 믿음은 믿음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믿음, 보편적인 믿음 이런 믿음이 있고 기초적인 믿음 이런 믿음이 있는데 이  믿음은 겨자씨 믿음은 기본구원에 관한 믿음이요,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이요,  OOO권사님? 예? 되나 안 되나 낙심을 하고 그만 머리를 숙여? 겨자씨 믿음은  기본구원에 관한 믿음이요,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이요? 제일 똑똑하고 잘 아는데  그만 말을 못 하네?  우리 믿음도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인지 기본구원에 관한 믿음인지 구별을 해야  됩니다. 모든 성구가 많이 있는데 그 성구는, 이 성구는 기본구원에 관한 성구냐  건설구원에 관한 성구냐 이것을 구별해야 되지 건설구원에 관한 성구를 이것을  기본구원에 관한 성구로 되바꿔 놓으면 저는 암만 해도 그 성경을 해결 못  합니다. 해석 못 합니다. 또 기본구원에 관한 그 성구가 있는데 기본구원에 관한  성구를 건설구원에다가 맞춰 놓으니까 전부 놀고 먹기로 다 돼 버립니다. 힘쓸  필요가 없어. 요만한 범위다 두고 하는 말씀을 범위를 잘못 잡아 가지고 이런  범위로 두고 말한 것으로 알면 다 헛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거게도 각도가 있고  범위가 있고 대상이 있고 이용 소용처가 있고 거게 해당처가 다 따로 있어요.

 겨자씨 믿음은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입니다. 건설구원에 관한 믿음이니까 이  믿음은 어데 있어요? 어데 들어 있습니까, 이 믿음은? 현실에 담겨 있습니다.

딴데 있지 안해요.

 그래. 이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 이것을 구별하지도 못하고 다 이라니까 이거  뒤맞추니까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믿는 자는 다 구원 얻으리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 얻으리라' 이거 다 기본구원에 속한 말씀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건설구원에다가 들이대 놓으니까 전부 노라리라, 다 노라리.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그러니 네가 죽었다.' 이거 다  건설구원에 하신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네가 해라.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 사랑을 네몸같이 해라.'  하는 이거 무슨 구원에 관한 말씀이요?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이것을  기본구원에 말하면 어찌 돼요?  이러니까 이거는 좀 정신을 차렸으면, 자기가 몰라도 건설구원 기본구원이라,  성경을 정말로, 성경을 정말로 참말로 권위 있게 알고 성경을 여게 생사가 여기  달렸다 하는 것을 알고 봤으면은 아 그 말 척 들으면 '야, 건설구원과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따로 있구나.' 깜짝 놀랠 터인데 '뭐 구원이면 구원이지 무슨 구원을  주 쪼개 가지고 뭐 건설구원이니 기본구원이니 이래 갈라뜨려 가지고 말하는가?'  그 사람이 성경을 보는 사람이요? 본 사람 아니오! 예수 믿는 사람 아니라! 암만  교회는 다녀도 성경은 무시한 사람이라.

 성경대로 살라 하면은 기본구원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을 건설구원에 갖다 쓰면 안 되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을  기본구원에 갖다 쓰면 안 되기 때문에 이제 고민하는 그런 것이 좀 있을 건데  그거 들어도 반대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좀 인제 뭐 나는 잔잔하는가 어찌  모르겠어. 지금은 좀 세상이 좀 잔잔해졌는가?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이래 가지고  욕 많이 했는데 지금은 좀 어때 좀 세상이 좀 잔잔해졌어요 어째요? 지금도 계속  욕하고 있어요?  우리 신앙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 겨자씨 신앙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신앙의 요소가 세 가지인데 곧 첫째 '알고' 하는 그 아는 데, 아는 것은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거라.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이래도 저래도 되고 마귀란 놈은 다 이래 해라 저래 해라  막 복잡하게, 고 옳은 데에 명중하지 못하도록 삐뚤어지게 할라고 백방으로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서 우리를 삐뚤어지게 할라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할라고 애를 써,  그럴 때에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그 안에 다 들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기 다 들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과 모든 은혜 충만이 거기 다 들었다. 온 우주에  억억억 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 거 들었다. 이러니까 땅에 무엇을 보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거기서 미혹받을 것이 뭐 있어? 위협을 준다고?  위협을 줘도 미혹받지 안해요. 왜? 위협 주는 걸 그걸 그것을 주권해서  지금이라도 딱 누르면은 코르르 팩 하면 쭉 뻐드러져 송장이 될 터인데 그까짓  거 뭐 두려워할 게 뭐 있어야지? 이렇게 하나님, 현실에 담거 있는 하나님의 뜻이  위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 하나님의 뜻을 잡기가 어려워.

 이거 찾는 방법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네가  구별하도록 해라. 찾도록 해라' 했는데 그라는 데는 자본이 몇 가지, 순서가 몇  가지, 자본 몇 가지 들어야 돼요? 몇 가지? 세 가지. '몸으로 산 제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뭣이라 했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받아', 옳지 변화받아 그거야,  변화받아. 변화받아. 변화받은 마음은 뭐인데? 일편단심의 그맘이라 말이오.

일편단심.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일편단심만 되면은 그라면 그 세 가지만  자본을 턱 넣어 놓고 나면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딱 알아내.

 그라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잡아서 찾았으면 그 사람은 뭘 잡은 것이야?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것 삼은 것이요, 삼위일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신  사람이요, 전지 전능을 모신 사람이요, 하나님의 충만을 다 모셨기 때문에 이제  인정하면 그만 자기것 다 됐어. 그라고 난 다음에 뭐해? 먹으면 돼요. 입으면 돼.

걸어가면 돼요. 쓰면 돼요, 그만. 실상이 그만 다 돼 버렸어. 이것이 속에 있어야  세상을 이기지. 이러기 때문에 네가 너를 시험하여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네가 너를 시험해서 확정을 지우라. 고린도후서 l3장에 말씀해 놨어. 확정을  지우라. 이러니까 '내가 믿는다는 것이 참말로 믿는 것이가 안 믿는 것이가?' 산  믿음의 증거는 첫째가 뭐이요? 세상을 이기요. 흙이 안 돼.

 산 믿음의 증거는 첫째가 속화되지 안해요. 세상 따라가지 안해요. 요새는  어떻게 뭐 능란한지 '직접 가면 안 되니까 슬슬 둘러가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게  저를 믿는 교만한 자라. 대번에 단행을 해도 이거 못 하고 마는데 '내가 슬슬  둘러서 목적을 두고 가면 되지' 야 이놈아 둘러가다가 너는 어느 모통이서  죽을란지 어느 모퉁이서 다 변질될란지 모른다.

 '이거 정면 충돌이 되면, 이 아내하고 정면 충돌이 되면 안되니까 내가 속으로만  마음 가지고 슬슬 둘러 하지.' 네까짓 게 너를 하나님으로 믿는구나. 네가 당장에  할 일은 즉시 하라 했는데 이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믿어도 될까 말까 하는  것인데, 이래 가지고 '다 좋도록 슬슬 양보해 가면서 그렇게 유유하게 행해야  되지', 그자는 다 만 명이면 만 명 다 패전자입니다. 기회는 다시 오는 것이  아니오. 여게서 모두 다 작정해. 자기를, 자기 믿음을 살펴봐요. 자기 믿음이  정말로 뭐 있는가?  다른 사람이 말할 때에 조선 교회가 전부 다 쓰러져서 뭐 총회장 노회장 뭐  장자 붙은 거 다 죽어 버리고 다 이와같이 신사참배 가 가지고 천조대신  이름으로 세례도 받고 전부 다 이 꼬라지 다 했는데 그때에 신사참배 안 할라고  그를 대항해서 나간다는 것이 그것이 들을 때에 그뭐 참 그거는 능력 있는 믿음,  이걸 부러워하지도 안하고 예사로 남의 말처럼 상관없는 말로 듣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너는 하늘나라가 네가 상관없다 그 말이요, 말 신자이기 때문에. 참  진짜 그리스도는 너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 말이오. 한번 생각해 보지도 안해.

 내 자랑 같아서, 자꾸 이거 말하니까 여러분들 때문에 말해. 내가 여러분들  때문에 내가, 미치괭이가 돼. 뭐이냐 하면 자꾸 내가 이 말 하니까 제 자랑쟁이  하는 거, 제 자랑쟁이는 미치괭이 아니요? 성경에 말하지 안했어? '내가 어리석은  말 하고 미친 말을 하나 너거 때문에 한다' 이랬어.

 위천교회 있을 때에 인민군 속에서 그때 사십 일을 계속해서 부흥 사경회를  했는데 새벽, 오전, 밤 이 세 시간씩을 했는데 그때 인민군 점령지라. 이랬는데  이래 놓으니까 이 모두 다 '인민군은 뭐 무서운 게 없다. 뭐 공습이 무섭다.' 모두  이렇게 생각했어.

 이런데 마지막 아침에 이제는 내가 선포하기를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이 환난을  이길 만한 모든 말씀을 다 증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줄 것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이나 한번 읽고 말지요.' 이래 떡  거석하고 산상보훈을 떡 읽으면서 읽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설교를 시작하니까  뭐이 와당탕 거리더니마는 보니까 인민군이 문이 서인데 그 세 군데 딱 포위해  가지고 총을 쾅 놓으면서 이래 고함을 지르니까 그래 뭐 그 우당탕거려. 그래도  하나님이 그때 내게 은혜를 주셔서 '억' 이래 하지 안했어. 그 뭐인가 나는  예사롭게 생각하고 나는, 그런지 몰랐지요.

 몰라도 이랬는데, 그래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 빨리 나오라고. 또 그런데 나는 또  그때 '예배보는데 거기 빨리 앉아!' 이랬다 말이오. 이라니까 퍽 주저앉아, 또.

그거 참 하나님의 권능은 무서워, 이라니까 좀 있으니까 자꾸 설교하고 이라고  있으니까 OOO목사님이 그때 집사인데 떡 어정어정 저 기어들어와요, 저 뒤에서  하도 조아대니까. '들어가서 안 데리고 나오나? 안 끌고 나오나? 이놈 죽인다.'  이래 쌓아니까 아마 왔던 모양이라. 저 들어와. 들어오는 걸 내가 고함을 질렀어.

어데라고 들어오느냐고, 안 물러가느냐고 고함을 또 지르니까 할 수 없어서  그래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니까 인민군보다 더 겁이 나니까 뒤로 물러나가.

물러나가니 또 거기서 오라고 고함 질러. 네가 있다가 또 고함을 질렀어. '앉아!'  이라니까 또 턱 앉으며 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한 말 해. 저거도 저거  정신이 아니라. '우리도 예배보러 왔습니다.' 이래. 이라더니마는 나중에, 다 하고  이제 주기도문으로 정식을, 그때는 정식으로 참 예배 순서를 정식을 다 맞출라고  마지막 주기도문을 이렇게 이래 하니까 가만히 있어. 그래 주기도문 떡 하고 나서  마치고 나서 그래 나갔어. 그것도 그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데 그거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지.

 그래 가자 하는데 가자고. 이래 내가 앞에 가니까 어데로 가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택으로 가자 해. 사택으로 가 가지고 그래 좀 저 이 마루에 좀 앉으라고  이래 하니까 그때사 오더니만 이래 둘러보더니마는 그 존경을 해요. '예, 좋습니다.

이제 우리하고 같이 갑시다.' 그때 존경하는 말해. 이제 가자 하며 저거가 앞서  가고 나를 따라오라 해. 그동안에는 나를 앞세우고 가더니마는. 설렁설렁  따라가면서 그래 예수 믿는 말을 슬슬 이래 하니까 떡 가더니마는 중간에 가다가,  나는 이제는 구덩이 파고 들어가라 하는 건 줄 알고 이래 떨렁떨렁 따라가니까  그래 말해. '가십시오. 순수한 예수를 믿으십시오.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라면서 가라 해.

 그게 썩지 안하는 겨자씨 믿음인데 그때는 겨자씨 믿음, 내가 앞으로는 할까  싶으지 안해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지금 기도도 못 하지 부산 와 가지고서 뭐  엉망이 됐어. 이거, 다른 사람은 보고 교인들이 많아지니까 목회 성공이라  하지마는 영 엉망이 됐어. 이러니까 기도도 못 하지 성경 다 잊어버렸어.

이러니까 성경을 그래 그라면 성구를 어데 있는지도 말을, 몰라요. 다 잊어버려  버리고. 그 도리만 알지.

 그래, 그게 뭐이냐? 그것이 속에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하니까 그 속에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 이 능력이 역사해서 그랬지 내 힘으로 그때 뭐 담대해서  그래 안 했어.

 그래 놓으니까 오니까 막 뭐 다 도망, 뭐 창을 넘고 다 도망 다 가 버리고 한  대여섯이 있는 사람은 인제 죽었다고, 저거 조사 죽었다고 막 울고 통곡이 나서  야단이 났어. 그래 나는 그때 하나도 두려운 것을 하나도 여기지 안했어. 모두  기쁘고 즐겁고 그 사람들도 사랑스럽고 복음 전하고.

 그라며 우리 예배당에는 한번 보니까 어데 갔다 오니까 풍금을 누가 타는데  인민군이 타. 그래 가지고 내가 야단을 치고 당장에 내가 그 풍금을 뿌숴 버렸어.

풍금을 뿌숴서 딱 똘똘 뭉쳐서 다 재놔 버리고 '이거는 성구이기 때문에 못 탄다'  예배당에 와서 침범 못 했어요. 예배당 다 침범 다 했는데 거창은 예배당을 침범  못 했습니다. 그거 다 그들이 뭐 사무실로 다 쓰고 뭐 이래 저래 했지마는 거창은  그렇게 교회를 침범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와서 교회 와서  자기도 하고 했는데 우리 교회는 거기 와서 뭐 누워자거나 그짓 못했어. 인제  그거 그 밑에 방 하나 있는 그거는, '그거야 뭐 우리가 자는 방이니까 너거 와  잘라면 자고 이래 해라' 했지마는 교회 안에는 침범 못 했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이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이니까 생명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연결이니까 하나님에 연결된 내 움직임이라야 되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한 움직임에는 아무 힘이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내가 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시험해서 확정을 해라.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린 믿음은 아니다. 나는 나 혼자 주관으로 믿는  믿음이다.' 이렇게 해서 이것을 똑똑히 깨닫고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가지고 확정하라 하는데 요새 고 시험해 가지고 확정하는 사람이 없어. 자기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지 같이 안 하는지, 절대의 능력이 같이 해서  절대적인 신앙인지 이것에 대해서 한번 조사해 보고 시험해 볼라고 하지도  안해요. 어짜든지 쉬운 것만 다 좋아해요. 쉬운 것만.

 쉬운 것만 좋아하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막 이단을 다 주 댈 거야. 이단을 막  들이 풀어 대 가지고 이래서 이단의 그 해독을 요한계시록 l6장에 보면은 '막  몸에 헌데가 나 가지고 만신창이 된다' 했는데 그거 육신의 만신창 아니오. 요새  이십세기의 과학에서 얼마나 약이 좋소? 페니실린 주사만 맞으면 안 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의 신앙 인격의 만신창을 가리켜 말합니다. 신앙 인격의 만신창, 자기  신앙 생활의 만신창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라. 자기가 목회하고 있는 모든  목회에 만신창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는 거라.

 그러기에 요 까다롭다고 하지마는 요 복음이 아니면 이십세기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십세기의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요렇기 때문에 '믿으면 되지'  믿사옵나이다가 아니라. 믿음은 성경 말씀을 그 현실에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그 뜻을 찾는 그것이, 다른 말씀은 소용없고 그 현실에 해당되는 그  말씀을 자기가 찾고 그 말씀을 찾아서 그 속에 알맹이가 있어야 돼. 그래야 생명  있는 믿음이라. 알맹이가 보배로운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서 찾을라고 산 제사 되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한 마음을 누가 가지기 힘드는 그런 일을 가지겠는가? 저거는 날마다  그래 해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데 아침마다 징책을 보고 이렇게 만날  발발발발 떨면서 이렇게 사는 일을 누가 하겠어? 땅에 썩지 안하는, 세상에서  썩어서 세상되지 안하는, 세상되지 안 하는 건 속화되지 않는다 그 말이오.

세상되지 안하는 이 신앙, 썩지 않는 신앙 이 신앙은 속에 알맹이가 있어야  됩니다. 알맹이가 뭣이 있어야 돼요? 알맹이 뭐? 자, 첫째? 피, 또 둘째? 삼위일체  하나님 또 셋째? 하나님의 전지 전능, 또 넷째?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요것이 요  현실 하나님의 뜻 요 속에 들었다!  이래서, '하나님의 뜻은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이  하나님의 뜻에 들어 있고 우리의 모든 멸망이 하나님 뜻을 어기는 데 들어  있습니다. 현실에 하나님의 뜻에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지마는 기도하는  것이 소리가 좋아서 그래 기도하는 줄 알지 거게 대해서 가치를 느끼지 안해.

여러분들!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 뜻 거게 좋은 것이 다 들었습니다. 전능이  들었어. 만능이 들었어. 하나님의 충만이 다 들었어. 요렇게 믿는 것이 총공회  교리와 신조라! 요걸 안 믿으면 안 돼! 공연히 그냥 총공회에 붙기만 붙어 있으면  되는 줄 알아요? 아니야. 이것이 능력이라.

 그 다음에 한 가지 능력 남은 거는 뭐야? '뽕나무야 뽑혀라' 이 미친 사람  아니가? 여러 아름 되는 뽕나무를 가만있는데 '뽕나무야 뽑혀라?'그 말이 된  말이요? 이치에 맞소? 역사에 있소? 한번이라도 그런 일이 있소? 온 세상이  부인하는 것이지마는 단행이라! '뽑혀라!' 온 세상이 부인하는 비과학적이요  비합리적이요 비역사적이요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뜻이면 단행하는 그것이  능력이라. '뽑혀라! 옮겨 져라! 심기워져라!' 이렇게 명하는 것이 저희의 할 일  인데 이렇게 얼토당토 안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면 단행합니다. 이 단행할  수 있는 이게 능력이라. 온 세상이 반대하고 부인해도 단행이라. '이 사람이  미쳤나. 뭐?' 아무리 온 세상이 부인해도 부인하는 그 사실을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 뜻대로 단행을 합니다. 그 뜻대로 단행.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으면은 그 뜻을 이행하는 데는 온 세상과 적이 되고 자기  생명이 다 달아나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런 게 상관없이 단행할 수 있는  이것이 겨자씨 믿음의 능력입니다. 여게 세 가지 능력이 들어 있어. 겨자씨  믿음에 세 가지 능력. 이것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어데 담겨  있어요? 금그릇에 담겨 있어요 어데 담겨 있어요, 겨자씨 믿음은 어데 담겨  있어요? (현실) 현실에 담겨 있어, 현실에. 현실에 담겼으면 현실에 무슨 껍데기  속에 들었어? 현실에 무슨 껍데기 속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었어.

말씀 속에. 거게 뭣 들었는데? 예수님의 피가 들었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들었고,  지극히 큰 전지 전능이 들었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은혜와 축복이 그 속에 다  들어 있어.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래 하라 하니까 그거 뭐 세상이 반대하는, 반대하는  세력보다도, 역사에 반대인데. 역사에 비역사적 인데. 역사적이라 말은  비세상적이요 모든 비세월적이라 그 말이오. 이래도 그 속에 큰 걸, 세상보다 큰  걸 알았기 때문에 온 세상이 틀렸다 해도 이분이 맞다 하니까 그때에 뭐이냐?  이분을, 이분을 인정하고 따르느냐, 이거 따르느냐? 그 현실에서 하나님 영접이냐  세상 영접이냐 요게 판정난다 그거요. 판정나.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배척도  현실에서 배척되고 하나님 영접도 현실에서 영접되는 것이지 믿나 안 믿나 하는  것이 현실에서 판정나요. 핑계할 수가 없어.

 신사참배에 죽인다 하니까 다 굴한 그것이 뭘 하나님 믿는 줄을 알고? 믿는 줄  아는 그거니까 희망이 없다 그 말이요. '나는 믿음이 없었다. 나는 안 믿었다. 나는  하나님 배반했다. 하나님 배반한, 이거 이렇게 신사하배 한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배반한 일이다.'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고려 진영이었습니다. 신사참배로  갈라졌어. 이거는 뭐 사실은 교리 신조보다도. 신사참배로. 행정적으로 갈라졌다  그 말이오. '이거 신사참배 한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이거는 큰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이 사람들이 고신이 됐고, '그거 죄는 죄지마는 그걸  가지고 그렇게 뭐 그래 쌓을 게 뭐 있느냐?' 하는 것이 합동측 됐고, '신사참배  그걸 뭐 그게 국가 의식이면 국가 의식이지 그걸 꼭 우상 숭배라고 그렇게 할 게  뭐 있겠느냐?' 하는 것이 칼측 기장이 됐던 것입니다. 그래 갈라졌지.

 지금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라는 이 회가 누가 말하는데 뭐 칠백여 교파가 됐다  하더나, 칠백여 교파.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속에 속으로는 칠백여 교파인데 이름은  전부 대한 예수교 그 하나뿐이라. 이름은 남의 이름 가지고 그 속에서 무슨  장난쳐도, 그저 커다란 이름 속에서 어떤 장난쳐도 제가 매맞지 않기 위해, 같이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 지금 가명을 쓰고 있는 거라, 가명을. 맞아, 가명 쓰고 있는  게 맞아요?  우리가 '예수교' 하는 것은 이것은 도성인신하신 그분의 도를 찾아서 모든 종교  다 있어도 예수교라는 거는 사활의 대속,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그 사람이  지금 다른 종교자인데 '너거 교주도 죽었다가 살아나거라 그라면 내가 좀 소망을  가지고 가 보겠다'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누가 있어? 도성인신, 사활의 대속. 영원  전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이 목적 정하시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정, 창조, 보존 섭리, 도성인신, 대속, 중생 여게까지 왔기 때문에 이 도가 참  길인 것을 믿고 나가는 것이 예수교입니다. 그래 우리가 예수교를 택했어. 뭐  불교나 다른 유교나 뭐 그런 것 택하지 안하고 예수교 택한 이유가 하늘에서  내려온 근본의 도를 찾기 위해서 예수교를 택했어.

 그 예수교면 예수교가 많은데 예수교 가운데도 보니까 뭐 감리교, 성결교 뭐  안식교, 또 침례교, 뭐 그 무슨 무슨 교 무슨 교 꽉 찼는데 그 중에 그래도 장로교  교리가 제일 옳고 바르기 때문에 우리는 장로교 교리를 택한 것입니다. 이래서  장로교요, '장로회'  장로회는 칼빈주의를 믿어. 감리교 교리와 장로교 교리와 다르요. 감리교는  칼빈주의 교리가 아니오. 성결교도 아니오. 침례교도 아니오. 그러니까 예수교  가운데에는 이 장로교가 제일 교리와 신조가 바르다 해서 장로교 장로회를  우리가 우리 교파로 우리 신앙의 근거로 삼아서 믿어요.

 이런데 장로교 가운데서, 장로로 가운데에서 이제 모든 교리와 신조는 우리와 다  맞는데 우리가 독특히 깨달은 그 행정에 대해서는 다수 가결이 아니고 진리  가결이라는 요 행정 때문에 이제 거게서 이색이 졌고 또 성경대로 뭐 예배당  소송 문제니 이런 것 때문에 시비가 나 가지고 그리 됐고, 그거 찍해야 교리  신조로서는 뚜렷한 것은 그것이고 그저 그 다음에 암암리에서 '저 별스럽게 저런  소리 한다' 해 가지고 이단으로 정죄받은 일이 그때도 많이 있었어요.

 많이 있었는데 이래 가지고 아무새도 거게서 그러니까 나는 거게서 자꾸 '이래  믿어야 된다' 하고 거기서 또 '저래 믿어야 된다' 하니까 그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어. 그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서 아무래도 저거는 두면 저게 지금 뭐 염병  모양으로 자꾸 물을 들여트리고 자꾸 이래 된다고 자꾸 이래 주장을 하고  이러니까 '저 안 되겠으니까 저거 치리를 해야 되겠다' 치리 하라 하니 다른 것  없으니까 '이동을 해라. 딴데로 이동해라. 거게서 딴데로 이동해라.' '이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면 이동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동할 수 없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나는 뭘로 알 것이 아니라 온 교인들-그때 한 삼백 명 됐어요  -삼백 명이 하나도 없이 전부 다 이동하는 것 반대하면 있는 게 뜻인 줄 알고  일곱 사람만 그리 되면 나는 하나님의 뜻이 이동하는 자 옳은 줄 알고 내가 그만  그래 하겠다.' 그래 작정하고 자기네들이 거기 와 다 지기고 앉아서 투표했어.

무기명으로 투표했어.

 투표했는데 꼭 일곱 표인데 일곱 표는 우리 가족들 일곱 표고 다른 사람은 한  표도 안 나왔어. 이러니까 내가 옮길 수가 있습니까? '그거 나 이거 이러니까 못  옮기겠다' 이라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안 옮겼어. 안 옮기고 이라니까  상회에 불복종 죄로 정죄했는데 안 옮긴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안 옮겼으니까  거기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서부교회를 세계 제일 큰 어린이 교회라 또 온 전국과  세계에서 이 서부교회 주일학교 시찰하고 견학하러 온 그 횟수가 얼마더라? 어?  천구십구? 지난 주일까지에 천구십구 회가 왔어. 온 전국과 세계 교회가.

천구십구 회가 왔지.

 이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내가 딴데로 사람들이 가라 한다고 거기  떡 날려 가지고 가 버렸으면 어찌 돼요? 어찌 돼요? 이러기 때문에 안 간 걸  자꾸 지내가고 보니까 '하나님의 뜻이다, 뜻이다. 잘됐다, 잘됐다.' 그 뒤에 결과를  봐서 알 수가 있지 않소?  이래 가지고 이래 돼 놓으니까 이 바람이 센데 그래 자꾸만 바람이 세서  이단이라 쌓다가 지금은 인제 정리가 거의 됐어요. 이 지방에서 뭐 경북에서  안동에서 어데서 포항에서 양사방 이단이라고 이라는 걸 나중에 알아보니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인제 누가 하도 이단이라 하니까 박윤선  목사님한테 알아봤대요. '그 이단입니까?' 하니까 박윤선 목사님이 '그거 혹',  그라더래. '혹 그뭐 이상한 말 더러 하기는 하지마는 그 이단이라고 그래 정죄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분이 이해를 했다 한다고. 내가 그 말 오늘 아침엔가 들었어.

엊저녁엔가?  들었는데 별 말 했다는 것이 박윤선 목사가 나와 맞지 않는 그거라 그 어른은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고 그래 주장하고 나는 안 한다고 하는 그것이 별소리라.

별소리인데 나는 양보가 없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래 놓으니까  밑에 사람들이 나를 자꾸 지금 약을 올리요. '그러니까 뭐 논문을 내든지 해  가지고 이래 뭘 해야 되는데.' 논문 내가 뭣 때문에 논문 내? 그 사람들이 논문  내면 내가 그 다음에 따라내지. 미국 가서 논문 낸다고 그래 쌓더니만 논문이  아직 안 나와. 하면 알 거야, 하면 알아. 이러니까 여러분들, 뭣 때문에 해 가지고  백지 그 무슨 명예하기 위해서 총공회라 하는 것 그런 것 난 것 아니오.

 이랬는데 그래도 하나 둘 세윌이 지나가니까 막 그때는 막 집중 사격인데,  서부교회 하나 뿐이라. 전체는 고신이오. 이래 가지고 집중 사격인데 이거 녹아  죽을 전데 그래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증거로 자꾸 모으니까 이러니까  부산서는 제일 큰 교회입니다. 제일 큰 교회 한 삼 배는 될 것이오. 하나님이  같이 하시니까. 이거 녹아지지 안해.

 그래 가지고 하나 둘 자꾸 나와 가지고 뭐 거게서 교인들, 이 서부교회 교인들은  다 뺏겨 버리요. 이 년 동안에 보니까 마흔 몇 명인가 나갔어. 제일 촐촐 추려  가지고 일꾼들은 마흔 몇 명인가 다 나가 버렸어, 나가기를. OO목사도 거기  나왔지? 이거 전부, 내가 언제 한번 '보자 서부교회서 나간 게 얼마나 되는고  보자' 한번 그렇게 한번, 한번 수를 한번 헤아려 볼라 하다가 '아, 이거 다윗에게  수 헤아려 가지고 벼락 맞은 것처럼 이거 수 세었다가 큰 징계 맞을라.' 해서 그  수는 세지는 안해요.

 이래 가지고 이 공회라 하는 것은 몇 교회가 되니까 서로 모여서 교리나 신조  때문에 의논할 것이 있고 정치 때문에 의논할 것이 있어서 의논할라고 모이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사도행전 l5장에 예루살렘 공회를 본받아서 그래 모였을 때  공회로 모였습니다. 모여 가지고 이래 하니까 차차차 교회가 자꾸 왕성되니까  공회가 많이 생긴다 말이오. 많이 생기니까 이거는 뭐 서울 공회, 뭐 대구 공회.

부산 공회, 뭐 어짜고 호남 공회, 제주 공회 뭐뭐 자꾸 이래 놓으니까 이거 또 안  되겠다 그 말이오. 이래서 할 수 없어 '그만 한국에 있는 제일 전체로 모일 때는  이거 총공회라 하자. 그라고 난 다음에 지방 공회면 지방 공회라고 하자.' 또  '개교회서 모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당회라 했는데 우리는 개공회라고 하자.

개교회는 개공회로서 목사 장로 집사 이래 모여 가지고 하는 것을 개공회라 하자.'  이래 가지고 된 것이지 뭐 누가 총공회 좋아서 그 이름을 한 것 아니오. 부득이  해서 자꾸 이거 발표할라 하니까 그래밖에는 표시할 방편이 없어서 그리 된  것입니다. 이러나 그게 왜 됐느냐? 교리와 신조 행정이 달라서 그것이 됐기  때문에 이 간판 이것은 다르다는 바람을 맞는 사람은 안 맞으면 좋겠는데 그거  참 안됐지마는 이 바람을 맞게 되면 이 바람 맞게 되는 이 공회에 속한 원인이  이 공회적인 교리와 신조 행정을 자기가 지켜서 행하게 되면은 거게서 나오는  수입이 가해받는 것보다도 몇백 배 몇천 배도 더 될 터이니까 그거 해 봤자 뭐  손해갈 게 없어. 유익은 백 개나 유익 오고 손해는 한 개 오니까 한 개 떼 봤자  구십구 개는, 아흔아홉 개는 유익이 아니요? 이런데 이거는 여기 속해 가지고  유익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바람만 맞으니까 큰 손해라.

 OO교회, 총공회라 하는 그 간판은 저 보이지도 안한 저 뒷구석에 붙여 놨어  앞에 붙였어? 앞에 붙였어. 그래 저 뒷구석에 어데 붙였대요. 그래, 뭐  OOO교회도 저 숨어서 붙였다 이라니까 다니며 차에도 뭐 총공회라고 다 적어  놓고 지금, 차에도 몇번이나 해 놨는데 그렇다고. 아는 사람은 그것을 자랑할 거는  아니지마는 이 총공회와 이 교리와 이 신조와 행정이 하나라는 걸 생각하면은  자랑스러워합니다. 지금 시간 어찌 됐어? 열두시 십오분? 그라면 넘었어. 그라면  오후에 요 끝에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여게 대한 이 도리를 증거하겠습니다. 이러니까 오후에 여게 대해서 뭐라고  하는가 밑에서 기도하고 해 가지고 여기서 요렇다. 자기가 그라면 자기가 깨달은  것과 깨달음이 다른가 요것을 봐서 같으면 좋고 다르면 다르다는 그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돼요.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께서 주의 형상 곧 온전한 주의 제자를, 주님의 아들들을  만들기 위하셔서 이 시간에도 많은 말씀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말씀으로 완전히 인생관, 만물과, 가치관, 소망관, 모든 능력관이 학실히  바꾸어져서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지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동시에, 사람병이 고쳐지는 동시에 고기덩어리의 병도 어떤 병에 걸렸든지 이  시간에 완전히 치료해 주시고 낫고 난 다음에 주님 위해서 살면 더 충만해지고  더 깨끗해지고 온전해지고 이것 가지고 죄짓고 돌아다니면 주께서 더 큰 증세를  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에 회개하거든 다시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01 겨자씨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90507주후 선지자 2015.10.23
600 겨자씨 믿음 생활/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16목새 선지자 2015.10.23
599 겨자씨 믿음(믿음 더하는 법)/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30809화후집회 선지자 2015.10.23
598 겨자씨 믿음의 3가지 권능/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80712화새 선지자 2015.10.23
» 겨자씨 믿음의 3위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90510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3
596 겨자씨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7수새집회 선지자 2015.10.23
595 겨자씨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7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3
594 겨자씨 믿음의 능력(생명있는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6화후집회 선지자 2015.10.23
593 겨자씨 비유/ 마태복음 13장 31절-32절/ 820222월새 선지자 2015.10.23
592 겨자씨 비유/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721주후 선지자 2015.10.23
591 겨자씨-능동믿음-죽은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12목새 선지자 2015.10.23
590 겨자씨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06월새 선지자 2015.10.23
589 겨자씨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07화새 선지자 2015.10.23
588 겨자씨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60108수야 선지자 2015.10.23
587 겨자씨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11수새 선지자 2015.10.23
586 겨자씨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10화새 선지자 2015.10.23
585 겨자씨믿음-두 가지/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06금야 선지자 2015.10.23
584 겨자씨믿음-산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08주전 선지자 2015.10.23
583 겨자씨믿음-현실관/ 출애굽기 20장 1절-3절/ 851214토새 선지자 2015.10.23
582 겨자씨믿음-현실관/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13금야 선지자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