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의 능력(생명있는 믿음)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6일 화후집회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몸에 약을 쓰는 것도 그 약을 될 수 있는 대로 기간을 짧게 잡아 가지고 약을  써야 효력이 나지 아무리 효력 있는 양약이라도 시간을 길게 잡으면 그 병이  제대로 준비를 해서 면역성을 만들기 때문에 효력이 안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도 들어 가지고 당장 그대로 고쳐서 그만 해  나가야 되지 그저 은혜 받아 가지고 버리고 받아 가지고 버리고 그렇게 하면  옛사람 고놈이 면역성이 들어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오래 동안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기가 심히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금번에는 시간 시간마다 즉시 우리는 고치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범사가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할 일은 즉시 해야  됩니다. 즉시 해야 효과적이지 할 일을 자꾸 이리 저리 뒤로 미루면 효과가  적습니다.

 여러분들 좋은 방편이 있는데, 여기에 이래는 조금은 시원하고 이런데 여기에  앉은 분들 좀 '야 내가 제일 시원한 자리에 앉을 게 아니라 나도 저 속에 한번  뜨거운 자리에 가서 한번 견뎌 보겠다' 그 마음을 가지면 고게 역항력으로써  다니엘 신앙을 가지는 그런 신앙이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가진 그런  신앙들인데요, 어쩌든지 '보자' 가만히 보고서 '바람이 어디서 부는고 제일  선선한 자리를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서 택해 앉아야 되겠다' 하는 것은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의 길입니다. 그것은 아주 자신을 약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고, 여러분들 부채 부치는 것이, 자, 그것이 수월하겠습니까 주님 앞에  '선선한 바람을 주시옵소서' 하면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수월하겠습니까? 어떤  게 수월하지요? 하나님께서 딱 보고 계시면서 아무리 그 속에, 불미 속에라도  주님이 뜨거운 거 하나도 없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서라도 '주여. 주님은  모든 바람을 주관하고 계시는 주님이 아니십니까?' 이스라엘을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서 낮으로는 삼십 오도 사십 여도 되는 그런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로 추워서 못 견딘다고서 아이구 춥다고 이래 가지고 야단을  지기도록 그렇게 구름으로 덮어서 선선하게 해 주신 그분이 지금도 늙지도  안하고 그래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와서 계십니다.

이러니까, 그분을 믿고 이래 기도를 해 보십시오. 기도하면 앞에 사람은 더워서  헐떡거리는데, 뒤에 사람들은 더워서 헐떡거리는데 그 사람은 하나도 덥지  안합니다. 이러니까, 자꾸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실행을 해서 하나  경험해 보고 또 둘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보고 자꾸 이렇게 해 봐야 신앙이 자라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안 먹어 보면 맛을 어찌 알며 먹지 않으면 또  영양을 어찌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꼭 그와 같은 것입니다.

 자, 한목 그라면 이제 하나님이 한번 우리, 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한번  들어봅시다. 자 이제 선선하게 해 달라고 한번 바짝 한번 기도 해 봐요. 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선하게 해 달라고, 간단하게. 종 날 때까지. 뭐 길게  기도할 것 없어. 그런 거는 간단하게 기도하면 돼요. 간단하게. 서늘해졌습니까?  공연히가 아니라 서늘해졌소? 아, 서늘해집니다. 자꾸 믿어 보니까, 아,  사람들한테 구하는 거 그거 애터지고, 심지어 부모한테 구하는 것도 애터집니다.

주님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했습니다. 그분 암만 주고도 불평 안 하고 쪼 안 빼고 교만 안 부리고 고자세  안하고 이라는데 그분에게 달라 하지, 그분에게 달라 하면 뭐이든지 다 줘요.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니까, 주님을 살살 이용을 해 먹어 봐요. 좀 이용해 먹는다 하니 좀 우스운  소리지만서도 주님을 이용하지 뭐. 자녀들이 클 때는 아버지 어머니 이용합니다.

고거 웃음 한번 웃는 데도 다 계획이 있어. 어린 아이들 거석하는 게 그래  가지고서, 그래 놓으니까 그게 만날 얻어 쓰고도 아버지 어머니는 또 못 해 줘서  애가 터지는 거, 고거 뭐이냐? 그런 지혜가 있거든. 아버지 어머니를 이용해  먹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요렇게 조렇게 하면 주고도 못 줘서 못 다 준  것같이 애가 터지지 주고 나도 원망 불평이 없다 말이오. 우리 하나님도 이용해  먹을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살살 달래면서 하나님을 이렇게 좋도록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모르시는 게 아니라 압니다. 알지만, 알지만, 꼬여 넘어가요.

알지만. 그거 또 하나님이 그거 좋아하시오.

 남편도 그렇지 안해요? 어떤 남편 보니까 말이오, 아내가 말이지 공연히, 점심  먹고 지금 오후 두시 예배 갈라 하니까 곤하기야 얼마나 곤하요? 곤하니까, 옆에  가서 백지 웃어 쌓아면서 다리를 주물러 쌓아면서 이래 쌓아니까 '어이구, 또  오후 예배 가자 소리지? 주물지마. 안 주물러도 내가 그만 갈 거야' 살살 그래  꾀는 사람은 그 남편을 전부 예수 믿구로 만들어 장로도 만드는데, 그만  남편하고 서로 투닥투닥 하는 사람은 안 돼. 하나님도 살살. 하나님을 잘  달래서, 하나님은 또 달래는 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걸 원해요. 자꾸 이용하라 하는 거라. 자꾸 이용하라 하는 거.

 그러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돼 가지고, 그것이 효력이 얼마나  있는고? 야, 평안한 때만 효력 있나, 환난 때도 효력 있나, 금전에도 효력 있나,  사업에도 효력 있나? 이거면 뭐 부자 방망이요. 어디든지 효력 있어요. 다 있어.

어디든지 효력이 다 있습니다. 이러니까, 참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은 전부  기적에서 살아요, 기적에서. 아, 뭣도 하니까 주시더라, 뭣도 하니까 주시더라.

다른 사람 들으면 전부 거짓말쟁이뿐이라.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만 하지만  실상 그 사람은 받아 보고서 하는 말입니다. 받아보고 하는 말. 자, 우리  기도했는데 좀 시원해졌습니까? 확실해요? 그러면 됐네. 뭐 그만하면 됐지.

 자, 그라면 이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하심이라' 이제 하나님의 이 말씀은 사람 온전, 행위  온전, 사람 온전 행위 온전을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주님의 피공로를 입고 왔습니다. 진리도  주님의 피공로를 입고 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공로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감이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진리가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번에 사람병을  꼭 고쳐야 되겠는데 사람병 고치는 이 일을 위해서 거기에 보충되는 말씀을  한군데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장 5절, 잘 들으면 이 오후 예배 때 이 말씀을 다 증거 할 수가  있고 잘 안 들으면 다 증거 할 수가 없습니다. 잘 들어야 돼요. 들어서, 처음에  가르치는 걸 그 다음에 물으면 다 알아야 되지 자꾸 들어서 잊어버리고 들어  잊어버리면 가르치기가 심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사도들께 주께 여짜오되" 사도들은 십이 사도들을 가리켜서 사도들이라고  합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셔 가지고 그들에게 성령의 은혜와 성경을  기록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그런 특권들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사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주님에게 말하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도 주님에게  따라다니면서 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저 말씀마다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느냐, 믿으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신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히브리 11장에 보면 모두 다 믿음 가지고서 승리했다, 믿음 가지고 의롭게 됐다,  믿음 가지고서 인간들이 할 수 없는 일 다 했다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간단하게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제 이 믿음을 하도 많이 말씀하시니까  사도들이 '야 믿음이 제일 보배로구나. 주님 앞에 이제 믿음을 달라고  구해야겠다' 이래서 믿음을 더하소서 이렇게 구했습니다.

 그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복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요 간단하게  믿음을 더해지는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겨자씨 비유는 이것은 믿음에 대한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 제일 작은 씨입니다. 작은 씨 겨자씨를 가지고 왜 요렇게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믿음도 큰 믿음 있고 작은 믿음 있고 그렇게 믿음도  종류가 각각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겨자씨를 가지고 비유 한 것은 믿음  중에 제일 작은 믿음, 아주 적은 믿음. 조끄만한 그런 아주 새끼 믿음 말합니다,  새끼 믿음. 아주 쪼그만한 믿음을 가리켜서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겨자씨  비유로 이렇게 믿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겨자씨에 그렇게 작기는 작지만 그 속에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겨자씨를 그것을, 그 겨자씨를 봉투에다 넣어 가지고 이렇게  천장에 달아 놓으면 뭐 몇 달 있어도 그대로이고 일 년이 지나가도 그 겨자씨가  그대로 있습니다. 뭐 겨자씨를 뭣이 삼킬라 하는 것도 없고 썩힐라 하는 것도  없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동안 지나가면 그것도 좀이 먹어서 나중에  가서는 그만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가 자라면 얼마나  자라느냐? 큰 나무와 같이 되어 가지고 모든 새들이 와서 깃들이고 그렇게  커다란, 채소인데 나무같이 자란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겨자씨를 땅에다가 심으면 땅에 심으면 이제 그 겨자씨가 움이 나고  자라 가지고 나무같이 그렇게 커단하게 자라게 됩니다. 되는데, 이 겨자씨를  땅에다가 심으면 땅에서 그 겨자씨를 그 썩힐라고 달라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땅이라는 것은, 땅의 성질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 뭣이든지 땅에  들어오기만 들어오면 그것을 썩혀 가지고 땅화 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땅화  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겨자씨를 땅에다 심으면 땅은 겨자씨를 땅을 만들려고  흙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뭐 겨자씨뿐만 아니라 뭐이든지 다 그렇습니다.

뼈다귀도, 뼈다귀도 땅에 넣으면 땅은 밤낮 쉬지 않고 그 뼈다귀를 썩혀 가지고  얼마 가면 다 그게 썩어서 흙이 됩니다. 또 꽃도 그러하고 나무도 그러하고  뭐이든지 뭐 땅에만 들어가면 땅은 그것을 썩혀 가지고 흙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흙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겨자씨도 그 속에 들어가면 그  땅은 겨자씨를 썩혀 가지고서 흙과 같이 되어서. 흙화시켜 가지고 흙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흙을 만드는 데에는. 겨자씨를 썩히기 위해서는. 뭐 오만 게 다  있겠지요. 겨자씨를 썩혀 가지고 흙을 만드는 데에는 뭐 별별 여러 가지 작용이  있지 않겠습니까? 수분도 와 가지고 겨자씨를 썩힐라고 할 것이고, 온도도  썩힐라고 할 것이고, 그 가운데 있는 질소분들도 썩힐라고 할 것이고 뭐 그  가운데, 우리가 다 지금, 농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 모르지만 땅 지질에는 별별  요소들이 있어 가지고 어짜든지 겨자씨를 썩혀 가지고서 흙화시킬라고, 흙을  만들라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다. 흙을 만들라고 애를 쓸 때에 그때에 아주  여문 뼉다구도 들어가면 그만 거기에는 다 썩어서 흙이 되고 나무도 들어가면  흙이 되고, 꽃도 들어가면 썩어서 흙이 되고 뭐이든지 들어가서 썩으면 흙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거는 뭐인고 하니 생명입니다. 생명  있는 것은 안 됩니다. 생명 있는 것은, 여기 제가 우리 정원에서 나무를 이래  모두 뭐 가지도 끊고 풀도 거석하고 한아름 되는 걸 이래 땅을 파고 거기다가  갖다 묻어 버립니다. 묻는 거 그거는 뭐 되라고 묻느냐 하면 흙 되라고  묻습니다, 흙 되라고. 흙 되라고 묻는데, 나중에 가서 보면 다른 거는 푹 썩어  내려가는데 고게 큰 풀이라 하는 것이 뭐이, 뿌리 동가리. 뿌리 동갱이 요만한  거만 들어가도 요거는 썩지 않습니다. 요거는 나중에 보면, 보면 이것이 새로  움이 나 가지고 푹 뚫고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이거 뭐 흙은 그만 생명한테는 절단입니다. 흙은 생명한테는  절단이오. 생명한테는 꼼짝을 못 해. 그만 결국은 생명하고 싸우면 흙이  손해입니다. 생명하고 싸우면 뭐이든지 그만 그 생명이 잡아먹어 버립니다.

이러니까. 물도 보내면 잡아먹어 버리고 질소분도 보이면 잡아먹어 버리고 흙에  좋은 양분도 보내면 잡아 먹어 버리고 뭐이든지 생명이 있는 것에게는 이 흙이  가면 결국은 흙하고 생명하고 둘이 싸우면 나중에 가서 흙은 생명의 밥이 되고  생명은 흙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생명 외에 딴것은 뭐 쇠도  들어가면, 쇠도 들어가면 세월이 지나가 그렇지, 처음에는 쇠가 들어가면 녹이  피어 가지고 마지막에는 썩어서 흙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것은  못합니다. 생명은 이 흙을 기어코 삼키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겨자씨가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갖다 넣으니까 자꾸 이 흙은 썩혀서  흙 만들라고 애를 쓰고, 생명은 흙에게 잡아먹히지 아니할라고 자꾸 애를 쓰고,  겨자씨는 흙을 잡아 먹을라고 애를 쓰고 둘이 서로 싸웁니다. 둘이 서로  싸우는데, 생명 없는 거는 싸워 가지고 흙에게 다 져 가지고 흙이 되지만  겨자씨는 작지만 생명이 있으니까 흙하고 싸우니 흙이라는 것은 생명한테는  꼼짝을 못 하기 때문에, 생명한테는 꼼짝을 못하기 때문에. (잘해. 잘해. 자꾸  점령당해서 밀어내거들랑 또 요래 앉고 밀어내거들랑 요래 앉고 자꾸 요래 자꾸  요래 앉아서 은혜만 받아. 그라면 승리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을 삼키려고 오는 지기를, 땅의 기운 지기를, 올 때에 그  지기는 겨자씨를 썩혀 가지고 흙을 만들라고 애를 쓰고, 겨자씨는. 썩힐라고  오는 그 흙을 잡아먹고 제가 자랄라고 애를 씁니다. 잡아먹고 자랄라고 애를  쓰는 그 전투가 있는데, 전투가 있는데. 생명 없는 다른 것들은 다 흙한테 져  가지고 결국은 흙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그 생명 있는 것은 흙에게 지지 안하고 기어코라도 흙을  잡아먹고 나중에는 겨자씨가 쪼그만한 움이 트고 그 다음에는 줄기가 생기고  이래 가지고 커다란 나무와 같이 자란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믿음의 도리를  비유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 이루는  것인데. 이 믿음의 생명은 뭣이 믿음의 생명인고 하니 세 가지가 믿음의  생명입니다. 믿음의 생명은 세 가지가 믿음의 생명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예수님의 피가 이 믿음의 생명입니다. 또 하나는 성신의  감화가 믿음의 생명입니다. 또 하나는 진리가 믿음의 생명입니다. 이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흙에 겨자씨를 심은 거와 같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난  다음에는 이 세상이라는 이 땅에다가 우리 믿음을 심습니다. 마치 겨자씨를  흙에다가 심으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을 그저 아무 방해 없는 그런 곳에서  살도록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믿는 믿음을 흙과 같은 이 세상에다가 우리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믿으면, 믿음 믿는 것은 뭐이 믿는 것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이 그것이  믿음 생활인데, 순종하는 생활을 할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 믿을라고 하는  자에게 환경과 주위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데 환경과 주위를 만들어 주시는  그 환경과 주위는. 그 환경과 주위는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할라고  할 때에 신앙생활 할라 하는 그 신앙생활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자꾸 이렇게 방해를 합니다.

신앙생활을 도와 주지 안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뭐 할라고 우리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살라고 할 때에 순종하고 사는 데에 방해되는 그런 현실을 무엇 때문에 만들어  주실꼬? 얼마든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 때에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아무  방해물이 없는 그런 주위와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주님은 꼭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시지 안하고 믿음 생활하지 못하게 방해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가? 겨자씨를, 겨자를,  겨자씨를 가만히 그 겨자씨가 겨자씨대로 가만히 있구로 내버려두면 좋을 터인데  그 겨자씨를 땅에다 심으니까 겨자씨를 썩힐라고 하는 못 견디게 하는 그런  세력들이 자꾸 와 가지고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겨자씨를 썩힐라고 하는, 겨자씨가 겨자씨로 있지 못하고 겨자씨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겨자씨를 절단낼라고 하는 그런 지기 속에다가 심구지  안하면 그 겨자씨가 자라지를 못합니다. 겨자씨가 자라지를 못해요.

 그러면 겨자씨가 아무 마찰이나 대적이 없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겨자씨가 대적  없는 곳, 마찰 없는 곳에 있을라면 어떤 데 가 있으면 겨자씨에게 투쟁 없는  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장에, 봉투에 넣어 가지고 대롱대롱 달아 놓으면  거기에는 그 겨자씨 뭐 썩힐라 하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썩힐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거기에다가 달아 놓으면 겨자씨를 썩힐라 하는 거는  없지만 겨자씨가 거기에서 움이 나고 자랄 수가 있습니까? 자라지를 못합니다.

겨자씨를 자랄라고 하면 겨자씨를 어디다 갖다 해야 되겠습니까? 부득이 땅에  심어야 된다 그말이오. 부득이 땅에 심어야 돼요.

 땅에 심었는데 땅에 심고 보니까 싸움이 일어납니다. 땅에 심고 보니까 싸움이  일어나. 흙은 겨자씨를 썩혀서 흙 만들라고 애를 쓰고, 이 겨자씨는 안 죽을라고  빠닥거리면서 애를 쓰니까 죽일라 하고 안 죽을라 하고, 죽일라 하고 안 죽을라  하고 자꾸 안 죽을라고만 자꾸 애를 씁니다. 안 죽을라고만 애를 쓰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한 시간이 지나가니까. 안 죽을라 그 한 삼 일 되고 나니까 눈이 톡  튀어나옵니다. 또 안 죽을라고 애를 쓰고 한 열흘 있으니까 움이 싹이 톡 튀어  나와 버렸습니다. 한 달동안 안 죽을라고 애를 쓰니까 그만 줄기가 쑥 돋아나  가지고 제법 너풀너풀한 크게 돼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믿어서 구원을 얻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해 놓으시고 우리 이 현실이라는 이 환경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실 때에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고 하니,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고  하니 겨자씨로 말하면 봉투에 넣어 가지고 공중에 달랑달랑 달아 놓는 거와 같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시면 좋을란지, 또는 그렇지 않으면 이 겨자씨를 썩힐라고  애를 먹이는 흙과 같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을란지, 자,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까? 봉투에 다는 환경이 좋겠소 땅 속에 심으는 게 좋겠소?  땅 속에 심으는 게 좋겠지요. 땅 속에 심으면 겨자씨가 움이 나서 자라 가지고  좋기는 좋지만 그 자라는 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 뭣이 있지요? 전투가  있어, 전투. 싸움, 전투가 있습니다. 무슨 전투가 있습니까? 흙은 겨자씨를 흙  만들라고 애를 쓰고. 겨자씨는 흙에게 먹혀 들어가지 아니할라고 애를 쓰고,  이러다 보니까 그 싸움은, 싸움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까 겨자씨가  움이 트고 싹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환경에 마찰이 없는 그런 환경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겨자씨로 말하면 봉투에 넣어 가지고 공중에 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가 없도록, 믿음이 무엇을 먹고 자라야 되는데, 우리  믿음이 현실을 먹고 자라야 되는데 현실에 마찰이 없으니까 먹을 것이 없으니  믿음이 자라지를 안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을 자라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  신앙을 방해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환경을 만들어 주실 때에 그때에 우리가, 심겨져 있는, 겨자씨가 심겨진 흙은  무엇을 비유로 말했습니까? 심기워진 그 흙은 무엇으로 비유했지요? 땅, 흙으로  비유했지요. 흙으로 비유하지 안했습니까? 흙으로 비유했는데. 우리에게는  우리의 신앙을 신앙생활 하지 못하게 제것을 만들려고 애를 쓰는 그런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입니다. 세상. 우리 주위 환경은 그게 세상인데 우리 주위  환경은 우리를 세상화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언제든지 우리 믿는 사람이 믿음  생활 할라고 할 때에 자기의 주위 환경은 누가 만들어 주는 건고 하니 주인  주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주위 환경은 아무도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  환경은 주님이 만드십니다.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데, 다른 이가 만들어 주지  안해요.

 우리 주위 환경이라는 그 현실이라는 현실에는 사람도 들었고, 돈도 들었고,  사건도 들었고, 물건도 들었고, 또 친구도 들었고, 원수도 들었고 뭐 별별 것이  다 주 모아 가지고서 우리의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 준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주인되신 주님이 그 밭 임자라. 주인이, 주님이 우리 현실을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 현실은 뭐, 신자의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지 신자의 현실은 다  발과 같이 그래 돼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현실은 저 사람은 보니까 신앙생활 하기에  평안하겠다, 저 사람은 보면 신앙생활 하기 편하겠다 말하지만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할라 할 때에 자기에게 닥치는 현실이라는 그 현실은 두 말 할 거 없이  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방해하는 것입니다.

방해해서, 현실은 나로 하여금 현실에 화합한 자가 되도록 현실에 딱  들어맞도록. 현실하고 화친한 자가 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현실과 한덩어리  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현실과 한덩어리 될라고 하면 예수님의 피도 버려야  되지 영감도 버려야 되지 진리도 버려야 되지, 이 셋을 버려야 이제 주위  환경인-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세상과 하나 되겠는데, 그러면,  피도 버려야 되겠고 영감도 진리도 버려야 되겠고. 영감과 진리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버릴라고 하지 안하고, 버리지 안하고 어짜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로 또 영감대로 진리대로 요렇게 살라고 애를 쓰면 우리 주위와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지 말고 이 주위 환경을 따라서 주위 환경의 사람과 둘이  화합하고 또 사건과 화합이 되고 물질과 화합으로 그것들하고 이렇게 화합해서  친밀하게 하나 되어지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도록 그렇게  자꾸 하라고 그것이 달개다가 위협을 주다가 그렇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우리가 주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버리면 우리는 이제  뭣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뭣 됐습니까? 예? 우리는 세상화됐습니다.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세상이 되 그 말았고, 그것들이  와서 자꾸 저거하고 한덩어리 되자고 이렇게 할때에 그때에 그 현실을 내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영감을 벗지 아니하고 진리를 벗지 안하고 그  현실을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그 현실을 살면, 살면, 현실을 살면 그때에 내  현실이라는 그 현실은 다 내 밥이 되고 맙니다. 그 현실은 내 밥이 되고 맙니다.

현실은 나를 자라게 하는 양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은 우리를 세상화시키려고 애를 쓰고 우리는 이 생명만 버리지  안하고, 죽지만 안하면 됩니다. 생명만 버리지 안 하면 이제 그 세상은 내 밥이  되고 내가 생명 버리면 그만 나는 세상 것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현실은 다, 겨자씨 비유에서 말 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 현실은 주인이 나를 현실에다 집어 넣었다 말이오, 주인이.

겨자씨를 누가 땅속에 묻는고 하니 주인이 땅을 잘 다져 놓고 그 게다 겨자씨를  이렇게 땅속에 묻어 버립니다, 묻어 버리는 건 주님이 묻었는데 주님이 묻은  거는 겨자씨 죽으라고 묻은 게 아니고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와 같이 이렇게  무성해 장성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 속에 심었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 환경을 주시는데 그 주시는 환경이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생활을,  영감의 생활을. 진리의 생활을, 다시 말하면 사죄 받았으니까 죄 안 짓고 살고  의롭게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살고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이렇게 살라고  하는 이 살라고 하는 생활을 살지 못 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주위  환경인 것입니다, 주위 환경. 이걸 똑똑히 알아요.

 그 겨자씨를 주인이 땅에다 심은 것은 겨자씨를 망치기 위해서 심은 게 아니라  겨자씨가 땅을 먹고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겨자씨를 심었다 그거요. 그러나,  심었는데. 막상 심기워지고 보니까 이 땅에 있는 지기는 전부 겨자씨를 돕는  것은 하나도 없고, 겨자씨를 협조해 주는 건 하나도 없고, 겨자씨를 위하는 거는  하나도 없고 전부 겨자씨를 막 썩히고 죽여서 흙 만들라고만 막 전체가 단합해  가지고 야단을 지기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를 땅 속에 삼으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을 이 현실이라는, 현실에다가 심어 주는데, 현실 닥치고 보니까 그 현실은  내 믿음 생활을 도와 주는 거는 하나도 없고 믿음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하는 것들만 있게 됩니다. 방해하는 것들만 있게 돼요. 방해하는 것들만  있게 되는데, 방해하는 것들만 있게 되니까, 그러면, 그 현실은 내 신앙을  방해하는 것만 있으니 그 현실은 누가 줬느냐? 주님이 주셨는데. 그러면, 주님이  주신 그 현실은 방해하는 현실, 믿음에 방해하는 현실만 줬으니까 주님이 내게  주신 그 현실은 믿음에 손해를 보이기 위해서 그 방해하는 현실을 줬습니까  믿음에 유익을 보이기 위해서 방해하는 현실을 주셨습니까? 뭣을 위해서  주셨습니까? 유익 주기 위해서 방해하는 현실을 주셨다 그말이오. 방해하는  현실을 주셨는데, 그러면, 방해하는 현실이 좋습니까 방해 없는 현실이  좋습니까? 방해 있는 현실이? 정말로 그래요? 방해 있는 게 좋아요? 어쩌든지  방해 없는 데만 살살 찾아 돌아 다닐라고 애를 쓰는데, 방해 없는 현실에서는  자랄 수가 있습니까 그대로 나중에 좀이 먹고 맙니까? 자라지 못해요.

 이러니까, 방해 있는 현실을 주시는 것은 주인은 그 방해 할 줄 알고 방해하는  현실을 닥치게 해 주셨는데, 겨자씨 속에는 생명이 있는 걸 주인이 알기 때문에  그 생명이 있으니까 방해하는 그 땅 속에 넣어야 땅을 먹고서 자랄 것이기  때문에 그 겨자씨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겨자씨의 방해하는 그 현실을 우리에게  만들어 가지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 비유에서 우리 현실은 주님이 주셨다 하는 것을 확고히  잡으십시오. 겨자씨를 겨울에는 봉투에 넣어 가지고 천장에 대롱대롱 당글어  놨다가, 달아 놨다가 이른봄이 되니까 일찌거니 이 씨는 이건 얼어서 죽지  않겠다 싶은 따뜻한 시기가 되어지니까 그것을 땅 속에 묻습니다. 땅 속에 묻는  것은 분명히. 겨자씨를 썩혀 버리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겨자씨를 자라서  장성해져서, 겨자씨가 장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땅 속에 심으는 것이라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우리 신앙을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겨자씨를 땅속에 심으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현실 속에다가 우리를 심은다 그 말이오. 현실 속에 심습니다.

 현실 속에 심으는데, 주님이 현실 속에 심었는데 그 현실을 막상 닥치고 보니까  우리 신앙생활을 방해를 합니까 우리 신앙생활을 잘 믿으라고 그렇게 협조를  합니까? 우리 신앙을 신앙생활 하지 뭇하고 이 현실화되라고. 현실과 꼭 같이  되라고, 현실과 꼭 같이 되라고 그렇게 하는 그런 것들만 있습니까 우리 믿음을  돕는 것만 있습니까? 예? 요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신 거, 겨자씨를 땅 속에 심은 것은 누가 심었느냐?  주님이 심우는 고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이 현실 속에다가 우리 신앙을 집어넣는,  우리 신앙을 현실 속에다가 집어넣는 그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현실 속에다  집어넣는 그 일을 누가 하느냐? 주님이 하십니다. 요거 똑똑히 믿어요.

이 비유가 자기에게 가득. 이 하나만 믿어도 그만 뒤에 보면 굉장해요. 그 뒤에  뭐이 오느냐 하면 너희들이 겨자씨 믿음으로 자라 가지고서 거기에서 유익을  보면 이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렇게 하면  순종하였으리라 이랬어. 그러면 이게 자라 놓으면, 이걸 길러 놓으면 모든 것 다  뿌리뽑는 능력과 운반하는 능력과 심으는 능력은 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집니다. 이 굉장한 것이오.

뭐 이 도리만 확실히 확고하게 잡으면 이만해도 굉장해. 뭐 죄도 뿌리뽑지.

원수도 뿌리뽑지, 악도 뿌리뽑지, 남은 것은 다 뽑아서, 땅에, 땅에 속한 것을  다 뽑아. 땅에 속한 것을 다 뽑아. 땅에 속한 욕심을 뽑아 가지고 저 옮겨서  하늘의 욕심으로 심어 버리고. 땅에 있는 모든 기쁨을 뽑아 가지고 저 하늘의  기쁨으로 심어 버리고, 땅에 있는 모든 소망을 쏙 뽑아 가지고 하늘의 소망으로  자꾸 심구고, 이래서, 뭐 심으는 것도 초자연의 능력이요 운반하는 것도  초자연의 능력이요 뽑는 것도 초자연의 능력이라 이 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거 하나 하나를 또박또박 확실히 가져요.

 그러면, 겨자씨를 땅에다가 묻는 것은 주인이 묻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  현실 속에 우리가 들도록 우리 현실을 만들어서 준다 말이오. 흙으로 척 덮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현실을 우리 믿음 위에다가 덮어 버린 다 말이오. 우리  믿음에다가 현실을 덮어 버려. 현실을 덮는데, 그 현실은 누가 우리에게 그  현실로써 내 신앙 행위를 덮습니까? 우리 현실을 누가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주님이 주셨다는 이것도 그냥 입술에 발려서 그래 하지 말고 이걸 믿어요.

현실을 준 거.

 아. 사람들이 볼 때에 공산주의를 만나서 낭파를 당했어도 고거는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이지, 가다 보니까 살림살이가 다 패가가 됐습니다. 마구  살림살이가 전부 패가가 됐어.

고거는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이지. 가다 보니까 모든 사건들이 전부  낭파가 나 가지고 뭐 부도가 나고 어째 이래 가지고 다 낭파가 납니다. 그런데.

고거는 현실 아닙니까? 고거는 현실이 아니오? 이 장로님, 현실이지? 그것도  현실이지? 갑자기 그만 암병이 걸려 버렸습니다. 암병 고거는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입니다. 갑자기 그만 이혼을 당해 버렸습니다. 고거는 뭐입니까?  고건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입니다.

그만 쫓겨나 버렸습니다. 고거는? 그것도 현실이라. 갑자기 그 사람을 높은  지위에 뻐뜩 들어 올려서 요셉이와 같이 총리 대신으로 뻐뜩 들어 올렸어요.

그거는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이라. 좋은 현실 나쁜 현실, 매운 현실 쓴  현실 단 현실, 긴 현실 짧은 현실 뭐 어떻게 현실이 많은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세상은 현실 빼 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세상은 현실 빼 놓고 나면 아무것도 없어. 이런데, 이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은 다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 하는 것을 이것을 확고히 안다는 것이 큰  능력입니다. 현실을.

 자기가 목회하다가 그만 교회에서 배척을 당해 버렸습니다. 배척 당한 그거는  현실 아닙니까? 예? 그것도 현실이오. 가다 보니까 그만 얄궃은 병이 들어  가지고 다리가 하나 뿌러져 버렸습니다. 다리가 하나 뿌러져 버렸어. 그거는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입니다. 아, 가다 보니까 그만 어찌 잘못 해 가지고  눈이 하나 빠져 버렸습니다. 그거는 현실 아닙니까? 그것도 현실이오.

 현실이라는 형형색색의 현실이 많은데 그 현실은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나  택자들에게 닥치는 그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이라 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평소에 많은 공부를 해야 되지 그렇게 쉽게 된다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니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는 그걸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줄 압니까? 그거  공부 많이 해야 돼요. 그냥 백지 여기서 배워 가지고 '현실은, 다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지' 이렇게 해 가지고 그렇게 쉽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너무  그렇게 낙관시하고 쉽게 뭣이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그것도 기도 많이  해야 됩니다.

'주님이여,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로 하여금 주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인 걸 내가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자꾸 '주여,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인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꾸 이 믿음을 해  가지고 믿음의 그릇을 채워요. 믿음의, 믿음의 그릇을 채우라 말이오.

믿음(기도)의 양이 있습니다.

 믿음의 양이 있기 때문에 자꾸 채워요, 철철 넘어나도록. 그러면 그 사람은  나중에 현실을 닥칠 때에 '요 현실도 주님이 주신 것이다, 저 현실도 주님이  주신 것이다' 주님이 주신 것이 믿어지지만 기도 안 하고 제 결심 가지고 '아,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 달콤한 현실 또 쉬운 현실, 제게 그 현실을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 해 가지고 좀 좋고 유익될 거 그런 거는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 아, 이 현실에서는 돈벌이가 됐는데 이 현실이야 주님이 만들어 주셨지.

이렇게 주님이 돈벌이 주신 거 아니가? 아. 이번에는 어째 이상하게도 이거  형통해 가지고 직장이 잘 됐네. 직장 잘된 이 현실도 이거 다 주님 만들어  주셨고, 주님이 만들어 주셨지' 좋을 때는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고 떠들지만  이제 가다가 낭파가 될 때에는 그만 현실을 주님이 만들어 주셨다 하면 나중에  원망 불평이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뭐 그만 주님과도 멀어지고 그만 이래 돼  버립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주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셨다는 이것을 단단히 굳게 잡아야  됩니다. 자다가 깨도 그렇고 아무리 상상 못 할 현실이라도 주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확고하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자, 여러분들 앞에 어떤 현실이 닥칠 것을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들 앞에 어떤 현실을 닥칠란지 닥칠 현실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없습니까? 옳게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현실을  닥칠지 몰라요.

그러면, 대략 우리 현실이 어떤 현실이 닥칠 것이라 그렇게 예산을 해야 우리  신앙을 유지하지. 예산을 하는데 그 예산 더러 해 봤습니까? 여러분들 어떤  현실이 닥칠 것으로 예산 더러 해 봤습니까? 예산 예상은 미리 한번 생각해 보는  거 예산은 미리 한번 계산해 보는 거, 예산. 예산이나 예상이나 해 본 사람,  자기 앞으로 닥쳐올 그 현실을 어떤 현실이 닥칠 것이라 예상을, 예상은 미리 한  번 생각해 보는 거. 아마 이런 현실을 내가 닥칠 거라 저런 현실을 닥칠 거라  예상해 본 사람, 예산해 본 사람은 앞으로 이런 현실이 닥칠 것이라 그 어려움은  어느 정도, 영광은 어느 정도, 존귀는 어느 정도, 좋기는 어느 정도 그런 그  양을 계산하는 걸 가리켜서 예산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자기 닥칠 그 현실을 예상이나 예산이나 해 본 사람들  있습니까? 해 본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해 본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해 본 사람들. 아, 여기 모두 해 본 사람들 이렇츰 적어요? 손 놔요. 여기  서부교인들 손들어 봐요. 이거 전부 가짜 내가 만들었네, 전부 가짜. 여러 수십  번 가르쳤을 거고 뭐 뭐 수백 번도 가르쳤을 건데 이거 몰라 놨으니까 이거 뭐  가짜라. 몇 만 들고. 이러니까, 여기 와서도 배워야 되지 또 그래 배우면  헛일이오. 자. 자기 앞에 어떤 현실이 닥쳐 올 것인가 예상을 하고 예산을 해 본  사람 여기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여기. 아, 여기는 거의 다 드네. 저리 그리  다 드네. 억지로라도 들어요. 한번 예상해 본 사람은 한번 들어 봐요. 네, 이래  들어야 될 터인데 턱 뭐 낭파입니다.

 우리 앞에 닥칠 현실은 우리가 뭣을 가지고 예산을 하고 예상을 한 것인가?  여러분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고 글로 읽어보고 한 거, 그런 뭐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닥친 그 현실. 닥친 현실, 세상에 사람, 우리 선배,  우리 선조들 우리 앞에 걸어간 모든 사람들이 닥친 그 현실 그 현실, 현실  가운데에 만일 현실이 백 종류라 하면 백 종류의 그 현실 가운데에 이 현실은  나는 안 닥칠 것이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그런 현실은 나는 안 닥칠 것이다  하는, 모든 사람들이 통과하고 지나간 그 현실 중에 우리들에게는 닥치지 안 할  그런 현실들이 몇 개나 있습니까? 자, 몇 개나 있습니까? 한번 말해 봐요. 열 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스무 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한 개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저 뒤에는 어째 저 뒤에는 손  어짭니까? 뭐 나팔을 불어도 동하지 안하고 춤을 춰도 동하지 안하고 울어도  동하지 안하고 예수님이 탄식한 거처럼 그래.

 우리는 역사에 지나간 모든 사람들이 겪은 그 현실. 그 현실은 어떠한  현실이든지 그 현실을 나도 당할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계산해야 됩니다.

그렇게 계산해야 되지 그래 계산하지 안하면 우리는 속는 사람입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은 나도 당할 현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자, 갑자기 누운뱅이가 됐습니다. 이 현실은 내가 안 당할 현실입니까? 모르요.

갑자기 문둥병이 들어 가지고 그만 온 몸이 썩고 자꾸 이 손가락 마디가 자꾸  썩어서 내려앉습니다. 그런 현실은 우리가 안 닥칠 것이라고 단정짓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런 사람 있습니까? 없어.

 여러분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지나간 모든 현실은 말만 들어도 껌쩍 껌쩍  놀래고, 뭐 제 삼자로 구경만 하고 말만 들어도 껌쩍 껌쩍 놀라는데 그런 현실이  우리에게 와서 만일 부딪힌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현실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신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만들어 준 현실로 그때도 변동 없이 믿겠습니까? 그때도  믿겠습니까? 그때도 믿을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하, 잘 든다. 네, 됐어,  됐어. 믿지요. 그렇지요, 뭐.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할 것이 아니라 거기 대해서 앉아서 예산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는 것이 뭐이 기도입니까? 그 기도가 '주님이여, 내게,  내가 갑자기 문둥이가 될란지, 갑자기 차사고로 그만 아랫도리가 끊어져 버리고  이제 계란 모양으로 동글동글하게 그런 자가 될란지, 또 어떻게 될란지, 내가  어떤 매장을 당할란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봅니다. 고요히 앉아서 자꾸  계산을 해 봐요. 자, '이것이 오면 어짤랍니까?' '그때도 믿게 해 주옵소서.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주신 현실이라는 것을 내가 믿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또 '아, 그때에 내가 저 소련에, 소련에 탄광에 끌려갈런지 모른다. 누가  압니까? 모릅니다. 탄광에, 탄광에 끌려가면 그때는 내가 어떻게? 그럴 때도  주님이 그 탄광에 나를 끌고 가신 사랑의 주님이 인도하신 것을 나로 하여금  믿게 해 주옵소서' 자꾸 이 기도를 합니다. '이런 현실도 사랑하는 주님이,  겨자씨를 땅에 심은 것처럼 이런 현실도 나에게 주신 것은 내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 주신 현실이라 이렇게 이런 현실도 저런 현실도 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서 주신 현실로 내가 믿고 요동치 않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자꾸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해 가지고 이런 것도 해 보고 저런 것도  해 보고, 이러니까, 사람이 그 닥치기 전에 이것도 돼 보고 저것도 돼 보고 어떤  거 다 돼 봅니다. 모두 다 돼 봐요.

 이러니까, 뭐 잠은 주님을 위해서 잠을 자지, 주님을 위해서 잠을 자지 뭐 일이  바빠서 잠잘 여가는 없어요. 사실 주님 위해서 잠을 좀 자야 되기 때문에 자지  뭐 잠잘 여가 없는 것은 이것도 한번, 문둥이도 한번 돼 봐야 되지, 거지도 한번  돼 봐야 되지, 팔 병신도 돼 봐야 되지. 또 반신불수도 돼 봐야 되지. 또 외통  눈도 돼 봐야 되지, 소경도 돼 봐야 되지, 벙어리도 돼 봐야 되지, 문둥이도  한번 돼 봐야 되지. 거지도 한번 돼 봐야 되지, 또 꺼꾸로도 한번 달려 봐야  되지, 탄광에도 가 봐야 되지 일이 바쁩니다.

 그런 거 다, 이제 앉아서 모든 거 다 예상해 보고 예산을 해 봅니다, 그럴 때는  나는 어떤가 예산해 보고 '아이구, 그럴 때는 나는 안 되겠다. 주여! 이럴 때에  주님이 주신, 만들어 주신 환경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인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또 기도합니다. 자꾸 기도해요. 기도해 봐요.

기도하면. '주님이여, 이제 내가 지금 소련에 탄광에 끌려가 가지고 아주 사람  없는 아주 깊은 지하층에 가 가지고 내가 석탄을 파도록 거기 끌어다 넣어  놨는데 그건 죽일라고 그렇게 넣어 놓은 것인데 그럴 때는 내가 어떻겠습니까?'  그럴 때는 가슴이 답답하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이런 환경을 주셨다 하는 것을 믿을 만한 믿음이 빈약할 때 있다  말이오. 믿음이 빈약해. 믿음이 빈약할 때 있어요.

 거기에서 자꾸 예산을 해 본다 말이오. 예산을 해 보니 '야, 그럴 때야 참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이렇게 이 환경에다가, 겨자씨를 땅에 심으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기다가 나를 심어 줬다. 그러면, 심어 주었으니까, 겨자씨,  겨자씨가, 겨자씨가 성장되는 곳은 땅 속인데, 틀림없이 겨자씨가 성장되는 곳은  땅 속인데. 내 믿음이 성장되는 곳은 현실인데, 겨자씨가 땅 속에서 썩힐라고  모아드는 데서 썩지 안하고 신앙을, 생명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그 흙을 다  잡아먹고 장성한 거처럼 내가 이 현실에서. 이 탄광 속에 끌려온 이 현실에서도  내가 주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내가 벗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이 소련은 전부 내 밥이 된다' 요렇게 할 수 있는 요런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될 터인데 그게 문제라 말이오.

 예산을 해 본다 말이오. 예산을 해 보고 안 되면 또 기도합니다. '주여, 그럴  때 믿게 해 주옵소서' 한 번 기도하고, 한 번 기도하고 나면 기도하면 기도할  마음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주시요. '주님이여. 그럴 때 나에게 이  믿음을, 겨자씨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합니다. 또. 또 기도하고 싶습니다. 또 기도. 자꾸 기도하니까 자꾸 기도가,  나중에 가서는 '주여 믿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거는 확고합니다! 내 그때  굳세게 해서 그런 거 다 이기고 남음이 있겠습니다' 이제 이 확실한 믿음이 자꾸  그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자꾸 이래 나가면 내 믿음이 그때 자꾸 자라 가지고 그런  일들이 와도 놀래지 안하고 확고히 승리한다는 것이 내 속에 확고한 그 증거가  나타난다 말이오. 증거가 나타나.

 그러니까, 기도하면 대번 들어 주시요. 기도하면 대번 들어 주십니다. 대번  들어 주시고 효력을 대번 주시는데 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면 혹 대번 주지 못할 거 그런 거 있는 것은 시간이 걸쳐야 될거는 그렇지만  그렇지 않는거는 때깎때깎 즉시즉시 주시요. 이러기 때문에, 뭘 기도하면 안  되고 있는 것은 또 한번, 이제 기도하고 보니까 '아, 이 면을 기도 안 했구나'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보니까 또 '요 면을 기도 안 했구나' 자꾸 기도하니까 이  면 기도해야 되고 조 면 기도해야 되고 자꾸 기도할 게 나옵니다. 그게 뭐이냐?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에 그게 점점 이루어 가는 역사라 그말이오.

 그런 어려움을 닥칠 때에 그때에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라 하는  그것을 우리가 확고히 믿어야 됩니다. 믿어야 되는데, 그 현실 닥친 현실에는,  현실이 닥쳤는데 그 현실에 '자기에게 가치가 많고 적고, 현실이 더 자기에게  적은 보배고 많은 보배고, 그 현실이 자기에게 많이 좋고 적게 좋고, 적게  유익되고 많게 유익되게 되는 그 현실이 있는데, 그 현실에 유익이 많은 현실은  뭣 보면 알지요? 뭣 보면 압니까? 여기 ○○씨 유익이 많은 현실은 뭣 보고  알지요? 뭣 보고 알아요? 예? ○○씨, 아니라? 아니라? 나는 서부 교회 ○○씨인  줄 아는데, 아니라? 나는 지금 잘, 우리 권찰님인 줄 몰라요. 안면을, 우리 교인  같아서 내가 묻는데.

 그 현실이 내게 복이 적은 현실이 있고 많은 현실이 있고 유익이 적은 현실이  있고 많은 현실이 있는데, 현실에 유익이 많고 적은 것은 뭘 보아서 압니까? 예?  자, 겨자씨를 심어 놨는데. 겨자씨를 심어 놨는데, 옥토인지 박토인지 그것을 뭘  보고 압니까? 썩힐라 하는 토질이 강한 것이 그것이 뭐이냐 하면 그것이 옥토라  그말이오. 이거는 뭐 모래땅이 되어 놔서 넣어 봤자 썩힐라 하는 것도 없고 아무  방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는 자라지도 잘 안 해. 그러면. 여러분들, 현실을  주시는데 현실에 옥토 같은 현실이 좋소 모래밭 같은 현실이 좋소? 아, 현실  중에 천장에 달아 놓는 천장 그 봉지와 같은 그런 현실을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평소에 준비해야 됩니다. 평소에 준비해야 돼요.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 현실에 내 믿음을 죽일라는 것이 많은 것은 옥토요, 내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적은 것은 박토요,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바위돌 위에든지 그렇지 안하면 봉지 속입니다. 이걸 믿어야 돼요.

 그래서 그 현실이 우리의 믿음을 없앨라고 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미리 배웠기 때문에 이 현실은 주님이 나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라 하는  것을 확고히 믿고, 그 다음에는 이 현실은 어려움이 적은 거보다 어려움이 많은  것이 더 옥토다 하는 것도 확실히 가지고 있고. 이 현실에 마찰 없는 그런 전투  없는 그 현실은 봉지 속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바위돌 위에든지 그리 아니면 마사  위에든지 아무 심어 봤자 성장이 되지도 안 할 그런 박토라 그거요, 박토.

 자, 우리의 현실은 좋든지 나쁘든지 수많은 현실이 있는데 그 현실은 주님이  주신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어떤 현실을 닥칠 것인가 예상해 봤는가? 예상해  보는 것은, 인간이 겪은 현실이라 하는, 모든 현실이라 하는 것은 나라고 그  현실을 닥칠지 안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땅 위에 종류라고 있는 현실은 다 나도  당할 각오를 가져야 됩니다. 다 당할 각오를 가져야 됩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나도 그 현실을 주님이 내게 주실란지 모르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현실이라도 '요 현실이야 내게 안 닥치겠지. 이런 참혹한  현실이야 닥치겠나' 하는 그 사람은 그만치 그 자리가 비어서 약해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현실이 오면 저는 뚝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땅 위에  어떤 현실이든지, 무슨 현실이든지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는 예수향만 날린다 하는 거 모양으로 '어떤 현실이든지 주여 주시옵소서!  어떤 현실이든지 주시옵소서!' 이라면서 그저 우리의 기도가 '어떤 현실이든지  주시고 그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뭐 이래 놓으니까 바쁘다 그말이오, 바빠.

 이러니까, 현실을 이거 이것 올지 모르고 자꾸 이렇게 뭣 올지 모르니까 여기  대해서도 기도하고 저기 대해서도 기도하고 모든 거 다 기도하니까, 이 많은  현실을 그걸 사람이 겪을라고 해 봤자 현실 하나 겪을라 하면 적어도 뭐 십 분  현실 한 시간 현실 이래 있다 보니까 그 현실을 많이 겪을 수 없는데, 이러니까,  앉아서 구원 다 이루었어. 책상 위에서 구원 다 이룬 것이야. 이래 가지고 이  현실 닥쳤는데 또 이겨 보고 저 현실 닥쳤는데 이겨 보고, 하, 자꾸 그저 책상  위에서 자꾸 싸웁니다. '주여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라고 이긴다고 이래 가지고  이기고 난 다음에 또 할렐루야 부르고, 그러니까, 책상 위에서 무릎 끓고, 무릎  꿇고 싸워 가지고 수백의 현실을 다 승리로 통과해 놨다 말이오. 통과해  놨으니까, 자기는 그런 현실 닥치지 안할지라도 벌써 그런 현실을 예상으로 다  닥쳤고, 그 현실을 예산으로 계산을 해 가지고 다 승리로 다 승리로 벌써, 벌써  유익을 봤다 그거요.

 이래서 현실을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요동치 안하고 믿어야  됩니다. 이걸 믿어요. 이걸 믿으면, 어떤 사람은 병이 자기 현실에 대한 관념이  잘못돼 가지고 병신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많이 있어. 자기 현실에 대해서  바로 현실관이 바로 되지 못해 가지고 망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 사람이  현실관을 잘못 알아 가지고, 그 현실은 주님이 만들어 주셨는데 주님이 만들어  주신 현실을 저거 아내가 만들어 줬다고, 저거 남편이 만들어 줬다고, 저거 뒷집  사람이 만들고 앞집 사람이 만들었다고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사람들하고 원수가  돼 가지고 싸워서 뭐 살인도 나고 야단이 납니다. 살인도 나고 원수도 나고 이래  가지고 그것 때문에 싸워 가지고 눈도 빼이고 싸워 가지고 팔도 부러지고 이래  병신 되는 거 많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실은 뚝 뚫고 보면 이제 모든 만 사물관이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의 사물관을 가지지 안하고 만물관을 가지지 안하고 이 만물관의  지식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비판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평가가 삐뚤어졌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병이 들어 가지고. '너 눈 먼 거는 그거 때문에 눈멀었다,  너 지금 반신불수 된 건 그것 때문에 반신불수 됐다, 너 벙어리 된 거는 그거  때문에 벙어리 됐다. 너 지금 살림 패가한 건 그거 때문에 패가 됐다. 너 지금  천물 된 거는 그거 때문에 됐다, 너 교회서 쫓겨나는 거는 그거 때문에 됐다'  모두 다 원인이 있어. 전부 병이요. 알겠습니까? 모든 만물관이. 만 사물관이,  만 인간관이 예수님과 같지 안하고 삐뚤어진 고게 죄이기 때문에 그 삐뚤어진  죄값으로 모두 다 생겨졌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만일 말하면. 누구를 말하면 '나는?' 하면 말을, 거기 말해서, 너는  뭣이 삐뚤어져 가지고 무슨 병이 들었고 너는 뭣이 삐뚤어져 무슨 병이 들었고'  유력한 목사라고 하면 그거 다 알아야 돼요. 그걸 그래 알아야 돼요. '너는,  너는 뭐이 삐뚤어져 무슨 병이 들었고 너는 뭐이 삐뚤어져 무슨 병이 들었고,  이러니까, 너는 뭣을 회개해야 되고 너는 뭘 회개해야 되고' 그거 회개하면 돼.

자기에게 해당된 고칠 거 회개할 거 그거 회개하면 딸칵 나아 버려요. 이러니까,  이번에 병 고칠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서 요대로의 믿어요. 믿으면 그만 병  나아요. 믿으면 병 나아. 뭐 아까 어떤 할머니 여기 와 가지고 뭐 '나는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아프다 하는데' 그거 모두 다 아픈 데가 여러 군데 있으면 죄가  여러 군데 있어요. 죄가 여러 군데 끼여서 죄 그놈이 진통을 줘요. 진통을  주니까 말씀을 들을 때 그 죄 하나를 쏵 뽑아내 버리고 쏵 뽑아내 버리고, 뽑아.

다 뽑아 내면 낫는 줄도 모르게 나아서 다 낫는데. 이러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언제  그만 아픈 거도 하나도 없고 '아, 언제 나았는지 모른다.' 낫고 난 다음에 나은  줄도 몰라. 그렇게 나아요.

 이러니까, 육신의 병 나은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 영의 병, 마음의 병 행동의  병, 행동의 병, 그 병 고친 것이 문제라. 그 고쳐진 증거로 육체의 병 고침을  주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반신불수가 왔는데 '이제 네 죄를  사했다. 소자야 안심하라'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네 병이 나았으니 평안히  가라' 하지 안했습니까?  여러분들, 자. 병이 무슨 값입니까? (죗값) 병이 무슨 값입니까?(죗값) 죄를  죽이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회개) 그 소리는 작다. 죄를 죽이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회개) 죄를 죽이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회개) 병 낫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회개) 회개면 다 돼. 인제 뭐 제법 다 알아서 이제 치료법을 다  알았다 말이오. 고라면 되는데.

 내가 어디까지 가다가 또 했지? 아니야, 그거는. 이제 겨자씨 믿음 말하다가  그랬지. 이러니까, 현실을 주님이 주신 것을 확고히 믿는 이 믿음을 가질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우리 기도는 그것이오. '주여, 현실은 주님이 주신 것을  확실히 믿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래 봐요.

내가 그렇게 그 설교를 '간단한 기도를 해라.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해라' 이래도 뭐 효력을 보는지 안 보는지 '서부  교회 교인 쳐 놓고 한 사람도 거기에 대해서 '아, 기도의 좋은 방법을 줘서, 참  가르쳐 줘서 고맙습니다. 아주 그라니까 참 효력이 있습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둘 밖에 안 봤어. 여반에 하나 봤고 남반에 하나 보고, 남반에 하나 보고  둘 밖에는 못 들었어. 둘이, 남반에 한 사람 오더니만 '아, 참 목사님, 기도에  대해서 그렇게 아주, 아주 기도에 대해서 실패 없는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참  좋습니다. 그래 가지고 기도하니까 기도할수록 힘이 나옵디다.' 밤새도록, 또  요렇습니다 딱 믿고, 이 믿음이 있어야 되고, 소망이 있어야 되고,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되고, 이렇게 돼야 되는데, 고게 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해야 실패 없지 헛김이 들면 헛일이라. 헛바람이 나면 안  이루어져. 믿음이 없어 쭉쭉 쭈그러졌든지 간절이 없든지 소원이 없든지 헛김  들면 안 돼. 또 믿는 믿음이 없으면 안 되고, 예수님의 이름도 안 붙이면 안  되고, 그 어찌 됐든간에 간절한 소원과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과 이제 믿음과 소원과 간절, 이 세 가지에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면 똘똘 뭉쳐졌으니까 작아도 폭탄이라, 작아도 폭탄.

이거는 듬박 큰 일이 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래 가서 기도를 하니까 밤새도록 기도해도 잠도 안 오고, '주여  이거 이러니까' 자꾸 힘이 나고 기도가 됩디다" 그 사람은 그 교훈을 좀 효력을  더러 본 것 같아. 입술로만 나한테 그래 말하는지 실지로 신앙을, 그렇게 기도로  해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어. 여반에 또 어떤 사람 알고 있어. 내가 아래는  몰랐는데 지금은 내가 그 사람 생각이나. 남반에 누구라 하는 거 생각나고  여반에 누구라 하는 거 생각이나요. 다른 사람도 그런지 도무지 거기에 대해서  효력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을 느끼지를 안해, 모두 다.

 기도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실에 대해서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이렇게  믿어지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 어떠한 현실이 닥칠지 모르니 그 현실이  닥칠 때에는 그 현실의, 현실의 열도가, 그 현실 불미가 뜨겁기를 백도가 되니까  백도에 안 타 죽을라면 그만치 뜨거워야 될 터이니까 그거 계산해 가지고 이게는  요만치 믿어야 되겠다 조만치 믿어야 되겠다 하니까, 뭐 그 예산을 하고 보니까  어떻게 주님에게 부르짖을 게 많은지 자꾸 연구할수록 주님에게 부르짖을 게  많습니다. 자꾸 많애.

 그러니까, '주여, 이것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저것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자꾸 자꾸 자꾸 이라니까, 주님은 '에이, 이 거지 새끼, 자꾸  달라고만 하고' 밉상으로 봅니까 그렇지 안해. 달라 하면 막 당신은 좋아서 입이  벙긋거려. '그래, 그래. 그래, 또. 뭐? 뭐? 뭐? 뭐?' 거기에다 그저 '아멘'  '자.' '아멘' '자.' 이래 자꾸 주시고 이와 같이 하는데 마귀는 죽어지고, 죄는  죽어지고, 사망은 죽어지고, 이제 생명의 역사는 자꾸 일어나고 성장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현실은 주님이 주신 것인데, 그 현실은 고거와 나와 둘이 싸울 때에,  그 뒤에, 싸울 때에 내가 지면 뭣 됩니까? 예? 내가 지면 뭣 되지요? 세상! 내가  지면 세상, 겨자씨에서야 흙이 되지만 우리야 지면 흙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면 세상 되지요. 내가 지면 세상 되고.

또 내가 이기면 현실은 내 밥이 되지요. 그 현실은 나로 하여금 자라게 만드는  것이 되고 말지요. 그러면, 그 현실은, 현실은 대적하는 것이 많은 것이  옥토입니까 대적하는 것이 없는 것이 옥토입니까? 그러면, 옥토를 원해요 박토를  원해요? 손 한 번 들어 봐요. 옥토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아따, 다  옥토 원하기는 원한다. 네, 옥토 원해야지요. 옥토 원하지요. 요거 꼭 잡아요.

꼭 잡아요 놓지 말아요. 하나님의 진리는. 모르기 때문에 이 각도로 말하고 저  각도로 말하고 자꾸 말해 놨지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 요거 하나만 꼭  잡고 이겨도 세상 다 이겨요. 다른 성경 몰라도 다 돼요. 요거 하나 쥐면 다  돼요. 이러니까, 이리 모르니까 이리 알도록 하기 위해서 저리도 하고 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만 잡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옥토에 심어 주기를 모두 원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제 이 흙으로  더불어, 흙의 세력이 얼마나 강합니까? 모든 거 다 흙을 만들었는데. 그러기  때문에. 흙하고 싸워 가지고 흙이 정복해서 흙을 만들지 못한 게 없습니다. 흙을  만들지 못한 게 없어. 흙하고 싸워 가지고 흙이 만들지 못한 거. 흙 제것 만들지  못한 거 없습니다. 다 만들었소. 흙이 뭐 뭣 하고 싸우든지, 쇠하고 싸우든지  돌하고 싸우든지 뭐이든지 싸워 가지고 흙을 못 만들어 본 것이 없습니다. 흙을  못 만들어 본 게 있는데 흙을 못 만들어 본 것은 뭣입니까? ○○○목사님, 흙을  못 만들어 본 거는 뭐이지? 예? 뭐이지? 흙이 진 거는 뭐이라? 흙이 뭐한테  졌어? 예? 그래. 똑똑히 정신 딱 차리고 그래 가지고 자꾸 알며 들어. 그까짓  가지고, 봐. ○○○목사님 말이오, 주먹 이까짓 거 아무 소용없어, 우리의  능력은 진리가 우리 힘이요 영감이 우리 힘이오. 예수님의 피가 우리 힘입니다.

이거 하면 세상이 못 이겨요.

 이러니까, 세상을 이기는 힘은 뭣이 이긴다고요? 또. 세상을 이기는 힘은  뭐이라요? 세상을 이기는 힘은 뭐이라요? 생전 성경 한군데 있으면 그것만  자르르니, 이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만날 그런 거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뭐이라요?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뭐이라요? 세상을 이기는 힘은 생명이라. 내치  배워 놓고. 흙을 이기는 힘은 뭐이라요? 그라면 내나 알면서. 세상을 이기는  힘은 뭐이요? 생명! 믿음이 이긴다 그 말은 뭐이냐 하니 주의 대속의 피와  영감과 진리를 인정하고 고게 복종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표시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환경과 우리 현실을 이기는 것은 뭘로 이깁니까? 믿음으로  이긴다 이라면 너무 거리가 멀어 가지고 그만 그 사이에 고기 다 빠져 버려요.

그물이라고 떡 쳐 놓고, 고기 잡힐까 싶어서 그물 쳐 놨는데 그물 뻐뜩 들어  보니까 고기 한 마리도 없습니다. 그 구멍이 이만씩 하니까 다 빠져나갔다  그말이오. 믿음이라 하면 너무 구멍이 멀어 가지고 다 빠져나가 버리요. 이제  거기에 뭐이냐 하면 이 예수님의 피, 영감, 진리 이 셋이 합해서 우리의  생명인데. 이 셋이 합해서 우리 생명이니까 이 셋을 내가 양보치 안하고 이 셋만  가지고 있으면 나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현실은 다 나에게  밥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예수님의 삼대 대속을 입고 영감과  진리대로의 내 생활을 양보하지 안 하고 요대로만 가지고 있으면 현실은 높은  것이나 낮은 것이나 큰 거나 작은 거나 다 내 밥이 됩니다.

 그러기에 밥이 되는데, 그 현실에 어려운 현실이면 좋은 밥입니까 쉬운  현실이면 좋은 밥입니까? 어떤 게 좋은 밥이라요? 어려운 현실이 좋은 밥이라.

이제 알기는 압니다. 어려운 현실이 좋은 밥이라, 이라니까. 소비에트 탄광에  들어가 가지고, 아무도 없는데 탄광에다 잡아넣어 놓고 이제 '네 이놈 예수  믿을래' 하고 거기 잡혀 들어갔으면 그 현실은 누가 준 거라요? 주님이 줬어.

그거는 영양이 많소 적소? 영양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영양이 많소 적소? 그  현실 그라면 원해요 원치 안해요? 자. 원하는 사람 한번 손 한번 들어 봐요.

하이고, 만일 이래서, 주님이 굉장히 좋아서 막 뛰고 굴리고 굉장할 것입니다.

네. 그 좋아요. 주님이 주시면 뭐이든지 좋습니다. 그걸 믿음을 가져.

 우리 이 말한 것이 이라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그때에 우리가 그  현실을 밥으로 먹고 우리 겨자씨가 쑥 커 나가는 그것은 그때에 무슨 힘을  가지고 그것을 잡아먹을 수 있어요? 생명! 생명이 몇 가지지요? 세 가지!  하나는? (예수님의 피) 하나는? (영감) 하나는? (진리) 그래 가지고 피와 영감과  진리를 양보하지 안하고 거기에서 주님의 피를 입고 영감대로 진리대로 하다가  그 사람이 거기에서 완전히 장성해 가지고 그 대로 승천해 버렸어. 그대로  승천해 버렸어. 거기에서 순교했어. 순교했는데, 이다음에 그리스도의 그 심판대  앞에 가 보면 이렇게 큰 현실 영양 많은 현실을 닥칠 때에 그 현실을 잡아먹고  아주 장성한 믿음으로, 장성한 겨자씨로. 영광의 믿음으로 나타나 가지고 오는  거 그때 우리가 눈으로 많이 볼 것입니다. 눈으로 많이 봅니다. 여러분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님의 도에는 제한이 없어.

 그러기에, 그 탄광이든지 아무도 모르는 어떤 구석에 어떤 속에서라도 그  현실은 누가 줬어요? 그 현실은 나를 위해 줬어요 나를 죽으라고 줬어요?  그러면, 그 현실은 거기에 대적이 강하면 좋아요 약하면 좋아요? 강한 것이  옥토요 약한 것이 옥토요? 그러면, 그때에 그것을 잡아먹은 데는 무슨 힘으로  잡아먹어요? 생명의 힘으로 잡아먹어요! 생명이 몇 가지라요? 세 가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때 나는 그 피와 성령과 진리를 요동치  안하고 그대로 나는 살면 그 현실은 잡아먹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소련도  잡아먹고 세계도 잡아먹고 이래 가지고 우주를 점령하고 차지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란지! 잠시 후면 주님이 나타나실 때 이렇게 승리하고 모든 것을 점령한  사람들을 우리가 얼마든지 우리 눈으로 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에 우리는 그것을 잡아먹고 그것에게 지지 안하면 지지  안하면, 그 겨자씨 믿음을 고래 가지면 이제 겨자씨 믿음은, 겨자씨 믿음은 땅  속에 묻힌 것을 좋아하고, 대적이 많은 것을 좋아하고, 대적에게 삼키지 안하고  대적을 이 생명으로 삼키고 그라면 그것이 다 내 밥이 돼서 내가 자라게 됩니다.

이러니까, 자라게 돼서, 겨자씨 같은 지극히 작은 데서 시작해도 좋습니다.

겨자씨 믿음을 말하는 것은 그 이상 쉬운 것이 없고, 그 이상 낮은 것이 없고,  그 이상 평범한 것이 없는 아주 그런 현실을 말합니다. 아주 쉬운 현실, 아주  쉬운 현실. 어디까지 작은 쉬운 현실이라도 그 현실에서 현실은 주님이 주신  것인데 그 현실이 내 신앙생활을 삼켜서 현실화시킬라고 애를 쓸 때에 나는  현실에게 삼켜지지 아니하고 현실 거기에서 이 세 가지 생명으로 살라고 애를  쓰고 이라니까 고게서 이겼습니다. 고게서 이겼습니다.

 이러면 고게서 이기고, 또 삼키고, 또 삼키고, 그래 한 사날 삼키고 나니까  어느 정도 자랐겠습니까? ○○○목사님, 한 사날 삼키고 나니까 어느 정도  자랐지? 생전 농사 안 지어 보니까 뭐 뭘 그만치 자라? 이만치 자라, 한 사흘  먹으니까? 사흘 먹으니 이만치 자랐대요, 이만치 자라. 자. 이래 가지고 이렇츰  무식한 목사님이 뭘 하겠소? 이 자연 계시를 다 이런 데, 자, 한 사날  먹었으니까 ○○○목사님 얼마나 자랐겠소? 뭐라 하노? 또 뚱딴지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 사날 먹었으니까 겨자씨가 얼마나 자랐겠소? 뭐라 하노? 또 뚱딴지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 사날 먹었으니까 겨자씨가 얼마나 자랐겠어? 자, ○조사, 녜.

보면 뽀야이 말이지요, 좀 불은 것이 말이요, 눈이 틀라고 쪼그매 생겨집니다.

그런데 뭐 이만치 자라기는, 이만치 자라요? 이제 그랬는데. 자꾸 먹어 또 한  달을 자라면 얼마나 자랐겠소? ○○○목사님, 예? 허허허 참. 하, 약게 또  그렇게 맞췄네. 먹은 것 만치 자랐어? 그래 먹은 거 만큼 자랐지 자라기를. 아주  변통한 대답은 대답인데. 한달 먹으면, 아마 한달 먹었으면 어북 요만큼 자랄  것이오. 한달 먹었으면 요만치 자라요, 겨자씨가. 요만치 자라고,  이래서 자꾸 먹으면 자라고, 자라고 자꾸 먹으면 자라는데 그것이 믿음이  더하여지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믿음이 더해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장성한 믿음 되는 방법이 어떤 방법인고 하니 그것이 장성되는 믿음의  방법입니다. 믿음이 장성해지는 방법은 이 외에는. 그 다음에 약간 말해도  그것도, 이것이 근본이요 그것은 하나의 부속으로, 부식으로 붙여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자라는 것은 요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은 내 이 생명을 삼킬라고 애를 쓰고. 나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어. 우리 생명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가 우리의 영을 살려서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이러니까, 이런데,  내가 생명으로 살라 하는데 이 생명을 죽일라고 현실이 달려듭니다. 현실이  달려들 때에 나는 현실에게 죽지 안하고, 현실에서 나는 안 죽을라고  뻐득거리고, 영감과 진리를 양보 안 할라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할라고  애를 쓰다 보니까 그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말이오. 그 시간이 지나가 버렸어.

그 시간이 지나갔으면 그 현실은 제 밥으로 먹었습니까 못 먹었습니까? 제  밥으로 먹었어. 먹었어. 먹었어. 이라니까, 차차차차 이 제 하루 자라고 한 달  자라고 두 달 자라니까 나무같이 커다랗게 커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현실을 한 번 닥쳐서 먹으니까 쪼끔 자랐고 두 번 닥쳐서  두 번 현실 먹으니까 그렇고 열 번 현실 먹으면 그렇고 백 번 현실 먹으면  그렇고, 그러면, 세상에서 현실을 많이 먹으면 좋아요, 현실을 많이 닥치면  좋아요 현실을 적게 닥치면 좋아요? 그러면, 현실을 적게 닥치면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고 싶은 사람이오 죽고 싶은 사람이오? 죽고 싶은 사람.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싶은 그거 안 됩니다. 이제 죽을 수 있는데, 죽어,  영양이 많아서, 영양이 많아서 그놈 다 먹으면 훅 자랄 수 있는 그럴 때는 이제  내가 영감과 진리로 세상 생활을 끝내서 순교를 하지만 다를 땐 그런 거 원하는  거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렇게 한 현실 한 현실을 요렇게 승리하면 어디까지 도달하게 되느냐?  이 믿음이 어디까지 도달하게 되느냐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렇게 현실에서 한  현실 현실에서 이 믿음으로 승리해서 요렇게 나가게 되면 이 믿음은 어디까지  자라게 되느냐?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고  명령하였을 것이오' '명령하였을 것이요 그대로 명령하면 그대로  순종하였으리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입니까?  요거 쪼끔 어려운데, '뽕나무를 뽑히어' 거기에 뽕나무는 여섯 아름 되는 거  있답니다. 그 지방에는 뽕나무가 제일 크대요. 여섯 아름 여섯 아름 되는  뽕나무도 있는데 그걸 손도 안 대고 쑥 뽑혀 가지고. 또 구루마에 싣고 가지도  안하는데. 차로 싣고 가지도 안하는데 저 바다까지 쑥 운반돼 가지고. 또 거기에  가서 또 그 바다에서 물이 출출 내려가는 데 거기다가 '심겨라' 자, 여러분들 그  뽕나무를 보고, 그 뽕나무. 여러 아름되는 뽕나무를 보고 '뽕나무야 뽑혀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네가 이 뽕나무더러 뿌리 뽑히라 해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를 하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서 '이  뽕나무야 뽑혀라' 이렇게 하는 하나님의 그 뜻이 있어도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이 생겨진다 요거 잘 알아야 돼요. 요거 잘 모르면 헛일입니다.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라 하였을 것이요' 하는 거.

 그러면 믿음이 장성하면 하나님의 뜻이든지 아니든지 무엇이든지 자기가 그렇게  명령하면 다 그대로 됩니까? 그대로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러기에, 여기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뭐이냐? 하나님의  뜻이라도. 하나님의 뜻인데,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뜻인  줄 다 알고 있지요? 하나님 뜻인 줄 다 알고 있지 안해요? 알고 있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 가운데에 다 알고 있으면서 믿는 성구도 있고 안 믿는 성구도  있으니까 안 믿는 성구는 왜 안 믿습니까? 우리 ○기사 한번 대답해 봐. 왜 안  믿어? 안 믿는 성구는 왜 안 믿지? 이거 하나님 말씀 가지고 좀 새롭게 만들어야  되지 안 되겠다 이거.

 자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요 뜻 아니오? 그러면. 그대로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까 안 됩니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람들이  합니까 안 합니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 하는 사람 많아. 왜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뜻인데,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도 없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나님께서 보증까지 해 놓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뜻을 왜 우리가 그대로 순종하지 못합니까? 왜 못 하지요? 왜  못 하는고, ○○○목사님 왜 못하지? 예? 아니. 왜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가 다 알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다 된다고  했는데,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하면 그대로  된다고 했는데 왜 우리가 하나님 말씀 가운데에서 어떤 거는 그렇게 될 줄 알고  믿고 행하고 어떤 것은 된다고 하지만 행하지를 안하고 하는 거 왜 행하지  안하지? 엉뚱한 대답만 자꾸 해. 저러면 암만 알아도 팔십 점밖에 못 받는다. 저  ○조사,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말 답이 맞소? 왜 성경 가운데 어떤  성구대로는 실행을 하는데 어떤 성구대로는 왜 실행을 안 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예?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 독침 앞에 있으면서, 독침 앞에 있으면서 '전능자가 너를 품에 안고 있다,  전능자가 너를 손바닥에 놓고 있다' 전능자의 손바닥에 있으면 독침 앞에서  염려할 것이 있어요 없어요? 성경은 염려하라 했어요 염려하지 마라 했어요?  기뻐하라 했어요 두려워하라 했어요? 왜 그런데 기뻐하지 안해요? 믿어지지  안해서 그래요. 자, 믿어지지 안해서! 믿어지지 안 해서! 말씀대로 못 하는 것!  믿어지지 안해서! 말씀대로 못 하는 것!  이런데. 독침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구출해 주신다는 것 그것을 믿는  믿음이 그것이 어렵습니까 여섯 아름이나 되는 뽕나무를 쑥 뽑히라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뽑히라고 말씀했을 때에 그 뽑히라고 하는 그것이 더 믿기가  어렵겠습니까? 어떤 것이 믿기가 더 어렵지? 이거 또 뭐 혼돈 돼 모르네. 자,  독침 앞에서 빨갱이가 독침 가지고 죽일라 하다가서 살아 나온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지. 여섯 아름 되는 뽕나무를 이제 뽑히라 한다고  뽑힌 일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여러 수십 짐 되는 뽕나무가 이제  엉금엉금 걸어서 바다로 가라 한다고 가는 거 그런 거, 그런 일 있어요 없어요?  쿨쿨 내려가는 바다에다 여러 수십 짐 되는 뽕나무를 꼿꼿하게 심군다고서 심긴  그런 일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 역사에 없는 운반, 역사에 없는 심기는 일,  역사에 없는 근절하는 일, 이제 역사에 없어서 천하 사람들이 다 부인해도  겨자씨 믿음으로 자란 너는 부인이 안 되고 '믿습니다' 하고 명령하였을 것이요  그대로 순종한다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자라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겨자씨 믿음으로 기르면 어디까지 장성해져요? 천하 사람이, 역사의 사람이 다  못 믿어도 그 사람은 그것도 믿어져요. 하나님의 뜻이면 다 믿어져요. 신구약  성경에는 다 되는 것들인데 다 믿어져요. 이렇게 믿음을 믿어 가지고 영생도  믿어지는 것이고 하나님도 믿어지는 것인데, 이제 공연히 믿는다고 거짓부리로  스스로 속아 가지고 '믿습니다. 전능하신 줄 믿습니다, 완전자로 믿습니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습니다, 주권 개별 섭리를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거짓말쟁이라 믿지는 않는다 그말이오.

겨자씨 믿음에서 이 믿음을 길러 나가야, 하나 하나 현실에서 투쟁해서 주님의  말씀과 영감대로 요대로 현실에서 내가 현실에서 방해하는 것들로 더불어 싸워서  이겨서 현실을 통과해서 그 현실을 통해서 내가 자랐고, 그 현실을 통해 자랐고,  하나님 믿는 믿음도 자랐고, 순종도 자랐고, 바라보는 것도 자랐고, 의지하는  것도 자랐고, 점점 자라니까 신구약 성경에 있는 말씀이 다 믿어집니다! 다  믿어집니다! 다 믿어지고 다 순종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해도 잘 모두 못  듣는 거 같으니까 맛이 없구만. 딱 마치지를 안해.

 자! 그라면 뽕나무더러 명하여 그라라 했으니까 이것은 자기에게 권리가 있어  무엇이든지 자기 말하는 대로 다 된다 그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 말씀은  인간들이 다 자기 자율과 경험과 주관과 체험으로써 이해가 되는 것은 믿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안 믿는데, 뽕나무 문제는 이거는 이해라 하는 건 천부당  만부당한 일들인데, 이것들이 전혀 이해될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은 뜻이지만  이해될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은 이해된다는 하나님의 뜻이 의심 없어 믿어져서  천하 인간이 다 부인할 수 있고 역사에 없는 하나님의 뜻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다 믿고 그대로 담대히 명령할 수 있고 또, 명령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명령할 수 있고 명령한 대로 그것들이 다 복종할 수 있는, 믿음에 확신하는,  모든 인간의 역사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믿는, 역사를 부인하고 초월한 믿음을  가진 것과 그 믿음을 가진 것이 능력이 있어서. 믿음을 가진 것이 능력이 있어  모든 만물들이 다 복종할 수 있다 하는 믿음의 능력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이렇게 겨자씨 믿음으로 한 사람은 자기 주관을 뭐이든지 자기 주관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뭐이든지 다 할 것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말하는 대로 다 그대로 되리라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까? 전자요 후자요? 인제  어쩌면 좀 아는 거 같다만, 알기는.

 그것은 '이 뽕나무를 명해서 바다에 심기라 하였을 것이요 네 말한 대로  순종하였으리라' 하는 것은 그 자기의 주관이, 자기의 주관이 권위가 있다는  말입니까 자기 주관은 완전히 죽어 버리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모든 그 권위가  이제 모든 역사와 모든 역사 세계를 다 초월한 무한의 그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무한히 자기를 부인하였고 하나님을 무한히 확신한다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자기 주관의 권위요 객관을 믿는 믿음의 권위요? 요거 알았으면  다 됐어. 요거 알았으면. 요거 알고 믿음으로 자라요.

 그러면 겨자씨 믿음으로 자라면, 그 겨자씨 믿음을 길러 가면 어디까지  자라간다고요? 예? 녜. 뽕나무 뽑히는 것도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그것은 아주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비역사적이요 비통계적이요 도무지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 도무지, 온 세상이 다 부인해도 하나님의 뜻을. 온 사람의 다 부인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도 이 사람은 믿고 단행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믿고 단행할 수 있다' 이래도, 속에 뭐이 알아 있으면 '믿고 단행할 수 있다'  하면 '아멘! ' 이게 나올 건데 그게 없어. 속에 그게 없어. 퉁 비었어. 폭탄  속에 알맹이가 없다 말이오. 고게 정말로 알아지면 이제, 자기가 평생에  탄식하기를 '아, 저 사람은 믿어지는데 나는 믿어지지 않노? 성경에 있는 것이  저 사람 믿어지는데 나는 믿어지지 안하노?' 믿어지지 안 한 데에 포원이 되고  탄식이 된 사람은 '네가 믿어지는 믿음을 더 주겠다. 믿어지는 믿음을 더해  주겠다'  이래서 믿어지는 믿음, 모든 세상이 다 믿을 수 없는 믿음, 다 세상이 부인할  수 있는 믿음, 온 세상이 근방에 오지도 못하는 그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고 순종하기 어려운 그것도 너는 믿고 순종할 것이요 그 순종만 아니라 만물  순종이 다 되리라 하는 이것을 말씀하신 것인 것입니다. 이래도 아무 폭탄이  없어. 아무 감각이 없어. 그래도 뭐 아무것도, '뭐 그럴 필요가 뭐 있어야지'  아, 이 도시에는 불량자들이 많아 가지고 정절 부인들이 가면 전부 욕을 당하고  다 정조를 뺏긴단다 하는데 거기 갈 때에 막 좋아서 입이 뻥긋 뻥긋 거리는 그런  이제 여성이 있고, 또 걱정하는 여성이 있고, 이제 단단히 이를 갈며 이제 죽을  각오를 하는 그런 여성이 있고 있는데, 그래 뻥긋 뻥긋 웃는 여성은 어떤  여성입니까? 창기라. 창기. 이래 봐야, 이 소리 해 봐야 뭐 아무 감각이 없어.

'주여, 이럴 터이니까 이제 그때에 날, 소비에트에 거기에 아주 인간이 믿을 수  없는 그런 공산주의 속에 어떤 깊은 속에 있어도, 자,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거기에서 내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요 그 현실은 나를 위해서 있는 현실이라 거기에서 내가 생명으로  이기면 그것은 나에게 큰 이제 성장이 내게 온다 간단한 시간에 성장이 온다'  이거 믿는 것이 더 믿기가 쉽겠습니까, 여섯 아름 되는 뽕나무를 손 안 대고  뽑혀 가지고 바다에 가 가지고 심기라 하는 그것이 더 믿어집니까? 어떤게 믿기  쉽겠소? 소련에 간 그게 믿기 쉬워.

 이 말씀하신 것은 최고의 믿음을 말해 놓은 것입니다. 이걸 알아요. 최고의  믿음을, 요렇게 믿음이 자라면 뭐 못 할 것이 없는 최고의 전능의 완성의 이  믿음에까지 자라간다 하는 것을 그 믿음을 우리에게 쉽게 표준해서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써 뽕나무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집니까? 산을  옮긴다는 것도 다 거기에 있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음은 자라가는 것입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얻어  가지고 가는 것입니까? 자라가는 거라. 자라가는 건데 하늘에서 떨어져서 받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져서 받는데 받는 그 방편이 제가 애를 써 가지고 되는  것처럼 하는 그런, 인간 주관으로 볼 때에는 그런 형식 인간 주관 행실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의 믿음은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라간다고 내게 하나 씨 받았는데  씨 받은 그것이 자꾸 자라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라가기는 자라가는데  그때 그때 하나님에게서, 은혜의 믿음을 주시고 주셔 가지고 믿음에 하나 주고  둘 주셔 가지고 자꾸 믿음을 주셔, 받아 가지고 그 믿음이 이제 많아져 가는  것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자라 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고 그 믿음은 우리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도록 하는 것이 진짜라  그거요.

 오늘 오후에는 겨자씨 믿음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요거 놓치지 말아요. 아.

요거 하나만 해도 세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인데,  한번 연습만 하고, 겨자씨의 생명은 무엇을 가리킨 것입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  우리의 생명을 가리킨 것입니다.

겨자씨를, 작은 겨자씨를 비유한 것은 무엇을 가리킨 것입니까? 예? 어떻게 작은  믿음에서라도 자라가면 된다 하는 것을 가리키는 최소의 믿음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겨자씨가 심어진 그 땅은 뭣을 가리킨 것입니까? 예? 세상, 세상인데 내 세상은  어떤 것이 내 세상입니까? 자기의 현실이 자기 세상입니다.

 그러면. 그 현실이 자기에게 복된 현실인지 복이 적은 현실인지 뭘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예? ○○○목사님, 복된 현실인지 복이 적은 현실인지 뭘 보고 알지?  어려움이 많은 현실은 복이 많고 어려움이 적은 현실은 복이 적다. 어려움이  많은 현실은 땅으로 말하면 뭐이라요? 옥토! 어려움이 적은 현실은 뭐이라요?  박토!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것은 뭐이라요? 예? 봉지. 자.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현실은 봉지. 그거 기억해요.

 거기에서 흙은 겨자씨 하고 싸울 때 흙은 뭣 할라고 싸워요? 겨자씨를 흙  만들라고 싸워요. 또 겨자씨는 뭐 할라고 싸워요? 안 죽을라고 싸워요, 안  죽을라고. 예수의 피를 벗지 안할라고, 영감 버리지 안할라고, 진리 버리지  안할라고.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그대로 계속할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은 다 나를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을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방법이 뭐입니까? 자기 현실,  어려운 현실 쉬운 현실 어떤 현실이든지 자기 현실을 자기에게 유익 되게 하는  방법이 뭐입니까? 뭐입니까?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방법이 뭐이요? 어려운  현실이든지 쉬운 현실이든지 모든 현실을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방법이  뭣입니까? ○○○목사님, 예? 유익되게 하는 것은, 먹고 자라는데 뭐이 먹고  자라지? 예? 뭣이 먹고 자라, 뭣이? 뭣이 뭣을 먹고 자라? 생명! 그건 생명이라  해야 돼. 현실을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그 현실을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는 모든 현실을 나에게 유익되게 하고  이것을 버리면 나는 그 현실에게 삼켜져서 현실을 말미암아 나는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기억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배운 거 놓지 말아요. 벌써 네 시간 배우고 난 다음에 그만 입에 젖이  꼭짝꼭짝 자꾸 나와서 게우고 있는데, 입에 젖이 자꾸 넘어 올라 해요. 게울라  해요. 뭐 배가 가뜩 차서, 그라면 안 돼요. 소화를 하고 내일 아침이 어서  닥치기를 원하는 게 되어져야 돼요.

기도합시다.

 이 시간 피의 능력과 피로 말미암은 성령님의 능력과 피로 말미암은 진리의  능력이 합해서 역사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확신을 가지고 요대로 현실을 먹고 자라고 현실에서  삼켜지지 않기를 원하고 현실을 삼켜 믿음으로 장성해지기를 원하는 자에게 이  시간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영병 마음병 몸의 병, 인간병을 완전히 치료해  주시옵소서! 완전히 치료해 주사 주의 영광의 찬미로 주의 형상으로 주의 피와  성령의 능력이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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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 겨자씨 믿음의 3위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90510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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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겨자씨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7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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