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비유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21일 주후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제자들이 얼마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교훈을 받는 중에 그들에게  깨달음이 생겨서 주님에게 이 간청을 한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전 교훈은 하나님 앞에 사람들이 서는 것도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설 수 있고,  또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는 것도 인정받는 것도 다 믿음 하나로만 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온갖 못 쓸 것이 다 치료되는 것도 믿음 하나로 될 수  있고, 또 우리에게 없는 하나님의 모든 좋은 은혜가 내 것이 되는 것도 다 믿음  하나로만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이 중요성을 말씀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주님에게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더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믿음을 더하소서"하니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두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하는 이 한 가지  도리를 말씀해 주시고. 또 그 다음에는 '밭을 갈든지 양을 먹이든지 하는 그  종이 돌아와서 이만큼 내가 수고했으니까 이제는 주인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앉아서 먹으라, 그렇게 후대하리라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라. 오히려 또  주인의 먹을 걸 예비해야 되겠고, 또 예비하고 난 다음에는 주인이 먹을 때에  수종을 들어야겠고, 또 수종들고 주인 먹고 나면 그 모든 것을 다 치워야 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종이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했다고 주인이 잘  했다고 또 칭찬 받을라고 생각지 말고 그저 내가 할 일 했고 값에 팔린 데  비해서는 너무도 주인이 많은 댓가를 주고 샀는데 참 댓가에다 비해서는 쓸모  없는 유익이 없는 종이라 그렇게 생각할 것이니라.' 하는 두 가지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늘 배워서 잘 아는 도리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하는 것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인데, 겨자씨는 종자  중에 아주 작은 종자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종자가 봉지에다가 담아 가지고 어디다가 건조한 데다가  간수하면 그대로 간수는 되지만 그 겨자씨가 움 이 나서 자라지는 못합니다.

자라는 것은 땅 속에 심기워질 때에 비로소 자라기 시작하는 것인데, 심기워지면  심기워지는 그 시간부터 그 겨자씨 생명에게는 여러 가지의 마찰의 애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찰의 애로가 없는 때는 그 겨자씨가 자라지 아니할 수 있는 때요  또 자라지를 못하는 그런 환경 속에 있는 때요. 그 겨자씨가 자랄라고 하면  자라기 시작할 때부터 벌써 여러가지 마찰과 애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찰과 애로는 어떤 것인고 하니 그 겨자씨에 있는 생명은 땅 속에  들어갔으니까 거기서 그 생명이 자랄라고 힘을 삼고 또 자랄라고 하는데 그 땅  속에서는 겨자씨의 그 생명이 자라지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만 가득 찼습니다.

방해하지 않는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땅에 있는 지기도 방해하고 또 우리가 다  잘 모르지만 거기 있는 필요한 모든 뭐 비료 성분의 그런 것도 다 방해하겠고  수분도 방해하겠고 온도도 방해하겠고 그런 것은 다 생명만 없으면 썩히는  것입니다. 그 비료 기운이라는 것도 생명 없는 것은 넣으면 그만 그것이 들어서  썩히는 것이요, 또 온도도 썩히는 것이요, 수분도 썩히는 것이요, 그 모든 것은  다 썩히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그렇게 만드셔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이 없는 풀이든지 생명이 없는 무슨 그 과일이든지  생명이 없는 무슨 생선이든지 고기든지 나무든지 뭐 말할 것 없이 생명 없는  것은 다 땅 속에 들어가면 들어가는 그 시간부터 땅에 있는 온갖 성분들이 다  집중해 가지고 그것을 썩혀서 잠시 후면 흙을 만들어 버립니다. 뭐이든지  그러합니다.

 저는 오층에 정원수를 쪼그매 심어놨는데 작정한 것은 그것입니다. 늘 뭘 할 수  없으니까 오층에 올라온 것은 썩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내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층에서는 쓰레기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저 비니루나 그런 거나 내  보내고 썩을 수 있는 거는 무엇이든지 그만 땅 속에 파묻으면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썩어서 거름이 돼 버립니다. 그러기에 땅의 성분이라 하는 것은  생명 없는 것은 뭐 생선이든지 고기든지 나무든지 풀이든지 과일이든지 무슨  어떤 옷감 같은 거 그런 것이든지 뭐이든지 생명 없는 거는 땅 속에 넣으면 그만  땅에서 그 성분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달라들어 가지고 썩혀서 흙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그 원리입니다.

 그러나 이 겨자씨는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땅 속에 넣으면 그것이  생명이 없는 것인 줄 알고 다른 것을 썩히는 거와 같은 그런 땅의 성분은  달라들어서 그 겨자씨를 썩혀서 흙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땅의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은 달라들어서 그것을 썩힐라고 이렇게 하나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성분들은 겨자씨를 썩힐라고 애를 쓰고  겨자씨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썩지 안하고 썩힐라고 하는 그 성분을 도리어  삼켜서 그 겨자씨가 작은 것이 차차 차차 커질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거기는  반드시 큰 투쟁이 있습니다. 겨자씨를 썩혀서 흙을 만들라고 하는 그 역사와  겨자씨는 썩지 아니하고 썩게 할라 하는 그 땅의 성분들을 이것을 잡아먹고 제가  자랄라고 하는 것과 그런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생명 없는 것은 썩어  버리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혈투에서 그 생명이 없어지지 안하고 오히려 그  생명이 자라갑니다. 차차 자라면 겨자씨 비유에 씨 중에 제일 작은 씨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자라서 나무와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모든 새들이 와서  깃들일 수 있을 만치 커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커지는 것은 다 땅에 있는  성분은 썩힐라고 하고 그 겨자씨의 생명은 썩지 안하고 썩힐라고 하는 그성 분을  오히려 잡아먹고 자랄라고 해서 조금 잡아먹었으면 그 겨자씨가 조금 자랐을  것이고 많이 잡아서 먹었으면 많이 자라게 됐을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믿음  더하여 달라는 그 제자들의 간청에 주님이 믿음이 자라는 방편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거는 비유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과거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인데 하나님의 그 뜻과 연결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새생명을 얻어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 될 때에 무엇으로 연결 됐는고 하니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돼 가지고 생명 없는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자랐습니다. 이 생명이 커 가는 생명입니다. 그러면  죽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죽는 것이요, 생명은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연결되는 것이 그것이 살고 자라는 것인데, 우리는 현실  현실마다 살아갈 때에 그때에 생명 없는 생활도 할 수 있고 생명 있는 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없는 생활은 뭐인고 하니 아무리 주님의 피공로로 중생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 없는 현실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 자기와의 관계가 없을  때에 그때에 생명 있는 생활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피공로로 하나님과 재연결된 것은 기본적 생명이니 그거는  영생하는 생명은 단번에 받은 것이고 여러번 받지 못합니다. 단 번에 받은  것이고, 우리가 이 생명이 영생으로 자라가는 것, 영생으로 자라가는 것은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내시고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각종의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내가 따라서 복종하면, 그 뜻을 내가 복종함으로 그 뜻을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내가 거역하면 그 뜻을 거역함을 인해서 그현실 생활은 하나님과 나와는 관계가  끊어집니다. 기본 연결은 끊어지지 안하지만 우리의 성화 구원인 건설 구원의 이  영생하는 연결은 끊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에서 건설 구원의 이 영생을 이루는 현실에서 영생을  이루는 그 연결은 현실 현실마다 새롭게 닥쳐옵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은 사람은 건설 구원의 생명을 자기가 잡은 사람입니다.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바로 찾았으면 그것은 건설  구원의 영생이 되는 그 생명을 잡은 셈입니다. 그 뜻을 찾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뜻을 자기가 그대로 실행을 하면 그 생명을 잡았던 생명이 자기의 생명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영생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자꾸 영생을 만들어, 영생을 만들어 그것을 저축하고 건축해 가는 것이 우리의  반석 위에 지은 집,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라고 비유한 대로 건설 구원이  자꾸 건설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영생을 주는 그 연결인데, 그 연결을 내가 가지느냐, 그  연결을 버리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이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겨자씨 믿음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내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될 수 있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그 뜻을 내가 잡고 그  뜻대로 할라고 할 때에 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것이 온 세상입니다. 세상은  나와 주님과 건설 구원 성화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 당신의 뜻, 내게 대한 당신의  뜻 명령이든지 요구든지 교훈이든지 무엇이든지 내 현실에 해당되는 당신의 그  뜻을 내가 그대로 이행을 하면 그 현실에서 영생이 되어져 버렸는데 영생이  되어졌는데 그 뜻을 이행을 할라고 하면 온 세상은 거기 대해서 방해하는 것이  세상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마치 겨자씨 생명이 땅 속에 들어가서 자랄라고 하면  땅에서는 들어온 그 모든 다른 것들을 다 죽이고 썩혀 가지고 저와같은 땅을  만드는 것이 땅의 성분이요 그 본질이요 본성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온 세상은 하나님에게 이탈되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세상이요, 악령이 왕이 돼 가지고 거기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이 세상의 본질과 본성은 어떤 것인고 하니  무엇이든지 세상화 시킬라고 하는 것이 세상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무엇이든지  세상화시킬라고 하는 것이 세상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세상과  같지 않는 거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그 뜻을 자기가 가지고 행할라고 하니까  세상과 이질적인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상은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뜻을 내가 가지고 행할라고 할 때에 온 세상은 이것을 어떻게  하든지 변질시키고 시켜서 썩혀서 세상과 꼭 같이 만들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 그것이 여기 겨자씨  생명입니다. 겨자씨 생명, 하나님 뜻이 겨자씨 생명인데 이 하나님의 뜻. 왜  그거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서 겨자씨 생명이라고 비유했는가?  하나님의 뜻은 현실에서 나와 하나님을 연결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현실에서 나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외에는 연결되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에 하나님이 내게 대한 그 뜻을 내가  배반하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고 배반치 안하고 그 뜻대로 내가  이행을 해서 그 뜻대로의 행동 뜻대로의 사람이 되면 나는 하나님과 연결이 된  것이요 그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겨자씨가 심겨질 때에 땅의 그 성분은  썩혀서 땅을 만들라 하는 것이 그것이 땅의 그 본성이요 본질인 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무엇이든지 접촉을 하면 세상 것을 만들어서 세상과 같이 만들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온 세상이 되어 있는 본질과 본성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과 하나돼 가지고 살고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기독자들은 세상과  하나되어 있지 않는 그 속에 영생하는 새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기독자는 본질과  본성적으로 세상과 대립되어 있는 이질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다  사망이요 기독자는 영생하는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 현실에서 우리를 세상과 하나되게 할라고 애를 쓰고,  하나되게 해서 하나 될 때에 세상은 환영을 하고 우리를 친근히 대우 해 주고  아주 화친을 맺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세상화되지 안 하고 거기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하나님의 뜻을 그것을 고수하고, 하나님의 뜻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보수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의 자기 현실 생활이  될라고 하면 반드시 거기서는 세상은 세상 만들라 하고, 우리는 세상 만들지  안하고 하나님과 연결이 자라갈라고, 연결이 자라갈라고 하나님과 연결이  자라갈라고 하고 세상은 세상화 만들라고 하는 그런 전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자라면 그것이 점점 생명이 자라서 마치 겨자씨가 조그만한  생명이 땅을 먹고 자라고 자라고 먹고 자라고 먹고 자라 가지고 나무와 같이  커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인데 연결이 현실에서  세상이 연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을 기어코라도 양보하지 안하고  포기하지 안하고 세상 현실에서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그 뜻을 버리지 안하고 그  뜻을 그대로 보수해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이 점점 커지면 영생이 커지는 것이고  그 생명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나무같이 자랐다 할지라도 그 자란 것은  겨자씨의 생명이 자란 것입니다.

 또, 오늘 오후에 설교할 필요가 없어. 또 벌써 겨자씨 설교하니까 아이고 또  들은 거, 또 겨자씨 이래도 또 아는 거, 이 선입적 관념, 나보다 먼 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 했는데, 그것이 선입적 관념이요 기존 지식의 그 사망시키는  독인데, 다 그게 있으니까 그만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말이오. 조는데 말해 봐야  지나가 버리니까 소용 없어. 그만 찬송이나 한번하고 말지요, 뭐. 다 알고  지나가는데 아느냐? 모릅니다. 몰라요. 몰라. 모르니까 모르는 줄 알고 한번 좀  들어서 배워 보라 그말이오. 알면 뭐 이기를 알면 이기는데. 현실 현실마다 전부  세상화 돼 버리고 마는데 땅에 들어가니까 이 땅에 들어갔든지 저 흙에  들어갔든지 흙에 들어간 대로 다 썩어 버리고 썩어 버리고만 말았지 산 것이,  자란 것이 없는데 뭐 모르는 것이지 뭐 아는 것이 뭐입니까? 뭘 이겼다 말이요,  이기기를? 뭘 이겼어 이 기기를? 우리는 교만하면 안 됩니다. 깨닫고 지켜야  됩니다.

 겨자씨는 비유인데, 생명이 그 땅에 있는 성분을 자꾸 먹으면 겨자씨가 점점  커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먹으면 커지고 겨자씨가 땅 성분에게 먹히면 흙되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현실에서 내 생명인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생명인데, 연결이 이 연결을 끊을라고 하는 그 현실에 방해하는 세상 모든  성분에게 삼켜지지 않하고 세상 성분을 하나님과 연결이 그것을 삼켜서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은 더 튼튼하게 됐고 연결이 완성돼 버렸습니다.

그것이 겨자씨가 땅에 있는 성분을 먹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성분을  먹으니까 점점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장성 해 가고 견고해 갑니다.

 그런 애로와 투쟁이 없으면 좋겠는데, 애로와 투쟁이 없으면 좋겠는데  겨자씨에게 땅에 있는 성분과 투쟁하는 애로와 투쟁이 없으면 좋겠는데 애로와  투쟁이 없으면 자라지를 안합니다. 애로와 투쟁이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애로와  투쟁이 없는 곳이 겨자씨에 애로와 투쟁이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조사님,  어디입니까? 그렇게 어렵소? 겨자씨가 투쟁 없는 그런 곳이 어디입니까? 저  ○○○집사님, 땅에 심기기 전, 맞았어. 땅에 심기기 전, 봉지에 달아 놓으면,  봉지에 달아 놓으면 이 겨자씨 생명을 죽일라 하는 적이 하나도 없어요. 봉지에  당글어 매었든지 그래 안하면 그릇에 담아 놓든지 어쨌든지 땅에 심기지 안하면  투쟁은 없습니다. 투쟁 없는 거야 좋지만 거기서는 자라지를 못합니다. 오래  동안 있으면 나중에 자라지 못하고 그만 좀이 먹어서 다 생명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자랄라고 하니까, 투쟁이 없을 수 없고, 투쟁 있는 투쟁 있는  세상이라는 내 현실이라는 세상 생활을 해야 된다 말이오. 내 현실이라는 세상  생한을 하지 안하면 하나님의 '뜻이 내게 있거나 말았거나 아무 상관이 없지만  내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 뜻을 그대로 살라고 하니까 여러 가지 투쟁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서, 그러면 뭐 이걸 자꾸 세밀히 말하니까 아는  사람들은 '아이고 또 한말 또 하고 또 사람들을 보면 열 번 말해도 모르는 게  있으니 또 그 사람 봐서는 또 그래 해야 되지, 또 한 번 들으면 아는데 또 그  사람은 두 번 하니까 아이고 권태난다. 한 말 또 한다 하니 어느 말해야 되겠소?  그러면 제일 명철하고 좀 말귀 잘 알아 듣는 유식한 사람 몇 만 살리고  나머지기는 다 죽여 버려야 되겠습니까? 그게 하나님의 뜻일란지? 그래서 또  그걸 살려야 되겠으니까 또 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말할 때에 이미 깨달은 사람은 내가 실지로 자기 현실에 당했을 때에 고와 같은  승리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받기 위해서 자꾸 하나님에게 역사하는 것이  옳을란지, 뭐이 옳을란지? 이러니까 깨달은 사람은 확신과 능력을 받아서 그  현실을 만났을 때에 백전 백승의 그 실력을 가지도록 노력을 하고, 못 깨달은  사람은 또 깨닫도록 노력하고 자꾸 이래야 될 터인데. 전부이 자기만 생각하고  주관대로 하기 때문에 일이 안 된다 그거요.

 겨자씨 비유에 땅은 이 세상을 비유한 것이고, 그 겨자씨 생명은, 겨자씨  생명은 성도들이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성도들은 어떤 성도들이든지 그  성도의 현실에 하나님의 그에게 대하신 하나님의 뜻, 각 성도 그의 현실에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그것이 생명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고게 생명입니다.

생명인데 그 뜻을 세상이 그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키지 못하도록, 성장하지 못하도록 온 세상은 달라들 때에 그때에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그게 뭐이냐? 세상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건데,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곧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그것을 먹고 자랄 수  있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양식이라. 하나님 뜻의 양식이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양식입니다. 이것만 알면 돼. 양식이라. 이러니까 그것만 이 현실이라는  자기 세상에게 하나님의 뜻을 빼앗기지 않고 삼키지 안하고 양보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 그것을 성취시키는 그것이 겨자씨가 자라는 것이니 그렇게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 뭐인고 하니 그것이 생명이라. 그것이 생명이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영생이라 했습니다. 고게 생명이라 고게 영생이라고 하나님의 뜻 그것을 그대로  달성을 하면 영생이 되고 달성을 하지 못하고 뺏겨 버리면 둘째 사망에게  삼켜져서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그 하나님의 뜻이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이 저 외부적인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의 문서 계시가 자기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서 계시가 뜻인데, 문서 계시를 그것을 자기가  지켜서 문서 계시대로 실행을 해 나가면 문서 계시대로 할라고 모든 것을 다  공작을 하고 이렇게 마련하면 그 문서 계시가 나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문서 계시가 나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있어서 내가 문서 계시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내가 만나는 참 영생이 되는 그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찾게  됩니다. 문서 계시의 소개로써 내게 영생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문서 계시가  소개해 줍니다.

 문서 계시가 소개해 주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것이 요한일서 2장 27절에  보면 '너희들이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은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희들에게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네가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그것은 네 속에 기름 부음이  너에게 가르쳐 주지 기름 부음 외에는 사람은 가르쳐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사람은 가르쳐 주지 못한다. 성경은 가르칠 수  있지만 거기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 본인이 알게 되는데. 본인에게 무엇이  가르쳐 주는고 하니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을 만나도록,  기름 부음이 바로 가르쳐 주는데 기름 부음을 만나도록 소개하는 그 소개쟁이  소개하는 그 안내자가 누군가? 안내자가 문서 계시입니다. 우리가 문서 계시대로  행한다고 해서 다 된 것 아닙니다. 문서 계시대로 하고 보면 문서 계시는 너무  범위가 넓습니다. 문서 계시대로 했지만 우리가 실상 해 보고 나면 문서  계시대로 하기는 했지만 요렇게 하는 것이 뜻인지 조렇게 하는 것이 뜻인지 문서  계시대로 한 문서 계시대로 해도 그 속이 범위가 넓기 때문에 요래야 되는  것인지 조래야 되는 것인지 좀 빨리 해야 되는 것인지 늦게 해야 되는 것인지  조금 지금 친목을 가져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말이오. 고럴 때에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요렇게 조렇게 하라는 것이 정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볼 때에 확신이 든다 말이오. 아, 이것이다. 우리에게 확신이 들고  깨닫기도 바로 깨달아지고, 우리 마음 가운데에 확실히 믿어지는 그 믿어지는  확신이 우리에게 생겨집니다. 그것이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겨자씨의 그 생명을 찾는 것은 우리 현실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생명을 찾는 것인데, 그 생명을 찾는 데에는 문서 계시에 생명이  있고 영감 계시에 생명이 있으니 문서 계시의 생명은 영감 계시로 인도하는  안내하는 그 소개에 지나지 못하기 때문에 문서 계시로만 하고 영감 계시 받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문서 계시는 자기 마음은 저게다 두고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속에 흉측한 예수교 이걸 막 박멸을 시킬라 하는, 이 박멸시킬라고  하는 그런 속에 복장을 가지고, 아주 성경 말씀 그대로 해 가지고 교회를 위하는  듯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문서 계시 복종은 그것은  참 영감 계시에 안내자 이 소개자기 때문에 문서 계시로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문서 계시에만 열중했지 영감 계시를  무시했기 때문에 문서 계시로 인해서 메시아를 죽이고 못박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차차 그런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생명은 우리 현실에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그 뜻을  바로 찾으면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이 됐는데, 그 뜻을 바로 찾는 데에는  일차적으로 문서 계시로 대충 우리가 찾아서 그 범위 넓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나면 고라고 나면 그 다음에 자기가 이중 삼중의 나쁘다는 마음을 먹지 안하고  정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고 하면 영감이 그에게 가르쳐 줍니다. 자기 껍데기  문서 계시는 실행하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할라 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것도 않고 더 소원하는 것 돈 받고 목적도 있고 딴것 다 있으면서 닭 잡아먹고  뭐 오리발 내놓는다 하더니만 그 모양으로 겉어머리만 있고 속은 다른 그럴  때에는 성령이 찬동해 주지 않습니다. 성령이 인도해 주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그 뭐 거기 다  바치는 어짜든간에 뭐 다른 생각 없이 거기다가 솔딱 다 바칠 때에 성신의  감화가 하나님의 뜻을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가르쳐 준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가르쳐 주면 그것이 겨자씨 생명이니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의 씨를  내가 잡았습니다. 영생의 씨를 잡았는데, 영생의 씨를 잡았으니까 내게 대한  영생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잡았으니까 그 영생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그것을 내가 성공을 하느냐 실패하느냐 문제입니다. 성공을 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문제인데, 성공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이 행하는 사람이 돼서 내  마음도 그 뜻대로 행한 마음이 됐고 몸도 성한 몸 이 됐고, 영도 행한 영이  됐고, 내 전부가 그 뜻대로 행한 것이 됐으면 그 것은 그 생명이 나와  하나님과의 그 관계가 연결이 더 밀접해지고 더 견고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그만 그 땅이 와서 그라니까 그 겨자씨의 생명은 있기는  있는데, 생명은 있기는 있는데 이것이 성하지를 못해 좀 병이 들어 가지고 그만  땅에 있는 지기가 오니까 처음에는 살아날 듯이 뭐 쪼그매 그 핵이 불어나는  것도 같고, 또 그것이 뭐가 자라는 거 같더니만 그만 한쪽 머리 그만 썩는 것이  있어 가지고 그만 씨가 썩어서 그만 썩어 가지고서 나중에 보니까 움이 나오지도  못하고 썩어 버리고 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거기에 정확지  안하고 의심이 난다든지 그 뜻을 찾은 거기에 의심이 난다든지 또 두려움이  생겼다든지 또 염려가 생겼다든지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인 줄 분명히 알고  영감의 뜻까지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내가 이 세상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세상에게 빼앗기게 되면 내게는 하나님과 그만치 끊어졌기 때문에 생명이  절단됐습니다.

 그래서 여기 비유에 생명은 내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다. 내 현실은 뭐이냐?  여기 비유에 흙이다, 밭이요, 흙이다. 그러면 흙인데, 겨자씨의 생명은 뭐이냐?  겨자씨의 생명은 내 현실에 하나님에 대한 뜻이다, 또 그러면 겨자씨 그  생명말고 겨자씨 껍데기 그거 속에 이씨 분도 들었고 한데, 그 겨자씨 생명 외의  저는 뭐이냐? 생명 외의 것은 곧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심신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심신이다. 요렇게 가르쳐 줘도 뭐 모르면 뭐 그거는 어짤 수 없는  거지 어짤 거야? 귀너머 들으니까 모르지 심신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 뜻을 내가  그대로 성공을 할라고 하면 여러 가지 방해의 것들이 많이 있다. 방해의 것이  몇이나 되느냐? 그것은 땅에 있는 거는 다 방해의 것들이다. 세상에 속한 것은  아버지도 방해의 것, 어머니도 방해, 형도 동생도 방해, 상관도 방해 부하도  방해, 친구도 방해, 돈도 방해. 사업도 방해. 명예도 방해. 영광도 방해, 존귀도  방해. 과학도 방해 전체가 방해뿐이다. 땅에 있는 성분은 그 겨자씨와 생명을  흙화 시킬라고 흙화 시킬라 하는 것만 가득히 찬 것이 그것이 땅의 성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을 세상화 시킬라 하는 것이 내 세상 그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은 그 일 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네, 그럴 때에 자기가 고게서 그 생명을 뺏기지 안하고, 생명을 삼켜서 죽지  안하고 내게 대한 하나님의 문서의 뜻 영감의 뜻 바로 찾은 하나님의 뜻을  양보하지 아니하고. 양보하지 안하고, 세상은 나를 보고 양보하라고 달라드는데  양보하지 아니하고, 양보하라 하고 양보 안 하고. 뺏들라 하고 뺏기지 안할라  하고 자꾸 이렇게 싸우다가 그 현실을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대로 다 실행해서  현실을 탁 통과해 버렸습니다. 다 통과했으면 고게 뭐이냐? 그때 통과했으면  어찌 되느냐?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던 것들은 내가  잡아먹어서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 연결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한층 강하게  만들었어요.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겨자씨 말한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네가  사소한 일. 사소한 일, 네 현실에서 사소한 하나님의 뜻, 사소한 영감의 뜻,  지키기도 쉽고 하기도 쉬운 거 그 하나 하나를 네 현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이행할라고 하니까 방해들이 있다. 방해들이 있는 거를 방해를 암만  해도 내가 양보하지 안하고 뺏기지 안하고 그대로 이 것을 했다. 자꾸  이행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서 딱 찾을라고 하는데에는 벌써 찾을라고 하는  동시에 내가 하나님의 뜻을 찾기도 어렵지만 찾아 가지고 이대로 살라고 하면  반드시 애로가 있다, 굴곡이 있고 방해들이 있다 하는 그것도 벌써 동시에  생각한다 말이오. 동시에. 아, 방해들이 있다. 방해들이 있으나 내가 그 때에  그들이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오만 거 다합니다. 아, 수분으로 말하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겠소? 수분도 오고, 덥덥하게 하는 것도 오고, 또 썩히는  독도 오고, 뭐 이 세상에 달콤한 거, 또 우쭐시키는 거 또 협박하는 거 누르는  거 유혹시키는 거 뭐 온 세상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게 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내가 양보하지 안하고 뜻대로 그대로 실행할라고 하면 수많은  그것들이 다 종합해서 그것이 나의 신앙의 인격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장성케 하는 그 양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그렇게 내가 하나하나를 해 나가면 그것이 점점 자라갈 때에  아,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찾는 것도 차차 능숙해서 하나님 뜻을 찾을라고  하니까 문서 계시도 열심히 봐야 길잡이를 찾지 문서 계시를 또 자꾸 열심히  보고 문서 계시를 껍데기 문서 계시만 보고 할 뿐만 아니라 문서 계시 속에 그  속에 성신의 감화 받아 가지고 보니까 그 속에 문서 계시 이 하나 속에 수많은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새 사람들은 다 모두 다 명철해서 문서  계시만 말하면 사람들이 맛이 없다고 안 먹습니다. 문서 계시 속에 영감 계시를  말할 때에 다 맛이 있다고 먹고 난 다음에는 누구나 다 죽어도 살아도 한번 실행  걸움을 걷겠다고 하는 그런 다 역사들이, 아주 십자가의 강건한 그런 군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 둘 해서 자꾸 이것을 연성해 갑니다. 연성해 가니까 그만 이게  자꾸 인제 숙달됐습니다. 이 현실. 옳지 이 현실 이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데는 성경만 보고 하다가는 내가 껍데기 생활하기 쉽다.

성경만 볼 게 아니라 이 현실에 성경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대충 짐작하고, 그  다음에는 그 성신의 감동이 인도하는 거 있다. 그 성신의 감동의 인도를 내가  찾겠다. 성신의 감동의 인도를 찾아 가지고 그대로 실행을 할라 하니까 여러  가지 마찰이 있습니다. 마찰이 있을 때에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랬습니다. 어떨 때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양보 안 할라고 하면 목을 끊어서 죽이는 수도 있고 고문과  고행하는 수도 있고, 감옥에 갇히는 수도 있고, 있으나 하나님이 정해 놓은  생명에 일 분 일 초도 일찍 죽이는 일이 없습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저거들이 죽인다 해도 주님이 정한 생명의 끝이 돼야 죽이지  너희들이 다 살릴라고 해도 나를 일 분 일 초도 연장시키지 뭇하고 온 천하  너거들이 다 달라 들어도 내 생명의 일 분 일 초도 단축시키지 못한다 하는 이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협박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협박을 오히려 비웃소. 이렇게 해서 이 겨자씨 믿음 생활, 겨자씨 순종 생활이라  말이요.

 요렇게 해서 현실을 만나면 아, 현실 또 닥쳤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자.

문서의 뜻, 문서의 뜻 속에 영감의 뜻, 영감의 뜻을 찾자. 이래 가지고 영감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할라 하니까 애로가 있습니다. 애로가 있어도 해  보니까 되거든. 해 보니까 된다 말이오. 해 보니까 되니까 차차 차차 이것이  자랍니다. 이것이 자라 가지고 자꾸 해 보니까 자라. 자라 가지고 어디까지  자라느냐? 어디까지 자라느냐? 자라기를 뽕나무를 명하여 팔래스틴에 있는 나무  중에는 제일 큰 나무가 뽕나무라 합니다. 이뭐 여섯 아름짜리 뽕나무까지 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보지는 안했지만  '그렇게 이 뽕나무를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지라도 네 말에  순종하였으리라 이 말씀으로 결론을 지웠습니다. 그 결론지은 게 뭐이냐? 우리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전폭적으로 강령을 들어 말한다고 하면 뽑는 생활이요  운반하는 생활이요, 심는 생활 이 세 가지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못 쓸 것은 다 뽑아서 없애야 되겠고, 또 우리가 먹을 것은 썩지 안 할  세계로. 세상에 있는 것은 무궁세계로 자꾸 이렇게 옮겨야 하겠고, 또 이제 모든  것을 심어서 우리가 복음도 심어야 되겠고 우리 속에 온갖 하나님의 생명도  능력도 자꾸 심어서 씨뿌리는 비유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 심령에 모든 것을  심어서 이것이 무성하게 자라가야 되기 때문에 뽑는 거, 운반하는 거, 심으는 거  이 세 가지 종류로 강령을 들어서 말할 수 있는데. 뽕나무를 손 안 대고 뽑는  것이 그것이 되느냐? 그것이 역사에 있느냐? 역사에 없다. 역사에 있느냐?  역사에 없는 일이다. 그거는 이제까지 창세 이후에 없는 일이다. 또 손 안 대고  그것이 저절로 뽕나무가 그렇게 큰 뽕나무가 후루루룩 날라서 바다까지 간다는  것이 역사에 그것도 없는 일이다. 또 그라면 줄줄 흘러가는 그 물 위에 여러  수십짐이 될란지 수백짐이 될란지 하는 그런 뽕나무를 이 흙에도 심으면 밧줄을  매야 될 터인데 물 위에 심었는데 물 위에 꿋꿋하게 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게  될 일이냐? 절대 안 될 일이다.

 인간의 통계나 인간의 과학이나 인간의 사상으로써는 절대 안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인 것을 발견했으면 그 사람은 요동치 안하고 탕 믿음으로써 해  나갑니다. 네 조그만한 그 겨자씨 믿음을 가져서 여기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경험하고 체험해서 성장시켜 놓으면 마지막에는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 이것을  하나님 뜻대로 실행하라 하는데, 이 심는 이라는 이것은 역사에 없는 일이요,  통계에 없는 일이요, 이거는 과학에도 없는 일이요, 이치에 도무지 합당치 안해.

이거는 될 일이 없는데 절대로 일이 없는데, 이자는 뭐 뭐 억억만분의 일도 될  리가 없는데, 절대 안 되는 일인데, 절대 안 되는 일인데,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이거 너무 세상에서 부정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안 되는 일인데 모든 사람이  이거야 될 리가 있나? 이거는 안 된다. 이렇지만 너는 겨자씨 믿음으로 자라  가지고 경험과 체험이 생겨져 그게 자랐으면 이렇게 이 세상에 비합리적이요,  과학적이요, 비통계적이요, 비인류적이요, 비세상적인 이거는 절대 안 되는.

그런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네가 발견했을 때에는 의심 없이 실행을  하게 된다. 실행만 하느냐? 실행하면 그것들이 순종한다. 이루어진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생명의 법칙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을 우리가 실행해야 되지 실행하지 안하면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겨자씨 믿음 생활을  해서 고게서 힘 얻어서 그 믿음 생활에 성공을 했으면, '뽕나무를 명하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하였을 것이요" 이는 얼토당토 안 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명령의 뜻이라면 이거는 뭐  절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기 때문에 천하가 부인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도 너는  단정코 명령할 것이요. 실행할 것이다, 명령할 것이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 다음 해석은 뒤에 시간 있으면 하겠습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믿음  외에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천하를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내 현실에 우리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영감의 뜻은 우주를 차지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주인공이 됩니다.

양보하지 맙시다. 빼앗기지 맙시다. 빼앗기지 말고 내가 믿고 그대로만 실행만  하면 그것은 내 밥이 돼서 필연적으로 내가 자라게 되지 절대 손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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