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믿음

 

1986. 1. 7. 화새

 

본문: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 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겨자씨 믿음이라고 비유한 것은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겨자씨는 비록작으나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땅 속에 심기워지면 움이 트고 자라서 나중에는 나무같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은 큰 것이라도 땅 속에 들어가면 썩어져 버리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믿는 사람이 아무리 그 사람이 유명하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산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세상을 접하면 썩어지고 맙니다. 땅에다 심으면, 이 땅은 뭣을 비유한 것인고 하니 이 세상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접촉을 하면, 생명 없는 믿음은 이 세상을 접촉하면 그만 썩어 버려 세상화돼 버립니다. 세상과 같이 돼 버립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믿음은 이 세상을 접할수록 세상화되지 안하고 세상을 삼켜서 세상을 이용해서 점점 자신의 그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어느 지방을 가든지 이래 가면 또, 어떤 지방을 가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어떤 사건을 만나든지 하는 그게 다 모두 세상인데 사람 만나는 것이 세상 만난 것이요, 사건 만난 것이 세상 만난 것이요, 이런 저런 물질 만난 것이 세상 만난 것이라. 물질이 자기에게 오는 것도 세상 만난 것이요, 자기에게 있는 물질이 없어지는 것도 세상 만난 것이요 다 그런 것이 세상 만나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고만 그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 자꾸 속화가 됩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믿음은 그런 세상을 접할수록 자꾸 그 신앙이 더 자라가게 됩니다.

이러니까, 오늘 이 교회들이, 교회들이라 하면은 곧 우리들이라 말인데, 오늘 교회들이 점점 속화돼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삼켜서 이용해 먹는 신앙들이 아니고 세상을 따라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주일학교 때는 잘 믿다가, 그만 중학교 들어가면 신앙 이 식어지고 또 중학교 때 잘 믿던 사람도 또 고등학교 들어가면 그래 하고, 고등학교 때 잘 믿던 사람도 대학 들어가면 그렇고, 자꾸 갈수록이 신앙이 타락해집니다. 또, 공부할 때는 신앙이 좋았는데 그 사람이 사회인이 되니까 또 신앙이 점점 낡아지는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생명 없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을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겨자씨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을 가진 그 믿음은 이 흙에다가, 흙에 들어가서 수분 만나면 수분 먹고, 온도 만나면 온도 먹고, 또 거름 기운 만나면 거름 먹고, 이래 가지고 뭐이든지 닥치면 그것을 잡아먹고 자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 있는 신앙은 주위와 환경을, 돈 만나면 돈을 신앙에 이용해서 신앙이 자라갑니다.

돈이라면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건데, 돈이 오면 돈이 옴으로 신앙이 자라가고 돈이 가면 돈이 감으로 신앙이 자라가고 돈으로 인해서 어려움이 오면은 어려움이 올수록 자라가고, 돈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모든 일이 형통이 오면 또 형통이 옴으로 자라가고, 자꾸 이 세상을 접할 수록 자라갑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라는 것이 뭐인가? 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떨 때는 돈 될 때도 있고 사람 될 때도 있고 물질 될 때도 있고 뭐 이런 것 저런 것이 자꾸 또 여러 가지가 합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내 현실에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을 만날수록이 자꾸 그 사람의 신앙이 자라가는 사람이 있고 현실을 만나면 그만 이 현실 만나면 또 신앙이 그 현실 따라서 식어져 가고, 저 현실 만나면 저 현실 따라 식어져 가고 자꾸, 현실에게 삼키워집니다. 생명 없는 것은 땅에다 묻어 놓으면 땅을 따라갑니다. 땅을 따라서 수분이 오니까 물에 팅팅 불어 가지고서 썩지, 거름기 오니까 거름 기운으로 썩지, 또 온도 오니까 온도로 썩지 자꾸 땅에 지기가 올수록이 자꾸 이것이 썩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여게 겨자씨 믿음이라고 비유한 것은 아주 주님이 우리에게 간단 명료한 걸 가지고서 언제든지 기억하기 좋고 또 잘 깨닫고 써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생명 있는 믿음이라 하는가? 생명 있는 믿음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 있는 믿음이라 그말입니다. 연결 있는 믿음이라.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 있는 믿음이라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안하는 무형의 존재인데, 형체가 없는 주님이신데, 주님이 지금도 신인 양성 일위의 주님으로 계십니다. 일위의 주님으로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신성과 인성, 양성 일위의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떠나지 안하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계시지마는 우리가 심령이 어두워서 함께 계시는 것을 모르고, 또 심령이 밝은 사람은 함께 계시는 것을 알고,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함께 계시는 것도 모르고 또 가리워진 것도 모르고, 그러나 심령이 밝은 사람은 함께 계시는 것도 알고 또 떠난 것도 알고 이렇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신인 양성 일위의 주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말은, 그러면 주님이 우리 마음 안에, 우리 안에 계실 때도 있고 안 계실 때도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계실 때도 있고 안 계실 때도 있습니까? 항상 계십니까? 항상 계십니다. 항상 계시는데, 그러면 왜 문 밖에서 두드린다고 이랬습니까?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래 말씀했는데, 그러면, 주님이 어디 계시며 그럽니까? 중생된 영 안에 계시면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몸에 영접지 안해서 그렇게 두드리는 것으로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 마음 안과 우리 몸 안에는 계시지 않는가? 중생된 자의 마음과 몸 안에는 항상 계시지 않습니까, 중생 후는 항상 계십니까? 항상 계십니다. 그러면 계신데 또 안 계신다고 또 어째 합니까? 그것은 주님이 우리 안에 구속주로서 계시고, 또 우리를 늘 구원하시는 그 구원 역사를 할라고서 계시지마는 우리 안에 역사, 주님의 역사가 계시지 않는다 그말입니다. 주님의 역사가 우리가 이 마음으로 몸으로 신앙 행위하는 것은 그것은 움직이는 역사하는 것인데 그 역사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라 그말입니다.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라.

그러면,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면, 우리 안에 계시기는 계시지마는 역사로 영접하지 안하면 소용이 없어. 우리가 아무리 시계가 있다 할지라도 시계가 작동을 안 하면은 그 시계는 내게 있어야 소용없어. 시간을 모른다 그거요. 그러면, 작동하는 시계가 있어야 되지 작동 안하는 시계는 가지고 있어 봤자 소용 없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계셔서 역사하셔야 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역사하지 안하면 내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가지고서 역사의 주님으로, 역사하시는 이 주님으로 우리 안에 계시려고 하면,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우리 안에 계실라고 하면은 우리가 어떻게 할 때에 주님이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우리 안에 와서 계실 수 있습니까? 예? 시기는 현실입니다. 장소는 현실입니다. 시기는 현실이고 장소는 현실이지마는 어떻게 하면은 주님이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우리가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의 주님을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역사의 주님을? 예? 역사의 주님을 우리가 영접하는 데에는, 주님이 역사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데에는 뭐이냐, 고걸 단단히 아십시오. 역사는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역사 아닙니까? 역사하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그게 역사 아닙니까? 역사지요? 이러니까, 주님의 역사를 우리가 영접하는 데는,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는 것은 역사의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주님의 역사를 내가 영접해서 그 역사가 내게 와 가지고서 역사해서 내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니까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는 데에는 주님의 뜻을 내가 영접하는 것이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어라 그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주님의 그 역사를 영접하라, 그말이오.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라. 주님의 역사를 주님을 영접하라,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라 하는 것인데, 주님의 역사를 영접할라고 하면은 무엇을 영접하면 주님의 역사가 영접이 되겠습니까? 예? 그냥 가만 있지 말고 속으로 대답을 해 봐요. 주님의 역사를 영접할라고 하면 주님의 권능을 내가 영접해야 되겠소 주님의 지금 사랑을 영접해야 되겠소, 주님의 또, 창조의 권위를 영접해야 되겠소, 뭘 영접해야 되겠습니까? 주님이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내가 영접하고, 역사의 주님을 영접하니까, 역사를 영접하니 그 역사는, 주님은, 주님의 역사는 뭣대로 역사를 합니까? 뭣대로 역사를 하요? 주님이 당신의 뜻대로 역사를 합니다. 뜻대로 당신의 뜻을 이룬다 그말이오. 당신의 뜻은 뭐입니까? 그거 당신의 뜻은 집 짓는 사람으로 말하면 설계와 같지 않습니까? 설계와 같은데 설계가 있고 설계대로 시공하는 것이 있는데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의 뜻대로 우리가 실행을 하면은 그라면 일이 성사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역사의 주님을 영접하는 데는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신구약 성경이 다 주님의 뜻이지요? 주님의 뜻인데, 신구약 성경이 다 주님의 뜻이지마는, 그러면 신구약 성경이 다 주님의 뜻이니까 그 뜻대로 우리가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뜻인데 주님의 뜻을 우리가 그대로 실행하는 것은 밤에나 낮에나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뜻은? 주님의 뜻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마는, 알고는 있지마는 주님의 뜻대로 실행을 하는 데에는 현실에서만 실행하지 현실 아닌 데서는 실행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뜻을 영접하되 주님의 뜻은 어떤 뜻을 말하는 것이냐 신구약 성경이 다 주님의 뜻이지마는 자기가 행할 수 있는 뜻 자기가 행하여야 하는 뜻, 행할 수 있는 뜻 그 뜻은 어데 있습니까, 현실에만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만 있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 자기 현실에 대한 주님의 뜻, 내가 현실을 만난 요 현실에 주님이 요래 하라고 하시느냐 저래 하라고 하시느냐 고 뜻을 내가 찾는 것이 주님의 역사를 찾는 것이요, 고 뜻을 내가 영접하는 것은 고 뜻대로 내가 현실에서 행하는 것이 고것이 주님의 역사를 내가 영접하는 것이요, 고 뜻을 모르고 엉뚱한 짓 하면은 주님의 역사를 모르고 벌로 날뛰는 사람이고, 주님의 뜻을 알고만 있고 행하지 안하는 사람은 그 역사의 주님을ㅡ역사의 주님이나 주님의 역사나 한가지라 말이오.ㅡ주님의 역사, 역사의 주님을 자기가 알기는 알면서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접 하면은,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은 역사의 주님을 보는 것이고, 밖에서 문을 이래 두드리니까 역사의 주님을 ‘아, 주님이 오셨다.’ 이렇게 아는 것이고, 고라고 난 다음에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은 고 현실이 요 현실에는 주님의 뜻이 요렇다 그 자기 현실에서 해당된 주님의 뜻을 자가 바로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이제 주님의 역사를 영접하는 것은 자기가 주님의 뜻을 알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영접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게 영접하는 게 되겠소? 행하는 것이 영접하는 게 된 것입니다. 행하는 것이 영접하는 거 된 거 아닙니까? 문을 두드리면서 이제 문을 열어 달라 문을 열어 주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 것은 우리 영 안에 계시는 주님이, 우리 안에 모두, 구속의 주님으로서는 우리 마음 안에도 있고 몸 안에도 있고 다 우리 전신 안에 성령이 다 계시지마는, 역사하시는 주님은 내 심신의 역사에 들어와야 되는데, 내가 역사의 심신이 그 주님을 영접하지 안하는 그것을 이제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어 달라한 것입니다.

그러면, 문을 열어 주고서, 열어 주고 영접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주님의 그 뜻을 내가 바로 알고, 그 뜻을 바로 알고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그 바로 알고는 고 뜻대로 내가 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뜻대로 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거 아닙니까?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이면 주님의 뜻을 영접한 것과 주님의 역사를 영접한 것과 다릅니까 같습니까? 주님의 뜻을 영접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같으니까 문 열고 영접하는 것은 현실에서 내가 주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뜻대로 내가 행하는 것이 그것이 역사의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것이 영접하는 것인데, 그러면 행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행하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렇게 말씀했지요? 그래, 주님이 먹는다는 말은 주님이 먹는 것은 뭘 먹습니까? 주님이 먹는 거는 뭘 먹는다고 했지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나에게 있다고 요한복음 4장 몇절에 말씀했습니까? 요한복음 4장 34절? 34절이랍니다. 잘 기억하고 있네요, 4장 34절 한번 읽어 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주님은 나로 더불어 먹는다 하는 그말은 주님은 나를 통해서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는 말이요, 또 온전히 완성을 한다는 말이오. 그러면, 내가 현실에서, 내가 현실에서 주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은 문 밖에서 두드리는 주님을 바로 발견한 것이고, 또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은 나를 부인하고 내 욕심이나 내 사정이나 내 주관이나 그런 나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내가 그대로 순종해서 시행하는 것은 주님의 역사를 내가 영접했다 그말이오. 영접하면 그 결과로 어찌 되느냐? 영접하면 주님의 그 뜻이 나를 통해서 다 이루어지고 완전히 이루어진다.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완전히 이루어진다.

그러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주님은 주님의 뜻 이루는 것이 당신의 양식입니까? 보내신 이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당신의 양식입니까? 그러면, 네가 현실에서 내 뜻을 바로 깨닫고 고대로 영접해서 실행을 하면, 실행하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그말은 나는 너를 통해서 보내신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온전히 행하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너는 나로 인해서, 나로 인해서, 나로 인하여 먹으리라. 나로 인하여, 우리 양식은 뭐입니까? 우리 양식은 뮈입니까? 우리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까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까?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오. 그러니까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나는 주님으로 인해서, 나는 주님으로 인하여, 너는 나로 인하여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나는 주님으로 더불어, 주님을 힘입어서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이루고, 완성을 한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고 말을? 고것을, 속의 뜻을 알아야 돼요.

아는데, 왜 이 말을 할라 하느냐 하면은 그 말이 잘 안 되고 까끌까끌하느냐 하면은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이 돼야 그게 잘 전해지지 여러분들이 말을 해도 잘 못 알아 듣는다 그말이오. 잘 못 알아 듣는 것은 왜 잘 못 알아 듣느냐? 못 알아 듣는 이유는 이것은, 주님의 뜻을 영접하고 행해서 주님은 나로 더불어, 나로 인해서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다 완성하고, 또 나는 주님으로 더불어, 주님을 힘입어서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다 완성하고, 내나 그말인데, 이게 그러면 주님의 뜻을 이루어서 이 구원 이루는 것인데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이 구원의 도에 대해서는 생각이 하나도 없었고 순전히 새카맣게 이 세상에 나가 가지고 세상으로 꽉 돼 가지고 있던 이것이 새벽에 나오니 이거 뭐 말씀해야 근방에 오다가 맙니다. 근방에 오다 말아. 이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마귀에게 들어서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참 지극히 큰 보배는 모르고서 자꾸 썩을 것만 자꾸 탐한다 말이오. 썩은 것 썩을 것만 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우로 비유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는 여우로 비유한 것은 여우를 누구를 비유했느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여우라고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거는 항상 썩은 것만 좋아하고 썩은 것만 탐합니다. 어데 같이 가도 썩은 냄새 나면은 다른 생물들은 다 썩은 내 나면은 피해 버리고, 소도 이 꼴을, 풀을 먹을라 하다가 썩었으면 풀풀 거리면서 토해서 내버리고 다 이런 것인데 여우 이놈은 꼭 썩은 거라야 좋아합니다. 썩은 것만 좋아해. 그래서, 그 여우를 비유한 것입니다.

썩은 거, 죽은 거 이 없어질 거 이런 것만 자꾸 탐하지 영생에 속한 거, 완전에 속한 거, 영원에 속한 거, 불변에 속한 거 이런 거는 아예 싫어한다 그거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이 세상에 속해 가지고 썩은 것만 자꾸 탐하다가 이라니까 갑자기 이것이 어데 먹을라 하니 맛이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나는 가까이 접하는 사람들한테 소문이 났어요. 우리가 거창 있는데 거창에서는 생선이 지금은 빨리 오지마는 우리 그때는 생선이 오면은 전부 좀 상해 옵니다. 상해서 썩어 와요. 그러니까 그냥 못 오니까 썩혀 가지고 와요. 그거. 말하자면, 독에다가 담아 가지고서, 그 조기도 독 조기를 갖다 이래 가지고 담아서 다 썩었어요. 썩어서, 썩은 것만 가지고 와요. 썩은 거 가지고 오는데, 그 썩은 것만 먹어 놔서 이 부산 오니까 생생한 걸 주니까 맛이 없어 못 먹겠어. 또 요새는 벌써 교통이 편리하지마는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한 사오 년 전으로 말하면은 그렇게 교통이 편리하지 못했습니다. 못 했기 때문에 그때 뭐 지금 모양으로 그렇게 생선이 그만 당일 운반되고 그렇게는 못 했어요. 이래서, 생선은 먹으면 썩어서 콤콤한 것이라야 그 맛이 있지 생 것은 그만 맛이 없어.

그래 놓으니까 모두 다 집사님이 그 썩은 고기 콤콤한 고기 왔다. 그래 인제 그걸 사 가지고 와요. 저 어데 다녀, 이 부산은 그거 없어. 어데 독 조기 콤콤한 거 그런 것 가지고 오면 그게 맛있다 말이오. 그것 뭐이냐 하면은 자꾸 습관을 들여 놔서 그래요 습관들 들여서.

지금도 고급 요리는 와야 저 먼저 ○○○ 집사님은 참 아주 고급 요리하는 솜씨가 있는데 고급 요리해 가지고 왔는데 도무지 나는 못 먹겠어요. 못 먹고, 그래 그 ○ 집사님은 저 아주 시골서 그 요리하던 그저 된장찌지고 그만 이래 숙주 나물 주물주물 주물고 이런 건데 그거는 맛이 있고 고급 요리는 도무지 못 먹겠어. 암만 그러 쌓아도.

이러니까, 그 습관이라 하는 거는 무섭습니다. 음식의 습성. 또 이거 무슨 이거 행동의 습성, 그 습관이라는 거는 무섭습니다. 무서운데, 이걸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저녁에 잠깐 동안 있는 동안에도 주님 생각할 여가 없고 주님의 뜻 생각할 여가 없고 또 테레비 또 내나 세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 혼자 있으나 여럿 있으나 밤에 잘 때도 그거 그라다가 그만 졸음 오면 잠이 오니 그만 자 버립니다. 자지, 이러니까 순전히 세상만 자꾸 이렇게 접하고 있으니까 그 심령에 하나님의 도가 들어가지를 도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말해야 못 알아 들어.

그러나 이제, 그거 그렇지 안하고 자기가, 무슨 세상 일 못 하게,하는 게 아니고,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하나 손으로 하는 거 손으로 하면서 마음은 주께 있고, 또 손으로 하는 것도 주님의 뜻 순종으로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순종으로 하니까 그 회사에서 일을 충성이라고 열심히 하다가도 아예 하나님의 뜻에 딱 위반된 것은 탁 중단돼 버린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걸 고렇게 믿음으로 하지 안하니까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주님의 뜻에 어기는 일이나 맞은 일이나 마구 이래 삼켜 이래 놓으니까 그게 습성이 돼 놓으니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야 모른다 그말이오.

아무래도 이걸 배워 가지고 알아야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이게 문제입니다.

이거 알면, 문제가, 알면 세상은 발 아래 밟아요 세상이 그거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세상을 벌벌 떨고 하는 것은 그 세상을 부러 원수되지 않기 위해서 대우하느라고 자꾸 이러고 있는 것이지 속속들이 세상을 부러위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그런 게 속에 절대 없습니다. 사람 만나면 자꾸 이렇게 막 기어가는듯이 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얻기 위해서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 그렇지 속으로 세상에 뭐 부러운 것이 있느냐? 부러운 것 없습니다. 믿는 신앙의 사람은 두려운 것이 없어요. 두려운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고 높이 볼 것도 없고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높이 볼 것이 하나도 없어. 또, 신앙의 행위 그 외에는 가치로 볼 것이 없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뽕나무 비유로 한 것은, 우리가, 우리 역사는 세 가지 밖에는 없는데 뽑는 거, 뽑는 역사 옮기는 역사, 심으는 역사 이 세 가지만 잘하면 우리는 하늘나라 가서 제일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는 제일 우두머리되는 것이라.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이고, 그러면, 세상에서 뽑는 일 옮기는 일 심으는 일 이거 하면 세상에서는 못사느냐? 천국에서 잘 살 수 있으면 세상에서는 못 사느냐? 아니오. 천국에 잘 살 수 있는, 천국에서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필요합니다. 세상에서도 회사에서 아무것도 아닌데 그 사람에게 중역을 메우고, 또 참으로 정치가도 그렇소, 정치가도 그거, 나 요번에 여기 그전에 시장으로 왔던 그 사람이 뭐꼬? 시장으로 있던 사람이 ○ 뭣이가? ○○○ 를 비서실장으로 했다 하는데 그걸 보고서, 나는 ○○○ 만나지 안했어. 여기 부산 와 가지고서 시장으로 조금 하는 것을, 잠깐 봐도 알아요. 그거 다 저 시장으로 지금 우리 이 부산시가 망한다. 저 시장으로 부산시가 흥한다 그거 알 수가 있다 말이오. 그래 그 사람을 하는 걸 보고서 저 사람이 잘한다 이랬는데 저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세웠으니까 아직까지 ○ 정권이 좀 아직까지도 지금 남아 있다. 그 ○정권에 아직까지 여유가 남아 있다. 왜? 사람을 바로 쓰면 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모두 다 바로 몰라 그렇지 속으로는, 사람을 어떤 사람을 택하느냐 하면은 그 사람에게 못쓸 것을 뽑은 사람, 못쓸 것을 뽑은 사람을 그걸 자꾸 찾고 있습니다. 또 그 사람에게 참, 그 사람 마음에 참, 사람 마음이 심겨졌다, 아, 그 사람에게 이런 지혜가 심어졌다. 이런 총명이 심어졌다, 이런 평가가 심어졌다.

이래서 그 사람에게 벌써 정신이 바로 돼 가지고서 옳은 정신을 딱 속에 심어져 가지고 옳은 정신이 딱 심겨져 있고, 모든 것을 옳게 평가하는 옳은 평가가 심어져 있고, 옳은 비판이 심어져 있고 옳은 욕망이 심어져 있으면 희망이 있어, 그만. 암만 몰라도 그 사람 앞으로 자꾸 잘될 사람이라.

이러니까, 나쁜 것 뽑고 좋은 것 심고, 또 여게 것은 저리 옮기고 저게 것은 요리 옮기고 이렇게 옮겨서 옮겨 받아야 좋은 걸 옮겨 받고 옮겨 보낼 것은 잘 옮겨 보내고 이라면 그만 돼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내가 행할 것은 다른 사람이 내게 행할 거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행함을 받을 거는 받고 이거 잘하면 완전한 인격자입니다. 그 사람이 정계로 말하면 대가리가 될 것이고, 사업가로 말하면 대가리가 될 것이고, 학자로 말하면 대가리가 될 것이고, 다 머리가 됩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겠다 그 말씀이 별스러운 말이 아니라 다 필연적으로 그래 될 수밖에 없는 거라.

이러니까, 이렇게 이 겨자씨 믿음으로 간단하게 해서 뽑고 옮기고 심기는 이것을 비유했는데 이걸 바로 깨닫고 가치를 여게다 두고서 이렇게 들면 믿는 사람이 잠깐 성공하고 남한테 천대를 안 받을 터인데 이렇게 자꾸 천대받고 이래 되는 것은 이게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하는 말은 너희들이 행하지 안하니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랬다 말이오. 그러면, 주여 주여하는 우리들이 주님의 뜻대로 이렇게 행하면 모든 것이 다 완성이 될 터인데.

이래서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은 뭐이냐? 주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주님과 연결은 언제 되느냐? 주님과 연결은 현실에서만 될 수 있지 과거도 미래도, 과거 연결된 거는 연결돼 가지고 있고, 앞으로 미래로 연결될 것은, 미래 연결이 뭐 어떤데? 미래 연결될 것은 미래 연결을 계획만 가지고 있다가 연결은 현실이라야 연결이 된다 그말이오. 연결이 되는데 주님과 나와 연결되는 것은 뭘로 연결이 됩니까? 돈으로 연결 됩니까? 무슨 지식으로 연결됩니까, 뭘로 연결됩니까? 주님과 나와의 접선은 뭘로 돼요? 저게 지금 발전소에 전기가 한없이 있는데 여러 수천 볼트가 있는데 이제 여게 모타가 있는데 모타 이놈이 안 돌아간다 말이오. 안 돌아가는데 전기만 연결되면은 그만 모타가 핑핑핑 돌아가는데, 그러면, 발전소의 많은 그 전력과 이 모타가 지금 전력이 오면 막 돌아가는데 필요가 있는데 이 모타가 필요한 전력과 발전소의 전력이 지금 여기 옆에 와 있소. 요래 와 있어. 요래 와 있는데 연결은 뭘로 됩니까, 연결이 뭘로 돼요? 연결 그 되는 거 몰라? 연결은 밧줄을 이만한 밧줄을 막 창창 들이 묶어 가지고 이렇게 딱 이렇게 하면은 연결이 안 되겠소, 밧줄로 말이지요? 모타하고 전력 있는 그 회사의 전력하고 이 밧줄로 들이 묶어 가지고 잡아 매면은 연결이 안 돼요? 연결됩니까? 예? 연결이 안 돼? 그러면 거게다가 아름드리 나무를 거게다 들이대고 막 꺽장으로 대어 굵은 철사로 들이 조우고 또 여기 조우고 이렇게 나무로 가지고 막 이렇게 들이 조아서 이래 연결하면 연결이 됩니까 안 됩니까? 왜 안 돼? 그렇게 밧줄을 떼지도 못하는데 떨어지지도 못하게 이래 밧줄로 연결하고서 나무로 이래 딱 대 가지고서 굵은 철사로 조아 가지고 딱 연결 했는데 왜 연결이 안 돼? 저 ○ 집사, 예? 안 돼? 그러면 뭘로 해요, 뭘로 연결해요, 뭘로? 생명은? 모타하고, 전력하고 둘이 연결이 되는데 거게 생명이 어데 필요 있어요? 예? 전기선을 붙이면 연결됩니다.

이런말을 좀 똑똑히 해 달라 그말이오. 전기선을 이래 떡 그러면 떡 연결됩니다.

연결돼요. 딴 거 가지고는 안 돼요. 나무로 해도 안 되고 밧줄로 해도 안 되고 아무걸로 해도 안 돼요. 전선, 전선, 전기가 통할 수 있는 그 쇠로 가지고 이래 연결이 되면은 딱 연결이 돼 그만 빙빙빙 돌아가, 그만 모타가 그만 빙빙 돌아가면 그 공장에 기계가 여러 수백 대 수천도 될 수 있는데, 수천 대 있는데 그 전기가 연결이 되니까 그만 모타가 핑핑 돌아가니까 모타에 따라서 모든 공장의 기계가 핑핑 돌아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주님과 나와의 이 연결되는 데 연결은 뭘로 됩니까 그 전기 거게는 구리쇠로 연결하면 그만, 누른 구리쇠라 팔뚝만한 걸 이래 떡 연결해 놓으면 그만 돼 버릴 건데 연결이 되는데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되는 데는 뭘로 연결됩니까? 예? 산 믿음, 산 믿음이 뭐인데? 고게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고 뜻대로 행하는 고것으로서 연결돼요. 고래 말해야 돼요. 그래야 다른 사람이 알지. 하나님의 뜻을 고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고 뜻대로 행하는 고것이 연결하는 법칙이지 그외에는 연결되는 게 없어요. 고것만 연결이오.

그러면 그거 연결되면 연결이 되면은 하나님의 전능자와 나와 연결이 되면은 고행위가 무슨 행위라 했어? 산 믿음의 행위입니다. 겨자씨 믿음의 행위입니다.

겨자씨 믿음의 행위니까, 고렇게 현실에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고대로 내가 행하는 것은, 모타하고 전기하고 연결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전능자 하나님하고 나하고 연결이 되는 것이니까 연결이 되면은 연결되고 난 다음에는 뭐이 된다고 했습니까? 몇 가지가 나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연결되고 난 다음에는 몇 가지가 이루어져요? 연결되고 난 다음에는 뭐 이루어진다고 했습니까 여기 비유에? 몇 가지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저 뒤에 아는가? 이래 가리켜. 이렇게 셋. 하나는? 뽑는 거, 하나는? 옮기는 거, 하나는? 심는 거, 이러면 온전한 사람이 돼요. 완전한 사람이. 자꾸 이라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외에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이 제일 어렵고 또 고다음에 어려운 거는 뭐이 어렵다 했지요? 둘째 어려운 거는 뭐이라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난 다음에 고대로 행하는 거 둘째로 그게 어렵다 했지요. 그러면 세째로, 그거는 우리가 하는 게 아닌데 어려운 거는 뭐입니까? 그래. 그 만물들이 순종하는 거, 만물들이 순종하는 거. 이 세 가지 첫째 어려운 거 둘째 어려운 거 세째 어려운 거 이 세 가지를 말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순종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렇게 제일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제일 어렵고 또 둘째로는 고대로 행하는 것이 어렵고, 세째로 그거는 참 전능자나 할까 딴 사람은 못 해요. 세째 어려운 거는 전능자 할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관없어. 첫째 둘째만 해 놓으면은 제일 어려운 거 고대로 순종하는 거, 뽕나무가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는, 물 위에 바다 위에 나무가 꿋꿋하게 서 가지고 있는 거 이게 제일 어려운데 그거는 전능자 주님이 하실 일이라.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데,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아나 모르나 지금 말해 줄 터이니까 하나님의 뜻은 말이오. 요걸 아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찾기 쉬운 뜻이 있고 찾기 어려운 뜻이 있고 둘뿐입니다. 찾기 쉬운 뜻이 있고 찾기 어려운 뜻이 있고 이 둘뿐인데, 찾기 쉬운 뜻은, 찾기 쉬운 뜻은, 요거 기억만 하십시오. 찾기 쉬운 뜻은 행하기가 어렵고, 알겠소? 행하기가 어렵고, 또 찾기 어려운 뜻은 행하기가 쉽습니다. ‘요래도 조래도 할 수 있는데?’ 찾기 어려운 뜻은, 찾기가 ‘요래 해야 되나, 요래 해야 되나?’ 요래도 될 것 같고 요래도 될 것 같고 도무지 모르겠다 말이오. 고런 것은 찾기 어려운 뜻은 행하기가 쉽고 찾기 어려운 뜻은 행하기가 쉽고, 또 찾기 쉬운 뜻은 행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다 말이오. 못 행할 거는 행할라 안 하지요. 행할 거를 하라 하지요.

이러니까, 자, 여러분들 찾기 어렵고 행하기 쉬운 그것을 힘을 써야 되겠습니까 찾기는 고, 이거는 찾기는 쉬워. 찾기는 쉽고 행하기 어려운 그것을 힘을 써야 되겠습니까? 어느 걸 힘을 써야 우리가 성공을 하겠습니까? 예? 찾기는 쉽고, 그렇지 찾기는 쉽고 행하기 어려운 거는 그놈은 나만, 행하기 어려운 거니까 알기는 확실히 아니까 힘만 쓰면 될 것이거든. 힘만 쓰면 돼. 행하기는 어렵고 찾기는 쉬운 거. 그러면 찾기는 쉬우니까 찾기는 찾아 놨으니까 행하기는 힘이 들지마는 나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그거는 행할 수 있다 말이오. 그것만 행하면, 그러면, 차차차차 나중에 가서 찾기 어렵고 행하기 쉬운 그것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찾기 쉽고 행하기 어려운 그것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둘 다 해서 성공을 하게 되고 찾기 어렵고 행하기 쉬운 그것만 탐하는 사람은 찾기 쉬운 것은 절대 제가 찾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요 해석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쉽게 알아서 아는 사람도 알겠지마는 고걸 확실히 깨닫는 거는 그렇게 못 깨닫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마음을 주님에게 드려야 깨닫지. 마음을 주님에게 드려 그게 어째 그럴까?’ 자꾸 이래 생각하면 알아집니다. 마음을 들여야 돼요. 옥토에 뿌린 씨는 뭐이냐? 옥토에 뿌린 씨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씨인데 돌짝밭에 뿌린 씨는 그 씨가 돌짝밭이기 때문에 씨가 그 양분을 먹지 못했고, 또 길가 뿌린 씨도 땅에 지기를 먹지 못했고 덤불 밑에 뿌린 씨도 지기를 다 먹지 못했고, 옥토에 뿌린 씨는 그 씨가 지기를 다 먹었습니까 못 먹었습니까? 다 먹었어. 그러니까 옥토에 뿌린 씨라,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고 요 말씀에게다가 내 마음과 힘과 목숨과 뜻을 다 기울여야 요걸 깨달아지는데 기울이지 안하고 엉뚱한 일 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 구원은 못 이루어져요. 우리 구원만 이루면 세상을 이용해요. 세상은 내것이라.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은 내것이라.

이용되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고거 말할라고 지금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내가 고대로 행하면 고것이 산 믿음이라. 능치 못할 것이 없어. 고거 산 믿음이라 전능이야. 능치 못할 것이 없어.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찾기 쉬운 것은 행하기가 어려우니까 찾기는 다 확실히 하나님의 뜻이라 알기는 알지마는 행하기가 어려우니까 거부한다 말이오.

거부하고, 또 찾기 어려운 뜻은 이리 할까 저리 할까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네, 이랄까 저랄까, 뭐를 해 볼꼬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인지? 거게서 엉뚱한 그 사람은, 찾기 어렵고 행하기 쉬운 그것만 날뛰는 사람은 평생 가도 예수를 못 믿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것만 기억을 해. 기억해 가지고 어째 그런가, 고 이치로 가서 가만히 눈 감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면서 좀 명상해서 요게 대해서 요것을 확실히 깨달으면 여러분들이, 고걸 확실히 깨달으면 이랄 거라 말이오. 그라면 가만히 이래 눈 감고 이래 있다가 ‘주여! 옳습니다! 아멘! 이게 나온다 그거요. 그 힘이 세상을 이깁니다. 그것이 우리를 변화를 시키고 그것이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그 실력이 고게서 하나씩 둘씩 자라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자꾸 이렇게 내가 생각하고, 모든 일을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그 일 하면서 하라 그말이오. 그러면, 돈도 잘 되고 회사도 다 잘 돼. 왜 젊은 사람들이 뭣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해? 망하는 것은 내가 보니까, 망하는 것은 전부 허욕 가지고 망하고 허영 가지고 망하고. 죄 가지고 망해. 거짓말 하고 이래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내가 ○○○ 집사가 지금 오늘 아침에 말했는데, ○○ 집사 지금 건축하는데 요새 계속 일해? 할 일 있어? 그러면 됐구먼, 할 일이 없으면 도적질해 그거 다 할 일 없는 거라. 왜 일 군이 왜 일이 없느냐? 요새 막 일거리 꽉 찼는데, 보니까 그 사람 이거시키니까 괜찮다. 보니까 일도 신실히 하지. 외에 비싸지도 안하지, 적당하지, 이라면 마구 천세가 나 가지고서 못 견뎌 못 견뎌.

그때 일이 많으면 그만 아이구 일이 많으니까 이제 사람을 들이대 가지고 많이 해야 되겠다, 사람을 들이 대면 저와같이 신용 있는 사람이 많이 있나요? 없으니까 신용 있어서 막 일거리가 많았는데 아무나따나 사람들을 대 가지고 하니까 그만 신용 없어져 버리니까 나중에 일거리가 스르르륵 없어져 버리고 어데로 가 버리고 없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게, 내가 보면은 우리 청년들 모두 다 사업에 가난한 사람들은 전부 허영과 허욕이오. 이라고, 중간 반사 된 사람들은 다 그대로 허영과 허욕을 다 회개하고서 이라니까 사업에 성공이 조그만한 사장이라도, 모두 사장이라 하대.’ 사람 몇만 있으면 사장님, 사장이라 하고 제법 그래도 어북 되는데 그라고 나서 중간반에 왔어 중간반에 와 가지고 반사 됐는데 반사되 나니까 쩔쩔 매 가지고 꼼짝을 못 해 반사가 되고 나서는 보니까 이걸 못 해 이걸 감당을 못 해. 학생 몇 그것도 감당 못 하는 게 뭐 어데 가 교역자로 나가 가지고서 교역자. 종노릇 할 거라? 정신을 차려서 힘을 써요.

이번에 이거 모두 조사들 뭐 이런 사람들 전부 이거 보냈더니마는 전부 가 가지고 부훙사라 대부흥사라. 그 교회 가 가지고, 내가 보고를 받았어. 보니까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아이구 아무것이 그이 잘 가르칩디다.’ 나는 이 ○○ 교회 그 ○ 조사를 저게 서울에○○교회를 보냈는데, 그 ○○ 목사가 와 가지고서 ‘그 ○ 조사 ‘아, ○ 조사 참 유망합디다’ 왜?' 내가 그라니까 `아주 잘 가르칩디다, 참 은혜가 있읍디다, 그 ○ 조사가 아주 유망합디다.’ 유망은 무슨 놈의 유망, 여기 지금 ○○교회 와 가지고 만날 그꼬라지인데, 전부 게을러 빠져 가지고 그 꼬라지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 말씀 배워야 도무지 제가 영접지 안해.

하나님의 뜻을 회개해 찾지 않기 때문에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 그말이오.

인제 이거 좀, 교회들이 인제, 내가 그래 기도하고 있어요, 내가 몇 교회, ‘요 교회는 크게 대부흥을 주옵소서’ 좀 열심히 하는 거는 부흥 주고 게을부리는 그런 거는 팍 낮춰서 그만 배척을 당하도록 그래, 배척당하면 쫓겨 나가 버리구로 말이오. 자, 따라합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뭐입니까? 다 아녜요, 그러니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따라 합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거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마음 가운데에 주님의 도를 이래 생각하고 이거, 새벽으로 배운 거 이걸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자꾸 새김질 하면은, 이라면은 새김질하면서 나중에 그거 깨달아지면은 일도 거뿍거뿍 잘되고 하나님이 동행하니까 잘되고, 아, 이거 하나님의 기적이다. 하나님의 도와 주심이 환하게 보일 거라 말이오. 그리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일은 잘되고 하는 일에도 축복이 오니까 잘되고, 그만 잠깐 되는 건데 잠깐 돼 버려요, 이까짓 거 뭐 세상 이런 거야 하늘나라 구원 얻는 그것이 힘이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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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 겨자씨 믿음의 3위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90510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3
596 겨자씨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7수새집회 선지자 2015.10.23
595 겨자씨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7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3
594 겨자씨 믿음의 능력(생명있는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50806화후집회 선지자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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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겨자씨믿음-현실관/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51213금야 선지자 201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