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믿음


선지자선교회 1985년 12월 10일 새벽(화)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받았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받았습니다. 온  세상은 다 깜깜한 어두운 밤중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온 세상은 어둡다고  요한복음 1장에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빛이 왔다 했는데  어둡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포함해서 말합니다. 모두가 다 아무것도 바로 알지  못하고 전부 바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하는 말이오. 또, 사는 것이  하나도 없고 죽고 망하는 것뿐이라 그말이오. 또 전부 뻐뚤어진 죄뿐이라 하는  그말입니다.

 빛이 왔다는 말은 모든 것에 대해서 바로 알고 바로 행할 수 있고 또 삐뚤어진  것을 고칠 수 있고 온전함을 이루어서 다 영생을 얻어 가질 수 있는 그런 길이  열렸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은 뭐인가? 곧 예수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추운 데는 옷을 따시게 입고, 또 불을 때든지 해서 어떻게 하든지 따시게  하고 또 배고픈 데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그러면 모든 추운 것이 다 해결  됩니다. 이렇게 아무리 추운 데에는 방 따시게 하고 옷 따시게 입고 또 배고픈  데는 음식 먹고 하면 되는 줄 아무리 안다 할지라도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또  따뜻하게 불을 때든지 뭐이든지 해야 되지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서에 그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무리 안다  해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행해야 되지 행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에 많은 말씀은 해 놨으나 한 가지 이치를 이 면으로 저  면으로 여러면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많은 말씀이 실은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만 알고 잊어 버리지 말고 놓치지 말고 이  말씀을 거머쥐고 요대로 실행하게 되면은 차차차차 모든 말씀을 다 실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외우는 요절이 필요합니다. 요절을 외워 가지고 그 요절을  자꾸 생각하면 그 한 요절로써 많은 요절들이 다 연상하게 됩니다, 연상이라 말은  연해서 죽 생각한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말씀이라도 놓지 말고 지니고  있어야 되고, 또 이 말씀은 자기가 듣든지 읽든지 하고 깨달은 것을 잊어 버리지  안하고 놓치지 안하려고 하면 자꾸 외우는 그것도 좋지마는 성경에 말하기를  외우는 사람 가지고는 안 된다 이랬습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자꾸 그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고대로 실행을 하면은 고것이 고  진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왜? 이 진리는 사람보다 무한히 능력이 큽니다. 이  진리는 사람보다 무한히 능력이 크기 때문에 사람에게 종이 되거나 사람에게  붙들리겨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 진리에게 달라붙고 이 진리에게 간청하고 이렇게 해야 이 진리가  구원해 주지 이 진리를 제가 이 세상 지식 모양으로 자꾸 외우고 기억하고  한다고 기억돼지는 것 아니오. 그 사람이 이 진리를 만일 매일 백 번씩이나 천  번씩이나 한 성구를, 요절을 자꾸 외운다 합시다. 요절을 외운다 할지라도 고  요절은 이 사람에게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워도 요 말씀이 필요한 고  때는 제가 쓰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껍데기는 제가 보면은 외우고 하니까 대단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마는 이 말씀은 그저 글로 쓰고 종이에다가 글로 써 가지고 하는 그것이  이 말씀이 아니고 또 이 말, 이 말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말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리 외우고 한다 해도 이 말에,  음성으로만 하고 이 말로만 제가 말하지 그속에 진리는 행하지 안한 자에게는  진리는 상관없이 진리는 가 버렸습니다. 진리는 떠나 버리고. 진리가 나타나기  위해서 사용한 그 말만 그에게 있지 진리는 떠났습니다. 그 말은 아무 힘 없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이 책이지마는 이 성경 책은 아무 힘 없어요. 성경 책은 뭐 불로  태워도 태워지고 똥구덩이에 넣어도 똥구덩이에 넣어집니다. 그러면 혹 성경  말씀을 그와 같이 한다고 하나님이, 영감을 발표한 진리요 진리를 기록해 놓은  것이 이 말씀이요 말씀을 쓴 것이 이 성경 책인데, 이렇게 귀중히 쓰고 귀중한  것을 발표하는 이 책을 네가 그렇게 못 되게 한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벌은 줄  수가 있습니다. 벌은 줄 수가 있지마는 이 성경 책 자체에는 아무 권리 없는  것입니다. 아무 힘 없어.

 그러나 이 성경책보다도 그 안에 있는 말씀은 좀 권리를 가졌습니다 말씀은  권리를 가진 것은 말씀은 이거 참된 이치기 때문에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치 속헤 친리는 그는 없는 가운데 우주를 창조하기를 진리가 창조했습니다.

진리는 우주를 창조할 때에 실지로 시공한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시공했고  진리에게 시공하라고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명령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는 없는 가운데 우주를 창조한 이런 능력 가진 이 진리기  때문에 제가, 이 진리는 우리에게 뭣 때문에 왔느냐 하면은 이 진리는 우리에게  요대로 실행을 시켜 가지고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이 진리가 왔습니다.

 왔는데 이 진리를 받아 들여 가지고 요 진리 시키는 대로 제가 순종을 해  가지고 구원을 이루는 그 일은 하지 안하고 이 진리는 실행은 하지 않습니다.

실행은 하지 안하고 제가 이 기억만 해 가지고 입술로만 자꾸 말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입술로 말한다고서 이 진리가 그 사람이 입으로 자꾸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면 입으로 자꾸 이래 말한다고서 이 진리가 그 사람에게 붙들려  있겠느냐. 아무리 외웁니다. 계속해서 외웁니다. 계속해서 외운다고 해서 그  말씀이 그 사람에게 붙들려 있겠느냐, 실행하지 안하고 외우기만 하고,  업신여겨서 실행은 하지 안하고 그저 외우는 것으로서 다로 이래 아는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붙들려 있겠느냐 없겠느냐 암만 떠날려 해도 자꾸  외웁니다. 외우면, 이 세상 지식은 다 내가 외우면 붙들려 있습니다. 못 갑니다.

세상 이 말은 다 붙들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암만 외워도 이 진리가  붙들려 있겠습니까 외우거나 말거나 그까짓 것 다 냅두고 이 진리는 진리대로 볼  일 있는 데로, 자기 볼 일 있는 데로 따로 가겠습니까? 따로 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전한 율법이라 하면은 온전한 그 이치라 말이요 온전한  법칙이라 말인데, 온전한 법칙이라 말은 사람들이나 만물들이 요렇게 살아야 된다  하고서 창조주가 그렇게 내놓은 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온전한 율법이라 할 수 있고 또 진리라 할 수 있고. 이렇게 저렇게 발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자기가 듣고 고거 기억만 하는 것으로가 아니고  행하는 자라야 온전한 율법을 항상 들여다 보고 같이 있는 자라 했습니다. 행하지  안한 사람에게는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읽는 자와 듣는 자가 복이 있다. 읽는 자, 성경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그 복은, 그 복은 무슨 복입니까? 그 복은 읽고  들으면 그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복이지 만일 읽고 듣고 지켜 행하지  못하면 그 말씀이 그 사람에게 뭐이 된다고 했습니까? 뭐? 정죄와 심판이 된다  했어. 정죄와 심판. 그러면 정죄하면 좋습니까? 망합니다. 심판해 가지고 아주  멸망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말씀을 듣고 행해야 되지 행하지 안하면은  소용 없는데 읽는 자,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을 또 설교를 듣고 하는 것이 복  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 복이 있느냐 하면은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눈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 1장에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들과 읽는 자들과 지켜 행하는  자들 이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지켜 행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이러니까 꼭 지켜 행해야 되지 행하지 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이렇게. 예수 믿는 것도 이 세상 것 가지고 믿는 줄 알고,  세상 일을 제가 잘하니까 예수 믿는 일도 잘하는 줄 알고 있고, 또 세상이 배암의  지식이 많으니까 예수 믿는 지식도 많은 줄 알고 있고 이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은 예수 믿어 가지고서 기적을  보는데, 기적을 보는데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유식하고 똑똑하고 세상 일을  잘하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이 없습니다. 없는 거는 하나님이 저와 같이  하지 않는다는 그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켜 행하는 이 일을  힘써야 합니다.

 요새 늘 계속해서 산 믿음을 자꾸 많이 말했는데,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이라  말이오.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 산 믿음은 여게 발표하기를 무슨  능력을 가졌느냐? 산 믿음이 능력을 가겠는데 이 산 믿음이 능력 가지고서 일해  놓은 것이 무슨 일을 해 놨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일을  해 놨습니까? 녜, 이 세 가지 일을 해 놨습니다. 뽕나무더러 뽑혀라 할 때에  뽑혔고. 또 바다로 운반되라 할 때에 운반됐고 바다 출출 흘러내려 가는 물 위에  심기우라 하니까 심기워졌습니다. 그러면, 뽑는 일을. 옮기는 일을, 심는 일을 이  일을 해 놓은 것이 그것이 산 믿음이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 산 믿음에 대해서 그 힘을 써야 할 그거는 뭐인고 하니  힘써야 될 것은 첫째로는 산 믿음이 뭐인지 이것을 우리가 찾는, 바로 찾는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다. 산 믿음이 뭐인지, 믿음이 암만 많아도 소용없어.

야고보서에 보면 다 마귀도 믿는다 이랬어 '마귀도 믿고 떠느니라' 이랬어.

'마귀도 믿고 떠느니라' 마귀가 믿기는 믿는데 그 마귀가 바로 믿지 안하기  때문에 그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겨자씨 믿음을, 겨자씨 믿음이라 말하면 그만 산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을, 우리가 요거는 생명 있는 믿음이냐 요거는 생명이 없는 믿음이냐?  이래서 생명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우리가 공부를 했고, 생명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라고 그렇게 공부를 했습니다. 생명이 있다. 살았다.

 그러면 이 피조물이 산다는 피조물의 그 생명은 어떤 것이 피조물의  생명입니까? 그거는 다 그걸 알아야 우리가 뭐 일이 되겠는데 피조물들의, 사람뿐  아니라 이 모든 피조물, 피조물의 그 생명은 어떤 것이 피조물의 생명입니까? 자,  피조물의 생명은 그에게 있는 지혜라. 일호 지혜라, 지식이라 총명이라. 열심이라.

또 뭐 그런 것밖에는 없겠습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그러면 그것이, 그것이  생명입니까? 자, 그러면 뭐 몇 가지만 말해 봅시다. 그이에게 고기덩어리가 지금  살아 있습니다. 고기덩어리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생명, 또 그이에게  지식, 지식이 천하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라 합시다. 지식, 지혜, 또 열심. 또  그에게 모든 그 육체의 힘 자, 이런 것이, 이것, 이러면 몇 가지 했습니까? 몇  가지 말했습니까? 고함을 질러, 그라면 다른 사람들 다 알지. 그랄 게 아니라  '다섯 가지!' 한번 해 봐요. 저 OOO선생님 말해 봐. 크게 '다섯 가지!' 이래 말해  봐. 다섯 가지, 고만. (다섯가지!) 그라면 다 알 것 아니가? 그래 버려야 그만  쉽지. 다섯 가지.

 이 다섯 가지 가운데에 산 믿음이라고 하는 이 산 믿음이란 이 생명이 그 속에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그 속에 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손  안 들기는 그저. 자, 그 안 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  뒤에는 뭐 손을 못 드는구먼. 녜, 놓읍시다. 안들었습니다. 안 들었습니다  그러면, 생명은 뭐입니까? 요거 똑똑히 기억해요. 성경에 살았다고 하는 이  생명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이 바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말합니다. 바로 돼 가지고 있으면 안 죽습니다. 바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다 첫째 아담의 범죄로 다 죽었다. 인생이 죽은 것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연결이  끊어졌으니까 나무를 뿌리에서 베었으면, 나무를 뿌리에서 베었으면 그 벤 것이  그것이 지금 새파랗게 살아 가지고 있지마는 뿌리에서 끊겨졌기 때문에 그것은  차차차차 시간이 지나가면 그만 말라 버리고 맙니다. 아주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죽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립니다. 소나무 같은 것은 한 한달 이상  갑니다. 캐서 나무를 심어 놓은 것은 죽으면은 한 달 되면은 죽은 표가 나지마는  가지를 잘라서 땅에, 내던져 놓은 것은 한 달이 지나가도 새파랗게 고대로  있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 이제 더 좀 시간이 오래 가면은 빠짝 말라서  아주 빨간 솔가지가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이제 하나님과 끊겨졌지마는  끊겨지고 난 다음에 즉시 빠짝 마르는 것도 있고 소나무와 같이 오랫동안 있어야  마르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새도 말 들어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백 이십 세 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오랫 동안 말랐소. 끊겨지기는 끊겨졌는데 오랫 동안 말라서 암만 이백 세  아니라 그전에도 구백 세를 살았지마는 구백 세를 살아도 마지막에는 죽기는  죽습니다. 하나님과 끊겨겼으면은 시간문제지 죽기는 죽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것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기 덩어리의 이 생명, 육체로 살고 있는 이  생명은 이것이 죽은 것입니까 산 것입니까? 하나님과 끊겨져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 살 먹어 죽는 것, 뭐 백 살 먹어 죽는  것, 오십 살 먹어 죽는 것 그거는 뭐이냐 하면 그 끊어졌는데 그 죽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있고 적게 걸리는 것 있고 그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기독교에서 영생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영원히 하나님과  끊겨지지 않는다 그말입니다. 영원히 끊겨지지 안하는 영생입니다. 또 그 시간, 그  한 시간을 끊겨지지 안했으면은 고 한 시간에 자기의 활동한 마음이나 몸이나 그  기능은 다 살았습니다. 고것은 연결이 영원히 돼 버렸습니다. 영원히 연결이 돼  버렸는데, 연결이 됐는데 최종적으로 그것이 마지막에 연결된 것을 그 주격이,  자체라는 게 주격인데. 자기가 그 연결된 걸 다 포기해 버리면은 끊쳐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이렇게 오랫 동안 믿는다 하지마는  어떤 환난이 왔을 때에 '나는 예수 안 믿겠습니다' 해 버렸으면 그만 그거 다  끊겨져 버렸어. 이제까지 신앙 생활한 거는 다 끊겨졌어.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밤중되는, 뭐 밤중되기까지는 다 열 처녀가 다 같은  자격을 가지고 있었지마는 밤중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다섯 처녀는 쫓겨나고,  다섯 처녀는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열 처녀가 다 지옥 간 것은 아니고  천국 갔는데, 그러면 열 처녀중에 다섯 처녀는 어째? 다섯 처녀는 자기의 심신의  기능은 다 지옥을 가 버렸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심신의 기능은 다  지옥갔고, 다섯 처녀는 심신의 기능도 다 하늘나라 갔고. 그러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기 심신의 기능은 지옥을 갔고 그 영은 하늘나라를 갔습니다. 또 그  형체도 하늘나라 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영과 그 몸이  다 구원을 얻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영만 구원 얻고 그 몸뚱이는 형체만  부활했지 속에 기능은 다 죽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한 공력이  불타는 자는 다 '구원은 얻되' 뭐라 했습니까? 그 공력이 불타면 수치들 당하고  '구원을 얻되' 뭐라 했습니까?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러니까, 하늘나라도 다 제한이 있습니다. 열 고을 차지한 사람 한 고을 차지한  사람으로 비유한 것은 하늘나라에 자유가 있지마는 자유의 범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범위를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도 자유에  대해서 범위가 있고 권위에 대해서 범위가 있습니다.

 아, 여기 세상에도 보면 이 사람은 동회장이라. 동회장이면 동회장의 권위의  범위가 있습니다. 동회장의 권위의 범위는 고 동회만은 권리가 있지 그 동회 딴  데는 통치 권리가 없습니다. 또 구청장은 그보다 좀 범위가 넓어서 그 구로 정한  내에는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보다 더 큰 이는 뭐입니까? 그보다 큰 이는 이제  시장이 있습니다. 아, 시장도 부산시에만 자기가 통치할 권리가 있지 부산시  밖에는 그런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위에 다 올라가면 대통령도 그  나라 대통령이면 그 나라만 통치할 어느 기간까지만 있지 다른 나라에는 통치할  권리가 없다 말이오. 우리나라가 삼팔선으로 지금 갈라져 가지고 있는데 이북에  그 정권 잡은 사람이 이남을 통치 못하고, 이남 정권 잡은 사람이 이북을 통치를  못 합니다. 그 권리가 다 제한이 돼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그 모양으로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하늘나라도 다 자유의 한계도 있고  권위의 한계도 있고 지위의 한계도 있고 그 모든 행복의 한계도 있어. 너는 요  행복은 누리지마는 요 행복에서 올라가는 요 행복은 구경도 못하고 가지도  못한다 그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다 하늘 나라에도 다 범위가 있고 제한이  있다. 제한이 있어서 그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서 다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  제한이 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제한된 그것을, 다시 말하자면 그것이 하나의  제한됐기 때문에 하나의 구금과 같다. 붙들려 매인 구금과 같다.

 이랬는데. 그걸 내가 언제. 그걸 알려 듣기 위해서 이래 말했는데 그런 말만 내  쓰면은 다른 사람이 '아 하늘나라도 지옥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봐라. 하늘  나라도 지옥있다 하니까 이게 이단이 아니겠느냐?' 그라면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잘 듣고 따라 갈 거라. 그래, 그런 말은 앞뒤가 있는 말인데 그런 말을  벌로 자꾸해 쌓아면 안 됩니다. 하늘나라도 그의 구원 얻었으나 자유나 권세나  쾌락이나 모든 구원에 대해서 다 한계가 돼 제한이 되어 있다. 그 제한을 지금  넓혀야 되지 지금 넓히지 안 하고 그때 가 가지고는 넓히지 못한다.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게서 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해결돼야만 나오지  하늘나라서는 해결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안 돼요.

 그런데 내가 언제 보니까 기도하는 사람 가운데 OOO목사님이 하늘나라도  천국에도 지옥이 있다 하는 고말만 기형적으로 들어 가지고서 아주 자기 딴에는  신기하게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이, OOO목사 왔소? 손들어 보소? 오늘 안 왔네.

안 왔으니까 그말 어데 전하러 갔는지 몰라요. 그말을 전하러 갔는지 모른다고.

'하. 이거 또, 하나 됐다.' 싶어서 그 말을 전하러 갔으면 그런 사람은 자꾸 복음을  가루어요. 이래 가지고서 어데 가서 '하늘 나라도 지옥이 있다. 이거 아느냐?'  하늘나라에도 지옥이 있다고서 이거 아주 신기한 이런 말을 이렇게 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그걸 충분히 다 해석을 해서 이렇게 하면은 그 사람들이 하늘나라도  제한이 있다, 구원 얻은 것은 다 구원을 얻으나, 천국을 갔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다른 사람은 기쁘고 즐거운데 그들은 불가운데 가니까 평안이  없다 말 아닙니까? 인제 이런 것을 말해서 성구를 들어 말하면 되는데 그렇지도  안하고 그만 '천국에도 지옥이 있다' 이런 말만 가지고 기형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이단이라 자꾸 이렇게 말한다 그거야. 그러니까, 잘못 듣고 전하면  안 돼요.

 하늘나라도 꼭 같은 동등이 아니고. 모두 다 설교할 때에 하늘나라는 꼭 같은  구원으로 똑같이 꼭 같이 기쁘고 즐겁고 자유하고 이렇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좋아서 모두 이 아무것도 안하고 참 벙긋거리고 좋은데 절대로 하늘나라 그런  나라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나라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기에 행한 대로  갚는다고 똑똑히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하에 보면은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간에 자기의 행한 대로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이랬는데 그게 옳은 천국 아닙니까?

 그런데 혹 말이요. 내가 아침으로 설교할 때에 어떨 때에 그거 고함을 질러서  강하게 말할 때는 그때는 강하게 말해야 될 그거, 하나님이 강하게 말하라.

하나님이 분해서, 또 못알아 듣기 때문에 똑똑히 알아 들으라고 강하게 말하는  것인데, 그런데 대해서 어떤 분이 어제 신고함에 보니까 성경에 그렇게 축복도  새벽에 큰 소리로 하면은 그 사람에게 도리어 잘못됨이 되는데 이 새벽 설교할  때에 그렇게 암만 좋은 말씀이라도 고함을 지르고 하니까 안됐더라 하는데 그런  것을 잘 들어야 됩니다. 잘 들어서, 나는 힘이 없어 늙어서 힘이 없어서 그만치  이 설교할 때는 고렇게 말할 게 아니라 좀 더 강하게 해야 합니다. 왜? 이거  하나님 말씀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거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백 번해도 안  곧이 들으니까 고함 지를 것 아니요? 암만 자기가 어진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말하다 안 되면 부득이 이놈아!!  고함을 지를 것 아니겠소? 그런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하나님이 지금, 오늘에는 어떤 종을 필요로 하느냐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말하는데 막 벽력같이 강해서 사람이 그 앞에 그만 절절 매고 그만  깜짝깜짝 놀래고 기절할 만치 그렇게 강한 힘이 있어 가지고서 설교해 주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우리 한국을 한번 살리겠습니다. 그런 힘이 없어 녹는 그런 힘이  없어서 안 돼요. 옛날 젊을 때는 그런 힘이 있었는데 지금 한 내가 사십 세나  되는 그런 힘만 있으면, 지금, 그때 깨달은 진리와 지금 깨달은 진리가 아주  이거는 참 천지의 차이가 있는데 지금 깨달은 진리를 그렇게 한 삼사십 세 되는  그런 힘을 가지고서 강하게 증거를 하면은 모든 사람이 알아 듣고 좀 효력도  있고 좀 이렇게 되겠는데 그만 육체의 힘이 없으니까 실은 신령한 힘도 줄어지는  셈이오.

 이래서 겨자씨 믿음이라. 요걸 기억하십시오. 산 믿음이라. 산 믿음은, 산 믿음은  어떤 것이 산 믿음이냐? 산 믿음이냐?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이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니? 신구약 성경에는 수많은 구절들이 기록되어  있지마는 자기 현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 구절대로 해라 조 구절대로 해라  하는, 요 구절 조 구절을 가르치는 고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뭐이라 합니까? 예?  '하나님의 뜻'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 또 하나 뭐입니까? '네 속에 기름  부음이 네게 가르치는 고대로 하라' 기름 부음이 뭐입니까? 성령의 감화 감동  아닙니까? 성령의 잠화 감동이 가르치는 대로 고대로 하라 그말이오. 산 믿음은  어떤 게 산 믿음이냐 하면은 우리를 중생시킨 성령님께서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고때 고 시, 고 시간 고 장소 고 사건에, 고게 대해, 고 일에 대해서 고 일  고사람 고 물건 고 시간 고 자리 거게서 요렇게 해라. 요렇게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고대로 하는 것이 산 믿음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여호와의 말씀을 조심해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그때는 '요 시간' 이라 하면은 거석하니까 좀 아직까지  어린 때니까 '오늘날' 오늘날이라 말하면 과거입니까 미래입니까, 현재입니까?  오늘날이란 뭐입니까? 현재지요 '오늘날' 하는 거는 현재에 네게 명하는 요대로  행해라 그말이오. 그것이 산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제 마음대로 택해 가지고서 성경에 있으니까 이  말씀대로 하면 된다, 저 말씀대로 하면 된다 자꾸 이래 하는 그것은 제 마음대로  선택했기 때문에 산 믿음이 아니고 죽은 믿음이라 말이오.

 졸고 있는데 고함을 꽥 질러야 되지. OOO집사님. 정신 딱 차려. 또 정신 안  차려 가지고, 인제 그거 자랑 안 하면 안 돼요. 자랑을 해야 돼요. 돌아다녀. 인제  OOO집사님은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그말하고 다니지 말아요. 그말보다도  더 중요한 말 있어요. '나는 자궁암이 걸린 여인인데 예수님 믿어 가지고  예수님의 은혜로 나는 낫았다. 예수님이 낫아 주셨다.' 자꾸 돌아다녀. 그리  하고만 자꾸 돌아다니면 이제 자궁암 앓는 것이나 뭐뭐.

 어제도 보니까 어떤 암을 앓아 가지고서 뭐 돈도 없는데 이래 가지고 다 떨어  가지고 어떻게 하고 어째야 됩니까, 나한테 물어 봐요. 그거 나한테 왜 묻느냐?  의사들이 자궁암 수술하라 하면 뭐 수술하는데 한번 수술했는데 또 두 번에  재발돼 가지고 또 수술하는데, 또 이제는 방사선 치료니 뭐이니, 암만해 봐야 안  됩니다. 그거 다 사람 속이고 꼬아 먹는 것뿐이오. 치료한다고 해 가지고서 나은  사람 있습니까? 치료해 가지고 나은 사람 약간 있는데 나은 것은 약간  그렇지마는 나은 사람 나중에 가서 다 그걸로 죽고 맙니다. 안 돼요. 그 OO목사  말 들었는데 거게 가서는 뭐 백 명인가 그래 수술 받았다고. 백 명인가 그렇게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받은 가운데에서 다 모두 정신 이상자가 되고 뭐 별별  병신이 됐는데 자꾸 방사선 치료 뮈 이래 저래 한다 하는데 나중에 그저 기껏 가  봤자 한 이삼 년도 못 가요. 죽어 버려요.

 그런데,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돼야 돼. 믿음을 가져서 믿음으로 된 사람은  돼. 믿음으로 안 되고 한 사람은 안 돼요. 보면 될 사람 보면은,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복음의 말씀을 전할 때에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서 구원을 받을  만한 뭐이 있는 걸 보고서 명했습니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걸 보고서  명했더니마는 나았습니다. 그 병 이름이 무슨 병이지요? 그 병 이름이 무슨  병입니까? 이렇게 등한히 들으니까 헛일이라 말이오. 나면서 앉은뱅이, 앉은뱅이.

아, 앉은뱅이가 있는데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해 보니까 그 말씀을 듣는데 보니  자꾸 정신 차려 듣고 마음에 믿는 것이 생겨지고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걸  바울이 봤다 말이오. 보니까, 보고서 큰 소리로 '앉은뱅이야 일어나라' 하니 그만  일어나 버렸다 말이오. 그 일어나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많이 믿지  안했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안 돼. 믿음으로 낫는 사람은 낫는다 말이오  보면, 그 사람 보면은, 보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 있어. 떡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애도 믿음이 없는 사람 있어. 떡 이래 말하면은-하나님이 믿음을 줘야  돼요.-아, 이라면은 치료를 지금 수술을 할라 하는데 수술하고 치료할라 하는데  제 돈 가지고서, 제 돈 가지고서 제 치료 제 수술하는 사람은 혹 옆에서 조금  말하기가 낫습니다. 나아서, 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거 암만 돈 들여  가지고 그래 해 봐도 그런데' 그 본인에게는 말하지마는 옆에 가족들 있는데에는  말 못 한다 말이오. 가족들이 있으면 그 환자에게 그말 못 해요. 가족들 듣는  데는. 그라면 가족들이 그럴까 싶어서 본인이 환자가 들어서 그 반감을 가지고 이  가족들 듣는데 수술할 필요가 없다 이라니까 자기는 자꾸 수술이 하고 싶은데  자꾸 수술할 필요가 없다 이라면은 그만 수술 못 해 주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 환자가 반감을 품고 나 죽어라 한다 이래 섭섭하게 생각한다 말이오.

 아무도 없는 데에는 '아무리 수술해 봤자 그러니까 이제 그래 말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회개를 하고 믿으십시오.' 이래 할 수 있지마는, 그 말을 봐 가며  해야 되지. 봐 가며. 보니까. 아, 자꾸 수술하고 싶고 이라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니까 하지 말라 해 봤자 죽으니까 나중에 죽으면 책임이  있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할 수 없어 '아, 그래 참 어짜든지 그러면-그뭐  택명만 그렇지-기도 많이 하고 수술을 하십시오. 어짜든지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될지 압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저 그 사람의 믿음을 보고  아무래도 수술하고 싶으니까 수술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말아오. 그렇지 않소? 그  사람에게 억지로 그래 할 수는 없어. 그 사람에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말했어.

 그런데, OOO씨는 내가 그때 보니까 '아, 그만 자녀들이 하면 가 수술을 해야  안 되겠소?-이라니까-그 수술해서 되는 법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도  있고 이런데 그래도 자녀들이 그래 자꾸 하라 하면 수술을 해야 되지 안하고  되겠소?' 하니까 딱 나서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아, 이제 나는 그러면 나는 수술  안 하겠습니다. 안 하기로 단정하고 나는 그저 믿음으로 나을랍니다. 이제 팔월  집회 가서 믿음으로 나을랍니다.' 이래, 보니까, 내가 보니까 그 믿음으로  낫을라고, 속에 믿음이 겉으머리 입술로만 하는 게 아니라 속속들이 그 믿음이 좀  있어, 내가 보니까 이래서 '기도합시다' 그래. 나무 밑에서 가지고, 여름이니까  여름에 더울 때니까 나무 밑에 서 가지고서 둘이 비탈에서 서서 이래 기도를  잠깐 이래 해 줬다 말이오. 기도해 줬는데 아, 나중에 보고한 것 보니까 낫기는  나았는데 8월 집회 가 나을 줄 알았더니마는 또, 준비하는 가운데 나았다 이래  가기 전에 나아 버렸어.

 가기 전에 나았는데. 자, 나았는데 그 나은 것이 이제는 아주 도지지 안 하도록  나으면 좋습니까. 조금 잘못하면 도지고, 또 회개 하면 또 낫고 조금 잘못하면 또  도지고. 또 회개하면 났고 고래야 좋습니까 이제 낫고 난 다음에야 무슨 일  하든지 도지지 안하고 그러면 좋습니까? 자, 도지지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도지지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저  O집사는 그렇게, 병 나으면 그래 나으면 좋겠고. 또, 조금 죄 지으면 또 도지고,  또 회개하면 또 낫고 고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알뜰히 사랑해요. 알뜰히 사랑해.

 그러니까, 벌써 보면 알아. 이걸 자기네들은 '아이구, 자궁암.' 그거 자 자랑해야  되겠소, 자랑을 해야 되겠소, 그걸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되겠소? 만유 대주재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셨으니까 하나님이 날 돌아 보시고 하나님이  친히 와 가지고 내게 치료를 하시고 이래. 지금, 의사들이 떠들어 쌓아도  못하는데 하나님이 와 치료해 주셨으니까 그 병을 나은 그것보다도 만유의  대주재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하셨으니까 얼마나 그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람이 쌀 한 되 그까짓 거야 그 뭐뭐 큰 게 아니지마는 이제 쌀 한 되쯤  가지고서 오늘 이거 쌀 누한테 자랑합니다. '이거 우리 O대통령님이 이 쌀 이걸  주머니에다가서 싸 가지고서 손수 들고 여기까지 오셨어. 이 쌀 한 되를 손수  들고 우리 집에 오셨어.' 자, 이래 놨으면은 손수 들고 우리 O대통령이 이 쌀 한  되를 가지고 오셨다고 이래 놨으면 그 사람을 그 군에서 그 시에서  멸시하겠습니까, 존대하겠습니까? 존대하겠소? 자, 멸시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녜, 존대해요. 그 사람한테 그럴 거 아니겠소? '아 야, 저 사람  O대통령이 직접 쌀을 가지고 오셨더란다. 가지고 와서 저거 뭐 이래 가지고서  직접 만나고 쌀을 가져와 이래 또 그뭐 말도 하고 서로, 그이 하고 통한다. 하야  이러니까 이제 내가 여기 출세를 할라 하면은 그 집에 뭘 갖다 주고 운동을 해  봐야 되겠다.' 막 굉장할 첫입니다. 그렇지 않소?  자, 그러면, 대통령이 크요 주님이 크요? 대통령이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없지요? 주님이 크지 안해요? 이러니까 그거 자랑할만 하요 숨길만 하요?  이런데 이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아, 뭐 그걸 자랑해? 나는 암병, 암병.

하필 자궁암병. 자궁에 있는 암, 자궁암, 그거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그거 바로 몰라 그런 것입니다.

 내가 며칠 전에 또 저 유암을 앓아 가지고서, 다 같이 유암 앓은 우리  O집사님은 세상 뜨지 안했소? 내가 O집사님 그때 볼 때에 유암에 대해서  믿음으로 나을라 하는 그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안했어. 그걸 자꾸 수술을 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의학으로 해야지 믿음으로 하는 그것이 보이지를 내게는  안했어요. 다른 뭐 아마 권사님들도 다 봤을 것이오. 보이지 안했어. 믿음으로  구원 얻을 만한 것이 보임으로서 바울이 말했어. 알겠습니까?  그래 내가, 유암으로 우리 여기, 내가 똑똑히 밝히지요. 여기 운전 기사 우리 저  버스 기사, O기사라고 O집사님입니다. 그이 부인이오. 저 대티 예배당에 지금  가서 수고를 하고서 그 예배당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분이오. 그분인데 유암  앓아 가지고서 이제 그걸 믿음으로 나았다 말이오. 나았는데 좀전에 보니까  얼굴이 시커머이 지금, 보니까. 뭐 믿음이 없어 보니까. 그때는 믿음이 달아나  버렸어. 이래 가지고 보니까, 내가 보니 어떤가 보자 하니까 저리 떡  들어오더니마는 여게 와서 앉았더만 저 저게 앉았는데. 거게도 못 앉고 저리  가더니마는 뒷 구석으로 가 저리 돌아 가더니마는 저게 보일까 말까 옆에 가서  살며시 앉아 가지고서, 떡 거게 앉아 가지고서 딱 엎드려 가지고 있더만. 엎드려  가지고 딱 거석해 가지고 일어나지도 안하고 뭐 성경 보고 찬송하자 해도  일어나지도 안하고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일어났는지 말았는지. 그래서 내가  보니까 찬송하자 해도 일어나지도 안하고 이래 가지고 있어서 마음에 밉상이라  말이오. 밉상. 밉상이면 내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들겠소? 밉상이니까 '저게 또  유암이 거석해 가지고 뒈지든지 말든지 아파서 지금 죽든지 말든지 그래야  되겠다.' 내 마음에도 이렇다 그말이오. 고거 밉상이라. 이랬는데, 또 인제 그래서  내가 그 남편 보고서 '아, 지금 어찌 됩니까? 너무 자기 일이 되지 않는가?' 이래  내가 걱정을 해 한번 물어 봤어 말이지. 내가 둔한 내가 알고 있는데 주님은 더  살핀다 말이오. 이랬는데, 또 보니까 얼굴이 뺄가이 보니까 보니 기쁨이 나고 좀  괜찮애. 괜찮으니까 조거 또 살아났다. 인제 괜찮겠다. 환하이 다 알아요.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아주 병 그거 달아나 버렸을세. 그렇게 하나님이 간섭 하시요.

누구든지 다 그렇습니다. 다 그래.

 이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데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하나님과 연결이 조금  되면. 실나끈만치 연결이 되면 실나끈만치 연결된 혜택을 우리가 얻게 되고서,  밧줄만치 연결되면은 밧줄만치 연결된 그 혜택을 받게 되고,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한 덩어리 되면 그만 전지 전능이라.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을 반대하면  망해요. 그 사람이 또 말하는 대로 순종하면 다 돼요. 고만 하나님하고 딱 들어  붙어 하나님하고 그만 딱 언행 심사가 같이 되는 그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말하는데, 이제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와 연결되는 그것이 인간의,  기독자의 성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산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요걸 기억하십시오. 연결 된  믿음은 뭐이 연결된 거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고대로 행하는 것이 고것이  산 믿음입니다. 오늘날. 자, 오늘날은 그거 뭐입니까? 현재 아닙니까? 현재는,  현재 행위는 제가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라고서. 그러면 현재에  죄 지었으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과 적이 되지 않습니까? 죄는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현재에 우리에게 명령하는 고대로 행하는 것이 산 믿음이라.

 그러면, 현재에 우리에게 명령할 때에 뭘로 명령하느냐? 뭘로 명령해 그  명령하기를 뭘로 명령하니까? 자, 크게 말해요. 뭘로 명령해요? 뭘로 명령해요?  또 엉터리. 뭐 말씀은 어데 말씀으로 명령해. 명령하기를? 우리에게 오늘날  명령했는데, 오늘날 명령했는데, 거게는 오늘날 명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라  이랬는데 오늘날 뭘로 가지고서 명령해요? 예? 크게 말해 봐요, 저 뒤에 듣구로.

안 들려. 에. 다 죽어 간다. 언간히 크게 나는데 좀 더 크게 해 봐. 기름이 가르쳐  줍니다? 이래 좀 해봐요 이래야 돼지지. 그래야 저게 다 알지. 그래,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줘요. 기름 부음이란 속에 우리를 중생시킨 성령의 은혜라 말입니다.

우리를 중생 시킨 성령님이 우리에게 감화 감동시켜 준다 말이오.

 그러면, 감화 감동시켜 주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데.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가르쳐 주시는 것을 우리가 듣는 데에는 눈으로 듣습니까, 이  귀로 듣습니까, 뭘로 듣습니까? 무슨 귀요? 또, 누가 존 소리로 한번 해 봐요.

누가 큰 소리로 할 수 있겠노? 고함 소리 좀 OOO선생 한번 말해 봐요. 무슨  귀로 들어요? 더 고함 질러 봐요. 다 들려요 이제? 양심의 귀, 양심의 귀. 양심 안  쓰는 사람은 예수 믿어야 소용이 없어요, 양심 안 쓰는 사람은 헛일입니다.

양심의 귀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 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다 말해 놨어. 요한계시에 보면 일곱 교회마다 다 말하기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여러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래. 귀, 귀는 양심을 말한 것입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소용이 없어. 양심 안 쓰는 사람은 예수 믿어서 기적과 축복을 보지 못합니다.

기적과 축복은 한없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 요놈이 자꾸 기적과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해요. 기적과  축복을 받으면은 우리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가 있어.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안해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안해요. 이걸 떠난  사람은 아무리 잘나도 저만 망하고 참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비참하게 되도  기운이 있으니까 떠들어 쌓지마는 차차차차 그 기운이 장 있습니까? 나중에 바짝  말라서 절단 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 따라 합시다. 산 믿음? 산 믿음? 겨자씨 믿음? 산 믿음? 산 믿음? 녜, 이것을  잊어 버리지 말아요. 산 믿음, 그저 퍼뜩 생각해서 '산 믿음. 나는 산 믿음으로  살아야지, 산 믿음으로 살아야지.' 고라고 난 다음에 '산 믿음으로 살아야지 아,  현재에 내게 영감시켜 주시는 고대로 살아야지. 현재에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하라 하는지 현재에 내게 하라 하시는 요대로 내가 해야지.' 자꾸 고걸 되새겨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팔천 삼백 이십 일명 인데 등록한 이분들은 어짜든지  기도를 계속합시다. 우리에게 자꾸 날마다 이래 기도를 계속하자 하는 이 말을  예사로 듣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이 자꾸 말하게 하는 것인데, 이렇게 기도  안 한 사람과 기도한 사람이 앞으로 이제, 크게 차이 날 것입니다. 기도 안 한  사람들이 비참하게 됩니다. 기도 안 하고 제가 의지로나 뭐 가지고 절대 못  이깁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오.

 이것 뭐 자꾸 백 목사가 하는 말이라고 자꾸 그렇게 들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그들의 행동은 보지 말아라. 그러나 말하는  거는 다 들어 지켜라. 내가 암만 행동이 나쁘다 할지라도 그 말하는 거는 들어  지켜라.' 그렇게 성령이 말하는 것입니다. 또 행동도 여러분들이 몰라 그렇지  여러분들이 모르는 행동한 것 있어. 뭐 지금 현재로서는 여러분들 보다 행동도  낫지 못하지 안해. 이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보다 내 행동이 나아요. 확실히 내가  하나님 앞에서 확신해요. 자신해요, 공연히 뭐 이리저리 독재니 뭐니 훼방하고  그런 짓 하지 말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자꾸 망쳐 버려. 하나님 종을 훼방하면  자꾸 망하는 걸 알아야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걸 자꾸 말을 바로 듣지 안하고  꺼꾸로 들어 가지고 자꾸 그라면 대야 그까짓 거로써 가지고서 종해요. 그러면 안  돼요. 어쨌든지 듣고는 순종해야 됩니다. 내 말 같을진대야 그까짓 거 뭐 백  목사가 뭐입니까? 하나님이 백 목사를 당신의 종으로 써 가지고서 이와같이  증거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오. 자꾸 듣고 순종해요. 그러면 복이 자꾸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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