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믿음-산믿음의 능력


선지자선교회 1985년 12월 8일 주일오전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예수님을 오래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들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만 다 받아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을 늘  강조해서 가르치시니까 이제는 제자들이 믿음은 어떤 것인지 모르나 주님이 가장  높이 평가하시는 것을 보고 주님에게 오만 거 다 구할 수 있으나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거게 대해서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겨자씨 비유라 그렇게 우리들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겨자씨로 비유했고, 또 믿음이 역사하는 그 능력의 결과를 뽕나무를 뽑혀서  바다에 옮기워져 심기우라 하는 것을 비유로 하셨습니다.

 여게 겨자씨 믿음으로 비유하신 것은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켜서 비유한  것입니다. 겨자씨는 작기는 작지마는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는 생명 없는  어떤 것보다도 달리 생명 작용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생명 있는 믿음이라 하는  그 말씀은 산 믿음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 믿음이라 산 믿음은  어떤 능력이 있는고 하니 초자연의 뽑는 능력이 있다 하는 것을 비유했고. 또  생명 있는 믿음은 초자연적으로 옮기는 그 능력이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또  하나는 생명 있는 산 믿음은 심는 초자연의 능력이 있다 하는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에는 나무 중에 제일 큰 나무가 뽕나무라고 합니다. 사람으로 한  여덟 아홉 열 아름까지 되는 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큰 뽕나무가  사람이 손대지 아니하고 겨자씨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명령할 때에 그 명령에  뽕나무가 복종해서 뽑혀졌습니다. 또 그렇게 큰 뽕나무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아니하고 사람 힘 없이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이 바다까지 옮기워진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바다물은 흘러 내려가는 물이요 그것은 쪼끄마한 모래알  하나도 뜨지 안하고 다 가라앉는 것인데 어떻게 이 큰 뽕나무가 가라앉지도  안하고 또, 떡 내려가지도 안하고 흘러 내려가는 물에 거게 심기워질 수가  있겠느냐? 이런 것은 다 역사에 없는 것이요 통계에 없는 비자연입니다.

비자연이요 비과학이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그 자연 법칙  안에서는 없는 일입니다. 이거는 다 자연 밖의 일들이요 또 인간이 경험했거나  보았거나 하는 그런 일들이 아닌 다 그런 일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초자연이요  비합리적인 일들인데 그대로 되어졌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면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요구하시는 것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다 생명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생명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지지 못한 여게 안타까와서 산 믿음을 가지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둘째로는 이렇게 비합리적이며 비자연적이며 비역사적인 뽑히는 명령도 할  수 있는 사람, 뽑히는 명령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사에 없는, 자연에 없는,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이나 그런 일 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그런 아주  비역사적이며 비과학적이며 비통계적이며 비자연적인 그런 뽑는 명령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명령의 권위자가 되기를 원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옮기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옮기는 것도 인간들이 '그거야 옮겨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게 옮겨지겠느냐?' 이 비과학적이요 비자연적이요 비역사적인 그런  옮기는 것이라도 당당히 명령할 수 있는 이런 명령의 권위자가 되기를 원하셔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그와 같이, 이 자연이나 과학이나  통계나 역사나 인간이 아는 지식의 범위 내에 도무지 그런 일이 없는 그런 심는  일도. 그 심기는 그런 일도 심기우라 담대히 명할 수 있는 이런 담력있는 사람,  이렇게 명령할 수 있는 이런 권위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셔서 이 비유를 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둘째입니다.

 첫째는 산 믿음을 가진 자 되기를 주님이 원하셔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해  주셨고 또 둘째로는 이렇게 뽑고 옮기고 심으는 이 명령의 절대 권위자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비과학적이요 비합리적이요 비역사적이요 비통계적이요 어떤  어려운 이 세 가지라도 당당히 명령할 수 있는 이런 권위자가 되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비유해 주신 것입니다. 세째로는, 말하기야 쉽지마는 말한다고 해서  그대로, 안 되면 그것이 다 수치가 되는 것인데 이렇게 말을 할 뿐만 아니라 말한  그대로 모든 것이 복종해서 어떤 피조물이라도 다 복종을 해 가지고 명령한  고대로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 결실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주님이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 인간의 주관이나, 자율 속에서 우러나온 이 종교와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자존자 창조주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 초과학적이요 과학을 뛰어넘은  초과학적이요 초자연적이요 초인간적인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람은 유한하지마는 다 무한성을 가진 것이 기독교입니다. 무한성을  가진 것이 기독교요 또 영원성을 가진 것이 다 기독교요 완전성을 가진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자들이 많이 이루었든지 적게 이루었든지 이루어 놓은 구원은  다 완전한 것들이요 영원한 것들이요 무한한 것들이요 불변의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도 다 영생입니다. 이것은 다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잠깐 오전에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생명, 생기 있는 믿음, 산  믿음에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를 하고 또 몇 가지를 이어서 증거할려고 합니다.

 그러면 산 믿음은 어떤 것이 산 믿음인가? 산 믿음은,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이 믿음인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이 믿음인데 산 믿음은  어떤 것이 산 믿음인가? 신구약 육십 육 권에는 수많은 조문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과의 계약 조건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면 그 수많은  계약 조건을 언제 이행할 것인가? 이행이라 하는 것은 현실에서만 하지 현실  넘어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 조건을  행한다면 그 계약 조건을 어느 계약 조건을 행하든지 행한다면 그것이 믿음이  되어지는 것인가? 그거는 믿음이 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만난 현실은  천태만상의 그 현실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현실에 완전 전지자이신 주님께서  네가 이렇게 해라 하는 고대로 한 그것이라야 그것이 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계약 조문이라고 해서 자기 맘대로  채용하고 자기 맘대로 시행하고 하는 것은 그것은 다 마귀가 하는 것이지 성도의  산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그라면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너를 받들어 그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나님이 계약하지 안했느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제 맘대로 계약을 채용하고, 예수님에게 제 맘대로 '이 계약을 네가 한 번  지켜봐라 그러면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그대로 이제 너에게 다 응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되면 모든 사람 이 보고 아 그 높은 선전에서 뛰어내려도  상하지 안한 것 보니까 그는 과연 우리가 믿을 만한 구주로구나 그렇게 사람들이  인정치 않겠느냐' 그렇게 해서 사이비하게 꾀웠습니다.

 예수님은 거게 대답하시기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셨다.

하나님이 요렇게 하라 하시면 고대로 할 일이고, 하나님이 '요렇게 해라. 고라면  내가, 요렇게 네가 요 계약을 지키면 내가 요렇게 해 주마'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으로써, 법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지켜야 되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야 되지, 순종하는 것도 법조문에 있다고 해 가지고서  네 마음대로 선택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먹고, 이용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대로 이제 응해서 순종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래 주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시험하는,  의심을 가지고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하다가 많이  멸망을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라니까  마귀가 패전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한 1서 2장 27절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너희 안에 거하나니'  하는 것은, '거하나니' 하는 것은 너희 안에 있다는 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거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되었다 이랬지마는 여기 '거하나니' 하는 것은  생존한 인격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까 생존한 고 신격체를 가리켜 말합니다.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름 부음 받았다 말은 장립 받았다  말인데, 우리를 다시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로, 산 자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이렇게 기름 부어서 우리를 진리와 성령으로 살려냈습니다. 우리를, 죽은  우리의 영을 살리신 것은 (이 아이들 좀 단속하십시오. 이 아이들아, 저리  나가거라. 저리 가거라. 저 아이 임자가 누구요? 복도에 다니며 저는, 다른 사람은  모두 앉았는데 뛰어 돌아다니니까 아주 장기있는 줄 알지, 그라면 아이를 뭐  장기를 기르고 기백을 기르는 것 같지만 그 못 씁니다. 예배드릴 때는 어짜든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예배를 드려야 그 아이가 축복을 받지요. 집에서 자꾸  타일러 줘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쳐 줄 필요가 없고' '가르쳐  줄 필요가 없고' 그러면, 성경 말씀은 배우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배우라고  했는데 여게 가르쳐 줄 것이 없다 말은 내가 현실에서 어떻게 행해야 되느냐, 내  현실에서 어떻게 행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이 어데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성경은 가르쳐 줄 수 있지마는 그  자기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은 속에 기름 부음인 성령님만 가르쳐  주시지 성령님 의에는 가르쳐 줄 이가 없다 하는 그 말입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쳐 줄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그의 기름 부음이' 우리를  성령으로 살리신 그 성령, '기름 부음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이, 우리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 사도행전 1장 8절에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비로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이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그대로 주 안에서 살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산 믿음은 어떤 것이 산 믿음인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성경  말씀대로 고대로 행하라고 주신 말씀 아닌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중생된 자에게  하나님께서 현실 현실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영감으로 가르쳐 주시는데  가르쳐 주심을 받았을 때에 이 받은 것이 바로 받았나 잘못 받았나 그것을 바로  깨닫기 위해서 참고로, 하나님에게 받은 명령을 그것을 성경을 참 공로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영감을 받아서 깨닫고  난 다음에 이것이 바른 영감이냐 악령의 영감이냐 이것을 좀 바로 상고해서  조사해 봐야 되겠다 할 때에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서 조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지시하시는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그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지시하시지 그 신구약  성경에 계약되어 있는 그 범위를 넘어서 거게 없는 것을 우리에게 지시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유일한 법칙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어떤 게 산 믿음인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 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가르쳐 주시는 고대로 행하는 것이 곧 성경에 기록한 고  조문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 되고 하나님에게 순종한 행위가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산 믿음이라 말은. 산 믿음이라는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을  가리켜서 살았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산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하나님과 직접 연결이 된 믿음이라, 전지 전능자와 직접 연결된  믿음이라. 주권 개별 섭리자, 주권자와 직접 연결이 된 그 순종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 산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신명기 28장 1절에 산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게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듣기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듣고 지식으로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여게 순종은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조심해서 듣고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듣고 내가 오늘날' '내가'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당신을 말한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 내가. '오늘날 너에게  명하는' 오늘날 너에게 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육십 육 권에 많은 것이  기록되어 있지마는 주님께서 오늘날. 내가 오늘날 내가 오늘 이 시간에, 내가  오늘 이 현실에서 너에게 명하는 명령이 있으니 그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러면,  명령하신 분이 말입니다. 명령하신 그분이.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러면, 요것이 산 믿음입니다.

 그러면 산 믿음은 이렇게 어떤 게 산 믿음인가? 성신이 우리에게 감동시켜서  요렇게 해라 하는 고대로 하는 고것이 산 믿음입니다. 또 신명기 28장 1절에  말씀하신 거와같이 요 현실에 내가 너에게 명한 요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라면,  요 현실에 너에게 요렇게 지켜 행하라고 명령한 그 분이 요대로 행하면 그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하나님이 너를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모든 성공은 산 믿음을 지킬 때에 산 믿음을 통 해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산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니 그것은 옳은 바르고 참된  것입니다. 고것은 진리대로요 고건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로만 된 것이기 때문에  고것은 객관적인 신앙입니다. 주관 신앙이 아니고 객관 신앙입니다. 고거는  순전히 제가 능동으로 믿는 능동 신앙이 아니고 그건 순전히 하나님에게 따라  움직이는 피동 신앙입니다. 그러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니고 다 산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 산 신앙에 대해서는 그 능력이 어떠한가? 산 신앙은 전능입니다. 산  신앙은 전능입니다. 산 신앙은 만능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 하반절에 보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이랬습니다. 전능 아닙니까?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이렇게 했습니다. 또 주님께서 요한복음 11장에도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 믿음은 성경의 구구절절을 지키는 것이  산 믿음이 아니고,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바로 받아 가지는 데에, 바로  찾아 가졌느냐 하는 것을 바로 찾는 데에 유일로 도움이 되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내가 성경 말씀에 없는 것이면  그거는 마귀의 영감으로 봐야 됩니다. 성경 말씀에 있으면 그것은 주님이  명령하신 것을 알고 우리가 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은 많은 계약 조문이 있는데 그 계약 조문이 내  현실에는 어느 조문이 해당이 되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문제인데 고 현실에  해당된 고 계약 조문을 행하는 것은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고 하나 하나 고  계약 조문을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하나님이 명령한 그것을 직접 하나님에게  피동돼서, 피동돼서 하나 둘 지키는 고 행위를 통하여서 우리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그 조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노아가 한 말씀 한 말씀 순종해서 조성 해 놓은 그 방주가  천하가 멸망받을 때에 그는 멸망받지 안했고 오히려 그 멸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후사가 됐고 모든 우주를 하나님에게 상속받았던 것입니다. 단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것을 끊어라, 요것을 쪼개라, 요것을 붙여라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 것을 고대로 다 행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는 천하가 멸망받을 때에  너를 구출할 수 있는 그 방주가 되어졌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다 했다  하는 말씀을 고 마지막에 붙여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 11장에 보면은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믿음은' 이 말은, 믿음은 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죽은  믿음 말하는 것 아닙니다. 죽은 믿음이라 말은 능력이 없는 믿음이라 그 말이오.

능력이 없는 믿음은 어떤 게 능력이 없는 믿음인가? 제 맘대로 제가 주장한 그  능동의 믿음, 능동의 믿음. 제가 능동자가 돼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자유로  선택해서 믿는 그것은 주관 믿음이요 능동의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아무 효력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피동하는 믿음 그것은 산 믿음이기 때문에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랬는데 믿음이 뭐이냐?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가다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애를 쓰면서 여러 가지 희생과 애로를  당해 가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서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애를 썼는데, 그렇게  애쓴 그 결과에 낙심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믿음을 지키는 그 결과로 능력있는  믿음을 가져서 죽음이나 생명이나 뭐 사선이 없는 그런 사람으로 모든 피조물을  발 아래 밟고 다 하늘과 땅의 것을 참으로 상속받아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생명과 사망이 다 너희 것이 된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렇게 상속 받을 수 있는 이런 능력의 사람들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 죽은 믿음을 지킨 사람은 지킨다고 자기 딴에는 힘을 들여  지켰는데 그 결과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죽은 믿음 지킨 것은 아무런 그  전능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역사해 주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믿어 갈수록 의심만 더 나옵니다. 믿어 갈수록 '하나님 말씀은  거짓말이다' 이것만 나옵니다. 나중에는 '성경 말씀은 전부 사람을 속이고 꾀우는  기만의, 기만, 기만의 모든, 말이다' 이렇게 멸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믿음을 자꾸 믿었기 때문에 결과가 그런 결과가 나는 것입니다. 산 믿음,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 고대로 지킨 믿음 오늘 이 시간에 내가 너에게 명령한 고  명령대로 지킨 믿음 요거는 산 믿음인데 요 산 믿음대로 행해 본 사람은 모든  피조물이 그 산 믿음대로 행하는 데에 다 복종하고 옹호하지 아무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확실히 잡고 알기 때문에 더욱더 믿음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요셉이라든지  다윗이라든지, 선지 사도들이라든지 그런 분들이 그 믿음으로 점점 자라가고  견고해지고 순종 순종 해 나가 보니까 그 결과가 참 놀랠 만치 좋아졌습니다.

요셉이가 산 믿음을 지켜 나갈 때에 다른 사람 보기에는 형제들에게 산 믿음  지켰다가 애굽으로 상품으로 팔려 갔으니까 손해 같지마는 자기 속에는 내증이  있습니다. 자기 속에는 받은 증거가 있습니다. 형제들은 팔았지마는, 부모 떠난  거는 안 됐지마는 가보니까 보디발 대장 집에서 그 모든 그 권세와 부를 겸한 그  가정을 통틀어 자기가 맡아 가지고서 관할하니까 얼마나 영광이 됩니까?  이러니까, 이제 산 믿음 지킨 결과가 껍데기는 해로운 거같이 보여지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참 극히 보배로움이 됐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자신 만만했는데, 또, 보디발 아내가 범죄하자고 할 때에  그때에 요셉이는 하나님이 범죄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이 그 요셉에게 대한  영감입니다. 또 그것이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너는 그 여인이 암만  유혹해도 그런 유혹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주님이 그 시간에 명령하신  것이라. 고 명령대로 딱 행하고 보니까 감옥에 들어갔으니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 지키다가 '하나님 명령대로 할라 하다가 불행스러운 것같이 보여졌지마는  감옥에 가 놓으니까 아무것도 공부 안 한 사람이 감옥에 제일 대가리의  대리노릇을 했으니까 그것도 또 굉장한 일입니다. 남이 모르는데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의 기적이 자꾸 나타납니다. 능력이 나타나는 걸 자꾸 구경을 합니다.

 이랬는데. 거게서 또 하나 하나 생활하는 것이 그시 그시 항상 주님이 영감시켜  주는 고대로 생활합니다. 그대로 그 생활하니까 마지막에는 그가 바로에게 들려가  가지고 가서 꿈 해몽을 하라 할 때에 꿈 해몽하는 것도 자기 상식으로, 이제까지  공부한 걸로 하지 안했습니다. 요셉이는 그거 외에는 다른 것도 모르요. 꼭 그  시간 주님이 자기에게 영감해 주시는 고 대로 말하고 고대로 행동하는 그 외에는  딴거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또 알지 않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왕이 말할  때에 '나는 모릅니다. 우주의 대주재되시는 그분이 나에게 가르쳐 주시면 내가  바로 해석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물을 때에 이제 주님에게 '뭐라고  하랍니까?' 이라니까 주님이 '네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는 것을 말할 때에  고대로 말을 하니까, 고대로 말하니까 바로가 꿈꾼 것을 박사와 술객 모두에게  고했으나 해석을 못했는데 요셉의 해석이 틀림없이 고대로 딱 들어맞았다 말이오.

말하는 것마다 딱 들어맞았으니까 해석도 맞을 거라 그말이오.

 그래 해석했는데 그 해석이 맞나 안 맞나. 세월이 지나가니까 풍년이 들기  시작하는데, 그러니까 '맞다, 맞다. 맞다' 또 한 해 풍년드니까 '또 맞다' 이태  풍년드니까 '또 맞다' 칠 년 풍년 드니까 '또 맞다' 맞다 맞다입니다. 그 다음에  팔년째는 흉년이 드는데 흉년이 드니까 '또 맞다' 이래 놓으니까 그 애굽의  총리대신, 일자무식 요셉이가 애굽 나라에 총리대신 한 것은. 그 사람은 공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산 믿음 지킨 것뿐이오. 산 믿음 지킨 거.

그저 성령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합니다. 그대로 하니까 그 정치가 얼마나 잘  됐던지 애굽에 있는 많은 백성들이 요셉을 하나 시기하는 사람도 없었고  요셉에게 대해서 다 저거 아버지라 이렇게 했습니다. 저거 아버지라. 나이 많은  사람이고 젊은 사람이고 요셉이는 다 자기네들 아버지라고 이렇게 불렀소.

 그는, 만일 그때 자기 아버지 야곱이 거기 있었으면 그런 말했을 거라. '얘야  네가 공부한 적도 없는데 이 큰 나라에 대해서 이 총리대신의 그 책임을 맡고  어떻게 이 큰 나라를 통치해 나갈라고 네가 하느냐? 네가 실력 없어 잘못하는  날이면 사형받을 거 아니가?' 너 이거 죽는 거라고 울면서 슬퍼했을지도 모를  겁니다. 그러나 요셉이는 자신만만입니다. '아, 아버지, 그런 거 없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섬기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 가지고 틀린 걸 못 봤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그저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거 요거 하나 가지고 정치합니다.'  그 시키시는 대로 하면 뭐 그거 외에 딴거는 할 게 없어. 고대로 하니까 됐다  그말이오.

 오늘도 우리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나 시키는 대로  요대로 하면 전지 전능자가 된다. 이러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 우리는 시키시는 대로 한다고 하면서, 성경 말씀에 다 시켜 놨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 이랬는데 거게서 고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신구약 성경  구구절절을, 이행할 구구절절을 선택할 때에 그 선택을 제 욕심대로 하고 제  주관대로 하고 제 형편에 유리할 대로 하고 제 맘대로 했지 하나님이 선택해  주시는 고 선택에 귀를 기울이고 선택해 주시는 대로 실행하려고 애쓰지를  안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부 능동 신앙이요 주관 신앙이요 다 죽은 신앙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죽는 일밖에는 이루지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처음 믿을 때에는 열심히 예수를 믿다가 좀 있으면 낙심하고 맙니다.

대대로 믿는 사람들은 낙심하고 돌아갈 수는 없고, '이제까지 우리가 우리 가족은  이 종교를 가졌는데 개종을 할 수 있느냐' 이렇게는 못 해도 그러니까, 그저  의식으로 '주일이니까 놀아야 되겠고 가야 되지 하고서 전부 의식적인 행위  형식적인 신앙 행위이지 생명 있는 신앙 행위는 하나도 하지 안했기 때문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가 많다 했는데 받은 증거가 있어야지? 받은 증거가  없으니까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보면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은' 요 믿음은 산  믿음을 말합니다. 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소망하는 것의 실상이라 말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계약한 모든 계약 받은 것을 전부 실상으로 만드는 것은 믿음이다 그말이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산 믿음이다. 그러면, 계약 중에  제일 큰 계약은 뭐이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인데. 이것도 우리가  산 믿음을 가지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실력을 갖춥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의 실력이 점점 자라는 걸 자기가 확실히 압니다.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걸 확실히 압니다. 자기 안에 마귀가 있는 것도 압니다. 어떨 때는 마귀하고  하나님하고 대립이 됐을 때에 날더러, 날더러 '자, 지금 저 마귀를 따라갈래 날  따라올래?' 이렇게 둘이 시비하는 것도 우리가 구경을 자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따라가면 하나님은 천리만리 멀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럴 때에 마귀를 차서 물리치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딱 들어붙어 가지고 달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  심령에 기쁨을 주시고 명철을 주시고 광명을 줘서 우리에게 있는 죄악은 다  사라지고 도망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소망하는 모든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산 믿음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믿음은. 산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내가 보지 못한 거 신구약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것은 그것은 참 너무 큰 것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것이 약속되어 있다 말이오. 사람이 이백 년도 못사는데 영생한다는  것이 약속이 되어 있는 이것이 믿을 수 없다 그말이오, 이러나 내가 보지 못한  거, '영생을 봤나' 이랬는데, '보지 못한 것의 증거라' 내가 산 믿음을 가지면, 산  믿을을 가지면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자기가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봅니다.

이 종을 만들어 거머쥐어 보는 것 보다도 더 확고하게 자기가 볼 수가 있다  그말이오. 실상을 보지 못한 그것을 산 믿음 가지면 그 실상을 네가 확실히  보고서, 확실히 네가 봐서 확실히 알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는 말하기를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선진들이' 우리 앞에 가서  신앙의 성공하고 간 모든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산 믿음 지켜보니까 하나님이 계약한 거 전부 실상으로 다 만들었지,  만든 대로는 실상으로, 요거 만들 때는 만드니까 실상이 다 딱 만들어져 버리고  요거, 만들 때 산 믿음 가지니까 실상이 딱 만들어져 버렸고, 또 하나님께서, 보지  못한 것을 요렇게 해라 산 믿음 줄 때에 그래 고대로 순종하니까 딱 보게 됐다  그말이오.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막아서, 사자의 입을 막아서 해하지 못하게 한다는 그런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거 보지 못한 일이라 말이오. 보지 못한 일인데 그  보는 것은 산 믿음이면 쓸 수 있어. 다니엘이 기도하면 죽인다고 이래도 '죽어도  기도는 안 할 수 없다' 고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 고 시간에는,  네가 요 시간에는 다른 거 뭐. 다른 것도 소용 없고 요 시간에는 기도, 너거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죽인다고 이렇게 말하는 요 현실에  있어서는 네가. '기도합니다.' 하는 고것이 성신의 감화로 자기가 지킬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지켜보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랬는데 그러면 한번 지켜보자'  다니엘이 지켜봤다 말이오. '기도합니다' 이러니까 잡아서 묶어 가지고 사자  구덩이에다 가 집어던져 버렸다 말이오. 집어던져 버렸는데, 던졌으면 거기서  물려 죽을 줄 알았는데 사자가 와 가지고서 물지 못합니다. 발톱도 옹쳐매 버렸고  이도 다 봉해 버려 놓으니까 와서 하나도 해하지 안해. 다니엘이 '야, 이제까지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막고 사자의 발톱을 감추는 그것을' 보지 못 한 일인데  이제 산 믿음으로 순종하고 보니까 그걸 봤다 말이오. 다니엘이 봤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저만 봤습니까? 보지 못한 것을 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도 한다 이랬습니다. 그 이튿날 다리오 왕이 와 가지고서 하도 원통해서  '다니엘아' 하니까 '예' 하며 대답을 하니까 깜짝 놀라서 들어냈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온 전국에 다니엘이 보여 줬다  말이오.

 보지 못한 것을 다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이렇게 믿음은 참 오묘하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받았다.' 우리 앞에  간 선진들, 선지 사도들, 다니엘, 요셉,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엘리야 모든  선진들, 모든 사도들 다 요렇게 산 믿음 가지고서 보지 못한 거 다 봤고 가지지  못한 거 실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 가졌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믿음은, 산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산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겨자씨 믿음으로 우리에게 비유해  주신 것은 뽑는 능력을 가지라, 옮기는 능력을 가지라 심는 능력을 가지라, 또  이런 것을 명령할 수 있는 그 명령의 권위를 가지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에서 오전에는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이라 하는 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겨자씨 믿음으로 비유한 것은 산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시간에 우리는 산 믿음을 가집시다. 산 믿음을 받아 가지는  사람 됩시다. 둘째로는, 역사에 없고 비과학적이요 비합리적이요 비자연적인 이런,  도무지 우리가 아는 세계 범위 내에서는 없는 그런 어려운 뽑는 거. 옮기는 거,  심는 것이라도 우리는 명령할 수 있는 이 권위자. 명령할 수 있는 이 권위자가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또 이렇게 말만 할 뿐 아니라 말한 대로, 의심 없이 말할  수 있는 권위자가 되어지고, 의심 없이 말만 할 뿐만 아니라 말한 고대로 딱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그 결과가 맺어질 수 있는 권위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전에는 이 세 가지를 우리가 가집시다. 산 믿음 가지고, 이렇게 초자연의  명령을 할 수 있는 권위자가 되고, 초자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그 결실을  가지는 이런 능력자가 되어지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셔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단. 오후에 이제 뽑고 옮기고 심는데 대해서 계속해서 증거를  하겠습니다. 자꾸, 오전만 참석하고 오후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듣지  못하니까, 믿음은 듣는 데서 생깁니다. 성경을 읽는 데서 생깁니다. 듣지 안하고  읽지 안하니까 그 믿음이 생기지 안해. 믿음이 안 생겨지면 우리는 거지입니다.

인간중에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믿음. 산 믿음을 가지면 이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머리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창조주 한 분만 우리 위에 있지  그 위에는 우리 위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천군 천사도 다 우리 발 아래  수종드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가 하늘에서 내려 땅을 적시고  결실을 이루는 그 역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면서 주의 말씀을 비유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산 믿음을 가지게  하시려고. 뽑고 옮기고 심는 이 명령을 할 수 있는 권위자가 되게 하시려고,  이렇게 뽑고 옮기고 심는 그 결실을 맺게 하는 그 능력을 가진 자 되게 하시려고,  모든 피조물들을 복종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 되게 하시려고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사오니 이 말씀이 우리 각자들에게 다 실상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으로 인하여 이 일이  실상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들은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이 받으시고 지켜 보호하사 항상 주님의 사랑과 능력과 평강의  나래 안에 보호하시고 범사를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고  주님의 축복과 기적의 은혜로써 모든 세상 일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말할 수 없는 주의 사랑을 새김질하면서 수고한 종들에게  더욱이 인간을 사망에서 구출하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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