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믿음-현실관


선지자선교회 1985년 12월 13일 금야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 말씀을 요사이 늘 계속 이 말씀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증거 하는데  별스러운 새 말을 증거하지 안하고 또 새 해석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이  말씀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겨자씨 비유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이 믿음을 우리가 아무래도 가져야겠다 하는  데에서 자꾸 거듭거듭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도 이 말씀 증거하는 것은 우리가 여게서 뭐 별다른 이치를 들으려고  해석을 들으려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고 이 겨자씨 비유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그 믿음을 받아 가지고 그 믿음을 가진 자가 되도록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써서 다 겨자씨 믿음을 가진 사람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겨자씨 믿음을 가졌으면 이 믿음만 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나마 주님이 요 겨자씨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 전면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법칙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어떤 것이 겨자씨 믿음인가? 겨자씨 믿음은 작든지  크든지 생명있는 믿음이라, 생명있는 믿음이라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생명있는  믿음이라. 생명있는 믿음이라 말은, 믿음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을 믿음이라  그식게 우리가 다 배웠고 또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있는  순종이라는 말입니다. 생명있는 순종이라. 그러면, 생명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생명은 하나님과 우리들이 직접 연결되는 그 연결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생명있는 믿음이니 곧  하나님과 직접 연결된 믿음이라 하는 말입니다. 연결된 믿음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 하나님의 뜻을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보고서 행할 때는  이 성경에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이 성경에 기록 한 하나님의  뜻을 시간과 장소와 그 상대들을 상관없이 언제든지 이 말씀대로만 행하면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되는 것은 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하는  것이 믿음이지마는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우리 각자들에게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순종하는 그 순종은 산 믿음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그때 그때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 가르쳐 주시는 것이 성경에 기록한 그 범위를 넘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지 아니하시고 성경에 발표해 놓은 그 범위 이내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들에게 자기 현실 현실에서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가르쳐 주심은 다 성경에 기록된 이치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치들이나  우리가 이 성경 이치를 보고 내 생각대로, 내 주장대로, 내 형편대로, 내  욕심대로. 내 지식대로 그런데 성경 말씀을 내 자유로 선택해 가지고 현실에  고대로 실행한다고 하면 그것은 고 성경 말씀을 빙자하기는 했지마는 곧 자기의  자율, 자기의 주관 행위요 자율 행위요 또 사욕 행위이지 그것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런 행위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신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가르쳐 주심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인지 악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인지 혹 우리 주관이 들어서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을  우리가 구별하는 데에 이 성경 말씀은 크게 도움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요 구구 절절대로 요대로 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대해서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깨닫고 하는 데에 유일로 도움이 되는  책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교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다 그들은 자기 욕심대로 주관대로 자기 법칙대로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거 아닙니다. 그들이 구약 성경을 보고서 구약 성경  말씀대로 행한다고 한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말했습니다. '성경에 이렇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 성경으로 예수님을  정죄했지 성경을 떠나서 예수님을 정죄한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예수님을 정죄했느냐? 성경이 예수님을 정죄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성경을  빙자해 가지고 성경을 저거 주관대로 저거 사욕대로 저거 자율대로 성경을  예수님 정죄 하는 데에 필요한 성구들을 선택해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 박해를 당해서  순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순교당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밖에서는 순교당한 일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죽임을 받은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죽임 받았지  다른 사람들에게 죽임 받지를 안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일  때에는 다 '성경에 이들이 위반했기 때문에, 성경대로 하는 우리는 성경대로,  그들이 성경을 위반한 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다 성경대로 죽인다' 하고서 그래  죽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그와 같이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행하면 된다 하는 그런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구별하고  바로 찾는 데에 유일로 도움이 되는 지식과 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됐다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자기 욕심대로  주관대로, 형편과 사정을 시간을 가리지 안하고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성구를  선택해 가지고 행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이라는 그런 간판  밑에서 자기 주관과 자기 자율대로 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행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산 믿음은 어떤 것이 산 믿음인가? 겨자씨는 고것이 아주 작은  종자이지마는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있는 믿음은 작고 크고  상관이 없다. 작은 것은 표시한 것은. 사람들은 작으면 그것은 힘이 없고 크면  힘있는 줄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마는 생명이 있는 믿음은 작고 크고  상관이 없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직접 연결이 되어 가지고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은 작은 움직임이나 큰 움직임이나 그 움직임은 다 전능의  움직임이요, 전지의 움직임이요. 만주의 주의 움직임이요, 또 만왕의 왕의  움직임이요, 창조주의 움직임이요, 그는 주권을 가진, 주권을 가지고 개별 개별을  다 주권 능력대로 그렇게 성취하는. 주권이 움직이는 움직임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 움직임에는 어렵고 쉬운 일이 없고 크고 작은 일이 없습니다. 왜? 전능자가  할라면은 커도 할 수 있고 작아도 할 수 있지 크다고 어렵고 작다고 쉬운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있는 믿음 산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연결된  순종이라. 그것은 자기 현실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 명령하신 고 명령을 직접  받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 명령하신 분이 주님이시요, 또 명령을  해 가지고서 고 명령대로 알아듣게 하신 분이 주님이시요. 고 명령대로 행하고저  하는 소원을 주신 분이 주님이시요, 고 명령대로 순종하게 하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순전히, 인간의 주관 행위같이 보이지마는 그거는 순전히 객관 행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다 전능의 행위입니다. 그런고로, 그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믿음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 말은 이 산 믿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신구약 성경을 보고 제  마음대로 이 성구 저 성구 지켜서 제 주관대로, 하나님께 순종이라면 그런 택  명만 가지고 제 주관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용만 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하나님과  연결이 직접 돼 가지고 있는 그런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으면' 하는 고것도 산 믿음을 말한  것인데. '네가 믿으면' 하는 말은 하나님에게 직접 피동되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크심이 네 행동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남이 그렇게 크게 역사하시는 그 영광스러운 일이 드러나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것을 잘 모르고 할 때에는 할 때에는 사람들이 벌로 보지마는 구약 신약  성경이나 그 성경에는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이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적이라고 도 할 수  있는데. 기적이라든지 표적이라든지 같은 말입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이적이라 기적이라 그렇게 말을 한  것인데 그 기적을 뒤에는 번역할 때에 표적이라 그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  표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하나 더 거게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말은 초자연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것이라 하는 고 뜻뿐이고, 표적이라  말은 초자연의 능력으로 역사 하셨는데 인간이 볼 수 있는 이 역사를 하신 이  역사는 볼 수 없는 신령한 그 이 부분에 우리의 구원에 되는 볼 수 없는 신령한  면을 나타내는 한 흔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표적은 볼 수 없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들이다. 그래서 표적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표적이든지 그 표적을 하나님이 이루셨을 때에는 반드시 그 표적이  있기 전에, 있기 전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고걸 가만히 여러분들이 가서 성경을  상고해 보십시오. 어떤 표적이든지 어떤 기적이든지 이루어질 때에는 반드시 고  앞서 산 믿음이 있습니다. 산 믿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때에 열  가지 재앙이 있었는데, 열 가지 재앙을 내렸는데 열 가지 재앙은 무엇으로써 그  열 가지 재앙이 나타났습니까? 열 가지 재앙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어서, 열 가지  재앙은 무슨 결과로 열 가지 재앙이 나타났습니까? 고것을 한 번 좀 생각해  보십시오. 열 가지 재앙이 그때에 나타났는데 그것은 다 기적인데. 왜? 초자연의  역사이기 때문에 기적이라 할 수 있고 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들이 나타난 그 열 가지 재앙에는 무슨 무슨 결과로 그것이 나타났는가? 그  기적이. 기적의 그 결과가 맺어진 나무는 무슨 나무인가? 무슨 나무에 그 열 가지  재앙의 기적이 열매맺었는가, 결과로 맺어졌는가? 그러면, 열 가지 재앙이 결과로  맺어진 그 맺어짐의 원인인 비유컨데 나무로 말하면 그 나무 이름이 무슨  나무입니까? 무슨 나무에 그 열 가지 기적이 맺어졌습니까? 예? 고것이 산  믿음입니다. 산 믿음. 산 믿음이라는 하나님 앞에 직접 연결된 그 순종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했을 때에 모세가 직접 그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고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순종이요 하나님께 직접 순종한 것이지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이렇게 교훈한 것이나 말씀해 놓은 것을 구약 성경을  뒤적뒤적 들추어보고서 그래 지킨 것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요래라 할  때에 고때 고대로 한 고 결과로 열 가지 재앙은, 열 가지 재앙, 열 가지 기적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오늘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직접, 그때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났지마는 지금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래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고 말씀대로 우리가 순종할 때에는 고 결과로는 반드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적과 축복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없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백 번이면 백 번 다 있고 천 번이면 천번 다 있지 한 번도 없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성신의 감화를 소멸치 말아라 하는 그거는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현실에 있지 현실 아닌 때는 성신의 감화가 없는 것입니다.

현실에 우리에게 성신의 감화가 왔는데 그 감화대로 행하면 산 믿음이 되어지는  것이고 그 성신의 감화를 소멸해 버리면 그것은 거역하는 죄가 되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뭐, 거게서 보면, 자, 사십 년 동안 만나 가루가 내려왔습니다. 만나 가루가  내려왔다 또 반석에서 물이 나왔다. 또 메추라기를 보내 가지고서 먹게 하셨다 또  쓴 물이 단 물이 됐다, 아말렉 그 모든 군대들이 다. 다 패전하고 물러가게 됐다  그거 다 기적 아닙니까? 홍해 바다가 말라졌다, 갈라졌다, 갈라져서 말랐다, 요단  강물이 끊어져서 말랐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셨고 직접 명령하신 그 명령에 직접 순종했습니다. 직접 순종할 때 그런  일이 나타났지 그런 일이 없는 데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라든지. 문둥이가 깨끗해진 것이라든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것도 이렇게, 주님이 직접 말씀했을 때에 그때에 그  무리들이 내려 놓고 순종하고 이라니까 살아났습니다. 언제든지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이 그냥 당신이, 신구약 성경에 이렇게 교훈과 약속을 이래 다 한목  이렇게 모두 다 선포해 놓으신 이대로 이 계약을 이 조문 저 조문 지키는 거게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일은 없었습니다. 그거는 없습니다. 이 성구를 지킬 때  나타난 일이 있느냐? 그런 거 없었습니다. 직접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명령하셨을때에 그 명령은 보니까 성구에 이미 발표해 놓은 그 성구와 딱  들어맞다, 성구대로 당신이 우리에게 이와 같이 명령해 주셨으니까 이것은 성구에  맞은 것이기 때문에 악령의, 악령의 영감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감은 틀림없다.

왜? 성경에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럴 때에 고대로 순종하면 거게서 큰 기적과 그  축복과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자꾸 한 말 하는데, 한 말을 한다고 생각지 말고, 한 말을 자꾸  하는데 여러 번 들여도 못 믿으면 그 뭐 할 것입니까? 믿는 자 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믿는 자 되도록 노력해야 되지 말을 지금 딴 말이 아니라. 뭐 여러 수십  번 말했어. 벌써 이거 예배에도 아마 열 번 더, 열 번 더 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수십 번 말했고, 한 시간에도 여러 번 말하니까 수백 번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백 번 말했는데 더 딴 말 없습니다. 또 그말이오. 믿자 그말이오?  안 믿으면 안 돼.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신 것은 성경 구구절절을 제 마음대로 선택해 가지고서  그대로 시행하라는 그것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이래 총괄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이 범위 내에서 너희에게 현실 현실 만났을 때에 성신의 감동으로 가르쳐  줄 터이니까 성신의 감화가 오는 것을 이 신구약 성경에 발표한 고 하나님의  계약과 같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너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요 계약서와 다를  때에는 악령이 너희들에게 하기 때문에. 요한 1서 4장에 보면은 영을 다  구별하도록 해라. 영을 분별하도록 해라. 악령도 있고 성령도 있기 때문에 그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영을 분별하도록 하라. 그 영을 뭘로 압니까? 신구약 성경  고대로의 감화됐으면 고거는 성령의 감화요 악령은 신구약 성경에 위반되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요것도 이 세상 온 세계의 교계에서 조직 신학에서 지금  시비가 있는 조건들입니다. 시비있는 조건들이오. 뭣이? 우리의 구원이, 우리  구원이 우리 인적 요소, 인적 요소 이거 가지고서 만드는 것이 우리 구원이냐.

그러면, 우리에게 있는 인적 요소 이것이 점점 개량이 되고, 개량이 되고 또  성화가 되고 이래 가지고서 이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순전히  하늘에서 새로 내려와 가지고서, 하늘에서 내려온 새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냐  이 문제가 많이 시비 중에 있습니다. 신신학자들은 다 그렇게 말을 하고 또  루터파도. 루터파도 다 그렇게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미니안 주의  감리교에서도 그런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칼빈주의만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순전히 하늘에서 새로 내려와 가지고서 하늘의 것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  구원이라 하는 그것을 말하는데, 칼빈주의 가운데서도 서로 시비들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하늘에서 내려온 무한한 완전한 거, 영원한 거 그것이 와 가지고서  우리의 구원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썩을 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되어지는 것도 이 썩을 것이 완전히 썩지 안한 것에게  삼키워져 가지고서, 고린도후서 5장에 '죽을 것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기 위해서 힘 쓴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죽은 고기를 구워 가지고서  먹으면 그 죽은 고기가 내 산 피가 됩니다. 내 산 살이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죽어 있는 것들을 성령이 삼켜서 성령에게 완전히 삼켜지면 성령의 것이 돼  가지고서 비로서 이제 하늘의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에게 삼켜져 가지고서  불변성으로 그것이 완전히 화해질 때에, 썩을 것이 썩지 안 할 것으로 완전히  변화되고 성화될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기독자의 구원은 믿음으로 됩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 고것을 인정하고 또 명령하실 때 내가 순종하고 하는 요 산  믿음을 통해서 우리 구원은 다 이루어집니다. 산 믿음을 통하지 안하고는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예수 믿으면서 성경 말씀대로  행했다고 이렇게 하고 자기는 구원이 잘 이루어진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었다. 비유입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었다, 이런데 그 지은 공력을 시험할 때에 불로 시험하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은 다 불타 버렸다, 그러니까, 자기는 일생 동안 신앙 생활 한 그 공력이  다 불타 버렸기 때문에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일생  동안 예수 믿은 공력이 다 불타버렸으니까 구원은 얻기는 얻지마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기본구원은 얻기는 얻지마는 건설구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구원은 얻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공력이  다 타버렸기 때문에. 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은 불이 암만 태워도, 불이  보통 물론 용광로의 강한 열도가 되면은 그거 타지마는 일반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그런 것은 일반 불에는 타지 않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로 가지고 심판을 해도 진리에게 정죄 당하지 안하는 그런 것들은 다 남아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거는 뭐이냐? 그거는 산 믿음으로 만든 것은 다 심판에 통과되지마는  죽은 믿음으로 만든 거는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두 사람이 밭에서  같이 일하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또 두 여인이  같이 매를 갈고 있지마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사람  보기에는 장소도 같고, 사건도 같고, 모양도 같고 활동도 같고 다 같지마는 다  성경 말씀대로 하지마는 하나는 산 믿음이고 하나는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산  믿음으로 한 것은 다 하늘나라로 다 들려 올라가지마는 죽은 믿음으로 한 거는  다 멸망을 받는다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을 가리켜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 믿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 중요하냐 하면은, 여게  보니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으면 이 뽕나무더러 명하여서 바다에  심기우라. 뽕나무가 저절로 뽑혀 가지고서 바다까지 운반 돼 가지고 바다에서,  바다에, 흘러 내려가는 바다에 심기워 져라 네가 명령하였을 것이요 또 그대로  순종하였으리라 요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현실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것은 둘이 합작해 가지고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우리는 순종하고. 인적 요소는 순종하고  신적 요소는 명령하고 요래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과 인적 요소의 순종과 이 둘이  한한 것이 믿음입니다. 요 둘이 합한 것이 믿음이오.

 믿음인데.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에 '겨자씨 믿음을 가졌으면' 했습니다. 믿음을  가졌을 때에 이 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하였을 것이오.

명령하였을 것이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받았는데.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현실에서 하나님이 요렇게 해라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요렇게 하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받았는데, 그 뜻을 받은  고 뜻을 내가 받아 가지고, 그러면 받아 가지고 고 뜻대로 만일 여게는, 명령하라  했으니까 명령하고 행하라 했으면 행해야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받았는데, 요거 구별해서 못 알아들으면 헛일입니다. 요거 자꾸 말해도 항상  그말이오.

 내가 현재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내가 받았는데, 하나님의 뜻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렇게 하나님이 명령한 것이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렇게 하라 조렇게 하라 그 명령하신 고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명령했을 때에 말하라고 명령한 것도 있겠고. 또 네가 손으로 하라고  명령하는 것도 있겠고, 또 발로 하라 하는 명령하는 것도 있겠고 그 명령은 여러  가지 있지 않겠습니까? 여게, 여게는,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할 것이요, 명령, 요 말하는 거, 요 말을 하라 하는 거라 말이지요,  말하라 하는 건데.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현실에서 받았는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았는데 그 뜻이 자기에게 뭐 말로, 입으로 행하라든지  수족으로 행하라고 했든지 뭘로 행하라고 했든지 행하라고 한 하나님의 뜻을  받았을 때에, 받았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명령해 주신 그 명령이 인간들이 아는  이치에 합당한 명령이라면은 그 명령대로 행하기가 쉬울 것이고, 일반 인간들의  이치에 맞은 명령이라면 그 명령대로 행하기 가 쉬울 것이고 인간의 이치에  있기는 있지마는 혹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그런 이치가 있지 그런 것이  언제든지 평소에 그와 같은 이치가 있는 거는 아니다. 그 이치가 혹 천에나 만  중에 하나 그런 이치가, 그런 이치대로 해서 되는 일이 있다 하는 것이라면 좀 더  어려울 것이고. 명령대로 고대로 순종하기가 더 힘들 거 아닙니까? 안 될  것이니까. 이거는 절대 이거는 불가능이다 싶으면 하기가 힘들 거 아닙니까?  고것보다는 하나님이 명령하시기는 명령하셨는데 이거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이제까지 역사에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까지 모든 역사를 다 통계해  가지고 맞춰 봐도 통계에도 이런 것도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에도 도무지 이런 이치는 없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이 아는 인간의  비지식적이요, 인간이 아는 이치에 맞지 안하니까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비자연적이요, 절대 없는, 절대 없는 천부당 만부당한 절대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라 이랍니다. 절대 없는 것을, 절대 없는 일, 그런 일이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네가 이렇게 명령해라. 명령하면 될 터이니 명령하라 이렇게 했을 때에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라 또 이것을 이렇게 만들라 이라면은 그것은  어렵겠습니까 쉽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내가 하는 말 여러분들이 지금 알아  듣고 따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다 보통 그 일은 그와 같이 하면 되는 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인간 이치에 맞고, 인간 경험에도 맞고. 인간 통계에도 맞고 이  자연에도 맞고, 모든 과학에도 맞고, 인간 법칙에 다 맞고 맞은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말하면서 네가 이렇게 하라 하면은 그 일은 하기가 쉬울 겁니다.

순종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거는 도무지 없는 역사에 없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 이거 절대 이런 이치가 역사에 한 번도 없었고 또 이런 과학도  없었고 이런 역사에 이런 무슨 역대에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 하는 그런  일이라면 그 일이 되리라고 그렇게, 그렇게 될 것으로 여겨지는, 하나님이 고렇게  말씀은 했지마는 말씀하신 고대로 될 것으로 인정되는 그 일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인정하기가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인정하기가 어렵겠습니다. 믿기가  어렵겠습니다.

 이랬는데 여게서 이 뽕나무를 명하여 뽑히어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이것은  그러면 이것은 역사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치에 있습니까, 과학에 맞습니까?  이게 있습니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없는 일이지마는, 없는  일이지마는 이 사람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바다에  심기워지라 명하였을 것이요, 의심 없이 명하리라 틀림없이 된다고 명령을  합니다. 명령합니다. 명령했고, 명령했고, 명령했는데 명령한 그대로 이제 모든  것이 순종해서 그대로 다 순종하여서 이루어졌으리라 이랬습니다. 이러면, 요  가운데서 사람 말로 표시하기가 어렵게 좀 고걸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 겨자씨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구별했는데, 자기가 이거는 하나님의 뜻이다, 자기 현실에서 이거는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찾았는데, 그 뜻을 찾았는데, 뜻을 찾은 고 뜻은, 고  뜻은 역사에 없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뜻을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면서  '이대로 하라, 또 이대로 네가 다른 자들에게 이 명령을 해라' 이럴 때에, 자기가,  자기더러 하라 하면 자기가 할 것이고 명령하라 했으면 명령할 터인데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내게 대한 내게 대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내게 왔는데 그 뜻이  그 뜻이 도무지 이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 비합리적이요 비역사적이요 또  모든 비통계적이요 비과학적이고 이거 도무지 천부당 만부당한 그 하나님의  뜻이라도 그 뜻을 내가 받았을 때에 이 뜻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아니하고 요  뜻대로 여게는 이루어진다, 제가 할 거라도, 제가 할 것이라도 이는 이루어지니까  염려할 필요가 없고 요대로 이루어진다 하고서 확신을 가지고 확신한 소망을  가지고서, 확실히 된다는 것을 알고 저도 행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도,  또 이렇게 하라 명령하는 것도 이제 쪼끔도 의심이 없이 명령하면 그가 할 줄로  알고 명령하고, 명령을 하니까 그것들이 다, 무슨 호흡이 있는 존재들 아니지  않습니까? 이성이나 감각이나 그런 것들이 다 없는 것 아닙니까? 뽕나무도 없는  것이지 바다 물도 없는 것이지 그런데도 명령하면 다 순종하였으리라, 그러면,  명령하니까 그거 순종했으니, 순종할 수 있도록 명령할 수 있는, 순종할 수  있도록 명령할 수 있는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그걸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거 또 명령하기는 명령했지마는, 명령하니까 그런 것들이 다 순종 딱 해서  고대로 바다 위에 그 뽕나무가 딱 심겨져 가지고 있습니다. 순종하였으리라  명령한 대로 고대로 되니, 고 명령한 고 명령이 고대로 결과가 실상으로  이루어지니 실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 명령을 하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그게  좀 어려우며, 그것이 자기가 명령하는데. 명령하는 것은 원인인데 명령하는  자에게 의심이 털끝만치라도 있으면은 그 일이 명령받아 가지고 하는 자에게는  몇 배나 의심이 쌓여질 터이니까 의심 있는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역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암만 해도 이거 지금 도무지  통하지 안하는데, 이걸 우리가 해결 지워야 됩니다. 이걸 지워야 예수 믿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오늘까지 세계가 믿는다 해도 이걸 해결짓지 못하고 믿기  때문에 예수교는 짓밟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이것을  만나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거 먼 데 있지 않습니다. 여게, 여게 있는 것이오,  단지.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각자들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은 전지자의  명령입니다. 전능자의 명령입니다. 고 명령이라면, 그 명령을 내가 고 명령대로  순종하려고 고 명령대로 행하려고 할 때에는 명령하신 이가 당신이기 때문에  내가 고대로 명령대로 행하려고 하면은 행하는 내게 대해서는 당신이 명령하신  분이 책임을 지는 것이 그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책임을 지십시다. 책임을 지시고,  또 내가 그 명령대로 하려고 내가 순종을 했으면은 순종하는 그 일이 실패되면은  명령한 그분이 실패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명령한 그분이, 내가. 내가 해서  못하면 명령한 그분의 실패라. 내가 안 하고 거부한 거는 그렇지만 내가 하려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내가 하려고 하는데 그 일이 내가 능력이 모자라서  못 해도 당신이 능력 모자란 자에게 명령했기 때문에 그 명령한 분이 실수  아닙니까, 그거 내가 능력 없어서 못 해도 실수, 내가 그 명령을 거부할 때에는,  거부할 때에는 당신은 거부한 자일 때에는 거부한 대로 거기 대해 상당한  보웅으로 이렇게 댓가를 주지마는 명령한 고 명령대로 내가 행하려고 할 때에는  그때는 명령하신 그분이 나에게 책임을 진 것이고, 고 명령대로 내가 행한  것이니까 그분이 곧, 그분의 명령을 내가 받아 가지고 고대로 행하려고 이렇게  내게 있는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한다고 하면은 그 나머지기는  명령한 그분에게 책임이 있어서 그분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일은 전능의 일이요 전지의 일이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의 일인 것입니다.

 그런 건데 우리가 이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그것을 찾을 때에  이게 하나님의 뜻인가 뜻 아닌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백 프로 이거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이라 요렇게 확신있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바로 찾는 것이 문제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이 문제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이 하나님의 뜻은 능치 못 함이 없기 때문에 이  뜻은 기어코라도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니, 이 뜻을 당신이 명했기 때문에 명령한  그 명령을 받아 가지고 사람이, 일단 받아 가지고 행했으면 그거는 능치 못함이  없는 그 믿음이 됐기 때문에, 그 믿음이 됐기 때문에, 자기가 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의심 없이 백 프로 '하나님의 뜻이니  요대로 할 때에는 요것은 피조물이 반대하지 못하고 요 일은 다 고대로 백 프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에 의심이라는 것이 쪼그매 섞여 있지도 안하고 고게 완전히  믿음을 가지고서 행동했을 때에는 성경이 계약하기를, 믿음을 가지고 행동했을  때에는 그 일은 전능이라 말했습니다. 전능이라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약했기 때문에 그거 안 되면 하나님이 위약자라 말이오,  하나님이 위약자. 하나님은 위약하시지 않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거게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하는 데서 고장이 일어나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은 대는 요대로 하는 일은 이거는, 이거는 온  세계가 다 반대해도 이루어진다, 이거는 역사에 없는 일이라도 요대로  이루어진다, 통계에 없는 일이라도 이루어진다, 과학, 물리에 맞지 안해도  이루어진다. 이거는 인간이 아는 이제까지의 모든 그 역사에도 반대돼도 이거는  이루어진다 요렇게 요거는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요것이  문제라 말이오. 요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니까.

 책임지는데, 요 일은, 요 일은, 틀림없이 요거는 실상으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하는 고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될 터인데 고 믿음이 우리에게 아주 백 프로 그  믿음이 되지 못하고 거게 의심이나 섞어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 고게 의심  없는 고 완전 믿음 덩어리만 돼 가지고 있는 고 믿음을 가지는 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고 뜻대로 내가, 당신이 명했기 때문에 고 뜻대로 하면은 고  뜻대로 하는 것은 당신이 약속하기를 내 명령을 네가 바로 찾아 가지고, 바로  찾아 가지고 요 명령대로 순종하면, 의심 없이 순종하면 고와 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하는 것이 막 신구약 성경 전부입니다. 전부.

 삼십 팔 년 된 병자에게 네가 일어서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렇게 말 한  것은 주님이 말하지 안했습니까? 주님이 말하지 안했소? 주님이 말했는데 주님이  말했는데 그 병신이 의심 없이, 주님이 명했기 때문에 일어서서 자리 들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의심 없이 확신을 가지고 일어서서 자리 들고 갈라고  했는데 일어서니까 일어서지지 안하고 자리를 가지고 갈라고 해도 가지지 안하고  이란다면. 자,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됩니까?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됩니까?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의심이 하나도 없이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명령한 고 명령대로  아, 하면 된다는 그 확신을 가지고 일어 설라고 했는데 안 됐으면 안 된 그  책임은 누가 심판 받아야 됩니까? 예?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됩니까? 인적 요소는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받아 가지고 의심 없이 믿는 거만 사람 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소? 이게 여러분들에게 먹혀 들어가지 안하면 헛일이라. 먹혀들어 가지  안하면 능력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지 못해요. 이게,  이게 먹혀 들어가야 되지. 이게 안 믿어지면 안 된다 그거요  자 그러면, 나사로가 지금, '죽은 지 나흘인데 썩어 내음새가 납니다' 하니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안했느냐 돌을 옮겨 놔라' 이럴 때에  마르다가 '예' 내가, 믿지 안한 내가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이제 돌을 옮기라 하니까 내가 돌만 옮기면 당신이 살려 줄  것을 내가 믿습니다. 마르다 할 일이 뭐입니까? 돌을 옮겨 놓는 게 마르다 할  일이고, 또 뭐입니까? 뭐 할 일입니까? 믿는 거, 그 다음에 마르다가 또 할 일이  있습니까? 자, 할 일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할 일 없습니다. 그  다음에 나머 지기는 누가 할 일입니까? 나머지기는 주님이 할 일입니다. 만일  나사로를 못 살려냈으면, 못 살려냈으면 누가 범죄하고 누가 거짓말쟁이고 누가  실수했습니까? 그 책임은 누가집니까? 주님이 집니다? 요절 믿어야 됩니다 전부  성경은 요걸 가르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걸 믿지 안하기 때문에 도무지 오늘에  능력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지난번에도, 지난번에도 육백여 명에게 백 삼십여 종류가 병이 다 치료 됐고 그  보이지 않는 영병이나 마음 병 그런 거 치료된 것이야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래도 또 보고 나면 보고 난 다음에는 '이거는 그렇지마는' 앞으로는 또 안  믿습니다. '아, 내가 이 갈비뼈가 부러져도 잇겼고 내가 암병이 낫기는  나았지마는, 이거는 나았지마는 또 딴것이야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믿는다고  되겠느냐?' 이게 뭐입니까?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뭣 때문에  망했습니까? 믿지 안하고 시험하다가 망했습니다. 그게 시험하는 거라. '아,  이제까지야 그거는 뭐 홍해 바다도 갈라지고 그렇게 했지마는 이것조차 될까,  이거? 이제까지는 됐지만 하나님께서 된다 해도 이거야 될까, 이거?' 닥치면 또  '이거야 팔까. 이거?' 되고나면 '아이구, 됐습니다. 이제는 믿겠습니다.' 또  닥치면은, 또 닥치면, '네가 이렇게 이렇게 믿어라. 이렇게 하면 된다' 하면은 '예,  돼요?' '너 과거에 어찌 됐느냐?' '아 과거는 됐습니다.' '지금 이것도 된다. 내가  말하니까 된다. 믿어라.' '몰라요 될까요?' 되고 나면 '아이구,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이제는 믿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믿습니다.' 또 닥치면, '이거 이렇게 이렇게  하면, 네가 이렇게 하면 된다.' '과거는 됐지마는 이거는 될까 모르겠는데요?  될까요?' 고게 의심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있다가 다  죽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두 사람 말고는 광야에서 다 죽여  버렸습니다. 광야에서 다 멸망시켰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멸망을 시켰다 이랬어.

왜? 믿지 아니함으로 멸망시켰다 했어.

 오늘 우리가 이걸 믿으면 지금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터인데 도무지 믿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못하는, 대 여게 막혀 가지고 있는데  마귀란 놈이 하지. 강팍해 가지고 요걸 암만 말해야, 벌써 내가 이거 이거 한  것이 아마, 얼마 됐소? 안 열흘 넘어 됐지? 예? 이 겨자씨 믿음 한 지가  얼마입니까? 일주일 됐어? 아, 일주일 됐으니까 주일날은 세 번 말했지, 또  금요일날도 두 번 말했지 수요일날도 두 번 말했지 이랬으니까 몇 번이나  말했겠소? 이거 늘 이거 말하는데, 여러분들, 어쨌든지 이걸 말하려고 하면  연결이 돼야 되는데 안 믿으니까 이게 말이 안 됩니다. 그저 여러분들에게 알든지  모르든지 이걸 구별되게 할 수밖에 없어서 말합니다.

 어쨌든지 하나님의. 자기 현실에서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 것을 확실히  자기에게 확실히 믿어질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하는 사람. 이 발견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발견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요것은.

요대로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이는 백프로 성공이다, 역사에 없는 일이라도  상관없다, 천하가 반대돼도 상관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기 때문에  요 명령대로 하는 것은, 전능의 행위요, 전지의 행위요. 만왕의 왕의 행위요,  창조주의 행위요 주권자의 행위요, 다 영생이요, 여게 대해서는 피조물이 다  협조만 하고 여게 협조해서 이용만 당했지 아무 피조물도 방해할 수가 없다  요렇게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요것을 내가 행할 때에는 천하 만물이 다  협조만 하고 나에게 이용만 당했지 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피조물은  아무도 거부하지는 못하고 피조물은 다 협조와 이용만 당하지 거부는 못 한다  하는 요 믿음을 우리가 가지는 요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그들의 신앙을 살펴보면은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은 뭐이냐? 하나님의 뜻은, 자, 불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뜻  아닙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그 현실에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불미 속에 던지움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뜻 아닙니까? 녜? 하나님의 뜻 순종입니까 순종 아닙니까?  자기가 그와 같이 불미 속에 집어던지움을 받는 그 행동이, 그 행동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입니까 거부입니까? 순종 아닙니까? 틀림없는 순종 아닙니까?  순종을 할 때에, 그러면 순종을 할 때에 그 순종은 전능의 행위요 전지의 행위요  만왕의 왕의 행위요 만주의 주의 행위요 대주권자의 행위이기 때문에 이  피조물이 이 명령대로 행하는 여게는 피조물이 다 협조하고 이용당하고 상전으로  왕으로 모시지 이는 피조물들이 해할 수 없다 하는 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알았기 때문에, 믿었기 때문에, '네가 불에서 타 죽는 데서 거게서 너희 신이 건져  낼 수가 있겠느냐?' 이랄 때에 '아, 낼 수도 있고, 낼 수도 있고. 또 당신이 만일  나를 생명을 부를 때가 되면 나를 부를 것이고 이 불에 가서 굽혀 죽으라고 하면,  당신이 굽혀 죽으라고 그렇게 하면은 굽혀 죽고 데여라 하면 데이고 당신이 불  내음새도 안 나게 하면 안 날 것이고 타지 안하게 하면 안 탈 것이고, 이제 나는  당신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이 순종은 전능의 행위이기 때문에 불이 천인 만인이  다 뜨겁게 하고 만물은 불로 태울 수 있지마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내게  대해서는 불이 해당치 않다, 불이 해당치 않다 불이 여게 대해서는 이용만 당하고  수종만 했지 여게 대해서는 아주 이 피조물과 창조주의 고차원의 그 원인에서  하기 때문에, '거게는 침범하지를 못한다. 상관하지를 못한다' 요걸 사 요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믿었기 때문에, 고 대답한 것을 연구해 보면은 고렇게  믿었어.

 이러니까, 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 던지움을 받았을 때에, 받았을  때에 그 행위에 대해서 그 불이 어쨌습니까? 불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느부갓네살 왕은 불을 이용해 가지고서 '저 세 놈을 불로 태워 죽여 버려라'  이렇게 느부갓네살 왕은 그렇게 불에다가 명령을 하고 불이 이제까지 그의  사명이 그것이기 때문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에 태워라 하고서 명령해  가지고서 불을 더 뜨겁게 몇 배나 뜨겁게 해 가지고서 거기다 집어 던져  넣었는데. 그 불이. 그 불이 하나님의 명령에 딱 순종하는 그 순종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그 행위에 대해서 그 불이, 그 불이, 느부갓네살 왕이 자연  법칙을 가지고서 이제 '그놈을 구워서 바짝 태워서 죽여 버려라' 이렇게 지금  요구하고 명해서 불을 피웠는데 그 불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순종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불이 타는 것은 순종했지요. 불이 탔지요. 훨훨탔지요.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에다 구우라고 명령했고 태워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그 명령에,  불이 그 명령을 순종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순종 안 했습니다. 순종을 안  했습니다. 순종할 수 없어. 위에 지극히 큰 능력이 딱 기압을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태우고 굽고 하지 못해. 못하고. 이 능력은 지극히 큰 능력 창조주의  능력이기 때문에 이 불을. 불을 뜨겁게 한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본질을 만들었고  또 태우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본질을 만들었는데, 만드신 그분이 지금  주권적으로 이렇게 하는데 그 모든 만물이 다 본질과 본성이 다 변질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 그 순종 하는 그  행위에 대해서 그 불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이용을 당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용을 당했습니까? 어찌 됐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용을 당하고  자연법에 이용을 당하고 일차 창조의 창조법에 이용을 당했으면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거기서 굽혀 죽여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랬으나 그 불은 일차  창조 법에도 복종을 못 했고 또 자연법에 도 복종을 못 했고, 느부갓네살 왕이  불을 훨훨 피우면서 이와 같이 했지마는 느부갓네살 왕에게도 복종을 못 했고, 또  불의 본질과 본성대로의 행위도 하지 못했고, 이는 왜? 창조의 능력이 지금  행하기 때문에 그 불가침이라. 불가침이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불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크게 이용을 당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용당했습니까? 이용당한 것은, 그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도와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그 모든 원수를 다 소멸하는 것이 그 불이 들어서 소멸을  시켰고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존귀하게 모든 전국에  가득 충만하게 이와 같이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그 어떤 분이신 크심을 드러낸 그것은 누가 그거, 그  드러내는데 불이 수종들었지 불이 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요거 믿습니까? 요게  믿어집니까? 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도 그와 같습니다. 다니엘도 사자 구덩이에 이와 같이 지금 던졌지마는  다니엘이 믿는 것도 '아, 나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이요 하나님만이 나에게 주권하고 계시지, 하나님만이 나에게  주권하고 계시지 하나님 외에는 나에게 아무도 주권하는 이가 없다.' '아, 불에  들어가면 네까짓 게 타죽지.' '불이 절대 주권못한다' '아 사자 구덩이 들어가면  사자가 먹어 버리면 되는 것인데 네가 무슨 소용 있노?'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사자가 주권하지는 못한다. 주님만이 나를 주권하지 다른 거는 나를 주권하지  못한다.' 사자가 다니엘에게 대해서 주권했습니까? 주권 못 했습니다. 하나님이  먹으라면 먹고, 손 대지 해하지 못하게 하면 못하고. 불이 불내 나게 하면 불내가  나고, 뜨겁게 하면 뜨겁게 하고, 타게 하면 타게 하고, 죽게 하면 죽지 또 그분이  불 냄새도 나지 못하게 하신다 말이오. '불 냄새도 나면 안 된다' 이라면 못 했기  때문에. 그들은 전적 그분에게만 복종했고 그분만이 이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 대해서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주권을 가지고 행동했지 피조물은  주권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들이 확실히 믿었습니다. 요 걸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되면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내가 피동되는 자가 되면은 모든 피조물은 나에게 피동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순종하면 피조물은 나에게 순종 안 하고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했는데 피조물이 순종하지 안한 일이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에 여러분들이 찾아보십시오. 이걸 다 눈이 어두워서  예사로 봐 그렇지 하나님 한 분에게 순종하는 그 행위에 대해서 피조물이 순종  안 하고 협조 안 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순종이요 다 협조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순종하는 그 자에게 대해서는 크고 작은 것을 주권하고 계시지  피조물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털끝만한 것도 주권하지 못합니다.

불도 주권하지 못해. 불은 제가 의례히 태우는 것이지마는 태우지 못해요. 사자는  의례히 죽이는 것이지마는 죽이지 못해요. 하물며, 온 세상이 다 달라 들어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자에게는 하나님이, 하나님만이 그이에게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이렇게 저렇게 하시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자에게 피조물은 상전으로 모시고 저희 왕으로만 모셨고 저희의 주로 모셨지  절대로 해하지는 못한다는 요걸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요걸 믿어야 돼요. 이게  믿어집니까? 아직까지 감감합니다. 아직까지 이것을 알라고 하면 감감한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되 그  뜻을 어느 정도 찾을 것이냐? 그 뜻은, 그 뜻은 만능의 뜻이기 때문에, 만능의  뜻이기 때문에 그 뜻을 행하려고 할 때에 그 배경이나 환경이나 주위나 그 사건  본질 본성이 어떻게 어려워서 온 세계가 반대한다고 해도 요 뜻은 반대할 자가  없기 때문에 요 뜻은 전능이요 완성이라 하는 어데서든지, 요 뽕나무를 명한 거와  같이 어데서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의심 없이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기쁘고  즐거움으로서 고대로 실행할 수 있는. 순종할 수 있는 요 확신을. 천하가 막아도  막히지 안하고 순종할 수 있고 어려워 여기지 안하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종할  수 있는 요 확신을 우리가 마련하는 것이 요것이 문제이고, 또 내가 그와 같이  순종할 때에 결과적으로 모든 만물이 다 복종을 해서 그 순종하는 그 일이  완성이 되어지는 요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고 권위가 있는 요런 명령을 가지는  요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거 뭐 아직까지 멀었습니다.

얼마든지 새겨서, 새겨 가지고 우리가 변화가 돼야 될란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부득이 결론적으로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우리 현실은 없는. 현실이 끊어지는 토막이 있습니까?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은 그  현실이 없는 공간은 없습니다. 아, 현실이 없는 공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  우리가, 살아 있는 우리에게 현실 없는 공백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현실이 없는 공백은 현실이 없는 그런 공백은 없고 현실은. 우리 살아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우리 현실은 계속 연달아 있고 현실이 없는 우리 현재라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없습니다. 이러면, 내  앞에 있는 이 현실에는 어떠냐? 내 앞에 있는 현실에는 전능도 있고 전지도 있고  만왕의 왕도 있고 주권도 있고 대주재도 있고 영생도 있고 다 있습니다. 요거 다  있는데 내가 이것을 취해서 이것을 내가 가질 수도 있고 이것을 버려 버리고  스스로 멸망을 자취할 수도 있는 요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 내가 내 마음이나 고기덩어리의 이 기능이 전능의 기능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에 있는데, 내 이 기능을 현실에서 전능의 기능을 만들 수도  있고, 영생의 기능을 만들 수도 있고 이것을 유황불 구렁텅 이에 타서 멸망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이 기능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우리 현실에 있다, 우리  현실에는 온 천하, 자, 전능과 전지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거 차지 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지구덩어리 차지하는 것만 못합니까? 지구 땅덩어리 차지하는  것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알아 봐요. 손들어 보이소. 우주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분들? 우주보다 큽니다. 우주보다도, 우주뿐만 아니라 영계와 물질계 이  우주와 영계 이 모든 전부가 다 내 것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요것이 우리  현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 있는 것! 요 현실에 산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산 믿음을 가지면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어!  이렇게 보배가 우리에게 있는데 우리가 이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 현실을  돈하고 바꾸고 지위하고 바꾸고, 이거 이 목숨을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데 이  목숨이 죽을까 싶어서 이렇게 뺏기고 이래 가지고 못난 행위를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현실을. 현실에 산 믿음 가지면 이렇게 전지 전능이요  만능인데 이 산 믿음을 주고서 돈을 바꾸고. 이 산 믿음을 주고서 직장을 바꾸고.

이 산 믿음을 주고 지위를 바꾸고, 산 믿음 보다도 귀한 것이 있다고 이 땅위에  있다고 해 가지고서 부러워하는 것이 많이 있고 이 산 믿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천해 버리는 이것이 우리가 다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서 정신 이상병에  완전히 걸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요걸 잡아야 됩니다. 이걸 잡을 때에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이것는 이치적이요 과학적이오, 이거는. 인간  과학적입니다. 물리 과학이 아니고 인간 과학적이오, 이건. 이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요것을 불끈 잡고 가십시다. 이걸 얼마나 자꾸 해석했다 말이오. 이거 통해야 될  건데 아직도 설교해도 안 나가. 설교해도 안 나간다 말이오. 그러니까 혼자, 혼자  있으면서 말하면 힘이 나고 이렇지마는 증거하려고 하면은 안 통해져. 꽉꽉 막아  가지고 있는데 통해집니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거리가 멀어 있는데. 믿지  안하니까. 안 믿으면 명망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을 우리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우리 것 만들 수 있습니다. 공연히 과장된 말이 아니오. 앞으로 하늘과 땅의 것을  받아 가지고 자기 것을 삼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산 믿음. 요 산 믿음은 이렇게 능력있고 존귀하다는 그것을 우리가  깨닫고 어짜든지 이 산 믿음을 뻐앗기지 맙시다. 이 산 믿음은 어데 있습니까? 산  믿음은 어데 있습니까? 현실에 있습니다. 이 산 믿음은 우주와 비중을 달면은  어느 것이 비중이 큽니까? 어느 게 비중이 큽니까? (산 믿음!) 산 믿음이 큽니다.

믿으십시오! 믿으면 됩니다! 믿으십시오! 산 믿음이 큽니다. 그러면, 이 산 믿음을  주고 취할 만한 것이 세상에 있습니까? 산 믿음을 주고 바꿀 것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요걸 잡고 이제, 이 산 믿음은 내 현실에 있는데 내가  현실에서 산 믿음 요거 주고 딴거 바꿀 게 없다. 요 산 믿음 요 하나에 가치는 다  들었고, 내 전심 전력은 산 믿음 요 하나에 다 기울여져 있고, 내 욕심도, 소원도.

이 모든 것도 다 산 믿음 여게 다 집결돼 있고, 가치도 여게 집결돼 있고, 전심  전력도 여게 다 집결돼 있는 사람이 되면 요 사람은 세상을 이겼고 요 사람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거 사람들이 다  그랬습니다.

 이걸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 어떤 기적이든지. 병이는지 뭐 역사든지 뭐  정치든지, 히브리 11장에 보면 전쟁에도 있고 모든 다 있는 그 능력 무한한 그  능력은 꼭 산 믿음에서 됐습니다. 하나님 명령이라고 고대로 순종할 때에 안 된  일이 있습니까? 신구약 육십 육 권에 다 보면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고대로  순종해 가지고 죽은 자도 살아났고 병신도 나았고 전쟁에도 됐고 뭐이든지 안 된  게 하나도 없어. 고 현실에 산 믿음에. 산 믿음으로 살아가는 거게는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서 역사하지 안 한 것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요걸 우리가  믿읍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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