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논리의 종교

 

1988. 6. 17. 금새.

 

본문: 고전 15:37-44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암만 배워도 점점 배운 것이 자기를 정죄해서 더 심판거리만 마련하는 그런  사람되기 쉽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하나하나에 오늘 행동하는 이 행동이 이것이 똑바로 영원한  부활입니다. 행동과 부활을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눈이 어두워서 행동은  행동대로 떼놓고 부활은 부활대로 이래 떼놔서 계산을 하지 실은 씨종자와 나서  자라는 것이 꼭 하나인 거와 마찬가지로 행동과 부활은 꼭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가 현재에 행동을 꼭 같은 것만 시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행동 저런 행동을 하도록 하나님이 하나하나 자꾸 바꾸어  시킵니다.

 바꾸어 시키는 것은 환경을 자꾸 바꾸어 주는 그것이 다 같은 사람이 한 자리  항상 같이 있었지마는 상대방의 그 사람의 마음도 하루 수십 번 바꿔집니다. 또  내 마음도 바꿔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환경을 자꾸 바꾸어 주시는 이게 뭐이냐 하면은 이런 환경에서  부활을 또 이런 부활 만들고 저런 부활 만들어서 땅위에서 수백 가지도 넘고  수천 가지도 넘은 행동을 제 눈이 어두워 그렇지 실은 그 행동한 고것을 딱 뭐  사진을 찍는 거 모양으로 그렇게 딱 찍어놔서 하나님께서 고것을 행동할 때에  마음의 그뭐 마음이나 생각이나 이성이나 감정이나 욕심이나 그의 뭐 온갖,  마음의 요소가 수백 가지도 넘은 데 심리학자들이 말해 놓은 요소도 수십 가지  넘은데 수백가지도 넘습니다. 수천 가지도 넘습니다.

 우리 몸의 요소가 그렇게 많은 그것이 자꾸 이제 의학이 발달됨에 따라서.

종류가 자꾸 발달이 돼서 많아져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더 종류가 많고  그런 것인데 그 환경을 바꿔 주는 것은 자기의 행함을 바꿔 주는 거라.

 여게서는 진실 가졌지만 저게서 진실 못 가져. 또 요 모에는 진실 가졌지만  저런 데서는 전실 못 가져.

 그러면, 진실 하나를 시험할 때에 백 가지 환경을 줬으면은 백 가지면으로 고  진실을 시험한 거라. 천 가지 현실 줬으면 천 가지 면으로 진실한 것을 시험하는  거라. 또 공평된 것을 또 시험할 때에 그렇게 공평 시험하고, 정의를 시험할  때에, 또 정직을 시험할 때에, 고거 이 사람에게 시기심이 죽었나 살았나  시기심을 시험할 때에, 온갖 것을 하나님께서 이런저런 환경을 가지고 자꾸  조절해 가지고서 우리를 구원한다 말이오. 우리 성화를 일으키요. 부활의 그  형체를 만들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저 그냥 뭐 날이면 날이고 또 밤이면  밤이고 또 시간이면 시간으로 알지마는 하나님의 계획에서는 그 하나도 중복되지  안하고 전부,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가졌지마는 중복시간은 없지 않습니까?  죽을 때까지 중복 시간은 없고 전부 다 처음 당하는 시간이오. 전부 그 시간마다  처음 당하는 시간이요 처음 당하는 날입니다. 요거 이해가 돼요?  그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세밀한 계획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하고  계시는데 인간들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꼭 같은 날이요 같은 시간이요 같은  생활인 줄 알지마는 같은 생활이 하나도 없어.

 그러기 때문에, 거게 그저 자기가 성경대로 믿음 지킬라 하는 사람은 믿음  하나만 지킬라 하니까 어데서든지 믿음 하나만 지켜.

 에베소서에서 정사와 권사와 이 세상 어두움에서 세상 주관자들과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영으로 더불어 이렇게 우리가 싸우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그것이 네 가지로 말했지마는 뭐 권세로 말해도 수천도 만도 넘어. 또 이  세상에서 어두움의 세상에서 사는 거 주관하는 주관하는 것도 종류가 천도 만도  넘어.

 그 수많은 것을 무리에게 자꾸 접촉을 시켜 가지고서 네가 여게서 졌나 이겼나,  예수님의 대속을 네가 보수했나 대속을 버렸나, 대속을 버렸나 입었나 그게 인제  부활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네가 또 영감을 버렸나 영감으로 살았나, 네가  진리로 살았나 진리를 버렸나 이런 것이다 부활에 대해서 나타나.

 그러니까, 부활에 대해서 말하기를 부활은 자기 행위와 벌써, 그것이 끊을 수  없이 하나돼 있다.’ 그것이 종자와 그 뒤에 그 씨종자가 나 가지고자라는 것은  그것은 변동 못 한다. 그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이 다 같은 육체라 말은 같지만 육체야 피 나오고 다 기름 나오고  다 살이고 이래 같지마는 육체 다 같은 육체가 아니고 사람 육체, 짐승 육체, 새  육체, 물고기 육체 있는 것처럼 이렇게 부활은 같은 종류의 부활하는 데도 그  부활의 내용에 들어가 가지고서는 종류가 한없다.

 또, 속한 것도 다 그저 하늘에 속한 땅에 속한 것도 있다. 소속도 다르다. 다  같이 예수 믿지마는 그게 소속도 그 소속이 천 종류도 만 종류도 넘다. 천 계급  만 계급도 넘다.

 또, 그 영광도 또 각각 다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세밀하신, 이거 하나도 식물학자들이 키우고 어째 뭐  키우는가 그것만 알았지 이 속에 이 세포가 얼마나 됐으며 어떻게 됐는지 이 풀  한 포기를 하나님이 지으신 대로 다 안 사람은 하나도 없어. 이래 성경에  말하기를 제가 안다고 하면은 참 아는 법대로 모르는 자라 이랬어. 하나도 다 알  수가 없어. 그만치 복잡하고 세밀하고 어렵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이와같이, 그러니까 ‘뭐 혼자 언제 이거 풀 한 포기 나고 가고  또 버러지 한 마리 나고 죽고 하는 그런 것을 전부 다 혼자 다 주권적으로 이래  개별 섭리를 할까?’ 그거 할 수 있는 그분이시라. 사람의 머리 속에 컴퓨터가  몇 있다 하더라? 천억. 그래. 요새 그거 저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대로 말하는  대로 주장하는 대로 천억이 있대요, 이 한 사람 머리 속에 천억의 컴퓨터를  만들어 넣었다 그거 누가 말할 수 있겠오. 사람이 요 딱 한번 보면 기억 다  하는데 그거 안 돼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꿈꾸면 다 나와.

 이렇게 한 사람 머리 속에 컴퓨터를 천억이나 만들어서 넣은 그분이 머리가  얼마나 좋아요? 얼마나 세밀하요? 이런 거 이것도 그거 하나 만드는데 그렇게  전체를 다 관리하고 혼자 주권 개별 섭리를, 혼자, 주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안  믿는 사람은 그만치 신앙이 잡돼. 이것도 안 믿어.

 안 믿는 것은 뭐이냐? 과학자들은 안 믿어. 한 구절도 안 믿어.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가운데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이 유물주의, 기독교 지식주의, 기독교  철학주의, 뭐 기독교 주의 그거 다 나중에 가서. 분석을 하는데 이놈 빼고 저놈  빼고 다 빼 버리고 나니까 부활할 때는 영생할 수 있는 순전히 하나님의 요소로  된 것 완전 요소 영원 요소 불변 요소 이런 요소로 되어진 거는 얼마 되지 안해.

짜다라 커단하지마는.

 이것을 가리켜서 저 그전에 봤는데 저 금굴에서 금을 파내면 이거 금덩이라  이라면서 그것을 수은에다 이래 하고 또 인제 이래 씻고 빠수고 이래 가지고서  이래 해서 금돌이라 금이라 하는데 주먹덩이 만해. ‘주먹덩이만한 이거 돈이  많은데 이걸 사 가지고 이제 아주 정광수에다가 처음에 넣으면은 다른 거 다 타  버리고 은은 안 타. 다른 거는 타고 은은 안 타는데 또 그걸 아주 뜨거운 열에다  대고 하면은 다 타 버리고 남은 금만 있는데 고것을 가리켜서 제 일 최고금 이십  사금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걸 가지고 말햇어.

 그거 뭐 남은 것은 정금은 뭐이 남았겠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정금은 그렇게  연단하는데 남아 있는 정금은 뭐이 정금이겠어? 한 번 대답해 봐. 저 OO교회서  온 분, 어데 있어? 정금은 뭐이 정금이겠지? 돌도 타고 구리쇠도 타고 신주도  타고 뭐 전부 은도 타고 다 타버리는데 정금만 남았어. 남았는데 그 비유를 그래  했는데 그 정금은 우리로 말하면 뭘 말한 것이요? 우리 신앙으로 말하면, 우리  신앙을 말한 건데. 신앙에서 남아 있는 정금 그것만 천국 갑니다. 그것만 다  영생을 합니다. 그 정금은 뭘 가리켜 말한 거겠소? 대답해 봐. 그래 맞았어.

전적 하나님의 요소라. 하나님의 요소의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 다시 말하면 그분과 나와의 연결이 됨으로써 그분과 꼭같이 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그 힘의 능력으로. 이러기  때문에, 그분의 힘으로, 그러니까 하늘나라 가 보면은 힘이 몇, 누구의 힘이  있어요? 하늘나라에 가면 힘이 몇이 있어요? 하늘에 가면 무궁세계에 힘이 몇  개나 됩니까? 몇 개나 돼? OOO. 하나님 힘 하나뿐이라, 하나님 힘 하나.

하나님의 힘 하나 가지고서 억억억억만도 살고 또 만물을 새롭게 하는데 새롭게  하는 만물 그것도 다 하나님 힘 하나 가지고 살아. 이 이치를 알아야, 도통을  해야 돼.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감이라.

 이러니까, 이런 줄, 알고 자기가 어짜든지 진실할라고 애를 써야 될터인데  인간이 꾀를 써서 저를 좀, 저를 중요하게 나타나기 위해서, 나는 기술자들을  의심을 합니다. 왜? 기술자들 보면 좀 고치는 것도 제가 뭐 이 고쳐 놓고 나서  저 없으면 안 돼. 저 없으면 안 돼.

 그게 소견머리가 없어서, 요래 놨는데 한번 고쳐놨는데 이것이 그만 얼마든지  안 고쳐도 되도록 해 놓으면 자기 세월이 안 날 터이니까 고쳐 놓고 난 다음에  당장 고장이 나야 또 그분 또 불러야 되겠다’ 자기 세월이 나겠다 이래  알지마는,  세월이 나도 속으로는 욕을 합니다. ‘이놈 나쁜 놈 이놈 이놈 아니면 당장 못  쓰니까 소리해서 고치기는 고쳐야 되지마는 이래 고친게 뭐이야?’ 이놈은 보자  이놈은 고쳐 가지고서 열흘 견딘다. 다른 사람은 고쳐 보니까 스무 날 견딥니다.

그러면 열흘된 그 사람보다 스무 날 된 사람이 더 지혜가 있다, 실력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한 달 걸리고, 나중에 그거 사람들은 다 어리석어서 몰라도 다  자연히 통계가 되는거라. 자연히 통계가 돼 가지고서 그 실력 비교가 다 되고  비중이 다돼서 확정이 돼지고 마는 거라. 이러니까 그게 다 자기 가치를 덜고  속이는 것인데.

 어짜든지 모든 면에 그저 바로 참되게 해 보자. 인간은 진실하게 해보자 하는  진실 가진 것 이것만 효력 있지 딴거는 하나도 효력이 없습니다. 가진 거는 전부  그게 복술인데 그거 전부 자기 속이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믿음 외에는 다  자기 망치는 것이라. 믿음이 뭐이 믿음입니까? 하나님 하라서 움직여 가는 것이  믿음 아닙니까?  하나님 따라서 움직이면 믿음도 믿음 같은 것인데 믿음 아닌 게 있어.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이 말씀대로 행한 거 있습니다. 또, 자기 현실에서 자기에게 닥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한 거 있습니다. 고대로 행했는데 자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고대로 행했습니다.

고대로 행했습니다. 고대로 행했는데 성령은 같이 하지 않습니다. 성신의 감화는  없습니다. 성신의 감동으로 하지는 안했습니다. 그러면 성신이 그 일 하는 데에  동행하지는 안했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 성경대로 한 사람, 또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깨닫고  고대로 한 사람, 또 깨닫고 하는데 깨닫고 하는 것을 성령의 감동이 인정을 해서  성령의 인을 맞은 사람, 그거 어느 게 참된 것입니까? 어느 게 남겠어? 다  마지막에 성령이 인친 거라야 남아. 성령의 감동이라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이 아무리 이 말씀을 준해서 살았다 그런 율법  행위요, 율법만 했지 제딴에는 됐지 하나님 보시기에는 엉망진창이라.

 그랬는데, 그것보다는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애를 써가지고 그  뜻을 따라서 이렇게 했어. 그러면 그게 고거는 고때부터 믿음이라.

 믿음인데, 뜻대로 하기는 했는데 하나님의 성령은 동행해 주시지를 안해.

동행해 주시지 안해.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짓부리에 책임자인을 악 찍어  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성령이 인쳐 줄 수가 없어. 그래 나중에 성령이 됐다  하고서 인친 그거라야 된다고 성경에 말하지 안했습니까?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 말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인을  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 종의 행동은, 종은’ 순종하는게 종인데 순종하는  행동 중에도 하나님이 인치고 못 칠 게 있어. 이렇게 하나님은 세밀히 우리를  상대해서 하나님의 그 세밀에 다 합격이 되도록 이거라야 영생이 되기 때문에  합격이 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인간은 하나님을 표준하지 안하고  자기를 표준 해가지고서 어짜든지,  자기를 표준해서 진실하게 할라 해도 이거 아무것도 아닌 거짓부리인데, 인간의  의는 참말로 때묻은 옷과 같은 것인데, 이런데 자기에게도 다 진실을 제해  버리고 자기 수단과 꾀와 그 모든 복술 이런 것을 써 가지고서 행동을 하니 네가  하나님의 심판에 남아 있을 것이 뭐 있겠느냐 그말이오. 남아 있을 것이 뭐  있어?   이러니까, 누구 뭐 사람을 위해서 할 게 아니고 첫째는 하나님 위해서 하고  하나님 위해서 하지 못하겠거든 자기 위해서라도 남의 품을 들든지 뭐이든지  진실해야 됩니다. 진실. 그 진실에 자기 영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진실 외에는 방편이 없어, 수단이 없고, 수단 방법 부리는 거 그거  다 헛일이라.

 우리가 누가 다 진실할 수가 있으며 온전할 수 없지마는 자꾸 진실을 목표해  가지고서 아닌 것은 또 고치고 누가 욕을 하연서 요거 진실치 않은 걸 말해  주면은 그때는 ‘네가 나한테 좋은 말 해 줘야 되고 감정 좋게 기분 좋게 말해  줘야 되지 그러느냐?’ ‘야, 이 자식아 듣기 싫거든 말아라.’  주먹으로 쥐박으면서라도 자기가 영원히 불탈 걸 말 해 주면 고마워요 미워요?  뭐 저를 뭐 좋게 말하든지 나쁘게 말하든지 주먹을 때리며 말하든지 욕을 하며  말하든지 어짜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을 말해 주면 감사한 줄 알고 고칠라고만  애를 쓰는 사랑이 돼져야 되는 것이지 그거 제 비위 다 맞춰서 누가 그래 해 줄  건가, 해 주기를?  이러니까, 이렇든지 저렇든지 그만 어데서든지 진실입니다. 신앙생활은 전부  우리에게 법칙도 진실이요, 속에 들었는 능력도 진실이요, 방편도 진실이요, 또  우리가 준비도 진실이요, 받는 것도 진실이요, 가지는 것도 진실이요 전부 진실  없으면 다 안 돼. 진실 없으면.

 이런 데, 진실한 시람을 못 보겠어. 우리 서부교회는 전부 거짓부리라, 내가 볼  때는 이거 진실이 하나도 없어. 전부 진실이 없고 갈라먹기라. 갈라먹거. 내가  네게 대해서 이만치 봐 줄 터이니까 너는 봐 주고 이래가지고 서로 흠점 숨기는  것이 그것이 서부교회 처신술이라.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화평하게 해서 나빠도 그 사람 나쁜 거 숨겨주고 그라면  저 사람이 나 나쁜 거 숨겨 주고 또 내게 삐뚤어진 거 숨겨지고 이라니까 나도  그 사람의 삐뚤어진 걸 숨겨요,  전부 인간들이 너거끼리는 좋고 너거끼리는 좋아해도 하나님은 적이다. 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는지? 뭐 도무지 진실이 없는데 뭘 하겠어? 그 뭘 그 진실이 없는  마귀 복술 꾀가 얼마나 많은데 그것만 가지고 하는데 그걸 가지고 뭐 어떻게  일을 성공해 나갈 수가 있겠소? 이러니까, 이거 일할 시간이 없어. 이거  거짓부리인가 진실한가 이놈 조사할라 하니까 그 시간 다 가 버리고 겨우 이  거짓부리라 하는 거 ‘이건 거짓부리다’ 조사해 가지고 말하면 변명이 한정  없습니다.

 이러니까, 참 좋기는 좋아, 왜? 속이는 거짓부리 그 자들을 데리고 뭘 이랄라  하니까 박사가 돼. 참말로 넓을 박(博)자 참말로 아는 사람이 돼 버려. 요것도  서고 저거 세우려 하니까 다른 사람 보면 거짓말쟁이고 자꾸 트집쟁이박에 안  돼. 이래도 트집쟁이가 아니고 틀렸다 그거야. 이러니까, 틀린 거 그걸 조사를  다 해서 이랄라 하니까 그 사람이야 뭐 지혜자가 더 되지. 설교하는데 깨닫기는  더 많이 깨닫는 것이 돼지지. 이렇지마는 자기 구원이 절단납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진실한 사람이 돼야 돼요.

그만 진실 팔았으면 제 신세는 갔습니다. 진실을 팔아 가지고서 천하를 얻어도  저는 망했습니다.

 그러기에,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그거 또 인본주의라. 신본주의는 없어.

인본주의가 많아. 정직은 일생의 보배라 하는 그런 말도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말이 없어. 그런 말, 나는 무식해 그런지? 정직은 일생의 보배라 하는  그거는 그 아이면은 다 알아요. 국민학교 들어갔으면 다 알고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라도 한 너댓 살 먹으면은 다 정직은 일생의 보배라 하는 그런 말은 다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와 비슷한 말이 뭐 있습니까? 한번 말해 봐. O목사님 그와 비슷한  말 우리나라 말로 있습니까?, 뭐? 정직은 일생의 보배라. 전부 어 국어책에도  그런 거는 안 가르치고 뭐 그렇게 말이라 하는 거는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지  무슨 한글 문법을 요래 고치고 조래 고치고 짜다라 고쳐 가지고 내 나라  말이지만 무시해 하기가 싫다 말이오.

 왜 말로 다 이제 무엇이든지, 이걸 말이요 이걸 이거 종인데 이걸 그 만일 이거  따르록 하는 걸 이거는 떡이라 이름이 돼서 떡이라는 이름으로서 온 전국 백성이  알았으면 그만 고칠 필요가 없어, 이거 그만 떡이라 그래 가지고 자꾸 시간이  없는데 언제 그거 자꾸 고쳐서 이걸 언제는 종이라 했다가 떡이라 했다가 이건  또 이거는 주먹덩이라 했다가 이거는 또 이거는 흙덩이라 했다가 이거 자꾸  고치면 이거 발명만 하면 저거가 유명한 자인, 줄 알고 자꾸 이래 말을 바꿔  놓으니까 사람이 그놈 따라갈라 하면 딴 거 할 여가가 없어.

 인제, 모든 사람들이 이것은 뭣을 가리킨다 이렇게 다 공통으로 알게 됐으면 그  이름은 바꿀 필요가 없어. 그 나라에서 온 건데 하필 우리나라 말 아니라고 바꿀  거 뭐 있소? 우리나라 말 됐는데.

 구루마라 하는 거 구루마라 하는 뭐 일본말이라. 요새 건축하는 거 보면 전부  일본말 갖다 써 버려. 뭐 새끼다라 이라면 그러면 뭐 새끼다라하면 그거는  새끼다라 하는 그쨔 다 건축자는 새끼다라 하면 그거 다 아는 거라. 그런데  새끼다라 하는 그걸 또 우리 한국말로 한다고서 밑에 깔판이니 뭐이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다 아는 거 그거 냅두고, 아는 말 냅두고 자꾸 새 말로 만들어 내지 말고 그  말로 쓰면서 거게서 자꾸 이거 뭐 건축이면 건축에 실지의 법을 요렇게 조렇게  자꾸 발달되는 그 이치가 무한하니까 그 이치를 발명해 자꾸 이래 나가야 되는데  엉뚱한 뒷걸음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나는 한글 학자가 나는 존경이 하나라도 안  됩니다.

 그래도 또 저 먼저는 뭐 뭐라 하더라? 한글 해석법에 뭐 어떻다 한다 하던가?  해석법은 무슨 놈의 해석법? 한글 한학자는 밥을 먹고 월급 받아 먹고 할 일  없으니까 자꾸 어리석은 민족이니까 요렇게 또 말을 지어내고 조렇게 말을 지어  내 가지고 자꾸 그래 가지고서 세월만 준다 말인오. 그게 백성들에게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단어 배우는 데에 복잡하게 해서 부담을 주는 것이지 아무 효력  주는 거 없어. 없어서는 안 될 것은 하지마는 그만해도 되면 그걸로 쓰도록 하고  말 일이지 뭐할라고 그 말 자꾸 여러 말로 바꿀 게 뭐 있는가?.

 어짜든지 진실치 안하면. 헛일입니다. 진실치 안한 것은 왜 사람들이 진실치  않느냐? 자기를 위해서 진실 안 합니다. 진실하면 돈벌이 못하기 때문에 진실 안  합니다. 또 진실하면 자기가 정죄를 받을까 싶기 때문에 진실 안 해. 가룰라고.

 죄가 있을 때는 가룰라고 진실하지 안하고, 또 속여 유익을 취해야 될 때에는  유익 취하기 위해 가지고서 진실 안 하고 어짜든지 자기 위해서 사람들이 진실을  좋은 줄 알면서도 진실을 가지지 못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진실이 좋은 줄  알면서도 진실을 가지지 못합니다.

 자기 지위 위해서, 자기 기반 닦아 놓은 거 위해서, 자기 명예 위해서, 자기  권위 위해서 다 진실을 못 하는데, 자기를 위해서 진실을 못 하는데 자기 위하는  그놈을 어째야 돼? 그놈이 뭐입니까? 그놈이 영생할 자기입니까? 죽여야 될  자기입니까? 죽여야 될 자기라. 그게 자기 아니라. 그게 자기 아니라.

 자기 아닌 놈 위해서 일생 동안 종이 돼 가지고 살고 있어. 그놈을 어서 죽여  버려야 돼. 그거는 악령 악성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뭣이든지 진실을 파는 것은 자기의 영원을 파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을 팔고 영원한 권위를 팔고 영원한 영광을 파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 그러면 진실하지 안하는 사람이 제 속일라고 진실하지 안합니까 남을  속일라고 진실하지 안합니까? 진실하지 안한, 진실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남  속일라고 진실을 가지지 못하요 자기 속일라고 진실을 가지지 못하요? 그것도  몰라? 남 속일라고 진실을 가지지 못하지.

 그 진실 가지지 못하는 것은 남 위할라고 가지지 못하요 자기 위하기 위해서  가지지 못하요? 누구 위하기 위해 가지지 못하요? 자기 위하기 위해서 가지지  못해.

 그러나 진실치 않는 것은 남 하나도 속이지 못해요. 하나도 속이지 못해. 저만  속였어. 또 누구를 해했느냐? 자기만 해했어.

 이거 사람들이 마귀란 놈이 그런, 마귀 그거 수단이 넓다 하지마는 그까짓 거  마귀 그놈 봐야 얼마, 범위가 얼마 안 돼. 하나님 범위가 크지 마귀 까짓 놈의  범위야 얼마 안 돼. 이걸 알고서 이거 마귀의 범위를 알고 거게서 초월해져야  돼지 그리 안 하면 안 돼.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의 구원은 전부 논리적입니다. 논리 없는 구원은 없소.

자기가 논리 논리 해 가지고서 그 논리한테 지면은 자기는 미련 가지고서 ‘나는  과거에 이래 믿었는데 그 논리는 틀렸네. 논리는 틀려도 내 것이 맞다.’ 안 돼.

논리는 틀려도 내것이 맞다 그래 못해. 내것이 맞다 해도 자기 돌아가서 자꾸  이성이 있기 때문에 논리를 가지고서 이라면 ‘논리를 해 보니까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은데’ 논리적으로 그게 맞으면 결국 논리적으로 맞다 하는 데로 그리  자기의 양심이라 하는 건 따라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논리의  도라.

 이거, 천하에 있는 논리를 다 능가해서 발 아래 밟을 수 있는 그거라야  마지막에 서는 것이라. 그 논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없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에 논리하면 돼. 요만하면 족해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진실하지 안하면 다 자기 망치는 것입니다. 진실을 길러야  되는데 진실을 만들어 내야 되고 진실을 길러야 되고, 진실을 만들어 내는 거는  자기는 한 번도 안 한 진실을 할 때에 진실을 만들어 내는 게 되고 진실을  기르는 거는 과거에 한 번 한 것을 두 번 하면 진실을 기르는 게 되고, 그러면  진실을 만들어 내고 진실을 기른다.

 진실을 언제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현실 외에서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만들어 내지 못 해.

 그 진실은 그라면 현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진실이 종류가 하나뿐입니까?  맞습니까? 여게 대한 진실 저게 대한 진실. 진실이 많아요. 그러나 진실은  하나라.

 진리는 많은 데에 다 스며들어 있지마는, 수많은 억만 가지 속에 진리는 다  들어 있어. 억만 가지면 억만 가지 속에 진리 안 들어 있는 것은 없어. 진리가  다 들어 있어.

 그런데, 그 진리는 억만 가지 속에 들어 있는데 그 진리는 그라면 몇 개나  됩니까? 진리는 하나야. 참된 이치는 하나야. 참된 이치는 하나인데 여게 대한  참된 이치 저게 대한 참된 이치 참된 이치 종류는 많지만 진리는 하나 뿐이라.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논리의 도라, 그러기에 논리에 지면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 철학이 수많은 철학이 있고, 뭐 수많은 철학이 있어.

철학이라 하는 건 통틀어 말해서 철학이라 하는 건 뭐이 철학이냐? 철학은  밑에서 인간에게서 발원해 가지고서, 인간에게서 발원해가지고 마지막에 향방은  어뎁니까? 인간에게서 발원은 인간에게서 했고 향방 목표지는 어뎁니까?  인간입니다. 인간에게서 발원해 가지고 인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철학입니다.

인간 속에 원죄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철학이라,  기독교는 그게 아니라.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려 주는 거라. 기독교는  위에서 내려오는 지식이요 철학은 밑에서 올라오는 지식이요 철학은 인간에게서  나와 가지고서 인간을 궁구해 가지고 인간 속에 있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오.

 그러니까 제까짓 놈이 암만 철학을 한다 해도 제 속에 들어 있는거, 제 속에  그라면 자기에게 뭣, 자기 속에 인간 속에 뭐이 들었습니까? 인간 속에 뭐이  들어 있어? 인간 속에 혹이 들어 있지? 인간 속에, 자기 몸뚱이 속에 자기  마음에 모든 종류, 그 속세 뭣 들어 있지? 그 속에 뭣 들어 있어? 마음 속에 뭣  들어 있어. 안 믿는 사람은 마귀들어 있어. 알겠습니까? 안 믿는 속에는 인간  속에 최고의 보좌를 거머쥐고 제일 깊이 높이 들어 가지고 있는 그놈이 마귀란  놈이라. 성도 속에는 제 속에 뭐 들어 있어? 뭐 들어 있어? 뭐이 들어 있어?  하나님이 계셔. 그 속에 하나님 들어 계셔.

이러니까, 이 철학이라 하는 건 인간을 자꾸 파고 들어가려는 것이 철학이요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인간 속에 오셔  가지고서 인간을 자꾸 알도록 하는 거라. 이래서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둘이  합작하자 하는 거라. 그게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계시 종교라. 계시  종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늘에서 열어 보여서 된 계시 종교라. 계시 종교라는  말은 하는 학자들이 많지마는 계시 종교를 왜 기독교를 계시 종교라 하는 것을  뜻을 아는 사람은 많지를 못하다 그거요.

 이라니까, 이거 뭐 논리를 모르면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논리자라도  다 자기가 능가하면 그 미혹이 없고 능가 못 하면 미혹이 있어. 거기 사로잡혀.

결국은 사람은 논리에게 끌려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온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논리를 가지지 못하면 암만 믿음 가졌다해도 결국은 미혹을 받고 말아.

 그 논리를, 그라면 신구약 성경 논리면 다입니까? 아니야. 무한한 영감이 속에  들어 있어. 영감 받은 사람은 영감으로 다 이겨.

 그저 OOO이 저거 외삼촌, 한국 불교에 참선자로서는 제일 위인이라, 그 사람이.

우리로 말하면 이 명상 가진. 참선자로서는 위인인데 그러니까 그 사람은 평양에  제일 부자였어. 저거가 평양에 제일 부자라. 저거 삼십 리까지는 저거 땅을 밟고  다니고 남의 땅을 밟지 안하도록 그렇게 그 사람이 한 사람이야. 그 장자인데  부자가 한정 없는 큰 부자라. 이랬는데, 그 사람이 이 불교를 이래 거석해  가지고서 자기 있는 재산 다 거석하고 반은 자기 아내 주면서 나는 같이 살 수  없으니까 나는 그저 중 돼 갈 터이니까 그라라고 내 주고 남은 거 다 없애  버리고 또 딴거 절에 다 갖다 주고 그러니까 돈도 제일 많이 얻고 이랬는데 그  사람은 참선의 왕이라.

 저 제천 가서 내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어째 갔다가서 만났어. 만나 가지고서  논리하다 가는 나중에 끄트머리 논리해서 제가 질상바르면 그만 ‘그만 합시다’  하고 말아. 조금 뭐 ‘좀 더 고 다음에 좀 한 마디 더해 보이소’ 이래도.

 마지막에 그러니까 그 사람이 논리에 졌어. 논리에 저거 불교 논리가 기독교  논리에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는 좋을 때에는 여게 와  죽었어. 우리 김해표지에 묻혔어.

 와 가지고 말하기를 ‘내가 요번에는 암만 해도 하나님께서 불러서 내가 가야  될 때인데 내가 지금 이 전국에서 이렇게 이름이 있고 이러니까 아무래도 내가  그걸 용감스럽게 나오지를 못하고 이래서 내가 죽을 때는 아무래도 내가  너거한테 와 죽어야 되겠다 싶어서 왔는데 나를 기별을 하면 이거 뭐 막 절에서  야단이 날 터이니까 기별하지말고 묘는 김해 너거 묘지에 갖다 써 달라’ 그  예수 믿는다는 그걸 가지고서 그래서 여기서 회개해서 우리 김해묘지에다가  허락을 해서 쓰고 우리가 장례 지냈어.

 장례 지내고 나니까 뒤에 그 어째 전해 소문나니까 중들이 와 가지고 이래  하다가 인제 알고 난 다음에는 괘씸하다고 이라면서 그만 그 뒤에는 끊어져  버렸어.

 기독교는 논리의 종교라. 우리가 논리가 거기 지면 마지막에는 결국은 논리가  승리한 그 논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별별 철학이 있는데 철학 중에도 제일 높은 철학이  뭐이냐 하면 불교 철학이 제일 높아.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그 철학이오.

 오늘 아침에는 이거 마이크 때문에. 왜 마이크 때문에 이랬느냐? 양산동에서  도무지 대 예배 때는 잘 들렸는데 새벽으로 안 들려서 그딴은 사람들이 은혜를  못 받고 있어. 그걸 어제 아래 그거 고칠라고 거기서 소동을 일으켰는데 역부러  오라 해 가지고 이래 했는데 그거 어제 아침에는 잘 들렸어. 어제 아침에는 잘  들렸어. 아주 토록또록하게 잘 들렸다 말이오.

 잘 들렸는데, 그러면 잘 들렸으면 O기사가 말하기를 ‘마이크가 그래 그런  갑습니다. 위에 마이크는 좋은 마이크기 때문에 그런데 밑에는 마이크가 나빠  그렇습니다.’ 이랬는데 어제 아침에 과거 마이크 바꾸지 안하고 고 마이크로  했는데 아주 또록또록하게 잘 들렸거든.

 이러니까, 위에 마이크라야 된다 그게 아니라 그 말이오. 위에 마이크라야 된다  하는 그게 아니었는데 오늘 아침에 마이크가 바꿔졌기 때문에 ‘왜 이 마이크를  바꿔놨노? 그전 마이크로 하지.’ 또’ 그전 마이크로 하는 거 그거는 뭐 어떤  거라 하는데 어째도 내가 지금 정죄는 못 하지마는, 정죄는 못 하지만 뭐인가  내게 확인이 안 되고 인정이 안 되고 지금 의문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러면, 어제 잘 들렸으면 그만하면 되고 어제 그 마이크에 그 장비에 그  설비에 다 잘 들렸는데 안 들린 거 저거 작용을 잘못했다고 정죄를 거기다 해야  될 터인데 그놈을 삐뚤어지기 위해서 요 마이크를 또 고쳐 끼우고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 그라면 오늘 아침에 안 들렸는지 들렸는지 모를 거라. 오늘 아침에  마이크가 달라서 자기 끼울라 하는 마이크 ‘그 마이크를 안 끼워서 지금 이게  안 들린지 모를 겁니다’ 이라면은 도둑놈이라 말이오. 알겠소?  어제는 왜 그 마이크로 잘 들렸는데 그거 또 오늘 아침은 또 이래 놓으니  이러니까, 뭐인지 이러면 사람이라 하는 것은 꼭 콩이면 콩팥이면 팥 가려야  됩니다. 이걸 마귀란 놈이 ‘그럴 게 뭐 있느냐? 그 묻어 두지.’  여호와의 증인이, 여호와의 증인 이단들을 이기는 법이 그거라. 저거. 말하면은  떡 그게 틀렸으면 그거는 냅두고 딴 거를 내고, 그렇지 안하고 딱 그라면은  ‘요거는 네가 틀렸나 내가 틀렸나 판정해라’ ‘그런 내비두고’ ‘이거는 그거  아니라 이거부터 말해라. 이거는 네가 성경 대조해 보니까 네 주장한 것이  틀렸나 내 주장한 것이 틀렸나 요거부터 결정을 지우고 하자.’ 자꾸. ‘그거는  내비두고 또 이거 자’ 그래 따라 나가면 헛일입니다. 그래 따라 나가면  헛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에베소 6장에 전투하는 걸 말하지 안했소? 우리는 이거 어떤  권세하고라도 싸우는데 어떻게 싸우라 했소? 양성원 학생들 귀가 열렸는가  모르겠어. 그 권세하고 싸울 때는 어떻게 싸워?  권세하고 싸울 때는 그 싸움을 권세하고 싸우는 것을 이름을 뭐라고 말했어요,  권세하고 싸우는 것을? 싸움이라 했어 씨름이라 했어? 씨름은 힘을 비교하는  것이 씨름이라.

 자, 공산주의하고 싸우면 어셔야 돼? 공산주의하고 싸움은 어떻게 공산주의하고  싸우는 것이지? 한번 대답해 봐요. 안경쟁이. 기독자의 싸움은 공산주의하고  싸울 때 어떻게 싸워야 돼? 양성원 학생으로 자, 공산주의를 대항해서  공산주의를 멸하는 게 하나 있고 공산주의야 저거 공산주의야 하든지 말든지  내게 무슨 상관 있노 나는 공산주의가 오든지 가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  받아서 믿음 지키는 것만 할 것, 그러면, 믿음 지키는 것만 하는 것이 우리의  전투의 방법인지 공산주의를 따라가면서 씨종을 멸하도록 그와같이 싸우는 것이  우리 전투법인지 어느 법이야? 어떻게 배웠어? 그만 그런 거 잡탱이 말하지  말고. 믿음 지키는 거라.

 공산주의를 따라가면서 그걸 멸하는 게 우리 전투의 승리가 아니고 나는  공산주의야 저거 공산주의를 하든지 뭐 자본주의를 하든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나는 신앙 지키는 거는 나 할 일이기 때문에’ 신앙 지키는 거 요것만 뺏기지  안하고 요것만 지지 안하고 신앙만 지키는 요것이 우리의 전투지 요렇게 전투를  해야 되지 그거,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없애기 위해서 날뛰는 공산주의를 아주  박멸해서 없애야 된다 하는 그것은 우리 할 일이요 이방사람들이 할 일이요?  우리 할 일 아니라. 이방 사람들이 할 일이라. 우리는 멸공이 우리 할 일  아니야. 멸공이든지 유공이든지 무공이든지 상관 없고 우리는 거게서 신앙생활을  지킬 것뿐이라. 알겠어요? 요게 아주 요거 아주 생사의 구별입니다.

 자, 내가 신앙생활 하니까 공산주의가 나를 못하도록 막 붙듭니다. 나를  붙드요. 나를 붙들면 내가 붙들면 그놈을 돌아서 가지고서 돌아서 가지고  주먹으로 때려서 박살내 버리고 가는 것이 이것이 승리입니까? 붙드니까 붙드는  손을 뭐 제가 붙들든지 말든지 냅두고서 붙들든지 말든지 냅두고 나는 자꾸  앞으로 달아나가면 그놈은 붙들고 댕기는데 나는 거기 댕겨 안 가고 자꾸 앞으로  가고 붙드는데 나는 자꾸 앞으로 갑니다. 안 붙들리고.

 안 붙들리고 가는 것이 그것이 옳은 승리법이요 돌아서서 붙드는 손을 때려서  바짝 뿔라 버리는 것이 그게 그 승리하는 법이요. 어떤 게 승리법이요?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 자꾸 붙들면, 붙들면 한 손으로 붙드니까 뿌리 뜨리고 자꾸 가는  거라. 뿌러 뜨리고 가는 거.

 우리 할 일 하나 뿐이라.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 줄  것뿐이다. 예수님이 하실 일과 세상이 할 일, 그라면 ‘에이, 이놈이 들어서  나를 이래 세상 임금 마귀가 와 가지고 나를 이라니까 마귀 이놈을 완전히  박멸해야 되겠다. 전멸해야 되겠다.’ 그거 주님이 하시지 안했어. 미가엘은  ‘꾸짖으실 거라. 하나님이 너를 꾸짖으신다,’ 그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이 모두 다 거게서 거게 인데 잘못 배우면 헛일입니다. 기독교는  아주 세밀히 하고 철두철미한 구별입니다. 구별. 요 구별 없으면 헛일이요,  그만. 구별 없으면 자기에게는 힘이 없어.

 폭탄이 뭐 이렇게, 이만하면 이만한 폭탄이면 얼마나 되느냐 하면 이만한  폭탄이면 떨어져서 폭발되면은 아마 그 한 여나무 평 싹 빠져 버립니다. 그 땅이  확 빠져 버리요. 그거 이런 동구나무 있어도 쑥 뽑혀 가지고 날아가 버려.

그만침 크지마는 그 폭탄에, 폭탄에 구멍이 조그매 뚫혔으면 헛일이라. 폭탄에  여기 손가락 하나 들어갈만한 구멍이 뚫혔으면 그만 폭발은 안 돼. 그러면  터지면 ‘피이’ 연기가 풀석 나고 이렇지 힘없어,  기독교는 어짜든지 틈이 없어야 돼. 물샐 틈이 없어야 돼. 논리로 말하면  끝까지 자기는 요게 옳다 하는 그 하나만 되는 그 논리를 가져야 힘이 나지 그저  이래도 저래도 한다 하는 것은 힘을 못 가져. 폭발력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승리를 못 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이 마이크에 진실이 없기 때문에 지금 없는 것은, 없는 증거는 다를 때는  새벽에 안 들렸는데 왜 들렸는가? 어제 아침에는 잘 들렸는가? 어제 아침에  물으니까 마이크도 그 마이크 장비도 그 장비 설비도 그 설비 똑 그 설비인데  이거 뭣이 세웠다가 눕혔다 했는데 평소에는 요래 눕혔는데 그거 세웠다 이래.

그거 그러니까 잘 들렸다해.

 딴거 아무것도 없어. 그대로 만 하면 될 건데 그걸 자꾸 뭘 캄프랏치를 해서  과거에 이걸 이래 가지고서  나는 그래. 그거 그는지 안 그는지 그거 내가 모르지마는 이래 가지고서 이거  뭐 기계가 이래 그렇다 거뜩하면 그만 기계 사자 하는거라 이거. 그만 아무래도  기계 사야 됩니다. 그거 뭐뭐 그것도 그 말들으니까 한 이십만 원 해야 아마  그거 사야 되고 한 이십만. 원짜리 그거 사야 그거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대로 해 가지고 잘들리던데?  그래 나는, 나는 무슨 사람이 됐는지 가정에서도 돈 안 줄라고 만날 싸우고 고  교회서도 뭐 돈 안 줄라고 싸우고, 마구잡이로 써요. 돈이 얼마든지 있는 줄  아는 거야. 자꾸 돈을 마구잡이로 안 쓸라 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있고 마구잡이  쓰는 자에게는 제까짓 게 쓰고 싶어도 나중에 돈이 없어 못 써,  인제 마이크 때문에 오늘 아침에 손해 많이 갔어, 이거. 몇 백 명이 모여  가지고서 이겨 전부 이래 시간 갔을 것이기에 이게 모두 무슨 손해냐? 앰프실에  지금 그 사람들 진실치 못한 데에서 지금 우리가 이런 큰 손해를 보고 있다  말이오. 이 손해 본 걸 알아야지.

 ‘아따 목사님 엔간히 까다롭게 그러네’ 엊저녁에 내가 그말 들었어. 목사님  밑에는 사람이 못 살아요. 너무 까다롭게 자꾸 그래 쌓기 때문에 그만 알든  모르든가 슬슬 될 버려서 이래 좀 그래 놔야 되지 그 밑에 있어 목사님 밑에는  사람이 배기지 못한다고, 일 못 한다고. 그래 어제 또 나하고 또 좀 누구하고  말을 했었어  배기지 못하는 그 사람 덕택으로 너희들이 살고 있다, 그 사람 덕택으로 그런  사람이 여기 얼마나 있느냐? 그런 사람들 덕택으로 지금 공산주의가 밀고  내려오지 못하고 하나님이 같이 하고 있지 그런 사람들 아니면 다 죽어. 없어.

 하나님이 어짜든지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가 되도록 거룩한 성도인 것처럼  거룩을 가지라 했는데 제가 무슨 신사라고 위인이라고 자꾸 전부 관대 관용 다  가지고 있어?

 여기 양성원 학생들이 이거 여게서 배울 때 진실히 배우면 나가면 목회할  실력은 얼마든지 가질 터인데 진실이 없어.

 이번에 그뭐 공부한 것도 보니까 낸 사람들 몇 사람 안 낸 데에다가, 그 공부를  잘했으면 평생 목회 할 때 제가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거  하라는 거 그걸 뺄라 하면은 제가 그만, 지금 못 배운 사람은 다시 못 배우요.

평생 못 배우요. 이걸 진실되이 했으면. 다 못해도 몇 장이라도 고 진실이  없으면은 ‘어데까지는 내가 해놨다’ 그러면, 설교 뭐 하는 거요? 설교  뭐합니까? 하라는 거 말하고 하지 말라는 저 하지 말라 하고 또 하지 말라는 거  한 사람들의 그 결과가 어째 됐다 또 하라는 거 한 사람들 결과가 어째 됐다.

 하라는 거 한 사람 결과가 어찌 됐다. 하라는 거 안 한 사람 결과가 어찌 됐다.

하지 말라는 거 한 사람 결과가 어찌 됐다, 하지 말라는 거 안 한 사람 결과가  어찌 됐다. 하라는 거 뭐이다, 하지 말라는 거 뭣이다. 이것만하면 신구약 성경  다 엮어 놓지 안했소? 이만하면 일행동안 목회하는데 이렇게 보배롭고 요긴한 걸  말해 주는데 자기네들 귀에 들리지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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