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초월의 종교

 

1987. 12. 14. 새벽 (월)

 

본문:빌립보서 4장 4절∼7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기독교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 방편은 마치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 자욱씩 밟아서 올라가면 뭐 앉은뱅이라도 얼마든지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만치 빨리 못 올라가지, 그저 고물고물 기어서  요렇게 올라가면 올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순서를 뒤바꾸지 말고  그저, 만일 앉은뱅이 같으면 뭐 멀리 가겠습니까? 앉은뱅이 같으면 옆에 풀을  거머쥐고 이래 가지고서 그저 조금 가면 뭐 한 한뼘이나 올라갈란가, 반뼘이나  올라갈란가? 요래 올라가 가지고는 또 거게서 또 애를 써 가지고 또 반뼘  올라가고 이래 가면 높은 산을 앉은뱅이라도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서를 그렇게 하지 안하고 띄워서, 만일 한 다섯 발을 한목  올라갈라고 하면 뭐 모르기는 모르지만 세계에 한 사람도 올라갈 사람 없습니다.

어떻게 다섯 발을 띄워 가지고서 다섯 발 뜬 거게를 다섯 발을 제가 날아 올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못 올라갑니다.

앉은뱅이라도 올라갈 수 있는 그 산을 한 자욱씩 올라가지 안하고 다섯 발을  띄워서 다섯 발을 한목 올라가려고, 다섯 발 하면 그 가운데 몇 자욱이나 되는지?  아마 여러 자욱 될 것이오. 힘 좋은 사람은 한 열댓 자욱 될 것이고 뭐 쭉쭉  벌트리면 한 세 자욱 하면은 한 발 됩니다.

이런데 그것을 한 열댓 발자욱을 떼 가지고서 올라갈 그 높이를 제가 한 자욱에  올라갈라 하면 한국 사람 아니라 세계 사람 중에도 아무도 그래 올라갈 만한  용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차차 차차 순서적으로 이렇게 밟아 올라갈라 하면  누구든지 다 신앙 생활 할 수 있는데 그 순서적으로 하지 안하고 순서를 어겨서  제가, 순서를 어겨서 뛰어넘은 초절적으로 이렇게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명철하고 아무리 그 사람이 슬기롭고 총명스럽고 열심있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도  안 됩니다.

이러니까 산을 순서적으로 밟아 올라갈라 하면 다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산이라도 그 순서를 밟지 안하고 이것을 뛰어넘어서 이렇게  초절적으로 뛰어넘어서 이래 갈라 하면 아무도 못 갑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모두 가르친 것을 보면 그런 순서를 가르쳐 놨습니다. 이래서  그걸 가리켜서 기독교는 초절주의가 아니고 초월주의다. 고것 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또 그다음 순서를 하고 그다음 순서를 하고 이래 가야 되지 그 순서를  밟지 안하고 허욕스럽게 교만하게 그걸 뛰어넘으려고 하든지 한목 할라 하든지  그래 하면 안 된다, 그 순서를 밟지 안하면 안 된다 그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항상 필연적이라 하는 말을 제가 많이 합니다. 필연적이라 말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이 저절로 된다 그말이오, 저절로 된다. 필연적이라 말은  뭐 되구로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된다 그말이오.

물이 있으면 고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나는 저게 꽃마을에 올라가는 데 거게야 뭐  물도 더럽고 이러니까 물도 얼마 안 되고 하니까 고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어떤 말 들으니까 한번 비가 와 가지고 물이 뭐 철철 넘는데 보니까 마구 고기가,  그거 누가 말해요. 무더기로, 무더기로 뭐 쓸려 가지고서 넘어오는데 그때 고기  주운 사람들은 많이 주웠다고서 그렇게 말해요.

거게도 물이 있으니까 고기가 있어. 또 숲이 짙으면 뭣이 있다 합니까? 숲이 꽉  짙어서 사람이 못 다니게 숲이 꽉 짙으면 뭣이 있습니까? 짐승 있지요? 짐승  있어. 또 사람이 많이 모여들면 뭐이 생깁니까? 뭐 생겨? 장사꾼 생기지. 안  그렇습니까? 그런 것을 가리켜서 필연성이라 그렇게 말한다 그거요.

그런고로 기독교는 꼭 순서적이라야 되지 순서를 밟지 않고는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은 신앙 생활을 다 하고 겸손치 않고 진실치 안하고  허영의 사람 허욕의 사람, 허영 허욕의 사람 벌로 날뛰는 사람은 신앙 생활 제가  아무리 해도 못 합니다. 뭐 사람 앞에서는 그 사람이 위대한 뭣이라 뭐이라  이렇게, 부흥사라 뭐 신학자라 해도 그거 만판 거짓말이오. 아는 사람이 보면 전부  거짓말만 주 엮어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믿어보면 또 믿게  되고 믿어보면 또 믿게 되고 점점, 작은 것 믿으면 그다음 것 믿고 그다음 것  믿고, 자꾸 믿어보는 사람은 자꾸 믿게 된다.

이래서 기독교는 경험의 도이다. 제가 경험해 보면, 경험해 보니까, 경험이라는  것은 자기가 이런 일 저런 일을 한번 통과해 보면 하는 말이고, 체험이라 말은  자기 몸으로 한번 느껴본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래서 ‘경험해 보니 틀림없다,  체험해 보니 틀림없다.’ 아브라함이 백 세에 난 독자를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는 독자를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말은 번제라 하는 것은 뭐 털이고 똥도 하나도 남은 것 없이 싹 다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번제입니다.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그 일이  아브라함에게 두번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처음으로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그런 일이 두 번 닥쳤습니까 세 번 닥쳤습니까 처음으로 닥쳤습니까? 처음으로  닥쳤어. 생전 처음 듣는 소리라.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소리를 듣고 나서 근심했습니까 즐거워했습니까?  즐거워했습니다. 왜 즐거워했습니까? 뭣 때문에 즐거워했을까? 과거에 많은  경험을 해 봤어. 많은 체험을 해 봤어. 처음에 ‘아이구 이러면 이것 큰일났네’  하는 그 일은 그대로 하고 보니까 큰 유익이 있었다 그말이오. 또 하기 쉬운 것은  그런 것은 그만치 또 적은 유익이 있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독자를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하는 이 일은 참 큰 일이요 처음 닥치는  큰 일이니까 아브라함은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이제 처음 닥치는 큰 유익 큰  복덩어리를 받겠다’ 이래 놓으니까 밤새껏 기뻐서 벙긋거리고 못 견뎠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어데서 나왔습니까? 어데서 나왔어요? 어데서 나왔지?  이 안경쟁이, 어데서 나왔어? 경험과 체험에서 나왔어. 과거에 경험해 보니까  그렇거든.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그걸 한번 알고 난 다음에  믿어보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실행해 보고, 성경 말씀 하나 알고 그대로 인정해  보고 그대로 실행해 보고 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약속하신 대로 해 주시는  것을 받아본다 말이오.

성경 말씀을 하나 알아보고, 그다음에 믿어보고, 그다음에 행해보고, 그다음에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은혜받아 보고, 알아보고 믿어보고 실행해 보고  은혜받아 보고 이러니까 이제 딴것 할 게 없어. 이보다 더 큰 수입이 없어.

이러니까 미국이 궁지에 빠졌을 때에 그 나라를 구출해 낸 이가 무디 선생이라  하는 그 부흥사인데 그 부흥사가 말하기를 ‘믿음보다 더 큰 수입은 없다.’  성경에 기록한 것 알고 난 다음에 인정하고, 인정하고 나서 실행하고, 실행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그대로 갚아 주시고, 이 네 가지. 알고 인정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갚아 주시고, 이것 받아보니까 이보다 더 큰 수입이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할 일은 이것밖에 안 해.

‘이것만 하면 다른 것 어찌 하고?’ 이것만 하면 돼. 성경에 가르쳐 주신 그대로  알고, 그대로 하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을 하고 하니까 돼. 장사도  그러니까, 요게 뭣입니까? 믿음으로 하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그것, 믿음이 몇  가지가 믿음입니까? 세 가지. 은혜 주시는 것은 몇호입니까, 은혜 주시는 것은?  일호요 이호요 삼호요 사호요, 은혜 주시는 건 몇호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은혜 주시는 건 몇호인고? 사호. 이 셋은 믿음이고 하나는 하나님이 해 주시는  은혜로 사호라 그말이오.

믿음보다도 더 큰 수입은 없다 이러니까 항상 이 일 이 삼 사 요것 가지고서 또  하고, 일 이 삼 사 하니까 또 하나님 축복받고, 일 이 삼 사, 일 이 삼 사, 일 이  삼 사 자꾸, 일 이 삼 사 올라가고 올라가고 일 이 삼 사 올라가고 올라가고  하니까, 일 이 삼 사 올라가니까 그 동리에 제일이더니마는, 일 이 삼 사 자꾸 올라가니  그 면에 제일이더니마는, 일 이 삼 사 올라가니까 그 군에 제일이더니마는, 일 이  삼 사로 올라가니까 나중에 어데까지 올라갑니까? 어데까지 올라가요? 어데까지  올라가? 하나님에게까지? 어데까지 올라가? 여게는, 어데까지 올라가? 성경에  뭐라 했어? 성경대로 말해야 되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기까지 올라간다  그거야. 인간으로는 최고가 됩니다. 이러니까 이것 해 본 사람은 이것 외에 딴거  안 해요.

그러면 그것을 장사하는 사람도 이 믿음만 지킵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이래라 하는 대로 ‘요라면 되겠다’ 그리고 그대로 해. 장사도 믿음으로 하고,  장사도 믿음으로 하고, 장사도 믿음으로 하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걸  그러면 된다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믿음으로 장사하는 사람이라.

믿음으로 장사하고, 공부도 믿음으로 하고, 정치도 믿음으로 하고, 전도도  믿음으로 하고, 권찰일도 믿음으로 하고, 목회도 믿음으로 하고, 전부 믿음으로  하니까, 믿음으로 하니까, 믿음으로 하는 것은 몇 가지로 하는 것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믿음으로 하는 것 세 가지. 믿음으로 하니까 성공되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 주셔 성공되는 것은 몇호입니까? 사호.

그러면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성공하고 믿음으로  성공하고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성공하는 것은 몇 가지 하는 것입니까? 인제  이것은 모를 거라, 또. 믿음으로 성공하는 것은, 믿음으로 부자되고 믿음으로 장사  잘 하고 믿음으로 공부 잘 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성공하고, 믿음으로  점점 커지고, 믿음으로 점점 올라가고 하는 것은 몇 가지로 하는 것입니까,  손가락으로? 이 세 가지 드네. 셋 아니라. 믿음으로 성공하는 것이니까 믿음만  하면 세 가지지마는 성공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은혜까지 붙지 안해요? 그러니  넷이지. 넷.

믿음으로 성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믿음으로 부자되고, 믿음으로 올라가고,  믿음으로 위대해지고, 믿음으로 자꾸 모든 사람, 이웃보다도 뛰어나고 그보다  뛰어나고 뛰어나고 자꾸 올라가는 것, 믿음으로 성공하고 믿음으로 자꾸 올라가고  믿음으로 부자되고, 믿음은 뭐 돈벌이는 못 하는 줄 압니까? 믿음으로 돈벌이도  제일 잘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돈벌이는 그 돈벌이가 제 힘으로 돈벌이가 됩니까  누구 힘으로 돈벌이 됩니까? 하나님 힘으로 돼. 하나님 힘으로 되면 누가 방해할  수 있소? 방해 못 해요.

이러니까 삼십팔 년된 환자가 ‘나는 요 가운데 제일 무능한 자입니다. 아무도  도와 줄 이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합니다.’ 이러니까 ‘낫고자  하기만 하면 돼.’ 이런데 그러면서 ‘일어서 자리 들고 걸어가라.' 이러니까  가니까 뻐뜩 돼 버리거든. 그건 하나님이 하신 거라.

저는 그라면 될 줄 알고 자리 들고 일어서려고 자리를 들고 그 믿고 자리를 들고  일어설라 하니까 자, 일어서서 자리 들고, 일어서 가지고 자리 든 것은 누가 했소?  제 힘으로 했소 누구 힘으로 했소? 주님의 힘으로 했어.

그것은 그러면 삼십팔 년된 병자가 일어서서 자리 들고 걸어간 그것은 몇 가지  가지고 된 것입니까? 몇 가지 가지고 된 것입니까? 이 세 개가 맞소 네 개가  맞소? 네 개가 맞는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봐. 네 개가 맞아, 네 개가 맞아. 세  개는 삼십팔 년된 병자가 했고 마지막 넷째 일어서서 자리 들고 걸어가게 한  것은 주님이 하셨고, 이러니까 그 앉은뱅이 제가 이제까지 삼십팔 년 돼도 못 했지만 이제 제가 할 것  세 가지 믿으니까 하나님이 해 주셨다 말이오.

이랬는데 어떤 목사 내가 설교한 것을 테이프를 가져왔는데 보니까 그 목사가  설교하기를 그래 해요. ‘어짜든지 자기가 제일 무지 무능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자인 줄 알고 또 자기는, 아무 도와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또 자기는  모든 사람이 방해한다는 걸 알고 이렇게 아는 그것이 주님을 영접하게 됐고  주님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많이 우리가 있어야 됩니다. 이게 자꾸 점점  많으면 주님을 자꾸 많이 영접합니다.’ 이래 설교를 해.

그 설교에는, 고것은 딴데 설교에서 맞추는 것이지 거게는 그 세 가지를 많이  가지라 했소 그 세 가지를 부인하라 했소? 어떻습니까? 그 세 가지를 가지라  했어 부인하라 했어? 가지라고 했다고 그것 많이, 그걸 많이 가져야 ‘나는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하고 불쌍하고 제일 가련한 자이다. 제일 병신이다. 나는  아무도 도와 줄 이가 없다. 나는 방해하는 사람이 가득 찼다.’ 이렇게 삼십팔  년된 병자가 생각하고 있지 안했습니까?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리 생각했지요?  그리 말하지 안했어요? ‘나는 삼십팔 년된 병자입니다. 나를 아무도 업어다 줄 사람이 없습니다. 업어다  못에다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발등 걸든지  해 가지고서 먼저 가서 방해합니다.’ 이렇게 그 삼십팔 년된 병자가 말하니까  뭐라 했어요? 주님이 그래 너 잘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왔다 그것 잘했다  했습니까 그런 것 다 부인하라 했습니까? 그 부인하라 했습니까 그것을 더  강조하라 했습니까? 부인하라 했다 말이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해석해서  설교를 해요. 정꺼꾸로라.

부인하라 했는데 그것을 주장하도록 하니까, 우리 진영에 목사들 쳐놓고 그 백  목사 가라 하면 오라 하고, 오라 하면 가라 하고 이래 정반대로 반동하는 그  인간들은 전부 결과적으로는 다 그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해. 눈에  보이는 목회는 좀 된다 할지라도 돼도 소용이 없어. 그게 바로 돼야 되지.

거게서는 부인하는 건데 그걸 강조해요. 강조하니까 또 이 어리석은 것들은 그  성경 전체를 그걸 모르니까 그래 설교하니까 ‘참 나는’ 그것 겸손 같거든. 그것  겸손 같으니까 그렇다 말이오. 그런 것은 또 다른 데 설교할 때에 하지 거게서는  그것 부인하라 말이오. 그래.

오늘 아침에는 이것 여러분들이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독교는 초월의 종교라.

초절 종교가 아니고 초월 종교라 하는 그 말이 맞소 안 맞소? 맞으면 손을 들어  봐요. 녜, 맞습니다.

또 기독교는 경험의 도라 체험의 도라, 경험과 체험으로써 나아간다 그 말은 맞소  안 맞소? 맞으면 손 들어요, 또? 뭐 자꾸, 말 듣고 가만히 손 들기가 뭐  힘들어서? 경험의 도요 체험의 도라. 그게 아니면 안 돼요.

기독교는 필연의 도라. 필연의 도라 말은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이러니까  성경도 보면 요것 하면 조것 하고, 조것 하면 요것 하고 이래 자꾸 돼져요,  순서적으로.

그러면 요번에 빌립보 4장 4절에서는 제일 처음에 뭘해야 돼요? 기뻐하는 걸  제일 처음에 해야 돼요, 처음에. 그러면 맨 마지막에는 뭣이 돼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가뜩 차요, 그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가득 차. 이게 뭣이냐 하면 일호 되면 된다 말이오.

그러면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하는 이것이 집을 짓자면  상량입니까 대들보입니까 기둥입니까 뭣입니까? 뭣입니까? 대들보? 중요하기는  대들보지. 그런데, 자, 그러면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으니까 이제 이것이 집짓는 걸로 말하면 뭣입니까? 집짓는 걸로 말하면  대들보요 상량이요 지붕 얹는 것이요 주초 놓는 것이요 터요? 뭣입니까, 이게?  뭐이요, 이게? 주초? 땅 없는 데 주초 놓을 수 있어? 주초보다 먼저가 뭐이라?  땅이라, 땅. 터.

터가 있고, 그다음에 주초 놓고, 그다음에 기둥 세우고, 그다음에 또 봇장 걸치고,  그다음에 상량 올라가고 이래 하는 것 아닙니까? 요새 보르크 집은 이제 터가  있어야 기초 하고, 기초 하고 난 다음에라야 그다음 보르크 쌓아 올라가는 거  아니야? 이런데 이것 ‘들보’ 하면 그것은 공중에 들보 암만 얹을라 해야 툭툭 떨어지지  그게 돼지는가? 이거 모양으로 인제 우리 신앙 생활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제일  먼저 할 일이 기뻐할 일이라 말이오. 기뻐할 일이라.

기뻐하는 것을 하면 이 기쁨은 어데서 나와요?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나오는데 주 안에서 나오는 게 뭣이 주 안에서 나오는 겁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이 열여섯 가지 대속을 생각하니까 모든 순서가, ‘전쟁이 난다,  전쟁나는 저 순서도 나 위해서 있다.’ 또 큰 것 작은 것 모두 있으니까 보고  ‘저것도 나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전부 내 구원 위해서 지으셨어.

그러면 그 창조하고 예정한 게 뭣인데? ‘나를 하나님께서 예택했는데 예택한  나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했다.’ 그 예택 전에는 뭣입니까? 예택 전에  뭣이요? 하나님의 목적. 이렇게 자꾸 이걸 생각하니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난다  말이오. 기쁨이 나면 그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이 관용하는 사람이 됩니다.

관용하는 사람이 돼.

새벽으로 나와서 저희들이 배워야 될 터인데, 여기 지금 교역자들도 실은 나가서  있지마는 이게 교만해서, 여기 하면 여게서 이제 설교록이 나가면 설교록이 한 달  뒤에 나간다나? 한 달 뒤에 나가면 거석하니까 여게서 주일날 어제 주일날  설교한 것이 벌써 오늘 갑니다. 어제 주일날 설교한 것이 언제 가, 편집실?  목요일쯤 가? 어제 설교한 것이 목요일쯤 간대요. 어떤 사람은 그 설교한 것이  그날 갔다는데? 누가 그것 전화로 하는지 모르겠어? 그날 갔대요. ‘그래 가지고  그날 당일 받습니다’ 이래. 당일 받는 일 없나요, ○○씨? 모르겠어? 당일  받는다 해, 당일.

이러니까 이래 하면서 어짜든지 그렇게 보고 난 다음에 뭐 하나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제가 생각한듯이 이래 가지고서 거만하고 교만하면 그만 볼일 다  봐.

이 하나 깨달으면, 하나 깨달으면, 기독교는 하나 깨달으면 어찌 됩니까? 하나  깨달으면 어찌 돼요? 하나 깨달으면 둘 깨달아요. 둘 깨달으면 셋 깨달아요. 셋  깨달으면 넷 깨달아요. 하나 믿으면 둘 믿게 돼요. 둘 믿으면 셋 믿게 돼요. 하나  행하면 둘 행하게 되고 둘 행하면 셋 행하게 되고 자꾸 이래 점점 산을 밟아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자욱씩 올라가면 얼마든지 올라가는데, 한 자욱씩  올라가면 다 올라가는데 이것 열 자욱만 띄워 가지고 올라갈라 해도 안 돼.

종전같이 교회 주변을 겸손히 덕을 세워서 청소하고, 또 지금 바로 권찰회  모입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것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반사  선생님들은 언제든지 공과를 외우도록. 외우고, 외우고 그다음에는 또 어째야  돼요? 외우고 또 뭣해야 돼요? 명상해야 돼요. 그다음에는? 실행해야 돼요?  실행하면 뭣이 나와요? 뭣이 나와요? 실행하면 뭣이 나와요? 경험 나오고 체험  나와요.

경험하고 체험 나오면 속았다 싶은가 경험하고 체험하면 ‘하 야, 여게 모든  성공이 여게 들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요, `에, 믿음은 소용 없다.’  하겠습니까? 경험하고 체험하면 ‘이보다 더 부자되는 일 없고 이보다 더  성공하는 일이 없고 이보다 더 속성되는 일이 없다.’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은 모든 걸 믿음으로 해. 깨달아져요? 지하철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어제 말 들으니까 지하철 기둥 안 뺀 것이 여기만이  아니고 다른 데도 안 뺀 데가 많이 있대요, 그래. 말 들으니까. 그말이 참말인지?  어짜든지 이것도 기도해야 되지 기도 안 하면 헛일입니다.

권찰회 모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권찰회 모여서 떡국 잔치 할 것을 잠깐 좀  얘기할 터인데 장로님들 권찰님들 다 참석을 하도록 하십시오. 올해는 인제 떡국  잔치 하는 것은 이렇게 하라 하는 것만 말만 하고 나는 그때는 나는 쏙 빠져서  나는 딴데 가련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자기네들이 인제 좀 계획을 해 가지고 해  봐야 돼. 머리를 써야지 머리 안 쓰면 바보 돼요. 자꾸 머리를 써야 돼. 이리 저리  어떻게 한다 하는 그걸 이제 장로님에게 맡기고 권사님들에게 맡기고 다 맡길  터이니까 나중에 우사를 하련지 잘 하련지 모르겠어. 그런 걸 좀 생각해서  책임지고 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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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기독교는 하나님 독재주의/ 창세기 12장 1절-9절/ 881023주전 선지자 2015.10.26
» 기독교는 초월의 종교/ 빌립보서 4장 4절-7절/ 871214월새 선지자 2015.10.26
588 기독교는 준비의 도/ 마태복음 25장 8절-13절/ 88061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6
587 기독교는 전투의 도/ 마태복음 4장 1절-11절/ 860804월밤집회 선지자 2015.10.26
586 기독교는 예비의 도/ 마태복음 25장 7절-13절/ 840622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6
585 기독교는 실행의 도/ 히브리서 12장 14절/ 880422금새 선지자 2015.10.26
584 기독교는 논리의 종교/ 고린도전서 1장 :37절-44절/ 880617금새 선지자 2015.10.26
583 기독교 신비한 권능성/ 히브리서 2장 3절-4절/ 870827목새 선지자 2015.10.26
582 기독교 미신주의/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7금새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