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유래, 신앙의 뿌리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26일 주전

 

본문 : 엡1:3-12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남녀 노소를 물론 하고 어느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련지 우리의 생명의 끝나는 시간은 다 우리들이  모릅니다.

 내 생명이 끝나게 되든지 어떤 형제의 생명이 끝나게 된다고 하면 '내가 모든  형제에게 대해서 어떤 말을 좀 더 전했을 걸' 하는, '그때에 어떤 말씀을 좀 더  전했더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겠나? 또 다른 형제가 세상을 떠날 때에 그때  그가 세상을 떠나서 주님 앞에 가게 될 때에 '내가 그에게 가르친 것이 어떤  것을 좀 정확히 명확히 가르쳤더라면 좋을 뻔했다' 하는 그것을 좀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다가 다른 말씀을 둬 두고, 모든 교인들이 이 말씀은 그저 늘  들은 말씀이요 또 여러분들이 항상 생각하고 기억하고 늘 이 진리대로 사는  대로는 살고 있는 줄 압니다. 그래도 아무래도 이 말씀을 한번 더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의 필요성이 느껴져서 오늘 또 이 말씀을 증거하려고  작정을 했었습니다. 우리의 이 구원은 다른 이종교에는 없는 구원입니다. 다른  이종교는 다 만물이 있은 지 후에 된 것으로 모든 존재가 그 종교의 원인이  됩니다. 사람들이 만든 그 종교에 상고부를 신화로 다 거짓말로-신화라 말은  거짓말이라 말입니다.-거짓말로 만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해 놨지마는 그것은  조부라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신화이기 때문에 그 신화는 권위성 없는  것으로저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 깨달을 수가 있게 됐습니다.

 왜? 그들은 조부라운 자기 생각대로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창설자가 해 놓은  사상이나 학문이나 도덕이나 종교나 어떤 철학이나 그런 것은 그 제자가 된 그  후배들이 세대가 점점 진화돼 가는 데 따라서 자기네들의 그 사상의 모든  구비성도 점점 진화를 따라서 진화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종교 쳐 놓고  일관된 지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이종교의 모든 경전들을 다 열람은 하지는  안했지마는 가끔 몇 가지 뜨문뜨문 이래 봐도 그들은 인생관도 일관되어 있지  안하고, 사람의 생사관도 일관되어 있지 안하고, 또 인간들의 성패나 그 화복에  대해서도 일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치 이 세상이 시대를 따라서 변해지고 그  시대 그 시대 권력가에게 따라서 변해지는 거와 꼭 같은 세상이요 세상을 하나  괴벽스러운 이름을 붙여 놓은 것뿐이지 그 질이 다른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인간들에게 발표한 외형은 어째 보면  진화되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나 속에 그 참은 조금도 상고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를 않습니다.

 이종교는 여러 종교가 합해 가지고 모두 다 점점 진화 종교 개종 이래 가지고  여러 종교가 합해서 합해질 때는 서로 서로 많은 시비도 있었고 타협도 하고  이래 가지고 거게서 모든 것을 협의해 가지고 이렇게 합종해 나가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가 내지 안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의 성경 기자들은 각각 다른 그 민족들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시대, 다른 처지, 다른 입장에서 다 기록한 성경들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벌써 성신의 사람 칠십 인들이 모여  가지고 정경 가경을 이것을 선택해 가지고 구약 성경은 그때에 다 완제가  됐습니다. 그 성경을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성경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거기에 획 하나도 틀림없는 정확무오라는 것을 예수님이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그 각 성경은 이렇게 좀전 말한 것과같이 각양의 사람이 각양  입장, 처지, 시대에서 기록한 것이지마는 거기에 모든 존재관이 꼭 같습니다.

존재관도 같고, 또 그 존재의 목적관도 같고, 또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된다  하는 것도 꼭 같습니다.

 이것은 한 하나님께서 영감시켜서 사람들을 통해서 기록한 한 분의 사상이요,  한 분의 뜻이요, 한 분의 주장이기 때문에 이게 하나됐다는 것이 성경에  대해서는 단일성의 큰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그렇게 천하에 이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  없다, 진실한 사람들이 없다 했지마는 그들이 가나안을 가지 못하고 정죄받은  것은 뚜렷이 나타나기를 "너희가 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했는고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받는다 막바로 그것이 나를 거역한 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금요일날 밤에 그 말씀을 봉독하고 각처에서 교역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아서 이 큰 문제인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받게 된 그 죄악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노하셔서 "너희들이  나를 거역허기 때문에 가나안에 가지 못한다" 첫째로 아론을 호르산으로  올라오라 해서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아론의 의복을 벗겨서 그 아들에게 입히고  아론은 그 산만당에서 죽어서 장사했습니다.

 거게 보면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말라 할 때에 그저 지팡이 가지고  반석을 쳐서 물 내 먹인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 이랬습니다.

그걸 가지고 지금 한 번 치면 되는 건데 두 번 친 것이 그 연고다 이래 가지고  많은 문제들이 있으나 이것도 실상은 난해절 중에 난해절입니다.

 기독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참과 거짓, 또 옳고 그른 것, 또 존재도 창조주와  피조물, 이 모든 각양의, 각종의 것들이 각층의 것들이 가득 쌓여 있는 잡것이  가득이 쌓여 있는 세상입니다. 비슷비슷해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만치  사이비한 것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여게서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네가 기어코라도 구별해서 가려내 가지고 그대로  살아라 하는 것이 우리 성도에게는 지상 명령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거룩을 잊어버렸습니다. 거룩을 잊어버린  것은 사랑의 해적이 마귀에게 침노를 받아 가지고 잘못돼서 이 거룩이 그만  흐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에는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했는데 그만 사랑의 해석을 잘못하고 화평의 해석을  잘못해서 이 사랑과 화평을 마귀적으로 해석하고, 다시 말하면 세상의 인간  지식적으로 해석하는 데에서 거룩은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오늘은 믿는 사람들이 이 구별성에, 이 구별성. 구별하는 이 구별성  이게 참 옳은 지혜요 지식인데 이 구별성을 가꿔야 될 줄도 몰랐고 또 가꿀라고  애쓰는 사람도 없고, 이 구별성 거룩이라는 것이 깨지든지 말든지 아무런  거룩이라는 이 구별성을 가치로 인정을 하지를 아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은 종교 통일이라는 것이 점점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다  처음에 갈라질 때는, 물론 거게는 지방성도 있었고 또 인간들의 그 개성들도  있어서 잘못된 것으로서 이렇게 교회들이 나누어진 것도 있지마는 그래도 대개는  교리와 신조로 나눠졌습니다. 성경을 보고 깨달음이 서로 달라서 나눠진 것인데  그것을 일종의 잘못된 과오로 생각을 다 하고 지금은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또 통일을 말해야 신사적이고, 원만한 사람이고, 여유 있는 사람이지  통일하려고 하는 것을 거기서 이러니 저러니 구별을 해서 쪼갤라고 하면 그  사람은 아주 독선주의자의 정죄를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조부라운 한 불목의  사람으로 이렇게 정죄를 받는 것이 오늘입니다.

 물론 화합이 좋습니다. 화합이 좋기는 좋지마는 화합보다 더 귀한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를 두고 화합해야 되지 더 귀한 진리를 버리고 화합하면 그  화합은 다 죽고 망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과거에는 수많은 성도들이 굉장히 순교를 많이 당했습니다. 순교는  로마에 있는 네로 황제 때에 그 순교 당하는 수도 많지마는 천주교로 타락한 이  천주교 타락 세력 앞에서 성경대로 개혁을 하는 그 개혁에 순교자가 제일 많이  났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성령의 사람들이 생명을 바쳐서 개혁해 놓은 것을 오늘에는  장난삼아 놀기삼아 하나의 취미적으로 저희들의 포팔성이 있고 아량성이 있고,  또 관용성이 있다는 이 명예의 이런 유혹에 빠져 가지고 지금은 천주교와  개혁교에 대해서 구별은 차차 차차 없어집니다.

 이것을 지금 말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고집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여게 가끔 그 하종택 목사님이라고 그분이 여기 강단에 내가 세우는 것은 과거에  고신에 같이 있다가 나는 쫓겨나왔고 그분은, 그 분도 쫓겨나온 그런 성격을  당했었습니다. 그분을 강단에 세우는 것은 천주교와 개혁교가 합동 번역 하는  그것이 불가타 하는 그것을 그 사람 혼자 주장을 해 가지고 없는 재산을 들여서  멧시지를 만들어 가지고 많이 투쟁했지마는 마지막에 그것은 하나의 그 충고의  말을 외치기만 했지 성과는 거두지를 못했습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의 선지들이  말하는 그대로 된 것은 아닙니다. 말 하는 대로 된 것은 복받는 때요 말하는  그것을 무시해 버리는 것은 저주와 사망을 받는 때입니다. 그러기에 그 시대  보면 그 말을 잘 청종하는 시대는 이스라엘이 흥했고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하는  그런 시대는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되는 그런 때였습니다.

 이제는 그보다도, 기독교만 통일할 게 아니라 종교도 다 통일하자. 종교는 가는  길이 다르지, 출발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달라서 이 길로 가자 저 길로 가자 이래  하지마는 마지막에 만나는 종착지는 하나다. 그러기 때문에 뭐 그럴 것 뭐 있나?  종교는 다 하나로 통일을 하자.' 하는 그것이 문선명씨가 주장하고 있는  통일파입니다. 그는 주간 종교라는 신문을 가지고 불교나 기독교나 무슨 교든지  종교는 통일하자 하는 그 운동을 암암리에서 하다가 지금은 노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오늘 참 이 기독교 목사로서 '기독교와 이종교의 다른 게 뭐이냐?'  하면 기껏 말해 봐야 이름 다른 것 말밖에 못 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고 그는  불교고 불교와 기독교와 다르다' 이름, 그 이름이야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이름이  있지마는 그 이름은, 이름이 무슨 다른 이름이 됐다 할지라도, 뭐 감리교는  하나님이 감리교로 했습니까? 장로교는 장로교라고 했습니까? 또 성결교는  성결교라고 했습니까? 그런것 이름 준 것 아니지마는 사람이 지었지마는 안에  교리와 신조가 성경적이면 그는 진리요 보수파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름만 달랐지 이종교와 기독교의 정의를 모르고 이러니까, 또 그  사람들이 말 잘하지, 학벌도 높으지, 또 지혜도 있지, 배짱도 있지,  용감스럽기도 하지, 혈기도 있지, 주먹으로 때려 몽쳐도 다 거게 꺾어지고  잡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우주가,  영계와 이 우주가 둘이 한테 딱 부딪친다 해서 그 안에 갈고 갈고 갈아도 죽지  않습니다. 거기에 녹아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세상과 마귀가 참 하나님의 사람은 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이지마는  일반적은 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가속도로 지금 구별성이 자꾸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도 서로 화합하려고 하고 있는데 종교와  종교끼리 화합 못 할 게 뭐 있나? 또 기독교와 기독교끼리 뭐 화합 못 할 게 뭐  있나? 이거는 다 양협한 사람이라, 다 좁은 사람들이라, 선이 가는 사람들이라,  다 소인들이라, 관용성이 없고 포괄성이 없는 사람들이라.'  이러기 때문에 모두 영웅심을 가지고 교파를 망라해서 초교파 초교파 뭐 전부는  요때는 초교파 운동입니다. 그 교파가 처음에 나눠질 때는 다 그래도 수없는  역사가 있어 가지고 나누어졌는데 그런 세상이 되기 때문에,  인제 이리 되면은 뭐 '믿는다고 하필, 형편에 따라서 저 사람은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면은 또 형편에 따라서 이 회사에서는 월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또  어떤 회사는 형편에 따라서 수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헝편에 따라서 주일 지킬  일이지 주일이라고 그 하루를 가지고 고집할 게 뭐 있겠나?' 하는 이것이  산업전도입니다. 산업전도회라고 선교라고 굉장합니다.

 이러니까 참 물건이 시장에 많지 못하면 값은 올라갑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 교회라는 것이 구별성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님이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 뭐이냐? 거룩입니다. 이 거룩을 하나님이 요구하고  계십니다.

 천인 만인이 콩이라고 해도 내가 거게 대해서 내대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영감받아 가지고 이것이 콩이면 '콩이라' 팥이면 '팥이라' 했지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좋다 한다고 따라가서 안  되고 많은 사람이 나쁘다 해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은 온 세상이  사대주의입니다. 많은 데 따라가는 주의요.

 이래서 아무래도 이것을 간단하게나마 한번 더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필요성을 느껴서 오늘 증거합니다. 이 해석은 하려고 하면 뭐 시간이 며칠 몇  달이 걸리런지 모르나 그저 간단하게 제목만 들어서 말을 합니다.

 기독교의 그 유래, 기독교가 어떻게 내려온 것이 기독교인가 하는 것을 그  시발부터 증거하려고 합니다. 시발은 어데서 시발했느냐? 자존자에서부터 시발된  것입니다. 자존자. 자존자라 말은 그분 혼자만 스스로 계셨습니다. 누가 지어저  생긴 것도 아니고 무엇으로 인해서 뭐 종합돼 된 것도 아니고 영원 전, 영원  전이라는 것은 그때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시작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영왼  전이라 인간의 말로는 그렇게 표시를 한 것입니다.

 영원 전 홀로 계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l4절에 보면 거게 흘로 계셨다는  말씀을 두 번이나 그 한 절에 말씀했습니다. 다른 데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무엇으로 인해서 있는 게 아니고 혼자 영원 전에 계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시발입니다.

 영원 전이라 말은 시작한 그 시작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시작 없는 시간 그  시간이라는 범위 내에 있지 아니하고 시간을 벗어나서 그분이 있은 지 후 창조  후에 시간이라 하는 것은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원 전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 그분 하나만이 홀로 영원 전에  계셨지 다른 것은 마귀나 좋은 것이나 악한 것이나 나쁜 것이나 뭐 큰 거나 작은  거나 모든 것은 스스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원인이 있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누구냐? 그분이 원인 이십니다.

 그러면 그분이 원인이라는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악령들은 이것을  삐뚤트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 영원 전 그분이 계셨다.' 요것을 말하다가 안  되니까 그 다음에는 말하기를 '그분이 영원 전 계셨고 모든 존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요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은  그분에게서 홀러나왔다' 유출설이라 하는 큰 이단설이 있습니다.

 유출설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분자, 하나님의 세포가 내려와 가지고  화성도 되고, 뭐 항성도 되고, 유성도 위성도 되고, 우주도 영계도 됐다.'  그렇게 유출설이 있으나 그것도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정죄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원인이 있어서 존재하지마는 그 원인은 영원 자존자 그분이  창조하셔 가지고 그분에게 지음받아 가지고 됐기 때문에 그분이 원인이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그분이 원인인데 그 분은 영원 자존자시다 하는  것이 기독교의 시발입니다.

 이는 기독교에는 기독교의 교주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창설자라고 할 수 있는 그분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모세가 가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에게 가서 뭐라고 소개를 해야 되겠습니까?' '가거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거 해라. 나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자가 아니고 나 혼자  스스로 있는 자다.' 자존하신 것을 말씀했습니다.

 다른 모든 이종교는 그런 말을 한 경전이 없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하는 그 말은 종교 아니고 요새 유사, 사이비한 종교, 유사 종교, 순 사기 협잡  양심 하나도 없는 도적 종교,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거 무식한 자요 또  양심이 다 부패한 자들이기 때문에 없는 말도 창작 창설해 가지고 별별 말들을  해 놨지마는 그래도 몇십만 명이라도 따를 수 있는 그런 종교라고 하면. 종교  창설자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하는 자는 없습니다. 내가 우주와 영계를  창조했다 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 밑에 따르는 자들이 자꾸 만들어서  그렇게 했지 그렇게 말한 종교 창설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내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었다 지은 것이 내가 짓지 안한 짓은 하나도 없다. 세상도 내가 지었다.

우주와 영계는 내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교는 자존자로 말미암아 시작된 이 도, 길이라 말이오.

사람이 살아가는 길, 도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거룩을 가져야 되는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는 이 거룩, 우리 이름을 가리켜서 지룩한 무리라 해서  성도라 이러는데 우리가 첫째 가질 거룩은 어떤 것이냐? 일호가, 일호가  '자존자와 피조물이 있다. 모든 존재는 자존자가 한 분 있고 또 모든 것들은 다  피조물들이다.' 요것을 구별하는 것이 기독교의 일호의 거룩입니다. 일호의  거룩.

 그러나 오늘의 강단에서는 그 말은 아주 유치한 말 갈고, 너무 멋없는 말 같고  아무 맛이 없는 말 같아서 뭐 '자존자라' 하는 것을 신학을 간 사람 정통 신학을  다닌 사람들은 알기는 알지마는 거기 대해서 실감적으로 느끼는 느낌이 없어.

 자존자라는 그것은 제일 크신 분이라 말이오. 원인이 없는 분이라 말이오.

그분을 새기고 새기고 알라고 하는 데에는 천하에 모든, 천상 천하에 모든  존재가 그분 한 분에게서부터 생겨진 것인데 얼마나 크십니까?  이렇지마는 그분의 크심은 말해야 재미가 없고 이 피조물 중에 어떤 똑똑한 자,  어떤 유명한 자, 원자는 말하고 전자는 말하고 수소탄은 말하고 무슨 핵은  말하면 사람들이 어북 가치 있는 걸로 힘있는 걸로 알지마는 자존자라 말하면  그의 존재의 가치를 우리가 알지야 못하지마는 그분에 대한 것은 전연히  몰상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일생 동안 탄식하기를 '누가 이 자존자에 대해서 두려워 대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느냐?' 선지 사도들도 어림도 없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두려우신  분이며 얼마나 크신 분이며 얼마나 능하신 분이며 얼마나 정확하신 분이며  그분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다 아는 자가 없고,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자기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으나 그분의 심판 앞에 가 설 것이기  때문에 항상 죽는 날까지 무거운 짐진 것과같이 마음은 꽉 눌려 가지고 있는 그  상태를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우리의 아버지되신,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아버지요 아버지가 주님이오. 성령이 주님이요 성령이  우리 아버지요 아버지가 성령님이오.

 성부 성자 성령은 그 하시는 사역의 위치를 따라서 발표할 때에 우리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했지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 해도 성부 성자  성령 다 부른 것이고, '성령님' 해도 성부 성자 성령 다 부른 것이고 '아버지'  해도 성부 성자 성령을 다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예수님의 신성은 '영존하신 아버지라' 그렇게 이사야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슨 공부를 하든지 자기가 참 정치 운동을 해서 제일 그  지방에서, 그 세계에서 제일 큰 정권을 잡았을지라도 저는 언제든지 '자존자가  계신다. 그분이 지은 모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지으신 그분이 계신다.' 그분을  알고,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따라 못 맞춰도 맞추려고 애를 쓰고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다 성패 생사, 건설과 파괴가 이루어진다 하는 요것을 제가  알면 지식 중에 제일 큰 지식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지식을 모르는 자는 천하의 인간의 대가리에서 내놓은 그 모든  지식을 다 안다 할지라도 그는 큰 지식은 몰랐기 때문에 무식 중에 무식이기  때문에 그 지식 모르고 뿌리 없고 머리 없는 지식을 아니까 그 지식은  갈팡질팡으로서 벌로 날뛰기 때문에 그 결과는 전부 사망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내놓은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는 그 결과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노아 때에도 노아 홍수로써 끝을 맺어서 다 죽는 그 모든  결과밖에는 맺지 못하는 지식이라 하는 것이 이제 결론이 됐지마는 또 지금도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저 조는 분! 졸면 안 돼. 살을 찝어. 멍이 새파랗게  들도록. 그래 안 하면 안 돼. 이 죽고 사는 게 여기 있는데.

 지금도 예수님의 재림이 오시면 인간 지식으로 지끌거건 것은 전부 그것은,  그것을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는 것은 잘 이용을 당해서, 이용을  당해서 인간 지식 그것도 뒤에 가서 다 살아나 가지고 만물을 새롭게 할 때에  그것도 귀한 위치에 올라오지마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지배를 받고 이용을  당하지 안한 것은 지식도 다 죽고 만물도 다 죽습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하나님에게 복종한 그것만 남구고 그 나머지기는 다  불로 완전히 소멸해 버립니다. 이것이 이종교에는 없습니다. '내가 모든 걸 불로  사르겠다. 어떻게 하겠다.' 한 도가 없고 또'내가 이렇게 홍수로 멸하겠다'고  멸한 그런 큰 역사를 한 이종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얼마 전에 저 꽃마을에 가 보니까 거게 그저 차가 뭐 자가용 택시,  버스, 쉴새 없이 마구 그 안에 절에 연락부조로 자꾸 들어갑디다. 그날 아마  내가 보는 대로도 들어간 차가 여러 수백 대는 몰라도 수십 대는 됩니다. 수십  대는 넘습니다, 잠깐 내가 봐도. 이랬는데 그들이 몰라서, 이분이 지으신 것  이분의 것을 공짜로 먹고 영광은 어만 데다 돌립니다.

 제가 거게서 앉아서 이북과 이남에 대해서 평가를 해 봤습니다. 자, 이북의  불신자와 이남의 불신자가 중량을 비교하면은 어찌 되느냐? 이북에는 무신론을  말하고 이남에는 다신론을 말하고 범신론을 말해 가지고 영광을 그 만든  범신에게다 다 돌리고 그들은 영광을 자기 인간들에게와 모든 물질에 돌려서  유물주의 무신론주의를 말하고 있으니까 그 평가로 보면은 어찌 되느냐?  그걸 제가 볼 때에 하나님의 진노는 어리석으니까 '우리 힘으로 산다 하는 그  복수는 하나님께서, 지옥의 복수입니다. 지옥은 어떤 거냐? 저거 힘으로 산다는  것은 "너거 힘으로 살아봐라" 내것 가지고 산다는 거는 '너거 거 가지고  살아봐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도 없이 다 없애고 하나님이 거게 계시지 안하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인간끼리만 있고 인간 저거끼리만 있고 하나님의 지으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지옥입니다.

 이러니까 거게는 죽지도 못하고 구더기도 죽지 안하는 고통만 영윈히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필요 없이 인간끼리 살 수 있다, 하나님의  것 가지고 나는 안 산다 내것 가지고 산다 하는 그 주장의 복수의 하나님이  그와같이 하시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이러니까 이북과 이남이 뭐 비판하면 같은데 오히려 하나님의 그 노는 어떤  자가 나서 가지고 '내가 너거 다 복 주고 생사화복을 내가 주고 내가 하고 있다'  하는 그자가 있으니까 그자가 있는 곳 하나님의 진노가 더 크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제가 평가해 봤고,  또 그 다음으로는 그들은 이기주의로 행동하되 사람의 목숨을 아끼지 안하고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살생에 대해서 조금도 가림없이 이렇게  사람을 그렇게 아주 애매하게 살인한 살인수가 많으니 이남에다 비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이북에 더 많겠다 이걸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을 하고 그러면 믿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겠느냐? 거게는 하나님을 안  믿는 곳이요 무신론의 곳이요 그래도 이남은 하나님을 믿는 곳이니까 성경을  보면은 '하나님을 노엽게 한 자가 누구뇨?' 어두운 데서 모르고 하는 자에  대헤서는 하나님이 노여워하지 안하지마는 이렇게 가르쳐서 세밀히 가르쳐  놨는데 '너희들이 하나님 배반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 천하에서 제일 노엽게  격노케 하는 자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하는 자가 누구뇨? 이스라엘이 아니고  누구뇨? 하는 것을 성경에 말한 말씀을 의거해서 보면 이거 이남이 하나님 앞에  매맞을 그 하나님의 몽둥이가 이남에 더 급하다 이래 평가해 봤고,  그러나 철이 없고 어린 단순한 깨끗한 그 심령으로써 그런 아무런 지식 없이  그저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복받으려고 하고 영생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니까 이 이남에 있는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해서 평가하면 어찌 되겠느냐? 평가하면 그래도 하나님의 긍휼은 이남에  있겠다. 이북에 있지 않겠다. 그러면 장년반으로서는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하고  이 유치반으로 말하면 유치반이나 혹 중간반도 들어갈란지 이로 말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오겠으니까 하나님이 만일 심판으로써 전쟁이니 뭐이 일으킨다고 무슨  하나님의 큰 징계가 온다고 하면은 어떻게 하겠느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온  나이 많은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전멸을 시켜 버렸고 하다 하다 안 돼서 암만  해도 너는 훈련 시켜야 안 되니까 전멸을 시켜 버렸고 거게서 낳은 어린 것들만  그렇게 가나안으로 가게 한 것과같이 여게서 하나님께서 숙청할 것은 나이 많은  나와 같은 자들이 아닌가 하는 그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평가의 결론이  돼졌습니다.

 지금도 자꾸 졸고 있어. 자는 거라. 뭐 하다가 자는지? 무슨 재미에 붙어서 다  정력 진액 다 뽑아버리고 자는지? 참.

 이렇게 모두 구별성이 없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은 모두 영광을 어만 데  돌립니다. 하나님이 실컷 만들어 내놨고 먹이기 기르고 입히고 보호하고 이 우리  입에도 직사의 병균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뭐 지금 계속 여기 붙어 가지고  있을 것이오. 붙어 가지고 있지마는 그분이 다 제거해서 이래서 살고 있는데  전부 영광은 딴데로 돌립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과학으로 산다' 그러니까, 과학으로 산다 하니까 하나님이  노여워해서 인간이 모르는 병균을 하나님 혼자 딱 가둬 놓고 있다가 뭐 해를  못하도록 가둬 놓고 있다가 하도 큰 장담해 쌓아니까 얘 이놈들 하고 이제 병균  하나 탁 내놓으니까 또 병은 심해지지. 또 자긍해 쌓아니까 또 하나 또  심해지지.

 이래 놓으니까 제가 여기 저녁으로 다 다른 데 불 껐을 때에 가만히 나와서  이래 주변을 돌아볼 때에 저 대학병원에-나는 다른 병원- 잘 모르기  때문에-대학병원에 그 병원에 칸칸이 꺼진 데가 하나 없이 불이 꽉 다 쓰여  가지고 있어. 그 사람들 뭐 입원자 없는데 그 불 켜놓지 안하요. 자꾸 환자는  늘어나갑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똑똑히 알아서, 이것이 다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한 그 결과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분은 자존자시요 영원 전에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떤 분이시냐? 완전자십니다. 그분은 완전자요 모든 것이  완전하요. 우리는 그분의 완전을 측량하지 못하지마는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완전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분은 완전자요. 완전자가 피조물에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은 완전자시오. 그분은 영원 불변자십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하는 영원 불변자시요 그분은 단일성의 자이십니다. 단일성이라 그말은 본성은  하나인데 이 본성이 활동을 할 때에는 천 가지로 만 가지로 활동을 하지마는 그  활동은 당신의 완전이라는, 영원 불변의 완전이라는 자존하심, 그 하나 가지고  모든 걸 역사하지 그 무슨 종류가 따로 있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하시는 것은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그 전부는 다 그분  혼자 하시는 것이요 그 전부는 다 하나에서 나왔고 하나의 본질과 본성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분이, 그러면 자존자시요 완전자시요 영원 불변자시요 그분은  단일성의, 단성, 단성, 본질과 본성이 하나라. 단성, 그것을 단일성, 하나의  본질과 본성을 가지신 분인데 그분이 역사하실 때에는 지식으로 역사했어, 지식.

 그분에게는 지식이 있고 모든 인간들이 가진 지식은 그 지식에서 나온 지식에서  지음을 받은 것들이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지식이라는 그 지식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식으로 지어 놓은 그 지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신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오.

 그러나 그것이 불한당 마귀란 놈이 제가 낸 것같이 해 가지고 그 지식의 원인을  딱 끊어버려 가지고 모르게 해서 인간 제가 스스로 아는 것처럼, 또 그 지식의  목적의 이용 가치를 몰라서 결국은 조물주를 배반하는 걸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간 지식을 가리켜서 마귀 지식이라 죽은 지식이라, 죽이는 지식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분은 모든 것을 당신의 중심으로 하십니다. 당신의 중심 아무  중심으로도 안 하요. 당신 중심으로. 그분의, 그렇기 때문에 그 분에게는 당신  중심인 선의 성품이 있습니다. 당신 중심. 아무것이라도,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신  것도 하나님 당신의 중심이요, 십자가에 못박힌 것도 당신의 중심이요, 우리를  대속한 것도 당신의 중심이요, 인간을 타락시킨 것도 당신의 중심이요, 구속한  것도 당신의 중심이요 유황불 구렁텅이에 넣는 것도 당신 중심이요, 하늘나라에  보내는 것도 당신 중심이오. 당신 중심이라. 당신 중심, 당신 위주지 이것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왜? 그분이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이 양보하면은 완전이 죽습니다. 완전이  양보하면 완전을 떠난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당신  중심을 양보하는 것은 피조물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분의 단일성이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나타나요. 또 사랑성, 또 거룩성, 진실성, 주권성이라 말은 당신 혼자 모든 것을  주권하시지 아무데도 양보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 천년 만년 억만년 그것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걸 영원이라  했습니다. 영원 전, 영원 후, 영원이라 했는데 영원을 예정하신 그 예정이 당신  혼자의 의지로 예정했습니다. 다른 사람 가담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정이  하나님 한 분으로서지 아무것도 거기에 가담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안 시킵니다.

 그러기에 주권 의지로, 당신이 홀로 주장하는 주권 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그것을 홀로의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 착착 이렇게 창조해  나가는데 지옥도 그분이 창조했고 천국도 그분이 창조했고, 타락도 그분이  창조했고 회개도 그분이 창조했고, 이것은 뭐할라고? 이래서 하나님이 누구시라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것 이렇게 저렇게 수억억만으로서  거슬린 이것은, '이렇게 거슬린 것은 이렇게 망한다 저래 거슬린 것은 저렇게  망한다' 하나님을 거슬려서 망하는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또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따른, 그분을 따르는 그 믿음으로 된  것은 "요 믿음으로 됐기 때문에 요것은 요렇게 살아났고 요렇게 행복됐고,  요렇게 영광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피조물은 실 수 있고, 행복될 수 있고,  영존할 수 있고, 영광될 수 있고, 평강할 수가 있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이 하나님께서 자존하신 이런 속성을 가지셨으나 이 속성은 하나의  속성, 한 속성, 그러면 한 속성이 역사할 때는, 지금 제가 말한 것은 여덟  가지를 말했지마는 성경에 말하면 뭐 열도 백도 넘습니다 그렇게 하나마 그  들어가보면은 내나 하나님의, 하나님의 그 자존하심 자존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그 완전에서 다 나왔습니다. 영원 불변성 그 영원성에서 나왔습니다. 그  단일성에서 나왔다 그거요.

 이분이, 이러한 분이 우리 아버지 되셨는데 아버지가 되기 전에 이분이 혼자  계시면서 당신이 목적을 하나 정했습니다. 당신이 '내가 무엇을 하나 하겠다'  하는 목적, 그러면 그 목적도 완전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정하신 것에 대해서 보수 진영에서 여러가지로 말합니다. '그  목적은, 그는 모든 것을 지어 놓고 난 다음에 거게 대해서 어떻게 처리하시겠다'  하는 그 목적을 모든 존재가 있은 지 후 목적을 정했다. 모든 존재가 있다가서  실패와 낭패가 되고 난 다음에 목적을 정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 하나 예를  들면은 택했다, 택한 자들이라 하지 않느냐? 택한 것은 많은 것 가운데에 택해야  되지 많은 것이 없는데 거기서 택할 수가 있느냐?' 요런 논리를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가 모든 것을 있기 전에 당신이 하나  목적을 정했어. 그 목적 정한 것은 내나 영원을 예정하신 그 지혜가 그 목적을  정했기 때문에 그 목적은 영원성을 가졌고, 완전자가 목적을 정했기 때문에 그  목적은 다 완전성을 가진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정해 놨는데 그 목적을 말씀하기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들어서 하나님은  머리가 되고-이제 활동적으로 말합니다, 활동적으로-하나님은 머리가 되고 이  목적을 정한 이 목적 이것을 완성시켜 가지고 이 목적은 하나님의 몸이 되고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은 이 몸에, 몸이  얹혀 가지고- 있는 몸의 발등상이 되도록 이렇게 하시겠다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머리요 목적은 그것은 교회인데 교회는 몸이라 하면 하나님과  우리와 본체적으로 일체된다 말은 아니고 언제나 그는 창조주요 자존자요 우리는  피조물이요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생긴 원인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의 완전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해서  활동적으로는 활동적으로는 당신은 머리라고 비하면 우리는 몸이라고 할 만치  당신의 모든 구상하신 모든 것을 인간을 통해서 다 성취하도록, 교회를 통해서  성취해서 교회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무궁하심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 가지고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 교회의 역사라  그렇게 에베소서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 안에서 나게 한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존재가 있은 게 아니고 목적 안에서 이 목적 안에서 지음 받은 자가 있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이용되기 위해서 지음받은 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목적 안에 지음받은 자를 가리켜서 택함을 입은 자라 이렇게  성경에 말했고 목적 밖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이용되기 위해서 지음받은  것들을 가리켜서 불택자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 가운데는 이 목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이용이 되는데  일차적으로, 일차적으로 제일 가깝게 이용되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꼭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것과 같은 꼭 같은, 영과 육이 있는 꼭 같은 사람으로서  지음받은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건설하는 데에 제일 일차적으로 유효하게  이용이 되어지고, 그 다음에 이차적으로 유효하게 이용되는 것은 그 생물들, 또  그 다음에는 모든 무생물들, 그 다음에는 모든 자연들, 차차 멀어져 이 우주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이 충만한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이것들을 지은 것이기 때문에, 이 지음받은 이것들은 하나님이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그 예정 순서대로 이 지음 받은 것들이 있다가  없어지고, 또 있던 것이 둘이 합해 가지고 또 하나되어지고, 서이 합해 가지고  하나되어지고 이 셋이 이렇게 저렇게 개조되어지는, 개조되어지는 재창조,  재창조되어지는 역사로써, 재창조가 되어지는 역사로써 하나님의 목적 달성인 이  교회 달성 위해서 이용이 되지마는 이용되는 것이나 재창조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영원전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 그대로 이루어 나가지 그 예정에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혼자의 주권적 능력으로  이것을 이루고 계신다 하는 것을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움직임의 사람처럼 움직임이나,  자연의 움직인이나, 시대의 움직임이나 뭐 피조물의 어떤 움직임이, 해가 돋고  기울어지는 것이나, 바람이 부는 것이나, 흉년 풍년 드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원 전 예정 그대로 그 순서대로 해 나간다 요걸 우리가  믿어야 되고.

 그러면 이렇게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누가 이 일을 하느냐? 주권적 능력  가지고 이 일을 성취하는데 성취할 때는 사람을 통해서 하는 것도 있고, 원수를  통해서 하는 것도 있고, 짐승을 통해서 하는 것도 있고, 자연을 통해서 하는  것도 있고 여러가지를 통해서 이 일을 하니 사람들은 통해서 하는 그것밖에  모르니까 '아, 이거는 저 사람이 했습니다.'  그 공로를 그에게 또 돌리는 것도 있고, 또 그를 두려워하는 것도 있고,  원망하는 것도 있고, 시비하는 것도 있지마는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주권 의지의  예정대로 되는 그 예정을 주권적 능력으로 성취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당신 혼자의 예정과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조부라운 생각을 가지고 이해를 못 하고 '이거는 좋다 나쁘다' 그래 하는 것이  삼계명을 어기는 죄가 된다.

 또 네게 당면한 이런 것 저런 것 '이거는 불리하다 유리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네가 하나 조부라운 네 생각에  따라서 하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잘못됨이 있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거게서, 너는 모르지마는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주셨고 너에게  양심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영감의 인도가 있기 때문에 그 영감대로 네가 하고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고 영감을 따르고, 처음에는 진리 따르고 안에 가서는  세부한 데는 세밀한데 가 가지고는 영감을 따라서 이래 하는 것이 믿음으로 하는  것인데 너는 어데서나 믿음을 지킬 것뿐이지 네가 편견을 가지고 그렇게 천박한  지식을 가지고 네가 조부라운 범위에서 생각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해 가지고  원망이나 불평이나 그런 것을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야고보서 5장에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창조한 것을 당신이 혼자 보존하십니다. 이것은 며칠 보존했다가  없어지고 또 요거는 몇 천 년을 보존하고 요거는 또 몇 백 년을 보존하고 이  보존하는 것도 당신 혼자 보존하십니다. 누가 다른 이가 보존 안 하요, 당신  혼자 보존하시오.

 그런고로 우리는 이걸 믿어야 합니다. 내가 볼 때에 내가 제일 싫어서 '아,  그거는 없어버렸으면 좋겠다' 없어버리면 좋겠다 하는 그거는 경거의 속단의  행위라서 심판받을 원인을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보기 싫은 것이라도 '아, 이것을 이렇게 지으신 분이 누구시며,  이것을 보존하신 분이 누구시며, 내게 와서 당면하도록 이렇게 순서를 조직한,  모든 이거 프로그램을 조직해 가지고 이렇게 당면하게 하신 이는 누구시냐?'  그분이십니다.

 그런고로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내게 필요 없는 것은 당치  않게 하시니 나는 이것을 당하지 안하면 깨닫지 못할 것 있고, 알지 못할 것이  있고, 연단되지 못할 것이 있고 갖추지 못할 것 있고, 내게 또 제거해야 될  치료하지 못할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 나에게 내가 모르는 그 이상의 각양의  나에게 보충, 치료, 연단, 시험, 연성 또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것이라.'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면서 어데서든지 네가 할 거는 믿음 지킬  것뿐이니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보존도 주님이 혼자 하시고 또 그것을 하나 하나 이렇게 개별적으로 당신이  섭리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라 그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일외에 이것과 저것과  합하고 나뉘고 하는, 이 모두 가게 하고 오게 하고 있게 하고 없게 하고 크게  하고 작아지게 하고 이렇게 하는 그 모든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이 모든  우주에 이루어지는 가운데에 없는 가운데서 새로 지어 나오는, 지어 나오는  창조, 이미 창조된 그 요소 가지고 다시 창조하는 재창조, 창조 재창조 그 외에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셔서 우리 구원에 유익하도 이렇게 섭리를  하시는 그 섭리 중에 예수님께서 도성인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 이렇게  도성인신 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사람되어 .오신 것은 인간의 타락이  있었기 때문에 오신 것 아닙니다. 인간의 타락이 있어서 오신 것 아니오. 인간의  타락이 당신의 영원 전 예정 속에 있는 순서인데 인간의 타락이 예정 속  순서이기 때문에 그 타락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에 타락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오셨습니다. 오셔 가지고, 우리가  지음을 받을 때는 하나님 목적 안에서 지음 받아서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의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 목적 완성이 되는 것이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한 농장이 우리의 농장이오. 그래서 우리를 나타내서 하나님의  기업이라 이래 말했어. 하나님의 기업이라. 하나님의 기쁨이라. 이렇게 우리를,  이 목적하신 안에서 나게 된 우리들을 이 목적된 대르 목적하신 대로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조의 타락을 줬고 거게서 사망을 거치게 됐고, 그때에  마귀가 왔고, 이런 모든 복잡한 사이비한 것을 만들어 가지고 그 가운데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완전한 깨끗한 우리들을 만들어 가지고 이제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완제품이 되면 이것이 완성이 되면, 이렇게 완성된 자들의 수를  기다리라. '흰두루마기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거 입고 네가 기다려라. 왜? 이  수가 차기를 기다리라.' 이 수가 차면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 가지고. 완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지금과 같은 이런 세상이 있는데 잠깐 동안 번식 인종이,  번식 인종이 얼마 동안 있으면서 지금과 같은 번식이 많이 되는데 그러면 또  번식 인종은 뭐할라고 그렇게 많은 번식 인종을 줬느냐! 그 번식 인종들은 구원  얻는 길이 없습니다. 그 번식인종에는 구원을 준다고 하지 안했고 이 구원자를  위해서 이용될 인간들을 얼마 그 종자를, 말하자면 번식 종자를 얼마 남궈  가지고 그것을 가속도로 번식을 시켜 가지고 많은 번식이 됐을 때에 그뒤에  하나님의 심판이 와 가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다 소멸시킨다 했지 그거는  구원 얻는다는 말이 없습니다 언제나 불택자는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려고 지음을 받은 것들입니다.

 그러면 무슨 이용을 하는가? 거게서 보면 천년 동안 왕노릇 한다 그렇게  말했어. 이제 참으로 하나님은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 몸이 돼 가지고 이제  일차적으로 조그만한 온상 시험으로 이 우주 안에서 번식 인종을, 수많은 번식  인종을 이 부활한 자들이 통치를 합니다. 부활한 자들이 통치를 하니까 통치할  때는 아무런 그건 죄악의 역사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없고 아주, 그걸  가리켜 천년 왕국이라 이럽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무저갱에다 가둬 놨던 그 사탄을 잠깐 동안 내놓으니까  이게 와 가지고 부활한 성도는 해하지 못하고 근방에 오지 못하지마는 번식  인종에게는 막 들어가 가지고 지금 미혹을 줍니다 미혹을 주니까 번식 인종들이  이 부활한 택자들의, 택자들로서 거게서  다 그것을 통치하고 있는 자들을 둘러싸서 해하려고 하니까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가지고 그것이 소멸되는 것으로써 비로소 번식 인종은 끝이 나  버렵니다.

 끝이 나 버리고 일차적으토 구속받은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된. 이 성도들을  잠깐 동안 번식 인종을 만들어 가지고 인종 취급, 인종 통치, 인종 관리 이것을  잠깐 연습하게 해 가지고 그 연습이 끝나면 이제 무궁세계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됐다 그말은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이라는 그 뜻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퉁일됐다 말은 제사장 나라로 통일됐다 말 이요, 선지자 나라로  통일됐다 말이요, 왕의 나라로 통일됐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항으로서 통일된 그 나라에 이제 가 가지고 그  나라에서 이 직책을 영원히 하게 되는 것이 무궁세계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하신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속했는가?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대로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는데 십자가에서 대속한 것은 어떤 것을 대신 담당하셨는가?  형을 담당했으니 그 형은 하나님의 율법을 과거에 어긴 것 지금 어긴 것 앞으로  어길 것, 어긴 그 전부를 다 대신 담당하신 것과, 또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살아야 될 것이 제 자율적으로 주관적으로 사욕적으로 자기대로의 움직임으로써  잘못된 그것을 그 형을,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 혼자 날뛰고 제가 자존자처럼  제가 독존자처럼 날뛴 그 형을 담당해서 예수님께서 대형이라는 그 사망의 형을  받으시고, 그러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 율법을 이행을 해야  율법 완전 이행을 해야 율법에 정죄를 받기 안하고, 율법 그 이행자라이  하늘나라 백성이 되기 때문에 율법 이행을 우리 대신 주님이 행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의를 주신 것은,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 순종을 이룬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에게 그 공로를 입혀 준, 것이 칭의의 공로를 입혀 준 것입니다.

 그러고 이제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의 화목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  제일 힘드는 화목의 제물의 역사를 당신이 이루어서 화목 제물이 되어짐으로  하나님이 저주도 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무한하심으로 버려도, 무한하심으로  버려도 당신은 버림을 당하나 아버지에게 대해서 털끝만치도 항거하지 안했고  세포까지도 아버지를 향해서 소망하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만 찬양했기 때문에 이것은 마침내 모든 배신의, 우리가 배신한 이 불목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다 속하고 당신의 노를 풀고 기쁨이 되어져 가지고 화친의  이 화목 제물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에게 세 가지 공로를 주시고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안에서  지음받은 나기 전부터 하나님 목적 안에서 지음받은 우리들을 때가 되니까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은 저 사람에게, 그것도 다  반열이 있어서 이 사람은 아무것이의 희생으로 인해서 그 계통으로 구원 얻을  사람, 누구의 계통으로 구원 얻을 사람 누구의 몇 사람의 전도로, 몇 사람의  희생으로, 몇 사람의 기도로, 최종은 누구를 통해서 하는 그 모두 당신이  예정하신 대로 한 사람 두 사람을 목적 안에서 기음받은 자 곧 택한을 입은 자를  이렇게 하나둘을 불러 가지고 구원하게 되는 건데,  이 불러 가지고 구원하는 그 순서에 일차 순서가 뭐이냐 하면은 우리 본인들은  모르지마는 성령과 진리로 우리의 죽은 영을, 하나님 형상이 우리 속에 있기는  있지마는 작용적으로는 완전히 죽어서 없는 것과 같이 된 작용적으로는 전연히  무능한 우리의 영을 진리와 성령으로 살려 가지고,  진리와 성령의 힘으로 살렸기 때문에 진리로만 살 수 있고 성령으로만 살 수  있는, 진리로만 살 수 있고 성령으로만 살 수 있는 자로 우리를 중생시킨 것이  이것이 우리 개인을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실상으로 이루기 위해서 착공하신  역사입니다.

 개인 구원의 착공은 중생이 구원의 착공이요 또 구원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지음을 받은 것은 우리가 벌써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아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는 영의 중생함을 입은 우리들이요 거게서 지금 이제 중생 입은  자를 이차적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우리의 마음과 고기덩어리로  된 것을 가리켜서 육이라고 말하는데 우러 육의 구원을 이루려고 이 역사하니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구원이라 건설구원이라, 행위구원이라 이떻게 성경에  여러가지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느냐? 우리는 모든 그 순서를 다 거쳐  가지고 지금 중생된, 영까지 우리를 구원하셔서 성령은 우리 영을 중생시켰고  영이 중생된 우리들이 이 심신으로 된 육만 이것이 구속이 되어지면 이제 우리의  구원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은,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 죽어 가지고 그대로 있으나 -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해서 산 것이니라" 우리 영은 의를 인해서 산 것이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면  벌써 영은 살았다 그 말이오. 영은 살았지마는 심신은 아직까지 죄 아래 있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우리 하는 이것은 중생된 영들이 말함니다. 중생된 영들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중생된 우리들도 탄식이 있다 그말이오 탄식은 무슨 탄식하느냐? '탄식하여  양자될 것 우리 영은 하나님의 양자가 됐지마는 우리 심신은 양자가 아직까지 안  됐습니다 '양자 될 것 곧 로마서 8장 23절입니다.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심신은 아직까지 양자가 안 됐는데 우리 심신이 양자될 것을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자가 되면 되는데 양자라는 것은 그 사람의 본체의  요소를 타고 나지 안한 것이 법적으로만 아들돼 가지고 본체의 그분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양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적 요소로 된 것은 아니고 피조물이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상속받는 것은 본체의 아들인 예수님의 신성이 받는 것과 같은 그런 상속의  유업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젓을 가리켜서 이제 양자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의 구원은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우리가 지금  상속받으려고 유업으로 받으려고 그것 받으려고 지금 우리가 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성화된 것만치 무궁 세계에 그이의 소유와 그이의  권위와 영광과 지위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후에 요 계속을 하겠는데. 우리는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 이제  심신 성화의 단계에 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심신 성화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면, 아무리 그 나무가 커도 뿌리가 없으면 말라버립니다. 뿌리가 없으면  마르고 그 나무가 바로 되려면 원 뿌리가 있고 둥치에서 나와 가지고 자라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의 뿌리는 어데냐? 자존자가,자존자가 우리의 신앙의 뿌리,  자존자로부터 신앙의 뿌리요. 자존자, 하나님의 목직,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보존, 하나님의 섭리,그리스도의 대속 예수님의 대속, 중생,  이것까지는 이미 이것은 기본구원에 속했기 때문에 이거는 둥치와 같고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둥치와 같고 뿌리와 재기 때문에 이를 우리가 가지고, 여게서  나와야 되지 여게서 안 나오면 안 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오후에 중요합니다. 여게서 안 나오면 안 돼. 가지나, 가지라는  것은 둥치에서 진액을 빨아 가지고 나왔어야 그게 가지고 그게 자라는 젓이지  거게서 안 나오면 안 돼. 거게서 안 나오고, 거게서 나오지 안하고 등치에서  나오지 아니한 그것은 자기에게 있다고 하면은 해충이나 있을까 해할 거나 있지  딴거는 있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본구원을 이제 여덟 가지를 말했는데 그것을 우리가  믿고, 이 사실을 믿고, 믿고 그것을 먹음으로, 믿고 그 생각하고 생각하고, 믿고  생각하는 거기에서 나오는 깨달음, 거게서 나오는 생각, 거게서 나오는 지식,  거게서 나오는 소망, 거게서 나오는 소욕, 거게서 나오는 능력, 거게서 나오는  모든 이용물, 모든 이용물 이것을 가져야 우리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거 없이 딱 떼놓고, 제가 지금부터 어쨌든가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살아서  성화의 구원을 이루라, 말씀대로 믿으면 된다, 잘 믿어서 회개하고 잘 믿어 구원  얻으라. 그것은 포도나무를, 포도나무를 둥치를 짤라버리고, 둥치를 짤라버리고  가지만 놓고 그 가지로'네가 무성하게 꽃 많이 피고 열매 많이 맺고  무성해라'하는 말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거 비유요. '포도나무 끊어 가지고 흙에 심으면 돼지지' 크게 아니라. 이거는  그렇게 해석을 하면 안 돼. 이거는 포도나무는, 말하기" 성경에 말하기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안하면 절로 말라 죽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근본이 이제 말하는 이 여덟 가지를 활용해서 이 여러 가지를  믿음으로 지식하고 믿음으로 가지고 이 여덟 가지에서 나오는 젖을 빨아 가지고  먹어야 자란다 그말이오. 여덟 가지에서 나온 그 은혜를 짜 가지고 그 은혜를  가지고라야 이제 건설구원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기독교 유래를 간단하게 말을 했는데 오후에 거게서 우리에게  어떻게 필요한가 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면 증거하려고 합니다.

 다 같이 고요히 기도합시다.

 기도할 때에 이 사실을 자기가 먼저 믿음으로 지식하고, 믿음으로 지식하고,  믿음으로 소망하고,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믿음으로 지식한다  말은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거게 따라서 내가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뭐 어떤 누구 인간이 뭐라 해서 아는 게 아니라. 그분이, 그분이 나에게  그렇다고 하기 때문에 그분을 따라서 나는 그렇게 압니다. 그분을 따라서  소망하는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는 것, 그분을 따라서 실행하는 것을 나는  믿음으로 실행하는 것, 그분을 따라서 참고 견디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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