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중매에 대해서

 

1988. 08. 19. 금야.

 

본문: 시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도 여러번 들어 놔서 여게 대한 절수의 해석은 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판단하게 단절 해석을 해서 가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하는 것을 여기에 몇 가지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이 복관도 심히 그 수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복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향해 가며 또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관이 잘못되면. 복관이라면 무엇을 복으로 이렇게 보는가? 복  복(福) 자 볼 관(觀)자, 뭐 어떤 걸 복으로 보느냐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복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인생관이라 말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인생을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물질관. 그 사람이 물질에 대해서 물질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그런  걸 그래 관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돈을 복이라 또 뭐 건강을 복이라 또 명예와 권세를 복이라  쾌락을 복이라 뭐 복이라 하는 것 사람 사람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복을 향하여서 전력을 기울여 가고 있습니다.

 여기 성경에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가?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며' 자기 중심의 운동들에 따라가지 않는 것,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 사람의 주장에 따라가지 않는 것이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은 자기 중심의 사람이 악인입니다. 자기 중심의 계획, 자기 중심의  뭐 감언이설, 자기 중심의 이런 친절, 자기 중심의 사교, 자기 중심의 봉사,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사람들을 매수할라고 유혹시킬라고 또 이용할라고 온갖  거 있습니다. 어쨌든지 자기 중심의 인간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복이라 그랬어.

자기 중심의 사람을 좇지 않는 사람이 복이다.

 또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하는 것은 성경에 위반된 그 길을 가는 사람,  성경에 위반된 그 주장과 행위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 것, 같이 가다가도  성경에 위반된 행위하면 그만 그 사람은 가든지 말든지 저는 성경대로 가 버리고  맙니다. 성경에 위반된 행위를 따라 가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을 복 있다  이랬습니다.

 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는 것은 교만한 자 '이만하면 됐다'  그만 뭣이든지 제가 어떻게 했든지 자기를 과대평가 해 가지고서, 자기의 장점이  있다 할지라도, 장점 좋은 점 그게 있다 할지라도 이만하면 됐다 하는 그런 자와  가까이 안 해야 됩니다. 항상 자기 의가 많아도 그저 늘 부족하고 마음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야 돼지지 그런 사람 안 됩니다.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신구약 성경 말씀,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는 계약인데 신구약이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 이 계약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밤낮으로  생각하고 하는 그런 사람 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이거는  비유인데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가물어도 장마가 져도 언제든지 그  나무에는 상관이 없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그렇게 청청한 거, 여기  시냇가라 하는 것은 이 냇가를 말한 게 아니오. 냇가에는 비가 많이 와서 장마 질  때 홍수 내려오면 전부 나무 다 떠내려가 버리고 맙니다. 여기 시냇가라 하는  것은 사람이 물을 댈라고 이래 관수해서 보를 막아 가지고 이렇게 관수해서  봇도랑 그걸 말합니다. 봇도랑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논 임자들이 와 가지고  물을 에워 버려서 비 올 때는 깊은 도랑에 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암만 비가  많이 와도 물손에 받치지 안합니다. 또 가물 때는 진뜩 물을 실으니까 또 문제가  없습니다. 그걸 가리켜 말합니다. 이제 이렇게 하는 사람은 모든 게 형통해진다  그말이오.

 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러니까, 형편 당할 때마다 성공한다 그말이오.

'시절을 좋아 과실을 맺으며' 하는 것은 뭐 어떤 때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그것이 매사가 성공되는 것을 가리켜서 '시절을 좋아 과실 맺는다' 과실 맺는다는  말은 좋은 결과를 맺는 거 아닙니까? 좋은 결과 맺는 것이니까 성공하는  것입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잎사귀가' 그 모든 행동이 언제든지  피곤치 안하고 언제든지 청청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피곤하고 모두 되는 것은  그 속에 죄가 들어서, 그만 죄가 들어서 근심이 되고 걱정이 되면 용기 낼 인간이  없습니다. 속에 평안하고 기쁘고 아무 염려되는 일이 없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형통해지면은 그 생활이 아주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잎사귀 모양으로  항상 청청하고 또 이들이들하게 자랍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전부 다 형통해집니다.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요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자기 중심의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그러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뭐  '성공'해도 훅 날아가 버리고 '영광'해도 훅 날아가 버리고 '권세' 해도 날아가  버리고 자꾸, 알맹이 없는 그 쭉정이는 바람에 다 날려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알맹이 없는 그 사람에 모든 생활은 다 날아가 버리고 오래 견디면 죽을 때에  허무하고 또 늙으면 허무하고 부활 때에 허무하고 심판 때 가 허무하고, 알맹이  없는.

 '악인은 그렇지 않으며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면 악인은 자기  중심의 사람인데 자기 중심으로 하는 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 겨  압니까? 여기 젊은 사람들, 학생들 겨 알아요, 겨? 겨가 뭐인지? 여기 이 중고등  학생들인데 겨 아는 사람 손들어 봐. 겨, 지져먹는 거? 뭐이야? 겨가 뭐이지?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바람에 날아가는 겨와 같다. 겨는 나락  쌀껍데기, 쌀껍데기를 겨라 하는 거라, 쌀껍데기. 쌀껍데기는 그거는 바람에 훌훌  다 날아가 버려, 그거 모양으로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자기 중심의 사람이 하나님의 그 심사하는 데에 다 떨어져. 하나님이 심사해 보면  자기 중심은 전부이 낙제를 다 시켜 버립니다. 요것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인간 생활의 크고 작은  것을 전부 다 심사를 하는데, 심사를 하는데 어떻게 하는고 하니 자기 중심으로  한 것은 뭐 노벨상을 받았든지 봉사를 했든지 정치를 했든지 구제를 했든지 자기  몸을 줘서 불사르는 큰 아주 자선 사업 박애주의 아주 그렇게 해도 자기  중심으로 한 거는 모조리, 그만 자기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해 가지고서 자기  중심 가진 건 모조리 똘똘 뭉쳐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하나님의 다 저주요  징계요.

 이러니까, 하나님은 욕심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 중심이 아닌 것은 마구  모조리 뭐 어떤 거라도 마구 전멸시켜 버려요. 왜? 하나님이 완전이시기 때문에  완전 중심이 아닌 것은 그게 다 자체가 망하고 냅두면 전체를 망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 몸에 아주 독한 병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병을 들어내야 되지  그걸 냅두면 그 사람 다 전체 다 죽어. 그런 인간을 망쳐 버리지 안하면 전인류가  다 실패된다 말이오.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은 의인들 속에 들어가지를 못해요. 지금 이 세상에 살 때에는 뭐 이렇게  네나 내나 꼭 같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심사가 있으니까 어떻게  세밀히 심사를 하는지 악인은 그 속에 들지를 못해.

 노아 홍수 때에는 거게 사람이 얼마나 됐는지 발표돼 있지 안하지만 아마 몇  십억 됐어요. 한 이십억 안 됐는가 싶은데 왜? 그때는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요. 많이 낳고 그리 죽지도 안하고 이렇게 하니까 아주 사람들이 많았어.

그런데 이십억이나 되는데 거게 하나님께서 노아의 여덟 식구 그까짓 거야, 한  이십억으로 본다면 이십억 가운데에 노아 여덟 식구라 하면 몇분지 일입니까?  이십억분지 팔이지? 이십억분지 팔인데 그까짓 거야 칠 것 없는데 그걸 낱낱이  볼가집어 가지고서 구원합니다.

 이러니까, '죄인이 위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하는 요런 것을 우리가 평생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의 생활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검사가 있습니다. 검사 있고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혹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너무 복잡하고  분주하고 숫자가 많으니까 혹 그렇게 싸여 넘어갈까 이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그런 생각 가지지 말라 그말이오.

 여러 수십억 속에 하나가 들어 있어도, 수십억 의인 속에 하나만 나쁜 것이  있어도 고거 딱 가려 내뜨립니다. 또 그 악한 자 수십억 가운데에 옳은 거 하나만  있어도 고걸 딱 가려냅니다. 섞지 안해요. 하나님은 계산이 빠르고 아주 전지  전능하시기 때문에. '들지 못하리로다'   오늘 저녁에 설교는 지금 6절을 할라고 합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J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정한다 말은 하나님께서 됐다고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에 잘못하면 악인의 꾀를 좋진 안했으면 '인제 됐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악인의 꾀에 좇지 않는 것,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거, 주야로  묵상하는 거 이런 것 다 뭣 때문에 하느냐?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기 위해서 하면,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기 위해서만 하면  그 생활은 다 미달돼서 헛일됩니다. '죄인이 이렇게 저거하고 같이 가자 하는데  내가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해야 되겠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기 위해서 하면  그것도 다 미달되는 다 헛일이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하는 것도 '내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 했으니, 내가 이 교만 부리고 지금 이제는 됐다 하고서  교만을 부리지 안해야 되겠다.' 이러면 제가 교만 부리지 안했으면 됐다, 악인의  꾀를 좋지 안했으면 됐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안했으면 됐다, 이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봉독하니까 됐다, 또 이렇게 하니까 모든 일이 형통해져서  다른 사람 보기에 '저 사람은 축복받았다' 그러니 됐다, 모든 신앙 생활이  청청하니까 됐다, 이거 된 것 아니오. 이거 된 것 아닙니다.

 그것을 목표로 하지 말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관찰하고 계시는 그분이 계시니 그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자기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일도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일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하는 일도 여호와께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데 이  해 놨지마는서도 '야, 이만하면 주님이 인정하시나 안 하시나?'  이러니까,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은 사도 바울이, 사람들이 이렇데 저렇다 뭐  됐다 찬동을 하든지 사람들이 삣고 깎든지 그것도 매우 적은 일이라 했어. 뭐  그것도 적은 일이라. 왜? 그런 것 무시해서 적은 일이라 말 아니오. 그것도 매우  적은 일이요 또 자기 양심에 가책되지 않게 자기 양심대로 이렇게 다 했다고  해서 그것도 뭐 그리 보잘것 있는 게 없어, 아니라. 그것도 그것 가지고 안심을 할  수가 없어. 왜?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 가지고서 내 모든 것이 다  드러날 터이니까 그분이 그때에 나를 어떻게 인정하시나? 그분 앞에 설 때에  그분이 '아, 됐다.' 됐다 하면 그만이라. 됐다 하면 됐어. 그분이 됐다 하면  되지마는서도 그분이 어떻게 여기나? 이러니까 죽자껏 해 놓고도 그분이 인정을  하시나 안 하시나 그분에게 인정이 되나 안 되나 이것 때문에 죽는 날까지 뻘뻘  떨면서 산 것이 사도 바울의 생활입니다.

 제가 땅위에서 신앙 생활 하면서 그런 의인을 하나 만나 봤어. 죽었어. 저  남천교회에 OOO집사님이라고 여집사님인데 있었어요. 그 지금 사위 둘은 지금  목사고 또 아들 둘인데 하나는 지금 전도사인데 곧 목사 될 것이고 큰아들은  지금 돈벌이하고 있는데 돈을 얼마나 벌란지 그거는 모르겠고. 그런데 그분은,  그분을 만났을 때 내가 참 놀래는 말을 들었어. 그분은 항상 속으로 말하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예, 이라면 주님이 인정하시겠습니까?' 늘 그걸 나한테 물어.

그래 내가 어떨 때 한번 뭐라 하는가 들어 볼라고 '주님이 인정하시나 안 하시나  의롭게 됐으면 됐지요' 이라니까 웃으면서 '그분이 뭐 그만 내 모른다 하면 그만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내 모른다 하면은 어찌 되나 거게 대한 두려움과. 그분이  인정을 하나 안 하나. 그분이 어떻게 여기나 이것 때문에 늘 떨면서 모든 일을 해  놓고도 이게 들어서 항상 그 마음이 눌려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봤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그런 사람 보지 못해. 목사에게도 못 봤고 또 뭐 장로  집사들에게도 못 봤고 남반에게도 못 봤고 여반에게도 못 봤는데 그분  하나에게서 '여호와께서 인정 안 하시면 참 비참해진다. 그분이 인정해야 될  터인데' 그분이 인정하나 안 하나?' 그저 일편단심 그분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기 때문에 그분의 생활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해. 그 교인들이  이해를 못 해. 너무 과격하다고. 너무 지나쳤다고 다 이렇게 하는데.

 그분이 안믿는 사람인데 제 설교 꼭 나흘 듣고, 집회하는데 나흘 듣고 가  가지고서 예수 믿기 시작해 가지고 거게서 이 총공회 교회를 세워서 그 지금  제천 OO교회 세워서 큰 교회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은 처음 예수  믿을 때부터 '여호와께서 인정하셔야 되지 그분에게 인정 안 되면 안 된다' 항상  자기가 무슨 일을 해도 그 일을 하는 그것이 일을 해서 그 일이 뭐 잘 되고 바로  되면 안심이 아니라 그 무슨 일을 하든지 할 때에 여호와께 인정받기를 목표를  하고서 해요. 그라니까 그분에게 항상 무슨 신앙 생활에서든지 항상 미완성이고  미비고 안심하지 못하고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하, 이라면 주님 앞에 인정이  되나 안 되나? 주님이 섭섭해 그럴까 주님이 기뻐하실까?' 주님을 인정을 그분은  그렇게 두려워하고 사는 것을 봤습니다.

 여게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의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도 이래도 이거 하는 것이 이거 하기  위해서 하면은 나중에 보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래 하나 목표는  이것 하는 것이 뭐이냐? 여호와께 인정받기 위해서 해.

 이러니까, 항상 여호와에게 인정받는 그것이 다 심판이니까 여호와에게 인정이  되나 안 되나 이것을 목표로 하고 이것을 이제 성공으로 표준하고 사니까 그  생활이 항상 교만할 기회가 없고 항상 겸손히 떨면서 그저 가도 가도 항상 신앙  생활이 지금 약혼한 처녀가, 요새는 또 이 비유도 안 맞아. 요새는 비유도 안  맞아. 약혼 벌써 되면 벌써 뭐 약혼하면 벌써 아이도 낳고 뭐 그따위 짓 하는데.

약혼하면 벌써, 동침은 벌써 돼 버렸어. 이러기 때문에 서부교회에서는 약혼하면  삼사 일 더 안 넘어갑니다. 고만 작정하고서 그만 그래 하면서 그 다음에 면접 못  하게 하고 이라는데 이게 참 생명법이요 좋은 법인데 어짜든지 이 법도 훼방을  하고 반대를 하는 것이 서부교회 교인들 거의가 다 반대해. 반대해도 지금 제가  이렇게 세우고 하기는 하지.

 그것도 반대하지 예물 받는 접수부 안 하는 그것도 반대하지, 밤에 결혼하는  그것도 반대하지, 또 예단하는 거 그것도 하지 말라니까 그 것도 반대하지,  어짜든지 우리 교회에서 결혼은 최고로 많이 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한 집에  오십만 원 했고 그라면 사십만 원 이래 가지고서 했는데 나한테 그래 놓고  속으로는 뭐, 얼마? 천 몇 백이 됐다 하던가 이천이 들었다 하던가? 그놈의 결혼.

이천만 원인가 천 몇 백만 원 들인 놈의 그 결혼 나중에 가 가지고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이혼하고 말았어. 우리 서부교회 OOO권사님 구역이라.

OOO권사님도 그때 말하다가 나는 그만 나는 손 떼겠다고서. 교회가 시키는  대로 하나도 안 하고 자기대로 하니까 그뭐 우리는 여게 참석을 못 하겠다.

하나님 기뻐하지 앉는다고서. 그런데 이혼하고 말았어.

 여기 권찰들 못됐소! 회개해야돼! 그래서 그런 게 발견되면 인제 치리하기로  결의를 했소. 자기네들 손 들고 치리하기로 결의를 했어.

 이래도. 뭐 보면 결혼하면 처녀 있는 편에서는 그라면 됐다 하는데 신랑 편에  있는 그 권찰들은 무슨 세도가 있다고 자세를 부려 가지고 마구 들이 짜고 또  들이 울구고 뭐 삐꾸고 돌아가고 배짱을 내고 이래 가지고서 막 울굴 대로  울구고. 그런 놈의 권찰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마귀 종이야! 그런 권찰은  회개해! 마귀 종이야! 그 행세하면 나는 저주하겠어! 왜 하나님 영광 위해서  하는데 왜 뭣 때문에 그 행세를 하고 있어, 있기를? 못써.

 내 행위를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안 하시나? 네가 천인 만인의 입도 막을 수  있고 눈도 가룰 수 있고 귀도 막을 수 있고 어리석은 그 마음을 꼬아서 자기에게  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미혹받지 않소. 여호와는 매수당하지  안하요. 여호와는 꼬임받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다수가 한다고 두려워서 따라가지  않습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을 제가  지난 학기 양성원에 가 가지고서 이 말씀을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 행위를 세상 사람이 다 찬성하고 인정하고 훌륭하다고 이렇게 해도 속을  들여다봐서 자기 중심 피조물 중심이고 구속하신 주님의 중심이 아니면 다 이거  다 그어 버려. 다 저주라, 다 유황불 구렁텅이라. 하나님 축복은 못 받아.

 이래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는 그  사람의 행위라야 의인이지 인간들이야 이거 어리석어서 뭐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넘어갔고, 지금은 좀 경제가 넉넉해졌습니다. 제가 거창 있을 때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 한 그러니까 육년 전, 삼십육 년 전에 제가 위천교회에  갔었는데 그때 있는 교인들은, 거게 O집사라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전도사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 부인이 수단이 좋아요.

내가 가서 보니까 국수 한 그릇이라. 그때 국수 한 그릇에 십오 원을 하던가 얼마  했는데 국수 한 그릇에 다 매수 당해. 그만 데리고 가 가지고서 국수 한 그릇  주면 그만 그 사람 사람 돼 버려.

 그래 가지고 내가, 나도 한번 초대를 했기 때문에 그래 내가 '나는 안 간다. 안  가는 것은 내가 국수 한 그릇에 팔려 가지고 뒤에 가서 내가 이재까지 이루어  나오는 구원 헛일 될 터이니까 내가 갈 수가 있나? 내가 국수 그거 한 그릇 먹어  놓으면 하나님은 이리 가라 하지 국수 준-부인이 O집사라-O집사는 저리 가자  하지 내가 그 가운데 들어 가지고서 칼로 가운데 나를 두 쪼가리로 짝 쪼개  가지고서 그라면 하나씩 들고 갈라 할 모양이니까 내가 죽는 것보다 그짓 못  하지. 나는 못 간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네가 그 돈 고거 가지고서 국수 가지고 사람을 매수해서  그렇게 하니 네 돈이 함께 너와 같이 망할 것이다 나중에 아주 거지가 돼서 밥을  못 먹었어. 거지가 돼서 밥을 못 먹어서 제가 성미쌀을 쪼매 줘서 밥을  먹었습니다. 아주 기술이 일등 기술이오. 그때는 목수가 귀할 때인데 아주 목수가  일등 목수 기술이고 또 그 부인도 굉장히 수단 좋은 사람인데 밥을 못 먹어,  그때는 국수 한 그릇에 매수를 당해. 오늘도 그만 그런 거 좀 거석해서 저  좋게만, 에덴 동산에 배암이란 놈이 와 가지고서 해와에게 '하, 하나님이 너무한다.

참으로 하나님이,' 떡 이라니까 이 해와 등신 같은 것은 그라니까 '하, 이거  하나님이 뭘, 나는 속았네. 뭐 나한테 잘못한 게 있는가보다.' 동산 모든 과실을  먹지 못하게 하더냐? 먹지 말라 하더냐? 먹으면 선악을 아는 게 하나님같이 될  줄 알고 그래, 하나님 될 줄 알고 그래 지금. 시기해서 못 먹구로 하는 거  아니가?' 그라니까 저를 치켜올리고 하나님 삣고 깎고 저를 치켜올리니까 그만  옳은 하나님 삣고 저를 치켜올리니까 그만 그 말에 매수당해 가지고서 넘어가서  자손 대대로 우리가 그 영향을 받아서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기 추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제가 뭐라고 쌓아도 마귀 새끼가 안될래야 안  될 수 없어. 자기 칭찬하고 추는 걸 좋아하는 인간은 마귀 새끼가 안될래야 안 될  수가 없어. 의인이 될라면 자기의 잘못된 거 흠점 그것을 말하는 걸 듣기  좋아해야지, 흠점 말하는 걸 듣기 좋아해야 되지 저 칭찬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는  자는 마귀 새끼가 안될래야 안 될 수가 없어,  이러니까, 사람들이 뭐 악인의 꾀 안 좇는 것도 그까짓 거 뭐 몇 닢 푼치 안  돼요.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는 것도, 인간의 의가 이런 의 저런 의 이런 선 저런  선, 이런 봉사 저런 봉사, 이런 희생 저런 희생 있다고 하는 것도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거 할 때에 '주님이 계시니 내가 주님 앞에 못 보이면  그만이다. 주님이 네 몰라라 하면 그만이다. 주님이 섭섭하면 그만이다.' 그분 한  분을 보고, 그분의 비위에 상우지 않기 위해서, 그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분의 뜻을 맞추기 위해서 그분 앞에 인정받는 것이 생명보다 귀하고 그분 한  분에게 인정받는 그것을 원해서, 요 심지를 가진 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런 것은 확고한  지식으로 가져야 됩니다. 자기 중심으로서 수단 좋은 자는 돈으로 가지고, 권세로  가지고, 입술을 가지고, 또 어떤 자는 협박을 가지고, 어떤 자는 이런저런,  간교함을 가지고, 자기 낯빤대기를 가지고, 뭐 자기 돈을 가지고. 별 걸 가지고서  사람들의 입도 막고 귀도 막고 눈도 가루고 제 사람을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사람에게 인정받으니까 됐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찬성하니 됐다' 고것은 하나님의 적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그 하나를  맞출라 해도 잘 못 맞추요.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그것이 사람에게도 인정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중하니.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어 그분은 인간에게 매수당하지 안해요, 인간의  감언이설에 웅변에 넘어가지를 안해요. 그분은 많은 사람이 찬동한다고 속지를  안해요. 속지 아니하는 분이 계시니 좋고, 속지 않는 분이 계시니 좋고 모든 것을  옳게 바르게 참되게 공정되게 처리하시는 분이 계시니 좋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 계시니 좋고 능치 못 하심이 없으신 분이 계시니까 좋고 그분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길이 참으시는 분이 계시니 좋고, 그거 없으면 우리는  멸망합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은 그분 한 분을 바라보면서 그분에게 인정받기를 위해서 뭐  해 놓아도 '이러면 주님이 어떻게 여기시나? 주님이 섭섭히 여기시나?'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처리하면 좋은데 이 총공회에서 무슨 일 처리해 봐도 그분이  인정하나 안 하나 그건 아니고 저거끼리요, 저거 끼리. 뭉쳐 보지? 뭉친 뭉텅이가  크면 크게 깨지지. 강하면 강하게 깨지지. 소용없어. 어짜든지 여호와에게  인정받기를 위해서 언행심사를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여호와를 대접하는 사람이며  여호와는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자기 무시하고 인간들의 인정만 중하게 여기고 여호와야 뭐 눈이 있나 귀가  있나 코가 있나 형체가 있나? 그분에게야 무슨 말해도 되고 뭐 아무래도 된다.

그분을 이렇게, 그분에게 인정받으면 다다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전심전력  기울이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인정받는 그것을 다 치워 버리고  인간에게 대해서 어떻게 되는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벌써 그것이 외식하는  사람이라 제가 제 꾀에 빠지고 넘어갑니다.

 그런고로 회개도 그분이 인정하는 회개, 자기가 어떤 천인 만인이 죄인이라 하고  또 자기가 어떤 죄가 있다 할지라도 참으로 세리와 같이 주님이 보실 때에  주님이 인정하는, '너는 됐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회개, 주님이 인정하시는 충성,  주님이 인정하시는 모든 언행심사가 될라고 그분 한 분을 상대해서 사는 우리가  되어집시다. 그거 아니면 다 헛됩니다.

 시편 1편에 주욱 많이 있지마는 이게 다 하는 것이 그분에게 인정받기 위한  그것을 소망을 두고서 했으면 자기에게는 평생하고도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  눌리는 마음 있을 것이고 그 개별 그의 그것만 보고했으면 다 교만하고 만족할  수 있는 일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밤에 크나 작으나 뭐 혼자 있으나 여럿이 있으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 계시니까 그분이 지금 나를 어떻게 보나 그분의  인정을 상대해서, 그분의 인정을 상대해서, 그분만을 상대해서 이렇게 사는 그  사람이 주님을 대우하는 사람이요 주님은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인제 오늘밤에는 작정해요. 내가 무엇이든지 그분이 인정해야 되지 뭐 인간 인정  아무 소용없고 내 보기에 일이 잘됐다 싶은 것도 소용없어. 그분이 인정해야  되지. 그분 인정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노려서 우리가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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