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선지자선교회 1980년 3월 1일 토새

 

본문: 계시록1장 16절-19절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귀양갔을 때에 주일을 당해서 평소보다 주님의 충만한  감화감동을 받았고 감화감동을 받아 평소에 자기가 깨닫고 느끼는 것보다 더  큼을 받았습니다. 더 크게 느꼈고 더 크게 깨달았고 했는데 그러한 중에 주님의  그 얼굴을 통했을 때에 사도 요한이는 두려워서 그 발아래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 말씀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하신 이 두려움은 곧 지난밤에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그  앞면을 당해서 주님이 어떠하신 주님인 것을 자기가 발견했을 때에 자기도  새롭게 어떠한 자인 것을 발견하고 보니까 처음에 주님을 만나기 전 기대했던  주님을 자기가 만남으로 허무한 자기가 되었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신망하는  자 되었는데 밧모 섬에서 주님의 얼굴을 대했을 때에 이전에 자기를 발견하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니까 이전에 당했던 그 시절에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기절할만한 그런 허무한 자기, 또 너무 거슬리는 자기인 것을 발견한 그  발견으로 인해서 발아래 엎드려서 죽은 자 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표시하기를 "주님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다"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주님이 어떠한 분인데 주님이 해도 이 역사하지  않으면 안될 어떠한 자기였다는 것을, 또 현재로 그렇게 되어있는 자기인 것을  이상하게 부분과 또 자기라는 근본 자기라는 존재를 깨닫고 보니까 자기는 점점  작아지고 주님은 커지고 자기는 허무해지고 주님은 신실해지고 자기는 참 천하고  불결하고 주님은 성결하고 깨끗한 이 주님과 자기와의 비교가 될 때에 자기  보기에 주님은 그 모든 인격이나 그 모든 역사와 행위가 찾아 인격이 지공 같이  도무지 부끄러워서 두려워서 견딜 수 없는 그것으로서 여기 죽은 자와 같이 된  것이고 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은혜를 받는 그 은혜가 어떤 그 존귀한 은혜인가? 그 은혜가  자기의 지음을 받을 때의 정체 자기가 지음을 받을 때에 어떤 자로 지음 받은 것  또 어떤 자로 되어있는 것 이것을 알아야 생명이 있지 이것을 모르면 정 반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것은 죽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개가 개면 개로 날뛰어야 되지 개가 그 이상으로 사람으로  날뛰면 그것은 당장 죽여야 되지 그대로 두면 안됩니다. 연장도 하나 만들어  놓으면 연장 만든 목적 그대로 그 연장으로 쓰여져야 되지 그것이 다른 것으로  둔갑해 가지고서 날뛰면 그 연장은 뿌셔뜨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해가  되기 때문에, 그 불집게는 불집게 놀음을 잘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게  불집게를 위한다고 하면서 만물이 동감을 해 가지고서 짐승처럼 그것이 무슨  종처럼 그렇게 날뛰어 보십시오 아마 세상이 야단이 날 것입니다.

 이런데 지음을 받은 것들 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이것은 최고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는데 영계에서 지음을 받은 것 중에 제일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천사가 저를 모르고 날뛰는 데에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인데 여기에 제일 하나님 다음으로 제일 높은  자이지마는 그것이 자기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이렇게 자타에게  한없는 소망을 일으킨 것인데, 천사보다 더 존귀하게 지음을 받은 이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비교될 자가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했고, 또  만물 가운데 책임이 제일 무겁고, 또 만물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이런 존재로  되어있는 것인데   그러기에 자체가 현실을 못 이기게 되면은 타락한 마귀 이상으로 권세를 저지를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타락을 허락하신 것은 그 지음을 받을 그 본질 본성  그대로의 것으로서가 아니고 그것이 어떻게 허무하게 되어지며 어떻게  조직되어지며 하는 주님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영물  그대로 제대로 날뛰게 되면 거기 어느 정도의 흉한 것이 되고 그 비참한 것이  되고 아무 몹쓸 것이 되어지는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타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타락 가운데서 주님이 이것을 완전히 대속하여 가지고서 본 지위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이 회복시키는 데에는 자기가 근본 어떠한 자기였는데 어떻게  변질된 자가 되었고 이렇게 변질된 자가 자기의 본 지위로 회복하는 데에는  하나님 혼자서는 안되고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대속을 완성하시므로 이 대속으로  되어지는 이것을 알고 대속주를 알고 지음을 받은 그 본 지위에 있을 그때를  알고 타락된 자기를 알고 대속주가 어떻게 힘들여서 대속하신 것을 알고 자기가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은 자기보다 무한히 크고 만물과 관련 있는 이것을  바로 알아서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이것이 구원이란 말은 완전이란 말 한  가지인데 완전을 이루어 가지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겠습니다.

타락부터 구속되어 또 성화 영화 되어지는 이것인 것이겠습니다. 그랬는데 사도  요한이 다음 주인은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요 또 주님의 구속이 어떤 것인 것을  잘 아는 사람이요, 또 구속으로 인한 그 은혜를 잘 알아서 하는 사람이지마는  밧모 섬에 가 가지고 세상에 있는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한적한 이런 조용하고  한적한 이런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에 모든 은혜가 분주한 그때보다 더  충만해졌고 그 중에도 주님을 다시 발견해서 만나게 되었을 때에 자기가 평소에  가지지 못했던 죽은 자와 같이 되어지는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자기를  발견하게 되어서 죽은 자와 같이 이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이 두려움이라 하는 것은  소망적 두려움이 아니요 절망적 두려움이요 기절적 두려움입니다. 이러니까 그  다음에 가르친 것 보면 두려워한 것 보면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거요. 그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 말씀을 또  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니" 그 말은 네가 지금 볼 때에 이런 주님으로 저런 주님으로  이렇게 견해들이 모여져서 그전에는 네가 나를 네 가장 가까운 동무 중에 가장  가까운 동무로 친구 중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제일 네가 사람 중에 만만한 나로  생각해서 어데든지 가면 그만 기대고 또 내게 안기고 이렇게 하지 안 했느냐?  지금은 그때에 비해서 네가 얼마나 많은 경외하고 경외하느냐?  그런데 나는 그때에 그렇게 나를 상대했던 그때의 그 나와 지금 나를 보고서  기절해서 엎어지는, 발견한 나와 또 영원무궁의 네가 발견한 나와 그때와 나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내라 네 깨달음이 다르고 네 눈이 밝아서 내가 달라졌지  내가 달라져서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런고로 네가 내게 대해서 무식했고 네 자신에 대해서 무식했고 모든 존재에  대해서 무식했고 그러므로 모든 존재의 것이 심히 많았고 또 우리 자체가 비참한  그런 때도 내가 너를 구속했고 이렇게 소망을 가지고 은혜를 베풀었는데 지금  네가 두려워해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봐라  18절에 곧 산 자라 곧 산 자라 이 말씀을 곧 서두에 들어 있는 것 곧 산 자라  다급하다 그 말이요 야 네가 지금 나를 보고 놀라지마는 나는 그때에 내나 지금  내가 변하지 않는 그 주님으로서 그때도 대해 주었고 또 그래 대하고 지금도  그래 대해 주니까 네가 나를 보고서 놀라지 말아라 너무 가치 있는 것과  비교하지 말아라 곧 내가 산 자라 올 자라 산 자라고 먼저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산 자라 그 말씀은 내가 네 소망이 되기 위해서 지금 네 소망으로 다시  살아났다. 절망하지 말고 기절하지 말아라  너를 연구해서 너를 깨닫고 놀라지 말고 네가 너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다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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