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1980. 2. 27. 수새

 

본문: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자기는, 자기는 극히 작고 작기를 한 몸에 수많은 세포가 있어 이 세포는 전신의  수많은 세포에 비하여 극히 작은 전신에 속한 세포 중에 한 세포인 것처럼 사람도  모든 존재 중에 극히 작은 존재이면서 모든 존재들을 상대하고 또 거게 속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수많은 타에게 수많은 타에게 자기 아닌 다른  것에게 속한 극히 작은 존재인 줄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자기 아닌 수많은 존재들에게 속하고 또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견딜 수 있지 그것이 자기 아닌 다른 것들에게 배치가 되든지 대적이 되면 견뎌낼  수 없고 필연적으로 멸망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로 타락한 원죄는 어떤 것이 원죄인고 하니 자기 중심이 원죄입니다.

자기가 타에게 속하여 살지 아니하고 타를 다른 것을 말입니다. 다를 타(他)자  타를 자기에게 소속시키는 이런 사상으로 방편으로 사는 것을 원죄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타락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이 원죄로 삽니다. 그러기에 이 사상과 생애는  전멸입니다. 전멸. 멸망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원죄로 사는 것은  자기보다 무한히 크고 많은 이것을 대적하여 그것보다 자체가 큰 것으로 인정하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립되니 약자는 강자에게 지기 마련입니다.

이러니까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그 속성과 다 같은 그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들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로마서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더듬어 찾는 데에는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을  보아 그를 알지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대립된 것은 두 종류뿐입니다. 전체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지음을  받은 그대로 있습니다. 타락이라는 것 지음 받은 데에서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변질된 것 이것은 두 종류뿐이니 하나는 타락한 천사요 하나는 타락한 인류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이 두 가지에게는 맞습니다. 타락한 두  종류에게는 맞지마는 변질되지 안한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본위로, 자기주관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사상 가진 사람은 안 맞는 것은 수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맞는 거는  두 종류뿐인데,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이 악이라 했는데 이  악으로 사는 것이 대립되지 안하고 한 덩어리 되어서 살 수 있는 것은 두  종류뿐인데 여반에 하나만 말해 보십시오? 무엇이지요? 자기 중심으로 살 때에  대립이 되지 안하고 서로 뜻이 딱 맞고 사상이 맞고 행동이 맞는 거 있는데 그  맞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맞습니까? 하나만 말해보십시오. 녜, 모르겠어 말을 크게  해야지 순옥씨 뭐라케 입을 꼼짝 꼼짝 뭐인데 아! 타락한 천사하고는 맞지요 그걸  마귀라고도 합니다.

타락한 천사 마귀하고는 맞습니다. 그것도 변질됐고 이것도 변질 됐기 때문에 맞고  또 실은 그것으로 인해서 변질됐기 때문에 딱 들어맞습니다. 남반에 또 맞는 것  하나 있지요 뭐입니까? 녜, 타락한 사람 요것 둘은 맞습니다.

이러니까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살 때에 자기의 언행심사가 타락한  인간들과 맞으니까 이것이 영원히 인정받을 줄로 이렇게 알고 날뛰고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에게만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모든 존재에게는 다 대적이 됩니다.

교회에서도 여러분들이 행동할 때에 새 사람으로 행동하면 새 사람과는 다  들어맞고 처음 나도 딱딱 들어맞습니다. 옛사람으로 행동하면 새 사람들과는 그만  대립됩니다. 옛 사람들 하고는 맞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한 덩어리가 되겠습니까 두 덩어리가 되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두 덩어리 되지요 두 덩어리 되는 것이 필연한 일 아닙니까? 또 우리가  사귈 때에 우리와 한 덩어리 되는 자기와 한 덩어리가 되는 사람이 한 종류입니까  두 종류입니까? 예, 한 종류 또 한 종류 한 종류 또 두 종류 내가 새 사람으로 살  때는 새 사람들하고 딱 들어맞거든요. 내가 옛사람으로 살 때는 옛사람하고 딱  들어맞거든요.

이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잘 분별해야 됩니다. 내가 착 한 덩어리가 된다 말이요 그  사람과 사겨지니까, 친근해집니다. 보자 내가 무슨 사람으로 살 때 이 사람하고  호흡이 맞았느냐? 아! 내가 옛 사람으로 살 때에 호흡이 맞다. 그러면 그 사람  무슨 사람이지요? 옛 사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새 사람으로 살 때에  호흡이 맞습니다. 그러면 새 사람으로 새 사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내가 옛사람으로 살 때에는 그 사람의 옛사람과 맞는데 또 내가 새사람과  살아보면 새사람과 살 때에는 그 사람이 또 맞습니다. 새 사람과 맞습니다. 그  사람은 새사람하고 맞고 옛사람은 옛사람하고 맞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이런 것들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옛사람으로 살면 두 종류와는 맞지마는 모든 종류와는 다 대적이 됩니다.

타락치 아니한 피조물들과 또 창조주와 대립이 되고 자기가 새 사람으로 살면  변질되지 아니한 모든 것과 창조주 하나님과 한 덩어리가 되어 삽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보다 자기 아닌 그것이 더 많고 크고 그것이 대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대적하고는 살지 못합니다. 또 내가 그것에게 속하여  살면 그것은 나에게 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비록 작지마는 작은 나는 모든  것들에게 다 기쁨과 유익을 줍니다. 또 모든 것들은 나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이렇게 되는 데에서 타락하지 아니한 모든 존재와에 관계가  이렇게 사랑과 생명으로 이루어지고 자기가 잘못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과의 관계가  사망으로 이뤄집니다. 그런고로 자기 하나가 바로 되고 잘못된 데서 모든 존재와에  관계는 잘되고 잘못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것저것 좋은 것을 취할려고 나쁜 것을 버릴려고 애쓰는  이것은 좋은데 방편은 하나뿐인데 타락한 사람들은 전부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된 방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성공하고 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오는 모든 불행을 다 피하고 자기에게 좋은 행복만이 행복에게 속한  것만이 취하는 방편은 하나 뿐인데 이 방편을 사람들이 잘못 사용합니다. 이  소원은 좋은데 이 소원은 좋은데 방편을 잘못 사용하니까 소원하는 데에 정 반대가  되어서 원치 아니하는 것은 점점 커지고 원하는 것은 점점 없어져서 세상을 끝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이미 와 있는 것 오는 것 모든 불행을 다 이것을 제거해 버리고  자기에게 필요 있고 유익 있는 요것만 취할려고 하면은 고 취하는 방편이  하나뿐인데 고 방편이 무엇입니까? 고것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녜, 녜 세상.

뭐라고 아 새사람. 새사람 네 고깁니다. 새 사람. 자기가 모든 것과 배치되지 않는  일치되는 새사람 취하는 거 자기 고치는 거 자기 바로 되는 거 요것뿐입니다.

그러면 자기 바로 되고 고치면 하나님도 모든 변질되지 안한 피조물도 다 한  덩어리가 되어서 자기에게 전부 좋은 것을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사람으로 살면  모든 불행은 다 물리쳤고 행복을 취하게 되는데 요것이 유일한 방편인데  이렇게 새 사람으로 살면 이제 대적의 마찰은 있겠습니까 하나도 없겠습니까? 조  윤범 집사님 있습니까? 아 이렇게 새 사람으로 살아도 하나님도 모든 피조물도 다  한 덩어리가 되는데 그래도 대적되는 그런 마찰이 있기는 있습니까, 있습니까,  있습니까 봐 두 번 다 잡아 물으니까 그만 대답 못하는 구만 자신이 없는 모양이지  녜? 녜, 마찰이 있습니다.

무엇과 마찰이 됩니까 예? 무엇과 마찰이 되지요? 네 변질된 것들하고 마찰되지요  알겠습니까? 변질된 것들하고 마찰이 됩니다. 마찰이 됩니다. 이래서  (마가10장29-30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나와  내 도를 위하여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나 손해 본 자는 세상에 서 백  배나 얻고 여러 배 얻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 없느니라 그러나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했지요. 요렇게 주님과 주님의 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서 하나에게도 끌리지 안하고 주님과 주님의 도에 안 끌려서 하는 요새 새  사람 아닙니까? 새 사람으로 살면 백 배 얻는다  모든 것을 이렇게 풍성하게 다 얻는다 얻는데 핍박을 하여 받는다고 요 핍박 와  일어날까요 예 핍박이 와 일어납니까 예? 마귀와 타락한 사람 변질된 것들 변질된  것들에게는 마찰이 있다 그 말이요. 변질된 두 종류와 마찰이 없을려고 하면  변질되지 안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 마찰이 되고 대립이 되고 하나님과 모든  변질되지 안한 정상적인 수많은 존재와 하나가 되면 변질된 것들하고는 마찰이  된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이 마찰이든지 저 마찰이든지 마찰 둘을 가지고 삽니다.

새 사람으로 살면 마귀와 타락한 인간과만 마찰이 되고 그 외에 모든 거와는  하나가 되고 또 옛사람으로 살면 눈앞에 알랑거리는 마귀와 타락한 인간과는  마찰이 안되지마는 누구하고 마찰됩니까? 하나님 또 그 다음에 변질되지 안한 모든  피조물 전부와 마찰이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두 마찰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큰 마찰 어느 것이 큰  마찰입니까? 변질된 것들이 나와 대립될 때에 그것이 큰 마찰입니까 변질되지 안한  것들이 나에게 대적이 된 때에 그 마찰이 큰 것입니까 어느 마찰이 크지요?  변질되지 안한 그 마찰이 크지요.

 이러니까 큰 마찰을 피해야 되겠소 작은 마찰을 피해야 되겠소 네 큰 마찰을  피해야 되지요 작은 마찰 그까짓 거 피해 봤자 큰 마찰과 마찰이 되면 절단  안나버립니까? 녜, 큰 마찰과 마찰이 되지 아니하고 이치 되고 작은 마찰 그게  있어도 그 길을 택해야 되겠습니다. 또 큰 거와 마찰이 되면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망이지요 또 작은 것과 마찰이 되면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생명과 평강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타락한 변질된 것들과 마찰되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마찰된 거 보니까 좋아하겠습니까? 네, 좋아하지요 왜? 변질된 것과 마찰이 되니까  변질되지 안한 것들과 분명히 한 덩어리 된 것이라 말이요 그러니까 변질된 것들과  마찰될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로마인서  8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받는 고난과 고난은 무슨 고난입니까? 성도들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 때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가 안  된다.

 (타자중단)  고난에다 비해서 고난이 한번 같으면 받을 영광은 억천만 번도 더 넘는다  그러니까 성도가 이 신앙에 있어서 이제 받는 고난과 고난 무슨 고난입니까?  누구에게 받는 고난입니까? 변질된 것들에게 받는 고난이지요?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장차 받을 영광 이제 고난 넘어 받을 영광 이  영광은 누구에게 받는 것입니까? 예 누구에게 받는 것이지요 변질되지 아니한  창조된 그대로 있는 모든 존재들 또 창조하신 창조주 이들에게 받는 영광이지요?  그런고로 우리가 이것을 단단히 깨닫고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한 덩어리 되게 할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불화를 주기 위해서 왔다. 불화를 주기 위해서 왔다 누구하고  불화 되기 위해서 왔다 말입니까? 변질된 것들하고 불화를 시키면 또 누구하고  화평 됩니까? 변질되지 안한 것들하고 한 덩어리이지요? 예수님이 오신 것은  너희들이 변질된 것하고 한 덩어리 했기 때문에 변질 된 것하고 한 덩어리 된  이것이 변질되지 아니한 것하고 한 덩어리가 되고 변질된 이것들하고는 대립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하는 말씀입니다. 또 고 다음에 내일 아침이든지 혹  오늘저녁에든지 이 말씀을 계속하겠습니다. 똑똑히 배워야 돼요. 알면,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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