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1980. 2. 23. 토새

 

본문: 베드로전서 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겸손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또 교만은, 교만은  하나님의 대적이 됩니다. 겸손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높이시는 역사를 하실 수  있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끌어내리는 그런 역사를 필연적으로  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만 아니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만물에게도 그러합니다.

소망을 주고 소망을 주고 또 기쁨을 주고 환영하게 하고 협조하게 되는 이 모든  것은 겸손이 이루는 것입니다.

겸손의 정반대인 이 교만은 모든 옳은 것들에게 절망을 주고 근심과 걱정거리가  되고 또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겸손과 교만은 큰 결과를 맺습니다.

그러면 겸손이 어떤 것이며 교만이 어떤 것인가? 겸손은 모든 것을 바로 아는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교만은 모든 것을 잘못 안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겸손은 유식한 사람이라 교만은 무식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종류의 것들이 심히 많지마는 그 중에도 알아야 할 그 필요성은 다 각각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가져야 할 것 중에 제일 큰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요   그 다음에는 모든 사물과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도, 모든  인류도, 영물도, 사건도, 만물도 다 자기를 상대하여 있고 자기는 그런 것들을  상대해서 있습니다. 자기를 상대하여 있는 모든 것은 자기에 비해서 지극히 큰  것들입니다. 자기는 지극히 크고 많은 이것들에게 속하여 있는 한 분자 한 세포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이 자기 아닌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생사 흥망은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극히 미약한 존재이지마는 이렇게 무한하다고 하는 자기  아닌 이 객관 이 모든 것들에게 모든 면을 다 관련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자기는 자기 아닌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존재요 또 모든 존재는  자기에게 다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런 원인을 가지고 이런 목적을 가지고 지음을  받은 자기입니다.

 이러기에 자기가 모든 존재에게 올바른 관계를 가지면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모든 존재에게 애호함을 받고 또 이 모든 존재들에게 잘못된 관계를 가지면  모든 존재로 인하여 집중 피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를 모든 존재보다 크게 여기고 모든  존재들의 주로 삼아서, 주 (주인) 주(主)자 모든 존재들의 주로 삼아서 모든  존재를 자기에게 귀속시키려는 도, 자기를 위하는 것들로 삼으려는 이런 어리석음,  이런 망령, 이런 무지의 사람으로 만드는 요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그런고로 이 지극히 큰 이 비밀을, 이 절대적인 사실을 모르고 날뛰는 그 사람을  가르쳐서 교만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상대하니까 모든 그  상대는 이리 저리 다 치우쳐서 전부는 삐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삐뚤어진 경영을,  삐뚤어진 목표를, 삐뚤어진 방편을 쓰고 있는 그에게 모든 존재들이 그를 따라  움직여 전멸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은 안타깝게도 그의 필요한 것도 한번에  포기가 되어지는 것이고 또 그의 움직이는 모든 움직임은 거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교만은 하나님에게와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모든 것들에게 물리침을  받을 필연적 행동이며 또 모든 것들을 대적하는 그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피조물 모든 존재 이것들에게 환영받는 것도 겸손이요 그것들에게 또  희망 있게 소망을 주는 것도 겸손이요 또 그들에게 도움을 입는 것도 겸손이요  그들에게 필요한 자기가 되는 것도 겸손입니다.

 이러기에  겸손은 모든 것으로 영원한 화합을 가지게 되고 모든 것에게 혜택을  입게 되고 모든 것에게 필요한 것이 되어지고 모든 것으로 인하여 점점 높임을  받는 곧 필요 있는 가치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만으로 망하고  겸손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만물은 다 그대로 변질되지 아니하고 있는데 다만 타락한  천사와 사람만이 변질되어 있는 하나님과도 지음 받은 모든 것과의 이질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변질되어 이질적인 것이 되었으나 이것도 모순 같지마는  결과적으로는 일치되어지는 하나님의 영영 하시고 완전하신 경영으로 인하여  천사도, 인생의 타락도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으심 받은 것들은 다 하나되어  본질과 본성이 움직이고 있는 이 전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를 가지고 있는  자기인데 지극히 큰 많은 이 상대를 가진 지극히 작은 자기가 모든 상대를 거슬려  가려는 것은 필연한 사망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이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만은 무식의 소산이요 겸손은 유식의 소산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를 자기가 바로 알려고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요 또 자기를 바로  알려고 연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기대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극히 작은  것이지마는 자기를 아는 것 만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알면  자기를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연구하는 것이 모든 것을 연구하는 첩경입니다. 첩경, 지름길,  첩경입니다. 수많은 것을 연구할려고 할 때에는 둘러 가는 거와 같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자기를 연구해서 알게 되면 아는 것 만치 자기를 상대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비유컨덴 자기를 완전히 알았다면 자기를 상대하여 있는 모든 존재를  완전히 안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를 연구하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연구하는 이것이  생명을 취하는 것이요 모든 평강과 희락을 취하는 것인데 자기 연구를 무엇이  들어서 이렇게 이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했으며 또 연구하지 못하게 해서  자기에게 대해서 무식한 사람을 자기에게 대해서 무식한 사람을 만들게 되는가?  이것은 원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중요한 지식을 필요로 느끼지 못하게,  취할려고 노력하지 못하게, 노력을 해도 이 지식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이것은  자기 중심 이것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이것이  들어서 이런 어마 어마의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치 않고는 자기를 하나님보다도 모든 존재보다도 애착하는  인정하는 이것을 버리기 전에는 생명은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제일 미련한 것 중에 미련한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 제일 무지한 일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것이 사망의 첫 자욱입니다. 타락이  이것으로 된 것들입니다.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는 것은 자기를  연구해서 자기를 아는 그 깨달음에 자타를 아는 그 깨달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억지로 끌어다 붙인 그런 말 아닙니다. 자타를 깨달은 그 의무에서 의무감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기는 '모든 사람 중에 죄인이라' 삐뚤어짐이 많은 것도, 자기와  자기를 상대하여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하여 이 지식이 저희에게 생겨짐을 따라서 이  지식으로 인하여 자기는 백 해의 존재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든 것에  해독을 끼치는 백 해의 존재라' '만삭되지 못하여 놓은 자라' '하나도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생명에 속한 이 바른 것은 할 수 없는  자기'라는 것을 발견한 그 지식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넓은 자기를 상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것도 좋지마는 너무 양이 많아서  불가능한 것이니까 간추려서 성경이 자기를 상대하여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간추려서 모든 존재는 어떠한 존재며 너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추려서 극히 미약한 무리로 연구해서 알만한 정도의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셨고 또 자기를 연구함에도 간추려서 속성 적으로 자기를 연구할 수 있는  간단 명료한 지식을 주신 것이 신 구약 성경입니다.

그런고로 자기를 알려고 자기가 어떠한 인품을 가졌으며 어떠한 인질을 가졌으며  어떻게 좋고, 나쁘고, 하나님의 하나님에게 공통성 있는 점과 하나님과 대립성  있는 것을 연구하고 자기가 모든 과거로 어떠한 사람이며 어떠한 행동을 했으며  삐뚤어진 게 얼마나 있었으며 바른 게 얼마나 있었으며 얼마나 거짓되며, 얼마나  이중 삼중이며 얼마나 하나님과 모든 존재 위에 하나님이 왕인 것처럼 제가 왕  되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움직였으며,   또 자신이 모든 것을 평가할 때, 비판할 때에 어느 정도 정확했으며 어느 정도  이탈되었으며 하는 이 모든 자기를 사정 두지 아니하고 냉정스럽게 자기의 원수에  대해서 자기가 연구하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처럼 냉정스럽게 자기를 비판하고  평가해서 자기를 정확히 사정없이 바로 아는 이 지식을 가질려고 연구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자기를 옹호하고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자기를 인정해서 쌀 한 되도 못 지고  갈 것이 백 석을 짊어지겠다고 들어 제끼면 그 안에 치여서 죽지 제가 어쩔  것입니까? 자기의 역량도 모르고 자기의 위치도 모르고 자기라는 존재 목적도  모르고 모든 것이 술 취한 사람 이상으로 술 취한 사람 이상으로 삐뚤어지게 알고,  오산 가지고, 모든 것을 욕망하고, 모든 것을 경영하고 움직이니 그의 결과는  패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 말로 말해서 허영이라,  허욕이라, 망령이라, 어두움이라, 로마서 1장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냉정스럽게 판단해서 사정없이 자기를 판단해서 자기를 바로  알려고 자기의 행위를 바로 알려고 자기의 가치를 바로 알려고 자기가 상대한 그  자기의 상대에 대해서 자기의 의무와, 책임과, 본분과, 자기가 실패케 한 것과  무엇으로 인해서 감당케 된 이런 것을 알기 위해서 연구하는 이것이 겸손의 앞잡이  입니다.

겸손은 모든 존재들과 화합의 앞잡입니다. 모든 존재들과 화합은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 있는 내가 되고 모든 존재가 나에게 원수가 되지 안하고 나에게 필요하게  되어지는 이것의 전제입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것들에게 상호 필요한 이것은  자기가 비로소 하늘 나라나 세상에서나 없어서는 안될 존귀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성 가진 조직과, 나열과, 절대성 있는 영원한 계획과 움직임 속해 있는  미약한 자기가 이 전체에, 무한한 이 대국을 무한한 이 전체를 전무식 가지고  전무식 가지고 만물보다 거짓되어 타락된 자기의 주관, 자기의 사욕 이것대로  움직여 살라고 하는 것은 이는 생명과, 평강에서는 천부당 만부당 형언할 수 없는  거리 먼 멸망 깊은 속해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위주로 자기 본위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아끼고 자기 좋게  하려던 자기 위주, 자기 중심, 자기 본위 이것은 생명에서 그 거리가 무한히  멀어서 거게서는 생명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그 말은 자기를 부인하고  올바른 지시, 올바른 관계 이것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어리석은 자기가 볼 때에  십자가라 그 말이요 희생이라 말이요. 그런고로 이것이 아니면 구원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자기를 잊어버립니다. 주께는 '천 년이 하루와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은 영향이라 그 말이요, 사람도  지성인이라면 무식한 사람보다 지성인은 그의 보존 범위가 넓습니다. 당장  의인으로 보고 당장 죄인으로 안 봅니다. 수십 년을 두고 의인으로, 죄인으로  평가합니다. 언제는 머리 들 수 없는 삐뚤어진 자인 것을 자기가 확실해 알고 어떤  사람은 몇 시간 지나면 다 잊어버립니다. 몇 달이 지나면 자타가 잊어버린 줄  압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애에 이 하나 하나의 순서로 지나가는 것은 거기에 많은 조건 때문에 그 현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연약성이 어떻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현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연약성이 어떻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현실이요 이 연약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요 얼마나 거짓되고, 얼마나 모든 얼마나 무지한 것과 얼마나 몹쓸 것과,  얼마나 비뚤어진 것과 얼마나 가증스러운, 얼마나 미약한 이것을 알게 하는 것과  또 자기는 주의 구속을 힘입어서 어떠한 희망이 있는 자인 것을 알게 해서 이  세상은 모든 것을 바로 알게 하는 것이요 바로 알고, 바로 알아 자기를 바로 알고,  모든 존재를 바로 알고, 바로 알고 바로 아는 대로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사는  연습을 시키는 바로 지식 하게 하는 것과, 바로 지식 하는 대로 사는 연습을  시키는 세상입니다. 이거 우리 영주처가 아닙니다.

이것으로 하여 무궁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죄를 범했을 때에 그  죄를 잘못 됐으니까 '이것 고치겠다' 그것 말이 아닙니다. 그건 지극히 작은  껍데기입니다. 왜 이렇게 죄를 짓게 만들었느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느냐?  여기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무어냐? 여게서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 아닌 그  타에 대해서 이로 인하여 자기가 받아 가져야 할 지식을 가지는 것이 첫째  중요하고 그러면 여게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되겠다는 이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한번 연습해 보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입시다.

 한 십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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