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주의 할 것


선지자선교회 1983년 11월 26일 토새

 

본문 : 눅 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지난밤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마지막 절에 '그러나' 8절 하반절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인자가 올 때에, 인자는,  구약 성경에는 인자라는 말이 많이 있읍니다. 거기 기록된 인자는 예수님을  인자라고 한것보다 사람들을 인자라고 그렇게 기록한 것이 많습니다. 그  인자라는 말은 아주 사람으로서 제일 무능하고 가난하고 무지하고 아주 인간  중에 제일 천물을, 천한 인간을 가리커서 인자라 그렇게 말했읍니다. 자기가  인자라고 맡할 때에 그는 자기가 인간 중에는 모든 면으로서 제일 무능하고  무가치하고 한 그런 자기라. 아주 못나고 천한 사람을 가리켜서 인자라 이렇게  샜는데 신약에 와 가지고는 인자라는 말을 예수님에게 대해서 만 말씀을  했습니다.

 그 인자라 말은, 하나님의 온갖 그 부요를 다 내놨기 때문에 소유적으로는 아주  가난해진 분이십니다. 영광도 존귀도 권세도 지혜도 전부가 다 아무것도 없는  그런 아주 소유적으로는 아주 거지, 아무것도 없는 거지, 또 지위적으로 아주 그  지위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지위없는 자, 또 그 존귀를 받는 무슨 영광적으로도  존귀나 무슨 대우이나 섬김이나 받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아주 참혹한  가난한 자가 되신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이시지마는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면으로  가난해 지시고 그렇게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가난해 지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참된 권세는 하나도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과 같은  그런, 하나님은 안 되지마는 하나님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권세적으로 가난해겼고 또 하나님의 그 지혜와 꼭 같은 그런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지자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도성 인신하시고 난 다음에는 당신의 지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었읍니다. 지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고 그 지혜에 대해서 아주  전공자가 되셨읍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지혜대로, 능력도 그렇습니다. 능력도  아버지의 능력만 가지고 했지 당신의 능력은 하나도 없었읍니다. 모든 면으로  이렇게 가난해지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가난해지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가 올 때에' 그 말씀은 아주 근본 부요하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부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그 부요를 내어 놓으시고 오신 분을 가리켜서 '인자가 올 때에'  그렇게 말씀했읍니다. 그것은, 왜 하필 거기에서 인자가 올 때에라는 그 아주  인격성을 가진 자로서는, 하나님은 신격을 가겼지마는 우리는 인격을 가겼는데  예수님은 신격과 인격을 다 가지신, 그 신격과 인격이 한 격위가 되신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되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모든 종류대로 모든  면으로 다 부요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오셨는데 이 부요를 인정하고 받는  자가 있는 것을 보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부요를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내놓으시고 이 부요를 주어서, 당신이 내놓으신 이  부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데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이  모든 부요를 줄라고 주님이 내놓으셨는데 이 부요를 내어놓으신 주님이 오실  때에, 그러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도 오시는 것이요 또 토 막 토막에 늘  평상시도 우리를 부요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실 때도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계속 우리에게 언제든지 오시고 또 마지막으로 구름타고  재림하실 때에는 마지막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오셔도 뭐 새로 받을 것이  없읍니다. 다 받아 놓은것이요 또 주님이 재림하실 그때에 마지막으로 결말을  짓는 것이지, 그때는 이제 심판주로 오십니다. 주님이, 지금은 인자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계속 오시지마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주님이 주시는  그 부요를 얼마나 받았느냐 하는 그 받은 대로 이제 심판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십니다. 이 심판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심판의 주로 오시니까 심판의 주로 오셔  가지고서 모든 성도들의 그 생애를 심판할 때에 인자됨으로 그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고 또 하나님의 참 모든 것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이렇게 하셨는데, 올 때에 주이 인자되심으로서 우리에게 끼쳐  주신 그 부요를 받은 자들이 얼마나 있겠느냐 하는 그 말이고. 그 건 재림  때에는 그것이고, 재림 안에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부요를  우리에게 허서 우리가 부요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가난해지셨는데 이렇게 모든  면으로 가난해지신 이 가난해지심을 줄려고 손에 들고 오시는데 이 부요를.

당신이 내놓은 그 부요가 있으니 그 부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손에 들고  오시는뎨 그때에 이걸 받을 자를 보겠느냐 하는 그 말입니다 이것을 받을 자가,  이 부요를 주는데 이 부요를 받을 자를 보겠느냐, 받을 자가 아주 희귀한 것을  가리켜서 주님이 말씀하신 그 사랑의 염려의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8절에 '내가 너를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장에는 벗이 와  가지고 떡을 달라 할 때에 그때 그것을 강청하는, 벗됨을 인해서는 주지  안하지마는 강청함을 인해서 줬다 소용대로 줬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말씀하시기를 밤낮 부르짖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거기에는 결론을  그렇게 맺었읍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가 생선을 달라하면 배암을 줘서  속일 자가 어디 있으며 또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줄 자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 신 서회  아버지시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밤낮 부르짖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18장에는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그 11장  비유에는 달라 하는대로 떡을 준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러면, 11장에 있는 그 기도의 제목은 어떤 것을 기도할 건 가?  거기에 기록된 기도의 제목은 자기에게 필요한 소원을 하나님에게 기도 하는  기도의 제목이 었고, 또 18장에는 자기의 원수를 해결해야 되는 원수에 대한  기도의 제목이 었읍니다. 지난밤에 우리의 기도가 다 원수의 원한적인 기도가  되어야 된다. 원한을, 원한적인 그 성격을 띤, 많든지 적든지 원한적인 기도여야  그 기도가 참 된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슨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서 무엇을, 그 기도의 방편을  이렇게 고쳐서 어떻게 열심있게 이렇게 하는 그것을 나중에 보면은 억지 기도가  되고 욕심 기도가 된다. 그러기에, 기도를 간절히 할라고 이렇게 하지 말고  기도의 제목을 먼저 생각해라 기도의 제목을 먼저 생각하면 그 기도의 제목이  원한성을 가진 기도의 제목이든지 또 소원성을 가진 기도의 제목이든지.

소원성도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다 소원성을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소원성이 얼마나 소원됐더냐?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됐다.

죽을 만침 소원이 됐읍니다. 심한 통곡의 소원이 됐읍니다. 또 당신이 그 소원을  하나님에게 부르짖다가 힘이 모지라니까 아버지에게 구해서 천사가 와 가지고서  힘을 도와 주셔서 그 도움의 힘을 입어 가지고서 그 소원을, 이 소원 이거 안  이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심한 통곡과 죽을 만침 고민해서 죽게 됐다  이랬읍니다. 주님이 그렇게 했습니다.

 고민해서 죽게 될 만침 고민 통곡 심한 간구를 하므로, 더 힘써 그 말이요.

힘써. 힘써. 심한 통곡으로, 심한 통곡의 간구로 죽기까지 고민된 이 고민으로  기도해서, 그 땀이 흐르는 것이 피방울이 흐르는 거 같더라 그 말은 그 저 참  마음에 소원되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얼마나 다급하고 소원하는 그 소원의  심한 고민 통곡의 간절의 그 소원이기 때문에 그 소원이 그 심정이 녹아서  내리는 그런 소원 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다 하는 것을  히브리서 5장에 말씀해 놨읍니다. 또.

 그러니까, 이 기도의 제목은 지난 밤에도 말한 대로 두 가지뿐인데, 두 가지  종류뿐입니다. 두 가지 종류뿐인데 그 두 가지 종류가 자기에게 기도의 제목이  되어지기를 원한성, 참 고민성의 소원, 원한성 고민성, 이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안 되는,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에 참 바짝 바짝 마르고 그 자살을 할 만한  그런 고민성을 가지고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안 되면 지금 나는 죽어야 된다 하는 그 자살성의.

고민성의 그걸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주심에게 대해서 그렇게 소원성을 가지고  기도했더라면 다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는데, 우리가, 원한성 고민성의 기도의  제목을 가지라, 기도의 제목은 둘 뿐이다. 고것을 지나 밤에 말씀했읍니다

{{}} 그 말씀을 그저 말로만 알아 들어서 녹음기 정도로 그래 알아 들을라 하면은  듣지마는 그 사람은 나중에 교만한 사람으로서 고거로서 망하고 맙니다. 제가  고걸 지식적으로 아니까 고렇게 앵무새 모양으로 다른 데에 가서 전하니  전해지지마는, 전해지기는 전해지지마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힘쓴다 성령의 감동으로 되기를 힘쓴다 그래서  너거에게 이 전한 복음이 가시 이루어지기를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내가  원한다 힘쓴다 그렇게 말했읍니다. 이러니까, 그러 사람은 점점 교만해지고  맙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 알고 자기가 자기를 알 고 자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알 수 있읍니다. 아무리 말로 억세게  굳세게 뭐 고함을 지르고 한다고 해도 그 영감은 하나뿐이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영감은 영감으로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도 하도 세상이 거짓부리 라서 지금 그 세상에 대해서도 참  원수의 원한이 믿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들어도, 아무리 성경 말씀을  가지고 증거해도 세상 말이 있고 인간 말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읍니다.

자기에게 거게 믿음이 들어가지 안하고 믿음으로 하지 안하는 설교가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되겠읍니까? 믿음의 설교 하지 안하고 인간 말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악령이 그 속에 들어 있을 때에는, 교인들도 악령이 그 속에 들어  있을 때에는 그 악령적인 말을 해야 듣기가 좋습니다. 악령적인 말을 해야  재미도 있고 듣기가 좋지 성령적인 그 성령의 감동의 말씀을 전하면 발동을 치고  발동이 나고 몸부림이 나고 그리 안 하면 잠이 오고 그리 안하면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기에, 설교하는 단 위에 선 하나님의 종을 처음에는 그저 뭐 좋지도 안하고  나쁘지도 안하고 그저 하나의 형식의 한 기관들로 이렇게 보고 있다가 그 사람이  반드시 은혜를 받을 때에는 먼저 강단에 있는 하나님의 종이 밉기를 시작합니다.

밉습니다. 밉고 지루하고 밉습니다. 밉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의 종이 마음에 갈급해서 자기 눈이라도 빼주라면 빼 줄 만침 전부가 그  가까운 종에게 기울어져 가지고서 하나님에게로 연결됩니다.

 종에게 기울어질 때에 그 종이 그 기회를 잘 이용해 가지고서, 종에게 기울어질  때에 하나님에게로 중매해서 연결을 시키면 잘 연결이 되는데 그때 그만 연결  시키지 못하고 자기에게 기울어질 때에 자기 가 왕이돼 가지고서 자기가 그것을  가로막게 되면은 사탄이 되고 맙니다. 그 자기에게 기울어질 때에 자기가 그  존경과 그 사모와 그 존대를 자기가 받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지느냐 그 다음에는 이제 교인들을 하나님에게 기울이게, 하나님에게 그  연락 연결되고 하나님에게 소속해지는 그것보다도 자기에게 소속해지는 것을 더  좋게 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 자기에게 소속하도록 노력을 하고 자기에게  소속을 하지 안하면 섭섭해셔 그 사람이, 예를 들면은 그 교인이 아주 하나님과  밀접해지면. 정말로 밀접해져서 그 사람이 참된 신앙을 독실히 가지게 되면은 그  교역자가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교역자가시기 합니다. 그 시기는  무슨 시기냐 하면은 하나님에게 들어붙고 제게 들어붙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간절하고 제게 간절치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마귀가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막바로 하나님을 시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 같은 은혜 역사라도 제 교파에서 해야 되고 제 교파에서 하는  것보다도 제가 해야 되고 하는 그것은 자기는 자기도 모르는 무서운 저주 받을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발견치 못하고 지금 벌로 덤비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 역사에서 삐뚤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각없이 하나의 그저 제도적으로 의식적으로 그러하지 마는  나중에 그것이 은혜 받을라고 할 그때에는 은혜의 기관인 그가 미워집니다.

미워지고 싫어 집니다. 왜? 그 말씀이 오니까 자기에게 있는 부패성, 자기에게  있는 옛사람 그놈을 죽이니까, 자기를 죽이니까. 자기에게 거슬려지고 자기에게  듣기 싫고 자기를 해치는 말이기 때문에, 설교이기 때문에 듣기가 싫어서  밉습니다. 미워서 고만 짜증이 나고, 짜증이, 설교를 들으면 짜증 이 나고  시간이 지루해서 짜증이 나서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 그만 그쳤으면 좋겠다. 그  자꾸 그쳤으면 좋겠다 했는데 설교가 자꾸 계속해 나오니까 속에서 지금 죽을  지경이라 말이요. 죽을 지경으로서 이렇게 고민하고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그  사람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그 순서요. 차차 그 은혜에 깊이 들어가게 되는  그런 순서인데 그때 참고 견디야 되지 사람들이 그때 찬고 견디지 못하고, 그만  잘난 사람들은 참고 견디지 못해. 잘난 사람들은 고만 반발하고 잘난 사람들은  그리 안 하면 제 마음대로 행동하고 또 돌아 가 가지고서 반대 운동이나 해서  이렇게 마귀 노름이나 하고 고라의 당파 노릇이나 하고 이래 하다가 망하고 그만  이래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못난 사람은 견딥니다. 못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야지? 자기 마음대로 주장할 수도 없고 이러니까 억지로 속을 썩입니다.

속을 썩이고 고민스러워도 견디고 견디고 얼마동안 견디고 있으면은 고놈이  이제는 죽어서 쫓겨납니다. 쫓겨 나면, 고놈이 쫓겨나면 고놈이 쫓겨난 고  자리에 성령님이 오십니다 그 차차 차차 이 단계가 이렇게 많은데, 요 자리에  마귀가 점령하고 있던 요놈이 쫓겨나면 성령이 와서 점령하고 또 요 놈이  쫓겨나면 성령이 점령하고 자꾸 이렇게 점령해서 지금 후패성을, 악령을 이것을  다 쫓아내서 우리의 심신을 단계적으로 성령과 진리가 점령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점령해서 점령을 당할 때에는, 그때에는 전투가 빌어지고 그때에는  대적이, 자기를 점령해서 멸망시키는 그 성감과 진리의 역사가 대적이 되어  지다가, 대적이 되어지니까 자기의 심신을 거머허고 '이 뭐한다고 설교 말씀  이런 말씀을 듣노?' 이 자꾸 이렇게 반대를 하고 '에이 지루하기는, 설교는  와그리 길어 은혜도 없이.' 자꾸 이렇게 반발을 이래 합니다. 반발을 이래  하다가 실력있는 자는 그만 제 마음대로 그만 나가 버립니다. 나가서 딴 교회로  가든지 그리 안 하면 그 교회에 있어도 뒤에서 자꾸 고라 모양으로 당파  운동이나 하고 이 반대 운동이나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면에  무능자는 그렇게도 할 권리도 없고 하니까 억지로 그 자리에서 참고 고민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이제 영감과 진리를 반대케 하던 이놈이 할 수  없어 못 견뎌서 쫓겨납니다. 쫓겨 나게 되면은 그때에 그 사람이 그렇게 밉고  싫던 강사가 그렇게, 또 그 말씀이 지루하던 사람이 말씀이 달고 그 설교 하는  자가 마을에 귀하게 보여지고 자기가 눈이라도 돌라면 빼 줄 만침 전부 그  마을이 그 설교자에게 기울어 집니다. 그러면, 설교자에게 기울어지는 그것이  중보자에게 기울어지는 것인데 그때에는. 기울어질 때에 그때에 하나님 께로  연결을 시키면 연결이 잘 됩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께로 연결하지 못하고 그만 자기가 거기에서, 자기에게  기울어질 때에 자기가 차지를 하고 하나님에게로 이렇게 중매시키는 일을 하지  안하면 그만 자기도 절단나고 그 사람도 절단나서 평상 그 놀음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게 자라게 되면은 하나님에게 연결시키는 것 보다도  교인늘을 자기에게 연결시키면 마음이 기쁘고. 암만 하나님과 연결 이 되어도  자기에게 연결이 안 되면 기쁘지 안하고 이렇게 해서 결국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가지고서 하나님 대신 하나님 노릇을 하는 이런 무서운 그 자멸하는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 1서 5장 마지막 절에는 보면 자기를  삼가서 우상을 멀리하라 그렇게 말씀한 말씀이 마지막에 결론입니다.

 그런고로, 그런 사람을 비유해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메어다 놓으면서  구걸하면은 같이 갈라 먹고 이렇게 하고 그 사람이 병신 노릇을 더 해야 구걸을  많이 하기 때문에 병신 노릇을 더 하기를 원하지 그 사람이 성한 사람 되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은 없었읍니다. 그날은 가서 만일 아프다 소리를 좀 적게  하든지 그리 안 하면 얼굴 빚이 조금 평안하고 기쁘다 하는 그런 얼굴을 많이  가지면은, 표정을 가지면은 메고 온 사람들이 '저기 오늘 저라는 걸 보니 오늘은  구걸을 적게 할세 오늘 누가 많이 안 줄세.' 그날 아주 아픈 형상을 많이 해서  연극을 많이 하면은 '이제 구걸 오늘 많이 하겠다' 또 많이 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참된 기독자 노릇을 안 하고 병신 노릇, 사기 횡령 협잡  거짓말 뭐 이렇게 하는 그것이 다 병신 노릇인데 그렇게 해 가지고서 돈을  벌면은 그 돈 가지고서 연보 내고 십일조 내면 십일조가 얼마되고 얼마된다  하는, 그 심일조가 참 깨끗한 십일조가 되지 안하고 사기 협잡 횡령 뭐 모든  도박 이렇게 전부 죄지어 가지고서 구걸한 것을 가지고서 돈이나 많이 내변은  교회 유지 잘 되고 또 생활 질 되고 이러니까 그것만 거석하지. 이 사람이 이  구걸하고 있으니 구걸하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이런 참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될 터인데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 이 어찌 되나 해서 고민  고통은 하나도 없었으나 거기에 참 하나님의 종이 갔을 때에는 말하기를 -그는  그런식으로서 돈을 구하니까-은과 금은 내게 없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 걸어가라 일어서라 하니까  일어섰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그 사람은 성전에 자유로 출입하는, 이제까지에 있어도  실패만 했는데 그때부텀 성공을 했습니다. 성공을 하고 나니까 이제까지 뭐  업어다 놓고 메어다 놓고 했지마는 그자들은 상관없읍니다 그자들은 다  떠나갔읍니다. 그자들과는 이제 아무, 마지막에 혹 나를 메어다 놔서 감사하다는  그 한 마디나 있었을까 이제까지 자기에게 대한 것은 그저 구걸만 시켰지,  똑똑히 깨닫고 보면은 나를 구걸만 시켰지 나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하는  낫게 한 일은 하나도 해 주지 못했다 하니까 그 사람은 상관없이 다 이별해  버렸읍니다. 이별하고, 낫게 해준 그 사람에게 따라서 줄줄 따라 다녔읍니다.

결국은 교역자가 그 사람을 하나님에게 연결시킨 그 분량 가지고서 자기와  연결이 되지 하나님과 연결시키지 안한 그런 나머지기 분량 가지고서 연결된  것은 마지막에는 다 원수됩니다. 왜? 차차 차차 세상에 떠나갈, 떠날 때가  될수록이 멀어지고 마지막 죽을 때에는 더 멀어지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갈라고  부할할 때에는 더 기가 막히고 하나님 심판 앞에는 원수가 될 것이 고 이러니까  우리는 얼리 보고서 무엇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그 요것을 꼭 단단히 기억하십시요. 인자가 올 때라는 요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만을 말할 것 아닙니다. 재림도 인자가 오는 때지마는 외나 재림 때에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은혜의 구주로 우리에게 주실라고 인자가 우리에게 주실라고  오지마는 마지막 때에는 인자가 오는 것은 심판하러 오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줄라고 이 모든 것 다 내어놓고 이거 너희에게 줄라고 왔는데 얼마나  받았나 보자 하러 오십니다. 얼마나 받았나 보자 하러 오시는 것고, 지금은 자기  현실 현실에서 주님이 그 부요를 우리에게 주실려고 그 현실에 오시는데 오실  때에 주님이 이 부요를 내게 주시는 그 이자됨을 인정치 안하고, 하나님을  인정치 안하지, 하나님의 이 약속한 약 속을 인정치 안하니까 인정 안 하는 자는  부인하는 자입니다. 인정도 안 하고 부인도 안 하는 자는 없읍니다 인정 안 하면  부정하는 자요, 약속을 인정 안 하는 자는 없읍니다. 인정 안 하면 부정하는  자요, 약속을 인정 안하면 부정하는 자요. 그 인정하고, 인정하는 자는  소망하고, 인정하고 소망하는 자는 실상으로 행해서 노력하게 되고, 인정 안  하는 자는 부정하게 되고, 부정하는 자는 소망 안 하게 되고, 소망 한 하는 자는  예수님의 반대인 십자가의 원수의 걸음을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오늘에 하나님 앞에 얻는 것은 믿음이 없으면 얻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디서 생기는가? 믿음은 어디서 생깁니까? '믿음을  보겠느냐' 했는데 믿음은 어디서 생깁니까? 믿음은 어디서 생기는지 믿음이  생기는 그 길을 하나 말해 봤으면 좋겠는데, ○○○목사님. 네, 고거 하고  있읍니까? 고거 해야 됩니다. 고거 해서, -아는 것이 소용없어. 지식적으로 알면  자기를 망칩니다 그 복음은 내가 다른 사람 구원하는 복음이 아니라 먼저 그  복음으로 내가 구원받고 내가 구원받고 받은 것 만침 다른 사람에게 줄라면 줄  수가 있는 것이지 제가 받지도 안한 거부하는 그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다른 사람까지 망치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가 그 구원을 받아야 되니까 복음을  자기 복음으로 자기가 받고, 자기 복음으로 받아서 자기가 구원얻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 성경에는 그렇게 해놨지마는  복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 간증이요. 간증.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되리라' 그 자기가 전하는 것, 간증하는  것, 설교는 간증이어야 됩니다. 설교는 간증이지, 간증이 아닌 증거는 자기가  복음을 받지 안하고 증거하는 것이 증거요 가증은 자기가 받아 가지고, 내가  보니까 이렇더라 하는 그것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서 그 다음에 줄 때에 그걸  가리켜서 간증이라 그떻게 말합니다. 간증이 되어야 되지 증거만 되면 안  됩니다.

 그래 우리가 믿음이 되는 것은, 믿음이 되는 것은 인정이 되고 거기에 또  따라서, 거기에 따라서 순종해서 사는 것이 믿음인데 믿음이 없으면 기도를 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어디서 생기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생각하고 이 말씀과  자기와 대조를 합니다. 이 말씀과 자기 과거와 대조하고, 이 말씀과 또 자기의  현실을 대조하고, 또 이 말씀라 자기 미래를 모든 계획을 대조하고, 또 이  말씀과 자기 자체를 대조하고 자기 자세의 모든 그 인간성, 인간성을 이와 같이  대조할 때에 거기에서 자꾸 잘못된 것에 수정할 것이 있고 자꾸 이럴게 인정하게  되면은.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게 되 면은 자기가 자꾸 인정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에는 성령의 감하가 내제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성경  말씀을 받고,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은 벌써 진려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님이 자기 영파 함께 자기 육체 안에 계시고 또 자기 안에  계 시는 성령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밝도록, 자기 마음을 환하게 밝게 할라고  애를 쓰고 또 성경 안에 지금, 성경, 문서 성경 안에 계시는 영감은 우리에게  바로 믿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깨닫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내 안에 있는  영감은 받아 들일라고 애를 쓰고,  또 내 안에 있는 영감 역사는 내게 있는 부패성을 이걸 치고 이 마귀에게 사로  잡혀 있는 이 심신을 자꾸 깨닫게 하고 타이르고 달래고 해 가지고서 그 심신이  마귀를 배척하고 그 성령을 영접하고, 인간의 모든 자 율 주관 모든 세상 지식  고것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영점하도록. 이제, 인간 지식도 필요 있지마는  인간 지식 이 하나님의 지식적인 필요는 털끝 만치도 없읍니다. 요것도  여러분들이 좀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도 필요합니다. 인간의 지식도 필요하지마는 인간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 그 대용으로, 하나님의 지식 대용으로 하나님의 지식 대신이 될  수 있는 그런 양은 털끝 만치도 없읍니다. 요것을 딱 거머쥐고,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도울 수 있고,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도록,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도록 하나님의 지식에 앞잡이가 되고  하나님의 지식에 보조 지식이 되고 또 하나님의 지식에게 이용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지식이 척 가서 전페지는데 그 지식이 수종을 들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전하게 되면은 그 속도가 빠르고 또 능률이 많이 올라 가서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종의 위치에서 그 지식이 역사하지 그 주인  위치에서는 할 수 없는, 주격 위치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생각해서 주야로 묵상한다. 묵상  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생각하면 성경 말씀 안에 성신의 감동이  이 안에 계시지, 또 내 안에 성신의, 중생시킨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자꾸 밝게  옳게 바르게 깨닫도록 이렇게 하지. 이러니까 실은 성경 말씀을 듣고 자기가  중생된 사람은, 중생된 사람은 성경 말씀만 가지면 자기는 아무 한테도 배우지  안해도 성경을 다 완전히 알 수 있는, 그 성경에는, 성경에는 그 자체 안에  똑똑히 알 수 있는 성경의 명백성이 있다는 것을 모든 학자들이 다 통일해서  알고 모든 신자들이 다 이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지식입니다 성경안에는  명백성이 있다 성경은 똑똑히 알려 주는 그런 능력이 그 안에 들어 있다 네,  들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은 요새는 어떤 사람을 지금 요구하고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하겠느냐? 이 세상에서, 삭개오가 주님을 찾을라 할 때에 그 앞에 모든  사람들이 다 가로막아 가지고서 주님을 도무지 보지 못하게 하던 이 모든 유전,  모든 이 통계되어 있는 이 세상, 현재에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모든 교리 신조  모든 전통 이런 모든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모든 것들 다 이것들을  제해 버리고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처럼 이렇게 마구 주님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 달라붙는, 신구약 성경 - 사람에게 전도 받지 안하면 중생 못 합니다.

전도 받아야 중생을 합니다. 전도 받아서 중생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자기  구주인 것을 알고 중생된 사람이 믿는 법칙이 성경에 있다 하는 것을 깨닫고,  신구약 성경 한 권만 거머쥐고 아무 사람도 접촉하지 안하고서 이 신구약 성경  가지고서 연구하고 생각하고 고대로 제가 조그만 방에서 혼자 살아 보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살아 보고 하는 요런 사람이, 이 속화되지 안하고 이 모든  잡된 것에 물들지 안하고 이런 병 저런 병 믿음의 병 모든 진리의 병 전도의 병  복음의 병 병들지 안한 그런 사람이 어디 산중에서 쏙 빠져 나왔으면 참  좋겠읍니다. 그런 사람을 기대하고 그런 사람이 나와야 살리지, 뭐 전통으로  되어 있는 그거는 전부 그 속에는 어떤 깨달은 사람이 하나 있으면 깨달은 사람  하나 있는 그것을 문서로 기록해 가지고서 하나님 집어 던져 버리고 그것만  가지고서 우상같이 해 가지고서 또 그것만 배워 가지고서 또 그것만 배워  가지고서 앵무새 모양으로 팔아 먹고 그것만 가지고, 전부 이렇게 성령의 역사가  상품이 돼 가지고 있읍니다. 성령의 역사가 물건으로 팔아 먹는 상품이 돼  가지고 있고 이것 가지고서 지금 구멍가게 차려 놓고 지금 상품으로 이거 팔고  있읍니다. 아 나는 지금, 너는 뭐 너 거 집에 다 조작배기로 만들어 가지고 파는  그것만 팔지마는 나는 세계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이것을 지금 많이 사가지고  왔기 때문에 물건 사러 오너라 물건 사러 오면 거기에서 이런 학자는 이렇고  저런 학자는 저렇고 이러 것 다 죽 소개를 하면은 그 사람 아 새 물건이  들어왔다 하며 이라지만 암만 외와봤자 그겁니다. 그런고로 혼자 하든지 여럿이  하든지 이것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제 ○○○ 목사님이 대답한 대로 믿음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주야로 묵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그 말은 생각한다 말입니다. 생각하니까. 자꾸 생각을 하고  생각하니까, 성경만을 가지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 가지고서 신구약 성경도리를  다 바로, 다, 다 바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까 없읍니까? 아무한테도 배우지  안하고 성경, 중생된 사람이 성경,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서 자기가 묵상하고 또  고대로 또 한번 시험해 보고 묵상하고 또 실험해 보고 묵상하고 실험해 보고  요렇게 하면 성경에 있는 이 진리의 도리를 완전히 깨달을 수가 있읍니까  없읍니까? 그거 한번 말해 보십시요.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네, 있읍니다. 요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인간들의 주석들을 다 던져 버리십시요. 불에 살라  버리십시요. 저에게 배운 노트도 다 사뤄 버리십시요. 사루고, 이제 그만침  알았으면 신구약 성경과 그 또 자기 중생된 속에 영감이 있고 자기가 그대로  자꾸 실험을 해봐요. 이 세상은 실험 무대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연습하는  곳이요, 또 이라고 난 다음에는 됐나 안 됐나 시험을 한번 해 보는 곳이요, 또  거기에서 시험을 한번 해 보는 곳이요 연단하는 곳이라 그 말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리 되면 이거는 연성이 됐다 이건 됐다 얼마든지 자기가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시험을 통과하고, 시험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연단을 통과하고, 연단을 통과라고 난 다음에는 그 다 음에는 온전한  연성이 되고 그때는 영원 계속의 온전한 인내가 됩니다. 마지막에는 인내가 된다  이거요.

 이렇게 된 것이라야 될 터인데 이것은 전부 뭐이냐? 이 말씀을 알라고 하는  데에 자기를 기울이야 되고 또 자기가 하나 하나 실행하여 실험하는데, 실험하는  데에서 체험하는 데에서 경험하는 데에서 알게 되고 전부 이건 자기가  밑천입니다. 이거는 바로 주고 산다 말이요. 자기를 주고 사는 것이라 말이요,  이렇게, 이라면은 자기가 참 옳고 바른 것을 자기가 알았기 때문에 이것을 척  말을 하면은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부인을 하고, 양떼는 좋아합니다.

양떼들은, 그 하면은 고만 양떼들은 녹고 은혜를 받지마는 거기에서  조그만치라도 자기가 주님의 대리자 입장에서 주님화 되어서, 주님화된 것이  아니라 우상화되어 가지고, 자기가 우상화된 그자는 반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까지 듣지 못한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증거할 때에, 그 증거할  때에 제일 예수님의 증거를 잘 들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평신도들입니까 은사  교권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어떤 사람들이지요? 펑신도들이 환영을 했읍니까  그런 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바리새 교인들이나 이런 아주 은사에 유력한 그런  신앙 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환영을 했읍니까? 어떤 사람 들이 환영을 했읍니까?  평민입니까 그런 먼저 참 대제사장 서기관들 제사장 들 또 이 바리새 교인들  그런 사람들이 환영을 했읍니까? 누가 했읍니까? 그런 사람들이 환영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그런 사람들이 환영하지 안했지요.

 그러면, 평신도들이 환연했읍니다. 평신도들은 듣고 깜짝 깜짝 놀랬읍니다.

'아이쿠. 우리가 잘못 배웠다 예수를 새로 믿어야 되겠다' 이제까지 배워서 예수  믿은 것은 잘못 믿었고 이제 예수를 참 새로, 새로 믿기 시작해야, 새로 믿어야  되겠다 하고 난 다음에 마귀가 와 가지고 잡아 먹습니다. 마귀가 와서 잡아  먹습니다 새로 믿어야 되겠다. 아, 이제까지 믿은 것은 헛일이야 새로 믿어야  되겠어 하니까 새마귀가 와 가지고서 뭐 이렇고 저렇고 해 가지고서 그걸 싹  없애 버립니다. 없애고. 그때 예수님이 한 설교는 바로 했지 뭐 틀리게 하지는  안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제일 원수된 것이 누구입니까? 제일 원수가  누구지요? 제일 원수된 사람들은 서기관, 서기관, 성경 가르친 사람들이라 이  말이요. 성경 가르치는 사람들, 그때에는 제사장들, 또 열심히 그 잘못된 교훈을  받아 가지고서 그 교훈대로 열심있는 바리새 교인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안했읍니까? 오늘도 그날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가 믿음이 생기는 것은 성경 말씀을 보고 자꾸  묵상하는 데에서 생겨진다. 묵상하는 데에서는 자기를 기울여야 된다. 생각하고  연구하는 데에는 문서적으로 연구를 해야 되고, 연구할 때에 신구약 성경이면  명백성이 다 있는데, 신구약 성경에는 신구약 성경만 하면 똑똑히 아는 그 속에  갖출 것을 다 갖추어 가지고서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있는데 뭐 한다고 주석을  자꾸 펴고 보느냐 그 말이요.

 그러기에, 주 기철 목사님이 그분이. 나는 그분의 장점을 내가 보는 것은 그  물론 총회 때에 그때에 신사 참배는 그것은, 그것은 우상숭배다 하는 그런 말을  외쳤는데, 그때에는 우상 숭배라고 말을 외치는 것은 믿는 사람은 다 외칠 수  있읍니다 믿는 사람은 다 외칠 수 있소. 그것은 그렇게 나는 놀래지 않습니다.

외칠 수 있소. 아 그것은 번연히 우상 숭배인데 이거는 국가 의식이고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결의하는 그것이야 자기가 목이 달아나도 그 자리에서 외칠  수야 다 있지 그 뭐 진리를 아는 사람은 다 외칠 것입니다. 아마 그때, 그때,  저도 있었으면 외칠 확신이 있읍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왜? 나도 반대해 나왔기  때문에, 늘 반대해 나오면서 그들이, 일본 부장이 와 가지고 그렇츰 했지마는  신사 참배 안 했읍니다. 안 한다고 계속 반대해 나왔읍니다. 나는 못 한다. 이  내가 인식이 안 된다. 반대해 나왔읍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반대 안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에게 대해서 내가 장점으로 보는 것은, 그분이 말하기를 자기가  세상을 뜰 때에 자기 설교한 그 설교를 기록한, 그 설교 필기한 것 그런 것을 다  태워 달리고 말을 하고 그것을 태워 없애 달라 하는 그 말에 대해서 나는 존경을  하고 '아! 그 주목사님이 참 높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것이 들어서.

혼을 빠져 나갔는데, 성경의 영감은 빠져 나가 버리고, 영감은 빠져 나가 버리고  쩌꺼기 그 윤곽만 가지고 괄아 먹는 상품으로만 돼져 버리고 사람들을 교만케만  하고 사람을 겸손케 회개시키는 일은 하지 못하고 교만한 그 결과만 맺게 되기  때문에 그 설교를 다 태워 주십시요 하는 간청을 했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내가,  그 뒤에 그때 얼마나 태웠는지 모르지마는 자기 있는 설교집을 다 태워 달라  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도 태우기를 원하고 그저 성경 있으니까 성경과  영감이면 되지 이 모든 이것은 그 시대시대, 요 시대에는 필요했지마는 고 다음  시대에는 필요치 않다 요 시대에만 필요하다. 또 그 시대 어느 시대든지 변동 안  하고 필요한 것은 신구약 성경에 다 기록돼 있다 영감으로 다 된다 이렇게  말했다 하는 그거 위대 합니다.

 칼빈도, 칼빈이 기록한 그거 가기고서 영감받는 사람은 적고 그것 가지고서 그  줄기만 가지고서 상품으로 팔아 먹고 그것 때문에 큰 소리 하고 신구약 성경은  한번도 읽지 안하고, 내가, 누구에게 내가 그런 말을 들었읍니다. 자기가 신학을  공부를 하고 거의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지위에 갔지 마는 정말 참말로  신구약 성경은 한번도 내리, 한 번도 내리 다 읽어 본 일은 없읍니다. 그렇게  말합디다. 그걸 솔직하게 그라면서, 내가 옆에 누구 가 있고 서로 대화할 때에  그 사람이 참으로 이랬다 하는 그것을 자복을 하는, 그 사람 나는 진실한  사람으로, 희망있는 사람입니다. 없어도 거짓부리로 자꾸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성경을 자꾸 생각하고 묵상하면 묵상하는 가운데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묵상하는 가운데에서 둘이 나오는데, 묵상하는 가운데서 그 둘이 자꾸  나옵니다. 묵상하니까 그 둘이 조금씩 보이다가 차차차 더 반이 보이고 작게  보여집니다. 그 묵상하는 가운데에서 둘이 차차 자꾸 나타나 보여지는 데 그  보여지는 것이 뭐이지요? 뭐이 보여지지요? 보여지는 것 한번 대답 해 보십시요.

저 목사님들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목사님들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저 ○  목사님. 녜, 옛사람과 새사람이 보여집니까? 네, 그것도 보여지겠지요.

 그런데 종괄적으로 말하면 원한인 원수가 나옵니다. 원수, 보면 원수가  나옵니다. 원수가 나오고 또 원수 반대의 자기에게 모든 것을 부요 케 해 줄  인자가 나옵니다. 인자가 나오고 원수가 나오고, 그러니까 원수에게 대해서는  원한이 나오고 또 인자에게서는 자기에게 간절한, 심한 통곡의 고민이. 자기에게  거기서 고민의 그 소원이 나옵니다. 이라면 이제 거기에서, 거기에서 나오는 그  기도라야 그 기도가 되어지고 그거라야 옳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거기에서 조금 나오면 조금 자기가 기도할 것이고 많이 나오면  많이 기도할 것이고, 그것이 더 크게 보이면 간절이 나을 것이고 막 막 다급할  것이고. 죽기까지 고민하는 이런 고민이 나을 것이고,  또 이 원수를 주님이 갚아 주지 안하면 안 되겠다고서 이렇게 원수의 원한이  나올 것이고 이렇게 나와서 그것이 기도가 돼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하루도  이틀도 식음을 전패하고 자꾸 이러니까 옆에 사람이 기도하는데 방해하고  명상하다가 또 끌려 나오고 이러니까 이거 안 되겠다 나는 아무도 없는 데로  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고 사람 없는 데에 가 가지고서  그만 지내다 보니까 그 하루도 이틀도 며칠이 됐는지도 모르제 하다 보니까  보름도 되고 이십일도 되고 열흘도 되고 이라는 그것이 기도이지, 갔다가 지금  못 견디겠는데 뭘 갖다 놓고 지금 며칠 됐는데 하루 견디기가 죽을 지경이고,  이더니까 그저 밥은 안 먹어도 밥 내신에 얼마든지 그 비타민 이라든지 뭐, 뭐  요새는 주사 하나만 꼭 찌르먼, 하루 세 번이가, 하루, 하루 한번 찌르면  된다던가 그 일주일 만에 한번 찌르면 된다던가. 뭐 그 말을 내가, 센트루이스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와 가지고서 어떤 그 의사가. 그분은 밥을 안 먹는답니다.

고 주사를 놓고, 주사를 놔 가지고 그래 산답니다. 주사를 놔 가지고서 사는데  그것이 참 좋고 돈 많은 사람들이 그거 맞아 가지고서 살고 이랬는데 고 사람이  마흔 일곱 살인가 몇 살인가 되어서 죽어 버렸어요. 나중에 죽을 때 결론이  나기를 자꾸 주사만 맞으니까 그 속에 창수가 들어붙고 -필요가  없으니까-들어붙고 들어붙어 가지고, 창수가 딱 들어붙어 가지고서 나중에  죽었어. 지금은 그거 주사 맞는다고 안 되고 식물이라야 된다 하는 그것이  발견됐다고서. 그 아이들이 그 의사가 아주 너무 참 실력있기 때문에 그  의사에게 가 가지고서 담당 의사로 꼭 모시고서 이와같이 있는데 그 의사는  그렇다고 자랑을 하더니마는, 처음에 와서는 자랑을 하더니마는 그 뒤에는  편지로 '그 의사가 세상을 떴읍니다.' 그 결과는 식물 가지고 안 하고서 그 속에  창사나 모든 것이 들어붙어 가지고서 죽었다고 이래 됐다고 그렇게 편지가  왔어요, 오래 못 살아. 그래 뭐 인간이 꾀 파야 다 자기 죽을 꾀나 파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인간에게 영생하는 그 양약도 없고 또 장수 하는 양약도  없읍니다

 이렇게 자꾸 성경 말씀을 보고 이라면은 원수와 원한이 됩니다. 그것이  생겨집니다. 이런 기도라야 되는데, 그 기도할 때에는 이 두 제목을 택해야 되고  그럴 때에 기도할 때에 이제, 물론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는데, 그  믿음으로 그 두 가지가 나왔고 나올 때에 이제, 기도할 때에, 그. 다음에는 일을  주는 것이, 믿음에서 그 기도의 제목이 나왔고 기도의 제목을 계속 끌고 나가는  것, 계속, 산이 와도 끌고 나가고 들이 와도 끌고 나가고 바다가 와도 끌고  나가고 끌고 나가는, 그 끌고 나가는 그 인도자는 뭐입니까? 끌고 나가는  인도자, 계속, 믿음에서 나온 두 가지 기도 제목을 이걸 계속 기도하도록 끌고  나가는 인도자는 누구지요? 저 우리 ○○교회 목회를 잘 하고 있는데 한번 물어  봅시다. 저 ○조사님, 끌고 나가는 인도자는 누구지요? 무엇이 인도합니까?  무엇이 인도하지요? ○○○ 목사님, 양심이 인도해요? 그 핀트가 안 맞는데.

○○○목사님, 현실에? ○○○목사님, 무엇이 끌고 나가는지? 끌고 나가는 거는  뭐이 끌고 나가지요? 소망이 끌고 나갑니다. 소망이 끌고 나가요. 이 소망이  끌고 나가는데 그만 끌고 나가는 소망이 없어지면 무엇됩니까? 낙망됩니다  낙망되면 이제까지 기도한 거는 다 죽었습니다. 이제까지 기도한 것은 다  죽었습니다. 기도한 건 다 죽었는데 그 죽어도 시체가 남아 있소. 죽어도 시체가  남아 있소. 시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것을 길러 놓지 안한 사람,  기도하지 안한 사람은 살아 있어봤자 빨가이 이제 갓 낳아 놓은 거같은 것, 갓  낳아 놓은 한 뼘되는 것 조그만하이 그렇지마는 벌써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어른이, 장골이 됐기 때문에, 장골이지마는 죽었으니까 어린 아이 만치도 힘이  없다 그 말이요. 그만 죽어 송장이라. 그러나 다시 회개를 하고 소망을 잡으면  그 장골이 일어납니다. 이제까지 기도한 기도가 죽어지나 그 기도가 다시 살아서  효력을 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서 소망하는 그 소망은 나를 끌고 나올 나의  대장입니다. 그 소망은 내 원한을 이루어 줄 대장이요 또 내 모든 심한 통곡이  될 만침 내가 원하는 인자의 모든 부요를 내가 얻을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둘을, 이 소망이 나를 끌고 나갑니다. 처음에는, 처음에는  시작하기를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자기를 기도를 출발케 했고, 기도 제목이  출발케 했고 그 다음에는 이 소망이 들어서 계속 끌고 나갑니다. 소망이 끌고  나가다가, 소망이 끌고 나가다가 또 이제 자기의 두 가지 기도 제목이 또 자기를  힘을 주고 기도 제목이 밑에 나무 뿌리와 같이 이와같이 나에게 힘을 주고, 또  소망이 내 위에 공간에 가치처럼 나를 끌고 나가서 이렇게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왜 기도가 힘이 없게 되느냐? 힘이 없게  되는 그 이유는 뭐이냐?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차차 식어져 갑니다.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식어져가면 이제 힘이 줄어집니다. 기도 제목이 식어져가면 힘이  줄어지고 기도 제목이 더 환하게 명확하게 밝아지게 되면은 그 기도가 점점  힘있게 됩니다. 기도가 힘있게 열심히 힘이 있다가서 팍 갑자기 팍 죽어져  버립니다. 갑자기 그 힘있는 기도가 딱 죽어진다 말이요. 죽어지는 것은 뭣  때문에 죽어집니까? 무엇이 와서 죽였습니까? 낙망이 와서 죽였습니다. 낙망이  와서 죽였소.

 그러면, 그럴 때에 우리가 낙망치 아니하고 계속 기도하면, 낙망 안 하고 내가  소망하면 그 소망은 어디서 나왔는가? 소망도, 소망도 성경 말씀을 통한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진리에게서 나왔고 영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에서 소망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소망이 빈약해 질 때에도 또 진리와  영감을 또 연구합니다. 또, 두 가지 원수가 빈약할 때에도 또 진리와 영감을 또  묵상합니다. 진리와 영감을 묵상할 때에 두 가지 기도 제목이 튼튼하게 나오게  되고 또 소망이 튼튼해지고 이 두 가지만 튼튼해지면 그 사이에 있는 열심이라  하는 것은 저절로 됩니다. 열심이 저절로 일어나게 되요. 이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이 묵상은 원천입니다. 원천  거기에서 샘물이, 거기에서 두 가지 기도 제목이 솟아 나오는 샘물이요 소망이  솟아 나오는 샘물이요, 이래 소망이 나오는데, 그 두 가지가 합해지면은 자연히  기도는 나와져서 열심이 간절이 심한 통곡 통분 뭐 밥굶고 눈물 흘리면서 마음에  이 원수는 못 견뎌서 그런 심한 뜨거운 기 도가 나오게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기억히십시요. '여호와의 율법을' 그 하나님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이제 이 묵상하는 것. 성경 말씀으로 생각해서 실험하고 경험하고  이래서 연구를 하는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연구해서 두 가지 기도 제목이  나오도록 연구를 하고, 또 이 기도 제목이 큰데 이걸 어떻게 이루겠느냐  연구하니까 소망이 나옵니다. '된다!' 소망이 나옵니다. 소망이 나오는  거기에서, 이제 연구에서 두 가지 나왔고, 기도 제목과 소망이 두 가지가  나왔고, 두 가지가 나오는 거기에서 기도하는 열성이 나왔고 나왔는데, 그라다가  기도가 만일 식어지게 되거들랑, 식어질 때에는 어디로 가야 됩니까? 어디로  가야 되지요? 말씀을 생각하는 묵상으로 돌아가야 돼. 묵상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묵상으로 돌아가 가지고서, 돌아가면 또 이 세 가지가 다 새로와집니다.

 새로와지는데,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에게 내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낙망을  무엇이 주느냐? 소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소망은, 소망은 하나님의 목적하시고 자기 소망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이  생명건설 운동이기 때문에 이 대적은 누가 대적이겠습니까? 악령이 대적이요  악령이 대적이요, 온 세상이 대적이요, 자기 속에 부패성이 대적이요, 자기의  주관 자율이 대적이요, 세상 모든 인간 지식이 대적이요, 통계가 대적이요  전체가 대적입니다. 이 전부가 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서 이것이 들어서 무슨 일  하고 있느냐? 이것이 들어서 첫째는 소망을 흐미하게 만듭니다. 소망을 흐미하게  만들고, 또 한쪽 머리에서는 이 두 가지 간절한 기도 제목을 흐미하게 만들고  자꾸 이것을 흐미하게 자꾸 만들어서 나아가기 때문에 그때 흐미하게 만드는  것이 대적의 전력이라. 흐미하게, 이 세 가지를 흐미하게 만드는 것이 대적이  나를 죽일라고 하는 대적의 그 전쟁의 힘이라 대적의 실력이라. 대적의 실력이면  나는 그와 반대, 그걸 이길라고 하면은 이 세 가지를 해야 된다 말이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일, 또 나는 열심 히 시작하고 또 그런 가운데에서 두 가지 그  기도 제목을, 자꾸 기도 제목에 대해서 똑똑해지고, 또 소망이 똑똑해지고  이러니까 내가 기도하는 그 열심 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데, 그 낙망케 하는 원수가 있는데 그 원수가 자기 밖에서, 자기 밖에서,  믿는 사람이라도 자기 만침 못 믿는 사람은 자기에게 낙망을 주고 손해를 주고,  자기보다 잘 믿는 사람이라도 거기에 대해서는 자기는 그만침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 외에는 자기를 도울 자가 없습니다. 본인 외에는 자기를 도울 자가  없기 때문에 아예, 저 사람은 나보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요 훨씬 으뜸되어 있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 하면 안 됩니다. 도움을 줄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시요 진리 뿐입니다. 하나님과 진리 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와 가지고서 나에게 이 세 가지를 흐미 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단단히 선입적 지식으로 가지고 똑똑히 가지고 있어야 되겠고  그라고 난 다음에 제일 위험한 것은 뭐이냐? 어제 밤에도 말했지마는 내가  기도를 하는 데에 기도하는 그 제목이 내 보기에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여지는 이것이 큰 미혹입니다. 이제 기도한 제목이 이루어지는 것 같이  보여진다. 이루어 지는 것같다.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여질 때에 거기에 피동으로  피동을 옮기지 마십시요. 요거 알아 듣겠습니까? 그때에 피동을 옮기면  헛일입니다. 옮기면 헛일이요. 그때에 그런 피동을 옮겨 버리면 헛일이요,  자기가 기도의 제목을 기도할 때에 이제 내가 기도한 것이 차차 차차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렇게  보여지니까,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여지게 하는 것은 누군고 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부인케 하도록 내 기도하는 것을 온전하게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옆에 있는 악령의 역사는, 야 이루어진다 너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이루어진다 그래 가지고서 내가 거기에서 미혹 받아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여지는 가견적인, 내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내가 귀로 들을  수 있고 내가 주관으로 느낄 수 있는 가견적인 그 이루어짐의 그것을 인해서  내가 열심을 내는, 거기에 피동이 되어서 내 기도하는 것이 거기에 그것을  원동으로 삼기 쉽다 말이요. 원동을 바꾸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원동을 바꾸지  말아라. 그러면, 그럴 때에 원동을 바꾸지 말고 내 눈에 그것이 이루어짐을  인해서 내가, 열심히 저 혼자 하지요. 저 혼자 기도하며 열심히…,  사탄아 물러가라. 이루어진 그걸 보고서 내가 기도하느냐? 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이 계약한 그 계약에 되동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은  이러한 속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이렇게 진실되고 거짓되지  안하고 변치 안하는 완전하신 그 참이신, 사랑이신, 그는 참 흠이 없는 완전한  그 신격을 가지신 그분이시기 때문에, 지성 지공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지극히  크신 그분을 인해서 그분의 계약을 인해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지 뭐 내 눈에  보여, 누가 그러면 내 눈에 보이는 데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내가 요동될 줄  아느냐? 어떤 피조물이 반대한다고 요동될 줄 아느냐? 내가 이 기도하는 모든  근원이 하나님과 이 유일한 이 진리에 거기에 뿌리박고 거기에서 피동되어  가지고 내가 기도하지 어떤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것이 아니라고 요것을, 능동을,  원동을 옮기지 말고 꼭 잡고 이래 가지고서 나갈 때에, 그라다가 최종적으로서는  자기가 기도한 그것이 딱 정반대로 그만 깨져 버립니다. 아주 사람 보기에는  소망이 없이 완전이 다 헛일이 돼 버렸습니다. 헛일이 돼 버렸어. 만일  비유컨대는. 아 그랬더니만 그게 뭐 깨져서 뭐 그 사람이 뭐 죽어 버렸는데,  죽었으니까, 죽었으니까 이제 그 사람 위해서, 회개하도록, 믿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죽어 버렸으니 끝나는 것 아닌가, 놓지 마십시요! 왜 놓습니까? 놓지  마십시요. 아 그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 기도하는 거는 끝났으니까 이제는,  아니요. 죽었든지 말았든지 나 할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그거는 성경에 기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하나님의 계약에 피동되어서 기도했다 나는 기도하는 걸  나는 낙망치 않는다 그 기도가 절대로 줄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을 나는  그대로 믿고 소망하고 그대로 기도하는 것을 내가 그대로 내가 계속 믿고 있다  그대로 나는 소망하고 있다 소망을 놓지 안하면 하나님께서 그 소망을 가지고서  죽은 자를 살려 내 가지고 어떻게 할 수도 있고 또 그 기도를 가지고 다른 데에  당신이 써 가지고서 큰 역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기도한 것을  낙망하지 마십시요. 놓지 마십시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은 죽었지마는  나는 그 사람보고 기도했지마는 이제 사람을 믿어 구원얻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 그 기도를, 그 사람은 죽은게 아니라 죽었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른  데에 여러 천명 만 명에게 가 가지고서 써 가지고 이룰 수도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광대하신 이 구원 역사이니까 내가 조브랍게 그것조차도 내 주장으로  요래 딱 요래 고정시키는 그 자기의 주관이라 하는 것을 절대 부인해라 자기  주관이나 자기를 완전히 절대 부인해야 이 구원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기를  부인케 하기 위해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자기 보기에 안  되는 것으로 부인케 하는 것이, 부인케 하는 그것이 부인하도록 하느 것이  아니라, 부인케 하는 것이 거기에서도 부인하지 안하고 신앙하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요 부인케 하는 것으로, 그 부인으로 인해서 신앙이 서지고  부인으로 신앙이 서지고 부인케 해도 신앙하고 부인케 해도 신앙해서 이제  부인케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만침 다, 부인케 하는 것 다 달라들어 다  신앙으로 이겨 버렸으면 그는 우주와 영계를 점령한 이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사람이요 하나님의 후계자요 영원한 통치자가 될 수 있는 될 수 있는,  신앙으로 이긴 큰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기도에 대해서 자기가 기도하다가 그 기도의 제목, 기도의  대상, 그 제목이 아주 획 디비져 가지고서 안 됐다고 보여질 그때에 우리는  낙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럴 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서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니 그럴 때에 나는 믿기 어렵고 소망하기  어렵고 내가 간곡한 마음으로 구하기 어렵고 그 제목이 흐미해지고 제목을  가지기 어렵고 또 소망을 가지기 어렵고 간절히 내 노력하는 노력을 가지기  어려운 최고적으로 결정적으로 어렵게 된 그것이 뭐이냐? 이루어지기 위해서  있는 이 사실을 알고서 기도의 제목이 디비질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오해하기 쉽다. 마귀라는 놈은 자꾸 오해하게 합니다. 마귀는 오해하게  해 오해하기 쉬우니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내게 부인케 하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낙망케 하는 내  주변에서 오는 모든 것을 다 능가할 수 있는 그것을 극복하고 이기고 난 다음에,  이기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기도하는 기도는  지극히 큰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은 권찰회가 없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권찰회가 없고,  등록되 분은 삼천 구백 팔십 명, 이십 명 모자라는 사천 명이 됐습니다.

어짜든지 이래 가지고서 여러분들이 가서 자꾸 기도회에 등록하고서 기도하도록  그렇게 권면하고 또 기도하는 사람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좋고 또 산에 가는 것도, 예배당이 제일 좋습니다.

예배당이 제일 좋고 또 그렇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산에나 한적한 곳이 좋을  것이고, 와서 그것을, 기도한 표시를 적는 것은 뭐 사람 앞에 내가 기도 했다  표시하니 유치하다. 유치하다 하는 그놈이 마귀입니다. '뭐 거기 가서 표시해  기록해' 한 그 자가 옛날 그 죽여야 될 그 놈입니다.

 막바로 그놈이요! 하나님이 성령 운동해서 그렇게 해서 자기가 기록하면은,  기록하고 이래 가지고서 '아이구, 아무도 기도하고 아무 것이도 기도하고,'  이래서 다른 사람에게 선한 격발케 해 가지고서 신앙을 격발시키는 그것이  성신의 역사인데 격발시키는 걸 반대하는 그것이 마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것이 옛사람이기 때문에 그놈을 죽이지 안하면 자기 죽습니다. 그것은  옛사람이 장성한 사람, 문벌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세상에 그 존귀 한 사람  그 세상적으로 부요한 그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걸 죽여야 합니다. 이런  말도 듣기 싫은 자 있는데 듣기 싫어하면 듣기 싫은 자 그자는 원수이니까  그자를 죽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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