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살아라

 

1981. 2. 10. 새벽 (화)

 

본문:마태복음 24장 42절∼44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죽은 자가 깨어났다는 것은 생명 없던  자에게 생명이 돌아왔다는 말인데, 여기 깨어 있으라 하는 말씀은 생명이 끊어진  자가 깨어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잠든 자가 깨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진리로 중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산 자요  진리와 연결되어 산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대로 자존자시고 창조주시고  또 영원하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에  주재가 되시고 주권자이신 분입니다. 이분과 연결된 것이 생명입니다.

깨어 있으면 생명의 힘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잘 때는 생명이 있지마는 겨우  전신을 썩지 않게 하는 정도입니다. 숨을 쉬고 산소를 빨아들여서 이 산소가 육체  안에 열을 일으켜서   썩지 아니하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끊어지면 3분이면 육체의 속이 썩기 시작합니다. 생명이 있어도  3분 동안 숨을 못 쉬게 하면 벌써 내장 중에 요긴한 것은 썩기 시작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썩지 아니합니다.

많이 피곤할 때는 한 사흘 잔다고 합니다. 사흘 동안 자다 말다 그렇게 잘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생명이 있으면 그 육체가 썩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송장과  같이 생명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이 작용을 못 합니다. 뭐 볼 줄을  압니까, 들을 줄을 압니까, 반가운 줄을 압니까, 싫은 줄을 압니까? 좋은 것도  모르고, 무서운 것도 모르고, 배고픈 것도 모릅니다. 그저 생명이 있어 썩지  않는다 뿐이지 생명의 작용은 못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살아난 사람이요 진리로 살아난 사람이지마는 중생된  후에도 어떤 사람은 중생 후에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합니다. 마치 생명이  있으나 잠을 자면 썩지만 않을 뿐이지 아무런 작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송장도 옆에 누웠으면 그저 코만 벌렁거리지 않고 가슴만 놀지 않지 송장이나 산  사람이나 잘 때는 꼭 같습니다. 호흡하는 것만 다르지 꼭 같소. 호흡하는 그것은  다만 육체를 썩지 않게 하는 것뿐이지 생명의 작용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된 사람은 영원 멸망은 오지 못하지마는 생명의 작용이 없는  것은 불신자와 꼭 같습니다.

그러면 깨어 있으면 어떤 작용이 있느냐? 하나님의 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시기 때문에 전능의 작용이 그에게 나옵니다. 그를 통해서 전능이 나오고,  전지가 나오고, 주권이 나오고, 하나님의 사랑도 나오고, 하나님의 만족도 나오고,  부요도 나오고, 기쁨도 나오고, 평강도 나오고, 하나님에게 있는 온갖 좋은 것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옵니다.

또 온갖 진리, 이치, 하나님의 뜻이 진리인데 조그만 물건 속에도 진리가 없으면  그 물건은 존재 못 합니다. 물건 속에도 진리가 있고 모든 것 속에 진리가 다  있습니다. 이 진리가 그 사람을 통해서 나옵니다. 어떤 물건을 봐도 거기 대해서  이치에 진리에 딱딱 들어맞게 작용하는 진리의 작용과 하나님의 작용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잠이 들면 죽은 자와 꼭 같이 이런 것이 하나도  작용하지 못합니다. 나오지 못합니다.

사람이 피곤하면 못 견뎌 자게 됩니다. 중생된 사람의 인격이 이 세상으로 인해서  자게 됩니다. 이 세상으로 피곤해서 자게 되고, 자기 욕심으로 인하여 자게 되고,  또 자기 환경이 복잡함으로 인해서 잠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 욕심으로 인해서 잠이 들고, 또 어떤 사람은 권세 욕심으로  인해서 잠이 듭니다. 돈 욕심, 권세 욕심, 또 애정 욕심, 명예 욕심, 어쩌든지  평안해 보자 하는 안일 욕심, 어떤 경우에는 생의 욕심, 죽기 싫은 생의 애착욕,  안 죽으려고 생의 욕심으로도 잠이 듭니다. 이런 것을 인해서 잠이 듭니다.

자기로 인해서 잠들고, 세상으로 인해서 잠들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해서  잠이 듭니다.

그러면 이제는 생명의 작용이 없고 도적이 와서 도적질을 해 갑니다. 이 도적은  악령의 궤휼과 간사한 유혹, 악령의 작용 이 모든 악령의 역사, 어두움, 죄악을  가리켜서 도적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악령이 도적이요, 악성이 도적이요, 악습이  도적이요, 옛사람,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이 도적입니다. 이런 것이 와 가지고  도적질을 해 갑니다. 이것은 비유인데 이런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작용이  없어지고 진리의 작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작용 진리의 작용을 마귀가 가져가지는 못합니다. 가져가면 그것이  죽어버리지요. 가져가지는 못하나 우리에게서 없어지게는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없어지게 하는가?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작용  진리의 작용을 거부하게 돼 버립니다. 하나님의 작용과 진리의 작용을 그만  거부하고 배척을 해 버리니까 하나님의 작용과 진리의 작용은 밀려 나갈 수밖에  업습니다. 쫓겨나갈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작용이 전능한 작용인데 쫓겨나가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를  줬기 때문에 우리가 거부하면 할 수 없이 밀려 나가야 된다 그거요.

이러기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어 다오. 그러면 내가  들어겠다.' 전능자가 우리 속에 못 들어오겠소? 없는 가운데 만드신 분이니 당장  들어오지마는 그러면 우리를 자유성 있게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입혀서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로 육성시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감화 감동으로 해서 능동적으로 무엇이 되도록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러기에 도적맞은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떨 때는 참  자기의 소유보다 주님이 귀하고, 자기 몸보다 주님이 귀하고, 자기 생명보다  주님이 귀하고 '어떻게 하면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드려서 주님을 섬겨볼까?  주님을 사랑해 볼까?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바칠까?' 이것이  속에 불이 붙고 간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도적맞으면 주님에 대한 감각이 없고 자기 앞에 있는 돈  뭉텅이만큼도 안 보입니다. 인간끼리의 애정만큼도 안 보입니다. 자기 가족만큼도  안 보입니다. 자기만큼도 안 보입니다. 주님보다 자기가 크지, 주님보다 가족이  크지, 주님보다 재물이 크지, 심지어 사소한 일 그것도 주님보다 크다 싶기 때문에  주님을 버려도 그것을 버리지 않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전부가 되는 이분 한 분을 자기의 주로 모신다면 이분의 지은 것이 다 내  것이요,   이분의 모든 실력이 다 내 것이요, 이분이 나의 주가 되면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제것이 됩니다.

이렇게 보배롭고 크신 분이신데 이분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도적을  맞았습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인 마귀가 이분을 도적질해 갔다는 게 아니오.

이분을 우리 속에서 없이해 버렸다 말이오.

어디에서 없앴습니까? 우리 마음에서 없앴습니다. 어떻게 없앴습니까? 우리  마음을 꾀어서 이분을 배척하게 했기 때문에 이분이 할 수 없이 배척당해 나갔다  그 말이오. 쫓겨나갔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쫓겨나가요.

지금은 우리 마음이 쫓아내면 하나님이 쫓겨나가고 영접하면 오시지만 이 다음에  구름 타고 오실 때에는 이분을 쫓아낸 마음들은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그때까지는 얼마든지 살리려고 사랑으로 구출하십니다.

이분이 나갔어요. 이분이 주시는 모든 지혜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이 없어졌습니다. 자는 자는 생명은 있지마는 생명의 작용이  그 몸을 통해서 나타나지 못해요. 들을 줄도 모르고, 볼 줄도 모르고, 모든  희로애락이 다 없어요. 기거동작이 없어요.

신앙의 잠이 들면 이분이 없어집니다. 이분을 잊어버립니다. 이분을 도적맞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도적이 와서 다 도적질 해 간다" 도적맞는다 말은 이분을  잊어버렸다 말이오. 뭣 때문에 잊어버렸는가? 자기 때문에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속에 악령이 우리 욕심과 감정과 구습 같은 것들을 작용해서 그만 주님을 쫓아내  버렸다 말이오. 배척했다 그거요.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

왜 우리에게 육의 생명을 주신 줄 압니까? 왜 육체를 가지도록 했습니까? 무엇  하라고 우리 소유를 가지게 했습니까? 먹는 것은 뭐 하려고 먹습니까?  지금이라는 이 요긴한 때에 하나님으로 내 전부를 삼는, 하나님을 내 하나님 삼는  데 비용으로 쓰라고 이것 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일을  이루는 생명이 아니라면 그 사는 것도 저주입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 몸도  그러합니다.

나는 돈의 것도 아니요, 인간의 것도 아니요, 애인의 것도 아니요, 나라의 것도  아니요, 가정의 것도 아니요, 나는 구속하신 주님이 것인데, 주님의 것이 되는  데에는 생명도 필요하고, 몸도 필요하고, 소유도 필요하고, 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것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오.

그런데 신앙의 잠을 자게 되면 주님의 것이 된 것도 없애버립니다. 된 것도  없애버려요.

믿는 사람이 왜 자기 죽을 망할 일, 자기 가정을 망치는 일인 줄 모르고 망치는  일을 자꾸 하고 망하는 일 죽는 일을 자꾸 할까? 왜 거꾸로 알아서 그렇게 망할  일만 자꾸 하고 싶고 원하고 행동하게 될까? 하나님의 지혜가 자기에게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지혜가 있어 아는 대로 하고 싶어도 하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능력이 없어 그런 것입니다.

자, 말할 수 없는 기쁨, 이것은 돈으로 인한 기쁨도 아니고 세상 권세로 인한  기쁨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땅에 속한 기쁨이기 때문에 다 없어질  기쁨들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서 살아 나옴으로써 기뻐한 기쁨이라면  그 기쁨도 없어질 기쁨입니다. 언젠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없어지지 아니하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이 순간적으로 들어왔다가 없어지는 사람, 평생 맛보지 못하고  어쩌다가 한번 맛본 사람, 몇 시간 있다가 끊어지는 사람, 며칠 계속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이 기쁨이 계속됐습니다. 빌립보 옥중에서 그렇게 두드려  맞았을 때에 옥에 갇혀서 잠깐 동안 이 기쁨이 좀 흐려졌지 공기도 잘 들어가지  않는 제일 깊은 옥 속에 집어넣어서 착고로 손과 발을 채워 놨을 때에 그가  잠깐동안 명상하는 가운데 이 기쁨이 다시 생겨졌습니다.

고난의 박해로 인해서 기쁨이 잠시 잠이 들었다 말이오. 박해로 인해서 자기에게  연결된 연결이 희미해져 버렸어요. 옥중에서 아픈 줄만 알았고 근심만 했는데  다시 그가 명상하고 기도할 때에 깼다 말이오. 기도로 깨어났어요. 명상으로  깨어났어요. 주님을 사모하는 이 사모로 깨어났어요. 피와 살을 먹었다 그 말이오.

주님의 피와 살을 먹었어요. 먹으니까 기운이 나요.

주님의 이 대속을 사모하고 대속으로 말미암아 멸망에서 구원을 얻었고 소망의  큰 것과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가 자기 구원을 이루어 주려고 뒤에서 밀고 있는  배경을 깨달았다 말이오.

이러고 나니까 바울이 어찌나 기뻤든지 자기도 모르게 찬송해 버렸어요. 기뻐서  찬송하니까, 이제 깼다 말이오.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니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의 묶인 것이 다 풀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형식으로 믿는 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 있을 때에 우리에게 가리워 있는 이 모든 썩을 욕심 감옥이 터지고,  주님이야 어찌됐든지 호의호식하려는 무서운 감옥이 다 터지고, 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 욕심, 평안하려는 안일 욕심, 생명의 애착 욕심 이 모든 욕심  감옥이 다 헐어져 버립니다.

이게 헐어질 때에 바울이 말한 대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만 생각하게  되고 아무 데도 붙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가둔 모든 대적들이 다 그 앞에 굴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바울을  뚜드린  옥사장이 그 날 밤에 바울을 천하 인간으로서는 제일 높은 인간으로  모셨을 것입니다. 그 날 밤에 회개했기 때문에. 그 모든 머리되는 사람들도 그  앞에 굴복했습니다. 그 날 밤에 빌립보 교회가 섰습니다. 하루 밤에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제가 어떤 신문에 보니까, 해외 톱이라는 거기 보니까 루마니아라는 나라에 청년  이십 명이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성경 이 만 부를 몰래 가지고 들어가다 들켜서  성경 이 만 부는 다 빼앗기고 그 청년 하나는 당장에 고문 고형을 당하다가 그  자리서 죽었고 열아홉 명은 지금 고문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본  다음에 계속 기도합니다. 그 청년의 생명과 피로 루마니아 나라가 복음으로  완전히 전복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나라에, 공산주의  나라인데 복음이 승리해서 거기 있는 택한 자들이 다 구출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깨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 주님이 보배로움이 저희에게 환하게  보여졌고 알려졌고 주님의 사랑의 뜨거운 생명 구원 역사가 사명이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그것이 인간의 삶이요, 사는 것이요, 세상에서 제일 잘 살고  가는 것이요, 완전하고 영원한 성공이요 무궁세계에서 가장 존귀함을 얻는, 모든  인류와 만물과 천군 천사 하나님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기쁜 일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십 명이 성경 이 만 부를 짊어지고 공산주의 나라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붙들렸지마는 그것 실패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이제 그 한 밀알이 깨졌어요. 한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움이 나서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 한  분이,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나로 인해서 수많은 생명들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참 산 밀알이 루마니아 나라에 떨어져 썩었으니까 거기서 복음의  싹이 나서 이제 그 공산주의가 정복이 될 것이라 그거요.

또 며칠 전에 말들으니까 중국 선교사가 홍콩에 갔었는데 자유 중국 사람들이  중국 말을 배워서 중공으로 복음 책이 자꾸 들어가고 있더라고 합니다. 성경을  받은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성경을 보배로 여기며 깊이 간수하며 한 절 보면  그게 생명이 되어져서 자꾸 복음 운동이 역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일을 위해서도 기도를 계속 그전보다 좀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도 공산주의 세력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니엘처럼 믿음 있는 사람들,  깨어 있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함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들이 다 잤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은 한없는 기쁨, 한없는 사랑, 한없는 만족, 한없는 용기,  한없는 담력, 한없는 능력, 지혜, 한없는 소망, 이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마구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이 우리 속에 가득히 차고 넘쳐서 이웃에게  갈 수 있는 것인데 왜 믿는 사람에게 이 전지한 지혜가 없느냐? 이것은 자기  때문입니다. 왜 전능한 능력이 없느냐? 자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로 인해서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있는데 왜 기쁨이 없느냐?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 주를 사랑하고 싶은 성령의 불에 붙들 수 있는 우리들인데 왜  불이 없느냐? 그것은 우리가 없어 그런 것 아니고 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잠을 깨는 법은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예수님의 구속하신 이 사죄 칭의 새 생명 이  세 가지입니다. 성경 보고 기도하면서 '나는 죄짓지 않겠다. 나는 의롭게 살겠다.

나는 하나님 모시고 살겠다.' 요 행동을 하려고 애를 쓰면 잠이 깨집니다. 요 법이  우리가 잠 깨는 법입니다.

아무리 가까이 있는 성경이라도 보기가 싫소. 들면 볼 것인데 안 보여집니다.

어쨌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들고 보는 것, 이게 이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들고  봐야 됩니다. 옆에 있어도 볼 마음도 없고 마음이 있어 성경 보려 하면 방해하는  것이 와서 성경을 못 보게 합니다. 성경 보는 것은 쉬는 것보다 자는 것보다  일하는 것보다 귀하기 때문에 '내가 볼 성경은 봐야 되겠다. 오늘 볼 성경은 봐야  되겠다.' 성경 봅니다.

또 '내가 오늘 할 기도는 해야 된다. 일이 낭패가 되더라도 그것보다 이게 더  귀하기 때문에 성경도 볼 성경은 봐야 되고 기도도 할 기도는 해야 되겠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인제는 그 일을 할 때는 죄짓지 않고  의롭게 합니다. 장사를 해도 죄지어가며 장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장사하려고 애쓰고, 하나님 모시고 장사하려고 애를 씁니다. 죄 안 지으면서  장사하면 장사를 못 합니까? 그 장사가 더 깨끗하게 잘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장사하려 한다고 장사가 안 됩니까?

예를 들어 자기가 무슨 일을 합니다. 하다 안 되면 무슨 목수 일을 하든지, 방  고치는 일을 해도, 하면서 '내가 죄짓지 않고 이 일 하련다. 속여서 신용 없게  하나님 영광 가리면 안 될 터이니 가리우지 않도록 하련다. 뒤에 요게 잘못되어서  원망 불평 욕을 얻어먹어서 복음 가리우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내 신앙  양심대로, 하나님 모시고 하련다.' 그러면 그 일이 잘못 되겠습니까? 2등으로  잘되겠소? 1등으로 잘되지요. 그 이상 잘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리 되면 일 잘되니 좋아, 자기 속에 양심이 기뻐하니 좋아, 또 해  놓으니 그 사람 주인 만날 때에 큰소리 떵떵 합니다. 속으로 배짱 있는 소리 한다  그거요. 모든 게 다 평안해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자기 자체 기쁘지, 자기에게 속한 양심이 기쁘지,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 기쁨이 역사하니까 주인도 기쁘지, 시간이 지나갈수록 '야, 그 사람  참 믿을 만한 사람이야. 그 사람 예수 믿는 것 같더라. 도시락 먹을 때 보니까  기도하고, 예수님 믿는 것 같아.' 나중에 슬슬 알게 된다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야.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은 참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사람 사는 길은  예수 믿는 길이라.' 자꾸 모두가 다 좋아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의 것이 막  내게로 쏟아져 나오고 진리의 것이 막 내게로 쏟아져 나올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고 비참하고 가련하고 힘이 없는가? 우리가 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 잠들었어요. 세상으로 인해서 성경 읽을 수 없었고, 기도하지  못했고,  사죄 생활하지 못했고, 칭의 생활을 못했고, 하나님 모시고 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 그거요.

그런고로 깨야 합니다. 우리 행복은 깨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세상  인정 가지고 우리를 잠들게 해서 어둡게 만들고, 세상 돈 가지고 어둡게 만들고,  이런 일 저런 일로 우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온 천하를 차지해도 자기 잊어버리면  소용없습니다. 이 깬 사람 잊어버리면 소용없어요.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신앙이 잠들면 우리는 사망입니다. 신앙이 깨면 우리같이 기쁜 사람이 없고  행복한 사람이 없어요. 루마니아에서 맞아서 죽은 그 청년 신앙이 깨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불행합니까? 이 세상 사람 중 부러운 사람을 말하라면 나는 그 청년이  제일 부럽소. 제일 행복된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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