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교회

 

1980. 2. 6. 수새

 

본문: 마태복음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 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가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 말씀에서 4가지 우리가 주의하고 힘써야 할 것을 계속 말씀해 나옵니다. 하나는  자고 깨는 것 하나는 좋은 씨와 가라지 또 하나는 뽑고 가라지를 뽑고 두는 것 또  하나는 단으로 모아 불사르고 곡간에 넣은 것 이렇게 이 4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훈은 그 범위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넓은 범위에서 전 세계에서  여러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이 역사적인 범위가 있고 또 전 세계에 사회적인  범위라 혹은 현 교계라 세계 교계 믿는 교회, 세계 교계라 사회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이라 세계적이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교파적이라 그 교파 또 하나는 단독교회 서부교회면 서부교회, 동일  교회면 동일교회, 영락교회면 영락교회, 이렇게 개 교회적이라 그렇게도 봐야 되고  또 좁은 범위에서는 가정적이라 그 가정이 어떠하다 또 제일 좁은 범위는  개인적이라 이렇게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고 깨는 것도 첫째는 내 자신이 자고 깨는 것을 살펴야겠습니다. 자고  깬다는 것은, 자는 것은 어떤 것이 자는 것이냐 자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원하고 또 이것만을  상대해서 비판하고 평가하고 경영하고 언행심사의 행동하는 이것이 자는 것입니다.

또 깨어있는 것은 어떤 것이 깨어있는 것이냐? 예수님의 대속, 내가 영원히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셔서 사죄 주셨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행하셔서 칭의를 입혀 주셨고,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나와 하나님과에 다시 아버지와 아들의 이 밀접한 화합을  주셨는데,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있는 것을 다 내 구속을  위해서 희생 하셨고 자신의 생명까지 다 희생하신 이 주님의 이 사랑의 공로를  자기가 깨닫고, 자기는 이미 구속받은 것이기 때문에 주의 피에 팔린 주의 것인 것과 주님 나 위해  이렇게 살으셨기 때문에 나도 전적 주의 것으로 주님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모든  것 다 주께 받쳐 주의 뜻만을, 주님만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  되는 이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또 이렇게 살면 영생하는 하늘나라가 자기의  나라인데 그 나라의 영광이 있을 것 그 나라의 수치가 있을 것 또 인생이 죽는다는  죽음 또 죽음 넘어 부활, 또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받는 것 이제 성경에서  가르쳐 주신 이 모든 진리를 자기가 깨닫고 여기에 맞추어서 살려고 언행 심사하는  그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자신이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 이것을 먼저 살펴야 되겠습니다.

죽은 사람과 자는 사람이 행동은 같은데 다만 목숨이 있고 없는 것이 다릅니다.

자는 자는 일어나면 성한 사람 같고 죽은 자는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불택자들은 그는 다시 깰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요 중생 된 자는 행동은 꼭  불택자와 같지만은 자기가 정신차려 깰려면 깰 수가 있단 그 말입니다. 그래서  잔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중요합니다.

 그러면 살피는 데에는 자기의 현재를 살펴야 되겠고 과거를 살펴야 되겠고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미래를 살펴야 되겠는데 살피는 순서는 현재를 살피는 것이 순서  같지만 안됩니다. 이것은 살피기가 어렵습니다. 왜, 거기는 자기 속에 있는 원죄  자기 중심 자기 사욕이란 이 육체의 욕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자기 현재는  깨어있는이 자는가 하는 것을 살필려고 해도 살피기가 어렵단 말이요.

 그러므로 과거를 살핍니다. 지나간 때를 추억합니다. 아, 내가 어느 곳에 살 때에  누구를 만났을 때에 어느 장소에 있을 때에 어떤 일을 만났을 때에 내가 건강할  때에 병들었을 때에 근심이 있었을 때 기쁨이 있었을 때에 이렇게 과거를 추억하면  언제는 잔 일이 많았고 언제는 깨어있는 일이 많았다 하는 것을 자기가 추억해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차차 무엇이 생겨지는고 하니 아 이것 아무것이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조심해야 되겠구나 안 만나야 되겠고 어떤 일 그것은 안 해야 되겠구나 또  어떤 곳에는 가야 되겠구나 안가야 되겠구나  어떤 사람은 만나야 되겠고 안 만나야 되겠구나 만날 사람 안 만날 사람 갈 곳 안  갈 곳 할 일 안 할 일 어느 장소 어느 장소 근심될 때, 기쁠 때, 이것을 추억하고  지혜 있는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미련한 자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고 한  것이 다 잔칫집이 좋지 초상집이 좋을 것 뭐 있겠소? 그러나 그 밑에 보면 거게  가는 것이 더 깨어 있음이 많았기 때문에 좋았다 그 말이요.

걱정 근심 기쁨보다 근심이 좋은 것은 그 심령이 좋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과거를 추억하고 거기서 반성한 말입니다.

아, 어떨 때 자더라 아 그 사람 만나니까 참 꿀같이 재미는 있지만 내 믿음이  잠들게 되더라 그 사람을 만나니까 책망하고 속은 상하기는 상하고 들으면 부화는  나기는 나고 기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만나니까 내 심령이 내 믿음이 깨게  되더라.

  이래서 이렇게 깨어 있기를 힘쓰는 사람은 인간으로서는 자기에게 바른 지도를,  바른 지도를 해 주는 사람이 없게 되면 그것이 탄식이고 자기의 잘못을 책망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이 탄식입니다. 인간 중에는 그 두 사람이 제일 요긴하요

그래서 모든 동양 사람들이 공자를 성인이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은 불택자이지마는  그분이 사모하기를 주공이란 사람을 사모했기 때문에 그가 하도 생각을 해서 그는  없어졌지마는 그의 교훈으로서 자기가 깨기 때문에 삼일 동안 꿈에 주공을 보지  못했으면 크게 탄식을 했습니다. 몽불주공이라 꿈에 주공을 보지 못했다 하도  주공을 생각해 사니까 주공의 꿈이 꾸인단 말이요. 그분의 이름 그분의 도덕  그분의 진실 그분의 그 관대한 인격 이것을 사모하면서 그이 같이 되기를 사모하고  이렇게 해서 자기를 수양하다 보니까 자기가 깨끗이 닦아졌단 그거요.

그런데 사흘 동안을 꿈에 주공을 못 보면 자기가 타락했다고 크게 탄식을 해서  지금 애를 썼소. 안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다 의를 사모하고 성결을 사모해서  제대로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래도 된 사람이 하나도 없었소  하나님 앞에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었소.

믿는 사람은 주의 대속의 공로가 있고 진리와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깨고 자는 것을 살피는 사람은 이것을 보배인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책망하는 사람을 피해서 달아나지 않습니다. 책망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자꾸 접선할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인물 중에는 두 인물이 자기에게 필요하고 두 인물이 없는 것을 탄식하고  두 인물이 없으면 죽어 없으면 그 인물을 늘 사모합니다. 그 인물의 장점을  사모하요. 사모해서 참 꿈에 보일 만치 사모해서 아 그분이 그런 사람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 천주교에서 미사 하는 그것이 그 방식이 우상 섬기는 것이라서  안됐지 그 속에 좋은 면이 있습니다. 왜 성경 가운데에 유력한 인물들의 생애가  있으니까 그 생애를 사모한다 그거요. 아, 아무 것이는 이렇게 살았는데 나도  그렇게 살겠다 이래서 아침마다 천주교에 가면 양쪽에 사진을 걸어 놓고 그 한 첫  사진 앞에서 절을 하면서 보고 가고 보고 가고 이렇게 지나갑니다.

그렇게 하란 것이 아니고 그 인물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해서  멀면 베드로를 사도들을 선지자들을 또 마리아를 이렇게 그 초상을 보면서 그  인물들을 자기가 사모하면서 자기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 보려는 이런데서  시발한 것이 지금은 우상 숭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좋은 것이라도 방편이 나쁘면 실패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를  본 받으라고 했으니까 사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은 그것을 그림을 그려서  사모하는 것은 성경 방편에 없어 그런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그만 그림을  그려 가지고 아무 것이를 사모하라 하는 것이 그만 우상이 되고 말았어. 한 천여  년 흘러 내려오는 가운데에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들 다 자기를 책망해  주는 사람을 찾아 다녔고 자기에게 천금 만금을 주는 것보다 옳은 진리를 하나  깨닫게 해 주는 것을 더 보배로 여긴 것이 다 이 사람들이 신앙의 승리를  성공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이 황금을 얻어서 기뻐하는 것 보다 한 진리를 깨달음으로  기뻐하는 한 진리를 가르쳐 줌으로 받으므로 기뻐하는 이 사람들이 다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옳은 진리를 가르쳐 준 그로 말미암아 깨달은 사람은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또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죽어도 그게 대해서는 눈물이 안 나와도  한 진리를 깨닫게 될 때에 거기에 눈물이 나오는 것이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요. 자기에게 한 자고 있는 잘못된 그것을 깨닫고 눈물이 나오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요. 자기가 비로소 회개 할려해야 회개하지 못하던 그것이  회개가 되어졌을 때에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것이 그것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깨어있는지 자는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는 것만  발견하여 잠을 깨서 깨어 있으면 다 됐어. 너희들이 깨어 있어라 어느 때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재림과 자기의 죽음보다도 한 토막 한 토막 자기의  생애가 어느 시간에 승패가 결정될런지 모른다 그 말이요. 마지막도 있지만은 중간  마지막이 많다 그 말이요. 일정 때에 신앙생활 하는 것은 신사참배로 끝을  맺었습니다. 해방 직후에도 6.25 사변으로서 인민군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또 지금 앞으로도 네가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이 교계적으로 이것이 닥칠  것이요 개인적으로는 날마다 닥쳐집니다. 아, 오늘은 네가 오늘 생활에는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안 믿었지 분명히 믿음을 배반했지 네가 오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믿음을 오늘 지켰지 이것이 판정되어 나고 있습니다.

사건 사건에서 자기의 깨어있는 것, 이 사람에게는 자연히 깨어 있으면 그것이  이웃에게 양식을 준다했소. 깨어있어 자기 맡은 자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주는  자가 누구냐 이 사람은 복이 있다 주님이 무궁세계에서 있는 것을 그에게 다  맡긴다.

양식 준다 말은 깨어있는 생활이면 반드시 제 삼자에게 믿음의 유익을 줍니다.

그것이 양식 주는 것이요 믿음에 유익을 줍니다. 한 사람이 깨어 있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 깨어있는 그 신덕에 감화 받고 깨게 됩니다. 이것이 양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요 이렇게 된 사람은 그 한 것 만치 무궁세계에 무한한 영원한 것으로  그에게 맡기시겠다고 했습니다. 왜 맡기면 그 생활하면 저 살고 옆에 사람이 다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맡겨 주면 저 죽고 남 죽고 하면 맡겨줄 수 있겠소  자는지 깨는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첫째로 자기를 살피고 그 다음에는 자기 가정을 살펴야 되겠습니다. 우리 가정은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 이기 순서적으로 되어 나가야 되겠는데 자기 가정을 깨어  있게 하지 아니하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것만 깨게 하려는 그런데는 효력이 안  납니다. 자기가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기 때문에 깨어 있도록 할려고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은 다른 뜻이 있소.

깨어 있도록 전심전력을 기울여도 그것이 깨어 있지 않으려고 한다면 깨지  않는다고 하면 깨면 자신이 교만해지기 때문에 겸손케 하기 위해서 주는 수가  있소. 그러면 그것 깨는 것보다 자기가 더 교만을 회개해서 교만치 않도록 이것을  다지는 것이 방편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우리 교회가 깨어 있느냐 자느냐 하는 이것을 그 다음에는 살펴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자느냐 아, 우리 교회가 자는 원인이 뭐꼬 아무 장로  때문에 잔다 아무 집사 때문에 잔다 이거는 교역자 때문에 잔다 우리 교회 무슨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 때문에 잔다 교회적으로 자는 것, 아, 지금 깨어 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깨는 것이 뭐냐? 어느 장로 인해서 깬다 어느 집사로 깼다  아, 주일학교로 인해서 깼다 목사로 인해서 깼다 아무 사람으로 인해서 깼다 깨게  하는 자도 그 원인을 알 수 있고 자게 되는 것도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그거요.

 이래서 자게 되는 그 원인 그것은 온 단합을 해 가지고 뽑아야 되겠습니다. 깨게  된 그 원인은 전체가 단합해 가지고 잘 가꾸어서, 잘 가꾸어서 그것을 높여서 더  깨울 수 있도록 협조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아듣겠습니까?

 다음에는 교계적으로 봐야 됩니다. 한국 교회와 세계교회가 어떻게 되느냐? 아,  이것이 지금 자게 하는 운동이다. 산업전도라 입체전도라 산업전도라 입체전도라  이래 가지고 뭐 주일 하루만 지키면 되니까 형편에 따라서 월요일을 지키든지  화요일을 지키든지 어느 날 지키든지 주일 하루만 놀면서 지키면 된다 이 전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들어서 세계교회를 자게 하는구나 이놈을 어짜든지  대적해서 뽑아야 되겠다. 이래서 아, 그것이 다 복음운동인데 저분은 지금 그것을  자꾸 대적을 하고 자꾸 그것을 허는 소리를 할까 그것은 교계적으로 자고 깨는  것을 보는 사람이 말했을 것입니다. 교계적으로 자고 깨는 것,

 또 시대적으로 자고 깨는 것 지금 시대를 말하면 자는 때입니다. 지금 자고 있소.

이래서 우리 양성원에서 교회사 교리사를 가르쳐라 하는 그 말은 믿는 이치가  교리인데 교리의 역사를 가르쳐라 하는 그 말은 왜 그것을 가르치고 그것을  공부하느냐 하면 그것은 수천 년 동안 흘러 내려오는 이 교회에 교회들이  예수교회들이 깨닫는 그 교리적으로 교리적으로 어느 시대에는 어떤 잠을 들었고  어떤 시대에는 어떤 잠을 들었고 어느 시대는 누구가 들어서 그것을 깨게 했고  누구가 깨게 했다 이 지금 역사적인 그 자고 깨는 것을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교회사를 공부해 가지고 오너라 교리사를 공부해 가지고 오너라 하는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말한 것이요.

이래서 우리 양성원에는 7-8년 동안을 요것만 전공을 해 가지고 큰 분이 서  영호목사님입니다. 이래서 그것을 공부해 가지고 오라 했소 자기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갈 때 그것을 말하니까 거부를 했소. 거부를 했으나 하나님이  끌어넣어서 그것을 전공해 가지고 왔습니다. 귀한 것을 전공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 공부하면 교묘하게 어떤 사이비한 그 666이 들어서 교회에 잠들게 했다.

교회들을 잠들게 했다. 잠들게 한 사람도 알고 깨게한 사람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이렇게 우리는 자고 깨는 것을 자기에게서부터 시작해서 범위 넓게 이렇게  연구해서 알아야 신앙생활하지 그 모르면 신앙 생활 못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 제가 지금은 그게 대한 말을 많이 안 하지만 20-7,8년 전 근 30년 전에는  그물 비유를 많이 했습니다. 이 고기가 작은 그물로 싸면 그물에 싸인 줄 알지마는  큰 그물로 이렇게 여기 갖다가서 어붓 큰 고기가 있다해도 이 예배당 만한 그물로  싸놓으면 그물 안에 든 줄도 모르고 제 딴에는 자유스런 줄 알고 돌아다니지마는  그물로 홀칠 때엔 다 들어가 버려요. 이것을 말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잠드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 교리적으로 교파적으로 이렇게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운동 이 운동은 자기가  볼 때에는 무슨 죄가 보입니까? 도적질을 하요 거짓말을 하요 살인을 하요 간음을  하요 그런 것 없습니다. 이렇지마는 그 교리가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이렇게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그것은 큰 그물입니다. 이래서 W,C,C, I,C,C니 하는 것  이런 것은 다 이것이 큰 그물입니다. I,C,C는 그는 기독교 정치주의요. 아, 정치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걸 가지고 이렇게 잡기 때문에 이 그물로 싸기 때문에  말려들어 갑니다. WCC는 이거는 종교통일이요 우주통일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죽는 줄 모르고 말려 들어가서 죽습니다. 엑스포 74나  빌레 그레함 운동이니 이런 운동도 그물 중에는 제법 큰 그물입니다. 그것 다 정치  바람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속에 진리는 없습니다. 그 한번 와 가지고서  우리말로는 돈을 그렇츰 많이 들어 그래도 가서 들어보면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  한국교회는 그만 그 한번 참석하고 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 다 허리띠를 풀었어  띠를 다 풀었어 아이쿠 우리는 지나치게 다 너무 잘못 믿었다 너무 잘 믿었다 너무  지나치게 치우치게 믿었다. 치우친 신앙 가졌다 이거는 과격파다 이래 가지고서  우리 한국 교회는 아주 동였던 띠를 다 헐어 놓았습니다.

이래서 해방 후 다른 나라의 교훈이 들어오지 아니했을 때에는 한국 교회는  깼습니다. 아주 그때는 깼소. 해방 직후는 참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유명할 만치  깨어 있었고 또 세계교회에서 놀랄만한 것이 그런 것이 한국교회에서 많이  일어났습니다.

 왜정말년에 있는 그런 일을 6.25때 된 일을 글로 써 가지고 다른 나라에 보내니까  그 나라에서 이런 사람이 세상 현 세계에 있을까 이래 가지고 산사람들은 그들이  막 초대해 가지고 가고 한 상동 목사님도 가신 중에 한 사람입니다. 손 양원  목사님 그런 분들은 그 책을 보고 한국 사람보다 외국 사람들이 더 감화의 은혜를  더 받았습니다.

그렇던 교회들이 저 구미에 있는 문화가 구미에 있는 사치가 들어오면서 다 거기  있는 모든 쓰지 못할 모든 그 복음 운동 이런 것이 들어 와서 여기는 너무  지나치게 잘못 믿었다 너무 지나치게 믿었다 해서 한국 교회가 완전히 지금  타락했습니다. 그때 요량하면, 아주 동였던 허리띠를 풀어 놨습니다. 이래서 지금  정상적인 복음을 말하면 저거는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과격파라 정죄 받을 만치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자고 깨는 그것이 자는 것은 어떤 것이며 깨는 것은 어떤 것을 지금  해석하고선 아무 교계 누구라도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면 그 해석을 틀렸다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는지 안 자는지 자기가정이 자는지 안 자는지 자기  교회가 자는지 깨어있는지 이 현 교계가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 세계 교회가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 역사적인 교회가 어느 시대는 잔다,

천주교가 잤는데 이것이 언제부터 잠들기 시작했는가 주후 400년부터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주후 400년부터 잠들기 시작해서 천500 600년 될 때에는 완전히  잠들어서 지금 천주교로 저렇게 되었고 그때에 깰려고 하는 사람들 그때에 깰려고  하는 사람들이 역사에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는데 루터 칼빈이지만 루터, 칼빈 전에  깨어있는 사람 있었는데 깨어있는 사람들은 다 죽임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음에서도 전하고 죽음에서도 전한 그것을 주 모든 것이 칼빈이요  칼빈이 그것을 발견한 것 아니요. 다 그것은 그때 모아서 체계적으로 했고 그때  반기를 든 사람이 루터입니다. 그 안에 많이 깨어있는 사람들이 다 순교를 당했소  그렇게 개혁할 때에는 한 달에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 3,4천 명 되었습니다.

3,4천 명이 순교를 당하면서 개혁을 한 이 개혁교요 지금은 와 가지고 천주교와  개혁교가 완전히 합해졌습니다. 성경도 합동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래도 여기 대해서 자는지 깨는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그 하 종태 목사님이 합동번역에  대해서 팜플렛을 내고 많이 야단을 쳤습니다. 그래도 그런 말은 그까짓 것 그저  얼라들 잠꼬대하는 말로도 안 듣소. 그 전에 여기 두 번이나 와서 설교하지 안  했소. 언제든지 그 사람이 여름에 한때 수양을 할 때에는 딴 데 가서 있지  아니하고 여기 와서 그분이 와 외쳤습니다. 외쳤지만은 소용이 있습니까 합동  번역이 될 뻔하지 그 보다 더 나아가 이야기 성경 있고 다 이러는데 성경도 성경  권위가 다 깨졌습니다. 이것이 자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첫째 자기가 깨는지  자는지 자기를 살피고 난 다음에 차차차차 살펴져 나가지 자기는 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그 다음은 살필만한 힘이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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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 깨어있는 자, 자는 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6절/ 830510화새 선지자 2015.10.27
» 깨어있는 교회/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800206수새 선지자 2015.10.27
704 깨어 있는 자/ 마태복음 24장 32절-51절/ 841110토새 선지자 2015.10.27
703 깨어 있는 자/ 마태복음 24장 42절-44절/ 84110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702 깨어 살아라/ 마태복음 24장 42절-44절/ 810210화새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