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자의 복     

 

1986. 7. 23. 밤(수)

 

본문:마태복음 24장 37절∼51절 노아의 때와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광고 몇 가지 합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계속 나오도록 하고 안 믿는 사람에게도 전도하지마는 믿는 사람이 지금 완전히 신앙들을 다 버리고 멸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신앙이 깨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의 도를 듣는 데서 믿음이 생겨지는 것이니까 가까운 곳에는 새벽에 한 세시쯤이나 세시 반쯤 일어나서 자기가 집 안에 가서 깨워서 새벽기도를 인도할 수 있는 자리는 인도하고 또 먼 데는 전화로라도 연락을 해서, 미리 약속해 놓고 연락을 해서 전화로라도 깨워서 새벽기도에 나오도록 그래 하십시오.

지금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이 현재 여반으로 말하면 현재 요 두 줄택밖에는 안 나옵니다. 요 두 줄택 나오고 저 남은 사람들은 다 죽었어. 새벽기도 못 나와. 요 두 줄 가량의 숫자만 새벽기도 나와요. 남반은 이 한 줄 하고 뒤에 삼분지 일쯤 차니까 이도 뭐 요 조금 더 나옵니다. 이러니까 한 오륙백 명 삼천 수백 명되는 교인이 오륙백 명 나오니까 그 나머지기 사람은 지옥을 갈 건가? 예수 믿는다 하다가 뒤에 가서 참 수치를 당할 것인가? 그 무슨 배짱 가지고 그라는지? 장로님들 중에도 새벽기도 못 나오는 분들 있는데 그런 분들은 어린 교인들에게 좋지 못한 본을 보이니까 반드시 주님 앞에 가면은 꾸중을 들을 것이고 매를 맞을 것입니다.

그 일을 해서 그 구역장들은 자기가 길러 놓은 장로들이 새벽기도 못 나오거든 전화를 자꾸 거십시오. 그라면 새벽기도를 나오든지 귀찮다고 도망을 쳐 버리든지, 도망치면 심판받을 이유는 없어.

뭣 때문에 못 합니까? 잠이 일찍 안 깨서 그래 못 합니까? 그라면 삐꿀까 싶어 못 합니까? 삐꾸면 가 버리지. 그리 안 하면 회개를 하든지. 어짜든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 될 것 아닙니까? 전화로라도, 미리 약속해 ‘내가 전화로 깨울 터이니까 나오라’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열 사람 이상을 전화로 연락해서 새벽기도 나오도록 그래 얼마 동안 하니까 그만 그 사람의 신앙이 살아. 그러니까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생활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평안한 생활을 다 하고 모든 것이 형통해지지 않습니까? 또 거창 집회 위에서 많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짜든지 새벽기도에 전화해 가지고, 이 시급하니까 우리가 신앙을 다시 소생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도 우리가 대단히 두려워하면서 들어야 할 말씀인데 사람들의 마음이 길바닥과 같이 닳아서 아주 강퍅해지고 또 완패해지고 낡아져서 금방 죽을 그런 말을 들어도 예사롭습니다. 또 얼마나 행복된 그런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고 완패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새 살과 같이 그렇게 예민한 마음을 가져야 되지 미련하고 뚝뚝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그것은 다 멸망의 힘들입니다. 세상에서는 미련하고 뚝뚝한 사람들이 세상 성공을 대개는 많이 합니다. 그것은 망할 성공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예민하고, 또 인자하고, 긍휼하고, 깨끗하고, 슬기롭고, 조심하는 그런 깬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게 본문에 “예수님이 재림할 때도 노아 홍수 때와 같다”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을 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이 그렇게 노아가 홍수를 외쳤고 방주 만들면서 말했지마는 그들이 듣지를 안했습니다.

방주를 만들지 못했을지라도 노아가 말들어 놓은 방주에 자기네들도 거게 들어가서 홍수 멸망을 피할라고 하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배가 큰 배라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당시에 수십억이 됐는지 모르지마는 수십억 되는 사람이라도 그 배 안에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미 그 배에 들어갈 것만 해도 비과학적입니다. 다 초과학적으로 그렇게 수용이 된 것입니다.

그랬는데 노아 선지자가, 하나님이 홍수로 멸하시니 다 회개하고 멸망을 피하라고 그렇게 말을 했지마는 뭐 그 말은 예사롭게 듣고 홍수가 나던 그날 밤까지 여게 보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또 다른 데 보면은 사고 팔고 그라다가 그날 밤까지 그리하다가 멸망을 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온 우주는 다 불덩어리가 될 터인데,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하늘도 땅도 전체가 다 불에 타서 원소로 다 녹아져서 원소가 될 터인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셨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는 거의 다 말로 들어서도 다 알기는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십분지 한 일쯤이나 될까 남은 사람은 다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그 강퍅을 가지고 사람들이 멸망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하늘과 땅은 뜨거운 불에 타서 풀어지고 그 체질이 다 녹아지고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난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예사로이 듣고, 내나 먹고 마시고, 물질주의라 그말이오. 먹고 마신다 말은 물질 위주를 말하는 것이고,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말은 가정 위주를 말하는 것이고, 사고 판다는 것은 모든 사업 위주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과 꼭 같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 세 가지에 정신 다 뺏기고 분방해서 그것만 하면 살리라 생각하고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는 데 대해서는, 자기 개인이 죽는 데 대해서는 생각은 없습니다. 못 가집니다. 이 우주의 마지막 날도 사람이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 개인의 종말 시간도 모른다고 성경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젊다고 나는 살 날이 많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강건하기 때문에 살 날이 많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젊으나 늙으나 언제 죽을란지 모르고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것도 우리가 예배 보다가 지금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 할란지? 아직도 몇 해가 있을란지? 예수님 이천 년을 생각하면 지금 남은 것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의식주, 또 가정 위주, 사업 위주 여기에 마음이 다 빼앗겨져서 예수 믿는 사람도 자기의 종말 시간도, 우주의 종말 시간도 생각하지 않고 강퍅하게, 그저 살 것만 생각하지 죽을 거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 우주가 이대로 존재할 것은 생각하지 이 우주가 깨어지고 절단난다는 것은 생각지를 아니합니다.

여게 말씀하시기를 “깨어 있으라,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 말씀을 하시고 깬 자는 어떻게 되며 자는 자는 어떻게 되나 하는 그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깨어 있는 자와 자는 자가 다섯 가지가 다릅니다. 깨어 있는 자와 자는 자가 다섯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로 깨어 있는 자는 같은 입장 같은 처지에서 살아도 깨어 있는 자는 데려감을 당하고 자는 자는 버려둠을 당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요것이 깨어 있는 자와 자는 자가 다릅니다.

또 둘째로는 깨어 있는 자는 도적 맞지 않는다고 했고 자는 자는 도적 맞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고거는 뒤에 해석을 간단하게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또 셋째로는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 맡은 식구에게 양식을 나눠 준다고 했습니다.

자는 사람은 술 친구들로 더불어 술 먹고 술이 취해 있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넷째로 깨어 있는 사람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준다고 했고 또 자는 사람들은 동무를 때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섯째로는 깨어 있는 사람은 주인의 모든 소유를 다 맡김을 받고 자는 사람은 매 맞고 쫓겨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합니다. 자는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 깨어 있는 사람은 데려감을 당합니다.

둘째로 자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도적 맞고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도적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자는 사람은 주객으로 더불어 술 취해 있다고 말씀을 했고 깨어 있는 사람은 맡은 식구들을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준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또 자는 사람들은 동무를 때린다고 했고 깨어 있는 사람은 주인을 기쁨으로 영접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섯째로 자는 사람은 매를 맞고 쫓겨나고 깨어 있는 사람은 주인의 모든 소유를 다 맡겨줌을 받는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거게 대해서 간단하게 그 해석을 하겠습니다.

버려둠을 당하는 것은 자기 자체 구원이 절단나는, 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은 자기 자체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자는 사람은 자기의 심신 기능이 다 멸망을 받습니다. 심신 기능이 둘째 사망의 해로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가고 멸망을 받습니다.

도적 맞는다는 것은 자기 소유를 다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현실에서 자기 소유를 영원한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 현실에서 자기 소유를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취급하게 되면 그 소유가 하늘나라에 쌓여지고, 그런데 자는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뺏긴다 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든지 자기 생명이 떠나든지 하면 자기 소유라고 은행에다가 암만 저축을 하고 국가에 법원 등기를 해 놔도 그까짓 게 소용 없습니다. 법원 등기한 나라와 법원이 다 불타 버리는데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은행이 불타 버리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거 다 도적 맞는 것입니다.

또 자는 사람은 술 취한다 하는 것은, 술 취한다 말은 이 세상주의에 취한다 그말입니다. 음행의 포도주라고 하는 것은 세상하고 합작되어 하나님 배반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술 취하는 것은 세상주의에 도취가 돼서, 세상주의에 취해져서,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주의에 취해 가지고 예수 믿는 도리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세상주의, 사업의 술에 취하고, 행락 술에 취하고, 명예, 지위, 권세, 영광 이런 모두 다 세상주의의 사상, 세상 위주의 사상에 취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동무들을 때린다 말은 자기가 맡은, 자기가 믿음의 본을 보이고 신덕을 끼쳐서 자기로 인하여서 그 사람이 구원을 이루어야 할 그 사람을 자신이 세상주의로, 육신주의로 도취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자기의 세상주의 도취에 감염돼 가지고 그 사람이 구원을 바로 이루지 안하고 신앙 인격이나 신앙 생활이 다 절단이 나는 것을 가리켜서 맞았다, 때린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주인이 와 가지고, 예수님이 심판장으로 오셔 가지고서 심판대 앞에 세워 놓고 심판할 때에 ‘이 악한 종아’ 하면서 매를 때려서 바깥 어두운 데에 쫓아냈다 하는 이 말씀은 주님 앞에 심판받아 둘째 사망의 해로 다 멸망 구덩이로 쫓겨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귀란 놈이 이 도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해서 뚤뚤 뭉쳐서 마구 비빔밥 범벅타령을 해 가지고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 구원 얻었으니까 우리는 뭐 하늘나라 갔으니 하늘나라의 거기는 다 영생이고 평강이고 모두가 다 복되고 좋은 줄만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지 택한 자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모릅니다. 택한 자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택한 자들이 지옥을 가다니?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의 해 받는 것이 지옥 아닙니까? 충성 안 하면 사망의 해 받는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중생된 영은 하늘나라 가지마는, 마음과 고기덩어리 심신의 그 형체는 예수님의 공로로 부활하지마는 심신의 기능은 현실에서 성화되지 안한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몰려갑니다. 이러니까 “매를 때려 바깥 어두운 데에 쫓아내 보내니까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더라” 이거 성경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짜든지 위로만 해서, 마귀나 꼭 흡사해요.

위로나 해 가지고서 마음 좋고 안심하도록 해 가지고 구원은 이루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오늘 현실들입니다.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버려둠은 자기 자체에, 기능에 대해, 자기 자체에 대해서 말합니다. 버려둠은 자기 자체에 대해서, 자체 구원, 자기 자체구원, 자기 심신이라는 심신 기능의 자체 구원, 도적 맞는다 하는 것은 소유 실패, 또 술 취한다는 것은 세상주의에 도취된다는 것, 또 동무를 때린다는 것은 자기가 신앙 행위를 하지 안하고 더러운 본을 보이기 때문에 자기 본받아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 절단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매 맞는 것은 예수님이 심판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져 버리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가 가지고서 심신의 기능이 다 정죄받아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고 영과 그 껍데기 형체와 이거는 부활해 가지마는 속에 기능이 없으니까 걸어 다니지도 못합니다. 하늘나라 가서 죽지 안하고 살고는 있지마는 아무짝도 쓰지 못할 무용지물이라. 하늘나라에 쓸모 없는 물건이 제일 많은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거게는 죽지 안하지마는 가만히 죽지도 안하고 그저 아무데도 쓸데 없는 것이 영생하고 하늘나라에 그렇게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깨어 있는 자는 “데리고 간다” 첫째로 데려감을 당합니다. 데려감을 당한다는 말은 그 심신의 기능이 하나 하나가 다 영생으로 구원 얻어서 하늘나라로 옮겨 가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깨어 있으면 이게 됩니다. 깨어 있으면 이게 됩니다.

또 깨어 있으면 “도적 맞지 않는다” 했습니다. 자기 소유, 자기 소유라 말은 이 세상에서 어떤 피조물이든지 자기에게 분담된 것은 하나도 썩는 데 버리지 안하고 이것을 다 하늘나라로 옮겨 갈 수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거게는 도둑도 동록도 좀도 해하지 않는 곳이다.” 말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 이것이 도적 맞지 않은 것입니다. 도적 맞는 것 요것을 잘 새겨요. 지금 여러분들이 이라면 연구할라면 할 수 있도록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깨어 있는 사람은 맡은 식구들에게 양식을 나눠 주게 됩니다. 깨어 있으면 깨어 있는 그 자체가 자기 보고 예수 믿을 사람들에게, 자기를 본받을 사람들에게 양식을, 믿음의 양식을 줘 가지고 그 사람이 나를 보고 깨달아서 감화 감동되어서 그 사람의 믿음이 소생됩니다. 하늘의 소망이 확고해집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준다.

이 현실에서 나 하는 행동 보고, 이 현실에서 나 하는 행동 보고 저 사람이 은혜를 받고, 저 현실에서 나 하는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은혜를 받고, 이래서 나 언행심사에 신앙 행위하는 걸 보고서 본 그 사람이 다 감동되어서 믿음의 힘을 얻어 가지고서 그 믿음이 소생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양식 나눠 준다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현실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양식을 나눠 주든지 매를 때리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 신앙 생활이 다른 사람에게 심령의 양식을 신앙의 양식을 주어서 그 사람의 신앙이 새로워지고 소생되게 하든지 그리 안 하면 그 사람의 신앙을 죽게 하든지, 말 한 마디로 죽구로 만듭니다. 그 사람하고 그만 좀 있으면은 완전히 사람이 그만 죽어 버립니다. 뭐 저거는 친하다고 하는데 그만 죽어 버려. 신앙이 죽어 버려. 그 사람만 뚝 떨어지면 그만 신앙이 살아납니다. ‘네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자꾸 약화시키고 절단내는 네 행세를 그래 하다가 오늘 덜컥 뒈지면 네까짓 게 어떻게 될 거냐?’ 어리석지 말아요.

자기 신앙 행위로써 다른 사람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속화시키고 그라다가 딱 죽으면 하나님이 그 다음에 영원히 복수해! 영원히 복수해1 하나님의 복수성은 제일 강한 이가 하나님의 복수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도 제일 강하고 복수도 제일 강합니다.

넷째로, 깨어 있는 사람은 주인이 올 때에 기쁨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 깨어 있던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자연 법칙을 인해서 노쇠해 가지고서 죽어도 마지막 죽을 때는 그의 용모에 서기를 하고 광채가 나고 그 기쁨이 충만하고 환난 만내서, 고문과 고형에서 환난 만나서 그 고문 중에 죽어도 기쁨이 충만합니다.

스데반은 돌쪼산 속에 죽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보고 얼굴에 그 광채가 찬란한 것을 봤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이 평강 가운데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다섯째로, 깨어 때를 따라 식구들에게 양식을 나눠 주는 사람, 현실 현실마다 그의 언행심사가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유익을 준 사람, 그 사람의 모든 언행심사가 전부가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유익 준 사람 그 사람은 “주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주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주인의 모든 소유가 뭐입니까?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하신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대주재이신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겨.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다 그에게 맡기면 인류도 맡기고 만물도 맡기고 영계의 것도 맡기고 물질계 우주의 것도 맡기고 모든 걸 다 맡겨서 이거 맡아 가지고서 하나님 대신으로 소유하고 통치하고 관리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시은하고 이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자는 자는 버려둠을 당하고 첫째, 둘째로는 모든 소유를 도적 맞고, 셋째로는 술 취하는 자 되어지고 넷째로는 동무를 때리는 자 되어지고, 다섯째로는 주인에게 매 맞아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 나니까 거게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며 있게 되고, 깨어 있는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데려감을 당한다 말은 자체 구원을 말합니다.

심신의 기능이 다 하늘나라로 옮겨 갑니다.

또 도적 맞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일단 보관으로 잠깐 가졌던 거 하나도 버리지 안하고 다 하늘나라로 영원한 자기의 것을 만들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로, “맡은 사람에게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준다” 깨어 있는 사람은 어느 현실에서든지 보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격의 양식, 심령의 양식, 믿음의 양식, 양식을 나눠 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소생하게 하고 장성하게 하고 강하게 한다.

깨어 있는 사람은 넷째로, 주인을 기쁘게 영접하게 된다. 기쁘게 영접하게 된다.

이것도 해석할라 하면 하나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하나 안 하나 여러분들이 지금 좀 인제 자꾸 갈아서 죽을 써먹을 게 아니라 뜸벅뜸벅한 떡덩어리도 주면 입에 넣어 가지고 소화를 해서 다 인제 여문 음식도 받아 가지고 잘 소화해서 먹어야 돼요.

다섯째로는, 이렇게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준 사람, 그 사람은 언행심사가 접촉하는 사람에게마다, 소문을 듣는 사람마다, 보는 사람마다, 언행심사가 모든 사람에게 신앙에 유익을 주고, 인격에 유익을 주고, 심령에 유익을 주고, 생활에 유익을 주고, 모든 준비에 유익을 주고, 모든 면에 유익을 주는 그 사람, 그 사람의 전체는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 주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의 모든 소유는 그 사람에게 다 맡겨서 영원 통치합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이며 자는 것이 뭣이냐 그것만 간단하게 해석하고 끝마칩니다. 깨어 있는 자는 어떤 자가 깨어 있는 자인가? 자기가 살아 있는 자가, 산 자가 산 자의 행동을 하는 것이 깨어 있는 자입니다. 자는 자는 어떤 자인가? 생명은 있는데 죽은 자와 같은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자는 자입니다.

자는 자는 생명은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은 생활하는 것이 자는 자고, 또 깨어 있는 자는 산 자가 산 행동하는 것이 깨어 있는 자입니다. 산 자가 산 행동하는 것이 깨어 있는 자고 자는 것은 산 자가 죽은 행동하는 것이 자는 자입니다.

그러면 살기는 우리가 뭘로 살았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그랬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자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살면은 깨어 사는 것인데, 이 깨어 사는 것인데 이래 살지 안하고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살아는 자가 죽은 자 행동합니다. 죽은 자는 뭣이 죽은 자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이 그것이 인간의 죽은 것입니다.

악령은 마귀요, 악성은 원죄요, 악성이라 하는 거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원죄입니다. 원죄를 다른 말로 말하면 악성입니다. 악령의 감화받고 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으로, 악습,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악령의 감화대로의 사는 이 모든 죄악 생활.

이러니까 본죄 생활, 원죄 생활, 악령 생활 이 세 가지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이 세 가지 생활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이 세 가지 생활입니다. 악령 생활, 악성 생활, 악습 생활. 원죄 생활, 본죄 생활, 다 악령 생활 이거는 뭐 안 믿는 사람 전부는 다 이 생활입니다.

성경이 말해 놓지 안했소? 누가 이 말한다고 안 믿는 사람이 욕을 하고 달라들면은 성경이 말했거든 하나님한테 달라들어. 하나님이 그렇게 말했어.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나를 대속했으니, 그 부요하신 하나님이 가난해지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함으로 모든 부요, 권세와 영광과 모든 부요 다 내놓고 천한 인간같이 오셔 가지고서, 내 죄를 대신해서 대신 형벌받아 죽으심으로써 나에게 사죄를 주셨고, 내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다 대신 행하심으로써 나에게 칭의를 주셨고, 나 대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다 대신 다 갚고 화친을 해서 나에게 화친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십자가의 보혈로 대속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주님이 나에게 대형으로 사죄 줬으니 나는 죄 지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죄와 관계 없는 사람이다, 나는 죄와 다시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 나는 의로운 자로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야 되는 사람이다.

요것이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면서 사는 것이요, 예수님의 피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요,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대속에 위반되지 안할라고,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대속에 합당한 생활을 할라고 애를 쓰는 요것이 깬 것이요, 성신의 감화 감동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 깬 것이요, 성경 말씀 진리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 깬 것이라. 요것이 깬 생활이라.

이 깬 생활 하면 데려감을 받아요, 이 심신의 기능이 다 구원 얻어요. 소유가 다 구원 얻어요. 다 접촉한 사람마다 다 양식을 나눠 줘요. 주인 올 때에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영접할 수 있어요. 무궁세계에 하나님의 소유를 다 상속받을 수 있어요.

자면! 예수 믿는 사람이 깨어 있지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살면 멸망이라! 이것이요, 뭐. 다른 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 못 살아.

예수 믿는 사람이 깨서 사는 거는 세 가지로 사는 거라, 세 가지로 사는 것.

외부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 이게 제일 좋은 게 아니라. 말씀대로 살고 그보다 나은 것은 성신의 감동대로 사는 것이라.

성신의 감동대로 살다니? 내가 성경을 보고 내 주관으로 깨달은 그 이상의 더 정확히 깨달음이 올 때에 그게 영감입니다. 내 이성 판단으로 ‘이렇게 해야 되겠다’ 내 소욕과 이성 판단 내 주관으로서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 이상 객관의 능력이 와 가지고 ‘어짜든지 이렇게 안 하면 안 되겠다’ 하는 객관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나에게 깨닫게 하시고, 소원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그것이 염감입니다. 영감으로 사는 것.

예수님의 피공로를 벗지 안하고 피공로를 입고 주를 위해 사는 것,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 영생이지 주님으로 인하여 살지 않는 거는 다 멸망이라 했는데 오늘은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 안 해도 이게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자입니다. 순전히 마귀가 와 가지고 이렇게 미혹 줬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지 않는, 주님으로 인하여 살지 않한 데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건 다 멸망입니다! 암만 믿어도 멸망이오!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봐도 멸망입니다! 그런고로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로 사는 것이 깬 생활, 이 세 가지를 버리고 악령, 악령은 자기 중심으로 살다가 쫓겨 나온 천사 a락한 천사 마귀, 악령의 감화로, 악성으로, 에덴 동산에서 범죄함으로써 범죄한 인간의 원죄, 인간의 원죄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게 바로 원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지 못합니다. 주님 중심 주님 위주로 살지. 악성으로 사는 것, 본죄.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언행심사로 범한 죄 모아 놓은 것이 악습입니다.

이것은 다 자는 것이기 때문에, 잔다 깬다 하는 것을 똑똑히 구별하십시오. 깨는 것은 무엇이며 자는 것이 무엇이라는 이 외에 해석이 없어. 정확한 해석인 줄 알고 굳게 잡아요.

깬 것은 진리대로, 그보다 영감대로, 거게서 한 걸음 올라가 예수님의 대속대로 사는 것. 대속이 내 생활을 주관해, 영감이 나를 주관해, 진리가 주관해. 내 주관은 다 죽었어. 내 위주는 다 죽었어. 내 자유는 하나도 없어. 완전히 박탈당했어.

이것이 깬 생활입니다.

깬 생활에 심신 구원이 있고, 소유 구원이 있고, 동무에게 양식을 나눠 줘서 신덕 구원이 있고,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는 영접 구원이 있고, 모든 소유를 상속받는 구원이 있지 이걸로 살지 안하고 옛사람으로 사는 것, 악령 악성 악습이 옛사람 아닙니까? 옛사람으로 사는 데에는 예배당에 다녀도 기본구원뿐이지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합니다.

여러분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다 구별해야 됩니다. 이런데 이 세상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해 가지고 그저 ‘이라면 멸망이고 이라면 구원이다’ 그것을 말해 주지 않으니까 멸망을 받으면서도 전부 구원 얻는 줄 알고 갔는데 가 보니까 다 통통 비었어. 헛일이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은 다 불타 버리기 때문에 공력이 불타니까 구원을 얻으나” 무슨 구원 얻는다 했습니까? 불 가운에 구원 얻어. 하늘나라 가도 불 가운에 구원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늘나라 가도 불 가운데 구원이 있어.

이것을 지금부터 한 삼십 년 전에 내가 여기 와 가지고 설교했더니마는 이 위에 어데 교회에서 장로 장립에서 말하기를, 이 이웃에 어떤 조사하나 왔는데 그 조사는 하늘나라에도 구원의 차이가 있다고, 하늘나라에도 구원에 차이가 있다고서 그래 말한다고서 말하는데 지금은 그런 소리 안 합니다.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 얻은 거와 같으리라” 이랬어. 불 가운데 구원 얻어.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 쪽 읽어봐요, 없는가? 그거 성경 아닙니까?

그런고로, 오늘 밤에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은 깬 생활이 뭐냐? 자는 생활이 뭐냐? 자는 생활은 전부가 멸망이라, 자는 생활은 전체가 멸망! 깬 생활에서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 구원은 건설구원 말하는 것이오. 기본구원 말하는 게 아니라. 건설구원은 깬 생활에서만 건설구원이 이루어지고 기본구원은, 아무리 죄를 짓고 죽는 날까지 예수를 안 믿고 그래도 택한 자들은 다 기본구원은 얻습니다.

우리가 기본구원 얻을라고 예수를 믿는 것 아니오.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다 주셨소. 택한 자들은 다 기본구원 얻었습니다.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공로로만 하지 자기의 힘은 하나도 없습니다. 건설구원은, 자기 행위구원, 건설구원, 성화구원 그것은 심신의 구원인데 변화된 것만치 구원 얻습니다.

오늘 밤에 기억할 것은, 자는 생활은 전체가 멸망이다. 깬 생활만이 다섯 가지 구원이 있다. 어누리 하지 말아요. 자는 생활은 뭐, 모조리 자는 생활은 다섯 가지 다 멸망이라. 깬 생활은 다섯 가지 다 구원이고, 깬 생활은 새사람으로 사는 것, 자는 생활은 새사람인데 옛사람과 같이 사는 것 그게 자는 생활이라. 이 푹 푹 거리며 숨은 쉽니다, 푹 푹 하며 숨은 쉬요. 숨은 쉬는데 죽은 자와같이, 옆에 가니 사람을 압니까, 말을 하니 들을 줄을 압니까, 말을 할 줄 압니까? 그 죽은 송장과 꼭 같애.

송장과 같은데 자는 거와 죽은 송장과 다른 것은 행동은 꼭 같은데 생명이 있고 없는 그것만 달라. 예수 믿는 사람이 중생된 새생명은 있기는 있지마는 행동은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 그것이 자는 생활입니다. 자는 생활 깬 생활을 똑똑히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말아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런 것을 듣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고, 아무나따나 되는 것 아니오. 세상에서 자기 회사가 넘어져도 막 근심을 하고 야단을 치는데 이 회사 넘어진다고 다 한 것입니까? 회사 넘어지는 것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오. 자기 무슨 정권 뺏긴다고 비교됩니까? 아니요, 이거는. 참 울어야 되고 참 기가 막힐 일이오. 큰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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