깬 생활이 무엇인가

 

1986. 10. 7. 새벽 (화)

 

본문:마태복음 24장 42절∼51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게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마는 생각할 점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것이 불로 다 심판될 다가올 이 일은 과거 노아 시대에 물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와 같이 멸망받는 사람들의 상태도 다 그러하고, 또 구원을 얻은 노아의 모든 생활 상태와 같이 다 그러한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뭐 지금 우리가 판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노아의 생활 상태와 같이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또 그때에 멸망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 모든 상태나 형태가 그와 같이 되어 있는가? 이것으로써 주님 구름 타고 오셔서 불심판 내릴 때에 그때에 영은 구원 얻지마는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것은 죽는 거와 동시에 다 멸망을 받고 말 건가, 그때 의의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그 심신의 기능이 다 피난함을 받을 것인가 하는 그것은 스스로 판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다 우리에게 거울로 되어 있습니다.

또 주인이 올 때에 그때에 주인을 반가이 영접해 가지고 칭찬받을 일, 또 자기의 모든 소유를 도적맞지 안할 일 이런 거 다 우리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법이나 제도나 권세를 가지고 보존하는 그것이 든든한 보존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다 우리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대로 취득하고, 약속대로 소유하고, 약속대로 보존하는 그것보다도 제가 은행에 딱 예금해 놓으면 그걸 더 든든히 여기는 것이 그것이 다 도적맞을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은 세계가 바꾸어지고 하늘과 땅의 것이 다 통일되는 그 나라에 어떤 것이 보존될 것이며 어떤 것은 다 없어질 것인가 거게 대해서 생각지 않는 이 소유관이 우리는 뭐 백프로 지금 되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거 다 가짜입니다. 예수 믿어 봐야 뒤에 가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은 것같이 돼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주인이 올 때에 깨어 있는 사람은 기쁘고 즐거워서, 그 사람도 반가울 것이요 주님도 반가울 것입니다. ‘주님의 불심판이 내릴 때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건가? 내가 정말 기쁜 사람이 될 건가?’ 그 기쁜 사람 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신앙 준비 한 대로 기쁜 사람 돼지지 그때 제가 뭐 담력이니 배짱이니 하는 그런 미련 가지고 절대 기쁘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나는 기쁠까 안 기쁠까? 주님이 나를 만날 때에 내가 주님에게 소망하는 것이나 주님이 나를 만날 때에 반갑고 기쁘고 즐거울 것인가?’ 그런 것도 우리가 생각한다는 그것이 뭐 땅위에 지저분한 거, 안 믿는 사람 생각하는 그거 전부보다 이 생각이 요것만 해도 더 큽니다.

자기가 돈도 없고 옷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이 한국에 제일 유력한 과학자가 되는, 권위자가 되는 그런 준비 공부를 하고 있고, 지금 그런 데 무슨 실력에 통과가 돼서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 제가 돈 없다, 뭐 권세 없다, 지위 없다 염려하지 안하고 배짱이 굉장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모두 불심판이 내릴 때에 자기가 주님이 칭찬하시고 자기는 담력을 가질 수 있고 반가히 맞이할 수 있는 이런 준비가 되면 그 사람은 날마다 주님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 뭐 재림 외에 딴거는 생각도 안할 것이고 바라보지도 안할 것입니다.

또 “주인에게 그 식구들을 맡아서, 사람을 맡아서 그렇게 때 따라 양식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이런 것도 자기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안 믿는 사람까지도 다 자기에게 책임이 지워져 있다 하는 이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많지를 못합니다.

“맡은 식구들에게” “맡은 식구들에게” 그러면 자기가 지금 구원을 잘 이루어가는 사람에게 대해서나 구원이나 모든 행복과 불행을 당하고 있는 그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쁘게 되는 것은, 그것은 원인이 어데 있느냐? 자기가 맡은 데서 됩니다.

자기가, 그 사람의 행복이 자기에게 매여 있다, 거기 대해서 자기는 책임자다 하는 그걸 느낀 것만치 그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자기의 기쁨이 되어지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의 모든 잘못에, 안 믿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우리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불행에 대해서도 자기가 견딜 수 없는 그런 불행을 같이 느끼는 것은 자기가 그 사람의 모든 행불행을 다 맡아 있는, 자기가 책임자라는, 책임이 자기에게 지워 있다는 요것을 깨닫는 데서만 인간의 행불행에 대해서 같이 동정되는 자가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식을 나눠 준다” 이것도 우리가 늘 많이 들었습니다. “양식 나눠 준다” 그러면 책임을 졌기 때문에, 책임을 졌기 때문에 내 일동 일정의 모든 언행심사와 내 태도만이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내 중심의 마음가짐까지도, 주님은 나를 보고 계시는데 그분이 모든 것을 보응시키는 분이시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들에 대해서 내 마음 가진 걸 인간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보응시키실 분이 그분이니까, 내 마음을 하나님이, 책임진 내 마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책임진 것을 보고 그분이 거기 대해서, 보응해 주실 분이 알 수 있도록 자기의 마음에 모든 것이 돼져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양식을 나눠 줄 수 있지 그리 안 하면 나눠 주지 못합니다.

자기 맡은 사람이라는 것, 또 맡은 사람이기 때문에 양식 나눠 줘야 되는 것, 양식 나눠 줘야 되는 그런 것은 생각하기를 신덕인데, 믿음의 덕을 말하는 건데 믿음의 덕은 껍데기밖에 모르는 사람의 이목의 덕만이 아니고 외나 거기 대해서 모든 것을 보응해서 실상화시키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주님 보시기에 신덕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과연 내가 책임 맡은, 나로 말미암아, 내 마음 가짐으로써 내 맡은 저 사람에게 구원이 되나?’ 잘못된 것 있으면 내가 행동 잘못한 것만은 아니고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마음가짐을 바로 가지지 못해서 이게 그 원인이 된 거 아닌가? 또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또 생각이나 소원이나 이 뜻이나,’ 마음으로 행동하지 안해도 ‘내가 소원하는 것이나 뜻이나 그런 것을 잘못해서 이게 원인이 되지 안했나? 내가 거기 대해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안하고 해서 그런 것으로서 무슨 원인되지 안했느냐?’ 이렇게 모든 사람을 자기가 맡아 있다는 것, 제가 몰라 그렇지 다 맡아 있습니다.

안 맡은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다 부담되어 있고 자기가 책임져 있고 그의 모든 행불행과 생사가 자기에게 원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자기가 그에게 양식 나눠 줘야 될 그것을, 양식 나눠 주는 것은 그에게 그 모든 영적으로 육적으로 그에게 오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니까 그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이 올 수 있도록, 다른 사람 아무도 몰라도 내 모든 마음가짐이 모든 사람에게 과연 도움을 줘서, 양식을 줘서 그들에게 힘이 되고 자람이 될 수 있었나 안 있었나 하는 그것을 자기가 살피고, 또 그 일을 생각하고 하는 그 사람만이 인인관계에 대해서 후회 없는 관계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지 안했고, 또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안했고 이렇게 무슨 마음의 움직임이 없었을지라도 그 모든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할 것이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불행스러운 일 있으면 ‘내가 거기 대해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었나?’ 내가 뭐 기도하고 벌써 이렇게 해 마음으로 결정해서 행동한 거는 그건 껍데기입니다. 그거는 아주 뭐 그거는 짙어져서 변동 못 하는 일이오.

이런데 ‘거게 대해서 내가 혹 마음을 잘못 가진 마음이 없었나? 또 내가 가질 마음을 가지지 안해서 이렇지 안하나?’ 그러면 잘됐을 때에는 자기가 으례히, 그 잘된 것이 자기에게 부담돼 잘된 것이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고 기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모든 행불행이 자기 것이 되어지는 그 원인은 자기가 사람들을 맡아 있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달은 데에서 그 느낌을 가지지 그거 깨닫지 못하면 자기는 완전히 사람에게 전부 빚졌고 가해자로 남에게 해를 가한 그 가해자가 되어 있어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유를 맡긴다. 앞으로 하늘나라에는 이런 사람에게 맡깁니다.

그뭐 노아 시대에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거 다 도적맞지 않는 거 그런 거 다 중요한데 이 범위가 넓어서, 도적맞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간단한 소유 무슨 지위나 권세나 이런 것을 얼마든지 무궁세계에서 가질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도적맞는 것도 도적맞는 것이지마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받을, 감사함을 받을,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게 자기에게는 큰 보배요 참 큰 보배로운 소유인데 그런 것을 다 빼앗기는 게 다 도적맞는 것이오. 뭐 자기 뭐 소유나 그런 것만 아니라 넓은 범위에서 모든 사람이 다 환영해서 주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어지는 그런 것을 자기가 다 잊어버린 그런 것이 다 도적맞는 것입니다. 영광의 찬미가 되고, 하나님의 기업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의 기관이 되고 하는 이런 것이 다 내게서 감퇴됐으면 이런 것이 모두 다 도적맞은 일이 됩니다.

그래서 보면은, 성경을 보면 우리의 행동이라 하는 것은 몸으로 행동하는 것 말로 행동하는 것 이것도 중요합니다. 몸으로 몸뚱이로 행동하는 것보다도 말로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3장에는 보면은 말은 말로 말하면 굴레라 이랬어. 말은 말로 말하면, 말망아지로 말하면 굴레라. 말은 배로 말하면 키라. 키 움직이는 대로 모든 배가 따라 움직이고, 말망아지의 굴레 고삐가 가는 대로 말은 끌려가고, 그게 붙들어 매 있으면 붙들어 매여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네 말이 네 남은 때의 모든 행불행은 다 그대로 결정된다. 네 말대로 결정된다. 네 말대로 결정된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주님이 우신 것은 사람들이 마귀 그놈에게 꼬여 가지고 자기 망할 그 일을 자꾸 합니다. 어리석게 다른 사람 해하는 그 말이 어리석은 제 미련한 제 마음에는 다른 사람 해하는 말이 ‘이 해는 남에게 해가 되고 내게는 유익이 되겠다’ 그것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지 딴데 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둔다” 그말은 자기가 거둔다 말입니다. 자기가 말한 그 댓가는 남을 저주했으면 저주는 제가 거두지 다른 사람이 거둘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말보다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제일 큰 성공을 하고 마음이 제일 큰 파괴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그러기에 주님은 인간의 행동을 무엇으로서 그 정의를 내렸느냐? “내가 행한 대로 갚는다” 말씀하시고 “네 마음의 뜻을 내가 안다” 이랬습니다. “네 마음의 뜻을 살핀다, 그대로 갚아 준다.” 이랬어.

이런데, 자기 말하고 마음 하는 그것이 자꾸 거짓말하고 자꾸 이래 하면은 그게 자기에게 뭐 저주를 막 들이 퍼붓고 마귀 그놈에게 달려 가지고, 그러면 범죄했으니까 마귀란 놈이 보응할 것 아닙니까? 이래 가지고 자기에게 멸망이 오는 것인데 여게 대해서 관심 없이 이렇게 하는 것, 우리가 자꾸 심령이 밝아져야 되지 어두워지면 자꾸 자멸하는 행위 합니다.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긴다” 이게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겼으면 하나님 같은 부자 아닙니까? 하나님이 모든 소유를 맡겼는데 뭐하라고 맡겨? 하나님처럼 그것을 관리하고 사용하고 또 거게 대해서 모든 영광이나 유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맡기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화된, 하나님화된 그 실력이 있어야 뭐 맡기지 하나님화된 그 실력이 없으면 어찌 맡기겠습니까? 이것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은 이것을 죽이는 것이지 하나도 맡아서 유익되게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할 뿐만 아니라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이랬습니다. 왜? 정 이질적으로 반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런 모든 것이 다 한 말로 해서 여게 말씀하시기를 “깨어 있으라” 했습니다. 깨어 있으면 다 됩니다. 깨어만 있으면 다 돼요. 깨어 있으면은 뭐 예수님 오셔 불심판 내릴 때에 아무 두려움 없고 기쁘고 즐거울 것이고, 또 예수님이 오실 때에 반가울 것이고, 하나도 도적맞지 안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자연히 깨어 있으면은 모든 사람을 책임진 일이 됩니다. 깨어 있으면 모든 사람을 책임지고 책임 완수하는 일이 됩니다. 또 깨어 있으면 때 따라서 양식을 얼마든지 뭐 부족함이 없이 얼마든지 준 사람이 됩니다. 깨어 있으면 이 사람이 앞으로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자기가 상속받아 가지고 그것을 하나님이 관리하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들이 다 주라 시인해서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수 있는 이런 실력 있는 관리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게 뭐인가? 봐, 오늘은 또 보니까 훨씬 적게 나왔네. 오늘이 무슨 날이요? 화요일 날이요? 화요일 날이니까, 어제 아침에는 월요일날 아침이니까 주일날 ‘새벽기도 나오자’ 이라니까, 좀 ‘새벽기도 나와 봐야 되겠다' 요라니까 어제 아침에는 보니까 천 명이 넘었는데 오늘은 교역자들이 모였습니다. 교역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오늘은 교역자까지 다 모여도 천 명이 조금 모자랄 것 같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마음이 약하다 그말이오.

자기가 약한 줄을 알고, 이렇게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은 ‘나는 약자다. 나는 거짓부리라.’ 말씀을 기준해 살라고 할 때에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약자인 걸 깨닫고, 거짓된 자인 걸 깨닫고, 모든 자기에게 심판받을 것들이 다 깨달아지지 말씀을 떠나면 그게 깨달아지지 안하고 저만 교만합니다. ‘내가 제일인데’ 하고서, 만나서, 벌써 그 사람 만나 가지고 제 자랑이나 하고 뭐 좋은 점이나 말하면 참 기가 찹니다. ‘이 사람이 아직까지 멸망받을 것이 멀었다’ 절대로 겸손이 시작되기 전에 저에게 행복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겸손이 시작되기 전에 주님의 동행은 시작되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이 시작된 지 오랜 후 울면서 부르짖은 간구하는 그 끝에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 줍니다.

왜 하나님이 꼭 항복을 받을까? 그게 아니고 그 은혜를 은혜로 가치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주면은 그 은혜 가지고 도로 죄짓고 악용하고 도로 배은하는 그런 더 죄 위에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실 수 없고 주실 수 있는 그런 정상이 돼지면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게 뭐이 깨어 있는 건가? 깨어 있으면 다 돼요. 깨어 있는데 깨어 있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거 깨어 있다 뭐 잔다 하는 것은 세상에 육신의 일을 가지고 하나의 인용해서 상징으로 비유해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죽은 자는 어떤 자가 죽은 자냐? 생명은 없는, 쭉 뻐드러져 있는데 생명 없는 자가 죽은 자입니다. 자는 자는 어떤 자인가? 생명은 있기는 있는데 죽은 자와 꼭 같이 생명 활동이 없는 자가 자는 자입니다.

이래 보니까 숨만 풀풀 쉬고 있지 뭐 눈도 죽은 송장 같고, 손도 송장 같고, 다리도 송장 같고, 정신도 송장 같고, 뭐 가야 누가 알지도 못하고, 아무 생명 활동이 아무 지체에 없다 그말이오, 지체에 없어. 다만 호흡만 있지. 그게 자는 자 아닙니까? 깬 자는 어떤 자인가? 깬 자는 그 생명 활동이 있어. 눈도 보니까 살아 가지고 활동하고 있어. 산 활동 하고 있어. 생명 활동이 있는 것이 깬 자라. 눈도 보니까 깨어 있고, 손도 깨어 있고, 손도 보니까 활동을 하고, 산 사람의 활동을, 손도 활동을 하고 있고, 다리도 활동을 하고 있고, 뭐 몸뚱이도 활동하고 모두가 다 지금 다 활동하고 있으면은 그게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었는데, 죽은 자는 생명이 없는 자가 죽은 자요 자는 자는 생명이 있으나 죽은 자와 꼭 같이 생명 행동이 없는 자가 자는 자요, 깬 자는 자는 자와 다른 것은 생명은 같이 있는데 생명이 역사하는 생명 활동, 생명 작용 있는 그것이 깬 자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생명이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우리 생명이 몇이요? 녜, 우리 생명은 다섯입니다. 셋인데 그것을, 또 셋이라 하면 고거 건너가고 바로 뛰어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다섯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다섯이라.

다섯은 사죄, 칭의, 화친, 그러면 이 세 가지 아닙니까?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또 대속으로 말미암은 영감과 진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영감과 진리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사도행전 3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 했는데 이 믿음은 어데서 나왔느냐?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 그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알고 인정한 사람, 그 공로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믿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이름이라” 이름이라는 것은 과거사지 현재사도 아니고 미래사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름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이미 공로, 예수님으로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받았고 이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영생하는 새생명을 받았습니다. 새생명 받은 것은 우리의 생명은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 생명인데, 생명이라 말은 힘이라 말입니다. 힘이라 말과 같은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의 힘은 예수님의 대속의 힘이요, 또 영감의 힘이요, 진리의 힘이라.

이러니까 이 다섯 가지 힘으로 움직이는 그것이 깬 생활입니다, 다섯 가지 힘으로 움직이는 것.

그러면 자기가 진리로 움직이는 것이 깬 것이요, 또 영감으로 움직이는 게 깬 것이요, 자기가 예수님의 공로에 피동되는, 예수님의 공로로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깬 것이요, 그러면 사죄로 움직이고, 화친으로 움직이고, 또 칭의로 움직이는 그것이 깬 생활인 것입니다.

이렇게 깬 생활, 힘으로 움직이는 것 이것이 깬 생활인데 이 생활이 이 사람을, 앉은뱅이를 낫게 했다. 그러면 이 생활, 이 움직임, 예수님의 이름, 깬 것, 우리의 생명, 우리의 생명은, 다섯 가지 힘으로 우리가 살아났는데, 우리 생명은 다섯 가지인데, 다섯 가지 우리의 생명의 힘이요 생명인데, 바로.

깬 자, 이 다섯 가지 힘으로 움직이는 자, 그러면 다섯 가지 힘이라면 이거 다섯 가지 힘은 사도행전 3장에는 이름이라 했기 때문에 이름은 뭐 그게 미래에 이름이 있지 않습니다. 이름이라는 건 이미 과거 현재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지, 과거 현재에 표시가 이름이지 미래의 표시가 이름되는 거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과거 현재에 예수님의 대속의 이미 공로가 설정되고 역사하고 있는 이것으로 사는 것이 깬 생활인 것입니다.

이 깬 생활에는, 이거 뭐 다 해석할 수 없는 것이고. 깬 생활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까? 깬 생활은 사죄로 사는 것이요, 칭의로 사는 것이요, 화친으로 사는 것이요, 진리로 사는 것이요, 영감으로 사는 것인데 이렇게 사는 데는 제일 일호로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일호로 중요한 것이 뭐인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여게 목사님들이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일호로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일호가 뭐이 돼야 됩니까? 일호로 제일 중요한 것이 뭣입니까? 교역자들 다, 목사님들 한번 대답해 봐요. 전도사님들 한번 대답해 봐요. 여기는 전도사들도 있지. 깬 생활에는, 깬 생활에는 무엇이 제일 중요하고 일호가 뭐, 이호가 뭐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일호가 뭐 이호가 뭐, 일호가 뭐인지? 깬 생활에 일호가 뭐인지 그거 모르면 어떻게 깬 생활 할 수 있겠어? 깬 생활의 일호가 뭐입니까? 첫째 무엇을 해야 깬 생활이 될 수 있는지? 깬 생활은 진리 생활이 깬 생활이요, 영감 생활이 깬 생활이요, 사죄 생활이 깬 생활이요, 칭의 생활이 깬 생활이요, 화친 생활이 깬 생활이요 이것이 깬 생활인데, 이 깬 생활만 하면 다 되는데.

이 깬 생활이 그 사람을 완전케 했고, 죽은 사람을 살렸고, 그 사람을 존귀케 했고, 또 한없는 행복을, 평강의 쾌락의 행복을 가지게 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 구제받던 자가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자가 되어졌고, 하나님 만나게 됐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 수입 했고, 모든 영광의 주목자가 다 됐고 이거 뭐 사도행전에 일곱 가지 성공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예수의 이름이 했다 그말이오, 예수의 이름이. 다른 이가 한 게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했어.

예수의 이름이 했는데 예수의 이름이 했다 말은 예수님의 이 다섯 가지 공로가 했다 말이요, 능력이 했다 말이요, 다섯 가지 이 능력의 역사가 했다 그말입니다.

그거 아닙니까? 이름이면 역사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미래보다도 과거에 이미 해 놓은 그것이 이름이라. 과거에 해 놓은 그 능력의 역사가 이 일을 해요.

그라는 데에 이렇게 되는 이건 이건데, 그러면 그렇게 할라면 우리가 뭘 해야 됩니까? 일호가 뭘 해야 됩니까? 예? ‘믿음’ 하면 믿음은 너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거 가지고는 모릅니다. 일호가 뭐입니까? 마음의 믿음, 알고 행하는 자, 다 틀렸어. 자기가 안 해 보기 때문에 그래.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부인이 일호입니다. 자기 부인하지 안하고 자기가 들어서 지금 목회하고 자기가 들어 가지고 뭘 준비하고 기도하고 암만 해 봐야 헛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원수가 자기요.

보면은, ‘이거 또 아직도 자기가 지금 날뛰고 있다.’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제 원수인데, 그게 들어 저도 병들기도 하고 모든 거 다 망하는 것인데, 무슨 과거가 문제가 없어.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이 시간 회개하면 진홍같이 붉고 뭐 주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눈과 같이 희게 된다 했어.

이러니까, 이제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항상 방어하는 것이 ‘내게 보자. 해를 하나 안 하나? 나를 도와 주나 안 도와 주나? 나를 환영하나 안 하나?’ 하는데 그거 다 산 자는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것이 어느 것이 표준이요 어느 것이 자기인지 그게 문제라.

자기가 잘못됐으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그것이 자기가 돼 있으면은 옛사람 그놈 옹호하면 좋다고, 옛사람 그놈 찬성하면 좋다고, 협조하면 좋다고, 옛사람을 환영하면 좋다고, 옛사람을 도와 주면 좋다고, 옛사람을 북돋우면 좋다고, 옛사람을 헐면 당장 원수로 여깁니다. 이것을 바꾸기 전에는 제가 구원이라 하는 건 천리 만리 멉니다. 입술로 암만 천사의 말해도 소용 없습니다.

이러기에 자기를 바꿔야 돼. 자기를 바꾼다는 건 자기를 부인해야 돼. 나를 찌른 자가 누구며, 나를 죽인 자가 누구며, 나를 천하게 만든 자가 누구며, 나를 해한 자가 누구며, 나를 속인 자가 뭐냐? 그자를 원수인 줄 알고 그자로 단속하면은 그 사람은 뭐 어떤 가운데 있을지라도 오늘이라도 그만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깬 생활에 제일 일호에 중요한 것은 원수가 자기라는 걸 알고 자기가 원수인 걸 알고, 또 자기는 영원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자기인 것을 알고, 자기가 둘이라. 자기가 둘인 그걸 알아서 죽일 놈은 죽이고 살릴 놈은 살리고 자기를 둘로 구별해야 되지 자기를 둘로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 뭣 합니까, 하기를? 옛사람이 여기서 목회하는 자 많이 있어. 아직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날이 가득 찼어. 인간 그까짓 거 뭐 젊어도 소용 없어. 당장 코르르 팩 뒈져 버립니다.

아무리 그거 건강해도 소용 없어. 당장 병신이 됩니다. ‘나는 돈이 많다, 부자가 많다.’ 돈이 많다 해도 정함이 없어. 그까짓 거 당장 거지 돼. ‘나는 뭐 실력이 있다, 기술이 있다, 나는 지헤와 총명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당장에 그거 바보 돼 버리요.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은 뭐라고 했습니까? 교만한 자를 뭐라 했소? “교만한 자는 물리친다” 했어. “교만한 자는 물리치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교만한 자가 어떤 자가 교만한 자요? 옛사람의 것 그걸 가지고 옛사람 가지고 뭐 할라 하는 거는 다 교만한 사람이라. 새사람 아닌 건 전부 교만한 자입니다. 새사람 아니고 옛사람은 다 교만한 자이기 때문에 옛사람 노릇 한 시간 했으면 한 시간 하나님과 나와 멀어지는 역사만 했습니다. 일 년 했으면 일 년 멀어지는 역사만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쉬워. 깬 생활 하면은 그거는 이미 여기 속에 있는 생명이 역사하지 뭐 제가 합니까? 우리 깬 생활이라 하는 것은 생명 생활인데 생명 생활은 이 생명은 전능이오. 진리도 전능이요 전지요, 또 영감도 전지 전능이요, 사죄도 전지 전능의 완성이요, 칭의도 전지 전능의 완성이요, 화친도 전지 전능의 완성입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해 볼라고 애를 써야 될 터인데 ‘깬 생활 내가 해야 되겠다’ 그러면 제일 쉬운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아 보겠다’ 하는 요거 제일 쉬운 게 요거라. 하나님 말씀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중앙이라고, 하나님 말씀을 중앙이라고 했소 하나님 말씀을 울타리라고 했소? 뭐라고 배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울타리라고 했소 중앙이라고 했소? 울타리라, 울타리. 울타리. 이제 울타리 그 밖에 나가면 죽음이고 그 밖에 나가지 못하는 울타리라. 이렇다고 해 영감되는 게 아니라. 영감은 중앙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은 영감으로 중매시키는 영감의 중매자다, 인도자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이 진리대로 산 것의 성공이 영감이요, 진리와 영감대로 산 것의 성공은 뭐라고 했습니까? 뭐라고 했소? 뭐라고 배웠소? 피라, 피.

이것을 자기가 앵무새 모양으로 자꾸 음만 들어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속에 느껴야 돼요. 느끼고, 자, 아는 것은 그라면 읽어야 알고 들어야 압니까 어째야 압니까? 읽고 듣는다고 알면 하나님 말씀은 죽었습니다. 제가 암만 읽고 들어도 소용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알고 듣는 것이 많겠소 지혜 있고 통달한 사람이 알고 듣는 게 많겠소? 누가 알고 듣는 게 많겠습니까? 지혜 있고 통달한 사람들이 알고 듣는 게 많은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에게는 진리가 숨겨졌다 이랬어. 영감이 숨겨졌어.

이러니까, 요는 모두가 다 자기가 고쳐져야 됩니다. 안 고쳐지면 안 됩니다. 자기 고치지기 전에는 절대로 행복은 없습니다. 고치기 전에 안 돼. 마음보를 고쳐야 돼. 정신을 고쳐야 되고.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아는데, 자기 마음에도 거리끼는 일을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뭐이 서지겠습니까? 예수 믿는 것은,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을 내가 깨닫지 못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지금 뭣이 어찌 돼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떨며 사는 그것이 신앙의 사람들의 그 마음인 것입니다. 이래서, 깬 생활 좀 해 봐요, 우리가.

이거 뭐 교회가 도무지 부흥이 안 돼. 안 돼서 이번에는 청빙제로 해서 이제는 자, 누구든지 이래 뭐 이만치 나왔으니까 그 교회에서 청하는 사람은 다 가고 이러니까 뭐 여게 저게, 어떤 교역자는 청함을 그러면 한 뭐 칠팔, 요새 교회가 얼마나 됐는지 그만한 숫자가 청하는 사람, 뭐 몇십 군데서 청하는 사람, 청하는 데 없는, 청하는 데 없고, 청하는 데는 없고 저 있는 교회서도 배척 ‘이거 바꿔 주십시오. 이거 안 됐습니다.’ 얼마든지 해요, 뭐. 바꿔 달라.

은혜 없는데 ‘교역자 배척하면은 죄 받는다’ 그거는 교역자가 독단으로 단독적으로 하는 말이지, 일방적인 말이지 그렇지 안해. 교역자 배척에 대해서, 교인들이 다 죽고 은혜가 없는 교역자 배척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요 하나님이 저주해요? 자, 저주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이 축복해 준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다 안 드네. 겁이 나 못 드는구만. 교회를 망치고 손해가고 다른 사람 모든 사람의 구원에 손해가는 그 교역자를 배척하는 배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합니다. 그자가 하나님의 원수요. 양을 잡아먹는 이리인데 이리를 쫓아낼라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수로 삼아요? 저주를 해요? 이래도 ‘교역자 배척하면 망한다, 안 된다.’ 이게 이 교역자들이 전부 일방적으로 제 사욕적인 말을 해 놓은 이게 어떻게 선전이 돼 놨는지 그만 뭐 교인들이 뭐 꿈쩍을 못 해. ‘아이구 교역자 배척하면 망한다 하더라. 배척하면 망한다더라. 그라면 내가 딴데로 가야지. 다른 교회로 가야지.’ 다른 교회로 갔으면 갔지 배척 안 할라 한다 말이오. 그게 제가 아닌 줄 알았으면 제가 거기서 파수군인데 그 파수군이 나팔 불지 안하고 도망쳐서 딴데로 갔으면 하나님이 냅두시겠소? 잘못 깨달음의 생활 하지 안 해야 돼.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라고 좀 해 볼라 하면 당장 표가 날 것인데. 깬 생활하면은, 깬 것이 뭐 이런 거 저런 거 뭐 건설하지 깨지 못하고 자는 자가 무슨 건설하겠소? 깨면 대번에 건설이 되는 걸 제 눈으로 볼 터인데. 깨면 당장에 설교가 은혜 있는 설교인데. 깨면 제 마음이 편한데.

저를 자랑하고 내가 이렇다고 자기를 자꾸 보호할라 할수록이, 자기의 장점을 보고서 자랑을 할수록이 불안이 가득 찹니다. 자꾸 위에 누르고 있어, 몰라 그렇지. 이러니까 속은 불안해 죽겠는데 겉어머리로는 자꾸 이거 평안한 체 외식할 수밖에 없어. 자기가 자기의 단점을 찾아 가지고 회개하면은 다른 사람에게는 욕을 얻어먹어서 욕을 하고 조롱을 하는데 속에는 한없이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깬 생활, 뭐 이거는 집에 가서 해석하면 될 터이니까 벌써 시간 됐으니까, 깬 생활 좀 하도록 해요.

이거 지금 나온 사람들 여러분들이 이 믿는 사람에게 전도해야 돼. 자, 오늘 아침에 전화로 깨워서 전화 심방 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전화로. 아직 나가지 말아요. 거기 있어요, 아직. 전화로 심방한 사람 손 들어 봐요. 전화 심방 한 사람? 손을 좀 버뜩 들어 봐. 이게 자랑이야. 그라면 다른 사람에게 ‘나도 전화, 아이구 저 사람 전화했으니까.’ 전화 심방 한 사람 좀 손 좀 들어 봐요. 제 자랑하는 것 같아서 손을 못 들고, 그거는 다른 사람 살리는 거니까 이래 들지. 그게 겸손이라.

‘전화 심방 했다는데 내가 남한테 이게 좋은 거니까 자랑한다’ 싶어 이라는 그자가 교만한 자라. 그거 누가 그렇게 해 그란가? 누가 들어 ‘이거 다른 사람이 알고 이라면 이거 자랑하는 것같이 이거 안 됐다,’ 그자가 옛사람이요 새사람이요? 예수로 말미암은 새사람이요 옛사람이오? 자, 새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옛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옛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똑똑히 들어 봐요. 옛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옛사람이라! 죽여야 될 놈이라! 그거 죽여야 될 놈! 이거 옛사람 새사람 바로 가려야지.

벌써 틀렸어. 어제 아침보다 훨씬 적게 나왔어. 안 돼요, 그라면. 그것도 못 하는데 무슨 불 가운데에서 기쁨으로 통과할 수 있어? 뭐 지나간 때 모든 사람들 말하면 웃고 있습니다. ‘지나갔는데’ 지나간 때 뭐 어떤 순교자를 얘기해도 아주 거기 대해서는 아주 무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뭐 나도 하지’ 제맘대로 해? 어리석어요.

우리 교인들 깨야 됩니다. 우리 교역자들 깨야 돼요. 교역자들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안 되고, 속에는 원수 그놈이 가뜩 차 그놈이 주관하고 있다가 그저 새사람으로, 어짜든지 무슨 매나 한번 되게 맞으면은 새사람이 나오고 옛사람 그놈이 좀 꺼꾸러졌다가 조금 벌써 몸뚱이 치료되자 옛사람 그놈이 치료된 나머지기는, 치료되자 그놈은 옛사람 그놈이 차지하고 있어. 교회가 절단났다가 교회가 조금 부흥되면 그놈이 차지하고 있어. 어느 중에 그놈에게 다 뺏겨 버리고, 원수가 그것인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뭘 하겠소, 하기를?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미래 위해서 삼십 분 기도, 자꾸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이거 등한히 하고 잘 지키지 안하는 사람 앞으로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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