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준비

 

1984. 2. 12. 주일오전

 

본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나오라 하매 이에 그 쳐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여러 시간 증거했기 때문에 이미 듣고 아는 그런 부분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그럴 부분만 지금 증거할려 그  합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비유라는 것은 알기 어려운 어떤 실상을 그 실상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비유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유보다는 실상이  더 정확하고 세밀하고 구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비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쳤을 때에는 이 비유보다 실상은 더 확고하고 구비하고 온전한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대개 성경에 비유로 한 그 실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세상 이런 것 저런 것을 비유로 이용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기에,  비유를 배울 때마다 그 비유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 곧 우리들과의 관계는  그 비유보다 더 정확하고 실상이고 구비하고 온전한 이 사실을 인식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비유는 그러하지마는 주님과 우리 교회인 성도와의 그  관계가 비유처럼 그렇츰 그럴까 해서 실상을 이 비유보다 더 성근 것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불구비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정반대로 삐뚤어져 나가는  생각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마지막에,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말은, 우리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자인데 영감과 진리로 행동하면 깨어 있는 자요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자이지마는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그렇게 살고 있으면 자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날과  그시라는 말은 주님 만날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주님을 신랑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주님과 우리 교회와의 사이를  이 세상 사람들의 부부로 부부의 비유를 가지고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그 부부 제도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 사이의 그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의 비유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부부의 유별한 관계 그것보다도  하나님과 우리 교회와의 관계는 그런 것으로서 비유만 했지 그런 것으로 그저 그  실상을 나타낼 수는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는 무한하고  영원하고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할 수 없는 그런 영영하고 견고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주님을, 하나님을 자존자 창조주 주권자  주재자 홀로 한 분이신 이 하나님, 모든 존재는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다스림도 유지도 또 성장도 멸망도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극히  무한하시고 크시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긴하고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신  이 하나님을 마치 처녀가 그 신랑과 결혼하면 신랑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어서 두 사람이지마는 성경에 정상적인 부부는 부부일심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정상적인 부부는 그 어떤 허물과 죄가 있어도 나뉘지는  못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로서 책임도 하나요 욕도 하나요 영광도 하나요 실패도  하나요 성공도 하나요 모든 것도 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런 대주재를 자기의, 마치 처녀에게 그 총각으로 더불어 결 흔해서  자기 남편된 것처럼 이렇게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맺어지는  참 자기의 구주가 되어지는 그날과 그시간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다른  비유로 말하면 이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이 자기의 머리가 되고 자기는 그의 몸이  되는. 머리와 몸은 한몸되는 한몸인 것과 같은 이런 밀접한 관계의 달성이 어느  날 어느 시에 될는지 모른다 하는 그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의 그 공심판인 그 심판에서는 이것이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었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었고 그는 우리의 남편이  영원한 남편이 되었고 우리는 그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러면, 일남 일녀로 부부가 되어지는 것인데 성도는 수가 많고  예수님은 한 분 뿐이시라면 그 해석이 일부 다처주의의 해석이 아닌가 그런  오해를 가지게 되기도 쉽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는 첫 교인 아담 해와로부터 오늘까지의 역사에  있는 모든 택한 자들과 온 세계에 택한 모든 사람들은 어느 교파와 어느 진영에  속했든지, 어느 지역 어느 민족에 속했든지 다 한 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한 몸이라. 그러면 택한 자로 믿는 자는 다 한 몸이 되고 그 한 몸의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 몸이되는가? 한 몸이 되는 것은 생명이  하나요 또 지능이 하나요 또 거기에 모든 역사하는 온갖 기관과 연락과 움직임이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희로애락도 하나요 그의 행 불행도 다 하나요. 그러기에,  하나님도 하나시요 구속주도 하나시요 성령도 하나시요 소망도 하나요. 그러기  때문에 희로애락의 모든 것도 하나라.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된  그것만이 예수님의 몸이 되지 그 외의 것은 예수님의 몸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택한 중생자라도 그 중생과또 기본구원 열 가지에 말한 그것만 그 사람이  어떻게 했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객관 역사로 말미암아서만 된 것이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그의 심신의 구원인 심신의 기능 구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하나님의 그 형상대로의 그 마음의 기능이 된 것 몸의 기능이 된 것  이것만이 다 하나가 되지 거기에 이 질적으로 되어 있는 마음 이질적으로 되어  있는 그 모든 몸의 기능 그런 것들은 다 제거되어서 불사뤄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이렇게 세상 신랑 신부의  이것을 비유로 써 가지고서 그 실상인 주님과 교회와의 그 관계를 가르치신  그것을 예수님은 머리시요 교회는 몸이라는 이갖을 함께 연결시키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천하에 있는 모든 교회와 역사에 있는 모든 교회가 한  몸이라, 한 교회라,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을 깨달으면 이 모든 것이 충분히  해석이 될 것입니다.

 마귀라는 놈은 모르는 그 무지자를 미혹시켜 가지고서 멸망시킵니다. 아는 자는  미혹을 시키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은혜 받는 것은  첫째가 아는 것입니다. 기분 좋은 것이 은혜가 아니고 기쁜 것이 은혜가 아니고,  기쁜 것 기분 좋은 것도 은혜도 될 수도 있고 그것이 멸망도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생기고 마음은 어떻고  성품은 어떻고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신구약 성경에 똑똑히 그려 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그 은밀한 것까지를 다 아는 사람은  영감을 받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감이 표시된 신 구약 66권은 윤곽적으로 외부적인 대략을 우리에게  소개해 놓은 것이 66권의 도리요 그 안에 은밀한 것은 성신의 감동으로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에 그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깨달으면 시구약 성경의  그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전부 예수님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이 면은  이러하고 저 면은 저러하다 하는 것을 가르쳐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의  행위와 그 말씀대로의 사상과 그 말씀대로의 마음 움직임, 몸 움직임, 모든  행동, 사람이 되어지면 되어지는 그것이 차차차차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고 배워가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 구원이라 건설 구원이라 행위 구원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그때 그때 알아 들을 수 있는 가장 쉬운 표현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이 신랑을 맞이하는 그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한다 하는 이 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준비를 잘 했든지 못 했든지 자기 한 대로 예수님을 맞이하여 영원  무궁한 나라에 옮겨져 가서 작은 자는 작은 자, 큰 자는 큰 자. 무능한 자는  무능한 자 유능한 자는 유능한 자, 영광이 없는 자는 없는 자, 있는 자는 있는  자 수치스러운 자는 수치스러운 자, 부끄러운자는 부끄러운 자 벗은 자는 벗은  자 그대로 영원히 고정적으로 다시 변동없는 결정이 되어지는 그 시간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때요 또 개인으로 말하면 세상을 떠나는 그 죽는  때입니다.

 그러면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죽음도 알지 못한다 또  예수님의 재림도 알지 못한다 하는 이것은. 종말을 가리켜서 말하고, 이것만이  아니고 시기시기에 주님과 자기와의 머리와 몸과 같은 이 결합되는 이 결합의 그  시기가 밤에도 그런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낮에도 그런 시기 가 있을 수 있고  젊을 때도 그런 시기가 있고 늙어서도 그런 시기가 있고. 또 봄에도 여름에도  언제 그런 시기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자기 혼자 있을 때에도 그런 시기 오고  여럿 있을 때에도 오고. 이러니까, 그런 시기는 주님과 우리와의 부부같은 이런  밀접한 한 몸이 되는 희로애락이 하나되고 모든 영광과 존귀와 그 평강이 처소가  하나되는 이 관계가 맺어지는 것도 언제 맺어질는지 모르고 주님은 머리시요  우리는 몸인 이런 관계도 언제 맺어질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왕이시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이 관계도 언제 맺어질는지 모릅니다. 또 주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이것도 언제 맺어질는지 모릅니다.

맺어지는 것과 맺어지는 이 일을 준비하는 시기가 따로 있다 하는 것을 여기에  비유해서 기름 준비 할 때도 있고 마지막에 신랑 맞이할 때도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많은 그 시간과 날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시간과 날은  둘을 위한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날을 쪼개면 시간이 되고  시간을 쪼개면 자기의 현실이 됩니다. 그러면, 현실마다, 수 많은 현실이  있지마는서도 현실 현실마다 시간 시간마다 날마다 그날이라는 모든 것은 다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면 바른 생각을 가진  것이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몇 해가 남았든지. 젊든지 늙든지  어린아이든지 어쨌든지 세상에서 난 이후부터 자기가 자의식이 발달이 되어서  생겨진 때나 생기지 안한 때나 어쨌든 세상에 있는 제세의 기간은 다 이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서 있는 시간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는 뭐인가? 하나는 준비하는 때라, 준비하는 때라, 기름 준비로  비유한 것처럼 준비하는 때라. 또 하나는 준비한 그것이 이제는 완전히 결실이  되어지는 것과 같이 준비한 그것이 완성되는 때라. 그러면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 완성의 때 가 언제인지 모르니 네가 준비의 때에 게을하지  말고 준비를 잘 해서 완성하는 그때에 당황하고 네가 실패하지 말고 완성을  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라 하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도 완성의 때가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적으로는 오는 것도 있고  단체적으로 오는 일도 있습니다.

 과거에 6·25같은 것은 우리 남한에 있는 모든 기독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온  때입니다. 6·25전쟁이 났을 때에 그때에 기독자들의 그 마음은 완전히  디비졌습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은 참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있고,  아주 주님을 버리고 성경 조차도 다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고. 그만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전국에 신앙을 조사해 보면 저 호남 쪽으로 있는 호남 쪽으로 있고 저 충청도  호남 저쪽 편으로 있는 사람들이 그때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거기에는  그들이 왔을 때에 예배당도 비워 돌라 하니까 다 비워 줬고, 또 그들이 예수  믿지 말라 하니까 다 예수 안 믿겠다고 다 말했고, 또 이제는 우리의 행정에  가담해서 우리를 따라서 같이 역사하겠느냐 할 때에 다 그렇게 각오도 했고  이래서 사흘 만에 한번씩 모든 지방 인심 조사를 해 가지고 우리에게 보고하라  했을 때에 사흘마다 한 번씩 가서 보고를 다 했었습니다. 보고 하다가 마지막에  보고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안 돌아와서 무엇 때문에 안 돌아오는고 하고 보니까  벌써 인민군들은 후퇴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데리고 갔는가? 아니,  학교면 학교에 구덩이 파고 다 죽였고 또 어떤 사람은 산에다 구덩이 파고  죽여서 그때 예수님을 배반하고 판 사람들은 수없이 죽었습니다. 많이  죽었습니다. 그것이 숫자로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많이 죽었습니다. 죽은 그런  사람들을 또 마귀란 놈은 또 과장을 해서 순교자라 빨갱이 인민군에게 죽었으니  순교자라 그렇게 과장을 해 가지고 사람을 두터 씌웠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는  그들에게 주님을 배반하고 죽은 것이 순교자가 아니고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내놓지 안하고 진리를 내놓지 안할라고 함으로써 그들에게 죽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속해서 그들은 다 순교자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뒤에  영광이 있지마는서도 주님 팔고 그들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죽은 그런 것은  기본구원은 택한 자면 얻지마는서도 영광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남한으로 말하면 전체적으로 주님과의 이 부부의 결혼식이 되어 지는  때라고 볼 수 있고 또 머리와 몸의 이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루어진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라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가정의 구원에도 그런 일이 있고, 자기의 직장에서도 그 직장에서 지킬라 하니까  그 직장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이제 어느 것을 하겠느냐? 기름 준비를 할래  주님과 너와의 이 결합을 이루는 이 일을 할래, 주님을 배반할래, 진리를  배반할래? 둘 중에 하나 해라 할 때에 그때 배반하므로서 신랑에게 배척 당하는.

배반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등불이 없는 것입니다. 빛을 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접해서 결합되는 것은 등불을 들었다는 것으로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가진 모든 시간은 준비하는 시간이요 또 준비한 그것대로의 이제  결실 성공을 하는 때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완성되는 성공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으라' 그 말은 항상 준비해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젊든지 늙든지 자기는 학생 이든지 무엇이든지 모든 시간은 다  준비하는 시간이라. 완성되는 시간이라. 완성되는 시간이 언제 올는지 모른다.

준비하는 시간은 언제나 있는 것인데 준비하는 시간이 오늘로 끝날는지 모른다.

준비가 오늘로서, 준비할 수 있는 그 기회가 오늘로서 끝날는지 모른다.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슬기 있는 사람인가? 슬기 있는 사람은 자기의 가진 모든  시간은 다 준비하고 완성을 얻는 그 시간이라 보는 사람은 슬기가 있는  사람이고, 미련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미련한 사람인가? 처녀와 총각이 신랑  교회와. 자기와 주님과의 부부의 결합이 되어지는. 자기와 주님과의 머리와 몸과  같은 아런 결합이 되어지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은 젊으니까 공부할  시기다 공부만 자기 전업을 삼고. 지금은 젊을 때이니까 돈벌 때다 해서 돈 버는  데만 전공을 삼고. 자기는 또 이런저런 직장이 있으니까 이렇게 지금 자꾸 한 층  두 층 올라가는 것이 자기 할일이라 이렇게만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지금 남편을 지금 호려 가지고서 남편 하나만 내 사람 만들면 된다 또 그것으로  삼고, 나는 저 미인을 내 사람 만들면 되겠다 그것만 생각하고 뭐 별별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 준비와 준비의 결실을 맺을 때라는 이 두 가지의  시간으로만 생각지 안하고 그 외에 딴 것으로서 이용하는 사람은 다 속는  사람이요 미련한 성도입니다. 미련한 성도. 지금은 사람들이 업신 여기지마는 다  우리가 이 길을 가야 되고 앞으로 가서 준비한 대로 그 결과를 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음으로는, 그러면, 우리가 준비를 어떤 준비를 해야 될 건가?  기름 준비를 하라 이랬습니다. 기름 준비를 하면 기름은 무엇인가? 기름은  밤중에 등불 들 수 있는, 등불을 켤 수 있는 그것이 기름이다. 밤 중에 등불을  켤 수 있는 것이 기름이요 기름이 없으면 아무리 등불을 켜야 될 줄  알지마는서도 불이 켜지지를 안한다. 그러면, 이 기름은 무엇이며 밤중은  무엇인가? 기름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대로 사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너무  복잡하고 알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말씀대로 산다고 이리 저리 날뛰다가 보면  그만 마치 모래 구멍에 물 새듯이, 바다에다 구덩이를 파놓고 암만물을 퍼다  부어도 구멍은 없는데 다 새어 내려가 버립니다. 이거 모양으로 자기가 어정어정  거리다가 보면 다 성경 말씀 다 어겨 버리고 준비를 못 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기름은 무엇인가? 녜, 기름은 '가지를 가리켜서  기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기름은 두 가지로 분류 해 가지고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분류를 하면은. 뭣 뭣인가? 녜, 이것은 바로 아는 것과 바로  행하는 것 요 두 가지가 기름입니다. 그러면, 기름을 준비했다 그 말은 바로  아는 실력을 길러 마련하고 바로 행하는 실력을 길러서 마련해서 실력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실력 있는 자가 되어지면 어떤 때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가? 그것은  밤중에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밤중에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지면 밤중은 어떤 것이 밤중인가? 밤중은 잘못 알게 바로 알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아는 것이 밤이요 삐뚤어지게 행하는 것이 밤중인데 전부가, 세계가  다, 뭐 학자고 뭐 유능한 사람이고 말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삐뚤어지게 알고 또  삐뚤어지게 행하고, 그런데 이 밤중에 세력은 어떻게 해서 깜깜해서 등불도 그만  다 그만 꺼져버리고 이렇게-기름 없으면 꺼집니다. 삐뚤어지게 알리는  삐뚤어지게 알도록, 잘못된 지식과 지혜를 가지도록 그렇게 악령이 유혹을  시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요렇게 알고 요렇게 해야 된다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삐뚤어지게 가르쳐 주는. 현재도 삐뚤어지게 가르쳐 주고 이래야 네가  미래적으로 잘된다 미래도 삐뚤어지게 가르치고 현재와 미래를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그 악령의 역사. 세상 역사 가 있습니다. 삐뚤어지게 현재와 미래를  가르치는 것, 미래를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것을 가리켜서 삐뚤어진 지혜라  그렇게 말하고, 현재를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걸 가리켜서 삐뚤어진 지식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지혜 지식을 가지도록 악령이 우리  속에 와서 감동을 시킬 때에는 우리 속에서 그 마음이 나오고 또 사람을 붙들어  말할 때에는 사랑하는 친구를, 사랑하는 가족을, 사랑하는 부부를 사랑하는 또  가족을. 사랑하는 자기의 상관을, 사랑하는 자기의 부하를 어쨌든지 이래  가지고서 그 삐뚤어지게 알도록 그렇게 자꾸 유혹을 시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게 '네가 기도하면 안 되니까 기도 안 한다고 해라. 그렇게 그  삐뚤어지게 알도록 할라고 하루 종일 한 것은 그것은 다리오 왕이 껍데기는  왕이지마는서도 속에는 마귀의 침노를 받아 가지고서 다니엘을 삐뚤어지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라다가 안 들으니까 마지막에는 할 수 없다 사자  구덩이에 역사를 데려다가 묶어서 사자 구덩이 던지라 하는 그것은 이제  삐뚤어지게 아는, 삐뚤어지게 가르친 그것을 승락하라고, 수락하라고 강제를  가지고서 서둘렀던 것입니다. 욕을 할때도 욕을 다니엘은 이겼고 강제로 해도  강제를 이겼습니다. 그것이, 그때는 기름 준비보다도 신랑 맞이하는 등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바로 아는 것이 기름이요 또 삐뚤어지게 아는 것이  어두움이요, 또 바로 행하는 것이 기름이요 또 삐뚤어지게 행하는 것이  어두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항상 어두움과 광명이 둘이 같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는, 낮에는 등불이 없어도 됐는데 낮에는 어떤 때가 낮인  때인고 하니 그게 아무라도 다 바로 알 수 있고 바로 행할 수 있는 그런 때가  낮입니다. 그라다가 차차 차차 해가 기울고 어두워지는 것은 이제 바로 알기가  차차 어려워지고 바로 행하기가 차차 어려워지는 그것이 어두움이 짙어져가는  것입니다. 밤중은 최고로 바로 알기가 어려운 시기요 바로 행하기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는 바로 아는 준비, 바로 행하는 준비 요 둘이 요거에 비유로 기름  준비하는 그 기름 준비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세상  마귀에게서 나온 인간 지식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또 영감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악령이 가르치는 것이 있고 가르침이 둘이 있습니다. 이 둘은 언제든지  우리 현실에는 있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둘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그럴 때에 어두움의 이 세력은 우리가 바로 알라고 이렇게, 성경대로 바로 알고  영감대로 바로 알아서 자기 현실을 바른 판단을 딱 가질려고 이렇게 할 때에는  삐뚤어진 지식을 줘 가지고 삐뚤어지게 판단하도록 할라고 할 때에 그것이  '마귀의 유혹이라' 그렇게 성졍에 표시 했습니다. 또, 이라다가 삐뚤어지게 아는  것을 거부하고 바로 아는 요 지식을 자기가 수락해서 자기의 지식으로 삼고  그대로 단정을 지우니까 강제를 가지고 협박을 합니다. 강제를 하고 협박을 할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악령의 강압이라, 악령의 압력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것을 총칭해서 우리가 말하면 학마(學魔)라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학마라. 배우는데 배우지 못하게 하는 마귀라 그렇게  우리가 이름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또, 바로 행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바로 행하지 못하도록, 삐뚤어지게 행하게 할라고 마귀가 유혹을 주고, 마귀가 유혹을 주고 롯에게는 롯의 처가  유혹을 줬고 롯의 딸들이 유혹을 줬고 롯의 그 모든 종들이 유혹을 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롯이 그것을 유혹을 받지 안하고 바로 행동했으면 좋을 건데  그만 바로 행동하지 못하고 거기 떨어졌습니다. 이러니까 뻐뚤어지게 행하도록  이렇게 유혹을 주다가 그 삐뚤어지게 행하게 하는 것을 듣지 안하면 이제는  강제를 가지고, 삐뚤어지게 허하지 않으면 너 죽인 다 이혼한다 너 당장 면직  당한다 너 사형 당한다 너 감옥에 들어간다 별별 협박을 다 합니다. 그래 그런  협박을 당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행마(행마)라, 행하는 데에 방해 하는 마귀라.

 학마 행마 요거는 언제든지 따라 다닙니다. 그럴 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요 영감이 알려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인데, 현실에 하나님  가르쳐 주심을 내가 받아 들이느냐 악령이 가르쳐 줌을 받아 들이느냐 그 결정  지워지는 것입니다. 평소에 자기가 성경을 읽고 알고 하는 것은 그것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은 아니요, 그 지식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현실에서 성경 말씀이냐 영감이냐? 영감과 성경 말씀은, 영감은  은밀하고 세밀하고 성경 말씀은 외부적이요 표현적이요 아주 그거는 성급니다.

세밀하지를 못하고 성글고 이런데 그 성경 안에는 내제적 영감이 있어 가지고 그  안에는 무한성이 다 세밀함에 다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르칠 때에 한  쪽 옆에는 또 악령이 삐뚤어지게 가르치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둘의  가르침이 있을 때에 그때에 원편의 가르침을 받은 이것은 벌써 어두움에  삼켜져서 어두움의 실력으로 자꾸 자라가고 있습니다. 오른편에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현실에서 했으면, 현실을 그 지식으로 현실에 통과를 했으면  그 지식은 영원한 자기 지식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기름이 한 방울 준비가  됐습니다. 또, 행하는 것도 왼편에서 세상과 악령은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대로  하지 못하게 할라고 애를 쓰고 있고, 또 하나님은 영감과 진리대로 우리를  행하라고 하게 할 때에 그때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느 것이냐 하는 둘 중에  자기가 결정을 지워서 그 현실에서 자기는 왼편에 있는 악령이 하라 하는 대로  그대로 행해 놓고 그 시기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 후회를 하면서 내가 다시는  이래 안 하겠습니다. 백 번 해봤자 그거는 지은 죄는 잘못했다 그 고하면 용서는  받지마는서도 앞으로 실력 가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거는 그 뒤에 암만 해야  소용없어. 소용 없고, 그 뒤에 그런 현실을 당했을때 그때에 양편이 지금  하나님에게냐 악령에게냐, 천국이냐 세상이냐 이렇게 자꾸 주장할 때에 자기는  거기에 서 자유성을 가지고서 둘 중에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영접할 수가 있는  그런 권리를 가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마귀의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마귀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냐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냐?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행하느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하느냐 그  결정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지능의 실력이라, 하나님께 받는 지능의  실력이라. 그 평상시 평상시는 준비촬 기간이라 준비할 기간이라 말은  하나님에게 지능을 받는 그 준비, 받는 준비,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지마는서도 그 물방울이 모여서 나중에 가서 한 말도 되고 뭐  얼마든지 많은 물이 되어지는 것처럼 이렇게 이제 모아서 저축하는 요것이  준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보고서 자기가 깨달아서 '요대로 해야  되겠다' 할 때에 미혹이 오는데 그 현실에서 그대로 지식을 하고 그대로  지식으로 단정을 짓고 그 현실을 그 지식대로 했으면 그 지식은 하나님에게 고때  배운 것이요 고거는 영원히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기 지식이 됩니다.

그러나 말로서 하는 것은 소용 없고 지식으로 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것은 말로 하고 지식으로 하는 것은 그 실상을 만들어서 하나님에게 배울수  있는 고때에 배움이 완성되어지는 그것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그것 없으면  신구약 성경을 뭐 하루 몇 번 읽으고 외워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고 현실에  네자 어느 지식을 네가 영접하느냐 하는 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또 행함이라  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행하라고 하시는 그대로  자기가 행동을 하면. 행동을 하면 그때 행동하는 것이나 아무 무사시에 행동하는  거와 다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동할 때에 자기 힘으로  행동하니까 자기가 한 줄로 알고 있지마는서도 자기 힘으로 한 것은 다  불사뤄집니다. 요 어렵습니다. 처음에 배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니까  자꾸 왕짱 왕짱하면서 기분만 좋도록 이래 하니까 암만 그래봐야 우선 기분만  좋지 주님의 도리를 모르니까 하나님의 도리를 배우도록 요렇게 오래동안 좀  실험을 해 가지고서 귀가 조금 열릴상 바르면 다른데 돌아다니다. 보면 그만  귀가 딱 막혀 가지고 그 뒤에는 도무지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오월.

팔월 집회 때에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거석하면 찍해야 한 며칠 공부하고 있는  것인데 한 이삼 일 지나가면 귀가 뚫리는 사람, 어떤 사람은 마지막에 뚫려  가지고 한 시간 있다가 오는 사람 이래 놓으니까 그것이 성공을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그대로 하면. 그대로 하면 사람 보기에는 제가  했고 또 어리석은 제가 생각하기는 제 힘으로 제가 했고 요렇게 보이지마는서도  사람이 그 하는 그 행동에 불타지 안할 것은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통과될 것은 하지 못합니다. 알지도 못합니다. 그 속에 자기가 껍데기만 한 것은  자기 힘으로써 했고 자기 껍데기 순종 행동하는 속에 전지전능자가 만이 할 수  있는 것,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것,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고거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하고 나면  그 다음에 속에 불타지 안할 것 그것은 하나님이 와서 하시게 됩니다.

 비유컨댄, 그거 뭐 비유라 하는 그런 것도 다 온전치 못한 것인데 어떤 사람이  농사를 지어 가지고 자기는 '아, 이거 내 힘으로 농사지은 것인데.' 그 아이가  있다가서 '아버지 하나님 밥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러니까 그 아버지가, 교회  못 가구로 하는 아버지가 '야 이놈아, 내가 피땀 흘려 가지고 농사지어서 밥을  먹는 것이지 어떻게 하나님이 밥주나?'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 아버지가 한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이 종자를 주신 그  종자를 띄워 가지고서 또 하나님이 주신 물을 대고 하나님이 주신 공기 쐬우고  햇빛 거석하고, 자기가 곡식 종자를 이래 뿌리지마는서도 종자를 만들지도  못하고, 또 종자와 같은 그런 것을 요새 이십 세기 과학이 만든다고 떠들어  쌓지마는서도 그 속에 생명은 절대 넣지 못 합니다. 안 됩니다. 그 생명 그런  것도 하나님이 넣었고 햇빛도 하나님이, 공기도 하나님이. 모든 재료도 하나님이  다 이랬지. 만일 하나님이 물도 주시지 안하시면 뭐 암만 지금 떠들어  쌓지마는서도 오 년만 물 안 주면 수도 이까짓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온 세계  물이 바짝 말라서 그만 명태 모양으쪼 바짝 말라 타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부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말이요. 좁아서 몰라서 그렇지.

그것도 그런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행동하는 데도 행동이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지공법에 맞고 지성법에 맞고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 속성에 맞고, 모든  존재에게 맞고 그 안에 껍데기, 이 껍데기, 쭉덩이 같은 이런 것은 사람이  했지마는서도 그 속에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정죄 받지 안 할, 모든 만물이  보고서 주라 시인할수 있는, 완전자에게 정죄 받지 안 할 수 있는 그 속에  비밀이라는 것, 신령하고 무한한 것은 우리가 알지도 못합니다. 어떻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둘이 부부 돼  가지고서 저를 낳았으니까 내가 너거를 만들었고 이렇다 하지마는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둘이 아들을 만들어 놓은 그것은 껍데기 보는 것이요 그 속에 아버지가  아들을,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들을 열을 낳았다 할지라도 그 속에 내부는 의사가  아는 것 만치도 모릅니다. 피가 얼마나 들었으며 뭐 신경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으며 내용에 의사가 아는 것 만치도 모릅니다. 의사가 안다는 것이 또  하나님이 만든 것보다 백분지, 억억만분지 일도 모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외부에 나타나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완전하심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인데 그렇게 우리가 당신이 행하라 하는 대로 행하면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 자기 힘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하면 자기가 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이 하시고. 또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면 껍데기 그것도 못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해 주십니다. 그러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껍데기 하면은 할 수 없는 알맹이 하나님이 하시고, 자기 힘대로 해서 껍데기도  힘이 모자라서 못 할 때에는 껍데기 조차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서 충성하면 그것이 완성이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완성할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 현실 한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하나 배우고 둘 배우고 이렇게  지식의 실력을 자꾸 갖추고. 그러면 그 현실에서. 현실에서 어느 지식을 네가  환영하고 어느 지식을 배척하느냐? 현실의 그 지식을 환영한 그것으로서 자기  지식이 되는 것이지 그냥 말로만 지식으로만 다 요거 현실에 가면 다 배반하고  하는 그거는 자기 지식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요.

 그런고로, 현재에서 지식과 능력을 자기가 만들고 만들어서 이래 가지고서 이  실력이, 지능와 실력이 이것이 점점 성장돼갑니다. 이 지능이 실력이 성장돼가는  데에는 그 학마와 행마로 더불어 싸워서, 마귀로 더불어 싸워서, 이 싸움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내가 배울라 하니까  방해하는 그놈하고 싸웠고 하나님이 행하라 하는 대로 내가 행할라 할 때에 못  행하게 해서 거기에서 싸웠고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에게 순종 싸움이라  그랬습니다. 순종할라 하는 걸 못하게 했어. 이래 가지고 점점 이래 자꾸 준비해  나가서 보니까 조금 알기 어렵고 조금 더 알기 어렵고 조금 더 알기 어렵고,  조금 행하기가 더 어렵고 더 어렵고 한 그것이 밤이 차차 짙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래 가다가 개별적으로 개인적으로나 그 정도에 따라서 차차 차차  조금 알기 어려워져사고 또 행하기 어려워져 가다가서는 이제 밤중에 주님 한번  만납니다. 딱 만나 네가 준비를 이제까지에 하라 했으니까, 일학년 준비를 바로  했는가 보자 하면서 일학년 과정을 시험쳐서 통과 시킬 그 밤중, 그러기 때문에  밤중도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조그만한 밤중이 있고 큰 밤중이 있습니다.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서 어린 사람에게는 어린 밤중이 있고 장성 한 사람에게는 장성한  밤중이 있고 최고의 사람에게는 최고의 밤중이 있습니다. 천하 인간 아무에게도  닥치지 안한 그런 일이 닥쳐지게 된다 말이요. 그 밤중이 옵니다. 이렇게 자꾸  밤중이 왔을 때에 이제 까지 자기가-등불든다 그 말은 아주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 그때에, 모든 사람이 다 삐뚤어지게 알고 삐뚤어지게 행하는데 자기는 바로  알고 바로 행할라 하니까 그 어두움의 세력이 들어서 이래 막 강압을 하고  죽일라 하고 이래 합니다. 이래도 등불이 꺼지지 안하고 아무리 어두움이 와도  그 등불은 더 강하게 주장해 빛이 더 납니다.

 이렇게 할라고 하면은 일마나 밑천을 들여야 되느냐 하는 것을, 마태복음 13장  44절과 45절에 보면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다 팔아서 밭을 샀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진주를 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있는 것을 다 이것을 다 들여도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내가 양보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가르치심을 내가 배우겠다. 또 하나님이 행하라고 하고 행하면 내가 행하는 데에  능력 주시는,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요 둘을  내가 빼앗기지 않겠다. 요 둘을 빼앗기지 안하면 너 소유 뺏긴 다 소유 뺏겨도  나는 요 둘은 안 뺏기겠다, 네 직장 뺏긴다 직장 뺏겨도 나는 뺏기지 않겠다, 네  생명 뺏긴다 생명 뺏겨도 뺏기지 않는다. 네 몸뚱이를 감옥에 가둔다 감옥에  가두어도 뺏기지 않겠다, 요 둘을 뺏기지 안할라 하니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샀다 그러나 요 하나님의 받는 이 지능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보화의  진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서 사면서 억지로 울면서  팔아 사는게 아니라 기뻐, 기뻐 팔아 가지고 샀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서 현실을 이렇게 통과해 가지고서 등불 들고 신랑  맞이한 사람은 과거보다 훨씬 주님과 밀접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환란을  통해서 그 사람이 더 온전해지고 환난을 통해서 낙심되고 죽어지고, 환난을  통해서 온전해지고 환난을 통해서 더 더러워지고, 환난을 통해서 강해지고  환난을 통해서 약해지고 이것이 자꾸 신랑을 맞이하고 신랑에게 배척을 당한 그  결과가 되어 지는걸 말합니다. 그러면 그러기에, 큰 환난은 뭐이냐? 환난은  오랫동안 배척당하신 주님이 오랫동안 배척당하신 주님이 오랫동안 배척한  그자를 주님이 이제는 배척하시기 위해서 환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배척 했으니까, 제가 마지막에는 주님 영접하고 있지마는서도 그거는 자기 실력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배척을 당한다 그말이오. 오랫동안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배척하지 안하고 주님이 주시는 지능, 지혜 지식과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일 때에는 다 값을 냈다 그말이오. 받아들일 때는 다 값을  냈어요.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돈 없어도 값을 내고 사라. 뉘든지 와서  사라' 하는 것은 그 값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를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 지식을 자기 지식 삼을라 할 때에, 이 능력을 자기가 받아들일라 할 때에는  그때는 다 희생이 있었다 그말이오. 희생이 있었어. 자기의 무엇이든지 희생이  있었어. 그러면, 여러 가지 어려움의 희생이 있었는데 그걸 내놓고 했어.

 그러면, 내놓고 할 때에, 그러면, 내놓고 해 버리면 어찌 되는가? 내놓고  했는데 내놓고 했는데 없어질 때가 됐으면 이미 없어질 것 가지고서 이 보배  샀으니까 됐고 없어질 것이 아닌 데에는 하나님께서 또 새것을 줍니다. 나와  내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를 빼앗긴 자는 이제, 잃어버린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얻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그 값으로  백배 주는게 아니라, 잃어버린, 그거는 온전해졌기 때문에 온전해진 것을 이  썩는 걸로 배상해 주지 일습니다. 썩는 걸로 배상 해 주지 안하고 온전해진 것은  무궁 세계의 것으로 벌써 돼 버렸고. 이제 네가 썩을 것 주니까 썩지 안할 것  만드는구나 해서 하나님께서 또 그것을 새로 새 자본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요 도리를 알면은 안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오랫 동안 주님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해도 간부, 이 세상,  마귀에게 속한 인간의 사상, 이 모든 세상 사람이 간부가 와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들일라 하니까 못 받아 들이도록 꾀우다가 안  되면 강제로 하고 이래도, 그 간부에게 강제를 당해도 주님을 영접한 그 사람을  주님께서 차차 차차 모두고 모두어 가지고서 마지막에 이는 그 어려움으로써  수없이 주님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을 마지막에 밤중에  이 등불으로 인해 가지고 당신을 영접한 그 사람의 공로를 세우는 것이 환난이요  당신을 배척한 자에 배척을 주시는 것이 환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환난도 그러하고 개인 죽음도 그러하고 심판도  그러합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을 배척한 자는 하나님에게 배척을 당할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을 환영한 자는 환영을 받을 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  믿음의 싸움을 하는 데에 희생이 되니까 희생된 이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라  그렇게 말했고, 또 이것을 가리켜서 심는 자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안할  것으로 거둔다, 썩을 걸 주를 위해서 희생당했는데 희생당했으면 그것이 죽지  안할 것으로 변화돼 버리고 맙니다. 변화되고.

 그런고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밤중이 올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요 현실을 꼭  현실에 대한 현실관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현실관을 바로 가질 것,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 그 현실관을 바로 가질 것. 현실만이 내 세계요 내 시간이요  내것이지 현실 밖의 것은 아무 것이고 내것 아닙니다. '현실 만이 내것이라!'  요것을. 보화를 얻기 위해서 현실을. 다 줘도 보화만은 빼앗기지 않는다 하는,  요 현실은. 현실만이 내것이라. 요런데, 현실에는 무엇을 하는 현실이냐? 두  가지 하는 현실이다. 현실은 준비하는 현실이요 결실을 맺는 현실이다. 그  현실은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 현실은 두 가지로 준비한다. 두 가지 뭣 뭣?  하나님에게 직접 배우고-성경 보고 배우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인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니까, 성경을 기록한 것은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 보고 배우는 것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요 그 현실에 성경을 보고 자기가, 하나님께서 현실을  만들기는 하나님이 만들어 줬기 때문에 그 현실에 요렇게 해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현실 만드신 이가 주님이요 그 현실에 요렇게 하라고 현실을 만든  분이 그분이기 때문에 그 현실에 자기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그것은  하나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고럴 때에 그걸 배반하지 안하고 그렇게  수락해서 지식을 하고 그대로 가지고 그대로 행하면 그 지식은 자기 지식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에게 현실 현실마다 지혜 지식을 받아서, 미래거나 현재거나  과거에 대해서 지혜 지식을 받는 현실로, 또 현실을 주님에게 능력을 받는  현실로, 그런고로, 지능을 받는 현실이다. 현실만이 내것이다. 현실에는 두 가지  준비와 결실이 되는 현실이라, 준비되는 현실도 되고 결실되는 현실도 있다.

그러면, 현실에는 뭐 해야 되느냐 두 가지로 준비해야 된다. 하나는 지혜 지식을  얻어서 지혜 지식의 실력을 이루고, 하나는 행하는 능력을 받아 가지고서 능력의  실력을 이루어서 지능의 실력을 기루는 요 현실로 삼아야 된다.

 그러면, 그라다가 밤중이 왔으면 밤중이라는 그것도, 밤중도 현실인데  밤중이라는 현실은 어떤 현실이냐? 그때는 천하에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이래야  된다, 왜? 속에 자기중심이 된 자는, 하나님의 중심이 아닌자는 모릅니다. 절대  모릅니다. 자기중심이 된자. 이 세상 위주자, 육신 위주자, 평소에 마귀가  주관하고 마귀에게 지배를 받고 마귀와 타협하고 사귀고 있던 자 그자는 알 수  없는, 열이 알 수 없는데 자기 혼자 알면 십분의, 열 중에 일등이 되겠고, 백이  알 수 없는데 자기가 혼자 알았으면 백 명 중에 일등이 되겠고, 온 세계가 바로  모르는데 자기 혼자 바로 알았으면 그 온 세계의 일등이 되겠고. 바로 알기  어려운 때가 밤중이요. 바로 행하기 어려운 때가 밤중입니다. 바로 아는 것을  평소에는 성경을 자기가 보고 알지마는, 이래야 되는 줄 알지마는서도 그 지식을  수락할 수 없고 그 지식을 쓸 수가 없고 그 지식을 버리고 이제 다른  지식으로서. 성경대로는 아니지마는서도 그렇게 되는 그 지식을 자기가 영접 할  수밖에 없다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알기 어려운 것을 찾아내기도  어렵지마는서도 고때에 아는, 성경 말씀이 말하고 영감이 말 해 주는 대로  영감대로 그대로의 그 지혜 지식을 자기가 잡고서 요대로 행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실력을 기루는 것이라. 번연이 옳게 해야 될 줄 알지요. 왜정 말년에도  신사 참배 해서는 안 되는 줄 알기야 알았지요. 지식도 했지마는서도 모든  사람이 신사 참배 안 하면 너는 직장에 떨어진다 너거 가족도 감옥에 갇힌다  너는 죽는다 이러니까 신사 참배 하는 것이 틀린 것인 줄 알지마는서도 '제가  신사 참배 하겠습니다.' 고 했고 신사 참배하는 것은 국가 의식이니 뭐이니 해  가지고서 그렇게 그 지식을 수락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배반했다 그 말이요. 또,  자기가 그렇게 말하고도 신사 참배 안 할 마음 있었지마는서도 끌고 가 가지고  신사 참배 할 때에 딱 거머쥐고 안 하면 죽일라 하니까 할 수 없어서 그대로  신사 참배 안 해야 되는 줄 알았지마는서도 안 하지 못하고 했다 이거요.

 그런고로, 이거는 평소에 하나님에게 얻은 능력 행함의 능력, 평소에  하나님에게 배운 지혜 지식의 능력, 이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안 돼. 하나님에게서 온 능력, 피조물이 태울라 해도 태우지 못하고 막을라 해도  막을 수 없는 이 능력을 가리켜서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아니 할 금보다 더  보배롭다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거는 순전히 완전자의 능력이 아니면 안  된다. 이거요. 그것은 우리가 현재에 준비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이런 것이 그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현재를 허비하지 안하고 바로 이용해서 실력을 갖추는 그런 준비의  간간접의 것입니다. 간간접. 간간접의 약속으로 주 모여 가지고서, 짜여  가지고서 우리가 이제 현실에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 주신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거는 현실관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서 현재 주먹을 거머쥐고  자기, 다른 사람의 보기에는 말을 안 해도 이를 갈아 붙이고 '내가 현재는 절대  주님이 가르치시는. 요대로 나는 현재를 내가 지식하고 현재는 요대로  하겠습니다.' 작정하고 그대로 행하고 요 두 가지는 내가 어떤 것이 있어도  뺏기지 않는다, 안 뺏길라고 요걸 차지하려면 있는 걸 다 팔아야 된다. 요거 안  뺏길라. 하면 자기의 있는 모든 것을 내놓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있는 걸 다 버리지 안한 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요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게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게 사는 것이요. 마귀라는 놈이  자꾸 꺼꾸로 가르쳐 모르게 해 그렇지.

 그런고로, 우리는 요 열처녀 비유에서 굳게 잡읍시다. 그러기에 그 현실마다  따라오는데 내가 기름 준비를 하느냐 게을하고 미련해 가지고서 기름 준비를  하지 않느냐? 지능 준비를 하느냐 지능을 팔아먹느냐? 이 지능이 주님을 내  주님으로 맞이할 것,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맞이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이 자본이 되는 지능인데 이 지능을 우리가 현실에서 이 지능을  돈받고 팔고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문제로 팔고 뭐 자기의 몸이나 이런 것  가지고 팔고 자유 가지고 팔고 뭐 행동 가지고 팔고 직장 가지고 팔고,  없습니다! 팔 수 없습니다! 천국을 깨달은 자는 팔 수 없습니다!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절대 팔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스스로 시험해서 내가 정말로 현실에서 이것을 하나님의  지능을 받는 자냐 안 받는 자냐 하는 것을 자기가 현실 닥칠 때 시험해 보면  내가 어느 정도 약하다 어느 정도 거짓부리다 어느 정도 진실하다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다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서는 자기가 다 진실했다 미래에 대해서는 연약하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어떤 자인지 시험해 보고서 확정해라.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확정을 해라 확실히 정해라. 공연히 되지 못한 것이 된 줄로 알고 또 안 된 것이  된 줄로 알고 안 된 것이 안 된 줄 알지 못하고 그런 것이 미직지근한 것입니다.

되지 안한 것이 된 줄 아는 것도 미직지근한 것이요, 또 안 된 것이 안 된 줄  모르니 미직지근하다 그말이요. 그런 것은 다 주님에게 다 쫓겨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61 기본명령, 건설명령/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22절/ 850122화새 선지자 2015.10.27
660 기본명령, 건설명령/ 신명기 28장 1절/ 850125금야 선지자 2015.10.27
659 기본구원의 젖줄기/ 에베소서 1장 9절-12절/ 830626주전 선지자 2015.10.27
658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 것/ 요한복음 1장 1절-18절/ 831118목새 선지자 2015.10.27
657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구별/ 마태복음 13장 1절-58절/ 870609화새 선지자 2015.10.27
656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831002주전 선지자 2015.10.27
655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로마서 6장 4절-14절/ 820327토새 선지자 2015.10.27
654 기본구원, 건설구원/ 마태복음 10장 17절-20절/ 820628월새 선지자 2015.10.26
653 기본구원 일곱 가지/ 디모데후서 1장 9절-10절/ 800704금야 선지자 2015.10.26
652 기본구원 일곱 가지/ 디모데후서 1장 9절-10절/ 800629주후 선지자 2015.10.26
651 기본구원 10가지, 건설구원/ 에베소서 1장 3절-14절/831002주전 선지자 2015.10.26
650 기본구원 10가지/ 에베소서 1장 6절-10절/ 831002주후 선지자 2015.10.26
649 기본구원 10가지/ 에베소서 1장 9절-12절/ 831016주후 선지자 2015.10.26
648 기본구원/ 디모데후서 1장 9절-10절/ 800705토새 선지자 2015.10.26
647 기본구원/ 디모데후서 1장 9절-10절/ 800629주전 선지자 2015.10.26
646 기름준비-지능준비/ 마태복음 25장 6절-13절/ 811113금야 선지자 2015.10.26
645 기름준비-목회지도/ 마태복음 25장 3절-13절/ 800823토새 선지자 2015.10.26
644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90721금야 선지자 2015.10.26
»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40212주전 선지자 2015.10.26
642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00817주전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