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 10가지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16일 주후

 

본문 : 엡1:9-12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기도 제목 일곱 가지 중에 첫째가 기본구원을 벗지 않고 입은 자로  살기를 기도하는 것이 첫째 제목입니다.

 우리가 기본구원을 첫째로 지식으로 알아야 하고, 또 둘째로는 기본구원을  인정을 해야 하고, 확인을 해야 하고, 또 셋째로는 기본구원을 우리가 받아 가진  자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또 다음에는 우리가 기본구원을 받은 자니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이 어떠한 것인지 몰라도 안 되고, 또 아무리 지식으로는 안다  할지라도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지 안하면 안 되고, 또 인정까지 한다  할지라도 이 기본구원을 자신이 입은 자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이 이  기본구원을 입고 있는 자인 것을 자기가 믿어야 합니다. 기본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입는 게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의 역사로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기본구원은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을 아는 자 돼야 된다, 인정하는 자 돼야 된다, 자신이 입은  자인 것을 인정해야 된다 하는 이 말은 다 기본구원을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 있는 말 하는 것이지 기본구원만을 입는 데는 알아도 몰라도 상관  없습니다. 다 그대로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본구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인정하는 것이 없고, 자기가  입은 자 된 것을 아는 것이 없고, 또 입은 자로 살지 못하면 건설구원은 안 되는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떼놓고 생겨지는 것이 아니고 마치 기초가 있어야 그  위에 집을 짓지 땅 없는 집을 어떻게 공중에다가 지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집은  그 터 위에 지어지는 거와 같이 모든 건설 구원은 기본구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본구원에 대해서 이 네 가지가 제일 필요합니다. 아는 것, 또  하나님이 선포했기 때문에 이 기본구원의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 그  다음에는 알고 인정뿐 아니라 자신이 이 기본구원을 입은 자인 것, 자기가 이미  이 기본구원을 입고 있는 자인 것을 아는 것, 넷째로는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세상에서 사는 것, 이 네 가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은 열 가지인데 이 열 가지에 대해서 네 가지 순서로 우리는  기본구원을 가져야 됩니다. 이 열 가지를 알아야 되고, 열 가지를 인정해야  되고, 열 가지 기본구원을 내가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자인 것을 알아야 되고,  그러니까 이제 기본구원을 자기는 얻어 가진 자로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건설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현실에서 이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현실은 다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신 것이니  어떤 현실은 기본구원을 네가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이 시험하는  현실도 있고,  또 어떤 현실은 네가 기본구원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시험하는 현실도  있고,  또 어떤 현실은 네가 기본구원을 입었느냐 안 입었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현실도 있고, 어떤 현실은 보자, 기본구원 입은 자로 네가 행동 하나 안 하나  보자. 하는 그런 시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점점 기본구원이 우리에게 사실이며 실상인 것을 본인이 점점  깨닫고 인식하고 이 기본구원의 이 능력을, 이 권세를, 이 지위를 자기가 지켜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네 가지, 알고, 인정하고, 셋째로는 자신이 입은 자인 것을 알고, 남의  기본구원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이 기본구원을 이미 입고 있는 자인 것을 알고,  넷째는 기본구원 입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우리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현실에서 '보자, 네가  기본구원을 네가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그 현실에서는 아는 자로 통과하면  이루어졌습니다. 또 인정을 하나 안 하나 하는 현실에 서는 인정을 한 자는  이루어졌습니다. 또 네가 기본구원을 벗었나 입었나 하는 것은 입고 벗지 안하면  이루어졌습니다. 네가 그러면 기본 구원을 가진 기본구원으로 네가 사느냐,  기본구원으로 네가 행동하느냐 시험하는 그 현실에는 기본구원으로 행동하면  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구원은 실질적입니다. 실질적이지 말로 되는 기독교의  구원은 아닙니다. 지식으로만 되는 구원도 아니요, 말로만 되는 구원도 아니요,  생각으로만 되는 구원도 아니요, 실상이 이루어질 때에 구원이 되어지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면 열 가지 중에 첫째는, 요걸 자꾸 그저 외우고 기억하십시오. 첫째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 예정된 구원입니다. 하나님 목적 안에 우리가 존재하게 된  구원입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밖에서 지음 받았지마는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정해졌습니다. 그러기에 목적 안에서 택정된 구원입니다.

목적 안에서 우리를 목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했습니다. 목적 안  택정 구원이라 그것을 쉽게 해서 그만 예택 구원이라, 선택 구원이라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는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저 목적만 정했습니다.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안에 우리를  있도록 정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있는 것 아닙니다. 당신의 의지 안에서 그렇게  예정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목적 안에 택정 구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그렇게 정하신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이거는 만물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다음에  존재로서는 둘째로 존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그 속에 우리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구원은 모든 쫀재와 역사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제일 원인이  하나님이시오. 제일 원인이 하나님입니다. 제이 원인은 우리입니다. 제일 원인은  하나님이시요 제이 원인은 우리입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있는 것인데 하나님으로 인해서 어떤 것이  있었느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목적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  중에 첫째입니다. 그 목적 안에 우리가 택정됐습니다.

 그러면 그후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예정된 것, 어제 어떤 사람이  신고함에 보니까 예정에 대해서 문의한 그런 글을 써넣었는데 그것 제가  편지에다가 간단하게 해서 그걸 답을 해 놨는데 언제 그분이 나한테 오면은 그  편지를 주겠고 또 알려 주겠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그런가 안 그런가 해서 상고하고 살피는 것은 대단히 유망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돈을 계산할 때도 그만 서로  이것이 오산이 되기 시작하면, 그 회계가 뭐 꼰지 선다 이라는데 혹 이렇게  말하는데, 회계가 착각이 되기 시작하면 그만 그때는 냉각기로 좀 식혀 가지고  회계해야 되지 암만 해도 할수록이 자꾸 틀립니다.

 이것 모양으로 예정에 대해서 잘못하면 착각되기 쉽습니다. 착각되면 자기는 그  회의 속에, 의심하는 회의 속에서 일생도 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새벽기도에 나와서 들으면 잘 알 수 있고 그래도 모르는 분들은  저한데 직접 물어도 좋습니다. 제가 혹 새벽기도 왔다 가면 어떤 사람은  기다리고 있다가 묻는데 그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에게 회의가 없어지고 알게  됩니다. 그런고로 그 예정에 대해서 그 사람이 오면 그걸 주겠습니다.

 우리는 제이 원인자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원안자시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든 것이 생겨졌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제일 원인자시요 우리는 제이  원인자십니다. 모든 예정 모든 창조 모든 것은 우리를 인해서 하나님께서 예정도  하시고 창조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제일 원인자로서 당신이 창조해 가지고서 모든 것이  생겨졌고 우리는 제이 원인자라는 것은 하나님이 짓기는 지으셨지마는 우리  때문에 지으셨다 그거요, 우리 때문에. 우리는 뭐인데?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의 구원이 이렇게 큰 것을 자기가 믿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를 볼 때에 '이것도 나로 인해서 있는 것이로구나.' 자기네들끼리는 '이  나라가 강대국이다 저 나라가 강대국이다 세계가 이렇다' 할 때에 '이것도 나를  인해서 있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미친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마는 맞기는 맞습니다. 반드시 조만간에 그것이 다 확실히 되어가고 믿은  대로 성립이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보다 우리는 더 큰 수입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정하면  주려 했는데 인정 안 하면 헛일입니다. 인정하면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목적 안에 택정해 놓으시고 택정 받은 저희들을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대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전부를 자기의  것을 만들어 가지고 관리하고 퉁치할 수 있는 이 권위입니다  이것이 주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데 우리는 주입니다. 우리 수많은  주의 주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왕입니다. 우리의 모든 왕의 왕이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둘째는 목적 안에서 택정한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대로 이제 말하는 대로  주가 되고, 왕이 되고,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또 이렇게 선지자 제사장  왕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는 거기에는 상당한 필요한 재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거기에는 심히 많은 순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때부터, 예정은 예정은 때가  있습니다. 예정을 시작한 예정 그때부터 목적을 정하시고 우리를 택정하신 그  다음부터 영원까지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 순서에 정해져 있습니다.

영원한 때까지를 다 정해 있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모든 예정은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정은 나 위해 있는 것입니다. 예정은 또  여러분들 위해 있는 것입니다. 예정은 택한 자들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을 입은 자로 살라 말은 모든 예정은 보면 이런 순서가 나타나고  저런 순서가 나타나고 수많은 복잡한 순서들이 나타날 때에 아는 순서도 있고  이해 못 할 순서도 있고 무슨 순서가 나타났든지 그 전체적으로 이 순서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대로의 예정인데 이 예정은 천년 만년이 아니라 영원  무궁토록 단번에 하나님이 전지하신 지혜를 가지고 예정하셨는데 이 예정은 내  구원 곧 나를 위해서 예정 됐다.

 내가 뭐인데? 나는 유일로 하나님의 기업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십니다. 하나님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신이 당신 위해서 나를 택정하셨  기 때문에 당신 위한, 유일로 당신을 위하는, 유일로 당신의 무형의 존재를  형상으로 나타내고 당신을 나타내는, 당신을 증거하는, 당신의 모형 모형 역사를  하게 하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위한 우리를 완성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예정된 것입니다.

 기본구원을 입는다는 것은 모든 순서가 나타날 때에 '이 모든 순서는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고, 또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기본구원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 이 모든 순서는 나를  위해서 내가 이 모든 순서의 효력을 내가 입고 있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자기가  기본구원을 입고 있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 다음 넷째는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아라.

 그 현실에 대해서 그 현실이 나 위해서 있는 순서인 것을 자기가 알고 나를  위한 순서로 자기가 취급을 하고 관계를 가지고 거기에서 소망을 두고 나를 위한  순서로 내가 거기에 대해서 취급하고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기본구원으로 사는 자입니다. 기본구원으로 사는자.

 기본구원을 아는 자, 그대로 인정하는 자, 기본구원을 자체가 입은 자인 것을  인식하는 자,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사는 자, 요 네 가지, 요 네 가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모든 순서가 나타났을 때에 '이거는 어쩐 일일까?' 하는 사람은  기본구원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또 모든 순서가 나타날 때에 '이런 것은 내게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 순서로 아는 사람은 기본 구원을 부인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순서가 나타났든지 '이 순서는 참 나에게 해독이 되는  순서다' 하는 사람도 기본구원을 부인 하는 사람입니다.

 그 모든 순서를 보고 자기 것이 아닌 줄로 아는 사람도 기본구원을 벗은  사람입니다. 그 모든 순서를 자기 것이요 자기를 위해서 있는 이 사실을 알고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는 자가 기본구원을 가진 자로 사는 자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셋째는 창조 구원입니다. 둘째는 예정 구원이요 셋째는 창조 구원입니다. 창조  구원은 뭐인가 하니 내가 창조될 때에, 창조될 때에 이미 하나님의 목적 안에  택정된 내가 하나님의 예정에 하나님의 목적 안에 택정된 나로 예정이 되었고 또  나를 창조할 때에도 나는 택정 안에 있는 자로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셋째로 창조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꼭 같이 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자체에서 창조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목적 안의 것으로서 창조된 사람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는 불택자라 하나는 택자라 그렇게 일반 신학  술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택자는 그 시발이 어데서 시발됐습니까? 불택자의 시발은 어데가  불택자의 시발입니까? 불택자의 시발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실 그때가 불택자의 시발입니다. 불택자의 시발이요 택자의 시발은  언제가 택자의 시발인가? 그보다 하 때 더 앞서서 하나님의 목적 안에 택정할  때가 그때가 택자들의 시발인 것입니다. 그러면 택자들의 시발이 있고 택자들의  시발을 위해서 모든 예정이 있고 창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창세 전 창조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택했다 하는  말씀이 성경에 그 말씀인데 거기에 대한 해석들은 구구합니다. 그 해석들이  구구한데 지금 한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프린스톤  신학교가 속화됐다고 해 가지고서 거기에서 메쳔 박사라 하는 분이 개혁의 기를  들고 나서 가지고 새로 창설한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또 거기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좀 마땅치 않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서 또 개혁해 나온 신학교들이 몇이 있습니다. 이번에 ○○○목사님이  공부하고 오는 카브난트 신학은 거기에서 나와 가지고 또 창설한 것이 카브난트  신학입니다.

 이래서 대개는 한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다 정통  학자로 인정받고 또 그때는 그게 전성기요 그때는 지식론이 아니고 아주 신앙을  위주로 했습니다. 지금은 신앙보다도 지식으로 차차 차차, 신학교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신앙이지마는 차차 차차 세월이 지나가면 신앙은 간 곳이 없고 지식만  가지고 날뛰는 지식론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유니온 신학교가 처음에는 진리로 하다가 신앙은 버리고 지식만 가지고  날뛰어서 거기에서 나와 가지고서 개혁해서 나온 것이 프린스톤 신학교요,  프린스톤 신하교에서 또 지식만 가지고 날뛰기 때문에 개혁해 나온 것이 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또 지식으로만 날뛰고 이라니까  또 달리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개혁에서 나온 신학교들이 몇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름온 유명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하는 벌써 예정과 이  선택에 대한 이 창조에 대한 여기 대해서는 논리가 많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제가 가르치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말하는 순서 와는 다릅니다.

다르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 내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고.

 다른데 많이 거기에서 논증하고 혼자 비판 성경 가지고 해 보고서 아무래도  이게 옳다 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선택설이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후택설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뭐 그런 신학은 배울 것 없으니까 그만하면  됩니다.

 이래서 셋째는 창조 구원입니다. 우리가 창조될 때에 구원 받은 자로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자로 택정하고 또 예정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으로 예정한, 택정과 예정을 인은 자로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셋째로  창조 구원을 우리가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 우리 존재할 때에 구원을 받은 자로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는 이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전인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다 입는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전인류 하나도 빠짐없이  전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다 하는 것이 이것이 감리교에서  하는 말들이요 또 이것이 정통으로 인정은 하기는 하지마는 이것이 전인류  구원설과 또 제한적 구원설이라고 이래 가지고서 구원설이 각각 다릅니다.

 십자가의 대속한 것은 한정이 있다. 제한적 대속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고  무제한의 전인류의 대속이라 그렇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제한적 대속을  믿습니다. 왜? 성경이 밝히 증거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대속의 공로를 베푼 것은 벌써 목적 구원  받은 자, 예정 구원 받은 자, 창조 구원 받은 자 이자를 십자가의 대속하지 그  구원이 없는 자를 십자가의 대속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칼빈이 제한적 대속을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다 대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미 택한 자들만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다'  하는 것이 칼빈의 깨달음입니다. 칼빈이 깨달은 그 깨달음은 바로 됐습니다.

그러기에 대속의 구원.

 또 다섯째로는 중생의 구원입니다. 이 중생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크게 한번 불덩어리를 받아 가지고 사람이 크게 한번 변화가 돼야  중생된다' 이 중생론이 성결교서는 그걸 말하기를 완전주의라 이럽니다. '그거는  그저 중생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 중생되면 완전이라 해서 완전주의를 말하는 것이 성결교입니다.

 또 감리교도 역연 '중생을 미리 안 자를 미리 택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제  중생 그것도 한번 은혜 역사로 된다'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 중생은 이것은 다섯번째 우리의 기본구원인데 이 중생은 본인이 알게  중생하는 게 아니고 본인이 모르게 중생됩니다. 그러면 다섯째 기본구원인데  첫째 기본구원도 우리는 모르고 있고 둘째 기 본구원도 우리는 모르고 있고,  셋째 기본구원도 우리는 모르고 있고 넷째 기본구원도 우리는 모르고 있고,  다섯째 기본구원도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을 모릅니다.

 모르는데 성경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 이  중생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만 중생됐다' 말했습니다. 중생된 것은 영이라.

육이 중생된 게 아니고 영이라.

 로마인서 8장에 '영은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가지고서 중생해서  살아났지마는 심신은 아직까지도 죄 아래 그대로 있다' 하는 것을 로마인서 8장  9절 이하에 보면 있습니다.

 중생은 가르치기를 '어떻게 그렇게 날 수가 있습니까?' 니고데모가 물을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거듭나지 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 이랬습니다.

'거듭나지 안하면 하늘나라 못 들어간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거듭나는 걸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이럴 때 주님이 그 해석을  하시기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되 어데서 불어오는지 모른다.

바람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모른다. 중생은 너거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중생은 너거들이 모른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오는 그 마찰되는 결과를 보면  동풍이다 서풍이다 알 수 있는 것처럼 중생된 자이면 그 다음부터 신앙 행위가  시발된다' 하는 걸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행위를 보면 그 사람이 중생됐나 안  웠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중생되면 단번에 무엇이 되는 게 아니라 중생된 자는 이제 믿음의 씨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일이 차차 차차 조금씩 시작합니다.

 이제 말씀을 들으니 교회 가고 싶고 또 한 주일 지키고 한 달 지키고 또 한  주일 지키고 또 일 년 지나고 또 한 주일 지키고, 어떤 사람은 두 푸일 지나고  난 다음에 십 년까지 안 나오다가 뒤에 또 하루 지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가 각각 달라서 그저 사람 있는 대로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가 있어 이런 종류 저런 종류 수많은 종류 있고, 범죄도  종류가 있고, 또 의를 행하는 것도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예정하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정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정을 하셨을까? 예정하신 것은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자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문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영감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실지로 그 실행, 실행이라는 현실 이 형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  '봐라, 네가 이것을 네가 이렇게 해 봐라. 요리 요리 해 가지고 네가 요것을  요리 하거라. 그러면 뭐이 꽝 거리며 터진다.' '그게 뭐이 그런 게 있을까?'  부인할 수도 있고, 그 아이가 모르고 그래도 할 수 있고,  모르고 하는 데에 아버지는 그걸 알리기 위해서 벌써 계획적으로 해 놨습니다.

이러다가 이래 건드리니까 그게 꽝 거리니까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집니다. 꽝.

'아이구, 이것 어짠 일입니까?' 이러니까 '네가 조심해 다니라. 이와 같은 것이  땅위에는 많이 있다. 있기 때문에 네가 조심하지 안하고 벌로 이래 돌아다니면  나중에 지뢰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은 밟으면 죽는다.'  이래 가지고 그 아이에게 놀라게 해서 지식을 넣어 주는 것도 있고, 그  아이에게 아주 자기 의견과 정반대 되는 것을 또 닥치게 해 가지고 자기의  지식이 극히 협착하고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여러가지로 해서,  그래서 이 우주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한 실물  교재라, 실물 교재라, 실물 교재로서 가르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죄를  짓고 '보라' 이 죄를 지으니까 죄를 짓고 난 다음에 고통을 당하는 것, 죄의  값을 제가 징계를 받을 때에 고통을 당하고 이러니까 '죄는 지으면 망하는  것이로구나.' 요렇게 깨닫는 사람 있습니다. 그것이 일계단 회개입니다.

 일계단 회개고,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이제 뒤에 가서 깨닫기를 '요 죄를,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 고통이 있는 것 이것뿐 아니라 고통이 있는  아것을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알려 주셨 을까?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셨을까? 내가 이 범죄는, 이 의는, 이 실수는, 이 낭패는,  이 성공은, 승리는,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은 이것 뭣 때문일까?  이것을 무슨 이용 가치가 있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베푸시는, 지공하고  지성한, 이렇게 기설한, 이미 진열해서 기열한 이 목적이 어데 있느냐?' 하는  거기에까지 더듬어서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서 나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건 인제 장성하면, 물론 사람이 하나님이 범죄케 하면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범죄는 없습니다. 알고 짓는 죄는 없고 또 벌은 없습니다. 없으나  죄악이 없으면 또 사함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이런 유의 죄가 없으면  그 이상의 수준 높은 죄에서, 세상은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 그런 높은 수준에서  범죄해서 죽는 날까지 죄로 의에 나아가고, 죄에서 죽고 죄로 살고,  이래서 하나님의 율법이 없을 때에는 그 죄가 살아났고 율법이 오면은 그 죄가  죽고,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지 못할 때에는 이게 죄도 아니니까 죄는 짓고 나는  안 했다 없다 이랬지마는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고 보니까 나는 거기 꼼짝 못하고  꾸부러지게 되고 거기 정죄를 받게 되고 그 죄는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깨달음이 점점 커 가면은 죄는 점점 높아져 커집니다. 깨달음이  커지면 죄는 점점 커지고, 죄는 점점 커질수록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점점  더 입지 안하면 안 되는 사람 됩니다.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 예수님으로 내  전부를 삼고 자기는 주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중생 구원, 중생 구원은 우리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은 우리의 영이요 흙으로 지음 받은 것은 우리의  심신입니다. 짐승도 흙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았는데 우리의  심신은 내나 흙으로 지음 받았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물질로 지은  것이 아니고 순전히 영물로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영은 영물이지 물질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라는 이 혼이라는 것은 물질이요 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짐승에게는 무슨 흔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없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짐승의 마음이 고등동물이라 모든 저급의 동물이라 그 차이만 있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요소가 짐승의 요소에도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된 것은 영만 살아났고 심신은 중생되지 안했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도 그 심신으로서는 얼마든지 범죄합니다. 그러나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영이,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많이  논란하는데 그거는 중생된 영이라는 그 영을 사람의 마음을 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들도 마음으로 얼마든지 죄를 짓는데,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하기도 '내가 분명히 중생은 됐지마는 마음으로 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자꾸 들어와 가지고 죄를 짓는데' 제 실험이 체험이 그러니까 그게 확신이 있다  그말이오. 그것은 뭐이냐? 영과 마음을 혼돈시켜 가지고 구별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렇게 생겨진 것입니다.

 중생된 자의 마음도 범죄할 수 있고 중생된 자의 몸도 범죄할 수 있지마는  중생된 자의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중생은 영만 된 것이지 다른 것이 중생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는 것을 요한복음 3장에  똑똑히 밝혀서 말씀했습니다.

 중생될 때에 우리의 중생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자연 생명, 이걸 자연 생명이라, 자연 생명이라 하는 자연 생명이라  말은 일반인들이 다 가지고 있는 생명이라 하는 그 뜻으로서 자연 생명이라  그렇게 명사를 붙이고 또 이 생명을 이는 죄 아래 있는 생명이라, 죄 아래 있는  생명이라 그것은 다 첫째 아담의 정죄해서 정죄받은 생명이라, 또 저주 아래에  있는 생명이라, 이는 생명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죽어가고 있는 생명이라,  죽어가고 있는 죽음이다, 이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육의 생명은 이것은 죽습니다. 벌써 뿌리가 끊겨서 죽는데  언제까지 다 죽느냐?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그 기능이 언제 완전히  죽어버리느냐? 세상을 떠날 때에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 기능이 옮겨서 세상과 인간의 자율에 속한  것이 마귀에게 속한 것이 이것이 하나님 곧 성령, 성령과 진리로 옮겨서 성령과  진리와 현실에서 결합이 됩니다. 현실에서 결합이 되면 결합된 그것은, 그  기능은 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죽음에서는 없어지고 생명에서는 살아지고 이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음성을 듣는 자는 다  살아나리라 지금도 그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러면 말씀은 영감과 진리를  말하는데 영감과 진리를 현실에서 부인하지 않고 영감과 진리를 영접하려 하면  세상을 부인해야 됩니다. 네가 어느 것이 되느냐 할 때에 그때에 영감과 진리를  인정하면 세상은 부인해서 세상에서는 죽은 자요 세상에서는 그때에 죽은 자요  영감과 진리에서는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중생된 사람들은 벌써 영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네가  기본구원을 아느냐? 네가 성령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성령으로  살아나고 진리로 살아난 자는 뭘로 사느냐? 성령으로 살고 진리로 삽니다.

성령으로 살아나고 진리로 살아난 자는 성령으로 살고 진리로 삽니다. 악령과 이  악성으로 살아난 사람은 악령과 악성으로 삽니다.

 이래서 기본구원을 네가 아느냐? 네가 성령과 진리로 네가 영생할 생명으로  네가 살아난 것을 아느냐? 살아난 네인 것을 네가 인정을 하느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난 네라는 것을 네가 아느냐? 살아난 영생을 가지고 네가 지금  있느냐? 영생으로 네가 사느냐? 영생으로 사느냐, 사망으로 사느냐 영생으로  사느냐? 지금 영생으로 네가 사 느냐? 기본구원을 네가 입고 기본구원으로  사느냐 그말은 영생으로 사느냐 그말입니다.

 영생으로 산다 말은 뭘로 산다 말이지요? ○○○집사? 뭘로 사는 것이지요?  영생으로 사는 것은 보입니다. 영생으로 사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영생으로  사는 건 우리가 다 봅니다. 사는데, 영생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이 영생으로  사는 것이지요? 녜, 진리와 영감 맞았어.

 잠을 똑똑히 깨. 아이만 데리고 있으면 뭐 소용 있는가? 젖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 하는데 아이 때문에 구원을 손해가면 화 있어. 젖 안 먹여도 내나  젖먹이는 것 한가지지 뭐. 그걸 몰라?  진리로 살아났고 영감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진리와 영감으로 사는 그것이  중생된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으로 사는 것. 기본 구원을 입은 자로  네가 사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섯째는 하나님이 아들인 구원 아는 것,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네가  아느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정말로 인정하느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느냐? 넷째로 하나님의 아들로 네가 행동을 하느냐?  그는 전능하신 이가 내 아버지, 전능하신 자의 아들, 전지하신 자의 아들,  대주권자의 아들, 주재자의 아들, 만왕의 왕의 아들, 만주의 주의 아들, 이로  네가 살고 있느냐? 이것을 사는 것을 자기 혼자는 살지마는 사는 것을 세상에  말하면 세상이 이해 못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 덕이 되지 안하니까 말은 못 하지만,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본 것과 깨달은 것을 다 말을 하면 세상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기 때문에 네가 알고 보고 들은 것을 내가 다 말하지 않는다.'  그 이상하게 알 사람은 이상하게 알 것이고, 또 지나치게 또 높일 사람은  지나치게 높일 것이고 하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안한다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자기가 살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기 위해서 기도한다. 그말은 자꾸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전능자라, 우리 아버지는 전지자라, 우리 아버지는 자존자라, 우리 아버지는  주재자라, 우리 아버지는 독존자라, 우리 아버지는 창조주라, 우리 아버지는  예정자라, 우리 아버지는 대주재라, 우리 아버지는 무소부재라, 우리 아버지는  뭐 전능자라 전지자라, 우리 아버지는 지극히 크고 작은 것을 혼자 개별  섭리하는 자라.' 이렇게 자꾸 믿으려고 애를 쓰고,  이제 이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는 자기를 사랑하사서 독생자까지 주셨으니까 이  아버지를 자기가 믿는 그 믿음이 현실에서 나타난다. 그말이요, 현실에서.

 물론 요새는 지,금 이것 뺄갱이 세상이 돼 가지고서 뭐 별별 그런 지하 운동과  모든 지하 간첩들이 많이 있으니까 안심 못 하지마는 옛날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왕이라면, 그 나라의, 왕의 아들이라면 왕의 아들이면 어데든지 제 땅이오.

어데든지 제 나라요 어데든지 제 물건이오.

 이러니까 왕의 아들이 어데 가서 밥굶을 것을 겁을 내며, 왕의 아들이 어데 가  가지고서 이제 무슨 패류를 만날까 싶어 겁을 내며 왕의 아들이 그 국경  내에서야 어데 가면 대적이 있을까 무서워하겠습니까?  또, 왜 안 무서워해? 그거는 왕이 권세 있기 때문에. 옛날 말에, 나는 그걸  그때는, 없었으니까 못 봤는데 암행어사라고 하는데 암행어사는 나라에서 모든  부정한 것을 암행하면서 그절 발견하라 하는 그것을 권세를 줬는데 벌써 그  사람들은 다 떨어진 웃을 입고 헌옷 입고 망태 짊어지고 이래도 딱 암행어사라는  딱 표만 내 부리면 그 지방에 있는 모든 역졸들이 전부 쫙 모아 가지고 그러니까  산천초목이 떤다 그렇게 말했어. 산천초목이 떨었었어. 그러니까 왕의 아들이  겁날 게 뭐 있겠습니까?  이제 이 세상 지금 왕은, 지금 왕이나 지금 뭐 정권자는 이 얄궂은 것이고  이렇기 때문에 왕의 아들일수록이 조심해서 다녀야 되지 벌로 다니다가는 암살  당합니다. 이러나 그때는 그렇지 않다 그말이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전지자요, 전능자요, 전재자요, 계시지 안하는 곳이  없어. 이러니까 그분이 모든 것 공간계나, 시간계나, 활동계나, 생명계나,  심리계나 이 모든 전부를 다 홀로 주권하고 당신이 해야 움직이지 그분이 우리  아버지인데 뭣 때문에 두려워하겠습니까? 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 정상이 아니고  정신 빠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가다가는 이 전능자의 아버지의 아들이  됐지마는 아버지 아들인 것을 지식으로는 알면서도 가다가는 어떨 때는 뭘 턱  닥치면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는 것도 몰라요. 모르고 어떤 사람은 있다가  '아이구, 엄마.' '아이구, 아버지.' 이래 부르지 하나님 아버지 부르는 사람이  없다 그말이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인식하고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것. '아버지는 주재자시니 어떤 것이 내게  어떻게 하겠느냐?' 이러고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대하는 태도나 자기 중심이나  그런 것이 너무 교만해서 조심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러지 그 어떤 무엇에게  제재를 받거나 무엇이 부럽거나 '저런 무슨 고관대작이 부럽다. 뭣 부럽다.'  하는 그게 아버지를 믿지 않는 그것이라 그말이오.

 이런고로 이제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믿고 아버지의 아들로 네가 살아라. 이것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오.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이것 때문에 이런 자로 살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이 세상에 두려울 게 뭐 있으며, 또 이제 부족할 게 뭐 있으며,  제것 아닌 것이 어데 있습니까? 제것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저 이상 높은 자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없어. 무엇이 부럽겠소?  이런 사람이 이것을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 할 세상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렇게 될 때 아니지마는 우선은 우리는 어리니까 어렸을 때에는 그  집에 호주의 상속을 받을 그 장자라도 어렸을 때에는 그 집에 있는 사환들에게  다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다. 이 모양으로 우리가 모든 것에 주재될  사람이지마는 아직까지는 이 세상 정권자들과 모든 자들에게 다스림을 받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사환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 이것을 자꾸 되새겨요. 이래 가지고  시험을 해. '보자, 정말로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가? 내가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데, 이거 사실인데 아들이면 내가 아들 노릇을 하고 아들 태도를 가져야  될 터인데 아들이라는 권세도 못 쓰지, 아들이라는 자세도 못 부리지,  아들이라는 부요도 누리지를 못하지, 아들이라는 소유권도 누리지 못하지  이름뿐이지 이거는 참말로 억만 장자가 그저 쫄쫄 굶어 뒈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못난 자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기 위해서  기도하라 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천국 시민권을 우리는 입었습니다. 하늘나라에 벌써 우리는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가진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하늘나각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면 이 세상은 자기의 소유 중에 아주 발등상되는  그런 소유요 우리가 가서 살 나라는 하 늘나라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전부는  기울어지기를 하늘나라 준비에 기울어질 거라 그거요.

 하늘나라가 제 나라라는 것을 말뿐이지 확실히 안 믿기 때문에 항상 세상  준비만 합니다. 그 사람의 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천국 시 민권을 가졌나  믿나 안 믿나 볼 수 있어. 암만 하나님 나라 천국이 있지만 '그렇지만 알 수가  있어야지?' 또 하늘나라 시민권이 있다 하지마는 '뭐 우선 새상에 살아야지.' 그  사람은 하늘나라를 모르는 사람이요 하늘나라 시민권을 인정치 못하는 사람이오.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졌는데 그 나라에 가 가지고서 영광과 존귀나 부귀나  실력이나 그것이 자기의 것이요 그것이 영원한 것이니 그것이 참된 것이지 이  세상은 자기 것이 하나도 아니라 그말이오.

 다만 이 세상 것은 하나님이 그 세상에 어떤 걸 주든지 주실 때에 거기에  대해서 '네가 여기에 대해서는 울어라. 여기에 대해서는 때려라. 손을 내밀어라.

여기에 대해서는 손을 물리치라. 여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마라.'  이제 이 모든 세상에 있는 것은 주님이 '거기에 대해서는 언행심사를 네가  어떻게 하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가 보자.' 손을 요만치만 밀고 말아라 하면  요만치만 밀고, 요것을 손을 잡기만 하고 말아라 하면 잡기만 하고 말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취급을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을 그대로 취급하는 시험,  시험을 해서 그대로 취급을 해 보니까 잘되고 그대로 취급을 안 해 보니까  낭패되고 이제 취급하면 유익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 다음에 한충 더 올라가면, 그대로 취급을 했는데 손해가. 그대로 취급해서  손해가도 순종, 유익이 돼도 순종, 죽어도 순종, 살아도 순종, 네 이해 문제로  순종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 네 순종의 원인이 된다 하는 것을 또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이 모든  예정입니다.

 그 다음에 여덟째 구원은 보증 구원, 이 세 가지 보증 구원, 보증 구원은  성령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보증하고 계시고, 또 진리가 우리 구원 위해서  보증하고 계시고, 셋째로는 주님의 피가 우리 구원 위해서 보증하고 있어. 세  가지 보증 구원을 우리가 얻었습니다.

 불택자들은 성령이 상관하지 않습니다. 피가 상관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상관하지 많습니다. 우리는 성령과 진리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를  책임맡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책임맡고 관리합니다. 이것이 셋 보증 구원이다.

셋 보증 구원, 이 보증 구원은 여덟째 구원입니다.

 아홉째는 성화의 씨 구원, 성화의 씨, 성화의 종자 구원, 우리는 성화받을 수  있는 이 종자를 얻었습니다. 이러니까 이 종자가 뭐이냐? 셋 보증이 우리의  종자요 또 모든 예정과 모든 창조 그 전부를 내 구원을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  그거요.

 내 구원을 위해서 그것들이 기다리고 있고 내 구원 위해서 이용할 수가  있지마는 내가 내 구원을 위해서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내가 그것들에게  이용당하는 이런 못난 자가 있다 그말이오.

 그것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그것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내가 그것들에  이용당하는 것이고 그것을 내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은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그 상대방이 좋다고 하든지 마다  하든지, 그 상대방이 나한테 칼을 대하든지 말든지, 그 상대방이 나를 죽이든지  말든지 나는 그것에게 대해서 모든 예정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만 내가 하는 것은 내가 그것으로 이용했어. 그것대로 하는  그것뿐이라.

 그것이 모든 존재를 내 성화구원을 위해서 이용할 그 사용권을 자기가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씨 구원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성화의 씨 구원을 받았고 열째로는 생명 부활의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우리가 뭐 잘했든지 못했든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하늘나라에 살 생명 부활, 불택자들은 사망 부활. 우리는 생명은 이미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 부활을 받은 자이니 우리는 잘했든지 못했든지 하늘나라  가서 살지 지옥에 가서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광명의 나라가 아무리 싫은 그  어두움의 사람이라도 광명의 나라에 가서 살지 어두움의 나라는 가지를 못하는  이 생명 부활을 우리가 가진 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죽음이라는 것은 뭐이냐?  우리의 죽음은 헌옷 입고 있다가 헌옷 갈아 입는 것이요, 자기에게 떨어진 옷  입고 있던 걸 이것을 새로 좋은 옷으로 변화시킴을 받기 위해서 벗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영과 혼은 같이 가고, 영과 마음의  기능은 같이 가고 고기덩어리와 그 기능은 땅에 남아 있는 것인데 남아 있는  것은 왜 남아 있느냐? 남아 있는 이유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그 이유를  말해 놨습니다.

 우리의 혼은 늙지 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벌써 물질로서 신령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를 아니하고 식물에 제한 받지 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과 한꺼번에 같이 가서 영계에 갈 수 있다 말이오. 영계에 가서  머물 수 있지마는 우리의 이 고기덩어리는 가서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고기덩어리는 왜 머물 수 없느냐? 이것은 시간과 공간에  의식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안 먹어도 죽지, 또 추워도 죽지  더워도 죽지, 또 이거는 구멍이 작아도 못 들어가지, 또 구멍이 커도 그 넓은  데는 거처할 수가 없지, 이러기 때문에 제한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은  벗어놓습니다.

 왜 벗어놓습니까? 뭐하려 벗어놓지요? 빌립보 3장 끝절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만물을 당신에게 복종시키는 자의 능력으로 인해서 그와 같이, 예수님과 같이  우리의 이 제한된 몸이 무제한의 무한의 몸으로 변화함을 받아 변화한 몸으로  입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 두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죽는 것은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라 나는 영생할  생명으로 내가 살았고 자기가 중생된 영생의 생명이 진리와 영감으로 산 사람은  이 육이 죽는 것은 그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육이 죽는 것은 이제는 변화를 입어서 새로 개조를 해 가지고 무한한 개조를  해서 변화해 가지고 영화로, 밥도 먹으려면 먹을 수 있는 부활로, 안 먹으려면  억만 년 안 먹을 수 있는 부활로, 같이 육덩이로 서로 이와같이 거머쥐고  악수하고 이래 춤추려면 춤출 수 있는 몸, 이제 육덩이 하나도 보이지 안하고  없는 몸으로 억만 년 살려면 살 수 있는 몸, 또 이 우주가 넓다고 요새 뭐 이  별에서 저 별에 갔다고 큰소리를 떵떵 하지마는 많이 해 봤자 지구 땅덩어리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부활할 몸은 이 찰나에 우주를 여러 천 바퀴도 더 돕니다.

우주를 여러 천 바퀴도 더 돌 수 있어. 영계도 얼마든지 돌 수가 있어. 이런  몸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변화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잠깐 벗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부활을 받아놓은 사람들이 이것을 믿고 인정하고 받아놓은 사람들은 이  죽음은 벌써 초월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관계  없어.

 그거는 뭐이냐? 이 있는 것은 준비하기 위해서 이렇기 때문에 그저 바꾸되  바꾸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바꾸지 못한 것은 악령과 악성에게 악습에게 속해  있는 것인데 그것대로 이것이 없어지면 이것은 다 죽어버렸어. 이거는 무더기로  죽습니다.

 이런데 이것이 무더기로 늙어서 죽으면 기운이 다 쇠잔하기는 쇠잔했지마는  그래도 좀 남은 그것이 모조리 무더기로 죽어버리는데 마지막에 이 남은 심신의  기능 이것이 진리와 영감 때문에, 진리와 영감에게 속하기 위해서, 진리와  영감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요것이 이제 이 세상에게 박해당해 가지고 딱  없어지는 날이면 보스래기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난  변화된 이것으로 살아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순교를 원하는 것이 이것 때문에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참 믿는 사람들은 순교를 원하고 있지 순교 외에 늙어서 병들어서  이래 죽는 그런 것을 원치 않는 것이 기본구원을 깨닫고 믿는 사람들의  소행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읍시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획 하나도 가감이 없습니다. 내가  성구는 다 안 대도 다 성경이 말씀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내게 가르친 그대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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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기름준비-지능준비/ 마태복음 25장 6절-13절/ 811113금야 선지자 2015.10.26
645 기름준비-목회지도/ 마태복음 25장 3절-13절/ 800823토새 선지자 2015.10.26
644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90721금야 선지자 2015.10.26
643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40212주전 선지자 2015.10.26
642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00817주전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