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 일곱 가지

 

 1980. 6. 29. 주일오후 

 

본문 : 디모데후서 19절-10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 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드러내신지라

       선지자선교회

9절에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거룩하신 부르심이라 이 거룩하신 부르심이라 그 말은 우리를 부르신 이 부르심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든 역사 중에 제일 뛰어난 역사를 말합니다.

첫째 가는 역사, 하나님이 창조도 당신이 하셨고 또 오만 것을 섭리도 하시고 이래 하나 그런 것보다 뛰어난 부르심이라. 뛰어난 그 부르심으로우리를 예수 믿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이 하시는 일 중에 제일 큰 일이라 말입니다.

제일 큰 일, 첫째가 되는 일 가치적으로도 제일 큰 가치를 가졌고 순위적으로도 그 첫째가 되는 그런 가치성을 표현해서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렀다 그렇게 말합니다. 혹 사람이 생각하기를 거룩한 부르심이라 하니까 무슨 선한 것이나 어려운 부르심으로 그 깨끗한 부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마는 그것 아닙니다.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것은 하나님 당신이 혼자 자존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일중에 첫째 일로 제일 큰 일로 하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또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신 것이 아니요 우리 행위대로 우리 행위가 좋아서 이렇게 구원시킨 것 아닙니다. 또 우리가 있는지 후에 우리가 있은지 후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 아닙니다. 우리가 없을 때에 우리 구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생겨지기도 전에 우리가 생겨나기로 예정하시도 전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그때에 그 목적 정하신 그 목적 안에서 우리가 첫째 순서로 예정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창조됐습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한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뜻이라 말은 하나님이 영원 전 당신의 뜻이란 말입니다. 영원 전 당신의 뜻, 자기 뜻과 영원한 때부터 영원한 때부터란 영원히 전부터 말이요.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란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완전, 지혜 지식의 완전, 능력의 완전 그 완전의 것을 창조하시기로 사명을 분담하신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이름도 아니고, 자존의 이름도 아니고, 하나님의 그 사역적 이름입니다. 직책의 이름입니다. 직명입니다. 그리스도란 것은 직명입니다.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일인지 뭐 우리가 이렇고 저렇고 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하나님이 영원 전 목적하시고 작정하신 그대로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공 세계에서 구원하시려고 나타났습니다. 이제 모두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그러면 나타나신 예수님은 사망을 피하고 죽고 망하는 것을 피하고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심이라. 영생하는 생명과 영원히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아니할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려고 시발한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처음에 선포한 대로 우리 구원을 총괄적으로 증거를 하려고 하면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우리 구원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기본구원이요 하나는 건설구원이라고도 하고 성화구원이라고도 하고 행위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성화구원이라는 말은 왜 성화구원이라고 발표를 하는고 하니, 영은 벌써 기본구원을 얻었지마는 이 마음과 몸은 기본구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 마음과 몸이, 영이 얻은 기본구원과 같이 그렇게 차차 차차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기 때문에 성화구원이라.

그러면 우리가 성화가 된 것만큼 다시 말하면 기본구원대로의 마음이 되고, 기본구원대로의 몸이 되고 기본구원대로 이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이 되면 그것이 이제는 성화가 된 것만큼 성화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구원이라. 우리 심신이 기본구원과 같이 되어져 가는 그것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구원이라 해서 성화구원이라 이렇게 말하고또 건설구원이라 하는 그 말은, 우리가 우리의 심신이 기본구원과 같이 우리 심신이 기본구원과 같은 그런 심신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자꾸 이렇게 하나식 둘씩 차차 되어져 가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말하고, 또 행위구원이라 하는 것은 기본구원과 같은 이 기본구원 같은 이 구원을 마음과 몸이 기본구원 같은 이 구원을 입을 때에는 행동을 통해서 입고 행동을 통하지 않고는 입지를 못하고 행동을 통해서 입기 때문에 행위구원이라 그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본구원에 대해서 오전에 누가 제가 점심 식사할 때에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 설교를 들으면 잘 알 것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기본구원은 일곱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본구원은 첫째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출생된 것이 기본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하나님이 당신과 같은 완전자로 만드시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당신 혼자 계셨는데 당신이 당신과 같은 이런 완전자를 하나 만드시기로 작정을 딱하신 고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 그 안에서 우리가 출생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밖에서 출생을 한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출생된 사람도 있으니, 하나님 목적 안에서 출생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 방편을 써 가지고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되게 하시려는 이 역사를 그에게 대해서 가하시고 목적 밖에서 난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사람을 만드시려고 하는 일은 전혀 안하고 하나님의 목적하신 대로의 사람을 만드시는 데에 이용하시기 위해서 생기기는 꼭같이 생겼으나 목적 안에 있는 자와 목적 밖에 있는 자 그것만 달라 가지고 목적 밖에 있는 자는 목적 안에 있는 자의 이 구원의 이루어지는데 거게 이용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양자로 세우시려는 것이고, 하나는 양자를 만드시려는 데에 필요 있게 쓰는 하나의 피조물 중에 우수한 피조물로 만든 것이 불택자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가 출생한 그것이 기본구원의 첫째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창조에 들어간 것이지 어떤 사람이 제가 원한다고 힘쓴다고 있기도 전인데 그게 되겠습니까. 이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사람되시 가지고 목적 안에서 난 우리의 모든 잘못을 다 당신이 담당하시고, 우리가 또 옳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다 담당하시고, 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이 일을 담당하신 사죄와 칭의와 생명이십니다. 이 대속의 공로를 입은 것이 이것이 기본구원의 둘째입니다. 대속의 공로 입은 것이 기본구원의 둘째입니다.

이 대속의 공로를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싶다고 믿는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 목적 안에 난 사람이라야 예수님의 대속이 그의 것이 되지 목적 안에서 나지 안한 사람은 목사까지 해 가지고 일생 동안 복음을 전해도 죽을 때에는 예수님 배반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 목적 안에서 나지 안한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게 되는 이것이 기본구원의 둘째의 것입니다.

또 셋째의 것은 셋째의 것은 성령과 진리로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중생, 중생도 제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영은 죽어 있고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악령의 것이 돼 가지고 악령의 기계로 도구로 이렇게 사용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 죽은 영을 진리와 성령이 힘으로 합해 가지고 이것을 살렸습니다. 이것이 영의 중생입니다. 요것이 기본구원의 셋째의 것입니다.

이 중생도 첫째 둘째 입은 자가 셋째 순서의 중생을 입지 첫째 둘째를 입지 안하는 자는 이 중생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착하고 흠이 없어도 안되네 다시 나지 못하니 그 말은 중생되지 못하니 그 말입니다.

또 기본구원의 넷째는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되는 이것이 기본구원의 넷째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생각하거나 우리 힘쓰므로 된 것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 단독 역사로 된 것입니다.

또 다섯째는 기본구원이 뭐인고 하니,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영생 이것도 인간이 죽기 싫지마는 안 죽을 수 있습니까 영생 이것도 순전히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영생을 주어서 영생하는 생명 가졌다 말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생명. 영생하는 생명을 받는 이것이 기본구원의 다섯째입니다.

그 다음에 여섯째는 뭐인고 하니 영화 부활입니다. 영화 부활. 영화 부활.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다가 이 다음에 죽고 예수님의 재림하시든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든지 하면 우리의 마음과 이 몸이 변화를 받습니다. 변화를 받아서 마음은 이미 기능이 살아난 그것 외에 거는 다 죽어지고 이 몸둥이는 자기 이 몸이 죽어서 불에 태웠든지 뭐 토장을 했든지 어덯게 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몸은 벌써 그 몸이 죽어 가지고 흙이 돼. 그 흙이 또 풀이 돼. 또 풀이 또 썩어서 거름이 돼. 또 거름이 또 이제 채소밭에 가서 채소가 돼. 채소를 또 누가 먹고 또 그 사람이 살이 돼. 또 그 사람의 살이 또 죽어서 썩어서 불에 태워서 뭐 몇 천 바퀴 돌아도 상관 없습니다. 어떤 원수에 가 있든지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는 그 사람의 지체로 가졌던 그 몸둥이는 다 살아나는 것은 영원한 형벌을 받기 위해 살아나게 되고 구속을 받은 택한 자들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라 성경에 말했습니다.

생명의 부활을 받은 자는 그 거룩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오전에도 잠깐 말했지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면 이제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공간에 제한 안받는다 말은 이 무쇠 무쇠 무쇠 덩어리 속에도 상관 없이 출입합니다. 무쇠덩어리 속에도 상관 없습니다. 또 이 우주가 넓지마는 넓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좁은 거와 같습니다. 우주에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 뭐 어데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게 있으면 저기 없소. 저기 있으면 여기 없는 게 아니야 여게도 있고 저게도 있고 어데든지 있고 싶은 대로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도 만일 영화된 몸은 내가 여게 있으면서 여게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저 달에도 있고 해에도 있고 별에도 있고 있고싶기는 동시에 다 있을 수 있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몸으로 부활을 합니다. 또 천 년 만 년 있어도 상관이 없는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그런 몸으로 부활을 하기 때문에 이 부활한 몸은 영계에 이 육은 영계에 못갑니다. 영계에 자유로 활동하고 출입할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영화 부활이라 그렇게 말 영화 부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영화 부활.

일곱째는 천국 시민권을 가지게 됩니다. 천국 시민권. 이 일곱 가지가 기본구원입니다. 기본구원. 이것을 우리 사람이 알기도 전에 다 된 것입니다. 자기가 알기 전에 된 것이요. 이것은 자기가 알고 난 다음에 이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는 데에도 자기는 상관이 없고 경영하는 데도 상관이 없고 자기 것이 되는 데도 상관이 없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곱 가지 구원을 입혀줘서 이 구원을 자기가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싶어 가진 게 아니라 자기에게 이 구원이 있습니다. 일곱 가지가 기본구원입니다. 이것은 꼭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잘 믿는 사람이요. 사도들은 잘 믿는 사람들이지만 사도의 기본구원이나 우리의 기본구원이나 또 아주 못 믿는 그 사람의 기본구원이나 또 냇치 안 믿고 있다가 죽을 때에 삼 분 전에나 일 분 전에 예수 믿는 그 사람의 기본구원이나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그러면 목적 안에서 난 것이 꼭같고,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것도 꼭같고, 영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도 꼭같고, 하나님의 아들된 것도 꼭같고,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것도 꼭같고, 영화 부활 받는 것도 꼭같고, 하나님의 나라에 시민으로 되어 사는 것도 꼭같습니다. 이거는 차별이 없습니다. 차이 없이 꼭 같소. 뭐 누구는 좋고 누구는 나쁜 거 없습니다. 꼭 같습니다.

다만 이제 구원 하나 남았는데 구원 하나 남은 그것은 이 기본구원을 받은 자가 기본구원을 어느 정도 입고 사느냐, 기본구원을 어느 정도 활용을 하느냐, 기본구원의 사람이 얼마나 됐느냐 하는 거게서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가 있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 구원은 미결에 있는 게 아니고 이미 이루워져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곱 가지 구원을 자기가 지금 애를 씀으로 받겠다고 또 애를 씀으로 받는 것으로 이렇게 말하는 교리와 신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것은 어떤 교파에서 말해도 그건 틀렸으니까 여러분들이 틀렸다고 당당히 말하십시요. 그러면 그들이 지금은 틀렸다고 많은 사람들이 무리가 가진 것이 더 맞다고 많이 말하지만 소용이 없소. 하나님의 심판에서 성경에서 그거 다 정죄됩니다.

기본구원은 이미 우리가 얻었고 이거는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로만 우리에게 온 것이지 인간은 거게 뭐 하나 가감도 하지도 않고 또 알기도 전에 다 이 구원이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구원이요.

그러면 기본구원을 받은 자인지 받은 자가 아닌지 하는 것을 오전에 많이 증거를 했습니다. 우리가 기본구원을 받은 사람이지만 악령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심도 나오고 저런 유혹도 나오고, 또 그렇게 믿어질 때도 있고 안 믿어 질 때도 있고 의심될 때도 있고, 자꾸 있는 그것은 악령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인데 악령이 강하게 작용을 해서 이 구원과 천리 만리 멀도록 자꾸 만듭니다. 제 힘을 다해 가지고 안 믿는 사람은 다해 가지고 멀리 되도록 하려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력을 다 능가하고 의심한 기본구원을 믿는 믿음이라도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악령의 세력을 다 이기고 거게서 구출돼 나온 그 증거입니다. 나왔지만 또 기어들어가고 나왔지만 또 기어들어가고 또 넘어지고 또 자물시고 하는 거 모양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니까 오전에 증거한 그것을 굳게 잡고 자기는 기본구원을 얻은 증거가 있거든 한번이라도 예수님은 자기 구주요.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요.

또 이 구원을 얻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것이 벌써 구원에 대해서 가치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 구원에 대한 존재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말입니다. 이 구원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것도 그 역리적으로 그것이 이 구원을 인정한다는 증거입니다. 이 구원을 안 받았으면 섭섭하다 하는 그것도 어쩔고 하는 그런 것도 다 이 기본구원을 성령이 인정하게 하는 거게서 발생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히브리서 6장에 보면 다시 터를 닦지 말고 다시 이 구원에 대해서 다시 터를 닦지 말고 이제는 그 위에 건설이나 부지런히 해라 하는 그 말은 터를 닦지 말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기본구원을 얻었다 안 얻었나 이것만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기본구원을 잊어버릴 때는 사람이 변해버립니다. 기본구원을 잊어버리면 순전히 안 믿는 사람과 꼭같은 사람이 돼버리고 맙니다. 이 기본구원을 자기가 생각하고 연구해서 기본구원을 자기가 받은 자, 기본구원을 얻은 자기인 것을 인정하고 이 기본구원 얻은 자로 살라고 할 때에 자기 속에서는 빛이 나오게 됩니다.

건설구원은 어떤 것인고 하니,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기본구원을 얻은 자로 사는 연습을 이 세상에서 하는 것이요. 연습을 마음이 한 번 하고 몸이 한 번 하고, 또 두 번 하고 세 번 하고 열 번 하고 백 번 하고 천 번 하고 만 번 하고 자꾸 하니까 이 마음과 몸이 기본구원을 얻은 마음올 몸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러니까 성화구원이라. 이것이 다 자기 행동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니까 행위구원이라.

이것이 하나씩 둘씩 자꾸 만들어 가지고 되어지기 때문에 하나 얻고 둘 얻고 이래 가지고 되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 그래서 집을 짓는 자가 반석 위에 짓는 것, 모래 위에 짓는 것,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그 비유는 이 건설구원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언제든지 이 기본구원을 놓지 않고 기본구원 얻은 자로 살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하나님은 나를 당신이 제 일호의 목적으로 삼으셨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목적으로 삼으셨다. 얼마나 큽니까. 우주보다 크게 영계보다 큽니다. 우주 영계 그것은 이 목적으로 삼은 이 목적을 위해서 그것이 있는 것이냐?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목적의 원인이 우리의 택함인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 자기가 새겨야 됩니다. ', 나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낳다. 하나님의 목적이 내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이시다.'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라 하나님의 기업이라 하나님의 소망이라 하나님의 목적이라 하나님의 택함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은 다 하나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우주의 큰 걸 볼 때에 '! 우주가 크다. 이 우주가 나를 위해서 이 우주를 하나님이 지으셨다. 난 우주보담 크다 영계보다 크다. 미국보다 크다. 불란서보다 크다. 소련보다 크다. 한국보다 크다. 중공보다 크다. 나는 크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말을 안해도 속으로 이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어. 이 공연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했소. 이걸 믿어 우리는.

둘째는 '나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다. 나는 수많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이 다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죄가 없는 자다. 나는 죄가 없는 자다.' 죄가 없는 자인데 죄가 없는 자로 살아보라 그말이오.

이래서 현실을 줘서 죄 없는 자로 살아보려 하니까 살다가 좀 살다가 그만 넘어져 버렸습니다. '아이구 실패했습니다.' '또 살아 봐라.' '이제는 죄 없는 자로 살아 보겠습니다.' 아 살다가 조금 더 살았지만 그만 또 넘어졋습니다. '아이구 넘어졌습니다.' '또 살아봐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죄 없는 자로, 사죄 받은 자로, 죄 없는 자로 살아봐라.' 하는 이것이 우리의 세상입니다. 이것이 건설구원이라 그말이오. 기본구원을 얻은 자로 사는 그것이 이제 건설구원이요 이루어 놓은 것이 건설구원이 된 것입니다.

또 칭의 받은 자로 '아 나는 주님이 완전한 의를 나에게 입혀주신 의를 가진 나는 의인입니다. 나는 의인이다. 나는 의인이니 의인으로 나는 사는 것이 내 생활이다. 나는 의인이기 때문에 나는 의인으로 산다.' 의인으로 살려고 현실을 주니까 의인으로 살려고 시작하다가 죄인으로 또 삽니다. 이러니까 그것은 제 생활이 아닙니다. 의인으로 살 때는 새람 제가 산 것이고, 의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삐꾸러져 간 것은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간 거라 말이오.

이 심신이 의를 입어서 의의 마음으로, 의의 몸으로 살 때에는 기본구원을 얻은 자로 사는 것인데, 이 마음과 몸이 악령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의를 버리고 그 죄의 마음으로 죄의 몸으로 살 때에는 그만 기본구원을 벗어버렸다 말이오. 기본구원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고때에 기본구원을 벗어 버릴 때에 고때에 작용된 요소들은 다 지옥이란 말이오. 다 불로 타버리요. 다 소멸되 버리요. 그거는 암만 이 구원을 받았지만 헛일입니다.

그 우리의 심신이 그 심신이 아니요. 우리의 심신이 이 시간에 작용하는 기능이 따로 있고 이 시간에 작용할 때에 소모되는 정력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정력은 구원을 못 얻었다 그말이오. 그 정력이 또 쓰고 또 다음 또 쓰는 거 아니요. 썼으면 그거는 없어졌소. 그 다음 정력은 또 딴것입니다.

자기가 네가 의를 입은 자니 너는 의인이니 너는 네 마음은 의로운 마음이요. 네 몸은 의로운 몸이기 때문에 의로운 마음으로, 의로운 몸으로 살아라 하면서 현실을 한번 연습하라고 주셨다 말이오. 현실을 줬는데 그 현실에 의로운 마음으로, 의로운 몸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살라고 마음으로 원하다가 시방 넘어져 버렸다 말이오. 그러면 또 헛일입니다.

그렇게 연습을 해 가지고 현실에서 의로운 마음으로, 의로운 몸으로 살라 하니까 마구 옆에서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방해를 해도 삽니다. 마지막에는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목숨을 끊어도 의로운 마음으로 의로운 몸으로 삽니다.

이러니까 '너 죽인다 죽인다' 하고서 목숨을 끊고 잠기거나 고문으로 꺼꾸로 달아 가지고 불로 찌지면서 '이제 의로운 마음 이거 버리라. 의로운 몸 이거 버리라.' 이래도 ', 나는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이 이렇게 당신이 전부 다 기울여서 내가 죄의 마음, 죄의 몸 됐던 것을 나를 구원해서 의로운 마음, 위로운 몸으로 만들어 줬기 때문에 나는 의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내 생활이요, 의로운 몸으로 사는 게 내 생활이기 때문에 이는 내가 주님이 주신 선물이요 구속이요. 내 생활이기 때문에 나는 버리지 못한다.' '그러면 네가 죽어도 좋으냐?' '네가 목숨을 빼앗가 가면 할 수 없지만 목숨은 뺏앗기지 이거는 내가 뺏길 수가 없다.' 그러면 목숨을 뺏앗기도 의로운 마음으로, 의로운 몸으로 끝을 마치는 그것이 순교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연습하는 것이요. 그 연습하는 것이 건설구원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 연습하는 데에 기본구원 얻었지만 다 저버린 사람 그 끝까지 이 건설구원으로 자기가 기본구원을 가지고 산 사람 이것이 하늘나라 구원의 차이입니다. 이것이 차이요. 그 사람의 심신의 실력의 차이입니다. 영이 암만 실력이 있어도 심신이 안 들으면 소용이 없소.

그 사람이 아무리 훌룡한 비행기 조종사라 할지라도 비행기 기계가 고장이 나가지고 안 들으면 날라 갈 수 있습니까. 그것 모양으로 영은 아무리 능하다 할지라도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안 들으니까 그 영은 무능한 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의 구원이 그렇게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제는 주님이 하나님과 원수된 나를 당신이 죽기까지 화평을 도모해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 원수된 것을 이제 화평을 이루어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과 한덩어리 된 이 결합으로, 하나님과 원수지 안한 결합으로 나는 된 자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살지 하나님 배반하지 않겠다.

이러니까 하나님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과 한 결합을 가지고 하나님과 결합된 요것이 생명인데, 하나님과 결합된 자로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결합된 자로 살라고 현실를 주는데 고만 살다가 그만 돈이 와서 꾀우니까 하나님 배반하고 돈하고 짝이 돼 버렸습니다. 또 죽인다고 이러니까 고만 육체의 생명이 아까와서 육체의 생명 차지하려 하다가 고만 하나님을 배반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건설구원이 실패요.

자기가 돈으로 인해서 '자 돈 줄 터이니까 하나님 배반해라.' 그래도 배반하지 안하면 그 재물은 다 제 것 되는 것이요. '권세를 줄 터이니까 하나님 배반해라' 어떤 권세를 줘도 배반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권세는 제 것 되는 것이요. '네가 죽으리라 목숨을 생명을 내고 죽일 터이니까 하나님 배반해라' '죽어도 이제 하나님 배반하지 안합니다.' 그러면 그 육의 생명이 기능이 고만 자기의 도구 돼 버렸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 구원의 비밀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예수님의 구속을 인해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습니다. 영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은 이제는 진리로 살아났고 영으로 살아났소. 진리로 살아났고 성령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진리의 힘으로 살아난 자요. 성령의 힘으로 살아난 자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살아난 것은 진리의 힘으로 살아났고 성령의 힘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그 사람의 힘은 무슨 힘인고 하니 진리의 힘이요, 그 사람의 힘은 성령의 힘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힘과 성령의 힘을 누가 가졌느냐 하면, 영은 진리의 힘이 저의 힘 됐고 성령의 힘이 저의 힘이 됐고 진리의 힘과 영감의 힘이 저의 힘이 된 것이 중생된 영인데, 이 중생된 영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마음과 자기 몸 이것도 이제 중생된 영이 '너도 내가 가진 이 진리의 힘으로 내가 살고 영감의 힘으로 네가 살아라' 할 때에 이 마음과 이 몸이 거게 따라서 이 마음과 몸이 다른 힘으로 살지 않고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살게 되면 고때에 된 것은 그 기능은 벌써 구원을 받았고 그 기능은 이것이 기본구원으로 산 이 기본구원을 제가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그 마음이 진리의 힘으로 살지 아니하고 인간의 힘으로, 제 힘으로, 육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돈의 힘으로, 어떤 그 세력의 힘으로 그 힘으로 삽니다. 그 힘으로 진리의 힘으로 살지 않고 진리의 힘은 배반하고 영감의 힘도 배반하고 자기는 세상 그 무엇을 따라서 그 힘을 차지하고 그 힘에 따라서 피동되고 그 힘으로 삽니다. 그게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영의 힘이 뭐입니까? 영은 과거 타락하기 전에 원죄를 범하기 전에는 그것이 영의 힘으로 잠깐 살았지만 그 영의 힘이 그것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있을 수 있는 그런 힘이었습니다. 그 영의 힘으로 살았는데 그 영의 힘은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있는 영의 힘인데, 연결된 것이 선악과 먹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영이 먹은 거 아닙니다. 영이 먹은 거 아니고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먹었지만 영이 그 주격 책임에서 마음이 먹은 것이 고기덩어리가 먹은 것이 영이 주격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영에게 있다 그말이오.

영도 함께 공범이 돼버렸소. 공범이 되어져서 하나님과 끊겨져서 영에게 있는 진리의 힘이 끊겨졌습니다. 영감의 힘이 끊겨졌습니다. 영이 영감의 힘과 진리의 힘이 끊어지니까 그 영은 죽은 것입니다. 그 영에는 기능적으로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영이 없어진 것 아니요. 있지마는 사람의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 영은 순전히 하나님의 그 역사의 힘과 또 진리의 힘으로만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것이 사람의 영입니다.

이 짐승이나 이런 것은 그게 아니요. 짐승은 물질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물질의 힘으로. 우리의 육은 물질의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영이 죽어도 물질의 힘으로 살 수 있고 우리의 마음도 물질의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의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만은 영감과 진리의 힘으로만 삽니다.

그렇게 코에 생기를 부었다 말은 그 하나님의 그 성령의 역사를 그에게 접선을 지키니까 산 영이 됐다는 것입니다. 영은 이제는 다시 끊치질 수 없는 다시는 재판이 없는 두번째가 없는 단번에 영원히 끊쳐질 수 없는 하나님과 결합이 예수님의 화목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로 말미암아 됐습니다. 신인양성일위로 말미암아 된 요 신인 결합이 영원히 된 요 신인 결합의 요 결합으로 인해 가지고 죽은 영이 진리의 힘으로 살아났고 영감의 힘으로 살아난 이 힘은 영원히 끊쳐지지 않는 이 힘 그것이 영생할 수 있는 힘 곧 그것이 영생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이래서 영은 이렇게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 이 능한 두 힘을 가졌지마는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는 아직까지도 이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살지 않고 마귀의 힘으로, 자기 중심의 힘으로, 이제까지 죄짓던 그 버르쟁이 습성의 힘으로, 또 돈의 힘으로, 어떤 사람의 유혹의 힘으로, 권세의 힘으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힘으로 이 마음이 움직이고 고기덩어리가 움직이고,진리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고 영감의 힘으로 움직이지 아니하는데,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움직이도록 연습을 해 가지고 네가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마음과 몸이 움직여 진리의 힘과 영감의 힘을 마음과 몸이 이 힘을 가진 이 힘은 영원히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영생하는 힘이지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런 힘 가지고 암만 있어봤자 그거는 다 없어지고 썩어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세상 과학을 제가 혼자 차지한 그런 힘을 마음이 가지고 몸이 가졌다 할지라도 그거는 세상을 떠날 때에 다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진리의 힘으로 그 마음이 튼튼해졌고 장성해졌고, 또 진리의 힘으로 그 몸이 숙달되고 장성해졌고, 영감의 힘으로 마음이 튼튼해졌고 영감의 힘으로 몸이 튼튼해진 그 마음과 몸의 힘이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된 그것이 구원받은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기능. 그것은 다 영생이기 때문에 부활할 때에는 그 몸은 다 부활하지마는 그 기능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마련됐느냐? 부활한 그 몸둥이 속에 부활이야 똑같이 합니다. 부활은 꼭 같습니다. 부활은 같은데, 부활한 자 그 자가 진리의 힘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영감의 힘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부활한 자의 권능입니다.

빌립보 3장에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그 주님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기 위해서 막 달음박질을 칩니다. 네 이게 실력이요. 그까짓 거 돈 억만금의 힘이라 해도 아는 사람 눈꼽짝이 만큼도 안 봅니다. 그까짓 거 그게 있어 봐야 썩은 힘이요. 또 그것 가지고 되는 거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는 돈 없어 못 이룰 일은 하나도 없소. 뜻이 아니라 그렇치.

뜻이 아닌 걸 인간이 뿍뿍할 때에 그때 뭐 세상 것이 없어서 안되거들랑 내 보기에는 하나님의 뜻 같은데 실상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되는 줄 아십시요. 하나님의 뜻은 그런 거는 되기 마련이라.

아 이 세상에서 거짓뿌리로 된 사장도 사원에게 이 일을 일하려 하면 일할 수 있는 비용을 주며 일하라 하는 것이요. 아 나라에서도 어떤 거 하라고 이러면 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춰 가지고 하라 이러는 것인데,하나님이 완전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는데 할 수 없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그런 모든 조건을 갖추지 않고 하라 한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무책임하신 하나님이 아니요.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그런고로 이 중생은 진리의 힘 영감의 힘인데 이것이 우리의 힘이요. 우리 영의 힘도 진리의 힘이 우리 힘, 영감의 힘이 우리 힘, 내 마음의 힘도 내 마음이 영감으로 된 그 마음이 내 마음이요, 영감으로 된 영감의 힘은 전능의 힘인데 그 힘이 우리 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역자라는 것이 목사라 하는 것이 돈 힘 그거 목사 힘 아닙니다. 정권 힘 목사 힘 아니요. 사회의 기반이 훌룡하다 하면 그 목사의 힘 아닙니다. 교인들이 와 해 가지고 많이 뭉쳐서 단합됐다고 해 가지고 그거 목사 힘 아닙니다. 목사가 그런 힘이나 가지고 하면 다 내나 썩은 것이요. 내나 죽은 것이요. 목사의 힘은 진리의 힘이 제 힘이요. 진리의 힘이.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진리와 함께 말하고, 진리와 함께 말한 그것을 할 때도 진리가 함께 하고, 영감이 함께 하고, 그러니까 그거는 전능의 힘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목회자가 바로 하면 그는 하나님의 힘이 제 힘이요, 진리의 힘이 제 힘이요, 하나님의 주장이 제 주장이요, 진리의 주장이 제 주장이요, 하나님의 그 주장이 제 주장이 됐으면 그 주장을 할 때도 하나님이 제 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거 하라 하는데 저는 저 혼자 꾀를 내 가지고 이 거 하려 하면 하나님에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 일 하는 데는 저 혼자나 했지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우리 개인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강하다면은 굉장히 막강한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뭐요. 이래 밟습니다. 그들에게 목이 베어서 죽어도 그들은 밟았습니다. 밟혔습니다. 세상 나라는 발 아래 밟히요. 온 천하에 모든 피조물 영계나 피조물은, 영계나 물질계의 피조물은 발등산이라 했소. 발등상. 성경에 말해 놓지 안했소. 발등상. 우리는 하나님의 몸 모든 만물은 발등상.

그러면 발등상이 발 밑에 있소, 위에 있소? 말해 보십시요. 발 밑에 있소? 있지 않소?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말은 해야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저 서서히 그들의 지식에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 말해. 가서 알려 들기로 하지마는 믿는 자기는 땅 위에 무엇하다가 내 것 아닌 게 없소. '마귀 야 이놈아 너도 내 것이야. 내가 부리는 종이라. 영원히 부릴꺼라.' 우주 이것이 내 것이라. 누구것이든 내 것이지. 또 여러분들의 것이라. 영계는 공연입니까? 공연이 아니요. 인간들이 안 믿지마는 믿는 자들은 그대로 됩니다. 믿는다고 됩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면 변하지 아니하신데 자기가 인정치 안했기 때문에 땅 위에서 그렇게 살지 안했습니까. 하늘나라 가 가지고 살질 안했으니까 보지마는 누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나는 사죄받은 자라. 나는 칭의 받은 자라. 나는 하나님과 결합돼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자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된 자라.'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내 힘은 뭐이냐? . 아 그 힘은 내 힘 아니다. 진리가 내 힘이다. 진리가 내 힘이다. 내가 진리로 행할 때는 전능의 힘을 내가 가졌다. 진리가 내 힘이다. 내 주장도 진리요, 내 사상도 진리요, 내 계획도 진리요 진리가 내 모든 지식과 계획도 동기가 되어져야 되고 그럴 때에는 진리의 힘, 곧 내 힘이 된다. 영감이 내 모든 마음의 움직임이 되야 되고 그럴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몸의 움직임이 다 되어진다. 이것을 믿고 이 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어데 가든지 '자 이 사람이 이러는데 분하다.' '그 사람은 분히 해도 너는 분하게 못 이긴다. 너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다.' ', 이 사람이 나한테 거짓말하고 속이고 이렇게 사네 나도 일대 일로 내가 처만큼 수단이 없나.' '얘 너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아 이 사람들이 전부 육을 고기덩어리 살 요량만 하고 전부 편안하게만 살려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때야 내가 하나님 말씀 어기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언제든지 괴로울 때나, 평안할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낮을 때나, 높을 때나, 복잡할 때나, 한가할 때나 언제든지 나는 영생을 가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나님이 지으신 영계와 우주의 것을 다 내가 상속받을 자라. 이러기 때문에 내가 아들답게 살아야지. 아들처럼 살라 했거든.'처럼 이라 말이 고기 좀 번역이 잘못 됐어. 고 요번에는 어찌 됐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아들답게 처럼, 하나님 아들로 하는 게 제일 좋겠습니다. 처럼 하니까 아주 좋지 못한 기분이 들어. 그걸 우리 말로 번역을 잘못해서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됩니다. 아들로.

아들은 됐는데 영은 아들로 사는데 다만 이 심신이 아들로 살지 못하면 이것이 문제요. 심신이 아들로 살고 못 산 이것이 부활한 자의 심신의 권능입니다. 심신의 기능이요. 이것이 부활한 자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 영생을 가진 자를 영생이 제 생명이라. 영생이 제 생명이라. 육의 생명 이것은 자기가 가진 제 이위의 생명입니다. 육의 생명 이건 임시 생명이요. 육의 생명 임시 생명. 이 재세의 세상에 있는 동안의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고기덩어리의 생명이요. 이거는 마음의 생명이 아니요.

이 고기덩어리의 생명 이거는 몸의 생명이지 마음의 생명은 아닙니다. 마음은 이 고기덩어리 이것을 죽인다고 이 생명이 끊어진다고 마음에 끊어지는 거 아닙니다. 마음은 그대로 연결해갑니다. 우리는 영의 생명, 영의 생명이 마음의 생명까지 되고, 영의 생명이 마음의 생명까지 되는데 영의 생명 이것의 몸의 생명이 될 때도 있고 몸의 생명이 안되고 몸의 생명만 가지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이 영생하는 이 생명이 자기의 생명인데 이 생명으로 살지 못하고 일시 세상에 있는 고기덩어리의 생명 이것만 제 생명인 줄 알고 이 생명과 저 생명이 둘이 모순이 될 때에는 어느 생명을 취하고 어느 생명을 네가 버릴 것이냐 할 때에 고기덩어리의 생명을 취하고 영생하는 이 생명을 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죽을 지경되면 예수 배반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은 하나님과 결합이 돼 가지고 성령의 힘으로 살고 진리의 힘으로 사는 고것이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생명을 가졌소. 두 가지 생명. 뭐 영생하는 생명을 가졌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가지고 있는 이 생명을 가졌으니 이 생명을 가리켜서 자연 생명이라. 이 생명을 자연 생명이라. 이 자연 생명, 또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얻은 생명을 영생하는 생명이라. 특수 생명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라. 영생하는 생명이라. 영생하는 생명 가지고 있고, 자연 생명 일반적인 생명, 그러기에 일반적인 생명은 언젠가 이것은 벗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반적인 생명과 또 이 생명이 사는 생활과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생명와 이 일반적인 생명이 사는 생애, 일반적인 생명이 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 사는 그것을 가리켜서 신앙 생활이라, 고것을 가리켜서 주를 위해서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순전히 주님만 위해 산 고것을 가리켜 순생이라 이럽니다. 순생. 자기는 죽고 주님은 자기에게 산 생활.

그러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주님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자기 욕심대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소욕대로 한 것,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성경 진리대로 한 거, 고 생애를 가리켜서 순생합니다. 순생. 순생. 또 자기 삶을 그래한 것을 순생이라 하고, 자기가 마지막 이 자연 생명을 자연 이 생명인 이 생명을 주를 위해서 이 생명을 바친 것을 가리켜서 순교라 그렇게 말합니다. 순교. 따라해 봅시다. 순생 순교. 순생. 순교. 요 둘이 인간이 기독자가 이 세상에 있어 준비한 전부입니다. 요 둘이 세상에서 준비한 전부입니다.

그러면 생애의 중량과 죽음의 중량이 꼭같습니다. 생애의 중량과 죽음의 중량이 같습니다. 그 사람이 순교를 못해서 일생 동안 살 때에 사는 것을 자기로 살지 못하고 주로 산 거 그것이 가치 있습니다. 그것이 순생의 구원을 이룬 사람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고린도전서 15장에 "내가 단언코 말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 말은 그 자기로 살지 않고 주로 산다 그말입니다. 자기 욕심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소욕으로 살고, 자기 뜻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뜻으로 살고, 자기 성품으로 살지 못하고 주의 성품으로 살고 그러면 자기 사는 것이 순전히 자기대로는 살아보지 못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사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해서 날마다 죽노라 그 말했습니다.

고 순생의 가치나 자기 거게 마지막 생명이 끊어지는 고 순간이지만 고 생명이 죽는 고 죽음을 어떻게 죽느냐? 죽음을 어떻게 죽었느냐? 고 죽음을 하나님과 이 진리를 위해서 죽느냐, 이제 자연적으로 늙었으니 죽고, 병들었으니 죽고 죽는 것이냐? 고 죽음은 어찌 죽느냐? 고 죽음을 진리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인하여 고 생명을 썼느냐. 생명을 썼으면 이제 죽는 거 아닙니까. 그 생명이 끝나는 고 죽음, 생명을 생명의 결말 고 생명 마지막의 고 생명을 이제 그 진리를 위하여 바쳤느냐, 또 영감을 인하여 바쳤느냐, 고 마지막 죽음이 영감대로 죽음이냐, ( )의 죽음이냐? 고것이 일생 동안 네가 사는 것이 영감대로의 삶이냐 진리대로의 삶이냐 고 중량이나, 네 죽음이 영감대로의 죽음이냐 진리대로의 죽음이냐 하는 고 죽음이냐 한 고것이 중량이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두 모가치를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사는 것이 진리로 살았느냐, 영감으로 살았느냐? 고것이 한 모가치, 하나는 또 진리로 내가 죽었느냐, 영감으로 죽었느냐? 고거 한 모가치 고 두 모가치가 중량이 꼭 같고 가치가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오늘 하루 동안에 살고 '아이구 오늘 하루 산 걸 생각해 보니까 오늘 반 날은 돈으로 인해 살았고, 반 날은 어떤 인간이 꾀워서 고 사람으로 인해 살았다. 오늘 썩은 생활했다 분하다.' '! 오늘은 돈으로 오늘 하루를 살뻔했는데 내가 고것을 이겨서 돈으로 살지 안했다. 누가 와 가지고 오늘을 그의 충격에 따라서 그가 부애지를 하기 때문에 그이의 충격 주는 충격으로 살뻔했는데 내가 그때 기도하고서 딱 물고 어떤 충격을 받아도 주여 내가 진리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겠습니다. 그 충격을 물리치고 진리와 영감대로 살았다.' '아 이랬는데 혈통, 가족, 그 동류, 정실, 혈육정실 이 모든 그 이 정실이 들어서 와 가지고 아 그러기 때문에 고게 내가 그만 살깜 넘어 가지고 마지막 몇 시간을 그 정실의 생활하고, 진리와 영감 생활 못했다. 도독 맞았다 원통하다.' 요것을 계산하는 것이 기독자의 계산이라 그말이오.

고렇게 티끌 모아 태산된다고 한 시간 살아, 하루 살아, 한 달 살아, 열흘 살아 요것을 손해 안 보려고 발발 떨면서 이러니까 어쩌든지 그저 죽어도 진리 살아도 진리, 죽어도 영감 살아도 영감 돈이 가서 돈 그럼 네 재산 다 절단난다. 재산이 절단나든지 말든지 진리대로, 재산이 오든지 말든지 영감대로, 이제 다른 거 그것은 오든지 가든지 어떻게 파동을 치든지 말든지 고게서 자기는 영감대로 행동하고 진리대로 행동할 것, 영감과 진리대로 자기는 마음을 쓰고, 영감과 진리대로 성질을 쓰고, 영감과 진리대로 말을 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행동한 죄가 아닌 의로운 그 사람으로 의로운 행동으로 했으면 나는 이겼지. 땅 위의 것이야 잊어버렸든지 버렸든지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버리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 말은 모든 것을 뒤로 두고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요것을 첫째로 두지 않고 너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갈 수가 없고, 너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 그말입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얻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난 것도 이미 얻어놨소. 또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 칭의 새생명 받은 것도 이미 얻어놨소. 또 중생도 얻어놨소. 또 하나님의 아들된 이 권세도 얻어놨소. 또 영생하는 생명도 얻어놨소.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는 것은 얻어놨습니까? 얻어놨습니까? 어찌 했소? 얻어놨습니까? ? 우리 것 되기는 됐소. 결정은 돼 가지고 있소. 아직까지 때가 안됐기 때문에 우리가 이 영화의 부활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영화의 부활은 미래에 있습니다. 미결은 아니요.

이미 불변의 결정인데 영화의 불활은 불변의 결정인데, 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이 부활은 언제 우리가 받아 가지게 됩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때 우리가 받아 가지게 됩니다. 요것은 미래에 있습니다. 또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우리가 결정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결정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시민, 천국 시민 생활은 지금 합니까, 앞으로 있습니까? 미래에 있습니다.

신령한 천국은 미래에 있는데, 지금 천국 시민의 이 권세를 얻은 자로 세상에서 살 수는 있습니다. 천국 이 시민의 권세를 얻은 자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으니, 살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이 세상이 그에게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다 말은 그에게는 주관적을 말하는데 그 사람은 이 몸은 죽어도 그 사람이 죽음의 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 이것은 천한 것을 신령한 것으로 바꾸는 옷이 있는데 이 옷이 지금 낡아지고 떨어지고 때 묻었는데 이것 벗어 놓으면 이 옷을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으로 말할 수 없는 신령한 의복으로 입고 날라도 되고 영계도 갈 수 있는 그 좋은 의복으로 이것을 개조해 주려고 벗어 놓으라 하니까 벗어 놓으라 하니까 개조해 주려고 벗어 놓으라 하니 벗기가 기쁘겠소, 슬프겠소? ?아 여러분들 양복을 하나 입고 있는데 양복을 입고 있는데 그 어떤 그 과학의 무슨 새 발명이 나와 가지고 아주 떨어진 옷 못 쓸 옷 한 천 원짜리 옷 그걸 같다가 다시 재 제조를 하면 억만 원짜리 양복이 된다. 억만 원짜리 양복 그런 양복이 지금 있습니까? 억만 원짜리 양복이 된다. 자 그러면서 양복 벗어라 하면 벗기를 꺼려할까요, 기뻐할까요? 저 어떻겠소? (이동근) 장로님 꺼리겠소? ? 꺼리겠소? ?자 꺼릴 사람 여기 손 들어 보십시요. 꺼릴 사람 손을 드십시요. 그 천한 옷을 어떤 능력으로 벗으면 것다 그 능력으로 개조를 하면 당장 그 옷이 굉장히 고귀한 가치 억만 년 입어도 떨어지지도 않고 그 옷만 입으면 어데든 날라 돌아다니고 할 수 있는 그런 그 뭐 억만으로도 계수할 수 없는 그런 옷이 된다고. '네 그 옷 만들어 줄터이니까 벗어 놔라' 할 때에 자 그런 일을 당하면 벗어 놓기를 싫어할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자 반가와서 기뻐 즐거워서 얼른 벗을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나도 얼른 벗겠소. 얼른 벗겠소. 이것입니다. 이거. 네 이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어서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지마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너희들의 구원에 유익이 되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도 좋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에서 하는 말입니다. 하늘나라 시민 생활도 이 세상에서 하는 사람은 그래 죽음이 없어요. 고통이 없어 고통이 없어.

'너 이놈 예수 믿는다고 죽인다' 하니까 죽인다고 이러니까 '아이구 큰 고통 당한다' 하는데 그 사람은 아! 주를 위해서 죽인다는 소리를 들으니 나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영원히 모시고 살터인데 나도 세상에 있으면 주님 때문에 죽인다는 그 말을 들었으니까 좋겠소 나쁘겠소? (윤수)씨 좋소.

자 이놈 예수 믿는다고 뺨을 아주 피가 나오게 맞았습니다. 맞았으면, 맞았으면 주님이 나 위해서 모든 것 다 버리신 그 주님을 나는 당신을 사랑치 못하고 섬기지 못했는데 주님 앞에 그분이 만왕의 왕이신데 만주의 주신데 그분 앞에 가서 살 터인데 그분 앞에 가 살 것을 생각하고 그 나라가 영원함을 생각할 때에 주님 때문에 뺨을 맞을 때에 그 뺨 맞은 것이 좋을까요, 원통할까요? 원통한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주님 만날 것을 영원히 살 것, 주님이 나 사랑한 그걸 생각해 볼 때에 내가 주님을 사랑할 그 소원에서 소원을 가진 사람이 주님 때문에 뺨을 맞으면 뺨 맞을 때에 자 기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네 기쁘겠습니다. 기쁘겠습니다. 한번 더 드십시다. 우리는 주로 인해서 뺨을 맞으면 기쁘겠소, 안 기쁘겠소? 기쁘겠거든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기쁘거든 예 기쁘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박해를 받고 참는 것입니다. 그 세상에 모르는 이상한 일이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에 사는 사람은 손해가 하나도 없소. 없어? 네 돈을 뺏들어도 손해 없어? 공연히 예수 믿는다고 돈을 뺏들 때에 돈을 뺏겼습니다. 손해 갔습니까? 사랑하는 이를 인해서 진리 때문에 돈을 뺏겼으니 진리가 배상해 줘. 주님 때문에 돈을 뺏기고 참았으니까 주님이 사랑 주시고,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한 것을 인정하시고, 또 모든 것이 내 주께 있어. '명예와 친척과 재물과 가족을 원수가 취한 들 상관이 무에뇨. 내 주께 있으리로다' 이러니까 세상에서도 기본구원을 얻은 이 사람의 영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이 영육이 기본구원을 얻은 기본구원을 얻은 자로 세상에 살 때에는 그는 사망이 없어. 고통이 없고.

그런고로 이 생활을 어떤 사람은 조금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하요. 2526일 그 열두 순교자에 대해서 보니까 그분들은 믿기는 믿었는데 믿음을 만들어 가지들 못해서 그때 써 먹을 믿음이 없어. 그러니까 울면 불면서 죽으면서 놔주면 좋기는 좋지마는 배반할 수는 없어. 고통스럽게 고통스럽게 그 십자가를 지고 가고 고통스럽게 계명을 지키고 가고 있어.

기본구원을 톡톡히 입었다면 아 일 분 일 초도 일찍 죽는 거 없고 또 땅 위에 사는 생애는 주를 위해서 사는 생애가 된다면 주로 인해서 영광받는 것 보다도 주님 때문에 수치받은 것이 당신에게 갈 때는 앞면이 있겠소, 주님으로 인해서 막 이렇게 존귀받은 것 보다도 주님으로 인해서 짓밟힌 그것이 그 앞에 갈 걸 생각하니까 좋고 주님을 인해서 보호를 받은 것 보다도 주님 때문에 나도 맞아서 모든 전신이 터져 자빠지고 이러니까 주님과 만날 걸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겁다 이거야.

왜 그 열두 분이 이 사람으로 살지를 못했을까? 순교는 했지마는 그 순교자 ( )라 하는 그 사람은 예수를 전한다고서 못 전하고 감옥에 가두니까 거기서 전하고 그래서 화침질을 하니까 뜨겁다고 상이 찡그러져야 될 터인데 화침질을 하니까 기쁘고 충만합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화침을 가지고 불침 말이요. '화침을 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내 기쁨을 네가 뺏앗을 줄을 아느냐.' 너 이놈 하면서 온 가죽을 뺏깄소. 뺏기도 그 안면은 기쁨이 충만합니다. '네가 그것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변동시키겠느냐 내 기쁨을 변동시키겠느냐.' ? 마지막에는 노망탱이 업고서 지름을 부어 가지고 불을 질렀습니다. 불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러니까 그의 기쁨 주님 만날 거,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맺은 관계를 말미암은 그 기쁨을 해하지를 못했소. 마지막에 '너는 내 기쁨을 소멸하지 못한다. 세상 아무것도 내 기쁨을 소멸하지 못한다.' '나는 네 기쁨을 소멸하지 못했다. 네가 죽어도 이 기쁨 있는가 보자.' 모가지를 마지막에 끊었으니까 생명 없으니까 떠나버렸지.

뭐 스데반이 그 순교를 했고 모든 사도들이 그 순교했습니다. 사도들이 순교 당할 때 벌벌 떨면서 그래 순교하지 안했습니다. 그러지 안했소. 기쁨으로 충만했었소. 손양원 목사님도 그런 순교 안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했더랍니다.

그 같이 있을 때에 그 인민군들이 밥을 요만씩 주는데 그 자리에서도 그 자리에서 주님 가르치신 사랑과 봉사 생활을 하고 그것을 자기는 물만 조금씩 마시고 그 나온 모두 배고파서 청년들이 야단을 지기니까 고것을 조금매씩 몇을 갈라줬소. 고것만 먹은 청년들은 기운이 없어 다 쓰러졌는데 옆에서 갈라준 고 손 목사님의 것을 갈라 줘서 먹은 고 청년은 그 건강이 조금씩 그래 힘이 유지가 됐소.

됐는데 야전 그 전선줄로 가지고 팔을 이렇게 묶어 가지고 줄을 세워 가지고 인민군이 앞에 세워 그 따발총 뒤에 들고서 이와같이 가는데 거게서 '여러 형제들이요. 지금이라도 에수님만 믿으면 여러분들은 하늘나라 간다. 죽음이 없는 하늘나라 간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구주시라고 외치니까 총뿌리로 찔러서 이 늙은 이가 빠지고 뿌라져도 또 외치고 또 외치고 기쁨이 충만했고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그 말 듣고 죽음 앞에 두고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가보면 알 거라. 그게 기적이라.

그때 가면 그 손양원 목사님의 영광이 얼마나 충만할런지 그때에 정말로 전환되어서 믿어 구원 얻을 자들이 있어 구원 얻었다면 그와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된 그 사이에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겠소.

성경에 보면 하늘나라 가니까 의인들의 얼굴들이 해와 같이 빛나는데 그 눈이 바시다 했습니다. 그럴 때에 거게서 다 죽었는데 손 목사님이 밥 놔둬 준 그 청년이 총을 맞았는데 안 죽고 살았어. 그게 살아 와 가지고 손 목사님이 그 감옥에 안에서 어떻게 생애한 것을 증거했소. 그 순서를 증거해서 그것이 손 목사님의 그 신앙 생활의 전기에 고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껍데기에서 살지 맙시다. 우리의 무궁한 하늘나라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구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주와 영계가 우리 구원 위해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적 우리 구원을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본구원을 얻었는데 이 구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구원을 가진 자로 살아보려고 현실을 줘서 실패되면 고 다음 현실을 또 주고 또 주는데 우리가 거듭거듭 실패하고 죽는 날까지 실패하면 어쩌겠습니까. 이제는 실패 없이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현실 현실을 살아 이 기본구원 받은 자로 사는 그 기능 그것이 부활의 권능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배설물로 여기고 어쩌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 하여 어데까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본받아 자기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고난받으려 하는 것이 자기의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다 그들이 몰라 그런 거 아니요. 다 깨달아 그렇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내 말은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해 놓지 안했소. 세상에 아무 말도 믿을 수 없고 이 성경 원본은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을 수 있소. 이 말씀보다 양심을 쓰면 우리 양심 속에서 성신의 감화가 감동시키는 고거는 더 확실해. 더 확실히 믿을 수 있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소생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핏공로를 의지하고 간구합니다. 과거의 우리의 어리석음을 사유해 주시고, 앞으로 현실 현실마다 땅 위에 썩은 것을 인하여 허비하지 않게 하시고, 어떤 환란에서라도 통과할 수 있는 이 믿음을 시험할 때에 합격될 믿음, 천하 인간이 두려워 떨고 절망하고 그 중에서라도 말할 수 없는 천국의 평강과 기쁨으로 세상에 부여줄 수 있는 그때에 써 먹을 수 있는 이 믿음을 현실 현실에서 만드는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이게 하시고, 헛된 것을 인하여서 현실을 뺏앗기지 않는 저들이 되도록 성령님으로 감화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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