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과 건설구원

 

1982. 3. 27. 토새

 

본문: 로마서 6장 4절 - 1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선지자선교회 오늘 장례식이 있습니다. 아침 아홉시까지 장례차가 교회에 오고 대학병원으로  가서 출상예배를 봅니다. 주일학생 중간반 학생의 부친 구역은 ○○○, ○○○  구역.

우리가 기본적 구원과 건설구원을 구별해야 하고 공적구원과 사적구원을  구별해야 하고 법적 구원과 실상의 구원을 구별해야 합니다.

공적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구원인데 꼭 같습니다.

택한 자의 구원이 꼭 같습니다. 또 내나 그 같은 말인데 기본적 구원이라고 하는  이 공적구원을 기본적 구원이라 또 어떤 각도에서는 말할 수 있는데 이 기본적  구원도 꼭 같습니다. 택한 자의 구원은 꼭 같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다루는 법적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적  구원도 꼭 같습니다. 택한 자는 법적 구원은 꼭 같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건설 구원으로 구별해 놓은 이 건설구원은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이것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 기본구원을 귀중히 여기고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하고 이 구원을 잘 힘입어서 이 구원에 도움을 입어서 자기가 실지로  언행심사의 행동을 통해서 건설되어지는 구원입니다. 이거는 각각 다릅니다.

생각 하나 한 것도 구원이 될 수 있고 멸망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로 했을  때에 바로 한 그 생각에 힘은 그만 영생을 했습니다. 바른 생각에 쓰여진 그 힘  쓰여진 요소도 영생이 됐습니다.

바른 행동 바른 마음 바른 소원 바른 일 성공 이것은 다 영생이 돼버렸습니다. 또  그 힘은 다 영원한 힘이 됐습니다. 그 힘은 영원히 씁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뭐 천 층 만 층이 아니라 그 층어리는 굉장히 많은 것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공적구원이라는 말도 하나님의 공심판에 신불신자를 다 놓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심판을 그 사람과 그 행동대로 따라서 심판을 받는데 이 공심판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소원을 하셔서 그 소원을  강제하지 못해 우리 대신을 소원 하셔서 소원하신 대로 대신 우리 모든 잘못된  것을 다 책임지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법에서 한 죄를 한번 다루고 하나 형벌 받으면 되는 것이 한  죄로 둘이 받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했는 고로  우리는 공심판에서는 정죄 받아 형벌 받아 죽은 자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심판하지를 못합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을 심판했기 때문에 우리는 심판하지를  못합니다. 공심판은 면제가 됐습니다. 이것이 공적 구원이요 이 법적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공심판에서는  면했지마는 하나님의 사심판이 있습니다. 사심판에서는 하나님께서 공심판에서  구출해 놓은 사람을 공심판에서 구출해 놓은 사람을 구출 받은 사람이 개적으로  사적으로 어떻게 살았나 하는 이것을 조사해 가지고 영원한 판정을 일으키는  것이 이것이 사심판입니다. 이 사심판을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이렇게  이름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간에 각각 자기  행함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사적구원이요. 공적구원 공심판에서 공적구원 얻은 거는 꼭 같지만은  사심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사적 심판을 받아 사적 구원 얻는 것은 각각  다릅니다.

또 이 말을 법적 구원이라 이랬는데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에서 예수님이  대신 하셔 가지고 우리의 형을 다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형이 없는 사람이  됐고 예수님이 대신 받아서 우리에게 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우리 행할  것을 완전히 행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됐습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이  하나님과 화친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친된 사람이 됐습니다.

이것은 법적이요 공적이요. 법적으로 된 것이고 공적으로 된 것이고 기본적으로  된 구원입니다. 법적으로 얻음으로 우리 영이 중생 되는 것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된 것 하나님과 화친해서 아들 된 것 천국을 얻은 것 죽지 안 할 몸으로  부활하는 것 이것은 전부 공적으로 얻은 것입니다. 법적으로 얻었는데 법적으로  얻은 그것이 공적으로 얻어졌고 기본적으로 얻어졌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얻은 것이 기본구원이 아닌 것은 실질적으로 지금 얻어야  합니다. 공적으로 얻어놓은 구원이 실질적으로는 사적으로 얻어야 합니다.

법적으로 얻은 구원이 실질적으로 공적으로 얻은 것이 사적으로 기본적으로 얻은  것이 건설적으로 얻어야 되는 것이니 이것을 가라쳐서 육적 구원이라 그렇게  말을 씁니다. 이 심신이 구원 얻는 구원입니다.

이러기에 로마서 8장 9절로 보면 우리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살아났지마는 우리의 몸은 아직까지 죄로 인해서 죽음 속에 그대로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이 그 죽으심에 우리를 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공적으로  법적으로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죽은 자로 계산이 되가지고 우리가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는 죄짓는 우리의 심신의 그대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죽은 자인데 실상으로 실상은 죽지 안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죽은  자가 실상으로 죽어야 구원이 됩니다. 자기 몸을 옛사람이 주장하는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인데 악령이라 말은 마귀를 사탄을 말하고 악성이라 말은 인간이  타락해서 인간의 본성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본성이 됐다 그 말이요. 그게  악성 그것이 원죄입니다. 악성 악습이라 말은 악은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을 말하는  것인데 악습이라 말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한번 두 번 살아서 연습한 그  습관이라 그 말이요. 연습한 습관 습관 버릇 그것을 악습이라 말한다 말이요.

그러면 악령이 들어서 우리를 악성을 만들었고 악령이 들어서 우리를 악성을  만들었고 악령이 들어서 악성을 만들었고 창조주 하나님 중심위주로 살아야 할  것을 그만 뱀이 와서 그게 악령인데 와 가지고 아담을 해와를 꼬우고 해와를  통해서 아담을 꾀어 가지고 하나님 중심 위주의 것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것이 돼버렸다 그 말이요. 그것이 악성입니다.

그 내나 원죄라 말이요. 그게 원죄라고도 합니다.

이 악령과 악령이 만들어 놓은 악성과 이 둘이 합해 가지고 우리 마음과 몸을  이것을 이용하기를 꾀었다 말이요. 내가 네다 네 주인이다. 나는 죽여버리고 외나  참 나는 죽여버리고 죽인 이놈이 와서 대신 내라고 떡 하니까 이 어리석은  마음과 몸뚱이는 그 꾀임을 받아 가지고 참 자기인줄 알고 그자 하자 하는 대로  이 마음도 몸도 한다 말이요.

이래가지고 이 마음과 이 몸이 악령이 만들어 놓은 악성과 이 둘이 시키는 대로  악하게 행동한가 그것이 한 번 하고 두 번하니까 연습이 됐소 악습이요 세 번  했으니까 더 연습됐소. 백 번했으니까 더 연습됐소. 이제 잘못된 죄짓는 버릇을  한번하고 두 번하고 자꾸 이래 이 버릇을 드릴 수록 강해진다 말이요. 그게  악습이라 이 악령과 악습 이것으로 자기를 삼아 가지고 자기 마음과 몸을  주장하게 하는 이것 때문에 죽었고 죽는 일을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한 그 대속을  대속이 자기 것이 되지 주님이 대속을 행하셨지마는 대신 죽은 것으로 계산  됐지만은 실질적으로 내가 죽지 안 했는데 그것이 되어집니까? 이러니까 공적인 구원은 얻었지마는 실질적인 구원은 안 된다 그기요. 기본적인  구원은 얻어서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죄 없는 사람으로 갑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갑니다. 그러나 자기의 실제가 안됐기 때문에 안된 그것을 그대로 갈 수는 없고  이것을 다 이 세상에서 현실 현실에서 판정이 나가지고 실지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사는 요것이 이 현실에 죽었으면 고것은 고것이 죽고 성령과 진리와  중생 된 영으로 더불어 살았으면 고 때에 산 고 심신의 요소 그 기능은 고만  영생이 당장 돼버렸습니다. 영생이 그 시로 됐습니다. 되어버렸고 요것이 되지 안하고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내 죄짓는 자가 죽은  것으로 계산이 됐고 또 예수님이 대신 완전히 행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법에서 완전히 행한 자고 계산이 되어서 하늘나라 가지만은 실상은 죽지 안하고  살지를 안 했다 그 말이요. 옛사람이 죽지 안하고 새사람으로 살지를 안 했다  이기요.

이럴 때에는 고 현실에서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았으면  영생되는 것이 고 현실에서 새사람으로 살지 아니하고 옛사람으로 살아서 죄짓는  고 사람으로 살았으면 고 현실에 산 고것을 인해서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죽어버렸습니다. 고 시간에 산 힘은 죽은 힘이요. 악령의 힘이요 악성의 힘이요.

악습의 힘이요. 그대로이기 때문에 고시간 고렇게 산 힘도 죽었고 행동도 죽었고  우리 요소도 죽어버렸습니다. 요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의 해라 요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원 그라면 공적구원은 실질이 아닌가 공적구원 그거는  기본적인 구원은 공적 구원이 실질적인 구원까지 다 됐지만은 육적 구원은  하나님께서 공적 구원 기본적인 구원 법적인 구원만 줘 놓고 자기가 실상 요것이  자기가 실질적인 구원을 자기가 이루어야 되지 자기가 안 이루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왜 자기가 이루어야 되느냐 이루어야 되는 것은 기본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었지만 건설구원은 자기가 이루어야 되고 이루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는  도와주시지만 독단으로 하지를 못합니다.

왜 기본구원은 하고 건설구원은 독단으로 못하는가 못하는 그 이유는 기본구원은  벌써 내 자체가 완전히 다 죽어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자가 제가 살아 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님께서 독단으로 살렸지만 벌써 살리고 난 다음에는  자기라는 주격체가 살아나서 자기가 뚜렷이 살아 나 있는데 벌써 자유를 얻은  자유자가 살아나 있는데 주인이 있는데 주인이 있고 난 다음에는 주인의 위신을  올리고 권위를 올리고 주인의 그 권위를 박탈할 수가 없다 말이요. 중생 된 영의  자유성을 박탈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거는 강제 구원이 하나님이 객관적인  구원이 되지를 못한다 말이요. 만일 그걸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자유를  하나님이 박탈하시는 일이 되어서 이거는 지공법에 저축이 된다 말이요.

이러니까 애가 터지지만은 이 주체가 있으니까 이것을 통해서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자꾸 타일러 가르칠 수밖에 없다 그 말이요. 아무리 어리지만은 이것이  아버지에게 벌써 그 상속을 받은 자인데 상속받은 자가 뚜렷이 있는데  어리지만은 그걸 상속받은 자를 무시하고 이렇게 떡 도장을 찍어서 무슨 결정을  해버린 날이면은 그 상속받은 그 주인 호주를 무시한 것이 돼버리고 말고 호주를  속인 도적질이 돼버리고 말고 그것은 불법이 되고 만다 말이요. 뚜렷이 호주가  있는데 이러니까 이것이 깨닫지 못하고 자꾸 저 망할 일만하고 이게 못한 못할 때에는  말해 주고 말해 주고 자꾸 타일러서 어쨌든지 타일러서 제 손으로 도장을 쿡  찍어야 문제가 없다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중생 된 영에게 이 자유권이 있기 때문에  성령이 절대로 직접 우리의 이 심신에 와 가지고 역사를 못합니다. 역사를 하면은  그거는 강제요 불법이요. 위법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우리에게  유한한 자유지만 자유를 줘놓고 이 자유를 박탈하는 이 일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이 진리를 가지고 우리 중생 된 영을 통해서 이 심신을  구원하려고 애를 쓰니 영 구원은 단번에 척 해버렸는데 이 심신 구원은 어리고  모자라는 이거 중생 된 영을 통해서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든다 그  말이요.

중생 된 영은 하나님과 동행하지마는 이 중생 된 영이 영생하는 자로 강한 자  있고 장성한 자가 있습니다. 중생 된 영이 약하고 강한 자가 있다. 장성하고 어린  자가 있다. 또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중생 된 영이 자기 마음과 몸의  주인은 주인이지만은 주인 노릇 하는 이 권위가 약한 자 있고 강한 자 있고  장성한자 있고 어린 자 있다 말이요. 장성한 자는 어떤 자인가 자기 심신으로 된  이 육을 육에 대해서 주인 노릇를 주격 노릇을 한번하고 두 번하고 열심히  하니까 이 일이 능숙해서 이제는 심신은 의례히 중생 된 영에게 복종할 줄 알고  또 복종하는 연습을 해서 익숙하게 됐고 이 영은 자기 심신을 얼마든지 복종을  시킬 수 있다 그거요. 그것이 중생 된 영의 권위가 자라고 어리고 약하고 강한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 된 영은 사망이 있고 흠점이 있다는 말이 아니고 완전하지마는  어리다 그 말이요. 어린것이 어데 어리냐 자기의 심신에 주격 노릇 하는 것이  어립니다. 약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땅위에서 연습을 해 가지고 능숙하도록 성장하도록 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이런데 이 영이 심신을 다스리려고 해도 심신이 말을  들어야지 말을 안 들으니까 애를 먹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 속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육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다른 세력이 있어 가지고 자꾸 육체를 꾀우다 보니까  육체가 말을 잘 안 듣는다 그기요.

단둘이 있을 때에는 말을 해서 네가 요렇고 요렇고 요러니까 요렇게 네가  행동하면 마음도 영생하고 몸도 영생한다. 요러니까 솔깃하게 듣다가서 어떤 악한  자가 와 가지고 악한 자가 와 가지고 너 왜 이래 하느냐 이라면 이렇고 이렇고  이렇다. 마귀 법을 가지고 이 세상 쪽으로 말해주니까 금방 혼자 기도할  가운데에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작정하고 있는 것이 기도하고 난 다음에 마귀  사람을 만나 가지고 한번 접촉하고 나니까 막 딴 사람이 돼버리고 만다고 말이요.

이것을 중생 된 영도 고자에 대해서 어떻게 분개하게 여기고 자기 심신을 살릴라  하니까 고자가 나를 속삭속삭해 가지고 이래 죽이니까 또 너무 분개하게 여기고  피 흘려 구속한 주님도 심히 분개하게 여깁니다. 이 복수가 고라의 당파 이백 쉰  두 명입니까 이백 오십 명입니까? 몇 명이지 고라의 당파가 몇 명이지? 이백  오십 명인가 그 몰라요? 여기에서 남반은 모두다 멍텅구리로구먼 이백 오십 두  명인지 이백 오십 명인지 이백 오십 명이랍니다.

이백 오십 명을 당장 땅이 벌어지게 해 가지고 그대로 있으니까 땅이 벌어지게  해 가지고 산 사람들을 그 안에 집어넣어서 딱 오무라트려서 산 매장을 시킨  것이 그 역사에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츰 참혹하게 가서 분개해서 당장 산  매장을 해 가지고 죽은 그 일은 고라에 이백 오십 명 당파에게만 그렇게  하나님께서 진노해서 벌을 했습니다. 그 뭐이냐.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애를  쓰는데 요것이 와서 방해하는 일을 하니까 너무 분개해서 요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요렇게 분개하셔 가지고 멸망을 시킨다고 고것을 영원히 남겨두기  위해서 고런 그 형식계시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법적 구원 공적 구원 기본적인 구원을 예수님이 대속해서 이루어  놓고 이제는 사적구원 육적구원 이 건설적인 구원 이것이 성도와 성도의 차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성도와 성도의 차이가 어데 있느냐 요것  때문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을 중생 시켰기 때문에 영이 그 심신의 주인인고로 주인을 통해서 해야  되지 주인을 뒤로 제쳐놓고 나서가지고 그런 월권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지공법 지성법에 범죄가 된다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하는 것은 심신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증거 해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라 자꾸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영을 통해서 이와 같이 증거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죽은 것으로  계산이 된 법적으로 죽은 이 심신의 과거 죽은 행동이 실질적으로 죽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안 죽으면 이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법적으로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을 향하여 진리와 영감으로 대신 살아서  우리는 산 자들로 계산이 됐지만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심신이 영감과 진리대로  살아난 중생 된 영처럼 우리 심신도 영감과 진리로 실지로 살아나야 됩니다.

실지로 살아나야 되는데 실지로 죽고 실지로 살아야 됩니다. 실상으로 죽고  실상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실상으로 죽고 실상으로 살 그런 기회는 언젠가 고것은 우리의  현재입니다. 그러면 고 장소는 어디인가 우리의 현장입니다. 우리의 현장 그러면  고것이 실지로 죽고 살아야 되는 고 사건은 어떤 것인가 현실입니다. 실지로 안  죽으면 안됩니다. 요것을 오늘 아침에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 말씀한 것처럼 자기 심신을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이놈이 내 심신을  사로잡고서 그 놈을 따라서 살자고 할 때에 그는 따라서 사는 것은 그놈은 죽은  놈이요 죽은 법이기 때문에 그놈 따라서 산 것은 죽습니다. 그놈 따라 산 것은  벌써 죽었습니다. 따라 살았으면 죽었습니다. 현실에서 그놈 따라 살지 아니하고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예수님이 내 대신 영감과 진리로 살아서 법적으로는  살려놓은 이것을 실질적으로 내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내가 살아나면 고 현실을  살린 요것은 영생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몸의 사욕이라 말은 사욕 요놈이 내나 그 악령 악성 악습의  욕심이 요게 하나님의 인정하는 욕심이 아니고 요게 육체의 소욕인데 요  사욕이라 그 말이요. 사욕 요것이 사욕이라 사욕의 반대는 성령의 소욕이요  성령의 소욕의 반대는 사욕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이는 참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에게 공공연하게 하나님이 정해 놓은 욕심이요. 이 사욕은 하나님에게도  반대되고 모든 피조물에게도 반대되고 고 저만 좋아하는 마귀 요놈이 꾀어  가지고 주는 요 욕심이라 그 말이요.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우리의 병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께  드리라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놈의 법을 의지해 가지고 내게 왕 노릇 하는데 법적으로 예수님이 해결을  지워놨기 때문에 이것이 법을 의지할 수가 없다 말이요.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 그까짓 기 우리를 어찌 죽일 수 있느냐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하나님의 법을  등을 대가지고 법이 이러니까 죄 지었으니까 죽어야 안됩니까 하니까 꼼짝없이  죽어야 된다. 그기요.

이런데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은혜 아래 있음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공법인 예수님이 다 해결 지웠기 때문에 법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고 법적으로는 다 해결이 되가지고 있다 그 말이요. 또 은혜 아래 있음이라 그  말은 은혜는 무슨 은혜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공심판이 우리를 상관하지 못할 수 있는 예수님의 대신하신 그 은혜 아래  있다 그 말이요.

그 은혜 안에 아래 있기 때문에 요게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입기 전에는 이 죄가 우리에게 왕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왕이라 악령이  우리에게 왕이요. 악성이 우리에게 왕이요 악습이 왕이 됐고 죄가 왕이 됐습니다.

왕이 돼서 이 불택자로 하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한 사람은 악령과  죄와 사망과 이 악성 이 습성 이것은 자기 아니고 순전히 마귀 노름으로써  자기를 이용해 가지고 자기가 이용당해 가지고 악용 당해 가지고 만들어진  것인데 이게 왕 노릇합니다. 왜 왕 노릇 하느냐 왕 노릇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은 죄의 주인이기 때문에 죄 아래 있는 자는 그자의 것이요. 그가 왕 노릇할  수밖에 없다 말이요.

예수님이 대속 해서 죄에서 뽑아냈기 때문에 그는 왕 노릇을 빼앗겨 버렸어  우리에게 왕권 없어.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왕  노릇을 못하도록 우리가 하면은 그놈이 왕 노릇을 못한다 그 말이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돼요. 왕 노릇을 못하게 하면 왕 노릇을 못합니다. 중생 되지 안하고 주의  구속을 입지 안한 자는 제가 대통령이든지 왕이든지 역사에 영웅이든지 어떤  자든지 그자는 죄가 왕 노릇합니다. 죄가 강제로 왕 노릇이요. 꼼짝 못합니다. 왕  노릇이요. 그 절대 복종입니다. 복종 안 할 수가 없어 방어 반항을 할 수가 없어.

방황할 수는 없지마는 우리는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그놈을 이제까지 내가  환영해 가지고 왕으로 모시고 있다가도 이놈 안 한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떠나라. 나 너 싫다 하면은 당장 쫓겨 나가야 되지 왕 노릇 할 권리가 없다  말이요. 요것이 다릅니다.

주의 구속과 중생 되지 안한 자에게는 그놈이 왕 노릇을 했지마는 중생 된  자에게 왕 노릇을 못합니다. 우리가 하려면 할 수 있다 그 말이요. 이는 성령이  도우신 지 진리가 도우신 지 또 자기 중생 된 영이 이렇게 돕지 이러니까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요 현실에서 내 심신을 옛사람이 주관하게  하려면 주관하게 할 수 있고 새 사람이 주관하게 하려면 새 사람이 주관하게 할  수가 있고 요 심신도 자유성을 얻었는데 옛날에는 옛사람에게 주관을 당하지 안  할래야 안 할 권리가 없어 절대적인 거게 주장을 당하도록 됐지만은 예수님의  공로로 대속을 받아 가지고 중생 됐기 때문에 지금은 이 심신도 자유권을 가지고  있단 말이요.

영이 자유권 가진 그 권을 이 심신이 자유권을 가졌고 이 자유권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회복을 시켰다 말이요. 회복을 시켰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권을  가지고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 같이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공로가 실지로 내게 오고 예수님의 살으심에 의지해서 내가 살아야 실질적인  것이 되어지는데 요걸 실질적으로 내가 옛사람으로 사는 걸 죽일 수 있고 그  옛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같이 죽으면 말씀했습니다. 요  죽으면 죽일 수가 있고 옛사람은 죽이면 죽일 수 있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을  살라면 살수가 있는 요 자유성이 있다 말이요.

이러니까 중생 된 영은 자꾸 달 갭니다. 달게 가지고 이 마음과 몸에 대해서 네가  지금 나를 따라 살면 내가 영생하고 저놈 따라 살면 죽는다고 이럴 때에 이심이  자기 주된 영에게 아 주인 주여 새 사람되게 새 사람이 주장하는 요대로 내가 이  시간에 내 마음과 몸을 중생 된 참 사람으로 내가 살겠다 참 사람의 마음과  몸으로 살겠다 하면 살아진다 그 말이요. 그러면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실제가 안되면 건설구원은 안됩니다.

실지가 안되면 사적구원은 안됩니다. 실지가 안되면 법적구원만 이 육의 구원은  법적구원만 됐지 육의 구원은 실지 구원을 안됩니다. 실지 구원을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현실을 주시고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제가 예수님의 구속을 이 심신이  벗어버리는데 이게 자유성인데 벗을 수 있는데 벗어버리고 어떻게 강제 할 수가  있소. 벗을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습니다. 영의 구원은 벗을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거는 죽어 있기 때문에 입히지 안 하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입혔습니다.

영원한 거로 입혔습니다. 그러나 일단 영을 살렸기 때문에 살린 영을 통해서 죽은  이 심신의 육은 영을 통해서 살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자유 하는 이 자유성을  줘 가지고 자유의 이 법으로써 네가 자유해라 이 시간 네가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겠나 벗겠나 입겠나 벗겠나 이 악령으로 말미암아 사망하는 이놈의 세력에게  이제까지 붙들렸는데 예수님의 대속에게는 벗기기는 벗겼는데 또 그걸 입을래  그만 벗어버릴래 왼쪽 걸 입고 오른쪽 왼쪽을 입고 오른쪽을 벗어버리면  벗겨집니다. 벗겨져요. 자유권이 있기 때문에 강제로 못한다 그 말이요. 벗겨져요.

영의 구원은 자유 할 수 없어 자유가 죽었기 때문에 살렸습니다.

이거는 자유가 뚜렷이 살아났어 이렇기 때문에 왼쪽이 옛사람의 것으로 것을  살리고 거게 속하고 새사람의 것에 속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안  입겠다고 버려버리면 버릴 자유가 있다 말이요. 버렸으니까 그 공로가 효력이  없습니다.

또 이것을 버려버리고 왼쪽의 옛사람 이놈을 버려버리고 예수님의 법적으로  입히신 이 새 사람의 이 자유성을 가지고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입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입은 게 된다. 말이요.

제가 새 사람으로 살라 한다고 이것이 제힘으로 악령과 사망을 이길 힘이 있는  줄 압니까? 그래 이기는 게 아니라 다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환영하는 것이라 환영할  때에 지극히 큰 영생하는 지극히 큰 능력이 붙들어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왕이 우리에게 새로 두었기 때문에 이 왕에게 내가 속하니까 이 왕권이지고 나를  살리는 것이고 이 옛날 왕이 있는데 이 놈에게 속하면은 내가 자유성가지고  이놈에게 속하면 하나님도 살릴 수가 없다 말이요.

예수님의 왕 노릇 하는 여기에서 속해 가지고 대속의 공로에 내가 속해 버리면  이제까지 수십 년 따라 다니던 악령 이놈이 내게 왕 노릇 할 수 없고 쫓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왕 노릇을 지금 벌써 박탈당했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것을 알고 실지로 행해야 되는 것인데 예수만 믿으면 구원이 된다  하고서 이걸 이런 것을 말하면 까다롭게 백지 하나님 말씀을 어떤 목사가 그래  하나님 말씀을 도마 위에 놓고 쫓아서 쪼개듯이 하나님 말씀을 이래 쪼개고 그  말씀 속에 있는데 제가 몰라 그렇지 이 성구는 이 성구가 말하고 이 성구가  말하고 성경 안에 있는 그 성구로서 해석하는 게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면으로 말한 걸 이면으로 가지고 말해줘야 되기 때문에 그러면 성경  해석은 성경으로 하는 것이라 모르면 구원 안 됩니다.

이 권찰 노릇 하는 사람도 돌아다니며 오라고만 말하지 그게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이 교회 다니다가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왜 오 년이고 십 년 동안에 다닐  때에 그때가 하나님 말씀을 넣어 주라고 하나님 말씀 주시는데 넣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심을 기회도 있고 그 다음에 열매맺을 기회도 있는데 심을 기회가  지나가면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여기에서 와  가지고 배우도록 하는 그 기간은 제가 권찰이 없어도 옵니다. 심방하지  말아보십시오. 안 오는가! 이런데 올 때 그때는 오는 것은 하나님이 오게 해서 오는데 그때에 나는 할 일이  뭐이냐? 심는 때라 말이요. 그가 말씀을 듣고 깨닫도록 하고 자꾸 이래 말하면  제가 예수님 지식을 환하게 배워 가지고 하나씩 보니까 배워 가지고 또 실지로  살아보니까. 고래 살아야 되고 고러니까 이런데 여기에서 떠나서 깜깜하게 어떻게  산다는 가르치지 안하고 그저 예수 믿으면 된다는 두루뭉실 같은 그런 교훈  하는데 거기서 있을 리가 없습니다. 발길로 차보십시오. 가는가 잘못 길러 그렇다  말이요.

아무리 여기에서 서부교회 많이 다녀도 믿는 도리를 바로 배우지 못한 그자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이 서부교회 나와도 이 다음에 환란 있으면 예수님 팔자고  예수를 안 팔아도 실상 현실 현실에 다 팔고 있는 자요. 뭐 신사참배나 공산주의  오면 내가 예수 안 믿겠습니다. 파는 고것이 그때 입으로 파는 것 그것만 파는 줄  압니까? 현실에서 팔고 팔고 파는 자 있고 현실에서 이제 옛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주님에게 속하고 주님에게 속하느냐 마귀에게 속한 그대로 있느냐 이  현실에서 이걸 바라든지 이걸 바라든지 둘 중에 하나를 바리는 것이 현실에서  실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봐야 되지 이걸 봐야 자기가 실상으로 구원이 되어 졌는지 안되어졌는지  아는 것이지 그냥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제 주관으로 나 예수  믿는 사람이라 생각하니까 그 신앙생활이 되어서 구원이 된 줄로 압니까? 오늘  아침에는 실지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내가 실지로 죽어야 예수님의 죽으심이 내  것 됩니다. 공적으로는 법적으로는 기본적으로는 됐지만은 이 육체적으로는 안  돼.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된다 그 말이요. 실지로 내가 입는 것이요.

또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서 내가 실지로 새사람으로 살아야 예수님의  대행하신 의가 내가 됩니다. 우리의 심신의 육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 이 세 가지  대속을 입는 것은 현실에서 실상 입어야 입어진 것이 되고 벗으면 벗은 것이  된다는 요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것을 기억치 아니하고 자꾸 통그라기 때문에 뭐 회의도 만나놓으면 전부  옛사람이 말하요. 옛사람이 말한다 그 말이요. 저 먼저 우리가 공회 때 모였을 때  연석회의 때 만날 때에 어떤 장로가 발언한 그것이 옛사람의 발언이라 말이요.

거기 찬동하는 말도 옛사람의 발언이라 말이요. 모두 그 자리 모였는데 하나님  모시고 있다 말하니까 말로만 하나님 모시고 있다 말이지 저거끼리 모여 가지고  옛사람끼리 모여 가지고 지금 의논하고 있소. 그러면 그 의논은 죽은 의논이요.

마귀 의논이 되고 만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현재가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뭐 그 부인을 하든지 인정을 하든지 간에 현실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현실에 환영을 하느냐 배척을 하느냐 이 세 가지 대속을 네가 차지하느냐  버리느냐 요것이 현실에서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실상이 안 죽으면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이 내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실상 살아나지 안 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살아나심이 내게는 실지로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부활하심에 연합한자가 되리라 됐으면 고거는 벌써  고것은 과거사로 딱 맡겨놓고 고기 되어야 그 다음에 앞으로 연합한 것 그  부활하심에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요거 미래사 아닙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것을 말하면 교인들이 깔깔하이 듣고 안 듣고 이런다고 어쩌든지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그 옛사람 그게 왔는데 그게 좋고 춤추는데 가서 말하니까 좋고  텔레비 보니까 재미있고 좋은 그게 전부 옛사람입니다. 새사람이 좋아하는 것  아니요.

이런데 이 사람을 좋게 하는 이 설교를 안 하면 인기가 안 끌리고 그들이 감동을  안 받고 이러니까 교리와 신조 설교를 하면은 딱딱해서 안 들으니까 교리 신조, 내가 언제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 몇 년 전인데 가조교회에 가 가지고 집회인도  하고 나니까 그때 당회장이 남○○목사님입니다. 나는 그때 조사로  남○○목사님이 와 가지고 집회를 한번 인사하고 참석하고 하루 가서 인사하고  가면서 그 나하고 식사를 하면서 말하기를 '조사님 그런 교리 설교 신조 설교  교리와 신조 설교를 하면은 교인들이 알아듣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교리 신조  설교를 해 가지고서는 딱딱해서 교인들이 은혜를 못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소리를 내가 쟁쟁히 기억합니다. 그 내가 그때 말하기를 '교리 신조를 암만  그들이 이해 못해서 열 번 스무 번 말해도 그걸 말해서 교리 신조를 근거해  가지고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되지 교리 신조 없이 예수 믿고 교리 신조를  근거하지 안한 그 행동가지고 암만 기분 좋고 암만 좋아도 구원이 되겠습니까?'  그것도 또 반대라 그분과 나와 장 말하면 반대라 말이요. 똑 반대되는 말이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자꾸 사이가 벌어지고 이래 됐습니다. 그때도 막 불이 나서 진동이 되고  막 디비지고 이래도 전부 교리 신조 했습니다. 교리와 신조 설교했습니다.

언제든지 저는 교리와 신조 설교라 아니면 없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게 아니고 하니까 자꾸 불 말을 하고 뭐 지시 말을 하고 무슨 방언  말을 하고 그것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려도 소용없어 죽은 자  살리는 것은 교리 신조를 인정하는 사람되기 위해서 한번 죽은 자 살리는 것  한번 보여주는 것이지 안 믿는 사람에게 그건 필요한 것이라.

예수 믿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그게 은혜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이치는  하나도 모르고 뭘 지금 은혜라고 생각합니까? 이제까지 이 세계에 교리와 신조로  된 것은 교리와 신조 된 것은 옳게 깨달은 거라도 일반교계에서 이거는 교리화  시키자 신조화 시키자 하는 그것은 역사성과 사회성이 있어야 됩니다.

많은 사람이 깨달을 때 이거는 공적으로 인정하자 여러 수십 년 동안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이런 시대도 저런 시대도 변동 없는 이 교리와 신조이기 때문에  역사성을 장구성을 가졌고 많은 그 세월성을 가졌으니까 이것은 우리가 모두  교리와 신조로 제정하자 이것은 묵은 둥치요. 일반이 진정하고 있는 묵은 둥치요.

이 묵은 둥치에 무슨 꽃이 피고 잎이 피고 무슨 열매가 맺겠소 묵은 둥치에 그  시대가 변한다 해도 묵은 둥치를 둥치에서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다 말이요.

이러니까 칼빈선생이 우리에게 귀한 것을 줬지만 그분 벌써 그 사오백 년 전 그  시대 원자라 하는 이런 상관도 없을 그 시대 이렇게 삭득하고 이렇게 죄악이  관영한 마귀의 술책이 최고로 있는 이 시대가 아닌 그 시대에 감당이요. 이  시대가 아닌 그 시대에 감당이요. 이 시대는 그것 가지고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것  암만 읽어 있어봤자 이 시대를 감당할 그 하나님의 지능은 지금 역사는 안나온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것만 가지고 새움이 듣지 안한 그 미국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나라는  미국교회는 청년 없는 게 특별하답니다. 청년이 없는 것이 노인들만 주 모여서  예배본답니다. 이러니까 자꾸 식어져가지 자꾸 팔아먹을라 하는 거는 예배당이지  예배당은 다른 집 요량하면 한 삼분지 이나 싸답니다.

이러니까 예배당은 좋은 예배당을 지을 때는 그 힘 가지고 지었는데 지금은  유지가 안되니까 그 예배당을 빌려줘요. 예배당을 무엇으로 빌려주고 이런 걸로  저런 걸로 빌려줘 가지고 빌려준 세를 가지고 그 현재 유지하는 유지비용을 쓰고  있어. 왜 새움이 안 났기 때문에 그래. 새움이 안 났으니까 새 꽃이 피지 안하고  새 열매가 맺지를 안 하는 것을 필연한 일이 아니겠소. 묵은 둥치를 심어놓고  봄이 됐는데 새움이 안 나면 이 둥치 죽은 줄 알아야지 새움이 안 났는데 그것만  심어 가지고 암만 있다고 해 가지고 무엇이 됩니까? 손톱으로 찍어보니까  새파랗게 살기는 알았는데 움이 안나오면 내나 죽었습니다. 그건 좀 있으면 다  새파란 그것도 없어 찍어봐야 죽었어.

이러니까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그 현실 현실의 개인 신앙도 어제 현실에서  깨달은 것이 옛날이고 오늘 또 보니까 어째야 될까 했는데 오늘 이치를 보니까  또 깨달아지는 게 있어.

그런데 날마다 깨달아 짐이 새로 깨달아짐이 있고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강해지고 날마다 죽이고 날마다 살고 이래 가지고 날마다 새 건설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구원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필요 없는 현실을 주지 안 했다  이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분 기도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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