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2일 주전

 

본문 : 고전3:10-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오늘 봉독한 본문에 '사도가 터를 닦아 두었다' 또 '그 위에 건축을 누구나  건축하되 조심있게 건축하라' 말씀을 하시고, '건축한 것이 하나님이 시험하실  때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건축한 것이 불에 타서 없어지면 그 사람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 저는 그 공력이 다 불타고 없어질지라도 구원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서 구원을 얻은 거와 같이 수치를 당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이미 닦아 놓은 이 터 위에 다른 터를 아무라도 닦지 못한다.

이 터 하나뿐이지 이 터 외에 사람들이 다른 터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이 터 위에 건축할 수가 있기는 있으나 건축할 때에 조심해서  건축해라.

 왜? 건축된 것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에 다 정죄받아 멸망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택한 자라면 구원은  얻는다 할지라도 불 가운데에 구원얻은 거와 같이 그는 심히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것이라.

 천국은 고통이 없다 이랬는데 '불 가운데에서 구원을 얻으리라' 했으니까 그  구원이 그렇게 기쁘고 즐겁고 좋지는 안할 것이고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을 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닦아 놓은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이것은 기본구원이라 그렇게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나누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건설구원과 기본구원을 나누지 안하면, 성경에는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  대부분이고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은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은 건설이 된 것만 구원 얻지 건설 안 된 거는 구원 얻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건설이 다 될 수는 없고, 되는  부분은 되고 안 되는 부분은 안 되고, 많이 되고 적게 되지 건설구원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을 기본구원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진실되게  모든 것을 비판하고 따지는 사람은,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을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이 암만 회개하고 회개하고 한다고 해도 미비점이  있으니 결론적으로 구원 얻을 자는 하나도 없다 하는 그 결론이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되지 아니한 자는 거기에 대해서 진실되이 생각지 안하니까 '뭐 이래  구원이 될지 안 될지 그저 그렇다 하니까 그렇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생각지 않는 사람은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은  다 해석을 하기를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렇다 하는 그 원칙을 정해 놓는 것이지 그대로 심판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심판하지는 아니하시 니까 그저 원리 원칙으로 [네가 완전한  회개가 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또 네 행위가 온전치 않으면 안 된다, 죄가 있는  자는 구원 얻지 못한다.] 하는 이런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으려고 하면 구원  얻을 자가 하나도 없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하나님께서 가정적으로  정해서 원리는 그러하니 그 표준을 향해서 힘대로 달려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수가 있다.' 그렇게 하나의 가정적인  말씀으로 그렇게 다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가정적인 그런 약속을 선언을 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의 그 속성을 보면 하나님의 속성과 그렇게 해석하는 해석들은 다 배치가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범하여 '하나님도 그럴 수 있는 하나님이라' 사람을  표준해서 '사람' 같으면 그렇지 않겠느냐?' 사람을 표준해서 하나님을 사람대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정확에 에누리하는 그 에누리를 가지는 잘못된 깨달음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에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과 전설구원에 관한 말씀을  구별하지 안하면 그 해석은 다 억해가 될 것이요 그 해석은 하나의 가상적인  가정적인 그런 교훈이지, 꼭 그대로 실행해야 된다는 진실성있는 계약이나  교훈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본구원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간단하게 종목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증거를 하려고 합니다.

 기본구원이라는 것은, 여기에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 그 대로 이  터는 하나님이 닦아 놓은 터입니다.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구원입니다. 전적 은혜로 받는 구원입니다. 이 기본구원은 우리의 행위는  하나도 상관이 없고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얻어지는 구원입니다. 행한  대로가 아니고 그저 은혜로 주셨다 하는 것을 에베소 1장에도 말씀했고 다른  데도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공을 들이지 아니하고 전적, 은혜라 말은 공으로 댓가  없이 공으로 받았다는 것을 가리켜서 은혜라고 합니다. 이 기본구원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고 공으로 우리가 이 기본구원을 받았으니  기본구원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기 쉽겠습니다. 기본구원이  건설구원보다 무한히 가치가 큰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은혜로 된 구원입니다.

은혜로 된 것은 우리 사람이 아무리 성자 성녀라 할지라도 우리 행함이라는 것은  욥이 말한 대로 참 때묻은 옷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인간 그 수준에서 볼 때에는 깨끗하다 할지라도 전지하신,  완전하신, 지성 지공하신 하나님이 볼 때에는 그 깨끗한 행위라는 것이 아주  허무합니다. 다만 사람으로서는 제가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서 성심 성의껏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인간의 한 행위로서는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하는 것이 그것이 인간의 의요, 하나님 당신을 두고서 심판할 때에는  정죄받지 아니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불완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에게만  붙이려고 하면 다 불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수준에서 썩 내려와 인간 수준에서는 그것을 의라,  거룩이라, 옳고 깨끗한 것이라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인 겁니다 그런고로  인간이 하는 그 의는 다 유한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다른 데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의가 뭐이냐? 인간의 의를  말씀하시기를 충성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의는 자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을 지키는 데에 다 들여서 지킨 그것이 인간의 충성이요 그것이 의라.

 다 들여서 한 그것이 인간 수준에서는 칭찬할 만한 의요 거룩이 되어지지마는  인간 수준을 초월해서 하나님 위치에서 볼 때에는 그 모든 것이 다, 다 들였다  해도 유한의 것들을 들인 것들이기 때문에 무한에 비추어지지도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한 의는 다만 인간이 한 충성을 가리켜서  인간적으로 의라 한다 그렇게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런고로 기본구원이라는 기본구원은 인간은 아무리 힘을 쓰고 애를 써도 이  기본구원에 터럭만한 것도 감당할 만한 댓가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가치가 적어서 공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고 가치가 무한히 크기 때문에, 인간  행함을 털끝만치라도 보태라고 하면 기본구원에 걸리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기본구원에 다 거기에 범죄되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  기본구원은 인간의 행위를 털끝만치라도 그것을 보태야 된다고 하면은 안 된다.

이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대속하신 하나님 혼자의 은혜로만  우리가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본구원은 가치가 적어 그런 게 아니고 가치가 커서 그렇습니다.

기본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쉬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인간의 그 노력이 털끝만치라도 가해지면 더러워서 기본구원을 굳히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기본구원을 은혜로 받는 것은 인갇의 자기에 있는 것을 다  기울인다 할지라도 기본구원 얻는 데 가면 그것이 더러운 것이 돼 가지고서  기본구원을 해치기 때문에 인간 행위는 거기는 아예 가담시키지를 않고 전적  은혜로 주신다 한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이 어떤 게 기본구원인가 지금 말씀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 홀로 계셨습니다. 또 그분이 스스로 계셨습니다 홀로  계셨으면 그분은 어떻게 계셨는가 하는 데 대해서 '스스로 계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이 혼자 계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주가 창조됐고  영계가 창조됐습니다.

 우주와 영계가 창조되지 안했으면 하나님이 홀로 계시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이 창조하셔서 창조된 것들이 비로소 '아, 하나님이 계 신다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홀로 계셨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은 지음 받아 생겨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의 원인 원인, 원인 원인을 찾는 것이 이디아 철학입니다. 원인  원인을 찾으면, '하나님도 홀로 계셨으면 그 원인이 있을 것 아닌가?'  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자존하신  하나님이라' 그 원인이 아무것도 없이 영원 전 홀로 계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계셨는지 그거는 우리가 모릅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스스로 계셨다''홀로  계셨다' 홀로 계신 그분이 영계 것도 창조하시고 이 우주라는 물질계도 창조를  하셨습니다.

 모든 이종교에서 하느님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 하신 이  우주를 보고 그들이 상상한 그 추론입니다.

 한울이라고 그렇게 '한울님'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셨는데 그 눈을  뜨고 심령을 뜨고서 우주의 넓고 큰 것 보니까 이 우주는 커다란 이 울이 되어  있는데, 이 울, 큰 울이 되어 있는데 '이 큰 울 가운데에는 주인이 있지  않겠느냐?' 우주의 큼을 보고서 '한울님이라' 한울님이라 그렇게 그들이 이름을  한 것이고,  한을님이라 한을, 한을님이라 말은 한도 크다 말이요, 을은 끝이 없이 크다는  말인데 이 크고 큰,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를 보고 우주의 큼을 자기가 느껴서  한을이라 한을(韓乙) 한을이라 한을님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 하늘님이라, 이 하늘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어 놓으신 이  우주에 공간에 무한히 높은 것을 인간이 측량 못할 그 높은 것을 올라가도 또  공간이 있고 올라가도 또 공간이 있으니 높고 높은 우주의 높은 것을 그들이  비로소 깨닫고 이 하늘, 하늘은 높다, 하늘님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발표하신 것은 그것이 아니고 우주가 있기 전, 영계가 있기 전  그런 것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분은 홀로 계신 한 분이신 것을 가리켜서, 하나인,  하나인, 하나도 존재하지 안하고 그분 혼자 홀로 계신 그 홀로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서 하나님이라 그렇게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짓기 전에 당신이 당신 혼자 계시면서 당신  생각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나 만드실까 무엇을 목적할까 하는 목적으로 하나  정하신 것이 하나님이 홀로 계시면서 처음으로 당신의 의지 세계에서 처음으로  역사하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처음에 목적을 정했습니다. 그 목적은 성경에 보면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하나님과 꼭 같은 모양, 또 하나님과 같이 동거  동행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타내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지혜를 잘 나타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잘 그대로 나타내 전해 주고 지혜와  능력을 전해 주고 모든 은혜를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만들어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는 그런자를 한번 만드시겠다 하는 그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해서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 존재하셨고 계셨고, 그다음으로 있은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이 둘째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은 하나님 본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의 첫 움직임으로 움직인  역사니 곧 하나님이 당신과 같은 온전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존재 중에 제일 첫째로 존재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둘째로는 하나님이 의지  속에저 역사하신 당신의 목적 이것이 둘째 순위로 존재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목적이 둘째 순위로 존재하게 됐습니다.

 목적을 정하시고 셋째로 이 목적 안에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때에  있는 게 아니고, 당신 목적 안에, 당신이 이런 하나님 같은 온전한 자를  만드시려는 그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으로 우리 모는 택한 자들을 다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정된 것은 목적 밖에서 예정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으로 예정됐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존재적으로는 셋째 순위를 가진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독존하셨고, 독존하신 하나님의 의지로 목적을 정하시고,  셋째로 목적 안에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서는 둘째 순위로  우리가 예정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어디서 시작됐느냐?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의 그 분자로 예정하신 그 예정 거기에서부터 우리 구원은  시작됐습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실 때에는 우주도 없고 영계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하나님의 목적 안에 목적으로 예정하신 이 예정이 우리가  되어져서 이 예정 구원, 목적 안에, 목적인 예정으로, 목적 그 본체인 예정으로  예정하신 그 예정에 우리가 예정된 이 구원이 이것이 이 구원에 제일 시발입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우주와 영계 것들을 지금 우리가 크게 보고 많게 보고  보지마는 그런 것들이 있기도 전에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다  해도 근방에 가지도 못하는 우리의 기본구원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존재적으로 넷째, 넷째 순위가 뭐인고 하니  넷째 순위가 목적으로 우리를 예정한 하나님의 목적이요 예정된 우리,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대로 만드시기 위해서 만드는 그 시공의 모든 순서를 예정하셨으니  그것이, 존재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자존하셨고, 목적을 정하셨고, 목적으로  우리를 목적 안에서 예정하셨고, 목적대로의 예정한 우리들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시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셨으니  그것이 넷째 순위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실 때에 그때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신 혼자의 의지에서  목적도 정하셨고, 목적 안에 예정도 하셨고, 목적인 예정을 위해서 예정도 한 그  순위는 네 가지 순위가 존재적으로 나왔지마는 영계도 물질계도 아무것도 없는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정하신, 목적으로 우리가 예정이 됐고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대로 달성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조작하기 위해서 우리를 조성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예정, 우리를 목적대로 조성하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그 예정  그것이 넷째 순위인데 그 넷째 순위의 예정 구원을 우리가 얻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홀로 독존하셨고, 목적을 정하셨고, 목적 안에 우리를  예정하셨고, 또 우리를 위해서 조성하기 위해서 예정하신 예정, 그러면  존재적으로 넷째 순위인데 존재적으로는 넷째 순위인데 우리의 기본구원으로  말하면 둘째 순위의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예정 속에  우리의 구원이 예정됐습니다. 그 안에 우리 기본구원이 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정을 몇 가지, 몇 번 예정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정이 몇  번입니까? 예정이 두 번입니다. 목적 안에 우리를 예정하는 우리 자체 예정이  있고, 우리를 조성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예정이 있으니 그것이 모든  영원의 만물의 예정입니다.

 우리는 존재적으로는 넷째 순서인데 우리의 기본구원으로 말하면 이차, 두 번,  두 차례 우리 기본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기본구원이 처음 하나님 목적 안에 우리를 예정한 그 구원을 우리가  얻었고 우리 자체를 예정하신 이것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우리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을 예정하시는 그 예정에 우리가 구원 얻었으니 그 예정의 구원 얻은 것은  무슨 구원이냐? 그 예정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그 예정이 우리를 위해서  예정된 그 구원을 우라가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구원이 우리 구원으로서는  두번째 기본구원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다섯째로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예정하신 순서대로 창조하시고, 우리는 처음 목적 안에 예정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경륜대로 예정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조된  창조함을 받은 그때에 우리의 구원이 그 창조 속에 우리 구원이 이루어졌으니  그것이 세번째 구원입니다. 그러면 세번째 구원입니까? 몇 번째 구원입니까?  다섯째 순위인데 세번째 구원입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된 것,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모든,  창조된 그것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창조된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것이 그것이 우리의 또 기본구원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예정 순서대로  관리하시고 운영하시고 이용하시는 그것을 총 합해서 하나님의 섭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하나님께서 사람 되어 땅위에 오셨습니다. 땅위에 오시기  전에 이 우주를 지으실 때에 제이위인 자존 독존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그  직책을 맡은 그 하나님으로서 그 이름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알기 쉽게 하나님을, 제이위 성자를 말씀이라고 말씀한 것은 자존하신  독존하신 하나님 그분이 있는지 없는지 모든 것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영계도 없고 물질계도 없으니까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없는데 독존 자존하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나타내시는 그 역사를 하나님이  하시려고 나타내시는 역사를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조하실 때 그때 창조하시고,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끄신 이도 말씀이신  성자요, 또 타락한 후에 숲속에 찾아가신 이도 성자요, 여인의 후손이 배암의  후손을 머리를 상운다고 하신 그것도 이 하나님이 이제는 사람되어 가지 안 하면  구원할 수 없다 해서 창세기 3장 15절에 계약 선포하신 것이 신이 사람되어  땅위에 오셔야 인간 구원을 완성하시겠다는 그것을 약속으로 선포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여인의 후손으로 하나님이 인간 되어 땅위에 오셔야 되겠다 하는 것을  당신이 작정하시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셔 가지고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세 가지 대속을 하셨습니다.

 대속하신 것은 지금으로부터 천구백 한 오십여 년 전인데 예수님께서 대속하실  그 이전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또 예수님 재림 때까지의 앞으로 창조되어  나올 모든 택한 백성들과 그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기 전 이전 사람들은 앞으로  예수님이 친히 신인양성일위로 대속하실 것을 예표하고 모형 해서 짐승을 잡아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를 드리라.

 이렇게 예표로 하셔 가지고 그 예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법칙을 인정하고 그  예표로, 모형으로 속죄제의 이 제사를 드려서 죄의 문제와 의의 문제와 하나님과  불목의 문제를 짐승의 피로 해결을 지우라고 하신 그 약속을 믿고 그렇게 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하실때에 그때에 그것이 완전히 해결이  됐습니다.

 해결된 그 증거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성전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가리워 있는 휘장은 그것은 죄의 휘장인데 죄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갈라졌습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삼 일 만에 부활하실 때에 무덤 가운데에 있는  미래의 예수님의 구속과 부활을 바라보던 자던 성인들이 몇이 부활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생명에 연결된 것을 하나 계시로 증거해  보인 것입니다.

 그때 다 부활했으나 부활해서 거룩한 성으로 같이 들어가서 있었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무덤으로 다사 들어가고 영과 혼은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있다가 예수님으로 더불어 같이 오게 될 것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그 공로의 구원을 입은 것이 우리의  기본구원입니다. 그 구원을 입은 것은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의 구원을  우리가 입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죄 정합이  없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는 그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벌써 다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이기 때문에 죄정함이 없다, 또 이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구원이라' 그렇게 에베소서에는 '우리가 나고 난 후부터  된 구원이 아니라 나기 전부터 이루어진 구원이라'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은 것이  기본구원입니다.

 대속으로써 세 가지 대속 입은 것 이것도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주시도록  인간의 노력이 그만한 댓가를 낼 만한 것이 없습니다.

 또 인간이 암만 노력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칭의를 줬는데 만족을 이루실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대신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그 원수를 인간이 어떻게 많은 수효가 죽고  부르짖어도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화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죄를 없애야  되고 의를 건설해야 되는데, 죄를 없애면 벌써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사망하기  때문에 그 인생이 무슨 산 역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의  벌로써 유황불 구렁텅이에 간 자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이 산 생활을  일으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도 인간으로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 전부가 다 달려들어도 안 되는 이 대속입니다. 그것이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법적인 화친이 됐습니다. 그러나 실질 적으로는  우리는 죽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죽어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성령과  진리와 십자가의 공로.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죽은 영을 다시 살렸습니다. 죽은  영을 다시 살린 것이 영 중생인데 우리 중생은 영 중생이지 영육 중생이  아닙니다. 중생된 것은 영이요 육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중생됐다는 것을 영만 중생된 것을 영육의 중생이라고  구별해 보지도 안하고 혼돈 흔탁해 가지고 교리들을 어 지럽게 만들어 놓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중생은 영 중생이요, 로마서 8장 9절 이하에 보면은 '영은 하나님의  의로써 다 살아났지마는 육은 그대로 죄 아래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영만  중생됐고 육이 살아나는 것은 중생된 영과 성령이 함께 힘을 합해 가지고 성령이  우리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합작을 해 가지고 우리의 육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깨달아서 육이 스스로 악령과 악성과 모든 죄악을 배반하고 하나님에게 귀속해  와야 살게 된다 하는 요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기본구원이오.

 또 우리에게 중생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된 거는 우리가 믿음으로 된 것 아닙니다. 믿을 때에 된 것 아니고 우리가  벌써 중생될 그때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때에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양자 된 것이 기본구원입니다.

 양자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를 타고 난 우리가 아니고 인적  요소로 생겨진 것이지마는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됐는데,  하나님의 요소로 된 아들이 아니고 법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아들 아닌 자를 아들 같은 대우를 삼아서 아들이 받는 대우, 아들에게 주는 것  다 그 상속권까지를 다 가졌으나 본질과 본성 본소는, 그 본요소는 하나님의  요소가 아니고 인간 요소이나마 모든 그 후부터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만물에  대해서 권리는 하나님의 요소로 된 자와 꼭 같이 됐다 하는 것으로서 우리를  양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양자된 것도 기본구원입니다.

 또 우리에게 성령과 이 진리의 말씀과 예수님의. 공로가 이 셋이 하나돼 가지고  우리에게 계속 역사해 주시는 이 세 가지 보증을 받은 것이 그것이 또  기본구원입니다. 세 가지 보증을 받은 것이 기본구원 이오.

 우리가 세 가지로 말미암아 우리가 중생될 근거가 됐고, 세 가지 권세로 중생될  근거를 삼아서 중생됐고, 중생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 됐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에게 남은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는 성령과 진리와 피의 세  가지 보증을 받은 것이 우리들이 기본구원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보증 받은 것은 믿는 사람이면 꼭 같습니다. 꼭 같은데 어떤 사람은  활용을 잘하고 안하고 하는 데서 다르지 근본적으로 받은 것은 같은데 이것은  하나님이 공으로 주셨지 인간의 노력이나 어떤 분투의 공로로 인해서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피공로가 우리의 보증자가 된 것 아닙니다. 이 보증도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입니다. 이것도 기본구원입니다.

 또 우리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 영생하는 시민권  얻었습니다. 이 시민권 얻은 것도 이것도 기본구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리 행위를 개망나니로 해서 죽는 날까지 개 망나니로  했다 할지라도 기본구원 얻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서  '저는 구원을 얻으나 불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 고 그렇게 발표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영생은 중생될  때에 영생 얻은 것입니다

 또 우리가 기본구원으로 받은 것은 행위야 있든지 없든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받습니다. 심판받으려고 심판의 부활을 받지 안하고  영광의 나라에 가 살기 위해서 생명의 부활을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구원입니다. 이 기본구원은 꼭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우리나 꼭  같습니다. 기본구원은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구원입니다.

 그 기본구원 위에 이제 우리가 건설구원을 세워야 되는데 이 건설구원을  비유하기를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우는 사람도 있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사람도 있다. 불탈 것으로 지으면 공로가 불타니까 다 수치를 당하고 해를 볼  것이고, 한 일이 다 헛일이니까 해를 당할 것이고, 금과 은과 보석은 불타지  안할 것이기 때문에 불타지 아니할 것으로 지은 사람들은 그 공력이 불타지  안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상을 받는다.

 공력은 다 탔지마는 구원은 얻는다. 구원은 얻으나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해서 이 건설구원을 말씀했습니다.

 이 건설구원을 말하는 것은 자기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건설하는 것.

자기가 영은 됐지마는 영은 영계에서만 움직일 수가 있지 물질계에서는 영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제 영이 물질 속에 있어야 물질을 통해서 우주에  다닙니다. 이 물체라는 물체를 가지지 안하면 영은 이 물질계에서는 활동을  하지를 못합니다.

 혹 이런 말을 듣기 전에라도 여러분들이 그 비몽사몽간에 그런 것을 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는 벌써 죽어서 자기의 죽어, 자기 몸이 죽었는데  자기가 시체가 돼서 모두 자기 몸이 죽었는데 초상 친다고 뭐 옷 입힌다고 쌓고  관에 넣는다고 쌓고 메고 가고 또 죽었다고 울어 쌓고 하는 것을 구경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울어 쌓고 무덤 가운데에 이제 넣는데 혹 답답한 일이 있어도 그때는 보고만  있지 말은 못 합니다, 육체가 있어야 말하지. 말을 못 하고, 자기를 죽어 장사  지내는 그런 것을 아마 비몽사몽간에 그렇게 환상적으로나 본 사람들이 여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그런  경험은 가집니다  부활하는 부활이 그것이 기본구원입니다. 부활하는 데에 부활한 자의 기능  그것은 건설구원인데, 집을 짓는다 그말은 자기 기능을 성장 시키는데, 자기  기능을 건설하고 자기를 전설하는데, 영은 냅두고, 우리는 영육이기 때문에 육은  껍데기요 혼은 속에 알맹이요 혼 속에 영은 더 알맹이요 주격이요 그다음에  하나님은 성전 안에 하나님으로 내주해 계시는 것인데,  자기를 건설할 때에 자기 심신의 기능을 건설한 사람 그 사람은 부활할 때에  기능 있는 부활을 하게 되고, 또 기능이 많이 성장되어진 사람은 그 기능 성장은  뭣 속에서 되느냐? 기능 성장은 옳은 행실 너희 행위 가운데에 완전한 행위를  내가 보지 못했다 완전한 행위 속에서 기능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에 믿음의 행위의, 믿음의 행위라는 것은 덕이 되어서 이것은  하늘나라에 부활체가 입고 다니는 영광스러운 의복과 같고 이 온전한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가,  온전한 행위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믿음의 행위가 온전한 행위니,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온전한 행위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하는  행위가 온전한 행위니, 하나님의 진리대로 말할 때에 진리대로 하는 것이 온전한  행위니, 진리대로 할 때에 진리가, 그 진리를 자기가 받아들여서 그 진리가  자기와 연결이 되어서 자기 진리가 되 었으니 그것이 기능이 되고 진리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에 인간 힘 기울인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대신 책임지시고  우리에게 도와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 능력의 다 되어서 인간 능력이 다  되는 그 끄트머리다가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돼 가지고 무한한 능력이 연결되는  것이니,  처음에 시발은 인간 능력으로 시작했으나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안에 왔고, 하나님의 지혜가 자기에게  왔고, 하나님의 신적 역사의 요소, 신적 본체의 요소는 아니고 신적 역사의  요소가 자기 안에 와 가지고 역사의 그 모든 본능이 되고 기능이 되어 있는  이것이 부활체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이 부활하신 그 권능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그 부활의 권능에 나도 참여하려 함이라.' 하는 것을  빌립보 3장에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기능이 되는 것이고 이 기능이 뭣 속에서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에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 속에서 되어지는 것인데 행위 속에는 기능이  이루어지고 기능이 이루어지는 방편인 행위는 이것을 가리켜서 신덕이라, 믿음의  덕이라 해서 신덕이라 해 이것이 무궁세계에 가서 자기의 입고 다닐 의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계시록에 '세마포 옷을 입고 다니니 세마포 옷은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하는 그 신덕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기본구원은 순전히 하나님 은혜로 된 구원이니 이 구원은 꼭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데 아주 참 망나니같이 믿는 그자가 얻은 기본구원이나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나 엘리야나 그런 사람들이 얻은 기본구원이나 꼭 같은  기본구원입니다. 꼭 같은 기본구원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구원은 꼭 같은  구원을 얻어 가지고 갑니다.

 부활도 꼭 같은 부활을 가지고 가는데 다만 다른 것은 뭐이냐? 자기의  건설구원이라는 그것을 행위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부활한 자의 영광이 다르다' 이랬습니다. '영광이 다르다'  유식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한테 있으면 유식한 사람은 영광이 있겠고 무식한  사람은 영광이 없겠습니다. 또 권위가 있는 사람은 영광이 있고 권세가 없는  사람은 영광이 없겠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영광이 있고 실력 없는 사람은  영광이 없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옹호하고 환영하고 칭찬하고 찬양하고 많은  사람이 높여 주면 그 사람이 영광이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본둥 만둥 그  사람에게 대해서 냉대해서 인간이 아무도 자기에게 대해서 사례하는 것이 없고,  감사하는 것이 없고 인간에게 대해서 자기 공로가 하나도 없으면, 그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대우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그 사람은 영광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부활한 자의 영광이 각각 다르다' 해석을  하기를 '형체는 크나 작으나 다 형체는 형체다.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도 형체를  가지고 있는 형체요 저 해 저것도 하나의 형체를 가지고 있는 형체요, 그런데  모래알 한 개도 형체를 가지고 있고 해 한 개도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해 한  개의 권위와 영광과 모래알 한 개의 영광과 권위와 가치가 얼마나 차이 있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자의 영광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이렇게 크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건설구원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에 대해서는 염려할 것도 생각할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기본구원은 꼭 같은 구원을 얻은 줄 알고, 건설구원은 어떻게 해서  이루는 것이냐? 건설구원은 이 기본구원 받은 이 구원을 아는 데에 어떤 사람은  조금 알고 어떤 사람은 중간쯤 알고 어떤 사람은 다 알고, 이 기본구원을 아는  지식이 다르고, 또 기본구원을 평가하는 것이 다르고 이 기본구원에 대해서  자기가 가진 소유의 받아 가지고 있는 이 느낌의 인정에 대해서 다르고, 거기  따라서 자기의 가치도 달라지고,  이 기본구원을 알아서, 기본구원은 전적 자기의 건설구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이 기본구원을 알아서 이 기본구원을 그 가치를 알아 이  기본구원을 잘 보존하고 귀하게 여겨 이 기본구원의 그 모든 능력과 말미암은 그  모든 은혜를 자기가 활용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기본구원을 집어던져 버리고 기본구원을 돈만도 못 여기는  사람도 있고 권세만치 못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직장만치 못 여기는  사람도 있고,자기의 가정만치 못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생명만치 못  여기는 사람도 있고, 이 기본구원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자기 생명이나 모든  것보다 크게 여겨 이 기본구원을 자기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시험 삼아  세상이 뺏들라 해도 세상이 다 뺏들어도 목숨을 줬으면 줬지 기본구원을 내 주지  안하고 보존하는 사람이 있고, 이 기본구원에 인정하는 것과 보존하는, 보존 안  해도 뺏들어갈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기본구원의 가치를 헐하게 봐서 멸시하는 사람은 이 세상 그것을  취하지 기본구원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기본구원의 그 능력을 자기가 가지고는  있지마는 기본구원의 능력을 사용은 못 한다 말이오 기본구원의 그 능력을  사용하는 그것으로써 건설구원의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모르는 자는 건설구원을 모르게 되고, 기본구원의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건설구원을 이룰 수 없고, 기본구원의 이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건설구원을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 이룬 자는  기본구원을 어떻게 자기가 평가하고 상대했다는 그 증거는 건설구원으로  나타납니다.

 건설구원은 그가 받은 기본구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인정하고,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소중히 여겨서 가져 기본구원의 그 능력의 무한함을 자기가  힘입는, 이 힘입는 힘입음을 많이 힘 입었느냐 적게 힘 입었느냐 하는 그것은  건설구원의 여하로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건설구원을 영광으로 삼는 것은 기본구원을 그것을  대우를 하나도 안한 자는 이제 하늘나라의 영광이 없습니다 기본구원의 능력을  힘입지 안한 자는 이 세상에서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한 자니 기본구원을 믿지  안한 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으로써 기본구원의 그 가치와 대우와 보존과 힘 입음이  똑똑히 정확하게 표시된 표적이니 그것이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로서  하늘나라에서 대우의 차이가 있고 영광의 차이가 있고, 권위의 차이도 있고,  모든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귀한 기본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  안에 예정되는 것을 온 천하가 다 달려들면 선택 안에 예정되도록 운동해 줄  수가 있습니까? 온 천하에 그런 것들이 없을 때 됐습니다. 또 우리를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시키는 우리의 죄를 없애 주는 것이 천하 인간이 다 달려들면 우리  죄를 털끝만치라도 없앨 수가 있습니까? 저도 죄로 지금 사형받고 있는 자가 뭐  되겠습니까?  우리가 이 기본구원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참 우리가 벌로 덤비지 사죄 하나만  생각해도 사죄는 천하 인간이 다 달려들어도 안 되고 천하 것을 다 줘도 살 수도  없는, 살 수도 없는, 이거는 인간으로서는, 피 조물로저는 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도 할 수 없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형 죽음으로만 되는 이 사죄를  우리가 입었는데 이 사죄의 뿌럭지와 그 근거와 그 자본과 능력과 그의 그  댓가가 어떤 댓가로 치러 가지고 우리에게 사죄를 줬습니까?  그런고로 우리의 기본구원은 피조물들이 있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요, 있은 지  후에 된 것도 피조물 이런 것들이 다 달려들어 가지고 우리 기본구원에 어떤 한  종목이라도 털끝만치라도 거게 와서 손도 대지 못합니다. 근방에 가지도  못합니다. 어떻게 해보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존귀한 기본구원입니다.

 이것을 기독자들이 모르기 때문에 '종교는 같다' 이래 가지고 종교 통일이니 참  한심합니다. 신학교에서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이라기 때문에 '기독교나  뭐 다 같은 종교라.' 이종교에는 우리가 얻은 기본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털끝만치라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손을 댈 수 없는 고차원의  것들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할 때에 내가 웅변을 가지고 그 사람을 감화시켜서  예수 믿게 만든다고 생각지 맙시다. 벌써 기본구원이 얻어져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중생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 중생 안 된 사람이면 중생시키는 거라.

 중생시키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하면 그 말씀의 능력이  중생시킵니다. 중생되면 저는 예수 안 믿고는 못 견딥니다. 택한 자는 믿기  마련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담대히 교훈합시다, 담대히 교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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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구별/ 마태복음 13장 1절-58절/ 870609화새 선지자 2015.10.27
»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831002주전 선지자 2015.10.27
655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로마서 6장 4절-14절/ 820327토새 선지자 2015.10.27
654 기본구원, 건설구원/ 마태복음 10장 17절-20절/ 820628월새 선지자 2015.10.26
653 기본구원 일곱 가지/ 디모데후서 1장 9절-10절/ 800704금야 선지자 2015.10.26
652 기본구원 일곱 가지/ 디모데후서 1장 9절-10절/ 800629주후 선지자 2015.10.26
651 기본구원 10가지, 건설구원/ 에베소서 1장 3절-14절/831002주전 선지자 2015.10.26
650 기본구원 10가지/ 에베소서 1장 6절-10절/ 831002주후 선지자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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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90721금야 선지자 2015.10.26
643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40212주전 선지자 2015.10.26
642 기름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800817주전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