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명령, 건설명령

 

1985. 1. 25. 밤

 

본문 : 신명기 28장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선지자선교회  요사이 신명기 28장을 늘 말씀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또 딴 말씀을 할라고  이래도 아무래도 이 말씀을 해야 되겠다. 아무래도 우리가 좀 더 정확히 알고  참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 해서 또 1절을 읽었습니다. 믿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믿음이라 하는 것은 참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데 우리가 다 믿음이 병들어 가지고 주님도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일 못하고. 또 우리도 얻고 싶은 것 못 얻고 다 서로 실패 만 하고 악령만  좋아하는 그런 길을 우리가 걷고 있습니다.

 뭐 하도 많이 들어 쌓았으니까 이제 해석할 것도 없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이 말씀은 에베소 2장 12절에는 보면은 그 이하에 보며  우리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의 권속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이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도 찾아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됐고,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가 됐고, 또 하나님이 모든 은혜 속에서  살게 됐다고 그렇게 거게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하는 말은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시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으니 좀  망발된 그런 표현 같지마는 알기 쉽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내 것이라 말이오. 전능이 내것이라, 전지가 내것이라 대주재가 내것이라.

만왕의 왕이 내것이라, 만주의 주가 내것이라, 주권이 내 것이라. 왜? 하나님이  내것 됐기 때문에 내 하나님 되셨기 때문에 알기 쉽게 발표할라면 이렇게 믿는  자에게 이 능력은 역사합니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는데, 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셔 가지고 어떤 상대를 하시는가? 상대하실 때에는  계약의 하나님으로 이렇게 상대하신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호와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계약은 어떤 계약인가 계약을 살펴 보면 이것은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인간의 지식이 상상 못  할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이 일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  계약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 영원히 죽지 안하고 영생한다. 영생 거게 됩니까?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이 다 네것되게 해 주시겠다. 이것도 심히 어려운 일  아닙니까? 또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너를 들고 있고 메고 있고 너를  모시고 있도록 하겠다. 만물이 우리 발등상 되겠다고 계약 하지 안했습니까? 이  계약은 상상도 못 할 측량 못 할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계약이요. 또 이 계약을 우리가 다 이루어 받는 데는 계약의 상대자로 또  우리가 할 일이 있는 것을 여게 계약서에다가 기록해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어떤 일인가? 무식해도 가난해도 병신도 상관없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 다 가지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지키면 된다는 이  계약입니다. 그러면 이 계약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나는 이만침  잘났으니까 못난 저까짓 게 뭐 전부 다 바쳐서 계약을 지킨다 할지라도 아,  내야 일국에 제일 큰 왕이 되어 잇으니까 서민 저거 여라 수천만 명 당할 수  있지 않느냐? 이러니까 나는 몇 백분지 일만 해도 저거 못난 것 전부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계약 지킨다는 것보다도 내몫이 더 많지 않겠나?' 그렇게  사람들은 계산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계산하지 안하시고 어쨌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사실이라 참되다  믿고, 믿는데 돈 듭니까? 믿는데 무슨 지식이 듭니까? 지식 그게 들어서 믿는데  방해나 했지 돕는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계약하신 말씀을  참되다 믿고 자기에게 힘 있는 대로만 다해서 믿는 대로 행하면 됩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다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극히 큰 소망을 어떤 자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로서는 자기만 다 하면 되도록 이렇게 된 계약입니다.

 이러기에 아무리 천하를 그 사람이 다 좌우하는 위대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하신 이 계약의 말씀을 믿는데 조그만치라도 거게 의심하는  부스래기가 들어 있으면 헛일입니다. 또 믿고 행하는데 '내야 이만침 실력  있으니까 뭐 몇 백분지 일만 드려서 행해도 될 것 아닌가?' 자기를 다 드리지  안하고 남겨 놓으면 헛일입니다. 다 믿고. 다 드려서 행하고 이라면 되도록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게서는 참 세상이 세상이 박살나는 곳입니다. 여게서는  아주 세상적으로 못난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아무리 못나도  예수 믿는 여게서는 천하에 제일 잘 믿는 사람과 꼭 동등의 가치를 가지고,  동등의 실력을 가지고, 동등 그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그런 권세를 가졌고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아주 천한 자가 높아진 걸로 자랑 합니다.

 아주 천한 자가. 낮은 자는 저의 높아진 걸로 자랑하고 아주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천하에 제일 잘난 사람과 네나 내나 뭐. 네나 내나. 너도 성공 할 수  있고, 나도 성공할 수 있고, 내성공이나 네 성공이나 조금도 뭐 차이없고 못할  것 없다. 이러니까, 이 참 못난 사람이 세월 날 때가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또  이걸 깨닫고 보면 높은 자는 저의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공연히 아무것도  아닌게 그거 가지고 나는 높으다 이랬는데 하나님의 이 계약을 보고 하나님의  이 진리를 보니까 이거 높았다 하는 것이 이거 전부 화덩어리만 짊어지고  자멸할 화약만 짊어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아무 가치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높았던 자가 깨닫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이 사실을 깨닫고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줄  알고 이제 낮아졌다' 하는 그것으로 자랑한다 그랬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요 말씀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신 하나님이, 내 전능되신 전능이 내 전지되신 전지가,  내 주권이라, 당신이 주권이니까. 내 주권된 주권이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가지고서 나로 더불어 손을 잡는, 첫째 나로 더불어 교제하는 교제가 어떤  교제를 하고 있는가? 상상도 못 할 천상천하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나는 창조주  한 분만 위에 있고 모든 피조물은 발등상이 되는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겠다 하는 이 어마어마의 참 뭐 상상도 못 할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가지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밀었지마는 이것을 받을 때에 네가  적어도 부산 부자는 돼야 된다 하면 내게는 소용없어. 네가 그래도 아무래도  한국의 유식자는 돼야 된다 하면 내게는 소용없습니다.

 아, 이러는데,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먼저 내어 놓으시고 우리에게  내어 놓으시면서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우리가 할 일은 못나도 병신이라도  늙어도 뭐 무식해도 쩌그러져도 멍청이가 돼도 문둥이라도 아무 상관없어.

어쨌든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털끝만치도 의심하지 말고 확실히 다 믿고 내  힘 있는 대로 그대로 내가 믿는 고 일을 행하면 된다 이래 놨으니까 이것은  아주 지극히 큰 것을 나에게 주시면서 아주 받기에는 더 이상 쉬운 방법이 없는  그 쉬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 계약을 맺어서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대해서도 우리가 깊은 깨달음의 감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그러면 이 계약의 말씀이라 말이오. '삼가 듣고' 이는 그  계약을 이리 해 놨는데 그 계약이라 하는 것은 조건 아닙니까? 이 조건 있는 거  아닙니까? 이 계약의 조건을 하나도 그만 빠져 버리면 잊어 버리면 안 되겠다  그거요.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삼가 들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제 하나님  믿는 것과 하나님이 계약하신 이 계약의 소망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계약을 조심해서 조그만치라도 틀릴라 빠줄라 잊어 버릴라 하는 그런 삼가는 그  조심이라는 거 두려움이라는 거 염려라는 거 그런 것은 필연적으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삼가듣고 내가 오늘날' 요걸 지금 말합니다.'내가 오늘날' 주님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내가 네게' 요게는 하나님이 우리와 직접 대면하고  직접 대면하고. 또 직접 대화하고, 직접 나와 동거하고 나와 동거할려고  찾아오신 주님이십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내가 네게 서로 단 둘이 이거  대면, 대화 동거 동행입니다.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오늘날이라 하니까 그 현실인데 오늘날 이라니까  많은 세월 가운데서 오늘이니까 세월 가운데 오늘 아닙니까? 오늘 당일. 그러면  오늘이라고 했으니까 오늘도 스물 네시간이니까 범위 싫다 말이오. 스물  네시간을 바로 이 현재로 말하면, 이 시간이 끝이라 말이오. 어느 시간? 이  시간, 이 시간, 그러면 이 시간이 이십 분이라는 바로 요 순간, 요 찰나, 요 분  초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네게 명하는 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 그러니까 요  현실에 명한 명령이 있겠고. 또 현실이 지나가면 고 다음에 명하는 명령이  있겠고 요렇게 해서 그 현실이 바꿔짐에 따라 그때 그때에 해당된 명령을  가리켜서 모든 명령, 그렇게 명령 지키는 걸 계속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이 되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이 되신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대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믿는 연습을 우리가 힘 써서 해야  되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에는 보면은 믿음의 시련이라, 믿음의 연단이라 시련이라 이런  말은 였습하고 또 시함하고 또 실지로 있나 없나 실험해 보고 하는 그런 것을  간단하게 발표할라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 시련이니 연단이니, 믿음의  시련이라 믿음의 연단이라 하는 그런 고 말은 그 속에 믿음의 연습이라. 믿음을  또 믿어 보고 또 믿어 보고 믿는 것을 연습을 하고 또 내가 믿나 안 믿나 한 번  조사를 해서 한번 시험도 해보고 또 내 믿음이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결과를 봐서 그것을 조사해서 결과를 시험하기도 하고, 또 자기 믿음이 참  믿음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온다는 말씀인데 성경에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큰 능력이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수 종류의 어떤 어려움이 와도 너희들이 닥칠 때는 잠깐 정신 못 차려  가지고서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믿음을 딱 잡고 난 다음에는 이기고  나서 승리의 개가로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에 계약하신 이 계약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은 어떻게 해 주실 하나님으로 성경에 다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해 주겠다, 어떻게 해 주겠다, 어떻게 해  주겠다, 네가 믿을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다. 아무리 믿다가도 요거 믿음 이  중단돼 버리면 또 나는 그 때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이  계약에 해 놓은 이 계약을 믿는 이 믿음은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요 계약대로  의심 없이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이라,  나와 계약을 맺고 내게 이렇게 해 주실 하나님이라 그 분은 전능자라,  전지자라, 주권자라, 만왕의 왕이라. 만주의 주라, 창조주라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하시는 주라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이 사실을 믿으면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으로 내게 역사하실 수가 있고 내가 믿지 안할  때는 그런 역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믿으면 당신은 내가 믿으면. 내가  믿고 행하는 대로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믿어서, 믿음이라는 거는 순종인데  내가 이렇다 할 때에 아 그렇습니까? 그것이 지식을 따라 가는 것이요, 또  이렇게, 해라 할 때 그대로 하는 것이 그 몸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이요 딿는 것인데. 네가 내게 이 계약한 계약을 인정하고 이  계약에 응하면 말이오. 내가 이 계약한 계약에 응하면 내가 너에게 또 이렇게  응하겠다 하는 이 쌍방 계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실 때에 다른 방편으로 주시지 안하고 두 가지로만 줬습니다. 당신  확실히 인정하고 참되다 인정하고 하라는 대로 행하면 됩니다. 요 둘만 하면  하나님은 그이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도 요 둘만하면 요 둘만 하면 하나님이 우주를 맡길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요 둘만 하면 하나님이 우주를 맡길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인데 내가 당신을 향하여서 닿신이 뭐  이든지 이렇다 할 때에, 녜, 그렇습니까?! 내가 그대로 확실히 믿지, 이래라 할  때에 내가 그대로 내게 있은 것 다하면 다하면 거기에모자라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전부를 가지고 보충을 해서 다하기로 했으니까 이것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늘과 땅의 것을 어떻게 통치할까? 뭐 통치하고도 남습니다. 넉넉히 통치하고  얼마든지 남습니다. 뭐 가지고 통치해? 아, 꼬꾸랑 글자를 배워야 될건가? 뭐  또 무슨 과학의 무슨 뭐 뭐 전자 뭐 과학을 배워야 될 건가? 필요 없어. 필요  없어. 필요 없어. 당신이 내게 대해서 모든 역사하시는 것은 참 되다. 내가  믿는 거, 요거는 믿기만 하면 돼요 아무 힘도 없어요 그만. 믿기만 해요. 믿고,  그 다음에는 콩이라 하면에, 콩이라, 가라 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때리라  하거든 때리라, 들라 하거든 들어라, 베라 하거든 베어 버려라, 깨라 하거든  깨라 하는 대로 하면은 내 힘대로 하면 내 주먹이 조그만한 야문 감도 한 개 깰  수 없을 만치 이렇지마는 네 힘대로 때리라. 힘대로 때리면 전능하신 능력이  네가 때리는 그 순종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들어가 가지고 때릴 터이니까 이  지구를 때리면 지구가 바싹 깨질 거라 그 말이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연히 믿는다는 그 어리석게 스스로 인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제 주관 가지고 평가해서  인정하는 그거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인정이라야 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정은 무례하게 암만 된 것이라도 당신이, 요새는 보면  뭐 옳은 것도 공연히 트집을 잡습니다. 옳은 것도 '아야 안 됐소. 가져 가소'  트집을 잡아 가지고, 거게다가 돈을 좀 끼어 맺혀 놓으면 틀린 것도 이리 이리  해 가지고 되어지는데, 옳은 것도 그 뭐 사바사바에 돈이 안 들면 안 되지마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라 그 말이요, 옳은 걸 이래도 틀렸다 트집잡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고 옳으면 옳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그대로 공평되게 인정하시는  하나님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다 하면 하나님은 인정하십니다. 우리 보기에  야, 이거야 정말로 믿음이다 인정되면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더  인정하십니다. 너희들의 생각에 넘치도록 하시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너희들의  생각에 넘치도록 하신 이가 주님이십니다. 내가 인정 '아, 된 것 같다.' 하면  당신은 '됐다' 더 확고한 인정을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요나가 고기 배 속에 들어갔을 때에 그분이 믿음을 떠나서 고기  배속에 삼켜졌고 거게서 토해 나온 것은 믿음으로 토해 나온 줄 압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토함을 받았어. 믿는데 어떻게 삼킬 수가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구하라 주실 것이라. 믿는 대로 되리라'  당신의 능력이 나를 구출하시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시스로 갔기 때문에 이런 꼴을 당했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진홍  같고 주홍 같을지라도 회개하면 된다 했으니까 '주여 회개합니다.

믿사옵나이다.' 믿을라 하니까 믿을라 하니까 고래 이 놈이 안 게워 낼려고  꺼물꺼물 하지마는 주여 믿습니다.! 하니까 콱! 튕겨 가지고서 저 땅바깥에다가  툭 터진 줄 압니다.

 그 믿음의 능력, 믿음의 능력.

 이러니까 우리가 믿을 때에는 우리가 지식으로 믿어야 되겠고 지식으로  지식으로 믿어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는 우리 이성 비판이 믿어야 되겠고,  지식으로 믿는 것, 이성 비판으로 믿는 것 이거는 인제 시작입니다. 지식으로  믿으면 이성 비판으로는 필연성으로 필연적으로 믿게 되고. 이성 비판으로 믿게  되면 그 다음에는 소망으로. 믿어야 됩니다. 소망으로, 소망으로 믿어야 되는데  이성 비판으로는 믿었지마는서도 소망으로 믿을 때는 좀 힘들지마는 이성  비판으로 확실히 믿었으면 소망으로 믿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믿어지느냐 안 믿어지느냐 하는 것은 네가 이성 비판에서 이성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은 어데서 보이느냐? 고 소망에서  보입니다. 소망에서.

 지식으로 믿는 네가 참 이대로 아느냐? 지식으로 믿는 그 진가는 그 진가는 그  사람이 자기가 지식으로 내가 이와 같이 믿는다 하는 그것이 이성으로  믿어지느냐 안 믿어지느냐, 이성 비판에서 이성 비판에서 믿느냐, 안 믿느냐.

그것이 지식으로 믿느냐 안 믿느냐하는 진가의 발표는 이성이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이 그 진가의 발표입니다.

 또. 이성으로 믿는다. '아. 내가 이치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믿어야 되지  믿어야 되지,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는 그것은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은 그  표시는 뭘로 되느냐? 소망으로 표시가 됩니다. 소망으로, 소망으로.

 그러면. 소망으로 표시가 되면 그 다음에는 뭣으로 표시가 되느냐? 자기의  모든 마음이 마음이 그 소망으로 표시가 되면은 마음이 평안하고 담대하고  온유해지는 것으로서 표시가 됩니다.

 네가 마음으로 '아. 나는 마음으로 틀림없이 믿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그것은  어데가 표시가 되느냐? 그 눈에도 표시되고 눈에도 표시되고 입에도 표시되고  또 피부에도 표시가 됩니다. 피부에도 표시가 돼요. 그러면 전심 전체에 믿는  것이 표시가 됩니다.

 그러면, 전심 전체가 믿으면 전심 전체가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어데  표시가 되는가? 그 사람의 이 모든 사물 취급하는데 사물 접촉에 표시가  됩니다. 사물 접촉에 표시가 돼.

 이럴 때에 그 사람의 믿음은 자기의 마음에 수 많은 요소가 있지마는서도 그  요소에 안 믿는 부분이 없이 다 믿고, 자기 몸에 여러 가지 부분이  있지마는서도 그 부분이 다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에는 그는 믿음의 행동을  안 할 수 없고 믿음의 행동을 할 때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와 가지고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고 해서 내가 현실에서 당신의 그 명령 하는  것이 기본 명령과 건설 명령 두 가지로 구분해 가지고서 말씀했는데, 기본 명령  일곱 가지를 말했는데 기본 명령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건설 명령이 그 속에  나오고 기본 명령이 없으면 건설 명령은 자기가 아무리 믿을 라 해도 안  돼집니다.

 그러면. 그 명령을 내가 찾을라고 애를 쓸 때에 그것이 찾아오신 주님을  대면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그 명령을 찾았을 때에 주님을 발견한 것이요.

그 명령을 내가 순종할라고 그 명령을 내가 긍정하고 영접할 때에 대 면하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 명령대로 내가 실행할라고 할 때에 그 분을 내가  영접해서 모셔 들이는 것이요. 내가 고대로 실행할 때에 당신과 나와 동행하는  것이요 동행하는 그 동행을 통해서 당신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역사를  하시는데, 어떤 방향으로 역사하시느냐?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역사하시는데,  첫째는 내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합니다. 내 안에 와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고 하셨으니까 아무리 못난 바보가 무슨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겠습니까? 뛰어날 만한 실력이 있어야 되지. 그러면  그분이 내 안에 와 가지고서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내가 됐으니까 내 실력이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것은 이 세상에 썩을 것으로  뛰어난다 말이 아니고 썩어지고 없어질 저주 아래에 있는 것으로 뛰어난다는  말이 아니고 이는 세상에서도 무궁 세계에서도 영원하고 완전한 것으로  뛰어납니다. 완전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이 믿음의 사람이 가진 것과 바사  나라에서 다니엘이 가진 그 지위와 남은 두 총리와 가진 지위와는 다릅니다.

다니엘이 가진 그 지위는 이거는 저주 아래에 있는 거 아니요 사망 아래에 있는  거 아니요. 이거는 마귀의 것이 아니요, 이거는 유혹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서 역사해 가지고 역사 하는 그 지위입니다.

 이렇게 뛰어나서 내 안에 와서 뛰어나기 때문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내가  뛰어난 실력가가 되지 또 들에서도 복 받겠다 했으니까 이 능력이 내 믿는  믿음을 통해 가지고서 '들에' 하는 것 보니까 그것은 내가 머물고 있는 내  사업이나 내 농장이나 내 뭐 공장이나 뭣 이든지 내가 하고 있는 그 현장  아니겠습니까? 현장의 그 모든 것 속에 가 가지고서 이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서  한다 그거요. 그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라고 하면 저 혼자 잘난 척 하면은  다른.사람이 좋아하겠소? 저거 저 잘난 체 하고서 하는 것 꼬라지 보기 싫다'  하면 뭐이 되겠소? 여기 국회의원 하나도 할라 하면은 모든 사람들이 가볍게  봐서 환영해 달라고 이래도 환영을 해야 되는데 만물 자유 세계가 가지고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가 가지고서 감동을  시켜서 그가 나를 협조하도록 만든다 그 말이오. 그 모든, 콩도 나 협조하고  돌덩이도 날 협조하고 독사도 협조하고 물도 협조하고 이 공기도 협조하고  햇빛도 협조 하고 뭐 원수도 협조하고 다 협조하도록 내 몸 밖에 모든 것으로  협조하게 하고 또 내 몸의 소생이라 하는 그거는 내 속에 와 가지고 역사했기  때문에 그 소생이 잘나지지요. 또 내 안에 와 역사하고. 그러면 지극히 큰  능력이 내 몸 밖에 모든 데 역사해 가지고서 그것들을 움직여서 나를 돕게  하시고 또 그 능력이 와 가지고 내 자체를 변화시켜서 굉장한 당신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이렇게 실력가가 되도록 하시고, 또 나를 통해서 하시고 또 어떨  때는 내 안에 나도 기르고 내 밖에 역사하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고 내 안에  역사하고 이 전체가 한목 또 역사해 가지고 역사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  당신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고서 이렇게 약속을 했는데  요것은 우리가 고 현재라는 현재, 고 현실이라는 현실 거케 찾아오신 요 주님을  영접하는 데서만 됩니다. 다른 데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저녁에 제가 여기 증거할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우리가 산에서든지 들에서든지 혼자 있든지 열이 있든지 바다에 파선을  당했든지, 뭐 존귀한 자리에 있든지 억울함을 당했든지 이거 참 자살할 만 한  그런 어려운 일을 당했든지 어떤 일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모세가 말하기를,  '우리가 죽게 됐다. 우리를 죽으라고 모두 이리 끌어다 놨느냐?' '암말도 말고  보자. 이제 큰 일이 나 놨으니 뒤에서는 애굽 병정이 추격을 하고 있지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아 있지 여게서야 꼼짝 못 하게 됐다. 꼼짝 못 하게 됐는데 그  분은 능치 못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내가 믿고 있는데 그 분이 어떤 솜씨로  어떻게 할란지 이제, 꼼짝 못 하게 큰 일 닥쳤으니까 그 분의 큰 솜씨가 나타날  터이니까 그 분의 하시는 일을 구경하자.' 이렇게 그 모세는 말하고 그런  평안을 가겼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걸 원하십니다. 아, 이제는 절 안 하면 이 불 속에 다 집어  넣는다는데 불 속에 집어 넣는 그게 큰 거 아니라 불 속에 집어 넣는 불 속에  던지는 그것이 자기 현실 아닙니까? 그 현실에 현실에 전지 전능, 창조주, 개별  섭리,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주님 주님이 자기에게 찾아 오셔 가지고서 지금  찾아 오셔 가지고 있는데 그분이 돕는다면 암만 불에 집어 넣을 때 그분이  돕는다면 불에 집어 넣는 자들을 다 없애 버릴 수도 있고 불에 집어 넣어도  들어가도 타지도 안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 분이 와서 하실라 하면 뭐이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이  이 시간 내게 오셔 가지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분이 내게 찾아 오셨는데.

그분이 할 수 있는 그 모든 능력을 가지시고 찾아 오신 그 분이 나에게 해 주실  수 있도록 그 모든 전지 전능의 모든 지극히 큰 주권의 능력을 가지시고 나를  아주 그 어려움에서 능히 구출하고 남음이 있는 그 분이 와 가지고서 나를  구출할라고 찾아 왔습니다. 요거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어데서든지 파선을  당할 때도, 파선을 당할 때도 구출하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찾아 오셨는데, 그러면 그 분이 구출하실라고 하면은 구출에 가능합니까?  불가능하겠습니까 그 분이 구출할라고 하신다면 자, 구즐에 불가능한 일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 가끔 가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한번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 분이 구출하실라고 하면 불가능한 일은  절대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다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절대 불가능이 없는 구출할 수 있는  그분이 오셨는데 그 분의 구출을 받는 그 방법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그런 그  방법을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방법입니까 가능성 없는 방법입니까?  가능성 있는 방법입니다. 가능성 있는 방법이오.

 이러니까 그 방법이 뭐이냐? 고 현실에 기본 명령 일곱 가지 행하고. 기본  명령 일곱 가지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에 보면은 거게 있습니다. 첫째는  새사람으로 살 것. 둘째는 뭐입니까? 둘째는 항상 기뻐하라. 또 세째는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기도하라. 또 네째 감사 하라. 또 다섯째  소멸치 말라. 성령의 감화를 소멸치 말라. 또 여섯째 예언을 멸시치 말라. 또  일곱째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요것이 기본 명령 일곱 가지입니다.

요것은 밤이나 낮이나 어데든지 파선 중에서라도 높을 때라도 낮을 때라도  요것은 기본 명령이라. 기본구원에 속한 요 명령이기 때문에 요 명령을 항상  밤이나 낮이나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설 명령은 환경에 따라서 현실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요런 현실에는  요 명령 지켜야 되고 저 현실에서는 저 명령 지키고 고것을 가리 켜서 건설  명령입니다. 기본 명령 지키면 건설 명령은 필연적으로 나와서 알게 되고 또  행하게 됩니다.

 어떤 데서라도 나룰 구출할 수 있는 이 주님이 구출하실라고 어데서라도  구출할 수 있는 구출하고도 남음이 있는 이 능력을 가지고 주님이 찾아  오셨는데 오신 그 분의 구원을 그 분의 은혜를 받는 방편은 그 방편을 내가 할  수 있나 없나,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구속 받은 사람이라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는 데 그 방편은  뭐인가? 기본 명령 일곱과 건설 명령 하나, 건설 명령은 그 때 그때  하나입니다. 건설 명령은 그때 그때 요 현실에는 요거 하나, 조 현실에는 조거  하나 고것만 하면 주님이 약속하기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  했오. 그러면 건설 명령은 요 명령 지키고 나면은 고거 지나가 버리고 고 다음  명령 자꾸 계속적으로 잇따라 오는 그 명령 명령 지키면 명령 지키는 고것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 그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믿는 것이 내 지식으로 믿어야 되고 또 이성  비판으로 믿어야 되고 공연히 믿사옵니다. 하는 그런 거 안 됩니다. 꼭  믿으면은 논리가 있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논리. 논리 믿음은 뭐이냐 하면은  이성의 믿음이라 말입니다. 자기가 이렇고 이렇다 하는 지식으로 믿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그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요리를 하면 그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서 이리 저리 생각해 보고, 비판해 보고, 평가해 보고, 이렇게 논리해  보고 이래 가지고 이성 비판에서 '아 이러니까 믿어야 되겠다.' 하는 고 믿음을  이제 가집니다.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을 가졌을 때에 우리 마음에 맏는 그  믿는 마음의 표시가 있어야 되겠고, 믿는 마음이 돼야 되겠고, 마음이 믿는  마음이 돼야 되겠고 마음이, 또 감정이 믿는 감정이 돼야 되겠고, 또 자기에게  있는 감각이 믿는 감각이 돼야 되겠고 또 눈이 믿는 눈이 돼야 되겠고 귀가  믿는 귀가 돼야 되겠습니다.

 아, 물 위로 걸어 오라 할 때에 걸어가면서 그 파도 소리가 나고 바람 소리가  나고 이와 같이 물결이 파도가 아주 심하게 이는 그 파도가 올 때에 올 때에 그  베드로의 귀가 믿는 귀가 됐더라면 파도야 오거나 말거나 '너는 내 발에 밟혀야  돼' 하고서 그 때 믿음이 귀로 파도 소리가 들어을 때에 그때에 이 귀가 믿는  귀가 돼서 파도에게 굴복을 당하지 안했으면 파도는 분명히 베드로의 발 아래  복종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귀가 믿는 귀가 돼야 되지. 또 눈으로 볼 때에 눈으로 어떻게  불미 속에 불을 집어 넣고서 불을 때면서 '우상에게 절 안하면 금 동상에게  절하지 안 하면 저 불미 속에 집어 넣는다' 이럴 때에 자기 귀에 들립니다.

자기 귀에 들릴 때에 그 귀가 전능하신 주님의 이 계약을 믿는 귀인지 이 귀가  믿지 안하는지 이 귀가 믿었으면 '하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 있노? 너거 말 안  듣는다. 주님이 말씀하신 말 듣지? 불을 마구 피우고 그 몇 배나 뜨겁게 이래  하면서 '저기 집어 넣는다' 할 때에 내 눈이 봤는데 내 눈이 그만 그것 보고서  그만 믿음 버렸으면 헛일 일거라. 내 눈이 믿는 눈이 되어서 불이 암만 있어도  불이나 죽이지 못한다. 불보다 주님이 더 크시다. 주님은 불 기세를 멸할 수  있는 주님이시다.' 그때에 내 눈이 볼 때에 내 눈이 믿음의 눈이 되어지고 그  눈이 내 눈이 믿음의 눈이 되어서 그 눈이 믿음의 나에게 지배를 받지 그 눈이  믿음의 나를 떠나 가지고서 그 세력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그것에 종이 돼  가지고서 불이 저러 쿰 있으니까 이거 큰일 났다고 하는 그런 눈이 놀래면 눈이  믿지 안하면 귀가 믿지 안하면 벌써 그것이 안으로 침투해 들어와 가지고서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귀가 믿는 귀. 눈이 믿는 눈, 마음이 믿는 마음, 아 입이  믿는 입, 입이 믿는 말을 자꾸 할 겁니다. 피부가 믿는 피부 그 불란스의  콜이라는 그 거리에서 컨트노라 하는 그 분은 이렇게 전도한다고 왕이 죽일라고  이래 그래 쌓으니까 오만 고문과 고형에서 나중에는 불로 찌지다가 이거 지금  칼로 가지고서 껍데기를 벗겨도 그 얼굴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웃음이 있으니까  '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기쁨을 없앨 수가 있는 줄 아느냐?' 이라니까  '그러면 보자. 없애지 않는가 보자.' 하고서 암만 해도 기쁨이 그 얼굴에  충만하니까 나중에는 할수 없어서 분이 나가지고서 목을 끊어서 끝을 마쳤지 그  얼굴에 기쁜 그 안면에 피부의 기쁨을 멸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그의 전기에  기록한 것을 내가 봤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내게 있는 마음 전부가 믿음으로, 내 지식 전부가 믿음으로  이성 전부가 믿음으로, 소망 전부가 믿음으로, 내 귀도, 수족이 전부 믿음으로  이렇게 되어서, 한 사람은 믿음이 없으니까 지금 손이 뭐 겁이나 벌벌 벌벌  떨리고 있는데 이 사람은 안 떨리고, 저 사람은 지금 놀래서 얼굴이  새파래겼는데 이 사람은 기쁨의 희색이 충만하고 이렇게 우리가 이 주님을 믿는  그 믿음이 내 마음 각부에 꽉 배야 되겠고 내 몸이 전체에 배야 되겠고 내 지체  전부에 믿는 이 믿음에서 믿는 이 전심 전체가 돼야 이것이 믿음인데, 이러면  우리는 기쁘고 즐겁고 그 믿음의 완성이 됐고 하나님의 능력은 다 내것이 됐고  그러면 그 사람은 벌써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믿게도 될뿐 아니라 또 그 믿음의  효과로 평안하고 즐겁고 담대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 모든 성도들은 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분이 뭐 다리오 왕 앞에서 그렇게 될 때에 조급한 안색이 없었을  것이요, 비겁한 그런 게 없었을 것이요, 떨리는 것이 없었을 것이요 그저  마음의 얼굴이 있으면은 아, 이거 왕이 이래 쌓으니 참 그거 좀 마음에  답답하다. 애처롭다, 민망스럽다 하는 거는 있었지 그분이 뭐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전능자의 품 안에 있고 전능자가 자기와 지금 함께 계시는데 거게  대해서 다른 염려는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분이 '내가 현재 네게 명한다' 그 분이 직접 현재에 내게  어데서든지 찾아 오셔 가지고 계시는데 현재는 찾아와 가지고 계시는데 찾아와  가지고 계시는 그 분이 내 현재에 같이 계신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지금 말로  하는 것은 이렇게 믿어야 된다는 말 하는 것인데 그렇게, 믿어야 되고 그렇게  믿어질 수가 있는 건데 우리는 지금 믿음이 준비 가운데 있기 때문에  부족합니다.

 이러니까 자꾸 연습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 믿음의 연습을. 연습을 해서  그러면 화경이 요래 변할 때에 변할 때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와 지금  같이 계시는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걸 두려움이 올 때에 그 두려 움보다  크신 분이 나와 같이 계셔서 그 두려움은, 사람이 크고 작은 두려움이 있으면  작은 두려움에서 걱정하다가 큰 두려움이 오면 작은 두려움 그 까짓 거는  눈에도 안 보입니다. 이래 가지고 두려움의 비교가 될 때에 모든 두려움을 다  없앨 수 있고 모든 두려움은 주님 한 분에게 집중될 수 있는 이 두려움이  되기까지 우리는 자꾸 연습을 해야 되겠고, 또 모든 인간의 입과 눈보다도  당신의 입과 눈이 더 실상으로 무서워 하는 그거 내가 실지로 내 마음이나  행동에서 나타나 있는 그 믿음이 있는 것을 우리가 연습을 해야 되겠습니다.

 좀 세력 있는 세력 있는 사람만 자기와 함께 있어도 배짱이 있어서 그 자기가  자기와 같이 하는 세력보다 약한 것이 와서 어떻게 할 때는 거게 대해서 아무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 세력보다 내게 같이 하는 세력이 크기 때문에, 또 모든  사람이 보고 모든 사람이 보는 것보다 주님이 보시는 것이 더 크다면은 아  사람이 봐도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이 보시는데 또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자기가 사람도 멸시하고 천대하는 이 박대를 하는, 사람도 박대 하는 일을 할  수 없는데 그 분을 믿는다면 그 분을 현재에 박대가 되어지는 그 분의 명령을  저버리는. 그 분이 하지 말라 하는 것, 그 분이 하라는 것 하지 않는 것 그  영령을 저버리는 것이 당신을 박대하는 것인데 그 분을 박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서 내가 이 전지 전능하신 나를 구속하신 주권자. 주재자  창조주, 전지 전능자. 만왕의 왕이 되신 이분이 내게 지금 와서 나와 같이  계시는 요 사실을 믿는 요 연습을 우리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 하겠습니다. 요  연습을 해서 뭐 독침 앞에서도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이 전능자 주권자가  같이 계시는 그 계심을 믿는 믿음이 믿음을 독침이 와서 흔들 수가 없고 어떤  사형이 와서 흔들 수가 없고 자기가 물에서 파선이 돼 가지고서 물 속에서 물에  파선이 돼도 거게서 물에 파선이 된 거기에 이 모든걸 주권하시는 그 주님이  내게 와서 같이 계시니 그 분이 나를 건질라면 건지고 나를 거게서 죽게 하면  죽고 하지 파도 이까짓 게 날 죽이는 줄 아나? 죽고 사는 것은 그 분에게 있고  건져 주고 안 하는 거는 그 분에게 있지 이러니까. 그 분을 믿는 것만 나는  있었지 그 분을 어떤 분으로 믿고 바라보고 당신에게 구하라 했으니까 구하고  그 외에 딴 발동을 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사경에서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또 어떤 역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도록,  또 어떤 난제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도록. 어떤거라도 해결 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없는 그 사건 사건 자꾸 바꾸어 갈 때에 그때에 내가 주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고것을 자기가 시험해 보고. 또 고때에 안 믿으면 안  믿는 것을 사과하고 믿을라고 애를 쓰고, 자꾸 요래 해서 믿는 연습을 해  가지고 믿는 자기 되도록 이렇게 하는 이것을 자꾸 평소에 연습해서 우리가  평소 이럴 때도 '아, 요 게는 내가 믿는가 안 믿는가 보자. 주님이 나와 지금  같이 계시니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것을 내가 확실히 믿고 있느냐? 또  이분이 나에게 어떻게 하실 수 있는 어떤 분이라는 것을 내가 믿고 있느냐?' 고  현실에서 하나 하나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것을 시험해 가지고 믿는 자로  통과하고 믿지 안하면 믿음이 없다는 것을 가지고 주님에게 고하고 믿을라고  애를 쓰고, 요래서 우리가 요 현실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 또 그  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 그 분에게 모든 것을 해 주시기를 원해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와서 계시는 것,  그러면, 내가 그 분을 믿을 때에 그 분을 영접할 때에, 믿고 영접하는 거는 그  분의 명령 지키는 것인데. 믿고 영접할 때에 그 분이 해 주신다는 것 요것을  믿고 믿으면 모든 것을 그 분 명령 찾아 행하는 요거하나 가지고서 열쇠를  삼아서 요거 하나 가지고 다하고 그러면 우리 할 일은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는 것 요거 하나, 그 분이 나에게 해 주실 수 있는 방편은  고때의 명령 고거 지키는 거 요 둘 가지고서 모든 것의 열쇠, 성공도, 또  승리도, 평강도, 복수도, 어떤 어려움을 다 벗어나고 면 하는 것도 요 믿는 것,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걸 내가 믿는 것, 요렇게 해라 하는 대로 순종하는  믿는 것 고 두 가지 합해서 믿는 것, 믿음 하나, 요 믿음 하나 가지고 해결을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과연 요게서 생명이 있는 믿음이냐? 참으로 믿는  믿음으로서 내 마음의 믿음의 표가 타날 때도 있고 그 믿는 것이 내 행동에  나타날 때도 있고 믿는 것이 안면에 나타날 때도 있고 믿는 것이 내가 모든  경영하고 소원하는 데에 나 타날 때도 있고 있으니까 과연 내가 믿느냐 안  믿느냐 고것을 시험해서 믿는 사람되는 요것이 우리가 연습 중에 제일 간단하고  요긴하고 아주 되는 믿음으로 그렇게 생각이 되어져서 요것을 오늘 저녁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뭐 여러 가지 복잡한 것 하지 말고 요것만 하면 거게 다 됩니다.

요것만 하면 당신이 밥 먹을 때는 밥 먹어라, 말할 때는 말하라, 자랄 때는  자라 이 일은 해라, 이 일은 하지 마라, 일할 때는 일하라, 이거는 참아라,  이거는 가라. 당신이 내 안에 오셔 가지고서 역사하시는 고대로만 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 당신이 내 현재 내가 물에 빠졌든지 어데 바로 이  시간이시간 주님이 내게 찾아 와서 나와 같이 계시는, 그러면 계시는데 이 분을  내가 부인하면은 배척해 버리는 것이오. 와서 계시는 이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그 분을 영접하고 그 분의 구원을 받는 데에는 그 분 이 내게 약속한 약속이  있으니까 그 약속은 그것은 그 분의 명령인데 요게는 해당되는 명령이 무엇인가  고걸 찾아 가지고 고 명령을 행하는 거 요 두 가지로서 만 가지의 해결을 다  지우기로 요 사람으로 똘똘 몽쳐서 간단하게 요렇게 모든 것을 정비 정돈해  가지고서 간추려서 딱 거머쥔 요 사람이 세상을 이길 사람이요. 요 사람이  하나님이 붙들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요 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다  주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고것 뿐입니다. 주님은 고것뿐이지 딴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도 없었어.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 분은 딴거 하나도 없었어.

고 거뿐이야 그 분이 믿음의 주요 온전을 가지신 예수라. 그러니까 그 분은  믿음 고거 하나 뿐이었어. 아버지는 어떤 분이라는 걸 믿는 거 그 분의 명령  순종하는 것, 세상이 와 가지고 어떻게 할지라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거와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은 세상에 보일 것뿐이지 딴거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그거  두 가지 할 것뿐이다. 요거 아주 승리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래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앞으로 무슨 일을 닥칠란지  모릅니다. 어떻게 한국에 믿는 사람이 많지마는서도 다 벌벌 떨고 '나 예수 안  믿겠습니다.' 할 수 있는 그런 협박이 올란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에  말했지만서도 인간의 결심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인간의 결심 가지고  하지마는서도 나중에 고문과 고형이 심해지면 제가 못 견디고 항복하지 어짤  겁니까? 그때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와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지극히 큰 능력이  오는 것이 내가 믿으면 오는데 안 믿으면 안 와요. 그러면 지극히 큰 능력이  내게 와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문과 고형도 능히 감당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그 지극히 큰 능력이 내 안에 와 가지고서 그 능력이 역사해서 모든 것을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그 능력의 역사가 내게 오는 데는 믿음이 돼야 되는데,  그 믿음이 내게 있느냐 없느냐, 백지 없는 데 있다고 생각하다가 그때 닥치면  낭파 당할 거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과거도 다 패전 했습니다. 오늘도 앞으로 지금 어떤 일이  닥칠라지 이 어려운 것은 자꾸 도사리고 있는데 도사리고 있는데 뭐 이렇다  저렇다 도사리고 있는데, 뭐 이것도 하도 여러번 지나가 놓으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마비가 돼서 예사로 듣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일 공산주의 앞에. 독침 앞에서 '이놈 찌른다 찌른다. 어짤래?  찌른다 찌른다.' 할 때에 그때 어찌 되느냐? 그때지고 이기는 성패의 결정이  구원에 영광의 구원이냐 수치의 구원이냐, 그때에 주님으로 더불어 영원한  결합을 가지느냐. 주님을 영원히 배척한 자로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배척한 자. 배척한 자, 아, 배척한 자와 환영하는 자가 같습니까? 그러니까,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얻었지. 고때에 내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겠나  없겠나. 당신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실 수 있는 그런 산 믿음이 있겠나  없겠나?  아, 겨자씨 믿음 산 믿음이라는 것은 요번에 척 목사님 설교도 보니까 그걸  해석하대요 산 믿음,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주위 환경에 어떤게 와도 그거  믿음이 그거 먹고 자랐지 더 견고해지지 그 환경의 주위 현실로 말미암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안하는 게 그게 겨자씨 믿음이라고 그렇게 해석하대요. 그거  다 아마 그거는 통일이 돼 있는 모양이오.

 이런데, 고럴 때 우리의 일생 동안 신앙 준비하다가 이제 이기느냐 지느냐,  주님 배척이냐 환영이냐, 주님이 나와 동행하느냐 안하느냐 똘똘 뭉쳐서 결정을  지울 수 있는 고때를 준비하는, 준비하는 사람들이 없어. 고때를 준비하는  설교가 드물어. 고때를 준비하는 고 운동이 없어. 땅 위에서 어찌 됐든간에  전쟁 안 나고 평안하고 이렇게 있으니까 이때에 평안하니까 이거 취하고 저거  취하고, 평안하니까 어떻게 하면 이때에 사다리를 삼아 가지고 내가 좀 높이  올라가느냐 유명해지느냐 여게만 지금 이거 평안 하니까 여게만 지금 하고 있지  여게는 암만 해 봤자 그것은 마지막 결론 짓는 거는, 아닙니다.

 열 처녀가 보니까 밤중에 신랑 맞이냐. 신랑에게 버림당하느냐 고게 있지 안  했습니까? 이적도 기사도 귀신도 좋고 뭐 별 능한 일 했지마는서도 주님에게 딱  만내니까 '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못 한다. 내게서  물러가라.' 고 마지막에 결말 짓는 결론 짓는 마지막에 결정이 되는 마지막에는  이렇다 저렇다 확실히 마지막에 결정 짓는 고 결정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니까 생각하고 애를 써도 안 되는데 고 생각도 안하니까 그 사람에게 무슨  승리가 올 것입니까?  오늘도 그 결승에 대한 것을 말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오늘도 이래야  부자된다, 저래야 사장된다 저래야 사업이 잘 된다, 이래야 다른 사람이  환영한다 이거 전부 땅에 불신자들이 원하는 거 그 운동이니까 예수의 이름만  붙였지 소망도 방법도 원하는 것도 자랑하는 것도 부러워하는 것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세상사람 평가와 꼭 같은 것입니다.

 요한 1서 3장에 보면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받고 할지 못하는 걸  우리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그게 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러니까  그거야 죽음에서 마지막에 마지막 결말 지우는 고때에. 기쁠 수 있는 고때에.

담대할 수 있는 고때에, 평안할 수 있는 고때에 주님을 아노라 할 수 있는 그  세상이야 생각이나 합니까? 그런 말만 해도 징그럽다 하는데 징그럽다고 듣기  싫어하는데, 그러나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아노라 시인할 것이고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모르노라  하면 나도 모르노라 하겠다, 하지 안했습니까? 요것이 결말 짓는 것이라  말이오. 성경에는 이렇게 준비하는 성구가 있고, 마지막에 결말을 짓는  성구들이 있습니다. 고 결말 짓는 그 성구를 보고 그 결말 짓는데 거게다가  모든 집중을 해야 됩니다.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그러면 재림 아닙니까? 재림이 우리 개인은 죽음 아닙니까? 그 때에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그 날에 소망 두라니 그 날에. 예수님 재림에 소망 둘 것, 우리  죽음의 소망, 죽을 때 어찌 되느냐, 예수님 재림 오면 어찌 되느냐, 마지막에  내 일생 생활이 결론이 짓는 추수기 결말 짓는 결말 짓는 그때 어찌 되느냐,  결말 짓는 그때에 어찌 되느냐 거게 소망 두고 거게다 평가 두고 거게 것을  준비를 하기를 오늘 현실에서 하라 이렇게 성경이 다 말하지 안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추수기 결말에 대한 성구도 있고, 입학하는 성구도  있고, 아직까지 어리기 때문에 또 세상에서 차차 차차 옮겨 서게 하는 그런  방편의 성구도 있고 하는데, 우리는 간단하게 말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땅의 걸 버리지 안하면 하늘의 것 얻지 못한다.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간단하게 말하지 안했습니까? 뭐 간단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 주신 이 말씀 언제나 우리가 어데서든지 주님 나와  계신다. 나와 같이 계신다. 주님이 요 현재 내게 와 계신다. 현재에 주님이  내게 와 계신다는 것을 요것을 믿는 사람 됩시다.

 주님이 현재 내게 와 계신다. 내게 와 계시는데 이분은 봉사도 아니다.

귀머거리도 아니다. 무감각한 그런 바보도 아니다. 우리의 심리와 행동 다  아시고 우리를 보고 듣고 감찰하시고 모든 것을 전지 전능으로서 나와 함께  계신다. 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이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거 대번에 되는 거 아니라. 우리가 어리석게 지식으로 아니까 된 줄  알아도 아니오. 자꾸 연습해 '주님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 여기 계신다, 저기  계신다.' 암만 여기 계신다. 여기 계신다. 그것도 좋습니다. 자꾸 여기  있습니다. 나와 함께 계신다, 함께 계신다 해도 입으로 만 하고 함께 계시는 그  분을 인정하는 그것은 안 자랄 수가 있어. 함께 계 신다. 그라면서 '아, 주님이  함께 계시니 이 말을 못 하겠다. 이 말을 하면서 주님이 듣고 이 말을 여게  주님이 듣고 계시는데 주님이 이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이제 주님이 듣고  계시니 이 말을 할 수 없다.' 하여 그 말을 하지 안하고 그 말을 중지하는  고때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 내게 이 감각이 인식이 돼지는 것입니다.

내게 배어지요. 또 이 일은 주님이 지금 나에게 하라고 권면하시는데 이 일을  내가 안 하는 것은 당장 주님에게 배척하는 것인데 주님이 내 앞에 와서 계시고  아 나를 보고 계시고 지금 살피고 계시는데 내 올라라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고게 양심이요, 고게 영감이오. '할 수 있겠느냐?' 이래서 참 하기  힘들지마는서도 안 할라곳 빼돌려서 요리 피할라고 조리 숨을라 해 봤자 그  분을 피해서 숨을 수가었어서. 할 수 없어서, 하기 싫은 일도 하기 어려운 일  이지 마는서도 주님의 안면을 봐서, 제가 주님은 따로 떼 놓고 뭐 자기 의지로  명예로 그런 거 다 썩은 것입니다. 주님이 구와 같이 계시니 주님의 그 안면  주님의 그 주님의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렇게 내가 이 일을 하라고  하신 이 일을 하지 안하면 당신이 어떨 것이냐? 주님의 안 면에 바셔서, 그  분의 눈초리에 쏠려서 그 분 때문에 안할 수 없어 하는 고게 생깁니다. 요렇게  할 것 하는 것으로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연습을 하고 연성을 하고,  또 하지 안할 것을 안함으로서 주님 때문에 안함으로서 연성을 하고, 말을  함으로 안 함으로, 들음으로 아 들을 때에 '주님이 이 말을 듣고서 보자.

어짜는가 보자.' 들을 때에 내가 있다가서 '주님이여 참 이 말하는 것은  저희들이 몰라서 하는 것이니까 용서해 주옵소서' 이라면 주님이 입이 벙긋하이  웃으시는지, 고 말 듣고 난 다음에 내가 저주를 하고 분개할 때에 그 분이  어짜는지 그 분의 눈초리를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함께 살아 계시는  그 분을 보면서 내가 말에 절제가 있고, 또 귀에 절제가 있고, 행동에 절제가  있고. 모두 다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심을 인하여서 그 분 때문에 나에게  피동되는 요 하나 하나의 생활에서 그 분이 나와 동행하는 요것이 자꾸 연습이  되고 연성이 되어 져야 되지 이거 안 되면 여게서 넉넉히 한다고 해도 앞으로  마지막 최고의 승리가 결정될 그때에 그때 가 가지고서 우리가 만일 주님  괄시하면 일생 동안 아무리 아노라 할지라도 마지막에 주님 배반했으면 그만  아닙니까? 주님을 배반했으면 그만 아니겠소? 이러니까, 지금 연습해서  반석같이 든든하다고 해도 그때 그런 일이 닥쳐 놓으면 실지로 닥쳐 놓으면  무슨 일이 될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닥치는 요 현실에서는 물샐 틈 없이 매,사에 이  전부를 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내가 확실히 인정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 때문에 내가 제재 받는 것, 그 분 때문에 내가 자유하지 못하는 것 그 분  때문에 내게 그 분 때문에 내게 충격이 와서 내 자유대로 할 수가 없고 그 분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그 분을 따라서 하게 되는 이 일이 자꾸 연습되는 이  실상에서만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자라가고, 거게서만  당신의 그 무한하신 계약의 능력이 내 행함을 통하여서 내게와 가지고서  역사해서 지극히 큰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요 일 연습하는  것보다 더 외에 큰 일이 없는 줄 압니다.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까짓 거 배울 게 뭐 있소? 배울 게 뭐, 아,  전지자가 내 속에 와 가지고서 주장하는데. 주장하는데, '네 그러면 이거  아느냐?' ' 아, 나 그거 모른다. 모른다.' '와 모르노?' '내게 필요 없기  때문에 모르지 필요 있으면 주님이 알려 줄 거다. 당신이 필요하면 알려 줄  거다.' 내게 필요한 거 알려 주고 필요 없는 거는 공연히 머리 아프게 안 알려  줄 터이니까 내게 모르는 거는 모르니까 좋고 아는 거는 아는 게 좋고 전지자가  내게 필요한 대로 알려 주지 필요 안 하는 거 알려 주십니까?  이러니까, 오늘 밤에는 아무래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 사실을 이  사실인데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다른 데는 안 계시오. 내 현실에만 같이  있어요. 내 현실에만 같이 있는데, 내 현실 내가 물에 빠진 현실이나 불  구덩이에 들어간 현실이나 뭐 세상이 나를 죽일라는 현실이나 내가 어떤 난제를  만난 현실이나 아주 부랑당을 만나 가지고서 모듬벌을 받는 고 현실이나 아주  칼날당한 현실이나 아주 벼락이 위에서 내리 때리는 고 현실이나 어느 현실이나  어느 현실이나 전능하신 이 주님이 주권자 주님이 내가 아는 대로의 주님이 이  주님이 이 현실에 나와 같이 계시니 이 계시는 것을 내가 첫째로 믿고, 그  다음에 그는 나를 구원하시기로 온 주님인 것을 믿고, 구원을 주시고 받는  방편은 고때에 당신이 요래라 하는 고것을 따라서 행한 고것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고것을 찾는 방법을 연습해서 고것만 하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고로,우리는 너무 껍데기로 믿습니다. 너무 껍데기로 믿소. 참  외식입니다. 아, 하나님도 모르고 입으로만 자꾸 내놀리만 될 줄 알고 임으로만  자꾸 말하면 될 줄 아니 입으로 녜가 말을 하고 그와 같이 행하지 안 하기  때묾에 그 말이 너를 정죄한다 했습니다. 어리석소. 자기가 일시 사람에게  인기를 끌고 해 가지고서 오만 웅변 다 품고 이래 하지마는서도 그 말이 자기를  정죄합니다. 그 말이 자기를 정죄해. 이러니까, 자기가 하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에게 고할 것이요, 또 그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행하지 못 해도  증거할 수 있겠습니다. 증거할 수 있으면 자기는 잘 못하면 한 것같이 하면 안  됩니다. 자기는 하지 못하니 간증으로 '우리가 이렇게 합시다'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해야 됩니다.

 뭐 언제가 내가 말하니까 '과거 자랑하지 말아라. 앞으로 어이 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맞지마는서도 과거로 말하면 여러분들 보담은 내가  신앙의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그거 뭐인지도 몰라.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다 절단나 버려 보니까 뭐 돈 몇 푼에도 막 휘떡거리 고 뭐  감정에서도 휘딱거리고 어떤 제게 좀 턴끝만 건드려도 야단이 나고 막  꾸물트리고 쌩쌩하게 살아 있어. 옛사람이 쌩쌩하게 살아 있고 조그마  아직까지도 숨도 안 죽었어. 빨빨해. 날마다 먹이고 기르고 자라는 것은 옛사람  그 놈 기르고 있어. 이러니까, 전부 이 세상 사람이 자기 출세 시키고 입신  양면이 하는 거와 꼭 같은 방편으로 하고 있지 예수 안에 방편으로 다 하지  안해. 예수님의 방편은 십자가로 되는 것입니다. 부인하고 십자가로 되는 건데  그게 아니야, 십자가의 원수로 자기를 기르고 높이고 있어.

 우리가 깨서 진실한 신앙으로 지금 준비할 때지 많이 남지 안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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