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기독자의 생애 열쇠


1982년 1월 19일 화새

 

본문 : 신 28: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안 믿을 때에는 사람의 사는 길이 한 길뿐입니다. 안 믿을 때에는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의 사는 길이 한 길뿐입니다. 한 길 곧 육신으로 사는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택한 중에서 출생된 자는 때가 되면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중생 하게 됩니다. 중생 된 자는 그때부터 사람도 둘이요 생활도 둘입니다. 하나  더 생긴 것은 영의 사람이니 곧 성령으로 더불어 사는 생활이 하나 더  생겨졌습니다.

 이래서 속에서는 성령으로 사는 이 생활을 하려고, 성령으로 사는 생활이 곧  중생 된 영이 사는 생활입니다. 중생 된 영과 성령은 영원히 떨어지지를  못하도록 결합된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영생으로 중생 됐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은 그때부터 영으로 사는 생활과 육으로 사는 생활 이 두  생활은 항상 시비를 해서 그 속에 끼어 있는 우리의 심신이라는 이 육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과 중생 된 영으로 살면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이고 또  성령과 영을 배반하고 심신 이것이 주장돼 가지고 살 때는 육으로 사는 것인데  이 생활은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영으로 살 때도 우리의 이 심신은 거기에  이용되고 육으로 살 때도 이 심신 이것은 이용이 됩니다.

 육으로 사는 것은 성령과 영을 벗어나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이 심신이  붙들려서 사는 것을 가리켜서 육의 생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성령과 중생  된 영에게 붙들려서 우리 심신이 살 때에는 영의 생활이라 속사람의 생활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요점은 뭣인고 하니, 언제나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우리의 이 마음 고기덩어리라는 이 심신은 거기에 이용이 되는데 이용이 되는  이것이 성령인 하나님과 중생 된 영 참 자기, 이 둘에게 이 심신이 이용이 돼서  이 둘과 이 심신이 합작돼 가지고 살 때에 속사람의 생활입니다.

 또 이 심신이 누구하고 살 때에 옛사람의 생활 육의 생활이 되는고 하니 이  심신이 악령에게 붙들려서, 악령은 사탄이요 마귀입니다. 악령에게 붙들려서, 또  악성에게 붙들려서, 악성은 뭣이라 했지요? 악성은 뭣입니까? 악성을 몰라요?  악성이 자기중심의 것인데 이것이 원죄입니다. 한없이 말했을 것인데. 악성은  원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와 아담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될 것들이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 저들 중심으로 사는, 하나님 배반하고 저들 중심으로 산 그것이 원죄인데  이 원죄를 발표해서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사람이 선악을 정의하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됐다"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면 신 당신을 위하지 않으면 악, 당신에게  속하면 선 당신을 배반하면 악 이렇게 하나님이 규정 지우시는 것과 같이 인간이  그렇게 됐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돼서 저를 위하면 선이라 저를 배반하고  멀리하면 악이라.

 이래서 인간이 하나님이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이렇게 됐다, 인간이 하나님 위치에 서서 하나님처림  자기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평가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됐다" 그게 원죄입니다. 악성이라는 것은 자기중심의 것인데 그것이  원죄입니다. 원죄.

 또 악습이라는 것은 이것은 뭣인고 하니 자기중심의 행동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이러니까 이것이 그만 습성이 됩니다. 원죄 생활한 그것이 한 번 두 번  연습을 하고 보니까 그것이 능숙 익숙해져 가지고 그것이 그만 습관이 돼  버렸습니다. 그걸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기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육체의 생각을 가지려고 안 하면 이 세 가지를 대적해서  싸워야 됩니다. 육신의 생활 이것을 안 하려고 하면, 육신의 생활은 우리가 밥  먹고 옷 입고 하는 게 육신이 생활이 아니오. 육신의 생활이라 말은 우리의  심신이 악령 악성 악습에게 붙들려 가지고 사는 그것이 육신으로 사는 것이요  육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려고 하면 이 세 가지를 언제든지  대적을 해야 됩니다.

 이제까지 술 먹던 습성이 있는 사람은 술을 먹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 줄  알지마는 그 술 먹는 일을 안 하고 못 견딥니다. 그건 습관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나쁜 동무인 줄 알고 그 동무를 사귀지 않아야 될 줄 알면서도  아침 먹으면 한번 가서 사귀고 두 번 점심 먹으면 또 저녁 먹으면 이렇게 가서,  나쁜 동무라도 가서, 나쁜 동무인 줄 알고 사귀면 번연히 신앙에 손해 가는 줄  알아도 그 나쁜 동무를 가서 한번 만나야 되어지지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거요. 그것도 하나 습관입니다.

 또 이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공장에서 일을 하든지 해도 가다가 마음이  답답하면 그때는 한번씩 길거리를 쑥 돌아다니면서 바람 한 번 쑥 쐬어야  되어지지 그 바람 쐬우는 것이 반드시 그러다 보면 뭐 이런 것 저런 것 만나  가지고 시간도 허비하고, 내가 바람 쐬러 돌아다니는 것, 나쁜 동무 사귀러  돌아다니는 것, 며칠 만에 또 살 것도 없으면서 시장을 한 바퀴 삥 둘러야 되지  안 둘러면 안 되는 그런 것 다 자기 습관이라 말이오, 습관. 무엇인가 사람마다  나쁜 습관이 있는데 습관 이놈을 내가 이겨서, 습관 네까짓 놈이 아무리 내  마음과 몸뚱이를 끌어서 과거대로 먹는 습관, 노는 습관, 또 어디 구경하는  습관, 걸어다니는 습관, 뭐 습관이 여러 가지 습관이 있는데, 버릇 말이오, 그런  나쁜 버릇. 습관이 있는데 그것이 아무리 해도 내 심신이 그것에게 복종하지  않고, 뭐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도 복종하지 않고 그렇게 그걸 이겨야 비로소  육신의 생활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 이기기가 쉽지 않소. 버릇이 돼 가지고  있는 것, 또 구습, 말 버릇, 또 이런 저런 행동 버릇, 좋은 습관도 있지마는  나쁜 습관도 있는데 나쁜 습관 그것이 악습입니다.

 악습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서 한 일이 한번 두 번 연습돼 가지고 그 일이  자꾸 익숙히 되는 그것은 참 좋은 습관입니다. 그러나 악습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버리고 자기중심으로 하는 그 행동이 한번 두 번 자꾸 연습됐다 그  말이오. 그게 악습인데 그 악습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악습을 이겨야 되고, 또 악성이라는 것은 원죄, 자기중심으로 사는 그 성질,  자기중심으로 사는 그 성품 말이오. 자기중심으로 사는 성품, 이것은 속에  들었습니다. 악습은 자기 행동에서 만든 것이고 악성은 자기 속에 이것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성품. 이것을 또 이겨서 이놈이 하자 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는 악령입니다. 악령은 보면 참 이것이 어떻게 민활한지 사람을 이렇게  피워서 망칠 자는 이렇게 꾀우고 저렇게 꾀워서 망칠 자는 저렇게 꾀워서  망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 이래 보면 가만히 마귀란 놈이 옆에 있다가  다른 사람이 어떤 말 한 마디 하면, 그 사람의 그 성질에 거리끼는 말합니다. 그  사람 형편에 거리끼는 말합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딱 하면 마귀가 옆에 딱  앉았다 말하기를 '봐라, 너를 지금 공격하고 있다. 너를 훼방하고 있다. 저 사람  너의 대적이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평소에 너를 어떻게 대적 한지 아나?'  마귀란 놈이 이래 감화를 주면 그만 그 말 한 마디 할 때에 그만 그 사람이  마귀에게 침노를 받아 가지고 '그래, 나도 이제 속으로 내가 어떻게 하겠다.' 딱  죄악의 마음을 딱 품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되면 이제 악령의 감화를 받아서 악령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성령의 감화는 '그 사람이 너에게 그 소리를 할 때에 네가  그 말이 맞은 말이면 네가 고쳐야 될 것이고, 그 말 하는 것이 네게 옳은 말이면  네가 고쳐야 되니까 네 선생님이 됐으니까 선생님으로 모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네가 고쳐야 될 것이고, 네게 그런 것이 없는데 그 사람이 모르고 그렇게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나를 모르고 말한다 해서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될 것이고, 저  사람이 너를 미워서 해하려고 저와 같이 삣고 깎으려고 저렇게 한다 그러면 네가  참고, 몰라서 말하는 데에 용서를 하면 하나님이 너를 모든 것을 용서하실  것이고, 그 사람이 너를 미워서 그렇게 할 때에 참고 견디면 하늘에 상급이 있을  것이고, 그 사실이 있으면 고칠 것이고, 나쁘게 그렇게 말하는 건 네게 모든  면이 유익 되는 것인데 이렇게 유익을 취하라.' 성령은 그렇게 말하는데, 악령은  '분하다 그가 너를 그러니까 네가 복수해야지. 너도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지.' 이렇게 하는 이것이 악령인데, 악령을 이기고 악성을 이기고 악습을  이겨야 내 심신이 그놈의 종이 되지 않아야 옛사람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사는  사람, 육체의 생각 이것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 이 일이 싸움 없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얼마나 싸움을 해야 이게 되어지지 저절로 영으로 살겠다  성령으로 살겠다 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니오. 육신으로 사는 이것을 얼마나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산다, 영으로 산다 이러면 대개는 자기 중생 된 영으로 산다 말이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하는 그때는 영 말했지마는 하나님의 영 성령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살려고 할 때에는 자기의 심신이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을 써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이 신앙 양심입니다. 이렇게 가지면 그 다음에 자기의  중생 된 영을 만나게 됩니다.

 중생 된 영을 만나면,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양심 생활이  중생 된 영까지 연결이 되면 아주 그 생각이나 용기가 강해집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성령에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그 생활이 자기에게  확신이 생겨져. '이래 살아야 된다.' 확신이 생겨지고, 또 '이렇게 살 때 내가  어떤 희생을 당해도 살아야 된다' 마지막에는 성령의 충만함이 되면 '이 일을  위해서는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들여서라도 이대로 살아야 된다.' 이렇게  되어지니까 그 다음에는 악령이 침노를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기 전에는 한 생활만 했지마는 믿고 난 다음에는 두 가지  생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믿기 전에는 한 역사가 우리를 끌었지만 믿고 난  다음에는 두 가지 능력이 우리를 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싸움이 있어야  됩니다.

 싸움이 없이 그저 주위 환경 보고 환경 되는 대로 돈 닥쳤으면 돈 생각하며  살고, 사람 당했으면 사람 생각하며 살고, 기쁜 일이 닥쳤으면 기쁜 일  생각하면서 살고, 또 부애나는 일 있으면 부애나는 일상대해서 살고 이와 같이  그저 주위 환경에 끌려서 사는 대로 살면 저는 다 육신으로 사는 것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밖에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위 환경에 끌려서 자기 주위 환경에 소산의 인물이 되면,  주위 환경에 피동 되는 인물이 되면 그 사람은 벌써 옛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옛사람으로 사는 이 생활을 자기가 안 하려고 하면 자기가 주위 환경에 끌리는,  주위 환경대로 끌리는 이 생활을 이것부터 벗어나야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을  벗어나지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면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 주위 환경, 다시 말하면 자기 현실이라 말이오. 자기 현실대로 사는 이  생활을 안 하려고, 현실대로 사는 생활을 하지 않으려고, 이 현실에게 피동 되지  않으려고, 이 현실을 다스리려고, 이 현실에게 다스림을 받아서 이 현실에  지배를 받아 이 현실대로 피동 되지 않고 이 현실을 자기가 다스리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 이 싸움을 싸워 현실을 다스리고 현실대로 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것이 뭐이냐? 에덴동산에서 "동산을 다스리라" 하는 그것입니다.

 현실대로 자기가 살려고 하지 않고, 현실이 나를 기쁘게 하면 내 기쁘고,  현실이 나를 부애 나게 하면 내가 부애 내고, 현실이 나를 섭섭하게 하면 내가  섭섭하고, 현실이 나를 놀래게 하면 내가 놀래고, 현실이 나를 우쭐하게 하면  우쭐해지고, 이것 다 현실에게 피동 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것은 벌써  옛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현실에 피동 되지 않으려고 하면 그 다음에는  악령 악성 악습이 들어서 자꾸 현실대로 살라고 나를 충격을 주고 충동을  줍니다. 그러니까 현실대로 살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써 봤자 제가 꼼짝 못하고  현실대로 살라고 권장하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것에 몰려 가지고 옛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옛사람으로 살지 않으려고 하면 자기 현실에서 세 가지를 하라  했는데, 현실에서 세 가지 하라 했는데, 어제 세 가지 하라고 말했는데 그 세  가지가 뭣뭣이지요? 첫째?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그만 이  현실대로 내가 안 살란다고 둘이 단둘이 암만 붙어서 애써 봤자 마지막에는 제가  지고 맙니다. 현실에 어떤 현실이 자기에게 닥쳤든지 '내가 현실 생각하면 나는  죽는다.' 이 현실에서 현실을 생각지 않고 그만 퍼뜩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이 현실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고 명령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계명 생각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둘째는  뭣입니까? 둘째는 뭐 하라 했지요? 나를 구속하신, 이제 생각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사랑합니다. 왜? 내가 자꾸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계명을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 계명은 나에게 영생을  주는 법칙이기 때문에 그 법칙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그 계명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려고 애를 쓰니까 이 현실은 보이지 않고, 현실은 보이지 않고  이제는 현실 속에 있으면서 전실을 떠나서 하나님과,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과 그  계명을 생각하니까 이 하나님과 이 계명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이  계명을 사랑하다가 보니까 '사랑하면 내가 어디까지 사랑해야 되겠느냐? 이  사랑이 언제까지 사랑해야 되겠느냐?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랑해야 되고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이 그러면 절단 나면 어쩌느냐? 그게 절단  나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계명 사랑하는 것은 내가 버리지 않아야지. 모든 걸  다해서 사랑해야 되지.' 이것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그러고 난 다음에, 이 세 가지가 돼 가지고 그 다음에 이제  생각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 가지를 갖추어 준비를 해 가지고 그 다음에  자기가 생각하고 접선해야 될 것이 무엇이지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 계명 생각하고 사랑하고, 모든 것 다해서 사랑하고 난 다음에는  뭐입니까? 뭘 착수해야 됩니까? 뭘 착수해야 되지요? 몰라요? 이러면 안 돼. 뭘  접선해야 됩니까? 네, 자기 현실. 그 다음에 자기 현실을 이제 접합니다.

 하나님과 그 계명과 나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것이 교회요. 이것이  새사람이오. 이래 가지고 그 현실을 만납니다. 현실을 딱 접촉한니다. 그 사람이  나를 욕을 합니다. 그럴 때에 이렇게 준비해 가지고 현실에 나를 욕하는 현실을  만나면 '저 사람이 나를 저래 하니까 내게 저렇게 뭐 욕 얻어먹을게 있느냐?  찾아보자.' 그 사람에게 분개한 것보다도 자기에게 그런 걸 치료할 것이 있는가  찾아서 지금 급히 찾아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까 '그 사람이 혹 잘못 알고 나에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여기에서 어째야 되겠느냐? 거짓 걸로 핍박하면 참고  견뎌라. 하늘에 상급이 크다 했으니까, 이게 여기서 지킬 계명이니까 여기에서  내가 참고 견뎌야 되겠다.'  또 좀 더 생각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명을 더 생각하니까 그 사람이 너를  미워하니 어째야 됩니까? '나는 사랑하라고 했구나. 이 사람이 나를 미워하니  나는 사랑해야 되겠구나.'  또 하나님과 그 계명을 생각하니까 재촉을 하기를 네가 그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어쩌라 했습니까? '그 사람에게 어려움이 있거든 네가 도와 줘라. 또  위해서 기도해라.'  이러니까 분명히 그 상대방은 나를 해하려고 죄가 왔고, 죄뭉텅이가 왔고, 악  뭉텅이가 왔고, 마귀 뭉텅이가 왔는데 그 뭉텅이가 와 가지고 내게는 얼마나  좋은 것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자, 억울한 데 참았으니 하늘에 상급이 있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데 사랑하라  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할 것이며, 내가 그 사람을 도우니 원수를  도우니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도을 것이며,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축복할 것인 가?  거지같은 무능한 내가 그 악인에게 대해서 한 이것이 전지전능자가 내게 대해서  할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 해 가지고 전능자가 내게 할 수 있도록, 힘없는 내가  그 일을 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시도록 이러니까 하나님하고 나하고 품앗이  한 일이 됐다 말이오, 품앗이.

 품앗이란 말 이런 말도 시골에서 난 말인데 좋은 말인데 이 도시 사람은  품앗이를 모를 거라. 품앗이는 내가 그 집 일 하루 해 주고 그 사람들이 내 일  하루 해 주고 하는 그것이 품앗이입니다. 날품앗이. 날품앗이인데, 나는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그 사람에게 하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내게 대해서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악인에게 꾸이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주는 것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방편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유익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서 할 일이 뭐이냐? 세 가지 할 일. 세 가지를 하면 그  현실에 대해서 후회할 것이 없는 참 상급이 되는 그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사람도 자기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해야 자기 구원이  되어지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이 세 가지를 해야 자기 구원이 되어지는데 우리  한국에 있는 사람은 두 가지를 알고 있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알아야  됩니다.

 두 가지 알아야 되는 것을 어제 말했는데 하나는 뭣이라 했지요, 뭘 알아야  돼요? 세계에 제일 위급한 자리에 섰는 것이 우리 한국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제일 위급한 자리에 섰는 것이 한국이오. 폴란드니 하는 그런 나라는  우리 나라 모양으로 그렇게 위급하게 서지 않았는데 그것은 뭐 별스러운 일로  생각지 않았는데 뜻밖에 저렇게 됐지마는 한국은 벌써 월남보다 한국이 먼저다  먼저다 이렇게 말하고 한국은 그보다도 조건이 빨리 적화될 수 있는 세계에 제일  일호 되었던 것이 이것이 그래도 자꾸 밀려나오고 있습니다.

 세계가, 한국의 위험성이라, 적화의 위험성이라, 남침의 위험성이라 하는 이  무력 남침이라는 이것은 세계 각국이 제 일호로 한국이 위험하게 돼 있다 하는  그 호수를 일호로 정하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 정계에 좀 뜻을 둔  사람들은 다 보고 세계 각국이 다 그렇다고 판정을 합니다.

 일본 나라서는 이걸 알면서도 우리로 더불어 서로 협조하지 않기 위해서  기피하기 위해서 '뭐 그렇지를 않다. 그렇지를 않다.' 이렇게 말을 하다가 원청  세계 각국에서 '그 판단은 틀렸다. 그 의견은 틀렸다. 그렇지 않다.' 이러니까  세계와 저희들이 대립될 판이 되니까 한국의 위험성이라 하는 것을 저희들도  인정을 하게 됐습니다. 벌써 여러 해 됐소. 한 십 몇 년 됐는데 그때에, 내가 그  이름은 말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 대통령 후보로 나왔는데 남침의 우려성은  하나도 없다 하는 그것이 거기 한 조목에 들었고, 교육비를 하나도, 자기가  대통령 되면 하나도 백성들에게 부담하지 않고 그건 전부 다 국가에서 부담해서  하겠다 이렇게 하고 다섯 가지를 냈는데 그것 지금 내가 두 가지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나는 그 사람을 보지도 않고 했지마는 그것이 전부 사람을  꾀우는 기만 정책입니다. 이 사람이 대통령 되면 우리 나라 망한다 하는 것을  내가 그때에 많은 말을 했었습니다. 했었는데 그때 그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고  미혹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결과가 지금 어떻게 됐으며 지금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가 좀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오.

 여러분들이 봐도, 지금 우리가 신문을 볼 때에 것은 신문을 뭐 이런 것 저런  것, 산업에 대해서도, 또 무슨 재미있는 무슨 이것 뭐 노라리 풀이에 대해서도  볼 수 있겠지마는 우리가 볼 것은 우리는 세계에 제일 위급한, 위급하고 다급한  이런 자리에 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첫째 보는 것이 이북이 어떻게  하고 있나, 세계 국제에 이 형편이 어찌 돼 있느냐? 이것 두 가지 보면 그  나머지기는 보나 마나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제일 위기에서 있는 우리인데 우리가 자꾸 옆에서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긴장을 풀어야 된다, 긴장 완화를 해야 된다, 긴장 완화를 해야 된다.

이러는 것 우리 죽이는 소리입니다.

 다른 강대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은 하늘나라의 구원만 바라서 그 와 같이  하지마는 우리는 거기에다가 현재 육신도 제일 위급한 자리에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렇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잊어버리지 말고 알아야 될 것은 세계에 제일 위급한 자리에  서서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공포를 가지고 두려워 떨어서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갈 건가?  그러면 여기에서 아예 공산주의화 될 터이니까 적화될 터이니까 지하 운동 하는  그들과 손을 잡아 가지고 그때 나를 도와 달라고 이러면서 지하 자금을 대면서  그들과 손을 잡을 것인가?  그러면 나중에 그리 될 때에 뒤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 반공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입에 내지 못해. 내면 옆에 꽉 보고 있기 때문에 '내면 네가 먼저 희생을  당한다.' 고양이 목에 방을 다는 것처럼 '희생을 당한다.' 이러니까 이 말을  입밖에 내지를 않습니다. 이런 세대가 요새요. 다 알고 있소.

 이걸 너무 이것 반공해서 공산주의에 대해 많이 말을 하고 반대하면 이것 벌써  꽉 깔려 있는데 내게 집중을 하고 암살을 당하고 이리 될 터이니까 이것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부 정치가들이요 목사들이요 다 지금 이래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 있는 걸 여러분들이 지금 모른다 그 말이오.

 자, 그러면 그렇게 해서 제가 나중에 되면 '내야 어디 뭐 내가 자네들한테 욕을  했나, 어디? 반공을 말했나, 어디? 내가 했나?' 그게 피할 길인 줄 알고 하는  그자도 어리석은 자요. 알겠습니까?  '자, 여기에는 이래도 안 된다 저래도 안 된다. 아무데도 갈 길이 없다. 나는  위험천만 자리에서 있다. 어디로도 피할 구멍도 없고 아무 길도 없고 방편도  아무 것도 없다.' 자꾸 이렇게 되어질수록 믿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왜 좋습니까? 이러니까 안절부절로 자기가 마음에 겁이 나고 지금 죽을  지경이니까 어디든지 뚫고 나갈 길을 찾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이것이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이리가 안  보이면 양이 뿌덩뿌덩 늘렁늘렁하고 목자야 가거나 말거나 목자가 불러도, 암만  휘끼 소리로 불러도 부르거나 말거나 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저 놀고 싶은 대로  놀고 이러지마는 저기에 있다가 이리 한 마리 봤습니다. 이리를 보니까 양이  깜짝 놀라서 이리 보고 난 다음에 뚤렁뚤렁하다가 목자가 저기 있다 말이오.

달아납니다. 이리 한 마리 본 것보다 두 마리 본 것, 두 마리 본 것보다 세 마리  본 것, 봤으면 그 양이 가다가 엎어질지라도 죽자 살자 하고 목자에게로 달릴  것이라 말이오.

 이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현재가 얼마나 위급하고 다급한 이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복이요 은혜요.

 이것을 잊어버리도록 해서, 도무지 요새 마구 설교한다고, 뭐 어쨌든지  설교한다고 해 가지고 방송에 뭐 계속해 끌어 나오고, 설교를 누가 그 설교  들으려 하는가? 돈을 들여서 자꾸 설교를 이것 박아 가지고 자꾸 보냅니다. 그것  돈 들 건데. 봐야 볼 것도 하나도 없는 것, 다 뭐이냐 하면 이런 위급한 것 이것  다 냅두고 '우리는 언제든지 평안하고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아무 문제없는  평안한 자리니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이것만 준비해라. 이러면 복 받고,  저러면 돈 벌고, 저러면 사장 되고, 저러면 성공하고 출세한다' 이 설교, 또  하나는 '자, 이렇게 평안하니까 하늘나라 갈 준비나 잘 하자.'  이래 놓으니까 사람들은 자꾸 퍼져 자빠져서 엉뚱한 소리만 큰소리만 뻥뻥  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무슨 남침이나 돼서 이런 일이 나면 두 손 들고 공산주의  깃대 들고 '우리는 환영합니다.' 하는 예수교가 얼마나 많을는지, 교회가 얼마나  많을는지, 신학교가 얼마나 많을는지? 과거에도 그랬소.

 이러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긴장을 시키려고, 하나님께서는  위급하니까 목자에게로 달려 오라고 하기 위해서 이리를 자꾸 내세우고 '이리가  넘어온다. 넘어온다.' 자꾸 이래 하고 있는데, 오늘 교회들은 이것을 잊어버리게  해서 안심을 줘 가지고 여기 대해서는 생각도 없이 이렇게 하게 하는 것이 현실  교역자들 가운데에 많이 있으니 이것이 망할 교역자요, 그 사람이 도적이요  강도요 이리입니다.

 미가서에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미가서 3장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맷정을 쓰면서도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누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고로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고 시온은 수풀 언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첫째로 우리가 알고 있을 것이 우리는 세계에 제일 위급한  자리에 서서 있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구멍으로 빠져 나갈 건가? '야, 돈 모아  가지고 먼저 재산부터 도피시켜 놓고, 미국으로 도피시켜 놓고 일본으로  도피시켜 놓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자.'  일본에 있는 교회들은 깨어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들의 교회는 깨어  있습니다. 거기는 밤낮으로 잠을 옳게 못 잡니다. 지금 조련의 운동에서 그저  오늘 생명이 어찌 될지 내일 생명이 어찌 될지 이렇게 생각해고 긴장해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지금 아주 잠꼬대하고 잠자고 있소.

 이러니까 '재산 도피해 놓고 내가 가야 되겠다.' 하나님이 여기에서 이리를  보이면서 목자에게로 오라고 독촉하니까 엉뚱이같이 주님에게로 달라붙지 않고,  신앙으로 달라붙지 않고 엉뚱하게 딴데로 망명을 간다, 피난을 간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손이 짧아서 거기에 가서 때리지 못하겠소? 거기에 가 가지고는 변동을  못 합니다. '이놈, 네가 피해서 왔지?' "네가 예루살렘에 있으라 하니까  애굽으로 피난 갔지? 내가 애굽에 미리 가 가지고 애굽에 있는 모든 고통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이렇게 말했어. 성경에 그래 놓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에게 대해 그래 한 것이 우리의 거울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생각하고 알고 있어야 되고,

 둘째로는, 이렇게 되면 우리가 놀라고 달리 뭐 피난하고 어떻게 낙망을 할  것입니까? 아니오. 오늘 아침에 본 말씀과 같이 "원수가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일곱 길로 패하게 하겠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피 흘려 주신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소. 창조주이신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소. 대주권자 주재자이신, 만왕의 왕이신, 우리를 사랑하되 생명을  버려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있으니까 이분이  있으니 이분의 품에 안기면 문제가 없어.

 이분이 우리를 돕는다면 인간이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리요" 이러니까 우리의 살 길은, 이분이 우리를 돕도록  하는 길에는 무엇입니까? 이분이 우리를 돕도록 하는 길에는 그것입니다. 이제  세 가지. 우리 현실에서 어떤 현실에서든지,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이래  대는 거기에서도 '아이구, 독침이 왔으니까 이 독침에 대해서 어떻게 할꼬?'  그러면 죽습니다. 그러면 헛일입니다. 독침이 와 이럴 때에. 거기에서 하나님과  그 계명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공간을 주관하시고 활동계를  주권하시는, 독침을 가지고 이만치는 왔지마는 그 다음에 이리 더 오지 못하게  할 것이 주님에게 있어. 이 활동계를 당신이 혼자 주권하고 있어. 이분이, 내  구주이신 이분이, 모든 걸 주권하시는 주님이 여기에 계신다. 나와 함께 계신다.

그러면 이분의 명령이 뭐이냐? 여기에서 내가 예수 믿는 증거를 똑똑히 해야  되겠다. '여보, 형제도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오.' 허, 믿으면 이런다 하는데.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오' 이게 그 계명이라.

 그러고 난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계명을 사랑하는 것 이것은  얼마나 할 것이냐? 내가 죽어도 하나님과 이 계명을 내가 사랑해야 되겠다.

죽든지 말든지 뭐, 죽든지 말든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계명대로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내편이 되셔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자, 내 생명이 그때에 다 돼서 죽을 때가 됐으면 내가 어찌 됩니까? 어찌  되지요? 죽으면 뭐 됩니까? 순교입니다. 이미 죽는 죽음 그 폐물인 죽는 죽음  버려야 될 죽는 죽음인데 그 죽음을 일생동안 신앙생활 한 것만한 양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또 그때에 아직까지 죽을 때가 되지 못하고 생명이 남아 있으면 어찌 됩니까?  어찌 됩니까? 큰 기적이 나타나지요. 그게 꺼꾸러지든지 그리 안 하면 독침으로  암만 찔러봤자 독이 나오지 않아서 "독한 것을 마시나 상하지 아니하리라" 암만  해노 이랬는데, 그것 제딴에는 이러고 나니까 뭐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도 아무 것도 없고 '너 예수 믿어라.' 이러니까 이 사람은 거기에 그만  기합이 돼 버린다 말이오.

 '이거는 분명히 이런데 이것 효력이 없는 것 보니까 하나님 계시는가 보다.'  그러든지, 그리 안 하면 다니엘에게 사자 그게 뭐입니까? 그것 한가지라. 암만  그게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해하지를 못해. 딱 오그라 붙어 버리니까 꼼짝을  못한다 그말이오.

 사자란 놈이 움키려고 애를 썼는데 움키기는 커녕 발톱도 다 어디로 달아나  버렸지, 이빨도 달아나 버렸지, 이러니까 와 가지고 움키니까 툽툽하게 호랑이  담요에 말이지, 호랑이 가죽, 호피 담요에 턱 안겨 가지고 뜨뜻하게 이러니까,  '다니엘아' 다리오 왕이 '다니엘아' 이러니까 '예, 만세수나 하옵소서, 왜  부릅니까?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구, 네가 살았나? 너희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더냐?' '예, 내가 죄 없는 것과 또 왕에게도 해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나를 보호했습니다. 내가 이 하나님의 구원 얻으려고 내가 일생  동안 죄 안 짓고 살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보호했습니다.' 그렇게 다니엘이  대답했다 그거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 속에 들어갔지만 불이 못 태우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형식계시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이렇게 역사하신다, 불 속에 들어가면 피해 나올 수 없는 줄 알지마는  거기에서도 하나님은 용납시킨다, 사자구덩이 던졌으니까 거기에는 피할 길이  없는 줄 알지마는 거기에서도 피할 길이 얼마든지 있다.

 이러니까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이 세 가지를 왜 생각하게 됩니까?  되는 것은 '우리 입장이 어렵다. 다른 길에는 피할 길이 없다. 천하에 제일  위급한 입장을 내가서 있는데 여기에서는 우리 하나님의 돕는 이 길밖에는 없다.

이분밖에는 우리를 도울 자가 없다. 이분밖에는 이 공산 세력 아래에서 도울  자가 없다. 이러니까 이분에게 도움을 받는 데는 이 세 가지를 해야 된다.'  현실에서 주님과 그 계명을 생각하고,  다음에는 주님과 계명을 내가 사랑하고,  다음에는 주님을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고 다해서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이것이면 다라.

 그런데 이 생활을 하려고 하면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중생된 새사람을  자꾸 먹여서 새사람이 힘이 있어야 이 일을 잘하게 됩니다. 새사람을 힘있게  하려면, 새사람이 숨 못 쉬면 죽습니다. 새사람이 숨을 쉬어야 됩니다. 새사람이  숨을 쉬어야 되는데 새 사람이 숨쉬는 것이 위입니까? 기도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생각하고, 구속함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자존하신 분이 자존하신 사랑으로, 자존하신 기쁨으로, 자존하신 뜻으로 작정돼  가지고 했는데 그 일이, 모든 것을 그를 위해서 예정하고 창조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것, 하나님에게 내가 잘못된 것 있으면 자복하고, 필요있는 것이 있으면  간구하고, 또 하나님에게 의논할 것 있으면 의논하고,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  감사하고, 이게 기도라 말이오. 기도 이것이 새사람의 호흡입니다. 새사람은 이  기도하는 이것이 새사람의 숨쉬는 호흡이오.

 호흡해야지, 또 그 다음에는 뭘 먹어야 안 됩니까? 숨만 쉬면 됩니까, 자꾸?  먹어야 되지, 먹는 것이 뭣입니까?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들은 말씀도  새김질하고 또 성경 말씀도 자기가 읽고 새김질하고 이렇게, 기도하고 성경 보고  성경 말씀 새김질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또 운동이 있어야 되지 운동 없으면 안 돼요. 자꾸 운동을  해야 됩니다. 운동을 안 하면 이 모든 게 굳어져.

 며칠 전에, 아직도 내가 치료가 다 안 됐어 그만 자꾸 가만히 앉아서 뭐 성경  보든지 기도하든지 이러고 있으니까 그만 이게 굳어졌다 말이오. 이 지체가  노인네들은 굳어져. 굳어졌는데, 뭣이 안마 해 가지고 그래서 내가 안마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하니까 뭐 손을 대는데 아파 못 견디겠어. 여기도 아파서 못  대고 뭐 손을 못 대겠어, 그래 인제 어디 어디를 다 배워 가지고 난 다음에는  혼자서 거기 다 만지니까 이래. 이래서 지금은 혼자 아무 데를 이래 만져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활동이 자유롭게 되어지고 괜찮아져.

 그래 그이가 말하기를 운동을 안 하면 자연히 그것이 굳어지고 굳어져 가지고  다 굳어지면 죽는답니다. 그것도 말이오. 굳어지지 않도록 운동을 하라 해.

 우리는 운동은 뭐이냐? 새사람의 운동은 뭐입니까?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이  운동이오. 말씀대로 행동하는게 뭐입니까? 말하자면 운동은 전도 하나만이  운동입니다. 전도 하나만이 운동이오, 전도. 전도 아닌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운동이 아닙니다. 전도가 운동이오.

 자기가 공장에 가 가지고, 말씀대로 산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그것은 운동이 안 돼. 말씀대로 살되 '내가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를 빛으로 보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빛을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주님에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기 위해서, 내가,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하나님께 욕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이 복음 운동의 그 정신을 가지고 자기  가정에서 말씀을 지키든지 어디서든지 지켜야 이게 운동이 되어지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그것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자타의 구원을 생각지 않고 말씀대로  지키는 그것은 아무 운동이 안 됩니다. 운동이 안 돼요.

 이렇게 새사람이 호흡을 쉬지 않고 호흡을 해야 되고,  음식을 먹어야 되고,  운동을 해야 되고,  이 세 가지를 하면서 자기 위급한 것 생각하고,  여기에서는 하나님 외에는 구원할 자가 없는 것을 생각하고,  이럼으로 현실에서 하나님과 계명 생각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과 계명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계명을 사랑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기 전부를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킬 용기가 나옵니다. 자꾸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살  길은 이것이오.

 이러기에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과 그 계명을 생각하는 것 외에 돈 생각이  나거들랑 공산주의가 자기 모가지를 끊는 이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공산주의에게 내 모가지가 끊겨진다.' 바로 이것이 공산주에게 내 모가지가  끊겨지는 것이요, 내가 그 칼에 찔리는 것이요, 따바리총에 맞는 것입니다.

 그때에 자기 현실에서 뭐 인간이든지 사건이든지 돈이든지 그것 생각지 않고  암만 그를 접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 계명 생각해서 그  계명대로 하는 그것이 이 전쟁을 이기는 것이요, 내가 평안한 자리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요,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런 것을 알고 앞으로 그런 것을 닥칠 때의 그 결과를 생각하면서 지금  계획도 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는 제일 급선무요. 이것이 방송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설교가 방송에 나오면 사람들이 '왜, 긴장을 다 완화를 해 가지고  여러분들은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니 안심입니다. 이렇게 기뻐 즐거워할  수 있는 이 사람에게 끓는 물 찌트리듯이, 끓는 물을 찌트리듯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걱정되는 이런 말 하는가?' 하면 귀신이요 마귀요. 여러분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안심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 형편을 바로 보고  놀라 떨면서 하나님 품속에 안기고 난 다음에 안심을 해야 됩니다.

 오늘은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낸 것과 같은 양이 이리 속에 있는데 목자에게로  안 가면 저는 삼켜져 버립니다. 목자에게로 가지 않으면 삼켜져 버리요.

이러니까 우리가 천하에 세계에 제일 불행스러운 입장이라 할 수 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일 행복스러운 입장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들이나 권찰님들이 심방을 가면서도 이 사람 구원하겠다 그것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이런 위기에 있으니 내가 이 일을 주의 일을 이걸 알뜰히 해야  주님이 나를 알뜰히 돌아봐 주시지.' 내가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내가 돈만 보고  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예수 믿는 빛을 나타내야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안보  해 주시지.'  이 큰 문제, 이 원수의 손에서 구출 받기 위해서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맺는  이것이 동기가 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고, 이것이 나에게 충격 자극 주는 힘이  돼 가지고 사는 것이 남한 교회로서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이 문제 해결 짓지 않고 돈 많이 모아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소? 회사가  튼튼하면 무슨 소용이 있소? 가정이 재미있으면 무슨 소용 있소?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 큰 문제가 해결이 되고 난 다음이라야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만 잘하면 하늘나라의 구원은 저절로 돼. 벌써 이 신앙이 되면 순교자의  신앙이오. 이것만 잘하면 천국 구원은 다 됐어,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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