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의 생활관

 

1988. 3. 20. 주일오전

 

본문 :누가복음 16장 9절-10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는 ‘내가’ 하신 분은 주님이 직접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신 것은 우리 모든 택한 자들  전부를 가리켜서 너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 모든 중생된  자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은’ 범죄로 인해서  멸망 아래에 있는 모든 물질계의 것들을 총칭해서 말씀합니다. 불의의 재물은  사망과 저주를 받은 물질계의 것이라 그 말입니다.

 재물이라면 혹 재산으로 그렇게만 좁게 보기 쉽습니다. 재산이 아니고 이  물질계에 있는 것은 산도, 들도, 별도, 달도, 바다도, 이 지구도, 우리 마음도,  몸도, 마음에 몸에 온갖 그 실력도, 자기의 지위도, 모든 소유의 재물도,  건강도, 지식도 하나 빠짐없이 전부를 가리켜서 불의의 재물이라 그렇게 여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저주 아래에 있는 이 우주는 다 불탑니다. 불이 타서 원소로 한 번은 다  돌아갑니다. 또 그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도 어떤 사람들이든지 일단 죽습니다.

왜 죽게 되는가? 그것은 인류가 원죄와 본죄로 타락한 이 범죄를 인하여 저주와  사망 아래에 머물게 된 연고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이런 것은 다 불에 타서 모든 형체는 다  없어집니다. 종류들도 없어집니다. 다만 그중에 사람들의 행동은 고대로 똑똑히  보존되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노아 때와같이, 의로운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하나님이 옮기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가진 자기 사회, 자기 나라, 자기 환경, 자기 가정, 자기  형편, 모든 소유, 자기 자체, 이 모든 것들은 일단 없어져야 합니다. 없어져  가지고 영원한 보응에서 지금 것보다 몇 억억만 배도 더 존귀하게 되는 것들도  있고 또 천하게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걸 가리켜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영원히 산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가지고 사는 이 물질계에 속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중생된 영은 물질이 아닙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모든 인류가 다 부러워하는 세상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들을 구비하게 갖추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부르실 때에는 일단  없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을 초월한 지식입니다.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언제나 있으리라 가치하고 그것을  위주로 자랑으로 이렇게 삼아서 사는 자들도 있고 무책임한 철학가들이 말한 데  따라서 인간의 상부의 이 정신은 영원히 남아 있고 하체만 썩는다 하는 그런  모든 무책임한 그 철학가들 종교가들 그런 사람은 말하나 그거는 다 거짓말이요  반 거짓말이요 하나님이 말씀을 하셔서 없어진다 이랬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 친구는 위에 보면 곧 빚진 친구들입니다.

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친구라 여기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친구를 사귀라’ 죄와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사귀라.

 그러면, 인생은 죄와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친구를 사귀라. 사귀라 말은 위에 보면 5절 이하에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줬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죄짐을 벗겨주고 저주를 벗겨주고 사망을  벗겨서 의의 생명으로 구출하는 곧 복음 운동 인간구원 운동을 가리켜서 사귀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귀는 것은, 땅 위에서 자기 몸을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물질을 희생하고 어떤  것을 희생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도 되고 친구를 때려 상하는  것도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다만, 죄와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으로 구원한 것은 그 친구를 사귄 것이요 대접한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간의 영원한 문제인 정죄와 사망과 하나님의 저주에서 구출하는 일이  아니라면 자기 몸을 주어 불사른다 할지라도 다 그것이 헛된 일입니다.

 자기가 박애자로서 전 인류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서 어떠한 노벨상의 그 위대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인간을 다 속인 사람이요 때린 사람이요 상하게  한 사람이라 성경은 그렇게 판정합니다.

 왜?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인생은 날마다 천하를 차지하고  살아도 그것이 자기를 멸망케 하는 것이며 자기를 점점 정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귀는 것이, 대접하는 것이 못 됩니다.

 다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인 이 복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는 일만이 인간을 대접하는 것이며 인간을 사귀는 것이며 인간을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요것도 확정을 지워야합니다.

 땅 위에서 수많은 도덕가들이 있고 자선가들이 있고 민족주의자 애국주의자  문화 건설주의자들이 있어서 자신 만만하게 자기는 인류를 사랑하고 위하고 갔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의 복음으로 구원한 일이 아니면  전체는 인간을 속인 것이요 죽인 것이요 망친 것이 되고야 맙니다.

 왜? 저희가 주는 것을 가치 있는 줄 알고 거기에다가 소망 두고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다 헛되어서 자멸하는 일이 되고 말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흑은 물질로, 흑은 몸으로, 자기의 가진 무슨 소유로,  지능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돕고 위하고 사귀고 책망하고 어떻게 징계를 주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그 결과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되어 그 사람이 다문얼마라도 죄에서 헤어나와 의로  소생된 이 일을 했다고 하면 그것은 똑똑히 그 친구를 잘 대접하고 사귄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서부교회 오고 난 다음에 처음에는 육적으로 구제하는  일을 시작해서 다른 교회보다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그 사람의  영혼에 유익을 주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고 도리어 그 사람에게 빚만 지우지  복음에 구원에는 아무 효력 없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이제는 사람을 구원할  것이 있으면 복음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네 몸으로 그  사람을 돕는 일이 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심방하고  전도하라, 그 힘 가지고서 위해서 기도하라, 또 어려울 때는 물질을 줄지라도 꼭  그 물질로 돕는 것이 그 사람의 심신을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하는 목적으로  하고 그 효력의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라 이래 가지고서 전적 그 일로만 계속해서  수십 년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얼마 전에는, 너무 이렇게 하니까 육의 돕는 일이 없어 딱딱하니까  이제는 조금 하면서 육체를 구원하는 이 일을 영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그  심신을 구원을 주기 위해서 없어질 육체의 돕는 도움을 약간 하는 것으로 반반이  아롱아롱하게 하자 하는 그런 것으로서 지금 주장해서 해 나가고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친구는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켜서  친구라 이웃이라 말한 것입니다. 부모도 친구요 자녀도 친구요 부부도 친구요  이웃이라면 이웃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는 사람도 있지마는 모르는 사람이 많아 죄에 치이고 사망에  치이고 마귀에 유혹받고 저주받아 가지고서 전체는 멸망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잘 믿는 성자라면 성자는 멸망하고 있는 양이 적고 무지한 믿음 없는  사람이라면. 멸망하는 양이 많고 적지 땅 위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어떤 성자  성녀라 할지라도 죄와 사망과 마귀의 해를 받지 않고 완전히 벗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자기가 사귀어야 할 친구로 아는 것이 이것이 바로  아는 일이 됩니다.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없어질 때라 말은 그것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없어질 때를 말하는 것은 하나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니 곧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에게  속한 모든 것도 다 없어지는 죽음을 가리켜서 없어질 때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여기에는 저희라  말은 곧 사귐을 받은, 대접을 받은, 빚 탕감을 받은 그 사람을 가리켜서 저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라는 말은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저희라는 말은 하나를 말함이 아니고  하나 이상의 수를 가리켜서 말하는데 요 저희는 누군가? 대접을 받은 친구를  사귀라, 대접받은 친구입니다. 내가 그 친구를 대접했을 때에, 내가 그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유익을 끼쳐줬을 때에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없어질 때에 저희가’ 말했습니다. 저희는 복수이니 나는 한 사람에게만 했을  때 어떻게 복수가 되는가? 요 복수에 대해서 요 뜻을 잘 깨달아야 됩니다. 요  복수는 내가 그 사람을 사귈라고, 그 사람을 대접할라고,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도울라고, 그 사람을 구원할라고 했는데 그 사람 하나가 아니고 복수된  것은 요것은 곧 주님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과 복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복음으로 사람에게 행하든지 복음없이 사람에게 행하든지  내가 행하는 것은 언제든지 복수를 상대해서 행함이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악을 행해도 단수인 그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같이 그 나의  악에 대해서 당하십니다. 해를 받으십니다. 내가 어떤 의를 행해도 그 사람만  보고 했지마는 주님은 같이 거기에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10장 40절로 42절에는 선지자 의인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또  마태복음 25장 40절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대접한  것이고, 또 45절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대우하지 안한 것이 곧 나에게  대접하지 안한 것이라고 주님이 거기에서 보상과 복수로 갚으셨습니다.

 이러기에, ‘저희가’ 하는 말을 했습니다. ‘저희가’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나한테 세상에서 대접받은 저희가, 나는 대접을 한 사람에게 했는데  대접받았다고 나서기는 둘이 나섭니다. 그 사람과 주님이 같이 대접받았다고  나섭니다.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한다’ 너희도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나 혼자 친구 사귀는 일 했는데 뜻밖에 주님이 같이 이 사귀는 대접을 받았다고  나타나셔 가지고서 영원한 대접으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대접으로, 유한한  것으로 했는데 무한한 대접으로, 무한한 환영으로 대우로 이렇게 하시는데,  복수로, 나는 그 사람 하나인 줄 알았는데 주님이 같이 대접받았다고  나타나십니다. 나는 이 대접을 나 혼자 받을 줄로 알았는데 ‘너희를’ 나 혼자  대접받을 영원한 처소로 영접받을 줄 알았는데 영접받는 데에 또 둘입니다.

주님이 나와 같이 영접을 받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복음 운동을 할 때에는 내가 나 혼자 하는 것 같으나 주님이  같이 하시고 내가 복음 운동으로 크고 작은 열매를 맺었을 때에는 나 혼자  대접받는 게 아니라 주님도 같이 대접받습니다, 이런 이 비밀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로마인서 14장 7절로 8절에는 보면,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해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니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심히  깊습니다. 껍데기로 생각해 가지고는 모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가지고 중생된 우리는 이래 살든지 저래  살든지 그 모든 생활은 주님에게 다 영향이 끼쳐갑니다. 내가 못할 일 했으면  내가 못할 일 한 거, ‘내가 못할 일 하고 나 형벌 받으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  있노?’ 나 못할 일 한 그것이 주님에게 못할 일 한 것이 됩니다. 나 못할 일  내가 잘못한 것이 주님에게 잘못한 게 됩니다. 내가 잘한 것이 주님에게 잘한  것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속받은 성도들은 자기 혼자 언행 심사로 행동한다는 이  개체주의로 이렇게 생각하면 망상입니다. 살아도 죽어도 의를 행하든지 불의를  행하든지 이것은 전부 다 주님에게 영향이 미칩니다. 그 책임은 다 주님에게  돌아갑니다.

 나 잘못해 가지고 욕 얻어먹으면 나 얻어먹지’ 내가 먹는 욕은 적고 나로  인해서 주님이 먹는 욕은 크고 주님이 먹는 욕은 아버지께서 그 욕을  먹으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살아도 죽어도 저를 위해서 사는 것으로 알지마는  전부다 주님에게 영향 있는 주를 위한 생활이 되기 때문에,  참 어떤 성도가 자기 보면은 자기를 그만 어떻게 오진 형을 줘서 영원히  멸망하는 가운데 던지고 싶지마는 주님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주님에게 형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 보아서는 자기에게 저주를 얼마든지  하고 싶지마는 주님으로 인하여서 하지를 못하고 가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하는 요 복수에  대한 요 복수를 깊이 여러분들이 새겨서, 나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신 주님과 함께 있어서 주님은 내 안에도 계시고 내밖에도 계시기 때문에  내가 수치스런 일 멸망할 일 하면은 나만 멸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멸망할 일  하면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멸망을 받습니다. 내가 칭찬할 일 하면은  주님이 나와 함께 칭찬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우리와의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요 한 지체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 언행 심사에 모든 행위는 잘하면 주님과 함께 칭찬받고 영광받고  못하면 주님과 나와 같이 욕 얻어먹는 요 항상 우리 단독 행위가 아니고 주님과  떨어질 수 없는 결합이 되어 있는 우리들의 언행 심사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라는 것은 유한한 것을 가지고 주님을 돕는 일  한 그것을 무한으로 갚아 주십니다.

 유한을 가지고 무한을 바꾸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요, 모든 사망의 것을 가지고  생명의 것을 바꾸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요, 없어질 것을 가지고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들을 바꾸는 것이 오늘 우리들입니다.

 썩을 것을 가지고서 영원히 썩지 아니할 것을 무한한 것을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오늘이라는 시간이 먼지 짜른지 모르지마는 우리의 땅 위에  사는 기간들입니다.

 그런고로, 결론으로 우리는, 내가 복음 운동 곧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운동,  사람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하늘의 소망을 주기 위해서 또 죄를 벗어나고 의를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다문 얼마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일만이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사귈 수 있지 그 외에 딴  것으로서는 사귀지 못합니다. 자기가 소유와 몸을 다 어떻게 하나님에게 바쳤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과 사귀어지지를 않습니다.

 다만 주님이 도성 인신하신 당신의 포부인 죄인을 멸망에서 구원해서 생명으로  옮기는 이 복음 운동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 운동 이것만이 주님을 사귀는 일이  되지 이것만이 주님을 대우하는 일이 되지 이외에는 주님을 사귀는 일도 없고  대우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거 외에는 주님이 상관치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극히 크신 주님을 사귀고 대접해서 영원히 그분에게 대접을  받고 그분과 친밀하여 내가 그에게 행한 대로 영원히 그분이 영원한 것으로  무한한 것으로 지극히 큰 것으로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는 행동은  복음으로 인간을 대접하는 거 외에 딴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궁세계에, 하나님이신, 대주재이신, 주권자이신 이분이 나에게  어떻게 상대해 줬으면  그러기에 무궁세계에, 하나님이신, 대주재이신, 주권자이신 이분이 나에게  어떻게 상대해 줬으면, 어떻게 대우해 줬으면, 어떻게 나를 알아줬으면, 나에게  친밀히 해 줬으면, 나에게 화평하고 온유하게 해 주셨으면 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오늘에 친구를 사귈 것입니다. 원하는대로 친구를 사귈 것입니다.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에서 그가 갚아주고 영원히 영접하고 대우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로마인서 14장 7절과 8절에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단독이 사는 줄  알지마는 주님과 공동체이기 때문에, 주님과 공동 몸 공동체이기 때문에 자기는  주를 위하지 안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해를 해도 주를 해한 일이 됐고 의를  행해도 주를 위한 일이 됐으니 사나 죽으나 우리의 전 생활은 주를 위해 주께  하는 일이 된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뭐 나 혼자 내 말대로 했고 내 주장대로 했고 내 뜻대로 했는데 주님에게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것이 다 주를 위해서 주께 상관된 일입니다. 주께 상관된  일이오. 주님에게 상관없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분이 샀기 때문에.

영원히 책임을 졌기 때문에.

 이런고로, 나 단독이 같으면 어떻게라도 하지마는 주님과 상관없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제맘대로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자가 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 사귀는 주님을 위하는 일을 해야 되겠는데, 주님  대접하는 일을 해야 되겠는데 주님 대접하는 일, 위하는 일, 사귀는 일은 무슨  일인가? 이것은 곧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며 복음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며,  복음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라 말은 그 사람이 어떤 부분 어떤 성질의  것이든지 죄에서 다문 얼마라도 벗어나도록, 의에 서도록, 마귀를 배반하고  하나님하고 가까와지도록, 다시 말하면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 복음 운동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 또 복음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일 이것이 다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 혼자 내 상점에서 언행 심사 행동한 것이 복음을 가룰 수도 있고  복음을 영광스럽게 할 수도 있고 내가 조그만한 일 조그만한 말한 마디 조그만한  행동 하나에서 복음을 아낼 수도 있고 복음을 가룰수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언행 심사는 크고 작은 어떤 일이든지 어떤 때에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복음을 가루든지 복음을 영광스럽게  자랑하든지 그것을 다른 사람의 믿음을 떨어뜨리든지 믿음을 소생시키든지 다른  사람을 하늘의 소망으로 옮기게 하든지 땅에 붙게 하든지 결과는 나타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땅 위에서 모든 일은 주님을 내가 십자가에 못박는,  주님을 내가 심히 해치는 일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든지  섬기는 일이 되든지 이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산에 가서 기도하는 데에 이 대신공원 새벽으로 가서 기도하는 데도 그  한 자리에서, 내가 여기에서 기도하고 가는데 누가 뒤에 와서 보고 야 이 사람이  기도하고 가는 데는 참 이 산에 있는 이 식목들을 애꼈다. 식목을 마구 뿌질라서  깔고 앉았다. 종이 쪼갱이를 마구 내뿌렸다. 그 사람이 왔다 가고 나니까 그  자리가 깨끗이 청소가 됐네. 사람은 큰 것은 조심을, 하기 때문에 덕이 있는  그런 훌륭한 일이 있어도 사람들이 감화를 안 받습니다. 의례히 그거야 큰일이기  때문에 제가 조심해서 계획적으로 잘했다 이래 보이지마는 지극히 작은 일  무심히 볼 수 있는 그런 일 작은 거기에서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받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도 O 장로님이 대신공원에 가니까 예, 뭐 어데까지 와서  하라고, 만일 거기에서 부정한 일을 했다면 그 사람들이 서부교회 유명한  서부교회 귀찮다고서 안된다고서 이럴 터인데, 저 꽃마을에도 가면 다른  사람들은 가면 못 가구로 해. 같이 여섯 사람이 그 산에 올라가는데 이 어찌  아는지 기도하러 가는 사람 네 사람은 내려오라 소리 안 하고 두 사람만, 두  사람 빨리 내려오라고. 왜? 그분들도 압니다. 저 사람들은 자연을 더럽히지  안하고 저 사람들이 오면 뭐 할것 없이 깨끗하게 청소된다고.

 지극히 작은 것이나마 고것이 주님을 대접한다는 것, 이것으로써 복음을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인간의 구원을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니 마음에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그래 할때에 그것이 바로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주님이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도, 나는 어떤 사람 여기 앉았는데 나는 그렇게 하면서 놀리요.

‘바보라, 이 권사님은 바보라. 권사님 사 가지고 온 고기는 맛도 없어.

권사님은 물건 살 때는 보재기를 씌여 가지고서 ‘영 아주 속고 와.’ 그래 놀려  좋도 변동 없습니다. 변동 없어. 언제든지 그래요.

 이러니까 아예 상인들이 ‘권사님 오십니까?’ 아주 친절히 인사합니다. 부가  있거든. 믿어. ‘저분은 참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내가 조금 물질 좀 비싸게 사면 뭐 십 원짜리를 백 원내라 소리 안 할,  거니까해도, 내가 물질 좀 손해 가도 주님의 복음 가리워질라? 나 예수 믿는  사람인 줄 아는데 그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고 나쁜 마음을 끼쳐 줄라?’  아래서 어데서든지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지 안했나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참 심히 부럽습니다.

 내가 한번은 그거 해 봤어요. 요 신 사러 내가 슬리퍼 사러 갔는데 가서 가니까  신을 내 마음에 맞아서 달라 하니까 내 마음에는 그 신 값이고 반주면 살 수  있는 거라. 그거 내가 모르지마는, 저는 시장에 안 돌아다녀도 거의 물가를 거의  압니다. 왜 전체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암말도 안 하고 고것을 고대로  달라는 대로 사 가지고 오면서 감사하다고 왔어.

 또, 고때 두 켤레 살라 하다가 한 켤레 샀는데 고 뒤에 또 갈 일이 있어서  거기에 또 갔어, 가니까 그런 걸 또 하나 갖다 놨어. 내가 말한 걸 기억하고  있어. 그래 또 달라 하는 대로 주고 왔어. 그라면서 내가 믿는 어떤 그 권사님을  생각했어. ‘그분 같으면 여기서 아마 얼마 얼마 어누리해서 깍쟁이 노릇을 안  할 거다. 나도 그분 닮아서 한 번 해 보자,’ 그래 한 번 두 켤레 한 번 그래 해  봤어요. 그것이 곧 사람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이래서, 사람의 전신이라 하는 것은 팔 하나 가지고서 전신되는 것 아니고 눈  하나 가지고 전신되는 것 아니오. 전신은 모든 지체가 다 합해가지고서 전신이  되는데 다른 데는 다 잘났는데 요 눈썹 이거야 뭐합니까, 이거. 아무것도 필요  없는 것이지만 눈썹 요것만 없어도 그만 병신입니다. 병신.

 제가 오래 전인데 기차 타고 오니까 그 사람이 참 키가 멀쑥히 크고 훌륭하고  양복도 잘 입고 중은 옷 입었는데 그 사람이 뭘 사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접을  하고 이래하고도 어짠지 그만 장 이래? 숙여 가지고서 대접하고 난 다음에는  사람 없는 데 저 구석에 가는 걸 그거 볼 때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 하고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눈썹이 하나도 없어요. 문둥이라. 요 눈썹이 하나도 없으니까  문둥이거든. 그래 놓으니까요 눈썹이 없어 놓으니까 그 그렇게 봉사를 하고  낭한테 저자세로 하고 기를 펴지 못해요.

 이거 모양으로 복음 운동은 그러합니다. 복음 운동이라 하는 거 뭐 설교하는  사람만이 복음 운동 아니오. 전도하는 사람만이 복음 운동 아니오. 지금 우리  교회에 이 사찰님들이 이거 소제하는 청소하는 이런 것도 다 복음 운동이오.

 저 먼데서 우리 교회 벌써, 시찰 온 분들이 구백 한 이십여 회를 왔는데  그분들이 왔을 때에 이 의자가 쪽 놓이니까, 그전에는 의자가 삐뚤었는데 의자  쭉 놓인 걸 보고 ‘야, 의자가 줄이 꼭 고르다. 이 소문 듣는 대로 이 좀  서부교회가 다르다.’ 저 보니까 멀거이 깨끗합니다. ‘야, 모든 일이 다  단정하고 다 정돈돼 가지고 있고 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있다.’ 그 사람들이  그것 가지고 은혜 받습니다.

 워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 어떻게 하는 것보다도 그 사소한 일 하나에서 사람이  감동받아 가지고서 회개가 되고 다시 새사람 되어서 새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점에서, 여수 거래에서, 무슨 약속에서 언제든지 이거는 나는  사람하고 ‘사람하고 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없이 사람만 대해 가지고서 했던  그 죄를 회개하자고 벌써 한 몇 해 전해 회개 스무 가지 중에 기록돼 있습니다.

 자기가 모든 일 할 때에 ‘이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주님을  대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것이 곧 복음 운동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감화  줘서 악인을 만들 수도 있고 의인을 만들 수도 있고 이거 하나가 다른 사람을  땅에 소망 두지 안하고 하늘에 소망 둘 수도 있고 한다는,   지극히 작은 것이 지극히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이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곧 주님 대접하는 것이요 주님을 섬기는 것이요 사귀는 것이라.

주님 사귀는 것이라.

 우리의 모든 언행 심사는 주님을 사귀는 일로 합시다. 주님을 대접하는 일로  합시다. 이것은 영원한 세계에서 당신이 갚아 주십니다. 내가 대접할 때에  결단코 나 혼자 하지 안하고 주님이 나와 같이 하십니다. 내가 대접을 해서 그  사람이 대접을 받을 때에 그 사람 혼자 받는 게 아니라 주님이 그 사람과 함께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 비밀을 생각하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다 주님 사귀는 일이 되고  주님을 노엽게 하고 주님을 뚜드리는 일이 되고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고  주님을 사귀는 일이 되고 섬기는 일이 되는 이 비밀을 깨닫고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주님에게 대해서 한 일이 되어 있는 것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모든 일에  조심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씁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감사합니다. 구속받은 저희들과 주님과는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에  저들의 모든 언행 심사는 주님과 같이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주님에게 욕되게도  영광되게도 하는 이 결과가 맺어지는 중요한 이 관계에 책임이 메워져 가지고  있는 것을 알려 주시고 또 저희들이 땅 위에서 주를 위해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할 때에 이것이 참 복음 운동이 되고, 인간을 구원하는 운동이 되어 주님에게  영광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양식이 되는 이 비밀을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저들은 어떤 때에 무엇을 당하든지 막바로 이 행위가 주님을 대접하는  행위며 주님을 상대하는 행위며 주님을 사귀는 행위가 되는 것을 깨달아 크고  작은 것을 조심해서 주님을 생각하고 저희들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 행동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권속이 됐습니다.

험한 세상 믿고 의지할 것이 없는 땅 위에서 든든히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주님을 바라는 것만치,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동행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것만치 저들에게 권능이 역사하는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구할 때에 주님이 들어 주시고 어두울  때에 지도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님을 대접하고 사귀는 이 일에 날마다 뜨거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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