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금물은 허영과 허욕

 

1987. 12. 18. 새벽 (금)

 

본문:빌립보서 4장 4절∼7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런 말씀의 뜻을 읽고 외우고 생각함으로 점점 깨달아서 깊이 들어가야 되고 또  높이 올라가야 되고 그 실상을 점점 가져가야 합니다.

모든 기독자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이 하신 참이기 때문에 진리기 때문에 모순된  일이 없습니다. 점점 갈수록 모든 일이 다 필연적입니다. 하나 되면 둘 되고 둘  되면 셋 되고,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진행하게 되고 진행하면 필연적으로 성과를  보게 되는 이런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에는 금물이 뭣이 금물이냐 하면 그 허영과 허욕 그것이  제일 금물입니다. 제가 허영과 허욕을 버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기독교에서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전부가 다 진실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이 기뻐하는 이 문제를 이것을 보통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항상 기뻐하고 이 기쁨을 네가 어짜든지 가지도록 노력을 해라.

기독자가 이 기쁨을 가지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기독자가 이 기쁨을 가지지  못하면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은 필연적으로 차차 차차 타락하게 됩니다. 나이가  늙어지면 타락하고 세월이 지나가면 타락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라가는 게  없습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자라가는 게 없습니다. 커가는 게 없습니다. 점점  건설돼 가는 것이 없어집니다.

제가 인본으로 허영과 허욕으로 날뛰는 자는 평신도 신앙 생활이라도 하다가  차차 차차 그 신앙 생활이 늙어집니다. 아이의 신앙이 되지 안하고 늙은이 신앙이  되고, 처음에는 젊은이 시작됐다가 젊은이 신앙이 좀 있으면 늙은이 신앙되지  않습니까? 상징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말씀해 놓은 것인데.

그렇게, 기독자가 이 기쁨을 찾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실질적으로  자기가 자꾸 하면 평생 해도 모자라고 영원히 할 일인데 이것을 하나의 그저  지식으로 이래 들어 버리고 지나가 버리면 헛일입니다. 자꾸 새겨서 알아야 되지.

항상 기뻐하라 하는 것은 이것은 밤이고 낮이고 기뻐할 뿐 아니라 낭파될 때도  기뻐하고, 실패될 때도 기뻐하고, 병들었을 때도 기뻐하고, 욕 얻어먹었을 때도  기뻐하고, 손해볼 때도 기뻐하고, 칭찬받을 때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어떤 피조물이 이 기쁨을 깎으려고 해도, 헐려고 해도, 흔드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입니다.

물이 내려가는 데에 물결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생명이 없는 증거요 생명이 있는  것은 물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 주장과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이러므로  거슬리는 물과는 항상 대립이 됩니다. 물이 돌면 저는 안 돌려고 힘껏 애를 쓰고,  물이 내려가면 저는 따라 내려가지 안하고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쓰고, 또 물이  내려가면 내려가는 데에 끌려 내려가는 게 아니라 제가 내려가고 싶으면은  물보다 더 빨리 내려가고, 이렇게 그 생명 있는 물에 있는 모든 물벌레나 짐승은  다 그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은혜는 이것은 다 산 은혜요 이  세상은 다 죽은 세상이기 때문에 죽은 세상에게 끌리지 않는 것이 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생명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오. 그러니까 죽음이 와도 죽지  안하고, 세상이 와 가지고 얼마든지 끌어 올려서 비행기를 태여도 타지 안하고, 또  세상이 죽여서 멸해도 멸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였으니까 저거딴에는 멸한 줄 알았지만 실은 멸해지지  안하고 더 튼튼하게 됐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구덩이에 집어넣고 굴 아구를  인봉하니까 ‘이제는 그놈 우리가 완전히 죽여버렸고 우리 계획이 성공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그 속에는 피조물에게 제재받지 않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도로 그와같이 악령과 세상이 이겼다고 하는 것이 완전히 패전하게 되는  그 결과가 되어진 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이 기독교의 그 모든 형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 생활은 다 그러합니다.

기독교의 진리에 섰는 사람, 바른 데에 섰는 사람, 하나님과 같이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볼 때에 세상이 이긴 것 같고 패전한 것 같습니다. 이긴 그것이,  세상이 이긴 것 같은 그것이 세상이 완전히 지는 것이요, 패전한 것같이 되어진  그것이 완전한 승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그 기독교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기독자의 신앙 생활은 자기가 속에 있는 그 생명  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고 생명 생활이 죽음에게 삼키워지지 안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죽음은 뭐이 죽음인데? 죽음은 진리에 삐뚤어지는 것이 다 죽음입니다.

또 절대자에게 거슬려지는 것이 다 죽음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진 것을 삐뚤어지지 안하도록 완전히 바르게, 하나님께 거슬려지는  것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지게 완성해 놓은 게 뭣입니까? 완전히 완성해  놓은 것이 무엇입니까? 완전히 완성해 놓은 것이 주님의 도성인신 사활의  대속입니다. 이 열여섯 가지 구속은 완성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완성은 생명 뭉텅이요 이 완성 속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이 완성  속에는 죄가 없습니다. 마귀가 없습니다. 이 완성은 하나님의 공심판에도 완전  의의 통과입니다. 자존자 조물주 완전자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영원히  지극히 작은 것까지 개별 개별을 주권으로 섭리하시는 이분으로 더불어 하나되어  있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이러니까 이걸 누가 헐 것이며, 누가 죽일  것이며, 누가 누를 것이며, 누가 깎을 것이며, 누가 흔들 것입니까? 아무도 흔들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이 구원은 완전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영원 불변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전지 전능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크나 작으나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있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완전히 이루어 가지고  주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오. 흰옷을 사서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것이오.

전쟁에는 이겨야 수치가 없어집니다. 흰옷을 입어야 수치 없다는 것은 다방면으로  모든 면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야 전투에는 승리하고 또  움직임에는 언제든지 주권하지 피동되지 안하고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생활은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자존자 조물주  창조주 그분 한 분에게만 피동되는 것이 그것이 기독자의 생명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화평함과 거룩함을 취하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러는데 화평이 그 속에 거룩이 들어 가지고서 거룩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불화한 것들을 점령해서 거룩을 만들기 위해서 화평은 거룩의  작용으로 화평이 돼야 되고, 또 거룩을 달성하는 거룩의 목적으로 화평이 돼야  되는데 사람들은 거룩 없는 화평만 주장하기 때문에 점점 사망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배암의 사랑은 화평에서 끝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을 위한 화평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구원은 껍데기 발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라면  생명도 구원 속에 들었고, 지혜와 능력도 구원 속에 들었고, 모든 평강도 쾌락도  다 구원 속에 들었는데 이 구원은,  밖으로 나가면 이 구원은 점점 줄어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있습니다. 세상 것은  무엇이든지 밖으로 나가야 얻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은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얻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구원에 대해서 몇 가지 종류로 말했지요? 몇 가지 종류로  말했어? 구원은? 생명. 이래 말했는데 몇 가지로 말했어?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또 한번 해 봐요. 구원은? 생명. 또? 평강. 이 ‘평강’ 하면 평강 속에는 지능이  다 들었습니다. 쾌락도 거기 들었습니다. 모든 부강도 다 들었습니다. 그게 없으면  평강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과 평강이라.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라 하는 말씀 그 말씀  속에 다 포함됐는데 그 안에 분류하면 구원 속에는 생명도 들었고, 지혜도 들었고,  능력도 들었고, 부요도 들었고, 쾌락도 들었고, 그 모든 게 다 완전적이라.

그러면 기독교의 구원으로 말하면 그 구원이 종류가 얼마나 많으며 어떤 것이냐  하는 그 구원은 신구약 성경에 보면 성경이 가르쳐 놨고 또 성경이 가르치는 것  외에, 성경이 정확히 가르쳐 놨고 성경이 정확히 가르치는 그 외에 또 가르치는  것이뭣입니까? 또 가르치는 게 뭣이요? 뭐이 가르치고 있어? ○○○선생? 저게  알아듣기는 저래 잘 알아듣는데.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고 또 그외에는 이  모든 삼라만상의 자연계시가 가르치고 있어. 자연계시가 가르치고 있어.

자연계시가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그러면 우리 구원 속에는 뭣이 들었느냐? 이  세상에 모든 좋은 그와 같은 그 종류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이런 것은 다 종류가 다 썩을 종류들이요 망할 종류들이요 다 없어질 종류들이요,  성경 안에 있는 종류는 다 영원한 종류들입니다.

생명도 이 세상에 있는 생명은 죽을 생명이요 구원 안에 있는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이요, 또 몸도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썩어지고 다 죽어지고 낡아질  것들이요 구원 안에 있는 몸은 신령하고 늙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않을 그런  몸이요, 힘도 이 자연계시가 가르치고 있는 이 힘은 쇠해지고 나중에 가서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 속에 있는 힘은 늙어지는 게 아니고 쇠해지는 게  아니고 낡아지지 않는 이런 힘입니다.

특별계시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이 구원의 종류를 그것을 자연계시인 이 세상  자연계시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연계시는 어떤 게 자연계시인가?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모든 인간들과 모든 것들의 움직임, 그것을 합해서  자연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창조는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한 게 창조요 모든 창조는 다 우리 구원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창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창조했다 하는 그말을 가리켜서 계시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창조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섭리해서, 있다가 없어졌다가 없다가  있어졌다가 합해졌다 나뉘어졌다 하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수원 주인이 과수를 길렀다가 주인의 소망대로 과실이 하나도 안  익으면, 안 열면, 열었다가 다 떨어지고 하면 애를 써보다가서 결실이 없으면  그까짓 것 베어서 없애버립니다. 또 길러 놓으니까 과실이 안 맺는 것 있습니다.

그것도 오만 노력해 보다가 안 되면 베어내 버려. 그런 것도 하나의 계시요.

하나님이 성도를 가꾸지만 가꾸고 가꾸다가서 안 될 때는 이래도 해 보고 저래도  해 보고 온갖 연단도 시켜보고 은혜도 줘 보고 뺏들어도 해 보고 오만 것 하다가  그래도 안 들으면 제하여 버립니다. 제하여 버립니다. 제하여 버리는 것 또  하나님은 손해냐? 손해 아니요. 제해버리는 것은 ‘이런 자들은 제해버린다’  하는 것으로써 또 하나님의 이 역사에 이용을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 한부선 목사님이 한번 말하는데 ‘우리는 증인 생활이라.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하면 복받는다 하는 것을 증거하는 사람도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하면 망한다 하는 것을 증거하는 사람도 있고,  망하는 것을 증거하든지 잘되는 걸 증거하든지 둘 중에 증거는 하고 말지 증거  안 하는 사람은 없다. 증거가 안 되는 사람은 없다.’ 이러니까 자, 이리 이리 하면 망한다 하는 망하는 증거를 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리 이리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서 잘 된다 하는 것을 증거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다 우리가 그걸 원하지. 원하지만 ‘이러면 망한다’  하는 행동을 하면 그 열매가 다 멸망하기 때문에 멸망치 않을 수가 없어.

하나님이 모든 구원에 대한 종류를 다 우리에게 성경으로 보여 주시고 또 자연  이 계시로 보여 줬어.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못 깨닫거든 이 자연계시를  보고 깨달으면 돼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것으로서, 뭐하려고 그것을 그런 것을 내놨는가? 그것 꼭  내놔야 된다는 것 아니야. 부모가 자녀를 요래 기르고 저래 기르는 순서를 해서  그것이 꼭 그래야 사람이 자라고 나는 것 아니라. 이 아주 작은 그까짓 것은 아무  힘없는 것 같아도 바이러스 균이니 하는 그런 균은 일 초 동안에 수천 수만으로  번식해 나가. 안 길러도 잘 자라나가.

그런 것은 뭐하려고 그랬는가? 그런 것은 뭐하려고 그랬는가? 장사가 보이지도  안하는, 눈에 보이지도 안하는 것, 몇천 마리를 뭉쳐야 눈에 겨우 보일 만한  그까짓 거야 문태면 죽을 건데 장사가 바이러스 균한테 먹혀서 죽어.

“헤롯 왕을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 이랬는데,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 이랬는데  나는 처음에 그걸 보고 ‘무슨 벌레가 달라들어 가지고 그래 뭐 뜯어먹었는가?’  이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들 죽는 게 전부 벌레에 먹혀 이래 다 죽습니다.

벌레에 먹혀 죽어. 벌레에 먹혀서 죽지 않는 사람은 많지를 못해.

이 기독자의 구원의 종류를 이 자연계시에서 보이고 특별계시에서 보이고 있는데  기독자의 구원은 다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한 것이요, 다 영광스러운  것이요, 수치스러운 것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보면 다 칭찬하고,  찬성하고, 기념할 만하고, 자랑할 만한 그런 완전한 구원들입니다. 완전한 구원들.

이렇게 이 보배로운 것이오.

이 보배로운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일 년 받을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십 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몇 년이나 받으면 될까요? 영원히 받아야 돼. 여게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완전한 지식은, 세상 지식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러면  십이 년 걸리고, 뭐 십육 년 걸리면 일반 대학 졸업합니까? 그러나? 그래?  어때요, ○○○장로님? 그래요? 십육 년 걸려? 십육 년 걸리는데 이 지식은 십육  년이 아니라. 영원히 걸려야 돼, 영원히. 배우고 나니까 또 배울 것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끝이 없는 모든 구원이요 보배입니다. 이런 보배요.

그러면 이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쇠해집니까 낡아집니까 죽어집니까 없어집니까?  아니오. 영원히 살아 있소. 왜?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이  구원은 털끝만치라도 해치지를 못해.

또 묵은 것은 누룽잎 모양으로 젖잎 모양으로 떨어지고 새움이 나는가? 아니야.

젖잎 하나도 떨어지지 안해. 하나도 쇠해지지 안하고 낡아지지 안하고 영원해.

영원한 구원이야, 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기쁨이라. 평강도 영원한 평강이라. 부요도 영원한 부요라. 생명도  영원한 생명이고, 몸도 영원한 몸이고, 명예도 영원하고, 쾌락도 영원하고, 지위도  영원해. 하, 이렇게 좋아. 영원해. 쇠함이 없어. 늙어지지도 아니하고, 쇠해지지도  아니하고, 낡아지지도 아니하고, 더러워지지 않는다 했어.

이런 구원이 기독자의 구원인데 이 구원은 어떻게 해요? 이 구원을 지금 어데  가면 얻어요? 이 구원을, 한국으로 말하면 시골보다도 서울로 가야 된다. 서울  가? 서울보다도 일본 가야 된다. 일본보다도 미국을 가야 된다. 그러면 어데 가야  돼? 어디로 가야 얻는고? 너 한번 대답해 봐. 어? 어데 필리핀? 현실? 어디로 가야 얻어? 보자, 시험 한번 쳐보자. 자, ○○○집사님, 어데로 가야  얻습니까? 칠십점 됐어. 대답은 옳은데 내가 묻는 각도가 틀려. 어데로 가야  됩니까, ○○○장로님? 열여섯 가지 구속? 인제 장로님들 시취한다. ○장로님? 주  안으로? 팔십점인데.

녜, 주 안이라 하면 됐는데 엔간히 됐는데, 내가 묻는 것은 각도는 그겁니다.

안으로 기어 들어가야 돼.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돼. 이 구원은 자꾸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되지 밖으로 나가 가지고 얻는 구원 아니야. 밖으로 나감으로 얻어지는  것은 다 사망에 속한 것이요 다 무가치한 것들입니다, 권능도.

안으로 파고 들어가다니? 어디로 파고 들어가? 어디로 들어갑니까 입문이  어데입니까? 자기 마음으로 들어가고, 마음으로 들어가 가지고는 그다음에 어데로  가는고? 양심으로 들어가고. 또 그다음에 어데로 들어가는고? 어데로 들어가?  어데로 들어가? 영으로 들어가고.

영에서는 또 어데로 들어가? 진리로 들어가고. 또 진리에서는 어데로 파고  들어가? 영감으로 들어가고. 영감에는 또 영감에서는 어데로 파고 들어가? 너,  어데로 들어가? 하나님께로 파고 들어가. 하나님께로 파고 들어가. 그러면   구원은 어데 있는가? 구원이 진리, 영감, 하나님. 그 세 분의 작용이 열여섯 가지  구원입니다.

이러기에 자꾸 자기가 파고 들어가면 이런 모든 보배로운 구원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완성해 놓은 것 있어. 완전히 완성해 놓은 것  있어. 진리 완성, 영감 완성, 하나님 완성. 죄에 대해서 완성, 의에 대해서 완성,  마귀에 대해서 완성, 사망에 대해서 완성, 영광에 대해서 완성, 승리에 대해서  완성, 생명에 대해서 완성, 모두 완성해 놓은 것, 완성해 놓은 것이 있으니 그게  무엇이냐? 예수님의 열여섯 가지 구속이라. 그러기에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꾸 파고 들어가서, 사람이 마음으로 들어가 가지고서 양심으로  들어가고, 양심에 들어가고 그다음에 영에 들어가. 중생된 영에 들어가. 중생된  영에 들어가면 영이 뭣 입고 있어요? 중생된 영이 뭘 가지고 있어? 중생된 영이 뭘 가지고 있지? 죽은 영은 그걸 가지지 못했는데 중생된 영은  가지고 있는 게 있어. 뭣 가지고 있어? 중생된 영이 뭣 가지고 있지? 중생된 영이  뭣 가지고 있어요? 뭘로 살아났어요? 중생된 영이 뭘로 살아났어? 중생된 영이  몇 가지로 살아났지요? 세 가지로 살아났어. 피 성령 진리로 살아났어.

살아났으니까 피 성령 진리로 살아난 것은 몇 가지로 살아난 것이요? 피 성령  진리로 살아난 것이 열여섯 가지로 살아난 것이라, 열여섯 가지로 살아난 것.

이 썩을 직책을 하다가 이제는 제사장 선지 왕직이 끝이 있어요? 제사장 선지  왕직이 끝이 있습니까? 대통령이 오 년 지나면 내려앉아야 되는 것처럼 그렇게  이 직책이 끝이 있습니까? 끝이 없어. 이것이 다 중생된 영이 이것으로 살아났어.

중생된 영은 직분은 무슨 직분을 가졌어요? 중생된 영이 몇 가지 직분  가졌습니까? 세 가지 직분 가졌어. 제사장 선지 왕직을 가졌어.

중생된 영은 어떤 데에 자유해요? 몇 가지 자유해요? 죄에 대해서. 사망에  대해서. 마귀에 대해서. 또 한 군데 없나? 하나님의 공심판에 대해서 자유라.

이러니까, 모든 썩을 것은 밖으로 나가야 됩니다. ‘점포 장소를 좋은 걸 구해야  될 터인데’ ‘이 대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자꾸 공부를 해야 되겠는데' ‘일류  대학에 가야 되겠는데’ 자, 이 지식은, 이 지식은 밖으로 `여기 시골에서 안  된다. 부산으로 가자. 부산보다 서울로 가자 서울보다 미국으로 가자.’ 자꾸 이래  가는데 이 완전한 지식은 밖으로 나가야 돼요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돼요.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돼.

요셉이가 역사에 없는 제일 그 일등 정치가로서 통치했는데 그 사람이 정치학  공부, 정치하는 그 정치학 공부는 밖으로 나가서 공부했어요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공부했어요?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공부했어. 거게서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지를 못해.

이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널리 볼 수가 없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길게  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거라. 길게 보고 길게 보고 길게 보고 영원을 보기  때문에 세상이 이해 못 하는 생활 하고 있어.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이것 뭐 얼마나 맛있는지.

이러니까, 항상 기뻐하면, 자, 항상 기뻐하면 왜 기뻐요? 감사를 생각했지.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면 무슨 권능 얻는다 했지?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면 무슨 권능  얻는다 했지? 이것 또 다 잊어버렸네, 어제 아침에 그렇츰 많이 해도.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면  몇 가지 그 권능 얻어요? 두 가지 권능. 두 가지 권능?  ○장로님이 이제 부자될란갑다. 두 가지 권능이라니? 한번 말해 봐요. 기도의  권능. 평강의 권능.

기도 암만 해도 “감사함으로 아뢰라” 이 감사를 발견한 사람은 그만 이 기도할  것 주여 주여 할 게 아니라 아뢰면 돼. 그저, 아뢰면 돼. 주님에게 ‘이렇습니다’  고하면 다 돼 버려. 아뢰면 돼. 뭐 간청하지 안하고 아뢰면 돼.

여게 넘치는 사람은 아뢸 것도 없어. 처음에는 주님에게 ‘이렇습니다  이렇습니다’ 아뢰다가 나중에 가서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것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 알고 다 해 주실 터인데 거게 대해서 뭐 모든 염려 다  맡겨 놓고 저는 저 할 일만 할 일이지 그런 염려할 여가 하나도, 자기 위해서 할  일이 하나도 없어. 자기 위해서는 생각할 것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영화롭게 할까 그것만 할 일이지 자기 위해서는  생각할 것도 할 일도 없고, 당신이 다 전지 전능자가 나를 사랑하셔서 다, 내가  생각도 못 하는 것 다 하고 계시고 있는데 그뭐 염려할 게 뭐 있어야지? “모든  염려를 버리라” “염려하지 말고 너희의 구할 것을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에게  아뢰라” “감사함으로 아뢰라” 감사함을 아뢰면 돼.

이러니까 이 기독자의 기도의 권능 평강의 권능이 어데서 나옵니까? 기도의 권능  평강의 권능이 어데 나왔어? 기쁨에서 나왔어. 기쁨은 어데서 나왔어? 감사에  나왔지. 감사는 어데서 나왔어? 열여섯 가지 구속에서 나왔어. 이렇게 깊숙이  들어 있는데 제가 껍데기로 가지고 자꾸 이렇게 날뛰면 돼요?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연구해도 양심을 써 가지고서 양심의 눈으로 파로  들어가야 되지 양심이 아니면 어두워서 못 들어갑니다. 양심이 아니면 어두워서  못 들어가. 이 양심 속에 들어 있는 중생된 영 속에 들어 있는, 또 진리 속에 들어  있는, 영감 속에 들어 있는, 자존자 주권자 하나님에게 있는 그것을 캐 내오는데  껍데기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허영과 허욕은 거기 들어가는 데에, 허영과 허욕은  여게 파고 들어가는 데에 방해가 됩니까 도움이 됩니까? 방해돼.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자기가 들어서 몰라요. 첫째 하나? 알고, 그다음에  또? 믿고, 그다음에? 행하고, 또 그다음에? 그다음에 또? 알고, 또 그다음에?  믿고, 행하고. 알고 믿고 행하고 알고 믿고 행하고 알고 믿고 행하고 알고 믿고  행하고 동글동글하게 이래 돌뱅이라. 끝이 없어. 이러면 무한한 것을 향하여서  찾아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새벽으로 나와야 어두운 심령이 밝아져서 이것 차차 차차 고쳐지는데 쿨쿨  잠만 자고 새벽에 못 나오는 그 사람이 뭘 안다 말이요? 몰라. 깜깜해.

등신이거든 좀 무지한 줄이나 알아야 되지.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워야 됩니다. 안 외우면 안 됩니다.

어짜든지 외우고 눈감고 명상하고, 또 그래 가지고서 외우고 눈감고 명상하고  그래 가지고서 무슨 지식을 가지고서 가르쳐야 돼요?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그래, 자기 지식. 누가 했어, 자기 지식? 자기 지식.

자기 지식이 뭐인데? 자기 지식 말하는데 자기 지식이라 하면 그거 백점이라.

자기 지식 무슨 자기 지식?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이라. 그대로 해 가지고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보니까 자기 지식이 있거든.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으로  가르치라 그거요. 알겠습니까? 이래야 될 터인데 이 반사들이 다 뭐 일등 반사들이 다 시들어 지금  골케골케하고 있어. 뭣 때문에?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아? ‘내가 젊으니까  돈 좀 벌어 가지고’ 어리석어. 이거 잘 하면 돈도 벌고 다 되는데, 돈벌려고  하다가 다 구원 다 절단내 버리려고? 이 구원만 위하면 돈벌이도 정당한  돈벌이가 다 잘돼. 구원 잘 이루는 사람이 부자 되지 뭐 구원 못 이루는 사람이  부자 될 줄 알아요? 우리 서부교회는, 내가 언제 며칠 전에 그말 들었어. 시골 갔다 오니까 시골은  어떤, 그 집사 여기 와 있는지 모르겠어. 시골 가니까 교인도 한 백 명 되는  교회가 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저것 하고 하는데 뭐 돈이 막 지걱지걱하게  그렇게 되더라, 그런데 그 부자가 됐는데 우리 교회는 자꾸 부자되는 사람이  없어요 이래. 그것 맞았어. 잘 봤어. 우리 교회는 부자되는 사람이 없어.

부자 그것은 뭣이지요? 무슨 표시? 제일 껍데기 표시라. 그러니까 도적질만  하는데, 뭐. 성경에 말하기를 “이렇게 내것을 도적질하기 때문에 이 모든 나라와  열방이 다 저주를 받고 있다” 이랬거든. 도적질하는데 저주 어찌 안 받아 될  거라, 도적질 하는데? 거게는, 그렇게 전부 교인들이 십일조 다 하더래요. 십일조 다 하고, 또 뭐 감사  연보 그런 것 하는지 모르지만 십일조는 다 하더래요. 이런데 여게는 십일조 하는  사람 천 몇백밖에 안 돼. 십일조 하기 전에는 경제에 곤란을 면하려고 생각지를  마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 성경에 말하지 안했어요? 일곱 가지 도적질을  회개해 놓으면 하늘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부어 주나 한번  시험해 보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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