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효력과 회개

 

1986. 8. 25. 새벽 (월)

 

본문:말라기 3장 9절∼10절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기독교는 실상의 도이면서 논리의 도입니다. 논리가 안 되는 실상은 다 거짓부리입니다. 얼마든지 논리해서 말할수록이 옳다 바르다, 말할수록 그러하다.

따져 들어갈수록이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그것만 가지고 되는가? 그것은 실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실상에 도달해야 되지 실상에 도달치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자기는 실상에 도달했다고 실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 잘못된 것을 바로 수정하고 찾기 위해서 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상의 도요 논리의 도인 것입니다.

모두 이 기도하러 가는 거, 기도실에 기도하러 가는 거, 기도산에 기도하러 가는 거, 또 새벽으로도 이렇게 모두 기도하러 가는 거 이거 좋지마는 잘못하면 기도하러 가는 것이 자기를 몇 배나 지옥의 자식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러 가는 거게 대해서 여러분들이 새벽으로 이래 기도하러 가는 것은 공차 타고 가는 줄 알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차부에서 그거 안 하면 경영이 안 되고 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한 달에 그것도 뭐 백여만 원 듭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저 중간반이 기도하러 가는 것도 꼭 차비를 냅니다. 중간반에서 내고 일반이 기도하러 가는 것은 일반 우리 회계에서 그것을 다 내 가지고 그래 기도하러 가게 됩니다.

그러면 아침으로 차타고 저 수원지 기도하러 가는 것도 다 온 교인이 그 차비를 내는 셈입니다. 그 내도 또 내 개인으로 기도하러 못 가도 다른 이가 가서라도 기도하면 그 기도는 다 서부교회 대표의 기도요 다 그것이 혜택이 돌아오기 때문에 암만 따져봐도 그러면 그것도 자기는 기도하러 못 가도 그 차비는 내야 된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공정되게 판정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내는 것입니다.

또 거창 같은 데 저런 데 기도하러 가는 것도 가면은 거기 갔다 올라 하면은 육만 원 듭니다. 육만 원, 요번에도 육만 원 냈지요? 권사님들, 육만 원 안 냈습니다. 어쨌어? 주머니 돈 육만 원 안 냈소? 어? 그렇게, 육만 원 내지? 남의 돈 가지고 가는 것 아니지? 육만 원 차비 내고 가지. 녜, 차비 내고 갑니다. 왜? 그거 아니면, 그렇게 가는데 특수하게 가는 그것은 그렇게 해서 차비를 안 내면 안 됩니다.

그런데 혹 육만 원이라, 여기 또 양산동에 가는 거 얼마라 하는 거 그런 것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거는 혹 오산이 돼 그렇습니다. 어찌 오산이냐? 거창 갔다 올라 하면 가는데 오만 원인데 육만 원이면 비싸지 않느냐? 일반 다른 통행료는 십만 원이 듭니다. 한 번에 오만 원씩이니까 왕복이면 십만 원 듭니다.

왕복이라 하는 건 그냥 갔다 오는 그거는 하지마는 두 번 가니까. 데리러 오고 하니까 두 번 왕복한다 말이오. 두 번 왕복이면은 십만 원이라. 그러니까 반밖에, 반 조금 넘는 셈입니다. 이거 다 착각을 하면 안 돼요. 계산을 바로 하고.

또 왜 그런 걸 그래 하느냐? 그것을 만일, 조그만한 교회는 그렇지마는 차비를 그냥 교회서 댄다 하면은 누가 제일 먼저 차지하느냐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놀러 돌아다니고 아무 무책임한 교회에 두통거리인 그 사람이 할 일 없고 하니까 항상 차는 그 사람이 타고 다닐 터이니까 그런 사람만 숭상하게 되기 때문에 이 교회를 조절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교회 행정이라 하는 게 성경대로 됐기 때문에 철두철미합니다. 그거 하나도 따져들어가보면 ‘그거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같은 그런 교회는 차비는 안 받습니다. 차비는 안 받는 동시에 그 기도원에 가면은 입장료가 오백 원 있습니다. 지금 오백 원인지 몰라도 오백 원 있습니다. 오백 원이면 거게 차비 왕복 차비의 그때 돈으로 내가 계산 대 보니까 한 오 배 됩디다. 왕복 차비의 오 배를 받습니다. 그래 안 하면 그거 현상 유지를 못 합니다. 그래도 유지를 하고서 기도하도록 하는 게 낫지 그걸 그라다 들통 나 가지고 유지 못하고 그러는 것보다 낫다 그거요.

또 그러고, 이렇게 해서 기도하러 가니까 자기가 조부라운 것 가지고 이거 뭐 교회서 하는 걸 이러니 저러니 잘못됐다 하는, 그러면 그런 걸 신고함에다 써넣으면, 그 써넣는데 이름을 기록해 주면 그것을 내가 암만 바빠도 전화로 해 가지고 ‘요렇고 요러니까 네가 이해해라’ 그걸 이해를 시켜서 자기가 잘 알도록 할 것인데 이름은 쓰지 안하고 그라기 때문에 그것은 그걸 광고할 만한 그런 재료도 못 되고 또 그냥 그거 무시할 수밖에 없고, 이러니까 신고하는 데는 반드시 자기 이름을 쓰지 안하는 거는 도둑 행위입니다.

알겠습니까? 신고할 때에는 자기 이름을 써서 ‘네가ㅡ이 책임을 지고ㅡ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해도 될 만한 그런 걸 신고해야 되지 그거 없이 신고하는 거는 그거는 말하자면 무고죄에 간다 말이오. 무고, 무고죄. 무고라는 건 연고 없이 고발하는 게 그게 무고죄입니다. 무고죄에 걸리는 거와 마찬가지라. 이러니까 그거 똑 이름을 써서 신고함에 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다 자기는 기도하러 가면은 가는 데에 이 모든 연관성을 다 생각해야 됩니다. ‘왜 내가 차비 안 내고 가느냐? 이거는 온 교회 전부가 다 차비를 내서 교인들 전체의 혜택으로서 내가 가는 거 아니냐? 그러면 내가 가 가지고 기도할 때는 이 모든 교회서 차비를 내도 오히려 뒤에 가서,’ 하나님 앞에 그거 계산이 다 되니까.

하나님 앞에 계산이 다 되니까 ‘너는 공차 타고 가 가지고 기도하는데 너는 차비를 안 냈다’ 할 수 있을 것이고, 기도했는데 차비를 안 낸 게 아니라 이거는 차비의 몇 배나 기도한 댓가를 뒤에 계산해서 받으면은 차비 주고도 몇십 배 지금 교회 봉사하는 일도 될 수가 있고 교회를 좀먹는 일도 될 수가 있고 요런 걸 다 따져야 된다 말이오. 그걸 따지지 못하는 사람이 뭐합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끼리 이래 서로 관계를 할 때에 꼭 무언중에 계산을 해야 됩니다. 말 없이 계산을 해서 최소한 남에게 빚지지 안하도록 해야 되고 다문 얼마라도 남에게 도움을 해서 봉사의 일에 계산이 조그매라도 봉사의 그 수량이 조그매라도 나와야 되지 이거는 만날 남에게 누만 끼치는 그런 빚지는 그런 거 하면은 지옥 행위라 그말이오.

우리 믿는 사람은 뭐이냐 하면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 있고 유익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게 필요 있고 유익하고, 다음에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 있고 유익하고, 원수에게까지 필요하고 유익하고, 모든 만사물에 다 필요하고 유익하고, 유익한 자가 돼야 영생이 되지 모든 존재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자가 되지면 그거는 존재할 수가 없고 사망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기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데에 참 기도를 효력을 보느냐 안 보느냐 하는 것은 자꾸 모든 일에 대해서 결과를 봐야 압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따져.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라” 이렇게 말했어.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라. 열매 보면은 그 나무를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했어.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네가 그 이게 뭐인지, 이게 뭐인지 모르거든 가만 두고 봐라. 그 결과가 어찌되는고 두 고 봐라. 네가 속단해 가지고 그건 잘못이라 나쁘다 뭐 좋다 옳다 뭐 그럴 게 아니라, 그걸 그래 속단하지 말고 가만히 두고 보면 얼마 후면은 반드시 그 결과가 나온다. 결과가 나오니까 결과를 보면은 네가 똑똑히 알 터이니까 결과를 보고서 모든 것을 정평 정가하도록 그렇게 해라 이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자, 내가 기도하러 가 가지고 기도의 효력을 봤느냐 안 봤느냐 하는 것을 첫째로 여러분들이 뭘 가지고 기도의 효력을 봤느냐 안 봤느냐 삼겠습니까? 기도하러 갔는데 내가 뭐인가, 하나님은 복덩어리요, 하나님은 평강 덩어리요, 하나님은 지능의 권능 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은 생명 덩어리요 완전이신데 그분과 나와의 가리워진 게 있으면 가리워진 것만치 그만치 그의 것이 나에게 오지 안하고 내것이 그에게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는 성전을 지어 놓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 있는 게 뭐입니까? 휘장입니다. 휘장을 가로막아 놓고서 사람들이 지성소에 못 들어갑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만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실 때에 그때에 성전 휘장이 사람 손을 대지 안하고 그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져 버렸습니다. 찢어져 쫙 갈라져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때 모두 ‘성전 휘장이 갈라졌다.’ 그분들은 다 전생명을 성전에다 지금 소망 두고 있기 때문에 휘장이 갈라진 것 보고서 ‘이거 휘장이 갈라졌다.’ 모두 다 백성들이 전부 놀라서 큰 대소동이 났습니다.

소동이 났는데 그게 성경이라. 휘장이 갈라지는데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은 그게 생명길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공심판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된 택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혀 있는 그 죄가 틔워졌다는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틔워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이신 주님과 우리와의 그 관계는 이게 틔워진 거는 아닙니다. 공심판에는 틔워졌지마는 사심판에는 틔워지지 안하고 그대로 있습니다. 있으니까 우리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이요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은 법적으로 틔워 놓은 그것을 우리 개적으로 실상으로 이걸 틔우기 위해서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가로막힌 거는 죄니까 자기가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작든지 크든지 그걸 죄를 하나 회개했으면 그만치 틔워졌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잘 몰라요, 도시 사람. 그러기 때문에 참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고, 그러기 때문에 시골 사람이라도 가난한 집에서 의인이 나왔고, 가난한 집에서 영웅이 나왔고, 가난한 집에서 지혜자가 나왔지 부자의 집에서는 만용자만 나왔습니다. 어리석은 용기 욱기만 있어 가지고 울컥 해 가지고 뒤에 망할 줄 모르는, 모략이라 하는 게 전혀 안 나오고 어리석은 만용만 나온 것이 부자 자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부자는 망하고 자꾸 가난한 사람은 늘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은 농사 짓는 데 거기는 뭐 조그만한 물, 봉답은 물이 좋지 않은게 봉답이오. 수답을 붙이는 사람은 큰 내나 강을 끼고 앉아서 그저 물을 관수를 해 가지고 들어오니까 논이 버쩍 말랐으면 수문만 확 빼 버리면 물이 막 콱 들어가 가지고 잠깐이면 꽉 찹니다. 또 그리 안 하면 많으면 또 막아 버리면 물 안 들어갑니다.

이렇지만 저 봉답 붙이는 사람은 그래 안 됩니다. 참 물이 나오는 것이 메기 춤만하요. 메기 춤만 하다, 메기 춤은, 그 메기 침이 아주 그게 좀 찌늑찌늑하기 때문에 가는 거, 꿀을 들고 요래 보면 만일 뒤에 가서 맨 끄트머리 가늘게 나오는 그보다도 더 가늘게 나오는 게 메기 춤이라. 메기라 하는 건 고기인데.

메기 춤만치 나오는 그걸 잘 저축해 가지고 논물을 보는 것인데 그 논물에 물을 대다가 보면 논이 보면 뭐 물을 딱 한정해 놓고서 ‘물이 어제보다 좀 줄었다.’ 그라면, `줄었어? 어제 기후가 어째 됐지? 어제 날씨가 따셔서 물이 많이 증발되겠구나.’ 그러면 ‘물이 얼마 증발됐으면 어느 정도 물이 줄어졌을 터이니까 그러면 가 보자. 어느 정도 줄어졌을 터인데 아무래도 날씨보다는 조금 물이 더 많이 소모가 됐다. 어짠 일일까?’ 이제 수문에 올라가 봅니다.

올라가 보면 바람에 날려서 무슨 이런 뭐 나무 잎파리나 뭐 풀이나 그런 것이 날아와 가지고 거게 걸렸습니다. 거게 이래 딱 뭐 뭉텅한 게 아니라 그거 찍해야 한 내끼, 한 내끼 요래 딱 걸렸어. 한 내끼 걸렸으니까 조 위에서 물이 졸졸졸 계속 살수로 쪽 요래 나오다가 그게 걸린 데 와 가지고 물이 조금 지체를 합니다.

조금 지체해. 뭐 그래 많이 지체하는 게 아니라. 조금 지체하면 논이 마릅니다.

왜? 조금 지체했으니 경사돼서 빨려 나오면 좋은데 조금 지체하니까 지체한 것만치 물이 벌써 딴데로 새서 논에 들어가는 물이 적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지푸라기 하나 걸려 가지고 논이 마르고 또 그거 하나 틔움으로써 논이 물이 채여지고, 이러니까 봉답 붙이는 사람은 논이 한번 말라 놓으면은 그 논을 비오기 전에는 물을 싣지를 못합니다. 또 한번 물을 실어 놓으면 그렇게 단속하기 때문에 물이 잘 소비되지 안하도록 단속을 해서 그래 합니다.

이러니까 그 가난한 집 자식, 봉답 붙이는 집 자식은 굉장히 계산이 빠르고, 수지 계산이 빠르고, 저축이 빠르고, 수지 계산이 빠릅니다. ‘요라면 수지에 좀 남는다.

모자란다.’ 이러니까 그 전체 생활에서 배우니까 그게 부자 아들, 부자 아들은 그거 바보요. 그 학교도 보면 부자 아들은 그거 다 꼼뱅이, 번들번들해 살만 쪘지 그 아무것도 없어. 그 모두 가난한 집 아들이 전부 왕입니다, 이 이거라.

그렇게 그런 것도 그 뭣인가 그것을 봐서 원인을 찾고, 결과를 봐서 원인을 찾고 원인을 가지고 결과를 찾고 자꾸 이렇게 해야 계산이 되는 것이지, 이러기 때문에 이 특별계시는 보통 일반 계시에서 특별계시를 연구해야 됩니다. 제가 성경만 가지고 암만 앉았어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 사람에게 가 가지고 한국 사람의 이렇게 민족성 변동되는 거, 또 이거 경제성 변동되는 거 이런 건 가서 설교하면은 미국 사람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노?’ 못 알아듣습니다.

인제 여기 한국에서는 보면은 금방 경제성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자꾸 모든 정치도 이랬다 저랬다 자꾸 물결같이 자꾸 뒤벼지고 자꾸 변동이 돼지지, 또 정권도 변동이 돼지지, 이러니까 변동 많은 데 여게서는 참 예수 믿기는 참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예수 믿는 데는 세계에 제일입니다. 왜? 대국 사이에 끼었어. 일본이라는, 그 대국입니다, 섬나라지만. 대국 사이에 끼었지, 또 이거 중국이라는 이거 또 대국 사이에 끼었지, 지금은 미국이라는 그 사이에 끼었지, 이래 놓으니까 이 대국의 그 대세가 이리 기울어지면 우리는 얼른 재빨리 우리 태도를 이렇게 해야 되고, 또 이 대세가 이리 기울어지면 또 이리 해야 되고, 우리는 이 객관 그 세력에 따라서 우리의 주관 세력의 이 모든 운전을 바로 해야 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러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이 지능이라 하는 건 굉장하고 또 한국 사람이 같이 걸어가면 벌써 대국 사람들은 뭐라고 해도 나중에 다 속히고 말아요. 그 앉아서 뺏겨 먹고 앉았어, 얼마나 지혜로운지. 그 많은 그런 데서 자꾸 연단받고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자꾸 생각해야 돼요. 연구 없으면 안 됩니다.

‘오늘은 종전과 같이 기도하러 간다.’ ‘기도하러 갔으니까 또 기도하고 온다.’ 이라면 그거 죽은 사람이라. `보자, 나는 오늘 기도하러 가 가지고 내가 발견치 못한 죄를 뭣을 발견했느냐?’ 그게 있어야 됩니다. 만일 발견치 못한 죄를 발견 못 했으면 기도하러 공연히 갔습니다, 공연히 갔어. 또 발견하고, ‘그러면 내가 오늘 고친 거는 뭐이냐?’ 요걸 고칠라고 애를 썼는데 고치는 것은 거게서 나와 가지고 생활을 봐야 알겠는데, 거게서 기도할 때는 고치겠다고 결심도 하고 작정도 하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했는데 이제 요것이 ‘보자, 고쳐졌나 안 졌나, 고쳐지나 안 지나, 졌나 안 졌나, 고쳐지나 안 지나?’ 생활해 봅니다. 하루를 겪어보니까 ‘오늘은 그게 고쳐졌다. 오늘은 고치지 못했다.’ 이렇게 해 보면 그날 고칠라고 결심하고 보면은 그날은 분명히 그 죄를 범할 수 있는 그런 조건들이 막 들고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 아, 이거는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내 밖에는 수많은 악령들이 나를 범죄케 할라고 마구 우는 사자와 같이 지금 이렇게 작동하고 있는 것을 안다 말이오.

자꾸 이 경험한 사람은 거게다가 관심을 두니까 경험한 사람이 자꾸 이래 말하는 것은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은 ‘그저 잔소리 한다. 그저 쓸데도 없는 거짓말 기만적인 말을 하고 있다. 저 백 목사님은 나이가 많으니까 노파심에서 백지 소용 없는 잔소리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 그렇게 말한 자는 망합니다. 반드시 제가 망해야 알지 어짤 것입니다. ‘네가 가면 엎어져서 지금 코를 깰 거다’ 암만 말해야 안 돼요. 코를 깨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 안다 그거요.

그러기에 이 신앙이라 하는 것은 자꾸 자기가 연구해 가지고 생각해서 이래 나가야 되지 그게 안 되면 안 됩니다. 그 말 한정 없어 그거 다 말할 수 없는데 자기가 기도하러 갔으면 발견 못한 죄를 발견한 게 있어야 됩니다. 발견한 게 있어 그걸 적어야 됩니다. ‘아, 나는 이 죄를 말하면,’ 금방은 환하게 보여서 ‘이 죄가 내게 있다, 이 죄를 회개해야 되겠다.’ 했는데 그만 그 자리 떠나 버리고 나면은 ‘내가 무슨 죄가 있던고? 그 죄를.’ 암만 생각할라 해야 잊어버려집니다.

그러기에 잠깐 내 머리에 한번 씻어 가는 것도 있고, 죄가 ‘이거 죄라’ 죄를 가르쳐 주는 것이 한번 씻어 가는 것도 있고 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한번 씻어가는 것도 있고. 이래 그런 건 잡을 수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 못 했던 것을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으면 길을 가다가 만일 거석하면 멈춰 서 가지고라도 수첩에다가 적습니다. 안 적으면 그걸 자꾸 그것만 외우고 갑니다. 자꾸 외워서 몇 번이든지 해도 기억하도록, 제가 경험하는 데로는 수십 번 외워서 기억을 하고 이래 가도 나중에 그만 깜깜하게 없습니다, 없어요. 어떨 때는 노디 건너오다가도 없어지고, 언덕을 내려오다 보니까 언덕이 위험하니까 내 마음이 은연중 언덕이 위험하니 거게 떨어지지 안할라고 언덕 있는 데 그리 마음이 팩 옮겨 버렸다 말이오. 옮기면 깜깜하게 없어. 이러니까 어떨 때는 ‘내가 거기서 잊어버렸다’ 그래 그걸 찾을라고 도로 언덕으로 기어올라갑니다. 아무 올라가봤자 헛일이라. 왔다가 퍼뜩 하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조심하나 안 하나 생각을 가지고 연구하나 안 하나 닥치는 그대로 사는 자는 퇴보하는 자입니다. 그건 퇴보하는 자요. 성경에 말하자면 젊은이의 신앙. 젊은이의 신앙은 환상 봅니다. 아이의 신앙은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런 게 아니고 자꾸 뭣인가 새로 두 가지,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발견하는데 환하게 알아서 자다 생각해도 알 수 있도록 하는 그 발견된 것 그것을 지켜서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신앙 걸음을 걸어가되 앉은뱅이 누운뱅이 걸음을 걸어가는 사람이고, 자기가 퍼뜩 자기에게 ‘이게 죄라’ 하는 게 생각이 났던 그놈을 딱 적어 가지고 그걸 잡고 자꾸 이걸 놓지 안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퍼뜩 생각나는 하나님의 뜻, 퍼뜩 생각나는 죄, 요것을 거머쥐고 자꾸 고쳐서 요래 나가는 그 사람은 빨리 달음질하는 그런 신앙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이 자꾸 이렇게 해서 돼야 되는 것이지, 이러니까 뭐 어데 설교 준비를 자꾸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성경 말씀 알고 하니까 자꾸 성경대로 살라고 생각하니 주님이 잘못된 거 가르쳐 주면 가르쳐 주는 그거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하나님의 뜻 가르쳐 주니까 뜻 그거 말하고 자꾸 이라니까, 내가 여기, 올해 내가, 6 5가 몇 해 됐습니까? ○장로님 6 5가 몇 해 됐지요? 삼십육 년? 예? 6 5가 삼십육년째 납니까? 몇 년에 6 5가 났습니까? 55년? 50년? 50년 그것만 기억하면 좀 알러구만. 그라면 나는 그걸 기억 못 하고 있어. 50년.

내가 여기 삼십오 년 됐습니다. 내가 여기 서부교회 온 지가 삼십오 년 됐어.

삼십오 년 됐는데 삼십오 년을, 6 5 이듬해 왔어요. 삼십오 년이 됐는데 삼십오 년 동안 가르쳐도 항상 못 알아듣고 항상 새것 말한다 하는 거라. 그거 내가 자꾸 말을 지어내 그런 게 아니라.

자꾸 그 본 세계를 자꾸 이렇게 말해도, 그러니까 그뭐 삼십오 년 돼도 장 가르치는 것이, 가르친 거 되가르쳐도 모르는 것 있지마는 또 거기서 조금 더 나은 거 나은 거 가르치니까 자꾸 그래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꾸 우리는 생각해서 자꾸 전진해야 됩니다. 깨달음이 전진하면 그 사람은 신앙이 전진한 증거입니다. 회개가 전진하면 그 사람의 신앙이 전진한 증거입니다. 이러니까 깨달은 건 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기의 잘못된 걸 깨닫고 요 둘을 깨닫는 것이 요것이 자꾸 전진 되면은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이 전진되는 것이요 구원은 자꾸 향상돼서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기도하러 가도, 가거들랑은 뭣인가 잘못된 것을 발견해 가지고 고친 게 있어야 됩니다. 고친 거 없으면 그 사람도 놀러 돌아다닌 것이고, 고친 게 없으면 어찌 되느냐? 고친 게 있으면 그 사람이 새로와지고, 그 사람이 진실해지고, 겸손해지고 자꾸 이렇게 새로와지는데 고친 게 없으면 그 사람이 새로와지는 것 반대 묵어집니다. 묵어지니까 강퍅해집니다. 자꾸 강퍅해지고 어두워지고.

고친 게 있으면 밝아지고 고친 거 없으면 어두워지고, 또 고친 게 있으면 세상을 점점 등져서 세상과 멀어지고 하늘나라와 가까와지고, 고친 게 없으면 자꾸 세상으로 더 들어가고 고치는 게 없으면 뭐이 되느냐? 자기 주관화됩니다. 고친 게 없으면 자꾸 자기 주관화가 자꾸 주관화 더 되고 더 되고 자꾸 더 되고, 고친 게 있으면 자기 주관을 죽이고 부인하고서 하나님의 화되는 자꾸 성화되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가 기도하러 갔으면 죄를 발견하는 거 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거, 그러면 내가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으니까 그 기도해서 죄와 의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니까 기도를 바로 했나 안 했나 하는 그거 뭣 보고 압니까? 기도를 바로 했나 안 했나 하는 건 뭘 보고 압니까? 결과를 봐야 되지.

열매를 봐 알아야 돼요.

기도를 내가 바로 했나 못 했나 하는 건 그 결과는 뭘 보고 알아야 됩니까? 그 사람이 고친 거, 잘못된 걸 고치고 하나님의 뜻을 행했으니까 그거 회개 아닙니까? 잘못된 걸 고치는 것은 회라고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뜻을 바로, 과거에 바로 찾지 못했던 걸 바로 찾아 행하는 것은 개고, 회개라 하면 다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회개가 있어야 된다 말이오.

자기가 보면 ‘내가 요번 기도에 회개가 된다.’ 회개는 자기가 암만 할라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회개를 할라 한다고 결심해도 되는 게 아니고 밥 굶어도 되는 게 아니고 뭐, 우리가 경험은 그거 한정 없이 했습니다. 어떤 것은 밥을 굶어봐도 안 되고, 그거 또 뭐 산에 가서 철야기도를 해도 안 되고, 또 뭐 암만 생각해도 안 되고, 요런 요 죄를 회개할라고 안 하면 무슨 벌을 줄라고 스스로 내가 형을 정해 놓고서 형을 줘 가며 이래 고칠라 해도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꼭 고치는 데는 하나님이 고치는 은혜를 베풀어 줘야 고쳐지는 것이오.

그 회개는 하나님이 회개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회개가 돼지지 그리 안 하면 안 되는 걸 자기가 시인해서 얼마든지 경험할 거라.

이러니까 ‘회개는 하나님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안 됩니다’ 하는 그것은 남이 말하니까 백지 따라서 말하는 자 있고 자기가 실지로 그 경험을 하고 말하는 자 있고, 경험하고 말하는 자는 실상을 말하기 때문에 제가 실상이 전해져 가고 경험은 한 내끼도 하지 않은 게 다른 사람이 말하니까 말을 따라서 말하는 자는 그 사람은 외식이요 거짓말 하기 때문에 아무 실효가 없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서, ‘회개 된 것이 있나 없나?’ 그러면 회개 된 것은 자, 회개가 된 것이, 회개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회개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결과는 뭘 봐야 압니까? 그 결과는 뭐? 회개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결과는 뭣 보고 알지요? 뭣 보고 알아요? 어? 뭐? 현실. 행동.

그런데 그것은 회개 됐나 안 됐나 하는 건 제가 회개를 했다 말이오. 그 회개를 했다 말이오. 회개는 했는데 회개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입니다.

기적과 축복이 오면 하나님이 긍정하고 됐다는 거고, 그게 오기 전에는 내가 회개했다는 게 내 주관적 회개지 ‘이게 바로 되지 안했다, 이게 틀렸다. 이러니까 이거 좀 한번 따져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자꾸 이래 따져서 자꾸 대해 가지고 이라다가 만일 기적과 축복이 오면 이제 그때는 ‘됐다’ 하는 것을 인정을 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래서, 자꾸 우리가 실상 있는 이것을 이루어가야 될 터인데 뭐 기도하러 다녔어도 아무 그게 없으면 헛일입니다.

나는 기도하러 가면은 봅니다. 지금 인제 두고 봐요. 두고 보면서 ‘보자, 여기 권사님들이 저 거창 장생골 기도하러 가 가지고 일주일 기도하고 왔는데 보자 뭐 요번에 뭘 발견을 했나, 잘못된 걸 발견했나, 뭐 하나님의 뜻을 내가 알지도 못하고 한 하나님의 그 뜻을 발견을 했나, 또 거게 대해서 뭐 어떻게 기도했나?’ 그건 내가 모르지요. 모르지마는 결과는 자꾸 보이니까. 했나 안 했나 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봅니다.

그래 내가 차 태워 온 ○○○집사더러 ‘이번에 그 어른들이 모두 기도하러 갔는데 보니까 어떻더노?’ 인제 ‘몸이 어떻더노?' 이래 말한 건 내가 그 사람한테 내용은 말 안 하고, 여기 와 앉았을 것이라. 뭐이냐 하면은 그 내 말하는 것은 ‘어떻습디다’ 하는 그 말 하는 데 따라서 나는 거기 또 내가 점칠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들어 가지고 점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러면 말하자면 피부에 어떻게 나타났더냐 그말이오, 피부에 어떻게 나타나나? 그게 피부에 나타나요. 은혜받고 못 받는 게 피부에 나타나고, 동자에 나타나고, 그거 다 행동에 나타나고 다 나타나요. 이거 자꾸 수입이 있으면 자꾸 보내 주지요. 수입이 없으면 안 보내 줘.

이번에 저 남권찰님들이 저게 팔복산 기도원에 간다고 이래서 내가 가지 말라 했어. ‘가지 마라. 뭐 팔복산에 뭐 기도할라면 어데로 가든지 하지 뭐할라고 가?’ 이 팔복산 그거는 경치가 좋고, 계곡이 좋고, 물이 좋고, 아주 공기 좋고 가서 놀기로 말하면 그만이라. 뉘가 밥만 주고 그라면 거기 가 가지고 뭐 평생이라도 거기 가 살면 좋을 곳이라. 이런데 갔다 와야 아무 효력이 없어.

효력이 없어서 내가 가지 말라 했어요.

가지 말라 하니까 그래 이제는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양산동으로 가든지 말든지 하고 가지 마라’ 했더니마는 김해 묘지로 간다 해. 그래 내가 김해 묘지로 간다 해서 ‘김해 묘지에 가면, 저것들이 김해 묘지에 간다. 김해 묘지에 가 봤자 그렇게 하기가 좀 불편할 거고 김해 묘지에 그거 그래서 지금 저 팔복산으로 코스를 돌릴라고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가?’ 이랬는데, 아닐성 그라기 전에 ○장로님이 떡 나한테 말해. 다른 사람이 말했을 거야, 아마.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몰라도 내 생각에는 그래요. ‘○장로님 말을 제일 목사님이 잘 들으시니까 ○장로님이 한번 말해 보라’고. ○장로님이 그만 영웅적으로 대표가 돼 가지고 그래 청하는 모양이라.

‘우리 지금 팔복산으로 가면 싶습니다.’ `팔복산에 뭐하러? 기도해야 아무 효력도 없는 거.’ 이라니까 ‘요번에 가서 기도를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하고 기도를 잘하고 그렇게 와서 일을 부지런히 하겠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그라면 ○장로님이 그 책임을 질랍니까? 책임을 지고 갈라면 가시이소.’ 이라니까 ‘그래 하겠습니다.’ ‘그라면 한번 보내보지.' 보내봤는데 갔다 와 가지고 지금 어떻게 됐는지 내가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내가 하나 보이는 건 갔다 왔는데 어젠가 아랜가 어데 예배 볼 때 보니까 ○목사님이 저 뒤에 앉았어. 저 뒤에 앉았어. 뒤에 앉아서, 뒤에 앉으면 다른 교회들은 장로면 저 뒤에 앉았습니다. 장로면 저 뒤에 앉았어. 뒤에 앉다가, 뒤에 장 뒤에 앉을 수도 없는 사람이 뒤에 앉았다가 나중에 그만 밖으로 나가 버린 사람 누가 압니까? ○○○권사님 압니까? 그런 사람 알아요? 저 삼봉산 집회든지 가면 저 뒤에, 의자 놓고 맨뒤에 앉았다가 지금 나간 사람 알아요? 몰라요? ○○○. 다이야쟁이. 알겠습니까? 그 사람은 집사도 겨우 된 사람이 저 뒤에 앉았습니다. 앉고, 떡 의자 앞에 놓고 이래 턱 이래 바라보고 이래 앉는데 ‘저거 나간다’ 내가 몇 번 그랬어. `너 여기 앉으면 뒤에 가서 다 낙심하고 나가게 된다. 여기 앉았지 말고 저 앞으로 가라.’ 이래서, ‘ ○목사님이 누굴 만난다고 그라는가보다’ 이라는데 그래 인제 그런 걸 봅니다.

그래 내가 또 뒤를 이래 보면서 오늘 아침에 또 쭉 봐요. 눈이라 하는 거 그렇게 빠릅니다. 보는데 저 뒤에 보니까 ○○○조사님이 앉았는데 뒷꼭대기로 보니까 좀 모가지가 가느리하고 좀 말랐어. ○○○이 요번에 좀 단식을 했는가? 그 단식 좀 했어요, 금식 좀 했어요? 금식했어요, 했으면 손 들어 봐. 안 했어? 안 했어? 밥만 실컷 먹고 살만, 그런데 마르기는 말랐어, 어쨌는가? 뒷꼭지가 좀 말랐어. ‘금식 기도를 했나?’ 이 보니까 금식 기도 하나도 안 했구만. 안 하면 그까지 가 가지고 뭐할 거라? 뭐하고 왔어? 밥 먹고 소화 잘되고 밥맛 있고 그래 왔구만.

못써.

이번에 또 볼 거야. 내가 이제 두고 보면 알아요. 일하는 데 권능이, 제가 ‘이거 목사님이 볼 터이니까 한번 갔다 오는 날이면 효력이 있도록 이래 내 가지고 이제 앞으로는 갈라 하면 그만 아이 팔복산에 좀 갔다 오이소, 좀 갖다 오이소.’ 자꾸 이래 자진해 이래 하도록 할라고 애를 써도 안 됩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야 되지 권능 안 받으면 안 됩니다.

심방하러 가니까 도망을 치는데 어째요, 심방하러 가니까. 심방하는 그 사람들이 도망을 쳐요. 심방하러 가니까 그만 들짱 ‘이거 창기가 왔기 때문에 한번 히야까시 하고 같이 한번 놀아보자.’ 만나면 히야까시나 하고 농담이나 하고 이래 가지고 그만 헛일되고 마는 거라. 실컷 한번 그 사람 창기성, 그렇게 이 모든 잡성 이것만 길러 놓고 오니까 돌아다녀봤자 이거 돼지를 안해.

내가 성령의 감화를 가지고 가야 그 사람이 성령의 감화를 받는 것이지, 반사든지, 남녀 권찰이든지, 목사든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방 많이 다니는 목사가 교회 망친다’ 그말 해. 이거 뭐이냐 하면은 안 가도 안 되지마는 호별 방문은 자꾸 하라 하지만 내가 심방 많이 하라 소리는 안 합니다. 심방 많이 하는 거는 심방 많이 하는 사람, 하나님과 명상하고 기도하지를 못하고 하니까 헛일이라 그말이오.

내가 어제도 보니까 오후 한 다섯시 반인가 여섯시인가 거의 돼 갔는데, 어제가 아니고 아레라, 토요일날. 보니까 ‘이거 목사들이 오나 안 오나?’ 이랬는데 그 보니까 ○○○교회 ○목사님이 내려와. 내려오는데 그때 내려오는데 보니까, 내가 얼굴 보면 알아요. ‘오늘, 내일 설교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구나.’ 그래 인제 이래 보이고 그래 인제 마침 내가 만난 마루대에서 인사를 했어.

또 조금 있으니까 좀 있다가 뭐 인제 하다 보니까 뭣이 발자국 소리가 나 또 내가 눈을 뜨고 봐요, 이거. 누군고 이래 보니까 ○○○목사님이 내려가는데 요 오그려 가지고 요래 가지고 살망살망살망 이래 가지고 살살살 요래 가지고 오그려 가지고 가. ‘저도 왔구나.’ 사람 마음 하나님 마음과, 하나님 마음이 그래요. 용납해요.

이래 기도하다가 그게 자꾸 힘을 쓰면 ‘주님이여, 주님이 이렇게 힘을 쓰는데 힘을 쓰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뒷받침을 해서 힘을 쓰면은 교회가 부흥이 되면은 힘쓰는 자의 하나님이로구나. 그것 보고 나도 힘써야 되겠다 이렇지마는, 힘을 쓰거나 안 쓰거나 교회가 그대로 있으면 다른 사람이 힘써봤자 별수 뭐 있노? 힘써 봤자 다 그렇지. 힘쓰는 제나 힘 안 쓰는 내나 꼭 같다.’ ‘이러니까, 우리가 인간 행동을 할 때에 하나님이 인정이 되는 행동을 하거들랑은 하나님이 후원을 해 가지고 이거 봐라. 이렇다. 쑥 올려 버리고 인정 안 하는 미운 행동을 하거들랑 푹 내려오고 당신이 이렇게 해 줘야 인간의 다른 사람이 보고 그라지 입으로 암만 말해 봐도 다른 사람이 말을 어데 듣습니까?’ 이래요? 그래 인제 이라는데 아무 교회는 위해서 기도하는 데 힘없다 말이오. 어제 그렇게 내려가는 거 보니까 또 내 마음이 달라져. 달라져서 ‘이 ○○○교회를 어짜든지 하나님께서 부흥을 시켜서, 열심히 저래 하는 데에는 도와줘서 그 교회가 부흥돼야 충성을 하니까 되는구나 이걸 알지요. 암만 충성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러면 하나님 죽은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마는 행동적으로는 아무 반응이 없고 죽은 하나님같이 돼 있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을 산 하나님으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따져댄다 말이오. 자꾸 따져.

따져서, 그래, ‘아무것이는 그 목회하는 것이 죽도록 충성하는데, 이 충성하는데 이게 교회가 안 되면 하나님을 없다고 다 부인하게 됩니다. 다 방종한 사람 됩니다. 이 방종한 것은, 사람의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보고 하는 게 아니고 거거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지금 기적과 축복을 주느냐 어떻게 거기 대해서 보응을 해 주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거게 대해서 보상이나 보벌이나 해 주느냐? 이것을 사람들이 보고 회개하는 것이지 사람 행동 그까짓 거야 이래도 저래도 다 많은 것인데 누가 그걸 보고 신임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자, 그 사람 암만 그렇게 해도 ‘내 힘이 세다. 힘이 세니까 내 힘 가지고 이래 할 수 있다.’ 이라는 것을 주님이 그런 것 다 다투지 말라 했는데 멱잡이를 놓겠습니까 어짜겠습니까? 그거는 우리는 그렇게 못 하도록 당신이 했기 때문에 멱잡이 놓지 못하는데 그거 그렇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이 담당하셔야 되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자꾸 지금 총공회 왕이 되고 자꾸 이렇게 되어지고 하니까 그러면 총공회는 힘이 제일이다. 그러면 교회 나올 것 없고 저 도장에 가야 돼, 도장에. 도장으로 가는 것보다도 더 깡패가 돼.

요새 깡패는 말이요, 깡패는 뭐 칼로 싸운다 하는데 그뭐 요새 지금 여기서는 그래 하지마는 우리가 일본 있을 때에는 도장에 이렇게 내가 얼마 좀 다녀봤는데 거게는 싸우면 그래요. 거기는 집이 모두 다다미라요. 다다미면 아이꾸지라 하는 칼이 요만한 거 있어요. 요만한 거 있는데 그 칼을 찔러 가지고 빼면 잘 빠지구로 공기 들어가는 것이 요 가운데 줄이 들었어요. 양쪽에 줄 딱 있어서 그거는 칼로 찔렀다 빼면 쑥 빠져 버립니다. 이런 다른 칼은 요만치만 들어가도 못 뺍니다.

살에 들어가만 안 나와요, 빼도. 이런데 아이꾸지 떡 이것을 다다미방에 턱 꼽아 놓고 그래 얘기하고 있어. 저 ○○○집사님 어머니 일본 많이 있었는데 그거 더러 봤습니까? 아이꾸찌 찔러 놓고 하는 것 봤어요. 그래 그래 놓고 말합니다. 그래 놓고 말해. 떡 칼 찔러 놓고. 이 사람 뿍 저 사람 한번 꾹 찌르고 그래. 나도 칼 찔러 놓고 이래 칼 찔러 놓고 얘기합니다.

그것도 처음에는 겁이 나지마는 나중에 거석하면은 그걸 다 연단이 돼 놓으면 으례히 칼 찔러 놓고 칼을 찔러 가지고 그래 칼을 그때 그 사람들은 많이 맞은 것이 상이라. 목욕하러 가면 이거 칼을 찔려 가지고 흉터가 많지마는 또 역부러 흉터를 또 냅니다. 흉터를 내 가지고 온 몸뚱이가 흉터 막 더배기라. 이라면 ‘저거 칼 많이 맞았다’ 그래도 인제 가짜로 칼자국을 낸 거와 진짜로 찔린 거와 또 그거 표가 난다 말이오, 또 볼 줄 아는 사람은. 그래 그게 많으면 거석해.

이러니까 자, 그런데 이렇게 거기 가 연습해 가지고 그렇지 뭐 성경 보고 기도하고 사경회 할 게 뭐 있습니까, 이게 제일인데.

이래서 내가 신물이 나도록 ‘우리 총공회는 영감의 영능과 진리의 힘은 다 없어져 버렸다. 여게는 육박 힘이 우리 총공회에는 지금 왕이다. 육박 힘. 육박 힘.’ 내가 그런 말 ○○○목사님 내가 몇 번이나 했어요? 많이 했어요, 많이.

저거 귀에 들어가도록 많이 했어. 그거 내가 말을 그래 할 때에 하나님 들으라고 하는 거라, 하나님이.

‘이러니까 총공회는 영능이나, 설교의 능력이나, 진리의 능력이나, 기도의 능력이나, 이거 새사람의 능력은 그것은 소용이 없고 이 육덩이 옛사람의 힘이 왕노릇 하니까 총공회를 이런 공회라, 이러니까 이걸 당신이 가르쳐 놨으니 자, 암만 힘이 모자라도 육박전으로 그래 못 하면 또,’ 육박전으로 그래 못 할 사람은 다른 지혜가 있어요. 저 깡패를 운동을 해 가지고 하면 그까짓 거 대번 때려잡아버려요, 그만. 깡패 몇만 오는데 그만 병신을 만들어. 이라지만 그거는 우리가 또 그 방법은 못 쓴다 말이오. 못 쓰니까 ‘하나님이 이거 해 줘야지 어짭니까?’ 하나님이 해 주시요. 하나님이 해 주셔.

그만 꼼짝 못하게 이거 육덩이 가지고 날뛰는 사람들은 그만 병신이 돼서 그만 이래 가지고 이라도록 하고 있지 이게 여기 가 가지고 배척당하지 배가 고프지, 그만 오글트리기를 하나님께서 못을 못 대가리를 요래 위로 박아 가지고 꺼꾸로 착 거석해 가지고 못대가리가 나무 속에 폭 들어가도록 때려박는 거 말이오.

그렇게 오글트려. 탁 오글트려 접을트려서 오글트려 대가리가 땅속에 들어가도록 그렇게 오글트려 버려.

이래 놓으니까 인제는 말합니다. ‘우리 총공회는 이거 깡패 지금 육체의 힘이 세다고 뽐내는 사람들 차차 차차 없어지는데 어데로 갔노?’ 내가 이라면서 더러 조롱을 해요. 비웃어요. 이거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돼요. 하나님이 그래, 하나님이 그거 안 하시면 복음 운동 못 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에게 육박전으로 할 거 하나님이 육박전으로 하고 뺨을 때릴 거 하나님이 뺨을 때리고 이래야 되지 하나님이 안 하고 목사가 그거 할라 하면 당장에 고발당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두고 안 된다 그거요.

이 뭐이든지 결과를 봐야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보자, 그 사람에게 하나님 권능이 같이 하나 안 하나?’ 결과를 봐야 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할 때는 당장 하루 동안에 보고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면 안 돼. 그걸 일 년 보고 평가하는 사람보다 십 년 보고 평가하는 사람이 낫고, 십 년 보고 평가하는 사람보다 몇십 년 보고 평가하는 사람이 나아.

그거보다, 그러면 길게 평가하면 벌써 그게 나왔다 말이오. ‘그때는 그 사람이 신앙이 어떤데 어떻게 되면 무슨 실수 해,’ 그 실수도 다 제가 이거 다 제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해서 결과를 보고 우리가 자꾸 원인을 깨달을 수 있어야 되는 것인데, 우리가 지금 암만 설교 백 목사가 어제 뭐 연보에 대해 말한 거 연보 많이 나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천물되지 말고 부자되라고 하는 것이요, 부자되라고.

부자되라고 하는 것은 그게 있으면 복음 운동도 돼지고 자신도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 주시는구나. 축복 주시니 이제 나도 그러면 요 축복받는 방편을 자꾸 써야 되겠다.’ 이렇게 자꾸 자신이 생겨질 것이기 때문에 어제 설교를 했다 그말이오. 설교를 했는데,

그러면 자, 어제 설교 했는데 여게서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한 팔백 명 너머 나왔는데 자, 여게서 이제 십일조 하던 사람, 또 안 하는 사람이 새로 하기로 작정하는 사람, 자, 십일조 지금 현재에 할 사람 손 들어 봐. 못 할 사람은 거짓말 하지 말고. 할 사람 손 들어 봐요. 십일조 할 사람 손 들어 봐요. 십일조 할 사람? 이라면 십일조 할 사람이 현재 여게서 팔백 명이 되고 또 안 나온 그 사람들도 십일조 하는 사람 있어요. 많아요.

이런데, 믿는 사람이 요거 안 하면 망하는 거라. 십일조 안 하는 사람은 절대 경제적으로 성공이 없습니다. 있다 하면은 그거 뭣 돼요? 있다 하면 그게 어찌 돼요? 어제 공부한 대로 있다 하면 어찌 돼요? 있다 하면 어찌 돼요? 선과실.

선과실이 떨어지요. 기한 전에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또 자기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유 도적질 한 사람은 그 사람은 그것 때문에 자꾸 시험에 들어갑니다. 이 소유권을, 소유 도적질 둘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사람은 그게 큰 지혜요, 그게. 그게 지혜의 근본이 됩니다. 근본이 되기 때문에 거게서 사람이 의인되고 성공하고 다 모두 지혜가 나오는 게 거게 나와.

이러기 때문에 어제 뭐 보배를, 도적질 소유권 도적질을 둘을 그라면 회개를 하고, 그러면 이거 암만 새벽기도 나와도 그걸 회개해야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사람 새벽기도 나오더니마는 보니까 뭐이 달라졌다.’ 새벽기도 나와서 달라진 걸 뭐 보여야지, 달라진 거 회개한 것 보여줍니까? 회개한 것은 누가 볼 수 있어? 예수 믿는 사람들이 회개한 것 봐, ‘그 사람 좀 고쳤다’ 이렇지마는 안 믿는 사람은 그것 못 봐요. 안 믿는 사람은 뭣 봅니까? 회개 한 것 봅니까 돈 봅니까? 돈 보고 사업 봐요. 돈과 사업이 뭐이 잘되니까 가지고 하니까 남한테 독하다 악하다 깍쟁이만 되지 아무 소용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거 해야 되겠고, 그러면 머리 떼 바치는 거. 이거 막, 막 지혜입니다, 이거. 이거 성경에 있기는 있지마는 다 이게 느껴보고 다 말하는 거라. 이게 얼마나 지혜인지? 머리 떼서 바치는 거, 감사함으로 사는 거, 그러면 자꾸 감사함으로 살지 못할 때, 내가 불평할 게 꽉 차요. 불평이 있는데 이걸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이 깊이 생각해서 ‘아이구, 이거 참 감사하다.’ 불만이 이렇게 했었는데 자꾸 깊이 생각하니까 이제 ‘이거 내가 망령되게 했다. 감사하다.’ 이러니까 감사가 나오기 시작하면 이러니 감사하고 이러니 감사하고 이러니 감사하고 자꾸 감사가 나와.

감사를 실컷 나중에 하고 나면은 기쁨이 돼지고 그라면 하나님이 볼 때에 축복을 주실 수 있고 나도 볼 때 내가 나를 볼 때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다.’ 또 감사하는 사람이 보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환영을 하고 욕하지 않겠다.’ 이 자꾸 제가 봐도 알아요. 감사하는 사람이 이래 돼지지, 십일조를 내니까, 그 십일조 내는 거는 연보 중에 소연보입니다. 알겠습니까? 십일조 내고. 나머지기 십의 구조가 남았는데 제가 쓸 것인데 십의 구조는 다 뭐야? 십의 구조 안에는, 십의 구조 안에는 몇 가지 들어 있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뻐뜩 들어 가리켜 봐. 다른 사람 보구로. 그래. 둘 들었어. 씨와 양식 들었어.

이러니까 씨와 양식 들었는데 씨는 자기가 하나님의 것으로 딱 재쳐놓고 그걸 임시 이용으로 이렇게 자본을 만들되 그거는 하나님의 것이라 요래 계산해 가지고 그래 구별하면 그게 구별이라. 구별하는 거, 그게 거룩이라. 요래 할 수 있지마는 위험하다 말이오.

그라다 보면은 그만 살살 그라다 보면 내가 속화돼 가지고 나중에 인색하게 돼.

십일조를 제가 떼 가지고 당장에 안 드리고 ‘요걸 요래 인제 좀 값있게 쓰지, 또 뒤에 모아 가지고 드리지.’ 이라다가 나중에 어떤 사람 보면 회개하면은 ‘십일조를 내가 모아 놓은 걸 얼마가 모아 가지고 그만 그때 급해서 썼습니다’ 십일조 모으면 마귀란 놈이 ‘저놈 십일조 모았으니까 저놈 지금 다 도적질 하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하고, 십일조 모아 놓으면은 마귀란 놈이 안 믿는 사람 모든 사람들을 운동을 해 가지고 꼭 십일조를 제가 임시 빌려 쓰지 안하면 안 될 수 없는 그런 환경을 딱 만들어 가지고 ‘이러니까 이거 할 수 없다. 이거 안 됐지마는 잠깐 빌려 써놓고 이래 해야겠다.’ 빌려 썼으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가 오는데 나중에 갚을 도리가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 ‘아이고 십일조를 내가 모았다가 한 번 내가 썼습니다. 두 번 썼습니다. 뭐 세 번 썼습니다.’ 그거 누가 압니까? 이런데 집회 때에 이렇게 회개하면서 자복하는, 지금 여기서는 그거 내가 시간도 없어 하지 말라 하지마는 그뭐 자복을 하면 오만 것 다 나와요. 그래 내가 그거, ‘목사님이 죄에 대해서 저렇게 어떻게 상식이 있는고?’ 내가 다 고백을 듣고 알아요, 고백을 듣고.

이성면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걸 내가 다, 자복하는 사람들이 다 말해서 내가 알았어, 다. 이거 나는 이거 뭐 처녀 때 어떻게 되고, 어떨 때 어떻게 되고, 나는 어렸을 때 어찌 되고, 나는 뭐 어떨 때 어찌 되고 이거 뭐, 친족들이 어떻게 이래 가지고 했다는 그걸 다 자복을 하니까 안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걸 인제 말을 해서 그런 것도 다 안심하고, 그러니까 제일 칠계는 뭐이냐 하면은 다른 사람이 무난히 여긴다 할 수 있는 거게서 돼집니다.

뭐, 뭐요? 우리 친척이라고, 또 뭐 우리 이종사촌이라고, 뭐 외사촌이라고, 뭐 일가간이라고, 우리 한 동리 사람이라고, 여게 ○○○씨하고 뭐 ○ 뭣이하고, 저게 ○○서 왔어요. ○○서 왔는데 한번 영동에 어느 총각놈이 와 가지고 하, 본고향 교회서 왔다고 이라면서 그래 청해 가지고 다방에 가서 그날 한번 인사를 하고 왔다 해. 그걸 내가 알았어.

알고 난 다음에 ‘너 이놈들 너거 지금 뭐하러 갔다 오노?’ 우리 본교회 고향에서 온 그런 같은 교인이고 했기 때문에 만났다고, ‘또 언제 만나자고 약속을 했노?’ 가만히 있어. `말해. 네가 세번째 가 만나면 정조 팔아. 그놈이 음행하는 놈인데 네가 거기 만나러 가?’ ‘네까짓 게 뭐 한다고 그 처녀를 그래 총각놈이 고향에 있다가 역부러 찾아와 가지고 만날 게 뭐이야?’ 내가 야단을 쳤어. 여기 와 앉을 거라. ○ 뭣이 와 앉았지? 내가 손을 들라 하면 어데, 새벽기도 나와요. 내가 그때 야단을 쳤어요. 그래 가지고 다시 두 번 못 만나게 했어.

이렇게 이 안팎에 눈이 있어 가지고 이걸 다스리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거 지금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우리 교회 이 말하는 게 없는 거 말하는 거 아니라. 내가 말하는 건 다 내가 나도 보고 듣고 또, 내가 보고 듣는 건 주님 앞에 자꾸 보여 주고 들려 주고 해서 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어짜든지 이거 회개해야 됩니다.

이라면 물질 도적질 일곱 가지를 회개해서 마지막에 씨와 양식을 해 가지고, 씨는 당장 심으는 것이 좋고 십일조는 당장 바치는 게 좋지 모아 가지고 했다가, ‘내가 십일조를 내 마음대로 모아 놨다가 요긴한 데 써야 되겠다’ 너는, 십일조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그라면 책임은 없어. 그 쓰는 걸 잘못 썼든지 잘 썼든지 그건 상관 없어. ‘요긴한 데 쓰도록 하자’ 하다 보면은 나중에 가서는 십일조 제 욕심대로 써서 결국은 십일조지마는 제 욕심대로 제 주관대로 썼기 때문에 하나님이 쓴 것은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책임 못 질 걸 책임 질 필요가 없어. 그만 책임은 이래 해 버려요.

이러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이 본교회 내지 안하고 이거 약한 교회기 때문에 그 모교회 내면 어떻습니까?’ 나한테 물을 때에는 나는 그렇게 말해. ‘모교회 내도 좋다. 모교회 내도 좋은데 네가 그건 좀 하기 힘들 것이다.’ 왜? 모교회 내면 왜 힘듭니까? 모교회 내면, 여게 내면 모르지마는 모교회 내면 알아요. 알겠습니까? 모교회 내거들랑은 네 이름일랑 거석하지 말고 그걸 알아서 그렇게 하면 하지마는 네가 보내면 ‘아이구,’ 네가 시골 교회 가면 ‘우리 교회 지금 십일조를 보내 가지고 우리 교회를 유지하도록 이래 하는 돈망태가 옵니다.’ 이러니까 온다고 막 환영을 나가고 오면 이렇게 떠받친다 말이오. 자, 그 사람 십일조 한 것 헛일 했소, 안 했소? 헛일 했어 안 했어? 헛일 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꾸 지혜롭게 해서 자꾸 걸리지 안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라. 그거 뭐 여기 하라는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씨와 양식은 즉시 즉시 씨는 심고 양식은 먹고, 그라면 뒤에 어짤라고? 그때 또 주셔. 그때 또 주시고,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날 그날 해서 자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이래 하도록, 그러니까 이삭이 한 해 몇 배 받았어? 저 뭐꼬? ○집사? 백 배 받았어, 백 배.

‘너거는 뭐 아이도 낳지도 안 하고 똥귀저기 장만한다고 이래 가지고 그 씨는 자꾸 저축하지 안하나?’ 혹 할 수도 있을 거라. ‘이거 해 가지고 개척 교회를’ 그걸 저축하거들랑 다른 것 치워 버리고 얼마나 저축했으면 저축하거든 요놈 톡 털어서, 개척 교회 할라면 요새 도시에 개척 교회 할라면 천오백만 원 있으면 돼. 천오백만 원만 있으면 딱 가져나가 가지고 이제 뭐 어데 방이나 하나 얻고, 또 실력 없는 건 안 돼요.

방이나 하나 얻고 떡 거석해 가지고 그라면 공회에서 십오만 원씩은 이래 보조해 주니까 그것만 하면 근근히 살아 가지고, 교역자 나가는 사람은 일찍 나가든지 그리 안 하면 뒤에 아이들 다 자녀 키워 놓고 나가든지, 그 두 길밖에 없어요. 어슬피 나가면 자녀가 중간에 공부하며 뭐 이래 놓으니까 못 나가고 말아요. 나갈라면 아이 낳기 전에 썩 나가 버리든지 이래야 돼지지. 또 그 연습을 해 놓은 사람은 돼. 경제 연단을 받아 놓은 사람은 아무 데 가도 아무 일이 없어.

어짜든지 요번에 경제에 대해 요걸 해 가지고 복을 받도록 하십시오. 이 권찰들도 말이요, 권찰 일 하면서 이 권찰들이 똑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은 자, 여호와의 증인이 그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합니까 믿는 사람에게 전도합니까? 믿는 사람에게 돌아다녀. 믿는 사람에게 거석해 가지고 꼬와. 그게 마귀라. 그거 마귀란 그걸 알 수가 있어.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면은 사람을 구원할라 하는 것이지만 믿는 사람에게 전도해 가지고서 저거 여호와의 증인에 오라 하니까 그거는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인데 이단으로 와서 멸망시킬라 하는 것인데 그 확실히 마귀라 하는 거 그것을 드러날 수 있다 말이오.

이 권찰들도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해 가지고 자꾸 식구를 만들라고 하지 않고 다른 구역 식구를 자꾸 요래 가지고 이간 붙이고 요래 조래 말해 가지고 자꾸 그 사람의 신앙이, 그만 자기 구역장을 천사로 알고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이래 따라가는데 가 가지고 참말 거짓말 요래 가지고서 그 권위를 떨어뜨려서 요래 놓으니까 그만 그 사람 신앙이 죽는다 말이오.

그게 뭐이요? 그게 뭐입니까? 그 행동이 뭐이요? 왜 말 못 해? 그 행동이 뭐이야? 예? 왜 말 못 해? 이 모두 죄지었구나. 그렇게 사람을 자기 신앙 지도자를 천사인 줄 알고 막 이렇게 따라가고 있는 걸 그것을 그만 요렇게 해 가지고서 불신임하도록 요렇게 만들면 그게 뭐이야? 그게 뭐이요? 말 못 하는 것 보니까 전부 그 죄다 짓고 있구나.

따라합시다. 마귀! 마귀! 마귀! 대마귀! 고라 같은 마귀! 고라 같은 마귀! 미리암 같은 마귀! 미리암이 그 죄 회개 안 하니까 문둥이 됐지. 그때 회개 안 했으면 그만 문둥이로 죽어버려. 고라는, 고라는 뭐 했어요? 고라는 뭐 했어? 산 매장 당했어, 산 매장.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깨달아야 돼요. 못 깨달으면 이거 바보 같은 거는 다 홀켜갈 수밖에 없어. 이제 가르쳐 놓은 이 진리를 알면은 다른 데 가지도 안하고 꼬임받지도 안하고 이 세계의 어떤 이단에게도 속하지 안하고 순교 못 할 자 없고, 왜 순교 못 해? 이번에 거창집회 가서 그걸 듣고도 순교를 못 해요? 사는 길이요 평안한 길이 그 길인데. 안 믿기 때문에 그렇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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