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원한적인 구함

 

1984. 4. 7. 토새 

 

본문: 누가복음 18장 1절∼8절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책임지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못 할 일은 없습니다. 왜? 우리를 책임지신 분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또 지금도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홀로 책임지고 계신  분이시요, 또 영원히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셔서 당신 혼자의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의 일을 책임을 지시고 무엇이든지  당신으로 더불어 의논하면 해결 안 될 것이 없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안 될 일은 없습니다. 안 돼서 낭파 될 일 없습니다. 낙망하거나 그럴 일이  없습니다. 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가능합니다.

 우리가 참 말로는 믿고 믿는 그저 형식과 그런 태도는 하지마는서도 진정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믿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믿음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재촉 하시고, 우리는  믿음은 가지지 아니하고 믿음 법을 떠나서 무엇을 이룰라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러가지 애로와 마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과거에도 하나님이시요 지금도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한번 모든 것을 정하시고 법칙을 내시고 계약을  선포하신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사정으로서도 그분은 혼들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사정으로서도 흔들 수 없고 인간의 그 강퍅으로도 혼들  수 없고 인간들의 그 분량을 가지고그%. 혼을 수 없고 또 인간들의 어떤 그 능한  방편이나 그런 것 가지고도 조금도 흔들지 못합니 *. 그부은 영원히 요동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 이행도 변동 없고, 또 당신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을 어떤 사정에 딱해서 호리라도 그 사정으로 인해서 계약을  어겨서 그렇게 하시지도 아니하시고 또 피조물의 어떤 다수의 세력 가지고서  어떻게 한다고 해서 당신은 거기에 피동되지도 않습니다. 그 분은 영원 전에  계셨고, 영원 후까지 변동 없는 주님이십니다. 인간이 비유컨댄, 전 인류가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계약을 어겨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법칙을 어겨서  전인류가 한목 다 간구하면서 죽기까지 간구한다고 해도 그 많은 수에 딱한  사정을 인해서 조금도 가감이 없습니다. 다 죽어도 그만이지 그 뭐 조금도  요동치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그런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데 전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성경을 보면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변치 않는 하나님이시다. 피조물에 어떤 형편이나 사정이나 단체나 열심이나  간구나 그런 것 가지고 당신이 변해지지 않는다. 그 이름을 가리켜서 여호와라고  이렇게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에 영원히  털끝만치도 요동이 없다, 변함이 없다, 그대로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 이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의 딱한 사정이나 어려운 사정이나 또 큰 낭파나  어려운 일들이나 또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는다고 해서 털끝만치라도 당신의  계약과 당신의 법칙을 좀 요동 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야 속는 것이고 안 됩니다.

 어떤 내가 설교집을 봤는데 기도의 중심이라는 그런 책인데 그 책을 보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어째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변동시킬 수 있다. 열심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이렇게 딱한 사정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호소하면  하나님의 그 뜻도 변동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해 놓은 말을 봤습니다. 그거는  아마 그 사람이 그렇게 글을 쓸 때에 하나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민족을 전멸하겠다 이렇게 선포했는데 그 뒤에 모세가  회개하고 부르짖으니까 다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켜서 용서했다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서 혹 그렇게 기록했는지 모르지마는 그것은  다릅니다. 그 뒤에 신약 성경이 덧붙여서 나온 걸 보면 하나님께서 이러할  것이나 거기에 이러한 인간의 무엇이 있으면 이렇게 변동할 수 있다 하는 그런  것을 조건부로 말해 놓은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해당되는 것이지  인간의 형편 사정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든지 또 하나님의 계약을 좀 고치든지  하나님이 세워 놓은 법칙을 좀 어기든지 변동하든지 그렇다고 생각하면 아주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약이나 그 법칙으로 유리한 것도 영원히 털끝 만치도  변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에게 해로운 것도 변치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은  계약대로 이행하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변동 없이 계약대로 이행하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확고히 믿으면 바로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고 진리는 당신이 추호도 어기지 않는 하나님이시며 또 어길 수도  없는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확고히 믿으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도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 중에 한 계약입니다.

 그 아무 관계없고 악한 법관이지마는 아주 미약한 그 과부도 가서 부르짖으니까  그 법관이 들어서 소원을 이루어졌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또 그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영원히 나타나셔 가지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신다는 그 사랑이 다 끝이 없고 무한한 사랑인데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주 귀중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그런 일을 해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이 없다. 이 계약을  이 법칙을 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없다. 그런 자들이 참 심히 희귀하다 한  것을 말씀해서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나님은 이렇게 계약에 대해서  털끝 만치도 가감이 없는데 또 하나님의 법칙은 하나님 당신도 추호도 어길 수가  없고 어기는 사람을 법칙대로 처리 안 할수 없고 그 법칙에 합당한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지 안할 수 없고 하는 이것이 불변적이요, 하나님의 계약도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법칙도 영원불변이요, 하나님 당신도 영원불변이신데 이  사실에 이 불변을 내가 올 때에 인정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겠느냐 그렇게  탄식하는 말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봉독한 이 계약에서 우리에게 어떤 그 원한이든지 마음의  소원인데 참 우리가 원치 안하는 일, 원치 안하는 것 원치 안하는 사람이 모든  원치 아니하는 우리에게 한말로 말하면 모든 불행이라 말하겠습니다. 모든  불행이라. 모든 고난이라, 모든 불행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불행, 모든 고난 그것은 다 하나님에게 낙방하지 안하고 기도하면 다 해결해  준다, 그렇게 여기 계약에 선포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원수의 그 원한이 모르는 것도 있고 아는 것도 있고 또 잘못 안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고 아는 것도 있고 잘못 안 것도 있고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원수의 원한은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원수의 원한인가?  우리가 아는 것은 항상 옛사람의 원수의 원한 옛사람의 원한을 자기의  원한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대개 많습니다. 옛사람의 원한은 새사람에게는  참 감사할 행복입니다. 또 새사람에게 대한 원한은 옛사람은 좋아합니다.

우리에게는 옛사람과 새사람 이 둘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옛사람의 원수의 원한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원한이 될 것이고  새사람의 원수의 원한은 악령과 악령이 우리를 미혹시켜 가지고서 우리 구원을  절단내는 그것이 원수의 원한이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는 옛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원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시는 그 일이 옛사람에게는  원한이요. 이러기 때문에 옛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원한이라고  그렇게 알겠고, 새사람은 악령과 악령이 우리 구원을 방해하는 그것을 원수의  원한이라고 이렇게 우리는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람이 될 때에는 원수와 원한이 달라지고 또 저  사람이 될 때에는 원수와 원한이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착오가 생기고  착각이 생기는 것이니까 첫째로 우리는 원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단정지어야  되겠습니다. 원수가 하나님이 됐다가 원수가 악령이 됐다가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이지 언제 악령이 우리에게 언제는 원수 됐다가 언제는  우리에게 은총의 신이 됐다가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구별할 것은 악령이, 우리의 원수냐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원수냐 이 둘을 확실히 판정을 해야 되겠고, 또 우리의 구원에  방해하는 것이 우리 원한이겠느냐, 우리 구원을 유익되게 하는 것이  원한이겠느냐 이것도 우려가 판정을 지어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는 내가 지금  옛사람이 나를 주장하고 있느냐, 새사람이 나를 주장하고 있느냐 이것도 우리가  판정해서 확정을 지어야 되겠습니다.

 이 셋을 확정지우지 안하면 우리는 자꾸 귀신 들린 자가 자기 몸을 자기가,  상우고 아주 복스러운 자기 집은 내비두고 죽은 송장 있는 속으로 기어들어  가서, 묘귀, 묘귀는 무덤에 있는 귀신을 가르쳐서 묘귀라 하는데 옛날도 그게  있었다, 그 얼마 전까지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얘기를 들어 보면  묘귀라는 것은 아주 기이한 귀신인데. 무덤 묘(墓)자 귀신 귀(鬼)자 무덤 속에  들어가서 사는 그 귀신 들런 사람을 가리켜서 묘귀가 들렸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옛사람과 새사람, 또 우리의 원수가 악령, 성령, 또 우리가 참 기가  막혀서 하는 기막히게 여기는 기막히게 여기는, 원한 구원을 원한이라. 이  구원은 감사하고 기뻐해야 될 터인데 구원을 원한이라, 또 구원을 방해하는 것을  원한이라 이렇게 우리는 착각이 돼서 이 사람됐다가 저 사람 됐다가 이렇게  바꿔지니까 이것부터 요동되지 안하도록 확정을 지어야 됩니다.

 우리는 악령이 우리의 원수요 성령은 우리의 주가 되신 우리의 구주요, 또  우리의 구원이 방해되는 우리 구원에 손해 가게 하는 구원이 손해되는 그것은  구원이 손해되고 세상에서 어떤 행복이 온다 할지라도 구원에 손해가는 그  행복은 그것이 우리가 원한으로 생각해야 될 그런 일들이요 또 우리 구원에  유익되는 일이라면 죽는 일이라도 그거는 참 감사하고 기뻐하는 행복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내 자아라 하는 것이 이렇게 찰나에 변해집니다. 방금 새사람이  역사하는데 고만 옛사람으로 바꿔져 버립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 몸에  자유성을 살릴라고 하기 때문에 자유성을 죽이지 못하고, 자유성을 죽이지  못하니까 자유성을 죽이면 안 되기 때문에 자유성을 죽이면 구원이 안 됩니다.

 이런고로, 마음도 자유를 가지고 있고, 몸도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자유를 잘못 써서 마음과 몸이 제가 새사람 영접할려면 새사람 영접하고 옛사람  영접할려면 옛사람 영접하고 이게 제 마음대로입니다. 마음대로 하면서 새사람을  영접해야 제 구원이 되는 것이지, 새사람 영접하지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도록  해 가지고서 새사람을 영접하게 되면은 그것은 우리 고귀한 구원은 안 되고  짐승처럼 한 물질처럼 붙들어 매이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자유성이 없이 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아무런 구원이 되지 안하고 가치가 없는 것이요 그거는 종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구원은 종을 벗어나는 것이라. 자유의사로  자유대로 해서 옳은 것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강제로 하는 것은  강제에 끌렸기 때문에 그것은 종이 된 것이지 구원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세 가지를 똑똑히 구별해서 옛사람, 새사람, 성령, 악령,  우리 구원을 유익되게 하는 것 우리 구원을 해치는 것 요 세 가지, 세 가지 여섯  가지를 우리가 똑똑히 구별해서 요것을 구별하고 난 다음에 참 우리 구원에 손해  가는 그것이 우리의 원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할 그  원한입니다. 또, 우리 구원을 방해하는 악령, 옛 사람, 악령 그것이 우리의  원수입니다. 옛사람이 우리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계약과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서 인간 생각대로 하는 그 자가 우리 원수입니다.

 또, 마음과 몸 이것이 주장이 돼 가지고서 주격인 그 중생된 영은 상관 하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제 주장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마음 이  마음 주장대로 또 이 고기덩어리 좋아하는 대로 고기덩어리 좋아하는 대로, 고기  덩어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맛있는 것 먹고자 합니다. 맛있는 것  먹고자 하는 것이 고기덩어리요. 아무리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도 어짜든지  평안하기를 원하는 것이 고기덩어리요. 또 이 고기덩어리는 하나님의 법칙에  어기는 일이라 자기가 멸망 받는 일이라도 그 고기덩어리의 그 신경에 좋아하면  고기 낚는 사람도 그 낚시를 가지고 자기 가정을 다 팔아 먹어도 요 갖다 넣어  놓고 고기가 딱 물면은 손이 누끈거리면 고 누끈거리는 그 신경 자극의 그  자극으로 인해서 일생을 망칩니다. 또 포수는 고 살아서 자연스럽고 뛰놀고 있는  고 생명을 하나 탁 죽이면, 그 탁 놔서 그것이 죽을라고 막 뛰고 뻐들거리면 고  쾌감 내는 것, 인간은 이상한 잔인한 것이요 이상합니다. 또 남녀 이성 교제에  그 말초 신경이 작용하는 그 신경 작용 이렇게 해서 고기덩어리는 어짜든지 이런  것들을 원하고 있는 것이 고기덩어리요. 또 우리 마음도 그렇게 하나님의 법칙과  계약을 어겨서 제 주장대로 제 생각대로 제 지식대로 제 주관대로 제 마음 대로  제 욕심대로 이렇게 하려고 하는 이것이 이것이 그 마음이 옛사람에게 붙들려  가지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것은 오랫 동안 같이 살아 나왔고 이대로 살아  나왔기 때문에 우리 벌써 마음이나 몸이 부패해 가지고서 부패성과 아주 정이  들었고 아주 익숙해졌고 거기에 습관이 딱 배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 참  옛사람은 비유에 딱 맞고 새사람은 거슬립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옛사람인 줄  알고도 그것을 벗어나기가 어렵고 육체의 생각인 줄 알고도 그것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요것을 확정을 지어서 요것이  변동되지 안하면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 변동이 돼도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변동해도 네가 낙망하지 말고 일어서라  했습니다. 그러면 최종은 살아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잘못된 것을 고치거든 용서해 줘라 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참  성경에 모든 말씀이 좋지마는서도 이 말씀이 아니면 희망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 말씀 내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같이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하는 이  말씀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잘못되지 안할 수 없지마는 잘못된 것을 깨달으면 즉시  일어설 것. 깨달으면 즉시 일어서고 즉시 돌아설 것 이것이 성신을 훼방하지  않는 것이요,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잘못되기는 잘못 돼,  옛사람이야 옛사람 노릇이지, 이게 악령이야 악령의 감화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돌아서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요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요 죄는 고치야 되지 고치지 안하고는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것을 깨닫고 우리의 원수, 우리의 원한되는 일 요것은  옛사람과 새사람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이니까 새사람의 원수, 새사람의 원한되는  일 요것을 단정지어서 요것만이 우리의 원수요 우리의 원한이요 요것만이 우리를  가장 해하는 내 몸 안에 있는 원수라 요것을 깨닫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 이루어 주십니다. 이것을 판단을 못하면, 판단을  못해도 좋습니다. 판단을 못해도 자기가 착각을 해 가지고 참으로 감사할 일을  원한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성령을 도리어 원수로 이래 생각했다 할지라도  어짜든지 무엇이든지 우리 마음에 마땅치 아니하고 우리에게 안 됐고 우리가  원치 안하는 그런 것이면은 하나님에게 호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호소할  수 있는데 다만 거기에서 하나만 생각할 것,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서 해결이  됩니다.

 호소하는데, 그렇게 우리가 호소할 때에 그 호소하는 것이 자기가 소원하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안할 때에는 우리가 몇 가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루어지지  안할 때에는 내가 기도의 열심이 모자라든지 기도의 열심이 모자라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내가 회개하는 회개가 모자라든지, 또 이 두 가지가 모자라지  안하면, 이 두 가지가 모자라지 안하는데 그 소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어떤 것으로 판정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 소원하는 그것이 내  기도와 회개는 충분히 됐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어떤  것으로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 원한된 그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 소원대로 그것이 바꾸어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지고 하는데 그 일이 안 될 때에는 우리는 하나 깨달아야 됩니다. 그게  뭐이냐? 우리 보기에는 그렇지마는서도 주님이 보실 때에는 그것이 물론 해가  되는 것이요 고생이 되는 것이고 안됐는 거는 안 됐는 것이지마는서도, 안 됐는  거는 안 됐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없으면 도리어 실패가 될 것이기 때문에 없애지  안하고 그것을 둬 둔다는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 예를 든다면 바울이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자기 몸에 고통이  있어서 기도했는데 그 고통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들의 말은 그게 눈병이라 눈이  아파서 그 눈병이라 그렇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분은 그 몸에 나환이  들어서 문둥병이 들었다 그렇게들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사도  바울이 그것이 안 됐어서 하나님 앞에 이것을 없애 달라고 고쳐 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 그래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분들의 기도는 또록또록하게  그렇게 아무나 따나 중언부언하게 기도하고도 기도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지  안하고, 세 번 하나님 앞에 간구했더니마는서도 하나님께서 세 번 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준 은혜가 족하다.' '족하다' 왜 족하냐? 내 뜻과 내  권능은 약할 때에 강하여진다. 네가 그게 있음으로써 나한테 더 부르짖고  호소하고 그게 있음으로써 네가 교만해지지 아니하고, 이러기 때문에 만일 그걸  없애 놓으면 네가 나에게 나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 의지가 좀 약화되어질  것이고. 또 네 겸손이 약화되어져서 너도 모르게 교만해져 있고 이렇기 때문에  내가 그와 같이 둔 것이니까 네게 준 가시는 가시다. 늘 꼭꼭 찔러서 안 됐기는  안 됐지마는 가시는 가시지마는서도 내가 네게 준 이 가시가 네게에 족하니라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기도를 안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가 오늘 아침에 설교한데에서 우리의 기도가 모자라든지  우리의 회개가 모자라든지 그래서 그렇지 우리의 호소가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시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면 바울로 말하면 기도가 모자라  그렇습니까 구해서는 안 될 제목이라 그렇습니까 회개가 모자라 그렇습니까?  기도의 제목이 그것은 잘못된 제목입니까 회개가 모자라 그렇습니까? 기도가  모자래 그렇습니까? 이 말씀을 근거 한다면 어떤 사고입니까 무슨 사고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안했습니까? 네? 무슨 사고요? 자 그라면  손가락으로 한번 가르쳐 봅시다. 자 그러면 기도가 모자랬습니까? 손 드십시오.

그러면 그 기도의 제목을 안 할 기도를 했습니까? 손 드십시오. 그러면 또  회개를 회개를 못해서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하는 사람 손 드십시오. 나는  이겁니다. 이 회개를 못해서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앞으로 그 하나님이 크게 쓰실 터인데 어떻게 크게 쓰신다  할지라도 그가 교만의 시험에 들지 안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제해  주십니다. 아무래도 그자는 교만의 시험에 들지 안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거는  그래 두셨습니다. 또 그게 나아도 지금 그게 있음으로써의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것, 또 있음으로써의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 그 충성을 그게 없이는 그만한  충성을 할 수 없고 그만큼 부르짖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 가시를  두셔서 사도 바울의 하는 행사가 더 하나님에게 힘들여 충성이 더 되도록 하기  위해서 또 하나님에게 더 부르짖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둬 두신 것이니,  그것이 다 인간의 연약성을 인해서 그것이 물러가지를 안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기도의 제목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기도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 그것 때문에 그게 인간의 연약성에서는 그것이 있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더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도 당신이 우리 부르짖는 데에  듣지 안하시든지 또 당신이 계약을 어기시든지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극단으로 말하니까 이런 것이지 우리에게는 대개가 보면  우리가 기도가 모자라는 것 많고 기도가 모자라는 것이 뭐 백분지 구십 구나  되고 기도가 모자라서 안 되는 것이 백분의 구십 구나 되고, 또 우리가 안  이루어지는 것은 회개가 모자라는 것이 백의 구십 구는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회개가 모자라고 기도가 모자라서 안 된다는 것 이것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얻는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 하나님에게 있는 것 아닌  것입니다. 또 기도의 제목을 바로 하지 못하는 그거는 회개의 잘못이나 기도의  제목에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 하나입니다. 자기가 회개를 바로하면 기도의  제목을 바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의 제목이 틀리는 것도 있다 그말이오. 기도의 제목이 틀려서  하나님이 그 기도의 제목은 틀리니까 들어 주실 수 없으니까.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꾸 칼을 보고서 칼 달라고 우니까 칼을 주면은 상할 터이니까 칼을  주지 안하고 하도 안 되면은 과자를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을 주든지  대신 줘도 주지 그 주는 것을 그렇게 내 몰라라 하는 그 부모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해로운 것을 달라고 하면 해로운 것을 주지 안하고 자기에게  유익된 것을 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우리의 원수는 믿지 않는 것, 낙망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이 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은 변치  않는 하나님이시니까 그분이 계약을 선포해 놓고 이 계약을 어기지 안하고  계약을 변동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좋습니다. 그분이 참 계약을 이리저리  때를 따라서 변동한다면 우리는 낙망입니다. 우리는 믿고 의지하고 바라볼 자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주가 없습니다. 그분이 계약을 선포해 놓고 계약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계약을 어기지 안하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계약 불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생깁니다. 그분이 법칙을 내고 난  다음에 그 법칙이 변동되치 않는 그 불변의 법칙을 가지고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생겨집니다. 그분은 법칙도 계약도 어기지 못하는 전능 전지의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낙망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는 뭐 참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우리의 원한을 풀어 줘야 될 그런 원한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여러  수십입니다. 여러 수백입니다. 수백이면 그저 그것을 깨닫고 기도하면 털컥  고쳐지고 기도하면 고쳐지고 고 기도하면 고쳐지고 해서, 우리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지저분한 그런 우리의 원한도 그것이 쌓여 가지고서 우리가  절단이 납니다. 티끌 모아 태산된다고 지저분한 그 원한이라도 우리가 그것이  하나 둘 쌓여지면 우리는 참 상하는 줄 모르게 상하고 절단나는 줄 모르게  절단납니다. 이러니까, 그 티끌 같은 그런 원한도 그게 내게 참 해로운 것은  자꾸 기도해서 그것이 제거돼서 없어지면은 우리는 차차 차차 자유 할 수 있고,  힘이 나고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원한은 악령이 우리의 원수요, 또 악령의 감화로서 된  옛사람의 그 모든 행동이 다 우리의 원한이요 원수요, 이 육체의 생각이나  소욕이나 이것이 다 우리의 원한들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어짜든지 우리의  원수도 바로 깨닫고 우리의 원한되는 문제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에게 이 문제를  어짜든지 뭐 얼마나 기도 해야 될란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이거 사람이 요새 모두 뭐 발견됐다 하는데 바이러스 균이라 하는  균 바이러스 균이라 하는 그 균은 균 중에는 제일 아메바 균이 그 전에는 제일  작은 균이라 했는데 지금은 이 바이러스라 하는 그 균은 아메바 균에 비해서 뭐  얼마나 작은 균이랍니다. 이 작은 균이지바는서도 요새 모두 발견한 가운데에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이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이러스 균이다. 그래 그거  판명이 됐어. 그래 병도 바이러스 그 균이 벌써 작용하는 그 병이라면 암병도  그건데 그 병이라면은 그걸 고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작다고 무시 못  합니다. 그 작은 제일 작은 균이 그것이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인다. 그 놈이 그  사람에게 벌써 달라들면 간도 뭐 바이러스 간병이라 하면 그걸 고칠 수 없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될 원한 원한 우리의 지저분한 사소한  원한 그것은 균으로 말하면 바이러스 균과 같은 것이라 말이오. 지저분한 자잔한  사소한 그런 것이지마는 그런 것이 마구 해결이 안 되고 그런 것이 우리에게  쌓여 가지고서 우리는 마지막에 그것으로 인해서 죽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참 우리 구원에 해가 되는 그런 그 요소들이  바이러스 균과 같은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것은 그저  한번 기도하면 없어질 것, 두번 기도하면 없어질 것, 우리가 고게 대해서 조금만  고치면 없어질 것 이래서 그게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고치다 보면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자유로운 몸이요 아무 매인데 없고 병 없이  다 치료 돼 버리고 우리는 자유로운 몸으로서 우리는 성공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의 원한이 어떤 것인지 이것 찾아서, 이것만 찾아  버리면 아 삼십 팔 년 된 병자도 보니까 그렇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도  그렇고, 모든 성경에 있는 모든 병신들이 다 그랬는데 그 모든 병신들이 병만  나으니까 다 자유롭고 병만 나으니까 다 해결되고 병만 나으니까 남 구제하고  살았지 구걸하지 안했습니다. 병만 나으니까 그 사람에게 비참하고 불쌍하다  하는 것은 싹 다 벗겨졌어. 다 행복이 돼 버리고 말았어.

 이러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참 악령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겨진 이 원한 병들이 우리에게 가득 찼으니까 이 놈만  치료되면 우리는 자유 있는 사람이요 권능 있는 사람이요 항상 기쁠 수 있는  사람이요 항상 평안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우리의 원한은 기도대로 우리 기도를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셔서 우리 기도를 다 들어 주실 수 있는 사람이요 우리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기적이요 나타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인데, 이 지저분한 이것  때문에, 우리가 고 하나를 들면은 사소한 일이지마는서도 그런 것이 많이 들어서  우리를 파묻어 놨기 때문에 우리가 도무지 드러나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말씀을 참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우리의 생명이니까 이  말씀을 거머쥐고 놓지 말고 이 말씀으로 해결 짓도록 노력을 합시다.

 우리가 지금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것 자기 앞에 있는 환난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우리에게 있는 우리를 좀 먹는 우리를 좀 먹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내가 ○○○ 목사님이라고 그분이 총신 신학교를 설립했고 그 사람이 총신  신학교에 교장이었고 이사장이었는데 그분이 거창 와서 집회할 때에 내가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참석했는데 그 분이 말한 가운데 한 가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 뭐이냐? 여러분들 과수원에 과실 나무를 사과나무를 그 원수가 거도를  톱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쓱쓱 베어 넘기는 일이 없습니다. 그 과수원에 전부이  귀한 사과나무는 전부이 소스락 벌거지 좀벌거지 좀벌거지 그것이 전부이 다  갉아서 베어 넘기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소스락 죄악, 소스락 죄악 이 사소한  죄악 이것이 들어서 우리를 다 망칩니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내가 지금도  내게 복음이 돼 가지고 참 역사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분도 그때 와서 설교하면서 하기를 내가 대구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들으니까  거창 이 개명 교회라 하는 교회가 있는데 개명 교회에 산 순교자들이 많은데  하면서 그 얘기를 어데서 들었는지 쭉 다 얘기를 다해요. 얘기를 다 하면서 그  개명 교인들 왔느냐고서 그때 많이 갔습니다. 그 개명 교회 그때는 참 산  순교자들이 많았어. 생명 내 놓은 사람들이 많았어. 생명 내 놓게 한 그분들은  다 생명 내 놓고 했는데 나는 그때 그런 믿음이 없었어. 나는 믿음이 없었는데  믿음이 없고 그렇게 해서 믿지를 못했는데 그래도 그분들의 덕택에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에 대해서 제일 유력했어. 제일 이걸로 승리 했어요. 또 6·25때도  그때 참 멋지게 승리했습니다. 두 달은 멋지게 승리했는데 한 달 동안은 고통을  당했어.

 그러니까, 그들의 기도로 다 그랬고, 그때 그래도 기도를 많이 했어. 그저  저녁이면 그냥 안 있었습니다. 저녁이면 그저 저녁 일찍 먹고는 자 우리  기도하러 갑시다 하나 안 하나 다 말하기를 내일 저녁에는 아무 데서  기도합시다. 그라면은 그 산입니다. 산에 가 가지고서 가면은 그 시간에 다  모였어. 그 시간에 다 모아 가지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난 다음에 거기에서  고만 새벽 기도 되면 또 내려 와서 새벽 예배 보고서 또 그라면서 또  약속합니다. 내일 저녁에는 어데 가서 기도합시다. 그러면 또 거기 가서  모입니다. 이러니까 거의 산사람들이라. 거의 그래도 가정에 살림 못 살면 안  되기 때문에 살림 살고, 그런데 어떤 남편들은 그 아내를 자꾸 아듬고 자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새벽 기도에 밤 늦게 이래 가니까 그것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많이 생겼어. 가정에 불화가 많이 생겼고 그래도 그 가정들이 남편들이 다  회개하고 믿었습니다. 믿고 거저 그때 그래도 기도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 기도에 힘이라 하는 것을 지금 제가 느끼기 때문에 자꾸 기도하자 합니다.

 그때는 거창서 제가 알기로는 거창서 기도를 제가 제일 많이 했습니다. 저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모두 다 산기도니 금식 기도니 그런 걸 별로이  생각도 못할 때요. 지금은 모두 다 이게 다 개화가 되고 문화가 돼서 산 기도  말이 많지 그때는 산 기도니 금식 기도니 하는 것이 그렇게 별로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기도에 참석 안한 사람들은 남반들은 기도에 잘 참석 안했어요. 그  여집사님들은 기도에 참석해서 기도에 제일 많이 힘썼습니다. 저도 여기 나하고  옆집에 있는 ○○○집사님 저 앉았구만, 보니까 ○○○씨 앉았는데, 저도 그때에  이래 살면서 그때 농촌이니까 농사지으면서 소 먹이면서 소먹이면 비 올 때는 비  올 때는 양산들고 소고삐 들고 산에 가서 소를 먹이면서 소고삐 들고 이 한쪽  손에는 양산 들고 소고삐 들고 책 들고 이래 가지고서 언제든지 이래 가지고서  소 먹였지 그냥 소만 먹이고 그렇게 하지는 안했어. 그러면 비 안 올 때는 더  좋아. 비 안올 때는 그냥 소고삐 쥐고는 앉아 이 책 들고 책 들고 기도하고 책  들고 성경 읽고. 또 모든 성인 자들 모든 승리자들 전기 같은 것, 그런 것 읽고.

고게서 앞산에 모범산이라고 하는 그 앞산이 우리 집 앞에 앞산이 있는데 그  앞산에 가면은 돌이 악박각박하게 얽어서 똑 여기 저 오데 이런데 콩에 뭐 이래  뭘 떡 반죽을 콩에 딱 했다가 이래 들면은 옥박옥박 한 것 모양으로 그런 돌이  넙적한 돌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거기에 가서 기도했어. 기도하고 나면은  아랫도리 살이고 돌 구멍에 빡빡빡 다 들어 가서 똑 얽은 것 모양으로 이래  뽈록뽈록 하게 이래 돼 버려요. 거기에 가서 다른 데 넙적한 바위 있지마는 나는  꼭 고게 가서 기도했어. 언제든지. 그저 저녁 먹기 전에 산에 가서 기도하고  와서 저녁 먹고, 또 밤에는 또 산에 가서 모두 다 기도하고  그때는 기도를 내가 힘을 썼기 때문에 그 왜정 말년에 그렇츰 다른 사람들은 뭐  어렵다고 해도 나는 어려운 줄 모르고 어려운 줄 모르고 신사 참배 이겼습니다.

신사 참배 어려운 줄 모르고, 그들 앞에서 어데라고 천조대신을 불에 태우겠다  한 그런 말을 한 그것을 참 내가 말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그때와 같이,  내가 그때 말하지 안하고 지금 말하니까 그렇지, 태워 버리께. 또 국기를 날  달라 내가 태워 버리께, 신 같으면 나 한테 벌 줄 것 아니가, 신이 아니다. 내가  그거 벌받아서 내가 죽든지 어쩌든지 태우마 이런 말을 일본 부장 앞에서 했고,  또 조선 순경 앞에서 순사 앞에서 그들이 있는데 그 지서에서 주재소, 그때  주재소라 주재소에서 했어. 그라니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랬어.

 이러기 때문에, 그때 경험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기도하자, 기도하지 않고는  우리가 승리 못 한다. 기도하지 않고는 모든 승리 못 하기 때문에 기도하자 하는  걸 이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도 가도를 바로 못 합니다. 기도 바로  못 하는 것이 뭐 지저분하이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부산 여기  와 가지고서 교인은 좀 많이 모아 가지고 이렇게 했다 하지마는서도 도무지 내  마음대로는 기도를 한번도 옳게 하지를 못 해 이러다 보면 저러다 보면 다 시간  다 가 버리고, 이러니까 참 그래서 혹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네가 장성하면 다른  사람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끌려가리라.' '네 마음대로 살지  말고 모든 사람 마음대로 살아라. 이 모든 사람의 교인들 마음대로 살지 내  맘대로 살지를 못해. 이러나 이 기도 못하니까 앞으로 실패할 것 아닐까,  앞으로는 실패할 자가 아닌가, 내가 앞으로는 아무래도 이래 기도해 가지고는  실패할 것 같애요. 그때 모양으로 기도가 되지를 안해.

 여러분들 어짜든지 지금 고생스레 기도하면 앞으로 천하 사람이 떨 때에 그때에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지나가고 오늘에 아껴서 참 힘들여 고생스러운  그렇게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 고생을 그때 환난 때 해도 다 합니다. 안하지는  않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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