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1986.12. 26. 새벽 (금)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이루도록 전하고 도와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요 또 하나님의 모든 사랑과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기 구원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이루는 이 일을 하는 것은 산 일이요, 또 후회할 것이 없는 일이요,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에 이 자타의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닌 어떤 일을 하든지 그런 일은 다 우리에게 유익이 하나도 없는 해만 되는 일입니다.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우리의 모든 하는 일이 직접으로 구원을 위한 일이 되든지 그렇지 안하면 간접으로나 간간접으로 돼서 그 결과가 다 구원을 위하는 일이 됐다면 그것은 손해가는 일이 아니지마는 구원에 유익된 일이 아니라면 그 어떤 일을 했든지 다 그것은 자기를 해친 일이 되고 다른 사람도 해친 일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타의 구원 이루는 이것만이 내가 세상에 살면서 할 일이라 하는 것을 요것을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뭐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저 쉴새 없이 분주하게 일을 해도 일들이 다 남아 있고 일을 다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치 일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정을 짓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항상 그 할 일이 뒤차여 있습니다. 그저 차여 있고 차여 있어서 참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치 분망합니다. 분망합니다. 그러나 실은 자타의 구원을 이루는 일이 아닌 것은 우리 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 악령이 준 미혹의 일이지 우리의 할 일은 아닙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이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나는 땅위에 뭐 할려고 내가 사느냐?’ 자기가 학생이든지 청년이든지 중년이든지 노년이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할 것 없이 내가 땅위에 뭐 할려고 사는고 하는 그 땅위에 사는 목적과 땅위에 살고 있는 그 이유, 할 일이 무엇인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세상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중요한 일, 요긴한 일, 큰 일,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자기가 생각해도 우리 할 일은 꼭 자타의 구원을 이루는 이 두 가지뿐입니다. 내 구원 다른 사람 구원 이루는 이 외에는 자기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것도 그 일 하는 것이 자기 일 아닌 일 하는 수도 있고 자기 일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만일 직장에 가서 일을 할 때에 그 일 하는 것이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결과적으로 자기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익된 그 일이라면 그 일은 자기 모르는 자기 할 일입니다. 또 자기 하는 그 직장 생활하는 것이 자기 구원에 손해가 가는 결과를 맺는 일이라면은 자기 할 일은 아닙니다.

이래서 우리는 ‘내가 할 일은 자기 구원 남의 구원 이 구원 이루는 이것만이 나 할 일이다’ 두 가지로 생각하든지 간추려서 한 가지로 ‘나는 자타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오늘 할 일은 자타의 구원 이루는 일이 나 할 일이다.’ 그러면 직장에서 아무리 분망한 데서도 자기는 구원 이루는 그 일로 하는 줄 알고 해야 그 일을 알고 하는 것이고, 또 그 결과가 구원에 유익되도록 하는 그 결과가 맺어지도록 해야 자기 할 일을 한 것이지 구원에 손해갈 그 결과를 맺도록 했으면 자기 할 일 아닌 자기는 하나의 유혹을 받아서, 해방과 자유 받은 사람이 죄의 종이든지 마귀의 종이든지 사망의 종이든지 종노릇 한 것이지 자기 생활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구원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일인 것을 잊어버리고 했으나 그 일이 자기 구원에 유익이 됐다면 자기 일을 모르고 벌판이로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유익이 된 것입니다. 유익이 됐지마는 모르고 한 것이 결과적으로 유익된 것은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모르고 하는 그 일이 구원에 손해가는 결과를 많이 맺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땅위에 살고 있는 동안 뭐 무슨 일을 하든지 어데서 일을 하든지 내가 사는 것은 이 자타의 구원 위해서 있다. 구원 이루는 것이 나 할일이다. 이 외에는 나 할 일이 없다.

그러면 구원 이루는 일은 직접 구원이 되는 일도 있고, 또 구원의 재료와 모든 필요한 그런 간접, 간간접, 직접보다 간접이 먼 것이고 간접보다 간간접은 더 먼 것이지마는 이것이 없이는 내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 이것도 내 구원을 위함이다.

만일 자기가 공부하는 것도 이 공부하는 목적은 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한다. 이 공부하는 것이 내 구원에 유익이 없다면 나는 유혹받고 남의 일 하고 있고 죄, 사망,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이지 이거는 자유 생활이 아니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고 이를 위해서 할 수 있고 잊어버리고 구원 이루는 것도 할 일이지마는 이것도 나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할 일은 꼭 하나뿐이지 둘은 아닙니다. 자타의 구원 이루는 이것만이 우리 할 일이지 그외에 딴 일은 우리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면 자타 구원을 이룬다면은 구원 이루는 그것의 범위가 어떠한가? 그것은 땅위에서 내가 살 때에, 땅위에 유지할 때에, 땅위에 거처할 때에 내게 필요한 그런 것은 다 구원 이루는 데에 간접으로 직접으로 도움이 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땅위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없어도 될 그런 것은 우리의 할 일은 아닙니다. 없어도 될 일은 우리의 할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땅위에 있는 동안에 먹어야 있을 수 있고 입어야 있을 수 있습니다. 입어야 있을 수 있고 입는 거와 같이 내가 그 거처를 해야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먹는 그것도 구원을 위한 간접의 일이요 또 입는 것도 구원을 위한 간접의 일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 구원을 이루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말하기를 “물질은돈은 말했습니다. 돈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물질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게 없으면 내가 세상에 머물 수 없고 그게 없으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그런 것이니까 세상에 있는 데에 세상에서 살고 유지하는 데에 도움될 그것이면 족하지 그 이상은 공연히 폐단되고 허영이고 허욕이지 소용이 없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이 이상을 가지고자 하는 자들은 말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이 이상을 가지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이렇게 우리 구원 이루는 데에 먹을 거 입을 것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필요한 양 이상 것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하면 다 자기를 함정에 빠뜨리고 자기를 망치는 그런 결과를 맺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지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는가? 지식에 대해서는 “네가 모든 것을 통달할지라도” “모든 지식을 통달할지라도” 그러면 땅위에 있는 지식이라는 지식은 네가 다 알아서 달통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랑은 뭘 말합니까? 인간끼리 서로 안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라, 사랑이 제일이라 이렇게 뭐 그저 사랑이라 하면은 사지를 못 쓰는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랑을 말합니까?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사랑을 말합니까 뭣을 말합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 “모든 지식에 통달하고” 그러면 모든 지식, 이 세상에 있는 뭐 이 나라 저 나라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지식 그 지식을 우리에게 대해서 평가하기를 어떻게 평가하셨는가? “모든 지식을 통달해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이랬는데 이 사랑은 안 믿는 사람에게도 있는 사랑입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는 없는 사랑입니까 어떤 사랑입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도 없는 사랑인 것을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이 참 큰 걸 들기는 들었는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지식을 다 통달해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예언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다 구제하고 몸을 주어서 심지어 상대방을 위해서 불사르도록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랑이 불택자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하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랑을 주셨으니 이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이 사랑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인가? 그 사랑은 곧 멸망 가운데서 예수님이 사활로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 크게 말하면 세 가지 구원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그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지식, 의식주, 뭐 지위, 권세, 영광, 명예 그런 것이 얼마든지 많이 있지마는 그런 것이 다 자타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자타의 구원을 유익되게 한 결과를 맺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래서 마귀란 남은 자꾸 우리를 분망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분주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아주 바쁘게 만들어서 정신 못 차리도록 합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나 할 일은 구원뿐이라 하는 요것을 꽉 잡지 안한 사람은 그 사람은 매일 미혹에서 미혹으로 옮겨서 가지 정신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 할 일은 ‘내가 땅위에 뭐 할라고 있느냐? 내가 사는 목적이 뭐꼬? 나 할 일이 뭐꼬? 나 할 일은 자타의 구원 이루는 이 외에는 나 할 일이 없다. 이것 때문에 땅위에 살고 있다. 이것만이 나 할 일이다.’ 요것을 꽉 잡은 사람이 땅위에 일이 천 가지도 넘습니다.

그 사람이 못나도 뭐 공장에서 항상 그 공장에서 늙어 죽어도, 그 공장에서 일만 해도 그 하는 일이 오늘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이런 소원 저런 감정, 이런 무슨 그 시기, 질투, 원망, 이런 뭐 기쁨 그런 것이 꽉 찼습니다.

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데 거게서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자타의 구원 이것만이 나 할 일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요것을 꼭 잡고 요것만을 할 자기인 줄 알고 사는 요걸 잊어버려 놓으면 그 사람은 수백 수천의 미혹에 들어서 정신없이 자기 마음도, 그러니까 마귀란 놈이 우리 마음을 이리 가게 저리 가게 만들어 가지고서 우리 마음은 찬송가 일절하는 그 동안에도 그 마음은 마귀란 놈이 길을 들여 놔서 그 마귀란 놈이 이것 봐라 저것 봐라 이것 생각 저것 생각해라 하면 연상해 가지고서 뭐 수십 가지를 할 수 있고 온 세계를 제가 귀로 들은 거 눈으로 본 거 전부 다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서 우리를 분망케 해 가지고서 망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오늘 아침에 이 말씀하는 것은 우리들이 마귀가 이렇게 필요하다 이거 요긴하다가 해 가지고서 수백 수천 가지의 복잡한 일들이 가득 차 있는 세상인데 여게서 우리 할 일은 꼭 하나뿐이라는 것을 요거 깨닫고 요거 하나만 거머쥐고 ‘나 할 일은 요거뿐이라’ 하는 거 요것을 잡고 살지 못하는 사람은 마귀란 놈이 천 가지 보이면 천 가지, 만 가지 보이면 만 가지 돌아다니니까 그 사람은 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죄가 시키는 대로, 사망이 시키는 대로 해서 전부 하루 종일 사망 일만 하고 마귀 시키는 일만 하고 죄 일만 하고서, 죄라 말은 삐뚤어짐이야. 삐뚤어지기는 뭐 삐뚤어지는데? 자기 구원을 이루는 그 밖에 것은 전부 삐뚤어지는 일입니다. 그거 전부 죄가 되는 일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자타의 구원 외에는 나 할 일이 없다. 나 할 일은 내 구원 다른 사람 구원, 구원 이루는 이것 때문에 세상에 하나님이 살려 두시고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지 이외에 나 할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밤에, 오늘이 금요일이지요? 예배 후에 ○○○군의 결혼이 있는데 결혼 그것도 뭐입니까? 이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면 다 삐뚤어진 일, 죄되는 일이요, 또 마귀에게 종노릇 하는 일이요, 사망에게 종노릇 해서 사망을 이루는 일 외에 딴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피차에 결혼하는 것은 뭣 때문에 하는가? 이것은 나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 일을 한다.

구원을 위하는 일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고 이거는 다 속는 일이다.’ 그러면 구원을 위하는 일, 또, 며칠 전에 ○○이하고 여기 ○○이하고 또 결혼했는데 그것도 ‘아, 우리 결혼은 구원을 위해서 구원을 목적하고 구원에 필요해서 하는 것이지 구원에 필요 없으면 할 필요가 없고 이거 다 속이고 죽이고 망치는 일이다.’ 이렇게 뭐 ‘장사하는 것도, 취직하는 것도, 무슨 일이든지 공부하는 것도 다 구원을 위하는 요것만이 나 할 일이라.’ 하고서 구원을 이룰라고 하면 먹어야 되겠고, 입어야 되겠고, 또 먹고 입을라 하면은 일도 해야 되겠고, 또 먹고 입을라 하면은 기술도 배워야 되겠고, 먹고 입을라면은 또 공부도 배워야 되겠고, 먹고 입을라면은 또 잠도 자야 되겠고, 또 쉬기도 해야 되겠고, 또 일찍 일어나기도 해야 되고, 전부 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서, ‘이거 없으면 안 되니 구원을 위한 모든 구원을 돕는 이 일에 구원에게 필요 있게 쓰도록 하기 위해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거 한다’ 하는 요것을 자기가 알고 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요것을 알고 요대로 경영해 가지고 하는 사람은 미혹에 들지 안하고 요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구원도 이루지마는 눈 앞에 바로 먹어야 되니까 먹는 일 해야 되지 않느냐?’ 요렇게 생각하는 자는 벌써 자기 할 일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미혹을 받아 가지고 어데까지 나갈란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 목적은 지금 했는데 그 결론은 아직까지 못 지웠습니다. 혹 다음 시간 있으면 지울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이 분망한 세상에 ‘자기가 다 일 다 하고 죽은 사람이 있느냐?’ 그 말 있어. 자기 할 일 다 못 하요. 얼마나 많은지, 일거리가. 많은데 우리 할 일은 꼭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가 막 분주해 가지고 ‘선생님 이 동생을 나를 좀 도와 주도록 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츰 분주한 줄을 모릅니까?’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네가 하나만 해도 족하니라. 혹 하나나 둘 이렇게 하나, 하나만 해도 족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나 둘 한다는 그 말은 이 구원 이루는 이 하나만 하면 되는데 구원 이루는 이 일을 위해서 간접적으로 거게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준비하는 그런 일 하면 되고 구원 이루는 요거 하나만 목적하면 다 된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요것을 확실히 수정을 합시다. 확정을 해요. 요거 한번 대번 해 가지고 듣고 가 가지고 되는 것 아니오. 재독 들으면 ‘오늘 설교 요거 들었으면 몇 번 들었고 재독 들으면 또 몇 번 들어. 재독 들으면 또 몇 번 듣지.’ 그래 가지고 안돼. 수천 번 수만 번 들어야 돼, 수천 번 수만 번. 그거 기억해 자꾸 수천 번 수만 번.

‘내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일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밥 먹는 거 뭐 할라고 먹습니까? 내가 결혼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전부 나는 구원을 위함이다. 구원을 위함이다.’ 이걸 잊어버리면 저 할 일이 뭐 이것도 저 할 일이고 저것도 저 할 일인 줄 알고, 자기 할 일은 하나뿐인데 요 하나뿐인 요걸 잊어버려 놓으면은 할 일이 천도 만도 넘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거 하나만이 나 할 일인 것을 알고 잡고 요 하나를 할라고 하니 ‘이거 먹어야 되겠다’ 또 요거 하나를 할라고 하니 ‘먹을라면 어데 취직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야 되겠다.’ 먹고 입는 이것을 간략하게 하고 구원 이룰라면은 좀 기술도 배워야 되겠다, 배워야 되겠다.’ 전부 이 구원을, 이거 하나 할 일 요거 하기 위해서 요런 것 조런 것을 요거 때문에 이것 저것을 하는 그런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은 유혹에 빠지지 안하고서 그 일이 간추려져서 평생에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 끌려서 속는 그런 일을 하지 안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합시다.나 할 일은!구원 이루는!하나뿐이다!나 할 일은!하나뿐이다!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자, 자꾸 해 봐요.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구원 이루는 일 하나뿐이다.’ 이래 자꾸 해 가지고 우리 속에 배야 돼요. 우리 마음에 배야 되고, 우리 지식에 배야 되고, 우리 생각에 배야 되고, 우리 모든 습성에 배야 되고, 우리에게 꽉 배야 됩니다. 요것만 가지고, 이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뭣을 하고 오는지 도무지 콧등이가 안 보이고 어데 가 저쪽에 뒤에 와 앉았는지, 이 사람이 내가 그말 하니까 더 안 보이고 숨기는 거 모양으로, 오늘도 내가 ○집사를 찾았더니마는 보니까 요게 와 앉더니만 또 여기 앉다가 또 저리 갔다 말이오. 저리 가 가지고 콕 숙여 가지고 요래 가지고 있으니 내가 안 보이요. 애가 터져, 나를 속이고 숨을라고 말이지.

그거 모양으로 지금 어떤 학생 하나 청년 하나 고거 내가 소망을 가졌더니만 요게 어데 가 숨어 앉았는지 도무지 콧등이도 안 보여, 뭐 하는지? 제가 뭘 해 가지고 나올런지, 어짜든지 뭐 하고 나오는 것보다 속기는 속습니다. 속기는 속았어. 뭐 암만 ‘내가 숨어 가지고 예수 잘 믿는다’ 해도 백 목사 눈에 자꾸 뜨여야 제가 구원이 잘 이루어지지 백 목사 눈을 피해 가지고 뭐 하는 그것이 ‘내가 목사님 안 보이게 내가 구원 준비해야 되겠다’ 그래도 보이는 것만치 유익이 없어요. 손해갑니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요걸 자꾸 해요, 자꾸. 일을 하며 직장에 차 타고 가며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나 할일은 하나뿐이다.’ 이래, 이래 가지고 좀 미쳐야 됩니다. 미쳐야 돼.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하는 이것을 해서 미칠 만치 자꾸 그렇게 해 가지고 내 전체에 싹 배야 되지 그래 안 하면 되는 것 아닙니다.

이게 있는 사람은 땅위에 있는 모든 거 ‘그것도 가치가 어느 정도다’ 이러니까 이 사람은 세상을 바로 이용하고 필요 있게 사용하지마는 이거 잊어버린 사람은 세상에게 이용당합니다. 요거 하나를 가진 사람은 세상을 이용합니다. 모든 세상은 자기에게 필요한 세상으로 이용하는 세상 주인이요 요거 잊어버린 사람은 세상에게 이용당합니다.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물건에게 이용당하고, 사건에게 이용당하고, 모든 바람에게 이용당하고 다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나 광고합니다.

우리 교회서도 재판국을 설치를 하겠습니다. 이것을 노회도 있고 총회도 있고 큰 교회들은 다 있는데 우리 교회는 그것을 하지 안하고 내가 혼자 독단으로 이래 모두 했었는데 그라니까 내가 분망해서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그래서 또 내가 그 좀 등한히 하니까 이 일이 자꾸 이렇게 물러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일년직인데, 일년직인데 재판국 모든 위원들을 지금 제가 임명합니다.

남반에서 첫째 ○○○, 둘째 ○○○, 셋째 ○○○, 넷째 ○○○, 다섯째 ○○○, 또 여반에 첫째 ○○○, 둘째 ○○○, 셋째 ○○○ 넷째 ○○○, 다섯째 ○○○, 또 여섯째 ○○○ 남반에 하나 빠졌습니다. 여섯째 ○○○. 요렇게 해서 남반 여섯 여반 여섯을 재판국 위원으로 임명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 열둘이 다 할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사건에는 누구누구가 그것을 맡아 가지고 그 일을 좀 살펴서, 이 재판을 삐뚤어지게 한다, 뇌물을 받고 뇌물에 팔려서 교훈하고 또 방백들은 재판을 삐뚤어지게 한다 이렇게 했습니다. 요것이 구약에 있는 방백입니다, 말하자면.

그러기 때문에 요 재판을 잘해야 되니까 그 사건 하나 맡기면 그 사건을 충분히 파고 들어가서 뿌리를 잘 알아 가지고 그 거짓부리를 그걸 딱 정리를 해서 뿌리뽑아 죽여 버리면 그 부근이 다 조용해집니다. 쓴뿌리 하나가 들어 가지고 온 교회를 더럽힙니다.

제가 어제 주일학교 가 가지고 한번 참가했는데 처음에 가니까 그 주일학교 막 엉망으로 흐트러집니다. 이랬는데 한 시간 그 참석 딱 하고 나, 한 시간 됐습니까? ○○○집사? 한 시간 안 걸렸지요? 한 시간 안 됐는데 한 시간 딱 참석하고 나니까 주일학교 학생이 꽉 잡혀서 조용합니다. 조용한데 그 몇 사람이요? 그거 내가 먼 데는 말할 수 없고 내 앞에 있는 사람, 앞에 있는 학생 여기 있는 학생 내가 하나 말했고 그다음에 요 앞에 요 있는 학생 또 하나 했고 학생 그라고 요 어데 있었던가 하나 하고 그 둘을 뚜드려 잡으니까, 뚜드려 잡으니까 그만 전체가 다 조용해 버립니다. 그놈이 그 하니까 저거 하는 게 잘났다 싶어서 가서 따라 자꾸 하는데 그놈을 잡아 뚜드려 잡으니까 그만 조용해.

그놈이 한번 딱 그라고 나니까 잡혀서 숙어서 요 밑에 들어가 버리고 일어나지도 안해. 요 밑에 딱 숨어 버려. 숨어 가지고 일어나지도 안해. 그래서, 그래 인제 그라다가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이라니까 일어나요. 일어나서, 보니까 조용해.

내가 또 칭찬하며 잘한다고 내가 웃어 주고 여기 또 웃어 주고 이라니까 뭐 그 아이가 당장 그만 그 자리에 변화가 돼 버려. 당장 변화가 돼요.

이런데 어떤 반사들은 보니까 이거 뭐 정신 없어 가지고 아이가 그라니까 주먹으로 뚜드려 주고 뭐 이래 뚜드려 주니까 또 장난, 뚜드려 주니까 장난 청하는 거라, 보니까. 장난 청해서. 그러니까 학생들이 와야 배울 것이 적으니까 자꾸 왔다 가고 이렇게 흐트러진다 말이오. 배움에는 꼭 거석이 있어야 됩니다.

권위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도 아주 그만 몇 사람 나쁜 그 행동으로서 나빠져. 우리 총공회 교역자 가운데에 한 두 사람이 들어서 불량을 지기는 그것 때문에 영 아주 그만 총공회가 전부 깡패 공회가 됐어, 깡패. 주먹이 제일이라. 그때 나는 또 몸이 아파서 그때 뭐 골케골케 하는 힘 하나도 없을 때거든.

그래 그 뒤에 내가 힘이 없지마는 병이 나으면서 여러 수백 번 씹었습니다.

‘우리 이 총공회 교역자회는 깡패회다. 여기는 주먹 큰 사람이 왕이지 성령의 권능과 진리의 능력은 다 소용이 없다, 주먹 크고 주먹 센 게 제일 왕이다.’ 자꾸 그걸 내가 얼마든지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기도했습니다. 그런 자들을 꺾어서 어찌 됐든간에 납작해 가지고서, 못을 요래 똑 뚜드려 박다가 요놈을 오글트려 가지고, 여길 봐요.

뚜드려 박다가 오글트려 가지고 못대가리를 요래 꺼꾸로 저게 나무 속에 폭 들어가도록 뚜드려 박아. 그 모양으로 폭 꺾어지구로 박아버리십시오. 내가 요렇게 늘 기도했어.

이래 놓으니까 신세가 가련합니다. 입은 떠들어 쌓지마는 목회가 돼야지, 뭐.

여게서도 마다 저게서도 마다, 제 맘대로 되는가, 어데? ‘내가 말만 하면 되지 웅변이면 되지 열변이면 되지.’ 열변이고 웅변 가지고 하나님이 따라갑니까? 진리가 그 사람에게 이용을 당합니까? 진리는 무슨 권위? 무슨 권위 있어요? 진리는 무슨 권위? 독자적 권위를 가졌어.

이랬는데 그래 내가 이번에 어제인가 여게 보니까 ○○○씨라고 추 집사 구역인데, 추 집사도 다른 데는 그런데 그 ○○씨한테는 뻘뻘 떨었습니다. 꼼짝 못하요. 뚱뚱하게 어떻게 가다인지. 뭐 추 집사가 ‘저거는 암만 말해도 소용없고 저거는 세상도 아무도 꺾을 사람이 없다’ 이랬는데 내가 그 뒤에, 보지를 못해.

보지는 못했지마는 ‘그 사람이 참 많이 은혜를 받아서 변화됐다’ 이랬는데 어째 마침 저 어제 아침에 일층에서 내가 주일학교 하는 데 가 보니까 그 보였어.

보였는데 어떻게 순한 양같이 성녀가 됐는지, 어떻게 성녀가 됐는지.

이래서 내가 그 하도 기뻐서 그래 등어리를 두드려 주며 ‘네가 영 아주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성화됐다. 너거 아이들은?’ 아이가 둘인데 뭐 어떻고 어떻고 하다 해. ‘너거 남편 건강하나?’ 건강하다고서. `어찌됐든간에 잘해라.’ 이라면서 내가 참, 그 보니까 어떻게 반갑고 기쁜지, 영 뭐 성녀가 됐어.

그 뭣 때문에야? 그때 거창 장생골 집회 가 가지고서 장로들 앞에서 막 아이를 뚜드려 패고 이라니까 장로님들이 ‘그라면 됩니까?’ 하니까, `네가 장로면 장로지 뭣 때문에 부모가 자식 훈계하는데 간섭하느냐?’고. 그것 또 말 잘합니다. 말해도 추 집사가 꼼짝을 못했어, 말 어떻게 잘하는지? 이라니까 그만 장로님이 있다가 ‘아이구 이 서부교회는 이거는 말씀은 좋아서 이랬더니마는 행동은 전부 엉망이로구나. 여기 올 데가 아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시험을 받고 간 것을 뒤에 알리고 여기 몇 분들이 그때 재판국에 몇 분들이 거석해 가지고 말을 했다 말이오. 가 가지고 사과를 하고 왔습니다.

거기 가서 사과를 하고 내가 참 잘못했다고 사과하니까 사과할 때 그때 그 마귀가 싹 다 빠져 나가버렸어 싹 다 빠져 나가고 나니까 그다음부터 그만 성녀라. 지금부터 그 가정이 필연적으로 잘될 것입니다. 과거 모양으로 그랬으면 자식이고 뭐이고 다 헛일입니다.

이래서 이 재판국을 지금 이라는데 우리 교회 지금 사건이 두 건이 있습니다.

있는 거 이러면 인제 식구 때문에 시비하는 것도, 식구 때문에 시비하는 것도 요 재판국에다 딱 해 놓고서 ‘누구누구 위원들이 요 무슨 사건을 맡아라’ 하면은 그 맡아 가지고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거 있으니까 내가 혼자 말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여럿 모여 가지고 다 이 공평되게 의논을 하고 또 의논해서 결정지운 것을 제 앞에 알릴 때에 그 바로 됐으면 냅두고 바로 안 됐으면 그것을 다시 또 더 조사해 보라고 이렇게 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 교회에 마구잡이로 이거 죄짓는 이런 못된 거 이런 것이 있으면 이런 것을 잡아서 처리를 해야 됩니다.

내가 어제 학생 그랬어. 이거 장난쳐서 예배드리는 데 방해하고 이런 학생들은 선생이 그자를 위해 ‘우리 반에는 누가 요거 못된 쓴뿌리다’ 요걸 알아 가지고 잡아서 고치고, 고치다가 안 되거든 못 오구로, 다시 ‘못 오게 해라.

쫓아보내라.’ 이랬어.

이래 장년반들도 이래서 우리 교회가 좀 조용하고 좀 깨끗해야 축복받겠는데 어짠지 이 설교 말씀은 자꾸 하는데 도무지 이 축복이 안 오고 이 교회가 냉냉해 가지고 자꾸 이래 돼 가지고 있어요.

이래서 이거 어째 그런가? 이번에 중간반을 이 뒤비쳐 보니까 중간반을 이거 나는 인제 ○○목사님이 있다가, 나쁜 줄은 알아서 ○○목사님에게 이래 내가 몇 번 말했어. ‘네가 중간반을 막 지금 절단을 내고 있다.’ 부인이 하도 거석해 놓으니까 한번 오더니만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 뭐 잘못된 거 없습니까?’ 이래 물어요, 나한테 혼자 와서. 그래 내가 있다가 ‘중간반을 막 절단을 내놨다.

이제 중간반 부장 못 하구로 곧 쫓겨갈 거다. 그런 줄 알아라.’ 내가 이랬지.

그라고 난 다음에 얼마 있다가 내가 딴데로 이동을 해 갔어. 그러면 거기 가서는 잘해요, 지금 인제. 다 기술은 있습니다. 능력은 있습니다. 거기 가서는 잘해서 뭐 교회가 아주 조용하고 잘돼 나가고 있습니다. 있는데, 그렇게 중간반이 보니까 막 이래 가지고 있어요. 이랬는데 이제 중간반이 아마 지금 조금 정신을 차려서 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왜 중간반이 왜 더러워졌느냐? 중간반이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육체로 망치고 있어요. 육체로 망치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장 하던 사람이 그때 돈으로 내가 한 사람 아는 것도 오십만 원 매월 수입이 있었는데 오만 원 월급 받고서 중간반 반사한다고 왔으니까 그건 얼마나 그랬습니까? 또 주일학교 반사들도 돈벌어 가지고 전부 토큰 사서 다 주일학생 구원하는 데만 들였다가서 이거 그만 그라다가 무너져 버려. 그라다가 지금 안 하고 있으니까, 안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놈 네가 안 하면 그만 인제 다 갚아 주겠다.

네까짓 놈한테 빚 안 지고 갚아 주겠다.’ 그 토큰 사 가지고 그래 하던 그 값을 갚아 주니까 이제 안 하고, 그 안 하고 주일학교 반사 안 하고 하니까 살림살이가 좀 올라가고 재산이 모이거든. 이게 모이는 게 뭣 때문에 모이는 줄 모르고 ‘반사 안 하니까 이래 부자된다.’ 좀 더 안 해 봐라. 이제 폭 망해서 없어져.

그때 하나님께서 지금 값을 치러 주고 있는 거라, 안 돼 가니까.

이러지. 중간반도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이제는 뭐 토큰 돈벌이 하는 사람들이 돼 버리고 말았어.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 됐어. ‘이래 가지고 우리 생활을 곤고하게 해 주는데 뭐 이 생활에 곤고해 무슨 일을 할 건가?’ 곤고하기는 왜 곤고해? 살도 그전보다 더 쪘고 평안하기도 더 평안하고 내가 보니까 뻔들뻔들하게 기름이 줄줄 흐르는데.

또 중간반 반사들 막 돈 벌로 써요. ‘얼마나 지금 토큰 거석할라 하면 이라면 안 됩니다. 그거 이라면 차비를 안 주면 그 아이들 안 옵니다.’ 이라니까 구역장들은 막 죽자 살자하고 토큰 안 주면 학생 떨어진다고 해 가지고 토큰을 준다 말이오. 토큰 이래 받고 저래 받고 뭐 또 위에서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그저 심방 가면은 ‘아나 토큰 얼마. 몇이지?’ `다섯입니다.' `그래 다섯 어이.’ 다섯 사람 데리고 오라 그말이오.

이놈은 또 ‘다섯이라? 요게서 서이를 떼먹을까 너이를 떼먹을까 둘을 떼먹을까? 얼마는 떼먹고 얼마는 이 학생 데리고 올까?’ 이런 이 시험에 들어. 내가 너무 과격한 말인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이래 육체로 그쳐 버렸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렇지.

또 이 교회 안에도 이 못된 것들이 몇이 들어 가지고 요런 일, 이래 가지고 숙떡숙떡 이러니까 뭐 내가 몰라 놓으니까 하나님이 처리할라 하니 하나님이 처리하기 시작하면 그만 그 큰일나는 거라. 하나님이 착수해 처리하게 되면 큰일나요. 이래서 부득이 이 재판국을 거석해 가지고 좀 살펴서 이런 것을 정리를 해서 “쓴뿌리가 있음으로서 쓴뿌리 하나가 들어서 많은 사람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라” 이것을 뽑아서, 어짜든지 우리가 이 복음대로 믿으면 벌써 벌컥벌컥 자꾸 교회도 불어 나가고 전부 어데 부자가 되고 전부 다 자기 앞길이 형통해서 환하게 트여 나갈 건데 이 도무지 뭐 교훈이 입술만 가지고 하는 것인지, 교역자들도 그래요.

오늘 그 알지요? 남반에 ○○○, ○○○, 또 ○○○, 또 ○○○, ○○○, ○○○. 손 들어 보이소, 온 사람들? 하나 둘 서이 너이 둘은 안 왔네. 둘은 안 왔어.

떨어졌다. ○○○ 날뛰어서 피곤해서 떨어진 모양이라. 그라면 틀려.

그러니까 순회하는 사람들 부흥사가 왜 망하는 줄 압니까? 부흥사가 부흥할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가 이제 부흥사 마쳤으니까 부흥회 마쳤다 하고서 금요일날 아침 새벽 설교 하고 난 다음에는 휴 이제 다 됐다. 허리끈 푸는 그때 마귀란 놈이 풀게 해 가지고 싹 풀어서 헛일하고 맙니다. 다 그래요.

그러니까 어제까지 뭐 한다고 야단을 지기더니마는 오늘 보니까 훌빈하게 다 비었구만. 오늘 아마 뭐 반사들 거의 다 지금 아침에 새벽기도 결석한 것 같애.

이러니까 ○○○교회서 총동원, 한 달 동안 총동원 한 달을 막 긴장해 이래 가지고 있다가 그만 그거 떡 지나니까 아이구 휴우 하고 쉬다 보니까 쉬는 판에 툭 떨어져서 푹 내려가 버렸어. 그거 다시 올라오기 어려워요.

이런데 오늘도 보니까 뭐 둘 안 왔구만. 아마 안 온 것 ○○○ 왔습니까? ○○○왔습니까? 안 왔어. 그 전달해 주이소. 전달해요. 전달할 사람들 손 한번 들어봐요. ○○○, ○○○전달해야지. 그 안 왔으니까 전달하라 말이오, 요 사실을.

재판국 위원으로 임명됐으니까 그걸 전달하라 그말이오. ○○○? 저 뭐꼬? ○○○ 둘 다 떨어졌구만, 어제 분교 가고 야단지기더니마는. 그럴 때에 정신을 탁 차려서 계속해야 됩니다. 아직까지 마귀의 궤휼을 몰라.

또 여반으로서 자, 손 드십시오. ○○○, 뻐뜩 들어요. 또 ○○○, 편찮아서 좀 있습니다. 또 ○○○? 또 ○○○? 또 ○○○, ○○○도 또 못 나왔지. 이걸 꼭 계속해야 이 능력이 있는 건데 이거는 그저 뭐 항상 ‘아이고, 몸이 아파서 피곤해서’ 누구는 안 아픈가? 그걸 극복해서 이겨야 되지. 그 몸으로 말하면 생생하지, 아직. 새벽기도 이 삼 배 와도 돼요. 그래 자기를 쳐서 복종 못 시키면 헛일이라. 또 여섯째 ○○○? 녜.

그래서 이제는 재판국이 설치됐으니까 이제는 그런 것 있으면 그만 불러다 놓고 해결을 지워야 돼요. 이 교인도 서로 쥐뜯어 가지고 죽이요. 내가 어제 말 들으니까 어제 어데서 뭐 막 분주하게 야단을 지긴다 해서 뭐인고 이래 보니까 교인 하나 가지고 서로 막 밀치락 닥치락 이라면서 이 교인인데, 그 교인인데 암만 어릴 때부터 길렀다 할지라도 뭐 막 못할 소리를 해요, 못할 소리. ‘이년 저년’ 뭐 `이 계집 저 계집' 모두 이래 거석하고서 이라니까 안 믿는 사람이 있다가 ‘저거 뭣 때문에 저 하노? 한 군데는 교회 잔치하고 한 군데는 싸움하고 저 무슨 연극들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게 복음을 콱콱 막아요. 그 회개를 시켜야 돼. 그 사건 그것도 재판국에 다 이제 말할 것입니다. 제가 해야 될 사건 지금 한 서너 건 있어요.

어짜든지 복을 받도록 한번 해 봅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61226금새 선지자 2015.10.27
103 나는 구속받은 사람이다/ 베드로후서 3장 1절-14절/ 791003수야 선지자 2015.10.27
102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마태복음 6장 31절-34절/ 791003수새 선지자 2015.10.27
101 나는 독립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 870920주전 선지자 2015.10.27
10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25절-26절/ 850331주후 선지자 2015.10.27
99 나는 어느 증인인가/ 사도행전 1장 6절-8절/ 820601화새 선지자 2015.10.27
98 나면서 소경된 자/ 요한복음 9장 1절-19절/ 870507목전집회 선지자 2015.10.27
97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6절-10절/ 860924수야 선지자 2015.10.27
9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14절-16절/ 860925목새 선지자 2015.10.27
95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2절-10절/ 790814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7
94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6절-10절/ 861019주새 선지자 2015.10.27
93 나아만의 문둥병/ 열왕기하 5장 1절-27절/ 850519주후 선지자 2015.10.27
92 나에게 찾아 오신 주님께 순종해 보라/ 누가복음 5장 4절-11절/ 861008수새 선지자 2015.10.27
91 나의 행복과 불행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21절/ 870109금야 선지자 2015.10.27
90 낙망이 가장 큰 죄이다/ 누가복음 18장 1절-8절/ 801030목새 선지자 2015.10.27
89 날때부터 소경된 자의 교훈/ 요한복음 9장 1절-12절/ 800118금야 선지자 2015.10.27
88 남을 낫게 여기라/ 빌립보서 2장 3절-4절/ 8404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87 남한 교회의 정화 방식/ 이사야 1장 18절-20절/ 880803수야 선지자 2015.10.27
86 남한에 대한 현실관/ 창세기 13장 14절/ 880619주후 선지자 2015.10.27
85 내 마음 보좌의 왕/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30916금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