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으로

 

1987. 9. 20. 주일오전

 

본문: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에는 종교의 수가 셀 수 없을 만치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을 구원하시는 도는 하나뿐입니다. 모든 이종교들은 다 피조물이 그 교주가 돼 가지고 믿는 것들이니 거기에는 생명의 구원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독교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든 잘못된 것과 사망에 속한 것을 대속해서 다 해결해 주셨고 또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에 속한 모든 것을 대신 행하셔서 구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그말은 독생자라 말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난 자라 그말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난 자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사람으로 나타나신 구주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참 사람이면서 또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이래서 신성과 인성 양성일위로 오셔 가지고 우리의 사망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당신이 친히 대신 사망하심으로 거게서 구출해 주셨고 당신이 우리 대신 모든 생명과 평강의 방편이 되는 것을 대신 행하셔서 완전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고 독생자가 오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영원한 구주가 되신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신구약 성경으로 정확무오하게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는데 이 증거는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말씀을 인간에게 영감시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기록해 주신 참된 지식 곧 진리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아는 것이 믿음이요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요 이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멸망치 않고 다 영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 도를 우리에게 주셨지마는 이 구원 도를 믿는 그 차이는 다 같지 않고 수많은 층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도 많은 층어리를 가지고 있고 인정하는 것도 많은 층어리를 가지고 있고 행동하는 것도 많은 층어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택한 자면 다 구원 얻어 하늘나라는 가지마는 택한 자로서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그의 실력이나 또 부강이나 영광이나 존귀나 그의 지위나 직책은 사람은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 하지마는 성경에 여게 이 층어리는 무한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꼭 같은 구원의 도 구주를 우리에게 주셨지마는 우리 사람들의 믿는 차이가 많아서 구원 얻은 그 영광의 차이가 심히 많습니다.

이래서 오늘은, 우리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이 저 일선으로 많이 교역자로 파송됐습니다. 금년에 파송된 것만 해도 열네 명이 파송됐고 또 처음에 중간반 반사로 온 사람들은 한 사람 남고 전부 교역자로 다 파송돼서 혹은 목사 전도사로 그렇게 파송됐습니다.

이러니까 중간반 학생들은 자기네들을 인도하고 보살펴 주던 그 신앙 지도자들이 다 자기 사명을 맡아서 옮겨져 갔기 때문에 신앙의 지도를 받을 만한 그런 형편이 많이 성글어졌습니다.

이래서 혹 말하기를 ‘그렇게 하면 교회에 너무 많은 큰 영향이 있을 터이니까 그저 다른 교회서는 그런 필요한 일꾼을 하나만 내 보내도 크게 그 얼이 지는데 한목 많이 내 보내면 안 되니까 한둘씩만 서서히 보내자’고 그렇게 말을 했고, 또 저도 그런 생각을 가졌으나 갑자기, 다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주저하지 않고 마구 파송을 시켰습니다. 그때 등용된 반사들로서는 둘이 남았는데, 두 사람 남았는데 두 사람도 이번에 파송이 될 거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서부교회에 중간반 학생들 또 보조반사들, 주일학교 반사들, 또 중간반 반사들, 장년반 이런 분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고 좀 더 강하게 강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에 표어를 만들어 가지고 중간반 학생들과, 보조반사들과, 무보수 반사들, 주일학교 반사들, 또 구역장 이분들에게는 다 한 장씩을 나눠 줬습니다.

그 안에 내용은 이러합니다.

첫째는 ‘나는 독립으로’ 하는 표어가 기록됐습니다, ‘나는 독립으로.’ 또 둘째로는 `무언의 용사로' 기록돼 있습니다. 셋째는 ‘주님만 모시고’ 하는 표어로 돼 있습니다. 넷째는 `어디까지든지' 하는 표어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나는 독립 신앙으로, 나는 독립 신앙으로. 옆에 것을 의지하지 않는 홀로 주님만 바라보는 독립 신앙으로 지금은 빨리 옮겨서 자라야 할 때이기 때문에 이 표어를 한 것입니다, ‘나는 독립 신앙으로.’ 둘째로는 `숨은 신앙의 용사로’ 무언의 용사, ‘숨은 신앙의 용사로.' 셋째로는 `어데서나 주님만 모신 신앙으로.’ 넷째는 ‘어데까지든지 주님 따라가는 신앙으로' 우리가 빨리 성장돼야 할 것을 필요로 느껴서 이 표어를 한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독립 신앙으로, 나는 무언의 신앙 용사로, 나는 주님만 모신 신앙으로, 나는 어데까지나 주님만 따라가는 신앙으로 하는 뜻입니다.

과거 역사에 노아 시대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지마는 모두 사람 보고 믿고 옆에 신앙의 동지 따라서 갈려고 하다가 다 절난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모든 주변에 있는 가족들 신앙 형제들을 의존하는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다 패전했습니다. 이러기에 노아와 같이 우리는 독립 신앙을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또 당시에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으로 부를 만한 사람은 아브라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하나를 보고 당신의 약속도 모든 행사도 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은 다 뚤뚤 뭉쳐서, 독립 신앙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이 붙들었습니다.

또 엘리야 시대도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를 부르시옵소서. 내가 뭐 인생보다 뛰어난 게 없는데 이제는 나만 남았습니다.’ 했습니다. 이제는 나만 남아 있고 다 신앙으로 살다가 죽었고 신앙으로 못 살아서 다 그들에게 정복을 당해서 신앙의 지조를 팔았고 나만 남았습니다 하는 데까지 독립으로 이렇게 나가는 이 신앙을 붙들고 하나님은 역사했습니다.

오늘에는 지금 우리가 몇천 명이 모여서, 또 한 군데 안 모일지라도 몇만 명이 서로 성도의 교통을 가지고서 이래 살지마는서도 언젠간가 우리의 최고의 최후의 승리는, 우리 최고 최후의 승리는 나 혼자 신앙 생활 하는 독립의 시기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독립 신앙을 우리가 마련해야 합니다.

유명하기를 바라지 맙시다.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기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기를 원하는 이게 우리에게 큰 시험인데, 아무도 몰라도 은밀히 고요히 숨어 말 없는 그 신앙에 용사가 되기를 우리가 힘씁시다.

요셉이는 형제간도 몰랐고 아버지도 몰랐고 그러나 그는 형제에게 뭇 배척을 당해도 그는 말 없이 실족하지 안했습니다. 또 그는 그 함정에 집어던져서 그렇게 함정 속에 파묻혔지만 소리 없이 그는 거게서 죄 짓지 안하고 하나님의 구출을 받았습니다. 또 그는 헷 족속에게 상품으로 팔려가는 이 비참한 일로서 먼 타국 애굽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지마는 그는 말 없이 신앙을 지켰습니다. 껍데기야 어떻게 변해 나갔든지 주님 바라보고 믿고 따르는 이 신앙은 요동치 안했습니다.

애굽 나라의 보디발 대장의 아내는 미인인데 이 요셉을 탐을 냈으니까 그가 얼마나 치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몄겠습니까? 그라고 요셉이를 유혹할라고 했지마는 요셉이는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이 칠계의 유혹에 빠지지 안하고 용감스럽게 그 자리서 이겼습니다. 이겼을 때에 억울하게 매장당해서 죄인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주님 한 분만 보고서 그분 한 분에게 바로 할라고 애썼지 사람에게 무엇을 변명하지 안하고 나타날라고 하지 않고 감옥 가운데에 고요히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거게서도 그는 말 없는 신앙으로 주님 앞에 거리낌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원인이 되어 가지고서 애굽 나라에 전무후무한 대 정치가로 통치하는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은밀한 이 신앙의 용기를 기릅시다. 아예 앞으로 아무도 모르는 저 숨어 있는 빈들판이나 어떤 골짝에서 아무도 없는데 우리에게 생명을 두고서 ‘네가 이 성구를 믿느냐, 네가 이 신앙을 가지느냐, 네가 이 점에 대해서 신앙 정조를 변개할 수 없느냐?’ 할 때에 그때에 옆에 보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남의 눈 보고 신앙 지키고, 눈 보고 용기 내고, 눈 보고 승리 하고 하는 사람들은 그럴 때에 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이는 은밀한 가운데서 신앙의 용기를 길렀습니다.

과거 6 5 때도 변판원 선생은 아무도 없는 구덤터 잿만당에 끌려가 가지고서, 간 사람 다 죽었는데. 그를 나무에다 매달아 놓고 그렇게 신앙을 꺾을라고 할 때에 끝까지 신앙으로 산 거 아무도 모르지마는 하나님이 거게 한 사람을 -죽였는데- 살아 있구로 남겨 가지고서 우리에게 전달해서 우리가 그의 은밀한 신앙 용사라 하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다윗도 그 부모 형제들도 천물로 여겼지 아무도 알아 주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을라 할 때에 ‘아들이 다 왔느냐?’ `예, 여기 다 왔습니다.' ‘다 왔느냐?’ `하나 쓰지 못할 막냉이 그까짓 거야 뭐 오나 안 오나 올 것도 없고 볼 것도 없습니다. 그거는 뭐 여게 일국의 왕을 삼을라고 기름 붓는 그런 위치에 있지는 않는 그런 못난 막냉이 아들 하나 있습니다.’ 이랬으나 그는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중에 주님을 믿는 신앙을 그는 갖추었습니다. 숨은 신앙을 갖추었습니다. 인간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아서 그를 이스라엘의 대왕으로 세웠을 때에 역사에 다윗 왕이라 하면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정치가로 그를 삼았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외부에 나타나 보이는, 다른 사람이 알아 주는, 세상에서 영광 있는, 칭찬 있는, 이 세상에 번쩍거리는 것을 표준으로 해서 우리가 신앙을 기르면 이런 것이 없어질 그때에 참된 승패는 있는데 우리가 참된 승패가 있을 그런 때에는 우리는 약화되어서 패전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숨은 믿음의 용사, 무언의 믿음의 용사,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중에서 주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우리가 길러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저 예수 믿고 경건하게만 사는 줄 알았지 사자구덩이를 두고 신앙을 뺏들라고 할 때에 그는 기뻐하면서 사자구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진리가 사자구덩이 들어가니까,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하나님과 영교를 가지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교 가지는 그 영교를 놓지 않기 위해서 사자구덩이에 들어간 그 무언의 용사, 그는 은밀한 신앙 용사였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세계가 알게 유명했지 그들은 다 무언 중에 신앙, 은밀 중에 신앙을 기를라고 애를 썼고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승패가 결정되는, 면류관이 있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그 은밀한 때, 모든 사람이 하나도 알아 주지 안하고 다 불쌍하고 처량하고, 이제 다니엘 신세는 갔다 이스라엘 신세도 갔다 하는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중에서 승리하는 그 신앙은 하나님도 영화롭게 했고 자신도 영광스러워졌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나라 하는 여인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이 남편은 아들 못 낳는다고서 이중 마누라 얻어 가지고서 자녀 낳고 살고 이 한나는 그는 무자의 여인으로서 그랬으나 그는 다만 주님 한 분만 모시고 살았습니다, 주님 한 분만 모시고.

참 불쌍하고 외모가 취할 것이 없는 가련한 여인이지마는 주님 한 분만 보고 살았으니까 주님이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제일인, 이스라엘에 많은 성자들이 있고 용사들이 있지마는 사무엘같은 그런 용사와 그런 성자는 없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한 마디도 흠이 없습니다. 또 그분은 패전한 일이 없었고 그분이 정치를 맡은 이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전쟁 난 일이 없었습니다.

주님만 모시고 사는 그 한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해서 갔던 강대국 나아만 대장의 집에 포로된 계집 종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탈출도 못 합니다. 종이 됐으니 탈출도 못 하고 거게서 매여서 부엌으로 방으로 부엌으로 방으로 항상 나아만 대장의 집에서 종질 했지마는 그는 외모는 그랬으나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만족하고 산 그 여종은 아람 나라에 하나님을 높이고 알고 섬기는 지식으로 온 전국에 가득 차게 한 큰 역사는 이 초초한 계집 종, 주님만 모시고 사는 이 계집 종을 통해서 크게 이스라엘의 영광이 드러났고 하나님의 구원이 그 나라에 충만해졌던 것입니다.

스데반도 그는 어데서나 주님만 모시는 신앙 생활을 항상 훈련하고 연습했습니다.

이러니까 돌무더기 속에서도 그의 평소의 신앙 연습이 하나님만 모시고 사는 그 연습이었기 때문에 인간 보기에는 돌쪼산 속에 파묻혀서 사형을 받으니까 비참하나 그럴수록 주님과 자기와는 더 밀접해지기 때문에 가장 그곳이 기뻐서 스데반의 일생 동안에 그 얼굴에 찬란한 영광의 광채가 있을때는 그 돌쪼산 속에 있을 때입니다. 이러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지막 승리의 기도를 하고 그는 순교했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을 상징한 것인데 선지 사도들은 다 벧엘에, 여리고에 다 처져 있었으나 엘리야를 따라간 이 신앙은 엘리사 하나뿐이었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따라간 신앙은 그 시대에 엘리사뿐이었습니다.

그후 이들을 본받고 사도들은ㅡ사도가 열두 사도 있는데ㅡ사도들은 각각 세계에 퍼져 가지고서 그들은 일편단심 딴것 보지 안하고 주님 가는 데에 동행했습니다.

주님이 감옥에 가면 같이 감옥 가고, 주님이 매맞으면 같이 매맞고, 주님이 욕 얻어먹으면 같이 욕 얻어먹고, 주님이 욕 얻어먹다니? 주님의 선포해 놓으신 진리가 조롱받으면 진리와 함께 조롱받고, 진리와 함께 감옥 갔고, 진리와 함께 매맞았고, 진리와 함께 복음 전했고, 진리와 함께 마지막 죽음에 다 들어갔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손양원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내가 손양원 목사님을 먼저 쓰나 주기철 목사님을 먼저 쓰나 많은 기도 가운데서 손양원 목사님을 먼저 썼습니다. 그는 정치 사상이나 민족 사상은 하나도 아니고 순전히 전인류 사상으로서 끝까지 그는 주님을 따라서 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많은 고문 고형 당했지마는서도 끝까지 주님만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어데까지든지 주님 따라가겠다. 겟세마네 동산이든지 이북이든지 진리 가는 데에 우리 가야 되지 진리, ‘아나 네가 진리 배반하면 해방 준다, 너거 집에 가서 평안하게 살아라. 네가 요 진리를 버리지 안할라 하면은 너는 감옥 간다. 소련으로 잡혀 간다. 소비에트로 간다. 너는 화형을 받는다.’ 어쨌든지 주님 두고 딴데 가지 안하고 진리 두고 딴데 가지 안하고 주님과 진리와 영감은 하나기 때문에 주님과 영감과 진리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어데까지든지 같이 가는,

어데까지든지 주님 따라가려는 요 신앙을 우리가 길러야 하겠고, 어떤 환경에서라도 환경이야 변하든지 말든지 변치 않는 주님 한 분만 모시고, 사람이 알아 주든지 못 알아 주든지 은밀히 고요히 소리 없는, 자기 앞에 닥치는 걸음이면 낱낱이 다 신앙으로 승리해서 나아가는 신앙의 이 용사로, 많은 사람에게 휩쓸려서 이렇게 가는 거 좋지마는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고독한 걸음이 있고, 고독한 걸음이 있고 독립으로 가야 하는 그런 걸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미리 알고 독립 신앙, 고독 신앙, 독보 신앙 이 신앙을 지금 길러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이 표어를 나눠 주는 것은 반사들이든지 보조반사들이든지 중간반 일부 이부의 학생들이든지 이 구역장들이든지 이제는 과거에 서로 우중우중해서 빛좋고 맛좋고 광채 좋고 유명한 그런 시기에 그 해당되는 신앙을 우리가 버리고 이제는 독립 신앙, 은밀 신앙, 주님만 모신 신앙, 어데까지든지 주님 따라가는 신앙 요 신앙으로 중간반 학생들이 다 결심하고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중간반 학생들이나 반사들이, 물론 선생님들이 인도하고 인도함 받아서, 안 갈라 하니까 가자 해서 끌고도 오고 또 토큰 주니까 오고 이렇지마는 이제는 그런 거 바라지 말고, 다 그 선생님들은 지금 다른 개척 교회 갈 뿐 아니라 앞으로 환난이 오면은 다 여러분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참 목자라면 다 사형을 받든지 순교를 당하든지 갇히든지 그리 안 하면 신앙 정조를 팔든지 하여서 신앙 지키는 자는 독립 신앙이 아니고는 유지할 수가 없는 때가 올 터이니까 아예 지금부터, 반사의 인도 따라왔던 그 여러 학생들 여러분들은 독립 신앙을 오늘부터 작정하십시오.

‘나는 이제는 독립 신앙으로 나는 자라가겠다. 나는 은밀한 신앙의 용사로 나는 자라가겠다. 어데서나 나는 주님 한 분만 모시고 나는 자라가겠다. 나는 끝까지 주님만 따라가겠다.’ 요 신앙으로 작정하시고 거게 표어의 뜻을 간단하게 말했으니까 이것을 여러분들이 외우면서도 또 보고 읽고 또 외우고 보고 읽고 외우고, 외우기만 하지 말고. 또 내서 보고 읽고 외우고 이것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마음 속에, 여러분들 마음 속에 깊은 속에 양심까지 충만해서 자기의 정신으로, 자기의 정신과 정기를 삼아서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날마다 우리들이 너무 연약해서 기진하여 있을 때에는 없어질 세상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위로하고 좀 소생시켰다가 소생이 됐다 하면 참 복된 고독의 현실 이해 못 할 역경의 현실을 주사 주님만을 바라봄으로 주님에게만 순종함으로 평강이 있고 그 밖에는 평강이 없는 이 생명길로 인도하실 때에 졸졸 따라나가는 사람은 연한 순같이 자라가고, 가다가 따라가지 못한 자들은 세상 것만 보기 때문에 낙망 원망 불평 시비에서 또 시들어질 때에 주님이 세상 걸 주어서 소생케 하여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시느라고 애쓰시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들로 하여금 알도록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이제는 어데서나 언제나 무엇에서나 환경이 어떻게 변해질지라도 변치 않는 주님만 보고, 어떻게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에 주권하신 주님만 보고, 주위 환경에 속해 있던 모든 밧줄을 다 끊고 독립으로 주님만 바라봄으로 주님이 빨리 가시면 빨리, 높이 가시면 높이, 주님만 따라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이 독립 신앙으로 이제 장성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만 바라보는 이 은밀한 신앙, 주님만 모신 신앙, 끝까지 변치 않는 신앙 이 신앙으로 우리를 성장시켜서 가장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세상 모든 것이 다 허물어져서 세상을 바라보고 애착하는 자는 다 울고 떨고 절단나고 주님 한 분만을 믿고 바라보고 맡겨놓고 순종으로 사는 참된 신앙, 주님을 만족케 기쁘게 여길 수 있는 이 신앙의 사람으로 마지막 승리하고 그 승리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우리들로 장성시켜 주시옵소서.

이제는 때가 왔사오니 저들이 굳게 서서 땅의 것을 보지 말고 위의 것을 찾고 바라보고 승리하고 가신 첫 열매인 주님을 따라서, 모든 선지 사도들을 따라서, 아무래도 가는 세상 아무래도 두고 갈 것 이런 데에서 용감스럽게 언덕을 떠나서 주를 따라가는 신앙들로 자라가는 이 은총을 우리 각자들에게 충만케 하사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 중간반 학생들, 보조반사들, 주일학교 반사들, 무보수 반사들, 장년반의 남녀 종들이 다 깨끗한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는 신앙으로서 주님 한 분이 변치 않음같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요동치 않는 변치 않는 신앙으로 끝까지 주를 따라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결심하고 소원하고 작정하고 발족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저들은 일찍부터 택한 자요 주님의 권속이 되었사오니 믿음을 주셔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님에게 의논하여 주님의 돕는 은혜로 이 사나운 세상을 염려 없이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고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굳게 서서 나아가는 믿음을 주시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남녀 종들에게도 주의 심정으로 점점 화해져서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하여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한 성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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