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1986. 9. 25. 새벽(목)

 

본문:사도행전 3장 14절∼16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전체적으로 믿어야 되고 체계적으로 믿어야 힘이 있고 부분적으로 믿으면 힘이 없는 것을 말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로 나서 그 사람은 정상적인 인생 걸음을 조금도 걸을 수 없는 것을 하나의 상징적으로 이렇게 해서 보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그 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지 그거 하나만 틀려도 또 힘이 없습니다. 이 도리에 대해서 힘이 없습니다.

그러고 또 메어다가 구걸하는 데 갖다 놨다 하는 고거 하나만 요 계시에서 보여 주는 도리를, 도리라 말은 길 도자 이치 이자, 우리가 걸어가는 이치라 그 말이오.

도리. 하나님의 도의 이치. 도리를 자기가 깨닫지 못해도 또 힘이 없습니다. 그만 깨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적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다 바로 깨닫고 바로 믿을 때에 힘이 생겨집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병신으로 난 그것은 원죄로 인해서 우리 영이 다 죽었고, 영은 단번에 죽었고 또 심신으로 된 육도 벌써 사형 선고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은 죽은 자로 생산됐고, 출생됐고 또 이 심신은 벌써 사형받은 자로 출생했기 때문에 그 사형받은 것이, 난 지 한 달 만에 죽는 것은 사형받는 것이 한 달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고 백 살 먹는 것은 백 년 동안 그 사형받은 것이 유지되다가 마지막에 사형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죽을 병든 것이 이래 죽고 마는 거.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영과 육을, 영은 단번에 죽었고 육은 죽을 병이 들어 가지고 죽었는데 그 병을 하나도 고쳐 주지 못한 사람들이요, 또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를 해서 그 영, 죽은 영은 중생시킬 수가 있습니다. 죽은 영은 무슨 전도나 전도하면 그 전도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그 전도를 통해서 그 사람을 중생시키기 때문에 중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신의 기능은 하나도 속량을 받지 못하게 한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본구원에 관한 것을 말씀하신 것도 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하신 것도 있는데, 여게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다 말한 것이지마는 기본구원은 거게 기초를 말한 것뿐이고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이 교훈의 주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교가 사람을 전도해 가지고 예수님을 믿구로 만든다 할지라도 그 사람 영만 중생되고 그 심신의 기능을 죽은 데서 살려서 성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앉은뱅이 메어다 놓은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그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 가르치는 데에 여러 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르쳐서 한 사람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에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고, 백 사람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사람 있고, 또 천 사람 만 사람을 또 자기를 위하는 사람 되도록 그렇게 그런 사람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래 많은 사람이 위하도록 하는 그런 실력가를 만드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우리 나라에 인구는 얼마나 됩니까? 몇천만입니까? 사천만이라면, 남한이 사천만이라면 사천만이 자기를 위하도록, 사천만에게 이용을 해서 위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겠고, 또 세계에 회회교라든지 불교라든지 그런 종교는 더욱 더 많은 사람을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고 천주교에서는 그 교리상은 구원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교리상은 구원이 없고 다만 기본구원은 하나님께서 중생시키기 때문에 있지마는 제이계명을 범하는,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 천주교에서는 제일 으뜸되는 미사라, 미사드린다 해 가지고 그 우상에게 절하는 그런 일이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천주교에서는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교리상은 그거는 아주 건설구원은 다 헛일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 메어다 놓는 데도 구걸하기에 제일 편리하고 좋은 자리, 많은 구걸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메어다 놓을 수도 있겠고 또 아주 행각이지마는 구걸하기에 대단히 불편하고 많은 사람에게 구걸하지 못하도록, 많은 사람에게 구걸할 수 없도록 그렇게 그런 자리에 메어다 놓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를 들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구걸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메어다 놓은 사람으로 말하면 자녀를 공부를 시켜 가지고서 무슨 이 세상에 조그만한 기술 또 큰 기술, 또 아주 낮은 권세 아주 큰 권세, 또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조그만한 미신을 주장하는 사람 대종교를 창설한 종교 창설자, 큰 거 작은 거 있는데, 그라면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자리에다가 많은 사람에게 구걸 받도록 자리에 메어다 놓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 그런 자리에 메어다 놓은 사람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래 제일 구걸 많이 하고 구걸 하기 편리하고 좋은 그런 자리에다가 메어다 놓은 사람이겠습니까? 예? 한번 큰 소리 한번 해 봐. 저 듣구로. 들어야 되지. 종교 창설자, 또? 박사, 도덕가, 또? 철학 박사, 또? 세상 부자, 재벌가, 또? 모든 정권가, 정권자, 또? 이런 사람들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이 여러분들이 생각해서 ‘아멘. 과연 맞다. 요 이치가 요걸, 우리에게 요것을 가르치는 교리라.’ 하는 것을 요것을 딱 잡고 하나 하나 그래 잡아나가야 돼지지 이것 모르는 사람이 예수교를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래 다 껍데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이렇게 구걸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있고, 또 이제는 구걸하는 사람을 변화시켜서 구제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있고 두 가지 종류뿐입니다.

알겠습니까? 목사도 그렇고 뭐 불신자도 그렇고 전부 사람들은 다 그것입니다.

그러면 구걸하는 사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을 메어다 놓은 사람이겠고, 구걸할 수 있도록. 구걸하는 것만 자꾸 도와서 구걸만 많이 하고 잘할 수 있도록 한 사람입니다.

또, 구걸하는 사람을 구제하는 사람 만드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구제하는 사람을 만듭니까? 녜, 다섯 가지로 가지고 만드는데, 다섯 가지로 만드는데 그 사람이 구걸하던 사람이 구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뭣을 하는 것입니까? 예? 병낫게 하는 것이라 말이요, 병낫게 하는 거. 병낫게 한 거.

그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린 것이 첫째 기본이 되겠고, 다음에는 악령 악성 악습, 악령과 자기 중심과 자기 본위로 사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사람으로 살려 놓으면 그 사람의 언행심사의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입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을 언행심사가 다 돕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요걸 확실히 깨달아서 ‘과연 옳다’ 요 꼭 잡지 안하면 힘이 안 납니다.

메어다 놓은 사람은 나중에 그 사람을 빼앗겼습니까 그 사람을 제가 끝까지 제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습니까? 빼앗겼습니다, 빼앗겼어. 또 처음 보는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을 그만 평생 자기를 떨어지지 안하고 자기를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자기에게 소속된 그런 사람 만든 사람은 어떻게 한 사람입니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베드로가 그렇게 만들었지요.

내가 보니까 어떤 사람 뭐 밤낮으로 그 사람을 데리고 그 사람 하나를 제 부하를 만들라고 돌아다니는데, 돌아다니면서 그 사람 뭐 일도 봐 주고 뭐 오만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그 사람을 자기 따르는 사람 만들라고 애를 썼는데 이 사람이 그만 예수를 믿어서 은혜를 받았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그 사람을 과거에 그랬지마는 그 사람이 말하니까 ‘이거 나 죽이는 말이다. 이거 지금 마귀 새끼다.’ 아예 그 사람을 만나지도 안할라 해요. 또 만나 봤자 아무 재미도 없고.

아예 말하는 게 전부다 자기 죽이는 말인 걸 알았기 때문에 다시는 이별되고 말았다 그 말이오.

그랬는데 이 예수의 이름이 몇 가지를 그 사람을, 예수의 이름이 몇 가지 인간을 행복되게 해 줬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몇 가지 해 줬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다섯 가지 해 줬습니다. 또 자신에게는 몇 가지 했습니까? 두 가지 했고, 요거 변치 않습니다. 요 예수 믿는 신구약 성경 가르치는 게 전부 다 요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그것을 요 한 형식 계시에서 또 그걸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신구약 성경은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뭐 백번 천번 전부 다 가르치고, 그걸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렇게 자신에게 두 가지 다른 사람에게 다섯 가지를 해 줄 수 있는 이 역사를 일으켰는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는 데에는 뭣뭣을 가져야 돼요? 은과 금을 가지고 가질 수 있어요? 예? 은과 금을 가지고는 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 왜 없어요? 재산을 떠나야 된다? 떠나야 된다? 왜 못 가질까요, 못 가지기를? 왜 못 가지요? 은과 금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가질 수 있지 안해요? 둘을 가질 수 있지 안해요? 둘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 둘을 가지지 못해요. 왜?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자기 것을 삼는 것이 예수를 자기 것 삼는 것 아닙니까? 예수의 이름을 자기 것 삼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예수님이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친으로 이 화친된 거, 예수님이 대신한 거, 이것이 예수의 이름 아니요? 예수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은 영감과 진리.

그런데 자,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자기 것을 삼을라고 하면은 자기는, 자기는 뭐이요? 자기 것을 삼을라면은 자기는 어찌 돼요? 자기는 어찌 돼요? 어데로 내놔요? 예수님이 대신 형을 받았고 대신 행했고 대신 화친해서 완전히 죽음으로, 있는 걸 다 바쳐서, 생명까지 다 바쳐서 완전히 죽음으로 했기 때문에 자기를 대신 했으니까 자기는 누구 것이 돼요? 자기는 예수님의 것이 됐어요.

예수님의 죽기까지의 그 모든 전부를 다 자기 위해서 한 그것을 내것 만들면은 또 내것은 예수님의 것이 돼야 되지 안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것은 내것대로 있고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도 내것 삼을 수가 있습니까? 내 주머니에 있는 돈도 내것이고 또 그 상점에 있는 물건도 내것이고, 물건하고 돈하고 둘 다 제것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돈 할라면, 돈을 제 돈 제가 가질라면 뭘 못 해요? 제가 뭘 못 해요? 뒤에 큰 소리로 좀 대답해 봐요. 제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제가 제 돈 제대로 가질라고 하면은 뭣은 못 가져요? 저 뒤에 좀 큰 소리해 봐, 좀. 겸손 다, 그거 겸손도 아니야. 나 같으면 배울 때 ‘물건 못 가집니다!’ 고함을 지르겠어. 왜? 그렇게 확신이 있어야 되는데 없으니까 ‘물sz9건sz14 못 가져’ 요게 대해 도리에 대해서 감탄하고 요 도리에 대해서 생명까지 바칠 만한 그런 깨달음이 있으면, 요 깨달음이라야, 바로 깨달아야 생명 바치는 것인데, 요 깨달음이 있으면 그래 힘이 있지마는 요런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뭐 물건’ 뭐 물건 때문에 하고 있어? 요 이치를 가르치기 때문에 고 이치를 확실히 깨달으면 용기가 난다 말이오.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제 돈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 물건은 제 물건 돼요 안 돼요? 물건을 가지면 뭘 내놔야 돼요? 돈은 물건 주인 것 되고 물건은 내 물건 되지.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공로를 내것 만들라면은 나는 예수님의 것 되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한 세 가지 공로는 내것 되지.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를 내것 만들라 하면은 자기는 누구의 것이 돼야 돼요? 자기도 자기 것 되고 예수님의 공로도 자기 것 되고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자기가 예수님의 것 됐으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는 누구의 것 돼요? 자기의 소유는 누구의 것 돼요? 자기가 예수님의 것 됐으니까 자기의 것도 다 으례히 예수님의 것 된 것 아닙니까?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과 이 합한 자기라는 그 자기가 예수님의 것이 안 되면 예수님의 공로는 자기 것이 안 돼요.

그러면 자기 것 자기가 가지고 예수님의 공로 자기 것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은과 금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둘 다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것이 확실합니까? 이거 확실히 가져야 이 능력이 우리를 살린다 그 말이오.

또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이 예수 믿기 전에 자기에게 있는 생각, 말하자면 생각이나 가진 지식은 세상 지식 아니요?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은 정반대인데 세상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가질 수 있어요 없어요? 세상 지식을 부인해야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요. 하나님의 지식을 부인해야 세상 지식을 가지요.

왜? 하나만 예를 든다고 하면은 예수를 믿으면 영생한다 하는 이거는 무슨 지식입니까? 하나님의 지식이지요. 또 세상 지식이 그러면 ‘예수님 믿으면 영생한다’ 하는 것을 세상 지식이 인정해요 부정해요? 부정해요. 진리도 이 세상 지식을 버려야 하나님의 지식을 제 지식 삼을 수가 있어.

또 자기의 주관을 버려야, 영감과 자기 주관은 반대야. 자기 주관은 뭐인데? 자기 주관이 뭘로 됐어? 몇 가지로 됐어? 자기 주관이 몇 가지로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저 뒤에, 모르는 모양이구먼. 자기 주관이 몇 가지로 됐어요? 저 ○○○씨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자기 주관은 몇 가지로 됐어? 뻐뜩 들어 봐. 그래. 자기 주관은 세 가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 주관인데, 자기 주관하고 이 성령의 주관하고 맞아요 안 맞아요? 비슷합니까 정반대입니까? 정반대야. 악령 반대가 성령이야. 악성 반대가 하나님 중심이라. 악습 반대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 의라. 이러니까 이거 정반대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가지고는 가지지 못해요.

요것도 똑똑히, ‘「은과 금은 없다」 요게는 요렇게 말했지마는 과연 은과 금이라 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 대표해서 그와같이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다.’ 자기를 가지고는 예수를 취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이랬어.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부인이 뭣 부인입니까? 몇 가지 부인이 자기 부인입니까? 세 가지 부인이 자기 부인입니다. 이러니까 이걸 가질라면 그러하고,

남에게 다섯 가지를 해 주고 자신에게 두 가지를 이룬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렇게 했습니다. 여게 보니까 그 일곱 가지를 누가 했느냐 하면은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운동을 믿으므로, 사죄 칭의 화친 또 영감 진리 운동, 이 다섯 가지 운동, 이 다섯 가지 운동을 가리켜서 그 이름이라 말이오. “그 이름을 믿으므로” 다섯 가지 운동을 믿으므로, 인정함으로, 인정 안 하면 헛일이라. 인정함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 누가 이 병신을 낫게 했어요? “그 이름이”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뭣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뭐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내나 공로나 이름이나 운동이나 같애요 달라요? 말은 다르나 한가지요 딴거요? 한가지라 그 말이오.

그랬는데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또, 누가 또, 뭣이 낫게 했다 했어요? 믿음이 낫게 했다 해. 처음에는 또 뭐이 낫게 했다 했어요? 이름이 낫게 했다 했어.

두번째는 또 뭐이 낫게 했다 했어? 믿음이 낫게 했다 했어요.

그라면 어찌 돼요? 둘이 갈라 했는가 어울라 했는가? 이름이 낫게 했는데, 이름이 낫게 했는데 낫게 해 주심을 받은 것은 뭐이 받았어요? 낫게 한 거는 뭐이 낫게 했어요? 이름이 낫게 했어요. 이름이 낫게 해 주심을 받은 것은 뭐이 받았어요? 믿음이 받았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할 일은 믿음이 우리 할 일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운동을 믿을 때, 이 다섯 가지가 이렇게 남에게 다섯 가지 해 주고 자신에게 두 가지 해 주고 이 이름이 일곱 가지 할 수 있는 이 사실을 인정할 때에, 인정할 때 그게 믿는 거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인정할 때 믿는 거.

그러면 마음으로 인정만 하면 믿는 것입니까?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을 해야 믿는 겁니까? 그대로 행동해야 믿는 거라 말이오. 마음으로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할 때에 두 가지가 합해야 온전한 믿음이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알고 인정하고 그라면 온전한 믿음입니까?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그대로 또 행해야 온전한 믿음이라. “그런고로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뭐라 했어? “온전케 되느니라” 했어. 요걸 똑똑히, 진리를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러면 예수의 이름이라니? 우리가 할 일은 뭐이요? 알고, 우리가 이 사실을 다섯 가지 능력의 역사가 이 일곱 가지를 해 줄 수 있다 하는 요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인정하고 고다음에 이제 인정하고 난 다음에 할 거 뭐 남았어요? 실행할 거.

실행할 거 남았어, 실행할 거.

뭐이냐? 진리대로 자기가 순종하는 실행을 하고, 영감대로 순종하는 실행을 하고, 또 사죄를 입었기 때문에 다시 사죄 밖에 나가지 안하고, 또 칭의를 입었기 때문에 의를 중단하지 안하고, 또 화친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 배반하지 안하고, 요 다섯 가지를 자기가 믿고, 다섯 가지가 능력의 역사를 해 줄 것을 믿고, 다섯 가지를 믿고 요 다섯 가지를 행동하고 그라면 뭣 돼요? 그라면 뭣 됩니까? 그 다섯 가지가 해 줄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자기가 요 다섯 가지를 그대로 행할 때에, 그 인정하고 행하면 그게 뭐이 돼요? 저 뒤에 뭐이 됩니까? 따라해요.온전한 믿음!온전한 믿음!저 뒤에,온전한 믿음!온전한 믿음! 온전한 믿음 돼요.

그러면 우리 할 일이 뭐이요? 온전한 믿음이 우리 할 일인데 온전한 믿음을 분류할라면 뭐하고 뭐하고 해야 돼요? 이 다섯 가지가 나에게 대해서 내 자신에게 두 가지 해 주고 다른 사람에게 다섯 가지 해 주고, 다섯 가지 남에게 해 주니까 자기도 다 벌써 받은 거 아니겠어? 자타에게 이 일곱 가지를 할 수 있는 것이 요 다섯 가지 능력입니다.

다섯 가지를, 해 준다는 것은 첫째 뭐해야 돼요? 다섯 가지가, 요 다섯 가지가 몇 가지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돼요? 다섯 가지가 요 일곱 가지를 틀림없이, 천지는 변해도 변함 없이 이 다섯 가지가 일곱 가지를 해 줄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뭐해야 돼요? 실행해야 돼요.

실행해야 되는데 다섯 가지 실행하는 것은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라요? 진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라요? 진리에 순종해서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에는? 영감에 순종해 영감대로 행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죄 밖에 나가지 안하는 것, 죄 없이 사는 것, 또 하나는? 의롭게 사는 것, 또 하나는? 하나님과 항상 화친으로 살고 하나님 배반치 안하고 화친으로 사는 것.

요 다섯 가지 힘을 써서 행하는 그것은 우리의 행동이지요? 또 이렇게 하면은 이 다섯 가지가 일곱 가지를 해 줄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거는 고건 뭐이요? 인정하는 건 뭐입니까? 그것도 믿음이요. 그 믿음인데 반쪼가리 믿음이라, 그거. 그 믿음 반쪼가리 믿음, 고 기초 믿음, 기초 믿음 그 위에 건설하는 것은 행함의 믿음.

요 두 가지 하면 되는데 요 사실이 세상 사람들은 물에 넣어도 붇지 안할 그 얼토당토 안한 말이라 그렇게 거짓말로 압니다. 아예 거짓말로 그게 뭐 한 만분지 일도 안 될, 그 아주 통통 허무한 소리를 한다 이래도 이 다섯 가지를 자신이 인정하고 실행하는 데에서 다 성자 됐고, 다 순교자 됐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이제 하나님과 모든 이웃을 위해 바쳤고, 영원히 바치는 봉사자로서 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하늘과 땅의 것이 다 통일될 때 그때 그 나라에 가장, 모든 정권을 가지고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다 없어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환영하고 고대하는 이 모든 존귀한 자들이 요 다섯 가지를 인정하고 행한 데서 다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이 다섯 가지를 인정하고 행하는 데에서 변화되는 것을 봤습니까? 여러분들이 봤소? 다섯 가지를 자기가 요래 해 준다 하는 거 인정을 하고 지금 내가 그대로 지금 살라고 하루 동안을 그렇게 살아 보니까 효력이 있던가요? 하루 동안 살아 본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루 동안 한 번도 하루 동안 모두 동가리 끊어지지 않고 하루 동안 계속해서 살아 본 사람, 살아 본 사람 손들어 봐요. 잘 못 살아요.

보면은 또 동가리가 속에 또 동가리가 끊어졌어. 그래 살라고, 그래 살라고 애를 써서 하루 자기가, 빠뜩 실수했다 ‘아이쿠 요 또 끊어졌다’ 이렇게 하고서 안 끊기고 이 다섯 가지를 인정하고 다섯 가지 인정한 요대로 실행할라고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애를 쓰고 이라니까, 애를 쓰고서 하니까 자기가 변화가 되던가요 안 되던가요? 변화됩디까 안 됩디까? 변화된 경험을 가진 사람 손들어 봐. 가진 사람 다 손들어 봐요. 경험 못 가진 사람 손들어 봐. 한 번도 경험 못 가진 사람. 경험 못 가진 사람 그거는 짐승이야, 그거. 예수 믿어도 믿는 게 아니야. 여러분들 요걸 가져야 됩니다.

‘자, 나는,’ 한번 해 봐요. `오늘부터는,' 오늘부터 내가 뭐 그란다고 그라면 저 굴로 갈 게 아니고, 산으로 갈 게 아니고, 들로 갈 게 아니고 자기 집에서, 주부면 주부로, 또 직공이면 직공으로, 또 가정부면 가정부로, 또 자기가 남의 하인이면 하인으로, 사원이면 사원으로, 대통령이면 대통령으로, 장관이면 장관으로 ‘오늘 나는 요 다섯 가지를 내가, 다섯 가지, 요 다섯 가지를 내가 요 믿어야 된다. 다섯 가지를 인정하고 다섯 가지대로 사는 것이 믿는 것인데, 이 다섯 가지 인정하고 살면 내가 성화가 되고 변화가 된다 이래 했었으니까 되는가 안 되는가 보자.’ 하고서 다섯 가지대로 자기가 한번 하루 동안 살아 볼라고 해 봐요. 사람이 변화가 되는가 안 되는가? 자기 심령이 깨끗하게 되는가 안 되는가? 자기에게 총명이 있어서 모든 것을 환하게, 과거에는 하나만 아는데 둘을 알고, 이제 요만한 범위 아는데 과연 이렇게 넓은 범위를 알고, 현재만 아는데 영원 장래까지를 볼 수가 있고, 그렇게 눈이 열리니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까짓 거는 똥 오줌이고, 세상 사람들이 부인하는 그 속에 참된 보배가 있는 것이 보여지는가? 이렇게 눈이 떠서 새로운 세계를 본 사람 있어요? 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안 봤구만. 그라면, 다. 안 봤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네.

여러분들 장생골 집회 가서, 집회에 갈 때와 집회에 가 가지고 나중에 집회를 참석하고 있을 때와 눈이 같애요, 마음의 눈이 같애요 달라져요? 세상 일로 분주할 때 보이지 안하던 것이 그때 뭐 보이는 게 있던가요? 있읍디까? 없어? 보이는 게 있었지.

또 세상에서 그때 있을 때에는 그렇게 가치가 없는 줄 알았는데 거기 가니까 가치관이 달라집디까 가치관이 과거와 꼭 같습디까? 과거에 가치 있다는 거는 가치가 없고, 없다 하는 그거는 가치가 있고 가치관이 달라지지요. 평가가 달라지지요. 그러면 소원과 소욕이 달라져요 꼭 같애요? 자신이 봐도 자신이 사람이 좀 성질이나 모든 게 좀 달라집디까 안 달라집디까? 달라지는 거 확실히 경험했습니까? 고거라, 고거! 알겠습니까?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자신이 달라져서 달라진 사상이 됐고, 달라진 정신이 됐고, 달라진 마음이 됐고, 달라진 사람이 됐고, 달라진 행동이 됐고,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하는 일에 도와서 하나님의 도움의 혜택과 기적과 능력이 와서 도와 주시는 그런 것을 받은 경험과 체험이 있습니까?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조그매라도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거야. 다 있을 거야.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빠지지 안해요. 한 것만치 다 도움을 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안하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안하고, 주고 꾸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이런 복된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행동하는 그 행동, 그 행동 가지고 그렇게 행복을 만들어요 하나님이 축복으로 하늘에서 내려 줘요? 우리가 만듭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축복으로 내려 줍니까? 자신이 없는 거라. 하늘에서 축복으로 내려 줍니까 우리 행동으로 한 그 행동이 만들었습니까? 예? 하나님의 축복이오.

기적과 축복으로 됐어요. 내가 행동 그 행동 해도 안 될 때는 하나도 안 되는데, 뭐? 내 행동하는 데 그 행동이 하는 것 아닙니다. 행동이 하는 거 아니고 행동하는 그것은 행동은 하나님이 축복으로 해 주실 수 있도록 하는 그 간구라. 우리 인간이 노력하는 거는 우리 인간으로 뭘 만드는 게 아니고, 우리 인간이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네가 있는 전심 전력을 기울여 하면 내가 해 주겠다’ 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약한 대로 해 주실 수 있도록 내가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 전심 전력의 행동입니까, 우리 전심 전력이 그 초자연의 능력, 완전 영원 불변 영생에 속한 것을 우리 노력이 만든 것입니까? 우리 노력은 전지 전능자가 완전한 것을 만들어 주실 수 있도록 계약을 이행한 것입니까 우리의 노력이 완전한 것을 만든 것입니까? 우리 노력이 완전한 것을 만든 것입니까 완전한 걸 만들어 주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조건부의 계약을 내가 이행한 것입니까? 계약 이행한 것이 확실합니까? 이게 확실해야 돼요. 확신이 돼야 돼요.

우리의 노력은 암만 해 봤자 유한한 노력인데, 우리의 노력은 유한한 노력이요, 썩은 노력. 우리 노력하는 그 힘이 썩을 힘이요 산 힘이요? 썩을 힘이오. 썩을 힘이 썩지 안할 것을 만들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우리의 썩을 힘 가지고 썩지 안할 그 능력으로 해 주시는 걸 받을 수 있도록 “네가 썩을 힘 가지고 있는 것 다해 가지고 하면은 내가 썩지 안할 힘 가지고 내가 너를 해 주겠다” 요렇게 계약을 해 놨거든요.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네게 주겠다” 이렇게 계약을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행동하는 이것은 다 썩은 것이요, 유한한 것이요, 없어질 것들이요, 이런 것이 영원히 완전한 것을 만들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만들어요.

못 만드나 만드는 길이 있어. 뭐이냐 하면은 내가 이 썩을 것이나마 있는 거 가지고 있는 걸 다해서 하면, 하면, 조건부라. ‘다하면 내가 이제 전지 전능 가지고 영원히 완전 무결한 것을 내가 너에게 만들어 주겠다.’ 계약이라.

그러면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이 썩을 게 썩지 안할 것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계약 조건에서 계약을 이행함으로 말미암아 만들어 줌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우리의 이 죽은 힘 썩은 힘 가지고 완전을 만드는 것이요? 완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완전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완전한 걸 만들어 주기로 계약한 그 계약자가 있기 때문에 내가 그 계약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내가 계약을 지키면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완전 가지고 만들어 주시겠다고 계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약 이행을 해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계약 이행을 하는 것입니까 내가 계약 이행을 함으로써 내가 그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입니까?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이요 완전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것을 해 주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그 상대방인 하나님이 계약 이행을 해 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계약 이행하는 것이라고 깨달은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거라.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돼. 예수 믿는 사람이 구별해야 돼요.

이런데 뭐 뚱딴지같이 한테 범버무려 놓고서, 이 뭘 말하면 ‘아이고, 서부교회 백 목사는 막 쪼개 쌓아서 귀찮다.’고, ‘쪼개 쌓는다' 쪼개는 게 싫으면 네가 바보가 돼라. 범벅이 돼 봐라. 무슨 구원이 있어? 안 돼요.

자, 우리 이름이 뭐이요? 우리 이름이 뭐이요? 우리 이름이 뭐입니까? 우리 이름이 뭐입니까? 성도라 하는 것은 구별하고 구별하고 쪼개서 구별하는 무리라 그 말이오. 거룩 성자는 구별 성자라. 구별하는 무리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새벽에는 나온 사람들이 팔백 한 오십 명 한 구백 명 될까 모르겠어. 저 아래층에는 앉아 있는가? 아래층 문 잠궈 놨어? ○○○집사님? 아래층에 문 잠궈요. 문 잠궈 버려. 거기 못 들어가구로. 여기만 해도 되는데 뭐. 오늘 아침에는 한 팔백 명은 좀 넘겠어. 이랬는데 나머지기는 오고 싶지마는 못 왔다 말이요, 오고 싶지마는.

나도 세시에 일어나 가지고 기도했어. 세시에 일어나 가지고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이것들이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고 밥 굶기로 했는데 또 오늘 아침에 밥 굶은 사람 많이 생겼습니다. 나오지도 못하고 지금 악령 악성 악습 그놈에게 붙들려 가지고 나오지도 못해 육체의 소욕 그놈이 좀 눕자 좀 눕자 이래 가지고 그렇고 또 이 마귀란 놈이 아예 새벽기도 못 나오구로 저녁에 테레비도 보고 뭐 뉘가 자꾸 친구가 찾아와요. 이래 가지고 사건이 있어서 꼭 열두시 안에 못 자구로 하면 헛일이야. 열시 안으로 아홉시에 자면 다 성공해요.

요거 여러분 보십시오. 나도 그걸 못해요. 자꾸 이거 뭐 다른 데 전화 할라 하면 그렇지 또 누가 만날라면 이렇지, 그런데 제가 경험한 대로는 열두시에 자는, 열두시부터 자는 한 시간과, 또 열한시부터 자는 한 시간과, 또 열시부터 자는 한 시간과, 또 아홉시부터 자는 한 시간과, 여섯시부터 자는 한 시간은 영달라요.

제가 여덟시부터 자는 건 꼭 한번인가 두 번인가 자 봤어요. 그뭐 그때는 이래 좀 거석하고. 또 양산동에 제가 또 그래 가도 그래 내가 또 못 자요. 양심의 가책이 돼서 자꾸 좀 이래 기도하다 보면 그만 시간이 걸려서 안 된다 그 말이오.

한번 어째 여덟시에 자. 여덟시에 잤는데 나중에 깨 보니까 두시에 깨는데 두시에 깨서 암만 잠을 잘라 해야 잠도 안 오고 뭐 완전히 회복이, 피로 회복이 완전히 다 돼 버렸어. 그러니까 여덟시니까 아홉시, 열시, 열한시, 열두시, 한시, 두시, 여섯 시간이지요. 여섯 시간인데 여섯 시간 자면 그렇게 안 그런데 그만 이래 나고 나니까 뭐 암만 잘라 해야 뭐 피곤한 게 하나도 없어, 봐야.

이러니까, 여덟시에 자면은 한 네 시간만 자도 열두시에 자 가지고 여덟 시간 자는 것보다, 열두시에 자 가지고 아침 여덟시까지 자는 것보다 훨씬 낫겠어요. 요 참 저녁으로 한 시간 일찍 자는 것이 얼마나 좀 요거 한번 경험해 봐요.

그래 양성원 학생들 몇시에 잡니까? 아홉시 자요? 열시 자? 열시에 자도 좋아요.

열시에 자면, 열시에 자면은 아침 네시까지 여섯 시간이지? 여섯 시간인데 열시에만 자면 피곤 안 해요. 그러니까 열시에 자는 것보다 아홉시에 자.

아홉시보다 여덟시에.

그러니까 김현봉 목사님은 언제든지, 그 몇시에 잤지? 몇시? 여섯시. 여섯시에 잤어요. 언제든지 여섯시에 자. 여섯시에 자니까 세시에 일어나도, 그러니까 그렇게 까랑까랑하게 살았어. 우리 그것도 한번 노력해 보자고요.

여기 권사님들은 말이요, 전에, 나도 그거 해야 되는데 내부터 해야 뭐 따라오겠는네 내가 하지를 못해요. 이거 뭐 그 사람 만날라 하면 그렇지 또 오늘 저 뭐 어데서 시외에 전화가 올 데 있다고 외국에 전화가 올 건데 이거 전화했다가 자꾸 소문은 다 그거라. ‘아이구 거기는 뭐 전화가 어찌 안 되던지 전화를 열 번 해도 전화가 안 됐다, 스무 번 해도 통화가 안 됐다, 뭐.’ 뭐 전부 이 소리뿐이라. 그래 놓으니까 이거 맞출라 하다 보면 헛일이라. 그만 그거고 저거 실은 다 맞출 필요가 없어. 다 맞추지 말고 그만 전부 여덟시에 자고 그 안에 모든 일 하고 요거 하나만 제대로 하면은 다 해 주시요. 이런데 이 배짱이 없어 탈이라.

오늘 아침에 처음 나온 분들은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이제 요대로 해 달라고 자꾸 기도를 많이 해요. 하루 종일 내일 새벽기도 가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안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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